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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은메달 따고도 우는 한국선수단(2007. 05. 29)
- 2007. 05. 29 사회
- 승자독식의 나라 | 스포츠·대중문화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1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잖아요.’ 오래전 광고지만 이 비정상적인 카피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와 같은 1등 독식, 1등 지상주의가 가장 판치는 곳이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의 세계다. 올림픽에서는 은메달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금메달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등수에서 밀린다. 그동안 올림픽 결승전에서 분패한 한국선수단이 통곡하는 모습은 외국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동메달을 받고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다른 나라 선수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부끄럽고 안타까운 모습. 외국인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말한다. “은메달도 소중한데 왜들 저러지?” 이는 1등만 살아남는다는 인식이 지나치게 확산된 결과이며, 금메달 수상자에게 주는 엄청난 특혜 때문이다. 특히 1등의 이미지가 확고해지면 얼마간의 부침은 이 이미지를 깨뜨리지 못하고 특혜를 유지시킨다. 그 예는 최근 빙상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피겨스케이팅의 ‘공주’로 통하는 김연아(17)와 스피드스케이팅의 이강석(23). 두 선수는 지난 3월 나란히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와 세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 참가해 각각 동메달과 금메달을 땄다. 이강석은 남자 5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지만 지난해부터 ‘국민여동생’ 신드롬을 이어온 김연아의 그늘에 가리고 말았다. 최근엔 이 두 선수에 대한 대한빙상연맹의 편파 지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연맹이 김연아에게 지원한 금액은 총 1억1350만 원에 달했고, 올해에도 지난 3월까지 2000만 원을 지원했다. 또한 이번 캐나다 전지훈련 후에 5000만 원을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에 반해 이강석에 대한 올해 지원은 무일푼이다. “세계신기록을 세워도 여전히 나는 찬밥”이라는 그의 볼멘소리는 당연했다. “한국을 열광시키고 국민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어 특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빙상여맹이 밝힌 김연아는 최근 매니지먼트사를 IB스포츠로 바꾸면서 계약금 5억 원을 받았고, 앞으로 광고를 통해 스폰서를 많이 확보할 전망이다. 체육계나 광고계나 1등 독식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스포츠계의 1등은 그 이미지 탓에 피곤하기도 하다. 지난 3일 끝난 제41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고교야구 스타 서울고 이형종(18) 투수가 그 예다. 서울고가 9-8로 앞선 9회 말, 동점타를 허용한 직후부터 울기 시작한 이형종은 끝내기 안타를 맞기까지 계속 울먹이며 공을 던졌고, 비록 패전투수가 됐지만 TV 화면에 비친 그의 모습은 야구팬과 시청자들에겐 감동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물은 왼쪽 골반뼈 부상으로 인한 통증과 에이스로서의 책임감, 그로 인한 부담감이 한데 섞인 통곡이었다. 잠실학생수영장에서 훈련을 했던 수영 영웅 박태환이 수시로 찾아오는 방송 카메라와 팬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훈련지를 경기 성남의 국군체육부대로 옮긴 것이나, 승률 5할 아래로 떨어져 ‘에이스’ 이미지를 구기고 있는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의 선동렬 감독이 인터뷰를 피하는 것도 1등에 몰려 있는 관심의 반증이다. 승자독식의 구조는 방송(연예)에서도 확고하다. 브라운관에서는 아침부터 심야까지 인기와 관심을 독점한 스타들이 종횡무진한다. 승자 독식의 구조는 방송(연예)에서도 확실하게 구축되고 있다. 지상파, 위성, 케이블TV는 아침부터 심야시간까지 인기와 관심을 독점한 스타들이 종횡무진한다. 대중문화전문가 배국남씨는 “소수 스타들의 브라운관 독점 속에 다수 들러리들의 처절한 생존 몸부림이 우스꽝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곳이 바로 방송”이라고 지적한다. 한 연기자가 연기의 특색과 차별화 없이 방송 3사의 드라마에 얼굴을 내미는 것이나, 영화의 작품성과 완성도와 상관없이 스타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오락·교양 프로그램들이 앞다투어 출연 스타를 불러 광고와 홍보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 모두 1등이나 승자에 대한 특혜라는 지적이다. “지나친 스타 공화국의 폐해는 독창성과 실험성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려 방송을 획일화하고, 방송 프로그램과 대중문화의 하향 평준화를 가속화한다”고 비판한 그는 “무엇보다 실력 있고 다양한 재능을 가진 연예인(지망생)들의 대중문화계 진입을 봉쇄하는 불공정의 극치”라고 혹평했다. 결국 수요층인 대중들에게는 질 낮은 대중문화의 소비 강요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림픽에는 금, 은, 동이 있고, 각종 경기에도 1, 2, 3등이 있다. 또한 연말 각종 연예대상은 다양한 분야를 만들어 많은 수상자가 나오도록 장치해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금메달과 1등, 대상에만 집중한다. 규칙을 어긴 선수는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퇴장을 당하는 것이 스포츠이지만, 현실에서는 1등에게 ‘봐주기’ 등의 특혜를 주고 있는 것이다.
- 표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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