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371 건 검색)
- [속보]헌재,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 전원일치 기각···“관저 이전 부실감사 아냐”
- 2025. 03. 13 10:06사회
- ... 최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심판을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앞서 국회는 최 원장이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 이전 감사를 부실하게 하고,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해 표적 감사를 했다는 등의 사유로...
- ‘관저 메시지’ 전한 권성동 “윤 대통령, 아주 의연…국민·나라만 생각하겠다더라”
- 2025. 03. 11 11:33정치
- ... 입장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1일 이틀 전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을 관저에서 만난 일을 의원들에게 전하면서 “윤 대통령은 나는 괜찮다, 오로지 국민과 나라만 생각하겠다...
- 권성동윤석열 탄핵 심판
- 관저로 돌아간 윤석열···용산구, 한남초 아이들 안전 강화한다
- 2025. 03. 11 10:53정치
- ... 인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에 따라 지난 8일 한남동 관저로 돌아오면서 용산구가 집회 대비 전담 대책반을 재가동한다고 11일 밝혔다. 한남동 일대의...
- 윤석열 탄핵 심판
- 윤석열, 여당 ‘투톱’ 만나 “고맙다”…관저 정치 재시동
- 2025. 03. 10 21:15정치
- ... 많다. 국민의힘은 10일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전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찾아 윤 대통령과 차담을 했다고 밝혔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어젯밤...
- 윤석열 탄핵 심판
스포츠경향(총 37 건 검색)
- 황동혁 “‘오겜2’와 한남동 관저 앞 찬반 시위, 소름끼치게 닮아”
- 2025. 01. 05 18:00 연예
- 황동혁 감독.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찬반투표 장면이 현재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로 나뉜 모습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5일 황감독이 지난 3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 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오징어게임2’에서는 게임 참가자들이 매 게임 후 게임을 계속 이어갈지 말지를 두고 속행과 중단 여부를 투표한다. 황 감독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위기가 왔다고 생각한다”면서 “과연 투표를 통해 다수결로 한 방에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시스템이 맞는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황 감독은 “지금도 대통령 관저 등지에선 탄핵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서 모이고, 서로 싸울까봐 경찰이 선까지 그었다고 한다”면서 “시즌2 게임장 숙소 안에 선을 긋고 싸우는 모습과 소름끼칠 정도로 닮았다”고 놀라워했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 집행을 촉구하는 집회와 반대하는 집회가 사흘 째 계속되고 있다. 체포 찬반 집회는 서로 약 300미터 간격을 두고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눈보라가 치는 날씨에도 우산을 쓰고 은박 담요로 몸을 감싼 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체포 촉구 집회 측은 기자회견을 열고 “체포 영장의 유효기간이 내일까지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을 신속히 체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체포에 반대하는 측은 영장 발부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맞서는 중이다.
- ‘윤석열 체포 음악대’ 대통령 관저 인근서 퍼포먼스 펼쳐···“내란 수괴 구속하라”
- 2024. 12. 11 18:29 연예
- ‘윤석열 체포 음악대’가 11일 한남동 대통령 관저 주변에서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청년들이 ‘윤석열 체포 음악대’를 구성해 11일 오후, 대통령 관저가 위치한 한남동을 찾았다. 음악대를 이끈 홍희진씨는 진보당(상임대표 김재연) 소속 청년진보당 대표로 “내란수괴 윤석열이 우리 국민들 앞에 그 어떤 사죄 한 마디도 없이 뻔뻔하게 관저에 틀어박혀 있다는 소리에 참을 수 없어 청년들과 함께 나왔다”며 “내란세력들이 줄줄이 체포되고 구속되는 와중에 내란수괴만 아직 그대로다. 내란수괴부터 가장 먼저 체포해야 순서가 아닌가! 윤석열을 즉각 체포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즉각 체포수사하라!”, “내란공범 국민의힘은 즉각 해산하라!”, 다양한 북들을 어깨에 맨 청년들의 힘찬 외침이 북소리에 맞춰 하늘로 치솟았다. ‘윤석열 체포 음악대’는 타악 퍼레이드를 펼치며 언덕을 올라 대통령 관저로 향했으나, 찰의 저지에 가로막혔다. 시민들은 경찰을 향해 “오죽하면 청년들이 여기까지 찾아왔겠나! 경찰은 지금 이곳을 경비설 것이 아니라 윤석열부터 체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윤석열 체포 음악대’가 11일 한남동에 위치한 대통령 관저 주변에서 윤석열 대통령 즉각 체포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홍희진 대표는 “당장 그 자리에서 내려와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윤석열은 버젓이 ‘하야보다 탄핵’이라는 입장까지 밝히며 파렴치함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윤석열 체포 음악대는 내일 이 시간에도 이 자리를 찾을 것이다. 내란수괴 윤석열이 체포되기 전에는 우리 청년들을 비롯하여 국민들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고 발 뻗고 편한 잠을 청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분노에 찬 음악대의 북소리와 연주 퍼포만스는 약 30여 분간 한남동 일대에 울려퍼졌다. ‘윤석열 체포 음악대’가 11일 한남동 대통령 관저 주변에서 윤석열 대통령 즉각 체포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 한마음혈액원, 대전지역 최초 헌혈카페‘관저점’개소
- 2022. 12. 16 16:05 생활
- 대전 시민들 헌혈 참여로 부족한 혈액수급 해소 기대 대한산업보건협회 한마음혈액원(회장 백헌기)은 16일 대전 서구 관저로에 대전 지역 최초 ‘헌혈카페 관저점’ 개소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개소식에는 대전시청 감염관리과, 관저동 지역관계자, 대한사립학교장회, 다회헌혈자 등 주요 부처를 비롯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백헌기 회장은 “헌혈카페 관저점 업무개시 후 지역시민들의 적극적인 헌혈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와 동절기로 인해 헌혈참여가 저조한 상황에 헌혈카페 관저점을 통한 혈액수급 안정화와 헌혈 문화 확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헌혈카페 관저점은 192.0㎡(전용면적 58.08평) 규모로 헌혈자 대기공간, 문진공간, 헌혈공간, 휴게공간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6대의 헌혈침대로 전혈 및 성분헌혈(혈장)이 가능하며, 화~토요일 10:00~19:00 운영한다. 또한, 개소를 기념해 추가기념품 증정, 약정헌혈 프로모션 등 헌혈자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 대한산업보건협회 한마음혈액원
- [속보] 경찰 ‘주한 美대사관저 기습시위’ 9명에 구속영장
- 2019. 10. 19 21:58 생활
- [속보] 경찰 ‘주한 美대사관저 기습시위’ 9명에 구속영장
주간경향(총 2 건 검색)
- [박성진의 국방 B컷] (24) 대통령 관저 옛 주인은 해병대…굴곡진 역사 껴안은 땅(2025. 01. 17 16:00)
- 2025. 01. 17 16:00 정치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이 임박한 지난 1월 1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적막이 감돌고 있다. 성동훈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로 내란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경호처를 방패막이로 농성을 벌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는 원래 해병대 땅이었다. 과거 12·12 군사반란 당시 이곳은 해병대 공관 경비대가 전두환 신군부 반란에 맞선 장소다. 해병대 출신인 여석주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지난 1월 15일 국회 토론회에서 “한남동 땅은 6·25전쟁 후반, 장단 사천강 일대를 방어하던 해병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해병대 직할부대가 배치됐던 곳이고, 인천상륙작전과 도솔산 전투를 기억하는 국민의 모금으로 해병대 사령관의 첫 공관을 지었던 자리였다”며 “해병대 대위였던 저의 선친이 그곳에서 결혼식을 했고, 그 인연으로 선친, 친형, 저 세 사람이 해병대 군복을 입고 보낸 햇수가 도합 90년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병대의 역사와 피눈물이 어우러진 한남동 일대에서 벌어지는 혼돈과 추태에 전우분들 모두 분노와 비통을 누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밤의 ‘정부 1번지’ 대통령 관저가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땅은 공관촌이다. 입법·사법·행정 3부 수장의 거처가 모두 모여 있는 밤의 ‘정부 1번지’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존에 있던 국회의장·대법원장 공관에 더해 현 외교부 장관 공관이 대통령 관저로 바뀌었다. 3부 수장의 관저·공관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명실상부한 ‘한남동 관저·공관 타운’이 형성됐다. ‘관저’라는 명칭은 대통령이 사는 곳에 주로 사용한다. 한남동 공관촌에는 3부 수장 공관뿐만 아니라 국방부 장관, 합동참모의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대통령실 경호처장 공관 등도 자리 잡고 있다. 모두 8개 공관이 모여 있는 곳이다. 매봉산 서쪽 자락에 있는 이 공관촌의 원래 주인은 해병대다.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공관까지 포함해 한남동 공관촌을 지키는 공관 경비대가 해병대 병력으로 이뤄졌던 것도 이런 인연에서다. 해병 원로들에 따르면 해병대는 한국전쟁 후반 한남동 농림부 땅을 불하받아 해병대 직할부대인 본부대대와 수송대 등 지원 시설 등을 배치했다. 해병대 사령관 공관도 들어섰다. 사령관 공관은 한남동 뒷산이 남산 자락으로 이어지면서 당시 해병대사령부가 있던 용산 쪽으로 연결됐다. 1962년 세워진 해병대 사령관의 한남동 공관은 건축 전체면적이 612㎡, 대지 면적이 9772㎡인 2층 양옥 건물이다. 해병대 사령관 공관은 해병대사령부가 경기도 화성으로 이전하면서 논란이 됐다. 화성 덕산대에도 해병대 사령관 공관이 있어 서울 한남동 공관은 서울에 거주하는 사령관 자녀들의 통학용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명박 정부 때는 국방부가 해병대 사령관의 한남동 공관을 통일부 장관 공관으로 전용하려고 시도했다.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구성원인 외교·안보 부처 장관 가운데 통일부 장관만 공관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청와대에서 국가비상사태로 인한 NSC 회의 소집 시 국방·외교 장관은 청와대에서 6㎞ 떨어진 한남동 공관에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통일부 장관은 그리하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해병대 사령관 공관의 통일부 장관 공관으로의 전용 방안은 해병대 원로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공정식 6대 해병대 사령관을 포함한 예비역 해병 장성들은 한남동 땅에 깃든 해병대의 역사성 등을 들어 이를 반대하는 연판장을 청와대에 전달했고, 국방부는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외교부 장관 공관이 대통령 관저가 됐고, 대통령실이 관저 남서쪽에서 도보로 오갈 수 있는 거리에 있던 해병대 사령관 공관을 경호처장 공관으로 사용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해병대 사령관 공관은 대통령실 경호처가 일시 사용한다는 개념으로 가져가 경호처장 공관이 됐다. 지난 1월 1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경호처 관계자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기념관과 초대교회 해병대의 굴곡진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곳은 또 있다. 해병대 중앙기념관과 해병대 초대교회가 그곳이다. 이 두 시설은 서울 용산구 용산로 2가(후암동)로 옛 방위사업청 터에 있다. 이 시설들이 해병대 부대 인근이 아니라 동떨어진 서울 시내에 있는 사연은 해병대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관련이 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창설됐고,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기간을 거치면서 규모가 커졌다. 그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의 베트남 파병이 끝난 후 1973년 10월 10일부로 해병대사령부를 해체했다. 전투부대는 해군의 상륙전 부대로 예속되고 해병대사령부를 비롯한 교육 및 지원부대는 해체됐다. 해병대사령부 건물이 있던 터에는 국방부 조달본부가 들어섰고, 방위사업청이 개청하면서 청사 건물이 됐다. 이후 방사청이 대전으로 내려갔고, 이곳은 용산공원 조성 대상에 포함됐다. 1975년 4월 15일 개관한 해병대기념관은 해병대사령부 제2 연병장 자리에 세워졌다. 1000평의 대지 위에 200여평의 2층 건물이다. 1층에는 역대 사령관 기념물 전시실과 관리실이 있고, 2층에는 한국전쟁 및 베트남전과 해병대의 발전상을 상징할 수 있는 전시물들이 있다. 해병대 최고 지휘부인 사령부가 해체되면서 해병대 중앙기념관이 건립됐다. 모군이 활약하던 시기가 아니라 해체된 후에 만들어진 특이한 경우다. 기념관은 대통령 하사금 2000만원과 베트남전 참전 용사 등 해병대 장교의 성금 2400만원을 기금으로 1975년 4월 15일 2층 규모로 개관했다. 기념관은 건립 이후 외부 기관의 끊임없는 이전 요구에 시달렸지만, 해병대 측은 “다른 곳에 갈 바에야 없애는 것이 낫다”고 버텨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병대 예비역들은 기념관이 옛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는 쓰라린 기억을 지닌 곳으로, 해병대인들의 정신적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해병대 초대교회는 해방촌 군인아파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오래된 화강암과 담쟁이덩굴, 벽돌로 쌓아 올린 기둥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초대교회는 1951년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처음 창립된 후 해병대사령부·전투부대와 함께 진해·부산을 거쳐 1955년 서울 남산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1959년 해병대사령부 용지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지금의 건물로 준공됐다. 예배당 중앙에 자리 잡은 커다란 십자가는 1951년 해병대 1연대가 북한군에 맞서 혈전 끝에 탈환한 강원 양구군 도솔산의 고로쇠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초대교회는 1973년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면서 교회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후 2003년 해병대 창설 제54주년을 기념해 변형된 교회 건물을 예배당으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 명칭을 회복했고, 2017년 2월 15일 대한민국의 국가 등록문화재 제674호로 지정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당시 해병대의 완전한 독립을 통한 육·해·공군 해병대의 4군 체제를 공약했다. 해병대 사령관의 4성 장군 진급과 해병대회관 건립도 약속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사태로 해병대가 수십 년간 열망해왔던 해병대 독립은 당분간 물 건너간 모양새다.
- 박성진의 국방 B컷
- [신간 탐색]관저의 100시간-일본 원전사고 어떻게 대처했나(2015. 03. 09 17:41)
- 2015. 03. 09 17:41 문화/과학
- 관저의 100시간 기무라 히데아키 지음·정문주 옮김 후마니타스·1만6000원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태평양을 접한 동일본 연안에서 규모 8.8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 연결된 송전탑이 무너졌고 외부 전원이 끊어졌다. 쓰나미에 따른 침수로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멈췄고, 긴급 노심 냉각장치로 급수는 멎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여섯 기 중 세 기가 연속적으로 노심융용 상태에 빠졌다. 수증기가 폭발하면서 콘크리트 건물의 두꺼운 벽은 터져나갔다. 천문학적 수치의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대량 확산되었고, 4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핵연료봉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직후부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사고대책통합본부가 세워진 15일 저녁까지, 100시간 동안 국가 최고사령부인 총리 관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책은 ‘사고는 왜 발생했는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대화가 오갔나’ ‘그때 잘못된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과 감당해야 할 책임들을 분리시킨다.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가장 중요한 책임자인 도쿄전력은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철수하는 데 급급했다. 긴급한 상황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원자력안전보안원, 문부과학성,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의 원자력 관련 관료조직은 피난경로 예측시스템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전문가집단은 원자로 폭발은 없다고 장담하다가 이에 대비하지 못한 채 폭발을 지켜보게 만들었다. 일본의 원전사고는 한국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의 경험이 자연재해에 기인했다면 세월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재였다. 또한 일본은 분 단위로 작성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일지의 기록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나 세월호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의 시간을 다룬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은 객관적 기록을 통해 원전사고에 대한 통찰이 가능했다. 하지만 객관적인 기록을 통해 사건을 직시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 신간 탐색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 고유의 특색이 묻어나는 대사관저 인테리어
- 2015. 05. 04 15:43 리빙
- 어떤 나라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집을 방문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특히 대사관저는 자국의 색깔이 가장 잘 묻어나도록 꾸민 각국을 대표하는 공간이라 더욱 관심이 간다. 북유럽 열풍의 중심인 디자인 강국 핀란드와 다소 생소하지만 더 알고 싶은 나라 폴란드 대사관저를 찾았다. 기능성과 간결한 디자인,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제품을 선호하는 북유럽 국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 핀란드 대사관저. 종이로 만든 독특한 디자인의 플로어 스탠드는 비베로 제품. 북유럽 디자인이 그대로 재현된 핀란드 대사관저 상상하던 모습을 현실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동안 북유럽 디자인에 대한 기사를 다루면서 익히 알게 된 북유럽 인테리어의 실제가 핀란드 대사관을 통해 눈앞에 펼쳐진 것. 조용하고 한적한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성북동)에 자리한 핀란드 대사관저는 드넓은 정원을 갖춘 저택 안에 간결함, 기능성, 실용성, 자연친화성 등 북유럽 디자인을 대표하는 키워드를 모두 함축하고 있었다. 봄 날씨가 완연한 4월의 어느 날, 핀란드 대사관저에서 만난 힐까 헤이모넨 대사 부인은 ‘Less is More’라는 한마디로 관저의 색깔을 표현했다.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인테리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디자인은 핀란드인들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스타일이에요. 대사관저 역시 이런 특징을 십분 발휘해 꾸몄죠. 이곳을 통해 북유럽의 대표적인 인테리어를 엿볼 수 있을 거예요.” 1 드라마틱한 그림자를 연출해내는 스탠드 조명은 디자이너 크리스티 타이비올라의 작품. 2 핀란드 대사관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힐까 헤이모넨 대사 부인. 3 대사관저 지하에 마련된 사우나 시설. 핀란드인들은 일주일에 1, 2회 정도 사우나를 즐기는데 가정은 물론 공공장소에도 사우나가 마련돼 있다.사실 대사관저의 인테리어는 각 나라의 외교부에서 관할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손을 댈 수 없지만, 가구나 간단한 소품 배치 정도는 재량껏 관여할 수 있다. 대사 부인은 특히 꽃을 무척 좋아해 꽃꽂이를 배우고 있는데, 봄이나 가을에는 화훼 시장을 다니면서 직접 고른 꽃을 정원에 심거나 집 안에 장식해 주기적으로 공간에 변화를 주고 있다. 기능성과 간결함이 돋보이는 핀란드식 인테리어 2년 반 전, 마띠 헤이모넨 대사가 주한 핀란드 대사로 부임하면서 이곳 핀란드 대사관저는 천장 · 바닥 · 페인트 공사 등을 통해 새롭게 리모델링됐다. 그 후 핀란드 외교부가 자국의 작가와 디자이너 제품들을 들이면서 핀란드의 ‘오리지널리티’를 대사관에 적용했다. 중요한 것은 기능성을 중시하는 나라답게 각종 소품을 장식용으로 그냥 덩그러니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을 위해 배치한다는 것. 예를 들어 양초나 화병의 경우 빛을 밝히거나 꽃을 꽂는 것과 같이 그 목적이 분명하다. 또 실용성을 생각해 가죽보다는 패브릭 제품 위주로 집 안을 꾸몄다. 깔끔한 인테리어를 비롯해 기능성이 돋보이는 가구로 채운 거실. 원목 다리를 휘어서 제작한 암체어는 아르텍, 원목 행잉 체어는 오리지널 하비텍 웍스 제품.브랜드 론칭 행사, VIP 행사가 진행되거나 대통령, 총리가 방문했을 때 맞이하는 공간인 거실은 깔끔하면서 대대로 사용해도 손색없을 만한 가치가 있는 가구들로 채웠다. 큰 창문은 기후 특성상 일조량이 적어 채광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유럽 집의 특색을 반영한 것이다. 장인 정신이 투철한 핀란드 대표 브랜드인 이딸라 제품도 눈길을 끄는데, 핀란드에는 집집마다 이 브랜드의 제품이 놓여 있다고 한다. 소규모 음악회나 리셉션이 진행되는 다이닝룸은 원목 가구와 핀란드 작가의 예술 작품으로 꾸며 갤러리 같은 분위기가 난다. 핀란드에서는 학교와 같은 공공장소 어디에서든 미술품을 즐길 수 있도록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한편 창문에는 종이로 만든 커튼을 달아 햇빛이 잘 들게 했고, 테이블 위에는 심플한 조명을 리드미컬하게 달아 색다르게 연출했다. 식탁은 자연 풍경을 그대로 옮긴 듯 생생한 프린트가 담긴 마리메꼬 브랜드의 테이블클로스로 장식했다. 깔끔한 원목 조명을 길이감에 변화를 줘서 리드미컬하게 장식한 점이 돋보인다. “제가 직접 꾸민 부분은 많지 않지만 현재 대사관저가 핀란드를 대표하는 집으로서 본국의 문화나 디자인 특징이 잘 드러나 자부심이 굉장히 커요.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을 때 핀란드 고유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들 좋아해서 저 또한 무척 만족스럽답니다.” 친근하고 따스한 분위기의 폴란드 대사관저 올해로 결혼한 지 40년이 된 크쉬슈토프 마이카·조피아 마이카 폴란드 대사 부부는 마치 신혼부부처럼 촬영 내내 웃으면서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 부부처럼 살고 싶다’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행복한 기운이 넘쳤는데, 그래서인지 주변의 많은 대사관저 중 유독 이곳만 햇살을 단독으로 받는 듯 무척 따뜻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핀란드에서는 학교와 같은 여러 공공장소에서 모든 사람들이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다이닝 공간의 벽면에는 핀란드 작가 마이주 살멘키비와 안나 레투라이넨의 작품을 걸어 갤러리처럼 연출했다. 그림 같은 전경을 자랑하는 핀란드 대사관저. 폴란드 대사관저 역시 대체적으로 외교부가 인테리어를 담당하고 조피아 마이카 대사 부인이 식물이나 소품 등으로 폴란드식 취향을 반영해 꾸몄다. 폴란드는 집집마다 벽난로가 있고 바닥에는 난방이 되지 않아 꼭 카펫을 사용하는데, 대사관저에도 거실 한쪽 벽면에 깔끔한 벽난로를 설치하고 바닥에는 기하학무늬의 모던한 카펫을 깔았다. 특히 삼각형꼴의 가구가 눈에 띄었는데, 이는 북쪽에 발트 해와 해안가가 있는 폴란드를 상징해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시선을 옮기면 폴란드 대사관저의 백미인 따사로운 햇빛을 듬뿍 받으며 창가를 가득 메운 식물이 등장한다. 모두 대사 부인이 직접 분갈이를 하고 정성스레 키운 것들이다. 폴란드인들은 자연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데, 조피아 마이카 대사 부인은 직접 분갈이하고 가꾸면서 키운 화초를 창가 가득 장식했다. 넓은 정원을 갖춘 폴란드 대사관저. 실제 폴란드 집들은 대부분 정원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폴란드인들은 화초를 굉장히 좋아해서 집 안에서 꽃이나 식물을 많이 키워요. 폴란드인들의 각별한 자연 사랑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많이 키우고 일상에서는 산이나 숲, 호숫가로 가서 자연과 함께하는 나날을 보내곤 합니다.” 크쉬슈토프 마이카·조피아 마이카 폴란드 대사 부부의 다정한 모습 덕분에 더욱 따뜻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폴란드 대사관저. 거실 벽면에는 작년에 한국에 와서 직접 그림을 그린 폴란드 화가 랍사의 작품으로 장식했다. 그릇과 호박 보석의 나라, 폴란드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 위에는 폴란드 워비츠 지역의 전통의상이 장식돼 있다. 폴란드는 지역마다 전통의상이 있는데 손수 수를 놓으며 섬세하게 만든다.폴란드는 그릇과 도자기 산업이 발달돼 있고 전 세계에 수출하는 호박 보석의 원산지다. 조피아 마이카 대사 부인은 어떻게 하면 폴란드의 색깔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대사관저에 그릇과 호박 보석을 장식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릇은 거실 테이블에 세팅된 것들이 폴란드의 대표적인 디자인인데, 꽃이나 열매 등의 경쾌하고 화려한 패턴이 특징이다. 폴란드 북쪽에 면한 발트 해와 해안가에서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한 가구. 모두 19세기부터 볼레스와비에츠라는 도시에서 장인 정신에 입각해 손으로 하나하나 그려서 만든 것으로, 지금도 그곳에 가면 가족이 정성 들여 그릇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시아에 실크로드가 있듯이 폴란드에는 ‘앰버로드(Amber Road)’가 있을 정도로 호박 보석 또한 유명하다. 대부분 그다인스크라는 해안 도시에서 발굴하는데, 크쉬슈토프 마이카 대사는 자신들도 이 도시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게 됐다며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는 듯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폴란드는 가톨릭 국가로, 지난달 부활절을 맞아 다이닝 공간을 새롭게 단장했다.목재 주택이나 원목 가구 등 나무를 많이 사용하는 폴란드처럼 한국도 한옥이나 원목 가구가 많아 두 나라가 닮은 듯하다고 입을 모으는 대사 부부. 한국에서 임기를 마치고 폴란드에 있는 집으로 돌아갈 때는 나전칠기 공예품이나 소나무로 만든 전통 가구를 꼭 가져가 한국을 추억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꽃과 식물 등 경쾌하고 화려한 패턴이 매력적인 폴란드의 대표적인 그릇들. 볼레스와비에츠라는 도시에서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정성 들여 만든다. 폴란드는 호박 보석의 최대 생산지로 목걸이나 예술품, 화장품 등을 만드는 데 활용하고 있다. 거실 테이블에 장식한 목걸이는 4억 년 전에 발굴된 호박 보석으로 만든 것. <■진행 / 장인화 기자 ■사진 / 장태규(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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