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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렌즈로 본 세상]‘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노회찬 1주기(2019. 07. 26 17:57)
- 2019. 07. 26 17:57 사회
- 지난 7월 23일은 노회찬 전 의원이 타계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노 전 의원이 묻힌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을 찾았다. 이곳은 민주주의와 통일, 인권을 위해 싸웠던 전태일, 문익환, 박종철, 김근태 등이 잠든 곳이다. 공원 입구 민족민주열사 묘역 안내도에는 아직 노 전 의원의 묘소가 어디인지 알려주는 이정표가 없다. 사흘 전 묘비 제막식을 한 터라 묘역은 어수선해 보였다. 유가족보다 먼저 도착한 노회찬재단 관계자들이 묘역을 정리했다. 제단을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은 뒤, 추모 1주기를 맞아 간행된 책자들을 노 전 의원의 사진 옆에 놓았다. 묘소에 놓인 고 노회찬 의원의 명패엔 이렇게 적혀 있다. ‘진보정당 대표의원,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 렌즈로 본 세상
- 세월호 1주기 가로막은 경찰의 ‘근혜산성’(2015. 04. 28 17:08)
- 2015. 04. 28 17:08 사회
- ㆍ18일 1주기 범국민대회… 경찰 1만3000여명·차벽 477개 도심 촘촘히 에워싸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더 오랫동안 싸우고 싶어서 남은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우리도 하루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요.” 4월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4·16연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폭력시위 논란이 벌어진 이전 주말의 대규모 범국민대회에 이은 2차 범국민대회 개최 및 향후 일정을 알리는 자리였다. 경찰과 집회 참석자들 사이의 충돌 분위기를 두고 한 시민사회단체 상근자와 대화를 나누던 기자에게 한 유가족이 말을 붙였다. “지난 주말에도 경찰이 해산 방송을 하면서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잖아. 돌아가긴 가야지,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근데 가도 가족이 없잖아요. (경찰이) 방송을 해도 그렇게 말을 하는 게 참….” 4월 24일 서울 종로1가 거리가 집회 참가자들을 막기 위한 경찰 차벽으로 막혀 있다. | 연합뉴스 진상규명 메시지보다 충돌만 부각 세월호 유가족들과 집회 참가자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한 건 경찰이었다. 그런데 경찰이 도리어 귀갓길을 막았다. 유가족 20명을 포함해 연행자는 100명에 달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이후 첫 범국민대회가 열린 지난 18일 하루만의 기록이다. 광화문·종로 일대에 세워진 차벽만 477개에 안전펜스 101개가 추가로 세워졌다. 172개 부대 경찰력이 투입됐다. 경찰이 추산한 집회 참석인원 1만명보다 많은 1만3000여명의 경찰이 서울 도심을 촘촘히 에워쌌던 것이다. 유가족과 집회 참가자들은 물론 일상적인 통행을 위해 지나던 시민들의 보행도 막혔다.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적 조치라는 주장이 나왔다. 경찰과 보수진영에서도 즉각 반격이 나왔다. 경찰버스 유리창을 깨고 집기를 부수는 등의 폭력시위 분위기를 성토하며 맞불을 놓았다. 정작 경찰의 인벽과 차벽에 막혀 오도가도 못하다 경찰서로 연행된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문제는 5월까지 이어질 대규모 집회에서 같은 논란이 반복될 소지가 크다는 데 있다. 지난 18일 범국민대회에서도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 사이의 충돌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경찰의 집회 대응용 내부문건을 보면 청와대로 이어지는 삼청동과 인사동 일대는 물론 사직로와 신문로 등 도심 전역을 통제하는 차벽 및 경찰력 배치계획은 집회 시작 이전부터 치밀하게 짜여 있었다. 겹겹이 들어선 차벽 탓에 사실상 유인되듯 태평로 일대로 들어선 시위 인원과 그들을 둘러싼 경찰력 사이에서 유가족들은 손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고, 그래도 우리 위한다고 나온 사람들인데 우리가 뭐라 하겠어.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게 속 터질 일인 거지.” 곳곳에서 벌어진 충돌을 보며 ‘동혁 엄마’ 김성실씨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경찰은) 들어가라고 등 떠밀기만 하니 허탈하지요.”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국민대책회의가 주축이 돼 꾸려진 4·16연대가 고심하고 있는 것도 이 지점이다. 1주기 추모주간에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규모는 작지 않았지만 정작 참사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보다는 시위에서의 충돌양상만 부각됐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집회 때와는 다른 점이 있죠. 그땐 집회가 4개월 가까이 꽤 오랜 시간 지속됐어도 시민들 입장에서는 그리 오래된 문제라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 세월호는 어쨌든 1년이 지난 문제라 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그때보단 덜할 수밖에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앞으로의 여론전에서도 그리 유리한 입장만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현 정부의 지지도가 떨어져도 지지층이 결집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의 세월호 진상규명 문제는 이런 ‘물타기’를 얼마나 잘 피하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경찰 차벽 통제, 2011년 위헌 결정 경찰의 입장은 정반대다. 경찰이 다치고 장비·집기 등이 파손되는 등의 피해상황을 이례적으로 빠르게 집계해 언론에 브리핑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경찰에 따르면 경찰력 74명 부상, 차량 71대 파손, 캠코더 등 경찰장비 368점 피탈과 같은 피해가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하라’는 지시가 나온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고 과격한 시위로 경찰력의 피해도 늘어나는 상황이라 불가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우리로선 좀 강하게 대응해도 밑질 것 없다는 계산이 있으니 그때그때 완급을 조절해가며 나서는 건데, 일단 초반에 야무지게 봉쇄해놓는 방향으로 흐른 듯하다”며 강경대응이 미리 계획된 방침이었음을 내비쳤다. 이미 헌법재판소가 2011년 경찰 차벽 통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경찰이 차벽 사용을 멈추지 않는 것 또한 대통령 ‘심기 경호’의 일환이라는 목소리가 경찰 안팎에서도 나오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집회에서는 처음으로 물대포와 캡사이신이 사용된 것도 이전과는 달리 한 단계 강한 진압 방침이 내려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4·16연대 측은 이번 집회에서 쓰인 진압용 캡사이신의 주성분 ‘파바(PAVA)’ 역시 인체 독성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물질인데도 경찰이 아무런 법적 통제 없이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하다 못해 경찰에게 소속이 어딘지, 법을 집행하는 근거가 뭔지 물어도 그에 대한 대답은 없이 ‘공무집행 방해로 처벌하겠다’는 엄포만 들었다”며 “오히려 적법한 절차를 거친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심기’도 보호하고 폭력시위 여론으로 명분도 챙긴 경찰에 비해 세월호 유가족들의 입지는 결과적으로 위축된 상태다. 4월 24일의 민주노총 총파업 대회와 5월 1일 노동절 대회에 유가족과 4·16연대 측이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면한 우선 과제인 세월호 시행령 폐기 문제를 다루는 쪽으로 논의를 끌고갈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동계와 협조해 4월 25일과 5월 2일로 계획된 대규모 세월호 집회까지 이어가되 폭력시위 등 예기치 못한 불똥은 최대한 피하는 일이 급선무다. “지난 주말 추모대회에 들려보려고 해도 경찰에 꽉 막혀 있어 그냥 돌아갔거든요. 이번에는 도보행진이 미리 신고돼 있으니까 별탈 없이 추모하러 나갈 수 있길 빌어요.” 광화문 농성장의 추모미사에 참석한 시민 장경화씨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더는 다치지 않게 경찰이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집회 현장에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두고 유가족 김성실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힘 보태주러 오신 분들, 제발 다치지만 말고 온전한 몸으로 집에 들어가요.”
- [표지이야기]“1주기 맞춰 슬픔과 공감 폭발 주말 지나면 또 잊혀질까 우려”(2015. 04. 14 10:51)
- 2015. 04. 14 10:51 사회
- ㆍ‘애도의 정치, 기억의 정치’ 주제 천정환-정원옥 전문가 대담 자식 잃은 슬픔. 그 비극에 대한 공감은 진보냐 보수냐를 따질 수 없었다. 한국 사회는 이 비극 앞에서 다 함께 애도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정부의 무능이라는 민낯을 드러내자 다급해진 정부는 한국 사회를 보수와 진보로 빠르게 갈라놓기 시작했다. 이른바 51대 49 ‘두 국민 전략’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경제논리와 보상·특혜 문제를 동원해 애도의 정서를 끊어내고 유가족을 고립시켰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6일 앞둔 지난 4월 10일 ‘애도의 정치, 기억의 정치’라는 주제로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와 정원옥 문화과학 편집위원이 대담을 나눴다. 천정환 “우리가 지난해 4월 16일부터 지금까지 본 것은 무엇일까. 먼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지극한 슬픔과 공감하는 애도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공감하는 애도만이 아니라 그와 정반대되는 비공감과 적대의 감정들이 있었다. 슬픔이 깊고 높을수록 반슬픔도 컸다. 희생자에 대한 보상문제, 그리고 김영오씨의 단식농성 등을 소재로 한 보수진영의 선동과 여론몰이는 비공감과 반애도의 정서를 자극, 확산시켰다. 올해 들어 정부는 다시 세월호 배·보상금 이야기를 언론에 흘리면서 반애도의 정서를 자극했다. 반애도의 정서는 한 번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가 세월호 1주기가 다가오면서 일단 잠잠해졌다. 대통령도 선체 인양 쪽으로 가닥을 잡는 발언을 하면서 반애도의 분위기는 일단 가라앉은 상황이다.” 정원옥 “정부가 특별법 시행령을 강행하려고 하면서 애도의 정치가 다시 폭발하는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다. 정부의 시행령은 진실규명을 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가족들은 이에 저항해 삭발식을 단행했다. 정부의 시행령 강행과 1주기가 맞물려 애도의 정치가 다시 전개되고 있다. 천 교수님 말씀대로 여기에 대한 반애도나 비공감이 아직 본격적으로 표출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1주기인 4월 16일, 그리고 그 주 주말이 지나고 나면 이런 반애도 적대가 또다시 본격화될 것 같아서 우려스럽다. 지난해 유가족에 대한 증오의 발언이 극렬하게 표출되는 것에 대해 이를 어떻게 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가족은 자식 잃은 피해자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증오와 모욕이 그렇게 표현될 수 있다는 데 대해 놀랐다.” 천 “여러 가지 층위가 같이 있을 것이다. 적극적인 비공감이나 반애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은 어쨌든 2010년대 한국 정치를 규정하는 증오의 정치, 양극화의 정치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큰 틀 안에서 각각의 결들은 조금씩 다르다. 일반 서민들이 7억~8억원의 배·보상금 문제로 돌아서는 문제,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의 음주사고 문제, 일베 내에서의 조롱 문제, 모두 다 층위가 조금씩 다르다. 다만 이러한 문제들의 배경에는 양극화 정치가 큰 틀로 자리 잡고 있고, 이를 매개하는 것이 정부의 ‘두 국민 전략’이다. 한마디로 51대 49로 국민을 나누는 것이다.” 정 “세월호 참사는 이념대립과 무관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것이 진영논리로 가면서 사건의 본질이 이상하게 전달된다. 정부가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방식으로 사건의 본질을 흐려놓았다.” 천 “정부가 잘못한 게 있기 때문이다. 비어 버린 7시간 논란처럼 정부의 무능, 해경의 무능, 청와대의 무능, 국가의 무능이 깊다. 자기들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역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돌리는 식이다. 대통령의 세월호 사건과 유가족에 대한 잔혹성과 반공감은 철저히 정세에 따른 것이다. 대통령은 여론이 유가족에 대해 가장 동정적이거나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일 때인 4·16 직후와 교황 방문 때 제스처 몇 가지를 취했다. 대신 그 반대의 경우엔 철저히 유가족을 외면하거나 사건을 대충 덮고 무마하는 계산된 행동을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영정치의 구도에서 얻는 이득이 더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 “세월호 사건마저도 49대 51의 논리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이보다 더한 사건이 벌어진다고 해도 정부는 이 전략으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정부의 ‘두 국민 전략’은 정교했다. 말씀하신 대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민들의 여론이 자신들에게 유리해지면 얼굴을 바꿨다. 문제는 여기에 대해 시민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는 것이다. 아마도 정보수집 능력이 상대가 안 될 것이다. 당장 팽목항에서부터 엄청난 숫자의 경찰들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그런 것들만 봐도 정보수집력이나 대응력이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천 “세월호 기사에서 이런 댓글도 봤다. 애들은 불쌍하지만 그 부모는 꼴보기 싫다는 식의 댓글이다. 보수진영은 여론을 그렇게 분리하는 데까지 성공한 것이다. 애도의 주체는 부모이고, 애도의 극한을 겪고 있는 사람도 부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요구하는 게 정권의 뜻과 배치되고 정권을 비판하면 이러한 여론까지 차단하는 것이다.” 정 “정부의 공안정치도 이러한 여론 차단에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공안정치는 1970년대 중앙정보부가 활동했을 때나 가능했던 말이지 지금 시대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최근 시국 전단지를 배포한 것만으로 당사자뿐만 아니라 출판사까지 조사한 사건이 있었다. 내가 현 정부에 대해 어떤 비판 발언을 하면 결국 내 신상이 다 털리고 불이익이 돌아올 거라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천 “결국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현 정부 안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현 정부 안에서는 그런 정치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세월호가 제기한 구체적인 진실규명과 근본적 문제 모두 사실 이 정권 전체와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정 “그런 상황에서 세월호 사건 이후 강화된 우경화 또한 문제이다. 광화문에 어버이연합이 나와 주변을 에워싸면서 위협하는 게 너무 심했다. 엄청난 앰프, 수백개의 의자. 도대체 이분들의 재원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정부의 두 국민 전략이 그 공간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았다. 한 국민은 국가가 동원하고 다른 한 국민은 탄압하는 방식이다.” 천 “한국 사회가 이제 담론과 행동 모두 가장 저열하고 증오에 가득 찬 비이성적인 부류가 주도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지난해 9월에 일베와 자유대학생연합이라는 단체의 소속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먹기 퍼포먼스’를 벌였다. 단식에 맞서 싸구려 음식 따위를 먹는 퍼포먼스로 맞선다는 것은 현재 한국 정치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쓰레기 같은 행동으로 슬프지만 숭고한 가치를 훼손해버리는 식이다. 우리가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공공의 덕성이나 공공선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데 이들은 그 반대로 공공선을 더 후퇴시켜버리고 사회를 더 비천하게 만든 셈이다. 문제는 이런 일베에서 뭔가 나오면 그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언어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 우경화의 한 징후이며, 한국 사회의 퇴행을 보여준다. 정부가 제기하는 ‘돈의 논리’도 그렇다. 정부는 배·보상 금액부터 들먹이면서 계산되지 않는 것, 계산할 수 없는 것을 교환가치로 환치하고 이를 전시한다. 이 ‘돈 문제’는 정부가 주로 악용하려는 정치적 수단이다. 세월호 특위와 선체 인양 문제도 ‘돈 문제’를 둘러싸고 찬반 여론이 갈린다. 무슨 돈을 들여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전 국민적인 갈등과 ‘바닥 여론’이 형성되고, 또 그를 이용하려는 정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세월호 때문에 경기가 나빠졌다, 유가족들이 얼마만큼의 돈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돈의 프레임은 언제나 강력했다. 그러므로 이쪽에서는 특위와 인양 등에 드는 사회적 비용에 대해 설득력 있게 계산하고 발언할 필요가 있다.” 정 “그런 점에서 안산은 오히려 건강하다. 안산은 사실 지금 심한 내부갈등을 앓고 있는 중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멀리 있는 사람이 하는 욕보다 더 아플 수밖에 없다. 이웃사람의 이야기가 곧 상처가 되다보니 유족들이 이사를 간다거나 집밖에 안 나간다거나 하는 일이 있다. 안산에서 세월호 이후 장사가 안 된다, 안산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그들 자식의 생명이 걸린 문제일 수 있고, 삶이 걸려 있는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갈등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는 힘도 나온다. 지금 안산과 일부 수도권을 제외하고 세월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다른 지역은 고민조차 없는데 안산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안산에서 1000인 원탁토론회를 했다. 세월호가 처음 발생했을 때 안산에서는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자원봉사단을 꾸려서 같이 유족들을 도왔는데, 그게 특별법 제정문제가 불거지면서 보수·진보로 나누어졌었다. 지난해 12월에 다시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처음 봉사단을 꾸렸던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자리를 만들었다. 사실 지역 통·반장 하시는 분들 중 보수가 많다. 아는 후배가 통·반장들이 많은 토론조에 배치가 됐는데 다들 ‘경제가 안 좋다’ ‘세월호 때문에 경기가 안 좋아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만 하는 통에 앉아 있는 게 좀 괴로웠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분들이 마지막에 내린 결론이 뭐였냐 하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진실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너무 놀라웠다. 실컷 경제 얘기를 했는데 결국 토론을 통해 내린 민주적 합의는 ‘진실규명’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좌우로 갈릴 문제도 아니고, 진보·보수로 갈릴 문제도 아닌데 박근혜 정부가 이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원상회복해야 한다.” 천 “결국 민주주의 문제라고 본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곧 공공적 특성의 회복이다. 궁극적으로 정치란 그런 시민적 덕성을 발휘해서 공공선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 안산의 사례로 봤을 때 지난 세월호 1년이 한국 사회의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지만, 안산의 경우처럼 작지만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준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정 “세월호 유가족들을 돕기 위해 일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많이 참여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안산의 심리치유센터인 ‘이웃’은 1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꾸려간다고 한다. 할 수 있는 만큼 밥하고 청소해 놓으면 유가족들이 와서 쉬었다 간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와서 봉사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자기가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어 고맙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라고 작은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많다. 새로운 정치다. 이 문제를 피해자의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연루된 문제로 보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대거 늘어났다. 처음이다. 이런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아직도 세월호 사건에서 유가족이 중심이 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좀 아쉬운 점이다. 유가족이 중심이 되면 피해자 운동처럼 되어버린다. 세월호에 대한 진실규명, 배·보상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침몰했다는 것에 대해서 새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세월호는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사건이 된다. 이때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유가족을 고립시키지 않을 수 있다. 유가족 때문에 집회를 하고 세월호 문제에 힘을 보태는 피해자 중심의 운동으로 가면 안 된다. 그러나 이게 잘 안 돼서 유가족들이 끊임없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사실 더 많은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아서 유가족들을 보호하면서 가야 하는데 지금의 시민사회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유가족이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막아주지 못해서 안타깝다.” 천 “세월호 1년을 돌아보며 비관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사실 지금은 1주기가 가까워오니 언론에서도 기사를 많이 쓰고 하는데 4월 16일 그리고 그 주 주말이 지나면 또 사그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정 “결국 ‘잊지 않겠습니다’가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싸움은 지난할 것이고 금방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유가족들은 팽목항에서의 3일을 통해서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3일 동안 그들이 느꼈을 온갖 감정들. 희망, 기대, 분노, 배신, 좌절, 억울함. 이 숱한 감정들을 짧은 시간 동안 겪어내면서 어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결의하게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들이 말하는 ‘잊지 않겠습니다’는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기획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사건을 끊임없이 현재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표지 이야기
- [조대엽의 눈]광주 30주년과 노무현 1주기(2010. 05. 19 13:22)
- 2010. 05. 19 13:22 사회
- 5·18 광주항쟁이 30주년을 맞았다. 광주항쟁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뒤틀린 집권 야욕이 빚은 절정의 현대사 비극이었다. 163명의 사망자와 65명의 실종자, 87명의 항쟁 후 사망자, 3076명의 부상자, 429명의 구속자, 662명의 연행 및 구금자를 낳은 이 엄청난 비극이 벌써 30년 전의 역사가 됐다. 1980년대를 돌이켜보면 당시 대학생들에게 5월 약 열흘 동안 발생한 이 비극은 과거가 아니라 언제나 현재였다. 해마다 5월이면 캠퍼스의 구릉을 타고 비장하게 흐르는 5월의 노래 속에 학생들은 습관처럼 신발 끈을 조여 맸다. ‘사과탄’ ‘지랄탄’ 등 뷔페처럼 차려진 최루탄의 거리를 뚫고 광주는 마침내 1987년 6월 항쟁으로 분출했다. 신군부의 집권기가 끝난 뒤 광주의 진상이 국회 차원에서 규명되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있었고, 기념일이 제정돼 제도적으로 그날을 기리기까지 힘겹고 긴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이제 광주는 역사가 됐다. 광주의 원죄를 지은 신군부의 집권 시기였던 1980년대에 5·18 광주항쟁은 민주화운동의 뿌리이자 저항문화의 원천이었다. 이제 광주는 ‘역사’로 기념된다.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광주는 현재적 가치로 재현될 때 ‘기념’의 의의가 그만큼 커진다. 이제 곧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가 다가온다. 내 기억으로는 역사로서의 광주 또는 광주의 현재적 정신에 대해 노 전 대통령만큼 의미 있는 평가를 내린 분도 없는 것 같다. 광주민주화운동 26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노 대통령은 광주의 가치를 ‘화해’와 ‘통합’에서 찾았다. “5·18 광주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화해와 통합의 역사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5·18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분출이기도 했지만 오랜 소외와 차별,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을 분열시킨 데 대한 저항이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화해와 통합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상생과 공존의 ‘균형사회론’을 강조했다. “지역 간, 계층 간, 산업 간, 근로자 간의 격차를 줄여 균형 잡힌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은 5·18 광주가 도덕적 시민상과 진정한 공동체의 모범을 보였다면서 “생명이 위협받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너나없이 주먹밥을 나누고 부상자를 치료했으며, 시민들의 자치로 완벽한 치안을 유지했습니다”라고도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광주로부터 ‘자치’와 ‘자율’의 가치를 확인한 것이다. 광주의 당사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한다면 노 전 대통령만큼 진정성으로 광주를 대면한 분도 없을 듯하다. 광주에 대한 그의 진정성은 사회통합과 시민적 자율정치에 대한 진정성과 같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광주로부터 찾아낸 사회통합과 균형사회의 전망은 우리 사회에서 중단됐다. 오히려 소통과 정치 없는 기이한 정치질서와 균열 및 해체가 난무하는 시장주의는 사회통합과 균형사회에의 꿈조차 빼앗았고, 시민사회에서 자율과 자치의 에너지마저 고갈시키고 있다. 최근에 개최된 광주항쟁 기념 학술회의에서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광주의 적자는 ‘촛불’이라고 말했다. 그 하루 전날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반성한 것을 잊은 탓인지 촛불집회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말씀’을 쏟아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촛불’은 시민적 진정성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가끔 노 전 대통령이 촛불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촛불 없는 어둠이 너무 짙어진 것일까? 광주항쟁 30주년과 노 대통령 서거 1주년을 맞으며 온갖 번뇌가 무성한 가운데 무엇보다 진정성의 정치가 그립다.
- 금주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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