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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광화문광장에 6·25 참전용사 기리는 ‘감사의 정원’ 만든다
서울시, 광화문광장에 6·25 참전용사 기리는 ‘감사의 정원’ 만든다
2025. 02. 03 20:08사회
... 정원’은 서울시가 지난해 7월 조성을 추진하다 ‘국가주의’ 등의 논란 속에 포기한 일명 ‘광화문 100m 태극기 게양대’의 대체 조형물이기도 하다. 이후 시는 9월부터 설계공모를 시작해 대체...
광화문광장에 6.25 참전용사 기리는 ‘감사의 정원’ 건립
광화문광장에 6.25 참전용사 기리는 ‘감사의 정원’ 건립
2025. 02. 03 10:00사회
... 없었을 것”이라며 “600년 우리나라의 중심지로, 대한민국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이 오롯이 담긴 광화문광장에 ‘감사의 정원’을 만들어 이곳을 찾는 세계인에게 감동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윤석열 구속기소 후 첫 주말 집회…반탄은 ‘광화문파’ ‘여의도파’ 갈려
윤석열 구속기소 후 첫 주말 집회…반탄은 ‘광화문파’ ‘여의도파’ 갈려
2025. 02. 01 20:05사회
... 주장했고, 경찰은 약 3만8000명으로 비공식 추산했다. 전 목사와 대형 유튜버들이 참가하는 ‘광화문파’ 집회가 돈벌이에 열중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여의도파’ 집회도 열렸다. 개신교계 단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초읽기…광화문 가득 메운 “윤석열을 체포하라” 시민 목소리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초읽기…광화문 가득 메운 “윤석열을 체포하라” 시민 목소리
2025. 01. 11 21:29사회
.... 정효진 기자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은 주말인 11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 앞에서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범시민총궐기대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의...

스포츠경향(총 392 건 검색)

조환지 ‘광화문연가’ 첫 공연, 힐링 선물
조환지 ‘광화문연가’ 첫 공연, 힐링 선물
2024. 10. 26 10:48 연예
CJ ENM 배우 조환지가 올가을 따뜻한 감성을 전한다. 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과거 명우’ 역할을 맡은 조환지가 지난 24일 디큐브 링크 아트센터에서 첫 공연을 성료 했다. 가을 감성을 물씬 담아낸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명우’와 그를 추억 여행으로 이끄는 인연술사 ‘월하’가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이다. ‘붉은 노을’, ‘옛사랑’, ‘소녀’ 등 남녀노소 시대 불문 명곡으로 꼽히는 이영훈 작곡가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악을 통해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 시절의 감성과 힐링을 선사한다. 조환지가 맡은 ‘과거 명우’는 풋풋하고 순수한 매력을 뽐내며 순애보와 따뜻한 감성을 지닌 청춘의 모습을 그렸다. 이날 공연에서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명우’역할은 엄기준, ‘월하’역은 김호영이 맡아서 시너지를 발산했다. 조환지는 임종을 앞두고 추억하는 젊은 날의 명우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들어내 시선을 집중시켰다. 탄탄한 연기력과 섬세하고 호소력 짙은 조환지의 목소리는 관객들을 설레임 가득한 첫사랑의 기억으로 이끌었다. 또한 무대를 꽉 채우는 탁월한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으로 관객들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리며 많은 환호를 받았다. 첫 공연을 마친 뒤 조환지는 소속사 제이플로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뮤지컬 ‘광화문연가’ 연습을 위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다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모든 곡들이 누구나 아는 명곡들이고, 그 수많은 곡들이 우리에게 여전히 울림을 주는 것 같다”라며, “제가 옛날 노래들을 정말 좋아해서 무대에 있는 2시간이 너무나 큰 행복이다.”, ‘광화문연가’를 하면서 느끼는 큰 행복과 감동을 꼭 관객분들도 느끼셨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7월 제18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하 딤프)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통해 실력파 배우임을 입증한 조환지는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아몬드’, ‘더데빌’, ‘메리셸리’, ,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등 다채로운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하였다. 한편, 조환지 배우가 출연하는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2025년 1월 5일까지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스경X현장] 송가인, 광화문 접수했다
[스경X현장] 송가인, 광화문 접수했다
2024. 08. 15 08:48 연예
가수 송가인, 사진|이다원 기자 가수 송가인이 광화문 광장을 접수했다. 송가인은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육조마당에서 진행된 광복절 전야제 공연 ‘8·15 서울 마이 소울’에 출연해 수많은 시민들의 뜨거운 함성 속에서 다채로운 무대를 선사했다. 가수 송가인, 사진|이다원 기자 이날 단아한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오른 송가인은 ‘월화가약’을 시작으로 자신의 히트곡들을 선물했다. 구성진 가락에 맞춰 국악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송가인은 무대 중간 중간 MC 박경림과 함께 위트 있는 코멘트들로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이어 신나는 리듬에 맞춰 ‘거문고야’를 열창한 그는 국악 스카 밴드 유희스카와 협주하며 흥겨운 시간을 완성했다. 가수 송가인 무대에 앞서 응원하는 시민들, 사진|이다원 기자 핑크색 팬덤 의상을 맞춰 입은 팬클럽 어게인은 무대 곳곳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송가인을 응원했고, 게 중에는 춤을 추거나 흥을 발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무대에는 서도밴드, 유희스카, 악단광칠, 타악그룹 타고 등도 참여했다. 이들은 전통 국악과 현대 음악의 조화가 돋보이는 공연을 선보이며 많은 시민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특히 파란색 유니폼을 맞춰입은 유희스카는 독특한 밴드 색깔을 입증해내며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고, 악단광칠은 귀여운 안무를 더해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MC 박경림, 사진|이다원 기자 한편 광복절인 15일 오전 11시30분부터는 보신각 일대에서 ‘광복절 타종식’이 진행된다. 고 허석 의사의 내손(5대손) 파리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허미미 등 독립운동가 후손이 타종인사로 참여하는 한편, 시민 500여명이 보신각에 모여 ‘광복절 노래’와 ‘서울의 찬가’를 합창한다. 현장 부스를 마련해 태극기 페이스페인팅, 퀴즈이벤트 등을 마련하고, ‘항일유적 역사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해 시민들이 광복절의 의미를 체험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광복절 오후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광복 79주년 기념음악회’를 개최하며 이틀간 진행된 광복절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다. 서울야외도서관 ‘책읽는 서울광장’도 광복절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개장해 시민에게 광복절 관련 책들과 공연을 선보인다.
스경X현장
[오늘 뭐함?] 7년 만에 돌아온 울버린, 광화문 온다
[오늘 뭐함?] 7년 만에 돌아온 울버린, 광화문 온다
2024. 07. 04 09:36 연예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포스터.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다시 본격적인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4일, 이날도 많은 연예가 행사와 인터뷰가 이어진다.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의 내한기자간담회가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이 자리에는 라이언 레이놀즈와 휴 잭맨 그리고 영화의 연출을 맡은 숀 레비 감독이 참석한다. 영화는 히어로 생활에서 은퇴한 후 평범한 중고차 딜러로 살아가던 데드풀이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위기를 맞아 모든 면에서 상극인 울버린을 찾아가며 벌어지는 액션 블록버스터 작품이다. KBS2 예능 ‘팝업상륙작전’ 포스터. 사진 KBS 휴 잭맨은 2017년 ‘로건’ 이후 울버린 역할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다시 7년 만에 울버린으로 스크린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는 앞서 지난 3일 고척스카이돔에서 프로야구 KBO 리그 경기 직관을 한 모습이 공개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전 11시에는 KBS2의 새 예능 ‘팝업상륙작전’의 제작발표회가 온라인으로 열린다. 이 자리에는 프로그램의 MC를 맡은 박세리와 김해준, 브라이언, 하석진, 곽튜브, 아스트로의 MJ가 참석하며 붐이 진행을 맡는다. 프로그램은 MC들이 직접 해외로 여행을 떠나 현지에서 맛집을 찾아 음식을 맛본 후 한국에서 통할 것 같은 식당의 한국 소환을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여행과 음식 그리고 장사 예능의 요소를 두루 섞었다. 이밖에도 종방을 앞둔 SBS 금토 ‘커넥션’에 출연한 배우 유희재가 종방 관련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기사는 오는 7일 오전부터 볼 수 있다.
KT, 가정의달 맞아 광화문광장에 ‘지니TV 팝업’ 운영
KT, 가정의달 맞아 광화문광장에 ‘지니TV 팝업’ 운영
2024. 05. 06 11:08 생활
KT는 가정의 달을 맞아 4~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자사 IPTV 서비스인 ‘지니 TV’를 체험할 수 있는 팝업을 운영했다. 이벤트에서는 콘텐츠 소개와 포토존, 캐리커처, 콘서트 등이 진행됐다. 사진은 광화문광장 육조마당에 미디어 포털을 체험할 수 있는 ‘지니 TV 팝업’을 개최하고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ENA 채널의 ‘지구마불 세계여행2’ 콘텐츠를 게임으로 소개하는 모습.

주간경향(총 41 건 검색)

오세훈 “광화문 광장 ‘100m 태극기’, 원점서 재검토”
오세훈 “광화문 광장 ‘100m 태극기’, 원점서 재검토”(2024. 07. 11 12:50)
2024. 07. 11 12:50 사회
오세훈 서울시장이 11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 건립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오세훈 시장은 11일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 조성사업 기자설명회를 열고 “국가상징공간은 국민 자긍심을 높이는 게 핵심”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국민의 바람과 뜻이 담긴 의미 있는 장소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광화문광장에 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와 ‘꺼지지 않는 불꽃’ 상징물을 세운다는 기존 계획은 철회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되, 이곳에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는 사업 자체는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앞서 오 시장은 지난 6월 25일 제74주년 6·25를 맞아 광화문광장에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고 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와 불꽃 상징물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에 지나친 애국주의적 발상이고 디자인 면에서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시가 지난 6월 25일 발표한 광화문 광장 태극기 게양대 조감도. 서울시 제공 오 시장은 이날 설명회에서 “광화문광장은 서울 도심의 심장부이자 역사와 문화, 시민정신이 공존하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국가상징공간”이라며 “대한민국 자유와 번영의 밑거름이 된 6·25전쟁 외에도 3·1독립운동, 4·19혁명 등 대한민국 발판을 만든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조형물의 예시로 50m·70m·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 미디어 화면(파사드)으로 태극기를 보여주는 장치, 높이를 10∼70m까지 조정할 수 있는 가변형 게양대를 제시했다. 태극기 외에도 무궁화를 주제로 한 조형물과 조경도 제시했다. 오 시장은 “마음과 귀를 열어놓고 의견을 수렴하겠다. 다 함께 공론의 장에 참여해 달라”며 시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해 설계 공모를 진행하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달 중 홈페이지에 의견 수렴 창구를 만들어 조형물의 형태·높이·기념할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비롯해 모든 부문에서 시민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또 시민단체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기구를 활용해 국가상징공간 조형물의 규모와 디자인을 논의한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국가보훈부, 국토부 등 관계기관과 협력도 강화한다. 서울시는 열린광장운영 시민위원회 논의를 거쳐 오는 8월 중 설계용역을 공모하고 올해 11월까지 기본·실시 설계를 마치고 내년 5월 착공, 12월까지 공사를 마칠 계획이다. 위치는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광장 중앙이 아닌 세종로공원 앞이다.
[이기환의 Hi-story](106)거적 쓰고 밀려났던…광화문 ‘해치’의 팔자(2023. 10. 27 11:20)
2023. 10. 27 11:20 문화/과학
1870년 무렵 설치된 광화문 앞 해치(해태)상은 ‘철거 후 방치(1923)-조선총독부 앞 이전(1929)-광화문 옆 이전(1968)을 거쳐 이번에 월대 끝 양옆에 설치됐다. 그러나 이것도 제자리는 아니다. / 국립중앙박물관·동아일보·중외일보·경향신문 자료 왕범이, 해치… 아무리 봐도 동물인 것 같은데, 감이 확 와닿지는 않습니다. 동물은 맞습니다. 하지만 분명 차이는 있습니다. 왕범이는 ‘실존’이고, 해치는 ‘상상’의 동물이라는 겁니다. 같은 점도 있습니다. 이 두 ‘실존’ 및 ‘상상’의 동물이 서울의 공식 캐릭터였거나(왕범이), 현재 ‘ing’ 중(해치)이라는 사실입니다. ‘왕범이’는 1998년 2월에서 2008년 5월 사이 서울의 마스코트였답니다. ‘왕’ 하면 떠오르는 한국의 으뜸 도시라는 이미지를, ‘호랑이’의 순우리말인 ‘범’에 붙인 겁니다. 그런데 2008년 5월 ‘왕범이’가 상상의 동물인 ‘해치’로 전격 교체되는데요. 당시 오세훈 시장은 싱가포르의 머라이언, 베를린의 곰처럼 해치를 서울 하면 떠오르는 상징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는데요. ‘해치’는 그러나 2011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고(故) 박원순 시장부터 천덕꾸러기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다 2022년 7월 복귀한 오세훈 시장이 유명무실해진 ‘해치’의 인지도를 되살리기 위해 캐릭터 재디자인 및 콘텐츠 개발용역에 착수했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15년 된 ‘해치’ 캐릭터를 요즘 시대에 걸맞은 디자인으로 바꾼다는 거죠. 1870년 조성된 해치상의 원위치는 최근 복원된 월대의 끝 선에서 더 남쪽으로 39.2m 전진 배치돼야 한다. 그럴 경우 지금 터놓은 도로의 한복판에 놓이게 된다. 때문에 불가피하게 월대 양끝 주변으로 이전했다. / 문화재청 제공 불완전한 복원 며칠 전 광화문 월대와 현판의 복원이 끝나 마침내 일반에 공개됐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로써 월대-광화문-흥례문-근정전-침전(강녕전·교태전)-후원(건청궁) 등으로 이어지는 경복궁의 중심축이 완전히 복원된 셈인데요. 그러나 광화문광장을 바라보면 한가지 ‘불완전한’ 복원의 장면과 마주칩니다. 광화문 앞 양쪽에 바투 서 있던 해치상이 월대 남쪽 끝 부근으로 옮겨갔는데요. 그런데 이것이 원위치가 아닙니다.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1906~1907년 독일인 헤르만 산더(1868~1945)가 찍은 광화문 사진과 그간의 월대 발굴결과 등을 토대로 디지털 이미지 분석이라는 첨단기법으로 측정했는데요. 복원된 월대 남쪽 끝에서 약 39.2m 정도 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그쪽으로 이동시키면 간단하겠네요. 그게 그러나 간단치가 않습니다. 그럴 경우 해치상이 광화문 앞을 반월형으로 돌아가는 도로 한가운데에 설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해치를 월대 양쪽 끝으로 옮겨놓은 겁니다. 따지고 보면 광화문 제모습찾기 사업 중 유일하게 ‘제자리를 잃은 복원’이라는 평을 받을 만합니다. 해치·해채·해태… 이렇게 ‘해치’가 새롭게 단장한 광화문광장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는데요. 그러나 여전히 ‘해치’가 어떤 동물이고, 왜 서울의 상징이 됐는지 모르는 분이 많을 것 같네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이름부터가 해치인지, 해채인지, 해태인지 모호합니다. 역대의 운서(韻書·사전의 일종)에서도 다양하게 발음됐거든요. 다만 현재 중국 발음이 ‘치(zhi)’인 데다 자칫 서울의 상징이미지로 프로야구팀 이름(‘해태’)을 떠올리면 곤란하잖습니까. 그래서 ‘해치’라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옛날 신문을 찾아보면 ‘해태’는 보이지만 ‘해치’는 좀체 찾을 수가 없습니다. 10월 15일 서울 광화문 월대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사냥감에서 정의의 사도로 그뿐이 아닙니다. 해치(혹은 해태)는 정체가 모호한 상상의 동물입니다. 해치가 문헌상 처음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2세기 무렵이라는데요. 중국 한나라 시대 문인인 사마상여(기원전 179~117)의 ‘상림부’에 “천자가 비렴(상나라 말 장군)을 물리치고 해치를 사로잡아 희롱한다”(<사기> ‘사마상여 열전’)는 내용이 나옵니다. 해치가 천자(황제)의 사냥감인 ‘실존 동물’이지, ‘상상의 동물’이 아니었다는 거죠. 그런데 세월이 흘러 후한(25~220)을 거치면서 ‘해치’의 성격이 완전히 바뀝니다. 즉 후한의 사상가인 왕충(27~97)의 <논형>(‘시응편’)은 아주 그럴듯한 고사를 소개합니다. “요 임금 때 법을 관장한 고요가 옥사를 다스릴 때 해치(외뿔 양)를 앞세웠다. 해치는 죄 있는 자만 골라서 들이받았다.” ‘해치관’을 쓴 사정기관 관리 이때부터 해치는 옳고 그름, 즉 시비와 사정(邪正)을 판결해주는 상서로운 동물이라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해치’ 모양의 ‘관’, 즉 ‘해치관’은 탄핵과 감찰의 임무를 전담한 사헌부 관리의 전유물이 됐습니다. 이 제도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도입됐답니다. 명나라 황제(태조 주원장·재위 1368~1398)가 보낸 외교문서에 따라 대사헌(종2품)과 집의(종3품) 등 사헌부 관리들은 모두 해치관을 썼답니다(<세종실록> 1426년 2월 26일자). 일제는 헐어버린 해치상을 조선총독부 서편 궁장 밑에 처박아두었다. 동아일보는 거적을 뒤집어쓴 채 방치된 해치를 두고 “해태는 사람의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재주가 있어… 만조백관이 (광화문을) 출입할 때 수시로 경계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고 전했다. / 동아일보 해치관뿐이 아니었답니다.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의 흉배(가슴·등에 장식한 표장)에도 ‘해치’ 무늬를 새겼다”(<단종실록> 1454년 12월 12일자)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정조실록>은 더욱 흥미로운 기사를 전합니다. “사헌부 지평(종5품)인 이시원(1753~ 1809)이 해치관을 쓰지 않고 임금과 정사를 논하고 경전을 공부하는 경연장에 참석했다는 비난을 받아 사의를 표명했고, 결국 면직됐다”(1796년 2월 9일) ‘해치상=하마상’인가 그 때문일까요. 광화문 해치상에도 그럴듯한 해석이 가미됐습니다. 출퇴근하는 관리들이 ‘잘잘못을 분별하는’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며 선정을 다짐했다는 겁니다. 좀 이상합니다. 광화문 앞 해치상의 건립 사실을 알린 <고종실록> 1870년 10월 9일자를 볼까요. “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궁궐의 한계를 정했다. 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는 말을 탈 수가 없는데….” 광화문 앞에 해치상은 단순한 하마비였다는 거네요. 하기야 100여 년 전의 사진에는 해치상 옆에 하마비가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궁궐이니 아무리 고관대작이라도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오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광화문 앞 해치가 ‘시비곡직을 가리는 서수’의 의미는 아니었던 걸까요. 관악산의 화기를 달래는 해치상? 해치와 관련해 오래된 믿음이 있죠. 해치가 물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라는 이야기죠. 따라서 경복궁에서 발생했던 잦은 화재를 잠재우려고 해치상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전해졌습니다. 1923년 조선총독부는 조선부업품공진회를 불과 3일 앞두고 해치상을 철거했다. / (이순우·하늘재·2004) 그런데 <고종실록>이 그러한 정설을 부인하고 있네요. ‘해치상’은 그저 ‘하마비’였다고요. 아닌 게 아니라 ‘해태=물’을 상징하는 동물이라는 기록은 경복궁 중건 이전에는 어떤 문헌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학자 이규경(1788~미상)의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사라진 책인) <승아>에 이르기를 ‘해치는 불짐승(火獸)이고 멀구슬나무 잎사귀를 먹고 청결한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고 전합니다. 해치가 물이 아니라 불의 짐승이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해치’와 ‘관악산’ 이야기가 왜 나왔나 싶어 궁금증이 더 커졌는데요. 궁궐의 서수상을 연구한 김민규 문화재청 전문위원이 팁을 줘서 찾아봤더니 조선 후기 학자 박제형(생몰년 미상)이 1886년에 쓴 역사·야사집인 <근세조선정감>에 나오더라고요. “대원군이 경복궁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불처럼 생긴 관악산 때문이라고 여겨 돌로 물짐승 형상을 새겨 궁문 앞 양쪽에 세웠다”는 겁니다. 아마도 이 <근세조선정감>이 소개된 이후 ‘관악산 화기 잠재우기=해치 설치’의 이야기가 정설처럼 돌았던 것 같습니다. 예컨대 1923년 조선총독부가 조선부업품공진회 개막에 발맞춰 개통한 전차와 관람객의 동선에 방해가 된다면서 광화문 앞 해치상을 철거해 궁궐 안쪽에 처박아두었는데요. 10월 4일자 동아일보는 ‘거적에 싸여 방치된 해치상’을 고발하면서 해치상의 조성 이유를 설명합니다. “경복궁 남쪽의 관악산이 화산(火山)이어서… 화재 예방을 위해 해태상 만들어 관악산을 흘겨보게 했다는….” 1924년 5월 20일자 조선일보는 “경성 시내에 방화 사건이 잇따르자 ‘경복궁 앞에 있던 해태를 없애버린 까닭’이라며 당국(총독부)을 격렬하게 공격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해치상은 1929년 11월 29일 조선총독부 건물(중앙청) 뜰 앞으로 옮겨졌는데요. 최근까지 광화문 담장 밑에 바투 붙은 채로 서 있는 옹색한 해치상은 1968년 12월 광화문 복원 때 재이전한 겁니다. 광화문 해치상, 귀가 붙은 이유 이처럼 광화문 해치상의 정체를 파악하기가 힘들죠. 이름도 해치, 해채, 해태 등으로 모호하고, 그 의미도 ‘사냥감-시비곡직을 가리는 서수-하마비-화기를 억누르는 물짐승’ 등으로 계속 바뀝니다. 물론 의미를 찾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아까 인용했지만 해치는 ‘해치=외뿔짐승(一角獸)’으로 표현돼 있답니다. 그중에서도 신양(神羊·신령스러운 양)이 주목된다는데요. 황성신문 1899년 2월 25일자를 볼까요. “해치(해치)라는 짐승은… 신양(神羊)이라… ‘바른 사람(正人)’을 보면 귀를 붙이고 허리를 공손히 굽히고 ‘사악한 자(邪人)’를 만나면 뿔을 세우고 치받으니… 이리하여 우리 서울 황궁의 좌우성에 조성한지라.” 가만 보니 지금 광화문에 우뚝 서 있는 해치상은 두 귀가 밀착돼 붙어 있습니다. 그것이 황성신문이 언급한, 바른 사람을 보면 ‘귀를 붙이고 허리를 공손히 굽힌다(貼耳馴服)’는 뜻 아니겠습니까. 조선 중기 이중로 초상화의 해치는 머리 중앙의 뿔과 돌출된 주둥이, 뭉툭한 코, 온몸을 덮고 있는 금색 비늘 등 전통적인 해치 형상을 충실하게 모방해 제작됐다. / 이성준의 논문 이 해치상을 설계한 이는 이세욱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조선일보(1934년 1월 1일자)와 <경성기략>(권4 ‘경복궁 중건’), ‘별건곤’(1929년 9월호) 등 당대의 자료는 “광화문 밖 쌍해치는 대원군의 지시를 받은 석공(혹은 근세미술사가) 이세욱의 작품”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이세욱(옥)은 화가 출신의 조각가이며, 궁궐의 석물 제작에 여러 차례 감독한 인물로 문헌자료에 등장합니다. 해치는 신령스러운 양? 연구자들은 <고종실록>에 기록된 것처럼 ‘해치상=하마비’로 단순하게 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광화문 해치상에 주목하라는 건데요. 뿔이 퇴화된 감을 주죠. 원래 해치상은 17세기 이전까지는 중국처럼 뿔 달린 짐승으로 나오지만 이후 해치와 사자를 결합하는 과도기를 거쳐 뿔이 점차 사라진다는군요. 그러다가 1867~1870년 완성된 광화문 해치상을 기점으로 중국과는 다른 독창적인 모습이 정립됐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사자의 몸을 갖고 있는 신양(神羊)의 형태로요. 그런 모습은 중국에는 없답니다. 그래서 연구자 중에는 조선 후기의 소중화 사상을 따라 조선만의 고유한 색채를 발현한 것일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하고요. 또한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흥선대원군의 의지가 표출된 상징물이었다는 해석도 있답니다.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는 해치의 속성을 통해 다시는 세도정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해치상을 통해 발현하려 했다는 겁니다. 물론 이 또한 그럴듯한 추정일 뿐이죠. 포토존이 된 해치상 해치상과 관련해 이야기를 풀어봤는데요. 저는 해치가 서울을 대표하는 공식 마스코트로 적당한지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명칭조차 통일되지 않았고요. 그 동물의 정체성 또한 분명하지 않잖습니까. 선악과 시비를 가리는 동물이라고요? 그렇다 해도 검·경찰청, 법원, 감사원 같은 사정당국이라면 몰라도, 서울의 상징 동물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과 달리 요즘 재미있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해치상이 앞쪽으로 전진 배치되자(물론 원위치는 아니지만) 일약 ‘인기 포토존’으로 부각됐다고 하더군요. 해치상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으려면 ‘줄을 서시오’를 외쳐야 한다네요. 그러니 저처럼 딴죽을 걸고 문제를 제기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시민들이 좋아하면 그뿐인 거죠. 따지고 보면 역사성·상징성·진정성 뭐 이런 것도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성격이 ‘사냥감-시비곡직을 가리는 서수-하마비-물짐승’에서 다시 바뀌겠네요. ‘사진모델’로요. 다만 그런 생각은 듭디다. 서울시가 ‘해치’를 진정으로 서울 시민의 마스코트로 정착시키려면 단편적인 홍보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 ‘왕범이’가 왜 ‘해치’로 바뀌었는지는 설명이 필요하고요. 또 지금 광화문 해치상을 찾는 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야 할 이유는 말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기환의 Hi-story
[이기환의 Hi-story](88)중국 사신 홀리고 무대붕괴 ‘인재’도…500년 전 광화문(2023. 06. 16 11:48)
2023. 06. 16 11:48 문화/과학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최근 광화문 월대 발굴에서 찾아낸 조선 전기의 유구와 유물. 고종 연간(1866)에 조성한 월대 아래 120㎝ 부근에서 조선 전기에 조성된 유구와 함께 햇빛을 차단할 때 쓰는 차양막의 고정장치를 확인했다. 광화문 일대에서는 이미 2007년 발굴에서 태조 연간에 조성된 광화문 석축 흔적과 조선 전기의 유구가 확인된 바 있다. /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제공 광화문광장은 조선시대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거두절미하고 대략 세 시기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의정부와 육조, 사헌부, 삼군부 등 중앙관청이 광화문의 좌우에 자리 잡고 있었고요. 임진왜란 와중에 경복궁 전소 이후 273년간이나 방치됐던 게 두 번째였을 거고요. 1865~1867년 경복궁 중건 이후 환골탈태한 것이 세 번째 풍경이었겠죠. 지금은 경복궁 중건 와중(1866년)에 조성된 ‘월대’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가 한창입니다. 차양막의 흔적 발굴 과정에서 심상치 않은 유구가 심심찮게 노출됐는데요. 임진왜란 이전, 즉 조선 전기에 조성된 ‘인간의 흔적’입니다. 2007년 발굴에서 돌을 쌓아놓은 흔적인 석축과 잡석 유구가 2곳 확인됐습니다. 석축은 창건 초기(1395~1398) 조성한 광화문터의 자취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비슷한 문화층에서 나온 잡석의 경우 조선 전기에 쌓은 월대 유구인지 특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발굴결과 매우 획기적인 유구와 유물이 노출됐습니다. 그 유구와 유물은 고종 연간(1866)에 세운 월대의 어도(임금이 드나드는 길) 서쪽 땅 밑 120㎝ 깊이에서 확인됐습니다. 즉 조선 전기 문화층에서 사각형 모양의 석재 1매(76×56×25㎝)가 보였고요. 그 석재를 중심으로 양쪽에 석렬(돌로 열지어 만든 시설)이 각 한 줄씩 배열돼 있었습니다. 이 사각형 형태의 석재 한가운데에 지름 6㎝의 철제 고정쇠가 박혀 있었습니다. 이 철제 고정쇠가 이번 발굴의 ‘알파요, 오메가’였습니다. 발굴단은 경복궁 근정전이나 종묘에서도 보이는 ‘차일(햇빛가리개) 고정장치’라고 판단했습니다. 일종의 ‘차양막’일까요. 광화문 앞에 ‘차양천막’을 치고 모종의 이벤트를 벌였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역린을 건드린 용봉차일 만약 임금이 참석한 행사였다면 ‘용봉차일(龍鳳遮日·용과 봉황을 새기고 기름 바른 국왕 전용 장막)’을 둘렀겠죠. 이 ‘용봉차일’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둘 있죠. 우선 세조~성종 연간의 세도가인 한명회(1415~1487)의 얘기입니다. 성종의 장인이기도 한 한명회는 유명한 개인 정자를 갖고 있었죠. 풍광이 뛰어난 ‘압구정’인데요. 1481년(성종 12) 조선을 방문한 명나라 사신이 바로 이 ‘압구정 관람’을 원했습니다. 광화문 월대 120㎝ 하부에서 확인된 조선 전기의 차양막 고정장치(왼쪽). 경복궁 근정전 앞에 설치된 차양막 고정장치와 똑같다. 광화문 앞에서 차양막을 설치하고 각종 행사를 펼쳤다는 이야기다. /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제공 이때 한명회가 “압구정이 좁아 중국 사신을 접대할 수 없다”면서 성종이 쓰는 용봉차일을 요청했습니다. 이것이 역린을 건드렸습니다. 이때 성종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요. 결국 한명회는 ‘임금도 몰라보는 안하무인’의 죄명으로 하옥되고, 결국 세도가의 날개가 꺾이고 말았습니다(<성종실록> 1481년 6월 25·26일 등). 이 ‘용봉차일’은 숙종(재위 1674~1720)의 환국정치에도 이용됐습니다(<연려실기술> ‘숙종조 본말고사’). 즉 1680년(숙종 6) 남인의 영수인 영의정 허적(1610~1680)이 할아버지 허잠(1540~1607)의 연시연(시호를 받은 기념으로 열린 잔치)을 베풀 때 이 ‘용봉차일’ 사건이 벌어집니다. 마침 잔칫날에 비가 내리자 숙종이 내관을 시켜 호의를 베풀죠. “비가 내리니 이 용봉차일을 허적의 집에 갖다주라”는 명을 내린 겁니다. 그런데 헐레벌떡 뛰어온 내관은 “이미 허적이 용봉차일을 찾아서 무단으로 가져갔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에 숙종은 “용봉차일은 (성종 때) 한명회도 쓰지 못했다”고 앙앙불락했습니다. 이 사건이 빌미가 돼 허적을 비롯한 남인 세력이 철퇴를 맞고, 서인 세력이 집권합니다. 이것이 환국정치의 시작점이 된 ‘경신대출척’ 혹은 ‘경신환국’입니다. 광화문 산대놀이에 빠진 중국 사신 여담이었고요. 광화문 앞에서 국왕용 ‘용봉차일’을 설치하고 연 이벤트는 무엇이었을까요. 왕실의 환궁 및 장례와 같은 주요 행사가 열렸고요.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장소로 활용했습니다. 임금이 친히 주재하는 과거시험(무과 전시), 군사행사도 열었습니다. 백성의 억울함을 전하는 상언과 격쟁이 이루어진 공간이기도 했죠. 굵직굵직한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광화문 앞에는 채붕(혹은 산대·일종의 무대)을 설치하고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죠. 무대의 규모가 대단했습니다. 1488년(성종 19) 조선을 방문한 명나라 사신 동월(1430~1502)이 남긴 ‘조선부’를 볼까요. “광화문 앞에 비단으로 꾸민 무대 높이가 광화문과 같고, 지극히 교묘하게 조성됐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외줄타기 하는 사람은 두 명의 동자를 세우고 춤을 추며 줄을 탄다….”(<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 특히 중국 사신을 위해 펼치는 공연은 허투루 할 수 없었습니다. 1539년(중종 39) 명나라 사신의 조선 방문 즈음에 중종이 “중국 황태자의 책봉을 알리려고 오는 사신이 한가롭게 앉아 공연이나 감상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가뜩이나 백성이 굶주리는 판인데, 공연을 위한 무대를 화려하게 꾸밀 필요가 없다고 한 겁니다. 사신 접대를 맡은 원접사이자 이조판서인 소세양(1486~1562)은 그러나 “아니 되옵니다”를 외칩니다. 1760년(영조 36) 4월 영조가 흥인문 오간수문에 행차해 청계천 준설의 현장을 관람한 것을 그린 중 ‘수문상친림관역도(水門上親臨觀役圖)’. 국왕 행사용 ‘용봉차일(차양막)’ 속에 표현된 붉은 일산 아래 영조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임금의 모습을 직접 그리지는 않았다. / 부산박물관 소장 “중국의 모든 연회에선 연극 공연이 빠지지 않습니다. 예전에 조선을 방문한 사신들도 모두 공연을 즐겼습니다. 너무 초라하게 하면 안 됩니다.”(<중종실록> 1539년 2월 6일) 과연 소세양의 말이 맞았습니다. 4월 10일 서울에 도착한 중국 사신이 광화문 앞 광장에서 펼쳐지는 산대놀이를 넋이 빠지도록 관람하고 입궁했습니다. 경복궁 안에서 중종과 세자, 모든 백관이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외교 결례일 수 있지만, 광화문 공연이 대단한 볼거리였음을 반증해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광화문 무대 붕괴 참사 기막힌 참사가 중국 사신이 방문한 1515년(인종 1) 5월 11일 일어납니다. 명나라 사신을 위해 설치해둔 광화문 앞 무대가 붕괴된 겁니다. “중국 사신이 방문하면 광화문 밖에 의금부와 군기시가 좌우로 나눠 산대(무대)를 하나씩 설치하고 마음껏 공연을 펼친다. 그런데 군기시가 설치한 무대의 한 모퉁이가 무너져 관람객 수십명이 깔려 죽었다.”(<인종실록>) 마침 장마가 그쳐 많은 관람객이 몰려 있었답니다. <인종실록>은 “많은 사람이 무대에 올라가 구경하다가 사고가 났다. 희생자 중에는 두세 살쯤 되는 아이를 업은 민가의 노비도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기둥을 세울 때 땅을 깊이 파지 않아 튼튼하지 않았다. 게다가 마침 장마 때문에 빗물이 기둥구멍에 스며들었다.” <인종실록>은 “관람객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 밟는 것을 막지 않아 깔려 죽는 변고가 생겼다”고 개탄했습니다. 광화문 앞 참사의 원인을 ‘인재(人災)’라 규정한 겁니다. 사고가 일어나기 13일 전의 <인종실록>(4월 27일자)에도 광화문 거리 공연 기사가 보입니다. 당시 창덕궁에 거처하던 인종 부부가 중국 사신 접대를 위해 경복궁으로 이어(移御·임금의 거처를 옮김)하는데요. 1760년(영조 36) 청계천 준설을 기념하는 행사를 그린 . 청계천 준설에 참여한 모든 관계자를 연융대에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 영조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왕실용 용봉차일을 하사해주었다. /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이때 광화문 밖에 설치된 좌우 무대에서 각종 공연을 펼쳤답니다. 인종은 “중국 사신을 위해 설치한 무대에서 나를 위한 공연을 벌이다니 참으로 미안하다”면서 “앞으로는 내가 출입할 때는 무대공연을 펼치지 마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만약 인종이 궁문에 들어설 때 무대 붕괴사고가 일어났다면 더욱 파장이 컸겠죠. “왕후의 얼굴 좀 보자” 1440년(세종 22) 4월 6일 광화문에는 볼거리가 연출됐습니다. 온천에 갔던 소헌왕후(1395~1446·세종의 왕비)가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왕세자(문종·재위 1450~1452) 부부는 물론 숙의(종2품)·소용(정3품) 등이 왕후가 납시는 길목으로 총출동했고요. 흥인문(동대문)부터 광화문에 이르기까지 도로변에 오색천을 장식했습니다. 납시는 길마다 각종 거리 공연을 펼쳤습니다. <세종실록>은 “왕후가 행차할 때 사대부의 부녀들이 도로 좌우에 채색 장막을 치고 흥인문에서 광화문 밖까지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과 같았다”고 전합니다. 광화문 앞 광장에서 벌어진 ‘척석놀이’ 광화문 앞은 갖가지 군사훈련을 펼치는 장소로도 활용됐습니다. 1445년(세종 27) 6월 3일자 <세종실록>은 “세자(문종)가 광화문 앞에서 무관 360명의 체력 평가시험을 주재했다”고 썼습니다. 개국 초인 1398년(태조 7) 5월 5일에는 태조(재위 1392~1398)가 남문(광화문) 앞에서 척석놀이(석전)를 관전했다는 <태조실록> 기사가 보입니다. 실록은 “두 팀으로 나뉘어 벌어진 척석놀이에서 상당수 참가자가 죽거나 다쳤다”고 전했습니다. 단순한 돌던지기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태조는 활쏘기·말타기 등과 함께 척석(돌던지기)에 능한 사람들을 뽑아 ‘척석군’이라는 부대를 만들었습니다. 이날의 ‘척석놀이’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군사훈련이었던 겁니다. 유생 수천명을 광화문광장에 모이라 한 영조 광화문은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통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개국초 태조가 남문(광화문) 앞에서 척석놀이(석전)를 관전했다는 기사가 보인다(오른쪽). 실록은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된 척석놀이에서 상당수 참가자가 죽거나 다쳤다”고 전했다. 척석놀이는 군사훈련의 하나였다. 그림은 김준근의 ‘기산 풍속화’ 예를 들어 “1428년(세종 10) 5월 24일 자재(사노비)가 신문고를 치려다가 의금부 당직자들에 의해 제지당하자 광화문의 종을 치고 억울함을 호소했다”는 기사가 보입니다. 세종은 신문고를 치지 못하게 한 의금부 관리 2명을 파면했습니다. “백성의 억울함을 전하기 위해 신문고를 설치했는데, 무슨 까닭에 금했냐”고 질타한 겁니다. 말년에 유생들의 상소를 귀찮아한 영조는 1770년 4월 5일 유생 수천명을 광화문 앞으로 불러 모아 엄명을 내립니다. “할 말이 있는 자들은 이 자리에서 해라. 오늘 하면 벌을 주지 않겠다. 그러나 앞으로 상소로 직언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영조의 서슬에 유생들은 “없다”고 답했는데요. 영조는 참석 유생들의 명단을 기록해 잘 보관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다시는 ‘쓸데없는 상소를 올리지 마’라고 재갈을 물린 셈이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보다 보름 정도 전인 3월 21일 청주사람 한유가 도끼를 들고 궐문 밖에 엎드려 소장을 올렸는데요. 한유가 탄핵한 인물은 당대 최고 권세를 누리던 영의정 홍봉한(1713~1778)이었습니다. 영조 앞에 불려 온 한유는 “망국동(亡國洞)의 망정승(亡政丞)이라는 동요가 있는 것 아시느냐”고 합니다. 이것은 ‘안국동(安國洞)’에 살고 있는 홍봉한을 빗댄 풍자 동요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한유는 흑산도로 유배를 떠났지만, 홍봉한 역시 경질되고 말았습니다. 영조는 바로 이 한유의 도끼상소가 너무 과하다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광화문 앞 광장으로 유생들을 불러모았던 겁니다. 경복궁 광화문 앞 월대 복원 후 모습의 조감도. 월대는 1866년 경복궁 중건 때 남북 52m, 동서 29.5m 규모로 조성됐다. 월대가 완전 복원되면 사직동 방면에서 광화문을 거쳐 안국동 쪽으로 가는 도로의 선형이 반원 형태로 돌아간다. / 서울시청 제공 광화문 밖 고발 상자의 정체 광화문 밖에 이른바 ‘고발 상자’가 놓인 적도 있었는데요. 1465년(세조 11) 2월 4일의 일입니다. 당시 도성은 물론 광주(경기)·과천 등지에 도둑이 성행하자 광화문 밖에 고발 상자를 설치해뒀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방을 붙였습니다. “도적을 고발하려는 자는 그 내용을 상세히 기록한 밀봉문을 궤짝에 넣어라. 사실이면 상을 받을 것이고, 사실이 아니어도 처벌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고발 상자는 의금부가 관리했고요. 저녁마다 밀봉된 고발장을 승정원이 받아 임금에게 보고했답니다. 조선시대 광화문 앞 광장 1990년부터 장장 55년 예정으로 진행 중인 경복궁 복원은 ‘중건 시기’(1865~1868)를 기준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광화문 앞 월대 역시 조성 당시(1866)가 복원 기준이 된답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 건국에서 19세기까지 경복궁에 서린 역사를 지워서는 안 되겠죠. 광화문 앞 광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월대 유구에서 발굴한 ‘철제 고정쇠’를 보면서 ‘조선 시대 광화문광장’의 이모저모를 복원해봤는데요. 어떻습니까. 조선시대 광화문광장과 지금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죠. 예나 지금이나 임금과 백성이 호흡을 함께 나눈 소통의 공간이었답니다.
이기환의 Hi-story
[문화캘린더]스무 살 생일 맞은 광화문 해머링 맨(2022. 06. 10 14:05)
2022. 06. 10 14:05 문화/과학
높은 빌딩으로 가득한 서울 광화문 일대에 조금 생뚱맞은 조형물이 하나 있다. 딱딱한 도심 풍경 사이에 홀로 서 있는 조형물은 이곳을 처음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35초에 한 번씩 스스로 망치질을 하며 움직이는 모습이 이색적이기 때문이다. 망치질로 유명한 이 조형물의 이름은 ‘해머링 맨(Hammering Man)’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해머링 맨이 언제부터 이곳에 서 있었는지는 잘 모를 것이다. 너무 익숙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해머링 맨 크기 2,200(h) x 1,000(w) x 49(d) 무게 50t(오른팔만 4t) 설치 2002년 6월 4일 재료 Steel, Aluminum 유지보수 1년 24회 정기점검. 사진은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68 흥국생명 빌딩 앞에 서 있는 해머링 맨 / 태광그룹 제공 해머링 맨이 지난 6월 4일 20번째 생일을 맞았다. 해머링 맨은 본래 미국 조각가인 조나단 브롭스키(Jonathan Borofsky)의 연작이다. 1979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3.4m 높이의 해머링 맨을 선보인 이후 시애틀, 댈러스, 캘리포니아, 미니애폴리스, 게인스빌, LA와 프랑크푸르트, 바젤, 릴레스트롬, 나고야 등에 설치했다. 모두 11개 도시에 있는 시리즈 중 광화문에 있는 해머링 맨이 가장 큰 체구를 뽐낸다. 키 22m에 무게만 50t이다. 해머링 맨은 평일이면 오전 8시부터 저녁 7시(하절기 기준)까지 35초마다 1회씩 망치질을 한다. 주말과 공휴일은 가동을 중지하기 때문에 꼭 주중에 방문해야 해머링 맨의 망치질을 볼 수 있다. 목을 구부린 채 오른손에 있는 망치를 아래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내리치기를 반복한다. 이런 모습이 매일 일을 하는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실제로 브롭스키는 1976년 튀니지의 구두 수선공이 망치질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해머링 맨을 스케치했다고 한다. 해머링 맨의 영감은 그의 아버지가 들려줬던 친절한 거인 이야기에서 얻었다. 이후 브롭스키는 세계 도시의 공공장소나 빌딩 앞 조형물을 설치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해머링 맨을 운영 및 관리하는 태광그룹 세화예술문화재단(이사장 서혜옥)이 2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이벤트를 준비했다. 해머링 맨이 위치한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1층과 지하 1층, 빌딩 주변에 <2010 아름다운 강산>(강익중·2000&2010), <아르파치야>(프랭크 스텔라·2002) 등 국내외 작가들의 우수작 17점을 상설로 전시한다. 스무 살 해머링 맨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흥국생명 빌딩 3층에는 2017년 문을 연 세화미술관이 있다. 세화미술관은 개관 이래 지속적으로 국내 작가들의 기획 전시를 개최하며 창작 지원을 하는 미술관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사업을 추진하며 국내 문화예술계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술·독립 영화 전용 상영관인 씨네큐브도 지하 2층에 있다. 평소 보기 힘들었던 예술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피에르 피노 감독의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 마크 J.프랜시스, 맥스 퓨 감독의 <나를 만나는 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을 상영 중이다. 매시간 상영 영화가 달라지는 만큼 꼼꼼한 시간 확인은 필수다.
문화캘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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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청계천·광화문이 빛나는 이유
매일밤 청계천·광화문이 빛나는 이유
2024. 12. 23 11:27 문화/생활
‘빛을 놀이하다’라는 축제 주제에 맞는 탄탄한 콘텐츠 구성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2024 서울빛초롱축제. 서울 청계천 ‘2024 서울빛초롱축제’와 광화문광장 ‘2024 광화문 마켓’ 방문객이 10일 만에 108만명을 돌파하며 양 행사가 대표적인 서울의 겨울 축제로서 올해도 시민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각 행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나는 연출과 체험 프로그램 등 풍성한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를 통해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시민들의 하루를 더욱 특별하고 다채롭게 채우고 있다. 2년 만에 다시 청계천으로 돌아와 개최되는 ‘2024 서울빛초롱축제’는 ‘소울 랜턴: 서울, 빛을 놀이하다(SOUL LANTERN: Play with the light of SEOUL)’라는 주제로 12월 13일(금)부터 내년 1월 12일(일)까지 청계천 일대를 화려하게 밝히며, 행사장 전 구역(청계광장~삼일교)에서 242점의 빛 조형물을 선보인다. 1구역부터 4구역까지 ‘빛을 놀이하다’라는 축제 주제에 맞는 탄탄한 콘텐츠 구성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2024 서울빛초롱축제는 미디어아트 그룹, 설치미술가, 서울의 유명 아티스트 등 전문작가와 함께 고품질 연출을 선보인다. 특히, 1구역에 위치한 8m 높이의 ‘산대희’와 모전교에 설치된 ‘청계천에 세워진 광화문’과 이를 향해서 행차하는 ‘어가행렬’ 등(燈) 60점이 그 규모와 화려함을 바탕으로 방문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산대희’는 조선시대 유일한 이동식 무대인 ‘산대’와 온 백성이 즐기던 탈놀이인 ‘산대놀이를’ 재현한 등(燈)으로, 가로 5m, 높이 8m로 옛 조상들의 놀이를 웅장하고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 ‘청계천에 세워진 광화문’은 모전교에 설치되어 있으며, 광화문의 형상을 모티브로 LED 라인으로 연출하였다. 가로 10m, 높이 7.6m의 대형 등(燈)으로, 바로 이어지는 광화문으로 향하는 종묘대제의 큰 의례인 ‘어가행렬’ 60점의 한지 등(燈)과 함께 어우러지는 빛의 연희를 즐길 수 있다. 청계천 ‘광교갤러리’에서는 축제를 방문한 내외국인 관람객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D.I.Y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빛초롱 놀이터’와 서울굿즈샵 ‘서울마이소울샵’ 팝업스토어를 만나볼 수 있다. ‘빛초롱 놀이터’에서는 12월 13일(금)부터 12월 25일(수)까지 크리스마스 LED 오너먼트 만들기, 눈사람 모루 무드등 만들기, 산타할아버지 무드등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청계천 광교갤러리에서 현장접수를 통해 참여할 수 있으며 프로그램에 따라 5000원 또는 1만원의 참가비용이 발생한다. ‘서울마이소울샵 팝업스토어’에서는 다양한 서울 굿즈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서울빛초롱축제를 맞이해 ▲겨울 시즌 상품 4종(후드티, 무릎담요, 룸슬리퍼, 머그컵) 10% 할인판매 및 3만원 이상 구매시 보냉백, 보조배터리(택1) 증정 이벤트, 구매고객 전원 압축 수세미, 병따개, 장바구니(택1) 증정 이벤트, 설문 참가자 대상 해치 풍선 증정 이벤트 등 다양한 혜택이 준비되어 있다. 청계천에 등장한 빅벤과 에펠탑, 유영하는 고래를 프로젝터로 구현한 신비의 물결, 각 15m 높이로 공중에서 전시되는 어사화와 족두리 등(燈)도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광화문 마켓은 ‘광화문광장에 찾아온 산타마을’이라는 주제로 12월 13일(금)부터 내년 1월 5일(일)까지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을 주변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로 3회차를 맞은 광화문 마켓은 ‘광화문광장에 찾아온 산타마을’이라는 주제로 12월 13일(금)부터 내년 1월 5일(일)까지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을 주변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연말연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15M 높이의 대형 트리를 중심으로 47개의 소상공인 판매 부스와 다양한 크리스마스 포토존 등이 조성되었다. 특히, 2024년 12월 21일부터 25일 행사 시간 동안 15m 대형 트리 아래의 포토존에서 산타클로스와 함께 사진 촬영할 수 있는 특별 이벤트가 진행된다. 현장에 찾아오는 모든 방문객들이 무료로 참여할 수 있으며, 해당 이벤트에 참여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산타클로스가 직접 크리스마스 선물을 증정한다. 2024 광화문 마켓은 50개 부스가 참가하였으며, 총 3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산타마을, 산타마을 맛집거리, 산타마을 놀이광장에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산타마을’은 해치마당 후미부터 세종대왕 동상 사이에 조성되었으며, 15m 크기의 대형 트리와 크리스마스 수공예 상품을 만나볼 수 있는 소상공인 마켓부스 45개가 조성되었다. ‘산타마을’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거대한 입구 게이트를 시작으로, 15m 대형 트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트리 밑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어울리는 파티풍선, 선물상자, 벽난로 등 등 다양한 요소를 활용한 5개 포토존을 조성해 소셜미디어에서 포토 스폿으로 떠오르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소상공인 마켓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수공예품 중 크리스마스 패턴 니트 및 목도리, 눈사람 캔들, 뜨개 오너먼트, 유리공예 모빌 등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산타마을 맛집거리’는 세종로공원 초입에 위치하며, 5개의 부스에서 다양한 유럽의 크리스마스 대표 식음료 및 한국 전통 과자 등을 판매하여 크리스마스 마켓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 있다. 판매 품목으로는 독일식 소시지, 헝가리식 고기 스튜 굴라쉬, 뱅쇼, 크리스마스 디저트 등 다양한 크리스마스 관련 먹거리뿐만 아니라 화과자, 과일 찹쌀떡, 개성주악 등 한국 전통 과자도 맛볼 수 있다. ‘산타마을 놀이광장’은 광화문광장 한글분수 후미부터 세종문화회관 앞부분 사이에 위치한 광화문 마켓의 마지막 구역으로, 산타클로스 루돌프 썰매,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질 수 있는 분수 등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포토존 및 체험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연말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킨다.
이번엔 광화문이다…번개장터, 2024 번개 플리마켓 페스티벌 개최
이번엔 광화문이다…번개장터, 2024 번개 플리마켓 페스티벌 개최
2024. 09. 06 16:00 패션
번개장터 제공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7∼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2024 번개 플리마켓 페스티벌’을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이번 플리마켓 페스티벌은 세종문화회관 내 광장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며 총 80개 상점이 약 1만3천 개의 세컨드핸드 물품을 판매한다. 특히 올해는 아티스트 죠지, 잠비노를 비롯한 인플루언서, 패션모델, 스타일리스트, 브랜드 디렉터 등의 애장품들이 대거 선보인다. DJ 라이브 퍼포먼스, 뮤지션 아티스트 공연 등 특별한 이벤트도 마련돼 장터의 흥을 돋운다. 그외 일반인도 판매자로 가세한다. 연령과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패션뿐 아니라 리빙, 음악, 디지털, 아웃도어, 취미 등 다양한 품목들이 준비됐다. 번개장터는 ‘지구를 위한 당당한 소비, 무해한 플랙스(FLEX)’를 슬로건으로 지난 4월 이래 총 18회, 매월 플리마켓을 열어왔다. 친환경적 가치를 전달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소비문화로의 동참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되는 이번 행사 기간 동안 현장에서 사용한 모든 현수막과 플래그는 업사이클링 아이템으로 재탄생한다. 또 플리마켓 기간 동안 구매하는 모든 고객에게 리유저블 쇼핑백도 제공한다. 번개장터 애플리케이션 이용자는 누구나 무료입장할 수 있으며 현장 방문객 모두에게 번개포인트가 지급된다. 최재화 번개장터 공동대표는 “세종문화회관과 함께 진행하는 플리마켓이 취향에 맞는 상품을 마음껏 거래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지하철·광화문 광장서 만나는 고흐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지하철·광화문 광장서 만나는 고흐
2024. 06. 12 06:05 문화/생활
지하철 9호선 3대에 전시된 <베르메르부터 반 고흐까지, 네덜란드 거장들> 展. TMONET 제공 전시장 밖에서도 거장의 작품을 관람할 기회가 마련됐다. 복합 예술 IT 기업 티모넷은 오는 7월 9일까지 서울 지하철 9호선 중 3대 전체 칸에서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지하철 미술관’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지하철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현재 빛의 시어터에서 진행 중인 <베르메르부터 반 고흐까지, 네덜란드 거장들> 전시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작품 이미지다. 티모넷 측은 “지하철 벽면과 상단에 부착된 액자를 통해 움직이는 미술관에 와 있는 듯한 효과를 선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광화문 광장에서도 클림트, 가우디, 고흐 등의 명화를 관람할 수 있다. 11일과 12일 놀이마당에서 진행되는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공연에는 빛의 시어터에서 진행된 다양한 전시 작품들이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특별한 무대를 만든다. 한편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 앤 리조트에 위치한 빛의 시어터에서 진행 중인 <베르메르부터 반 고흐까지, 네덜란드 거장들>은 요하네스 베르메르, 렘브란트 반 라인, 빈센트 반 고흐 등 네덜란드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빛과 음악, 디지털 기술을 통해 재해석한 몰입형 예술 전시다.
광화문에서 꽃놀이를? 53m 대형 미디어월 전시 ‘개화’ 오픈
광화문에서 꽃놀이를? 53m 대형 미디어월 전시 ‘개화’ 오픈
2024. 04. 03 10:06 문화/생활
서울시는 오는 6월 30일까지 광화문 광장 해치마당 미디어월에서 2024년 첫 번째 미디어아트 전시를 선보인다고 밝혔다. 따스한 봄볕 아래 이색적인 꽃놀이가 펼쳐진다. 서울시는 오는 6월 30일까지 광화문 광장 해치마당 미디어월에서 2024년 첫 번째 미디어아트 전시를 선보인다고 밝혔다. ‘개화(開花)’를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2D 애니메이션, 3D 그래픽 분야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킵어스위어드(KEEP US WEIRD), 커스텀×스튜디오(Custom×Studio)와 김성공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광화문 광장의 또 다른 이면, 땅속의 싹을 발견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순간의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특히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부터 해치마당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펼쳐지는 53m 대형 미디어월이 화사한 봄빛을 담은 미디어 아트로 표현돼 눈길을 끈다. 이외에도 해치마당 미디어월에서 새로 단장한 서울시 캐릭터 ‘해치와 소울프렌즈’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소개와 각 작품에 대한 설명은 ‘미디어아트 서울’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확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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