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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 방북 이후 한·러, 관리냐 파국이냐(2024. 07. 01 06:00)
- 2024. 07. 01 06:00 정치
- 북·러 협약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속에서 유추한 양국 관계 북한은 지난 6월 19일 북·러 정상회담차 평양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북한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을 수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제재는 무력화했고, 우방과의 관계는 강화했다.’ 주어를 생략하고 보면, 성공한 외교다. 문제는 이 문장의 주어가 북한이라는 점이다. 지난 6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여러 측면에서 논란이 됐다. 특히 회담 결과물인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 조약)의 의미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사실상 군사동맹이라는 주장과 과대 해석이라는 반박, 신냉전의 상징이라는 주장과 이해에 따른 일시적 결속이란 주장이 맞섰다. 단순한 관점 차이 같지만 어느 쪽 분석을 따르느냐에 따라 정부 대응이 달라진다는 점이 문제다. 이미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6월 23일 “러시아가 앞으로 어떻게 응해오느냐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무기의) 조합이 달라질 것”이라며 “최근 러시아는 조금씩 레드라인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경고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의 파국은 아니지만, 실질적 조치가 있을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러시아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은 방북 직후인 지난 6월 20일 “(한국이) 살상무기를 우크라이나 전투 구역에 보내는 것은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상응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면, 어떤 식의 반대급부든 북한으로 전달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제 주목할 점은 한국이 정해뒀다는 ‘레드라인’이다. 북·러 조약 체결은 ‘왜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 아닌 가까워진 정도’인지, ‘무엇이 레드라인을 넘는 것인지’ 등이 궁금증을 만든다. 북·러 조약을 둘러싸고 대립 중인 주장들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봤다. ‘사실상’ 군사동맹은 어떻게 나왔나 북·러 정상회담을 두고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협력의 성격이다. 한국에서는 북·러 조약 제4조가 이른바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으로 알려지며 ‘사실상’ 군사동맹이란 논리로 이어졌다. 그런데 조문을 상세히 뜯어 보면, 이 논리에는 구멍이 있다. 우선, 국가 간 관계에서 ‘자동개입’이라는 것이 가능한가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도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이 없다. 제3조에서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in accordance with its constitutional processes)’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명시했을 뿐이다. 만약 북·러 조약에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이 있다면 이는 어떤 동맹도 뛰어넘는 군사동맹이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금수산 영빈관에서 단독회담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북한이 밝힌 조약 제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 연방법에 따르면 러시아의 군사력을 해외에 투사하려면 푸틴이 아닌 상원의 결정이 필요하고, 유엔헌장 제51조에 따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정으로 자위권이 제약될 수도 있다”며 “결국 자동개입도 아니고, 오히려 푸틴이 유사시 개입하지 않을 수 있는 여지를 달아둔 것에 가깝다”고 말했다. 적어도 ‘자동개입’ 조항 때문에 북·러가 ‘군사동맹’을 체결했단 논리에는 비약이 있다는 의미다. 다만 북·러 조약의 핵심이 군사협력에 있다는 해석 자체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군사협력을 배제하면 과거 북·러 간 맺은 조약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이 안 된다”며 “조약 서명 주체인 김 위원장이 ‘새로운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고 한 만큼 그동안 간접적으로 이뤄져 왔던 군사협력이 보다 명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종합하면 레드라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정부의 애매한 발표를 이해할 수 있다. 북·러 조약만으론 한국을 적대시한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한·러관계가 어디까지 악화할 것인지 역시 추론해볼 수 있다. 신냉전? 일시적 협력? 군사협력이 명시적 흐름으로 나타나는 것은 북한에서 러시아로의 방향이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인적·물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에 북한은 돌파구가 되고 있다. 북·러 간 무기 거래는 이미 미국 군사 관련 전문기관 등에 여러 차례 포착됐다. 주로 러시아 국적 선박이 북한 나진항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러시아 내에 있는 각 항으로 오가는 식이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6월 17일 이 컨테이너에 탄약이 실려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북·러 조약은 이러한 흐름을 노골화한다. 명분은 지난 5월 31일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이 제공한 일부 무기를 사용해 러시아 국경지역을 공격하는 것이 허용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6월 20일 해당 조치는 러시아 전지역으로 확대됐다. 이를 두고 푸틴은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북·러 조약 제2조, 3조는 어느 한 곳이 ‘무력침략을 당할 수 있는 직접적 위협이 조성될 경우 상호 협력’에 관해 다루고 있다. 북한 무기를 활용한 우크라이나 공격이 공식적으로 가능해진 배경이다. 북·러는 파병까지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6월 25일 “우리가 주시하고 있는 사안”이라며 해당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서 미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에 승선해 비행갑판을 시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반면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제공되는 것은 명시적이지 않다. 군사기술, 제재 해제 등과 같은 무형 자산이 반대급부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 6월 25일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보좌관은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대북 제재를 두고 “국제사회가 이 체제의 변화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가치’를 중심으로 한 ‘신냉전의 시작’이냐, 위기 타개를 위한 ‘일시적 협력’이냐로 해석이 갈린다. 신냉전의 시작이란 관점에서 보면, 한·러관계는 사실상 기대할 것이 없다. 현재 해당 관점에 입각한 분석이 힘을 얻는 중이다. 반면 소수지만 일시적 협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 위원은 “2021년 기준, 북·러 교역은 4만달러 수준인 반면 한·러는 272억달러였다”며 “푸틴이 계획하고 있는 시베리아횡단철도, 북극항로 활성화 등에도 한국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러시아가 김정은을 껴안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필요한 탄약을 얻고, 북한은 유사시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실리를 쫓은 것일 뿐 가치연대 식으로 확장하는 것은 상황을 오판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언론, 전문가 등이 신냉전의 시작이란 분석을 쏟아내는 것과 달리 한국 정부는 “러시아의 태도를 보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위기 타개를 위한 일시적 협력으로 보는 관점에 가깝다. 불과 지난 6월 초만 해도 한·러관계 개선 기대감이 한껏 높았다. 정부가 러시아와의 관계 해법을 통해 외교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8)상처 입은 러시아의 분노, 푸틴 집권의 길 열다(2022. 07. 15 14:30)
- 2022. 07. 15 14:30 문화/과학
- ㆍ체첸 전쟁을 다룬 영화들 <브라트> 2부작의 주인공 다닐라 역을 맡은 세르게이 보드로프 주니어의 영화 경력은 혼란했던 러시아의 1990년대를 관통한다. 그의 데뷔작은 1차 체첸 전쟁을 소재로 한 1996년 <코카서스의 죄수>였다. 1997년 <브라트>와 2000년 <브라트 2>에선 체첸 전쟁 참전용사 경력의 킬러로 출연했다. 2002년 <전쟁>에선 2차 체첸 전쟁에 장교로 참전한다. 당대 러시아를 관통했던 경제위기와 모라토리엄 그리고 체첸 전쟁을 영화 속에서 전부 체험한 셈이다. 영화 스틸 / DAUM 영화 체첸 전쟁은 소련 연방 해체 후 러시아가 겪은 재앙의 최종판이다. 고르바초프가 꿈꿨던 ‘독립국가연합(CIS)’의 꿈이 무너진 자리엔 15개 독립국가가 급작스레 들어섰다. 소련 시절 경제는 국가소유였고, 서로 긴밀하게 결합된 순환구조였다. 갑자기 그 연결고리가 끊어지자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혼란은 극심했다. 국유재산은 왕년의 공산당 간부와 신흥 재벌의 유착으로 조각조각 삼켜졌다. ‘올리가르히’라 불린 기득권 집단의 탄생이다. 국민의 삶은 소련이 그리울 만큼 망가졌다. 그런 상황에서 군대가 충실히 유지될 리 없었다. 인구 120만의 체첸 앞에서 초강대국 러시아의 자존심은 산산이 박살 났다. 굴욕을 갚기 위해 러시아는 울부짖었고, 하늘에서 강림하듯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이름의 정치신인이었다. 1차 체첸 전쟁과 평화의 가능성 푸시킨의 시, 이를 바탕으로 쓴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을 1차 체첸 전쟁으로 옮겨 만든 세르게이 보드로프 감독의 <코카서스의 죄수>는 배경만 현대로 바꿨을 뿐 원작과 거의 같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감독의 솜씨도 있지만 해당 지역의 지정학적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작은 제정 러시아가 카프카즈 산악지대에서 타타르인들과 기나긴 항쟁을 펼치던 시절, 포로로 잡혀 인질이 된 러시아 장교 질린과 코스틸린의 고생담이다. 러시아 제국주의의 시각이 강하지만 대문호들의 필력과 고증 덕분에 카프카즈 지역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영화 포스터 / DAUM 영화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즌2를 찍던 체첸 산간에서 신병 질린과 고참병 샤샤가 포로가 된다. 아들이 러시아 감옥에 갇힌 체첸인 압둘은 인질교환을 위해 둘을 산다. 질린과 샤샤의 기약 없는 인질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포로교환에 무관심하다. 압둘은 인질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 교환이 안 되면 둘은 죽은 목숨이라고 말한다. 샤샤는 탈출할 궁리뿐이지만 질린은 압둘의 어린 딸 디나, 머슴 하산과 친해진다. 잔인한 운명이 그들 앞에 다가온다. 체첸인은 적이라는 샤샤의 경험적 판단과 인간적 정을 간직한 질린의 입장은 대조적이지만 영화는 둘 다 원치 않는 결말로 치닫는다. 2차 체첸 전쟁의 무자비 속으로 <브라트> 연작을 연출했던 알렉세이 발라바노프의 2002년 작품 <전쟁>은 2차 체첸 전쟁을 소재로 1차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야만적 전장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이 영화에는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을 참수하는 스너프 영상 ‘체첸 클리어’ 묘사도 나온다. 카프카즈 산악지대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체첸 독립군이 러시아군과 영국 사업가를 납치하고 몸값을 요구한다. 인질을 구하기 위해 체첸으로 향하는 이들의 모험 속에 적대적 공생으로 치닫는 러시아와 체첸의 현실, 속고 속이는 전장 상황이 허무적으로 묘사된다. 독립투쟁은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고, 극단주의 세력의 연이은 테러로 러시아 국내를 격분케 함은 물론 체첸 문제에 방관하거나 온정적이던 서방의 외면을 불러온다. 결국 체첸은 새롭게 권좌에 앉은 푸틴의 ‘평탄화’ 전술로 초토화된다. 2차 체첸 전쟁의 승리로 노쇠한 옐친의 권력을 물려받은 푸틴은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치밀하게 계획해 희생을 감수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국민은 지지한다는 것. 그 경험은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2014년 크름반도(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전쟁, 그리고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체첸 전쟁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영화 포스터 / DAUM 영화 ‘안정화’된 체첸의 현재 러시아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체첸자치공화국 수장에 독립전쟁 온건파에서 친(親)러시아 진영으로 전향한 아흐마드 카디로프를 등용한다. 초대 수장이었던 카디로프가 2004년 암살된 후 갓 서른의 나이에 대통령에 취임한 2대가 바로 아들 람잔 카디로프다. 겉으로 체첸 독립운동은 소멸했고, 잔존세력은 ISIS(이슬람 근본주의 표방 국제테러단체) 등으로 흡수된 상태다. 이제 체첸에 평화가 찾아온 걸까? 다큐멘터리 <웰컴 투 체첸>에서 볼 수 있는 체첸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모스크바는 수만의 전사자를 낸 1~2차 체첸 전쟁처럼 무장투쟁을 벌이지만 않는다면 안심이다. 카디로프 지배하에서 체첸자치공화국은 샤리아법(이슬람의 종교법)과 비민주적 독재로 악명이 높지만 이들(카디로프 정권)이 극단주의 세력만 관리해주면 인권유린은 부차적 문제일 뿐이다. 보수적 이슬람주의 땅을 사실상 군벌이 장악한 셈이다. 그런 체첸에서 성소수자들이 겪는 끔찍한 실상을 영화는 폭로한다. 람잔 카디로프는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체첸에는 동성애자가 없다”고 호언한다. 영화에는 피해자의 증언과 동영상이 가득하다. 2017년에만 100여명 이상이 불법 구금되고 3명 이상 살해된 것으로 조사됐다. 체첸 내 상황에 맞선 러시아 LGBT(성소수자) 활동가들의 생명을 건 싸움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체첸의 극단화는 푸틴이 장악한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하는 중이다. 활동가들의 신변이 위협받는 건 물론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용기 있는 실천으로 2년여간 151명의 성소수자가 국외 탈출을 감행했다. 캐나다 내 연대 단위들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과거 흑인노예들을 구출하던 비밀조직)가 44명의 망명을 이끈다. 권위주의 국가들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던 미국(트럼프 집권기)은 단 한명도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체첸 상황은 지구 반대편의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를 산동네 이야기가 아니다. 체첸의 문제는 곧 강대국 러시아의 우경화 수준을 진단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체첸군의 악명이 뉴스를 통해 수시로 등장한다. 이뿐 아니라 러시아 내의 반 푸틴 세력을 테러하고 암살하는 전위부대로 람잔 카디로프의 사병들이 동원되고 있다. 대놓고 푸틴 정권이 손대지 못할 문제를 알아서 처리해주는 카디로프를 모스크바가 예뻐하지 않을 리 없다. 이곳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체첸이 처한 현실은 강대국의 위선과 불의를 폭로하는 분명한 사례다. 우리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이 땅의 현재는 머지않은 미래에 결국 우리 집 현관에 도달할 것이다.
-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 [할 말 있습니다](6)푸틴의 전쟁, 그리고 글로벌 안보환경의 미래(2022. 04. 01 14:21)
- 2022. 04. 01 14:21 국제
- 러시아의 붉은군대가 ‘선’을 넘은 지 40여일이 지났다. 지난 2월 24일 모스크바 시각으로 오전 5시 50분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직후 러시아군이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서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 축선에 걸쳐 비선형 동시통합작전을 감행했다. 개전 2일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수도 키이우의 함락을 우려하며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했다. 러시아는 침공 3일 만에 우크라이나와 휴전 협상을 협의하는 등 전쟁은 러시아군의 의도대로 종결될 가능성이 우세해보였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약 400㎞ 떨어진 트로스얀네츠에 3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국기를 꽂은 장갑차를 타고 진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틀 전 트로스얀네츠를 장악했던 러시아군을 몰아냈다. / AP연합뉴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이 결사항전의 의지로 러시아군에 맞서면서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가 강력하고 속도감 있는 제재를 시행해 러시아의 경제를 봉쇄하고 있으며, 대전차 미사일과 탄약 등 전략물자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모스크바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확산되는 반전여론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 의지를 북돋우고 있다. 러시아군의 전투력 약화와 사기 저하가 의심되는 가운데 군수지원까지 난항을 겪으며 푸틴 대통령이 구상했던 단기 속도전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여전히 봉쇄하고 있으며, 전 전선에 걸쳐 100㎞에서 250㎞ 이상 종심(전방에서 후방까지의 거리)을 점령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하다. 지난 3월 29일 기준 우크라이나의 영유아 사망자 104명을 포함해 약 1200명에 이르는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체 인구의 약 10%에 해당하는 400만명은 고국을 등져야 했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우크라이나의 난민은 1000만 명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 국방부는 러시아군의 인명피해를 약 7000명 수준으로 추산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3월 25일 전황 브리핑을 통해 자국의 인명 손실은 1351명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의 단기 속도전 실패 푸틴 대통령은 왜 무모한 전쟁을 결심했을까? 푸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밝힌 특별군사작전의 이유는 나토의 위협에 대한 대응, 우크라이나의 민스크 협정 위반 그리고 자국민 보호로 요약된다. 쇼이구 국방장관은 푸틴 대통령의 전쟁지침을 기초로 서방의 위협으로부터 러시아의 안전보장, 돈바스 지역의 자국민 보호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및 탈나치화를 전쟁과업으로 설정했다. 러시아 정치 엘리트들의 인식 속에 나토와 서방은 적대세력이다. 푸틴 시기 4번에 걸쳐 발표한 <러시아연방 국가안보전략>에서 나토는 가장 심각한 현존위협으로 규정돼왔다. 특히 크름(크림) 병합 이후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 유로마이단과 색깔혁명에 대해 적대감을 강화해왔다. 유로마이단은 2013년 11월 유럽연합과의 통합을 지지하는 대중의 요구로 시작된 대규모 시민혁명으로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을 몰아냈다. 나토의 동진과 유로마이단이 숙명처럼 결합하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안전보장을 위협하는 화약고가 됐다. 이런 배경에서 푸틴은 나토의 롤백(Roll Back·퇴각)을 강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결심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우위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총참모부의 세르게이 루드스코이 작전총국장(우리 합참의 작전본부장에 해당)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점령 지역을 확대해가는 등 모든 임무가 작전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극초음속 미사일로 우크라이나의 핵심표적을 공격하고, 핵공격 가능성까지 언급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플랜B’가 시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크렘린궁 제공 러시아 전쟁지도부는 정보판단에서 가장 큰 군사적 과오를 저질렀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수행 능력에 대한 오판으로 러시아군은 충분한 지상전력을 투입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군은 크름 병합 이후 러시아군의 침공에 대비해 특화된 전략·전술을 발전시켜 왔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으로부터 획득한 재블린(Javelin), 차세대 대전차 미사일(NLAW·Next generation Light Anti-tank Weapon), 공격형 무인기(UCAV·Unmanned Combat Aerial Vehicle)를 활용해 러시아군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러시아 항공우주군은 우크라이나 공군에 비해 7배 이상의 압도적인 공중전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공중우세 달성에 실패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지상 공격에 따른 피해 발생 가능성 및 오인 폭격 등의 우려로 공중작전에 소극적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 지상군에 대한 근접항공지원이 위축되면서 러시아군의 공격 기세가 약화되고 있다. 또한 대대전술단(BTG·Battalion Tactical Group)에 대한 유류 및 탄약, 식량 등 군수지원이 적시에 이뤄지지 않아 종심에 진출한 러시아 지상군은 고립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3월부터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포진하면서 전쟁을 준비해왔다.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러시아군의 주력부대는 1년 이상 야외에 머물며 전투피로증이 누적된 상태다. 이는 러시아군의 공격력 발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군은 개전 초기의 군사적 과오를 만회하기 위해 ‘작전적 정지’를 통해 공격부대를 재편성하는 등 전열을 정비하는 중이다. 러시아군은 지상군 위주의 근접작전 대신에 포병사격과 공중폭격 그리고 극초음속 무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소모전’을 강요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 러시아 크렘린궁이 핵옵션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러시아 전략미사일군의 핵무기 사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개전 4일 만에 핵무기 운용부대의 대비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핵무기 운용부대가 대비태세를 강화한다는 것은 핵무기 운용 시스템을 ‘실제 모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메드베데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과 크렘린의 페스코프 대변인까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타이거팀(Tiger Team)’을 구성해 나토 동맹국들과 함께 러시아의 핵무기 공격 가능성에 대한 대응방안 모색에 돌입했다.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의 한 학교 지하실에서 3월 27일(현지시간)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폭격을 피해 한 달 넘게 대피 생활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에 있어서 △적대세력의 탄도미사일 공격 징후 △러시아 및 동맹국에 대한 핵무기 및 대량살상무기 사용 징후 △러시아의 국가 및 군사주요시설이 파괴되는 경우 △국가 존립 위기상황 등 ‘네가지 결심조건’을 적용한다. 이러한 조건을 현재 상황에 적용해보면, 가장 현실적인 조건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경우다. 여기에 네 번째 조건인 ‘국가 존립 위기상황’을 폭넓게 해석할 경우, 우크라이나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무관하게 러시아군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상황은 러시아 전쟁지도부가 핵무기 사용을 결심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러시아의 핵옵션은 가장 위험한 방책이면서도 가장 가능성 있는 방책으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푸틴은 무엇을 원하는가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결심하기에 앞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격론을 벌였다. 이것은 형식적인 요건이자 기만전술일 뿐이었다. 푸틴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넘어 무엇을 원하는가?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 나토의 흔적을 지우고 러시아식 체제를 이식하려는 푸틴 대통령의 열망을 구현하려 할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유럽은 물론 세계적 수준에서 새로운 안보지형을 구축하려고 한다. 푸틴은 서방이 나토 확장 금지를 구두로 확약한 사실에 기초해 나토의 진출선을 조정하려고 들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양분됐던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을 의미한다. 미·중·러 ‘주요 3개국(G3) 체제’의 서막을 전망하는 이유다. 향후 러시아는 물론 지역 분쟁과 연루된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교훈 삼아 주변국의 위협에 대해 군사적 수단을 선호하게 될지도 모른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전쟁이다. 실용주의자 푸틴은 단기 속도전 실패에 따른 상처 난 자존심을 회복하고 막대한 전쟁비용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우크라이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 29일 터키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다섯 번째 휴전 협상이 열렸다. 양측은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러시아가 휴전 협상을 기만전술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심과 휴전 체제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비관론 때문이다. 러시아는 매년 5월 9일, 대조국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러시아식 표현)의 승리를 대대적으로 기념한다. 러시아 전쟁지도부는 이번 특별군사작전의 성과를 전승기념일과 연계할 가능성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단기 속도전 실패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 전승기념 행사를 개최하지 못한다면 돈바스 지역에서 특별군사작전의 성과를 과시하고자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4월 중순 이전에 휴전 협상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달성하거나 전쟁을 종결해야 한다. 러시아군이 1단계 작전 이후 돈바스 지역으로 전투력을 집중하는 이유다. 만약 돈바스에 대한 공세마저 여의치 않을 경우, 푸틴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핵무기를 사용해 전쟁을 종결짓고자 할 것이다. 푸틴의 특별군사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가 쌓아 올린 평화 담론에 대한 엄중한 도전이자 공격적 현실주의를 경험적으로 입증한 나쁜 선례다. 지금은 국제사회가 모든 집단지성과 수단을 동원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과 남용을 막아야 하는 결정적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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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모전으로 가는 전쟁, 푸틴은 언제 멈출까(2022. 03. 28 11:38)
- 2022. 03. 28 11:38 국제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개전 후 속전속결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들을 장악하고 전쟁을 끝낼 계획이었다. 막상 전황은 그의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침공 한달을 맞는 지난 3월 24일(현지시간)까지도 러시아군은 수도 키이우를 장악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키이우 외곽 15㎞ 지점에서 현재 진격을 멈춘 상태다. 지난 3월 23일(현지시간) 폴란드 프셰미실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폴란드 내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AFP연합뉴스 교착상태에 빠진 전쟁 동부 하르키우 인근 이지움 등 일부 지역에선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을 시작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CNN에 “우크라이나군이 곳곳에서, 특히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러시아군을 쫓아내고 있다”며 “우리는 며칠 사이에 이런 일이 늘어나는 걸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인적·물적 손실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러시아군이 최소 7000명 사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3월 3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 연설에서 러시아군 9000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러시아 쪽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지난 3월 20일 러시아의 친정부 매체인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 홈페이지에는 러시아군 전사자가 9861명, 부상자가 1만6153명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는 곧바로 삭제됐다. 언론사는 해킹으로 잘못된 기사가 올라갔다고 해명했다.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속하기 힘든 상태로 접어들었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네덜란드의 싱크탱크인 앨펀그룹 의장으로 전직 장성 출신인 벤 호지스는 워싱턴포스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정복 전쟁은 러시아의 공격 능력과 우크라이나의 방어 능력 중 어느 쪽이 먼저 한계점에 도달하느냐의 중대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면서 “침공을 지속할 시간과 인력, 탄약이 러시아에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CNN에 러시아군 전력이 90% 이하로 떨어졌고 방한 장비 부족으로 추위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방 군사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사기도 크게 저하된 상태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이미 지난 3월 19일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초기 공격을 물리쳤다”면서 전쟁이 교착상태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상대방이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화력을 쏟아붓는 소모전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의 국방정보 국장인 짐 호켄헐 장군은 아이뉴스에 “러시아가 작전을 변경해 이제 소모전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며 “이는 화력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민간인 사망자 증가, 우크라이나의 기반 시설 파괴, 인도적 위기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개전일인 지난 2월 24일 오전 4시부터 3월 23일 0시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한 민간인이 어린이 81명을 포함해 모두 977명이라고 밝혔다. 같은 기간 다친 민간인은 어린이 108명을 포함해 1594명으로 집계됐다. 푸틴의 ‘플랜 B’는? 러시아가 소모전 전략으로 변경하면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피해가 더 커질 거란 우려를 낳고 있다. 개전 이후 러시아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남부 요충지 마리우폴은 주거지와 군사시설을 가리지 않는 러시아의 무차별 포격으로 잿더미로 변했다. 마리우폴을 탈출한 우크라이나인들은 “마리우폴은 물과 전기마저 끊긴 상태다. 폭격으로 무너진 마리우폴 극장에는 수백명이 피신해 있었으나 러시아군이 공격을 멈추지 않아 구조대원들이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마리우폴 시의회는 “점령군은 마리우폴의 안녕과 미래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는 게 분명하다”면서 “그들은 마리우폴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잿더미의 죽은 땅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아파트가 지난 3월 11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포격을 받고 있다. / AP연합뉴스 무력에 의한 우크라이나 제압이 어렵다고 판단한 푸틴 대통령이 고의로 민간인 피해를 키우는 ‘플랜 B’를 가동했다는 지적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지난 3월 20일 칼럼에서 푸틴의 ‘플랜 B’는 “러시아군이 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과 아파트, 병원, 사무용 건물, 대피소 등을 공격해 사람들이 집을 떠나게 함으로써 우크라이나 내부,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 내부에 거대한 ‘난민 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여성, 어린이, 노인 등 500만~1000만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폴란드, 헝가리, 서유럽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사회·경제적 부담을 지게 된 나토 회원국들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제시하는 조건대로 평화협정에 서명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난민은 이미 360만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절반인 214만명이 폴란드로 들어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협상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의 크름반도(크림반도) 영유권 인정,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 합병, 나토 가입 포기, 비무장 중립국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양측은 중립국화 논의에서는 어느 정도 합의를 봤으나 영토 문제에서는 좀처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소형 핵폭탄이나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함부르크대학 핵 전문가인 울리히 쿤은 뉴욕타임스에 “푸틴 대통령이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소형 핵무기를 터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 쿤 박사는 더욱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차원에서 러시아가 북해상에서 소형 핵폭탄을 폭발시키는 시나리오를 연구한 바 있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하는 건 끔찍한 일”이라면서도 “하나의 가능성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 정보국장을 지낸 제임스 클래퍼는 러시아군이 지난 3월 초 유럽 최대 원전인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한 사실을 언급하며 “그들은 그냥 들어가 총을 쐈다. 이는 핵에 대한 러시아의 안이한 태도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3월 23일 일본 국회를 상대로 한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가 사린 등의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이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화학·핵무기 보호 장비를 추가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푸틴 입에서 재등장한 ‘집단학살론’(2022. 02. 25 15:00)
- 2022. 02. 25 15:00 국제
- “지금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에서 집단학살(genocide)을 저지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반도 강제합병 이후 8년 만에 우크라이나에 의한 ‘집단학살’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푸틴 대통령이 ‘집단학살’ 표현을 재활용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침공과 제국주의적 야심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월 21일(현지시간)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하고, 해당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에 의한 집단학살이 일어나고 있음을 강조했다. / AP연합뉴스 푸틴 “우크라이나는 학살 주동자”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15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지금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집단학살”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푸틴 대통령의 ‘집단학살’ 발언은 러시아 고위관리들과 관영매체를 통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국가두마) 의장은 지난 2월 18일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 지역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학살을 저질러왔음을 은폐하려 한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올렸다. 같은 날 러시아 외교관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민간인들을 멸종시키고 있다”는 내용의 문서를 배포했다. 푸틴 대통령도 지난 2월 21일 대국민 TV연설에서 “자칭 문명화된 세계는 현재 400만명을 대상으로 한 집단학살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다시 한 번 돈바스 지역에서 시민들이 집단학살로 고통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엔이 1948년 채택한 ‘집단학살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따르면 집단학살이란 ‘특정 국가, 민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파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한 행위’를 뜻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집단학살이 일어났다는 증거는 없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무고한 시민들을 대량학살한다는 이유로 침공할 명분을 얻으려 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2014년 5월 23일(현지시간) 친러 보스토크 대대 대원들이 이른 아침 우크라이나군과 충돌을 빚은 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의 피스키 마을에 모여 있다. / 게티이미지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강제합병과 뒤이은 돈바스 지역 침공 때도 우크라이나에 의한 집단학살이 일어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운 바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채널1 등 러시아 국영방송이 퍼뜨렸던 ‘슬라뱐스크 소년’ 가짜뉴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우크라이나군이 친러 무장세력으로부터 동부지역 슬라뱐스크를 탈환한 뒤 세 살짜리 소년을 어머니 앞에서 공개 처형하는 등 러시아계 주민들을 상대로 잔학행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보도 내용이 현지 증언과 일치하지 않았고, 이를 뒷받침할 실제 목격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밝혀졌다.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 가짜뉴스는 당시 러시아인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데 성공했고, 우크라이나 공격을 정당화하는 기반이 됐다.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이 ‘집단학살’이라는 표현을 통해 서방세력을 적으로 규정하고, 러시아가 구소련 지역 러시아 주민들의 정당한 보호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 한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는 “집단학살이라는 표현은 적대적인 서방세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러시아가 구소련 지역 러시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모스크바의 믿음을 반영한 것”이라면서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이탈하려는 모든 시도는 러시아 민족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고 지적했다. 푸틴의 참모였던 세르게이 글라지예프 역시 ‘집단학살’ 주장을 통해 서방세력이 러시아를 망친 주범이라고 꾸준히 주장해온 인물이다. 그는 1991년부터 1998년까지 러시아에서 행해진 급진적인 경제개혁으로 경제시스템이 파괴된 것을 일종의 집단학살이라 보았다. 집단학살은 실질적인 물리적 폭력뿐만이 아니라 한 민족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포함하기 때문에 개혁가들이 러시아인들을 대상으로 경제적 집단학살을 자행했다고 해석한 것이다. 글라지예프는 개혁가들의 진짜 동기는 “러시아와 러시아 문화를 증오하고, 러시아 문명을 무너뜨리려는 욕망”이었다며 그 기원은 서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4년 탈러시아 성격의 오렌지 혁명 이후 집권한 빅토르 유센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934년 우크라이나인들이 대량 아사한 ‘홀로도모르’가 스탈린 정권의 계획 하에 이루어졌다며 이를 집단학살 범죄로 규정하자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어로 ‘기아에 의한 죽음’ 또는 ‘기아에 의한 살인’이라는 뜻이다. / 게티이미지 집단학살 주장은 소련 붕괴 후 독립한 신생국들에서 집권 세력이 집권을 정당화하거나 적을 공격하는 논리로 사용하기도 했다. 앞서 2004년 탈러시아 성격의 오렌지 혁명 이후 집권한 빅토르 유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930년대 스탈린 정권 하에 200만명이 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대량 아사한 ‘홀로도모르’ 사태를 집단학살 범죄로 규정하자고 국제사회에 호소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구소련 국가였던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를 둘러싸고 자존심 대결을 펼치면서 둘 다 상대측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제기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는 아제르바이잔 영토지만, 주민의 대다수가 아르메니아계라 두 국가가 영유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곳이다. 조지아 내 자치 공화국이었던 남오세티야·압하지야도 2008년 분리독립 선언 후 조지아와 집단학살 범죄의 책임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에브게니 핀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국가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구성원들이 부당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이에 대한 요구를 무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집단학살’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사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집단학살’ 가짜뉴스, 이번에도 통할까 우크라이나가 집단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러시아 정부의 여론전이 크림반도 합병 때처럼 이번에도 러시아인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12월 러시아 현지 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 첸트르가 실시한 조사에서 ‘우크라이나에 반감을 갖고 있다’고 한 이들은 응답자의 43%를 차지했다. 2014년 11월 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우크라이나에 반감을 갖고 있다’고 답한 것과 견줘 크게 줄었다. ‘우크라이나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답한 이들은 7년 전보다 16%포인트 늘어나 전체 응답자의 45%를 기록했다.
- [만화로 본 세상]이토 준지의 (2018. 06. 04 15:44)
- 2018. 06. 04 15:44 문화/과학
- ㆍ애국심은 이기적이다, 국제관계에서는 사토 마사루의 경우 일본 북방 4도를 러시아로부터 반환받는 것이 국익이라고 철저하게 믿고 주장했다. 그는 한편으론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이것도 같은 애국심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기분인가. 한국어판 단행본 1권의 표지 | 시공사 아마도 만화 <우국의 라스푸틴>을 집어든 이들 대부분은 작가 이토 준지의 이름을 보고 선택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토 준지는 공포만화를 즐기는 이들에겐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그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비틀어 오싹한 상황을 연출하고, 조밀한 펜터치의 기괴한 그림을 얹어 자신만의 장르를 만든다. 최근의 작품들은 살짝 주춤하는 느낌이 있지만 <토미에>나 <소용돌이> 혹은 <공포의 물고기> 같은 작품은 언제 읽어도 유효하다. 그런데 <우국의 라스푸틴>은 조금 다르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이토 준지의 만화라는 걸 알아챌 수는 있겠지만, 이전까지 그가 그렸던 만화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단편이나 단기 연재물을 주로 그리던 작가로서는 예외적으로 긴 호흡의 작품이고, 독자적인 세계에서 나와 스토리 작가(나가사키 타카시)와 공동작업했으며, 결정적으로 공포만화도 아니다. 직전에 <이토 준지의 고양이 일기 욘 앤 무>라는 기묘한 고양이 만화를 한 편 그리기는 했지만, 그건 반려동물에 대한 이토 준지다운 해석이었다. 많은 점에서 <우국의 라스푸틴>은 의외의 작품이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이토 준지였기에 이 텍스트가 새로운 차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무죄 증명 위해 국가 기밀 누설해야 <우국의 라스푸틴>은 실제 정치사건과 재판과정을 다룬다. 넓게는 ‘정책수사’라고 불리는 수사방식에 대한 반대의견이고, 좁게는 2002년 일본에서 주목받았던 ‘스즈키 무네오 사건’에 대한 사토 마사루의 결백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만화의 원작자로 주인공인 유우키 마모루의 모델인 사토 마사루의 이름이 올려진 것은 그의 입장에서 거의 모든 주장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사토 마사루는 신학을 전공하고 일본의 대러시아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그는 외교관 시절 ‘라스푸틴’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는데 만화의 제목도 여기에서 따왔다. 이런 제작배경 때문에 <우국의 라스푸틴>이 한쪽으로 편향된 내용이 될 수도 있음을 적당히 견제하며 읽었다. 만화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토 마사루의 <국가의 덫>은 출판된 2005년의 베스트셀러였고, <마이니치신문>이 자사의 출판문화상을 통해 특별상을 건넬 만큼 여러 면에서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에세이는 사건에 대한 저자의 꼼꼼한 기록이며, 재판의 목적과 과정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기밀을 누설해야 하는데, 자신의 애국심이 이를 저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이 러시아의 영토로 되어 있는 북방 4도를 반환받는 것을 일생의 과제로 삼았다. 외교를 통해 오랫동안 이 목표를 달성하려 노력한 그의 행동이 이 책에 잘 담겨 있다. 재판과정에서 그는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에 <우국의 라스푸틴>은 집중한다. 만화 <우국의 라스푸틴>을 읽으며 몇 가지 고민을 했다. 만화가 지적하듯 사법제도의 불완전함에 대해서도 곤란했고, 정치권의 탐욕에 대해서도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마음이 쓰였던 것은 애국심에 대해서다. 애국심은 문자 그대로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한국 사회에서 애국심은 오랫동안 국가 발전의 동력이었고,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 정도의 부정적 측면이 마음에 걸렸다. 하나는 이것이 이기심의 또 다른 언어가 아닌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요되는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에서 주인공인 유우키 마모루가 체포된 장면. | 시공사 내 생각에 애국심은 이기적이다. 적어도 국제관계에서는 분명하다. 사토 마사루의 경우 일본 북방 4도를 러시아로부터 반환받는 것이 국익이라고 철저하게 믿고 주장했다. 실제로 근거도 충분했고, 자신의 많은 것을 바치기도 했다. 그걸 애국심이라 표현했다. 그는 한편으론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이것도 같은 애국심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기분인가. 많이 불편할 것이다. 단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문제일까. 지금도 세계에는 수많은 영토분쟁이 각자의 국기 아래에서 진행 중이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상대국의 손해를 요구하는 모습이 드문 입장은 아니다. 이걸 다르게 이기심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애국심 강요행위 비판하는 ‘국뽕? 또한, 애국심은 강요된다는 점에서 불편하다. 오랫동안 그리고 여전히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같은 국민의례는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졌다. 이것은 강요되고 학습된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주인공이 바쁘게 뛰어가다가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그 자리에 멈춰 가슴에 손을 올리는 장면이 있다. 나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행동했다. 애국심이 가장 강요되는 이벤트는 아마도 국제규모의 스포츠 대회일 것이다. 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의 시즌이 되면 모두 태극기를 흔들기 바쁘다. 스포츠에서 우열을 가리고 또한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응원하는 행동은 나쁠 것이 없다. 그것이 과열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항상 과열되고 강요된다. 은메달을 딴 선수는 국민들에게 미안하다고 사죄하고, 국민들은 우리 선수를 2등으로 만든 상대 선수를 헐뜯기에 바쁘다. 이런 신념이 강화된 잘못된 예시가 시청앞과 광화문에 있다. 거기에는 태극기를 짊어진 분들이 열심히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애국은 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킨 박정희를 신격화하고 그의 분신인 박근혜의 권력을 회복하는 것에 있다. 정작 이 나라를 이만큼 살게 만든 것은 자신들의 노력과 희생이었는데 말이다. 그분들의 주장은 나아가서 우리를 이끌어준 미국에 복종하고 어째서인지 이스라엘마저 지지해야 한다는 상황에 다다른다.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다윗의 별이 나란히 걸려 있는 기이한 풍경이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다행히 요즘은 이런 세태를 비판하는 시각이 많아졌다. 온라인에서 많이 쓰는 단어 중에 ‘국뽕’이라는 말이 있다.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애국심을 강요하는 행위를 비판하는 의미로 쓰인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런 강요되는 애국심에 대한 각성이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애국심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맹목적이고 강제적인 성격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염려해야 한다. <우국의 라스푸틴>이 가진 일본 우익에 대한 지지적인 성격 때문에 온라인에서는 이토 준지가 우익이 아니냐는 의혹 제기도 있었고, 한국 만화시장의 주요 타깃인 젊은 세대에서는 이를 소비하면 안된다는 주장도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보았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만화의 작화를 이토 준지가 맡음으로써 <우국의 라스푸틴> 속의 애국심과 국익은 마치 초현실적인 대상처럼 느껴졌다. 같은 작가의 <토미에>에서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어 남자들을 복종하게 만드는 토미에처럼, <공포의 물고기>에서 육지에 올라온 거대한 물고기처럼, <소용돌이>의 달팽이로 변한 인간들 같은 존재처럼 말이다. 여기서 애국심은 이상이 아니라 망상이다. 이유도 알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 빠져들어 집착하게 만드는 그런 것이다. 이토 준지가 이 만화를 그린 이유가 아닐까.
- 만화로 본 세상
- [북리뷰]푸틴 -권력의 논리(2018. 04. 02 15:17)
- 2018. 04. 02 15:17 문화/과학
- ㆍ독일 언론인의 푸틴을 위한 항변 <푸틴 -권력의 논리> 후베르트 자이펠 지음·김세나 옮김 지식갤러리·1만5800원 ‘우리 푸틴 하고 싶은 대로 해.’ 러시아 국민 10명 중 8명은 푸틴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푸틴의 통치는 사반세기를 넘어 아예 종신집권으로 치닫고 있다. 21세기 ‘차르’에 대해 서방은 저주를 퍼붓는다. 우크라이나 분쟁과 미국 대선 개입 의혹에다 최근 영국의 이중스파이 암살까지 ‘푸틴=악마’라는 보도가 사태를 이룬다. 극과 극의 이미지 전쟁을 치르는 푸틴은 독일 언론인 후베르트 자이펠에게 자신의 세상을 보이기로 한다.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와 이해타산으로 굴절된 언론매체에 지쳐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1952년 고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푸틴의 인생사는 러시아 현대사와 궤적을 같이한다. 유도와 학업에 골몰한 청년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KGB의 해외 요원으로 동독에 간다. 스파이 생활 5년 만에 동독이 순식간에 몰락하는 것을 목도한 푸틴은 고향의 부시장으로 돌아갔다. 이후 소련의 붕괴와 국정혼란을 일선 공무원으로 체험한 그는 엘친 대통령 시절 탁월한 학습능력으로 수직상승을 거듭한다. 구소련 해체 이후 서구와 야합하여 국부를 약탈한 올리가르히(신흥재벌)를 치기 위해 새 조세제도를 마련하고 탈세추적 조직을 개편한다. 푸틴은 러시아를 부패와 범죄의 온상으로 만든 올리가르히 시대의 종언을 선포하면서 강력한 통치기반을 닦았다. 옐친 이후를 모색한 올리가르히는 ‘만만한’ 푸틴을 낙점해서 부려먹으려다 강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지게 됐다. 대신 러시아의 군인과 의사, 교사는 밀린 월급을 받기 시작했다. 푸틴 취임을 전후로 러시아는 야누스의 얼굴이다. 1999년 집권 당시 러시아 국민의 30%가량이 극빈층이고 어린이의 절반은 빈곤가정에서 자랐으며 가축 수는 1980년대의 반절로 급감했다. 지금 러시아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국민은 11%, 강도와 살인사건은 격감했고 기대수명은 65세에서 70세로 늘어났다. 러시아를 재건한 지도자가 푸틴이라는 평가는 러시아에서 지배적이다. 국민들이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까닭이다. 하지만 푸틴의 러시아가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미국과 유럽의 시각은 완강하다. ‘신냉전’이 펼쳐지면서 전쟁이 다시 발발하리라는 불안도 점점 커지고 있다. 문제는 아무리 푸틴의 항변이 설득력 있다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모든 당사국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러시아의 최신 핵무기 개발도 핵감축의 역사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다. 그럼에도 푸틴은 EU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동협정을 추구하면서 러시아 패권주의를 부인한다. 어쨌든 모든 책임을 푸틴에게 전가하는 서방 언론의 마녀사냥을 폭로한 저자는 유럽이 러시아의 특수성을 인정할 때 정치적 빙하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즉, 푸틴 혼자서 분쟁을 해결할 수도 없지만 푸틴 없이도 분쟁을 해결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 북리뷰
- 푸틴의 야망, 북아프리카까지 넘본다(2017. 03. 21 15:52)
- 2017. 03. 21 15:52 국제
- 중동을 넘어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에 손을 뻗치는 러시아의 명분은 극단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퇴치다. 그러나 미국은 시리아에서처럼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행보로 본다. “냉전시대 미국과 러시아의 중동 패권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가 러시아의 외교정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시리아 내전 개입으로 시작된 러시아의 중동 영향력 확대가 북아프리카로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립주의를 표방하면서 중동문제에서 발을 빼는 듯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힘의 공백’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동유럽, 중앙아시아를 넘어 중동과 북아프리카까지 전방위 외교를 펼치며 ‘세계 경찰국’으로의 꿈을 키우고 있다. 러시아가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려는 정황은 지난해부터 포착됐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축출된 뒤 리비아 서부 트리폴리에는 이슬람주의 정부와 제헌의회가, 동부에는 지중해 도시 토브루크를 중심으로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이 이끄는 세속주의 정부가 각각 들어섰다. 하프타르 사령관은 지난해 두 번이나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아 푸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러시아는 하프타르의 부대에 군 장교를 보내 군사훈련을 돕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리비아 내전에 군사적으로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은 포착된 적이 없었다. 러시아의 리비아 내전 개입설이 다시 불거진 것은 3월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이집트 서부 사막에 있는 시디바라니의 군사기지에서 러시아 특수부대와 드론이 포착됐다고 보도하면서다. 이집트 군 소식통은 이곳에서 러시아 특수부대원 22명을 목격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 특수부대의 구체적인 임무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집트에서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은 점점 더 짙어져 가고 있다. 지난달 초 시디바라니에서 멀지 않은 지중해변 메르사마트루 기지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 1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타스연합뉴스 리비아 내전에 군사 개입설 다시 불거져 CNN 등 미국 언론들은 러시아가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기 위해 이집트에 특수부대와 무기를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이집트 정부는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이집트군 대변인 타미르 알리파이도 “이집트 땅에 러시아군 병력은 없다”며 “러시아군이 들어오는 것은 주권의 문제”라고 강력 항변했다. 러시아 국방부도 “서방 언론들이 익명의 소식통들로부터 전달받은 잘못된 정보로 국민들을 들쑤시고 있다”고 항의했다. 중동을 넘어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에 손을 뻗치는 러시아의 명분은 극단 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퇴치다. 현재 IS는 중동을 넘어 중앙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까지 진출한 상태다. ‘아랍의 봄’ 이후 리비아도 이웃 튀니지처럼 민주주의 혁명을 일굴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리비아의 봄은 오지 않았다. 트리폴리와 동부 토브루크를 각각 중심으로 한 두 정부가 서로 적법한 정부라고 주장하다가 유엔의 중재로 통합정부가 탄생했다. 그러나 분열과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권력 공백과 내분은 IS와 같은 극단주의 무장조직의 자양분이 됐다. 러시아는 IS 격퇴전을 명분으로 리비아에 손을 뻗치고 있지만, 미국은 시리아에서처럼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행보로 본다. 미군 아프리카사령부의 토머스 발트하우저 사령관은 최근 상원 군사위원회에 나와 “리비아에서 누가 정권을 잡을지에 대한 최종 결정에 러시아가 입김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하고 있는 것을 리비아에서도 하려 한다는 뜻이냐”고 묻자 발트하우저 사령관은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고 답했다. 중동 온라인 매체 는 러시아의 민간 군사회사 직원들도 하프타르 측에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서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군을 지원하며 중동지역의 ‘게임 체인저’가 됐다. 시리아에서의 명분은 대테러전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아사드 살리기다. 러시아는 수십 년간 시리아와 각별한 사이를 유지했다. 중동의 전략적 심장부에 위치한 시리아가 러시아에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러시아는 시리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1944년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971년 바샤르 알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아사드가 시리아에서 집권하면서 양국은 한층 더 깊은 관계로 발전했다. 권위주의 스타일로 30년 가까이 시리아를 철권통치한 하페즈는 반서방 친소련 정책을 펼쳤다. 특히 이스라엘과 대치하면서 소련에 크게 의존했다. 그렇게 시리아는 중동에서 소련의 가장 가까운 우방이 됐다. 3월 13일(현지시간) 러시아 국가방위군이 모스크바 인근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사진 위) 같은 날 러시아 동부 하바롭스크에서 러시아 탱크가 대포를 발사하고 있다.(사진 아래) / 타스연합뉴스 앙숙 터키, 이스라엘과도 친분 과시 아버지대에서 이어온 러시아와의 우정은 아들로도 이어졌다. 평화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을 탱크로 무자비하게 진압한 아들 알아사드는 국민들을 학살하며 6년간 내전을 벌였다. 국민들이 목숨을 잃는 동안 알아사드는 여전히 TV에 웃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를 돕는 러시아가 있기 때문이다. 2015년 9월 말 시리아 내 반정부군을 공습하기 시작했고, 이란과 손을 잡고 알아사드 정부군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서방과 아랍 동맹국들이 지원해온 반정부군의 기세는 꺾였고,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한 6년의 싸움은 무위로 돌아갈 판이다. 러시아는 중동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시리아 타르투스항에 군사기지를 갖고 있다. 러시아 TV 방송들은 연일 시리아 사태를 상세히 보도한다. 는 14일 “방송만 보면 러시아에 있어 시리아는 아예 ‘남의 나라’가 아닌 것 같다”는 기고를 실었다. 러시아의 영향력은 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으로도 뻗치고 있다. 1979년부터 10년간 이어진 소련의 점령이 낳은 산물이 알카에다와 탈레반으로 대표되는 극단주의 저항세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탈레반과 러시아가 손을 잡았다.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IS를 격퇴하기 위해 탈레반과 군사협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전통적인 ‘집토끼’인 중앙아시아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2월 28일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요청한다면 러시아 군사기지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아시아에 도덕적인 명분을 확보해 러시아의 장기적인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푸틴은 지난달엔 헝가리를 방문해 원전 추가 건설 지원 및 천연가스 공급 확대 등을 약속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이지만 헝가리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이웃인 몰도바, 불가리아, 루마니아에서 친러시아 정당이 각종 선거에서 승리함에 따라 러시아의 영향력이 급상승하는 기세를 보여 왔다. 러시아의 전방위 외교는 터키와 이스라엘로도 향해 있다. 한때 앙숙이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해 극적으로 화해한 데 이어 지속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3월 10일 양국 정상은 크렘린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합의했다. 에르도안은 러시아의 S-400 첨단 방공미사일을 수입하는 문제도 논의했다.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면서 러시아에 밀착해 유럽을 긴장시켰다. 그 전날인 9일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크렘린을 찾아 푸틴을 만났다. 이번에도 IS 격퇴전을 주제로 삼았지만 네타냐후의 속내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설득하려는 것이었다. 러시아가 중동·북아프리카의 혼란을 빌미로 세력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이 대테러전에서 후퇴한 데다, 도널드 트럼프 신임 행정부가 지역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틈’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에 대한 푸틴의 부정적인 시각과 강력한 러시아를 재건하려는 야심이 맞아떨어진 것이기도 하다. 6년 전 아랍의 봄 때에도 서방이 아랍권 시민들에게 보내는 찬사를 비웃으며 “극단주의자들만 득세할 것”이라고 했다. 상황은 푸틴의 암울한 예언대로 흘러갔고, 푸틴은 시리아와 IS를 지렛대 삼아 역내 여러 정치세력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는 “러시아가 냉전 기간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던 강력한 국가 지위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KGB 부활, 친위대 강화 ‘푸틴의 철권통치’(2016. 10. 04 16:14)
- 2016. 10. 04 16:14 국제
- ‘KGB 2.0’이라고 불리는 국가보안부와 ‘푸틴 근위대’의 등장은 러시아인들을 더욱 옥죄는 수단일 뿐이다. 푸틴이 자신의 권위적 통치를 안보주의와 애국주의를 구실로 정당화하면서 소수자 권리와 표현의 자유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러시아 크렘린궁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 숙청과 KGB(옛 국가보안위원회)를 꼭 닮은 거대 정보기관의 등장, 수십만에 달하는 근위대 창설까지…. 9월 19일 국가두마(하원) 총선에서 현 여당 통합러시아당이 압승한 이후 푸틴은 장기집권의 포석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신세대 친위세력과 정보·보안기관들이 푸틴을 향한 충성심을 기준으로 ‘헤쳐모여’ 하는 가운데, 러시아가 스탈린 시절에 버금가는 철권통치로 회귀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2018년 대선 앞두고 장기집권 발판 다져 9월 20일 러시아 일간 는 푸틴 대통령이 연방보안국(FSB)과 해외정보국(SVR), 연방경호국(FSO)을 합쳐 국가보안부(MGB)라는 새 행정조직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옛 소련 시절을 기억하는 러시아인들의 뇌리에는 비밀경찰의 악몽이 스쳤다. 국내·해외 첩보와 요인 경호, 수사권까지 거머쥔 거대 정보기관의 출현. “푸틴이 KGB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우려가 러시아 안팎에서 나왔다. 1917년 볼셰비키의 비밀경찰기구 ‘체카’를 모태로 하는 이 기관은 이오시프 스탈린의 ‘피의 숙청’을 주도했던 NKVD를 거쳐 1954년 KGB로 개칭됐다. 냉전시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치열한 첩보전을 벌인 라이벌이었고, 국내로는 수백만의 협력자를 거느리고 반체제 인사에 대한 납치와 고문, 암살을 서슴지 않았다. 소련 붕괴 후 보리스 옐친은 KGB를 연방보안국과 해외정보국, 연방통신정보국(FAPSI) 등으로 해체시켰다. 1975년부터 소련 붕괴 직전까지 KGB 요원으로 근무했던 푸틴은 종종 “전직 KGB 요원 같은 건 없다”는 농담을 했다. 그런 푸틴이 이제 KGB와 맞먹는 강력한 정보기관을 수족으로 부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오른쪽)이 2011년 5월 당시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이던 뱌체슬라프 볼로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AP연합뉴스 물론 이번 통·폐합 계획에는 조직 운용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이 붙었다. 하지만 그 속내는 2018년 대선을 앞두고 장기집권을 꾀하는 푸틴의 권력 다지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4월 푸틴은 내무군과 대테러 부대를 통합한 국가근위대를 창설했다. 직원 수만 40만명에 달하는 이 거대 치안기관은 대테러 목적으로 세워졌으나 사실상 반정부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푸틴 근위대’로 불린다. 에 따르면 국가보안부 신설 계획도 국가근위대 창설과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푸틴은 친위세력의 세대교체도 추진 중이다. 9월 23일 푸틴은 국가두마 의장으로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을 지냈던 뱌체슬라프 볼로딘을 지명했다. 볼로딘은 올해 52세로, 전임 의장인 세르게이 나리슈킨보다 10살 이상 어리다. 그는 전면에 나서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2011년 총선이 부정선거 의혹으로 얼룩진 것과 달리 이번 총선에서는 잡음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아 전격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푸틴의 KGB 재직 시절부터 측근이었던 나리슈킨은 해외정보국 국장으로 밀려났다. 해외정보국이 2018년 이전까지 국가보안부로 통·폐합될 예정이라는 것으로 볼 때 이번 인사는 좌천이나 다름없다. 푸틴은 2000년 집권한 뒤 자신이 KGB 요원과 FSB 국장으로 재직할 당시의 동료들을 요직으로 끌어올렸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처럼 푸틴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의 일부 인맥을 제외하면 정부 내 주요 직위는 이 실로비키(제복 입은 남자들)들이 독점해 왔다. 하지만 올 초부터 푸틴은 실로비키 측근에 대한 숙청작업에 들어갔다. 나리슈킨의 좌천은 가장 최근의 일이다. 지난 8월에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대통령 행정실장을 경질하고 외교관 출신의 비교적 젊은 안톤 바이노를 임명했다. 연방경호국, 연방세관국 등에 포진하고 있던 실로비키들도 해임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 노회하고 야망에 찬 측근들을 내치고 젊고 온순한 테크노크라트로 주변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대선을 앞두고 후계 경쟁을 막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푸틴이 한창 올리가르히(신흥재벌)들을 숙청할 당시, 노련함과 실용주의로 무장한 실로비키는 훌륭한 전위대 노릇을 했다. 하지만 푸틴이 최근 기용하고 있는 신진세력은 경험은 적지만 애국·보수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이들이 주를 이룬다. 지난 4월 국가인권옴부즈만으로 임명된 타티아나 모스칼코바는 독실한 정교회 신자로, 여성·성소수자 인권운동에 강한 반대의견을 내 왔다. 지난 8월 교육장관으로 취임한 올가 바실리예바는 스탈린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하는 강경 보수주의자로 알려졌다. 대테러 훈련을 하고 있는 러시아 국가근위대 소속 군인들. / 타스연합뉴스 애국적·보수적 신인들 기용 늘려 이런 상황에서 국가보안부 신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국내외 첩보를 담당하는 FSB와 SVR, 그리고 ‘러시아의 FBI’라고 불리는 연방수사위원회 등은 각각의 수사권과 정보력을 쥐고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이뤄왔다. 하지만 지난 6월 FSB가 연방수사위원회 고위 간부들을 범죄조직으로부터 거액을 챙긴 혐의로 잡아들이는 등, 이들의 패권경쟁이 푸틴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음이 들리고 있다. 프라하 국제관계연구소의 마크 갈레오티 연구원은 “집권 초기 푸틴은 비슷한 성격과 권한을 지닌 기관들을 상호 견제하게 하는 ‘관료적 다원주의’를 신뢰했다”며 “하지만 엘리트에 대한 불신이 커진 지금은 한 줌의 믿을 만한 사람들로만 정권을 구성하는 통치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자유유럽라디오(RFE)에 말했다. 정보기관을 일원화한 뒤 자신이 가장 믿는 사람을 수장으로 앉혀 장기집권의 초석을 닦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미 장관급에 해당하는 국가근위대장에 푸틴은 10년 동안 곁을 지켰던 경호실장 빅토르 졸로토프를 앉혔다. 거대 스파이 기관과 근위대를 통한 권력의 집중. 이들 양대 기구는 막강한 동시에, 외부 견제가 없어 훗날 권력자의 손을 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미국 온라인매체 는 “푸틴은 언젠가 이 결정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까지 했다. 때문에 푸틴의 이런 선택 이면에는 위기의식이 도사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저유가에 따른 재정 악화와 경제난, 크림반도 합병으로 인한 서방의 제재 때문에 민심이 이반하고 있다는 불안감이다. 아직까지 푸틴 지지율은 80% 정도로 높지만, 최근 총선 투표율이 50%도 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언제든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크렘린의 사정이야 어떻든, ‘KGB 2.0’이라고 불리는 국가보안부와 ‘푸틴 근위대’의 등장은 러시아인들을 더욱 옥죄는 수단일 뿐이다. 푸틴이 자신의 권위적 통치를 안보주의와 애국주의를 구실로 정당화하면서 소수자 권리와 표현의 자유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소련 시절 ‘반동분자’라 불렸던 반정부 인사들은 이제 ‘극단주의자’로 불리며 탄압당하는 실정이다. ‘반극단주의법’이 등장하고 인터넷 검열이 강화됐다. 이전까지 형식상으로나마 민주적인 형태로 정권을 유지해온 푸틴이 이제는 행정기관을 사조직화해 사회 장악에 나섰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제 러시아는 권위주의 국가에서 전체주의 국가가 됐다”는 야당 정치인 겐나디 구스코프의 탄식을 새겨들을 만하다.
- 서방국가 제재도 푸틴은 말릴 수 없다(2015. 08. 24 16:19)
- 2015. 08. 24 16:19 국제
- 푸틴의 흑해 잠수는 대내적으로는 ‘강력한 국가지도자’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부각시키려는 정치행사였다. 서방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무너지고 푸틴 체제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전망이 잠시 나왔으나, 위기론은 어느새 사그라졌다.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했던 크림반도가 다시 뉴스에 등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때문이다. 푸틴은 지난 8월 18일 흑해의 발라클라바 만에서 간이 잠수정을 타고 해저로 내려갔다. 크렘린은 이날 푸틴의 잠수 모습과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 등이 담긴 사진들을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푸틴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 동그란 공 모양의 잠수정을 타고 물속 83m까지 내려가 9~10세기 비잔틴 제국의 난파선 등 ‘해저유물’들을 관찰했다. 러시아 지리학회 창립 170주년을 기념해 열린 행사였다. 푸틴이 잠수한 곳은 러시아군이 자랑하는 흑해함대 기지인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항구 바로 앞이다. 명분은 ‘난파선 탐사’였지만, 지난해 우크라이나로부터 떼어내 병합한 크림반도 소유권을 외부에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사흘간의 일정으로 크림반도를 찾으면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현 총리 등 주요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을 줄줄이 데려갔다. 잠수정을 타고 흑해로 내려가는 푸틴. / 크렘린 웹사이트 ‘잠수함 이벤트’ 크림반도 소유권 과시 푸틴은 세바스토폴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연설하면서 “크림반도의 미래는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 크림반도 자치의회는 주민투표를 거쳐 우크라이나 대신 러시아로 귀속되는 길을 택했다. 푸틴이 새삼 주민들의 결정을 부각시킨 의도는 명백하다. 우크라이나 정부나 서방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푸틴은 “주민들은 러시아와 하나가 되는 걸 택했다. 그것으로 끝”이라고 못 박았다. 미국과 유럽 등이 크림반도 합병을 이유로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러시아의 목소리는 언제나 단호하다. 영국 BBC방송은 푸틴의 이번 크림 방문과 ‘잠수함 이벤트’에 대해 “액션맨 푸틴의 전형적인 디스플레이(전시행사)”라면서 “누가 크림의 보스인지 보여준 것”이라고 평했다. 러시아는 크림을 한 번도 ‘남의 나라’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며, 옛소련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상실’한 것이라고 여겨왔다. 서방 언론들조차 크림 주민들 다수가 러시아 귀속을 환영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푸틴이 남다른 이벤트를 보여준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푸틴은 2년 전에도 난파선을 찾는다며 핀란드만과 바이칼호를 탐험했다. 2010년 큰 산불이 났을 때에는 직접 소방용 헬기를 조종했고, 2014년에는 시베리아에서 행글라이더 비행을 했다. 야생호랑이에게 위성추적장치를 다는 모습(2008년), 웃통을 벗고 말 타는 모습(2009년)을 보여주기도 했다. 흑해 잠수는 대내적으로는 푸틴이 ‘강력한 국가지도자’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부각시키려는 정치행사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부에서는 해저로 가라앉는 푸틴의 모습을 희화화할지 몰라도, 서투른 ‘고고학자 코스프레’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그의 모든 행보에는 늘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는 무엇보다 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의 역사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해 말 푸틴은 크림반도 남쪽에 있는 고대도시 케르소네소스의 정교회를 부활시켰으며, 크림반도를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 성전산(템플마운트)에 비유했다. 케르소네소스는 기원전 6세기에 건설된 도시로, 한때 ‘동방기독교’로 불리는 러시아 정교의 중심지였다. 15세기 비잔틴(동로마)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한 뒤에도 이 도시는 정교를 지켜온 보루였다. 공교롭게도 가톨릭과 구분되는 러시아 정교를 창설한 인물의 이름은 10세기의 블라디미르 대제다. 크림반도의 정교회에 다시금 힘을 실어주는 푸틴의 움직임은 ‘블라디미르 대제의 재림’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푸틴이 2014년 9월 시베리아 상공에서 행글라이더 비행을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방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무너지고 푸틴 체제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전망이 잠시 나왔으나, 위기론은 어느새 사그라졌다. 이달 초 러시아는 치즈와 과일 등 식료품 320톤을 하루 만에 폐기했다. 불도저를 비롯한 중장비를 동원해 음식을 짓이긴 뒤 매각하거나 불태웠다. 모두 서방에서 밀수된 것들이다. 유럽이 경제제재를 하자 러시아는 지난해 8월 유럽산 식료품 수입금지라는 조치로 맞섰다. 치즈 따위를 짓이긴 것은 푸틴이 유럽 식품 수입 금지조치를 1년 더 연장하기로 한 직후였다. 식품 폐기 장면은 TV를 통해 방영됐고, 정부는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언론들에 배포했다. 러시아는 그 뒤 밀수식품 신고 핫라인을 만들고, 식품 소매체인 단속에 들어갔다. 제재 때문에 러시아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부메랑은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러시아로 생산품을 수출하던 유럽 농민들과 축산농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며, 프랑스와 벨기에에서는 농민 시위가 잇따랐다. 흔들고자 했던 푸틴 대신 유럽의 농장들이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푸틴이 2013년 모스크바의 청년캠프에 모인 젊은이들 앞에서 프라이팬을 손으로 찌그러뜨리고 있다. 푸틴은 이 자리에서 쇠 프라이팬 2개를 구부러뜨렸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방 치즈와 과일 식료품 320t 폐기 크렘린에 동요가 오고 있는지, 제재 이후 러시아의 경제난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국민대 국제학부 정재원 교수는 “현재로서는 푸틴의 권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서방이 예상했던 것보다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외신들 표현대로 러시아 국민들은 ‘세계대전도, 스탈린 통치도, 그 힘들었던 체제 전환기도 버텨낸’ 사람들이라 버티기에는 이골이 나 있다. 러시아의 산업이 취약한 것은 맞지만 밖에서 보는 것처럼 형편없지는 않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소련이 해체된 후 모든 것을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그 후 러시아의 소비재 산업은 나름 발전했다. 전자제품 등 고부가가치 산업은 타격을 받았겠지만 당장 폭동이 일어날 수준은 아니다. 제재에 가담하지 않은 나라들이 많은 데다 무엇보다 중국이 도와주고 있다. 서방과 등 돌린 러시아는 중국과의 밀월관계를 강화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길도 아직은 열려 있다. 모스크바타임스는 19일 러시아 국민 절반 이상은 푸틴 대통령이 현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모스크바 레바다센터가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6%는 푸틴이 러시아 상황에 대해 완전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14%는 푸틴의 측근들이 대통령에게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이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답변은 31%였다. 재미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22%는 푸틴은 아무 잘못이 없으며 측근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런 답변은 2012년 조사 때보다 오히려 두 배로 늘었다. 여론조사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푸틴이 당장 체제를 흔드는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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