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3,945 건 검색)
- 캐나다·멕시코에 생산 공장 둔 포드…“관세 정책, 미 자동차 전례 없는 타격”
- 2025. 02. 12 20:40경제
- ... 보완 조치를 약속받고 30일간 유예했다. 포드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생산 공장을 두고 있다. 팔리 CEO는 자동차와 배터리에 세제 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관련해서도...
- 트럼프발 관세전쟁
- 익산 LG화학 공장서 불···“연기 흡입 10명 병원 이송”
- 2025. 02. 12 15:08사회
- ... 사다리차를 통해 불을 끄고 있다. 전북소방본부 제공 12일 오후 전북 익산시 용제동 LG화학생명과학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2시간 만에 완전히 꺼졌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화재는 이날 오후 2시쯤 약품...
- 화재익산시LG화학생명과학
- 반도체 등 21개 기업, 공장 증설·이전…충남도, 5600억 투자 유치
- 2025. 02. 10 15:00경제
- .... 코론은 제4일반산단 부지에 공장을 증설하고, 아이에스시엠은 성환읍 부지에 경기 안성에 있는 공장을 이전하기로 했다. 아산 음봉일반산단에는 글로벌 음료 업체가 1700억원을 들여 경기도에 있는...
- ‘일제강점기 제지공장·정수장, 장욱진 생가’ 세종시 첫 우수건축유산으로
- 2025. 02. 06 16:00지역
- .... 세종시 제공 우수건축자산 제2호인 조치원 1927아트센터는 목조 트러스 등 전형적인 일제강점기 공장 형태로 지어진 건물이다. 제지 공장으로 사용되다 한동안 폐건물로 방치됐고, 지금은 복원을 거쳐...
스포츠경향(총 564 건 검색)
- ‘안테나 새해 복 공장’ 세운다
- 2025. 01. 05 14:29 연예
- 안테나 안테나와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최고심’이 특급 협업에 나섰다. 안테나는 오는 8일 오후 8시까지 더현대 서울 지하 2층 아이코닉존에서 팝업 스토어 ‘안테나 새해 복 공장’을 운영한다. 팝업 스토어 ‘안테나 새해 복 공장’은 안테나와 최고심의 2025 시즌그리팅 협업에 이어 진행되는 이벤트로, 입사 후 각 직급에 맞는 승진 미션에 성공해 안테나 공장장이 된다는 콘셉트로 기획됐다. 특히, 팝업 스토어 방문객들은 콘텐츠존에서 입사(사원) 미션, 대리 미션, 팀장 미션을 진행하게 된다. 3개 미션을 모두 완료한 방문객은 최종 안테나 공장장으로 진급하며, 승진 기념 성과급으로 럭키드로우 경품이 주어진다. 이 외에도 ‘안테나 새해 복 공장’에는 메인 포토존을 비롯해 한정판 프레임을 이용할 수 있는 포토부스, 포토카드·키링·접지 달력 등 풍성한 상품이 진열된 굿즈존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넘쳐난다. 현장을 찾은 모든 방문객들에게 따스한 힐링을 선사하고 있는 안테나의 팝업 스토어 ‘안테나 새해 복 공장’은 오는 8일 오후 8시까지 더현대 서울 지하 2층 아이코닉존에서 진행된다.
- ‘한국의 빵맛, 세계로’ SPC그룹, 미국에 ‘제빵 공장’ 건립 추진한다
- 2025. 01. 02 14:11 생활
-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이 미국 텍사스 주에 제빵 공장 건립을 추진한다. SPC그룹은 텍사스(Texas) 주 존슨 카운티(Johnson County)에 속한 벌리슨 시(City of Burleson)를 공장 후보지로 정하고 지방 정부와 투자 계획 및 지원금에 대해 최종 조율 중이다. 이르면 이달 중 협의가 마무리 된다. 텍사스 주는 미국 중심부에 있어 미 전역과 캐나다∙중미 지역에 물류 접근성이 좋다. 투자 기업에 대한 지방 정부의 유치 인센티브와 고용 환경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은 비즈니스 친화 지역으로 평가 받는다. 존슨 카운티와 벌리슨 시 지방 정부는 이번 공장 투자 유치를 위해 파리바게뜨에 약 1000만 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제공한다. SPC그룹의 미국 제빵 공장은 파리바게뜨 매장이 확산 중인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향후 진출 예정인 중남미 지역까지 베이커리 제품을 공급하기 위한 생산 시설이다. 이 공장은 투자 금액 약 1억 6000만 달러, 토지 넓이 약 15만㎡(4만 5000평)로 SPC그룹의 최대 해외 생산 시설이 될 전망이다. SPC그룹은 중국 톈진에서 제빵 공장(2만 800㎡)을 운영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의 할랄 인증 제빵 공장(1만 6500㎡) 완공을 앞두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해외 14개국에 600여 매장을 운영 중이다. 그 중 미국과 캐나다에 200여 개가 있다. 북미 가맹사업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으면서 매장 증가 추세에 속도가 붙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제품 공급량도 꾸준히 늘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2030년까지 북미 지역에 1000 개 매장 개설을 목표를 세웠다. 공장은 SPC삼립의 해외 생산 기지로 쓰일 수 있다. SPC삼립 관계자는 “그룹 차원의 협력을 통해 미국 현지 시설을 시장 대응 및 현지화 전략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SPC그룹 측은 “북미 지역 사업 성장에 따라 원활한 제품 공급과 품질 향상을 위해 미국 공장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 건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K-베이커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 [미래를 본다] 르노 부산공장, ‘미래 전기차 생산기지’로 ‘업데이트
- 2025. 01. 01 14:49 생활
- 르노코리아가 2025년 하반기로 예정된 부산공장의 미래 전기차 생산기지 전환 계획에 맞춰 조립공장 내 전기차 전용 설비 신규 설치 등 공장 시설을 ‘업데이트’한다. 르노 부산공장 현재 부산공장은 하나의 조립라인에서 최대 4가지 플랫폼 기반, 총 8개 차종을 혼류 방식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다만, 최신의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하는 전기차 생산 면에선 동급의 내연기관 차량 대비 25% 가량 더 무겁기 때문에 라인 설비의 하중 보강 등 사전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향후 ‘폴스타 4’ 등 미래 첨단 전기차 생산을 추가 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과제다. 이에 2025년 초까지 부산공장 내 전기차 생산 설비 구축을 위한 시설 업데이트를 완료할 계획이다. 르노 부산공장에서 서로 다른 차종들이 하나의 라인에서 생산 중이다. 특히 자동차 생산의 핵심 공정이 이루어지는 조립공장의 경우 앞서 진행된 차체 및 도장공장 신규 설비 투자에 이어 1월 한 달 동안 차량 이동 장치, 섀시 행거 등 설비 교체와 배터리 장착 등 전기차 전용 작업을 위한 서브 라인 추가 작업이 진행된다. 이에 부산공장은 조립공장의 신규 설비 설치 기간 동안 가동을 일시 중단하고, 이후 시험 가동을 거쳐 2월 초 생산을 재개할 예정이다. 부산공장은 르노 본사 브랜드의 유럽 외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5곳의 글로벌 허브 중 하나를 맡아 ‘그랑 콜레오스’를 비롯한 하이엔드 중형 및 준대형 자동차 생산 중책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품질 경쟁력을 인정받아 2025년 하반기부터 스웨덴의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북미 수출용 폴스타 4 생산을 시작한다.
- 푸른피의 후라도, 숨은 영입 효과는…땅볼공장장, 후배들 멘털 케어도 잘해요
- 2024. 12. 31 09:41 야구
- 키움 시절 후라도 | 키움 제공 삼성은 지난 6일 외국인 투수로 아리엘 후라도를 영입했다. 삼성이 후라도를 영입한 건 그가 홈구장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도 훌륭한 수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2시즌 동안 라이온즈파크에서 5경기에 등판, 3승1패, 평균자책 2.91의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다양한 구종을 바탕으로 2024시즌 전체 땅볼 비율 3위(53.3%)에 오른 점도 삼성에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후라도는 삼성의 젊은 투수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투수다. 후라도가 몸 담았던 키움은 삼성보다 더 젊은 선수들이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팀이다. 2024년 고졸 신인인 키움 전준표는 후라도와 하영민 등에게서 “자신있게 하라”라는 조언을 듣곤 했다. 전준표 뿐만이 아니라 후라도는 키움 선수들에게 두루두루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로 떠난 이정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와 계약하기 전 일상을 키움 구단의 요청으로 ‘브이로그’를 찍었다. 영상에서 후라도에 언급하는 내용이 나온다. 2023시즌 초반 부진했을 때 기억을 떠올린 이정후는 “후라도가 시즌 초반 안 됐을 때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가봤더니 후라도가 ‘너는 캡틴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너를 믿고 의지하고 있고, 다 너만 바라보고 있다. 너가 힘든 거 알겠는데 나도 옆에서 많이 도와줄 거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하더라”고 이야기를 전했다. 당시 이정후는 미국 진출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고 KBO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보내던 중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았고 이정후 답지 않은 성적이 나오던 차였다. 그러나 후라도는 “어차피 시즌은 6개월이다. 3개월만 잘 하면 너의 애버리지가 돌아온다. 타자는 아웃이 더 많이 되지 않느냐. 아웃을 미리 당한거라 생각하면 괜찮을 것이다. 내가 도와주겠다”라며 이정후의 마음을 다독였다. 이정후는 “외국인 선수가 따로 불러서 이야기한 게 처음이었다”라고 돌이켰다. 후라도의 이런 자세는 삼성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최고참 오승환과 좌완 백정현 등이 있지만 이들은 입지가 든든하지 않다. 임창민, 김재윤 등 필승조들도 있지만 ‘울림’을 줄 수 있는 투수 선배들이 더 필요하다. 후라도의 올시즌 몸값은 신규 외국인 선수 몸값 상한선인 100만 달러다. 삼성은 후라도 영입에 따른 더 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주간경향(총 35 건 검색)
- “공장식 ‘3분 진료’ 막을 공적인 의료체계부터”(2023. 12. 01 16:40)
- 2023. 12. 01 16:40 사회
-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저자 김현아 교수가 본 의대 증원의 조건 11월 29일 김현아 한림대성심병원 교수가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김현아 지음·돌베개)는 철저히 자본의 논리로 운영되는 병원의 속살을 담은 책이다. 진료의 암묵적인 기준은 ‘진료는 짧게, 검사는 많이’다.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다. 병원은 은근슬쩍 접수 마감시간을 연장해 환자를 밀어넣는다. 교수가 환자가 너무 많아 연구와 교육 역량에 문제가 된다고 호소해도 그저 ‘진료를 더 보라’는 메시지만 되풀이한다. 정부나 정치인들은 ‘의료 공공성’에 대해 쉽게 말하지만, ‘실행 의지’를 뒷받침하는 재정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다. 실상은 공공병원마저 시장의 논리를 따른다. 책은 “지금도 서울 시내에 공공병원을 설립하려 하면 관료들에게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그 비싼 땅에 웬 병원?’이다”라고 지적한다. 그 결과 공공병원은 시민들이 대중교통으로 쉽게 찾아가기 어려운, 접근성이 떨어지는 변두리로 밀려났다. 지난 11월 29일 경향신문사에서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의 저자 김현아 한림대성심병원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비즈니스’로만 간주되는 현재 의료 현장에 대한 철저한 논의 없이 진행되는 증원 논의가 “의사들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현재 병원에서 불필요한 검사가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왜 그런가. “의사의 진찰이 의료의 핵심이다. 진단부터 치료까지 모든 것이 결정된다. 여기에는 환자가 치료 방식을 안 받아들일 경우, 이유가 무엇이며 차선책은 또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도 포함된다. 의사가 환자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면하고 진단과 치료 결정 등을 대화를 통해 설명하는 프로세스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3분 진료’로 악명이 높다. 3분으로는 이 과정을 진행할 수가 없다. 이렇게 진찰시간이 짧아진 이유는 현행 수가체계에서 의료인력 인건비 대 검사비의 보상 수준이 비정상적이고 불균형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진찰료가 얼마나 낮은지 최저임금 대비 조사해본 적이 있다. OECD 유럽 국가들의 기본 진찰료는 최저임금의 4배 정도다. 우리나라 일반의 기준 기본 진찰료는 1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OECD 국가보다 확실히 적다. 다만 이를 진료시간에 대입해보면 비슷해진다. 유럽 국가들은 환자당 평균 15분 진찰하는데 우리나라는 4분의 1 수준이다. 짧은 진료에는 낮은 진찰료가 반영돼 있는 셈이다. 결국 부족한 진료 시간을 땜질하는 것은 검사들이다. 검사비는 상대적으로 보상이 잘된다. 자기공명영상(MRI)의 경우 유럽이나 미국이 진찰료의 5~6배 수준인데, 우리는 27배에 달한다. 우리나라 진찰료 대비 뇌 컴퓨터 단층 촬영(CT)검사 수가는 8.6배다. 미국의 경우 2.1배, 프랑스는 5.8배, 캐나다는 3.9배다. 우리나라의 CT 촬영 건수가 인구 대비 OECD 최고 수준인 이유다. 그 결과 불필요한 검사로 인한 의료 재원의 낭비는 천문학적 수준인데, 아직까지 정책적으로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 그나마 MRI 같은 고가 검사는 경제적 부담이 바로 체감되기 때문에 쉽게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건당 수가가 그다지 높지 않은 검사실 검사들은 가랑비에 옷이 다 젖듯, 보일 듯 말 듯 의료재정을 좀먹는다.” ‘3분 진료’에는 낮은 진찰료가 반영돼 있는 셈이다. 결국 부족한 진료시간을 땜질하는 것은 검사들이다. 지금 병원은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가고, 환자 수로만 모든 게 평가되는 시스템이다. -병원은 의사들에게 ‘진료는 짧게, 검사는 많이 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한다고 했다. “병원들이 성과급으로 교수들을 줄 세우는 관행은 이미 오래됐다. 진찰료가 낮다 보니 당연히 고가의 비급여 검사를 많이 해야 실적이 좋아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교수들 명단을 놓고 누가 MRI 처방을 많이 내는지 따지는 병원들도 있다. 돈 안 되는 행위 대신 돈 되는 행위를 우대하는 것이다. 이런 보상체계가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앞으로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진료해 환자를 보겠다고 하면 오히려 실적에 도움이 안 된다. 같은 시간 누군가는 100명의 환자를 보고 누군가는 50명의 환자를 봤다고 하면 100명 보는 사람에게 훨씬 많은 성과급이 돌아간다. 이렇게 환자를 보면 사실 정말 힘든데 과연 그걸 잘했다고 봐야 하는 건지 생각해볼 문제다. 지금 병원은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간다. 환자 수로만 모든 걸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병원의료질 평가를 하는데, 심평원의 평가기준도 결국 이 컨베이어벨트를 얼마나 잘 돌리느냐밖에 안 된다. 환자를 어떻게 진찰하고 이것이 환자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측정하기는 어렵다. 나는 심평원에 ‘의료질평가’를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의료진이 하루에 환자를 몇 명 보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환자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 발생하는 ‘3분 진료’로는 진료 본연의 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표지 /돌베개 제공 -보건복지부도 문제점을 인식했는지 ‘초진환자 15분 심층진료’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2017년에 시작했고, 현재 나도 하고 있다. 대학병원에서 신규환자를 볼 때 15분씩 볼 수 있게 했고, 진찰료를 4배 정도 높게 책정했다. 환자부담금은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6년째 시범사업이라는 건 정부가 할 의지가 없다는 거다. 게다가 심평원은 심층진료를 한 환자가 만약 경증이면 의사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대학병원에는 1차·2차 의료기관에 가야 할 경증 환자도 많이 온다. 하지만 환자를 보지도 않고 경증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나. 실제로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지만, 병원 측은 심층진료에 경증환자가 많으면 의사에게 지침을 따라 달라고 요청한다. 사실상 심층진료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신규환자뿐만 아니라 재진환자도 적어도 15분은 진료를 봐야 한다. 그래야 환자들에게 만성질환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고, 환자들도 관리가 되면서 병원도 덜 찾게 된다. 3분 진료로는 환자가 불편함을 호소하면 왜 그런지 고민하기보다 약 처방이 먼저 나갈 수밖에 없다.” -책은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병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현대, 삼성 양대 재벌이 초대형 병원을 건립하고 병원 바닥을 대리석으로 장식한 이후 모든 병원은 이런 외형을 따라가야 했다. 어느 병원에서 번쩍거리는 기계를 들여오면 질세라 같은 기계를 들여와야 했고, 기계를 들여오면 당장 기곗값과 감가상각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기계를 돌려야 했다’와 같은…. “우리나라 의료의 가장 큰 모순은 교육과 똑같다. 의료와 교육, 모두 공공재지만 둘 다 민간시장에 완전히 내팽개쳐진 상태다. 사교육 시장에 맡긴 결과 공교육이 무너지지 않았나. 국가는 필수의료 수가를 낮게 유지하면서 국가가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사이 민간자본이 만든 병원은 사기업이니까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병원들의 영리 추구는 직원들에 대한 착취로 이어지기도 한다. 낮은 필수의료수가는 이럴 때 경영자에게 전가의 보도로 이용된다. ‘이 정도의 일을 하지 않으면, 이 정도 숫자의 환자를 안 보면 병원이 망한다.’ 의사들은 이런 말을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듣고 산다. 의료현장은 국민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의료와는 점점 거리가 먼 쪽으로 가게 됐다. 로봇수술이 많이 늘어나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복강경 수술의 수가는 2006년도에 23만9000원으로 책정돼 11년간 동결상태였다. 사실 수술장에 들어오는 의료인력의 인건비도 안 되는 수준이다. 로봇수술은 그보다 10배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고, 초기에는 실손보험으로 모두 커버가 됐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서 선호하게 됐다. 의사 중에는 로봇수술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병원에서 기계를 사서 돌리게 되면 압력에 저항하지 못하게 된다.” -그동안 정치가 의료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국민이 의료에 대한 불만 사항은 많지만,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거나 너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이 아무 말이나 한다. 사실 의료정책이 정치인들이 생색내기에는 좋다. 예컨대 공공의대 설립은 자기 지역의 이권이 달린 문제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재정이나 운영계획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민주당에서 발의한 ‘공공의대법’에는 공공의대를 법인의 형태로 설립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일단 만들기만 하고 국가가 운영에 대해서는 손을 놓겠다는 의지가 여실히 보이는 대목이다. 재정지원도 임의조항으로만 돼 있다. 게다가 지금 공공의료원인 성남의료원도 민간위탁한다고 하지 않나. 의료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의료를 비즈니스라고만 생각하고 운영이 안 되면 직원들의 문제, 개인의 문제라고 떠넘긴다면 진전이 없다.” -현재 정부는 의대 증원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문제는 의사들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불신은 비용을 유발한다. 큰 병원의 검사 위주로 의료가 돌아가는 것도 불신 때문이다. 의사를 못 믿으니까 일단 큰 병원은 조금 낫겠지라고 생각해 쏠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의료비가 급증하는 것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불신 비용이 크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프레임은 의사들이 가뜩이나 돈을 잘 버는데 밥그릇이 작아질까봐 이기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의사들 욕먹기 딱 좋은 불신을 조장하는 프레임이다. 개원의들은 사실상 다 자영업자다. 대한의사협회는 거의 개원의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곳이다. 개원의들은 당연히 의사가 늘어나면 경쟁이 심해지니 싫다고 할 수밖에 없다. 종합병원 봉직의도 지금 증원 논의가 편하지는 않다. 병원 자본이 더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을 조금 더 싼값에 부릴 수 있고, 힘도 세질 수밖에 없다. 만약에 공적인 의료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의사들도 성과급 같은 것 신경 안 쓰고 소신대로 진료를 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환자가 너무 많으니 의사 수를 늘려달라는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라는 공공영역을 어떻게 잘 키울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만 늘린다고 하면 의사들은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국민은 의사를 더 불신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 표지 이야기의대증원3분진료
- [박주연의 메타뷰](21)“거둬주세요, 하청공장 노동자 향한 연민의 시선을”(2022. 09. 16 14:50)
- 2022. 09. 16 14:50 사회
- ㆍ청년 노동자 목소리 담은 펴낸 천현우 청년 용접노동자 천현우씨(32)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건 지난해 4월이었다. 한 출판사 대표가 공유한 그의 페이스북 글을 읽으면서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이대녀(20대 여성)·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이 엇갈리면서 그것과 관련한 논쟁이 뜨거울 때였다. ‘대한민국 최하층에서 바라본 20대 남성들의 이반 투표’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존재하는지조차 잊고 있던 변방에서 날아온 통렬한 ‘비수’ 같았다.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그가 얼마전 자신의 이름으로 첫 에세이를 펴냈다. <쇳밥일지>(문학동네)다. 용접노동자로 일하면서 주간경향에 연재한 ‘쇳밥일지’와 ‘쇳밥이웃’에 전사(前事)를 더하고 개고해 묶은 책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3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서둘러 소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고 추천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생생한 날것의 흙수저 삶과 현장 이야기가 깊고 묵직한 여운과 고민을 안겨준다. 지난 9월 13일 천현우씨를 만났다. 그는 노키아부터 ISO 탱크 컨테이너 정비업체, 현대로템 하청업체, SNT중공업 하청업체, 볼보 하청업체에 이르기까지 지난 12년 동안 수많은 공장을 전전했다. 그중 후반 6년은 용접노동자로 살았다. 올해 3월부터는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alookso)’에 합류해 언론인의 길을 걷고 있다. 천씨는 “서울생활도, 취재도 아직은 낯설어 적응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책은 어떻게 내게 됐나요. “주간경향을 보고 문학동네에서 작년 8월에 연락을 주셨어요. 주간경향 연재글은 제 이야기지만 노동 르포에 가까워요. 노키아부터 볼보 하청업체까지 제가 공장에서 일했던 12년과 그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자 생산직 노동자였던 3명의 인터뷰로 구성된 글이었어요. 문학동네는 주간경향 연재글에 앞뒤 맥락을 추가하면 왜 제가 용접노동자로 살 수밖에 없었는지 짐작케 하는 좋은 에세이가 될 것 같다고 하셨어요.” -과거의 얘기는 어떻게 기술했습니까.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부터 일기를 썼어요. 집에 돌아오면 혼자여서 딱히 할 일이 없었거든요. 장난감도 없었고, 친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했으니까요. 일기는 성인이 돼서도 계속 썼는데, 과거의 일기장이 글쓰기에 참고가 많이 됐어요.” -<쇳밥일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궁극적 메시지는 뭔가요. “제가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사람들은 ‘나는 그런 곳(저임금의 열악한 중소기업 생산직 노동현장)에서 못 산다’, ‘지옥이다’라며 동정하듯 말했어요. 마치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처럼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지금도 그곳에서 성실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어요. 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의 파편적인 12년의 경험담을 서술한 내용이 본의 아니게 노동 현실 고발로만 읽히는 게 조금 아쉬워요. 무엇보다 지방 하청공장 생산직 노동자들을 연민의 눈으로 보지 말았으면 해요.” 천현우라는 청년 용접노동자가 처음 세간의 주목을 끈 것은 그가 2021년 4월 11일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리면서다. 직전 4·7 재보궐선거는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 당선 등 국민의힘 압승과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끝났다. 특히 오세훈 시장은 20대 남성에게 72.5%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언론과 SNS,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앞다퉈 원인 분석에 나섰다. 거기에 지방 현장의 2030 청년노동자 목소리는 없었다. 천씨는 페이스북에 2030 공장노동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왜 절망과 냉소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를 썼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의 글은 하룻밤 새 수없이 공유됐다. 당시 페북 글과 관련해 천씨는 <쇳밥일지>에서 “이십대 남성은 공정론, 한탕주의, 일베와 펨코, 안티 페미니즘이란 문자의 감옥 안에 갇혔다. 젊은 친구들 말 좀 들어보자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결국 수도권 대학생들만 예시로 들 뿐, 지금껏 내 삶에서 함께해왔던 동료의 목소리는 바깥으로 가닿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좀 과장하자면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된 거네요. “페이스북 메신저가 엄청 많이 오고, 휴대폰도 하루종일 울렸어요. 언론사로부터도 출연과 칼럼 제안이 들어왔고요. 150명 수준이던 페북 친구는 하루 동안 400여명이나 증가했어요.” -당시 어떤 심정으로 그 글을 쓴 건가요. “진보진영의 많은 분들은 2030 남성들이 뭘 몰라서 국민의힘 후보를 찍었다는 식으로 주장했어요. 그래서 제가 처한 현실에서 20대 남성이 느꼈던 불안감과 박탈감의 지점을 입시·취업 과정, 노동소득과 고용불안, 남녀 간 깊어지는 갈등 이 세가지로 압축하고 그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적은 거예요. 공정을 말하면서 종종 들먹이는 능력주의는 공평하지 않으니까요.” 문학동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나요. “가난하면 명문대 들어가기가 훨씬 힘드니까요. 극소수의 ‘개천용’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자본을 쥔 쪽이 무조건 유리하죠. 입시는 곧 취업으로 연결돼요. 대기업은 명문대 등 수도권 4년제 대졸자가 차지하고, 지방의 고졸이나 속칭 ‘지잡대’ 출신 다수는 임금을 비롯한 모든 게 열악한 중소기업으로 가게 되죠. 특히 생산직 분야는 취업시장 최하층에 위치해 있어요. 중장년 꼰대들의 폭언과 산재 위기에 항상 노출돼 있죠. 직급이 올라도 임금이 거의 안 오르니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도 어려워요.” -이른바 한동안 언론에 오르내린 ‘이대남, 이대녀’ 논쟁과 갈등이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겠군요. “저로선 잘 와닿지 않았어요. ‘대학까지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끼리 저렇게까지 더 달라고 싸워야 하나?’, ‘대학에 갈 수 있으면 나머지는 다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죠. 제가 서울에 올라와서 제일 놀란 것은 워크넷에 용접 구직을 했을 때였어요. 제가 살던 마산에서는 진짜 별로 답이 안 오는데 서울에서는 거의 사흘에 한 번꼴로 서류 넣어보겠냐는 문자가 왔어요. 그만큼 일자리가 많고 시급도 훨씬 높더라고요. 수도권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이구나 싶었어요.” -페이스북 글을 계기로 신문과 잡지 칼럼을 쓰고 방송 출연에 이어 이렇게 에세이까지 냈는데, 2030 공장노동자들의 반응도 접합니까. “별로 없어요. 제 이야기가 정작 우리들을 뭉치게 하는 힘이 없으니 안타깝죠. 제 글이 우리의 현실을 먹물들에게 전달하는 데 포커싱돼 있기 때문이에요. 포터 아저씨(천현우씨에게 용접의 세계를 알게 해주고, 편입 실패와 학벌 콤플렉스에 빠진 그에게 ‘우리가 훨씬 대단한 거야. 기죽지 마’라며 늘 용기를 북돋아준 은인)가 그랬어요. 우리 판때기에서 쓰는 말들이 있는데, 그 상스러운 걸 칼럼에 다 그대로 실을 순 없잖냐고. 그렇다고 먹물들 말로 쓰면 맛이 안 살고 그 중간 언어를 찾아야 하는데 니가 그걸 잘하더라고.” -지난 정부에서 1년간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도 활동했는데, 그렇게 다양한 외부활동을 하며 터득한 게 있다면 뭔가요. “한국 정치 지형이 약자한테 너무 무관심하다고 느껴요. 출근시간대 지하철 시위를 벌이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나 사방 0.3평 철창 안에 몸을 구겨넣은 채 31일간 농성을 벌인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파업에서 보듯, 소수자는 진짜 목숨 걸고 극한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알아봐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제가 지방 공장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아무리 열심히 전달해도 잠시 관심을 둘지는 모르지만 금세 풍화되고 말 거라는 서운함이 있어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우리를 모른 척하며 살아가겠죠.” 이전 그의 삶은 수많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거쳐온 삶의 거울일지 모른다. 그래서 용접노동자 천현우가 살아온 이야기는 무엇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지를 엿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그는 1990년 마산에서 태어났고 두 살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서울에서 살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버지는 “바람둥이 날건달”이었다. 바람을 피우다 집을 통째로 날린 아버지와 이혼한 심 여사는 생모는 아니지만 가슴으로 낳고 기른 여덟 살 된 그를 데리고 마산으로 내려갔다. 여관방을 전전하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심 여사는 식당일을 하며 혼자 그를 키웠다. 하지만 심 여사가 아프면서 아버지와 살게 된 그는 급기야 영양실조로 쓰러졌다. 그때 처음 나타난 생모는 1년을 같이 사는 동안 툭하면 어린 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낙상해 발목뼈가 으스러지고 나서야 그는 바람대로 다시 심 여사와 살게 됐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기뻐했지만 가난은 늘 모자의 삶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초등학생 때 여관방에서 살았던 기억은 어떤 건가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심 여사)는 일하러 나가시고 저는 혼자였어요. 서울말 쓰는 저와 놀아주는 친구는 없었어요. 그래서 일기를 썼고, 저녁에는 TV로 만화영화를 봤어요. 점심식사는 학교에서, 저녁밥은 어머니가 출근 전 차려놓은 것을 먹었어요. 아침은 굶었고요. 어머니의 일이 늦게 끝나다 보니 아침까지 주무셨거든요.” -여관방에서는 언제 벗어날 수 있었나요. “제가 생모라는 사람의 폭력에서 벗어나 다시 마산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원룸에 살고 계셨어요. 어머니는 저 때문에 재혼도 안 하셨어요. 제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너무 크다 보니 자극하기 싫었다고 하세요.” -어떤 트라우마요. “아버지는 생계를 책임지기는커녕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했어요.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다반사였고, 어쩌다 집에 돌아와도 데리고 온 여자와 자며 저는 침대 밑 바닥에서 자게 했어요. 방치된 시간이 길다 보니 제가 영양실조에 걸린 거고요.” -어릴 때 꿈은 뭐였습니까. “매달 200만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요. 천현우씨가 중장비 용접을 하고 있다. / 천현우씨 제공 “월세가 밀리는 달이 많았거든요. 특히 중학교에 입학한 후 교복을 사고 나니까 어머니가 되게 힘들어하시는 게 보이더라고요. 귀가 시간도 점점 늦어지시고.” -웹소설로 잠깐 돈을 벌기도 했고, 신춘문예에 도전도 한 것을 보면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것 아닌가요. “중학생 때부터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본격적으로 쓴 것은 공장에 다니던 스물두 살 때부터였어요. 온갖 공모전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어요(웃음).” -한국에서 그나마 계층 사다리가 되는 것은 명문대 졸업 후 의사나 판·검사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거예요. 공부에는 뜻이 없었습니까. “어릴 때는 공부가 재미없었어요. 우리는 ‘공부 못하면 기술 배워라. 그러면 가정도 꾸리고 어엿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래서 실업계고(경남전자고)를 간 거예요. 그런데 아니었던 거죠. 그 말을 믿고 10년을 뼈를 갈아넣었는데 이제 어떻게 하지? 하는 좌절감과 당혹감을 느꼈어요. 무슨 짓을 해도 혼자 벌어선 식솔들을 먹여 살리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지방은 아직도 가족주의가 굉장히 강한데,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것도 쉽지 않아요. 젊은 여성이 별로 없거든요.” -실업계 고교 시스템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건 없습니까. “MB가 ‘기술강국 코리아를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한다며 마이스터고를 만들었는데 장단점이 있어요. 2017년 제주도 생수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교생이 기계에 몸이 끼이는 협착사고로 사망했잖아요. 현장에 맞춰 안전교육을 사전에 철저히 해야 했음에도 안 했던 거죠. 또 학생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장에서 겪는 부조리를 스스로 방어하는 방법을 알게 하는 거예요.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선 ‘위험한 것 같은데요.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옳은 행위, 합법적 행위임을 가르쳐줘야 해요.” -산업현장에 생산직 노동자로 바로 투입될 학생들인 만큼 실업계고에서는 노동법 관련 교육이 선행돼야겠군요. “꼭 알아야 할 노동법 내용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해야 해요. 산업재해를 당해도 노동법을 모르면 권리를 찾지 못하잖아요. 또 거듭 말하지만 ‘절대 쫄면 안 된다, 위험한 일은 못 하겠다고 말하라’고 지나칠 정도로 얘기해줘야 해요. 현장실습 사망 사건 대부분이 거절하지 못해 발생하는 거거든요. 저는 이런 교육이 중학교 과정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각자도생만 가르치는 이 사회에서 과연 힘을 합쳐 돌파하라는 교육이 가능할까요?” 그도 2년제 기능대학인 폴리텍 전자과 졸업반 때 창원 신촌 공단에 있는 효성 하청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고온에서 액체 상태였다가 실온에서 고체가 되는 에폭시수지를 온장고에서 꺼내 금형에 붓는 작업이었다. 출근 첫날 섭씨 400도 온장고에서 갓 나온 에폭시수지가 담긴 40㎏이 넘는 통을 50㎏을 겨우 넘긴 체중의 그가 들고 옮기다 떨어뜨렸다. 그의 발등에 수지가 쏟아졌다. 현장은 우왕좌왕했고, 초기 냉각이 중요한 화상은 1시간이 넘도록 방치됐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사장은 그를 동네 의원에 데려가 파상풍 주사와 항생제만 맞혔다. 결국 어머니와 찾아간 다른 병원에서 의사는 “딱 1㎝만 더 들어갔으면 발목 자를 뻔했다, 산재 처리 안 해주더냐”면서 “입원하라”고 했다. 하지만 천씨는 출근 첫날 회사를 관뒀을 때 생길 불이익이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 발등에 화상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천씨는 “그때 만약 산업안전보건법을 알았더라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쇳밥일지> 본문과 표지띠에 이렇게 쓰여 있어요. ‘도대체 누가 이런 현실을 알아줄까? 기자? 정치가? 금속노조? 진보 지식인? 아뇨. 할 말을 잃어서 할 말이 너무도 많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멍청한 소리였지만 2018년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SNT중공업 사외 협력업체인 창원의 작은 정밀공업회사에 다닐 때였는데, 크레인으로 옮기던 10t 중량의 거대한 철판이 과장님의 다리를 덮치는 끔찍한 사고가 있었어요. 내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했고 온갖 나쁜 미래상이 그려졌어요. 하지만 숱하게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넘어가잖아요. 저는 그날부터 현장의 모습을 촘촘하게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언젠가 세상에 알리겠다는 심정으로요.” -이후 과장님 소식은 들었나요. “발목 절단 수술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어요.” 천현우씨가 지난 9월 13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위해 이동한 인근 국토발전전시관 앞마당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노조가 결성돼 있다면 나았을 텐데, 중소기업은 노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을 규합해 노조를 결성하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을 테고요. “찍히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저는 SNT중공업의 사내 하청업체인 정진테크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노조의 개념조차 몰랐어요. SNT중공업과 정진테크 직원들이 한 공장에서 일했는데 하청직원이어서 겪은 차별이 컸어요. 여름 용접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에요. 하지만 현장에 냉방기는 없었어요. 선풍기를 쐬면 바람맞은 용접 부위에 구멍이 송송 뚫리기에 맨몸으로 버텨야 했고, 힘은 쭉쭉 빠져나갔죠. 그런 어느 날 낮잠을 잘 수 있는 에어컨이 구비된 휴게실이 있음을 알게 돼 이용했더니, SNT중공업 정직원 노조원 아저씨가 저를 막아서요. 하청직원은 노조가 투쟁으로 얻어낸 휴게실을 이용하면 안 된다고….” -서러웠겠군요. “샤워실도, 통근버스도 제공되지 않는 터라 잔업 후 땀에 찌든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버스를 타고 퇴근하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서럽고 착잡했어요.” -대우조선해양 하청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분규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제가 당시 조선하청지회를 직접 방문했는데, 여성 파워공(선박의 표면을 전동 그라인더로 갈아 매끈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분들의 활동을 보면서, 하청도 앞으론 점점 이렇게 서로 연대해 공론화할 수도 있겠구나, 희망을 가졌어요.” 그는 한때 4년제 대학 편입을 준비했다. 온라인 게임으로 만나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난 친구의 전문대 비하 발언에 자존심을 크게 다쳤고, 전자과의 경우 2년제를 나와선 취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편입 자금을 모으려 잔업과 특근에 주말이면 공사현장을 누볐다. 심 여사도 아들의 편입을 위해 빚이란 빚은 다 끌어다가 화투판에서 이자 장사를 하며 힘을 보탰다. 하지만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심 여사가 믿던 동생에게 사기를 당해 8000만원의 빚을 지게 됐기 때문이다. 천씨는 채권자들에게 심 여사의 빚을 자신이 갚겠다고 나섰다. 200만원 월급에서 다달이 140만원을 갚아나가다 보니 경제적으로는 더욱 궁핍해졌다. -어머니의 빚은 다 갚았습니까. “아직 600만원 정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점은 인생의 길목 길목에서 만난 좋은 인연들이다. 어머니 심 여사와 포터 아저씨를 비롯해 노키아공장에서 재회해 도움을 준 초등학교 동창 은주씨, 정진테크에서 만나 독서의 근육을 키우게 해준 초원씨, 그리고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저자이자 그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경청해준 양승훈 경남대 교수 등이다. 천씨는 삶의 터전을 옮겨 지난 3월부터 미디어 스타트업 ‘얼룩소’에서 기자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쇳밥꾼이 아닌 먹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걸었던 길 위에 서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전달하려고 한다. 책도 또 펴낼 생각이다. 그는 “아마도 다음 책은 산업재해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박주연의 메타뷰
- [양다솔의 기지개 켜기](6)들꽃마을에 철강공장이 웬일이니(2022. 06. 10 14:05)
- 2022. 06. 10 14:05 문화/과학
- 엄마가 사는 마을 옆에 어느 날 커다란 철강공장이 들어선다고 했다. 엄마가 산골짜기에 친구들과 작은 마을을 만든 지 반년도 안 된 때의 일이었다. 목장으로 쓰일 뻔한 부지를 사이좋게 나눠 사서 삼삼오오 집을 지어 만든 작은 터전이었다. 자연과 어울려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뜻에서 들꽃마을이라 이름했다. 어딜 보아도 초록 능선이 넘실거리고 앞으로 나가면 맑은 계곡이 졸졸 흐르고 밤이면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이는 곳이었다. 봄이면 그곳은 귀뚜라미와 개구리 우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겨울이면 적막해 별들의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엄마는 봄을 앞두고 마당에 새싹을 옮겨 심으며 말했다. “너도 나중에 여기 와서 살고 싶어질 만큼 멋진 마을을 만들 거야.”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그 호언장담이 하루아침에 위기에 처했다. 새싹들이 합창하듯 꽃을 피워내던 봄, 공장이 들어선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떨어졌다. 마을의 100m 옆에 들어선다는 공장은 마을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지나는 곳이었다. 소음은 물론 철강을 생산하며 생기는 분진과 환경오염, 대형차량 통행으로 마을의 풍경이 송두리째 바뀔 게 뻔했다. 엄마의 집 창문에서도 보일 만큼 가까웠는데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예상을 깬 전투력 분명 어딘가 익숙한 시나리오였다. 시골 마을 옆에 들어서는 공장, 한줌도 안 되는 주민들의 작은 시위와 목소리는 우습게 저지되고, 떨어지는 허가, 이어지는 트럭, 공장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늘 생각보다 큰 규모로 들어선다. 약속과 다르게 시간이 갈수록 야금야금 덩치를 키워가며 도시를 방불케 하는 소음과 먼지로 마을을 뒤덮는다. 참다 못한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간다. 어느 순간 마을이 있었던 흔적조차 사라지는, 겪어보지 않았는데도 선명한 그렇고 그런 스토리였다. 그 비극의 주인공이 이번엔 엄마였을 뿐이다. 심지어 그런 전개로 마을 저편에는 시멘트 공장이 이미 들어섰다. 그곳은 돌아볼 때마다 전보다 커져 있었다. 밤에도 빨간불을 밝히며 회색 연기를 뿜어냈다. 엄마는 말했다. “막을 거야.” 마치 피할 수 없는 안타까운 운명을 앞둔 주인공처럼 나지막한 한마디가 허공에서 부서졌다. 들꽃마을은 전투태세를 갖추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아직 공사 중인 집들이 여러채였다. 집을 짓고 내려온 것은 다섯가구가 전부였다. 승부는 불 보듯 했다. 그후 몇 달간 드문드문 소식이 들려왔다. 슬픈 결말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며 한 귀는 열고 한 귀로 흘렸다.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장 설립 모두 철회하기로 했어. 우리가 이겼어.” 귀를 의심했다. “정말?” 들었던 소식 중 그나마 희미하게 기억하는 것은 엄마의 플래카드 철학이었다. 사안에 반대하는 현수막이란 모름지기 누가 읽어도 무슨 말인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간단명료함과 동시에 강력한 한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을 회의에서 후보로 나온 ‘청정 마을 옆에 공장설립 말이 되냐’는 나른해보이고, ‘주거환경 박살 내는 OO공장 허가 반대’에서 주거환경은 어딘가 모호하다고 엄마는 열을 냈다. 결국 마을 앞에 ‘(결사) 환경오염 소음피해 OO공장 반대한다 (반대)’라고 쓰인 현수막이 나붙었다. 플래카드 한장에 이렇게까지 심오한 논쟁이 오가다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이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말았다. 그 마을을 이루고 있는 이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청춘을 학생운동에 바쳤던 운동권, 그러니까 싸워본 가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엄마와 마을 식구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조직된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즉각 마을 회의를 소집했다. 마을에서 제일 목소리가 크고 발이 넓은 사람이 날이 밝자마자 군청에 찾아갔다. 부지런히 전화를 돌려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듯 설득해 주요 마을의 이장들을 포섭했다. 어떤 마을이든 그 마을의 가장 젊고 능력 있는 사람이 이장이 되고, 그들을 자기편으로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본능처럼 알았다. 공장 측에서 공식적으로 군청에 설립 허가를 요청하자 그들은 본격적으로 발로 뛰어 마을의 한집도 놓치지 않고 서명을 받아냈다. 수도 없이 민원을 넣어 끝내 군수가 상황 파악을 위해 마을을 방문하게 했다. 그때 공장 측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주민을 구슬리기 위해 사업설명회를 열자 기다렸다는 듯 주변 마을 모두에게 소집 명령을 내렸다. “요즘 시골에서는 마을 방송을 전화로 하거든. 매일 아침에 전화가 와. 거기다 공식적으로 공지를 때린 거지. 절대 가만둘 수 없는 OO공장이 마을 옆에 들어선다고 합니다. 꼭 현장에 가서 막아야 합니다. 몇시 어디로 모두 나와주십시오.” 피켓 대신 달큰한 떡을 그렇게 마을에서 가장 젊은 50대부터 90대까지 모든 주민이 사업설명회에 모였다. 엄마와 마을 식구들은 때맞춰 넉넉히 준비한 피켓과 현수막을 사람들에게 쥐여줬다. 앞서 들어선 시멘트 공장으로 큰 회한을 느끼고 있던 주민들은 한 맺힌 영혼을 그대로 내보였다. 현장은 난장판이 됐다. “거기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보다 더 잘 싸우던데.” 그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지역 신문에 났다. 공장 측은 짐짓 놀라는 듯했으나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속이 뻔히 보이는 말들을 이어갔다. 일 년에 딱 한 달만 공장을 돌릴 것이며, 절대 오염은 없을 것이며…. “그다음엔 어떻게 했는데?” 그러자 엄마는 말했다. “매일같이 전화를 해서 속삭였지. 허가가 떨어지고, 설립이 된다고 해도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우리는 매일같이 공장에 들를 거라고. 매일 근처를 서성이며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거라고. 뭐 하나라도 잘못되면 하나하나 걸고넘어질 거라고. 우리 집 창문에서도 너네가 뭐 하는지 다 보인다고. 절대 너네 마음대로 되는 건 없을 거라고.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 얘기를 듣는 내 팔에 소름이 돋았으니 전화를 받았던 사람은 얼마나 등골이 오싹했을까. 공장 측이 마을을 잘못 골랐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싸움이 뭔지 알고 있었다. 먼저 힘을 합쳐 하나가 돼야 하고, 다양한 차원에서 연합을 이루어야 하며, 강경하고 분명하고 끈질기게, 그러니까 쥐잡듯이 잡아야 한다는 것을. 개처럼 사납게 싸우면서도 여유와 우아함을 잃지 않았던 그들은 노련하고 실력 있는 파이터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줬다. 얼마 후 아침 마을 방송이 소식을 알렸다. “오늘 들꽃마을에서 떡을 돌린다고 합니다. 주민들께서는 떡을 받으러 주민 회관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떡을 돌리는 날에는 마을에 생기가 돈다. 저 멀리서부터 꼬부랑 할머니가 빈손으로 떡을 받으러 종종걸음을 걸어온다. 들꽃마을엔 승리를 축하하는 작은 축제가 열렸다. 그들은 깨끗한 공기를 쟁취했고 고요한 적막을 포상으로 받았다. 새삼스레 알게 됐다. 여전히 스스로를 위해 싸울 수 있음을. 전화기와 피켓을 들고 있던 작고 단단한 손에 이제는 따끈하고 달큰한 떡이 들려 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생각했다. 어디나 이런 행운이 함께하지 않음을 알기에. 스스로를 위해 싸울 줄 아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 양다솔의 기지개 켜기
- [청년이 외친다, ESG 나와라](7)‘동물공장’이 돼가는 동물농장(2022. 02. 04 15:48)
- 2022. 02. 04 15:48 사회
- 공장식 축산은 최소 비용으로 달걀, 우유, 고기 등 축산물의 생산량을 최대화하기 위해 동물을 한정된 공간에서 대규모로 밀집 사육하는 방식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동물 사육 및 축산물 생산 공정을 기계화·자동화해 공장식 축산이라 부른다. 한국은 높은 인구밀도와 농지 부족으로 농업에서 집약적 생산구조를 취했다. 농지 부족에도 축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육밀도의 급격한 증가가 자리한다. 2006년 이래 축산업은 한국의 농업 총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쌀을 넘어서면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식량산업’이 됐다. 한국인의 1인당 육류 소비는 1970년 5.2㎏에서 2020년 무려 54.3㎏으로 증가했다. 경기도의 한 도축장 앞에 서 있는 축산운송차량 / 김흥일 기자 2021년 국내에서 닭 10억3564만마리, 오리 4928만마리, 소 93만마리, 돼지 1838만마리 등 약 11억423만마리의 동물을 식용으로 도축했다. 대부분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했다. 유사한 농업조건 또는 경제 수준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밀집성이 큰 한국의 축산현장에서는 재활용 또는 재순환하지 않는 축산폐기물이 넘쳐나 수질오염의 원천이 되고 있다. 항생제 오남용이 주로 축산에서 이뤄져 한국인의 항생제 내성률은 OECD 국가의 5~7배에 이른다. 농장 내 만성화한 가축 질병에 더해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대규모 동물 전염병이 점점 빈발하는 추세다. 오늘날 가축의 삶은 본래의 모습에서 매우 멀어져 있다. 축산동물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개량되고 분화해 산업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가장 적합한 형태가 됐다. 동시에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환경에 노출된다. 닭은 원래 자연상태에서는 1년에 6~12개의 알을 낳았으나, 현재는 1년에 300개까지도 낳는다. 그린피스는 “공장식 축산이 효율적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방법이라고 기업들이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현재 지구상 토지의 4분의 1 이상을 가축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이 땅은 사람들이 먹을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땅이며, 1㎏의 닭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3.2㎏의 사료가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비윤리적 축산환경 공장식 축산의 대명사는 스톨(stall)과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다. 스톨(stall)은 돼지를 사육할 때 사용하는 매우 좁은 우리를 말한다. 주로 임신한 돼지를 가둬두는 폭 70㎝, 높이 120㎝, 길이 190㎝ 정도의 케이지를 가리킨다. 스톨은 돼지의 몸 크기에 꼭 맞아 그 안에 있는 돼지는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상태로 늘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 어미돼지를 이런 스톨에 가두는 이유는 좁은 공간에서 최대한 높은 생산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임신이 가능한 암컷 돼지는 스톨 안에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새끼가 젖을 뗀 후 일주일이 지나면 또다시 임신할 수 있다. 스톨 안에서 돼지는 3~4년 동안 임신과 출산을 6~7회 반복한 후 도축된다. 자연상태에서 돼지의 수명은 15년가량이다. 비좁은 철창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면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는 정면에 보이는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 이상 행동을 보인다. 이 때문에 스톨 사육을 위해서는 돼지의 이빨과 꼬리를 새끼 때 미리 자른다. 2020년 한국은 임신한 돼지의 스톨 사육을 교배 후 6주 이내로 제한하고 그후에는 다른 개체와 어울릴 수 있는 군사 공간을 제공할 것을 의무화했지만, 이마저 즉시 적용은 신규 농가에 한해서다. 기존 농가는 10년 적용 유예를 받았다.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는 달걀을 얻기 위한 공장식 축산에서 닭을 키우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케이지 한개의 크기는 가로 50㎝, 세로 50㎝, 높이 30㎝이다. 축산법 시행령에 따라 최대 9단까지 쌓아 사용할 수 있다. 한 케이지에 산란계 6~8마리를 사육하며, 보통 1마리당 사육 면적이 A4용지 5분의 4 남짓할 정도로 과밀한 사육 형태다. 좁은 공간에서 닭의 활동량을 최소화해 사료 섭취량을 줄일 수 있다는 걸 배터리 케이지의 이점으로 꼽는다. 배터리 케이지 안의 닭은 스톨 안의 돼지처럼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를 공격하기 때문에 돼지의 이빨을 잘라내듯이 닭의 부리 또한 잘라낸다. 배터리 케이지를 쓰는 양계장에서는 고질적인 진드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반사로 닭에게 살충제를 직접 뿌린다. 2017년 살충제 달걀 파동은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했다. 2018년 9월부터 산란계 및 종계 케이지의 적정사육면적을 마리당 0.05㎡에서 0.075㎡로(대략 A4용지 0.8배 넓이에서 1.2배 넓이로) 상향 조정한 축산법 시행령 개정안을 신축 계사에 적용하고 있지만, 기존 농장은 2025년 8월 31일까지 적용을 유예받았다. 도축용 가축을 수송하는 차량인 ‘닭차’ 어리장 안에 실린 닭들 / 김원진 기자 항생제 과용과 침묵의 팬데믹 공장식 축산은 항생제 오남용이라는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동물이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저하된데다 좁은 공간에 밀집돼 감염병을 쉽게 전파하기 때문이다. 2016년 영국의 한 연구에서는 슈퍼박테리아(항생제 내성균)에 의한 전 세계 사망자가 연간 70만명에 이른다고 분석하면서, 2050년이 되면 한해 1000만명이 슈퍼박테리아 감염으로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다. 암이나 다른 주요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예측 수치를 넘어선다. 아시아권은 전 세계적으로 항생제 내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지역에 속한다. 그중에서 한국의 항생제 내성률은 세계적으로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상황이다. 한국은 2019년 기준 1인당 인체 항생제 사용량이 OECD 국가 중 3위이고, 인구 대비 항생제 매출은 OECD 국가 중 2위다. 축산 분야에서 사용하는 항생제가 인간을 비롯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은 명확하지 않지만, 항생제 내성균은 ‘침묵의 팬데믹(the silent pandemic)’이라 불리며 유엔, 세계보건기구(WHO), G20 등 여러 국제회의에서 다룰 만큼 이미 전 지구적인 이슈가 됐다. 가축 전염병 상시화·토착화의 가장 큰 이유는 공장식 축산이다. 이은환 경기연구원 생태환경연구실 연구위원은 “공장식 축산의 밀집사육은 가축 개체 간의 거리가 짧다는 점뿐 아니라 그 때문에 가축이 스트레스를 받고 면역력이 저하된 채로 있다는 점에서 바이러스나 병원균이 확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며 “가축 전염병의 상시화·토착화는 농장주에게는 경제적 손실을, 정부에게는 세출 부담을, 국민에게는 보건상의 위험을 안긴다”고 말했다. 살처분은 동물 살해라는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지만, 윤리 차원에 한정하지 않는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 비용으로 들어간 세금은 4조원에 육박한다. 정작 중요한 사전예방적 방역체계 구축에는 예산을 충분히 투입하지 못하는 등 예산 및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왜곡하는 상황이 벌어져 국가 재정 측면의 문제가 되고 있다. 2017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전국의 산란계 32.9%를 살처분하는 동안 동물복지 인증 농장에서는 103만3000마리 가운데 1만3000마리(1.1%)만 살처분했다. 89개 농장 중 단 한곳이었다. 연도별 농업·축산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 / 경향신문 자료 기후위기·생태계 파괴에 큰 책임 축산 분야의 물 사용량은 전 세계적으로 인간이 사용하는 양보다 8% 이상 많으며 이중 대부분은 가축이 먹는 사료작물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알려진 대로 공장식 축산은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에 큰 책임이 있다. “햄버거 하나를 먹을 때마다 아마존 열대우림 1.5평이 사라진다”는 얘기는 중남미의 농장주가 소를 키울 공간을 확보하고 동물 사료로 쓰는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 숲을 불태운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공장식 축산은 전 세계 산림 벌채의 가장 주된 원인이다. 축산업은 전 세계 곡물 수확량의 3분의 1을 소비한다. 축산지와 가축의 사료로 쓰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면적을 합하면 지구상 가용 토지 면적의 30%에 이른다. 그린피스 추산에 따르면 축산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 가운데 18~20% 정도다. 2021년에는 지구 온실가스 배출의 무려 87%가 축산업과 관련돼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 Climate Healers의 연구가 나왔다. 이 보고서가 내놓은 87%라는 값은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이 전체의 51%라고 주장한 세계적 환경연구소 월드워치의 2009년 11·12월 보고서보다 훨씬 더 나아간 주장이다. 비대해진 축산업이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에 따라 소위 ‘방귀세’라는 일종의 탄소세 아이디어가 나왔다. 실제로 에스토니아는 2008년 방귀세를 도입했고 아일랜드는 소 한마리당 18달러, 덴마크는 소 한마리당 110달러의 방귀세를 부과하고 있다. EU·미국, 공장식 축산 금지 확산 중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22년부터 ‘CAFO(밀집형가축사육시설, 즉 공장식 축산시설)’에서 키운 축산물의 유통을 금지한다. 2018년에 동물보호단체 주도로 발의해 유권자 63%의 찬성을 받은 ‘캘리포니아주 주민발의안 12호’를 시행한다. 이 법안에 따르면 기존 공장식 축산 농가는 사육공간을 2배 가까이 넓혀야 한다. 지키지 않으면 캘리포니아주에서 축산물을 유통하지 못한다. 중요한 사실은 이 법안이 캘리포니아 안에서 생산한 축산물에만 적용하는 게 아니라 주 바깥에서 들여오는 것에도 적용한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에 앞서 매사추세츠주도 공장식 축산을 통해 생산한 축산물의 유통과 판매를 금지한 상태다. 유럽연합(EU)은 1999년부터 단계적으로 산란계의 배터리 케이지 사육을 금지해 2012년에 이르러 완전히 금지했고, 2013년에는 임신한 돼지의 스톨 사육을 금지했다. 최근에는 2027년까지 가축을 우리에 가둬 사육하는 관행을 단계적으로 폐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U는 향후 EU로 육류를 수출하는 나라에 같은 기준을 요구할 계획이다. 가축을 방목하지 않고 우리에 가둬 키웠다면 EU로 육류를 수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송정은 강원대학교 비교법학연구소 환경법센터(동물법센터) 선임연구원은 “동물복지 입법·정책의 생산과 관련해 유럽에선 동물보호단체 등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계속해서 상황과 문제를 알리려는 노력이 있었다”며 “한국에서도 그러한 목소리가 더 커지면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형태의 동물 관련 법과 정책을 시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도축장의 계류장 모습 / 김흥일 기자 고기 양극화? 공장식 축산 금지가 고기 가격을 급격히 상승시켜 고기의 양극화 문제를 심화한다는 점이 가장 주요한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안치용 ESG연구소장은 “공장식 축산을 금지하면 고기의 양극화는 필연적이지만 지금의 공장식 축산이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지속가능한 해법이 아니라는 데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무항생제 축산, 친환경(유기) 축산, 동물복지 축산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유효한 대안은 식물성 대체육과 배양육이다. 우리에게 ‘콩고기’로 잘 알려진 식물성 대체육은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이용해 식육과 비슷한 형태와 맛이 나도록 제조한 식품을 의미한다. 육류보다 자원의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임과 동시에 대량생산이 쉽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제조 후 제품 환경변화의 영향을 덜 받으며 품질 유지기한이 길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격은 식품 가공산업에 적합하다. 식물성 대체육에 비해 생소한 배양육은 살아 있는 동물의 줄기세포를 채취한 뒤 배양해 생산하는 동물성 단백질을 의미한다. 1999년 네덜란드에서 연구를 시작해 현재 실험실에서 시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배양육은 기존 축산보다 토지 사용량, 온실가스 배출량, 에너지 소비량을 대폭 줄일 수 있어 친환경적이다. 장기적으로 축산업을 일정 부분 대체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도 이제 공장식 축산 금지에 적극적으로 속도를 내야 한다. 지금의 공장식 축산 대신 어떤 형태를 축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만들지는 앞으로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공장식 축산은 절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야 할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안치용 소장은 “문명 설계를 변경하는 거시적인 접근이 시급하게 꼭 필요하지만 시민 차원에서는 세계시민들의 각성 아래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고 알리는 등 실천의 작은 연대를 수행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동기획 주간경향·ESG연구소·(사)ESG코리아·감신대 생명과평화연구소>
- 청년이 외친다, ESG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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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급 할인 ‘마녀공장’ 서버 다운…판매 채널 급변경
- 2022. 06. 21 11:05 화제
- 코스메틱 브랜드 마녀공장이 네고왕과 진행한 이벤트가 폭발적인 관심을 받자 판매 채널 변경했다. 마녀공장 제공코스메틱 브랜드 마녀공장이 유튜브 웹 예능 ‘네고왕’과 진행한 역대급 할인 프로모션으로 고객이 몰리자 원활한 진행을 위해 판매 채널을 변경했다. 마녀공장은 지난 16일부터 역대급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네고왕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프로모션은 시작과 동시에 고객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으며, 동시 접속자 수가 급증하면서 서버가 일시적으로 다운되기도 했다. 마녀공장은 네고왕 프로모션을 위해 서버 증설 등 사전 준비를 철저히 진행했으나 예상보다 더 많은 접속량을 기록했다.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판매 채널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로 변경했으나 페이지 지연 현상이 발생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마녀공장은 오는 6월 23일까지 네고왕 프로모션을 통해 전 품목을 6,900원에 구입할 수 있는 쿠폰 3장과 신제품 ‘파데프리 선크림’을 6,900원에 구입할 수 있는 쿠폰 1장을 증정하며, 전 제품 50% 할인도 진행한다. 마녀공장 관계자는 “대표 제품으로 구성된 ‘원더박스’ 선착순 증정 행사는 준비된 8만개가 모두 마감되었다”며 “마녀공장을 사랑해주신 많은 고객분들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욱 좋은 제품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 성찰과 나눔으로 행복한 세상 꿈꾸는 ‘행복공장’ 권용석·노지향 부부
- 2013. 08. 12 15:55 화제
- 때로는 세상이 마치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많은 기준과 조건들, 사람들 간의 관계 그리고 사회의 구조와 체제. 이 모든 것이 무거운 족쇄가 되어 내 삶을 옭아매고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은 심정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몸과 자유는 속박당하더라도 마음만은 편할 수 있는 진짜 감옥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죄를 짓지 않고도 스스로 ‘감옥행’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감옥이 문을 열었다. 팍팍한 일상에 심신이 지친 기자가 직접 입소해 성찰의 시간을 가져봤다. 스스로 독방에 갇혀 마음의 주름을 펴다 지난 6월 6일, 강원도 홍천군 남면 용수리에 문을 연 ‘내 안의 감옥’. 감옥의 형태를 본뜬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명상 수련원으로, 앞으로 매달 신청을 통해 각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모집하게 된다.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을 위한 ‘쉼터’이자 바쁜 일상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사색의 장소이기도 하다. 처음 보도를 봤을 때는 좀 황당했다. 사실 대충 적혀 있는 단어만 보고는 사설 교도소가 생긴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찬찬히 읽어보니 매우 흥미로운 곳이었다. 자유를 구속당하고 세상과 단절되지만, 대신 자신의 내면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 수 있는 ‘감옥의 역설’을 활용하고자 하는 ‘내 안의 감옥’. 과연 이곳에서 무엇을 만날 수 있을지, 기자가 직접 체험을 하러 나섰다. 우선 높은 벽도, 철조망도 없다. 쇠창살도, 그 틈 너머로 감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2,550여 평 규모의 대지에는 수감동, 관리동, 강당 및 식당동 등 3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입소자가 주로 머무는 곳은 수감동의 2층과 3층. 층마다 독방 32개가 가운데 계단을 중심으로 ㄷ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각 방에는 화장실과 세면대가 마련돼 있고, 문에는 실제 감옥처럼 감시창과 밖에서 잠그는 자물쇠가 달렸다. 식사는 다른 건물인 식당에서 먹지만, 문마다 배식구도 만들어져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감옥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솔직히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제대로 비교하기는 힘들다. 다만, 일반 참가자들이 거부감을 가질까 염려돼 쇠창살을 없앴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편안하고 현대적인 느낌이다. 비교적 큰 창으로 우거진 나무가 보이는 방 하나를 골라 짐을 풀고 앉았다.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마라더니 시원하게도 퍼붓는다. 오히려 잘됐다 싶다. 혼자서 바깥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화창한 날씨보다 비 내리는 날이 운치도 있고 좋을 듯했다. 1.5평, 이 비좁은 독방에 계속 갇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시간이 꽤 많이 흘렀겠다 싶어 시계를 보니 고작 30분이 지났을 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대부분 이곳에 온 사람들이 겪는 과정일 것. 개인의 자율을 최대한 존중하는 ‘내 안의 감옥’은 교도소 체험 프로그램과는 달리 각자가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고독을 견디지 못해 힘들어할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사실 자율 명상의 시작은 자기 안을 살피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몸을 가둔 대신, 정신에게 자유를 허락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할 수 있고, 일상의 반복된 관성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고하고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듯했다. 문득 통혁당 사건으로 20년간 옥살이를 한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감옥 생활을 통해 지니게 된 습관 중 하나가 동일한 문제를 거듭 생각하는 버릇입니다. 면벽이나 불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저 돌이켜보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저는 이러한 것에 의해 일련의 새로운 판단을 가지게 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라는. 계속해서 ‘뭐라도 해야 할 텐데’라는 생각에 불안하고 언짢던 마음이 점차 조금씩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얼굴의 인상이 풀리듯, 마음의 주름이 펴지는 기분이랄까. 온몸이 노곤해지면서 살포시 잠이 들것도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이 시간에 무슨 잠을!’이라며 억지로 눈을 부라렸겠지만 뭐 어떤가, 당장 나가야 할 곳도 없는데. 참, 나 나가지도 못하지? 1990년대 후반, 제주지검 공안·기획 담당 검사로 일하던 권용석(51) 변호사는 1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격무와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갉아먹었고, 겨우 잠자리에 들어도 출혈 위궤양으로 밤새도록 복통에 시달려야 했다. 어떤 날은 ‘그냥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내 인생은 대체 뭔가’ 하는 허무함이 밀려왔고, ‘나 자신과의 관계도 끊어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스스로를 통제할 힘마저 잃어갔다. 자신이 어디를 향해, 무엇을 위해 앞으로 나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돌진하는 것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오롯이 내면을 들여다보고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해졌다. 오죽하면 교도소 독방에 며칠만 갇혀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방법을 알아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몸도 정신도 피폐하게 만드는 세상의 여러 가지 속박에서 벗어나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감옥’을 생각하게 된 것이. 이후 법무법인 변호사로 자리를 옮겨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던 일들을 조금씩 머리로 옮겨 구상해보고, 또다시 하나씩 현실로 꺼내보기 시작했다. 검사 생활을 하면서 가졌던 사회에 대한 의문과 답답함에 대해서도 놓지 않았다. 소년범, 결식아동,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등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공감에서부터 범죄와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어나가는 데 힘을 싣고 싶었다. 결국 그는 이런 모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스스로 그리고 이웃과 사회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행복한 삶을 위한 일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2009년 극단 ‘해’의 대표인 아내 노지향씨(53)와 함께 만든 사단법인 ‘행복공장’이다. 성찰과 나눔을 통해 행복의 삶을 모색하고자 하는 비영리단체다. 두 사람이 각각 이사장과 상임이사를 맡아 앞으로 힘차게 행복을 만들어낼 것을 다짐했다. 그 주요 활동 중 하나가 바로 홍천에 문을 연 자기 성찰 공간 ‘내 안의 감옥’이다. 일단 감옥이라는 컨셉트 자체가 무척 신선하고 흥미롭습니다. 특별히 감옥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20여 년 전 제가 정말 힘들었던 시절, 교도소에 갇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단 며칠만이라도 모든 것에서 벗어나 조용히 혼자 있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는 재충전이랄까, 자기 돌아봄이랄까 그런 맥락이죠. 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이 시대 사람들은 일단 너무나 많이 지쳐 있어요. 그리고 지나치게 바깥을 향해 있고요. 자기 안을 살피는 힘이 저부터도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저 같은 사람이 많을 거라고 봐요. 사회도 과열된 경쟁 속에서 그냥 휩쓸려 떠내려가는 기분이에요. 그 물살에서 한번쯤 빠져나와서 쉬었다 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스스로도 한 번 들여다보고, 주변 이웃도 한 번 생각해보고,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도 돌아보고. 그렇게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만큼 친숙해서 쉽게 떠오른 것 아닐까요?(웃음) 가까운 공간이긴 합니다만, 감옥 안쪽 방 안을 본 적은 별로 없어요. 이번에 ‘내 안의 감옥’을 만들면서 인테리어 때문에 전체적으로 참고를 좀 한 정도예요. 처음에는 실제 감옥과 거의 흡사하게 만들어볼 생각도 했는데, 이용하는 분들 중에서 너무 위압감이 들어 싫어할 분도 계실 듯하다고 해서 나중에 많이 수정했어요. 제가 감옥을 제대로 가본 건 검사 시절 인권침해 여부 조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 정도였어요. 물론 검사 생활하고 변호사 활동도 주로 형사 파트를 맡다 보니 늘 경찰서, 구치소, 법원, 검사실, 교도소 등을 자주 다니긴 했어요. 동료들과 “전생에 우리는 무슨 잘못을 그렇게 많이 저질렀을까”라고 농담도 많이 했죠. 감옥이 주는 특별한 효과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전부 물어요. “왜 하필 감옥입니까” 하고요. 다른 누구도 아닌 저를 기준으로 해서 그래요. 저는 세상이 감옥 같거든요. 저 역시 돈, 평판, 책임감 뭐 이런 데서 자유롭지 못해요. 그런 것들에 의해 속박당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습관, 예를 들면 담배라든지. 또 내 안의 감정들. 분노, 원망, 집착 같은 것들로부터도 짓눌리고 있죠.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일상의 패턴 혹은 관성에서 벗어났을 때 얼마나 자유롭겠어요. 소중한 가족도 행복의 원천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족쇄일 수도 있죠. 정말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이런 무수히 많은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거예요. 감옥 안에서는 역설적으로 세상의 속박에서는 벗어나는 거죠. 세상을 가두는 거예요. 실제로 ‘내 안의 감옥’의 효과를 체감해본 적이 있는지요. 1.5평 독방에 들어가서 문이 잠기고 혼자 딱 앉으면 일단 좀 차분해져요. 한동안은 갇혔다는 실감은 잘 안 날 거예요. 게다가 자발적으로 들어간 거라 더욱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뭔가 편안해지고 근육은 물론 정신이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갇혀 있는데도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어요. 명상을 하고 자신을 찾아간다거나 수양을 한다는 걸 보면 불교의 ‘템플스테이’나 천주교의 ‘피정집’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내 안의 감옥’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요? 상당히 자율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점이죠. 개인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자 반대로 가장 위험한 조건이 될 수 있어요.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맡겨놓는 거니까요. 시간과 공간을 본인이 다 통제해야 하거든요. 참여하러 와서 내내 잠만 자고 갈 수도 있고, 생각만 하다 갈 수도 있고, 벽만 보다 갈 수도 있는 거예요. 뭘 하든 자기 나름인 거예요. 다른 비슷한 프로그램은 지도자도 있고 보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극을 주잖아요. 또 참여자들끼리 함께하면서 영향을 주고받고요. 하지만 이곳에선 모든 것을 철저히 본인에게 맡겨요. 저희는 사람은 각자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충분히 해답을 찾아갈 수 있다고 봐요. 물론 저희도 황 신부님의 ‘내 안의 감옥’이나 금강 스님의 ‘문무관’ 같은 프로그램도 있고 또 성찰 연극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최대한 길은 제시하되, 개인이 자신의 세계를 찾아나가길 바라요. 이곳에서만큼은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다시 말하면 많이 갇혀 있으란 표현이 맞겠네요. 한편으로 ‘내 안의 감옥’은 비종교단체이면서도 종교적인 면을 경험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종교적 색채가 없기 때문에 종교를 아울러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유례없는 매우 독특한 프로그램이 될 거예요. 다만 요즘 사회에 지나치게 강박적으로 ‘힐링’이나 ‘치유’라는 말이 넘쳐나고, 굳이 삶을 되돌아보고 쉬어 가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운데요. 최근 들어 무분별하게 명상, 쉼 이런 데 대한 담론이 넘쳐나면서 또 쉽게 질리고 편중되지는 않을지 우려도 있어요. 그래서 저 또한 가급적 ‘치유’나 ‘힐링’이란 말은 쓰지 않으려 하고요. 그리고 너무 진지하고 고차원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굳이 심각할 필요 있나요. 유쾌하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도 있잖아요. 사실 참회라든지 이런 말하는 것도 좀 조심스러워요. 사람에 따라서는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단어거든요. 저희가 바라는 건 진짜 지나치게 비감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독방에서 편히 쉬다 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해요. 두 분이 함께 ‘내 안의 감옥’을 비롯해 나눔과 성찰을 통한 행복한 일들을 기획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두 사람이 계속해서 꿈꾸는 모습은 어떤 건가요?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단 저부터 편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내가 변화하면 그 에너지로 다시 바꿔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자유로워지고 평화로워졌으면 하고요. 나아가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 명 한 명 사람들이 변하고 마음들이 바뀌어서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는 데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제가 정말 안타까운 건 우리 사회의 모두가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는 거예요. “행복하세요?” 하고 질문을 하면 “네” 하고 대답하는 사람을 거의 못 봤어요.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요. 그 질문에 자신 있게 “그럼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진짜 좋은 사회가 아닐까요. 저희는 좀 더 많은 분들이 너무 앞만 보고 가지 말고 한번쯤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들여다보면서, 그로 인해 자유롭고 편안해지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요. 그러다보면 세상 전체가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요?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이런 무수히 많은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거예요. 감옥 안에서는 역설적으로 세상의 속박에서는 벗어나는 거죠. 세상을 가두는 거예요”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조민정, 안진형(프리랜서)>
- 봉제공장 시다에서 삼성SDS에 입사한 권세종의 파란만장 인생기
- 2005. 08. 01 화제
- “버스비가 없으면 뛰어가면 되죠. 최선을 다하는 인생이 최고의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정식 학력의 전부인 권세종씨. 열네 살에 상경, 봉제공장 시다로 출발해 대기업에 입사하기까지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서른이란 젊은 나이에 비해 또래보다 일찍 설움과 배고픔을 알아야 했던 그의 인생 이야기. 눈물을 훔치며 올라탄 서울행 열차 1989년, 열네 살 세종이는 벤치에 앉아 학교를 파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집으로 향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당장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자신이 너무 처량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반찬 투정을 부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다음날 세종이는 무작정 서울행 기차를 탔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후 세종이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도 인정받는 IT 전문가로 성장했다. 권세종씨(30)는 열네 살의 나이로 서울에 올라와 봉제공장 시다로 출발해 현재는 삼성SDS e-데이터센터에 근무하고 있다. 정식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그는 세 살이 되기 전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을 공중화장실을 보수한 곳이 그의 집이었으며, 끼니는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보리쌀과 밀가루로 연명했다. 식단은 항상 수제비였고, 우유나 과일 등을 먹는 것은 남의 얘기일 뿐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딸기를 유독 좋아했다고 한다. 한번은 딸기가 너무 먹고 싶어 할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엉엉 운 적도 있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딸기 밭에서 일을 하고 품삯 대신 딸기 한 상자를 얻어왔다. 그날 그는 더이상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기지 못할 지경에 이를 때까지 딸기를 먹었다. 위 속을 가득 채운 딸기 때문에 한참을 고생했어도 당시 그는 딸기를 배불리 먹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어렸을 때는 항상 밀가루로 수제비를 해 먹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좋아하는 음식이 됐지만 그때는 너무 싫었어요. 어린 마음에 밥을 달라고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든 적도 있었죠.” 그는 유난히 먹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봉제공장 시다 일을 하고 받은 첫 월급으로 자장면 두 그릇과 짬뽕 한 그릇을 사 먹었다고. 어릴 적 못 먹고 자란 한 때문인지 그는 남들이 한 그릇을 먹을 때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 했다. “남보다 빨리, 많이 먹으려고 하다 보니 지금은 턱에서 소리가 나요. 요즘도 그런 습관이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는데, 어려서 못 먹고 자란 한 때문에 지금도 먹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죠. 유일하게 음식을 천천히 먹을 때는 회식 자리에서죠. 제가 고기를 잘 굽거든요. 가끔 식당 아주머니들이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했냐고 묻기도 해요. 회식 때면 동료들이 제 주위로 몰려드는데, 제가 구운 고기를 동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또 회식 때는 공짜로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까. 빨리 먹을 필요도 없구요.(웃음)” 권세종씨의 고기굽는 비법은 가위질에 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 봉제공장 시다 일을 할 때 그곳에서 하루 종일 뽕짝을 들으며 가위질을 했다. 그는 자신의 경쟁력을 뽕짝과 고기 굽는 기술이라고 자평한다. “재단가위는 굉장히 크고 무거워요. 지금도 춘천에서는 닭갈비를 자를 때 재단가위를 사용하더라구요. 공장 다니는 사람은 공장 다니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어요. 나름대로 깔끔하게 한다고 해도 머리에 실밥이 묻어 있거나 굳은살이 박힌 손은 감출 수가 없죠.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딱 눈에 띄어요. 저도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위질을 많이 해서 손에 굳은살이 많았어요. 그때는 그게 너무 부끄러워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사람들이 볼까 봐 항상 손을 숨기고 다녔죠.” 그가 숨기고 싶은 건 손바닥의 굳은살만이 아니다. 얼굴에 쓰여 있는 고생한 사람의 흔적도 가리고 싶다. “제 가슴에 품고 있는 속담은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란 거예요. 예전에 찍은 사진을 보면 늘 인상을 써서 미간에 깊게 주름이 파여 있어요. 그때 제일 듣기 싫은 말이 ‘고생한 사람은 얼굴에 나타난다’는 거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인상을 멋지게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때부터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하며 웃으려고 노력했죠. 어떤 기자는 인터뷰를 위해 저를 만나서 ‘고생한 거 거짓말 아니냐’고 묻더라구요. 부잣집 막내아들처럼 생겼다고.(웃음)” 실제로 지금 그의 얼굴에서 고생한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릴 적 세탁소를 차리고 싶었다는 그의 손에는 굳은살과 다리미에 덴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미치도록 공부를 하고 싶던 청소년기 권세종씨는 살면서 처음 상경했을 때가 가장 두려웠다고 한다. 당시 그가 서울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보다 먼저 서울에 다녀온 친구의 무용담이 전부였다. 전봇대에 붙어있는 전단지를 보고 연락하면 바로 취직을 할 수 있다는 친구의 말만 믿고 서울행 기차표를 끊었다. 하지만 서울에 도착한 그는 전봇대에 붙은 구인광고 전단지를 찾기도 전에 가죽 점퍼를 입고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서 도망쳐야 했다. “청량리역에 내려서 출구 앞에 섰는데 문득 ‘사람들을 잡아다가 새우잡이 배에 팔아 넘긴다’는 뉴스가 생각나더라구요.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전부 가죽 점퍼를 입고 나를 잡으러 온 사람 같았어요. 전봇대를 찾을 겨를도 없이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마음에 지하철을 탔죠. 그런데 지하철에도 사람들이 굉장히 많더라구요.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고향인 영주하고 비슷한 느낌이 든 신이문역에서 내렸죠.” 그는 그곳에서 봉제공장 시다 일을 시작했다. 고향에 있는 할머니와 누나에게 생활비를 부치기 위해서는 밤낮없이 일을 해야 했다.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공장에 출근해서는 종일 원단을 나르고 가위질을 했다.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면서도 그의 머릿속에는 배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틈틈이 책을 읽었지만 혼자 하는 공부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의 인생의 첫번째 전환점인 상록야학과 만난다. 그곳에서 그는 ‘포기란 성공을 위한 초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잠과의 투쟁을 벌였고, 사람들의 시선을 포기했다. 하루 1~2시간씩 자며 공부와 일을 병행한 끝에 그는 마침내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입 검정고시까지 합격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단순 무식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한번은 야학의 선생님이 ‘세종아, 나는 너를 보면 힘이 난다’고 해서 왜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버스비가 없으면 집에 가는 게 두려운데 저는 ‘집에 가는 버스비가 없으면 뛰어가면 되잖아?’라고 한다는 거죠.(웃음) 지금 같으면 돈을 준다고 해도 못 할 일인데 그때는 못 할 게 없었어요.” 권세종씨는 얼마 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인의 말에 용기를 얻어 글을 썼지만 창작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체험했다고 한다. 유난히 웃음이 많은 권세종씨는 요즘도 잠을 많이 못 잔다. 자신을 테스트하기 위해 매년 도전하는 자격증 시험에 응시해 벌써 10개가 넘는 자격증을 땄다. 또 언론에 얼굴이 알려지고 나서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밀려드는 특강 요청 때문에 주말과 휴가도 반납한 상태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평범한 사람이란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며 레드와 옐로를 구별하고 싶은 마음에 악착같이 배움의 길로 들어섰다는 권세종씨. 이제 그는 또다른 세종이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담금질할 것이라고 한다.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최병준
- 뉴스메이커 편집장 유인경 기자의 개성공장 탐방기
- 2005. 01. 01 화제
- “타임머신 타고 50~60년대로 날아간 듯한 풍경, 개성상인의 도시 개성에서 통일의 희망 맑고 높게 피어나기를...“ 지난 2000년 8월 현대와 북한의 전격적인 합의 이후 4년여 만에 드디어 개성공단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남한의 자본과 북한의 노동력이 만나 경제적 효과를 이끌어내는 한편, 남북 화합의 장으로서 통일 시대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점에서 개성공단은 더욱 의미 있는 공간이다. 남북 협력의 살아 있는 증거, 역사적인 개성공단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서울에서 70km 떨어진 외국 어디를 가도 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린 적이 없다. 무사히 다녀오긴 했지만 여전히 북한은 두렵고 궁금한 것이 많은 미지의 나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나라. 말 한마디 잘못해 외교 문제로 번지거나 납치(?)라도 당할지 모른다는 `망상’ 수준의 걱정을 하느라 잠을 설쳤다. 2004년 12월 15일 오전 7시. 경복궁 주차장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밤처럼 어둑어둑했다. 하나 둘씩 모인 사람들이 15대의 버스에 올랐다. 이들은 북한의 개성 공업지구에서 생산한 첫 제품 기념식에 참가하는 이들. 385명의 명단을 보니 국회의원과 취재기자들을 비롯해 기업인, 학자, 문화인, 주부 등 정말 다채롭다. 문희상 의원을 비롯, 김문수·이재오·이계진·한명숙·김희선 의원 등 여·야당의 남녀 의원들이 거의 모여 국회가 이동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자리엔 보석공예가 등 독특한 직업을 가진 이들도 역사적 행사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모였다. 참가한 이들의 선정 기준은 잘 모르지만 ‘각계 각층’이란 표현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한 여성은 샤넬 등 최고 명품 옷과 화려한 액세서리로 온몸을 휘감아 무사히 북한에 입국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는데 “금강산에도 이런 차림으로 갔었다”고 말해 안심했다. 오전 8시. 인원 확인 후 버스가 출발했다. 안내를 위해 버스에 탄 현대아산 직원이 미니 여권과 출입국 신고서를 나눠주었다. 사진을 달라기에 생각 없이 주었는데 그것이 여권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개성은 서울에서 대전보다 가까워도 여전히 이국이다. 경복궁을 출발, 군사분계선(휴전선)과 북한 임시 출입국 사무소(CIQ)를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2시간. 거리로는 70km. 고속도로에서처럼 마구 속도를 내면 1시간이면 달려갈 수 있는 거리다. 군사분계선으로 들어서니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에 등장한 송강호 같은 옷을 입은 북한 군인이 버스에 올라 인원을 확인하고 내려갔다. 그런데 이유없이 버스 안에서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누군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북한측이 화가 나서 골탕을 먹이는 것”이라고 전했다. 버스가 다시 출발해 출입국 사무소를 지나 개성공단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개성공단 준공식을 기념하는 애드벌룬이 하늘에 펄럭였다. 시범단지는 2만8천 평으로 신원, 삼덕통상, 에이제이테크 등 입주 예정 공장들이 멀리서 보였다. 리빙아트 외에는 아직 준공이 되지 않아 공장 건물만 보일 뿐이었다. 준공 기념식장에는 운동회 행사처럼 간이천막을 치고 귀빈접대실을 만들었는데, 정동영 장관을 비롯해 문희상·한명숙·배기선·김희선 의원 등 정치인들과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 도올 김용옥 교수 등이 자리에 앉았다. 북한측에서는 주동창 북한중앙특구개발지도 총국장과 수행원 2명만 참석했다. 주 총국장은 앉자마자 불만을 털어놓았다. “올해 안에 15개 공장을 준공하기로 해놓고는 리빙아트 공장 1개만 준공됐다. 남북경협 후 4년이 흘렀는데 시간도 너무 걸리고 기대한 것보다 못하다. 안팎 분열주의 세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우리 민족끼리 손을 잡아야 한다.” 그는 준공식이 시작되어 정 장관이 축사를 하자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화장실에 갔다”고 말했다지만 화가 난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듯 했다. 준공식장에 마련된 대형 화면에는 정주영·정몽헌 회장의 지난날 모습이 비쳐졌다. 현정은 회장을 보니 약간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 했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의연한 모습이었다. 남북경협이 체결되던 4년 전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던 현씨가 이젠 대기업의 총수가 되고 또 갖가지 어려움을 그토록 꿋꿋하게 이겨낼 줄 누가 알았으랴. “개성공단이 남북 통일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는 현 회장의 인사말 등 식순이 끝나고 모두들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개성서 만든 냄비 서울 저녁상에 오른다 개성공단 공장 중 리빙아트는 스테인리스 주방용 냄비 2종 1천 세트를 첫 생산품으로 출하해 남북 교류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했다. 공장은 1천1백평 규모의 2층 복합 건물. 1층에는 북한 근로자 1백여 명이 스테인리스 철판을 자르고 가공하고 특수 처리하는 공정을 담당하고, 2층에서는 70여 명이 최종 생산 라인에서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대부분 12월 1일부터 이 공장에서 근무했다는 북한 근로자들은 19세 소녀 공원부터 50대 아저씨까지 다양하다. 냄비 공장이어서인지 단순한 공장풍경도 그렇고, 하나같이 연필로 그린 눈썹에 파란 아이섀도를 한 여성 근로자들도 그렇고, 우리나라 70년대를 연상시켰다. 명품 페라가모 스타일의 헤어밴드를 한 여성 근로자에게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니 “상점에 나와 있습네다”라고 답했다. 파운데이션이나 파우더가 품질이 안 좋은지 피부와 밀착되지 않고 떠 보였다. 북한 근로자들은 장학사가 참관하는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처럼 다들 긴장한 모습. 갑자기 단체로 찾아온 남한 손님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대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데다 북한측 지도원이 지켜보고 있으니 굳어질 수밖에. 그래도 명랑한 이들은 “아직 기계 조작에 서툴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좀더 노련한 이들은 질문을 하면 “지금 작업중입네다”라고 말을 끊어버리기도 했다. 리빙아트 유영출 공장장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선 255명의 북한 근로자를 채용하고 있으며 이중 50명이 여성이란다. 이들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근무하며 월급은 57달러. 남한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지만 북한에선 매우 높은 임금이다. 유 공장장은 “북한 근로자들이 대부분 초보라 생산성 면에서는 남한측 숙련공의 30% 수준이고 북한 담당자들 말만 듣는 것이 문제”라면서 “그러나 외국 근로자들에 비해 작업 이해가 빨라 근로자들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설비가 완전 가동되면 노동 생산성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환기나 집진시설 등 환경이 열악해 보이고 작업 자체가 직접 손을 써서 하는 일이라 선반에 손가락이 잘리는 등의 산재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특히 여성 근로자들의 경우 냄비 바닥에 윤을 내기 위해 시너를 헝겊에 묻혀 닦는 작업을 하는 이들이 많은데 시너가 냄새도 독하고 발화 위험도 있어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낮 12시 15분께 이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첫 출하되었다. 리빙아트 냄비 1천 세트는 현대아산이 제공한 8톤 트럭에 실려 서울로 향했고, 정 장관이 서울에서 주부 대표로 참석한 주부들에게 냄비 세트를 증정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이 냄비는 곧바로 서울 롯데백화점으로 옮겨져 이틀 만에 매진됐다. 현대아산측은 “현대백화점에 판매를 의뢰했더니 고급품이 아니면 안된다기에 롯데백화점에서 판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전에 개성에서 만들어진 냄비를 산 이들은 서울의 저녁 식탁에서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며 통일을 기원했을 게다. 무채색 도시에 빛을 주기 공장을 나오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개성 지남산 여관에 마련된 오찬장으로 갔다. 호텔격인 이곳에서는 들쭉술, 장뢰삼술 등 각종 북한 술과 버섯, 담배, 참기름까지 판다. 달러와 유로만 받는데 들쭉술과 금강산 담배 한 보루는 10달러, 제일 비싼 것은 상황버섯으로 1kg에 25달러. 제일 싼 것은 3달러짜리 참기름. 2층 연회장에 식사가 차려졌다. 도올 선생은 건배 제의를 하며 이런 축사를 했다. “지난 개성공단 착공식 때는 정몽헌 회장과 같이 와서 선죽교도 갔다. 정몽주와 정몽헌은 이름도 비슷하고 꿈도 비슷한 사람들이다. 또 문명을 파헤칠 때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식기다. 새로운 문명을 알리는 원초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기가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남북 합작 최초의 상품이란 것은 의미가 있다” 식사는 나름대로 화려했다. 도라지 등 각종 나물, 편육과 돼지족찜, 갈치구이, 약식, 오징어와 더덕무침, 기름에 지진 떡 등이 나왔다. 미리 준비해두어서인지 다 식었고 간도 우리 입맛엔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을 잘 알기에 이렇게 잘 차린 음식을 먹어도 되나 싶은 죄책감이 느껴졌다. 자리를 함께 한 북한 기록소(우리나라 국립영화제작소 같은 곳) 직원은 “위대한 김정일 장군께서는 우리 고유의 민족 음식을 장려하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주 먹어야 자식들도 그 음식을 배우고 안다며 만드는 방법 등을 전하라고 말입니다. 특히 개성 음식이 유명하지 않습니까”라며 식성 좋게 먹더니, 남한측이 경협에 비협조적이고 약속을 안 지킨다, 로동신문은 보느냐, 홈페이지는 전세계인이 보라고 한 건데 왜 그렇게 민감하냐 등 남한 성토를 했다. 난방이 되지 않아 추웠는데 마침 따끈한 국이 나왔다. 육개장인 줄 알고 먹었다. 고기도 부드럽고 국물맛도 개운했다. 다른 재료도 별로 들어 있지 않아 무슨 국이냐고 물었더니 가녀린 용모의 접대원 소녀는 “단고깁네다”했다. 보신탕이었다. 남한서도 안먹은 보신탕의 첫경험을 개성에서 하다니· 하지만 솔직히 맛있었다. 마지막 디저트로는 군고구마가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의 선죽교를 구경하고 개성 시내로 들어갔다. 개성 시내는 시대와 공간을 예측하기 어려운 묘한 영화의 세트장 같았다. `어린이백화점’ `과일 남새(야채)점’ 등 간판은 있는데 가게 안에는 물건이 거의 없었다. 건물은 대부분 하얀색, 사람들의 옷은 검정이나 회색. 거리가 온통 무채색이다. 거리엔 자동차, 버스가 전혀 없어 당연히 신호등도 없다. 자전거를 탄 이들은 비가 오는데 우산을 쓰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서서 가만히 보거나 간혹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래도 꼬마들은 천진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호기심 어린 눈망울을 굴렸다. 이 겨울에 장마철에 신는 장화를 신고 다니는 이들이 많았다. 작은 규모의 아파트도 보이는데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창문을 통해 내다보는 이들이 있는데 오후 3, 4시에 왜 남자들이 창가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걸어다니는 이들은 있지만 두런두런 수다를 떨지도 않고, 물건을 산 봉투를 들고 다니는 이들도 볼 수가 없다. 개성상인의 도시이며 칼칼하고 맛있는 개성 음식의 본고장이란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공장으로 보이는 건물에는 김정일 혹은 김일성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등의 구호도 적혀 있다. 지옥철로 불릴 만큼 사람들로 넘쳐나는 지하철, 걸어다니기만 해도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치는 복잡하며, 형형색색의 건물과 값비싼 명품, 화려한 옷차림의 서울에 익숙해 있다가 이토록 고요하고 썰렁한 개성을 마주하니 마치 시대와 배경을 구분할 수 없는 영화 속으로 빠져든 느낌이다. 서울에서 차로 겨우 2시간 거리인데 문화, 풍경, 생활상의 차이는 아득하기만 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 아니 50년대의 어느 시골 거리에 온 듯한 느낌이다. 유난히 작은 키에 낡은 옷을 입은 소녀를 보면서 ‘저 아이에게 따스하고 깨끗한 옷을 입히고 밝은 미소를 되찾아줘 개성, 아니 북한을 밝은 색으로 만들어주려면 우리가 정말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개성공단의 성공을 진심으로 간절히 바랐다.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 경복궁에 도착한 시간은 6시 30분. 10시간 전에 서울을 떠났다가 북한을 거쳐 다시 돌아온 것이 믿기지 않았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열린 송년모임에 참석하고는 자꾸 가슴이 아려왔다. 마치 사고 쳐서 돈도 잃고 건강도 잃은 동생을 버려두고 혼자 잘 먹는 누이의 마음처럼… 글 / 유인경 기자(뉴스메이커 편집장)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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