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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인의 난세직필](30) ‘삼성 부당 합병’과 국민연금의 이중 플레이?(2024. 09. 27 16:00)
- 2024. 09. 27 16:00 경제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9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2%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연금개혁 추진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 9월 24일, 다수의 언론은 국민연금공단이 2015년에 있었던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피해를 봤다며 삼성물산 법인과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 등 8명의 자연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여러 측면에서 이번 소송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왜 그런가? 국민연금이 부당 합병으로 가입자가 입은 손해를 보전받기 위해 이재용 전 부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면 잘된 일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들은 필자의 평가가 납득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독자들께는 이 글을 끝까지 읽을 때까지 최종 판단을 잠시 유보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국민연금재정과장, 국회의원들에 거짓말 우선 국민연금은 이런 ‘자랑스러운 일’을 하고도 지금까지 쉬쉬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지난 9월 13일이다. 그런데 1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그 흔한 보도자료 한 장 없었다. 또 피고 명단에 국정농단의 최정상에 있으면서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쏙 빠져 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국민연금의 주무과장인 박민정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장의 태도였다. 박 과장은 지난 9월 20일 야당 국회의원 11명과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국민연금 손해 회복 방안 모색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그리고 국민연금의 손해배상 소송 제기와 관련해 손해배상 소송의 시효가 만료되기 전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취지로 답변하면서, 다만 피고의 범위와 소송 가액 그리고 손해배상 청구의 논리 등에 관해서는 소송이 제기될 때까지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래서 필자를 포함한 많은 참석자는 아직 국민연금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명백하게 밝혀진 것은 실제로 이 답변을 하기 1주일 전에 이미 국민연금은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박 과장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 앞에서, 특히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으로 이 토론회의 사회를 본 김남희 의원을 마주 보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국민연금과 보건복지부는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싶어했던 것일까? 고민 끝에 나는 그 진실을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이제부터 그렇게 생각하게 된 논거를 제시해 보려고 한다. ‘2020년 소송서 가해자 편’ 진상 규명해야 국민연금의 이런 어정쩡한 입장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2020년부터 2022년 사이에 있었던 한 건의 소송이다. 2022년 11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민사부는 구 삼성물산의 주주들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왜곡했던 정부의 부당한 행위 때문에 손해를 입었으니 국가가 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정부와 국정농단 관련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2020가합600079 손해배상(기) 사건)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즉 기본적으로 손해배상을 할 정도로 국가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판결이 그 자체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마땅히 상급심에서는 뒤집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국민연금에 집중해 보자. 이 판결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점은 이 재판에 국민연금이 피고 측, 즉 정부 쪽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국민연금은 구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사건에서 이중적 지위에 있다. 하나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뇌물을 받은 대통령과 그 휘하인 보건복지부 장관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로 내부의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부당한 합병에 찬성한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국민연금은 가해자에 가깝다. 또 다른 측면은 이런 부당 합병으로 국민연금이 실제로 거액의 손해를 입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국민연금은 피해자이고, 그 피해는 궁극적으로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전가된다. 그래서 국민연금에 가입한 대다수의 국민은 국민연금이 빨리 불법행위자들을 상대로 그 손해를 보상받는 조치를 하라고 그동안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위 사건에서 국민연금은 가해자인 정부 측 보조참가인으로 들어갔다. 물론 국민연금이 구체적으로 어떤 논리를 펼쳤는지는 더 상세한 자료를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으나, 적어도 외양만으로 판단하면 ‘아, 국민연금인 내가 몇몇 사람 때문에 조금 압박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찬성한 것은 아니야. 찬성은 자발적인 결정이었어’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실제로 판결문에는 국민연금이 그 의사를 지배당할 정도로 압박을 받은 것이 아니어서 그 주주권 행사는 하자 없는 것이라는 취지의 판단이 포함돼 있다. 쉽게 말해 국민연금은 ‘난 팔이 조금 비틀리고 손해도 봤지만 그래도 행복해’ 이런 식이다. 혹자는 이것이 국민연금의 입장을 곡해한 것이라고 펄쩍 뛸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국민연금이 ‘나는 부당하게 팔이 비틀려서 찬성했을 뿐이고, 그 때문에 손해를 봐서 속이 쓰리다. 빨리 이 손해를 보상받아야겠다’라고 생각했다면 피해주주인 원고와 목소리를 함께해야 했다. 예를 들어 원고의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해서 “참으로 억울하고 원통하게 그 의사를 굽힐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피눈물 나는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라고 주장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어찌 됐건 법원은 국정농단 판결과 ISDS 중재재판부의 시각과는 달리 정부를 면책했다. 그런데 2년이 흐른 지금 국민연금이 나서서 “난 손실 입어서 몹시 슬퍼. 그러니 너희들 책임져”라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나는 이게 이번 해프닝의 진면목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 소송에서 국민연금이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 수 있겠는가? 과거 2020년 소송에서는 가해자와 같은 편에 섰다가 지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고 지적받지 않겠는가? 당장 삼성 쪽에서는 “야, 국민연금. 너 과거에 합병에 찬성했고, 그 의사결정은 자발적이라고 했잖아. 그럼 이익을 보건 손해를 보건 그건 네가 감수해야지. 왜 내게 와서 시비야?” 이렇게 반박하지 않겠는가? 바로 이런 점에서 나는 이번 국민연금 소송이 ‘보여주기식 쇼’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번 소송보다 2020년 소송이다. 지금이라도 2020년 소송에서 왜 국민연금이 피해주주들 쪽이 아니라 가해자 쪽에 서게 됐는지, 그리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손해배상 청구의 논리마저 스스로 봉쇄해 버렸는지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일개 과장에게 농락당한 보건복지위 국회의원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 전성인의 난세직필
- SK이노-E&S 합병 주총 통과···11월 ‘에너지 공룡’ 기업 탄생(2024. 08. 27 10:44)
- 2024. 08. 27 10:44 경제
-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승인을 위한 양사의 임시 주주총회(주총)가 열린 8월 27일 오전 서울 SK서린빌딩에 마련된 주주확인 데스크. 연합뉴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안이 주주총회를 통과했다. 오는 11월 매출 88조원, 자산 100조원 규모의 초대형 에너지 기업이 탄생한다. SK이노베이션은 8월 2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SK E&S와의 합병 계약 체결 승인 안건이 참석 주주 85.76%의 찬성률로 통과됐다고 밝혔다. SK E&S도 이날 주주총회를 열고 양사 합병안을 승인했다. 합병은 주총 특별결의 사항으로,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과 발행 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통과된다. SK이노베이션의 지분은 지난 6월 말 기준 SK㈜가 36.2%로 가장 많이 갖고 있고 국민연금이 6.2%로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며 양사 합병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최대주주인 SK㈜를 비롯한 대다수 주주가 찬성하며 합병안이 통과됐다. 합병이 승인됨에 따라 합병 법인은 오는 11월 1일 공식 출범한다. 앞서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지난 7월 17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양사 간 합병안을 의결했다. 최대 관심사였던 양사의 합병 비율은 1대 1.1917417로 정해졌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회사의 장기적인 안정과 성장의 토대가 될 이번 합병이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예정”이라며 “더불어 합병 완료 이후 다양한 주주친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실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헐값 합병 등 밸류업 역행…‘대주주 잇속’ 뿔난 주주들(2024. 08. 05 06:00)
- 2024. 08. 05 06:00 경제
- 2024년 7월 3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분당 두산타워 / 이준헌 기자 증시 밸류업(value-up·기업 가치향상)에 역행하는 기업들의 헐값 합병, 상장 폐지 등이 잇따라 발생해 시장 안팎이 시끄럽다. 일반 주주를 배제한 불리한 결정이 발생해도 이를 견제할 방법이 없어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상법(제382조 제3항)은 기업의 이사가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회사’에 ‘주주’를 추가해 일반 주주 권익을 함께 보호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상법 개정을 담은 ‘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를 중점 추진 법안으로 지정해 추진키로 했다. 정부와 여당 방안이 주주환원 확대를 위해 상속세 완화 등 지배주주 감세에 초점을 맞췄다면, 야당은 기업 지배구조(거버넌스)를 고쳐 일반 주주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무게를 뒀다. 상법 개정 주무 부처인 법무부 관계자는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정해진 입장 없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관련 기관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 “두산 사태, 윤석열 대통령의 뺨을 때린 격” 최근 상법 개정 논란에 기름을 끼얹은 곳은 두산그룹이다.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로 이전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간 포괄적주식교환을 통해 완전 자회사로 만드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연 매출 10조원에 달하는 알짜회사 밥캣과 적자회사인 로보틱스 간 주식교환 비율이 시가총액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1 대 0.63으로 정해져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반면 총수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두산은 돈 한 푼 쓰지 않고 밥캣에 대한 간접 지분율을 13%에서 42%로 끌어올릴 수 있다. 밥캣에 투자한 일반 주주들의 돈이 두산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쓰이는 셈이다. 두산 사태는 해외에서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알리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박유경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 이머징마켓 주식 부문 대표는 지난 7월 24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두산의 구조 개편은 규제 당국과 유권자들에게 더 나은 주주환원을 약속한 윤석열 대통령의 뺨을 때린 것(slap in the face)과 같다”고 비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두산의 구조 개편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의 필요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도 “구조 개편으로 두산그룹이 재무적 어려움을 겪으면 밥캣에 대한 부정적인 경영 개입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며 두산밥캣을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했다. 여론이 들끓자 금융감독원은 합병 관련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하며 제동을 걸었다. 금감원은 “주주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도록 구조개편과 배경, 주주가치에 대한 결정 내용, 재무안정성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등에 대해 설명하고 보완하라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상장사 간 합병·교환은 ‘시가로 해야 한다’는 자본시장법에 따른 것이라 합병·교환 비율이 변경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는 9월 열릴 주주총회가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최대 주주인 두산의 지분율이 낮다. 지분 6.7%를 가진 2대 주주 국민연금이 일반 주주와 결집해 반대하면 주총에서 합병안 통과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이 연금 가입자와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해서라도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지침)를 발휘해 반대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면서도 “상법 개정에 대한 ‘본질’은 덮어두고 금감원이 (적법한 합병에) 제동을 거는 것은 또 다른 관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국회에서는 김현정 민주당 의원이 투자자 이익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합병가액을 정하고 기업이 공정하다는 증명 책임을 부담하는 ‘두산밥캣방지법’을 발의했다. 이와 별도로 금융위원회는 합병 비율을 개선하기 위해 하반기 중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SK·한화도 지배구조 개편 놓고 주주 반발” 두산과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SK의 지배구조 개편도 도마 위에 올랐다. SK그룹은 SK온의 유동성 지원을 위해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이노)과 비상장사인 SK E&S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자본시장법상 상장사가 비상장사와 합병할 경우 최근 주가(주당 11만원) 또는 장부상의 순자산가치(주당 24만원) 중 하나를 기준으로 주당 가치(합병가액)를 정할 수 있는데, SK는 이중 금액이 낮은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SK이노 측은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양사가 선정한 독립적인 외부 회계법인의 자문과 평가를 통해 균형적으로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SK이노와 SK E&S의 합병 비율은 1 대 1.19로 정해졌는데, 이노 주주들은 합병 비율이 불리하게 정해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최근 주가(시가)를 합병가액으로 정하면서 대주주 SK의 지배력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합병 이후 SK의 SK이노 지분율은 55.9%로 기존보다 19.7%포인트 늘어난다. 반면 자산가치 방식을 택하면 지분율은 47.5%로 이보다 낮아진다. 경제개혁연대는 “합병으로 최대 주주 SK와 SK의 최대 주주인 최태원 회장 일가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SK이노 일반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희석되는 손해를 입게 된다”며 “이사회 결정이 전체 주주 이익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합병 승인을 위한 임시 주총은 오는 8월 27일 열리는데, 합병이 성사되면 매출 90조원, 자산 100조원 규모인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민간 에너지 기업이 출범한다. 한화그룹도 공개매수로 잡음이 일었다. 한화에너지가 지난 7월 5일부터 7월 24일까지 한화 보통주 공개매수(주당 3만원)에 나섰는데 매수에 응한 주식은 총 389만8000주(지분 5.2%)로 한화그룹이 목표로 한 최대 600만주(지분 8.0%)에 미달했다. 한화에너지의 공개매수 제시가는 한화 주가순자산비율(PBR) 0.23배에 불과했다. 올해 들어 진행된 국내 공개매수 거래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주주들의 원성을 샀다. 한화에너지는 “책임경영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를 통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보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김동관·김동원·김동선 등 삼 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가족회사로, 계열사들의 정보사업과 에너지 공급 일감 등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의 한화 지분 증여 대신,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율을 9.7%에서 17.71%로 확대해 승계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증권가에서는 이례적으로 한화에너지의 한화 공개매수가 책임경영을 강화할지 의문이라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이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화그룹 승계에 핵심회사가 될 수 있는 한화에너지가 동사 지분율을 확대하는 것이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것인지 많은 의문점이 남는다”며 “지배구조 개선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지난 7월 18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이 합병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니클로 불매로 매출 올린 신성통상, 상폐 논란” 밸류업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는 건 중견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패션 브랜드 ‘탑텐’ 등을 보유한 신성통상은 주주환원 요구에 자발적 상장 폐지로 응답했다. 신성통상은 지난 6월 자사주를 주당 2300원에 매입하겠다고 밝히며 자진 상장 폐지를 예고해 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탑텐은 2019년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경쟁사인 유니클로의 힘이 빠지면서 성장했다. 올해는 매출 1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신성통상이 제시한 매입가는 발표 직전 주가인 1842원보다 높지만, 회사의 순자산을 발행주식 수로 나눈 주당순자산가치(BPS·3136원)에는 훨씬 못 미친다. 주주들의 반발로 첫 공개매수 도전은 실패로 끝났고, 신성통상이 2차 공개매수를 시도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신성통상이 헐값에 주식을 매입해 상장 폐지한 후 3100억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대주주끼리 배당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배당을 외면하는 수법으로 주가를 낮게 유지해 증여세를 줄인 뒤 상장 폐지로 가족 경영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다. 락앤락과 쌍용씨앤이, 커넥트웨이브(다나와) 등 사모펀드가 대주주인 회사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사모펀드 입장에서 상장 폐지를 하면 주주 간섭에서 벗어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고, 공시 의무도 덜어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투자자 커뮤니티 등에서는 ‘밸류킬’· ‘밸류다운’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이래서 한국주식시장은 떠나는 게 답이다”라는 냉소가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 사업 재편 과정 등에서 일반 주주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점에 있다고 지적한다. 앞선 사례들처럼 이사가 지배주주 또는 경영자와 일반 주주 간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의사결정을 할 때 일반 주주 이익에도 부합하는지 검토할 수 있도록 상법에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법 개정 의제는 LG화학이 2022년 초 2차전지 사업부를 물적분할한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하면서 점화했다. 알짜 사업 부문을 빼앗긴 LG화학의 주가가 곤두박질하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지배주주 이익을 위해 일반 주주가 희생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민주당을 중심으로 법안이 발의됐으나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2대 국회에서는 지난 6월 개원과 함께 상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아울러 민주당은 지난 7월 30일 주식시장에서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프로젝트의 주요 과제로 이사회 충실 의무 대상을 전체 주주로 확대, 독립이사 선임 의무화, 감사·이사 분리 선출 단계적 확대, 대기업 집중투표제 확대, 소액주주 의결권 행사 확대 등을 제시했다. 진 정책위의장은 “한국은 주주가 아니라 재벌 회장이 기업의 주인인 것처럼 인식되고 또 행세한다”며 “주주들보다 재벌 회장과 그 일가의 이득을 우선시하는 경영 행태를 개혁하지 않으면 밸류업은커녕 코리아 디스카운트조차 해소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장의 저평가 현상을 해결하려면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며 “상법 개정이든 상장회사 특례법 제정이든 (방법에 대해선) 열어놓고 추진하겠다”고 했다. ■ “불붙는 상법 개정, 이사는 누구를 위해 일하나” 재계는 국회 등에 공동 건의서를 보내며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재계는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가 신속한 경영 판단을 막아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기업이 배임죄 고발 등의 소송 위험에 시달려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게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한상의는 최근 국내 상장기업 153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인수합병(M&A) 계획을 재검토’(44.4%)하거나 ‘철회·취소’(8.5%)하겠다는 곳이 절반 이상 나와 시장의 활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경영권 위협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 논쟁이 진영 간의 갈등을 넘어 기업지배구조와 자본시장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고위 인사는 “사업 재편이나 투자 등의 경영 과정에서 지배주주(경영진)와 일반 주주 간 소통할 수 있는 대등한 권한이 필요한데, 일반 주주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 것이 상법 개정”이라며 “기업이 주주를 신경 쓸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으로 (상법 개정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바로잡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식투자자 수가 유권자의 30%에 달해 여권이든 야권이든 주주 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완벽한 제도가 없는 만큼 재계도 논의에 참여해 윈윈(win-win·상생)할 수 있는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한 상법 전문가도 “개정을 찬성하는 측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과장하고 반대하는 측은 역기능만 강조하고 있다”며 “이사가 전체 주주를 위해 일을 한다는 전제 아래, 투자자들의 단기적 재무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배임죄가 남발되지 않게 하는 조항을 넣는 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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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인의 난세직필](23)K디스카운트 해소와 삼성 부당합병 판결(2024. 02. 26 05:30)
- 2024. 02. 26 05:30 경제
-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 2월 21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니치 아우어 포럼’에 참석해 ‘정책여건과 금융정책 방향’이라는 강연에서 선순환적인 자본시장 구축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문제가 특별히 올해 경제부처의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지난 1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상생금융을 주제로 한 민생토론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윤 대통령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를 과감하게 혁파”하고, 상속세 등 “과도한 세제를 개혁”할 것을 천명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분명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해묵은 숙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약속에 환호하기에 앞서 대통령이 언급한 정책 방향이 과연 이 문제를 해소하는 데 효험이 있는지, 또한 이 문제의 해소와 관련한 또 다른 정책과제는 없는 것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초기에 언론이 집중적으로 조명한 부분은 과도한 상속세제의 개편이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고, 대주주의 경우 추가 할증을 통해 60%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이 수준이 한국 경제의 관점에서 적정한 것인가는 별론으로 하고, 과연 과도한 상속세율 때문에 한국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되는지를 생각해보자. 멀리 갈 것 없이 일본을 보자. 일본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5%로 알려져 있다. 그럼 일본 주가도 이것 때문에 짓눌려 있는가? 그렇게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일본의 닛케이지수는 지난 2월 22일 34년 만에 거품경제 때 달성했던 최고치를 경신했다(물론 닛케이지수의 급등에는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 등 다른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지만, 어쨌든 상속세 때문에 주가가 짓눌려 있는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도한 상속세가 원인이라고? 과도한 상속세가 주식 저평가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가 대주주로 하여금 상속세 부담을 절감하기 위해 주가를 하향 관리하고 싶은 ‘유인’을 줄 수는 있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런 ‘유인’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에서 곧바로 ‘억압된 주가’로 귀결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왜냐하면 이런 주장은 ‘대주주가 맘만 먹으면 상당한 정도로 주가를 하향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가 관리 행위’는 거의 언제나 불법이다. 일부러 불리한 풍문을 흘리거나, 분식회계를 하거나 또는 시세조종을 수반한다면 당연히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또 유리한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도 대주주의 상속상 필요 때문에 고의로 그런 사업 기회를 포기해 기업가치를 낮추는 것은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이자 아마도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만일 상법과 자본시장법 등 주식시장을 둘러싼 경제질서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상속세가 곧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중요 요인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세금 좀 안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그러니까 불법을 감수하고서라도 주가를 억지로 낮게 관리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하는 명제들이다. 여기서 일부 독자들은 “네가 현실을 몰라서 그래. 대주주가 주가를 관리하는 것은 가능성 정도가 아니라 팩트야”라고 필자의 무지를 개탄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속세를 낮춰야 하는가? 아니다. 상속세 수준은 조세 정책의 관점에서 결정하는 것이 맞다. 문제의 핵심은 ‘탈세 또는 절세의 유인’이 실제로 ‘주가 짓누르기’로 나타나는 통로를 정비하는 것이다. 그것은 상법과 자본시장법령을 보완하고 분쟁의 최종 심판자인 법원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자본시장을 규율하는 여러 법령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작동하고, 이에 관한 법률 분쟁에 대해 법원이 정당한 판단을 내린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는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무죄 선고한 법원, 대오각성해야 아마도 상속세 논쟁이 부각하는 우리 현실의 어두운 점은 상속세 부담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나라 현실이 자본시장의 이상적 모습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상속세에 민감한 사람들이 재벌 총수와 같은 최고위 자산가들이라는 점, 이들은 언제든지 정권과 직거래하고(국정농단 사건을 보라), 법원에 중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재벌 총수에게 늘 내려지는 집행유예 판결을 보라) 등을 생각하면 더욱 이런 어두운 점이 현실로 다가온다. 이런 점을 가장 압축적이고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제1심 판결이 내려진 ‘삼성 부당합병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병석에 누운 후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이전하기 위해 온갖 부당한 방식을 동원했다고 비판받는 사건이다. 대통령 측근에게 말 세 마리 사주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통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고 구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게 만들기 위해 분식회계, 유용한 사업 기회의 포기 등 여러 불법적 행위를 자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공장 바닥을 뜯어서 그곳에 숨기고, 기업 가치 평가에도 여러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알려졌다. 무엇보다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합병을 앞둔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 모두를 지배하는 공동의 지배자로서 중대한 이해상충 상황에 처한 상태였다. 합병 비율은 제로섬 게임 같은 것이어서 한쪽 회사에 유리하면 반대쪽 회사에는 불리하게 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경우 이 전 부회장은 불리한 대접을 받은 회사에 대해 사실상의 이사로서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된다. 그런데 법원은 지난 2월 5일 기소된 모든 피고인에 대해, 그리고 기소된 모든 죄목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급심 법원의 판단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향후 상급심의 추가 판단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은 개탄했다. ‘법은 있지만 어기면 그만’이고, ‘문제 제기는 있겠지만 법원을 우군으로 확보하면 된다’는 식의 정글의 법칙이 자본시장의 근저를 관류하고 있다는 증표를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인 한, 아니 설사 현실이 아니라도 이런 인식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각인되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소되기 어렵다. 정부와 국회가 자본시장 관련 법령을 잘 만들고 잘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법원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법원이 제도 정착의 궁극적 주춧돌이기 때문이다.
- 전성인의 난세직필
- 소액주주만 피해 보는 기업 합병, 해법은?(2022. 06. 24 17:21)
- 2022. 06. 24 17:21 경제
- ㆍ총수 일가에 유리한 방향으로 합병비율 결정 ㆍ합병회사가 평가기관 선정하는 것부터 탈피해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연합뉴스 “몰라서 지켜만 보는 것일까, 알면서도 내버려 두는 것일까?” 기업이 추진하는 합병이 여전히 ‘합리적 판단’이 아닌 ‘지배주주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 활용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삼성물산과 에버랜드 합병부터 지난해 현대오토에버 합병까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주식시장에 파문을 만드는 식이다. 최근 불거진 동원그룹 계열사 간 합병 시도도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이 과정에서 주로 소액주주들이 재산을 잃는다. 반면 합병사의 최대주주는 이득을 본다. 재벌그룹 계열사 간 합병이라면 결국 총수 일가의 수혜로 이어진다. 시장에서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왜곡은 건전한 자본투자를 어렵게 한다. 아무리 좋은 기업을 찾아내 투자하더라도 주식 1주도 없는 그룹 총수의 결정에 따라 막대한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 많은 투자자가 한국 시장을 버리고, 미국 시장으로 옮기는 것도 이러한 행태와 크게 무관하지 않다. 주간경향 1482호에서 석연치 않은 현대오토에버 합병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최대주주인 현대오토에버는 비상장회사였던 ‘엠엔소프트’를 합병했다. 이후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부문을 이끌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 회장은 이득을 얻었고,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은 손실을 입고 1년 넘게 투쟁 중이다. 소액주주들은 정 회장과 현대오토에버에 ‘합병이 공정했는지’를 묻고 있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절차대로 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한국 자본시장의 특이성은 바로 여기서 발견된다. 대주주와 총수 일가를 견제하면 ‘과도한 규제’지만,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입으면 ‘정당한 절차’가 된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규제 혁파를 외치는 기업들이 자신들의 행태부터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기업을 옥죄는 숱한 규제가 있다는 한국 시장에서 여전히 ‘특정인’은 큰 이득을 보고 있다. 합병, 무엇이 문제인가 기업의 합병과 분할은 붙이고, 쪼개는 방식의 차이일 뿐 그 목적이나 원리는 사실상 유사하다. 최근 LG화학의 물적분할 사태가 큰 화제가 되면서 분할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합병에서 문제가 되는 상황은 대부분 ‘합병비율’ 산정에서 발생한다. 삼성물산 합병 사태 이후로도 그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합병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재벌그룹 계열사 간 합병이다. 그룹 총수 일가가 합병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둘째는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의 합병이다. 2개의 기업을 하나로 합치려면 기업의 상대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문제는 피합병 기업이 비상장사인 경우 미래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재량’이 개입할 수 있다. 대개 미래가치 평가는 외부 회계법인이 맡는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은 객관성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운용은 공정, 객관성 등과 거리가 멀다. 현대오토에버나 최근 발생한 동원그룹의 합병비율 파문이 대표적이다. 문제가 된 사례는 어김없이 총수 일가에 유리한 방향으로 합병비율을 결정했다. 총수 일가가 주식을 많이 가진 기업은 상대적 고평가, 반대의 경우 저평가되는 식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외부 평가기관이 저평가할 수밖에 없는 자료를 기업이 제시하면 된다. 아예 결탁할 수도 있다. 도출된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재량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단합력이나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소액주주들은 합병비율의 불공정을 밝히기 위해 몇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법정공방을 벌여야 한다. 결국 현행 제도대로라면 기업 총수가 합병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무엇을 바꿔야 하나 비상장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해당법은 상장회사와 비상장회사 합병의 경우 외부 평가기관은 비상장회사의 미래가치를 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구조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문제를 해소하려면 가장 먼저, 외부기관을 합병 주체인 회사가 직접 선정하는 관행에서부터 탈피해야 한다. 법무법인 랜드마크의 이남억 변호사는 “비상장회사의 가치 평가를 객관화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조건인 평가기관의 공정성부터 담보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외부 평가기관은 합병회사가 직접 선정할 게 아니라 제3의 평가기관에 의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또 “미래 수익가치 산정은 일반적으로 공정하고 타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모형을 적용하여 합리적으로 산정한다”고만 규정한 시행령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비상장기업의 주식 역시 거래가 가능하지만 모호한 규정으로 이를 가치 산정에 반영해야 할지가 논란이다. 외부 평가기관이 장외거래소 거래 내역을 참고하지 않거나, 일부 거래 내역만 참고해도 별다른 제약이 없다. 평가기관 재량에 따라 가치산정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변호사는 “미국은 합병가액과 관련한 직접적 규제는 없지만, 이사회가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권하고 있다”며 “주주평등의 원칙, 주주들의 합리적 의사 결정을 위한 충분한 정보공시, 시장 거래가격에 대한 교란 금지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또 “독일의 경우는 적대적 합병의 경우 합병가액의 하한을 규제하고 있다”며 “합병가액 하한은 인수자의 합병제안 직전 3개월 이내의 거래량, 가중 평균주가 및 최근 6개월간 있었던 다른 인수제안 가격 중 가장 높은 가격으로 정한다”고 설명했다. 외국 사례들을 한국 사정에 맞게 변용해 적용한다면 피합병 기업의 과도한 평가절하 등을 막는 보호장치가 될 수 있다. 총수 일가만 배려하면 경제가 살아나나 제도에 구멍이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친기업 환경 조성’에만 맞춰지고 있다. 규제를 풀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다. 그 방식도 정부가 재계 요구에 발을 맞추는 모양새다. 지난 6월 16일 정부는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낮추고, 과표구간도 기존 4단계에서 2~3개 구간으로 단순화하기로 했다. 또 기업체의 가족 간 승계 시 발생하는 상속세에 대한 납부 유예 제도를 신설하고,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 매출액 기준도 기존 4000억원 미만에서 1조원으로 확대했다. 총수 일가의 상속이 더 쉬워지는 셈이다. 상속의 걸림돌을 제거했다면, 편법은 막아야 한다. 그동안 합병은 결국, 지배구조 개편에 이용되는 측면이 있었다. 자본시장이 불공정하다는 지적마저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정의선 회장님, 현대오토에버 합병이 공정합니까?(2022. 06. 10 14:06)
- 2022. 06. 10 14:06 경제
- ㆍ[단독]오너만 막대한 이익…소액주주들, 대기업 상대 100억원대 힘겨운 소송 현대차그룹 계열사 간 ‘합병’을 둘러싸고 100억원대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4월 현대오토에버, 엠엔소프트, 오트론 3사 합병이 빌미가 됐다. 현대오토에버에 흡수합병된 엠엔소프트의 소액주주들은 기업가치가 부당하게 평가절하됐다고 주장한다. 합병이 현대오토에버만 이익을 보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그 중심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정 회장은 합병 당시 현대오토에버 지분 9.57%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지난해 4월 엠엔소프트, 오트론과 합병한 뒤 새롭게 변한 현대오토에버의 홈페이지 / 현대오토에버 홈페이지 갈무리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은 합병의 불공정성을 따지기 위해 지난해 1월, 민·형사상 소송을 준비했다. 그런데 소송대리를 맡았던 법무법인이 업무 착수 6개월 만에 돌연 사임했다. 현대차그룹 사건을 수임하고 있어 ‘이해충돌’이 발생한다는 이유다. 해당 법무법인만 믿고 있던 소액주주들은 혼란에 빠졌다. 지난해 11월에서야 어렵게 민사소송만 이어가게 됐다. 현대오토에버의 사례는 ‘소액주주들이 왜 대기업을 상대로 이기기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을 ‘합병’할까 엠엔소프트는 1998년 설립돼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을 맡았다. 자율주행에 필요한 정밀지도,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현대차의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등에 엠엔소프트의 기술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엠엔소프트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해 약 16.3%의 매출증가율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증가율은 약 24%, 당기순이익 증가율은 약 22%에 달했다. 성장을 거듭하던 엠엔소프트는2020년 12월 현대차그룹이 계열사 간 합병을 결정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현대오토에버가 엠엔소프트, 오트론을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합병의 특징은 상장기업인 현대오토에버와 비상장기업인 엠엔소프트, 오트론 간의 합병이라는 점이었다. 주식회사 간 합병은 각 회사 주식의 상대적 가치를 의미하는 ‘합병비율’이 가장 중요하다. 상장기업의 경우 유가증권 시장 등을 통해 가치가 확인된다. 반면 비상장기업은 보다 복잡한 계산을 거쳐 기업의 ‘본질 가치’를 도출해야 한다. 본질 가치를 계산하는 규정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5 제1항 제2호에 있다.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 간 합병의 경우, 비상장기업의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산술평균한 가격’을 비상장기업의 ‘본질 가치’로 본다. 금융위원회는 ‘증권의발행공시등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을 통해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각각 1:1.5로 가중산술평균하도록 더욱 구체화했다. 그런데 순자산을 발행주식의 총수로 나눠 얻는 ‘자산가치’와 달리 ‘수익가치’에 대한 정의는 상대적으로 모호하게 기술돼 있다. ‘일반적으로 공정하고 타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모형을 적용해 합리적으로 산정한다’가 설명의 전부다. 규정의 모호함은 갈등을 만든다.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 간 합병비율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기업이 미래에 얻을 수 있는 수익가치는 전적으로 회계법인 등의 외부평가기관 재량에 맡겨진다. 이들이 결정한 미래 수익가치에 따라 기업의 전체 가치가 달라진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재벌그룹 계열사 간 합병 사례에 적용되는 경우다. 예를 들어, 특정 그룹 내 계열사가 합병으로 이득을 봐야 하는 상황이면 피합병 계열사는 자사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한 데이터값을 평가기관에 제시할 수 있다. 또 평가절하된 기업가치에 아무런 이의제기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이 1년 넘게 현대차그룹과 싸우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절차’만 지키면 ‘공정’은 필요없다 지난해 2월 확정된 현대오토에버와 엠엔소프트의 최종 합병비율은 1:1.0022547이었다. 이 비율이 공정했는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따져볼 수 있다. 문제의 ‘미래 수익가치’ 산정에 앞서 우선, 합병 결정 당시의 기업가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대오토에버와 엠엔소프트 중 ‘어느 쪽이 더 돈을 효율적으로 벌고 있었느냐’다. 이는 각 기업이 주식회사인 만큼 주당 수익가치로 비교해보면 간단히 확인된다. 현대오토에버의 경우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약 1조1000억원 수준의 매출과 600억원 내외의 영업이익, 500억원 정도의 당기순이익을 큰 변동 없이 유지했다. 반면 엠엔소프트는 같은 기간 매출이 약 1500억원에서 2700억원으로 상승했다. 영업이익도 약 140억원에서 346억원 수준으로 상승했고, 당기순이익 역시 약 140억원에서 312억원으로 상승했다. 이를 각 기업이 발행한 총 주식수로 나눠보면 매해 주당 수익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 엠엔소프트의 총 발행주식수는 414만5000주였다. 현대오토에버는 2100만주다. 합병 발표 직전해인 2019년 엠엔소프트의 영업이익은 현대오토에버에 비해 약 2.7배, 당기순이익은 약 3배 더 높았다. 기업 활동을 바탕으로 비상장기업의 미래 수익가치도 추정해볼 수 있다. 추세는 미래 수익가치를 예측할 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다. 합병 직전 5년간, 엠엔소프트의 추세는 ‘성장’을 특징으로 한다. 2020년까지 반영한 엠엔소프트의 최근 5년간 연평균 매출액성장률은 약 12.2%였다. 영업이익 증가율은 18.6%, 당기순이익 증가율은 13.4%였다. 그런데 회계법인이 산정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미래 5개년간 연평균 매출액성장률은 5.2%로 급감한다. 이마저도 2025년 이후에는 영구 성장률을 1%로 적용했다. 엠엔소프트, 오트론과 합병한 뒤 현대오토에버 홈페이지에는 정밀지도 기술을 소개하는 부분이 추가됐다. / 현대오토에버 홈페이지 갈무리 정밀지도를 바탕으로 한 자율주행은 자동차 업계의 미래로 평가받는 핵심기술이다. 현대차 역시 자사의 자율주행 수준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지난 6월 9일에는 현대오토에버 사옥으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을 초청해 레벨4 자율주행이 적용된 차를 시범운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자율주행 기술을 핵심으로 하는 엠엔소프트는 성장률이 급감하고, 2025년 정체기에 빠지는 것으로 가정했다. 더욱 독특한 건 엠엔소프트 경영진이 자사 매출액성장률의 ‘급감’ 및 ‘정체’ 평가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해당 추정치대로라면 현대오토에버 역시 엠엔소프트 합병을 뒤로 미룰수록 더 싼 가격에 합병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을 지불한 셈이다. 일반적인 기업 간 합병에선 찾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상황이다. 합병비율의 공정성은 1주당 가격으로 환산해 따져볼 수도 있다. 최종 합병비율대로 엠엔소프트 1주 가격을 환산하면 9만2445원이다. 이를 실제 거래된 가격과 비교해봤다. 비상장기업의 주식 거래는 장외주식 거래 사이트인 ‘38커뮤니케이션’, ‘피스톡’, ‘증권플러스비상장 거래앱’ 등에서 가능하다. 각 사이트에서 엠엔소프트 합병이 결정된 2020년 12월 10일 이전 1개월간 거래가격은 최저 10만9000원에서 최고 15만4500원이었다. 장외주식 거래소에서 형성된 가격을 참고하는 것은 금융감독원이 비상장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만든 ‘외부평가업무 가이드라인’에서 규정하는 방식이다. 해당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소액주주들이 계산한 엠엔소프트 1주당 적정가격은 최소 13만3779원에서 최고 13만7639원이다. 합병비율로 환산하면 현대오토에버와 엠엔소프트는 1:1.45~1.49 수준이 된다. 합병비율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현대오토에버 공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합병비율을 수차례 조정했다. 실제로 현대오토에버와 엠엔소프트의 합병비율은 처음 1:0.9581984에서 1:0.9870764로 조정됐다가 최종적으로 1:1.0022547로 재조정됐다.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의 지속적인 이의제기와 금감원의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 등으로 가능했다. 금감원은 ‘증권신고서 중 중요사항에 관한 거짓 기재, 표시가 있거나 표시 내용이 불분명해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최종합병가액은 직전가 대비 1400원 상승했다. 이는 2021년 3월 중 열릴 예정이었던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지급할 배당금 액수(1400원)와 같다. 즉 엠엔소프트의 미래 수익가치를 계산할 때 ‘확정되지 않은 배당금’을 부채로 넣어 수익가치를 떨어뜨렸다가 단순히 원상복구시켰다는 의미다. 이는 피합병 기업의 본질 가치를 재평가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CES 2022’ 보도발표회에서 로봇개 스폿과 함께 무대로 오르고 있다. / 현대차 제공 금감원에 해당 문제들을 문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합병비율이 공정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금감원이 아니다”며 “합병비율을 어떤 근거를 통해 산정한 것인지 공시를 통해 주주들에게 잘 설명했는지를 감독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가치 평가에 대한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이는 강제사항도 아니고 모든 경우에 100%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회계법인 등 외부 평가기관을 감독하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관계자는 “그렇기는 하지만 합병비율이 공정한지는 결국 투자자들이 판단해 주주총회에서 승인하는 것”이라며 “금감원은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만 감독한다”고 답했다.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이 대주주에 맞서 승리하는 사례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정리하자면, 한국에서 합병비율의 공정성을 감독하는 곳은 없다. 금감원이 합병비율 산정 절차를 감시하긴 하지만, 최종 비율의 공정성과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 결국 권리를 구제받으려면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처럼 사후 소송을 내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소액주주가 대기업을 이길 수 없는 이유 문제는 대기업이 상대인 경우 소송제기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다. 소송을 대리할 법무법인 물색부터 쉽지 않다. 유명 법무법인일수록 대기업 사건을 수임하는 경우가 많아 ‘이해충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를 대리하다 사임한 A법무법인의 경우 현대차그룹 사건을 언제 수임했느냐가 쟁점이 된다. 해당 법무법인 관계자는 “기존에 우리가 현대 쪽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하지 못했다. 소송 진행 도중에 이해충돌 상황을 확인해 사임했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은 “그럴 리 없다”고 반박한다. 소액주주 B씨는 “처음 소송을 맡기고 싶었던 법무법인이 ‘이해충돌’ 문제로 현대차그룹 소송을 맡을 수 없다고 해서 법무법인을 최종 선임할 때 이 문제를 주의 깊게 살폈다”며 “결과적으로 사임한 법무법인이 먼저 ‘문제없다, 꼭 맡겨달라’고 해서 사건을 맡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법무법인 관계자로부터 ‘앞으로 그쪽 사건을 맡을 일이 많을 것 같아 어쩔 수 없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현대오토에버 측에 해당 법무법인과의 관계를 물었다. 현대오토에버 관계자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6월 9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현대오토에버 사옥에서 열린 자율주행차 ‘로보라이드’ 시범서비스 시승 행사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소액주주들을 대리한 손해배상 소송을 주로 맡는 법무법인 랜드마크의 이남억 변호사는 “당시 소송은 엠엔소프트 경영진을 피고로 해서 준비 중이었다고 들었다”며 “엄밀히 따져 현대차그룹 관련 사건을 맡고 있는 것과 어떤 부분이 이해충돌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C법무법인 대표 변호사는 “변호사업계의 경쟁이 치열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방식의 일처리는 업계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라며 “해당 법무법인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 해도 처음 사건을 수임할 때 이해충돌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것인지, 6개월이나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어떻게 이해충돌을 알게 됐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소송을 통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이 한정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소액주주들은 현대오토에버가 아닌 당시 엠엔소프트의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엠엔소프트 주주들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지 않은 ‘책임’ 문제를 따지고 있다. 엠엔소프트의 D임원은 합병회사인 현대오토에버의 상무·전무 등을 거쳐 엠엔소프트에 부임한 인물이다. 또 다른 임원 E씨는 현대오토에버에서 재무팀장을 지냈다. F임원은 현대차의 인포테인먼트 개발실장을 거쳤다. 돌고 돌아 현대차그룹과 연결되지만 이들 개개인이 아니면 기업에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이 변호사는 “엠엔소프트 이사들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지만 최종 의사결정을 누가 하느냐”며 “결국 현대차그룹이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현대오토에버 측에 ‘합병을 기업가치에 대한 정상평가를 근거로 한 것인지’, ‘합병비율을 왜 수차례 조정했는지’, ‘소액주주들의 소송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총 9가지 질문을 던졌고,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현대오토에버 관계자는 모든 질문에 “우리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아닌 만큼 확인해주기 어렵다”며 “자본시장법에 의거한 본질가치 평가 방법을 적용해 합병비율을 산정했고, 이 또한 외부 회계법인으로부터 평가를 받아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현대오토에버 합병이 정 회장의 그룹 승계와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현대차그룹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공정’을 물었는데 ‘절차’로 답했다.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것과 ‘공정하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절차가 공정을 담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합병은 공정한가 사실 현대오토에버의 합병 논란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최근 발생한 동원그룹 계열사 간 합병 논란 역시 이와 닮았다. 상장회사인 동원산업이 비상장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합병비율이 문제가 됐다. 두 기업 간 합병비율은 각각 1:3.83553으로 결정됐다. 상대적으로 동원산업은 저평가,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고평가됐다는 의미다. 고평가된 동원엔터프라이즈는 오너 일가의 지분이 99.6%에 달했다. 최대주주인 오너가 돈을 버는 구조다. 소액주주들이 반발하자, 결국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비율은 1:2.7023475로 조정됐다. 현대오토에버 역시 합병으로 최대주주가 이득을 얻는다. 현대오토에버의 최대주주는 법인인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모비스 순이다. 4번째가 바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합병 후 정 회장의 현대오토에버 지분은 9.57%에서 7.33%로 줄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산에서 부채를 뺀 자본은 약 134억원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분 가치로 따지면 합병 발표 전 약 1000억원대 수준에서 현재는 2500억원 수준으로 상승했다. 반면 합병으로 손해를 본 것은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다. 물질뿐만 아니라 이 문제에 1년이 넘게 묶여 있는 데서 오는 고통도 크다. 소액주주 G씨는 “내용증명을 보내도 현대차그룹 쪽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다”며 “언론 역시 사건을 제보해도 선뜻 취재에 나서지 않는다. 한 경제지는 현대차그룹 광고 때문에 미안하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제도적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런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 인수합병 전문가는 “모든 문제가 비상장회사의 가치 평가가 소수 회계법인 등의 재량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며 “금감원은 평가기관이 공정하게 일을 처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현실이 그러한가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제도가 허술하게 유지된다면 오너 입장에서는 합병으로 돈도 벌고, 지배구조 개편도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역시 “현행법 기준으로는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불공정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적어도 기업의 인수합병 시 평가기관 등에 대한 금감원의 감리 권한이라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제도로는 검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는 이상 문제를 바로잡을 길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의 바람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소액주주 H씨는 “처음에는 손해배상액을 생각하며 싸웠는데, 이제는 소액주주들에게 불리한 시장을 바로잡는다는 생각으로 싸운다”며 “정의선 회장이 주식을 보유한 현대오토에버만 합병으로 이득을 보는 구조는 누가 봐도 이상한 일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이 합병이 정말 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 [건강설계]‘눈’을 위협하는 당뇨 합병증(2022. 01. 03 13:34)
- 2022. 01. 03 13:34 건강
- 미국에서는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 심각한 구인난이 빚어졌는데, 그중 뜻밖의 직종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산타클로스다. 산타를 찾는 수요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120%가 늘었지만 같은 기간 산타를 하겠다는 사람은 약 15% 줄었다. 현지에서는 코로나19가 이번 산타 구인난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고령과 질병은 물론이고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산타 역할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한 것이다. 당뇨망막증 환자의 시야 / 경향자료 산타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대화를 하는 등 어린이들과 밀접 접촉해야 하는데, 미국의 미성년자 코로나19 신규 감염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산타는 주로 평균 60대 중반, 몸무게는 100㎏ 이상으로 당뇨병 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코로나19 고위험군과 일치한다. 극한 직업이 따로 없다. 이처럼 이번 산타 부족 사태의 한 축을 담당한 당뇨는 우리나라에서도 5명 중 1명이 앓고 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혈당이 조금 높거나 낮아지더라도 당장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지만 10년, 20년을 거쳐 만성이 될 경우 다양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당뇨병 환자의 30~40% 정도에게 합병증이 찾아오며, 오랫동안 당뇨를 앓은 환자일수록 그 위험도가 더욱 높아진다. 당뇨 합병증은 눈, 심혈관계, 콩팥 등 다양한 장기에서 발생하지만, 눈에 일어나는 합병증이 가장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당뇨망막병증, 당뇨병성 황반부종, 당뇨병성 백내장, 녹내장 등이 있다. 이들은 당뇨병이 몸속의 혈관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실제로 당뇨병 환자의 10명 가운데 6명은 눈에 이상이 있다고 한다. 당뇨망막병증은 망막의 미세혈관에 ‘드루젠’이라고 하는 노폐물이 쌓이면서 혈관이 손상되고 시력이 떨어지는 질환이다. 증상이 악화되면 망막 조직이 떨어지는 견인성 망막박리, 황반을 붓게 만드는 황반부종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24~70세의 성인의 흔한 실명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당뇨병성 황반부종은 망막 중심부에 부종이 생겨 발생하는 질환이다. 황반은 물체의 상이 맺히는 곳으로, 시세포의 대부분이 모여 있는 기관이기도 하다. 당뇨병으로 황반의 혈액순환이 막히면 신생혈관이 생겨나는데, 약해진 혈관으로 물이나 피가 누출되면서 눈에 고이게 된다. 다음은 당뇨병성 백내장이다. 당뇨로 인해 혈당이 과도하게 높아지면 혈액이 다소 끈적한 상태가 되고, 이 당 성분이 수정체에 점점 쌓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투명하던 수정체가 혼탁하게 변해 백내장이 발생하고, 시력 저하 및 실명으로 이어진다. 국내 당뇨병 환자의 50%는 이미 백내장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영순 안과전문의당뇨병으로 인해 눈 속에 미세혈관이 손상되기 시작하면, 우리의 몸은 새로운 미세혈관(신생혈관)을 만들어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려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혈관이 아니기에 여러 문제를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방수가 지나가는 길을 막으면 눈의 압력을 높아져서 녹내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당뇨로 인한 합병증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지속적인 혈당 관리와 생활습관 개선 노력이 중요하다. 체중 관리, 혈압 관리, 고지혈증 관리, 금연 등이 필수다. 또한 각종 수치 체크와 만성 합병증 조기 발견 및 적절한 치료를 위해 3개월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내과와 안과 등을 방문해 검사받을 것을 권한다.
- 건강설계
- [건강설계]당뇨병으로 인한 눈 합병증 주의(2021. 04. 09 11:40)
- 2021. 04. 09 11:40 건강
- 우리나라 성인 5명 중 1명이 당뇨로 고생하고 있다. 당뇨는 중장년층 이후 연령대의 흔한 만성질환으로 그만큼 예방과 치료에 관심이 높다. 당뇨 질환의 문제점은 야금야금 합병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당뇨 그 자체보다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한 번 발병하면 치료가 쉽지 않은 당뇨 합병증이기 때문이다. 박영순 안과전문의당뇨 합병증은 눈, 심혈관계, 콩팥 등 다양한 장기에서 발생한다. 그중에서 눈에 일어나는 합병증이 가장 많다. 대표적인 당뇨 눈 합병증으로는 당뇨망막병증, 당뇨병성백내장, 황반변성, 황반부종 등이 있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실명을 유발하는 무서운 합병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하면 당뇨병으로 인한 눈 합병증 진료 환자는 2016년 기준으로 37만6469명에 이른다. 당뇨병성 황반부종은 망막 중심부에 부종이 생겨 발생하는 질환이다. 시력의 중심을 담당하는 황반은 물체의 상이 맺히는 곳으로, 시세포의 대부분이 황반에 모여 있기도 하다. 당뇨병으로 황반의 혈액순환이 막히면 신생혈관이 생겨나는데, 약해진 혈관으로 물이나 피가 누출되면서 눈에 고이게 된다. 황반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물체가 휘어 보이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시야 중심부에 검은 점이 보이기도 한다. 눈앞이 침침하고 글자가 흐릿하게 보이는 증상도 동반된다. 초기에는 크게 자각 증상이 없어 이를 노안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시야에 큰 지장이 있을 때까지 방치하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아 질환을 발견하기도 한다. 황반부종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시력검사 이외에도 안저검사, 형광안저혈관조영술(FAG), 빛간섭단층촬영(OCT) 등이 포함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를 통해 조기 발견되면 레이저로 손상된 혈관을 없애거나 터진 혈관 부위를 막는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가 적용된다. 안구 내의 신생혈관의 성장을 억제하는 항체 주사 치료법이 시행되기도 한다. 당뇨로 인한 합병증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지속적인 혈당 관리와 생활습관 개선 노력이 중요하다. 또한 콜레스테롤이나 중성 지방 수치가 높으면 황반부종의 위험이 2배 이상 높아지므로 꾸준한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로 표준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혈압을 높일 위험이 있는 흡연과 음주는 반드시 금해야 한다. 또한 3~6개월에 1번씩 안과 및 내과 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
- 건강설계
- 현대차그룹의 이상한 합병 시도(2021. 01. 22 15:42)
- 2021. 01. 22 15:42 경제
- ㆍ엠엔소프트, 흡수합병 앞두고 가치 평가 절하돼… 불공정 논란 현대차그룹 계열사 간 합병이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다. 현대오토에버가 엠엔소프트, 오트론을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엠엔소프트의 가치가 부당하게 평가절하됐다는 것이다.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엠엔소프트 지분을 가졌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겠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역시 합병과 관련해 2020년 12월 30일, 지난 1월 19일 오토에버 측에 두차례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다. 현대오토에버 홈페이지에서 엠엔소프트, 오트론과의 합병 소식을 알리고 있다. / 현대오토에버 홈페이지 갈무리 “합병비율 불공정” 소액주주들 반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 11일 그룹 내 분산된 소프트웨어 역량을 통합하겠다며 상장회사인 오토에버가 비상장회사인 엠엔소프트, 오트론을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상장 후 10만원에 미치지 못했던 오토에버 주가는 합병 발표 후 최고 16만1500원까지 상승했다. 반면 엠엔소프트 주가는 장외시장에서 40% 가까이 급락했다. 시장은 이 합병이 오토에버에 호재라고 본 것이다. 실제 합병 과정도 오토에버에 유리하게 진행됐다. 주식회사 간 합병은 각 회사 주식의 상대적 가치를 의미하는 ‘합병비율’이 중요하다. 합병으로 소멸되는 회사의 주식을 존속하는 회사의 주식으로 교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존속하는 A기업과 소멸되는 B기업 합병비율이 1 : 0.5라면 A기업 주식 1주는 B기업 주식 2주와 교환된다는 의미다. 오토에버와 엠엔소프트의 합병비율은 1 : 0.9581894로 책정됐다. 하지만 최근 2년간 주당 매출액, 주당 영업이익, 주당 당기순이익을 비교해 보면 엠엔소프트가 오토에버보다 모두 높았다. 2020년 3분기까지 엠엔소프트는 오토에버보다 주당 영업이익은 약 1.7배, 주당 당기순이익은 약 2.17배 높다. 이는 공개되지 않은 2020년 4분기 손익계산서는 반영하지 않은 수치다. 주가가 폭락한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은 합병비율에 반발하며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카페장 C씨는 “기업가치를 비정상적으로 평가절하한 불공정 합병”이라며 “소액주주 100여명이 모여 금감원에 이의제기 및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합병비율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비상장회사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에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합병비율 산정방식은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시행 세칙’에 명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상장회사의 가치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가격을 토대로 책정된다. 이에 따라 재량이 개입될 여지가 적다. 문제는 비상장회사가 합병에 포함된 경우다. 비상장회사의 가치는 재무제표를 토대로 한 ‘자산가치’와 미래 수익창출 능력인 ‘수익가치’를 가중산술평균해 구한다. 이를 본질가치라고 한다. 가치 평가는 회계법인과 해당 기업이 직접 맡는다. 별개의 두 기업이 합병한다면 몸값을 높게 받기 위해 수익가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 그룹의 계열사 간 합병이라면 독특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소멸되는 회사 스스로 ‘수익가치’를 낮게 책정해 합병 후 존속하는 회사에 이익을 몰아줄 수 있다. 특히 합병회사들의 지배주주가 같다면 사실상 지배주주 혼자 회사를 사고파는 거래를 진행하는 셈이다. 실제로 오토에버, 엠엔소프트, 오트론 3개 기업의 지배주주는 모두 현대차그룹이다. 엠엔소프트는 수익가치 평가에서 스스로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다. 먼저 매출액 성장률이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엠엔소프트 매출액의 연평균 성장률은 12.2%다. 하지만 수익가치 산정에는 향후 5년간 매출액 성장률을 5.2%로 낮춰 잡았다. 또 자율주행의 핵심기술인 정밀지도 기술을 가졌음에도 2025년부터 사실상 성장이 멈춘다고 전망했다. 2025년부터 영구 성장률을 1%로 적용한 것이다. 엠엔소프트의 독특함은 또 다른 합병회사인 오트론과 비교해도 드러난다. 엠엔소프트 소액주주를 대리하는 김종식 변호사는 “오트론은 향후 5년간 매출액 성장률을 23%로 잡았다”며 “현대모비스에 양도한 반도체 사업을 빼면 오트론의 연평균 성장률은 -8%다”고 말했다. 오트론은 소액주주 없이 현대차와 그 계열사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근거로 소액주주들은 지난해 12월 22일 금감원에 이의제기를 했다. 금감원은 이를 인용해 오토에버 측에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지난 11일 엠엔소프트의 본질가치는 2664원 상승한 9만1045원으로 재공시됐다. 두 회사 간 합병비율로 따지면 1 : 0.9870764로 소폭 상승이다. 소액주주들은 이날 다시 금감원에 이의제기를 했다. 금감원은 지난 19일 이를 또 인용하며 합병에 여전히 문제가 있음을 밝혔다. 오토에버 측 관계자는 “법에 따라 문제없이 기업가치를 산정했다”며 “합병 시 가치 평가 관련해서 금감원의 지적을 받는 것은 대부분 겪는 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정정요구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신고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의선 회장 합병 후 자산 크게 증가 그렇다면 합병으로 돈을 버는 것은 누구일까. 오토에버의 지배구조를 보면 현대차, 기아차, 모비스 순서로 지분율이 높다. 이들 그룹 계열사 외에 4번째로 높은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다. 오토에버 지분 9.57%를 소유했다. 지난 11일 공시된 합병비율로 계산해 보면 정 회장은 합병 후 오토에버 지분율이 7.35%로 하락한다. 하지만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순자산가치는 27.53% 증가한다. 돈으로 환산하면 136억원 증가하는 셈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오토에버는 정의선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향후 현대차그룹 내에서 더 성장할 수 있다”며 “오토에버 주식 가치가 오르면 정 회장은 종잣돈을 마련해 향후 지배구조 개편에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내에서 불공정 합병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에도 모비스의 일부 사업부를 글로비스와 합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모비스 지분을 갖고 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합병비율이 글로비스에 유리한 점을 이유로 반대해 무산됐다. 정 회장은 글로비스 지분 23.29%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번 합병 시도는 2018년과 닮았지만 차이점은 있다. 주주 구성에 엘리엇과 같은 거대 기관 없이 이른바 ‘개미’들만 있다는 점이다. 오토에버를 중심으로 한 합병시도가 무산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 [특집]삼성물산 합병무효소송 ‘안갯속’(2017. 12. 05 10:01)
- 2017. 12. 05 10:01 사회
- ㆍ1심서 삼성이 이겼지만 ‘청와대 개입 인정’한 다른 재판 판결이 2심에 영향줄 듯 2년 넘게 지속되어온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논란들이 속속 법원 판결을 통해 ‘중간 결산’되면서 반환점을 맞았다. 합병을 놓고 이해당사자 간 벌어지는 일성신약과 삼성물산의 법정공방 스코어는 현재 ‘1대 1’이다. 합병 무효소송에서는 삼성이 1심에서 승소했고, 합병 비율 관련 소송에서는 삼성이 2심에서 패소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각 담당 재판부마다 판단의 근거와 결론이 엇갈렸다. 삼성물산 합병건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깊숙이 연관된 사안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만 해도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양자 간 청탁이나 뇌물공여 사실이 있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 중 하나다. 합병을 둘러싼 소송이 민사소송, 박 전 대통령 등의 재판이 형사소송임에도 양 사안이 각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15년 7월17일 당시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안건을 놓고 투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합병소송 1라운드는 삼성 ‘승리’ 이 와중에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토록 종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은 것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판결에서 문 전 장관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찬성을 종용했다고 적시했다. 이는 ‘청와대-국민연금-삼성물산 합병’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법원이 인정한 최초의 사례로서 관련된 민·형사소송 모두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합병 무효소송의 경우 1심에서는 다루지 못한 새로운 쟁점이 나온 것과 마찬가지여서 2심에서 이를 놓고 치열한 법리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주식 매수가격 결정소송과 합병 무효소송 등 2건이다. 삼성물산은 2015년 5월 제일모직과 합병하기로 결의했고, 같은 해 9월에 최종 합병을 마무리 지었다. 일성신약은 당시 삼성물산의 지분 2.11%(33만여주)를 가진 주요 주주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일성신약은 삼성이 제시한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적용됐다며 합병에 반발했다. 삼성이 당시 제시한 합병 비율은 ‘제일모직(1):삼성물산(0.3500885)’이었다. 합병이 완료된 뒤 일성신약의 지분율은 합병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반대 속에 합병이 진행되자 일성신약은 삼성물산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 삼성물산은 주당 5만5767원을 매수가로 제시했고, 일성신약은 이에 반발해 합병에 반대했던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등과 함께 주식 매수가격 결정소송(비송사건)을 제기했다. 합병 비율이 불리하게 산정된 만큼 주식 매수가를 올려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법원은 1심에서 삼성물산 손을 들어줬고, 일성신약은 항소와 함께 지난해 2월 합병 무효소송을 추가로 제기한다. 주식 매수가 인상이 1심에서 막히자 합병을 아예 무효화하기 위한 본안소송을 낸 셈이다. 합병 무효소송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 주식 매수가 소송의 2심 결과가 지난해 5월 나왔다. 1심 패소 후 엘리엇이 소송에서 발을 뺀 가운데 2심에선 일성신약이 승소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 측이 제시한 주식 매수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며 “매수가를 합병설이 불거지기 전인 2014년 12월 18일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산출한 6만6602원으로 올리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삼성물산은 즉시 상고해 사안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합병 무효소송의 경우 무려 20개월가량 공방을 벌인 끝에 10월 말 1심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일성신약이 제기한 7가지의 합병 무효사유를 모두 인정하지 않고 삼성물산의 손을 들어줬다. 일성신약 역시 1심 결과에 항소해 현재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청와대 개입 확인’이 몰고온 변수들 민사에서 중요한 건 ‘돈’이다.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도 원치 않는 합병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합병 무효소송에서는 패소했더라도 주식 매수가 소송 2심에서 승소한 게 일성신약에 유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진 않다. 주식 매수가 소송의 경우 정식 재판절차를 모두 따르지 않는 ‘비송사건’이다. 주식 매수가를 둘러싼 양측 이견에 대해 법원이 조정 내지는 협의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판결의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 건의 본안소송격인 합병 무효소송의 최종 결과에 따라 주식 매수가 소송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합병 무효소송의 경우 재판부가 주식 매수가 소송에 대해 “해당 사안은 합병 비율이 현저하게 불공정한지 심리하는 게 아니다”라며 당시 합병 비율 산정이 합병 무효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합병 비율 산정 자체 역시 “자본시장법 등 절차에 따라 산정됐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이 막 반환점을 돈 현 시점에서는 합병 무효소송에서 일단 승소한 삼성이 승기를 잡은 셈이다. 삼성에 유리하게 흐르던 재판은 11월 14일 문 전 장관의 2심 판결이 나오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유지해 1심과 같은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삼성 합병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 개입이 있었다고 판시했다. 앞선 6월에 열린 1심 재판의 경우 문 전 장관의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의 개입을 따로 판결문에서 언급하지는 않았다. 법원이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음을 인정한 건 처음이다. 올 8월 25일 이재용 부회장의 1심 판결에서도 당시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 청탁을 했음이 인정된다”고 밝히면서도 “개별 사안인 삼성물산 합병건에 대해서는 청탁을 했거나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이 건에 권한 행사를 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법원이 합병과정에 박 전 대통령이 개입됐다고 확인한 부분은 합병 무효소송의 2심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성신약은 7가지의 합병 무효사유 이외에도 추가 의견 제시를 통해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 합병 찬성 대가로 최순실씨에게 금전적 이익을 제공한 건 상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합병 무효소송의 1심 재판부는 이 주장에 대해 “별개의 실체법적 무효사유로 보인다”면서도 이 부회장의 1심 판결 내용을 인용하면서 이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 전 장관의 2심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의 개입이 인정된 이상 합병 무효소송의 2심에서는 이 사안에 대한 재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법조계는 내다보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9월 29일 열린 국민연금 제6차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진행상황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일성신약이 주장하는 상법 위반이 성립되려면 박 전 대통령의 개입 외에도 이 부회장이 합병 찬성의 대가로 뇌물을 제공했다는 사실도 확인돼야 한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항소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도 합병 무효소송에 영향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항소심에서 이 부회장이 합병 대가로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일성신약이 주장하는 상법 위반 역시 성립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삼성물산 합병 관련 형사재판이 합병 무효소송 1심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재판부는 합병 자체의 필요성을 전제로 예정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형사판결과 상충되는 부분에 대해 해명하듯 논리를 편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의 개입이 확인된 만큼 2심에서는 이를 집중심리해 위법한 사실이 없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개입 확인으로 다시 민사재판의 기류가 안갯속으로 들어가면서 재계는 양측 간 화해나 조정의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일성신약이 2건의 민사소송을 모두 대법으로 가져가기 이전에 원만한 타협을 통해 소를 취하하거나 하는 방식이다. 일성신약의 경우 소송을 통해 결말을 보기보다는 협의를 통해 해결하자는 의사를 나타낸 상태다. 일성신약의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인 윤병강 회장은 올 9월 합병 무효소송 1심에 출석해 “고 이병철 회장을 봐서라도 대법원 가지 말고 사건이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윤 회장의 경우 1950년대 무역업을 하면서 삼성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을 알게 됐고, 이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회장의 뜻을 존중해 일성신약은 합병 무효소송 1심 선고를 앞두고 별도의 최종변론 없이 의견서를 통해 “삼성 측의 곤란한 입장을 이해한다. 원만한 해결을 원한다”고 밝혔다. 다만 ‘원만한 해결’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일성신약 관계자는 “윤 회장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현 시점에서는 2건의 민사사건을 모두 진행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화해나 조정 통한 원만한 타협 가능성도 재계에서는 삼성물산과 일성신약이 주식 매수가에서 일정 부분 인상한 가격으로 합의를 보고 합병 무효소송은 취하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성신약은 민사소송의 당초 목적이었던 금전적 손실의 만회를, 삼성물산은 합병 무효소송에 따른 여러 리스크를 상쇄할 수 있어 서로 이익이라는 것이다. 주식 매수가격의 경우 큰 금액을 들이지 않고도 양측 간 합의가 가능하다. 주식 매수가 소송 2심에서 나온 액면 그대로 매수가를 높인다 해도 삼성물산이 추가로 부담할 돈은 35억원(구 삼성물산 주식 기준)으로 삼성에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35억원이면 일성신약의 지난해 당기순이익(30억원)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의 주식 매수가격 문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한이 이미 한참 전에 지나 양측 간 합의를 보더라도 과거 주주로부터 추가적인 이의제기 우려가 없다”며 “일성신약 외 추가적으로 매수가에 문제를 제기한 주주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다만 삼성물산이 이 같은 화해나 조정을 고려할지는 불확실하다. 판결이 아닌 합의를 통해 주식 매수가를 인상해줄 경우 삼성물산 스스로 합병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합병의 정당성도 훼손될뿐더러 이미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주주 등으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 손실보전 문제를 둘러싼 현 일반주주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삼성물산의 경우 합병 후 특히 구 삼성물산 주주들의 불만이 크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합병 비율을 감내했지만 막상 합병 후 주식가치가 기대에 못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 40대 삼성물산 주주는 “합병 비율을 고려할 때 삼성물산 주가가 17만원은 넘어야 합병으로 인한 주식가치 하락이 없지만 최근 주가가 13만원대에 머물러 있어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크다”며 “내년 3월에 있을 주주총회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이 합병 무효소송에서는 이미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 급할 게 별로 없고, 매수가 문제의 경우 판결을 통해 최종 해결을 보는 게 더 명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화해나 조정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도 있다.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싼 논란과 함께 꾸준히 거론돼온 문제가 바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가들에 대한 행동원칙을 규정한 자율규범(가이드라인)이다.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기업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계열사에 대한 편법지원 등 불투명한 경영을 견제하자는 취지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또다시 삼성물산 합병 논란과 같은 사안에 휘말려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와 시민단체의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한국지배구조원 등 민간 주도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가 공표됐지만 아직 크게 활성화되지는 못한 상태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참여할 경우 제도의 정착과 영향력 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전망이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1일 열린 국민연금 제7차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투자회사 가치 향상을 추구하고 기금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칭 사회책임투자전문위원회를 설치해 공적자금의 투명성과 윤리성도 재고하겠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가습기 살균제 기업이나 분식회계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다”며 “투자 방향을 기금운용위원회 차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내년 하반기 가입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을 앞두고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관련 연구용역도 진행 중이다. 11월 15일 고대 산학협력단은 ‘책임투자 활성화 및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 정책토론회를 열어 연구용역 중간 결과를 공개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기도 했다. 연구용역에서는 국민연금이 직접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필요한 방안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주권을 위탁운용사에 맡기는 것보다는 국민연금이 보유지분을 노출하고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기금운용위원회의 조직개편, 위탁운용사나 자문기관 등에 지급하는 보수 상향 등 실무적인 의견들도 토론회에서 오갔다. 토론회 내용은 1일 열린 기금운용위원회에도 보고됐다. 고대 산학협력단은 12월 20일까지 최종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와 국민연금은 이를 바탕으로 2018년 하반기에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을 공식화할 방침이다.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동시에 추진 중이다. 금융위원회는 올 6월 을 발간한 데 이어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1월 9일 ‘외국인 투자자 대상 2017 회계개혁 IR행사’에서 “정부는 공적 연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분공시 의무 부담을 완화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서는 이른바 ‘5%룰’에 따라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이 있다면 1% 이상의 지분율 변동이 있을 경우 5일 내 관련 내용을 공시해야 된다. 이 경우 연기금의 투자전략이 노출될 가능성 등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경제개혁연대 등은 5%룰이 규정하는 ‘영향력 행사’의 개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한 국민연금이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를 하게 될 시점을 놓고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재계에서는 가입 이후에라도 기업들이 제기하는 경영권 침해 우려 등을 고려해 제도를 세부적으로 손보다 보면 실제 적용까지는 일정 기간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KB증권 김준섭 애널리스트는 “2018년 3월 정기 주총에서부터 적극적인 주주 관여 활동이 기대된다”며 “스튜어드십 코드가 활성화될 경우 국내 증시의 저평가 요인이 해소되고, 기관투자가들이 다수 보유하고 있는 종목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주주 친화 활동도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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