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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63 건 검색)

[우정 이야기] ‘재난적 폭염’에 고역···집배원 ‘업무 중지권’ 확대(2024. 08. 14 06:00)
2024. 08. 14 06:00 기타
절기상 입추지만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지난 8월 7일 서울 종로구 거리에 한 어린이가 더위에 지쳐 누워 있다. / 한수빈 기자 김세훈 경제부 기자 ksh3712@kyunghyang.com “도시 전체가 ‘습식 사우나’가 된 거 같아요.”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전국의 온열질환 환자는 지난 5월 20일부터 지난 8월 3일까지 1546명 발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명 많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지난 8월 5일까지 14명이다. 밤 최저기온이 25도를 웃도는 열대야는 올해 들어 지난 8월 4일까지 총 12일로 집계돼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불린 2018년의 기록(9.5일)을 넘어섰다. 집배원, 건설노동자, 택배기사 등 더위를 피하기 힘든 옥외 노동자들에게 폭염은 특히 고역이다. 고용노동부는 폭염 경보가 내려지거나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인 경우 매시간 15분씩 그늘에서 쉬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옥외작업을 중지하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강제 규정이 아니라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건설노동자 1575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부 가이드라인이 지켜진다고 응답한 비율은 18.5%뿐이었다. 우정사업본부는 업무 정지권 활용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나섰다. 조해근 우정사업본부장은 지난 7월 31일 대전대덕우체국을 방문해 폭염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폭염과 폭우 등 기상급변에 따라 집배원 스스로 업무 정지를 결정하는 ‘집배 업무 정지권’을 활용하고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업무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6월 ‘집배 업무 우편물 이용 제한 및 우편 업무 일부 정지에 대한 고시’ 개정안이 시행됐다.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체감온도가 38도 이상이면 집배 업무를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집배원은 온열질환 자각증상 점검표에 업무 중지를 요구할 수 있다. 또 체감온도가 35~38도일 경우에는 이륜차 배달업무가 단축되고 고령자, 유질환자 등 온열질환 민감군은 옥외작업이 제한된다. 업무 지연을 방지하기 위한 순차 배달, 송달기일 연장 등 방안도 마련됐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5월 10일부터 오는 9월 말까지를 ‘우정사업종사원 안전보건 특별관리기간’으로 정하고 온열질환 예방수칙 준수 등 이행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폭염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지난 8월 4일 중기예보에서 8월 14일까지 낮 기온이 30~36도로 평년 기온을 웃돌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폭염이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유럽연합(EU) 산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7월 21일 전 세계 지표면 평균기온은 17.09도로 1940년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 이후 13개월 연속 월간 최고기온을 경신하고 있다. 22대 국회에는 폭염 속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동자가 폭염이나 한파 등으로 생명과 안전이 위협될 때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박정 민주당 의원은 사업주가 노동자의 작업 중지 요청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작업 중지로 인한 손실을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우정이야기
정당 넘어 국회까지…‘당원 주권’ 확대될까(2024. 06. 03 06:00)
2024. 06. 03 06:00 정치
민주당 당원권 강화 당헌·당규 개정 추진…정당 내 다양성·민주주의 파괴 우려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월 2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당원 주권 시대 더불어민주당 부산·울산·경남 콘퍼런스’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죄송합니다. 지금은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입니다.” 익숙한 기계음이다. 대기했다. 2~3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통화를 종료할 것인지, 계속 기다릴 것인지 물었다. 대기 선택. 마침내 상담원이 전화를 받았다. 연결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9분 54초.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미 혈압이 올라 있을 터다. 관공서나 은행에 전화를 걸었을 때 익숙하게 겪는 상황이다. 기자가 전화를 건 곳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용건은 간단했다. 당 홍보국 일반번호 문의다. 민주당 홈페이지상 조직도에는 부서 전화번호가 없다. 1577로 시작하는 대표번호만 있다. 부서에 누가 근무하는지, 각 부서가 담당하는 역할이 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조직도는 달랑 한 페이지다. 지난 5월 23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당원 주권 시대 더불어민주당 부산·울산·경남 콘퍼런스’라는 행사가 열렸다. 기자는 국회 출입기자다. 이런 행사가 열린다는 사전공지를 받은 적 없다. 어떻게 된 일인가 알아봤다. 민주당 홈페이지를 뒤져봐도 관련 정보가 나오는 건 행사 당일 오전 11시 18분, 더불어민주당 홍보국에서 올린 토론회 공지 웹자보 딱 하나뿐이다(당 대표번호로 전화해 홍보국 일반번호를 문의한 이유다). 전날 저녁 배포된 당대표 일정에 이 행사에 참석한다는 것 이외에 어떤 내용의 행사인지도 알 수 없었다. 5월 23일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15주년이니 관련해서 마련된 행사일까. ‘갑툭튀’ 당원 주권 시대 콘퍼런스 열린 경위는 “그 행사는 안 갔는데… 당에서 한 행사니 사무처, 사무총장실이나 조직부총장실로 문의해보시겠어요?” 지난 5월 29일 통화한 한민수 대변인의 말이다. 당 사무총장실에 문의하니 총무국으로 돌렸다. 총무국과 통화했다. 행사는 당 총무국과 부산시당이 같이 주관한 것이라고 했다. 행사는 지난 4월 말부터 준비됐다고 했다. 총무국 측 설명이다. “저희가 기간을 충분히 가지고 준비하는 때도 있지만 갑자기 결정되기도 한다. 마침 노무현 대통령 추모식이 맞물려 있었다. ‘그래도 당원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냐’고 해서 잡힌 것이다. 4월 말부터 논의는 됐지만 워낙에 일정이 많다 보니까 공지를 빨리 못한 면이 있다.” 부산·울산·경남편이라고 했으니 충청이나 호남 등에서 순회 행사도 열리는 걸까. “정확하게 답할 수는 없지만, 현재 채상병 특검 쪽으로 집중하는 분위기여서 다른 지방일정은 당분간 잡히지 않고 있다.” 되물었다. ‘당원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냐’는 의견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일까. “정확하게 답변드리기가 어렵다. 누구 한 명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실무를 하는 단위다. 정무적 판단에 대한 것은 당 대변인실에 문의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도돌이표다. 그래도 ‘당원 주권 시대 더불어민주당 부산·울산·경남 콘퍼런스’의 내용은 유튜브에서 풀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이재명 당대표와 최고위원들 그리고 부산·울산·경남 지역위원장들이 단상에 자리 잡고 행사에 참여한 당원들의 제안과 질문에 답하는 행사다. 1시간 47분 동안 열렸다. 진행을 맡은 사회자에게 양해를 구한 뒤 이 대표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손을 든 발언자와 직접 대화했다. 이날 참석한 당원들은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이 대표는 “오늘 나온 이야기들을 당 사무처에서 정확히 기록해 올려 달라”고 당부했다. ‘당원 주권’은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민주당 내에서 등장한 화두다. 김민석 의원이 지난 4월 23일 원내대표 경선을 접으면서 꺼내 들었다. 개원을 앞두고 우원식 국회의장 민주당 후보 선출을 두고 전·현직 의원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우상호 전 의원이 라디오에 출연해 “당대표나 최고위원, 시·도당 위원장 같은 당직은 당원들이 뽑는 것이 맞지만 원내 직을 뽑을 때는 국회의원이 뽑는 것이 민주당에서 오랫동안 정착해온 선출 과정의 룰”이라고 주장한 것을 두고 양문석 의원이 “시대정신이 20년 전 기준으로 멈춘, 맛이 간 586 기득권”이라고 비난하면서 논란은 이어졌다. 장경태 의원이 단장을 맡은 ‘민주당 당헌·당규 개정 태스크포스’팀이 “국회의장단 후보 및 원내대표 선출 선거에 권리당원 투표 결과를 20% 반영”하고 전국대의원대회를 전국당원대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중앙당 전담부서로 ‘당원주권국’을 신설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계속됐다. “핵심은 정당이 정당 운영 이외에 공적 영역에 개입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다.”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의 말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다. 여당의 ‘1호 당원’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당원들의 총의만 반영해 국정 운영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형식 논리로만 따져도 맞지 않는다. 민주당을 찍은 사람이 모두 민주당원은 아니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이 민주당원들에게 국회의장 직선 권한을 준 건 아니지 않나.” 정당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당원 주권론? ‘당원 주권’을 앞세운 당원 권한 강화 흐름은 22대 국회 개원 뒤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의제보다 직접민주주의가 더 우월하다는 주장을 기반으로 정당을 넘어선 ‘국회의 일’까지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당 내 다양성과 개방성·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흐를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서용주 맥정치사회연구소장은 “총선 승리 이후 당 체질이 급속하게 악화하는 상황으로 건전한 모습의 변화는 아니라고 본다”라며 “대의민주주의를 대표할 역량이 안 되는 몇몇 정치인이 팬덤에 올라타 합리적인 정당정치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당원 주권론의 근간은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직접민주주의가 실제 의미 있는 곳은 보다 작은 공간의 공동체”라며 “읍·면·동에서 시·군·구·국가로 커질수록 동질성이 강한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이질성·다양성·개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직접민주주의를 너무 좋게 해석하는 것”이라며 “기초단위에서는 공동체가 중요하지만 그걸 교조화·절대화해 당이나 국회까지 원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유정 김대중재단 이사는 “지난 총선의 야권 승리는 윤석열 정권과 여당이 너무 못해서 지렛대 삼아 잘해보라고 힘을 실어준 것이지, 민주당이 너무 잘해서라는 취지가 아니었다”라며 “결과를 놓고 보면 압승은 맞는데, 민주당이 어마어마하게 잘했기 때문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2~3일 전에 공지가 나와 시당에서 전 당원에게 문자 공지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오상택 울산 중구 지역위원장이 밝힌 ‘당원 주권 시대 더불어민주당 부산·울산·경남 콘퍼런스’가 열린 경위다. “물론 자주 오는 분들이 적극 지지층인 것은 맞다. 밖에서 보면 그분들의 목소리만 과대대표되는 것이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다. 저도 지역위원장을 맡고 처음에는 강성지지자라고 생각해서 겁을 먹었는데, 막상 만나 이야기해보면 솔직히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당원들이 대폭 늘어난 만큼 지역위원장도 당원을 대표하는 대리인으로 당원의 의사를 수정하고 만들어내는 역할로 위상이 변하고 있다는 뜻으로 당원 주권 시대라는 말을 이해하고 있다”라며 “좌표 찍기나 이른바 수박 색출과 같은 부정적인 모습은 당원 주권이 성숙해나가면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표지 이야기
“디지털 시민참여 확대, 정부 신뢰 높이고 민주주의 강화”(2024. 04. 08 06:00)
2024. 04. 08 06:00 사회
미코 라스크·신복용 헬싱키대 연구진·페르투 얌센 시트라 스페셜리스트 인터뷰 페르투 얌센 핀란드 혁신펀드 스페셜리스트와 미코 라스크 헬싱키대 소비자사회연구센터 교수, 신복용 소비자사회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왼쪽부터)이 3월 29일 서울 광화문 주한핀란드대사관에서 ‘한국과 핀란드의 디지털 시민참여’를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핀란드와 한국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유사한 점이 많아요.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를 포함한 강대국과 인접해 있고, 비교적 최근에 독립해 국가적인 정체성과 민족성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화와 교육, 국가적 연구개발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 보급률과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죠. 하지만 핀란드는 한국과 비교해 정부에 대한 신뢰, 부패지수, 정부 혁신, 언론 신뢰도, 행복지수 등 민주주의와 관련된 여러 측면에서 앞서 있어서 우리가 배울 부분이 있습니다.” 지난 3월 29일 서울 광화문 핀란드대사관에서 만난 신복용 헬싱키대학 소비자사회연구소(Centre for Consumer Society Research) 박사후연구원은 디지털 시민참여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핀란드는 유엔이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올해까지 7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지난 3월 발표된 이 보고서에서 한국은 지난해보다 5계단 상승한 52위였다.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양국 행복지수의 격차를 만든 주요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핀란드는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책의 성과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보 공개에 적극적이다. 일례로 핀란드 헬싱키 시정부는 선출직 공무원의 공약 이행 상황을 시 홈페이지에 백분율로 표시하고 변동이 있을 때마다 업데이트한다. 이날 신 연구원과 함께 만난 미코 라스크 헬싱키대학 정치경제학부 교수, 페르투 얌센 핀란드 혁신펀드(Sitra) 스페셜리스트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시민참여의 확대가 정부의 신뢰성을 높이고,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약 보름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이들은 경기 수원시의 ‘새빛톡톡’, 서울시의 엡보팅(M-Voting) 같은 디지털 참여 서비스의 성과를 측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경기연구원과 공동 연구 협약도 맺었다. 도시의 민주주의 비교 평가, 선의의 경쟁 기대 소비자사회연구센터는 기후 대응을 정부 정책의 주류로 만드는 방안, 데이터 기반 사회로의 변화 속에서 프라이버시의 문제 등을 연구했다. 정치학자, 인류학자, 인공지능 연구원 등이 함께하는 이 연구소에서 최근 주력하는 분야는 디지털 시민참여다.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에 기반을 둔 ‘코크리에이션 레이더(Co-Creation Radar)’라는 이름의 디지털 시민참여 평가 도구를 개발해 핀란드 헬싱키, 스웨덴 예테보리를 비롯해 유럽 내 여러 시 정부와 협력해 실증하고 있다. 시민의 정책 제안이나 민원 등 시민이 행정에 참여해 만들어지는 데이터의 양은 많은데, 대부분은 방치된다. 연구진은 이런 공개데이터를 활용해 시민참여의 민주적 측면을 측정하는 지표를 개발했다. 동향 분석과 시각적 분석, 자연어 처리 등을 이용한 내용 분석 혹은 기계학습을 통한 예측 모델 등으로 기존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양의 시민참여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특히 국가보다 도시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집중했다. 라스크 교수는 “시민의 민주주의 참여를 고취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도시의 민주주의 품질과 관련한 성과를 평가할 방법을 고민하며 만든 도구”라며 “시민의 정책에 대한 평가나 참여예산제도(시민이 예산편성에 직접 참여해 재정 운영의 투명성, 재원 배분의 공정성을 높이는 제도)가 도시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서 도시의 민주주의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빅데이터·기계학습 분야를 연구하는 신 연구원은 “도시 내에서도 어떤 지역에서 시민의 소통이나 참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지,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런 소통·참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능을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무원은 시민의 정책 욕구를 빠르게 파악하고, 필요한 정책을 인공지능의 추천을 받아 도입할 수 있다. 정책 도입의 영향을 평가할 때도 유용하다. 라스크 교수는 “헬싱키시는 시민의 피드백을 연간 1만8000건 정도 받는데, 이 피드백 데이터가 쌓이면 방대해진다. AI를 이용하면 시민의 수요가 어디서 나오는지 파악하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다만 이 알고리즘을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공동 개발해 개방성과 투명성을 갖추게 하고, 특정 집단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마다 겪는 문제가 다르므로 거시적 지표 외에도 해당 도시와 협업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지표를 개발한다. “도시가 뒤처진 부분을 가려내고, 민주적 참여를 가속할 수 있는 방안을 보여주는 최초의 도구”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 평가 도구가 전 세계 많은 도시에 확산하면, 국제적 비교 작업을 수행할 수도 있다. 라스크 교수는 “도시의 민주적 참여를 제대로 평가하고, 다른 국가의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도시를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경쟁, 민주적 참여를 향한 선의의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시민 참여예산제, 도시 전체 재정으로 확대 실험 서울시의 올해 시민참여예산은 500억원이다. 시 전체 예산(45조원)의 0.109%다. 핀란드도 상황은 비슷한데, 최근 핀란드 혁신펀드는 참여예산의 범위를 도시 전체 재정으로 확대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얌센 스페셜리스트는 “시민 패널이 도시나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숙의 민주주의 형태로 논의해 도시의 재정 기획에 더 넓은 형태로 참여하게 된다”면서 “물론 이런 실험으로 대의제를 우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책 결정자들이 일할 때 시민들의 의견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길 원한다”고 말했다. OECD는 2021년 발표한 ‘핀란드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의 원동력’이라는 이름의 보고서에서 ‘핀란드 역설’을 언급했다. 정치인·행정기관에 대한 높은 수준의 신뢰에도 불구하고 시민이 참여해 정치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보는 ‘효능감’은 낮은 수준에 있다는 뜻이다. 참여예산의 확대는 시민의 정치 효능감을 높일 수 있다. 얌센은 “(국제적으론 높지만) 시민의 공무원에 대한 신뢰가 낮고, 공무원은 시민들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양방향으로 신뢰가 낮은 상황인데 이 프로젝트는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선출직 지자체장과 공무원, 시민 사이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 3월 7일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가 28위에서 47위로 하락했고, 민주화에서 독재화로 전환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시민참여가 이런 민주주의 후퇴를 막는 데 도움이 될까. 라스크 교수는 “핀란드에서도 NGO나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시민의 수로 보면 시민의 정치활동이 줄어들고 있다. 이젠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민주적 경험이 참여의 동기가 돼야 한다. 민주주의는 신뢰와 뗄 수 없고, 정치 참여로 신뢰도를 높이면 정책을 실행하기 쉽고, 시민의 저항도 줄일 수 있다. 결국 거시적 차원에서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반론보도]기사 관련(2024. 02. 02 10:52)
2024. 02. 02 10:52 오피니언
본지는 2022. 7. 11. “원전 비중 확대, 거꾸로 가는 윤 정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관련하여 ‘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추면서 원전 비중을 확대한다는 나라는 적어도 선진국 중에서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산업통상자원부는 ‘현 정부에서 2023년 1월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 비중을 2022년 8월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실무안)과 비슷하게 “2030년까지 21.6%”로 정하였는데, 이는 전 정부에서 2021년 10월 발표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의 전망치 “30.2%”보다는 낮지만, 2020년 12월 발표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목표 비중 “20.8%”보다는 상향 조정된 것으로, 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계속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라고 알려왔습니다. 한편 원전 비중 확대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 2월 대선 공약으로 신규 원전 6기 건설 및 추가 8기 증설에 관한 검토 계획을 밝히고, 네덜란드 정부는 2022년 12월 원전 2기를 2035년까지 신설하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선진국의 사례가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반론보도는 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입니다.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잇단 지지 속 한국 선택은(2023. 12. 05 07:00)
2023. 12. 05 07:00 경제
COP28 두바이서 개막, ‘전 지구적 이행점검’ 공개 주요 산유국 반대에 화석연료 단계 퇴출 합의 촉각 COP28이 열리는 UAE 두바이의 엑스포 시티에 사람들이 도착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총회)가 11월 30일(현지시각)부터 12월 12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다. 당사국총회(COP)는 유엔 회원국들이 기후변화 대응의 진전 상황을 평가하기 위해 모이는 연례 회의로 기후 대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국제회의다. 첫 번째 COP는 1995년 베를린에서 열렸고, 코로나19가 발발했던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개최됐다. 교토의정서(COP3), 파리협정(COP21) 등 전 세계 기후변화 대응 방향이 이 회의에서 결정됐다. 이번 총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의제는 올해 처음 공개되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e·GST)’이다.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로 제한하자는 파리협정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그간의 전 지구적 차원의 노력을 점검·평가하는 절차다. 파리협정은 선진국에만 감축 의무를 부여한 이전 교토의정서 체제와 달리 협정에 참여하는 모든 당사국이 자발적으로 ‘국가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NDC)’를 설정하도록 했다. 다만 자발적인 참여만으론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이행 상황을 정기적이고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반영해 새로운 국가 감축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규정했다. 전 지구적 이행점검 ‘성적표’ 공개 이행점검은 파리협정이 체결된 2015년과 각국이 제출한 NDC 달성의 첫 목표인 2030년의 중간 시점인 지점인 2023년을 시작으로, 5년 주기로 진행된다. 이행점검 결과가 합의되면 각국은 이를 반영해 2년 뒤인 2025년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2035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새롭게 제출해야 한다. 이행점검은 ‘전 지구적’이라는 말이 앞에 붙었듯이 개별 국가의 이행을 평가하는 건 아니다. 기후환경 단체 플랜 1.5의 박지혜 변호사는 “따끔하게 개별 국가의 이행 여부를 평가하는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 유엔 체계라 그렇게 나오지는 않을 듯하다”면서 “이번 결과를 반영해 2035년 NDC를 새로 낼 때 진전의 원칙에 따라 더 강한 목표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행점검은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과학계·시민사회 등 비당사국 이해관계자 등이 제출한 여러 자료와 의견을 취합하는 데서 시작한다. 자료 취합 절차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에서 시작돼 올해 3월 완료됐다. 그 이후 기술적 평가 단계를 거친다. 취합된 내용을 평가하고 중요한 의제를 중심으로 당사국 간 최종 협상과 승인을 위한 초안을 마련하는 절차로, 종합보고서에 그 결과가 담긴다. 총회 기간 동안 종합보고서를 바탕으로, 어떤 수준에서 최종안을 낼지 정치적 협상과 합의가 진행된다. 이행점검 결과를 각국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비롯해 여타 협상의 모든 측면에 반영할 것인지도 합의해야 한다. 이행점검의 ‘종합 성적표’는 총회를 앞두고 이미 공개됐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은 지난 9월 8일 공개한 종합보고서에서 현재 각국이 제출한 NDC 상의 배출 수준과 파리협정 목표 달성에 필요한 배출 수준에 상당한 격차가 있다고 밝혔다. 각국이 2030년 NDC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그때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5℃ 목표를 지키기 위해 배출해야 하는 양에 비해 203억~239억t 많다는 조사 결과가 담겼다. 지금보다 더 빠르고 광범위한 배출 감소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술탄 알 자베르 COP28 의장은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배출량을 43% 줄이기 위해 ‘야망과 긴급성’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환경계획도 지난 11월 20일 발표한 ‘2023 온실가스 배출량 격차 보고서’에서 비슷한 지적을 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NDC로는 1.5℃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14%에 불과하며, 그 가능성을 절반의 확률로 높이려면, 2030년까지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330억t으로 낮춰야 한다고 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1년부터 2022년까지 1.2% 증가하면서 574억t을 기록했다. 2030년까지 330억t으로 낮춘다면, 8년 동안 매년 약 6.7%를 줄여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약 7%가 줄었으니, 거의 매년 그 수준의 감소율을 보여야 한다. COP28이 열리는 UAE 두바이의 엑스포 시티 근처에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유지하자는 문구가 써진 간판이 서있다. AP연합뉴스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논의 속 무탄소연합 띄우기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배출량 감소에서 완전히 반등해 2019년 수준을 넘어섰다. 운송을 제외하고, 모든 부문에서 증가했는데, 특히 화석연료 연소와 산업 공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전체 온실가스 증가를 주도했다. 이런 배경에서 이번 총회에서 재생에너지의 확대,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 또 하나의 중요 논의 과제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COP28 의장국인 UAE와 유럽연합, 미국은 이번 총회 의제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에너지 효율 두 배 증진’을 제안했다. 지난 9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기본 방향이 합의됐고, 술탄 알 자베르 의장이 당사국에 해당 안건에 동의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바 있다.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일본, 캐나다 등이 해당 안건에 지지를 표명했고, 중국도 지난 11월 15일 찬성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 총회 개막을 전후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는데 동참이 예상된다. 주요국을 포함해 60여개 국가가 찬성한 만큼 한국이 서명하지 않을 경우 거센 국제적 비판에 직면할 게 분명하다. COP의 재생에너지 확대안은 전 세계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확대하자는 방안이라 우리나라가 꼭 3배를 늘여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흐름을 비슷하게 따라간다면 현재 수준보다는 크게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 영국 에너지그룹 BP가 지난해 발표한 ‘2022년 세계 에너지 통계 리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원자력 발전 비중은 26.3%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반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6.7%로 꼴찌다. 현재보다 3배 늘린다고 해도 현재의 OECD 평균 정도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치를 기존 30.2%에서 21.6%로 대폭 하향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용량은 2023년 32.8GW에서 2030년 72.7GW로, 3배인 98.4GW에 이르지 못한다. 따라서 한국이 ‘재생에너지 3배 서약’에 동참할 경우 오는 12월 마련될 제11차 전기본 초안에서 재생에너지 목표치를 소폭 상향할 가능성이 있다. 조은별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중국과 인도도 동참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빠질 순 없어 보인다”면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면 화석연료 발전을 우대하는 전력시장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석연료 발전소에는 발전소를 가동하지 않아도 용량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주는 ‘용량요금’과 발전량이 수요를 초과할 때 화석연료 발전이 아닌 재생에너지 출력을 제한하는 조치를 예로 들었다. 전력망 확충과 재생에너지 인허가 창구 단일화 등 인프라 개선도 필요하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비용이 높은 이유는 (이격거리 규제 등으로 인한) 입지 확보의 어려움과 함께 인허가 절차가 해외에 대비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라면서 “유럽은 재생에너지 촉진지구를 지정해 짧으면 9개월 안에 인허가를 마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태양광·풍력 개발에 들어가는 자본조달 비용을 대폭 낮췄다. 정부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린 태양광 감사로 망신 주기를 하고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총회에서 한국 주도의 ‘무탄소(CF) 연합’을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무탄소 연합은 100% 재생에너지 전기만 사용하는 RE100과 달리 원자력발전을 포함한 무탄소에너지 100% 사용을 표방한다. 하지만 이번 총회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요 의제로 다루는 만큼 무탄소 연합이 큰 관심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석 전문위원은 “한화큐셀이 국내 공장에서 희망퇴직을 받고 생산을 축소하는 반면, 북미 생산 규모는 확대하고 있다. 국내에서 태양광을 밀어내고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하게 만들면서 원전으로 혼자 CF연합을 하겠다는 건 국제적인 웃음거리이자 국제사회에서 어떤 공조도 얻지 못할 청개구리 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을 합의할지도 관심사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이 반대하고 있어 합의에 이를지는 미지수다. 총회는 당사국 가운데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결의안 채택이 불가능한 만장일치 합의 방식이다. 박지혜 변호사는 “의장국이 산유국이라 지난해보다 더 강화된 표현이 나올지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크다”면서 “산유국들은 배출 자체를 줄이기보다 탄소흡수 기술을 이용해 순배출량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총회를 일주일 앞둔 지난 11월 23일 ‘넷제로 시대 석유와 가스 산업’ 보고서에서 “이제는 진실에 직면해야 할 때”라며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과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탄소포집이 기후변화의 해결책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총회의 또 다른 쟁점은 지난해 COP27에서 합의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기금의 구체적인 재원 마련과 운영 방안 등이다. 손실과 피해 기금은 기후위기로 고통을 겪는 개도국·저개발국들을 선진국들이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금을 마련해야 하는 선진국과 수혜 대상인 개도국·저개발국의 이해관계가 상충해 세부안 도출에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COP28에서 손실과 피해 최종 협상을 위한 권고안을 도출하기 위해 전환 위원회가 구성됐다. 다섯 차례 회의 끝에 세계은행을 기금 운용의 임시 주체로 인정하되, 기금 이사회는 기존 세계은행 정책에 의존하지 않고 기금과 관련한 정책을 설정하도록 했다. 또한 기금의 최소 규모가 연간 1500억달러를 초과해야 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지금까지 유럽연합, 덴마크, UAE가 기금 공여를 약속했고, 미국도 수백만달러 수준에서 공여를 약속했다.
“핀란드 R&D 예산 GDP 4%까지 확대…파괴적 혁신 위해”(2023. 11. 10 17:16)
2023. 11. 10 17:16 문화/과학|경제
레이코이넨 핀란드 교육부 차관·에롤라 연구위원회장 인터뷰 핀란드는 전자·통신 등 첨단산업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좋은 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09년 GDP의 3.73%에 달하던 R&D 지출은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감소해 2019년 2.8%로 줄었다. 2013년 노키아의 몰락이라는 위기도 있었다. 부침을 겪고 다시금 혁신국가 대열에 오른 핀란드는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R&D 지출을 늘리고 있다. 2021년 12월 R&D 지출 비중을 2030년까지 GDP의 4%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힌 후 예산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국가 R&D 예산을 2023년 24억유로(약 3조3600억원)에서 2030년 43억유로 늘리는 연구개발 자금에 관한 법안은 올해 초 발효됐다. 지난 10월 31일 핀란드가 연구개발 지출을 늘리기로 한 배경을 방한한 아니타 레이코이넨 핀란드 교육문화부 차관과 파올라 에롤라 핀란드 연구위원회 회장을 만나 들었다. 레이코이넨 차관은 핀란드대학 개혁 과제를 추진 중이며, 동시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유럽의 고등교육·연구 분야 업무를 맡아왔다. 에롤라 회장은 헬싱키대학의 입자물리학 교수이자 핀란드 고등과학 분야 연구비 지원을 담당하는 기관인 연구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아니타 레이코이넨 핀란드 교육문화부 차관이 지난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디지털휴매니티센터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핀란드 교육·과학 분야에서 최근 성과는. 레이코이넨 “핀란드는 초등부터 고등 교육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선두 위치에 있다. 핀란드 교육 정책은 기본적으로 동등과 공평 두 가지를 기반으로 한다. 아동교육에서부터 초등·중등 교육에 이르기까지 이를 바탕에 깔고 있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중등 교육과정을 마치면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 직업 교육을 택하든,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하든 스스로 진로를 결정한다.” 에롤라 “과학의 경우 거의 모든 연구 분야에서 전 세계 평균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 무선통신, 컴퓨터 사이언스 같은 핵심 기술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 혹은 최고 수준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다.” -R&D 예산을 증액하려는 이유는. 레이코이넨 “내년부터 연구개발과 혁신에 투입하는 재정을 늘리기로 했다. 장기적인 과정의 일부로 현재 의회에 예산 관련 실무 그룹이 있다. 9개 정당이 소속돼 있는데 모두 핀란드의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R&D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핀란드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해서 느리게 회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 정책을 의회에서 만들 때 2030년까지 최소한 GDP의 4%를 할당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의대 쏠림 현상이 핀란드에서도 있는지. 레이코이넨 “의약 분야 같은 경우 임금이 높고 안정적이라 여학생들이 쏠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남녀가 동등하게, 균형 있게 참여하길 원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위기라고 보지도 않는다. 여학생이 이 분야를 선호하는 건 일종의 현상이다. 그대로 두지는 않고 기술과 과학 분야에 더 많은 학생이 관심을 갖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에롤라 “우리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의 영문 첫 글자의 조합)의 중간에 A(예술·ART)를 넣어서 스팀(STEAM)이라고 부른다. 과학·기술·엔지니어링의 발전에는 창의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학생이 기초과학·이공계 쪽에 오도록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여학생들만의 STEAM 관련 모임을 만들도록 돕는 식으로 독려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파울라 에롤라 핀란드 연구위원회 의장이 지난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디지털휴매니티센터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R&D 투자를 위한 법안도 마련했다. 레이코이넨 “GDP의 4% 중 3분의 1은 공적 세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민간기업에서 제공한다. 산업계와 의회가 동의하는 부분은 기초연구 분야와 혁신연구 분야의 균형을 잘 맞춰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기초연구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혁신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이 둘 사이의 균형이 굉장히 중요하다. 둘 사이 균형에서 고등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 기초연구나 혁신을 이끄는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에롤라 “국가 R&D 계획의 핵심은 기초연구를 통해 파괴적인 혁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파괴적인 혁신이 있어야 민간 분야에서 생산성을 계속 개선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인재를 만드는 게 과학의 역할이다. 특히 단순히 핀란드 인재만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의 인재들도 핀란드 안으로 끌어들여 이들이 과학 발전과 혁신에 기여하도록 하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R&D 예산을 배정하나. 에롤라 “연구회는 매년 약 5억유로 예산을 경쟁 지원 제도를 통해 지원한다. 지원자의 15% 정도가 선정을 받는데 전체적으로 80%가 고등교육기관에 속한 연구기관이나 연구자에게 돌아간다. 나머지 20%는 대학을 비롯한 다른 연구기관에 가는 데 응용 분야가 지원을 받기도 한다. 지원자가 핀란드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연구하고자 하는 연구소나 대학은 핀란드 안에 있어야 한다. 실제 작년만 하더라도 우리가 지원한 금액의 50% 정도가 핀란드 국적이 아닌 하지만 핀란드대학이나 기관에 속한 연구자들에게 지급됐다.” 레이코이넨 “교육 연구지표를 활용해 각각의 대학에 어느 정도의 지원을 할지 결정하고, 연구자 개인이 아닌 해당 대학에 블록 형태로 지원한다. 연구위원회가 주는 5억유로의 경우 교육부의 관할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정말 능력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에 한해 지원한다.” -연구개발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은. 에롤라 “현재의 국제적 흐름은 ‘책임 있는 연구혁신(responsible research and innovation)’이라는 평가방법이다. 관련한 국제 연합체도 있다.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연구를 했는지를 중점에 두고 평가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고, 우리도 이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평가할 때 중점에 두는 것은 수치나 정량적인 평가가 아니다. 연구한 내용에 중심을 두기 때문에 정량적인 지표를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재 핀란드에서 연구성과를 평가할 때 평가지표로 논문 게재 수를 쓰는 것은 금지됐다. 연구제안서를 쓸 때 연구자의 이력서에 논문을 몇 건 썼다가 아니라 본인이 연구한 내용을 상세하게 적는 방식으로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연구자의 자율성이 중요한 이유는. 에롤라 “교육부는 교육지표와 연구지표를 바탕으로 해서 블록으로 금액을 할당한다. 대학이 원한다면 하나의 분야나 혹은 10개 분야에 얼마든지 재량권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금액을 할당해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연구 분야는 균형 잡힌 연구가 이뤄지도록 최소한의 쿼터를 두고 있긴 하지만, 연구자의 재량권이나 자율권을 부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10년 후 어떤 분야가 더 유망할지 현재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자율성은 더 중요하게 보장해야 한다.”
표지 이야기R&D예산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병든 시스템도 고쳐라(2023. 06. 02 11:30)
2023. 06. 02 11:30 사회
18년째 그대로인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이 검토 중이다.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3058명으로 동결 상태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정부는 의사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의대 정원을 10%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의대 정원은 조금씩 줄어 2006년 3058명이 됐고,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지난 2020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출입구 앞에서 의대 정원 확대 등을 두고 전공의와 전임의들의 1인 시위가 진행됐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20년 문재인 정부는 공공의대 신설 등을 골자로 연 400명씩 향후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0명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중 3000명은 지역의사로 배출해 비수도권 지역의 의료난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의사들은 코로나19가 한창인 상황에서 파업을 불사하는 등 강력 대응으로 막아섰다. 정부는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다시 협의하기로 합의하고 물러섰다. 의사 수 부족한가?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9일 발표한 ‘2023년 업무계획’에서 의사 정원 확대 등을 의료계와 협의해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조만간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협과 의대 정원 증원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의협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협은 지난 1월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에 대해 “인구는 점점 감소하고 추가 배출되는 의사는 매년 늘어나고 있어 우리나라는 의사 부족이 아닌 의사의 공급 과잉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건강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4.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의료접근성이 높은 만큼 의사 정원이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의료접근성이 높다는 의협의 주장과 배치된다. 지난해 8월, 빅5 병원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의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의사가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지난 3월 대구에서는 건물에서 추락한 중학생이 2시간 동안 응급실을 찾아다니다가 심정지로 사망했다. 지난해 12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인 길병원은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길병원은 지난 1월 입원진료를 다시 재개했다) 길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소아과 전공의 충원율은 16.6%에 불과했다. 필수과 의사 부족, 지방 의료시스템 붕괴, 소아과 대란 등 지역·필수 의료를 중심으로 의료공백이 심각해지면서 여론도 의대 정원 확대로 의견이 기울어지고 있다. 지난 4월 5일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인력 현황과 확충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17개 시·도 만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8.4%가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서는 응답자의 66.7%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9.8%에 불과했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로 이야기되는 응급·외상·심혈관·소아과·산부인과의 의료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국민이 다 절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협이 의대 정원 확대를 아예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계로 나타나는 절대적인 수치도 의사 수 부족을 가리킨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가 OECD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OECD 보건 통계 2022’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5명(한의사 포함)으로 OECD 평균인 3.7명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2.1명으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또 의학계열(한의학 포함·치의학 제외) 졸업자는 인구 10만명당 7.2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일본(6.9명) 이스라엘(6.9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었다. 지난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에 따르면 2025년에는 5516명, 2035년에는 2만7232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진단됐다. 특히 의협의 주장과는 반대로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고령화 등의 이유로 의사 수요는 더 늘어나리라고 내다봤다. 지난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역설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논의는 더 탄력을 받고 있다. ‘직역 간 업무 범위 명확화’ 등을 골자로 한 간호법이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사실상 폐기되면서 간호협회는 준법투쟁을 시작했다. 불법임에도 관례적으로 의사의 업무를 일부 대신해오던 PA(진료보조인력) 간호사들이 ‘대리 의사’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전국적으로 1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산되는 PA간호사의 존재는 의사 수가 부족한 대형병원의 현실을 드러내면서 의대 정원 확대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아직 복지부는 의대 정원 증원 방식 및 구체적인 수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2025년 입시부터 500명 정도 늘리는 방안과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당시 감축한 351명을 증원하는 방안 등을 예상한다. 한 대학병원의 응급실 앞에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최근 진료가능한 의료진이 없어 구급차에서 떠도는 ‘응급실 뺑뺑이’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필수과 의사 부족, 지역 의료진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 및 지역 기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임준 교수는 의협의 주장에 대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의대 정원 증원과 함께 여러 정책을 결합해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고, 의대 정원 확대를 주장하는 쪽에서도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틀린 말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만이 아니라 산적한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패키지를 내놔야 한다고 말한다. 붕괴된 지역의료 시스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의 수도권·비수도권, 도·농 간 격차는 컸다. 2022년 7월 기준 서울(3.45명), 대전(2.63명), 대구(2.62명) 순이었고, 가장 낮은 세종은 1.31명으로 서울과 2.6배 차이가 났다. 이어 충남(1.54명), 경북(1.39명) 수준으로 낮았다. 비수도권 환자의 경우 적시에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어 사망하는 비율이 수도권보다 높게 나타났다. 2020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2017년 기준 뇌혈관질환 사망비는 강원·영월권이 2.04로 서울 동남권의 0.84보다 2.4배 높게 나타났다. 응급 사망비 또한 서울 동남권이 0.85인 데 비해 강원·영월권은 2.09로 2.5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비는 실제 사망자 수를 예상 사망자 수로 나눈 비율로 수치가 클수록 사망하는 비율이 높다. 의협은 지역의 의료공백 문제를 수가 인상, 근무환경 개선 등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방소멸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가 인상 같은 재정적 지원책은 더는 유인책이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몇몇 지방의료원에서는 전국 의사 평균연봉인 2억3000만원보다 높은 3억~4억원을 연봉으로 제시해도 지원자가 없어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정책수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분석이 나온다. 지난 1월 31일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마련했다.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골든타임 내 필요한 필수의료를 제공받는 체계 구축을 목표로 내세우고, 그 방안으로 ‘공공정책수가’를 통해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행위별 수가에 기반을 둬서 가산율을 올려주는 공공정책수가는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는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분만 인프라 구축을 위해 분만취약지 분만 수가 인상과 분만 취약지 지원 사업을 시행했다. 정책 결과 광역시 이상의 산부인과는 어느 정도 혜택을 볼 수 있지만, 광역시가 아닌 도에 있는 산부인과는 분만 자체가 워낙 적기 때문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행위에 기반을 둔 수가를 가산하는 정책은 인구가 많은 수도권·대도시에 유리할 수밖에 없어 정작 필수의료가 부족한 지역의 작은 중소도시에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쏠림현상이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 4월에 발표된 논문 ‘분만 수가 인상만으로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을 수 있을까?’(안태규·황종윤)는 보건복지부가 공공정책수가 제도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분만 진료 분야의 가산 수가 제도를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했다. 가산 수가 제도는 특별시 및 광역시 이외 지역에 분만 수가의 200%를 추가 지급하는 파격적인 차등지원 제도이지만, 시뮬레이션 결과 해당 제도가 지방의 분만 병원에서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됐다. 수가 인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등 정부가 직접 의료취약지에 의료인력을 양성해 공급하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는 2020년 문재인 정부 때 추진되다가 의협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역의사제’는 ‘지역의사선발전형’을 통해 지역 내 학생을 선발하고 이들이 지역 필수의료 분야에 10년간 근무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공공의대’는 국립의대가 없는 지역에 공공의대를 신설해 마찬가지로 지역의료에 일정 기간 의무복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의협은 수가를 올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유인책을 제공하라고 하지만, 지방의료원에서 연봉을 높게 불러도 의사들이 가지를 않는다. 수가 인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에 의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공급로를 열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수도권으로 자원이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의대 신설은 의대 간 격차를 심화하고 부실 의대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나백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교육이 개별 진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임상 교육이나 분과 교육도 당연히 해야 한다. 공공의대의 역할, 비전, 교육, 커리큘럼 등을 지역 공공의료에 초점을 맞춰 지역 보건의료 현장에 대한 정책적 고민을 함께할 수 있는 의사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필수의료 취약지 발표 및 공공의료 확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필수진료 기피 2022년 전공의 충원율은 소아청소년과 28.1%, 흉부외과 47.9%, 외과 76.1%, 산부인과 80.0%로 정원 미달됐다. 반면 업무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개원 시 수입이 높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소위 인기과에 대한 쏠림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흔히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을 ‘기피 과목’이라고 부른다. 환자의 생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과목이지만, 업무 강도가 높고 건강보험 수가는 낮아 의사가 부족해진 과목이라고 알려져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는 필수진료 기피의 원인을 3가지를 꼽았다. 첫째, 개원을 유도하는 왜곡된 건강보험의 진료비 보상방식과 만연한 비급여 항목 진료다. 김윤 교수는 “큰 병원에서 일하는 전문의에 비해 동네 개원의 수입이 1.7배나 더 많다. 흉부외과 전문의의 30~40%가 개원해 고혈압·당뇨병 환자를 보고 있고, 정작 큰 병원에는 전문의가 부족해 응급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필수의료를 수행해야 할 371명의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가 동네의원으로 개원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자기의 전문 과목을 걸고 자기 분야의 환자를 보는 전문의는 67명(19.1%)에 불과했다. 81.9%인 304명은 전공과 다른 진료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는 병원이 전문의를 너무 적게 고용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병원으로 하여금 부족한 전문의를 추가로 고용하도록 하는 인력 기준을 만들지 않다 보니 수가를 올려도 전공의 지원율은 높아지지 않았고, 전문의도 늘지 않았다. 김윤 교수는 “외국에는 환자를 보는 인력 기준이 있다.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중증 외상 등의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은 24시간 365일 환자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인력을 최소한 5명 이상 뽑는다”라며 “국내에선 이에 대한 규제가 없다 보니 모든 병원이 인력을 적게 뽑는다”라고 말했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도 대학병원이 전문의를 뽑지 않고 전공의라는 값싼 인력으로 병원을 운영하려는 행태를 지적했다. 강 회장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 진료와 연구와 교육을 교수 1명이 모두 담당한다. 병원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진료라면 교수들을 추가로 더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외국은 교수가 진료 교수, 연구 교수로 나뉜 시스템이 잘 정착돼 있다. 교수 한 명에게 진료·교육·연구를 모두 잘 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각각의 교수들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셋째, 큰 병원, 작은 병원의 역할이 나뉘어 있지 않아 병원들이 무한경쟁하는 의료체계다. 김윤 교수는 “급성심근경색 환자를 1시간 이내 골든타임에 진료할 수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 숫자를 산정했더니 전국에 70개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급성심근경색 환자를 진료하는 ‘스텐트 시술’ 가능 병원이 현재 전국에 180개나 있지만, 의사 수가 분산돼 있어 응급 대처는 한계가 있다”라며 “그러다 보니 24시간 365일 운영하는 체계를 갖추지 못해 응급환자가 와도 의사가 없다고 돌려보내게 된다. 응급실 뺑뺑이가 생기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의사 수 부족과 맞물려 병상 과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구 1000명당 급성기 병상 수가 2020년 기준 3.56인데 한국은 7.22로 병상 증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OECD 국가들이 병상을 감축해온 데 반해 한국은 오히려 병상을 늘리고 있다. 병상 증가는 인력을 빨아들여 지역·필수의료 인력 공백을 가속화한다. 임준 교수는 “의료는 병상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쓸모 있는 병상이 중요하다. 응급환자를 볼 수 있는 응급의료센터와 여기에 연결된 수술장, 중환자실 등이 중요하다”며 “병원은 많은데 막상 위중한 환자가 입원할 병원은 없다. 큰 병원에는 의사가 부족하고, 개인병원이나 조그마한 병원으로 의사가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병상 수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병원의 외래환자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임준 교수는 “큰 병원에 안 와도 되는 경증환자들이 외래 진료를 보게 되면 입원이나 중환자 수술장에 투여될 인력이 부족해진다”라며 “큰 병원이 1차 의료 기관과 경쟁하는 상황이다. 1차 의료를 강화하고 큰 병원은 입원 환자 중심으로 운영한다면 전체적으로 건강보험의 진료비도 상당히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종합적인 공급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의 단순 확대를 넘어 왜곡된 의료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종합적인 인력 공급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임준 교수는 “이 이야기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논의돼왔던 문제들이다. 정부가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데 단편적으로 정원 증원만 갖고 의협을 상대하고 있으니 과연 이런 방식으로 고령화 등 현재의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윤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에 공급과 관련된 정책이 없다. 민간에 맡겨놓으니 병원은 병원의 이익을 추구하고, 의사들은 의사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무질서한 공급 체계가 만들어졌다”며 “정부가 의사와 병원에 끌려다니는 정책을 해왔다”고 말했다.
표지 이야기
[불평등의 경제학](14)불평등 확대가 성장과 혁신에 나쁜 이유(2023. 06. 02 11:29)
2023. 06. 02 11:29 경제
2023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높은 물가상승으로 가구의 실질소득이 증가하지 못했고,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의 가구소득 증가율이 높아서 전년 동기 대비 소득분배가 악화됐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이 된 지난 5월 9일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켜놓고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 상인들이 일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지난 5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동안 불평등이 심화됐고, 약자들의 고통이 커져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2023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높은 물가상승으로 가구의 실질소득이 증가하지 못했고,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의 가구소득 증가율이 높아 전년 동기 대비 소득분배가 악화됐다. 소득 하위 20% 가구 중 적자 가구 비율이 약 63%로 전년보다 약 5%포인트 증가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정책은 부자 감세와 긴축재정을 지향해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불평등과 격차의 확대가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러 국가에서 소득분배 악화와 성장률 저하가 동시에 나타나는 현실에서 불평등과 성장 사이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여러 경제학자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오랫동안 이론과 실증연구를 발전시켜 왔다. 과거의 연구는 부자들이 저축을 더 많이 하니 불평등이 높아지면 저축과 투자 그리고 성장이 촉진될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발전된 거시경제학 연구의 전반적인 합의는 불평등이 성장에도 나쁘다는 것이다. 먼저 심각한 불평등은 단기적으로 총수요를 둔화시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저소득층이 한계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소득분배가 악화되면 경제 전체의 소비와 총수요가 억압된다. 이렇게 총수요가 둔화되고 경기침체가 심화되면 장기실업이나 신기술 투자 둔화 등의 이력효과를 발생시켜 생산성 상승과 장기적인 성장 저해로 이어진다. 또한 불평등이 심화되면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불안정이 커질 수 있다. 이는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고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역사적으로도 라틴아메리카와 같이 불평등이 심각한 국가들이 토지개혁에 성공했고, 소득분배가 균등한 동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 정치적으로 더 불안정하고 성장률도 낮음을 알 수 있다. 금융시장 정보 비대칭성과 경제성장 보다 최근 ‘새(New)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은 금융시장의 불완전성과 불평등을 결합해 불평등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분석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금융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시장실패가 발생한다. 즉 은행이 차입자의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흔히 담보를 요구한다. 따라서 저소득층은 돈을 빌리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가난한 부모는 아이들이 똑똑하다 해도 그들에게 비싼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 아이들은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심각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교육의 경로를 통해서도 경제의 생산성과 성장을 저해하는 셈이다. 불평등은 또한 포용적 제도의 발전을 가로막아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돈과 권력이 소수의 엘리트에 집중된 사회는 포용적인 정치·경제적 제도가 발전하기 어렵고, 지대추구가 만연해 경제주체들의 노동과 혁신의 의욕이 약화하기 쉽다. 나아가 불공정한 불평등은 작업장 차원에서도 노동의욕과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여러 실험연구는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처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노동의욕이 낮아진다고 보고한다. 이러한 논의와 함께 실증연구도 급속히 발전됐다. 각국을 비교한 연구는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소득이나 부의 불평등이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음(-)의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했다. 소득불평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 자료가 발전돼 경제학자들은 이제 장기적인 패널 데이터를 사용, 각국 안과 각국 간의 변화 모두를 분석하고 있다. 몇몇 연구는 소득불평등이 단기적으로 한 국가 내에서는 성장을 촉진한다는 결과를 보고하기도 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의 경제학자들은 개선된 데이터와 발전된 계량분석기법을 이용해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며 정부의 소득재분배는 가처분소득의 불평등을 개선해 성장을 촉진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이들의 연구는 불평등이 심각할수록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기간이 짧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불평등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걸림돌이라는 뜻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기구들이 제시한 포용적 성장이라는 의제는 바로 이러한 연구에 기초한 것이다. 이들은 그 수단으로 증세와 사회복지 확충, 금융포용 정책 그리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확장적 재정정책 등을 제시했다. 특히 적극적 재정정책은 단기적으로 소득을 재분배하고 수요와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인프라나 연구개발투자를 통해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어 포용과 혁신 모두에 매우 중요하다. 혁신 가능하려면 사회안전망 튼튼해야 불평등이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경로는 혁신을 통한 경로일 것이다. 불평등이 심각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면 혁신적인 경제활동이 발전하기 어렵다. 먼저 한국의 승차공유 서비스의 경우에서 보이듯 혁신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기존의 노동자들이 혁신에 저항할 수 있다. 혁신은 산업과 사회의 구조조정을 동반하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북유럽과 같은 복지국가에서는 혁신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도 안정적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기초해 새로운 수요가 있는 신산업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어서 혁신에 대한 반대가 강하지 않다. 심각한 불평등은 또 저소득층의 똑똑한 아이들이 혁신에 기여할 가능성을 억누른다. 체티 하버드대학 교수 등은 미국에서 3학년 때 수학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나중에 커서 특허를 얻는 발명가가 될 확률이 높지만, 그 집단 내에서도 부잣집 아이들이 빈곤층 아이들보다 그 확률이 훨씬 높다고 보고한다. 결국 소득 격차가 줄어들면 사회 전체적으로 혁신과 생산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심각한 불평등이 혁신을 저해하고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국가 간 실증분석에 따르면 불평등이 심각한 국가들은 1인당 특허출원이나 총요소생산성으로 측정되는 혁신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또한 지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포용적인 성장의 추진이 혁신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과거 한국은 고도성장과 함께 상대적으로 평등한 소득분배로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불렸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경제의 구조변화와 함께 동아시아의 기적의 반대편으로 달려온 듯하다. 이러한 방향을 되돌리기 위해 불평등과 불공정을 개선해 혁신과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한국경제는 사회복지와 안전망의 확대, 증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그리고 공정한 경제구조의 확립을 통해 포용과 혁신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지속가능한 성장의 경로를 찾아야 한다.
불평등의 경제학
[우정이야기]복지 살피는 등기 배달 전국 확대(2023. 03. 31 11:22)
2023. 03. 31 11:22 경제
독거노인이 많이 거주하는 노후주택 지역을 중심으로 집배원들이 ‘등기우편물’ 배달에 나선다. 집배원들이 복지 관련 안내문이 담긴 등기우편을 각 어르신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어르신들의 주거상황을 직접 살펴 지방자치단체에 전달하는 ‘복지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우정사업본부 ‘복지등기우편서비스’ 포스터 / 우정사업본부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우본)는 지난해 7월 부산 영도구 등 8개 지자체에서 시범운영한 ‘복지등기우편서비스’를 4월 3일부터 전국으로 본격 확대·시행한다고 밝혔다. 복지등기우편은 지자체가 위기징후 가구나 독거가구 등을 선정해 복지 관련 안내문이 동봉된 등기우편물을 매달 1~2회씩 발송하는 서비스다. 집배원은 등기우편물을 배달하면서 해당 가구의 주거환경과 생활실태를 파악하는 체크리스트(위기가구 실태 파악 항목)를 작성해 지자체로 회신한다. 지자체는 이를 토대로 각 가정의 상황을 파악하고, 결과에 맞춰 공공·민간 복지서비스와 연계하는 등 지원을 결정한다. 우본은 “이번 사업을 통해 그동안 논란이 돼온 수원 세 모녀 사망사건이나 신촌 모녀 사망사건 등 위기가정의 비극적 사고나 고독사 등 유사사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우본은 부산 영도와 전남 영광, 서울 종로·용산·서대문, 강원 삼척, 충남 아산, 광주 북구 등 8개 지역에서 해당 사업을 시범운영했다. 당시 모두 6279통의 우편물을 발송해 622가구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장애인 등록 신청, 긴급생계비 신청, 통신요금 감면 등 공공서비스 혜택을 받았다. 공공서비스 지원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지원이 필요한 254가구는 민간 지원기관과 연계해 생필품 및 식료품 등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실제 부산 영도구 주민 A씨는 ‘복지등기우편서비스’ 시범사업을 통해 처음으로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됐다. 집배원 B씨가 평소 A씨에게 독촉장과 고지서 등이 자주 발송되는 것을 체크리스트에 적어 지자체에 전달하면서 지자체가 A씨의 상황을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영도구 행정복지센터 복지담당 공무원은 A씨가 받아온 실업급여가 종료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건강까지 악화돼 병원치료 중인 상황을 확인했다. 행정복지센터는 A씨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각종 신청절차의 진행을 도왔다. A씨는 “막대한 의료비 지출로 부담감이 큰 상황에 퇴사 후 실업급여까지 종료되면서 생계유지가 막막한 상황이었다”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순간에 손을 내밀어준 우체국과 지자체 직원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우본은 또 시범에 종이로 작성했던 체크리스트의 불편함을 개선해 앞으로는 집배업무용 PDA에 직접 기입할 수 있도록 전자시스템화했다. 그동안 우편으로 회신했던 자료를 파일 형태로 곧바로 보낼 수 있게 돼 신속·정확성을 높였다. 이와 함께 ‘복지등기우편서비스’ 우편요금의 75%를 우체국공익재단 예산으로 지원하고, 생필품 지원도 추진하는 등 더 많은 지자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행정을 펼쳐나간다는 계획이다.
우정이야기
‘국회의원 정수 확대’ 금기어 등장했다(2023. 03. 03 11:29)
2023. 03. 03 11:29 정치
ㆍ선거법 개정안 추가 제안…정개특위서 곧 구체화 김진표 국회의장이 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국회의원 전원이 토론을 벌이는 전원위원회를 오는 3월 27일부터 2주간 개최하는 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선거법 개정안을 소선거구제+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연동형 비례대표제,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전면적 비례대표제 등 4가지로 추려 논의 중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2월 23일에는 국회의장실 산하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가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안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정개특위에 제안했다. 국회 본회의장 / 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안한 일정을 보면 정개특위에 올라온 안을 바탕으로 오는 3월 중순 복수의 선거법 개정안 초안을 작성한다. 이후 이를 심의할 국회 전원위원회를 구성하고 2주간 전원위원회를 열어 국회의원 전원이 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 전원위에서 합의된 선거법 개정안은 정개특위에서 법안을 구체화한 뒤, 법사위를 거쳐 4월 안에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가능성은? 선거법 개정의 목표는 사표를 줄이고 표의 등가성을 높여 선거결과의 대표성을 높이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선거법 개정은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에 따르면 한국 국회의 비례의석 비율은 300석 중 47석으로 15.67%다. 독일 50%, 뉴질랜드 41.67%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지금까지 국회의석수 확대는 반대 여론이 높아 선거제 개정과 관련해 논의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월 14일 정개특위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찬성하는 의견은 29.1%였고 반대하는 의견은 57.7%였다. 앞서 정개특위에서 추려낸 4개의 선거법 개정안은 모두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으로 유지하는 방안이다. 김진표 국회의장 자문위가 제안한 선거법 개정안은 국회의석을 현행 300석에서 350석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아 화제가 됐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지금보다 50석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세 가지 선거법 개정안을 정개특위에 제안했다. 그중 두 개의 안이 지역구 의석수를 253석으로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지금의 47석에서 97석으로 늘리는 방안이다. 현실적으로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반발로 지역구 의석 축소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대해 비례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반대 여론을 고려해 세비 동결을 전제로 했다. 지난 3월 3일 경실련·한국정당학회의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결의안에 담겨야 할 원칙과 내용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도 국회의석수 확대가 선거법 개정의 주요 쟁점으로 등장했다. 발제를 맡은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권자의 선호가 가장 잘 반영된 선거제도로 꼽았다. 그러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위해서는 국회의석수 조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투표와 정당투표의 결과를 연계해 정당의 전체 의석수를 결정한다. 예컨대, 정당투표 득표율 상 10석의 의석을 가져야 하는 정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12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초과로 당선된 2명을 낙선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초과 의석 분(2석)을 고려해 전체 의석수를 다시 조정한다. 이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국회의석수 조정을 전제로 한다. 이 외에 지역구 국회의원 수와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의 비율도 조정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전체 의석의 절반을 비례대표에 할당한다. 조 교수는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이뤄진다면 시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많다는 것은 나쁜 점이 아니다”라며 “한국은 다른 민주국가들과 비교해 국회의원 1인이 대표해야 하는 유권자 수가 너무 많다. 경제 수준이나 공무원 규모 등과 관련해 다른 지표들을 비교해도 한국의 국회의원 수는 상당히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국회의석수 확대와 관련한 적극적인 논의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국회의석수 확대를 정개특위에서 진지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보지만 양당에서는 300석을 유지하는 선에서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 2016년으로 퇴행? 정개특위가 내놓은 4가지 선거법 개정안 중 ‘소선거구제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20대 총선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구분한 뒤, 정당득표율은 비례대표 의원 선출에만 적용하는 방안이다. ‘위성정당’ 창당으로 논란을 빚었던 21대 총선 전으로 돌아가자는 내용으로, 2020년 장제원 의원 등 주로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했다. 정개특위가 과거의 선거제도를 논의의 테이블에 올린 것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20대 총선 모델을 논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과거로 퇴행하자는 것”이라며 “정개특위가 이를 논의 대상의 하나로 포함시켰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아직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뚜렷한 안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민주당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위성정당을 막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또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위성정당 건에 대해 사과를 한 민주당으로서는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며 “그런 점에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속내도 병립형으로 가고 싶어한다.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하므로 병립형으로 복귀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개특위에서 내놓은 4개의 안 중에서 ‘소선거구제+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전면적 비례대표제’가 탈락하고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오리라고 전망한다. ‘전면적 비례대표제’가 비례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제도이나 국민의힘이 제기하는 ‘소선거구제+병립형 비례대표제’와 간극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가장 적합한 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보다는 여야 간 정치적 타협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4월 안에 선거법 개정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 문재원 기자 ‘도농복합형’… 지역소멸 해결 못 해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는 현행 제도를 일부 보수하는 안으로 정개특위의 4개 안 중에서 주요하게 논의될 안으로 거론된다.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되 이를 대도시에만 적용하는 안이다. 대도시는 지역구당 3~10인의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농어촌에는 지금처럼 소선거구제를 유지한다. 지역소멸로 농어촌 인구가 급감하고 있다. 이미 농어촌의 경우 3~5개의 군을 하나로 묶어 선거구를 획정한다. 선거구 범위가 넓은 농어촌의 경우, 선거구를 더 확대하게 되면 지금도 부족한 지역대표성이 더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반영했다. 그러나 심각한 지역소멸 상황에서 농어촌 소선거구제 유지는 오히려 지역정치의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임미애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은 “이미 농어촌 지역은 4~5개 지역군을 묶어 선거를 치른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후보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차라리 중대선거구제를 기반으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선거를 치르면 그 지역의 산업이나 특성에 맞는 농민이나 어민 출신 당선자가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농어촌의 경우 인구가 급감하다 보니 선거 때마다 선거구가 바뀌는 불안정한 상황도 문제다. 임 위원장은 “지난 총선의 경우 30일 전에 선거구가 바뀌었다. 군위·의성·청송·상주가 원래 하나의 선거구였는데 인구 문제로 상주가 빠지고 영덕이 들어왔다. 선거구가 유지돼야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선거를 준비하고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데 그런 구조가 안 된다”라며 “내년 총선도 마찬가지다. 오는 7월 군위군의 대구 편입으로 선거구 획정을 새롭게 해야 한다. 어디에서 선거운동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농어촌이야말로 안정적으로 중대선거구제를 해야 지역에서 정치인들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법 개정 논의는 현행 선거제도가 지역소멸 등 한국사회 여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이관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의 대도시들이 비대해져서 수원시의 경우 갑을병정에 이어 무까지 선거구가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과 시의원의 지역구가 똑같은 상황이다. 수도권의 선거구를 키우자는 논리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방에서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것은 해법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농어촌 인구 감소가 심각한 상황에서 지역구 간 인구 편차를 2:1로 제한한 현재의 규정도 현실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관후 연구원은 “지금과 같이 인구 편차를 2:1로 제한한다면 지역의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해줄 방안도 같이 만들어야 한다”라며 “수도권 집중이 심각한 현상이 계속된다면 수도권 의원은 점점 늘어나고 농어촌을 대표하는 의원 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단순히 선거구만 조정할 것이 아니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대해 권역별 비례대표를 지역에 충분히 배정하는 방안 등도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충분한 공론화 필요 선거구를 획정해야 하는 법정 시한은 4월 10일이다. 현실적으로 법정 시한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20대 총선, 21대 총선 모두 선거일 한 달 전에야 선거구를 획정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안한 선거법 개정안도 법정 시한을 넘긴 4월 28일 본회의 의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거법 개정의 성패가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는 만큼 법정 시한에 연연하기보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선거법 개정이 거대양당의 정치적 합의로만 이뤄질 경우 ‘위성정당’ 사태처럼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준우 민변 변호사는 “지난 선거제도 개혁과정을 회고해볼 때, 새로운 선거제도 구축에 있어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구축하느냐가 선결과제가 될 것”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비록 공직선거법상 논의 시한은 일차적으로 2023년 4월로 돼 있지만, 조금 더 긴 호흡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민주당은 대선을 앞두고 선거제 개혁을 중심으로 한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지난 1년여 동안 구체적인 논의가 전무했다. 이관후 연구원은 “국회가 법정 시한을 맞추려고 했다면 지난해 이맘때쯤 지금과 같은 논의를 했어야 한다. 그렇게 1년 정도 깊이 있는 논의를 해왔어야지 법정 시한을 지킨다는 게 의미가 있다”라며 “법의 취지는 생각하지 않고 날짜만 맞추려고 하는 것은 본말전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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