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옵션
닫기
범위
전체
제목
본문
기자명
연재명
이슈명
태그
기간
전체
최근 1일
최근 1주
최근 1개월
최근 1년
직접입력
~
정렬
정확도순
최신순
오래된순

주간경향(총 43 건 검색)

세수가 줄어드니, 지방만 희생양
세수가 줄어드니, 지방만 희생(2024. 09. 16 06:00)
2024. 09. 16 06:00 정치
세수 펑크 부담 오롯이 지방 전가…국회 예산심의권 무시 논란 “지방 균형 발전 위해 조세제도 전면적인 개편 필요” 목소리도 지난 9월 2일 국회에서 2023 회계연도 결산심사를 위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총 32조원 규모의 세수 펑크가 발생할 수 있나.”(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대로 가면 그렇다.”(최상묵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지난 9월 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에서 오간 문답이다. 지난해 ‘세수 펑크(세수결손)’ 56조원보다는 조금 줄었지만 2년째 엄청난 세수결손이 발생하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법인세, 양도소득세 등에서 세수결손이 급증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불용통보, 지자체에 카톡 메시지로 보내 세수 펑크로 인한 재정 부담은 고스란히 지방정부로 떠넘겨졌다. 국회에서 2023년 예산을 결산하는 과정에서 기재부가 국세수입과 연동되는 보통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18조6000억원을 불용 처리했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예산 관련 결정은 당연히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나, 재정당국은 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지자체에 불용통보만 했다. 심지어 지자체에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로 보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가재정법을 어기고, 헌법상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무시했다는 논란까지 제기된 만큼 야당 의원들의 질책이 이어졌다. 최기상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말 국회 기재위에서 “세수결손 대응방안으로 지방교부세 미지급으로 대응하자고 의견을 낸 곳이 기재부의 어느 국인가”라고 질의시간 7분 내내 똑같은 질문만 던졌다. 임미애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2일 국회 예결특위에서 “국회가 의결한 예산에 기준해 전 17개 시·도와 228개 시·군·구에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해서 그다음 해에 예산을 쓰고 있는데 9월에 교부금을 내려보내지 않은 것”이라며 “행정부가 무슨 권한으로 불용결정을 한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한 해 전에 국회에서 결정된 예산이 그해에 중앙에서 내려오지 않자 지방정부는 각종 사업 진행에 중대한 차질을 빚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예산이 잡혀 있는데 중앙정부에서 마음대로 주지 않는 것은 지방자치에 어긋난 행위”라고 지적했다. 지방교부세법에 따라 지방정부가 안정적으로 예산을 운용하도록 해야 하는데 교부세부터 먼저 건드리는 불용처리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내년도 예산에서도 세수 펑크의 부담은 오롯이 지방에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 국세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법인세 등을 완화하면서 생긴 결손이, 그리고 세수를 정확하게 예상하지 못한 재정당국의 무능력이 지방재정의 부담으로 전가된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지방 지자체가 지역 국회의원은 물론 온갖 인맥을 동원해야 할 지경이다. 그렇지만 수도권에 비해 숫자가 적은 비수도권 의원들은 예산확보전에서도 밀리게 된다. 기초지자체·광역지자체 의원을 거친 임미애 민주당 의원은 “올해 이미 지방정부는 긴축재정에 들어갔고, 많은 사업이 축소되거나 주민 숙원사업이 없어졌다”면서 “더 심각한 사실은 내년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약 고리인 지방재정부터 위험에 빠뜨려 윤석열 정부의 소극적 재정정책과 감세정책은 가장 약한 고리인 지방정부의 재정부터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 서울시를 비롯한 수도권 지자체는 재정자립도가 높지만, 지방에는 자립도가 10% 미만인 지자체도 많다. 법인세,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의 의도적인 감세로 중앙정부의 재정이 악화하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부터 도미노식으로 불경기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격이다. 임미애 의원은 “지방에서는 가장 큰 돈줄이 중앙에서 내려오는 예산인데, 이를 깎아버리면 이중삼중으로 지방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면서 “정부가 재정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지방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지금은 정부가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에서도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을 앞두고 종부세, 금투세, 상속세 완화 주장이 솔솔 나오고 있다. 국세인 종부세가 완화되면 중앙에서 내려가는 지방 지원 예산이 자연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완화를 주장하고 있고, 진성준 정책위 의장이 반대를 주장하고 있어 당 내부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종부세 폐지를 주장해온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금투세나 상속세 완화로 재정수입의 총 파이가 줄어들면 지방 예산 역시 n분의 1로 줄어들 수 있으나 이런 식이라면 모든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면서 “하지만 종부세는 그 세목이 합리적인지를 따져 물어야 하는 또 다른 토론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세금을 거두면 안 된다는 게 종부세 폐지 주장의 밑바탕이라는 것이다. 지방으로서는 종부세 완화 또는 폐지가 재정에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지방세인 재산세로만 재정을 꾸려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병천 소장은 “지금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8년 강남 지역 등의 재산세 50%를 해당 지역에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서울 전역에서 나눠 쓸 수 있게 한 사례를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종부세를 폐지하고 지방세인 재산세를 ‘오세훈식 공동과세’로 전국에서 사용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해 조세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을 시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승수 공동대표는 “지방분권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재정 뒷받침”이라면서 “지방재정의 총량도 중요하지만 지방의 재정 자율권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재정 통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 공동대표는 “국가재정과 지방재정의 조세 재정정책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해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한 종합적인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네프리뷰] 존 오브 인터레스트-중산층 가족의 삶 떠받치는 투명인간들의 희생
[시네프리뷰] 존 오브 인터레스트-중산층 가족의 삶 떠받치는 투명인간들의 희생(2024. 06. 05 06:00)
2024. 06. 05 06:00 연예
공포 영화는 아니지만 기괴한 으스스함을 안긴다. 이즈음에서 떠오르는 게 고 노회찬 의원이 언급했던 ‘6411번 버스로 새벽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 이야기다. 그들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영화가 21세기의 현재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찬란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볼 때 각오는 했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전작 <언더 더 스킨>(2013)은 난해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주요 등장인물 블랙 위도로 유명한 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전신 누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당시 홍보 포인트인 듯한데 그 또는 그의 희생자 ‘피부밑’에 뭐가 있었는지는 영화의 끝 무렵에 가서야 알 수 있다. 분명 영화는 자기 완결적 텍스트다. 그럼에도 난해한 이유는 그 존재의 의미가 모호하고 중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외계에서 온 포식자’라는 설정은 감독이 그렇다고 하니 ‘아 예, 그런가 봅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상도 받았다. 무려 지난해 칸 그랑프리와 사운드트랙 수상작이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장편 국제영화상, 음향상을 수상했다. 10년 만에 돌아온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신작 다행히도 영화를 두 번 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 영화를 본 뒤 며칠 동안 몇몇 장면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감독이 왜 그런 장면을 삽입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면 관객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 아닌가. ‘역시 불친절한 감독이군’, 그렇게 생각했는데 두 번째 보면서 장면들이 꽤 유기적으로 배치된 걸 발견했다. 역시 잘 만든 영화는 한 번만 보고 ‘땡’ 칠 일이 아니다. 정말이다. 영화의 시작. 암전이 너무 길다. 두 번째로 영화를 볼 때 시간을 재보니 첫 시퀀스인 가족 피크닉 장면이 나올 때까지 3분 39초 동안 그냥 검은 화면만 보여주고 있다. 끝 장면도 그렇다. 주인공이 불을 끄고 건물을 나서는 장면에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시간을 재보니 6분가량이다. 어느 강가로 피크닉을 나간 가족들. 독일어를 쓰고 있는데 그들이 걸치고 있는 수영복이 너무 구식이다. 아하, 이건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초중반에 찍힌 낡은 흑백사진 속에서나 볼 법한 차림이다. 남편 회스는 부인 헤트비히의 뒷말에 따르면 일 중독자다(회스의 이름과 중령이란 직위는 영화가 시작하고 38분이 지난 뒤에야 나온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령관이다. 부부는 수용소에 붙어 있는 관사에 산다. 헤트비히는 정원 가꾸기에 열심이다. 부인의 주장에 따르면 아이들은 ‘밝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 얼핏 보면 자기 생활에 충실한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다. 헤트비히 집으로 온 어머니, 그러니까 회스의 장모는 에스더 실버만이라는 여성의 집을 청소하던 사람이었다. 딸이 잘살게 된 것을 기뻐하던 어머니는 혹시 ‘에스더도 저 담벼락 너머에 있을지’ 묻는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녀로 일하던 집주인은 유대인이었고, 나치 집권 이후 처지가 달라진 것이다. 회스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수용소에서 발탁된 유대인 집사와 하녀들의 노동이다. 어머니가 일하는 사람들이 혹시 유대인이냐고 묻는다. 헤트비히는 “유대인은 저 담벼락 건너편에 있어요. 그들은 동네 여자예요”라고 답한다. 거짓말이다. 잠 못 이루던 어머니가 편지를 남기고 떠나자 아침을 먹던 헤트비히는 집에서 일하던 하녀에게 짜증을 내며 덧붙인다. “내가 남편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너는 재가 되는 거야.”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넘어 전체 유대인수용소를 총괄하는 자리를 맡는다. 성실한 회스는 자기에게 주어진 ‘보다 효율적으로 유대인 수용자들을 처리하는 일’에 골몰한다. 심지어 파티에 초대돼서도 천장이 너무 높아서 가스 주입으로 이 사람들을 처리하는 건 쉽지 않겠군,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 정원 가꾸기에 열심인 헤트비히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생활은 집사와 하녀로 빼돌린 유대인과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에게 강탈한 고급품으로 영위된다. 유대인은 유령 같은 존재다. 화면 밖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학살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잔악한 학살은 모두 스크린밖에서 벌어진 것으로 처리돼 있다. 회스는 아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가 아들에게 소리로 새를 구분하는 법을 알려준다. 영화엔 수용소 안에서 벌어지는 잔학행위를 암시하는 소리가 마치 ASMR(백색소음)처럼 깔려 있지만,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공포 영화는 아니지만, 기괴한 으스스함을 안긴다. 이즈음에서 떠오르는 게 고 노회찬 의원이 언급했던 ‘6411번 버스로 새벽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 이야기다. 그들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영화가 21세기의 현재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수작이다. 추천한다.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제작연도: 2024 제작국: 영국, 폴란드, 미국 상영시간: 105분 장르: 드라마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 출연: 크리스티안 프리델, 산드라 휠러, 랄프 헤르포트 개봉: 2024년 6월 5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수입: 찬란 배급: TCO㈜더콘텐츠온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의 마지막은 /waralbum.ru “이 영화는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약 실재 인물이나 사건, 역사적 사실들과 일치하는 것이 있다면 전적으로 우연입니다.” 엔딩크레딧 끝에 덧붙여 있는 흔한 설명 문구다. 법적 소송 등을 방지하기 위한 고지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실제로 루돌프 회스가 있었고,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헤트비히가 있었다는 사실을.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 인터뷰를 찾아보면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회스 가족의 관사가 붙어 있었고, 그곳을 수리해 영화를 찍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촬영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대신 수용소에서 70m쯤 떨어진 다른 건물을 개조해 회스의 집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회스의 집 지하실로부터 수용소에 이르는 비밀통로가 나오는데 이 통로는 실제로 존재했고, 지금도 그대로라고 한다. 이 장면은 실제 비밀통로에서 찍었다. 전쟁이 끝난 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회스는 어떻게 됐을까. 회스는 ‘최후의 나치’로 네오나치들이 숭배한 SS친위대장 루돌프 헤스와 다른 인물이다. 영화에서 아내와 통화하던 회스는 게슈타포 수장 힘러가 작전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고 기뻐한다. 그 ‘회스 작전’이 43만 명의 헝가리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내는 작전이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회스는 연합군이 아우슈비츠를 점령하기 전 독일해군 복장을 하고 탈출했고, 프란츠 랑이라는 가명으로 정원사가 됐다. 헤트비히를 체포한 영국정보부는 남편의 소재를 밝히지 않으면 아들을 소련 쪽에 포로로 넘기겠다고 협박해 1946년 회스 체포에 성공한다. 폴란드 최고국가법원은 그를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전범으로 기소해 1946년 4월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회부했다. 1947년 4월 16일 아우슈비츠 앞에 회스 처형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설 교수대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향년 45세. 결국 회스는 아우슈비츠 최후의 처형자가 됐다.
시네프리뷰
[렌즈로 본 세상]화마 덮친 성탄…가족 살린 희생
[렌즈로 본 세상]화마 덮친 성탄…가족 살린 희생(2024. 01. 01 07:00)
2024. 01. 01 07:00 사회
성탄절에 서울 도봉구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주민 대부분이 잠들었을 오전 4시 57분쯤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3층에서 15층까지 번졌다. 불은 4시간 만인 오전 8시 40분에 진압됐지만, 2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32명의 사상자를 냈다. 10층 거주자 임모씨는 최초 화재 신고자다. 임씨는 부모님과 동생을 먼저 대피시킨 뒤 불을 피하려 했으나 11층 계단에서 연기 흡입으로 질식사한 상태로 발견됐다. 4층 거주민인 박모씨는 생후 7개월 아이를 끌어안은 채 재활용 쓰레기 포대 더미 위로 뛰어내렸다. 아내와 아이는 무사했으나 추락 직후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박씨는 끝내 숨을 거뒀다. 이 불로 이재민 9세대 25명이 인근 모텔에서 임시 거주 중이다. 12월 26일 경찰과 소방 당국, 한국전기안전공사의 합동 현장 감식 결과 담배꽁초로 인한 실화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렌즈로 본 세상
[편집실에서]다수를 위한 희생
[편집실에서]다수를 위한 희생(2021. 12. 17 13:24)
2021. 12. 17 13:24 오피니언
12월 18일부터 강화된 거리 두기가 적용되면서 11월 1일 시작된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이 일시 중단됐습니다. 47일간의 실험결과는 참담해보입니다. 일일확진자 수는 7000명을 넘어섰고, 위중증환자 수도 900명을 넘어섰습니다. 한때는 하루 사망자 수가 90명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언제까지나 강화된 거리 두기를 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간 방역에 협조적이었던 국민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도 정부는 고려했을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부가 빗장을 풀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한국사회는 위기에 빠지면 힘을 합쳐 극복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수를 위해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외환위기 당시 직장을 잃었던 많은 가장이 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번 팬데믹에서는 소상공인들이 ‘희생하는 소수’가 됐습니다. 팬데믹 초기 소상공인들은 적극적으로 방역에 협조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한 손실은 오롯이 그들의 책임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부의 지원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조건을 붙였고, 결국 손에 쥐는 것은 쥐꼬리에 불과했습니다. 막대한 지원금을 퍼부으며 소상공인 살리기에 나섰던 미국, 일본 등 주요국가들과 달랐습니다. 위드 코로나로 소상공인은 달랬지만 또 다른 ‘희생하는 소수’가 생겼습니다. 코로나19 사망자들입니다. 위중증환자가 급증하면서 하루평균 20~30명에 불과하던 사망자 수가 100명에 육박했습니다. 방역을 강화했더라면 죽지 않아도 될 시민들일지도 모릅니다. 사망자 1명은 숫자로는 1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담겨 있는 눈물은 계량하기 힘듭니다. 제대로 된 장례조차 지낼 수 없는 코로나19 사망은 유가족들에게 형언하기 힘든 고통과 아픔을 남깁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내가 당선되면’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50조원에서 100조원을 쓰겠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집권당은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곳간을 열지 못했고, 거대야당은 ‘나라 거덜낸다’며 재정지출 확대를 맹비난해왔습니다. 지금도 하지 못하는 정책을 무슨 묘수가 있어 당선되면 하겠다는 것일까요. 사실 소상공인 지원은 여야가 뜻만 모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습니다. 대형 산불이 났는데, 물 쓰는 것을 아까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 산언저리에 있는 집을 홀라당 태울 수 있습니다. 소방당국이 소방수를 아낀 만큼 피해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게 될지 모릅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그 피해자는 소상공인이거나 코로나19 사망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수를 위한 ‘당연한 희생’이란 없습니다.
편집실에서
민주화운동 넘어 민중운동 희생자 삶도 부축(2021. 11. 26 20:58)
2021. 11. 26 20:58 사회
ㆍ‘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 지원사업 확대 “10여명 정도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받는 분들의 사연까지 지금 내놓는 건 쉽지 않을 듯하고요.” 연성만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 행사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6월 민주항쟁 계승사업회 제공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이하 희망나누기)’라는 이름으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먼저 가신 분들의 가족이 어려운 형편에서 자녀를 키우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투병생활하는 당사자에 대한 지원사업을 하는데, 그 대상자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을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신청은 11월 25일 마감됐다. 대상자를 선정해 지원자에게 전달하는 행사는 12월 14일에 열린다. 이번이 세 번째다. 과거 1회(지난해 1월)와 2회(지난해 11월) 때와의 차이는 과거 지원대상자였던 민주화학생운동(유신·5공화국·1990년대)을 넘어 민중운동(노동·농민·빈민)에 헌신한 이들의 유자녀나 현재 병환을 앓고 있는 본인까지 지원대상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희망나누기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옥살이를 경험한’ 익명의 최초기부자가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먼저 가신 분의 가족 중 많은 분이 어려운 형편에서 자녀를 키우고 있다. 나라도 힘닿는 데까지 지원하고 싶다”며 연 1억원씩 3년간 기부약정을 하면서 시작됐다. 지원대상자를 선정하고, 기금을 모으는 등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연성만 새날복지회 이사장은 “일단 5년 정도까지는 예정된 상태인데 그 뒤로는 어떻게 될지는 봐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에 최초기부자가 마중물을 만들었고, 주변에서 ‘5년 모금 약정’을 한 분들이 나왔습니다. 1년에 100만원씩 500만원을 내겠다는 약정인데 현재는 자기 스스로 운동권이었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의 일이긴 합니다. 각 대학 민주동문회 회원들에게 5년간 매년 100만원 정도 약정해달라고 부탁하는 단계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다. 민주화운동도 그런 것일까. “당연히 안 좋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1차 때 과거 민청련 활동을 했던 김병곤(1990년 작고), 이범영 전 한청련 의장(1994년 작고) 유자녀가 받았는데, 이분들의 경우 그래도 서울대 출신이고 유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혼하고 가족관계에서 소원해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추천은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에서 하되, 매우 중요한 조건이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힘들기 때문에 도와준다는 취지가 아니라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면서 하는 겁니다. 추천서를 쓰는 과정에서도 담당자가 부인이나 유자녀와 소통하면서 쓰게 되니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상당한 정도를 더 알게 됩니다. 그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방식으로 위로하는 거죠.” 당사자 본인의 경우 제일 어려운 사람들이 운동하다 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극복하지 못하고 요양원에 있거나 힘든 생활을 하는 케이스다. 그는 현재는 과거 민주화운동 참여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2~3년 안에 소위 ‘스스로 운동권’이 아니라 민주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도 운동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또 다른 목표라고 덧붙였다. “아직은 과거 민주화·반독재 운동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지만, 촛불시민·민주시민도 자신이 했던 운동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과거의 ‘민주화운동의 기억과 희망찾기’지만 현재와 미래의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문의 희망나누기 운영위원회(02-363-0610, memhope77@gmail.com)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9)해고 갈림길에서 희생양이 된 ‘밥하는 여자’(2021. 06. 11 14:41)
2021. 06. 11 14:41 사회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 현대자동차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밥주걱 투쟁’은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화의 시작을 알리는 투쟁이었다. IMF 시대에 접어든 1998년 4월, 현대자동차에 ‘1만명 감원설’이 떠돈다. 곧이어 전체 직원 4만여명 중 8189명을 정리해고하려는 계획이 5월에 발표된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시킨 노사정위원회가 정리해고를 법제화한 불리한 시점에, 현대자동차 노조는 정리해고를 저지하는 총파업 투쟁을 시작한다. 격렬했던 36일간의 파업은 끝내 1261명의 무급휴직과 277명의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며 노사 간 합의로 마무리된다. 정리해고된 277명의 노동자 중 144명이 현대자동차 공장 식당의 여성 노동자였다. 현대자동차 식당 노동자들의 1998년 사내 시위. 정리해고에 맞선 현대차 식당 노동자들의 3년간의 싸움은 ‘밥주걱 투쟁’이라 불린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여성 노동자들은 노사 간 거래에서 ‘더 큰’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명분으로 희생양이 됐다. 이런 희생을 암묵적으로 강요한 명분은 여성 노동자는 가장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실질적인 생계 부양자였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정리해고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밥주걱 부대’가 돼 뜨겁게 싸웠다. 만나려 하지 않는, 평행선 파업한 지 한달이 지나자, 정부의 중재단이 공장에 내려온다. 사측의 구조조정 입장을 대부분 반영한 중재안을 받지 않으면, 당장 공권력이 투입된다는 정부와 회사의 압박이 있었다. 노조위원장은 식당 조합원들에게 정리해고를 수용하면 회사로부터 식당 운영권을 받아와 ‘노조 식당’을 운영해 고용 승계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노사가 정부 중재안에 합의하고, 144명의 식당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식당의 하청노동자가 된다. 왜 하필 여성 노동자여야 하는가? ‘차 만드는 남자’와 ‘밥하는 여자’는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1998년 파업투쟁 동안 노동자들은 서로를 동지로 여겼지만, 해고의 갈림길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그저 ‘밥하는 아줌마’였고, 동등한 노동자로 여겨지지 못했다. 여성 노동은 중심/주변, 숙련/비숙련, 본청/하청 노동자의 분리와 차별 구조 속에서 주변적, 비숙련, 하청, 비정규직에 자리한다. 자본은 차별하고 분리해내기 쉬운 노동력부터 유연화하고자 했다. 이때 자본과 ‘민주 노조 세력’은 남성 중심, 가부장적 경향에 있어 다르지 않았다. 필요할 때는 투쟁의 ‘꽃’이었다가 한순간에 배제된 여성 노동자들은 두 번째 싸움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평행선>은 해고 이후 1년이 지난 시점, 복직을 위한 이들의 싸움을 기록한 것이다. 한 차례 식사시간이 지나면 뼈마디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이 퉁퉁 붓게 된다는 노조 식당의 노동 강도는 점점 심해져 견디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노동조합이 직접 운영한다 해도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불안정한 고용상태와 열악한 수익 구조는 다른 하청 식당과 다를 바 없었다. 1999년 회사는 4800억의 순이익을 낼 정도가 됐고, 노조는 무급휴직자 복귀와 정리해고자 복직에 대한 단협요구안을 마련한다. 식당 조합원들은 여성 노동자를 포함한 정리해고자 277명 전체에 대한 원직복직 내용을 요구안에 명시해달라고 하지만, 지도부는 “식당 여성 조합원들은 정리해고자 중에서도 그나마 이후에 처리될 문제”라며 복직 요구안에서 식당 조합원들을 배제한다. “집행부가 정리해고자가 133명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정영숙 노조 식당 사무장, 영화 <평행선>)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지만 사측과의 협상 과정에서 ‘희생양’이 된 현대차 식당 노동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의 장면들 / ‘여성 노동자 영상보고서’ 블로그 스틸컷 갈무리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자들과 1999년 8월부터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출퇴근 투쟁을 시작한다. 이들은 회사를 상대로 싸우면서 동시에 노동조합을 상대로 이 투쟁을 인정받기 위한 싸움도 해나간다. 정리해고를 두고 노조와 회사가 평행선을 달렸듯이, 노동조합과 여성 노동자들도 만날 수 없는 평행선으로 나아갔다. 노조 식당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해고자로서의 신분 보장을 요구하지만 좌절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해고자 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노조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시작한다. 이들은 성차별적 부당해고가 또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복직을 통해 1998년의 부당해고를 꼭 되돌려 놓아야 했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식당 노동자를 우습게 보고 하청화하면, 다음은 현장의 차례가 될 것이라 믿었다.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1만명이 고용조정된 자리에 1만5000명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너무 잘 알기에 영화 <평행선>의 한 장면이다.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열댓명의 남성 집행부가 빙 둘러앉은 테이블 맨 끝자리에 최종희 노조 식당 위원장이 유일한 여성 노동자로서 앉아 있다. “이만해서 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면 왜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요구하겠습니까. 죽을 판이어서 … 원직복직 요구하는 겁니다.” 노조위원장과 집행부의 대답은 이러하다. “제가 뭐 회장도 아니고 사장도 아닙니다. (웃음) 요구하신 거 내가 다 사장이고 회장이면 (복직)하라고 하겠어요. 그런데 우리도 회사 측하고 싸워야 하는데”, “133명 외의 (여성 노동자들) 복직은 언감생심”,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아무 의미 없는 얘깁니다.” 노조 집행부는 식당 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해 잘 모르고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다그쳤지만, 오히려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잘 알기에’ 절망했다. 우리가 아는 것을, 저들은 모른다. 저들이 모른다는 것까지 우리는 너무 잘 안다. <평행선>의 영상기록은 급작스럽게 중단된다. 식당의 조합원들은 노조를 상대로 한 단식을 끝내고, 해고자 지위 보장에 대한 노조의 중재안을 받아들인다. 영화는 촬영 중단 이후 상황을 3컷의 사진과 자막으로 설명하며 갈무리한다. “노조 식당 여성 조합원들은 2000년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삭발, 단식, 알몸 시위를 했다. 오직 원직복직 쟁취를 위해 2년이 넘게 투쟁해왔으나 결국 원직복직이 아닌 회사가 제시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 1998년 현대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된 노조 식당 조합원들은 이제 영원히 정리해고자로 남게 되었다.” 참고문헌 다큐멘터리 <평행선>(이혜란·서은주, 2000), <현대자동차 98년 정리해고반대투쟁의 교훈>(전주희), <여성 노동자의 집단적 정리해고와 ‘민주’노조 운동>(신병현, 진보평론 1999)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
“의료공백으로 인한 희생은 없어야”(2021. 03. 19 14:05)
2021. 03. 19 14:05 사회
ㆍ정유엽 학생 사망 1주기, 경산에서 청와대까지 걷는 아버지 “오늘 출발할 때만 해도 마음이 굉장히 착잡했습니다. 아내가 아침에 전화했는데 유엽이 SNS 계정이 다 없어졌다고 울더라고요.” 정성재씨(54)는 이 말을 한 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비밀번호를 풀지 못해 미접속 상태가 1년을 지나자 아들의 계정이 휴면상태로 바뀌었다. 지난해 3월 18일 코로나19 의심환자로 분류돼 제때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한 채 급성폐렴으로 숨진 아들 정유엽 학생(당시 17세)을 추억할 수 있는 작은 연결고리가 사라진 것이다. 이날은 경산에서 출발해 청와대로 향하는 도보행진을 시작한 지 23일째 되는 날이었다. 코로나19 확산 당시 의료공백으로 숨진 고 정유엽 학생의 아버지 정성재씨와 시민들이 3월 18일 서울 정동사거리를 출발해 진상규명과 의료공백 재발 방지, 의료공공성 강화를 촉구하며 청와대 분수대 앞까지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370㎞ 걸으며 외쳤다 “공공의료 한걸음 더” 지난해 3월 10일 대구·경북지역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던 시기, 마스크를 사러 추운 날씨에 약국 앞에서 오래 줄을 섰던 아들이다. 아들은 이틀 뒤부터 고열 증상을 보였고, 정씨는 아들과 함께 집 근처 민간병원인 경산 중앙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코로나19 환자로 의심해 해열제와 항생제만 처방해주고 집에 돌려보냈다. 뒤늦게 입원한 영남대 병원에선 코로나19 검사만 13번을 받았다. 총 14차례에 걸친 검사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부모는 음압실에서 죽은 아들의 임종조차 못 했다. 그후 1년 정씨는 아들의 죽음이 의료공백으로 인한 것임을 알리고자 백방으로 노력했다. 아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 시기 대구·경북지역 초과사망자가 338~900명 정도가 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 대응으로 공공병상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일반 환자들이 입원하지 못하거나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은 사례가 평소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정씨는 그해 6월 청와대를 찾아 의료공백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공공의료 강화를 요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정당에도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탄원서를 전달받은 청와대 담당자는 “유엽이 한 사례로는 보고하기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다른 곳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경산 중앙병원은 유엽이 사건 때문에 환자수가 감소했다, 병원 이름을 떼면 탄원서 서명에 동참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왜 아들이 죽었는지 알려달라, 아들과 같은 희생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의료공공성을 강화해달라는 요구에 책임 있는 기관과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씨는 “참담하다”고 말했다. 1년이 다 되도록 진전이 없자, 아버지는 도보행진을 마음먹었다. 아들의 허망한 죽음이 잊히는 걸 막을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도보행진은 지난 2월 22일 시작했다. 이번 만큼은 답변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설렘과 기대감 한편에 이것마저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절박함이 함께했다. 주간경향은 3월 16일 경기도 범계역에서 출발해 서울 대림역까지 향하는 약 16㎞의 일정을 함께했다. 정씨는 전날까지 약 340㎞를 걸었다. 아들의 1주기인 3월 18일까지 남은 이틀 동안 14㎞를 더 걸어야 청와대에 도착한다. 베이징에서 불어온 황사가 뒤덮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이날 날씨는 맑았다. 바람이 불어 걷기에 좋았다. 범계역에 모인 이들은 18명이었다. 경북 경산에서부터 동행한 최기석 정유엽사망대책위 집행위원(민주노총 경산지부 조직부장)과 자문변호사 역할을 하는 민변의 권영국 변호사를 비롯해 노조 관계자, 인권단체 활동가, 정의당 경기도당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의료공백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출발 전 짧게 인사말을 나누고 행진을 시작했다. 도보행진의 시작과 끝엔 늘 “정유엽과 내딛는 공공의료 한걸음 더”를 외쳤다. 오전 10시에 출발해 경수대로를 따라 대림대사거리를 거쳐 석수1동 주민센터에 이르니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났다. 걷기가 만만치 않다는 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정씨는 직장암 3기로 투병 중이다. 암세포는 제거했지만, 전이 가능성이 있어 늘 조심해야 한다. 정씨는 도보행진을 한 후 첫 3일간은 무척 힘들어했다. 혈액순환이 좋지 않아 발가락은 검게 변했고, 물집도 많이 잡혔다. 어깨 통증도 심했다. 하지만 일주일을 넘기면서부터 오히려 “몸은 훨씬 더 단단해졌다.” 다만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심적인 압박감이 커졌다. 묵묵부답을 되풀이하면 거기서 받을 상처가 두렵다. 그는 “목적지에 가까이 왔는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불확실함을 향해 달려가는 게 불안하고, 앞으로 어떻게 감당할지 고민된다. 한마음으로 함께 걸어주는 분들을 의지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고 정유엽 학생의 아버지 정성재씨가 3월 16일 도보행진 중 시민들에게 공공의료 강화를 촉구하는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 주영재 기자 이날 동행자 중에는 정유엽 학생의 또래도 있었다. 이재혁 정의당 경기도당 청소년위원장(17)이다. 그는 “의료공백으로 인한 사망은 고 정유엽만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지역과 지방도시의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데 공공의대 설립과 공공병원 확충으로 시급히 보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밖 청소년인 그는 특히 청소년의 의료공백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 청소년이 혼자 가면 흔히 진료 거부를 당한다면서 그 이유를 들었다. 의료공백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크게 문제가 된다는 게 도보행진에 나선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감염병 대유행 등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공공병상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공병원을 코로나전담병원으로 지정하게 된다. 노숙인, 장애인, HIV 감염인,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이 공공병원에 의지할 길이 막히면서 비싼 민간병원을 찾아야 한다. 그나마 보호자가 없이는 입원을 시켜줄 수 없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는 등의 이유로 진료 거부를 당하기 일쑤다. 결국 이들은 아파도 참고, 참다 병이 악화돼 죽음에 몰리게 된다. 지난 메르스 사태 때 겪었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되풀이되는 것이다. 건강과 대안, 다산인권센터, 인도주의실천의사협, 장애여성공감,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등 보건의료·인권단체들은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단’을 꾸려 지난해 11월 의료공백 1차 실태조사를 벌였고, 지난 3월 15일부터는 2차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이날 도보행진에 함께한 랄라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1차 실태조사 결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의료공백의 위험에 더 크게 노출돼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평소에도 진료받기 어려운 조건의 사람들이 코로나19로 공공병원이 소개되면서 더 갈 데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누구나 평등하게 의료기관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공의료와 공공병원을 확충할 필요도 있지만, 위급 시기엔 민간병원을 동원할 수 있는 대안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공의대 설립안이나 의대 정원 확대 등은 의사단체의 반발로 흐지부지되고, 올해 공공병원 확충을 위한 예산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가 공공의료의 부족 문제를 가리고 의료 문제를 K방역이라는 행정권력 강화로 해결하려 한다는 게 정유엽사망대책위나 보건의료단체의 주장이다.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만 13건의 의료공백 사례가 담겨 있다. 진상조사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동참해달라 그럼에도 정부 차원에서 의료공백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다. ‘정유엽 사례만으로는 의료공백 문제를 제기하기 부족하다’는 청와대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권영국 변호사는 “정부는 백신문제가 해결되면 마치 의료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감염병 말고도 다른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고, 이들이 평등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이번 계기를 통해 반성하고 개선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늘 이슈에서 밀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결국 아버님은 의료공백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게 자신의 사명이라고 보는 것 같다. 의료 사각지대에서 피해를 받은 많은 사람을 대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도보행진단은 서울에 진입하면서 10인 이상 집합금지 지침을 따라 9인은 도로로 나머지는 인도로 분리해 행진했다. 인도로 가는 팀은 환하게 웃는 정유엽 학생의 얼굴이 찍힌 전단을 나눠줬다. 많은 사람이 멀리서 이들을 유심히 지켜봤고, 일부는 먼저 다가가 전단을 받아가기도 했다. 도보행진은 이날 오후 3시 30분쯤 서울 대림역 11번 출구 앞에서 끝났다. 정리 행사 중 누군가 “함께 걸어 좋았지만 슬펐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은 가진 사람이 바꾸지 않는다. 산재문제를 봐도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한 유족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정치권을 움직여 제도를 만들었다.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큰소리를 낼 수 있는 행진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왜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진 후에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지, 사회의 제도적인 불합리함과 모순을 왜 해결하려 하지 않는지, 그 답변을 듣고자 참 먼 길을 왔습니다. 제도적 개선으로 누구나 평등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정착되고 현실화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정성재씨가 밝힌 소감이다. 행사를 마친 후 그는 한가지 청이 있다고 말을 건넸다. 도보행진을 시작한 날 청와대 국민청원도 시작했는데 참여자가 저조해 널리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국민청원은 아들의 사망이 코로나19 의료공백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정부가 인정할 수 있도록 진상을 밝혀달라며 올린 것이다. 18일 청와대에 의견서를 전달한 후에도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할 경우 청원에 희망을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청원에 동참한 이는 3월 18일 오후 4시 기준 7090명이다. 국민청원에 20만명 이상이 30일 이내인 3월 24일까지 동참해야 답변을 받을 수 있다.
[표지 이야기]그린벨트가 아파트 건설의 희생양인가(2020. 07. 24 16:02)
2020. 07. 24 16:02 경제
ㆍ세계 첫 도입한 영국은 대부분 국유지… ‘필요에 따라 개발’ 관점 바꿔야 서울 서초구 구룡산 자락의 탑성마을. 약 450년 전 김태복이라는 인물이 터를 잡아 마을을 일군 곳이다. 그는 과거를 포기하고 낙향하는 대신 이곳에 절을 짓고 탑을 쌓아 탑골이라 불렀다. 이런 마을의 유래를 알리는 비석은 세운 지 10년 만에 중간중간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닳았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텃밭에 오이덩굴이 지지대를 감싸 올라가고, 호박이며 쌈채소 등을 일구는 밭이 보였다. 근처 농장에선 닭들이 돌아다녔다. 농지 너머엔 2층 높이의 새 집과 헌 집이 뒤섞여 있고, 그 뒤로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들어서 있다. 7월 21일 서울 서초구 신원동 본마을 어귀에 이곳이 개발제한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 주영재 기자 탑성마을이 있는 내곡동 일대는 강남에서 시골과 도시가 혼재된 풍경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있기 때문인데 이명박 정부는 이 마을 바로 앞 그린벨트를 풀어 약 4500세대의 아파트 단지를 공급했다. 내곡 보금자리주택지구다. 그린벨트 해제로 집값 잡을 수 없어 지난 7월 22일 탑성마을에서 만난 주민 김정자씨(65)는 이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분한 마음을 쏟아냈다. 그린벨트가 풀린 후 들어선 아파트는 날로 그 가치가 상승하는데 코앞에서 그린벨트 해제 구역에서 제외된 자신은 건물 신축도 마음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40년이 넘은 낡은 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짓고 싶은데 용적률 제한 때문에 포기한 상태다. 김씨는 “건축비를 회수하려면 5층은 지어서 세를 놓아야 한다”며 “그린벨트 해제가 안 된다면 3층으로 제한한 용적률이라도 높여 달라”고 말했다.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탑성마을은 서울의 택지지구 개발이 거론될 때마다 들썩였다. 최근 그린벨트 해제가 거론되자 다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마을 부동산이나 주민들은 이제 무덤덤하다. 내곡지구를 돌아보면 그린벨트를 해제해도 원주민이 혜택을 보긴 어렵다고 생각해서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일한 공인중개사 A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내곡동 땅을 평당 220만~380만원 정도에 수용하고 이걸 대기업 건설사에 평당 1000만~1200만원에 팔았다”며 “그린벨트는 결국 공사가 돈을 먹고 자금을 만들려고 푸는 것이지 땅주인에게는 별 득이 없었다”고 말했다. 보금자리 주택의 경우 전용면적 84㎡의 분양가가 4억원 중반, 59㎡는 3억원 내외였다. A씨는 “싸게 분양했지만 그래도 서민은 갖지 못했다”면서 “청담동에 사는 돈 많은 사람이 헌 아파트 한 채를 팔아 여기 새 아파트 34평형 두 채를 ‘피(프리미엄)’를 얹어 6억원씩에 사기도 했는데 그런 아파트 가격이 불과 몇 년 만에 최하 14억원씩 한다”고 말했다. 그린벨트를 풀어 공급을 늘리면 날뛰는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내곡동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정은주씨는 부정적이었다. 그는 “그린벨트 해제로 들어설 물량으론 집값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20~30년이 지나면 인구가 줄어 도심 주택 수요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미래세대를 생각해서라도 그린벨트를 해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린벨트는 ‘유보지’가 아니다 개발제한구역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막고 주변 자연환경을 보전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1971년 7월 30일 1차로 지정했으니 내년이면 도입 50년을 맞이한다. 처음에는 재산권 침해 등의 이유로 반대가 심했지만 서울의 팽창에 경계를 긋고, 환경보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린벨트는 경제적 이점도 제공한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는 “그린벨트로 도시 밀도를 높이면 사람 사이의 시냅스(연결고리)가 높아지는 환경을 만들어 상업이 발달하고, 화폐량이 늘면서 부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인류 역사를 봐도 어느 시대든 시대를 이끈 국가는 반드시 밀도가 높은 도시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개발제한구역이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고 도시재생을 활성화해 기존 시가지의 가치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개발제한구역을 그린벨트로 부르는 것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비닐하우스와 창고 등으로 녹지가 훼손된 구역을 보존할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부러 나무를 죽이고 개간해 보존가치를 낮춘 곳이 오히려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될 가능성이 높다. 김중은 국토연구원 도시연구본부 연구위원은 “개인적으로 개발제한구역을 그린벨트로 부르지 않는다”면서 “개발제한구역 목적은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라 녹지가 아닌 곳을 지정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면 그만큼의 녹지를 다른 곳에서 복원할 필요가 있다. 실제 그린벨트를 풀어 신도시 등을 개발할 때 사업시행자는 인근 개발제한구역의 훼손지를 복구하거나 미집행 공원을 조성해야 한다. 대신 보전부담금을 낼 수도 있는데 이 돈을 개발제한구역 내 주민지원사업, 불법시설물 관리에 쓸 수 있다. 일부를 도시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개발제한구역 내 토지를 사는 데 쓰지만 재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처음 그린벨트를 도입한 영국의 경우 그린벨트 대부분이 국유지이다. 토지는 공공의 것이라는 개념이 강한데다 계속 그린벨트 토지를 매입하기 때문이다. 김중은 연구위원은 “국가와 시도지사가 해제 권한을 갖는 우리와 달리 영국은 시장·군수가 지정 해제권을 갖는데 주택이 부족해도 건드리지 않겠다는 곳이 많다”며 “해제해 주택을 공급해도 저밀도로 관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훨씬 강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노태우 정부 때 처음 개발제한구역의 ‘제한적 활용’이 시작됐다. 태릉선수촌, 과천 경마장, 미사리 조정경기장 등 3.7㎢(112만 평)를 개발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역대 가장 넓은 면적의 그린벨트를 해제했다. 임대주택 등을 공급해 주거를 안정시키겠다는 목적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그린벨트 자리에 분양 주택 위주로 공급하면서 투기 심리를 조장하고 집값 상승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땅을 수용해 매각하면 결국 투기 대상이 되고 집값이 올라가면 주거 복지 수요가 더 많이 생기는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린벨트를 필요에 따라 언제든 개발이 가능한 ‘유보지’로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중은 연구위원은 “시가지와 인접해서 활용하기 좋은 땅이지만 엄밀히 말해 국가가 비축한 유보지가 아니다”라며 “국토는 비가역적이라 한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린벨트 개발 시의 가치, 녹지로 보존했을 때의 가치를 비교해보는 공론화 작업이 우선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지 이야기
[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공직자 연가보상비 삭감 ‘희생양’(2020. 05. 04 14:00)
2020. 05. 04 14:00 경제
2차 추경안이 이슈다. 가장 큰 관심은 통과 여부다. 그러다 보니 제출된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하는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을 방문해 코로나19 대응에 분투 중인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예산편성 실무를 맡은 기획재정부는 빚을 내는 것에 대한 극도의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목표에 따라 공직자 연가보상비를 삭감한다고 설명했다. 이상했다. 공무원에 따라 깎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부서가 있는 반면 더 주어야 할 만큼 일을 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런 기계적인 발상조차 제대로 된 기준이 없었다. 나라살림연구소 조사결과 모든 공직자의 연가보상비를 일괄적으로 삭감하는 게 아니라 자의적인 기준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자의적인 기준으로 특정 공직자의 연가보상비만 전액 삭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에 있는 질병관리본부나 지방 국립병원이 포함돼 있다. 이 기관에 근무하는 공직자의 연가보상비는 전액 삭감된 반면 청와대·국회·국무조정실·인사혁신처·문화체육관광부의 연가보상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즉 모든 연가를 사용할 수 있는 공직자는 손해가 없으나, 코로나19 대응 역할로 격무에 시달리는 공직자만 피해를 보는 구조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반발이 일어났다.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재정건전성을 위한다기보다는 정치적 목표다. 형식적으로는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F-35 전투기 매입 시기를 조절하거나 외국환평형기금 지출 축소로 회계상의 조절을 통한 숫자상의 재정건전성이다. 이런 예산편성은 재정 건전성에 도움이 안 된다. F-35 전투기 매입은 다음 연도에 지속되며, 국채를 발행해 2조8000억원의 외화자산을 매입하면 국채 발행량은 늘어나지만 재정건전성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금융성 채무에 불과하다. 기재부는 국회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일부 부처의 연가보상비만 삭감했다고 해명했다. 인건비 규모가 크고 다른 재정사업이 추경안에 포함된 20개 부처만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가보상비 규모가 3억원에 불과하다. 재정사업이 없는 금융위원회는 삭감대상기관이고, 같은 정무위 소속인 국무총리실 등의 연가보상비는 삭감하지 않았다. 법무부와 대법원은 삭감했으나 헌법재판소는 삭감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원칙이 없다. 논란이 일자 기재부는 모든 부처의 연가보상비를 깎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악이다. 코로나19 대응의 최전선에 있는 질병관리본부 공직자의 사기가 저해되어서는 안 된다.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목표에 따른 기계적인 적용으로 인한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일로 엘리트 공무원들에 의한 고도의 예산관리시스템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깨졌다. 이제 국민도 정보를 제공하면 판단할 수 있다. 공론장에서 판단하자. 슘페터는 “예산을 알아야 국정을 운영하고 국가의 미래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
[조찬제의 월드프리즘]이민자 희생으로 배 불리는 ‘국경산업복합체’(2019. 12. 27 16:05)
2019. 12. 27 16:05 국제
ㆍ이민단속 강화로 방위산업체·소프트웨어 기업·컨설팅업체·대학·연구소 등 이익 챙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단속 강화 정책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은 누굴까. 록히드마틴·보잉·레이시온·노스롭그루먼·제너럴다이내믹스 같은 미 5대 방위산업체는 물론 IBM·아마존·팰런티어 테크놀로지 같은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기업이 수혜자들이다. 매킨지 같은 세계적인 컨설팅업체나 톰슨로이터 같은 뉴스미디어기업, 대학과 연구소 등도 이익을 챙기고 있다. 미군이 2018년 11월 19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미-멕시코 국경 장벽에서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다. 미국의 국경안보 관련 산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단속 강화 정책에 따라 과거에 비해 급성장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들은 국토안보부 산하 관세국경보호청(CBP) 및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최루탄·국경감시 장비에서부터 이민자에 대한 의료서비스, 불법체류자 체포 및 송환을 위한 소프트웨어 공급은 물론 이민당국의 예산 절감 및 송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컨설팅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과거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에 빗대 ‘국경산업복합체(Border-Industrial Complex)’로 불리기도 한다. 국경산업복합체의 등장은 전적으로 트럼프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당·공화당 행정부 할 것 없이 수십 년 전부터 이어진 관행의 결과다. 국경의 장벽이 높아지게 된 데는 두 개의 전환점이 있다. 하나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다. 그 결과 미-멕시코 국경은 이민자들에게 ‘죽음의 관문’이 됐다. 다른 하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1년 9·11 테러다. 국토안보부 신설을 통한 국경 집중 관리와 거대 기업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다. 불법체류자 체포·송환을 위해서라면… #사례 1 2019년 8월 7일 ICE는 미시시피주 농촌지역의 7개 닭 가공공장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불법이민자 단속작전을 펼쳤다. 투입된 요원은 600명. 이들이 체포한 불법체류자는 680명이 넘었다. ICE는 작업자들을 일렬로 세운 뒤 체포할 사람을 골라냈다. ICE 역사상 최대로 불리는 단속작전에서 ICE는 어떻게 체포 대상자를 정확히 알 수 있었을까. 정확한 신분을 알려면 이름과 생김새, 어떤 차를 모는지, 언제 근무지에 도착하는지 등에 관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 궁금증은 두 달 뒤 <트루스아웃>의 보도로 풀렸다. 2019년 10월 5일 이 매체는 미국의 빅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회사인 팰런티어 테크놀로지가 당시 단속작전에 활용된 소프트웨어를 ICE에 공급했다고 보도했다. 팰런티어가 ICE의 불법이민자 단속과 관련해 연관이 있다는 것은 이민자 옹호단체 ‘미헨테’의 폭로로 이미 알려진 바 있다. <트루스아웃>에 따르면 팰런티어는 <뉴욕타임스>가 2018년 12월 불법이민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38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하자 해명하는 성명을 냈다. ICE에 지원한 기술은 불법체류자 송환이 아니라 범죄조사에 활용되는 기술이라는 내용이었다. ICE에는 범죄인 조사 업무와 관련이 있는 국토안보조사(HSI) 부서, 송환과 관련 있는 집행제거작전(ERO) 부서가 있다. 팰런티어는 성명에서 “우리는 ERO와 일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트루스아웃>은 “이것이 팰런티어가 정부의 범죄인 조사에 협력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전했다. #사례 2 세계적인 미디어그룹 톰슨로이터가 불법체류자 체포와 관련한 데이터베이스를 ICE에 제공한 사실이 2019년 12월 22일 <인터셉트> 보도로 드러났다. ICE는 송환 대상 불법이민자를 추적하고 체포하기 위해 톰슨로이터의 CLEAR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특정 정보수집을 정부가 하지 못하게 한 조치를 피하기 위해서다. ICE는 과거 본국으로 추방됐다가 재입국한 멕시코 출신의 ‘시드’라는 남성을 다시 체포하기 위해 CLEAR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한 살 때 미국으로 온 시드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물품을 훔친 혐의로 멕시코로 송환됐다가 다시 입국했지만 당국은 이를 몰랐다. 2018년 2월 22일 시드 추적에 나선 ICE는 시드의 페이스북 계정을 발견한 뒤 그의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CLEAR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ICE는 구글 맵을 활용해 시드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대조해 시드의 이름을 확인한 뒤 그의 페이스북을 감시하며 동태를 파악하다가 그해 5월 24일 그를 체포했다. 그는 2019년 1월 불법 재입국 혐의로 21개월형을 선고받았다. 형이 종료되면 멕시코로 다시 추방된다. 톰슨로이터 계열사인 로이터통신 기자들은 톰슨로이터가 ICE와 맺은 2000만 달러짜리 CLEAR 사용 계획이 “로이터라는 이름이 정부의 스파이를 연상시킨다”고 비판했으나 톰슨로이터 경영진들은 뉴스 파트와 정보수집 분야는 완전히 분리된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인터셉트>는 전했다. 코넬 공대의 감시 전문가 새러 빈센트는 “시드의 사례처럼 사람에 대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은 ICE 감시망에 걸리는 이민자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인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사례 3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매킨지는 트럼프의 불법이민자 단속 강화 조치에 따른 국경 수용시설 확충과 이민요원 1만 명 확충 지시에 따라 ICE로부터 컨설팅을 의뢰받았다. <뉴욕타임스>의 2018년 7월 보도에 따르면 계약 규모는 2000만 달러가 넘는다. 매킨지 측은 이민정책을 개발·조언·이행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프로퍼블리카>가 정보공개법(FOIA)을 통해 입수한 자료와 인터뷰를 보면 트럼프의 이민 단속 정책 수행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트루스아웃>이 2019년 12월 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매킨지는 수용자 음식의 질을 낮춰 예산을 절감하는 방안과 송환 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ICE에 제시했다. ICE 대변인 브라이언 콕스는 “매킨지의 컨설팅은 불법체류자를 송환하는 데 시간을 줄이는 것을 포함해 임무의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개선을 거뒀다”고 말했다. 매킨지는 또 ICE 수용시설의 기준을 낮춤으로써 예산을 절감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ICE는 매킨지의 컨설팅에 따라 수용시설 운영비용 등 1600만 달러를 절약했다고 <트루스아웃>은 전했다. 국토안보부 감사관은 2019년 여름에 발행한 보고서에서 수용자를 위한 음식의 질과 ICE 수용시설의 유지비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매킨지와 ICE 계약은 2018년 7월에 종료됐지만 매킨지는 ICE와의 계약 만료 1주일 뒤 CBP와 2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그 후 2020년 9월이 만료인 840만 달러짜리 계약도 맺었다. 국제싱크탱크 ‘트랜스내셔널 인스티튜트(TNI)’가 2019년 9월 16일 펴낸 ‘장벽 그 이상’ 보고서에 첨부한 국경산업복합체의 급성장을 보여주는 그래픽. / TNI 웹사이트 ‘경이로운’ 국경산업복합체의 실체 진보 성향의 비영리 국제싱크탱크 ‘트랜스내셔널 인스티튜트(TNI)’가 2019년 9월 16일 펴낸 ‘장벽 그 이상(More than a wall)’ 보고서는 급성장하고 있는 국경안보산업과 그 결과로 구축된 ‘국경산업복합체’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국경·이민 관련 미 정부의 예산과 인력은 급증했다. 1980년 예산은 3억5000만 달러였다. 1990년 12억 달러로, 2005년 102억 달러로 커지더니 2018년에는 237억 달러로 치솟았다. 1980년에 비하면 약 68배나 성장했다. 전 세계 국경안보 시장 규모도 마켓앤드마켓 추정에 따르면 2022년까지 529억5000만 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루스아웃>은 2019년 10월 5일 분석기사에서 2011년 3050억 달러였던 국경안보 산업 규모가 2023년까지 740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고 소개했다. 국경·이민 관리 인력도 1994년 4000명에서 2만1000명으로 증가했다. ICE·CBP·해안경비대 등 이민당국이 관련 기업체와 맺은 계약도 급증했다. 2006~2018년 총 계약 건수는 34만4000여 건, 액수는 805억 달러다. 그 가운데 ICE는 3만5000여 건·182억 달러, CBP는 6만4000여 건·270억 달러, 해안경비대는 24만5000여 건·352억 달러다. CBP 계약만 보더라도 방위산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만 최소 14개, 대학 10곳, 연구소 2곳이 관련돼 있다. CBP의 계약 건수와 액수는 2009년 록히드마틴과 9억4500만 달러 규모의 P-3 정찰기 16대 도입 계약을 맺으면서 증가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 계약은 1975~1978년 국경·이민 당국의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CBP는 2017년에 대학 및 연구소와 총 1억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이 가운데 9000만 달러는 연구개발비 명목이었다. 이는 난민을 위한 인도주의 단체에 지원하는 규모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2016년 미 보건부 난민재정착국이 9개 비영리단체에 지원한 액수는 1490만 달러였다. 이 같은 기업체와의 계약은 국경산업복합체를 강화하는 촉매제가 됐다. 보고서는 미 워싱턴에 있는 비영리 연구기관인 대응정치센터(CRP)가 운영하는 ‘오픈시크리츠닷오르그’ 자료를 인용해 “거대 국경안보 기업은 미 하원 운영위원회 및 국토안보위원회 위원들의 정치자금 기부의 큰손이었다”고 지적했다. 2006~2018년 록히드마틴·제너럴다이내믹스·노스롭그루먼·레이시온·보잉 등 미 5대 방위산업체는 총 2760만 달러를 하원 운영위 위원들에게 제공했다. 2017~2018년 하원 운영위에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기부한 5대 방위산업체를 비롯한 7개 기업은 모두 CBP의 계약을 따냈다. 2006~2018년 5대 방위산업체가 하원 국토안보위 위원들에게 기부한 정치자금은 모두 650만 달러다. 국토안보부에 대한 로비도 활발했다. 2002~2019년 국토안보 관련 로비 목적으로 국토안보부를 방문한 사례는 약 2만 건이다. 2003년 385명·637건에서 2018년에는 677명·2841건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이 같은 로비의 대표적인 결과가 2018년 3월 23일 대통령이 서명한 국토안보예산법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는 미 역사상 가장 큰 국경·이만 관련 예산으로, CBP와 ICE 예산만 230억 달러가 넘는다. 이 법안 로비를 위해 제너럴다이내믹스는 44차례, 노스롭그루먼은 19차례, 록히드마틴은 41차례, 레이시온은 28차례 국토안보부를 찾았다. 2005년부터 열리는 국경안보엑스포는 국경안보 산업계와 국토안보부, CBP, ICE 관리들이 공식적으로 만나는 자리다. 2012년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열린 엑스포에서 국경순찰대원 펠릭스 차베스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2004년 이래 우리가 취득한 능력은 경이롭다”고 말했다. 잦은 로비는 자연스럽게 ‘회전문 인사’로 이어졌다. 2006년부터 2019년 7월까지 177명의 국토안보부 관료들이 해당 기업이나 로비업체로 가거나 관련 컨설턴트·전략가로 자리를 옮겼다. 이 가운데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국토안보부 장관을 지낸 마이클 처토프를 비롯한 장관 3명과 CBP 청장을 지낸 이가 최소 4명 들어 있다. 2003~2005년 초대 CBP 청장을 지낸 로버트 보너는 워싱턴 소재 국토안보 기업 센티널 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CBP는 2010년 센티널과 48만 달러짜리 5년간 전략 컨설팅 계약을 체결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과거 군산복합체처럼 강력한 국경산업복합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라면서 “트럼프의 당선은 이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CBP 예산은 2017년 144억 달러에서 2019년 170억 달러로, 26억 달러 증가했다. ICE 예산도 같은 기간 약 20억 달러 늘었다. 보고서는 또 국경산업복합체의 성장은 미국으로 오려는 이민자들에게 목숨 건 입국을 강요하면서 이들의 생명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토드 밀러는 “국경안보 관련 거대 기업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입법 및 행정에 관한 전략적 입장뿐만 아니라 주요 미디어 입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서 “이민에 대한 미국의 전략을 바꾸려면 국경산업복합체의 현실을 직면해 정치와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을 제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찬제의 월드프리즘
이전1 2 3 4 5 다음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