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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의 눈]정·재계의 히키코모리 증후군
[유승찬의 눈]정·재계의 히키코모리 증후군(2016. 06. 27 14:16)
2016. 06. 27 14:16 오피니언
최초의 자본가가 탄생했던 12~13세기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자본가가 앞다투어 읽었던 소책자 가운데 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사귀지 말라. 왜냐하면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단테는 이런 풍조를 강하게 비판한다. 당시의 돈 단위는 ‘플로린’(꽃이라는 의미)이었는데, 그는 돈을 ‘신의 하인을 자처하며 길을 잘못 들게 만드는 꽃’이라고 했다. 단테는 돈에 집착하는 사람을 ‘욕심이 강하고 질투가 깊으며 우쭐거리는 놈들’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다시, 돈의 습격 앞에 인류가 움츠러들고 있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돈이 국가 단위를 넘어 인류 공동체를 위협하는 괴물이 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산층은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으며, 성장의 과실은 대부분 소수가 독점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에 이어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전대미문의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성장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관료와 재벌이 결탁해 비정상적인 독과점 구조를 키워 온 한국의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여기에 인구절벽과 4차 산업혁명 같은 디지털 빅뱅이 더해지면서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갯속이다. 저출산·저성장·저고용 상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지표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일본대학 국제관계학부 교수인 미즈노 카즈오는 라는 책에서 탈성장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성장 유지 전략이 중산층의 몰락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중산층이 곧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며 “미생들이여, 정부를 믿지 말고 각자도생하라”고 주장한다. ‘삼성을 움직이는 교수’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가 “법인세를 올리고 부유세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마틴 포드는 미래를 말한 에서 금융 엘리트들의 정치적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중간 및 하위 계층의 소득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로봇이 일자리 절벽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최근 3당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있었다. 정진석, 김종인, 안철수는 차례로 1만2375자, 1만2544자, 1만3105자의 비교적 긴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세 대표 모두 불평등 문제와 4차 산업혁명 등을 언급하며 그 해법으로 경제활성화, 경제민주화, 격차해소 로드맵을 강조했다. 연설문들은 사뭇 유려했으나 고통받는 국민의 삶에 깊이 공감했다기보다 여전히 현실과는 유리된 말의 상찬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진석은 심지어 불평등 문제를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로 적시하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드러냈다. 김종인의 기본소득 주장은 파격적이었으나 포용적 성장이라는 추상성의 우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안철수의 미래 일자리 위원회나 격차해소 로드맵도 구체성을 담보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뭐 하나 딱히 먹을 것 없는 비싼 한정식 밥상을 받은 느낌이다. 불평등이 초래할 파국적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 대신 좋은 말들로 환심을 사려는 정치행위가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미즈노 카즈오 교수는 이를 두고 “근대 히키코모리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 정·재계의 실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정치인들이 거대한 혁명적 변화를 직시하지 않고 겁에 질려 듣기 좋은 말만 고르는 평론가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파국을 막을 용기 있는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 무리일까.
금주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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