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30 건 검색)
- [속보]경찰, 김영호 통일부 장관 소환 조사
- 2024. 12. 22 15:37사회
-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16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전날 김영호 통일부 장관을 조사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로써...
- 계엄 국무회의 참석한 김영호 장관 “무거운 책임감”…‘통일 독트린’ 표류 불가피
- 2024. 12. 10 14:58정치
- ... “국민께 송구” 지난 3일 계엄 심의 국무회의 참석 ‘자유·인권’ 가치 바탕한 통일 독트린 타격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위원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 윤석열 탄핵 정국
- [경향포토] '8.15 통일 독트린' 브리핑하는 김영호 통일부장관
- 2024. 08. 16 14:05정치
-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8.15 통일 독트린'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08.16. 정지윤 선임기자
- 조태열 “핵무장은 정부 입장 아니다”…김영호 “업무보고 자료 논란, 유감”
- 2024. 07. 17 19:31정치
- ... 의원의 질의에는 “그렇지 않다. 주한미군은 한반도 문제에 집중하게 돼 있다”라고 말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포츠경향(총 51 건 검색)
- 고유진·모세·김영호 등 최정상급 아티스트들이 뭉쳤다···비온후, 7일 캐럴송 발매
- 2023. 12. 06 19:41 연예
- JG STAR 뮤직 프로젝트 그룹 비온후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첫 음원 출시를 예고했다. 비온후는 오는 7일 오후 6시 각종 음원사이트를 통해 크리스마스 캐럴 ‘Oh Holy Night’(오 홀리 나이트)를 발매한다. ‘Oh Holy Night’는 플라워의 보컬 고유진, 몽니의 보컬 김신의 등 대한민국 대표 록발라드 보컬들을 비롯해 가수 모세, 재즈 보컬 양지, 싱어송라이터 송시현, 소리꾼 김시원, 신인 천건예까지 각양각색 보이스 컬러를 가진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Oh Holy Night를 통해 저마다 매력은 물론, 아카펠라부터 재즈까지 지루할 틈 없는 편곡과 화려한 보컬로 올 연말 감성을 책임질 예정이다. 비온후는 잃어버린 무대를 직접 찾아다닌다는 콘셉트로 2022년부터 결성된 뮤직 프로젝트 팀이다. MBN ‘보이스킹’ 우승자 리누와 가수 김용진, 배우 김영호를 주축으로 다양한 가수들과 함께 버스킹 공연을 진행해왔다. ‘Oh Holy Night’는 비온후의 첫 정식 음원인 만큼,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뭉쳐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 기대된다.
- 에스페로X김호중 부른 ‘Endless’, 음원 강자 유미-이우-배우 김영호까지 커버 동참
- 2023. 01. 18 17:19 연예
- 포켓돌스튜디오 크로스오버 그룹 에스페로(Espero)와 김호중이 함께한 ‘Endless(엔드리스)’ 커버 열풍이 불고 있다고 소속사가 18일 전했다. 배우 김영호와 음원 강자 가수 유미와 이우, 서울은 각종 SNS를 통해 에스페로와 김호중의 ‘Endless’ 커버 영상을 공개해 누리꾼들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영호와 지난해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 ‘사랑은,,,죽었다’를 발매한 가수 유미는 강렬하고 호소력 짙은 보이스로 ‘Endless’를 열창해 보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가수 이우와 서울 또한 자신만의 독보적인 음색을 자랑하며 음악 팬들의 귀호강을 책임졌다. ‘천둥호랑이’ 창법의 주인공 권인하, 가수 리누와 김용진 등 다양한 가수들이 에스페로와 김호중의 ‘Endless’ 커버에 참여해 온라인상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김호중이 특급 지원에 나선 에스페로는 지난해 말 타이틀곡 ‘Endless’로 데뷔했다. 앨범 발매 5일 만에 크로스오버 그룹 최초 멜론 TOP100 차트인, 지난 15일 오전 8시 기준 64위를 차지하는 등 ‘목소리 천재’ 답게 앨범 발매 한 달째임에도 여전히 음원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팬들 반응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에스페로는 오늘(18일) 김호중과 함께 네이버 NOW.(나우)에서 ‘Espero winter Romance concert with Kim Ho Joong’ 스페셜 쇼를 개최, 연이어 네이버 바이브 파티룸까지 진행해 팬들과 소통에 나설 예정이다. 에스페로x김호중의 ‘Endless’ 커버 영상은 각 아티스트 SNS에서 볼 수 있다.
- 김영호, 절친 김태원 디스 “본인이 생각 많은 줄 알아” (불후의 명곡)
- 2022. 08. 20 18:28 연예
- KBS2 방송 캡처 ‘불후의 명곡’ 김태원 절친 김영호의 디스가 폭발했다. 20일 오후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는 아티스트 송골매 2부가 이어졌다. 이날 2020년 작곡가 조영수 편에서 우승 후 2년 3개월만에 송골매 1부 최종 우승을 가져간 몽니는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김신의는 “너무 기분 좋다. 무대에서 재미있게 놀았는데 상까지 주시니까 눈물 날 뻔했다. 더 기분이 좋았던 건 배철수 선배님께서 트로피를 주시면서 ‘야 그래도 밴드가 우승하니 좋다’라고 하셨다. 형~”이라고 말했다. KBS2 방송 캡처 콩트를 선보이는 김신의 모습에 김태원은 “열심히 사는 거지 뭐”라고 덧붙여 폭소케 했다. 송골매 2부 가장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게 된 사람은 데뷔 37년 차 후배 가수들의 롤모델 부활이다. 이찬원은 “김영호 씨가 김태원 씨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고요?”라고 물었다. 이에 김영호는 “그렇게 각별하진 않고요. 술 먹고 만나서 친구 하기로 해놓고 다음 날 까먹었더라. 그래서 친구가 됐다. 생각이 별로 많이 없는데 생각이 많은 줄 안다”라며 김태원을 디스해 웃음 짓게 했다. 한편 KBS2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은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10분에 만나볼 수 있다.
- 여홍철·심권호·김영호 등 국가대표 메달리스트·전문체육인 100인 이재명 지지
- 2022. 02. 17 21:17 스포츠종합
- 임오경 의원실 제공국가대표 메달리스트·전문체육인들이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임오경 국회의원(민주당 선대위 직능본부 체육위원장)에게 이재명 후보 지지선언 명부를 지난 15일 전달했다고 밝혔다. 지지선언에는 직능본부 체육위원장 오경 국회의원과 직능본부장 김병욱 국회의원, 박상현 직능본부 부본부장을 비롯해 체육위원회 조재기 공동위원장, 여홍철(’96 애틀란타올림픽 체조 은메달리스트), 심권호(’96 애틀란타올림픽 / ’00 시드니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영호(’00 시드니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김광선(’88 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장성민(’20 도쿄올림픽 럭비 국가대표) 등 대한민국을 빛낸 국가대표 전문체육인들이 참석했다. 지지선언에 참석한 국가대표 메달리스트·전문체육인을 대표하여 이병훈 전 프로야구 선수, 정민경 현 수영 국가대표 선수는 지지선언문을 통해 “치열한 현장 행정경험과 과감한 돌파력을 가지고 있는 이재명 후보는 체육계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데 가장 최적화된 대통령 적임자”라고 밝혔다. 특히 “과도기에 처해있는 체육 분야 현안들을 정의롭게 해결하고, 국민들이 스포츠를 더욱 가깝게 누리는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할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임오경 의원에 지지선언 명부를 전달했다. 임오경 직능본부 체육위원장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국민의 지도자로 성장해온 이재명 후보의 인생역정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늘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온 체육인들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강조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지지선언이 진취성, 혁신성, 도전정신을 두루 갖춘 이재명 후보가 3월 9일 승리하여 4기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 밝혔다.
- 임오경여홍철심권호김영호김광선
주간경향(총 2 건 검색)
- [원희복의 인물탐구]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영호 ‘승리한 전봉준’ 꿈꾸는 지략가·행동가(2016. 12. 19 17:18)
- 2016. 12. 19 17:18 사회
- 1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순간, 국회 앞 시위대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 국회 앞에는 트랙터 10여대가 시위에 가담하고 있었다. 경찰의 집요한 저지망을 뚫고 여의도까지 ‘입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시위대를 지휘하던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은 “시위대는 이구동성으로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했다”면서 “웬만하면 이제 돌아가자고 했을 텐데, 광장의 촛불을 이어가야 한다고 했을 때 시민들의 정세·역사인식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은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을 떨쳐내는 시작점으로, 조그만 관문 하나를 넘은 것”이라고 말했다. ‘트랙터·황소 시위대’로 큰 주목 받아 이번 하야시위에서 트랙터가 도로를 메운 ‘전봉준 투쟁단’ 시위와 청와대 앞 효자동에 등장한 황소를 탄 시위는 시위대의 큰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번 하야시국의 결정적 인물인 백남기 농민은 바로 전농 회원이다. 30만 회원의 전농은 사실상 이번 하야시국의 핵심이었다. 김 의장 역시 경찰에 맞아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사진으로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위 순위에 올랐다. “120년 전 동학농민혁명에서 전봉준 장군이 내건 척양·척외·보국·안민 네 가지 기치는 지금 우리 현실과 너무나 유사하다. 지난달 15일 전남 해남과 경남 진주에서 출발한 전봉준 투쟁단은 지역의 농민·시민과 토론을 하며 서울로 올라왔다. 경찰은 그동안 트랙터와 농기구 차량의 안전을 배려했는데, 경기도에 들어서자 돌변했다. 트랙터도 안 된다, 차량 깃발을 떼라, 실은 벼와 짚단을 내리라며 농민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도 경찰의 채증 카메라에 맞아 머리가 찢어졌다.” 법원이 트랙터의 서울시내 진입을 허가하지 않았나. “그렇다. 법원이 허가했는데, 경찰이 막무가내로 막았다.” 이번 촛불시위 때 경찰은 과거와 달리 법원이 허가한 시위 범위를 지켰다. 그런데 법원이 허가한 농민 시위를 왜 막았을까. 농민이라 우습게 봐서일까, 아니면 폭력적이라서 그랬을까. “(허~허~허)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350㎞를 달려 서울로 올라오며 단 한 번의 폭력적 불상사가 없었다. 그분들(경찰)이 워낙 농민들에게 지은 죄가 많아 겁을 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죽인 것 말인가. “경찰이 농민을 때려 죽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05년 쌀 개방 투쟁 때 전용철 열사, 홍덕표 노인도 경찰이 방패로 때려죽였다. 그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하고, 경찰청장이 물러났다. 그것은 조그만 부분일 테고…, 지난해 백남기 선생을 물대포로 죽였다. 수십 년 동안 농민들에게 양보만 하라고 했으니… 분노한 농민들이 무서웠겠지.” 경찰만 농민을 우습게 봤을까. 며칠 전 모 신문에서 이번 촛불혁명에서 ‘숨은 영웅들’ 6명을 소개한 적이 있다. 광화문에서 사회를 본 시민단체 관계자와 노래를 부른 가수 등이다. 이들을 영웅이라고 부르기도 뭐하지만 그들이 진정한 이번 촛불혁명의 주역일까. 물론 진정한 평가는 한참 후 정치학자나 역사가들의 몫이다. 전농의 한 관계자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10월 말까지 민중총궐기에 참여하지 않다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분위기가 확 바뀌니까 민중총궐기에 참여하겠다고 왔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예정된 계획이 있어 이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민중총궐기는 지난해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1년여 계속됐다. 이들은 민주노총과 전농을 선두로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학생·빈민·통일운동 세력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언론 보도로 분위기가 반전된 11월 초에야 거리로 나왔고,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2차 민중총궐기 때까지 촛불을 들지 않는 것이 당론이었다. “전농과 민노총이 촛불시위 이끌어” 시사평론가(소설가) 김갑수씨는 “이번 촛불시위에서 가장 앞서 투쟁한 세력은 전농과 민주노총, 그리고 이를 음지에서 지원한 민중연합당”이라면서 “한국의 속물적인 뉴스매체들은 가난하고 학벌 없는 그 사람들을 철저히 외면한다”고 질타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이번 촛불시위의 일정과 방법을 민주노총에서 브리핑했지만, 기자들은 노조에 대한 평가에 인색했다. 진보를 표방하는 시민단체나 야당, 언론도 마찬가지다. 민중총궐기를 처음부터 지켜본 문성근 ‘시민의 날개’ 이사가 이번 촛불시위에서 노조의 역할과 달라진 시민 인식을 평가한 것이 눈에 띌 뿐이었다. 김 의장은 지난해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가 계획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불법으로 몰린 전교조를 비롯해 전농, 시민·학생·통일단체는 물론 역사왜곡에 항의하는 역사학자까지 모였다. 그때 우리는 ‘한국 사회가 총체적으로 중병에 걸렸다, 그 중병은 각각 고쳐서는 안 된다, 각자 투쟁하면 백전백패다’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주도로 모든 세력이 단일대오로 대한민국 중병과 맞서 싸우는 민중총궐기에 동의했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가 그것이다. 그때 우리 전농의 백남기 선생이 물대포에 맞아 죽은 것이다.”(그는 이 대목에서 약간 목이 메었다) 이후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구속됐다. 경찰이 불교의 본산인 조계사까지 들어가 한 위원장을 체포하려 했던 것은 당시 민중총궐기가 그만큼 정권에 충격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김 의장은 “지난해 계획된 민중총궐기는 올해, 그리고 내년 대선 전까지 치밀하게 계획돼 있다”면서 “그러나 철저하게 평화적 시위로 계획했는데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백남기 선생이 숨졌다”고 말했다. 민중총궐기 국면은 백남기 농민으로 옮겨갔다. 전농은 서울대병원 앞에서 국가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를 계속했다.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자 경찰의 압수수색영장 집행에 맞서 45일간 처절하게 백남기 농민을 지킨 것도 이들이다. 이 국면에서 백남기 농민이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는 사망진단서는 국민을 분노케 했다. 여기에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가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11월 5일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으로 국민의 분노가 절정에 이르렀고, 이는 일주일 후인 12일 광화문에 100만이 모인 2차 민중총궐기로 이어졌다. 그는 인터뷰 내내 흥분하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했다. 경찰과 맞서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구호를 외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이는 30만 회원을 대표하는 의장으로서 당연할 것이다. 김 의장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 기자가 “사회, 특히 언론이 많이 배우지 못한 농민을 무지렁이라고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큰소리로 웃으면서 “역사의 대하가 흐르는데 이 산골짝, 저 산골짝 물을 따지면 뭐하나”라면서 “다만 역사를 바로 보고, 부단히 민중·시민과 함께 싸워서 역사 발전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987년 6·10항쟁 때도 정치권이 역사를 왜곡시켰고, 이번에도 야당은 광장에 나오지 않다가 뒤늦게 떼밀려 나왔다”면서 “정치권에 시민·민중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1957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천안공고 기계과를 나왔다. 집안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때부터 국방부 장학금을 받아 졸업 후 군대에서 67개월간 의무복무를 했다. 1981년 중사로 제대한 그는 뭘 할까를 고민하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1986년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해 농업과 사회구조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로 구성된 ‘전봉준 투쟁단’이 트랙터를 몰고 11·12 민중총궐기에 가담하기 위해 서울로 이동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가톨릭농민회 가입해 사회구조 공부 1990년 3월 13일 수세 폐지를 위한 여의도 농민시위를 모태로 그해 4월 23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출범했다. 그는 전농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했다. 그리고 충남도 연맹 의장 4년을 거쳐, 전농 부의장 4년, 그리고 2014년 2월 드디어 그는 전농 의장에 선출됐다. 그리고 지난 1월 연임됐다. 그는 지금도 고향에서 파프리카 시설농업(비닐하우스)을 하고 있다. “수입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농업은 다 비슷하다, 어렵다”고 말했다. 농민들이 박근혜 정부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뭔가. “박근혜 정부에서 농업정책은 아예 없었다. 농민들은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적 개방농업 정책에 일방적으로 희생됐다. 지금은 식량 주권마저 무너졌다. 쌀금(쌀값)이 30년 전으로 떨어져 개 사룟값보다 못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지금 농촌에는 젊은이가 없고, 경로당이 됐다. 이런 개방농업 정책의 잘못을 폐기하라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주듯이, 농민에게도 최저생산비를 보장해야 한다. 특히 식량정책은 5000만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 말고, 통일이 됐을 때 7000만~8000만 인구를 감안해 펴야 한다.” 우리쌀 지키기 범국민운동을 제안했다. 쌀이 남아 처분하기 곤란하다고 할 때가 언제인데, 쌀이 부족한가. “우리가 1년 동안 먹는 쌀이 400만~420만톤이다. 그동안 이 정도를 생산해 겨우 자급을 했다. 그런데 최근 3년간 자급률이 80%로 떨어졌다. 부족분은 외국에서 수입했다. 매년 41만톤을 수입한다. 의무수입도 중단해야 한다.” 인구 대비 전체 농민 비율은 낮은데, 너무 많은 요구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농민 비중이 전체 인구의 5~6% 정도 된다. 내가 먹고 입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내가 먹고 입는 것을 만드는 농민과 노동자를 한 번 생각해보자.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물론 화폐와 물물이 올바르게 교환되는지는 또 다른 경제의 문제이다. 게다가 농민 문제는 꼭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비정규직, 실업청년, 노인문제 등 이 모두가 한 집안의 문제이다.” 김 의장은 19대 총선 때 통합진보당 후보로 홍성·예산에서 출마하기도 했다. 당선보다 농업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의 선거구호는 ‘쌀값, 배춧값, 솟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출마했다’였다. 그는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받기 위해서는 정치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120년 전 동학농민혁명의 전봉준을 자주 언급한다. 전봉준 투쟁단도 그런 맥락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새로운 시대는 무엇일까. “전봉준 장군이 내세운 12개 폐정 개혁안 중에는 ‘노비문서를 불태워라’ ‘청상과부의 재혼을 허가하라’는 내용이 있다. 이는 뿌리 깊은 봉건체제를 깨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 농민은 개방농업 정책으로 고사되고, 노동자는 외환위기 이후 소모품·일회용품으로 전락했다. 박근혜 정권을 감싼 새누리당, 여기에 나팔수 역할을 한 보수언론과 종편, 남북 분단을 이용해 호의호식하고, 옳은 말을 하면 종북으로 몰고, 이에 ‘나는 종북이 아니다’라고 바보같이 자기검열을 했다. 그러는 동안 최순실의 청와대 농락이 버젓이 자행됐다. 그런 한국 사회의 근본적 적폐를 떨쳐내야 한다.” 그는 제2의 전봉준을 꿈꾸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전봉준처럼 미수에 그친, 불행한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그가 추구하는 것은 ‘승리한 전봉준’이다. 그는 치밀한 지략가이면서도 행동가 모습을 보였다. 기자가 마지막으로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한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아니다”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 원희복의 인물탐구
- [신동호가 만난 사람] 12번째 ‘흥부기행’ 김영호 유한대학 총장(2010. 05. 06 10:30)
- 2010. 05. 06 10:30 사회
- ㆍ“사회책임 자본주의가 흥부자본주의” 흥미로운 여행을 했다. ‘흥부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전북 남원과 전남 곡성 등지를 돌아보았다. 희한하게도 예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흥부기행은 제비가 돌아오는 철을 맞아 숨어 있는 ‘흥부’를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한다. 참가자는 ‘제비’가 된다. 곡성에 있는 발아현미 전문업체 ㈜미실란의 이동현 대표, 순환영농을 실천하는 남원 새벽영농조합의 양기운 관장, 관상어를 생산하는 전북 완주 물고기마을의 류병덕 회장 등이 이번 여행에 참여한 80여 명의 제비가 만난 흥부였다. 친환경, 혁신을 통한 대박 실현, 나눔과 실천과 불유(不有) 등 이른바 ‘흥부정신’으로 성공을 꿈꾸는 이들이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세계는 지금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 탄소경제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지속가능발전(ESSD), 사회책임(SR), 저탄소 등 새로운 개념이 힘을 얻어 가고 있다. 흥부기행은 이런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동북아평화센터(이사장 김영호 유한대학 총장)가 매년 봄에 실시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흥부기행이 외환 위기 이전인 1997년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햇수로 14년째이고 횟수로 12번째다. 연인원 1000명 가까운 숫자가 이 여행에 참가했다. 지난 4월 24일부터 1박2일 동안 기자도 그 일원이 됐다. 흥부기행을 제안하고 주도한 김영호 유한대학 총장을 4월 28일 서울 종로구 내수동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실에서 따로 만났다. 흥부기행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입니까. “흥부전이라고 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의 실제 무대가 발견됐다는 게 그 당시 신문에 났어요. 흥부 이야기가 실화를 배경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알게 된 거죠. 그곳이 바로 흥부전에 나오는 그대로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곳, 남원이잖아요. 그래서 가게 됐는데 사람이 꽤 많아서 흥부기행이라고 이름을 붙인 겁니다.” 그때부터 흥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한 겁니까. “사실 그 전에는 제가 ‘흥부 죽이기’에 앞장섰어요. 한창 근대화니 경제성장이니 자본 축적이니 하던 시대였으니까요. 경제 발전에 있어서 성취 동기라는 개념이 굉장히 강조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근대주의의 물결 속에서 저 역시 근대주의적 입장에서 흥부전을 비판한 거죠. 흥부는 자기 재산도 못 찾아먹고, 책임도 못 질 아이를 마구 낳고, 박에서 뭐가 나오는 식의 신비주의적·타력의존적 방법으로 부자가 됐어요. 차라리 놀부가 나은 거죠. 그래서 이런 것은 교과서에서 빼자는 이른바 ‘흥부 죽이기’ 운동을 제가 최초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흥부를 재발견하게 됐습니까.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근대주의를 끌고 온 박정희·정주영·이병철 모델, 저는 이걸 ‘박·정·이 자본주의’라고 하는데 여기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일었어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놀부야 말로 졸부이고 천민자본주의의 표본인 거죠. 그때부터 놀부를 비판하기 시작했어요.” 김 총장은 경북대 교수 시절 어느 강의에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을 ‘돌 보기를 황금같이 하라’고 잘못 말하고 말았다. 학생들이 폭소를 터뜨렸을 때서야 말실수한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그의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차돌멩이에서 반도체가, 은행잎에서 징코민이, 게 껍질에서 키토산이 나오잖아요. 이걸 문학적으로나 상징적으로 표현하면 박에서 대박이 터지는 것이죠. 근대주의 입장에서 흥부를 죽였다가 말실수를 계기로 포스트모던 입장에서 흥부를 재검증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하나 다 재해석이 됐어요.” 어떻게 재해석을 했습니까. “예를 들면 제가 환경문제에 차츰 눈을 뜨면서 흥부전이 환경론적으로 참 탁월하다는 걸 알았어요. 뱀에 쫓기는 제비를 구해 주면서 뱀을 죽이지 않고 꾸짖어 내쫓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뱀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것이죠.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에서 밭을 파헤치는 두더지를 향해 ‘너는 너대로 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여기는 오지 마라’고 한 것과 같은 겁니다. 자연생물계의 구성원으로서 생명 간에 평화와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환경 책임의 전형을 보여 주는 것이죠.” 현재의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실물 생산이 아니라 부동산이나 금융을 통해 부를 쌓는 ‘놀부자본주의’에서 비롯됐다는 게 김 총장의 주장이다. 최근 일고 있는 여러 가지 개혁의 흐름도 결국 놀부자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세계 경제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을 ‘흥부자본주의’라고 이름을 붙였다. “2001년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지금의 자본주의, 즉 신자유주의가 극복되고 새로 나타날 자본주의의 상으로 1960년대의 자본주의를 그리고 있어요. 그건 틀렸다고 봐요. 1960년대 자본주의는 자연을 파괴하고 이산화탄소(CO2)를 배출해 지구를 망하게 하는 자본주의예요. 그보다 더 전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저는 결국 흥부자본주의라고….(웃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새로운 책임의 시대’라고 했잖습니까.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 개혁 기조도 월가가 책임을 지라는 것이죠. 사회적 책임, 이게 키워드예요. 세계적으로 사회책임자본주의가 앞으로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흥부한테서 사회책임 정신을 발견한 것이로군요. “아까 흥부가 자기 재산도 못 찾아먹었다고 욕했잖아요. 왜 못 찾아먹었겠어요. 동네 궂은일을 도맡아 하느라고 그랬어요. 요즘 말하면 시민사회(NGO)인 거죠.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이 앞서니까 자기 재산도 못 챙기고, 가족에 대한 책임 때문에 심지어 매품까지 팔지 않습니까. 부자가 된 다음에는 ‘대문을 활짝 열어라, 내가 가난을 구제하겠다’고 합니다. 전에는 무책임의 표본으로 비판했는데 다시 읽어 보니까 책임의 화신인 거죠.” 사회책임은 김 총장이 요즘 추구하고 전파하는 핵심 개념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사회책임투자(SRI), 사회책임소비(SRC), 사회책임노동(SRL), 사회책임교육(SRS), 그리고 이런 기업 제품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고 우선적으로 조달하는 사회책임정부(SRG) 등을 연결해 ‘SR시스터스’라고 명명했다. 현재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 한국CSR표준화포럼 회장 등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누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흥부를 발현하는 마음속에 있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모습을 한국이 세계에 먼저 내놓고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김 총장께서 만든 용어인 SR시스터스도 결국 흥부정신과 일맥상통하는군요. “착한 일을 해서 결과적으로 득을 본 것이 흥부의 삶입니다. 흥부전에는 우연과 신화적 요소가 개입되지만 시스템으로 그렇게 만드는 것이죠. 제가 정부에 있을 때 IT(정보기술)·BT(생명공학기술)라는 말이 없었어요. 여기에 NT(나노기술)·ET(환경기술)·CT(문화기술)를 묶어서 5T라고 하고, ‘T브러더스가 한국을 구제해 줄 것이다’고 했어요. 그 다음에 SR브러더스라고 하니까 어떤 여성 참여자가 ‘이번에는 시스터스라고 합시다’라고 했어요. 좋다고 했죠. 그래서 ‘T브러더스와 SR시스터스가 선진 한국을 만들어 줄 것이다’라고 했던 거죠. SR시스터스가 잘 연계된 것이 SR시스템이고, 그게 바로 시장경제로서는 SR자본주의입니다. 그런데 SR자본주의, 사회책임 자본주의라고 하면 좀 어렵잖아요. 일반인에게는 흥부자본주의라고 하면 가장 쉽지요.” ‘착한 기업’이 돈도 많이 번다는 논리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지난해 여름 영국 에딘버러에 있는 애덤 스미스 무덤에 갔어요. 스미스의 위대한 발견은 사람들의 이기적인 행위가 이타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었죠. 지금도 옳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스미스가 하려다가 못한 게 이타적인 행위에 대한 것이었어요. <도덕감정론>이라는 책까지 썼지만 경제적인 논리로는 못 풀었어요. 요즘 말하는 사회책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타적인 행위를 했는데 그것이 이기적인 결과가 된다는 것이죠. 예컨대 어떻게 하면 손님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서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이타적 고민을 하는 레스토랑에 손님이 더 많이 온다는 것이죠. 저는 이기적 행위를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타적 영향을 준다는 스미스의 논리와 지금 말한 것처럼 이타적 행위를 했는데 그게 결국 자기한테 가장 이익이 되는 이치, 이 두 가지가 새끼줄처럼 꼬인 것이 경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흥부기행 때 강연에서 흥부자본주의를 뇌과학으로 설명하려다가 시간이 없어서 생략했는데, 그 이야기를 좀 해주십시오. “예를 들어 100만원이 있다고 합시다. 그걸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보다 좋은 일에 쓰는 것이 뇌의 똑같은 부위에 똑같은 밝기 또는 그 이상의 빛을 낸다는 실험 결과가 있어요. 100만원을 기부하면 그만큼 번 것과 똑같은 만족을 얻는다는 거죠. 덤도 있습니다.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리턴(return)의 축적을 평범한 말로 하면 사회자본이고 좀 다른 표현으로는 선의 축적이라고 하죠. 저는 영적 자본의 축적이라고 합니다. 미국 하버드대 정신의학팀에서 이걸 ‘테레사 효과’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흥부는 제비를 도와 준 그 자체로서 테레사 효과를 얻었어요. 요즘 뇌 연구에 의해 증명이 된 거죠. 거기에 덤으로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오고, 흥부는 그걸 정성으로 키우잖아요. 이 과정에서 대박이 터지는 거죠.” 김 총장은 일본에서 알아 주는 경제학자다. 1988년 일본어판으로 낸 <동아시아 공업화와 세계 자본주의>는 90개 대학에서 교과서로 채택됐다. 그가 체계화한 신흥공업국(NICs) 경제 발전 모델은 일본의 많은 논문에 인용됐다. 1997년 일본 경제학자들이 그를 스미스 이후 세계 100대 경제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글로벌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NGO세계대회인 ‘대구라운드’를 주도했고, 2000년 산업자원부 장관 시절에는 판공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외국의 고급 기술인력 유치를 위한 골드카드제를 실시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와 정책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학계에 있으면서 NGO의 역할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 까닭이 궁금합니다. “저는 시민사회 개념에 상당히 기울어져 있어요. 시장경제가 신자유주의로 너무 나가면 시민사회가 양극화하고 무너져요. 시장경제에 지배되는 시민사회가 아니라 시민사회에 지배되는 시장경제, 관료경제, 금융경제, 군대여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재벌에 지배당하는 시장경제이고, 그 시장에 지배당하는 시민사회죠.” 특히 현 정부 들어서 시민사회가 많이 위축되고 있고, 저탄소 녹색성장이라고 하지만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할 얘기가 굉장히 많은데 그 말을 하자면 또 한 시간이 가요. 그런 데 대해 요즘 관심이 많습니다.” 간단하게라도 말씀해 주지 않겠습니까. “지금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한 문제예요. ‘녹색’을 하면 새로 비용이 들거든요. 석유 쓰는 것보다 그린 에너지를 쓰는 게 최하 5배 내지 20배 비쌉니다. 그러면 경제가 성장하는 게 아니라 저성장을 하는 거죠. 녹색을 하면 성장한다고 하면 누가 안 하겠어요. 우리가 길을 못 찾고 있는 거예요. 전 세계가 그렇습니다. 현명하게 찾아 나가는 나라가 덴마크 및 독일과 같은 나라이고, 의외로 중국이 잘 찾고 있다고 해요. 한국은 녹색 투자를 굉장히 많이 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은 4대강에다 하죠. 참, 그린이라는 뜻을 사전에 찾아 보십시오.” 인터뷰 도중에 인터넷으로 ‘green’의 뜻을 찾아보았다. ‘속이다’ ‘기만하다’라는 뜻이 있었다. 김 총장은 “지금 녹색성장이 그거예요. 그렇게 말하면 너무 자극적일까요”라며 웃었다. “진정한 녹색과 경제의 길은 굉장히 좁은 길입니다. 좁은 길을 찾아 나가는 지혜로움, 그런 눈을 우리가 못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만 해도 준비를 많이 했잖아요. 녹색기술, 그린 테크놀로지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린 준비를 너무 못 했잖아요. 그런데 녹색성장이라고 떠드니까 웃기는 거죠. 우리나라가 IT 대국이 아니고 IT 소비대국이라고 요즘 그렇듯이 녹색도 마찬가지죠. 정부가 녹색성장의 의미를 알고 써먹는지 그것조차도 모르겠어요. 조금 신랄한 비판을 하면 못살게 굽니다.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결국 흥부자본주의, 흥부경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흥부 이야기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중국·일본·몽골·태국, 심지어 톨스토이의 소설 가운데도 있습니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어디나 있을 수 있는 스토리예요. 그런데 현대의 금융자본주의나 공해자본주의, 한마디로 놀부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비전은 한국의 흥부전이 가장 잘돼 있어요. 한국인의 마음속에 그게 가장 큰 거예요. 따라서 우리가 누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흥부를 발현하는 마음속에 있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모습을 한국이 세계에 먼저 내놓고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선진국을 따라가는 선진화는 그만하고 세계 속에서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해요. 무너지는 베네치아·두바이·월스트리트를,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무너진 일본 모델을 너무 따르고 있고요. 저는 지금 선진화 소리를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돈키호테 모델도, 로빈손 크루소 모델도, 카우보이 모델도 아닙니다. 사무라이 모델도, 왕서방 모델도 아니죠. 저는 흥부 모델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흥부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것이지만 한국이 가장 전형적이니까 한국이 그런 데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나이 값도 못하고 이런 허황된 꿈을 꾸고 있지요, 허허.”
- 신동호가 만난 사람
레이디경향(총 5 건 검색)
- 나의 노래는… 흘러가는 대로, 김영호
- 2013. 05. 02 17:58 연예
- 첫 문장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배우 김영호는, 이라고 썼다가 가수 김영호는, 이라고 고쳐 썼다. 다시 연기를 하는, 이라고 썼다가 노래를 하는, 이라고 바꿨다. 그와의 인터뷰를 적어둔 내용들을 반복해서 읽다가 결국 이렇게 쓴다. 이야기하는, 이라고. 돌이켜보면 그는 언제나 묵묵하게 살아감을 이야기해왔다. 화려하진 않지만 멈추지 않았고, 세련되진 않지만 자신만의 색을 담아서 그것은 때론 음악이었고, 연기였고, 그림이었고, 시였고, 사진이었다. 외로웠지만 그래서 지속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흘러 또 지금의 이야기를 펼쳐 보일 수 있다. 노래로 사연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 배우 김영호(47)가 오래 품어온 꿈을 이뤘다.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미니 앨범을 발매하며 공식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 것. 대중에게는 배우로 알려졌지만 20대 시절 고향 청주에서 꽤 잘나가는 ‘인디 뮤지션’으로 살았고, 데뷔 이후에도 틈틈이 밴드 활동을 했던 그에게 이번 앨범 발매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의 수순일지 모른다. “오래전부터 음반을 내고 싶었어요. 평소에도 늘 노래를 했고, 언젠가는 정식으로 앨범을 만들어봐야겠단 생각을 갖고 있었죠. 저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음반을 냈어?’가 아니라 ‘응, 드디어 나왔네’라는 반응이더라고요. 제 노래를 들으면서 계속 듣고 싶다고, 앨범을 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던 사람들이거든요. 그동안은 소속사 등 제작 문제도 있었고, 또 영화나 드라마 일정 때문에 시간이 나질 않았어요. 이번에 작품도 미뤄지고 여러모로 여건이 맞아 결심하게 된 거죠.”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서부터는 일사천리로 작업이 진행됐다. 사실 음악은 언제나 그의 곁에 있던 터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수록곡 녹음 또한 한 곡당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지독한’ 완벽주의자로 통하는 스태프들이 두세 번만에 “오케이”를 외쳤을 정도로 탄탄한 노래 실력 덕분이었다. 여기에 음악계 실력파 지인들이 지원 사격에 나섰다. 특히 그와 절친한 사이인 그룹 부활의 김태원은 타이틀 곡 ‘그대를 보낸다’를 선물했다. 김태원 특유의 서정적인 선율 위에 그의 강렬하면서도 애절한 목소리가 더해져 듣는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깊이 있는 곡이 탄생했다. “제가 (김)태원이한테 곡 하나만 달라고 부탁했어요. 태원이 노래는 그만의 에너지가 있어요. 그동안 주로 미성의 가수들이 그 에너지를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하면, 저는 좀 다르게 불렀어요. 음, 서럽다고 해야 할까. 제 안의 감성을 녹여 저만의 표현 방법으로 내놓았죠. 태원이는 아무리 친해도 음악적인 견해만큼은 냉철한데, 듣고 나서 만족해하더라고요. 정말 좋다고, 앞으로 몇 곡 더 만들어줘야겠다고 말이에요(웃음).”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조합을 신기해하거나 의아해하지만, 김태원과 김영호는 서로를 ‘가장 잘 맞는’ 사람으로 꼽는 둘도 없는 사이다. 외모도, 성격도, 생활도 딱히 공통점은 없지만 우연히 알게 된 7년 전부터 지금까지 진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자주 만나 이야기하고 그런 것도 아니에요. 저는 친구들한테 전혀 연락을 안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서로 바쁘다 보면 1년씩 못 볼 때도 있었어요. 만나면 전 말수가 적어서 주로 듣고만 있는 편이고요. 하지만 정서적으로 잘 맞는 친구예요. 음악이라는 매개체도 있고요. 그 친구만큼 편한 사람이 없어요. 어떤 때는 같이 있으면서 한마디도 안 하고 그 친구는 기타 치고 저는 글 쓰면서 흥얼흥얼 노래하고, 그렇게 놀아요.” 영혼을 공유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통하는 친구의 곡을 비롯해 총 3곡이 실린 그의 첫 앨범 제목은 「색(色)」이다. 김영호라는 사람이 아티스트로서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색깔을 하나하나 진심을 담아 표현해냈다. 앨범 재킷에 커다랗게 자리한 ‘색’이란 글자는 물론 삽입된 사진과 담긴 글들 또한 그의 작품이다. 그만큼 온전히 자신을 담았다. 현란하진 않지만 울림 깊게, 이야기를 건네고자 했다. “배우가 앨범을 냈다고 하니까 ‘잠깐의 외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만든 프로젝트성 앨범 정도로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하지만 앨범까지 내가며 취미생활을 즐기기엔 제가 그리 여유로운 편도 아니고, 40대 중년 배우한테 누가 그냥 앨범을 내주겠어요?(웃음) 책임질 수 없는 음악을 하고 싶진 않거든요. 게다가 제가 이제 와서 스스로를 홍보해야 한다거나 가수 활동으로 뭔가 얻어야 할 게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아니면 즐기는 마음으로 제 노래를 들어주셨으면 해요.” 음악에 대한 자신의 오랜 애정과 진심을 담은 이번 앨범을 혹시나 누군가는 혼자만의 세상에 취한 어느 배우의 이벤트 정도로 여기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고유한 세계를 품고 있는 이 아름다운 노래들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가 닿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제 노래, 제 목소리의 특징을 꼽아보라고 하면 아마 ‘강한 남자가 토해내는 서러움’ 정도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노래를 기교 넘치거나 현란하게 부르는 편이 아니에요. 그냥 말처럼 툭툭 토해내는 식이죠. 그래서 노래를 듣고 있으면 머릿속에 그림이나 영상이 떠오른다고들 해요. 가사에도 더 귀 기울이게 된다고 하고요. 저는 노래로 이야기를 하고 감정을 전하고 싶었어요. ‘사연’이란 단어를 좋아하는데, 각자 노래를 들으면서 저마다 다른 사연을 떠올리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계속해서 사연을 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당기는 노래를 하고 싶어요.” 저는 세상을 무심하게 살아요. 연기도, 노래도 그리고 다른 많은 영감들도 다 그 비움 안에서 만들어져요 자신의 색깔이 묻어 있는 이 앨범을 내놓기까지, 돌이켜보면 꽤 많은 날들을 혼란스러워하고 방황하면서 보내기도 했다. 부족하고 모자라서 불만스러웠던 어린 시절도, 반항심에 가득 차서 세상과 다투던 성장기도, 고독하고 막막해서 몸부림치던 젊은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 동안 언제나 그를 위로하고 바로 설 수 있게 도와준 것이 바로 노래 음악이었다. “노래를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 순간만큼은 순수해지고 편안해지고, 또 뭔가 위안을 받는 느낌이 들거든요.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다 가슴속에 뭔가 서글픈 덩어리가 들어 있는지 음색이나 좋아하는 음악도 좀 슬픈 유형들이에요. 예전부터 김현식, 김광석, 정태춘 선배님 노래를 좋아하고 또 참 많이 불렀어요. 최근에는 바비킴 노래도 많이 부르고요.” 고향에서 음악 활동을 하던 20대 시절에도 그는 주로 무대를 찾아다니는 쪽이었다. 통기타 하나를 들고 다양한 무대에 올랐다. 노래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밴드도 만들고, 길거리 공연도 열었다. 사실 청주에서 노래하는 김영호의 인기는 대단했다. 팬클럽 인원도 4백 명 가까이 됐고, 창작곡들을 선보이는 콘서트를 열면 늘 매진을 기록했다. 7년씩 진행한 소년소녀 가장 돕기 길거리 공연도 언제나 호응이 넘쳤고, 그의 노래를 기다리며 찾아다니는 이들도 많았다. “노래 부르는 친구들이 모여서 하루에 몇 시간씩 거리 공연을 펼치곤 했어요. 그 시절 청주에 ‘언더 시장’을 개척한 셈이죠.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직접 작사·작곡한 음악들을 발표하기도 하고요. 그때 꽤 많은 노래들을 만들었는데 따로 남겨두질 않아서 좀 아쉽네요.”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그때부터 혼자서 화성악이며 작곡 등을 익혀 노래를 만들었다. 내 안에 쌓여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사연들을 꺼내 보이고 싶어서였다. 사실 김영호는 음악 외에도 다방면으로 재주가 뛰어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틈틈이 쓴 글과 사진을 엮어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동료 아티스트들과 함께 자선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가수활동으로 바쁜 요즘에도 그렇다. ‘영혼’으로 써 내려가는 글쓰기는 시나리오 작업에 집중하고 있고, 올가을로 계획하고 있는 사진전도 준비 중이다. 그야말로 종합 아티스트로서의 전방위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사실 제가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누구나 느낄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아마도 저는 많이 비어 있어서 또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전 세상을 정말 무심하게 살아요. 큰 욕심도 없고 조바심도 없어요. 영감은 굉장히 사소한 데서 오잖아요. 문득 지나친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눈길 닿은 자연에서….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갖고 살면서 힘들어해요. 버리면 초라해질까 봐 전전긍긍하면서요. 하지만 비워놓으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게 돼요.” 제가 저를 좋아하게 될 수 있는 날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는 혼자의 시간을 잘 즐기는 사람이다. 일과 관련된 것들을 제외한 시간은 오롯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세상의 풍경을 담아내는 데만 쏟아 붓는다. 필리핀에 가족을 보낸 ‘기러기 아빠’지만 쓸쓸하고 외로울 틈이 없다. 아빠를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는 큰딸은 그런 아빠의 삶을 지지하고 ‘멋있다’라며 응원을 보태주곤 한다. 비록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삶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동반자로 성장하고 있는 딸이 대견스럽고 고맙다. “딸들에게는 자상하고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해요. 늘 관심을 갖고 매사에 솔직하게 대하려 하죠. 또 제 삶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요. 앨범을 낸 것도 어쩌면 같이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지 모르겠네요. 딸은 워낙 어릴 때부터 제 노래를 들어서 그렇게 큰 감동은 없는 듯하지만(웃음), 그래도 제 노래가 대한민국 최고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워낙 자신을 잊어버리고 사는 편이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도 있다. 더 많이 얻고, 원하고, 서두르고, 표현해야 ‘잘’ 사는 것처럼 인정받는 세상에서 스스로 외로움에 빠져들고, 느긋하게 사유하고, 흘려보내며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무척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가 아닌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들을 찾아다니며 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연과 사람과 이야기하고 교감하고 싶다. “스스로 굉장히 만족하며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저는 아직도 제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세상에 보이는 내가 아닌 ‘본연의 나’는 그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아니까요. 저는 제가 저를 좋아하게 될 수 있는 날을 위해 살아요. 제가 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들은 스스로를 좋아하게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인 거예요. 좀 더 진지하고 진솔하게, 좀 더 순수하고 깊게 살아가고 싶은 거죠.” 그 과정 중 하나는 우선 올가을에 선보일 새 앨범이 될 듯싶다. 2011년 MBC-TV ‘일밤-바람에 실려’에서 호흡을 맞췄던 작곡가 하광훈과 함께 김영호의 또 다른 색을 담은 음악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연말에는 자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즐기고 어울릴 수 있는 콘서트와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이러한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그가 스스로를 좋아하게 되는 만큼 우리도 그에게 흠뻑 빠져들 것만 같은 낭만적인 예감이 든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액세서리 협찬 / 슈퍼드라이(02-546-7989) ■장소 협찬 /밀레니엄서울힐튼 오크룸(02-317-3234) ■스타일리스트 / 강난희, 이인우>
- 김영호 “미혼인 여자 감독님께서 틈만 나면 저를 벗기려 했습니다”
- 2010. 10. 01 16:29 연예
- 김영호는 착한 짐승남(?)이다. ‘남자’를 외치는 마초보다는 한 여자만을 위하고 사랑해줄 것 같은 우직한 소 같다. 그런 그가 영화 ‘여덟 번의 감정’에서는 세 여인을 차례로 만나는 바람둥이로 변신했다. 세 여자에 둘러싸인 남자 영화 ‘여덟 번의 감정’은 배우와 스태프 전원이 노 개런티로 참여해 8천만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완성됐다. 장편 데뷔작 ‘여름이 가기 전에’를 만든 성지혜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김영호(43)는 영화의 대사가 마음에 들어 출연하게 됐단다. “처음에 성지혜 감독을 소개받을 때 ‘시나리오는 좋은데 이걸 이해할 수 있는 배우가 몇 없을 거’라는 말을 들었어요. 저 역시 어려웠지만, 그 중에 ‘외계인이 내 렌즈를 빼앗아갔는데 어떻게 할까’라는 대사가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습니다.” 이 영화는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30대 중반의 종훈(김영호 분)이 세 여자와 만나면서 감정이 생성하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그렸다. 정적인 연기를 해오던 그에게 ‘바람둥이’ 역할은 변신이었다. “여자주인공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덕을 부리는 설정이지만 실제로 저는 절대 바람둥이가 아닙니다(웃음). 다만 황인영씨와 윤주희씨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복 받았다’는 생각은 했죠.” 짐승남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노출신도 꽤 있다. 살짝 귀뜸하자면 그가 발가벗고 폭포로 뛰어드는 신도 있다. “감독님은 제 몸이 좋은 줄 아세요. 아직 미혼이라 그런지 남자가 벗는 걸 좋아해서 틈만 나면 벗기려고 했습니다(웃음). 폭포신은 폭포를 보는 순간 여기서 뛰어들어야겠다고 생각해 스스로 벗고 뛰었어요. 그때도 감독님은 가까이서 찍겠다고 하셨죠.” 이 영화는 다행히 15세 관람 등급이 됐다. 김영호의 또 다른 얼굴 김영호는 연기 외에도 다방면에서 재능을 가진 배우로 유명하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한때 그는 록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고 시를 쓰기도 했다. 중고교 시절에는 아마추어 헤비급 복싱 선수였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미술 전시회를 연다. “사실 음악을 하면서 배우도 하게 됐죠. 그러다 더불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게 됐어요. 9월 26일에는 하정우씨 등 몇몇 연예인들과 함께 그림 전시회를 열 예정이에요. 12월에는 개인전을 하자는 제의도 받았고요.” 최근에는 ‘김현식 20주기 앨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스스로 꽤 다양한 성향을 갖고 사는 것 같다고 말하는 김영호. 때로는 섬세하고 때로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 그를 스크린이나 TV 브라운관이 아닌, 그림이나 책, 음악 무대 혹은 격투기 링 위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강은호>
- 김영호 “영화로 돈 못 벌어도 좋아...처음 연기 시작하는 기분”
- 2009. 11. 02 15:55 연예
- ㆍ영화 ‘부산’에서 본능에 충실한 캐릭터로 열연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영화 ‘부산’의 주인공 김영호가 그렇다. 외모에서는 선 굵은 남성적인 이목구비와 큰 체격 때문에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야기 몇 마디만 나눠봐도 가슴 깊이 따뜻한 인간미가 물씬 풍긴다. 섬세한 예술적인 감성에 썰렁하지만 귀여운 유머 감각까지 갖춘 남자다. 개런티 상관없이 영화 출연, 아파트도 팔 예정 김영호는 지금까지 남성미가 넘치지만 가슴은 따뜻한 휴머니스트 역을 주로 연기했다. 하지만 영화 ‘부산’에서는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부산’은 양아치 강수(고창석)가 병에 걸린 아들 종철(유승호 분)을 살리기 위해 18년간 숨겨온 친아버지를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김영호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움직이는 화약고 같은 친아버지 태석 역을 연기했다. “태석은 격식이나 규범 같은 것은 쓰레기통에 버린 본능에 충실한 인물이에요. 아들뿐만 아니라 여자도 아무렇지 않게 때리는 비열한 놈이죠. 처음에는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아프다는 이야기에 짜증을 내죠. 그러나 사실은 아들이 궁금해 몰래 찾아가는 정에 굶주린 남자예요. 무척 거친 캐릭터라 촬영장에서 사람들이 무섭다며 가까이 오지 않았어요(웃음). 두 아버지와 아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릴 거예요. 원래 남자들의 사랑 이야기가 더 슬퍼요.” 김영호는 2007년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 이후 안정된 수입을 보장하는 안방극장을 떠났다. 이후 개런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저예산 영화에 주로 출연하고 있다. ‘부산’도 5억원 정도의 제작비가 들었을 뿐이고 현재 촬영 중인 성지혜 감독의 신작은 예산이 더 적다. 세 딸의 아빠로서 부담감을 느낄 법한데도 여유롭기 그지없다. “지난 1년간은 정말 십원 한 장도 못 벌었어요(웃음). ‘부산’ 촬영 제의가 들어올 무렵 출연료가 1억원 정도인 드라마 출연 제의도 들어왔어요. 그러나 태석 역할이 7억~8억원의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돈이 전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대출금을 갚기 위해 드라마로 돈 벌어 산 아파트를 곧 팔 예정이에요. 저는 원래 버리는 데 익숙해서 아쉽지는 않아요. 처음부터 저에게 없었던 거니까요.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로 돌아가는 거죠.” 시 써서 휴대전화 컬러메일로 지인들에게 선사 김영호는 자신의 예술적 열정을 소비하기 위해 시를 쓴다. 그렇게 쓴 시를 틈날 때마다 휴대전화 컬러메일로 지인들에게 보낸다. 또 좋은 경치를 보면 사진을 찍고 집에 있으면 동양화를 그린다. 외모와 달리 너무니도 감성적인 글에 감동받아 문자 메시지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빗발친다. 후배들이 별명까지 지어줬다. 최근에는 ‘짐승 아이돌’ 2PM이 아닌, ‘짐승 시인’이라 불린다. “제가 술을 전혀 못 마셔요. 그러나 후배들과 잘 놀아요. 재능 넘치고 착한 후배들과 함께 있으면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요. 그러나 코드가 안 맞는 애들은 완전히 무시하죠(웃음).”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과 찍은 사진을 담은 책을 낼 의향도 있단다.” ■글 / 최재욱(스포츠칸 문화연예부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 ‘일과 삶의 균형’ 정책 추진하고 있는 김영호 사무처장
- 2007. 07. 18 화제
- WLB(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일터와 개인이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꼭 한번 고민하고 실행에 옮길 가치가 있는 정책이다. WLB(Work-Life Balance) 정책이란?중앙인사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WLB’는 매력적인 정책이다. 그대로 번역하면 ‘일과 삶의 균형’, ‘일과 생활의 균형’이다. 쉽게 와 닿는 개념은 아니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이나 유한킴벌리와 같은 국내 기업을 비롯해, 구글 등의 외국계 회사에서는 일부 실시하고 있는 정책이다.“회사원이나 공무원 등 조직의 구성원이 일과 일 이외의 영역, 즉 가족, 건강, 여가 등에 시간과 심리적·육체적 에너지를 균형 있게 배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정책입니다. 일과 삶의 영역에 대한 만족도와 자기 통제력을 동시에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포괄하는 개념이죠.”쉽게 말해서, ‘WLB’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일과 생활을 모두 잘해내고 있다고 느끼는 이상적인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과거에는 조직의 구성원이 가정이나 여가에 비해 ‘일’에 집중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의 사회 분위기는 다르다. 개인의 가치관은 ‘일’보다는 ‘개인생활’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삼성경제연구소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직장 생활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급여 수준, 고용 안정성, 승진 등을 제치고 ‘일과 삶의 균형’이 1위를 차지했다. 11개 기업 중 7개 기업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이해가 빠르다. 대표적인 예가 근무 시간의 유연화와 집중화다. 출근과 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유연근무제도’는 구성원들이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할 수 있게 배려한다. 근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함으로써 자녀 양육, 노인 부모 부양뿐 아니라 자기계발이나 여가 시간 활용을 위한 시간을 개인이 조정할 수 있다. “근무 장소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재택근무제 또한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정규직 공무원이 하루 8시간보다 짧게 근무할 수 있는 시간제 근무, 특정 직무를 2인 이상이 분담하는 직무공유제 등도 이에 해당하죠.”아이를 가진 맞벌이 부부가 ‘유연근무제도’의 혜택을 받는다면 육아에 필요한 시간을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WLB’는, 이 같은 가족 지원제도뿐 아니라 개인의 경력 관리와 스트레스 관리, 퇴직자 교육과 여가, 건강 정보 서비스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다.WLB와 여성아직 한국은, 가정과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짙다. 여성 경제 활동 인구가 꾸준히 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여성의 몫’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이 변화하는 속도는 더디다.“공직 사회만 봐도 여성의 사회 진출은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체 공무원 중에서 여성 공무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31.5%에서 2005년 38.1%로 6.6%가 증가했죠.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여성의 사회 진출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여성이 일을 가질 경우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부담은 남성보다 크다. 출산과 육아는 그 대표적인 예다.“‘일과 삶의 균형’ 정책이 정착되면 출산휴가와 휴직제도가 활성화되고 출산 후 복직이 보장되기 때문에 출산과 육아에 의한 경력 단절 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은 더욱 높아지겠죠.”직원이 출산과 육아로 자리를 비웠을 경우, 동료에게 그 직무를 대행하게 하고 이에 상응하는 수당을 지급하거나, 퇴직한 선배가 그 자리를 대체해 근무할 수 있게 하는 ‘대체근무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개인은 휴가나 휴직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로워지고, 직장 분위기 또한 유연해지는 효과가 있다.“하지만 ‘WLB’는 여성만을 위한 정책은 아닙니다. 남성이 육아 등 가정생활을 분담하는 데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죠. 남성 공무원이 육아휴직을 하는 사례도 점점 증가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만큼 여성의 사회 활동이 왕성해지고 능력 발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죠.”여성은 21세기의 블루오션이다. ‘WLB’는 여성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지금까지의 직장 분위기를 쇄신하고, 남성과 여성이 함께 기업의 생산성뿐 아니라 개인 삶의 질도 제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다.배려받는 직원이 회사를 배려한다“지금까지는 살아남으려고 기를 쓰고 살았죠. 저도 1976년부터 32년째 공직생활을 하고 있지만 제대로 휴가를 가본 적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이제는 자기 일과 인생, 가족에 대해 개인이 통제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줄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공직사회부터 모범이 되어야죠.”‘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배부른 소리’한다는 비난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하지만 WLB는 정책이나 제도의 도입으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제도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일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자세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것이다. 일터가 주(主)가 되고 개인의 삶은 부수적으로 치부하던 종전의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함으로써 일과 개인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이는 것은, 공무원 사회에서부터 풀어 나가야 할 과제다.“주 5일 근무제가 처음 실시됐을 때도 그랬습니다. 갑자기 생긴 여유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조직해야 할지 막막했죠. 하지만 익숙해지고, 그 시간을 여가에 활용할 수 있게 되니 주말에는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지 않습니까?”노무현 대통령 역시 지난 2월 23일 있었던 ‘일-가정이 함께하는 기업 환경 조성 보고대회’에서 “경제계에서 가족 친화 경영을 보편화된 경영전략으로 삼아서 자발적으로 노력하면, 정부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가족 친화 경영’은 ‘WLB’가 포괄하는 개념의 일부다. 개인이 일과 가정생활의 가치를 동등하게 배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조직원, 즉 개인을 존중하지 않으면 조직 또한 존중받을 수 없습니다. 공무원으로서도 존중받는 공무원이 될 수 없겠죠. 공무원이 모범이 돼서 각 기업들이 그 효과를 인정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큰 그림을 보고 가는 겁니다.”한국은 OECD 가입국 중 가장 많은 시간 ‘일’을 하는 나라다. 그러나 ‘생산성’은 최하위다. ‘WLB’는 일과 개인에 대한 만족도를 동시에 높임으로써 생산성을 제고하고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내포하는 문제점에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이다.“발상의 전환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회사의 일을 가정으로 가져가는 것은 당연시하면서도 가족 문제를 회사로 가져오는 것은 어색해하죠. 이제 ‘돈을 더 줄 테니 일을 더 하라’는 일차적인 관리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배려받는 직원이 회사를 배려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민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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