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총 14 건 검색)
- [렌즈로 본 세상] 학폭·왕따…아이 낳기 두려운 세상(2024. 07. 30 06:00)
- 2024. 07. 30 06:00 사회
- 학교폭력 피해 학생 10명 중 6명이 고통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푸른나무재단은 지난 7월 24일 서울 서초구 재단 사무실에서 진행한 ‘2024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기자회견에서 학교폭력 피해 학생 대상 고통의 정도를 조사한 결과 64.1%가 고통스러웠다고 응답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2017년 동일 문항 조사 이래 역대 최고의 수치로, 피해자의 고통이 더 커졌다는 의미다. 보호자 인식 조사에서는 피해 학생 보호자의 40.6%가 가해자 측으로부터 쌍방 신고를 당했다고 응답했으며, 푸른나무재단의 상담 전화 중 법률상담 신청 비율 또한 10년 중 최고치다. 현재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학교 폭력과 미흡한 대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부모가 아이를 낳고 싶어할까?
- 렌즈로 본 세상
- 늘봄학교·학폭조사관…학교는 지금 ‘시험’ 중(2024. 03. 14 06:00)
- 2024. 03. 14 06:00 사회
- 윤석열 정부식 ‘속전속결’ 시행…준비 부족 탓 졸속 운영·실효성 의문 등 우려 2024년 새 학기를 맞은 학교에는 큰 변화가 두 가지 있다. 애초 2025년 전국 확대시행 예정이던 초등 ‘늘봄학교’가 1년 앞당겨진 이달부터 확대 시행됐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제도 개선안’ 발표를 통해 도입 계획을 밝힌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학폭조사관)’제는 석 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전국 모든 시·도교육청에서 운영에 들어갔다. 늘봄학교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가돌봄정책이다.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최장 13시간 동안 학교에서 학생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학교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골자다. 학폭조사관제는 퇴직경찰, 퇴직교원, 아동·청소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조사관이 학폭 사안을 전담 조사해 교사들의 업무부담을 줄이고, 학폭 처리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두 제도가 시행되기까지 과정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충분한 시범운영이나 평가의 시간을 갖기보단 ‘속전속결’로 정책이 실행됐다. 정책 집행에 있어 ‘속도’를 강조하는 윤 대통령의 뜻이 반영됐다. 준비 미흡 문제로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 “졸속 추진”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늘봄학교는 전담 인력 및 공간 문제로, 학폭조사관제는 실효성과 효율성 문제를 놓고 각각 논란이 일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 대다수는 늘봄학교와 학폭조사관제를 올해 들어 처음 겪는다. 돌봄과 학폭은 일반 국민도 관심이 많은 사안이다. 제도의 성패를 놓고 학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는 “오후 8시까지 돌봄”, 현실은 “하루 2시간이 끝” 경기도 안양에 거주 중인 A씨는 올 1월 초등학교에 입학 예정인 자녀의 학교 돌봄교실 입실을 신청했다가 추첨에서 떨어졌다. A씨는 회사에 사정을 읍소한 뒤 재택근무를 하며 하교한 자녀를 돌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정부가 늘봄학교를 전국 확대 시행한다고 발표(2월)한 뒤 학교에서 “돌봄 인원을 더 받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A씨 자녀를 포함해 총 17명이 추가로 학교 돌봄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A씨는 기뻤지만 잠시뿐이었다. 학교는 “하루 2시간만 돌봄교실 이용이 가능하다”라고 통보해왔다. 아이들을 돌볼 인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1학년인 A씨 자녀는 낮 12시 20분이면 수업을 마친다. 돌봄을 2시간 이용하면 오후 2시 20분에 자녀를 데리러 학교에 가야 한다. 출근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A씨는 “정부에선 오후 8시까지 학교에서 돌봄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현실은 2시간이 전부”라며 “급하게 돌봄을 늘린 탓인지 준비가 많이 미흡하다고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직 모든 초등학교가 늘봄학교를 운영하는 건 아니다. 올해 2월 19일 기준 교육부 집계를 보면 전국 6175개 초등학교 중 2741개(44.3%)가 새 학기 늘봄학교 운영을 시작했다. 단계적으로 늘려 2학기 때는 모든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를 운영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정부는 전체의 44.3%도 상당한 성과라고 말한다. 문제는 늘봄학교의 운영시간이나 방식 등이 학교별로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어린이들이 책을 읽는 수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일단 전담인력을 확보했는지가 늘봄의 ‘질’을 좌우한다. 정부는 “기존 교원들에게 업무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기간제 교사를 뽑아 업무를 전담하도록 했다. 인력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가 많다. 늘봄학교를 운영하는 서울의 B초등학교는 학기 시작 전 기간제 교사를 구하지 못해 최근 재공고를 냈다. 교사를 구할 때까진 교감 등 기존 교원이 늘봄을 맡기로 했다. 기간제 교사를 채용했더라도 이들의 근무시간 외(오전 7~9시·오후 6~8시) 업무나 늘봄학교에 포함된 ‘맞춤형 프로그램(하루 2시간)’ 강사를 구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충남의 C초등학교, 울산의 D초등학교 등은 해당 인력을 구하기 위해 ‘시급 1만원’을 걸고 자원봉사자를 구하고 있다. 전담 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늘봄학교가 파행운영되거나 기존 교사들에게 해당 업무가 떠넘겨진다. 이는 지난해 시범운영 단계에서부터 숱하게 문제점으로 지적됐는데도 해결되지 않은 채 전국 확대시행을 맞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 3월 6일 “3월 4일부터 늘봄 실태조사를 한 결과 하루 만에 80여건의 파행 사례가 접수됐고, 절반 이상이 늘봄 업무에 교사가 투입된 사례”며 “늘봄 파행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의 한 교감은 “기간제 교사를 못 구한 학교들은 결국 교감들이 해당 업무를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떠맡고 있다”라며 “그런데도 교육부는 무슨 생각으로 2학기엔 6000여개 모든 초등학교에서 늘봄을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늘봄학교 운영에 필요한 돌봄교실 등 ‘공간’ 확보 문제도 있다. 녹색정의당 정책위원회의 ‘2022년 과밀학급 현황’ 자료를 보면 서울 강남(37.70%)·서초(35.90%), 경기 하남(35.90%)·김포(31.10%)·과천(30.50%) 등은 초등학교 과밀학급 비율이 30%를 넘었다. 경기 화성·용인·김포·수원 등은 초등 과밀학급수가 각각 400~600개에 달했다. 최재영 충남교사노조위원장은 “용인이나 수원은 물론 충남 천안·아산 등 지역별로 과밀이 심한 지역은 이미 학교 특별실이나 학생 휴게공간까지 교실로 쓸 정도로 공간 문제가 심각하다”며 “늘봄을 할 공간도 없는데 내년에는 학교에 ‘늘봄지원실’까지 만든다는 정부 발상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고 밝혔다. 학폭조사관제 도입으로 ‘학폭 소송’ 증가 우려 학폭조사관제는 지난해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자녀 학폭문제로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 사건,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순직 사건 등으로 학폭처리 과정의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자 도입됐다. 기존에는 학폭사건이 접수되면 교내 전담기구(교사·학부모·아동전문가 등 참여)에서 사안을 조사한 뒤 교내에서 자체 해결(피해자 동의 시)하거나 각 지방교육지원청의 학폭심의위원회(학폭위)에 사안을 넘겨 처분을 받았다. 제도가 도입된 지난 3월 1일 이후부터는 학폭 접수 시 교육지원청이 위촉한 학폭조사관이 사안을 조사한 뒤 교내 자체 해결, 학폭심의위 이관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학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받는 업무 부담을 줄이는 것 제도 도입의 주요 취지다. 이는 교사노조나 교원단체들이 줄곧 요구해온 사안이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제도 도입을 밝혔을 때 교원단체 등은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시도교육청별로 관련 연수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제도 도입 이후에도 학교(교사)가 학폭 사안 접수 및 1차 확인서·접수보고서 등을 작성해야 하고, 학폭조사관의 학생 조사 시 교사가 배석해야 하는 등 여전히 교사가 학폭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교사노조연맹은 “학폭 업무 경감은커녕 조사 일정 조율 및 조사 시 배석 등 교사 업무가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학폭 조사업무를 완전히 이관해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벼운 사안도 학폭조사관이 조사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행정력과 예산이 소요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교육지청 소속 학폭심의위원은 “제도 시행 전 학교에 접수되는 학폭의 60~70%는 교내 자체 해결됐고, 심의위에 올라온 사안도 60~70%가량은 경미한 사안”이라며 “이렇게 경미한 사안들까지 전문 조사관을 투입해 비용(1건당 18만~40만원)을 들여가며 조사하는 게 얼마나 실익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조성백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일선 학교에 배포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경미한 사안의 경우 종전대로 학교에서 조사하고 종결처리하는 방안도 가능하다’라고 안내했다”고 밝혔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12월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학교폭력 사안처리 개선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법조계에선 학폭조사관제 도입으로 ‘학폭 소송’ 등 법적 대응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7일 공개한 ‘학폭조사관 직군별 현황’ 자료를 보면 전국 15개 시도교육청이 위촉한 1743명의 학폭조사관 중 ‘퇴직경찰’이 658명(38%)으로 가장 많았다. 한 학폭전문 변호사는 “수사 전문가인 퇴직경찰이 투입되면 조사의 신빙성이나 보고서의 완성도는 분명 높아질 것”이라면서도 “반대로 조사를 받는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전문가의 조사에 대비하기 위해 초기 단계부터 변호사를 구하는 등 법률 대응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3월 1일부터는 학생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되는 ‘가해학생 조치사항’의 보존기한도 늘었다. 이전에는 학폭 수위에 따라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 8호(전학) 등의 처분을 받으면 ‘졸업 후 2년’까지 해당 조치사항이 보존됐다.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보존기한이 4년으로 늘었다. 학폭 조사와 처분의 수위가 모두 높아진 만큼 ‘학폭 소송’ 역시 증가할 것이란 게 법조계의 견해다. 학폭조사 과정에 퇴직경찰이 개입하는 게 맞는가에 대한 논란 역시 계속되고 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조사에 엄밀함을 더한다는 이유로 전직 수사전문가 앞에 아이를 결국 세우는 것인데, 학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며 “학폭을 예방하거나 학폭에 대한 교육적 해결을 모색하기보단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정책이 집중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임이랑 법률사무소 률 변호사는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을 보면 지나치게 경미한 사안까지 학폭의 범주에 포함돼 부모 간 감정싸움, 법적 다툼 등으로 일이 커지는 측면이 있다”며 “학폭 적용 대상과 범위를 일부 축소하고, 교내 학폭 전담기구의 역할을 강화하는 등 법률 개정을 통해 교육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학폭 가해자’를 더 망치게 하는 최악의 부모(2023. 03. 10 11:13)
- 2023. 03. 10 11:13 사회
- ㆍ정순신 국수본부장 사퇴를 보며…‘폭력 부인’이 악화 원인 서울 한 중학교의 빈 교실 밖에 하얀 목련과 살구꽃이 피어 있다. / 김창길 기자 최근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하루 만에 사임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과거 학교폭력(학폭) 논란이 뜨거웠다. 정순신 변호사는 검사였던 당시 학폭 조사단계부터 개입해 아들의 진술서를 두 번이나 번복해 쓰게 하고, 언어폭력은 폭력이 아니라는 식으로 아들을 두둔했다. 전학 처분이 나왔음에도 1심, 2심,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하면서 전학을 지연시켰다. 이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충분히 조기에 해결하고, 아버지의 공직생활에까지 타격을 주지 않을 수도 있을 사안이었다. 학폭위에서 강제전학 처분을 내린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가 낮고, 피해학생 측과의 화해 정도가 없다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신고 초기에 곧바로 사과하고 피해학생에게 용서를 구했더라면 강제전학 처분까지는 내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당시 가해학생은 2명이었는데, 다른 가해학생은 곧바로 사과했다. 반면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다가 징계가 내려지고 나서야 사과했다. 또 전학 처분이 나왔을 때 겸허히 수용하고 전학을 이행했더라면 이처럼 소송 전력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가해학생 측은 스스로 이러한 기회를 저버렸다. 피해학생과 학교에 책임 전가 그렇다면 이러한 모습이 정순신 변호사만의 특별한 모습인 걸까. 고위공직자라는 직위 등 배경을 모두 배제한다면 정순신 변호사의 모습은 학교폭력 가해자 학부모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라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본 글에서 자녀가 학교폭력 가해학생이 됐을 때 학부모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여러분의 자녀가 혹시나 학교폭력 가해학생이 됐을 때, 자녀를 망치는 최악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먼저 학교폭력 신고 및 학교 조사단계다. 가해학생 보호자들은 자녀가 학폭에 연루됐다는 연락을 받으면 당연히 놀라고, 평소 자신이 알고 있는 자녀의 모습과 너무 다른 내용에 사실을 믿기 어려워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현실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내 자녀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자녀가 자필로 쓴 진술서에 가해행위를 인정한 내용이 있음에도 학교폭력 담당 교사가 자기 아이를 윽박지르고 기를 죽여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썼다고 주장하거나, 심지어 학교폭력 담당 교사가 이렇게 쓰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학교에서 목격학생들의 진술이 나왔다고 설명하면 “목격학생들이 피해학생과 친할 것이다.”, “피해학생 측 보호자가 목격학생들을 매수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모두가 자녀가 학폭 가해행위를 했다고 하고 객관적 증거가 뒷받침하는데도 부모들만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러다 보면 보호자는 가해학생에게 진술서를 다시 쓰라 하거나 거짓말까지 가르친다. 학교를 적으로 돌리는 보호자들도 있다. 자녀가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다른 곳에서 찾고 싶어서일까. “우리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할 때까지 학교에서는 도대체 뭐 했냐”며 학교에 책임을 묻는다. 학교폭력 책임 교사가 자녀에게 윽박지르며 사안조사를 했다고 민원을 넣기도 한다. 또 담임선생님과 학교폭력 책임 교사는 원만히 해결하고자 교육적 차원에서 가해학생에게 반성할 것을 지도하고 피해학생에게 사과하라고 권유했는데, 보호자는 “왜 학폭위에 가기도 전에 가해학생 취급하느냐”, “왜 사과를 강요하느냐” 등 항의를 하고, 심지어 아동학대라며 형사고소를 하는 보호자도 있다. 사과와 반성은 뒷전이 돼버린다. 화해로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학폭 60%는 사과로 원만히 해결 가해학생 보호자들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출석해 보이는 모습도 다양하다. 자녀가 사건을 어떻게 반성하고 있는지,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에 대한 진술은 온데간데없고 피해학생 측을 비난하기 바쁜 보호자들이 있다. “피해학생이 원래 친구가 없다”, “피해학생이 실은 정신과 질환이 있던 것 아니냐”, “피해학생 보호자가 돈을 바라고 신고를 한 것 같다”는 등의 발언은 위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애들끼리 크면서 싸울 수도 있지 않느냐”, “피해학생이 원인 제공을 했으니 우리 아이가 그런 것이다”라는 식의 태도는 심의위원회에서 징계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다. 심의위원회의 징계 판단 기준은 ‘고의성, 지속성, 심각성, 반성 정도, 화해 정도’이다. 기준별로 0~4점까지 점수를 산정한다. 점수가 높을수록 징계는 올라가고, 16~20점은 전학·퇴학이다. 그런데 보호자의 이런 태도로 인해 반성 정도, 화해 정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되면 징계 수위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실제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 판결문을 보면 학폭위에서 내렸던 점수는 16점으로, 그중 반성 정도 ‘낮음 3점’, 화해 정도 ‘없음 4점’이었다. 마지막으로 학폭위 이후의 불복절차에서 가해학생 보호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불복절차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학폭위도 100% 옳은 결정을 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줄곧 자녀의 학폭을 인정하지 않는 보호자들은 불복절차를 진행하면서 집행정지를 통해 징계를 정지시키고 미뤄보려 한다. 이러한 소위 ‘법적 꼼수’는 통하지 않음을 말씀드린다. 교육지원청과 법원이 징계 회피를 막기 위해 상급학교로 진학하더라도 행정심판, 행정소송에서 기각됐을 시 반드시 징계를 이행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급학교에서 징계를 받게 되는 셈이라 자칫 학생에게는 더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모든 학폭 가해학생의 부모가 이런 건 아니다. 많은 가해학생 학부모는 진심 어린 사과와 자녀에 대한 지도, 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한다. 전체 학폭 사건의 60%가량이 학폭위로 가지 않고 학교장 자체해결로 원만히 해결된다는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누구나 학폭 가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일시적인 징계 모면, 책임 전가, 피해학생에 대한 외면은 장기적으로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고 또 다른 학폭을 저지를 수 있다. 결국 책임을 회피했다는 이유로 언젠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내 자녀를 위하는 진정한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노윤호는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로 서울동부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위원, 학교폭력 및 사이버폭력 자문, 강의 등의 활동을 했다. 푸른나무재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서 법률자문을 하고 있다.
- [취재 후]학폭, 우리 자신도 돌아보자(2021. 03. 26 13:00)
- 2021. 03. 26 13:00 사회
- 먼 곳에서 전학을 온 후 따돌림을 당한 ‘제니’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별 이유도 없이 제니에게 치욕적인 별명을 짓고, 제니를 따돌리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괴로워 하던 제니는 어느 날 동급생들에게 전화를 돌립니다. “왜 나를 미워하는 거니?” 아이들은 다정한 태도로 답했습니다. “미워하지 않아!” 자신을 욕하는 모임에 대해 묻자 “그런 건 없다”고들 했습니다. 어쩌면 그간의 모든 일은 제니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으로 ‘오해’는 풀린 것일까요. 미국의 정치학자 레이철 시먼스의 <소녀들의 심리학>은 갈수록 늘고 있는 관계적·정서적 괴롭힘 유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소년에 비해 소녀는 ‘착하고 사랑스러워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강렬하게 느끼며 그 결과 형성된 것이 ‘은밀한 공격문화’라고 말입니다. <소녀들의 심리학>에 소개된 제니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요. 기쁨에 벅차올라 등교했지만 ‘따돌림’은 그대로였습니다. “혹시 화가 났니”라고 물었을 때 ‘쿨’하게 “아니야”라고 답하고는 외면, 침묵, 배제를 지속하는 것. 은밀한 공격의 대표 유형입니다. 부정적 감정을 쏟다가, 지나치게 잘해주기를 반복하는 ‘학대적 관계맺기’ 역시 은밀한 공격입니다. 자신이 미워하는 아이를 ‘다른 사람들도’ 미워하도록 소문을 퍼뜨리고 각종 동맹을 형성하는 행위도 해당합니다. ‘나의 학폭 이야기’를 취재하며 접한 학교폭력엔 신체적 공격도 있었지만 비신체적인 공격 사례가 더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이 책이 떠올랐습니다. 저자가 밝혔듯 ‘은밀한 공격문화’는 소녀들만의 것은 아닙니다. ‘관계’를 무기 삼은 공격은 소년들에게서도 자주 관찰됩니다. 취재 후 일주일간 ‘분노’와 ‘죄책감’ 사이에서 방황했습니다. 은밀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때가 떠올라 분노했다가, 이 공격의 원리를 알게 된 후 저 역시 ‘써먹은’ 사실이 있기에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비신체적 공격의 범주에서 보자면, 우리 대부분은 가해·피해·방관자의 위치에 한 번씩은 서 봤을 것입니다. 최근의 학폭 폭로를 둘러싼 논의는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을 향한 ‘응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폭력의 사슬을 끊어내고자 한다면, 한 번쯤은 우리 자신도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나의 폭력’은 과연 없었을까요.
- 취재 후
- [표지 이야기]“학폭에서 가장 ‘기본’은 피해자의 회복”(2021. 03. 19 14:05)
- 2021. 03. 19 14:05 사회
- ㆍ동급생 폭력으로 극단적 선택 2011년 ‘대구 중학생 사건’ 권모군 어머니 대구에 사는 임지영씨(58)는 몸이 조금만 아파도 악몽을 꾼다. 꿈에선 늘 ‘그날’의 하루가 반복된다. 아이보다 먼저 출근하면서 “갔다 올게”라고 말한다. 아들은 소파에서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말한다. 마음속에선 ‘출근하면 안 돼’라고 외치지만, 꿈에서조차 결국 집을 나선다. 그리고 그날, 경찰에게 연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봤던 그 장면…. 그는 10년 전 동급생들의 물고문, 구타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고 권모군의 어머니다. 10년 전 대구의 중학생 권모군이 동급생의 물고문과 구타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은 한국사회를 뒤흔들어놓았다. 이후 학교폭력 대책이 강화됐지만, 최근의 연쇄적인 폭로는 그간의 제도가 피해자 회복과 치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건 직후 “지금 말고 10년 후, 20년 후에도 계속 관심을 갖고 취재해달라”고 요청했던 권군의 어머니 임지영씨와 만났다. 그는 “저에겐 아픈 일이지만 잊어버리면 안 된다”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얘기하면서, 조금이라도 학교폭력 문제가 나아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 송윤경 기자 최근 학교폭력 폭로가 이어지면서 2011년 ‘대구 중학생 사건’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당시 대구에선 권군의 사건 이후 여러명의 중·고등학생이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투신한 고1 남학생 이모군이 찍힌 엘리베이터 CCTV 사진도 한국사회 시민에게는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권군의 유서와 이군의 사진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시 공유되고 있다. 임씨는 2011년 아들의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인터뷰로 끝내지 말고 10년, 20년, 3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꼭 취재해주세요. 그때 다시 인터뷰해주세요.” 더는 학교폭력으로 희생되는 아이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을 전하고 싶었다. 당시 임씨가 아들의 유서를 언론에 공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후 10년이 흘렀다. 임씨는 지금도 종종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인다. 주간경향과 만남에서 그는 “저에겐 아픈 일이지만 잊어버리면 안 된다”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얘기하면서, 조금이라도 학교폭력 문제가 나아지길 소망한다”고 했다. -혹시 이사 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은 가족에겐 견디기 힘든 고통이 계속되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아이(숨진 권모군) 때문에 못 갔죠. 애 흔적이 너무 많은데 그걸 내가 다 버리고 가면, 내 아들이 다시 보고 싶을 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잖아요. 아이 방이 그대로 있거든요(임씨는 권군의 책상을 10년 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지금도 선잠이 들었을 때 무슨 소리가 나면 ‘아, 아이가 오나’ 싶어요. 아이가 가끔 베개 들고 와 안방에서 자고 그랬거든요. 방문이 확 열리고 애가 들어올 것 같은 거예요.” -10년 전에 가족이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나와 남편은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요. 큰아이는 경찰청 심리케어팀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도 그분들과 자주 연락하고, 형처럼 의지하고 있어요. 아이는 경찰이 돼 심리케어팀에서 일하고 싶어해요. 그 분야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어요. 큰아이 친구들도 너무 고마웠어요. 당시에 우리 집에 와 같이 등교하고 그랬어요. 아이(고 권모군) 추모공원을 찾아 편지를 남겨놓고 간 분들도 있고요. 고마운 분들이 참 많았어요.” -사건 직후 언론에 가해학생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요. “지금도 그 아이들 이름이 어쩌다가 (인터넷 등에) 나오거든요.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이 중요하지, 그 아이들도 인생이 있는 거니까요.” -가해학생 2명은 각각 2년, 3년형을 받았는데, 아직 사과는 받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가슴이 아프죠. 마음이 두 갈래예요. ‘차마 우리에게 오기가 미안해 못 올 것이다’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혹시나 뉘우치지 않고 자기들도 억울하다고 여기며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요. ‘좋게 생각해야지’ 하고 마음먹어 보지만 용서가 안 돼요. 어떻게 용서가 되겠어요. 용서라는 단어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 아이들이 반성하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뉘우침 없는 모습을 본다면, 제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아요.” -혹시 용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나요. “나는 가톨릭 신자예요.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라는 기도문이 있어요. 그 기도문을 외울 수가 없는 거예요. 사건 직후에는 성당에도 못 갔어요. 용서가 안 되는데 내가 뭘 기도할 수가 있나 싶어서요. 나중에 너무 힘들어 성당을 찾았는데, 수녀님을 만나자마자 ‘제가 그 엄마예요’라고 겨우 말하고는 펑펑 울었어요. 그때 신부님과 면담을 했는데 ‘억지로 용서하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하더라고요. 많은 위안이 됐어요. 그렇지만 지금도 성당에 가면, 앞자리에 앉지 못해요. 내 아이를 못 지킨 데 대한 죄책감이 크니까.” -유서를 보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어떤 아이였나요. “저에게 나쁜 기억을 하나도 주지 않았던 아이예요. 애정을 듬뿍 받고 컸어요. 형도 동생을 정말 예뻐해 집에 오자마자 손을 씻고 아이에게 손가락을 물리곤 했어요. 큰아이도 죄책감이 컸죠.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얘기했으면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권군의 어머니 임씨는 “학교폭력으로 더이상 희생되는 아이가 없어야 한다”는 바람으로 아들의 유서를 모두 공개한 바 있다. / 임지영씨 제공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짐작 가는 이유가 있을까요. “가해학생 중 한명이 ‘나에게 조폭 친척 형이 있다. 주변에 말하면 가만 안 둔다’는 식으로 위협했다고 해요. 아들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신고하겠다는 걸 애가 말렸대요. ‘나, 맞아죽는다고, 내가 죽는 걸 보고 싶으냐’고 하면서요. 아이는 우리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냥 내가 당하고 끝내자’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사건 직후에는 가해학생, 부모들과 만난 적이 있나요. “두 집(두명의 가해학생 가정) 중 한집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와서 ‘죄송합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죄송하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잘못한 만큼 벌 받았으면 좋겠다’ 했더니 ‘알겠다, 죄송하다’라고 하고 갔어요. 그런데 또 다른 집 어머니는 계속 찾아와 ’우리 아들은 시켜서 때린 거다’, ‘우리 애도 피해자다’라고 했어요. ‘우리 아들을 ○○이 대신 이 집 아들로 살게 하겠다’라는 말도 하는데, 결론은 억울하다는 거였어요. 너무 자주 찾아와 가끔은 문밖에 나가지 못했어요. 제가 딱 잘라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할머니를 모시고 또 왔더라고요. 할머니가 직접 뜯은 것이라며 나물을 주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먹을 수 있겠어요. 애가 죽었는데…. 합의라는 것도 애가 살아 있을 때 가능한 거잖아요. 차라리 애(가해학생)를 직접 데리고 와 사과하게 했다면 좀 달랐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엄마만 계속 찾아와서….” -그후 어떻게 됐나요. “형사재판이 시작되니까 발길을 딱 끊었어요. 그 사람이 찾아오던 한달 동안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두분 모두 선생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사건 직후 잠시 교편을 내려놓았다고요. “저희가 주말부부였어요. 사건이 있고 나서 둘 중 한명은 큰아이(권군의 형)를 지켜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죠. 당시 고1이었지만 너무나 불안했으니까요. 그래서 남편이 일을 그만뒀어요. 전 지금도 큰아이와 연락이 잠깐 끊겨도 불안해요. 큰아이도 제 마음을 잘 알고 있어서 ‘엄마, 학교에 왔어요’, ‘엄마, 밥 먹었어요’, ‘엄마, 어디 도착했어요’ 이런 식으로 문자를 자주 보내줘요. 큰아이에게 종종 말해요. ‘엄마가 너한테 너무 미안하지만, 이렇게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라고.” -최근의 학교폭력 폭로 현상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장 ‘기본’은 피해자의 회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회복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끊임없이 기다려주고 살펴줘야 해요. 그런데 교육부에선 그걸 허락하지 않아요. 폭력 사안이 생기면 2~3주 안에 사안조사를 해 교육지원청에 넘겨줘야 해요. 피해자는 마음 추스르지도 못했는데 행정적 절차가 이뤄지고 끝나는 거죠. 만약 피해자들의 치유가 제때 이뤄졌다면 폭로도 잇따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의 현상은 일종의 성장통 아닐까요. 피해자의 마음을 살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거짓 폭로도 있겠지만 전부는 아닐 거예요. ‘잘 나가니까 저런다’는 식의 반응은 또 다른 상처만 입혀요.”(임씨는 대학원에서 학교폭력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에 관해 공부했다. 그의 연구보고서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피해자가 회복하여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졸업 후 사회에서도 적응하는 모습의 사례를 찾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중요할 텐데, 실례를 보면 형식적인 사과가 많더라고요. “유치원 시절부터, 아주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의 어떤 행동 때문에 저 아이가 힘들구나’ 하는 것을 가해자·방관자 모두가 인식하도록 오랫동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단번에 이루어지진 않겠죠. 그래도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어요.” 권군의 유서에는 “저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우리 가족을 기다릴게요”라는 대목이 나온다. 엄마는 ‘기다리고 있을’ 아들을 위해 지금도 매일 기도를 한다. 그는 만약 지금 아들이 듣고 있다면,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미안해. 엄마는 네가 그렇게 아픈 줄 모르고 있었어. 그래도 너로 인해 세상이 조금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어. 엄마가 갈 때는 ‘이렇게 많이 변했어’라고 웃으면서 얘기하고 싶어. 거기서는 아프지 마.”
- 표지 이야기
- [표지 이야기]학폭 대응, 법과 교육이 동행해야(2021. 03. 19 14:05)
- 2021. 03. 19 14:05 사회
- ㆍ학교절차에 이어 형사절차까지… 전담기구와 수사기관의 일원화 필요 과거 학교폭력에 대한 체육계·연예계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예전 학교폭력 폭로를 단초로 해 현재진행형인 학교폭력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혹자는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학교폭력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학교폭력 발생 시 적용되는 법과 절차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절차는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먼저 학교에서 이뤄지는 절차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장은 즉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다(2021년 6월부터 시행). 학교폭력 전담기구는 수사기관 역할을 한다. 사실관계 확인과 피해 정도, 증거를 확보해 관할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에 보고한다. 학폭위에서는 양측을 출석하게 해 의견진술을 듣고 사안의 심각성, 피해학생과의 분리 필요성, 반성 정도 등을 고려해 가해학생에게 징계를 내린다. 징계 1호는 서면사과다. 2호 피해학생 접촉·보복행위 금지, 3호 교내봉사, 4호 사회봉사, 5호 특별교육 이수, 6호 출석정지, 7호 학급교체, 8호 전학, 9호 퇴학 처분이 있다. 피해학생에게 보호조치를 내리기도 한다. 전문가 상담, 일시보호, 치료 등이 대표 사례다. 두 번째 단계로 형사절차가 있다. 성폭력 사건은 학교에서 수사기관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학교 측의 신고 혹은 피해자 측의 고소로 경찰에 접수되면 수사가 개시된다. 이후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은 소년재판을, 만14세 이상의 미성년자는 소년재판을 받거나 사건이 중대하면 성인과 마찬가지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소년재판은 교화를 목적으로 전과를 남기지 않는 보호처분을 받게 한다. 형사처벌을 받은 대표 사례로 얼마 전 국민청원에 올라왔던 ‘영종도 스파링 사건’이 있다. 두 가해자가 권투 스파링을 가장한 장시간 폭행으로 피해학생이 의식불명까지 놓였던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학폭위에서 퇴학처분을 받았음은 물론 미성년자라 해도 사건이 중해 이들은 곧바로 구속됐다. 현재는 성인과 같은 형사재판을 받는 중이다. 현재진행형의 학교폭력은 제도권 내에서 다뤄지고 있는데 연이어 폭로되고 있는 과거 학교폭력은 어떨까. 과거 학폭은 법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다. 보통 학교폭력에 적용되는 공소시효는 5~7년이라 고소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례가 많다.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고 해도 학폭을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청구해야 하기 때문에 이 또한 어렵다. 공소시효 범위 내에 있다고 하더라도 오래전 일이라 피해자는 증거확보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과거 학폭 피해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해 폭로한다. 폭로에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사회적·도의적 책임이라도 묻겠다는 피해자 의중이 담겼다. 과거 학교폭력 폭로에도 유의할 점이 있다. 과거 폭력이 사실이라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다만 공익적 목적이 있다면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돼 처벌받지 않는데 표현 방법이 지나치게 감정적·인신공격적이라면 공익적 목적을 의심받을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악의적인 허위 폭로는 폭로의 당사자는 물론 다른 피해자들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게 한다는 점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법과 교육은 분리되지 않는다 2020년 학폭위가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되기 전, 학교 자체에서 학폭위가 열렸을 때 ‘학교에 법의 잣대로 들이대는 게 말이 되냐’, ‘애들 일은 법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애들 싸움에 무슨 변호사냐’ 등 일부 교사들의 비판이 나왔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애들 싸움으로 치부해 피해자에게 참으라 하고,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안고 살게 하거나 가해자를 피해 스스로 학교를 떠나게 하는 것이 교육일까.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보호받고, 가해자에게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피해자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가해자가 비난받고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 아닐까. 법과 교육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도 없었던 과거 학창시절과 달리 학교폭력이 제도권 내로 들어오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됐다. 최근에야 피해자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학교폭력 제도의 순기능을 분명히 이해하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학교폭력 전담기구와 수사기관의 일원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학교폭력 전담기구 사안조사는 교사들이 맡아 한다. 전문 수사기관이 아니다 보니 성폭력·사이버폭력의 경우 조사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피해자는 학교조사, 수사기관에서의 조사 등 이중·삼중으로 조사가 반복돼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때로는 학교와 경찰의 조사결과가 달라 훗날 학폭위 결과가 뒤집히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한다. 사건 초기 단계부터 조사를 일원화하거나 최소한 수사인력이 투입된다면 조기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게도 효과적인 선도의 기회를 줄 수 있다. 사후관리도 중요하다. 가해학생 징계는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종도 스파링 사건 가해자들은 사건이 발생하기 한달 전에도 다른 학생을 폭행해 전학 징계를 받았다. 전학을 미루던 사이 또다시 가해를 저질렀다. 일회성 징계만으로는 재발방지가 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가해학생 사후관리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각 학생의 성향과 폭력의 동기 등을 살펴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재발방지를 돕는 것이 필요하다. 가해자가 진심어린 사과를 외면하고 가해자 부모가 자녀에게 반성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무리 강력한 처벌과 좋은 제도가 있다고 해도 소용없다. 학폭위에서 “내 아이가 사람이라도 죽였습니까? 왜 이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습니다”라며 큰소리치고 피해학생 탓으로 돌리던 어느 가해학생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리 사후관리를 하고, 경찰과 교사가 잘못한 행동이라 가르쳐도, 가해자 부모가 자녀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 부모가 잘못한 게 없다는데?’라고 받아들이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가해자는 최선을 다해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는 것, 이는 누구도 아닌 내 자녀를 위한 길이자 학교폭력 예방의 가장 기본이다. 노윤호는 학교폭력전문 변호사로 서울동부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위원, 사이버 학교폭력 및 직장 내 사이버폭력 자문 등의 활동을 했다. 푸른나무재단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서 법률자문을 하고 있다.
- 표지 이야기
- 학교 떠나는 학폭위, ‘소기의 성과’ 거둘까(2020. 02. 28 14:15)
- 2020. 02. 28 14:15 사회
- ㆍ3월부터 교내 자치위원회가 아닌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서 처리 학교를 떠난 학교폭력심의기구는 무사히 안착할 수 있을까. 개정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지난 2월 18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본격적인 시행은 3월 1일부터다. 가장 큰 변화는 학교장이 자체 해결한 사건 외의 모든 학교폭력 사건을 기존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아닌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에서 처리한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을 판단하는 기구가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상향 이관된 셈이다.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다만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에 학교폭력 사안이 몰릴 것을 고려해 심의위원회 내 소위원회를 구성, 심의위원회가 소위원회에 권한을 위임해 심의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으로 2019년 9월부터 학교장 자체 해결제를 시행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교가 많지 않고, 학교장 자체 해결제를 통해 합의를 해도 다시 심의위 개최를 요구할 수 있어 사건이 몰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폭업무 이관, 전문성·객관성 확보 기대 당초 시행령 초안에는 학교장 자체해결 후에는 피해학생과 보호자의 심의위 개최 요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시행령 통과과정에서 이 부분이 삭제됐다. 학교장 자체해결로 사안이 마무리됐더라도 피해학생이나 보호자가 심의위원회의 판단을 받고자 하면 언제든 자체 종결을 무효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교육부는 ‘무리한 경우’를 제한하기 위해 향후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 학교장 자체해결 이후 심의위 개최를 요구할 수 있는 사유를 구체화할 예정이다. 당초 입법안에는 학교폭력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거나, 재산상 손해복구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에만 심의위 개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었다. 일선 학교 현장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기존의 사안 조사업무는 담당교사가 그대로 맡지만 이후 절차에서는 손을 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중학교 학교폭력 전담부장인 최모 교사는 “심각한 경우 교사와 학교가 행정소송까지 끌려다녀야 했던 학교폭력 업무에서 한 발 떨어져 교과업무 및 폭력예방교육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게 된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전문성과 객관성 확보가 가능하게 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이다. 학교폭력 전문가인 이상우 교사는 “학교마다 처분 결과의 차이가 커서 전문성 확보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번 이관으로 가해학생 처분의 일관성과 전문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 기존 학폭위는 유사한 사안이더라도 학교별로 처분 수위가 달라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 비전문가인 학부모위원이 학폭위 구성원의 과반수를 차지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번 개정으로 학부모위원은 과반에서 3분의 1로 줄어든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 ▲학교폭력 전문가인 교수 또는 연구원 ▲청소년 보호 활동 2년 이상 경력자 ▲관할 시·군·구의 청소년 보호 업무 담당국·과장 ▲전·현직 교육 전문직원 등이 위원에 포함됐다. 이상우 교사는 “그간 학폭위 개최 과정에서 학교가 끊임없는 민원에 시달리고, 이것이 단위학교의 교육력 약화로 이어진 문제점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학폭 처리 과정도 단순해졌다. 기존에는 학교폭력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재심기구를 이원화해 운영하면서 각 기구에서 상반된 결론(※예: 가해재심기구 처분 감경↔피해재심기구 처분 강화)을 내놓았을 경우 이를 바로잡기 위해 중앙행정심판위원회까지 가야 하는 등 행정력 낭비에 대한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가해학생의 경우 피해학생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신청하지 않는 한 행정심판을 받을 수 없어 행정소송으로 가야 하는 등의 소송낭비 문제도 발생해왔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학교폭력 사안이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로 일원화됨에 따라 학교·가해학생·피해학생이 동일한 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게 됐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할 수는 없다. 시행령 통과가 늦어짐에 따라 일선 학교와 교육지원청 차원의 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여전히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매뉴얼은 완성단계이고, 인쇄본 제작을 위한 수정작업을 마치는 대로 일선에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17개 시·도 교육청은 각 교육지원청에 심의위 구성을 완료하고, 교육지원청별 심의위 담당자 발령까지 마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간경향> 취재에 따르면 일부 교육지원청은 2월 25일 현재 구체적인 심의위원 명단조차 준비하지 않은 곳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매뉴얼에 ‘만약의 상황’ 담을 수 있을까 비록 교육지원청 내 소위원회를 둬 학폭사안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했지만 2019년 한 해 학폭위 심의건수가 3만2632건에 달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좀 더 충분한 인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현장에서는 나오고 있다. 사건 처리 기간이 기존 학폭위보다 길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존 학폭제도는 신고가 접수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학폭위를 열고, 결과를 통보하도록 정하고 있다. 반면 개정안은 학교 사안조사에 14일(불가피할 경우 7일 연장), 심의위 개최는 조사보고서가 접수된 날로부터 14일 이내(불가피할 경우 7일 연장)에 하도록 정하고 있다. 사전에 긴급조치(격리·출석정지 등)가 가능하지만 학폭이 신고된 날로부터 최대 42일까지 처분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정엽 행정사는 “심의위원 구성도 문제지만 경기 성남이나 고양, 수원 지역 등은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데 교육지원청은 1곳밖에 없다”며 “사건이 몰릴 경우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의 협조도 관건이다.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애매하거나 책임이 모호한 학폭 사안까지 전부 교육지원청 심의위에 떠넘길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상우 교사는 “새로운 제도가 마련된 만큼 진통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학교폭력예방법의 본래 취지인 피해학생 보호와 치유, 가해학생 교육과 선도라는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학교 현장과 교육청 양쪽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초등학교 성폭력, 학폭위 처리 ‘난감’(2019. 10. 14 16:30)
- 2019. 10. 14 16:30 사회
- ㆍ학교가 섣불리 개입하기 어려운 영역… 경찰 조사 내용 참고도 어려워 #1 최모씨(41)는 최근 셋째아이를 데리고 동네 놀이터를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생 남자아이 무리가 놀이터에서 한 여자아이를 둘러싸고 성행위를 묘사한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명의 남자아이는 미끄럼틀 위에 한 여자아이를 앉혀놓고 그 앞에서 성행위를 하는 듯한 몸짓을 하며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합창하는 것처럼 신음소리까지 냈다. 무리 중 한 아이는 최씨의 첫째딸과 초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남학생이었다. 당장 뛰어가 혼을 내야 할지, 동영상 촬영을 해서 학교에 신고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한 남학생이 최씨를 발견하자마자 서둘러 가방을 챙겨 도망치듯 자전거를 타고 달아났다. 최씨는 여학생에게 가서 “같이 집에 가자”고 했지만 아이는 “괜찮다. 조금 있으면 아빠가 퇴근하고 오실 거라 조금 더 여기 있다 가겠다”며 그의 도움을 거절했다. 최씨는 “무리 중 한 아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 신고하는 건 가능하지만 괜히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닐까 싶어 계속 고민만 했다”면서 “학폭위원 중 한 분을 알고 있어 에둘러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니 ‘괜히 어른 싸움으로 번질 수 있으니 가만히 있어라. 당사자도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신입생 예비소집일에 어린이들이 교실을 들여다보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 강윤중 기자 #2 정모씨(42)는 최근 아파트 상가 뒤편 구석에서 초등학생 3명이 여자아이 한 명을 희롱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여학생을 향해 “너는 몸무게가 얼마냐, 살이 많네” 등의 말을 던지다 한 남학생이 “내가 부엉이로 삼행시를 지을테니 네가 부! 해봐”라고 했다. 여학생이 “부”라고 하자 남학생이 “부랄이 니(네)”라고 했다. 이어 “엉” “엉덩이에”, “이” “이따(있다)”라며 여학생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나머지 두 아이는 망을 보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씨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갔지만 아이들은 재빨리 도망갔다. 정씨는 “저렇게 어린 아이들이 범죄자나 할 법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경악했다”고 했다. 성폭력 심의건수 지난해 1000건 넘을 듯 초등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범죄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거기에 아이들의 가해행위가 점점 성인의 범죄 형태를 따라가고 있다. 여기에 ‘내 아이는 성폭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왜 아이들이 장난으로 한 짓을 처벌하려 드느냐’는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8월 27일 발표한 ‘2019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학교폭력 피해유형 가운데 ‘성추행·성폭력’은 전체 피해유형 중 3.9%를 차지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전체 설문을 뭉뚱그려 집계한 결과다. 초등학교만 따로 떼서 추이를 살펴볼 수 있는 통계는 지난해 국감에서 나온 자료가 유일하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전국 초·중·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심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 성폭력 심의건수는 2013년 130건에서 2017년 936건으로 증가했다. 7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2018년도 학폭위 성폭력 심의건수는 교육부의 증감표를 토대로 산출하면 1000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신고되지 않은 피해건수도 상당할 것으로 교육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제는 성폭력 피해는 학폭위에 접수가 돼도 학교가 정확한 사실파악을 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성폭력 사건은 경찰이나 검찰 내에서도 충분한 교육을 받은 전담 수사관이 맡을 정도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수사영역이다. 교사가 섣불리 개입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이야기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 윤모씨(15년차)는 “어린 학생에게 성폭력 가해 또는 피해사실에 대한 질문을 던져 답을 끌어내는 것도 어렵고, 충실히 조사하겠다고 질문을 했다가 교사가 2차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몇 달 전 초등학교 5학년 남녀 학생 무리가 방과 후 부모님이 없는 친구 집에서 ‘병원놀이’를 했다. 의사 역할을 맡은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주사를 놔주겠다며 눕힌 뒤 준강간행위를 했다. 피해 여학생은 며칠을 고민한 뒤 부모에게 이야기했고, 부모는 아이의 결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학교폭력 피해를 사유로 결석을 했을 경우 출석인정이 가능하다) 학교에는 간략한 피해사실만 알렸다. 대신 가해 남학생과 그 집에 함께 있었던 다른 아이 3명을 모두 경찰에 신고했다. 아이들은 학교가 서로 달랐다. 피해학교의 학교장은 가해자로 지목된 남학생의 학교에 학폭 접수사실을 알렸지만 피해학생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알려주지 않았다. “어떤 유형의 학폭보다 경찰 협조 절실” 가해학생의 학교는 자체적으로 학폭위를 열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지만 남학생은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못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도 불가능했다. 아이는 몇 가지 질문을 받고 돌아간 뒤 다음날부터 등교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부모는 “교사가 정확한 증거도 없이 우리 아이를 범죄자로 몰아세운다”고 항의했다. 경찰에 피해학생의 진술내용을 전달받으려고 했지만 경찰은 “공무상 비밀 누설로 처벌받을 수 있어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담당교사는 “성폭력 신고는 들어왔는데 가해학생 진술은 오락가락하고, 그나마도 더 묻지 못했다. 피해사실에 대한 정확한 진술이나 증거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학폭위를 열어 징계를 할 수도 없어 모두가 난감한 상황”이라고 했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경찰은 학교폭력 사안이 신고됐거나 인지했을 경우 즉각 학교장에게 이를 통지해 협조하도록 하고 있다. 단, 성폭력은 예외다. 이 법 제5조 2항에 ‘성폭력은 다른 법률에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신고가 접수됐다는 사실까지는 알려줄 수 있지만 그 외 구체적으로 고소인의 진술 등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이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학교장이나 담당교사가 자체적으로 가해학생 또는 피해학생을 조사해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작용이나 학교와 교사를 상대로 한 학부모의 고소·고발 역시 학교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경기도의 한 학교폭력 담당교사는 “요즘은 유치원 때부터 성폭력 교육을 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부터도 무엇이 잘못된 행동인지 다 알고 있다”면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유사강간이나 준강간과 같은 행동을 ‘어린아이들의 장난’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요즘 초등학생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이어 “성폭력 건수가 전체 학폭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고 해서 문제의 심각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성폭력 사건은 학교가 조사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경찰의 협조가 어떤 유형의 학폭보다 절실한데 수사기관의 협조가 법으로 막혀 있어 개선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 [학교폭력을 말하다]학교에는 학교폭력 전문가가 없다-학폭 전담교사직은 ‘기피의 대상’(2018. 12. 31 13:00)
- 2018. 12. 31 13:00 사회
- ㆍ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아 힘없는 기간제나 신입교사들이 떠맡아 올해로 4년차 교사인 A씨는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있다. A씨는 2018년도 학교폭력 책임교사 업무를 맡아 왔다. 자원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아무도 떠맡지 않으려 미루고 미루다 경력이 낮은 데다 미혼여성인 자신에게 업무가 넘어왔다. A씨는 학교폭력사건 처리에 대한 사전교육이 전혀 돼 있지 않았다. 학년부장은 “그냥 직책만 달고 있으면 된다. 큰 부담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학교장은 자신의 임기 내에 학교폭력사건이 터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명확한 분이었다. 아이들은 크고 작은 사건을 전부 들고 왔다. 무엇이 학교폭력이고, 아닌지에 대한 기준도 잡기 어려웠다. 피해학생, 가해학생 할 것 없이 학부모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학년부장에게 물어봐도 “알아서 잘 처리하라”는 말만 돌아왔다. 다들 남 일인 것처럼 모든 사건을 학폭위로 넘기라는 조언만 했다. 학폭위로 넘기는 데도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들었다. 밤 9시 넘어 퇴근하는 것이 일과가 됐다. 초과수당도 주지 않았다. A씨는 피해학생 학부모로부터 지속적인 욕설문자를 받다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A씨는 지난 2학기에 휴직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업무 괴로워하다 자살한 교사까지 21년차 교사 B씨는 중학교 학생생활인권부장을 맡으며 학교폭력사건을 전담해 왔다. 그는 교사로서 가해·피해학생을 모두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학생 관리 소홀 및 학폭위 징계결정을 탓하는 학부모들의 질책과 항의를 지속적으로 받았다. 교장에게 보직을 그만두겠다는 의사표시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B씨는 2학년 학생들이 상습적으로 1학년들에게 금품을 갈취한 학폭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일괄적으로 가해학생들에게 강제전학처분이 내려지자 심적 고통을 느꼈다. 또 학폭위 절차 진행과정에서 일부 학폭위원에게 제척사유가 있음에도 회의를 진행했다는 지적을 받고 괴로워하다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원은 2년여 소송 끝에 B씨의 자살과 가중한 학폭위 업무처리 스트레스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학교에는 학교폭력사건 처리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이다. 법에 따라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마련하고,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교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학폭위를 통해 해결하도록 지시하고 있지만 학교폭력 최전선에서 모든 사안을 처리해야 하는 교사들에 대해서는 모두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 결과 교내에서 책임있게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중견교사들이 맡아줘야 할 학교폭력사건들이 힘없는 기간제 교사, 저경력의 여교사, 신규 유입교사들에게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가해 학생 부모로부터의 고소 “학년 말이 되면 다음 연도에 누가 어떤 보직을 맡을 것인지를 논의하는데 학폭 전담 보직은 사실상 매번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루다 힘없는 미혼교사에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괜히 문제제기를 했다가 ‘그러면 선생님이 한 번 해보시겠어요?’라는 말이 나올까봐 다들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차피 그 일을 맡는다고 해서 승진이나 수당에 큰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매년 있는 일은 아니지만 피해학생이나 가해학생 부모가 학교와 교사를 상대로 고소를 하는 바람에 경찰 조사를 받고 온 선생님도 있다. 공을 들여도 보람을 찾기 어려운 일이 학폭이다. 가해학생도 내 제자고, 피해학생도 내 제자인데 최선을 다해 가해자 처벌을 하면 교사가 보람을 느낄 것 같나. 아니다.”(경기도 C중학교 16년차 교사) 그러나 정작 정책을 입안하는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은 이들의 사정에 깜깜하다. 현재 학교폭력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교사들의 근속연수나 정교사 여부도 확인한 적이 없다. 당연히 각 초·중·고교에서 누가 이 업무를 맡고 있는지 정부는 전혀 모르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12월 26일 전화통화에서 “일부 기간제 교사나 저경력자에게 학폭업무를 몰아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면서도 “교육청과 협의를 통해 경험이 많은 교사들이 업무를 맡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실태를 파악해버릴 경우 대안을 만들고 개선해야 하는데 교육당국이 내놓을 마땅한 대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학폭 전담교사의 경우 학년 말에 승진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 문제는 이 승진 가산점이 기간제 교사의 경우 승진 대상이 되는 정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작 일을 한 기간제 교사에게 돌아가지 않고 ‘도움교사’가 몰아서 받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교육부는 전체 교원의 40%까지 가산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때 학폭 전담교사뿐만 아니라 책임교사를 도와 학폭업무를 일부 지원한 교사도 가산점 부여 대상이 된다. 대부분은 승진을 앞두고 가산점이 필요한 교사에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교육부는 실태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기간제 교사에 승진 가산점 무용지물 교육부 관계자는 “당연히 개선될 부분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있지만 무조건 중견교사가 맡으라고 교육당국이 일괄적으로 지침을 내리는 것도 무리가 있고, 결국 학교 안에서 자체적으로 정리돼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에게 부여되는 가산점제도나 인센티브 강화 등의 방안 역시 논의는 있었지만 실현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교육당국의 설명이다. 학폭 전담교사에게 부여하는 가산점 외에 각종 가산점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교육계의 목소리도 있는 데다 수당을 늘리는 문제도 인사혁신처와 협의해 형평성을 고려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부 자체적으로 방안을 내 일괄 시행하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교내에서 해결해야 할 학폭문제가 소송으로 이어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국정감사에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받은 2016~2018년 9월 기간 동안 서울시내 초·중·고교 학교폭력 소송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2년 9개월 동안 소송으로 간 학폭사건은 91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16년 23건, 2017년 37년, 2018년 9월까지 31건이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 중 가해학생 측이 제기한 소송은 전체의 97.8%인 89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처벌의 수위가 부당하거나 처벌사안이 아니라고 다투는 것이다.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학교폭력예방법이 정한대로 모든 사안을 처리한다면 아이들 간의 소소한 다툼마저도 학폭위로 넘겨야 하고, 이를 교육적으로 지도하려는 교사에게도 어려움이 따른다”면서 “교사의 교육적 지도마저도 불가능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그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학폭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교육당국이 지금이라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폭력 사안만 8000여건 다룬 이정엽 행정사 “학폭위로 곧바로 가지 않고, 숙려제 만들어야” 학교폭력 문제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는 누구도 교사와 학교에게 전권을 주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가해학생이든 피해학생이든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려 하는 교사가 없다는 데 있다. 이정엽 행정사는 “가해자 재심·피해자 재심을 따로 처리하는 복잡한 시스템과 처분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함, 교사와 학교장에게 사전종결권을 주지 않는 구조가 결국 학교폭력을 법정분쟁으로 끌고 가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행정사가 2012년부터 처리한 학교폭력 사안만 8000여건, 초기 접수부터 종결까지 처리한 사건만 2400건에 달한다. 학교폭력 사건을 많이 접하면서 느꼈을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신고하면 무조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가 열린다. 담임 종결이나 학교장 종결이 안 된다. 신고를 했다가 화해를 했으니 종결하자는 것도 안 된다. 신고한 피해자가 임의적으로 ‘나 신고 안 하겠다’고 했더라도 취하제도가 없다. 교육부 사안 처리지침에는 종결 요건이 세 가지로만 규정돼 있다. 첫 번째가 신체적·정신적·재산적 피해증거가 없고 화해했을 경우이고, 두 번째가 오인신고, 세 번째는 조사결과 학교폭력으로 보기 어려운 사건이다. 이 세 가지 항목에만 들어가면 학폭위까지 가지 않고 사전종결이 된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사안을 판단하는 기준이 학교마다 다르다. 피해자가 오인신고였다고 주장해도 학교가 봤을 때 학폭이면 그냥 학폭위가 열린다.” 실무에서 봤을 때 해결책이 있어 보이나. “곧바로 학폭위로 가지 않고, 숙려제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일단 한 번 숨고르기 식으로 끊어주는 거다. 그 사이에 화해가 되거나 원만하게 처리가 되면 학폭위까지 가지 않고 자체 종결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해가 되지 않으면 학폭위로 가는 게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누가 봐도 경미하지 않은 사건, 예를 들어 전치 몇 주가 나오는 부상사고나 사망사고와 같은 것들은 숙려제로 가선 안 된다.” 너무 어려운 문제 같다. 그리고 학폭위 개시 이후 절차도 너무 복잡하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경우의 수가 몇십 가지가 나온다. 절차가 복잡하고, 구조 자체도 복잡하다보니 교사들도 모르고, 하다못해 학폭에 참여하는 위원들도 그 절차를 정확하게 모른다. 학폭위 다음 절차가 복잡한 것은 말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피해자 재심은 시·도 지역위원회에서 열리고, 가해자 재심은 시·도교육청에서 열린다. 같은 사안을 놓고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재심하는 기구가 다르다. 두 기구의 결론이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가해재심에서 처분취소가 됐는데 피해재심에서 가해학생에 대해 더 엄한 처벌이 나올 때가 있다. 재심 결과가 달라졌을 때 결국은 또다시 행정심판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재심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재심에서 얻은 이득이 없는 거다. 어떤 해석이 맞는지 보려면 중앙행정심판위원회를 가거나 소송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반사이득은 누가 받나. 나 같은 행정사와 변호사가 보는 거다. 재심 역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인가. “재심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아나. 이게 왜 기각이고, 인용인지 이유를 재심 청구자에게 알려주질 않는다. 서울·경기 지역은 재심처분 이유에 대한 문구가 고정돼 있다. 거의 비슷한 포맷이다. <사건 경위와 내용,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관계, 피해학생의 피해정도 등 제반사정을 종합해 볼 때 위 처분은 적절하다고 판단되므로 재심청구를 기각한다/부적절하다 판단되므로 재심청구를 인용한다>라고 쓴다. 그러면 피해자 부모든 가해자 부모든 재심 결과가 납득이 안 된다. ‘왜’가 빠져 있으니 아무도 납득을 못한다. 하다못해 판결문에 적시되는 처분 이유의 절반만 적어줘도 납득을 한다. 그런데 재심 이유가 너무 불친절하다. 그러면 이유를 찾으려고 행심이든 소송이든 가는 거다.” 가해재심이든 피해재심이든 단일화하고, 이유 적시가 충분해야 하겠다. “그러려면 학폭위에서 처벌되는 사건 수가 적어져야 한다. 그래서 전단계로 숙려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의 4분의 1 정도인 경미한 수준의 것은 숙려제로 해결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건의 절대수를 줄여야 된다. 무리하게 모든 사건을 학폭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정말 심각한 상황을 정밀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행정사 입장에서는 일거리가 줄어들 수 있는 이야기다. “일거리가 줄 수도 있겠지만 부모님들이나 사회적으로 봤을 때 이게 과연 옳은지를 먼저 봐야 하지 않을까.” 재심에 이유를 쓴다고 불복률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왜 불복이 많은지 아나. 너무 세게 나오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사례 외에 일반적 사례를 봐야 한다. 현장에서는 한 대만 때려도 강제전학이고, 지나가다가 처다봐도 전학이다. 그러면 불복재심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나는 가해·피해사건을 모두 맡아왔다. 나는 잘못했지만 벌을 안 받겠다는 학생은 1000명 중 한 명이다. 행위에 비해 처벌이 과하게 나오니까 그걸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오는 것이다. 1000명 중 한 명을 기준으로 잡으면 나머지 999명이 피해를 보게 된다. 학폭법은 절대 한 대만 때려도 가혹하게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교육과 선도의 법이다. 징벌 위주의 법이 아니다.”
- [학교폭력을 말하다](1) 피해자의 입으로 학교폭력을 말하다 - 화해보다 학폭위, 삭막해진 교실(2018. 12. 24 14:12)
- 2018. 12. 24 14:12 사회
- ㆍ학교폭력 예방교육 통해 초등 1학년도 스스럼없이 무조건 신고 먼저 떠올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담임교사에게 조르르 달려와 말한다. “선생님, 지금 복도에서 학교폭력이 일어나고 있어요!” 교사는 급히 복도로 달려나간다. 그곳에는 1학년 아이 둘이 말다툼을 하며 서로를 밀치고 있었다. 담임을 본 아이들이 “선생님, 이거 학폭으로 신고해야죠?”라고 묻는다. 교사는 “일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며 아이들을 교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옆에서 싸움을 바라봤던 아이들은 “너 이거 ○○가 신고하면 학폭위 열리는 거야”라고 말을 거들었다. 학교폭력을 형상화한 그림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2018년 현재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친구와의 우정, 화해보다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를 먼저 익히고 있다. 매년 학기 초에 실시하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의 효과다. 일선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는 매년 학기 초마다 학교폭력 전담 경찰관이나 외부기관 강사를 통해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한다. 학년이나 연령대에 따라 교육 내용은 다르지만 기본 골자는 ‘친구를 괴롭히는 모든 행위는 학교폭력이고, 학교폭력을 겪었거나 목격했을 경우 법에 따라 지체없이 신고를 해 가해자가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격한 행위는 학교폭력으로 규정 “2학년 첫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자, 앞으로 우리 반이 어떤 반이 됐으면 좋은지 각자 이야기해볼까요?’라고 물었다. 사이좋게 지내는 반을 만든다거나 재미있는 반을 만든다거나 하는 대답을 기대했지만 아이들이 내뱉는 말은 ‘학교폭력이 없는 교실이오!’, ‘성폭력이 없는 교실이오!’였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저 어린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워왔길래 학교폭력,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다.”(경기도 A초등학교 교사) 실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모아놓고 실시하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과격한’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학교폭력을 당했거나 목격했을 때는 무조건 신고하도록 가르친다. 친구들 간에 대화를 하거나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는 등의 일련의 행위들이 개입할 수 없도록 하는 셈이다. 교육현장에서 현재 활용하고 있는 저학년용(1~4학년) 학교폭력 예방교육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친구를 놀리거나, 친구가 부끄러워하는 점을 퍼트리는 행동, 무엇인가 강제로 시키는 행동 등 직접적 가해행위나 친구를 괴롭히는 동안 망을 보는 행동, 친구를 놀리고 골탕먹일 때 함께하는 행동, 다른 친구가 맞는 것을 못본 척하는 행동 등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행위들에 대해서도 학교폭력으로 규정짓는다. 문제는 이후의 과정들에 대한 지침이다. 친구를 아프게 했다면 받게 되는 벌의 종류를 설명하면서 학폭위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각호처분을 나열한다. 괴롭힌 친구에게 사과해야 해요(1호), 학교나 밖에서 봉사활동을 해요(3·4호),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될 수 있어요(6호), 다른 반으로 옮겨가야 해요(7호), 전학을 가게 돼요(8호), 심리치료를 받아요(5호), 특별교육을 받게 돼요(5호) 등이다. 이어 ‘학교폭력법에서 정하고 있는 이러한 내용들은 벌이기도 하지만 화를 바르게 표현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한 치료이기도 해요’라고 설명한다. 폭행을 당했을 경우 그날의 일을 꼭 일기에 기록해 증거를 남기는 등의 방법도 아이들이 예방교육을 통해 배우는 대처법이다. 경기도의 B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는 “심지어 저학년 담임들조차도 아이들에게 ‘서로 오해한 게 있으면 대화로 풀어보자’라든가 ‘친구들끼리는 싸울 수도 있지. 먼저 잘못한 친구가 사과하고 서로 안아주자’ 등의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에 2학년 남학생들이 서로 밀치고 때리는 싸움이 있었는데 당시 담임이 아이들을 따로 불러 혼내고 서로 사과하도록 했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좀 더 맞은 아이 부모가 학교장에게 직접 항의를 하고, 담임교체를 요구했다”면서 “아무리 교사가 자율적으로 아이들 간의 갈등을 대화로 풀고 화해를 유도해도 교육부 지침이나 법이 교사들에게 재량을 단 하나도 주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용(사진 위), 중·고등학생용(사진 아래) 학교폭력예방교육자료집. 자료집에는 대화 등을 통한 갈등 해결에 대한 언급이 없다. / 자료집 화면 중학교에서 실시하는 학교폭력 예방교육 상황도 신고와 처벌 위주로 이뤄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 C중학교 교사는 “모든 갈등을 대화와 화해로 푸는 것은 불가능하고, 중학생 정도만 돼도 학교폭력 수준이 성인들 못지않을 정도로 잔인하고 지속적이기 때문에 좀 더 강하게 가르칠 필요는 있지만 너무 교육이 사법처리시스템 위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신고 전 증거 확보 방법 알려줘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활용하고 있는 학교폭력 예방교육 자료를 살펴보면 아이들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고, 주변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등의 방법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일단 갈등이 빚어졌을 경우 무조건 신고를 하도록 유도하고 증거 확보를 충실히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메일, 채팅 내용, 게시판 글 등 화면 캡처나 출력을 통해 사이버 자료를 확보하거나 몸에든 멍 등을 촬영한 사진자료, 상대방의 말을 녹음한 녹취자료, 폭력상황을 육하원칙에 따라 기록한 진술서 기록 등을 확보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현재 중학생 대상 학폭 예방교육이다. 학폭 예방교육의 결과물은 매년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이뤄지는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도 알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8월 29일 발표한 2018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교 4학년~고교생 전체 응답자(응답률 92.3%) 가운데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1.8%(1만1425명)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0.5%포인트(전년 1.3%), 인원수로는 2320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초등학생 피해 응답률은 4%(8209명)로 중학교(1%·2079명), 고등학교(0.5%·1104명)보다 월등히 많았다. 통계대로 해석한다면 중학생의 4배, 고등학생의 8배에 달하는 학교폭력이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천경호 성남서초등학교 교사(리질리언스 저자)는 “통계는 착시현상이다”라고 했다. 천 교사는 “학교폭력으로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인 고의성, 지속성, 심각성 면에서 봤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일단 대부분의 폭력에 고의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아이는 그 아이 성향 자체가 그런 것이지 고의적으로 특정한 한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다”라며 “이는 학교폭력으로 처벌할 영역이 아니라 교사가 교정을 해줘야 하는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초등학교의 학교폭력 피해신고가 중·고등학교의 4~8배가 된다고 해서 그만큼 학교폭력이 초등학교 교실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결국 아이들의 모든 행동을 폭력으로 인식하게 하는 교육을 바꿔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전1
2
다음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