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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14 건 검색)

[주간 舌전]“농촌에 도움 안 되는 포퓰리즘 법안”(2023. 04. 07 11:44)
2023. 04. 07 11:44 정치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다.” 윤석열 대통령 / 김창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4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한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전량 의무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재의요구(거부권 행사)하기로 결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해당 법안을 ‘쌀 강제매수법’이라고 지칭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두고 여야 정치권은 격렬하게 대립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월 5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한민국 식량주권 포기 선언이고, 국민 생명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자충수”라며 “쌀값 정상화법을 거부하는 정부 여당은 대체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느냐”라고 비판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민주당은 4월 국회 첫 본회의가 열리는 13일 양곡관리법 재투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요구하겠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강민국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목적과 절차에서 모두 실패한 악법”이라고 밝혔다. 한편 조수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과잉 생산된 쌀 문제를 설명하며 “(민생특위에서)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이런 것들에 대해 논의했다”라며 “여성분들 같은 경우에는 다이어트를 위해서도 밥을 잘 먹지 않는 분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주간 舌전
포퓰리즘 프레임에 갇힌 ‘탈모 공약’(2022. 01. 14 15:05)
2022. 01. 14 15:05 정치
ㆍ건강보험 적용 두고 갑론을박… 중증환자에 우선순위 밀리고 재원 마련 계획도 없어 ‘정책 실종’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번 대선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정책 의제가 있다. 바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제시한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이다. 당장 야당에선 “모(毛)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 ‘재명이네 소극장’ 영상 갈무리 이 정책의 발단은 탈모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목소리였다. 민주당 ‘다이너마이트’ 청년 선거대책위원회는 지난 1월 2일 새로운 민주당 당사 공간인 ‘블루소다’ 개관식에서 ‘리스너 프로젝트’의 중간 결과물을 공개했다. 지난해 11월부터 17개 광역지역에서 801명을 인터뷰한 결과 청약 가산점 제도 변경, 위기 아동 청소년 쉼터 확대, 청년과 청소년 대상 금융교육 시행,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이라는 4가지 키워드가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이재명, 뽑는 게 아닌 심는 것” 당시 권지웅 청년선대위원장은 이 후보에게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제안 이야기를 꺼냈다. 이 후보는 “좋네요”라며 “소확행 공약으로 빨리빨리 발표합시다”라고 화답했다. 소확행 공약은 이 후보가 매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발표하는 실생활 밀착형 공약이다. 이후 디시인사이드 탈모갤러리(탈모갤)를 포함한 온라인 공간에서 이슈화가 되면서 이 정책에 불이 붙었다. 이 흐름을 감지한 이 후보는 1월 4일 유튜브에 공개한 동영상에서 “이재명을 뽑는다고요? 노(No),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 앞으로 제대로 심는다 이재명. 나의 머리를 위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탈모 경험을 공개하면서 지원에 나섰다. 선대위 김남국 온라인소통단장은 탈모갤을 찾아 “저도 대학생 때부터 M자 탈모가 심하게 진행돼 프로페시아를 먹었던 경험이 있는 탈모인의 한 사람”이라며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박주민 의원은 탈모갤에 ‘가발 벗은 지 두달 됐다’는 자막이 담긴 자신의 사진을 올리면서 “많이 불러주셔서 인증하고 간다. 여러분, 우리도 행복해집시다”라고 적었다. 김원이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이 후보의 제안에 저를 포함한 1000만 탈모인이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며 “저도 더 용맹정진해 반드시 건강보험 적용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올린다”고 말했다. 야당은 이 후보의 탈모 공약에 반대하고 나섰다. 황규환 국민의힘 중앙선대본부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과유불급이라 했다. 덕분에 ‘한국 대선에 탈모가 최대 관심사’라는 외신보도까지 이어졌다니 참으로 낯부끄럽다”며 “탈모가 이제는 질병으로 인식되는 상황 속에서 국가지원을 논의할 수는 있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질러보겠다는 포퓰리즘은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 뿐”이라고 비판했다. 안철수는 ‘복제약 가격 인하’ 제시 최근 지지율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역시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문제를 제기하며 ‘탈모 복제약 가격 인하와 탈모 신약 연구개발 지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안 후보는 지난 1월 5일 페이스북에 “이 후보께서 표를 찾아다니는 데는 재능이 있어 보이지만, 국정을 책임지려는 입장에서 해결방법이 건강보험 적용밖에 없을까”라며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4년에는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갈될 건강보험 재정은 어디서 만드나. 결국 건강보험료의 대폭 인상밖에 더 있겠냐”고 지적했다. 대선후보 간 공방을 거치면서 탈모 공약이 포퓰리즘 프레임에 빠진 것은 크게 두가지 때문이다. 우선 이 후보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라는 큰 로드맵을 제시한 뒤 세부 항목 중 하나로 탈모 정책을 배치하지 않은 것이 포퓰리즘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의료와 미용 간 경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 탈모 치료도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데는 많은 사람이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중증질환보다 우선순위에서 앞선다고 할 수 없는 탈모 치료로 논의의 초점을 좁히면 당장 탈모치료제를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기 쉽다. 지난해 9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희귀질환인 척수성 근위축증(SMA)을 앓고 있는 12개월 아이 어머니의 사연이 올라왔다. 한 번의 투여로 SMA를 치료할 수 있는 ‘졸겐스마’에 건강보험 적용을 해달라는 청원이었다. 졸겐스마 투여 비용은 약 25억원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보다 탈모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기 어려운 대표적 사례다. 보험료 인상 등 구체적 논의 필요 남재욱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관련해 다양한 이슈가 있는데 큰 그림이 없이 탈모 공약이 툭 튀어나온 상황”이라며 “이상하게 프레임이 짜이는 바람에 우선순위, 재원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반대’로 오인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원 마련의 구체적 계획이 빠져 있다는 점도 포퓰리즘 논란을 자초하는 원인이다. 민주당 선대위는 탈모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연간 770억원가량이 소요된다고 추산한다. 김원이 의원은 1월 5일 ‘청년 탈모 비상대책위원회’ 주최 간담회에서 “탈모치료제 연매출이 1100억원 정도이고, 30%만 환자부담으로 맡기면 재원은 770억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간 70조원이 넘는 건강보험 지출 중 0.1%가량인 770억원 수준이면 건강보험 재정건전성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고 민주당은 주장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소요 재원이 770억원을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탈모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가격이 내려가 기존보다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재원 추계에 ‘수요 현실화’에 대한 고려는 빠져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사회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재원 조달의 사회적 책임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보험 재원은 보험료와 국고 지원 두가지로 마련하는데 보험료 비중이 80% 이상이다. 탈모 공약이 포퓰리즘 논란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보험료 인상 등의 논의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표지 이야기
[취재 후]정책은 안 보이고 포퓰리즘만 남발(2021. 04. 05 15:36)
2021. 04. 05 15:36 정치
4·7 재보궐 선거전이 한창입니다. 선거 후반에는 으레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리지요. 국내 선거판에서 낯선 풍경은 아닙니다. 사실 ‘이기고 봐야 하는’ 정당 입장에서 네거티브는 버리기 힘든 카드입니다. 매번 ‘왜 정책 선거를 하지 못하는가’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치권은 네거티브를 포기하지 못하지요. 시민도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합니다. 반기웅 기자 그런데 이번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그 정도가 심합니다. 이전처럼 형식적으로나마 정책을 두고 경쟁하는 모습조차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정책이 나온 분야는 부동산 정도인데 여당 후보와 제1야당 후보의 공약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두 후보 모두 ‘개발과 규제완화’를 내세웁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두 후보의 부동산 공약은 닮아갑니다. 변별력 없는 부동산 공약과 부동산 네거티브가 지배한 선거판입니다. 시민은 서울시장 후보의 가장 중요한 자질을 ‘정책 전문성’으로 꼽습니다. 1년 3개월 임기 동안 많은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더라도 미래 비전을 보여주길 원합니다. 후보들이 쏟아낸 공약 가운데 시민의 마음을 움직인 정책은 당사자의 당선 여부와 무관하게 살아남게 마련입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후보(민주당)가 내건 공약은 ‘무상급식’이었습니다. 반면 오세훈 후보(한나라당)는 사교육·학교폭력·준비물 없는 ‘3무 교육’ 공약으로 맞섰지요. 한 후보는 패했지만 무상급식 공약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 후보가 뿌린 무상급식 씨앗은 서울시의회에서 싹을 틔웠고, 과실은 전국 학교로 퍼졌습니다. 오 후보의 3무 공약 역시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복지정책으로 자리 잡았지요. 선거판에서 두 후보가 정책 대결을 벌인 덕분에 한국의 교육복지 수준은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어떤가요. 예상치 못한 시기에 치르는 갑작스러운 선거임을 감안해도 정책 실종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취재를 하면서 시민분들에게 선거운동 기간에 무엇이 기억에 남느냐 물었더니 ‘도쿄 아파트’와 ‘내곡동 생태탕’을 꼽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네거티브는 극심해지고 각종 포퓰리즘 공약이 쏟아져 나옵니다. 특히 두 후보의 금융·현금지원 공약을 두고 전문가들은 ‘무책임한 공약’이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근래 보기 힘든 흑역사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취재 후
[이 한권의 책]천하대혼돈-세계적인 포퓰리즘의 진단과 해석(2021. 01. 29 17:06)
2021. 01. 29 17:06 문화/과학
제목에서 저자 슬라보예 지젝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여러 차례 방한한 적이 있는 지젝 말이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그와 직접 마주할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예년과 다르지 않게 <팬데믹 패닉>을 포함해 5권의 책이 번역돼 나왔고, <천하대혼돈>은 그 가운데 하나다. 제목이 낯선 것은 마오쩌둥의 말에서 가져왔기 때문인데, 전체 문구는 “천하대란, 형세대호”다. 천하가 대혼란이지만 기운은 상서롭다는 것. 슬라보예 지젝 지음·강우성 옮김 경희대 출판문화원 지젝의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의 제목이 ‘천하대혼돈’인 것은 어디까지 저자의 의중이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두가지 의미로 읽힌다. ‘형세대호’까지 포함한 것과 포함하지 않은 것. 만약에 ‘형세대호’가 ‘천하대란’에 자연스레 뒤따르는 것이라면 천하대란은 그 자체로 형세대호를 포함한다. 하지만 그 둘이 분리돼 있다면 천하대란을 형세대호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렇게 천하대란을 형세대호로 만들기 위한 철학적 개입으로 <천하대혼돈>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이 대혼돈인가? 지난해부터 전 세계를 덮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먼저 지목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정치적 연대기로는 지난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선 승리와 영국의 브렉시트로 가시화된 우파 포퓰리즘의 득세 역시 대혼돈의 의미를 갖는다. 책에 실린 글들이 몇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지만 지난 몇년간의 국제정세를 고려하면 당연하게도 포퓰리즘에 대한 진단과 해석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파 포퓰리즘을 향한 좌파의 응답’이 지젝의 핵심 관심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포퓰리즘의 전 세계적인 부상으로 얼핏 현재의 정치지형이 자유주의 중도파의 헤게모니를 가운데 두고 양편에 신좌파와 우파 포퓰리즘이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지젝의 견해는 다르다. 우파 포퓰리즘과 자유주의 중도파 기득권 세력의 대립은 진짜가 아닌 가짜 대립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두 입장은 현존 자본주의 질서의 두 측면을 대변할 따름이다. 진정한 대립은 이 두 세력과 좌파의 대립이다. 일례로 위키리크스 사태를 보더라도 그것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싸움이나 트럼프와 미국 기득권 세력과의 다툼으로 비쳐졌지만, 핵심은 우리의 일상에 대해 디지털적 통제를 시도하려는 국가기관과 거대기업에 맞서는 싸움이라는 데 있다. 마오의 모순론에 기대서 지젝은 부차적 모순과 주요 모순을 잘 식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타락한 극우와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중도 자유주의 진영 간의 대립은 부차적 모순으로서 오히려 계급 투쟁이라는 주요 모순을 은폐하는 가림막 역할을 한다. 우파 포퓰리즘은 금융 엘리트(상층계급)와 이민자(하층계급)를 한데 묶어서 적으로 상정함으로써 계급투쟁의 전선을 흐릿하게 만든다. 또한 정치적 올바름 주창자들은 백인 노동자를 그들의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이유로 무시함으로써 역시나 계급투쟁을 무력화한다. 주요 모순이 가려진 채 가짜 대립이 현실 정치를 뒤덮고 있는 상황이 말하자면 천하대혼돈이다. 이를 형세대호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지젝은 68혁명의 오래된 구호를 다시 소환한다. “현실주의자가 되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이 한권의 책
[표지 이야기]포퓰리즘에 올라탄 ‘트럼프의 몽니’(2020. 11. 13 15:10)
2020. 11. 13 15:10 국제
“우리는 이길 겁니다(WE WILL WIN!).” 트럼프가 자신의 트윗 계정(@realDonaldTrump)에 올린 글이다. 문제는 글을 올린 시점이다. 11월 11일(미국 동부 기준 현지시간). 대선이 치러지고 8일이 지난 시점이다. 직전 주말, 대다수의 미국 언론은 민주당의 바이든이 59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이 펜실베이니아주 선거인단 20명을 확보해 273명이 된 것은 11월 6일 오후 8시였다. 대통령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매직넘버 270명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 대선 역사상 초유의 불복 사태가 벌어졌다. 11월 11일, 미국 재향군인의 날을 맞아 알링턴 무명용사의 묘를 찾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헌화를 하고 있다. 대선 후 첫 외부 공식행사에 나선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에는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썼지만 이날 행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AP연합 트럼프의 대선불복엔 트럼프 정부의 주요 인사들, 공화당 인사들이 속속 결집하고 있다. 11월 9일 펜스 부통령은 역시 트위터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모든 합법적인 투표가 집계될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썼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0일 “앞으로 몇 달 안에 2기 트럼프 행정부로의 순조로운 전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재선했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아직 개표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맞다. 11월 12일 현재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이 확보한 선거인단 수는 290명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확보한 선거인단은 217명이다. 승부는 이미 기울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트럼프의 트윗 글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위에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글과 함께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에서 우리 측 참관인들의 참관 없이 개표하는 것을 원한 사람은 없다. 이게 수백, 수십만표를 개표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두 주에서 쉽게 이길 수 있었다. 왜 이것은 보도하지 않는가”라고 적고 있다. 트위터 측은 트럼프의 트윗 글 아래에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이 주장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this claims about election fraud is disputed)”는 경고문을 붙여놓았다. 클릭하면 부정선거 주장에 대한 언론 팩트체크 기사들이 나온다. 유튜브 역시 알고리즘을 변경해 “부정선거 증거를 잡았다”고 주장하는 트럼프 지지 유튜버들 대신 언론의 팩트체크 기사를 상위에 노출하고 있다. 미국 언론은 트위터를 통해 쏟아내는 트럼프의 선거부정 주장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트럼프의 선거불복은 ‘몽니’ 또는 ‘해프닝’으로 끝날 것인가. “트럼프의 선거불복은 개인의 퍼스낼리티 문제나 그 사람이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는다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권자층이 광범위하게 있다는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신 교수는 그 근거로 대선을 앞두고 퓨리서치센터가 공개한 미국 대선 유권자 성향조사를 들었다. “놀라운 것은 4년 전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를 찍었던 사람들의 94%가 이번에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답한다는 점이다. 이건 상대편도 마찬가지다. 지난 선거에서 힐러리를 찍은 사람의 96%는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답하고 있다.” 그런데 조금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적극 지지층에서는 비율이 달라진다. 트럼프 지지자 중 열성 지지자는 73%를 차지하는 반면, 힐러리 지지자 중 바이든 열성 지지자는 53%의 수치를 보인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측의 결집이 민주당보다 훨씬 강했다는 것이다. 선거분석에서 연령, 인종, 교육, 거주지(도시 혹은 농촌에 거주하느냐 여부)는 유권자 성향을 구분하는 대표적 지표다.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대부분의 조사에서 지표별로 뚜렷하게 나뉘었다. 과거 한국의 선거 정치 지형을 분석할 때 나타났던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과 유사한 양상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트럼프는 상대적으로 ‘고연령층의 학력 낮은 시골 백인 거주자’의 표를 얻었다. 신 교수는 여기에 ‘계급 분열’도 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통적인 블루칼라 제조업 노동자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 남성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면 21세기 들어 나타난 탈산업 노동자와 프레카리아트, 유색·이주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서비스업 노동자는 바이든 지지로 나타났다. “문제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런 사람들의 규모다. 한국의 경우 박근혜 탄핵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10~15%로, 그 영향력은 적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유권자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트럼프의 적극 지지층이라는 점이다.” 이 적극 지지층이 트럼프의 불복 주장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바이든이 당선 유효선거인단 이상을 얻어 승리를 확정짓던 11월 6일 저녁(현지시간) 한 바이든 지지자가 “우리가 해냈다. 민주주의가 작동했다”고 적힌 손피켓을 만들어 들어보이고 있다. / AP연합 부정선거 주장은 트럼프가 이번에 처음 내놓은 게 아니다. 자신이 이겼던 지난 2016년에도 내놨던 주장이다.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의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따르면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수백만명에 이르는 불법투표가 있었다”는 주장을 대통령이 된 뒤에도 끊임없이 주장했다. 레비츠키 교수는 책에서 58대 미국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는데, 당시에도 공화당 지지자 중 84%가 “상당한 규모의 부정이 미국선거에서 벌어졌을 것”으로 믿고 있고, “(선거권이 없는) 불법이민자들이 대선에 참여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60%에 달했다. 선거제도에 대한 특정 당파 지지자 사이에 공유된 광범위한 불신을 트럼프는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선 예견됐던 세 가지 시나리오 레비츠키 교수는 책에서 이번 대선에서 미국 민주주의와 관련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트럼프가 대패해 미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높이는 반면교사가 되는 경우다. 트럼프 집권 시기는 영화나 학생 교과서에 ‘미국사회를 재앙으로 몰아넣었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실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쫓겨난 닉슨의 경우가 그랬다). 레비츠키 교수가 악몽이라고 표현한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트럼프가 백인 민족주의를 앞세워 승리하는 경우다. 대규모 추방과 이민 제한, 엄격한 유권자 신분확인으로 투표억제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면서 정치갈등이 극단화되는 경우다. 레비츠키 교수는 “둘 다 현실화되기는 어렵다”면서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측하는 세 번째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트럼프 이후의 미국이 더욱 뚜렷한 양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양 정파 사이의 제도전쟁으로 나가는 것이다. “트럼프와 트럼프주의(trumpism)는 실패하지만, 그 실패는 정당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하고, 미국사회를 지탱해온 규범과 제도의 붕괴도 되돌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역시 비관적 예측이다. 이번 미국 대선과정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은 트럼프지지그룹이 있다. 큐어넌(QAnon)이라는 세력이다. 미국의 인터넷 사이트 4chan에 Q라는 닉네임으로 익명 글을 올린 이의 주장으로부터 시작된 음모론을 지지하는 집단이다. 이들이 제기하는 음모론 수준은 저열해 보인다. 다양한 버전의 이들 주장을 관통하는 주장은 미국을 지배하는 진짜 권력집단, 이른바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집권 기간 4년은 딥스테이트 세력의 ‘음모’에 맞선 트럼프의 투쟁이 벌어진 시기였다. 딥스테이트는 음모론의 단골 소재였던 빌더버그그룹(세계를 지배하는 초엘리트 집단이 있다는 주장)일 수도 있고, 신세계질서나 프리메이슨일 수도 있다. 음모론은 음모론을 낳는다. 대선 후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된 한 영상이 있다. 핸드마이크를 잡은 한 남성이 열광적인 지지자들 앞에서 외친다. “잠자는 거인은 이제 깨어났다. 미국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조 바이든, 빌 게이츠, 닥터 파우치는 모두 지옥에나 가라!” 빌 게이츠와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은 ‘코로나 음모론’에서 코로나19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코로나19 사태를 만든 장본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 남자는 ‘인포워스(infowars)’라는 가짜뉴스 사이트를 운영하는 알렉스 존스라는 인물이다. 지난해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주요 SNS는 알렉스 존스의 계정을 ‘증오를 선동하는 헤이트 스피치’라고 규정하며 폐쇄조치 결정을 내렸다. 위키사이트에 게재된 존스의 프로필에 따르면 그는 미국 정부가 9·11테러를 조작했다는 9·11 조작 음모설 신봉자(9.11 truder)였고, 그전엔 ‘NASA는 달에 가지 않았다’는 음모론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선거부정을 주장하는 트럼프 못지않게 트럼프 지지자들 역시 이런 음모론 신봉자들이 다수일까.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통령을 뽑는 것은 언론이 아니다”라며 보도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AP연합 미국 유권자 절반은 왜 트럼프 선택했나 “트럼프의 역할은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이다. 2007~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산층은 붕괴했다. 자기네의 삶이 피폐해졌는데 트럼프는 그 이유는 정치를 잘못한 상대진영 탓으로 돌렸다. 자신도 집권 시기에 감세를 통해 대기업 편향 정책을 했지만 그게 공장을 중국으로 돌리는 대기업 편을 든 민주당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제조업 부흥을 통해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지지자들은 정말 그런가 보다고 믿었다. 제조업이 부흥하면 자기 일자리도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니 마스크 하나 못 만들어내지 않았나.” 최근 코로나19와 대선 이후 미국사회를 전망하는 책 <아메리칸 엔드 게임>을 펴낸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의 말이다. ‘엔드 게임’이라고 하는 것은 붕괴까지는 아니지만 막장으로 치닫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바이든이나 트럼프 모두 미국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는 실패할 것이라는 점에서 도긴개긴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김 교수는 바이든과 관련한 흥미로운 ‘팩트’를 제시한다. ‘중산층 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조 바이든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역임한 뒤 상류층의 일원으로 등극했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그와 가족 명의로 되어 있던 페이퍼컴퍼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바이든의 정치적 기반인 델라웨어는 최근 들어 대표적인 조세회피처로 떠오르고 있다. ‘델라웨어주 윌밍턴시 노스 오렌지 스트리트 1209번지’에는 힐러리와 트럼프 그리고 클린턴이 만든 페이퍼컴퍼니가 등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의 1201번지에는? 바이든의 페이퍼컴퍼니가 등록되어 있다. 실제 이곳에 등록되어 있는 바이든의 셀틱카프리(CelticCapri) 회사와 지아코파(Giacoppa) 회사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바이든 역시 다수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 기득권 금권세력의 대변자에 불과하다.” 김 교수의 결론이다. “보수와 진보, 혹은 우파와 좌파가 아닌 기득권 엘리트와 다수 국민의 싸움”은 익숙한 서사다.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레토릭이다. 지난 2016년 대선 때 트럼프의 전략가였던 정치 컨설턴트 로저 스톤이 실제로 구사했던 차별화 전략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싸움이 아닌 기득권과 트럼프·국민의 싸움”이라는. “그때는 통했지만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바이든이 이긴 후 미국 언론은 ‘미국이 돌아왔다’는 표제를 뽑았지만, 정말 돌아온 것일까. 미국 민주주의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것만 드러낸 결과 아니었나.” 정치분석가 유승찬씨(스토리닷 대표)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바이든이 이긴’ 선거가 아니라 ‘트럼프가 패배한’ 선거였다. 트럼프 이후, 전 세계 곳곳의 ‘트럼프들’ 문제는 트럼프만 아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트럼프가 있다. 지난해 변방의 정치인에서 대통령직을 거머쥔 브라질의 보우소나루의 별명은 ‘브라질의 트럼프’였다.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를 쓴 장석준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프랑스의 ‘국민전선’, 이탈리아 ‘동맹’, 스페인 ‘복스’, 스웨덴의 ‘스웨덴민주당’ 등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들이 급부상하여 기존 정당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승찬 대표는 “기존 제도권 정당들이 제대로 대의하지 않는 현상이 오랫동안 고착화하면서 정치적 대안을 외부에서 찾는 포퓰리즘 세력화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포퓰리즘 득세 현상은 트럼프만 아니었다. 좌파 버전으로는 샌더스도 있었다. 트럼프가 당선된 뒤에도 전통적인 미디어보다는 트위터와 같은 미디어를 선호하는 것은 반제도권·반엘리트 기조를 계속 유지한 것이다.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위기 속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치가 대의 기능을 잃어버리면서 정치 바깥에서 정치를 찾는 현상이다. 정치 안에 있더라도 아웃사이더, 반정치적인 인물이 선호된다. 한국에서 ‘제도권 바깥은 아니지만 비주류마인드·아웃사이더 정서를 가진’ 이재명 지사의 인기가 대표적이다.” 트럼프의 선거불복은 어떻게 될까. 유 대표는 “실제 바이든 정권이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양분된 미국사회를 통합하는 과정은 굉장히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2024년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것 같다”라며 “트럼프가 취하는 행동을 보면 자신의 남은 임기 내내 최대한 바이든에게 상처를 주고 나오는 것이 자기 전략이고, 실제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쉽사리 가라앉을 진통이 아니라는 진단이다.
표지 이야기
[표지 이야기]폭주 포퓰리즘, 증오는 돈이 된다(2020. 11. 13 15:09)
2020. 11. 13 15:09 정치
ㆍ1인 미디어 확산은 포퓰리즘 정의 확장… 편파적 정치 성향 드러낼수록 인기 “김건희의 충격적 과거! 조만간 윤석열 곁을 떠나겠네!”, “‘추미애 불륜설!’ 경찰 전격 수사!” 윤석열 검찰총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의 제목이다. 11월 초 기준 각각 약 180만회, 101만회씩 조회됐다. 영상 내용은 제목과 큰 관계가 없는 기존 보도나 소문에 대한 평가다. 그럼에도 유튜버의 말을 듣다 보면 슬금슬금 화가 난다. 10분 내외의 짧은 영상 안에 증오를 유도하는 발언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유튜버는 어느새 광고와 함께 사라진다. 이들에게 포퓰리즘적 발언은 그저 ‘돈’과 ‘인기’의 수단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에 관한 의혹 제기 영상(사진 위)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관한 의혹 제기 영상 / 유튜브 화면 갈무리 한국적 포퓰리즘의 탄생 1인 미디어의 확산은 전통적인 포퓰리즘의 정의를 확장시켰다. 새로운 변화에 따라 포함되어야 할 개념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적인 속성은 존재한다. 국민에 대한 호소와 엘리트에 대한 공격성이다. 네덜란드 정치학자 카스 머드는 포퓰리즘을 “사회가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뉘고 궁극적으로 서로 적대시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본래 포퓰리즘은 보통 사람을 최우선하는 대중 사회 운동이었다. 한국에서 포퓰리즘은 정치 엘리트들이 인기에 영합해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나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대중영합적인 ‘포퓰러리즘’이다. 문제는 한국적 포퓰리즘이 지식인·선동가들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공격성을 회복했다는 점이다. 자칭 보수는 진보 엘리트를, 자칭 진보는 보수 엘리트를 공격하며 갈라졌다. 편파적인 정치성향을 드러낼수록 인기는 올라간다. 한국적 포퓰리즘은 국민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제도와 정치 지도자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며 더욱 확산됐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는 ‘돈벌이’의 기회가 됐다.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양극으로 갈라진 사람들을 더 강하게 선동한다. 이를 위해 때론 가짜뉴스도 동원했다. 일부 ‘정치 유튜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브 통계를 분석하는 사이트 ‘플레이보드’는 유튜버가 구독자로부터 받은 돈인 ‘슈퍼챗’의 액수와 그 순위를 발표한다. 이에 따르면 올 1월 10일 슈퍼챗 집계를 시작한 이후 국내에서 슈퍼챗을 가장 많이 받은 10개 중 9개가 정치·시사 방송이었다. 1위를 차지한 가로세로연구소는 누적 수익 10억원을 돌파하며 전 세계 기준 4위에 올라 있다. 일부 정치 유튜버는 자신의 계좌를 공개하며 후원도 따로 받는다. 막말·허위정보 게재로 유튜브 측이 광고를 제한하는 ‘노란 딱지’를 붙여도 포퓰리즘은 계속해서 돈이 되는 구조다. 인기도 따른다. 코로나19 역학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지난달 30일 검찰에 송치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보수를 표방하며 지지세력을 끌어모았다. 그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특정 정당의 지지를 호소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문제가 되는 ‘정치 유튜버’들은 몇가지 특징이 있다. 자신들이 진정한 국민의 대변자임을 자처하며 국가 내 모든 문제는 정치권의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극단적으로 정권교체를 주장하기도 한다. 또 기존 국가 제도들이 모두 기득권 유지에 이용된다고 본다. 정부, 사법제도, 경제기관까지 모두 개혁대상이다. 자신들을 제외한 국내 언론, 학계는 모두 국민의 의사를 왜곡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출처가 불분명한 외국 기사나 인터넷 글을 인용한다. 한국 유튜브 동영상 슈퍼챗 순위 / 플레이보드 제공 이들은 정치를 단순화해 마치 선과 악의 대결로 만든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악마’이며 ‘타도’ 대상이 된다. 언론은 가짜뉴스를 퍼뜨린다고 공격하고, 법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내리면 신상을 공개한다. 일단 선동이 시작되면 정치권도 이에 발을 맞춘다. 국민의 의사가 확인됐다며 언론·사법기관에 대한 장악 시도를 한다. 적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역시 포퓰리즘을 이용하는 이들의 숙명이다. 국가적 어려움, 개인적 불만을 해결하는 데 ‘비애국적 기득권 세력’이라는 낙인이 이용된다. 경제침체, 실업, 양극화, 차별 등의 문제는 모두 이들 탓이다. 정치권, 1인 미디어가 합심해 반대자에 대한 증오를 계속해서 심는다. 결과적으로 한쪽이 우세해 모든 적이 제거되면 그때는 권위주의 독재 시대도 열 수 있다. 세계로 뻗어나간 한국적 포퓰리즘 국내 정치를 대상으로 했던 포퓰리즘은 미국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세계로 확장됐다. 최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부정선거를 고백했다’는 영상과 이에 대한 해석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퍼졌다. 해당 영상은 지난달 24일 바이든이 미국의 한 팟캐스트와 인터뷰한 내용으로 “우리는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부정선거 조직을 만들었다”고 언급한 것이다. 마치 부정선거를 인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부정선거에 대응하는 조직’을 ‘부정선거 조직’으로 잘못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세계 지도자들이 미국 대선을 부정선거라고 확신한다”는 영상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는 일부 유튜버들이 같은 성향 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왜곡된 영상을 퍼뜨린 것이다. 그럼에도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다. 직장인 김성주씨(32)는 최근 부모님과 미국 대통령선거를 이야기하다 깜짝 놀랐다. 김씨의 어머니가 바이든을 두고 “치매환자가 대통령에 당선돼 큰일”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부모님이 유튜버의 말을 뉴스나 정부 발표 수준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유튜버가 정치 이슈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한국정치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시비가 확실하지 않고, 공적 언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다 보니 유튜버들이 이 틈을 파고들었다”며 “양극화된 지지층들이 좋아할 만한 말만 하며 사회를 진영대결로 몰아간다”고 지적했다. 각국의 민주주의 현황을 평가하는 프리덤하우스의 2018년 연차보고서 제목은 ‘민주주의의 위기’였다. 2019년 연차보고서 제목 역시 ‘민주주의의 후퇴’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했는지, 민주주의의 위기가 포퓰리즘을 불러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사회를 적과 동지로 구분된 생존을 건 투쟁장소로 바꾸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를 틈타 누군가는 당신의 정치적 증오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표지 이야기
혁명배당금당 ‘허경영 포퓰리즘(2020. 03. 06 14:33)
2020. 03. 06 14:33 정치
ㆍ예비후보 1000명 돌파… 전국 예비후보 2460명 중 40% 넘어 의문이 들었다. 신인이라니? 1987년 신민당, 1992년 진리평화당 시절엔 기탁금이 없어 대선후보 등록이 사실상 불발됐지만 1999년에는 공화당 후보로, 2007년 대선 때는 경제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던가. “새마을 운동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라며 “기호 8번 찍으면 팔자 핀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대통령 후보 허경영. 그런 그가 정치신인이라니. 3월 8일, 경기 양주의 하늘궁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허경영 국가혁명배당금당 총재./정용인 기자 여의도 국가혁명배당금당 당 사무실에서 만난 열성 지지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신인이 그 ‘신인(新人)’이 아니라 ‘신인(神人)’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박정희 대통령 탄신기념일에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던 어느 지자체장은 있었지만 그건 비유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진짜 하늘에서 인간의 몸을 빌려 내려온 신(神)”이라고 이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정치 빈 공백 치고 들어가기 주효 지난 3월 3일 국가혁명배당금당 예비후보가 1000명을 돌파했다. 전국 등록예비후보 2460명 중 이 당 소속은 3월 5일 현재 1009명이다. 전체의 40%가 넘는다. 공천을 확정한 여·야 주요 정당의 예비후보들은 속속 사퇴하고 있지만 이 당의 예비후보는 여전히 증가세다.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이 당 소속 예비후보가 가장 많은 곳은 세종시로 24명이다. 허경영 당 총재의 본거지인 ‘하늘궁’이 있는 경기 양주로 등록한 예비후보도 20명이다. “우리 당과 다른 당의 차이는 후보등록에 일절 한 푼도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당 공천헌금 같은 것도 없습니다.” 송순권 국가혁명배당금당 사무총장의 말이다. 물론 추가적인 비용은 있다. 선관위에 내야 하는 예비후보 기탁금 300만원이다. 후보를 사퇴하면 이 돈은 돌려받는다. 다만 경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에 따르면 예비후보 전원이 출마하는 것이 아니다. 3월 중순까지 당원 자체 여론조사 등을 거쳐 최종후보를 결정한다. “스펙이나 인물, 이런 것은 솔직히 우리가 볼 것은 없어요.” 기자가 만난 정모씨(58)의 말이다. 이 당의 예비후보‘였다’. 정씨는 자신이 ‘14살 때부터 운전도 하고, 중국집 보이도 했고, 유흥업소 일도 해본’ 서민 출신으로 현재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말했다(선관위의 예비후보자 정보에 그는 국졸로, 건설회사 이사로 표기되어 있다). 그는 허경영 총재의 존재를 15대 대선후보로 출마했을 때부터 알았지만, 본격적으로 안 것은 3년 전 유튜브에서 허 총재의 영상을 접하면서부터라고 했다. “골재사업을 하고 있는데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지난 1년간 사업 자체가 전멸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많이 남아도니 유튜브를 보게 되었고, ‘아, 총재님을 만나러 가야겠다’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이번 총선 자신의 지역구에서 국가혁명배당금당 후보의 당선은 떼 놓은 당상이라고 말했다. “경제는 총재님이 말씀한 대로 20세 이상이면 월 150만원씩 배당금이 만날 나오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총재님이 좋아서 우리가 나오는 거고.” “허경영당에 전과 10범에 성추행범, 살인 전과가 있는 후보도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적 있다. 허경영 총재는 기자에게 “국가혁명배당금당 후보자들의 전과자 비율은 24%로, 현재 후보를 낸 정당 중 가장 낮다”고 주장했다(확인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선관위는 정당별 전과자 비율 통계를 공개하지 않는다). 정씨가 등록한 지역구 당 후보들 중에는 전과 9범도 있다. 정씨도 선관위 정보에는 5개의 전과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씨는 “전두환 정권 때 친구와 길을 가다가 잡혀 삼청교육대에 3년간 끌려간 적 있다”라며 “나머지도 젊었을 때 있었던 혈기에 벌어진 사소한 다툼 때문에 생긴 전과들”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그가 이 당의 예비후보‘였다’라고 쓴 것은 당 후보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낙점됐기 때문이다. 낙점받았다고 하는 후보도 성폭력 특례로 2017년도에 200만원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다. 국가혁명배당금당 예비후보들의 전과기록을 보면 대부분 교통사범이 많다. 국회의원 예비후보 등록자 중 가장 흔한 전과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전과기록은 다 없앨 것이다.” 3월 4일 기자를 만난 허경영 총재의 말이다. 그가 거주하고 있는 경기 양주의 ‘하늘궁’에서 1시간 남짓 인터뷰를 진행했다. 앞서 정씨 사례처럼 후보자가 결정되는 방식은 허 총재가 관여한 ‘천사 오링테스트’다. 엄지와 검지로 O자를 만들게 하고, 허 총재가 주관해 자신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천사’에게 “후보자가 되겠습니까”라고 자문하는 방식이다. 손가락이 안 벌어지면 긍정이고, 벌어지면 부정이다. 이날 정씨는 그 ‘오링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해 후보자에서 탈락했다. “내가 우짭니까. 천사가 아니라는데. 우리는 욕심이 없어요.” 정씨가 남긴 말이다. 송 사무총장은 “이 신인(神人) 천사 테스트와는 별도로, 선관위가 요구하는 서류적 절차는 다 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 총재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코로나 정국에서 국회의원에 들어가는 즉시 서민생계지원금을 한 가구당 1억원을 지급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과반보다 1석 많은 151석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에 못 미친다면 전원 사퇴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의 말이다. “무조건 우리를 찍어야 1억원을 받을 거 아니야. 민주당이나 미통당이나 그놈이 그놈이야. 담배 한 개비, 커피 한 잔 안 주잖아. 그러면 국민이 작당을 합니다. 151명만 붙으면 1억을 준대. 이번에 국가혁명배당금당을 밀어주자는 바람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돼 있어.” ‘천사 오링테스트’로 결정될 후보들 2000만 가구에 세대당 1억원을 지급하면 2000조원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허 총재는 “당선되고 나면 양적 완화, 돈을 찍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유동통화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가장 적기 때문에 인플레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허 총재의 주장이다. 1997년 IMF 환란 위기를 일본은 8000조 엔의 양적 완화를 했기 때문에 넘겼는데, 한국은 인플레 우려 때문에 IMF에 돈을 꿔서 서민 고통을 유발했고, 국가 망신을 당했다고도 주장했다. 허 총재의 주장은 팩트가 아니다. 1997년 환란은 외환보유액 고갈 때문에 발생했다. 한국 돈을 찍는 방식이 아니라 통화스와프가 하나의 해법일 수는 있다. 하지만 당시 ‘강 건너 불구경’을 하던 일본은 통화스와프를 거절했다. 허 총재의 주장에 기자 인터뷰에 배석한 열혈 장년층 지지자들은 박수를 쳤다. 믿는 분위기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3월 3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허경영과 1000명에 육박하는 출마자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국가혁명배당금당 출마자들의 나이와 학력, 직업의 다채로운 ‘서민대표성’을 거론하며 “청년 당사자 정치가 유효하다면 이들의 장년 당사자 정치도 유효하고, 노동자 당사자 정치가 유효하다면 이들이야말로 바로 그 노동자 당사자들”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국가혁명배당금당의 ‘당사자 천 명의 예비후보 출마’라는 성과를 아프게 주목한다”며 “이들이 꾸준히 10년간 사람들을 모으는 동안 ‘진짜 정당’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고, 비록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듣기에 구체적인 정책을 피부에 와 닿게 제시하는 동안 ‘진짜 정당’들은 어떤 정책을 개발하고 또 알리고 있었던가”라고 되물었다. 여·야 진영 다툼의 빈 공간을 허경영 포퓰리즘이 치고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허경영 배당금당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국정치가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전기요금 현실화 막는 포퓰리즘(2019. 12. 16 15:10)
2019. 12. 16 15:10 경제
ㆍ정부 ‘전기요금 동결’ 공식 입장… 내년 총선 의식한 듯 삼한사미(사흘은 추위, 나흘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최근 겨울 날씨를 비유하는 신조어)의 계절이 돌아왔다. 미세먼지와 함께 ‘탈원전 정책’도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탈원전으로 ‘깨끗한’ 원전 가동을 멈추고 석탄화력발전을 늘려 대기오염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미세먼지와 더불어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이 터진다는 분석도 쏟아진다. 지난 12월 8일에는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전기요금이 2040년까지 33% 오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 내부에서도 전기요금 인상론이 흘러나온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 같은 주장을 종합해보면 탈원전은 미세먼지와 전기요금 인상을 부르는 문제투성이 정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일까. 사실이 아니라면 논란은 왜 반복되는 것일까. 미세먼지 시즌이 되면 정부는 석탄발전부터 줄인다. 이미 지난 12월 1일부터 석탄발전 감축에 돌입했다. 12월 첫 주에는 석탄발전소 12기의 가동을 멈추고 최대 45기의 상한제약(발전출력 80% 제한)을 시행했다. 전체적으로는 하루당 석탄발전기 16∼21기를 실질적으로 멈추는 효과가 있었다. 산업부는 석탄발전 감축을 통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미세먼지 배출이 408톤에서 221톤으로 187톤(45.8%) 줄었다고 밝혔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걸림돌로 작용 가동 중인 원전을 중단한다는 ‘설’도 사실이 아니다. 2017년 22.5GW(기가와트) 수준인 원자력발전량은 2022년 27.5GW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지난해 원전 이용률이 2017년에 비해 5%포인트가량 떨어진 65.9%로 집계됐지만 이는 원전 보수를 위해 가동을 중단하면서 떨어진 수치일 뿐 탈원전과는 무관하다. 올해 원전 가동률은 79%(6월 30일 기준)로 2016년 수준으로 회복됐다. 석탄발전 중단으로 부족한 전력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통해 맞춘다. LNG 발전은 석탄보다 깨끗하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LNG 발전의 전력 구입 정산 단가는 1㎾h당 125.3원(2018년 1~8월 평균)으로 석탄발전 89.1원보다 36원가량 비싸다. 석탄발전을 감축하고 LNG 발전량을 늘리면 비용도 늘어난다. 비용 감당을 위한 전기요금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2017년 탈원전·신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을 발표하면서 “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못박았다. 요금 동결 시기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로 특정했다. 2017년 12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공개하며 “2022년 전기요금이 2017년 대비 1.3%가량 상승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신재생 에너지 발전량이 늘어나는 2030년에도 전기요금은 2017년 대비 10.9% 인상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해당 수치는 연료비와 물가 요인을 제외한 과거 13년간 실질 전기요금 상승률(13.9%)보다 낮은 수준으로 사실상 ‘동결’ 수준이다. 문제는 이 대목에서 생긴다. 낮은 전기요금은 지난 정부에서 허가된 원자력·석탄 발전소의 추가 완공과 신재생 에너지 발전 원가 하락 덕분에 가능하다. 만약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석탄발전량을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 설비를 늘릴 경우 ‘환경비용’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전기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한전과 발전업계, 시민사회의 공통된 견해다.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지난 6월 열린 전기요금개편안 토론회에서 “사회환경 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해야 한다”며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해 수요 감축을 유도하고 재생에너지가 감당해야 할 에너지 생산 부담을 줄이는 것은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린피스 회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초미세먼지 위험성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전기요금 동결’을 공식 입장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11월 26일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브리핑에서 “당분간 전기료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불가 의사를 거듭 밝히는 과정에서 요금인상은 ‘해서는 안 되는 것’, 나아가 ‘나쁜 것’으로 인식된다. 상대적으로 낮은 전기요금을 고수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미 저요금 고수 정책의 폐해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당장 전력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 실제로 한국의 1인당 전기사용량 증가세는 연평균 1.5%(2010년 이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소비량도 한국은 1인당 5.73toe(석유환산톤·2017년 기준)로 OECD 국가 평균 4.10toe보다 40%가량 많다. 이렇게 되면 전력 수요와 요금을 맞추기 위해 원자력과 석탄발전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재생 에너지는 전환 초기인 만큼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발전량의 80%를 차지하는 원전과 석탄발전에 다시 의존해야 한다. 전기요금 현실화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친환경 에너지 전환도 불가능한 구조다. 시민사회단체 “사회환경 비용 반영해야” 정부 전기요금 방침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한전이다. 한전은 지난해 1조174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순손실은 연결 재무제표 기준 9322억원이다. 지난해 김종갑 한전 사장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콩을 가공해 두부를 생산하는데 이제는 두붓값이 콩값보다 싸다”며 연료비보다 전기요금이 싼 현실을 지적했다. 한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요금 1% 인상되면 한전의 세전이익은 4200억원 늘어난다. 상장 기업인 한전이 인위적으로 손실이 지속될 경우 문제가 생긴다. 한전은 지난 10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충분한 요금인상이 없을 때 연료비 부담 증가추세가 계속될 경우 한전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달라”는 질의에 대해 “연료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고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면 재무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답했다. 한전은 ADR(미국 예탁증서) 형태로 미국 증시에 상장돼 있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요금 인상 관련해 SEC에 답변서를 보낸 것은 사실”이라며 “해외 투자자와의 소송 이슈를 포함해 법률 서비스 수요가 있어서 법조 인력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한전 적자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한전 역시 지난 11월 중 내놓겠다던 전기요금 개편안 발표를 연기했다. 업계에서는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는 정부·한전의 내년 총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본다. 전기요금을 인상에 따른 반발 여론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초 에너지 전환 정책을 정공법 대신 포퓰리즘에 기대 설계했다가 벌어진 사달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헌석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은 “전기요금 인상은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용기 있게 친환경 에너지는 비싼 재화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IT칼럼]사고를 움직이는 ‘정동’과 유튜브 포퓰리즘(2019. 10. 07 16:40)
2019. 10. 07 16:40 경제
Pixabay 포퓰리즘으로 물든 세상이다. 모든 것들이 극단화·양극화된다. 그렇다. 모든 사고들이 극단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유튜브에서, 페이스북에서, 트위터에서 우리는 극점으로 향하는 로켓 위에 올라탄 채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더 자극적인 것을 갈망하고 더 극적인 것들에 우리의 사고를 대여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이렇게도 극단적인 것에 환호하고 극단적인 것들에 흥분하게 되는 것일까. ‘정동’이라는 개념이 있다. 영어로는 어펙트. 정서, 감정, 감흥이라 해석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정동은 몸과 사고를 움직이는 힘이다. 외부의 어떤 자극과 만나 그 힘은 방향을 갖고 이리저리 떠돌게 된다. 어쩌면 이성 이전의 상태, 이성을 형성하는 질료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동은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전제를 거부한다. 이성 이전의 인간 상태가 무엇인가를 들춰내기 위해 발견된 언어이기에 그렇다. 합리적이면서도 비합리적인 인간의 상태는 정동의 경향성과 방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둘 다 맞다. 정동은 디지털 시대 포퓰리즘을 해석하는 데 꽤나 유용한 이론적 도구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근대적 신념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하기에 그렇다. 왜 사람들은 극우와 극좌의 목소리가 담긴 유튜브 영상에 포획되는가를 상상해보라. 그들에게 어떠한 이성적 판단과 팩트체킹 꾸러미를 선사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안티 백신이라는 가짜뉴스를 신앙처럼 받들고 있는 이들에게 세계보건기구(WHO)의 합리적 정보들은 어떠한 설득의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이럴 때 자주 활용되는 확증편향이라는 개념은 결과를 가리키는 용어일 뿐 원인을 드러내는 무엇은 아닌 것이다. 정동은 중재의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화된다. 이 중재의 메커니즘을 알고리즘이 장악하고 있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알고리즘이 지배하고 제어한다. 우리가 커뮤니케이션하는 대부분의 공간이 알고리즘의 네트워크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의 정동들은 이들이 구축한 폐쇄회로 속에서 맴돌게 된다. 분노를 자극하고 감정을 건드리며 울분을 끌어내는 허위조작 정보에 열광하는 포퓰리즘 속으로 더욱 깊숙이 빠져드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유튜브의 알고리즘 개선 관련 논문이 이를 방증한다. 유튜브 연구진들은 극단화로 빠져드는 추천 경로의 가중치를 낮췄을 때 필터버블이 줄어든다는 결과를 입증했다. 하지만 이 논문을 검토한 다른 연구자들은 여전히 극단으로 고립화시키는 경향을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더 심화한다는 반론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강조하지만 포퓰리즘에 미혹되는 건 우리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이성을 발생시키는 동력원으로서 정동이 외부의 힘에 의해 그 방향을 얻게 된 것뿐이다. 너무나도 빠르게 확산되고 소비되고 공유되는 현실 속에서 느리고 답답한 이성과 사유는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합리적 존재론이니 합리적 공론장따위는 이 국면에서 사치일 수밖에 없다. 남는 건 정동을 동원하기 위한 정치적 쟁투다. 트럼프의 화술은 정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강력한 테크닉이다. 미디어와 그것에 탑재된 알고리즘은 정동을 중재하는 탁월한 도구다. 이제 누가 더 정동을 대규모로 규합하느냐가 새로운 정치의 승리 요건이 된다. 울리고 분노케 하고, 화를 돋우는 극단적인 유튜브 포퓰리즘이 앞으로도 네트 위에서 더 횡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 여당의 허위정보 종합대책도, 팩트체크도 완결적 대안이 되지 못하는 건 합리적 이성에 대한 강고한 신뢰만으로 정동의 방향을 움켜쥐려 하기 때문이다.
[북리뷰]포퓰리즘은 타락한 민주주의다(2017. 05. 29 13:56)
2017. 05. 29 13:56 문화/과학
누가 포퓰리스트인가 얀 베르너 뮐러 저·노시내 역·마티·1만4000원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정치적 으르렁말이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소위 ‘퍼주기 공약’을 일삼는다는 비난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 뿐 아니라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린스턴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얀 베르네 뮐러는 바로 그 점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포퓰리즘에 대한 짧은 분량의 개론서를 썼다. “이렇게 포퓰리즘 거론이 흔한 요즘--현대 민주주의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불가리아의 정치학자 이반 카르사테프는 심지어 현대를 ‘포퓰리즘의 시대’라고 부른다--혹시 우리가 포퓰리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는 건 아닌가 하는 관찰에서 이 책은 비롯되었다.”(10쪽) 우리가 20세기 말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수많은 ‘이론가’들과 달리, 저자는 현란한 문장으로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최고의 이상(국민이 직접 통치하게 하자!)을 실현해주겠다고 약속하는 타락한 형태의 민주주의다.”(16쪽) 여기서 핵심은 ‘타락한 민주주의’이다. 포퓰리즘은 예컨대 왕정이나 귀족정 등과 달리 어쨌건 민주주의의 한 종류에 속한다. 그러나 타락한 민주주의이며, 역설적이게도 그 타락은 국민주권의 실현이라는 도덕적 명분을 앞세워 벌어진다는 것이다. 국민이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그 개념 정의상 ‘완전한’ 실현이 불가능하다. 모든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선호에 차이가 있으며, 사회에는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 어떤 사안에서 이득을 보는 자와 손해를 입는 자의 간극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포퓰리스트들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부정한다. 포퓰리스트가 말하는 ‘국민’은 “도덕적으로 순수하고 완벽하게 단일한”(33쪽) 존재다. “포퓰리스트는 오로지 자기들만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33쪽)한다. 그 결과, 첫째, 포퓰리스트를 지지하는 사람들만이 ‘진짜 국민’이 된다. 둘째, 포퓰리스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진짜 국민’에서 배제된다. 즉 ‘순수하고 완벽하게 단일한’ 국민의 존재를 위해, 누군가가 ‘비국민’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이는 해방 후 지금까지 ‘빨갱이’나 ‘호남’을 타자화하는 극우세력의 그것과 유사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군사독재 세력은 ‘주권자인 국민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는 도덕적 우월성 대신 박정희 신화, 경제발전의 성과를 앞세워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해왔기 때문이다. 얀 베르너 뮐러가 말하는 포퓰리즘적 정치는 오히려 ‘촛불시민의 함성’에서 모든 정치적 선택과 행동의 정당성을 찾으려 하는 오늘날의 풍경과 더욱 잘 맞아떨어진다. 행정부만 바뀌었을 뿐 ‘기득권 세력’이 존속하고 있으며 그들이 대통령을 ‘왕따’로 만들고 있다는 식의 서사가 나타나는 모습 또한 그렇다. 포퓰리즘은 오늘날 민주주의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일면이다. ‘포퓰리즘을 추방하자’는 주장은 그러므로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정체성이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조율해나가며 공존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로의 이행만이 정답일 것이다.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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