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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가 인기라지만 ‘슬픈 한국어교원’(2020. 10. 16 15:48)
- 2020. 10. 16 15:48 문화/과학
- 오롯이.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라는 뜻의 부사다. 강원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최혜영씨는 ‘오롯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4년차 강사다. “학생들이 다른 나라에서 홀로 공부하고 있다는 자체가, 오롯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수업 내내 마스크를 쓰지만 한국어를 배우려는 반짝이는 눈은 볼 수 있다. shutterstock 학생들 앞에선 웃기는 사람이 된다. 수업을 할 땐 잡생각이 나지 않는다. 학생들만 보면 배시시 웃게 된다. 가끔 스스로 이상하고 생각한다. 지금 일하는 학교에서 해고당한 경험이 있고, 소송도 진행 중인데 일할 때만큼은 그저 즐겁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대다수 대학 부설기관의 한국어 수업은 봄·여름·가을·겨울 4학기로 진행된다. 학기 사이에는 2~3주의 방학이 있다. 최씨는 2016년 9월 국문학 학위와 2년 이상의 한국어 교육 경력을 인정받아 강의를 시작했다. 2018년 11월까지 매 학기 8회에 걸쳐 계약을 갱신했다. 3개월마다 계약하는 식이었다. 2018년 11월 말 가을학기가 끝났을 때였다. 최씨는 동료 시간강사 1명과 함께 해고됐다. 그해 가을학기 중반, 강사실 게시판에 겨울학기 강사 모집 공고가 붙었다. 강사가 부족할 때만 신규 강사를 채용하던 이전과는 달랐다. 강의 중인 모든 강사가 재채용 대상이 됐다. 최씨가 처음 들어올 당시 필수조건은 1) 관련 전공 석사 수료 2) 한국어교원 자격증 3급 이상 또는 한국어 교육 경력 2년 이상이었다. 재채용 공고에선 1)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 2) 한국어원 3급 이상 자격증 소지자로 바뀌었다. 학교 측은 2017년 5월부터 한국어 강사 채용 공고를 낼 때 바뀐 자격기준(운영세칙)을 명시했다. 최씨는 자격증이 없었지만 이후에도 6차례 계약을 갱신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격 미비를 이유로 계약을 하지 못했다. 학교 측이 운영세칙 개정을 알리고 유예기간을 뒀다면 충분히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터였다. 최씨는 “이 내용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은 채 공고를 내고, 기존 강사 모두를 채용과정에 포함시킨 것은 필요에 따라 사용하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한 처사”라고 했다. 최씨보다 두달 앞서 한 전임강사 A씨가 해고됐다. 지난해 2월에도 한명이 해고됐다. 강사들은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체신청을 했고, 지방노동위에 이어 중앙노동위까지 강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학교 측이 최씨 등 3명에 대한 중앙노동위의 부당해고 판정을 취소해달라고 낸 행정소송 1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판부는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노동위의 복직명령에 따라 강사들은 지난해 차례로 복직했다. 하지만 A씨는 지난 8월 또다시 해고됐다. 학교 측은 4년 전 국제어학원 채용과정을 문제 삼았다.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은 “권한이 있는 교수 및 타 행정직원은 낮은 수준의 징계에 그쳤다”며 해고가 부당하다고 보고 있다. 노조는 이런 상황을 초래한 배경으로 ‘상명하복식의 대학 사회 구조’를 꼽았다. “어학 교육기관의 관리자들은 한국어교원들을 대학원에서 가르친 사제 관계인 경우가 많고, 이것이 부당한 지시를 가능케 하는 배경이 된다. 또한 한국어 교육을 국위 선양의 차원에서만 다루고 실제로 교육에 임하는 이들의 삶의 질을 내실화하는 데에 무관심했던 정부의 책임이 크다.” 574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10월 8일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한국어교원 조합원들이 ‘한국어교원의 사회적 지위 보장·처우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여전히 학교 측은 ‘무기계약직’이라는 노동위 판단을 받은 최씨에게 3개월짜리 단기계약서를 내밀고 있다. 그는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고 있다. 한국어교원의 자격요건은 국어기본법령에 명시돼 있다. 한국어교원 자격증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급한다. 2011년 고용노동부는 “대학 부설 어학당 강사는 교내·외 수강생 모두를 학습대상으로 하여 정규 교육과정 외의 과목을 강의하므로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7조의 시간강사로 보기 어렵다”며 기간제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로 해석했다. 지난해 시행된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대상도 아니다. 학교마다 처우는 제각각이다. 수년간 계약서 한장 쓰지 않는가 하면, 4대 보험과 퇴직금 혜택을 못 받는 경우도 많다. 얼마나 수업을 하느냐에 따라 손에 쥐는 강의료는 다르다. 회의, 수업준비, 각종 행정업무와 생활민원 처리 등을 제외한 딱 수업시간만큼의 금액이다. 강원대 한국어 강사들의 시급은 3만원대. 최씨는 현재 주당 10시간을 맡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많아야 14시간을 맡았다. “선생님 힘내세요” “너, 교수야?” 경희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15년차 강사 문선미씨는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다. 하지만 교원은 아니다. “그럼 직원이야?” 얼마 전까진 직원도 아니었다. 한동안 부모에게도 4대 보험과 퇴직금이 없다는 점을 이해시키기 어려웠다. “한국어 교육기관이 학교의 부속기관이고 입학할 학생들이 거쳐 가는 곳 정도로 인식되다 보니 강사들의 처우에 관한 고민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규모가 커진 거죠. (한국어 보급을) 국책사업으로까지 하고 있으면 틀을 제대로 갖춰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 1999년 문씨는 국문과 4학년생이었다. 한 강사가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을 들려줬다. ‘나도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어떻게 하면 그 일을 할 수 있냐고 묻는 용기는 내지 못했다. 이후 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다. 2003년 태국으로 한국어 교육봉사를 가게 됐다. “보습학원에서 일할 땐 입시로 지친 학생들을 다독여 수업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태국에 갔을 때만 해도 한국어가 인기 언어가 아니었는데도, 학생들이 굉장히 적극적이고 눈들이 반짝거렸어요. 어설픈 말로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게 굉장한 힘이었죠.” 2005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경희대에서 한국어 수업을 시작했다. 문씨는 지금까지 계약서 한장 없이 일했다. 학교 측은 2018년 10월에서야 강의계약서를 내밀었다. 하지만 11개월짜리였다(12개월 넘게 일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강사들은 강사모임을 만들었고 대학노조에 가입했다. 학내에서 선전전을 벌이며 문제 제기에 나섰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당시 문씨는 ‘초급 2’ 수업을 맡고 있었다. ‘비가 와서 우산을 썼어요’, ‘배가 아파서 약국에 가요’ 정도의 말을 겨우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문씨가 선전전을 벌이는 모습을 본 학생이 애써 유인물을 이해하고는 “힘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경희대 한국어 강사들은 전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기타교원’으로 사번도 부여받았다. 15년 전부터 일했지만 공식 임용일은 2020년 5월 1일. 코로나19로 학생 수가 준 상태에서 노사협의를 하다 보니 ‘기본시간’이 8시간으로 내려가 버렸다. 기본시간은 경력에 맞는 시급을 받는 시수다. 최씨가 받는 시급이 4만원이라면, 8시간까지는 4만원을 받되 나머지 시간은 시간당 3만5000원으로 계산하는 식이다. 학교 측과 협의가 길어지며 아직 계약서는 작성하지 못했다. 서울대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육센터의 교실에 ‘한국어로 이야기합시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왼쪽). 서울대 한국어 강사 이창용씨가 수업을 마치며 학생들에게 받은 쪽지 / 노도현 기자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 그는 “저희만 무기계약직 전환이 된다고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희대나 서울대나 연세대나 규모가 큰 기관이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작은 기관으로 가면 말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입을 열었다가는 그야말로 목이 날아가니까요. 말로만 ‘한류전도사’라고 떠들지 말고 모두가 어느 정도 지위를 인정받고 노고를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울대 언어교육원은 업계에서 그나마 대우가 좋은 곳으로 꼽힌다. 지난 3월 한국어 강사 총 75명 중 시간강사로 일했던 36명이 무기계약 전환을 완료했다. 오랜 기간 서울대 한국어 강사들은 무기계약직 강사와 시간강사 두 층위로 나눠져 있었다. 시간강사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시수를 15시간 미만으로 맞추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한국어 강사 전원이 힘을 모아 학교 측에 처우 개선을 요구해 결실을 보았다. 하지만 교원이 아닌 자체직원 신분이다. 서울대 한국어 강사 이창용씨는 ‘상전벽해’를 실감한다. 2003년 타학교에서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어 교육은 굉장히 특수한, 소수의 이야기였다. 활용할 수 있는 수업 도구가 칠판과 자석, 그림 자료뿐이었다. 잡지에서 물건 이미지를 잘라서 수업에 쓰곤 했다. 이색직업이라며 한국어 강사를 취재하러 오는 취재진도 기억한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타국에 있는 학생들과도 화상으로 수업한다. 그는 “이런 경험은 생전 처음”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화상수업에서) ‘지금 몇시예요?’라고 물으면 답이 그렇게 다채로울 수가 없어요. 우리는 아침 10~11시인데, 유럽에선 새벽 3시라고 하고, 미국에선 밤 10시라고 하고, 중국에선 아침 9시라고 하죠.” 강사들 사이에선 ‘1급 글씨 6급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기초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철저한 준비없이 시작한 온라인수업이 학력 저하를 불러올까 걱정도 한다. 동료들과 ‘우리의 적이 구글이냐’, ‘파파고(AI 번역기)랑 싸워야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10년 뒤 한국어 교육계에 어떤 변화가 올지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걸 돌이켜보면 대학사회, 더 넓게는 한국사회에 들어온 외국인들을 가르치는 건 분명 사회적 요구와 필요, 존재가치가 있는 일이에요. 대학이 됐든, 다문화센터가 됐든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위에 대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연세대 한국어 강사 최수근씨는 “지난 1년간 한걸음 앞으로 나갔다는 생각은 든다”고 했다. 1년 전, 일부 대학의 한국어 강사들이 처우 개선 요구를 하기 전까지 강사 커뮤니티에는 주로 어휘나 문법, 어딜 취직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올라왔다. 지금은 한국어 교육 업계가 건강한가, 전망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보인다. 연세대 한국어 강사들은 지난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최씨는 “연세대는 수습 강사의 시급이 2만5000원으로 낮은 편”이라고 했다. 최씨는 “단순히 특정 학교만의,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어떤 단어를 어떻게 골라서 말할지는 훈련을 받아야 할 영역”이라며 “하지만 한국어교육기관 자체가 우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법적 정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일본에서 한국어 가르친 ‘외국어 달인’ 미국인(2018. 05. 21 16:08)
- 2018. 05. 21 16:08 문화/과학
-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56)의 삶은 외국어 탐구와 궤를 같이한다. 고교 시절 배웠던 일본어를 시작으로 그는 한국어, 스페인어, 독일어, 불어를 섭렵했다. 라틴어와 몽골어, 북미대륙 선주민 언어인 루슈트시드까지 공부한 데 이어 지금은 에스페란토어를 배우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맹자>를 읽으며 한자를 깨우쳤고, 시조를 통해 중세 한국어도 익혔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영어만큼이나 편하게 읽고 쓰고 말한다. 일본 대학에 머무르면서 한국어 강좌를 개설해 가르치는, 즉 미국인이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특이한 이력도 쌓았다. 2008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임용됐던 그는 한국 대학에서 최초로 ‘국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라는 기록을 세우며 주목 받았다. 언론매체에 활발하게 칼럼을 기고했고, 서울 서촌에 한옥을 짓고 살며 서촌문화운동을 이끌기도 했던 그는 2014년 고향인 미국 미시간으로 돌아갔다. 지인들에게 '파 전'교수라고 불린다는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는 일본에 머무르던 1982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시모노세키에서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한 것이 한국과의 첫 인연이라고 말했다. / 우철훈 선임기자 한국어로 쓴 <외국어 전파담> 펴내 현재 독립학자(Independent Scholar)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외국어 전파담>(혜화1117)이라는 책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평생 언어를 공부하고 연구했던 그가 내놓은 대중교양서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외국어 전파 경로를 탐색하고 그 과정의 문화사적 맥락을 살펴보고 있다. 언어와 관련된 여느 책들이 서구의 사례 중심이라면 이 책에는 동양 언어권의 사례도 풍성히 녹아 있다. 근 28년간 일본과 한국에서 머물렀던 그의 경험, 관심사와 무관치 않다. 340쪽에 이르는 이 책은 한국어로 썼다. “처음엔 조금 더 편한 영어로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외국어를 바라보는 나의 생각을 한국의 독자들과 직접 교감하려면 한국어로 쓰는 것이 더 보람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특히 한국에는 영어를 배우느라 고생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과연 외국어는 무엇인지, 외국어를 학습한다는 것이 어떤 역사적 맥락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생각해볼 계기를 갖는 것이 외국어를 배우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는 2년 전에도 한국어로 쓴 책 2권을 내놨다. 서촌의 한옥에 살면서 한옥 보존활동을 했던 과정을 기록한 <서촌홀릭>, 그리고 그가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에 머무르며 정치와 사회를 들여다보고 해법을 고민했던 <미래시민의 조건>이다. ‘한국인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 사용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미래시민의 조건>은 흔히 볼 법한 외국인의 한국 관찰기가 아닌 묵직한 제언인 데다, 그의 특이하고 흥미로운 인생 이력이 엿보여 재미를 더해준다. 그는 “교수생활을 할 때는 강의 준비하고 일상에 매여 아무 것도 못하다 그만두고 나서야 책을 쓸 수 있었다”면서 “한국에 살 때보다 오히려 미국에 산 지난 3년간 틈틈이 더 많은 한국의 지방도시를 여행했다”고 말했다. 올해 56세인 그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외국에서 보냈다. 1990년대 초반에 아일랜드에서 언어학 박사과정을 공부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청·장년기의 대부분을 일본과 한국에서 보냈다. 1980년대에 고려대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1995년부터 13년간은 일본 교토, 구마모토, 가고시마 대학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쳤다. 한국과 일본의 경험, 여기에 미국의 변화까지 포착해 낸 진지한 성찰은 그의 글과 말에 일관되게 나타난다. “2014년 미시간의 앤아버로 돌아갔을 때가 28년 만의 귀국이었어요. 이방인 아닌 이방인 같았지요. 가장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 것은 ‘양극화’였습니다. 물론 전세계적인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풍요롭고 탄탄한 중산층이 떠받치고 있던 1980년대 초반의 기억을 갖고 떠나왔던 제게 현재 미국의 양극화는 다른 나라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졌어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절반 가까이가 흑인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집값 때문에 어딘가로 내몰린 거지요. 흑인과 백인이 함께 섞여 수업 받았던 현실이 ‘이상’이 되어가고 있는 거지요.” 하루에 3개국 언어로 살아 그가 한국어와 일본어를 영어만큼이나 익숙하게 유지하는 비결은 하루를 3개 국어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미국과 한국, 일본의 언론사 사이트에 접속해 뉴스를 보는 것이다. 단순히 뉴스를 읽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안을 놓고 진보지와 보수지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논조까지 꼼꼼히 비교한다. 웬만한 외국어를 섭렵했음에도 그의 갈증은 끝이 없다. 현재의 계획표에는 러시아어와 중국어가 들어 있다. 이번 책(외국어 전파담)을 준비하면서 러시아어와 중국어로 된 문헌을 발견하게 됐고, 이를 직접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언어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과 흥미가 그를 지금까지 이끌어 온 원동력인 셈이다. ‘외국어 도사’ ‘외국어 달인’으로 불려온 그가 지금껏 수도 없이 들어왔을 법한, 뻔하면서도 답답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영어를, 외국어를 공부해야 하느냐고. “엄밀히 말해 저에겐 일본어도, 한국어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거나 강제성이 있는 과목이 전혀 아니었어요. 그저 흥미롭고 재미있고 궁금한 대상이었지요. 그게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됐습니다. 재미와 호기심을 갖기만 한다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누구나 찾아낼 수 있거든요. 스펙을 위해,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강제로 해야 하는 공부’가 되다보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거지요.” 그가 책에서 결론적으로 강조한 부분도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다. 인공지능이 발달해 글과 말을 실시간으로 번역하는 시대가 온다면 지금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매달리는, 도구로서의 영어 습득은 필요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는 “도구가 아닌,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평화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사회적 자본으로 외국어를 대한다면 공부하는 방식이나 자세도 달라질 것”이라고 조언한다. 학습자 입장에서 갖는 고민, 그리고 오랜 교육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외국어 교수법이나 학습법에 관한 책은 차근히 준비하고 있다. 이에 앞서 그는 도시와 공동체, 젠트리피케이션 등 도시 재생과 미래를 다룬 책을 집필하고 있다. 서울과 더블린, 교토 등 그의 삶의 현장이었던 도시의 기록으로 한국의 독자들을 다시 만날 계획이다.
- [북리뷰]한국어 재탄생 수난과 투쟁(2015. 10. 12 15:58)
- 2015. 10. 12 15:58 문화/과학
- 우리말의 탄생 최경봉 지음·책과함께·1만4900원 1945년 9월 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물러난 후라 경성역 창고에는 갈 곳이 없는 화물이 많이 쌓여 있었다. 화물을 정리하는 인부들 사이에서 이를 점검하던 역장은 수취인이 고등법원으로 된 상자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내용물을 살펴본 역장은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왔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사람들이 찾던 것이 바로 이것이야.’ 1929년부터 시작된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의 결실인 원고지 2만6500여장 분량의 조선어사전 원고가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당한 지 3년 만에, 해방 후 사전 원고의 행방을 수소문한 지 20여일 만에 조선어학회의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37쪽) 이라는 제목은 언뜻 들으면 형용모순 같다. ‘우리말’은 따로 ‘탄생’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냥 ‘우리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책의 부제인 ‘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를 보면, 그리고 위에서 인용된 본문의 첫 문단을 읽으면, 우리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다. 이 책은 국민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한국어를 ‘모국어’로 재정립해나가던 바로 그 과정의 이야기인 것이다. 1894년 조선 정부는 칙령 제1호 공문식에서 한글을 공식 언어로 선포했다. ‘문자’를 사용하는 식자층은 고전 한문을 표준어로 사용하고 있었고, 사실상 지배계급 역시 필요에 따라 한글을 이용해 한국어를 소리대로 적고 있긴 했지만 그 언어에 어떤 공식적 지위와 권능을 부여하지는 않고 있었다.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으로 간판을 바꾸고 신장 개업을 하면서, 근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한국어를 공식어로 선언한 것은 그 중 하나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문제는 그때까지 조선의 식자층이 한국어 그 자체를 그다지 진지한 연구와 학습의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국문’이 된 입말은 어제까지만 해도 ‘언문’으로 불리던 백성들의 말이었을 뿐이다. 은 바로 그 ‘국문’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수많은 학자들과, 그들이 겪었던 내부 갈등 및 외부로부터의 탄압 등을 다각도에서 조망하는 책이다. 우리말에 규범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어로 한국어를 설명하는 사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한제국에는 그런 국책사업을 추진할 만한 힘이 없었고, 일제는 자신들의 식민지배의 필요성 때문에 한국어 연구를 어느 정도 방관하다가, 중일전쟁 발발 후로는 철저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국어사전인 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처절한 투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한글에 대한 신화적 열광을 떨쳐내는 데 도움을 준다. 훈민정음을 만든 것은 세종대왕이지만, 그의 발명품을 이용해 어떻게 한국어를 담아내고 또 다듬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의와 혼란이 있었다. 한글을 알파벳처럼 풀어서 쓰자는 급진적인 논의가 가능했던, 말하자면 우리말의 가소성이 큰 시점을 다각도에서 조망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말이 지금의 이 모습인 것에는 그 어떤 절대적 필연성도 없다. 다만 수많은 학자와 언어 대중이 고심하고 합심해 이루어 낸 결과물일 따름이다. 한국어는 근대적 민족국가와 함께 탄생하였고, 지금도 계속 재탄생하고 있는, 살아있는 언어인 것이다.
- 북리뷰
- 알면 알수록 더 까다로운 한국어(2015. 02. 17 10:37)
- 2015. 02. 17 10:37 사회
- ㆍ외국인들 발음, 어문과 문법, 표기, 한자어 등 어려움 호소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TV를 틀면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외국인이 매일같이 등장한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교 어학당도 해마다 늘어 대학의 주수입원이 됐다. 대표적인 한국어 시험인 한국어능력시험(TOPIK)의 지난해 지원자는 연인원 20만8448명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비슷한 시기인 2013년 치러진 일본어능력시험(JLPT)은 65만882명이었다. 1900년대 근대화 초기부터 보급에 나선 일본어의 3분의 1에 달했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유학하는 20대가 늘고, 이민과 결혼을 통해 한국에 사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한국어를 배우기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가 터져나오고 있다. 우선 한국어는 한국에 와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4년 TOPIK 응시자 중 해외 지원자가 9만7122명으로 46.6%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응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어 시험인 JLPT의 해외 지원자 78.5%(51만734명)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진다. 지난 11일 경기도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이주 외국인들. 평일에는 주부와 학생이 많고 주말엔 직장인 남성이 많이 온다. | 이상훈 선임기자 토픽 응시자, 중국 일본 베트남 대만 순 결국 한국문화에 매력을 느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보다 생활을 위해 배우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삶의 터전을 바꾼 이주노동자이거나 한국어가 미숙한 상태에서 유학 온 학생이다. 초급이 많은 이유다. 한국어 학습자는 중국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2014년 TOPIK 국가별 지원자는 중국 50.3%(4만8846명), 일본 17.0%(1만6546명), 베트남 6.36%(6175명), 대만 5.48%(5316명)였다. 한국 응시자의 국적 분포도 해외 응시자 분포와 비슷하다. 따라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의 반수 이상이 중국인인 셈이다. 연세대 한국어학당 김보연 강사는 “학기마다 다르지만 최근 2~3년 사이에는 중국 학생이 60~70%이고, 다음이 일본 학생이며, 그 다음은 가지각색”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 김옥란 강사는 “이곳에선 주로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가 많은데 중국인이 50% 이상이다. 그 외에는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 다양하며 특정지역 난민들이 생기면 일시적으로 그 나라 사람이 늘기도 한다”고 말했다. 외국어로서 한국어는 어떨까. 우선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려면 어느 정도 공부가 필요한지 알아보자.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황호덕 교수는 “국내외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어 어휘를 2000여개 정도 습득하면 일상 대화 80%를 이해한다. 다만 95% 이상 의사소통이 되려면 4만5000여개의 어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어느 나라 말이든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단어는 별로 많지 않은데, 이 가운데서도 한국어는 2000개 정도이면 된다. 하지만 노동자나 유학생 모두 한글을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김옥란 강사는 “이주노동자들은 직장 일로 피곤해서 수업에 참여하기가 어렵고 공장에서 쓰는 말만 계속 쓰면 당장은 생활이 된다. 회사에서 특별히 시간을 주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들 가운데는 평생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다. 한글이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글자인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대학 유학생의 경우 대학에서 덜렁 입학은 시켜놓고 별달리 교육하지 않는다. 황호덕 교수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들끼리만 있다가 돌아간다. 어렵게 한국에 온 젊은이들을 반한파로 만들어 돌려보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글을 배워도 의사소통이 쉽지만은 않다. 예외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일본인 유학생들은 택시를 타고 강남에 가자고 하면 한남동에 와 있는 경우가 한 번씩들은 있다고 한다. 요네다 무츠미 한일 통역사는 “한국어에도 악센트가 있기 때문이다. ‘강남’은 악센트가 뒤에 있고 ‘한남’은 앞에 있다. 거센소리·된소리 시옷·히읗이 나오면 소리가 올라간다. 하지만 이런 규칙에는 항상 예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발음에서부터 예외가 나타나기 시작해 조어·어법·문법까지 전반적으로 심각하게 나타난다. 가령 한국어 교재는 선어말어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앞말이 모음인지 여부에 따라 ‘ㅏ’ ‘ㅓ’가 정해지고 ㅂ 받침이 있으면 /ㅜ/소리가 첨가된다. ‘곱다’는 ‘고와’로 변하는데 ‘고맙다’는 ‘고마워’로 변하는 식이다. 어법과 문법은 더 심각하다. 국립국어원에서 잊을 만하면 비표준어를 표준어로 바뀌준다. 지난해에도 ‘삐치다’의 잘못인 ‘삐지다’ 등을 표준어로 인정해줬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 김보연 강사는 “한글은 영어를 비롯해 다른 언어에 비해 문법이 느슨하게 작동하고, 그래서 규칙보다는 맥락을 봐야만 한다”고 말했다. 김보연 강사는 “외국인들이 예외가 너무 많아 공부하기가 힘들면 ‘모든 게 킹 세종 때문’이라고들 한다”고 귀띔했다. 미묘한 능력 올리는 데 엄청난 노력 한국어를 더 어렵게 만드는 건 한자어의 존재다. 서양어 화자에게는 처음부터 난공불락의 벽이고, 한자권 학습자에게는 고급단계에서 오히려 장벽이라고 한다. 고려대 국제어학원에서 공부 중인 재일동포 이계향씨는 “한국어를 읽거나 들으면 비슷한 일본 한자어가 떠오르면서 뜻을 유추할 수 있다. 아예 어원이 다른 영어와 비교하면 그 점에서 어휘를 빠르게 늘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실제로 순리·감동·인상·수량 등은 중국어와 발음이 비슷하고, 자유·평등·연애·개인·사회 등은 아예 일본어다. 이전에는 없던 개념을 일본이 번역해 만든 것이다. 한자권은 그래서 비슷한 말과 뜻이 많다. 하지만 이는 초급 수준의 얘기다. 중급 이상은 한자어의 간섭 때문에 오히려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요네다 통역사는 “두 개의 언어는 전혀 다른 체계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한자를 그대로 번역해서 뜻이 통한다고 믿으면 고급단계로는 진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감’이라는 표현은 일본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단어다. 그대로 전달하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네다 통역사는 “한국에 고급 일본어를 말하는 사람보다 고급 독일어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게 이런 이유다. 거꾸로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고급 한국어를 쓰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한국학 연구자들이다. 같은 한자어권이라도 중국·일본과 달리 체계적으로 학술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학·중국학 연구자들은 그 나라 언어로 토론하고 논문을 쓰지만 한국학 연구자들은 영어로 토론하고 논문을 낸다. 성균관대 황호덕 교수는 “학술 한국어를 배우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 연구공동체인 ‘수유너머’ 같은 곳에 나가 무작정 앉아 있는다. 인류학자처럼 한국어의 바다에 자신을 던져 실험하는 식”이라고 했다. 일본은 1961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함께 학술 일본어를 가르치는 요코하마 인터 유니버시티 프로그램(IUP)을 만들었고, 중국에선 1963년부터 칭화대가 ‘인터 유니버시티 센터(IUC)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국어는 생활언어부터 학술언어까지 모든 단계에서 배우기 어렵고, 이 어려운 언어를 배울 만한 환경도 갖춰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설 연휴에 외국인들이 나와 한국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극히 일부의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불편함이기도 하지만 다문화시대에 우리가 풀어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한국어 시험 풀어보세요 현재 가장 권위 있는 한국어 시험은 ‘토픽’(TOPIK·Test of Proficiency in Korean)으로 불리는 한국어능력시험이다.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한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재외동포와 외국인을 위한 시험이다. 한국대학에서 유학생을 선발할 때도 참조하는 자료이다. 외국인은 정원 제한이 없는 특별전형이어서 낮은 단계를 받아도 입학이 된다. 오히려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 사장들이 토픽 몇 급 이상이면 어느 정도 구사하는지 잘 알고 채용조건으로 제시할 때가 많다. 시험은 두 가지다. 초급인 TOPIK I은 일정 점수 이상이면 1~2급이고, 중급인 TOPIK II는 3~6급을 받는다. 6급이 최고 등급이다. 합격률은 I이 75%, II가 45%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역시 시험이어서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도 문제풀이를 해야 붙는다고 한다. 정답은 48번② 49번④ 50번④ 한국어 교재 읽어보세요 시중 대형서점에 나가면 각 대학 어학당에서 만든 한국어 교재가 있다. 기초 교재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돼 있기도 하다. 대체로는 한국어로 적혀 있다. 안산시 외국민주민센터 등에서는 법무부가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국립국어원과 함께 만든 교재를 쓴다. 잘 만들어져 이민자 대상 교재로 널리 쓰인다고 한다. 일명 사통으로 불리는 이 과정은 한국어·한국문화·한국사회 이해 등으로 구성돼 있고 국적 취득, 체류허가 등에서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가령 귀화 필기시험 및 면접심사가 면제된다. 구체적으로 공·사기관과 계약으로 일할 때 필요한 특정활동(E-7)비자나 일반 영주자격(F-5)비자 등으로 변경할 때 필요한 한국어 시험 점수 제출이 면제된다. 이 교재도 6단계로 돼 있다. 가 5단계까지 있고, 6단계는 인데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심도 깊게 공부한다. 한국에 대한 이해와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높아진다고 한다. 법무부 홈페이지에서 피디에프 파일을 무료로 다운 받을 수도 있다.
- [언더그라운드. 넷]뭔가 이상한 한국어 교재?(2014. 03. 11 16:28)
- 2014. 03. 11 16:28 사회
- “사장뉨, 여기 국밥 두 게이 주쉐요.” 한 사진을 본 누리꾼 반응이다. 3월 초,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는 ‘뭔가 이상한 한국어 교재’라는 제목의 사진이 유포되었다. 사진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쓰는 한국말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불고기(bulgogi), 김밥(kimbap), 떡볶이(tteokpokki) 등은 별 무리 없어 보인다. 그런데 수량(Quantity)이 문제다. 하나랑(hana rang)은 “한 개랑”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런데 두 개, 세 개, 네 개… 등으로 나가는 숫자의 영어 발음이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do gay, say gay, nay gay…. 두 게이? 세이 게이? 3월 초 인터넷에서 ‘뭔가 이상한 한국어 교재’라는 제목으로 화제를 모은 사진.| 뽐뿌 누리꾼이 이 영문표기에 주목한 것은 발음에 섞인 동성애코드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누리꾼 반응을 보면 이 코너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동성애 포르노 스타 빌리 헤링턴(875호 ‘언더그라운드.넷’ 코너 참조) 사진이나 각종 동성애 관련 농담을 올려놓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뭔가 장난이 들어간 것 아닌가도 싶다. 정말 저 교재는 실존하는 걸까. 약간의 단서를 바탕으로 찾아봤다. 드러난 사실. 한국어 교재가 아니라 ‘한국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잡지에 실린 정보’였다. 잡지 이름은 대구콤파스. 사진은 올해 3월호 63페이지에 게재된 내용이라는 것을 이 잡지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PDF 파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잡지의 성격은 독특했다. 대구·경북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지역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잡지다. 매달 약 7000~8000부를 찍어 대구·경북을 위주로 부산까지 배포되는 무료 잡지다. 3월 7일, 이 잡지의 한국어 콘텐츠를 담당하는 편집장 이유리씨(32)와 연락이 닿았다. 정말 ‘게이 코드 농담’을 섞기 위해 저렇게 표기한 걸까. “장난으로 한 것 아닙니다. 영어로 된 기사는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자신이 생활하면서 불편했던 것을 참고해서 직접 쓴 것인데, 대구지방 발음이 세서 알아듣기 힘들거든요.” 이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를테면 ‘CGV’는 영어로 된 고유명사지만 막상 외국인들이 택시에 타서 CGV에 가자고 하면 기사들이 끝의 V발음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 CGV를 표기할 때 일부러 ‘CGB’로 발음하라고 소개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덧붙였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 글로 표현해서 옳고 그른 것보다는 말로 흉내내기에 가까운 것을 찾다보니 gay를 쓰게 된 것입니다.” 원래 몇 ‘개’라고 할 때 영문표기를 하면 ‘gae’가 맞겠지만, 실제 외국인들이 발음하기는 힘들어 더 알아듣기 힘들게 나올 수도 있어 gay로 표기했다는 설명이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한 이야기다. 논란과 상관없이 지역에서 의사소통에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 그런 잡지를 만들었다니 대단하다. 무가지로 배포하는 만큼 잡지가 유지되려면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많은 도움을 줬으면 한다.
- 언더그라운드. 넷
- [사회]새로운 도약 꿈꾸는 ‘한국어 위키백과’(2012. 10. 09 14:35)
- 2012. 10. 09 14:35 사회
- ㆍ한국지부창립위, 10주년 맞아 위축된 네티즌 참여 활성화 시스템 마련 계획 위키미디어 한국지부 집행위원 위아람, 구은애, 김정민씨(왼쪽부터)는 “10주년 행사를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과 지식공유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 백철 기자 10월 11일로 한국어 위키백과(wikipedia)가 10주년을 맞는다. 지미 웨일스가 위키백과를 만든 지 1년 9개월 후인 2002년 10월 11일, 익명의 편집자가 한국어 위키백과 대문 페이지를 만들고 사라졌다. 이후 위키 시스템(누구나 제한 없이 수정할 수 있는 공동체 웹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들이 편집에 참여했고, 평범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현재 한국어 위키백과는 21만개 이상의 표제어가 등록된 온라인 백과사전이 됐다. 21만개 이상 표제어 등록 성과 위키백과는 표제어를 등록하고 내용을 고치는 데 자격제한이 없는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을 표방하고 있다. 또한 위키백과는 등재된 자료를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선스(CCL) 등 사용에 제한이 없는 저작권으로 배포하는 ‘자유로운 백과사전’이다. 오랫동안 정보공유 운동을 해온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42)는 “위키백과는 인터넷의 개방·공유·협업이라는 특성을 대표하는 운동으로 국제적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위키백과의 시초인 영어 위키백과에는 400만개 이상의 표제어가 등록돼 있다. 위키백과가 기존의 백과사전을 양적으로 압도하고, 질적으로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구문(舊文)이 됐다. 협업이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SNS 사용자들은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언론보다 먼저 상황을 전했다. 기존 언론이 지나쳐간 소식도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SNS의 협업은 인스턴트 정보, 1회성 정보에 한정된 경우가 많았다. 반면 위키백과는 ‘축적된 지식’을 협업으로 완성해 나가는 프로젝트다.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창고를 세워가자는 것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등록된 ‘이명박’ 항목을 살펴보자. 기존의 백과사전은 200자 원고지 6~7장 내외로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의 생애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반면 한국어 위키백과의 ‘이명박’ 항목은 분량면에서 원고지 130장이 넘을 뿐 아니라, BBK 주가조작 의혹사건 등 기존의 백과사전이 소개하지 않는 생애의 자세한 면까지 다루고 있다. 또한 위키백과에서는 이 대통령에 대한 찬반 양측의 평가와 이 대통령의 별명, 심지어 드라마에서 ‘이명박’ 역할을 연기한 배우의 이름까지 찾아볼 수 있다. 이 문서는 539명이 참가해 2179번 편집을 한 결과물이며, 지금도 계속 세부 내용이 바뀌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이 대통령을 설명하는 단일문서로 이보다 양과 질에서 뛰어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어 위키백과 사용자들은 ‘누군가 만들어준 정보’가 아닌 ‘내가 직접 쌓아가는 지식’을 만든다는 점에 끌렸다고 말한다. IT업계에 종사하는 김정민씨(30)는 2008년 촛불시위를 계기로 한국어 위키백과를 사용했다. 그는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해서 촛불시위, 광우병 문서에 올리곤 했다. 내가 올린 내용 중에서 불필요한 것은 없어지고 부족한 것은 채워지며 문서가 역동적으로 변하는 게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또다른 참가자 구은애씨(27)는 2007년 여성 취향 만화 항목을 등록하면서 한국어 위키백과에 빠졌다. 구씨는 “처음엔 내 블로그에만 글을 썼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나만 보면 아쉽고 많은 사람이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위키백과에도 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어 위키백과 참가자들은 지난 10년간 한국어 위키백과가 영어 위키백과만큼 성공적이진 못했다고 말한다. 시작부터 꾸준히 증가세이던 사용자 숫자는 2년 넘게 제자리걸음이다. ‘이명박’ 등 사회적 관심사인 항목을 제외하면 1~2명이 내용의 대부분을 채운 경우도 많다.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이 ‘열성적 소수의 백과사전’으로 고착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이들은 직접 나섰다. 10월 13일, 서울 강남 코엑스 컨퍼런스룸 317호에서 위키미디어 재단(지미 웨일스가 위키백과를 비롯한 협업 프로젝트를 총괄하기 위해 만든 비영리재단) 한국지부 창립준비회(이하 한국지부)가 한국어 위키백과 10주년 축하 모임을 개최한다. 한국지부에서 위키백과 등 협업 프로젝트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었다. 독일 등 해외의 위키미디어 지부도 이런 ‘위키스러운’ 방식으로 탄생했다. 위키백과 알리는 강사 양성 등 목표 한국지부 활동가들은 사람들이 저절로 위키백과에 참가하길 기다릴 순 없다고 말한다. 한국지부 집행위원장을 맡은 류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39)은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에 비해 지난 10년간 한국어 위키백과의 성장이 만족스럽진 않다”며 “그동안 위키백과 활성화를 위한 특별한 전략이 없었지만, 이번 10주년 행사를 계기로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지부 집행위원인 구은애씨는 20~30대 남성으로 편중된 위키백과 사용실태를 지적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정보의 불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정 계층이 관심 있는 정보만 위키백과에 늘어날 것을 우려한 것이다. 또한 구씨는 싸이월드, 트위터, 페이스북 등 갖가지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활성화한 것과 자신과 같은 여성의 위키백과 참여가 적은 것이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의 경우 지식을 나누기보다 SNS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 느낀 감정을 남과 공유하는 데 더 익숙하다”며 “또한 위키백과를 능숙하게 사용하려면 컴퓨터 언어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사회적으로 여성들에게 과학분야를 권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활동가이자 한국지부 집행위원인 위아람씨(27)는 “막상 위키백과를 사용해보면 생각보다 협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4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위키백과 교육과정에 참여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위키백과를 잘 사용하려면 컴퓨터 언어와 유사한 위키문법도 알아야 하고, 여러 편집 원칙도 숙지해야 한다. 위키백과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설명해도 이해가 쉽지 않은데 온라인 토론만으론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위씨는 위키백과가 늘상 처해 있는 저작권 문제가 사용자들의 참여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위키백과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선스와 같은 ‘열린 저작권’으로 배포하기 때문에 독점적 저작권이 있는 자료는 올릴 수 없다. 위씨는 “고등학생 때 사진을 올렸는데 저작권 위반 소지가 있다며 삭제된 경험이 있다. 당시 고등학생 입장에서 저작권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웠고, 이런 식으로 퉁겨져나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위키백과처럼 정보공유를 구체적 저작물 영역에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지나치게 권리자 중심으로 되어 있는 현행 저작권법이 자발적인 정보공유 운동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위씨가 참여한 교육과정의 강사였던 류철 위원장은 위키백과의 한계점으로 지적된 것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위키미디어 한국지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지부가 정식으로 설립되면 후원금을 받아 위키백과를 알리는 강사를 양성하는 게 훨씬 수월해진다. 차후에는 대학이나 여타 기관들과 협력해 위키백과와 같은 지식공유의 중요성을 알리려 한다”고 말했다.
- [시사 2판4판]한국어 테스트(2012. 09. 04 18:20)
- 2012. 09. 04 18:20 정치
- 1. 다음의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A : 여보세요? 거기 중화반점이죠? B : 아닌데요. 몇 번에 거셨어요? A : 거기 중국집 아니에요? B : 아닙니다. 여기는 ________. A : 죄송합니다. 1) 여기서 말하는 중국집은 어떤 집을 말하는 것일까요? ① 중국 사람이 사는 집 ② 중국 요리를 하는 집 ③ 중국어를 말하는 사람이 있는 집 ④ 중국식 스타일의 집 2) 밑줄 친 부분에 들어갈 말로 적당한 것은? ① 한국집인데요 ② 홍콩집인데요 ③ 가정집인데요 ④ 114인데요 2. 다음의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A : 단란히 먹는 술집도 가보셨어요? B : (고개를 흔들며) 뭐가 단란한 거죠? 1) 여기서 말하는 ‘단란히 먹는 술집’은 어떤 집을 말하는 것일까요? ① 가족이 함께 와서 즐기는 술집 ② 노래방 ③ 유흥주점 ④ 두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술집 2) B는 과연 ‘단란히 먹는 술집’에 간 것일까요? ① 자주 갔다. ② 한두 번 정도는 갔다. ③ 근처는 갔다. ④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안철수 교수의 룸살롱 출입 논란이 화제다.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때 단란주점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룸살롱 논란의 출발점이다. 이 대답을 두고 논란이 벌어진 것이니 한국어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단란주점에 대한 대화를 보노라면 오래 전 인터넷에서 유행한 한국어 능력시험 유머가 떠오른다. 이쯤 되면 단란주점 문제도 한국어 능력시험에 출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시사 2판4판
- [경제] 대영박물관 한국어서비스 착륙(2009. 12. 10 11:57)
- 2009. 12. 10 11:57 경제
- ㆍ대한항공 후원, 세계 3대 박물관에 우리말 안내 진행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닐 맥그리거 대영박물관장이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열린 후원 협약식에서 협약서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12월 1일부터 대영박물관에서 한국어 작품 안내 서비스가 시작됐다. 대한항공이 후원한 이번 한국어 서비스는 지난해 2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올해 6월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서비스에 이은 것으로, 아시아권 언어로는 유일하게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작품 안내 서비스를 진행하게 됐다. 지금까지 대영박물관에서는 구형 오디오 안내기기를 이용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3개 언어로만 안내 서비스가 이뤄져 이곳을 찾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불편함이 존재했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220개의 주요 작품에 대해 이뤄지는 한국어 서비스는 해설에 대한 원문 작성은 대영박물관 학술팀이 직접 담당했고, 번역문은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이 감수했으며, 음성 녹음은 친숙한 목소리의 방송국 성우 7명이 맡았다. 대한항공이 후원한 최첨단 멀티미디어 기기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중국어, 아랍어,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화 등 8개 언어가 추가됐다. 후원 제안에 ‘한국어 포함’ 역제안 작은 사진은 대한항공이 후원한 멀티미디어 가이드(PDA). 세계 3대 박물관 ‘한국어 서비스’ 후원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의지가 강력히 담겨 있다는 게 대한항공 측의 설명이다. 평소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수송과 문화 교류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온 조 회장이 글로벌 항공사의 특성을 살린 문화예술 후원을 결정했고,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 국민과 세계인이 많이 찾는 유명 박물관에 대한 한국어 서비스 후원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서비스 대상인 루브르 박물관과의 줄다리기도 조 회장이 지휘했다. 2006년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전 전시작품 운반을 프랑스 국적기를 제치고 따낸 조 회장은 루브르 박물관 측이 ‘작품 설명기기 첨단화 후원’을 제안해 오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수용하면 응하겠다”고 역제안한 것. 수차례 협의 끝에 2007년 7월 대한항공과 루브르 박물관 사이에 6년간의 장기 파트너십이 맺어졌다. 이후 작품 설명기기 첨단화 후원과 한국어 안내 서비스는 제2, 제3의 박물관으로 이어졌다. 특히 대영박물관의 경우 한국전시실에 전시돼 있는 한국 작품 가운데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비롯한 7개 작품이 작품설명에 포함됐다. 대한항공 측은 “세계적인 명소에서의 자국어 안내 서비스는 그 나라 국력을 나타내는 척도로 평가 받는다”면서 “세계 3대 박물관 모두 한국어 서비스가 이뤄지면서 3대 박물관을 찾는 연간 약 1700만명의 관람객들에게 한국어의 높아진 위상을 알릴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측으로서는 단말기에 ‘KOREAN AIR’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전 세계인을 상대로 한 홍보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 경제
- [화제]세계 3대 박물관 ‘한국어 상륙 작전’(2008. 12. 24)
- 2008. 12. 24 사회
- 대한항공, 루브르 이어 내년부터 대영·에르미타쥬 박물관 ‘우리말 서비스’ 협약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은 2월부터 대한항공의 후원으로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 관람객들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PDA 이용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지난가을, 회사원 박정숙(28)씨는 프랑스로 출장갔다가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다. 평소 미술이나 역사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해외여행을 할 때면 반드시 그 나라의 유서 깊은 박물관을 찾는데, 루브르 박물관은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하지만 이번 방문은 여느 때와 달랐다. 여행 가이드 없이 혼자 박물관을 찾을 땐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박물관의 유물을 둘러보거나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에 의존하는 게 고작인데 지난 2월부터 루브르 박물관에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실시한 것. 입구에서 6유로(1만1000원)를 주고 PDA를 손에 쥐자 마치 국내 박물관을 방문한 듯 작품 설명과 위치 검색이 한눈에 들어왔다. 최신 해설장비 후원하며 성사시켜 박씨는 “기존 오디오 설명과 동시에 PDA를 통해서 눈으로도 작품 해설을 볼 수 있어 무척 좋았다”면서 “게다가 PDA에 내장된 GPS시스템으로 내가 지금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확인할 수 있어 여러모로 유용했다”고 전했다. 모든 작품에 오디오 서비스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명 작품에는 예외 없이 서비스를 해주어 관람하기에 큰 무리가 없었다고. 박씨가 체험한 한국어 안내 서비스는 대한항공의 작품이다. 대한항공은 연간 8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최대 박물관인 프랑스 루브르에 2월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우리말 알리기 사업을 시작했다. 루브르 박물관 한국어 안내 서비스는 기존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일본어에 이어 7번째 서비스다. ‘Korean Air’ 로고가 새겨진 최신형 개인휴대단말기(PDA)를 통한 이 서비스는 루브르 박물관의 작품 안내 장비 현대화 작업을 후원하는 조건으로 성사됐다. 한국어로 안내되는 작품 수는 세계 박물관에서도 최대 규모로 루브르의 대표 작품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를 비롯해 미로의 , 사모트라케의 등 600여 점에 달한다. PDA에는 루브르 박물관 내 각 작품의 위치가 표시되어 원하는 작품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관람 방법도 선택할 수 있다. 원하는 작품을 선택하여 해설을 듣는 ‘작품 선택하기’, 주요 테마·코스별로 선정된 작품의 해설을 순서대로 듣는 ‘코스 선택하기’ 방법이 있다. 2009년부터는 루브르 박물관 외에 대영 박물관, 에르미타쥬 박물관에서도 한국어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다. 한국어 서비스 협약식 모습. 대한항공은 11월 27일과 28일 각각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러시아의 에르미타쥬 박물관과도 한국어 안내 서비스 협약을 맺었다. 대한항공은 대영 박물관의 구형 안내용 장비를 첨단 PDA로 교체하는 사업을 후원하며, 대영 박물관은 기존 9개 언어로 실시하는 작품 안내 서비스에 한국어를 추가해 내년 말부터 서비스한다. 대영 박물관에는 1997년부터 한국전시관이 개관되어 있으며, 아미타불경 등 한국과 관련한 소장품이 현재 약 250여 점 있다. 대영 박물관 한국어 안내 서비스는 화려한 동영상뿐 아니라 웹사이트와 연계된 즐겨찾기, 맵 인터페이스 기능 등 최신형 기술로 이뤄질 예정이어서 방문객들에게 박물관의 고대 유산과 신기술이 어우러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게 된다. 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러시아 최고의 에르미타쥬 박물관에서도 내년 3월부터는 현재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 6개 국어로 작품을 안내하는 오디오 기기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추가한다.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자국어 서비스를 실시하는 셈이다. 에르미타쥬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라는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 예술품을 고루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 조르조네의 , 티치아노의 등 서양 미술사를 수놓은 걸작이 넘치는 곳이다. 러시아, 아시아 국가 첫 자국어 해설 대한항공의 후원에 따라 2009년부터 대영 박물관, 에르미타쥬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제공되면 올해 2월부터 제공한 루브르와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완성하게 된다. 이곳을 찾는 관람객은 매년 약 1700만 명. PDA와 안내 서비스를 통해 세계인에게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깊게 심어주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대한항공의 박물관 한국어 안내 서비스는 기존 작품해설용 장비를 신형으로 교체하거나 박물관을 후원하는 조건으로 성사된 ‘노력의 결실’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역만리 떨어진 외국 명소에 후원 활동을 벌이는 것은 대한항공을 이용해준 국민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라며 “유럽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유명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도입해 문화적 감동을 선사하는 한편, 한국인으로서 국민적 자긍심을 높이자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민간 외교관’을 자처하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제주 화산섬 용암동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지원 등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을 해외에 알리는 활동부터 복조리 걸기, 비빔밥 기내식 등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를 해외에 전파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는 조 회장으로서는 유명 박물관만큼이나 좋은 외교장소는 없다고 본 것이다. 최규학 주영한국문화원 원장은 “매년 6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영국 제일의 문화명소이자 관광명소인 대영 박물관에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고 한국 문화를 해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업으로서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문화기관의 프로그램을 후원함으로써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마케팅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호천 모스크바 한인회장 역시 “우리나라보다 관광객 비중이 매우 높은 일본, 중국을 제치고 아시아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함으로써 우리나라 관광객뿐 아니라 한인 동포, 고려인 동포들이 무한한 자긍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특별기획]한국어의 유전자를 찾아서(2007. 12. 11)
- 2007. 12. 11 문화/과학
- 코리안루트 1만㎞ 대장정 어웡크족·다구르족 언어에서 고대 한국어와 고구려 언어 흔적 발견 대흥안령 지역에는 어웡크족, 오룬춘족, 다구르족 등 여러 몽골로이드계 소수민족의 언어가 남아 있다. 우리는 흑룡강성과 대흥안령 지역의 여행을 계속했다. 2007년 7월 21일 우리는 하일라얼(Haila’er)에 있는 어웡크(鄂溫克, Owongku, 혹은 에웽키, 에벵키)족 박물관을 방문했으며, 나는 그 박물관의 젊은 여성 직원에게서 어웡크어로 숫자 1~10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런 연습을 하는 까닭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원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언어가 아직 살아 있는지 구어체 언어를 내 귀로 직접 듣기 위한 것이다. 그 젊은 어웡크 여성은 1~5까지 셀 줄 알았으며, 모르는 나머지는 휴대전화로 자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소수종족 언어와 문화 존폐 위기 다구르민족박문관에 전시된 사진(위)과 모리다와 시내에서 열린 다구르족 행사 강강수월래를 연상시킨다. 이틀 후인 23일 우리는 알리사(Alisa)에 있는 오룬춘(鄂倫春, Orunchun)족 박물관을 방문했다. 거기서 나는 한 젊은 여성 직원에게서 역시 오룬춘어 숫자 1~10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녀는 숫자 세기가 어렵자 자기 친구에게 달려가 조그만 오룬춘어 어휘 책자를 가져왔다. 그녀는 그 책자에 있는 숫자들을 그대로 읽었으며, 발음은 그 책자에 나와 있는 간단한 표기보다 훨씬 나았다. 분명 언어가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다음 날인 24일 우리는 다우얼(達斡爾, Dawoer, 혹은 다구르, 다후르) 민족 문화 공원과 박물관을 방문했다. 모리다와 다우얼 자치구(Molidawa Dawoer Autono-mous County)의 장이라는 한 노인이 나에게 다우얼어 숫자 1~10을 말해주었다. 그는 숫자 세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으며, 중간에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 10 이상의 숫자를 셌다. 현장에서 이런 자료들을 분석해보다가 나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즉 몽골어와 퉁구스어 양자의 원래 파열음 체제(plosive systems)에서 유성/무성 대응(the voiced/voiceless contrast)은 대체로 북부 중국어 파열음 체제의 대기음/비대기음 대응(the aspirated/non-aspirated contrast)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몽골어에서 d:t 대응을 가진 4 dorb: 5 tap가 다우얼어에서는 t:th 대응을 가진 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가 그 80대 노인이 말하는 언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므로, 지난 100년에 걸쳐 채집한 모든 언어학적 자료들은 비교 자료를 사용하기 전에 먼저 주의 깊게 다시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현대 중국은 다수 민족의 합중국 이제 에벵키족이나 다구르족 아이들이 자기들 언어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외국 학자들이 쓴 책과 논문들을 찾아봐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 같다. 만일 이 민족 언어들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면, 민족 집단과 그 문화는 곧 사라질 것이며,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이다.다구르족 노인 아르다합씨는 다구르어로 1~10까지 어렵지 않게 말했다. 이 언어들에는 먼 옛날 고대 한국어에서 차용해온 흔적과 고구려 제국 언어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 역시 모두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이다. 나는 26살 때 내가 자란 곳을 떠나 가장 먼 곳으로 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곳이 바로 검은 대륙 아프리카였다. 아프리카의 밤은 어두웠지만, 검은 아프리카인들은 어두운 밤보다 검었고, 오로지 눈의 흰자위와 웃을 때 보이는 이만 하얄 뿐이었다. 과거 500년 간의 아프리카 역사는 그보다 더 어두운 것으로 노예 무역과 식민 통치로 파괴됐다. 아프리카 민담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친절하게 대해도 불친절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대흥안령 지역 소수민족 박물관 또는 기념관의 동상들. 다구르족, 어웡크족, 오룬춘족 전사의 모습이다(위부터) 하지만 타인들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을 즐거이 하면 되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자신들의 운명에 만족하며 살아온 아프리카인들은 2002년 월드컵 경기에서 과거 식민 지배를 한 서구제국 팀들을 격파했다. 한국인의 ‘할 수 있다’ 정신이 아프리카인들에게도 자신들의 과거 영광을 일깨울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제 그들의 신체적 역량은 스포츠와 같은 많은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500년 동안 아시아 역시 어두운 역사를 가졌지만, 아프리카와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조금 낫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자족감(自足感)과 타인에 대한 친절함은 아시아인에게로 유전한 것으로 보인다. 15세기 이래로 한국에는 조선이라는 하나의 왕조가 있어왔으며, 중국에는 명(明)과 청(淸)이라는 두 왕조가, 그리고 소아시아에는 투르크족의 오토만 제국이 있어왔다는 사실을 듣고 유럽의 지식 계층들은 놀라워 했다. 유럽인들이 침입해오기 전에 아프리카 역사는 밝고 평화로웠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기는 이집트 문명으로 대표되고 있는데, 그것은 이미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했을 때 종말에 이르렀다. 이집트는 동방으로부터 힉소스(Hyksos)라고 불리는 기마민족의 침입을 받은 짧은 기간(BC 1670~1570) 외에는 거의 3000년 동안어두운 시기를 겪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 그리고 수메르인을 제외한 모든 민족 집단이 셈어계(Semitic) 민족이었던 메소포타미아와 달리 중국에서는 한민족(漢民族)과 알타이어계 민족 집단들이 거의 교대로(송, 원, 명, 청) 지배해왔다. 커다란 혼란기(춘추전국시대)를 지나면 하나로 통일된 평화로운 시대(진, 한)가 이어졌다. 알타이어계, 한족(漢族)계, 그리고 다른 계열 문화들이 하나의 도가니 속으로 들어오고(5호16국), 그 혼란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그렇게 중국은 한족계(당, 송)나 아니면 알타이어계(요, 금, 원)에 의해서 다시 통합되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EU가 유럽인 국가들의 연합인 것처럼, 현대 중국은 56개 소수 민족 집단들을 갖고 있는 하나의 중국이 아니라 몽골로이드 여러 민족 집단의 합중국(合衆國)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동적인 알타이어계 민족들은 창조적이지만, 정적인 한족계 민족은 알타이어계의 모든 것을 부수어 삼켜버리고 있다. 한족들은 북동부 중국에 있는 고구려와 만주-퉁구스어계 역사가 한족 역사라는 잘못된 주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중국 전체의 역사는 몽골로이드 민족들의 역사인 것이다. 그래서 북동부 중국의 역사는 몽골로이드 합중국의 고구려와 만주-퉁구스어계의 역사다. 황하문명은 몽골로이드 문명 중국 문명의 두드러진 특징 하나는 그 문자 전통에 있다. 이집트 신성문자가 이집트 문명의 기초적 요소였듯이, 중국어 글자는 역시 중국 문명의 기본이다. 이 두 글자 모두 상형문자이므로, 일(日, sun), 구(口, mouth), 목(目, eye), 인(人, person) 같은 비슷한 형태의 문자가 많다. 그러나 상·하 이집트가 BC 2850년에 통일된 직후 이집트 신성문자가 만들어졌고, 반면에 가장 오래된 중국어 글자인 갑골문자는 BC 1300년쯤 이후에야 알려지기 시작했으므로, 이집트 신성문자는 중국어 글자보다 1500년 이상 오래 되었다. 이런 시간적인 차이는 이집트의 필기 체제나 그 기본구조가 중국이나 고조선을 포함한 기타 알타이어계 지역들에 도달하는 데 충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갑골문자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 꼭 중국인이어야 할 당위성은 없다고 본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는 연대가 BC 5000년대까지 올라가는 내몽골에 있는 홍산문화 지역과 기타 고고학 유적지들을 둘러보았다. 이런 연대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오랜 연대와 비교되는 것으로, 우리는 우랄-알타이어계, 시노-티베트어계, 남아시아어계(베트남과 캄보디아를 포함한), 오스트로네시아어계, 그리고 몽골로이드들이 사용하는 기타 어족의 조상들이 모두 이 오랜 문화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지역은 또한 고조선의 영역이기도 하면서 발해만과 서해(황해)와 마주보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형구 교수와 함께 그곳 바다를 ‘고조선의 지중해’라고 부른다. 이것은 중국 본토 서쪽까지 포함하는 일명 황하 문명이 분명 순전한 중국인 문명이 아니라, 고조선인들을 포함한 알타이어계 민족들이 한족과 기타 몽골로이드 민족들과 함께 만든 몽골로이드 문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 코리안 루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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