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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문의 길]포장마차에서 하늘을 보다(2007. 12. 18)
2007. 12. 18 문화/과학
2007년 겨울, 의정부 호호포장마차 새벽녘이면 영락없이/하늘을 본다./계절에 상관없이/오도독 돋는 몸소름,/삶에 무섬증을 탄다.//세파를 막는 벽이/하도 얇아서/포장마차 핑크에는/항상 바람이 끊이질 않지만//와룡산 봄꽃 피는 소리는/오히려 듣기 쉬워서/눈치 빠른 주객은/홀로이 흥겹다.//세상은 표없이 자비로워/고급 아파트 폭넓은 창문은/자신의 불빛으로/도로 눈이 어둡고//얇은 천막 사이로/하늘이 축복처럼 맑아서/오늘도 포장마차에서/빛 고운 별 하나 바라본다. - 김용균 ‘포장마차에서 별을 보다’ 시인은 당뇨합병증으로 인한 심장병으로 영남대 의료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한다. 그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회생하여 어느정도 건강을 되찾은 다음, 대구 성서공단 앞에서 포장마차를 하며 삶의 별을 바라보았다 한다. 그 기적이, 그 희망이 나는 부럽다. 벼랑 끝에서 하늘을 본다는데…. 한겨울임에도 목이 마르다. 서울의 오랜 배후 의정부의 한 골목길에서 포장마차를 만났다. 호호포장마차. ‘호호’ 손을 불어서인지, 좋고 좋아서 ‘호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은밀히 새어나오는 불빛만큼은 따스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서인지 손님은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멀리 해남 산이 출신이다. 산이반도는 겨울이 땅끝으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반대로 때가 되면 뭍에 오른 봄이 북녘으로 올라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겨우내 월동배추의 푸른빛이 황토들을 덮는다. 예정리의 보해농장에서는 눈 속에서 매화가 꽃눈을 키워갈 것이다. 그 아름다운 고향의 기억은 가뭇하고, 어찌어찌 의정부로 흘러들어 포장마차를 연 지 네 번째 겨울을 맞는다. 겨우 입에 풀칠은 하고 살지만, 갈수록 힘겹기만 하다. 서민의 주머니는 더욱 비어만 가고, 단속의 두려움은 항상 골목길을 맴돈다. 얼마 전에도 신고를 받고 나온 단속반에 50만 원의 과태료를 물었다. 외상값을 받지 못해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을 뿐이다. 세상에는 그냥 포장마차를 혐오하는 사람까지도 있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이제 마음을 많이도 비워냈다. 벌이에 대해 헛된 기대를 갖지 않는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이지 않는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점상, 그들은 왜 생겨나는 것이며, 그 숫자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유감스럽게도 누구도 노점상의 숫자가 어떻게 되는지를 집계하지 못하고, 대략의 추측만 할 뿐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노점상의 수는 그 유동적인 성격으로 인해 정확한 집계를 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노점상 발생의 원인은 유형별 파악이 가능하다. 지금도 경동시장 근처에서 장사를 하고 계시는 노인 분들을 상대로 “노점 하시기 전에 무슨 일 하셨어요?” 하고 물으면 “농사를 짓다가 서울로 올라와서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하다 장사를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혹 고향이 전라도 아니시냐”고 이어서 물으면 열이면 여덟 중 “그렇다”고 대답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도시 빈민의 발생 원인을 1960~70년대에 농촌경제의 붕괴에 따른 이농현상으로 파악하는데 이러한 사례가 어김없이 관철되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주변에 번듯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노점상으로 전락한 사례를 이제는 쉽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아마도 급속히 진행된 산업구조 재조정 과정을 거치며 공식부문에서 밀려난 실업자들, 다시 말해서 불안정 노동계층이 급증하면서 노점상들이 급증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최인기 ‘노점상들의 밥그릇을 함부로 걷어차지 마라’ 중에서 한 가족이 포장마차의 문을 열었다. 가장은 서울 한 여중에서 음악선생을 노릇을 하고 있다. 원래 고향인 대전에서 교편을 잡다 큰맘 먹고 서울로 올라왔고, 한 사립학교에 자리를 틀 수 있었다. 어떻게든 더 나은 삶을 위해 안팎으로 뛰고자 했던 것이,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었고 오히려 빚만 늘자 3년 전 명예퇴직을 하면서 퇴직금으로 이것저것 정리해야 했다. 의정부의 한 신설학교에서 1년간의 기간제 교사를 거쳐 다시 전에 다니던 학교에 복직 교편을 잡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곤고하기만 하다. 교직의 열의는 많이도 식어버렸고, 교육의 현장은 갈수록 무참하다. 교사스럽지 못한 교사와 학생스럽지 못한 학생들은 다 누구 때문일까. 딸아이에 이어 아들놈이 대학에 진학했지만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다. 전공도 딱히 원하던 것이 아니었고 학교도 내세울 만한 것이 못 된다. 다 아비가 못난 탓이다. 다행히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아내는 최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방송통신대학에 다니기 시작했다. 열심히 강의도 듣고 동아리에도 나가고 학과대표선거에도 나섰다. 뒤늦은 열의가 가상치만 왠지 가슴 한구석이 아리다. 그래도 아들놈에게 술을 따라주며 건배를 외치는 마음만은 어쩌지 못한다. 인생은 나에게/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눈이 내리는 날에도/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인생은 나에게/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 정호승 ‘술 한 잔’ 드디어 ‘술시’가 되었다. 한 무더기의 손님이 포장마차로 쏟아져 들어왔다. 일행 중 한 명이 운영하는 당구장을 드나들며 안면을 터온 동네 지기들이다. 마흔에서 마흔여섯까지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그들은 제각기의 삶을 영위하며 가끔 당구장에 들러 내기도 하고 술자리를 갖기도 한다. 그렇고 그런 세상살이 이야기가 한 순배 돌고 나자, 화제는 자연스레 대선으로 이어졌다. 다섯 명 중 세 명이 지난번 대선에서 현 대통령을 찍었고, 자신의 손으로 정권을 세운 그 ‘과반수’는 이제 정권을 바꿀 참이라 했다. 차라리 그때 상대 후보가 되고, 지금과 같은 형편이 되었더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을 터였다. 아니, 지금의 형편만 놓고 보자면 상대 후보가 이루어놓았어야 마땅할 결과였다. 한쪽에서는 잔치를 벌이는데 다른 한쪽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가니. 그런데 그들이 다 누구인가. 이쯤 되니 지난번에는 상대 후보를 찍었고 이번에는 처음부터 대세 후보를 찍을 작정이었다는 이의 어깨에 슬쩍 힘이 들어간다. 솔직히 한켠으로 어지간히 마음 졸였던 모양이다. 검찰 발표로 한결 홀가분해진 그는 득의양양했고, 술자리가 끝난 후에는 술값을 추렴하려는 일행을 사래치고 기분 좋게 쏘기까지 했다. 옆자리에서 늦은 연인 한 쌍이 세상사와는 아랑곳없이 그들만의 이야기를 소곤거렸고, 뒤늦게 작업복 차림의 동료 두 사람이 주인아주머니와 마주 앉으면서 어느덧 포장마차는 만원이 되었다. 더는 기다릴 것도 없이 밤은 이슥해져 갔고, 다시 하나둘 제 불빛 속으로 돌아간 뒤 이윽고 포장마차는 처음의 풍경으로 남았다. 대설을 앞두고 일기예보는 대설주의보를 알렸는데, 밤하늘은 별을 감춘 채 단지 꾸무정할 뿐이었다. 눈이 내린다면 그 눈은 서설일까, 아니면 폭설일까. 언젠가는 나도 홀로일 것이다/새벽 잠에서 깨어나/등불 올리고/염주 돌리는 어머니의 손목처럼//오늘도 나는/떠들썩한 포장마차에서/홀로 남겨지는 연습을 한다/마시다 버려진 빈 술잔처럼 - 이길원 ‘언젠가는’ 글·사진|유성문 rotack@lycos.co.kr
유성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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