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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다솔의 기지개 켜기](17)휴가라고 불러볼까(2023. 01. 13 11:36)
- 2023. 01. 13 11:36 사회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내 바지 어디 갔어?” 엄마가 대뜸 묻는다. 분명 아까 여기 두었던 바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대답한다. “아까 차에서 본 것 같은데?” 그러자 엄마가 냅다 소리친다. “글쎄 내가 여기다 놨대두!”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엄마는 씩씩거리며 차에 갔다가 곧 얌전해져서 돌아온다. 바지는 차 안에 잘 개어져 있었다. 바지는 건드린 적도 없고 심지어 그 소재를 찾아주기까지 한 내 입장에서 엄마의 난데없는 호통이 얼마나 당혹스러운지를 설명하면서 운전하다가 인천공항에 가는 길을 잘못 들었다. 한참을 돌아 도착한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저가 항공사가 있는 H구역에 체크인 수속하는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그 끄트머리에 엄마를 세워두고 나는 뛰기 시작했다. E 구역에서 환전한 돈을 찾고, D구역에서는 여행자 보험을 들어야 한다. C구역에서 우리가 입고 온 두꺼운 옷을 맡기고, 도착해 쓸 유심은 A구역에서 찾아야 한다. 한 구역은 커다란 학교 운동장만 했고 사람으로 가득했다. 여행자 보험을 들었을 즈음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외투를 맡기고 유심을 찾았을 때는 땀이 났다. 여분의 현금까지 찾아 A부터 H까지 다시 8개의 운동장을 뛰어왔을 때는 온몸이 축축했다. 엄마가 말했다. “패키지여행 가면 다 알아서 해주던데.” 엄마가 조금 더 넓은 자리에 앉았으면 해서 비상구 자리를 부탁하자 승무원이 묻는다. “최근에 수술하시거나 상처가 생긴 적이 있으신가요?” 엄마가 먼 곳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왼쪽 무릎을 수화물 저울에 턱 하고 올린다. “글쎄, 수술을 했죠. 여기 왼쪽 무릎이 살살 아파지기 시작했는데 그게 그러니까 5년 전이었나….” 막 수술 부위를 짚어주려는 순간 승무원이 다시 묻는다. “고객님, 최근 6개월 안에 하신 적 있으신가요?” 내가 말한다. “없습니다.” 엄마는 무릎을 문지른다. 체크인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승무원이 말한다. “비상상황 시 승무원과 함께 승객들의 대피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엄마가 말한다. “아니, 노인이 먼저 나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말한다. “도우시겠답니다.” 엄마와 첫 해외여행이다. 여행을 가면 제일 싼 도미토리에만 묵어왔던 내가 생애 처음으로 호텔을 예약했다. 여행의 참맛은 무계획이라며 주요 관광코스 앞에서 코웃음을 치던 내가 온갖 교통수단과 관광지를 줄줄이 외웠다. 이동과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필요한 것을 빈틈없이 준비했다. 엄마가 고른 나라는 태국이었다. 아픈 다리를 위해 원 없이 마사지를 받기 위해서였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방콕 공항에 도착한 엄마와 나는 습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공항 밖으로 보이는 야자수를 보며 엄마는 말한다. “제주도 같네.”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까지 가는 택시를 잡느라 한 시간을 헤맨다. 다리가 아프고 귀가 잘 안 들리는 엄마를 이끌고 1층에도 갔다가 4층에도 갔다가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묻는다. 모두가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이제 엄마와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공항을 떠나갔을 즈음 저 멀리서 한 태국인과 대화하는 엄마가 보인다. 모국어가 방콕 공항에 울려 퍼진다. “택시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자정이 넘어 도착한 호텔의 이름은 불사조였다. 우유갑 같은 방 안에 침대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실내화도 없고, 온수도 없고, 전화선도 없었다. 심심하고 단조로운 생김새의 호텔 건물을 제외한 주변은 폐허처럼 황량하다. 엄마는 처음 보는 나라의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있는 게 없는 숙소에 도착했을 때도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기쁘지도 새롭지도 실망하지도 않는 얼굴이다. 그냥 잠들기는 아쉬워 근처에 하나 있는 편의점에 들러본다. 하얗게 센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할머니가 편의점에서 작은 도시락을 사서 문밖에서 기다리던 개에게 준다. 둘 다 길에서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엄마는 이후 편의점에서 할머니들을 마주칠 때면 그때 그 할머니가 아니냐고 묻는다. 나는 어제 그 할머니가 몇 시간을 운전해 다시 이 지역의 편의점에 나타났을 리는 없을 거라고 말한다. 물 두 병을 사서 불사조 호텔로 돌아왔다. 엄마는 태국 화폐를 뭐라고 부르냐고 열 번을 물었다. 나는 열 번 모두 바트라고 대답했다. 바트가 어려우면 신드바드를 생각해보라고도 했다. 그러나 엄마는 계속해서 바트를 동이라고 말한다. “나한테 지금 만 동이 있어!”라고 외치는 식이다. 동은 베트남의 화폐로, 엄마는 베트남에 가본 적도, 동이라는 화폐를 쥐어본 적도 없다. 엄마는 태국 전통의상을 아오자이라고 부른다. “아오자이 입고 들어갈 수 있어?”라고 묻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아오자이는 베트남의 전통의상이며 엄마는 베트남에 가본 적도, 그걸 입어본 적도 없다. 이어서 엄마는 우리의 여행 행선지 중의 하나인 아유타야를 열한 번 물었다. 기록 경신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유타야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는 우선 “아”라고 말한 뒤에 나를 아주 오래 노려본다. 엄마는 온갖 표지판에 적힌 꼬부랑거리는 태국어 글씨를 마찬가지로 한참 노려본다. “아무리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리고 어떤 때는 말한다. “조금 예쁜 것 같기도 하고.” 여행에서 보고 듣고 말하고 결정하고 이동하는 모든 중심 주체는 나다. 다리가 불편한 엄마가 편하게 오르고 내리고 이동할 방법은 많지 않다. 영어를 잘하는 태국인 또한 많지 않다. 영어로 “여기 엘리베이터 있나요?” 하고 물으면 그들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위로 올라가는 몸짓을 하며 다시 묻는다. “엘리베이터?” 결국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로 번역기를 돌려 그들 앞에 내민다. 엄마에게 무언가 말할 때도 평균 2.5회가량 반복한다. 엄마는 귀가 좋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 있다. 태국은 어디든 조금 시끄럽다. 길에서 무언가를 보고 엄마에게 “귀엽다”고 말하면 우선 “응?”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시 “귀엽다” 그리고 또 “귀엽다고.” 말하고서 “방금 내 말 들었어?” 하고 묻는다. 그러다 보면 귀여운 것은 이미 지나가 있다. 그나마도 그렇게 전달되었던 내 말들은 엄마의 기억 속에서 대부분 사라지고 절반 정도만 남는다. 전달 과정에서 절반, 기억 과정에서 절반 이탈하니 우리 사이의 소통률은 25%에 가깝다. 내 말을 한 번에 제대로 알아듣고 기억하는 사람은 이곳에 없다. 나는 수도 없이 다시 말한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식당과 관광지, 마사지 가게를 검색하고 거리와 평점과 가격을 비교한 뒤 교통수단을 결정한다. 그 사이 엄마는 길에서 넘어질 뻔하고, 물건을 잃어버릴 뻔하거나 갑작스러운 풍경에 멈춰서 있다. 그곳 어딘가에 엄마가 기뻐하는 순간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휴가를 온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어디선가 엄마의 탄성이 들린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 양다솔의 기지개 켜기
- [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14)연차휴가는 소중하다(2022. 08. 26 15:11)
- 2022. 08. 26 15:11 사회
- 김영민 기자 얼마 전, 연차휴가 사유에 ‘생일파티’라고 쓴 어느 직원의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화제였습니다. 회사에 제출하는 연차사유에 ‘생일파티’라고 쓴 경우에 대해 “회사에 보고하는 자료인데 요즘 세대들 이해가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연차사유는 원래 적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그런 걸 따지는 것이 ‘꼰대’”라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연차사유가 뭔가? 1990년대생의 경우 연차는 “나의 자유이고, 자유의 사유 또한 알릴 필요가 없다”(<90년대생이 온다> 중에서)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현실에서는 “부장님, 저… 연차 좀 내겠습니다”라고 어렵게 내밀며,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연차사유 칸을 착실히 기재하는 직원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회사가 연차사유를 기재하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법적인 이유는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노동법은 “사용자는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60조 제1항)라고 규정하고 있고, 휴가를 실시한다면 연차사유를 제출해야 한다거나, 제출을 강제할 수 없다고 정하지는 않습니다. “휴가를 청구하는 근로자에게 그 사유의 기재를 요구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휴가 사유 기재 금지’ 개정법률안이 발의된 적(2016년)도 있었으나, 실제로 입법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회사 내규(취업규칙)에서 연차사유를 기재하도록 규정한 경우에는 일단 내규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 있어야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 사용자는 연차 유급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하고, 그 기간에 대해는 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근로자의 ‘시기지정권’). 다만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휴가의 ‘시기’와 관련해 사용자가 근로자의 휴가일 지정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사용자의 ‘시기변경권’).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은 어떤 경우일까요. 회사에 굉장한 타격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법원은 근로자가 지정한 시기에 휴가를 준다면 그 사업장의 업무 능률이나 성과가 평상시보다 현저하게 저하돼 상당한 영업상의 불이익을 가져올 것이 염려되거나 그러한 개연성이 엿보이는 사정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봅니다. 이를 판단할 때는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성질, 남은 근로자들의 업무량, 사용자의 대체 근로자 확보 여부, 다른 근로자들의 연차휴가 신청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이는 건별(case by case)로 판단하되 회사에 그 직원의 연차로 인한 ‘상당한 불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법원은 근로자의 연차휴가 시기지정권을 사용자의 시기변경권보다 적극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법원은 “근로자의 연차휴가는 통상 예견되는 것이고 평상시에도 늘 행해지는 것이므로 회사로서는 통상적인 근로자의 결원을 예상해 그 범위 내에서 대체 근로자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라고 합니다(서울행정법원 2015구합73392). 외근직 가전제품 수리기사인 근로자가 징검다리 연휴 중 2일의 연차휴가 신청을 반려했음에도 해당일자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4일의 정직처분을 한 회사의 결정에 대해 법원은 근로 인력이 감소해 남은 근로자들의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는 ‘일반적 가능성’만으로 시기변경권을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서울고법 2018누57171). 그리고 이러한 막대한 지장이 있다는 점은 근로자가 아닌 사용자가 입증해야 합니다. 예외적으로 대다수 근로자가 특정일자에 한꺼번에 연차휴가를 사용하거나, 시즌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등과 같은 객관적인 통계가 없는 이상 앞으로도 사용자의 연차휴가 시기변경권은 쉽게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일례로 버스회사의 운전기사가 ‘15일 연속’으로 휴가를 사용한 경우는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 인정됐습니다(대법원 2000다4005). 결론적으로 연차휴가 사유를 어떻게 기재하는지 여부, 연차사유를 반려할지 여부는 시기변경권의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법원도 근로자가 최초 연차 신청 이유(이사준비)와 다르게 집회에 참석했고, 회사가 해당 연차유급휴가를 무단결근으로 처리한 사안에서 “회사가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수 없고, 그에 따른 무단결근 처리는 위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연차 썼는데 업무지시하는 경우 눈치 보면서 연차를 썼는데 출근 업무지시가 오는 경우, 또는 반차를 썼는데 업무가 부여된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요. 마찬가지로 특정 근로자가 연차 사용을 한다고 하여 특별히 업무 능률이나 성과가 평상시보다 현저하게 저하된다거나 상당한 영업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연차는 통상 예견되는 것이고, 평상시에도 늘 있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이 정당하지 않고, 근로자의 시기지정권이 정당하게 인정되므로 이 경우도 근로자가 원하는 때 휴가를 못 쓰게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회사가 적법한 시기변경권을 행사하지 않은 채 근로자의 연차휴가를 방해한 경우에 해당하면 근로기준법 위반행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이유로 처벌받은 사례도 있습니다(대법원 99도317). 동시에 해당 상사의 행위는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회사의 입장도 있기 때문에 형사적인 문제가 되기까진 그 정도가 ‘상당히 심각’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차를 내고 퇴근시간까지 일하다 퇴근한 경우에는 해당 반차가 소멸되지 않습니다.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연차휴가 계획서를 제출했으나 실제 출근해 일했고, 회사도 별다른 이의가 없었던 사건에서 회사가 근로자에게 연차수당을 지급해야 한다(연차휴가가 취소되는 효과)는 사례도 있습니다(대법원 2019다279283). 회사 입장에서는 다소 불합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연차휴가가 회사가 베푸는 온정과 시혜가 아니고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로서 소중하다고 본 판결들입니다.
- 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
- [편집실에서]휴가를 떠나는 이유(2022. 08. 05 14:38)
- 2022. 08. 05 14:38 오피니언
- 13연패. 스포츠 뉴스를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삼성의 허삼영 감독이 최근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고 합니다.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는 게 승부세계의 본질이라지만 ‘명문’ 구단 삼성의 창단 이래 최다 연패 기록이라니 한참 동안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부상자가 속출하는 과정에서도 특정 선수만 고집하면서 이들의 피로도가 쌓였고, 새로운 선수들의 발굴은 요원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구단 운영의 최고 사령탑인 허 감독의 실책을 지적하는 한 기사에서 발견한 문구입니다. 세세한 내막까진 알 수 없지만,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시즌 중에 좀처럼 감독을 바꾸지 않는(무려 25년 만의 일이라지요) 삼성 구단에서 감독대행 체제가 탄생했을까요. 허 전 감독 자신을 비롯해 선수들이 겪어야 했을 노심초사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은 갑니다. 공교롭게도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시기 여당의 최고 사령탑인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이 사의를 표명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잇단 실수가 쌓여오던 차에 ‘대통령과 (사적으로) 주고받은 문자 유출’이라는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책임공방과 내분이 극한으로 치달았고, 국민의힘은 끝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20%대까지 추락한 대통령 지지율도 비상입니다. 각종 비선 의혹에, 말실수, ‘윤핵관’의 득세, 소통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아니면 말고’식 교육부 장관의 업무보고, 행안부 장관을 앞세운 밀어붙이기식 경찰국 신설 논란까지 악재가 하루가 멀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모든 사태의 최종 컨트롤타워이자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일단 휴가를 떠났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휴가 복귀 후 대대적 인사, 깜짝 정책 발표 등을 통해 분위기 쇄신 및 국정과제 추진의 동력을 확보하려 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당장 8·15 경축사에 담길 내용이 궁금합니다. 취임 100일을 맞는 시점이기도 하고요. 취임사에서는 ‘반지성주의’라는 다소 난해한 용어를 전면에 내세우다 보니 정작 대국민 메시지는 뚜렷이 기억나는 게 없다는 지적이 많았죠. 이번에는 대중과 눈높이를 맞춘 정확한 진단과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백마디 말보다 취임 후 처음 단행할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의 면면을 보면 향후 국정운영 방향과 정책기조가 고스란히 드러나리란 전망도 나옵니다. 재충전, 많은 이가 휴가를 떠나는 이유입니다. 심기일전, 많은 기관이 조직개편이나 책임자 교체를 단행하는 배경입니다. 박진만 감독대행 체제하에서 삼성은,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은 면모를 일신하고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까요. 오는 8월 하순이면 비대위 체제를 끝내고 새 당대표가 탄생하게 될 더불어민주당까지 포함해 혼란과 진통이 푹푹 찌는 대한민국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 편집실에서
- [렌즈로 본 세상]장마철 휴가는 책과 함께(2020. 08. 07 15:26)
- 2020. 08. 07 15:26 사회
- 지난 8월 4일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튜브 사이로 청소년들이 만화책 코너에서 책을 고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린 시절, 장마가 시작되면 만화책방에서 만화책을 한아름 빌렸습니다. 아무렇게나 펼쳐놓은 만화책 사이에 드러누워 한 권 한 권 읽어가며 듣는 빗소리는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비 예보가 내려진 지난 주말, 그 시절을 생각하며 만화책을 빌려 비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주말 동안 만화보다는 뉴스에 눈이 더 갔습니다. ‘장맛비’가 아닌 ‘폭우’가 내린 탓이었습니다. 고약한 바이러스가 일상을 점령하고 장마와 폭우로 인해 피서가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책 한 권 끼고 집에서 차분한 휴가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 렌즈로 본 세상
- 코로나 시대, 휴가 어디로 가세요?(2020. 07. 03 17:22)
- 2020. 07. 03 17:22 문화/과학
- 여름은 어김없이 왔지만, 지난겨울 찾아온 ‘불청객’ 코로나19는 계절이 두 번 바뀌어도 떠날 줄 모른다. “휴가(여행) 어디로 가?”보다 “휴가 가?”라는 질문이 더 어울리는 요즘. 국경의 빗장이 풀리고 있다지만 한동안 하늘길은 잠잠할 전망이다. 근교의 고즈넉한 계곡물에 발 한번 담그는 것도 망설여진다. 코로나19 시대, 방역상 가장 좋은 피서는 ‘집콕’일 테다. 집 밖으로 떠나든 말든 각자 결정할 일이지만 안전한 휴가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기에 고민은 커진다. 부산지역 7개 해수욕장이 정식 개장한 7월 1일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서 파라솔이 2m 이상 거리를 둔 채 설치돼 있다./연합뉴스 떠나기로 했다면, 제일은 ‘안전’ 정부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3대 여행수칙을 제시한다. 소규모 여행, 마스크 쓰고 여행, 3밀(밀폐·밀접·밀집) 피하기 여행이다. 적은 인원이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한적한 곳으로 떠나라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29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휴가철을 맞아 관광업계도 숨통을 틔우고, 코로나에 지친 국민도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면서 “관광지에 대한 빈틈없는 방역과 함께 안전한 여행과 놀이문화의 확산에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역과 지역경제 활성화, 상반된 듯한 두 과제가 공존한다. 여행객들이 내딛는 땅에는 기회와 위험이 함께 머문다.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여행객들이 눈을 돌리는 곳은 제주도. 최근 제주도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 수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됐다. 웃을 수만은 없다. 제주에 다녀간 후 확진 판정을 받은 사례가 나오면서 지역감염 우려도 커졌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7월 1일 담화문을 발표하고 “제주는 70만 도민의 생활 터전이자 국민의 힐링을 위한 곳이지 코로나19 도피처는 아니다”라며 “제주를 찾는 모든 분을 환영하지만 개념도 가지고 오셔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증상이 있는데도 여행을 강행하다 확진된 경우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도는 이미 여행 첫날 증상이 나타났는데 여행을 강행한 모녀, 해열제를 먹으면서 관광을 즐긴 60대 남성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살얼음판이긴 하다. 여행객들이 방역지침을 잘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제주에서 렌터카 플랫폼을 운영하는 마탐의 김종식 대표는 말한다.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국내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렌터카 업계가 다시 호황을 맞고 있지만, 제주 여행객들이 확진됐다는 뉴스는 걱정을 더한다.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비대면’ 여행방식이 두드러지고 있다. 김 대표는 “변두리의 펜션·리조트는 예약이 힘들 정도지만, 시내 호텔 사정은 여전히 좋지 않다. 밀집돼 있는 공간에는 가지 않고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곳에 다니는 쪽으로 여행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가용으로 인천에서 태안·서산을 다녀왔다는 직장인 ㄱ씨(26)는 “아무래도 리조트에선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니 독채 펜션에 묵었다. 대부분 예약이 찬 상태라 취소된 걸 겨우 구했다”고 말했다. 8월 중순 휴가를 쓴다는 그는 “예전 같으면 어디 갈지, 어디에 묵을지 계획을 다 짜놓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을 지켜볼 뿐”이라고 했다. 한적한 여행지를 찾고 있다면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비대면 관광지 100선’을 권한다. 올해 7월 개장해 덜 알려진 수도권의 휴양림 등 전국의 다양한 관광지를 소개한다. 교통·관광지·음식점·쇼핑·숙박 등 유형별로 주의할 점을 안내하는 ‘여행 경로별 안전여행 가이드’도 읽어보자. 모두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korean.visitkorea.or.kr)에 올라와 있다. 해수욕장에 가볼까 고민이라면 해양수산부의 바다여행 홈페이지(seantour.com)가 도움이 된다. 주요 해수욕장이 얼마나 붐비는지 삼색으로 나타낸 ‘해수욕장 혼잡도 신호등’을 볼 수 있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전라남도 15개 해수욕장 방문을 예약할 수도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여름휴가가 특정 시기에 몰리지 않도록 휴가 기간을 6월 29일부터 9월 18일까지 12주간 운영한다. 정부는 민간 기업에도 분산 운영을 요청했다. 등교수업이 늦어지면서 초·중·고교가 대부분 8월 초·중순에 여름방학에 들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7말 8초’로 통하던 극성수기가 8월 중순으로 늦춰질지 모른다. 여행을 다시 생각하다 “여행은 결코 코로나19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공유숙박 업체 에어비앤비의 공동 창업자인 브라이언 체스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앞으로 사람들이 휴가를 집과 가까운 곳,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는 곳에서 보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체스키는 “언젠가는 사람들이 다시 비행기에 오를 것”이라면서도 “이전까지는 로마·파리·런던에 가고 호텔에 머물며 이층 버스를 타고 셀카를 찍기 위해 랜드마크 앞에 줄을 섰다. 앞으로 그 비율이 줄게 될 것”이라고 했다. 20년 넘게 60여 개국을 돌며 여행자로, 관광 마케터로 산 작가 마고캐런(필명)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최근 코로나19가 멈춘 시간 속에서 ‘왜 떠났는가’를 돌아보며 쓴 책 <여행 없는 여행>에 “여행은 떠난다는 의미에서 보면 이동이고 머문다는 의미에서 보면 공간이다”라고 썼다. “많은 사람이 왠지 특별한 곳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여행’이 아니라고 느낀다. 여행하다 보면 ‘그냥 이동했을 뿐인데, 장소만 바뀌었을 뿐인데 나는 여행자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파리나 발리가 아니더라도 집 밖을 나서고 공원에 가면 장소의 이동이다. 그 순간에 집중하다 보니 굳이 캐리어 끌고 공항 가서 날지 않아도 ‘이동하는 그 자체’가 여행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여행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지만, 그 의미를 너무 멀리서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는 모두가 섣불리 떠날 수 없는 ‘평준화된 시간’ 속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서울과 전북 순창을 오가며 생활하는 그는 올여름 순창 집으로 체크인해 책에 파묻혀 지낼 작정이다. “‘휴가’나 ‘여행’이라는 게 특별한 계획을 세우게 하는 단어 같다. 하루종일 방에 있을 수도 있고, 친구와 수다를 떨 수도 있고, 근처 식당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갈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주는 시간 속에서 그간 잊고 산 자기만의 휴식을 찾는다면, 그것이 휴가이고 여행이다.”
- [취재 후]반려동물, 올 휴가철에는 얼마나 버려질까?(2019. 07. 05 15:19)
- 2019. 07. 05 15:19 사회
-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세 번째 시즌을 방영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세상에 나쁜 개가 없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을까. 1980년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동물은 대부분 가축 취급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먹을 수 있는지’ 먹을 수 있다면 ‘맛은 있는지’였습니다. 동물의 품성이 착한지, 나쁜지 따위는 고민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한데 2000년대 들어 반려동물 열풍이 불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개들은 ‘똥개’에서 ‘애완견’으로 불렸다가 ‘반려견’이 됐습니다. ‘나비’에 불과했던 고양이들은 ‘집사’를 거느린 주인의 위치에 올라섰습니다. 반려동물의 위상만 높아진 게 아닙니다. 시장에서는 각종 반려동물 전용 상품과 서비스가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고, 반려동물은 돈이 되는 하나의 ‘산업’이 됐습니다. 정부도 반려동물 육성책을 발표해가며 반려동물 산업화를 독려합니다. 모두가 반려동물을 앞세워 돈을 좇는 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동물들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한 해 10만마리가 넘는 동물들이 유기됩니다. 동물 생산 농장에서는 반려동물을 마구잡이로 공급하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동물은 도축되거나 버려집니다. 자격 없는 주인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반려동물을 파양합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저소득층 가구는 진료비가 부담돼 병원을 가지 못합니다. 아픈 동물들은 치료를 받지 못해 앓다가 죽기도 합니다. 동물병원 진료비를 어떻게 책정할지는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 관련 새로운 업종과 상품이 지금도 생겨나고 있지만 동물복지를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껏 마련한 동물복지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해마다 여름 휴가철에는 유기동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유기동물들이 거리에서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다 안락사당하는 동물들의 처지가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까요.
- 취재 후
- [건강설계]휴가철 물놀이 허리 부상 조심(2018. 08. 20 14:37)
- 2018. 08. 20 14:37 건강
- 이학선 바른세상병원 척추센터 원장(신경외과 전문의) 회사원 박모 씨(33)는 친구들과 함께 여름 휴양지로 휴가를 떠나 다양한 수중 스포츠를 즐겼다.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던 박씨는 물 위에 떨어질 때 충격으로 허리에 통증을 느꼈다. 근육통이려니 하고 방치하던 박 씨는 허리와 엉덩이 쪽에도 당기는 듯한 통증이 생기자 병원을 찾아 급성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급성디스크는 허리에 순간적인 충격이나 부담이 가해졌을 때 발생할 수 있다. 휴가철이 끝나가면서 박 씨와 유사한 이유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평소 운동량이 부족하거나 허리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경우 이와 같은 급성디스크에 쉽게 노출된다. 급성디스크를 방치할 경우 증상이 만성화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허리에서 시작된 통증이 엉덩이와 허벅지 쪽으로 내려오고, 당기고 저리는 느낌이 들거나 기침할 때 허리 전체가 울리는 듯한 느낌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급성디스크는 보존적 치료를 우선 시행하는데, 대부분 초기에 회복이 가능하다. 보존적 치료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미세현미경이나 내시경을 이용해 치료를 할 수도 있다. 허리 통증으로 내원한 또 다른 환자 이모 씨(42)는 워터파크에서 물놀이를 하던 중 허리에 통증이 생겼다. 늘 있는 근육통 정도로 생각했지만 휴가 이후에도 허리 통증이 계속되자 병원을 찾았다. 그는 척추분리증이었다. 척추분리증은 척추뼈 사이 연결 부위가 끊어져 척추 마디가 분리되는 질환이다. 선천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허리의 외상이나 과격한 운동, 허리에 반복적인 압박과 스트레스가 가해져 생기는 피로골절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척추분리증은 허리 통증이 심하지 않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방치될 경우 척추 뼈 마디가 위아래로 엇갈리는 척추전방전위증으로 악화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척추전방전위증은 증상 정도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진다. 진행 정도가 심해 신경이 눌린 경우 수술적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질환 초기에는 약물치료나 물리치료 등 비수술적 치료가 가능하지만,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비수술적 치료에도 증상에 호전이 없는 경우 경막외 신경감압술 등의 시술로 치료할 수 있다. 여전한 늦더위에 물놀이로 더위를 떨쳐내는 것도 좋지만 안전하고 건강한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는 물놀이 전에 반드시 충분한 스트레칭으로 근육의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
- 건강설계
- [시로 여는 한 주]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2018. 08. 20 14:37)
- 2018. 08. 20 14:37 문화/과학
-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전기요금이 아까워 에어컨을 굳이 마다하시는 연로한 어르신이 안타까운 요즘, 한때 보일러 광고처럼 “부모님 댁에 에어컨 놔 드려야겠어요”가 머리에 맴맴거리고, 때늦은 후회로 가슴이 먹먹하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 시로 여는 한 주
- [포커스]특별한 동네책방에서 ‘셰익스피어 휴가’ 어때요(2017. 07. 18 15:56)
- 2017. 07. 18 15:56 사회
- ㆍ책방지기의 특별한 큐레이션 돋보이는 소규모 전문 서점 3곳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서점은 늘 위기였다. 1990년대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의 등장 이후 서점의 생존이 위태롭지 않은 적은 없었으며, ‘책 안 읽는 한국인’이라는 뉴스 역시 ‘뉴스’가 아닐 정도로 매년 언론 기사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특히 동네 서점은 ‘위기’를 넘어 ‘고사’라는 말과 함께 자주 거론됐다. 그런데 지난 6월, 출판계의 가장 큰 행사인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다름 아닌 서점이었다. 전국의 소규모 동네 서점 20곳이 선보인 특별기획전의 이름은 ‘서점의 시대’. ‘위기’와 ‘고사’를 넘어, 다시 서점의 시대가 온 것일까. 최근 몇 년 새 ‘작은 책방’이 늘고 있다. 대형서점에 비해 책의 규모도 종류도 훨씬 작은 수준이지만, ‘물량’ 아닌 책방 주인만의 ‘취향’으로 승부를 본다. 베스트셀러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좋은 책을 선별하고, 이런 큐레이션이 곧 책방의 정체성이 돼 독자들과 만난다. ‘책맥(책+맥주)’, ‘1대 1 책 처방’ 등의 유행 역시 동네 책방의 부활과 함께 나타난 현상이다. 젊은층이 주도하는 아날로그 감성의 소비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인증 바람에 따른 일시적 유행일 수도 있지만, 출판과 지역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선 반가운 현상이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관리들에게 주는 유급휴가인 ‘사가독서(賜暇讀書)’라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왕이 하사하는 휴가 동안 마음껏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3년에 한 번 한 달간 관리들에게 ‘셰익스피어 휴가(Shakespeare Vacation)’라는 이름의 유급휴가를 줬다. 현 시대 직장인에겐 그 누구도 책 읽으라고 유급휴가를 주지 않지만, 길고 무더운 여름 어딘가로 떠나기 어렵다면 독특한 책방에서 자체적으로 셰익스피어 휴가를 보내는 건 어떨까. 책방지기의 특별한 큐레이션이 돋보이는 소규모 전문 책방 3곳을 찾았다. 추리소설이 주인공인 ‘미스터리’한 책방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 대학가의 대표 상권이었던 신촌기차역 일대. 과거에 비해 상권이 시들었다지만 여전히 관광객과 행인으로 번잡한 거리를 뒤로 하고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골목 깊숙한 곳 한편에서 작은 책방을 만나게 된다. 골목에서 바라본 쇼윈도에는 노란 전구의 조명을 받은 책 한 권만이 고고하게 놓여 있다. 무언가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이 잔뜩 숨어 있을 것만 같은 공간, 추리소설 전문책방 ‘미스터리 유니온’이다. 이미 추리소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난 이 책방은 지난해 7월 문을 열었다. 작은 나무 문을 열고 책방에 들어서면, 7평 남짓의 작은 공간 벽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추리소설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누구에게나 추리소설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 있잖아요. 그 추억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추리소설이 좋아’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해 아예 책방 주인이 된 유수영씨의 말이다. 작은 책방의 매력은 무엇보다 해당 책방만의 독특한 색깔이 담긴 큐레이션이 아닐까. 미스터리 유니온에서는 의미 없는 추리소설이란 없다. 대형서점이 그렇듯 갓 나온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만 주인공이 되는 공간도 아니다. 책방 이름도 “모든 소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추리소설의 연합 내지 연대”라는 의미에서 ‘미스터리 유니온’으로 지었다고 한다. 유씨는 “대형서점에 가면 추리소설은 베스트셀러 몇 권 말고는 구석진 곳에 있거나 아예 없어서 찾아보기가 어렵다”면서 “잊혀졌거나 창고 속으로 들어갔던 책들을 재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책방지기의 의지가 드러난 공간이 한쪽 벽면에 마련된 테마 서가다. 책방에 들어서면 왼편에는 국가별·작가별로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고, 오른편 서가는 매달 책방지기가 선정한 테마에 따라 다른 책을 진열한다. 7월의 주제는 ‘여행과 미스터리’. 자동차, 선박, 비행기가 사건의 무대가 되거나 주요 모티브가 되는 추리소설을 모았다. “한여름 밤에 낯선 곳에서 읽는 추리소설은 또 다른 매력이겠지요. 열차 미스터리, 공항 미스터리, 선상 미스터리와 함께 여행 속 여행을 떠나 보세요.” 추리소설의 매력을 좀 더 느끼고 싶다면 책방에서 진행하는 작은 모임들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스터리 유니온에서는 매달 ‘달밤 낭독회’를 연다. 미리 선정한 단편집으로 예닐곱 명이 둘러앉아 소소하고 오싹한 낭독회를 진행한다. 앞서 세 차례 진행했던 ‘금요일밤의 미스터리 토크’도 9월부터 다시 시작된다. 추리소설 작가, 평론가를 강사로 초빙해 ‘60권의 미스터리 여행’ ‘추리소설 쓰는 법’ 등을 주제로 강의를 열었는데 참가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책방지기 유수영씨는 미스터리 유니온이 추리소설 마니아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누구나 쉽게 추리소설을 접할 수 있는 친근한 공간이길 바란다고 했다. “누구나 왕년에 추리소설 한 번쯤 읽었잖아요. 추리소설이 특별한 장르가 아니라, 좀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문학작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행 책방으로 떠나는 여행 휴가 중 가장 설레는 순간이 공항 가는 길이라면, 가장 서글픈 순간은 귀국 후 공항을 나섰을 때 어디론가 떠나는 이들을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모든 여행이 행복할 수만은 없겠지만, 떠날 때와 돌아올 때의 느낌이 태평양만큼이나 크게 차이가 나는 게 바로 여행일 것이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문을 열면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 곳이 있다면, 바로 여행 책방이다. 서울 연남동의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여행책방 ‘사이에’는 제법 여행과 궁합이 잘 맞는 책들을 모아놓은 공간이다. 여행책방이라고 해서 가이드북만 있는 게 아니다. 여행지에서 읽으면 좋은 책, 여행지 출신의 작가가 쓴 책, 여행 국가에 대한 역사서와 문화서까지. 어린이책을 주로 출판하는 편집디자인회사 하라컴퍼니의 조미숙 대표가 지난해 “여행이 좋아서” 문을 연 책방이다. 서가 가득 여행과 관련한 각종 책을 꽂아두었지만, 전문 책방이라 해도 역시 강점은 책의 ‘규모’가 아니라 ‘큐레이션’에 있다. 책방에 들어서면 매달 한 곳의 도시를 선정해 관련 책들을 진열한 ‘한 달에 한 도시’ 코너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 ‘위로 여행’ ‘바다 여행’ ‘미식 여행’ ‘음악 여행’ 등 다양한 테마로 구성된 서가도 책방 곳곳에 숨어 있다. 동시에 책방은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단정하게 배치된 책장들 사이에는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 한편에는 작은 카페도 마련돼 있다. 조미숙 대표는 “단순히 책만 보는 공간이 아니라 편하게 여행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책방은 때로 공연장이나 미술 전시관, 교실로 변신하기도 한다. 한 달에 두세 차례씩 여행작가를 초청해 ‘여행 토크’를 진행한다. 의 저자 배종훈 작가의 여행 드로잉 교실도 여행자들의 ‘그림 일기’에 대한 욕구를 증명하듯 인기가 좋았다. 책방 한쪽 벽면에는 조 대표가 고심해서 기획했다는 작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매달 전시물이 바뀌는 이 작은 전시회의 이름은 ‘여행자의 시선’. 온라인으로 공모를 해 사진, 드로잉 등 여행자들의 평범하지 않은 시선을 소개한다. 지난해엔 이 공간이 ‘여행자의 서재’로 꾸며졌다. 최갑수, 오영욱, 정현주 작가 등 유명 여행작가들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와 책방을 찾는 이들이 여행작가들의 큐레이션까지 엿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책방 문을 연 지도 이제 1년 반, 수익은 어떨까. 조 대표는 “그새 책 부자가 됐다”며 웃었다. ‘사이에’를 비롯해 많은 소규모 전문 책방들이 책을 현매로 구입하기 때문에 팔리지 않는 책은 반품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안 팔리는 책은 모두 제꺼예요.(웃음) 아직은 같이 운영하는 회사 사무실 수익으로 책방 적자를 수습하는 수준이긴 한데, 그래도 입소문이 나면서 여행과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 찾아주고 있어요.” 동네 작가 소개하는 진짜 ‘동네 책방’ 소규모 전문 책방들이 모여 있는 서울 연남동, 최근 젊은 예술가들의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동진시장 인근 골목에는 그림 전문 책방인 ‘사슴 책방’이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김종민씨와 디자이너 정선정씨 2명의 책방지기가 운영하는 이 작은 책방은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귀엽고 우아한 사슴을 좋아하는” 책방지기의 취향으로 책방 이름도 ‘사슴 책방’으로 붙였다. 국내외 그림책은 물론 해외의 독립 출판물, 최근 몇 년간 독자층이 크게 늘어난 그래픽노블을 주로 취급한다. 정선정씨는 “그림책 전문 책방이지만 어린아이 책을 찾는 부모보다 본인을 위한 그림책을 찾는 분들이 더 많다”고 귀띔했다. 책방의 중앙, 커다란 테이블 위엔 이 책방을 통해 ‘데뷔’한 작가들의 그림책이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책방에서 진행한 드로잉 수업과 창작 그림책 워크숍 등을 통해 나온 결과물들이다. “사슴 책방은 작가들의 시장이자 작가들의 무대이길 바랍니다.” 책방지기의 설명이다. 책방은 최근 동네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그림만화전’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동네서점’ 앱 개발사인 퍼니플랜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지역의 독립서점이 해당 지역의 작가를 발굴해 대표작을 온라인 연재하고, 책방 전시·판매 등을 통해 독자에게 소개하는 말 그대로 ‘동네 서점’만의 기획이다. 전국에서 총 6개의 그림책 전문 독립서점이 참여했는데, 사슴 책방은 마포구 망원동에서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는 홍세인 작가의 독립출판 만화책 를 소개했다. 책방지기 정선정씨에게 책방 소개를 부탁하자 그는 연남동의 5개 작은 책방이 함께 만든 ‘연남동 책방여행’이란 지도부터 건넸다. 한 책방에 방문하면 동네의 다른 책방들을 소개해주는 연남동 책방들의 ‘스탬프 여행’.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작지만 정감 넘치는 동네 책방들이 돌아왔다.
- “여름 휴가철이다” 노조깨기 시동(2016. 08. 09 16:44)
- 2016. 08. 09 16:44 사회
- ㆍ갑을오토텍, 지난달 말 직장폐쇄… 여론 관심 줄고 연대투쟁도 느슨 충남 아산시 아산역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갑을오토텍 공장이 있다. 500여명이 일하는 공장은 한 달 전부터 사실상 가동을 멈췄다. 노사 양측이 오랫동안 불신을 쌓아온 끝에 노조가 7월 8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에 사측은 7월 26일부터 직장폐쇄로 맞섰다. 갑을오토텍 정문은 수백 명의 사람들로 24시간 북적인다. 날씨는 섭씨 35도를 오르락내리지만, 공장 안쪽은 노조원들이, 공장 바깥쪽에는 경찰과 용역직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대치하고 있다. 평소엔 서로 눈싸움만 주고받지만, 외지에서 갑을오토텍 노조에 연대하려는 시민들이 올 때마다 경찰과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정문 안쪽에서는 확성기를 든 노조원들이 “왜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막느냐”고 소리를 친다. 그래도 노조원의 가족들이나 외부 취재기자들은 자유롭게 공장 안을 드나들 수 있었다. 생산과 직접 무관한 갑을오토텍 임직원들도 사무실 출근은 가능했다. 하지만 갑을오토텍 노조원들은 “언제든 밖에 서 있는 용역들이 공장 안으로 치고들어올 수 있다”며 긴장을 풀지 않았다. 갑을오토텍 사측이 용역투입을 예고한 지난 1일, 충남 아산시 갑을오토텍에서 노조원들과 용역들이 대치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경찰·특전사 출신 채용해 기업노조 구성 4년 전 이맘때쯤 기업 측이 고용한 용역직원들의 폭력행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2012년 7월 27일 새벽, 용역업체 컨택터스는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 위치한 SJM 공장 안으로 진입했다. 당시 SJM 노동자들은 사측이 단체협상에 응하지 않은 데 반발해 파업 중이었다. 컨택터스 소속 용역들은 경찰 진압장비를 연상시키는 방패, 헬멧, 곤봉을 착용하고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30여명이 부상을 당했고, 10여명은 병원에 후송됐다. 같은 날 역시 노사갈등이 벌어지던 만도기계 평택공장 등에도 컨택터스 용역들이 침입했다. 용역들은 만도기계 노동자들의 공장 출입을 막았고, 사측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일주일 만에 금속노조 만도지부에 속했던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기업노조로 이동했고, 만도지부는 소수파로 전락했다. 만도와 SJM의 폭력사태가 사회적 문제가 되기 이전까지 수년간 기업은 노사갈등 상황에서 ‘주먹’을 선호했다. 창조컨설팅 등 노무법인의 자문을 받고 용역 투입과 직장폐쇄를 단행했으며, 금속노조에 속해 있던 노동조합은 노조원들의 이탈 끝에 소수노조로 전락하기도 했다. KEC, 발레오전장,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 등 ‘노조깨기’가 진행된 사례에 대한 재조명도 이뤄졌다. SJM 사례는 예외적으로 사측의 전략이 실패한 사례로 남았다. SJM 노조원 150여명 중 이탈자는 소수에 불과했고, 사측은 두 달여 만에 직장폐쇄를 풀고 노조와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SJM 사례 이후 한동안 용역을 동원한 폭력적 노조깨기 사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4일, 갑을오토텍 직장폐쇄 중에 사측이 과거 노조 파괴 사례를 벤치마킹해 만든 듯한 노조 파괴 시나리오 문건이 공개됐다. 현대차 휴가기간이라 생산 차질도 없어 몇몇 노동계 관계자들은 갑을오토텍 사측이 직장폐쇄를 단행한 시기에 주목했다. 갑을오토텍은 몇 년 전부터 노사갈등이 심한 사업장이었다. 2014년에는 회사가 경찰·특전사 출신들을 신입사원으로 채용했고, 이들이 복수노조인 기업노조를 구성했다. 기존 노조원들은 평균연령이 40대 중반이 넘는 이 ‘신입사원’들이 사실상 노조 파괴용 용병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또한 박효상 전 대표가 부당노동행위로 검찰에 기소되고 재판 중에 법정구속되기도 했다. 노사 양측의 단체교섭이 난항에 빠지자 갑을오토텍 노조(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는 전면파업에 나섰고, 사측은 직장폐쇄를 선언했다.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은 사측이 속전속결로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휴가철을 앞두고 직장폐쇄를 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었다. 손찬희 노조 사무장은 “과거 만도나 SJM도 여름 휴가철에 맞춰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평소에 직장폐쇄가 이뤄진다면 다른 곳에서 연대투쟁을 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휴가철이라면 아무래도 우리들의 힘만으로 공장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변 노동위원회의 김차곤 변호사는 완성차에 부담을 주지 않는 시기에 노조 파괴를 이루려면 여름 휴가철만큼 좋은 때도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자동차 업계는 원청인 현대자동차의 일정에 맞게 휴가를 가게 되어 있다. 휴가기간에 직장폐쇄를 하면 그 기간 동안에는 어차피 생산을 하지 않기 때문에 완성차 생산에는 차질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며 “사측이 노조를 와해시킬 생각이 있다면 완성차에 부담을 주지 않는 휴가기간에 직장폐쇄를 하는 게 시기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갑을오토텍 노조는 4일 공개된 일명 ‘QP전략 시나리오’ 문건을 토대로 회사가 실제로 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다. 이 문건은 박효상 전 갑을오토텍 대표의 재판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2014년 11월쯤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건에 따른 갑을오토텍 사측의 전략은 이렇다. 현재 별정직 직원으로 채용되어 있는 경비업무를 외주화함으로써 파업을 유발한다. 노조로 하여금 경비업무 외주화를 비정규직 전환의 신호탄으로 여기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갑을오토텍은 비정규직이 없는 사업장이다. 이어 관리직 노동자과 다른 업체들을 통해 대체생산을 하여 원청인 현대차의 납품물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게 한다. 이어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미리 성향파악을 통해 등급별로 나눈 노동자들을 순차적으로 현장에 복귀시킨다. 이어 노동자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제1노조(금속노조)를 탈퇴하고 제2노조의 가입을 유도한다. 이 문건에 대해 정민수 갑을오토텍 인사노무부문장은 “그런 문건이 있으니까 전 대표 등 이전 경영진들이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니겠나”라면서도 “현재 경영진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서”라고 말했다. 노조 측은 법적인 처분을 받은 박 전 대표를 비롯해 권기대 전 노무부문장 등 과거 경영진뿐만 아니라 정 부문장 등 현재 경영진도 문건 작성의 주체로 보고 있다. 정 부문장의 설명은 이렇다. 박 전 대표가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기소되기 직전인 지난해 8월, 갑을오토텍은 경영진을 교체했다. 박 전 대표 등 전 경영진이 그런 문서를 만들고 실행했는지는 몰라도, 이제 1년밖에 안된 신임 경영진은 ‘QP전략 시나리오’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정 부문장은 “과거 경영진의 잘못된 관행과 누적된 적폐를 현재 경영진이 쓰레기 치우듯 치우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노조가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일련의 노조 파괴 일정은 ‘비상경영 절차’라는 명목으로 진행된다. 실제 갑을오토텍은 지난해 10월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정 부문장은 “신임 경영진이 회사 상황을 들여다보니 지난해(2014년)보다 적자폭이 커서 비상경영을 한 것뿐이다.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차원에서 경비나 식당은 아웃소싱하자는 것인데, 무슨 시나리오대로 움직인 것처럼 노조에서 선전선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찬희 노조 사무장은 “지난해에 한 차례 노조 파괴 시도를 겪으며 시나리오가 있을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직장폐쇄나 선별복귀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을 줄은 몰랐다”며 “지난해에는 기업노조 측에서 우리 조합원들을 폭행하는 일도 있었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노조 파괴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이 더운 날씨에 4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이탈하지 않고 서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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