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91 건 검색)
- 김영환표 ‘오송역 랜드마크’ 완공은 언제쯤…준공지연에 이용객 불편 가중
- 2025. 03. 10 16:48사회
- ... KTX 오송역에서 진행 중인 ‘오송역 선하 부지 휴게 공간 조성사업’ 공사 현장 모습. 이삭 기자. 김영환 충북지사가 추진하고 있는 ‘오송역 선하 부지 휴게 공간 조성사업’이 완공되기 전부터...
- 오송역공사충북이용객선하
- 김영환 충북지사, 구인사 찾아 “윤 대통령에게 위로와 자비의 기도를…” 발언 논란
- 2024. 12. 29 16:30정치
- ... 비상계엄 사태로 수사 대상에 오른 윤석열 대통령을 위한 기도를 올려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모습. 김영환 충북지사 페이스북 캡처. 김영환 충북지사가 충북 단양의 구인사를 찾아 불자들에게 12·3 비상계엄...
- 지사탄핵발언구인사대통령
- ‘오세훈·김태흠·김영환·유정복’ 탄핵 찬성으로 입장 바꿨다
- 2024. 12. 12 22:58정치
- ... 새롭게 창당한다는 각오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환 충북지사. 충북도 제공 김영환 지사도 SNS를 통해 “더 이상의 혼란을 막고 민생안정을 이루기...
- 탄핵대통령입장지사오세훈김태흠김영환윤석열 탄핵 심판
- 비상계엄 선포에 침묵하던 김영환 충북지사, 뒤늦은 입장문 발표에 빈축
- 2024. 12. 04 14:29정치
- ... 충북지사. 충북도 제공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김영환 충북지사가 비상계엄 선포 해제 후 뒤늦은 입장문을 내놔 빈축을 사고 있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4일...
- 비상계엄선포김영환충북지사입장문탄핵, 국내외 영향
스포츠경향(총 58 건 검색)
- 김영환 지사 등 국회서 청주공항 민간 활주로 신설 촉구
- 2024. 11. 14 22:56 생활
- 충북도 제공 김영환 충북지사와 충북 여야 국회의원 등이 14일 청주공항 민간 전용 활주로 신설의 필요성을 설파하며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김 지사와 더불어민주당 송재봉·이광희·이연희·이강일 의원, 국민의힘 엄태영 의원, 이범석 청주시장, 이양섭 충북도의회 의장 등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영환 지사는 성명을 통해 “청주공항은 개항 이래 처음으로 연간 이용객 400만명을 넘어섰고 흑자 공항으로 변화하는 등 무한한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중”이라며 “하지만 군 항공기와 함께 활주로를 사용해야 해 급증하는 항공 수요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간 활주로를 신설한다면 항공 물류와 관광·산업·국제교류를 촉진해 지역발전을 유도하고 국가 균형 발전을 견인할 것”이라며 “포화 상태인 수도권 공항의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서라도 민간 전용 활주로가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의원들도 활주로 건설사업이 장기간 소요되는 만큼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활주로 건설을 고민하고 즉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북도는 청주공항 민간 활주로 신설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 안으로 가칭 청주공항 특별법을 발의할 계획이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국가 재정 지원 등이 담긴 특별법을 제정하면 관련 사업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충북도는 기대하고 있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지역의 염원을 모아 민·관·정 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주민 서명운동, 각계 기관·단체 성명 발표 및 결의대회, 전문가 토론회 등 대정부 건의 활동을 벌일 방침이다.
- [단독] 남동협·김영환 감독 “희망고문 이겨내는 법이요?”(인터뷰③)
- 2024. 07. 16 07:30 연예
- JTBC 수목극 ‘놀아주는 여자’의 김영환 감독(왼쪽)과 ‘핸섬가이즈’의 남동협이 15일 서울 상암동 스튜디오 하이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7.15. 정지윤 선임기자 -<[단독] ‘놀아주는 여자’ 김영환 감독에게 ‘남동협’이란(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핸섬가이즈’와 ‘놀아주는 여자’는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사이였다. 영화 ‘핸섬가이즈’ 남동협 감독과 종합편성채널 JTBC 수목극 ‘놀아주는 여자’ 김영환 감독은 대학 시절부터 동고동락하며 지금까지 서로에게 웃음과 위로의 술 한잔을 건네준 뜨거운 ‘27년 지기’였다. 남동협 감독(이하 ‘남’)과 김영환 감독(이하 ‘김’)의 숨겨진 이야기를 스포츠경향이 단독포착했다. 15일 서울시 상암동 모처에서 확인한 두 사람의 27년을 #어쩌다보니 데뷔 동기, #돈 없어도 믿는 구석, #꿈꾸는 후배들에게 등 세 해시태그로 나눠 전달해보려 한다. 영화 ‘핸섬가이즈’와 JTBC 수목극 ‘놀아주는 여자’ 공식포스터, 사진제공|NEW, JTBC ■#꿈꾸는 후배들에게_기다리면 기회는 온다 20여년 넘게 성실하게 현장을 지키며 기회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같은 해에 데뷔하게 된 두 사람. 비슷한 꿈을 꾸는 후배들이 제일 궁금할만한 한 가지 질문을 건넸다. 될 듯 되지 않는 ‘희망고문’은 어떻게 이겨야 하나요. 그러자 ‘희망고문’ 회전문에 갇힌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남 | 데뷔 전엔 막연히 ‘해보기라도 했음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버텼어요. 그리고 해보니 굉장히 낮은 확률에 목숨을 건 거였지만, ‘중요한 건 결국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구나’라고 느꼈죠.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독하게 파고드려고 해야하고요. 주변 관계를 잘 다지면서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강한 마음으로 버티다 보면 결국엔 기회는 오는 것 같거든요. 그걸 어떻게 살리느냐는 그동안 스스로 쌓아온 노력과 운의 빛이 발해야하겠지만요. 김 | 인내하는 건 어렵지만 작은 목표들을 설정하고 성취를 조금씩 이룬다면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연출 막내를 할 땐 조연출로 올라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조연출을 했을 땐 하루 한씬이라도 촬영하고 싶다는 목표치를 설정했는데요. 그러면서 감독님에게도 목소리를 냈죠. 인서트라도 상관없으니 촬영할 기회를 달라고요. 감사하게도 혹여 저와 남동협 감독을 보고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면 작은 목표라도 세워서 그것에 대한 성취감을 누리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남동협 감독의 ‘핸섬가이즈’는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던 ‘재필’(이성민)과 ‘상구’(이희준)가 하필이면 귀신들린 집으로 이사 오며 벌어지는 고자극 오싹 코미디로, 예상치 못한 전개와 웃음포인트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전국 극장가서 절찬리 상영 중. 김영환 감독의 ‘놀아주는 여자’는 어두운 과거를 청산한 큰형님 ‘서지환’(엄태구)과 키즈 크리에이터 고은하(한선화)의 반전 충만한 로맨스를 담은 드라마로,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로맨틱 코미디로 사랑받고 있다. 매주 수, 목 저녁 8시 50분에 방송된다.
- 단독
- [단독] ‘놀아주는 여자’ 김영환 감독에 ‘남동협’이란(인터뷰②)
- 2024. 07. 16 07:30 연예
- JTBC 수목극 ‘놀아주는 여자’의 김영환 감독(왼쪽)과 ‘핸섬가이즈’의 남동협이 15일 서울 상암동 스튜디오 하이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7.15. 정지윤 선임기자 -<[단독포착] ‘핸섬가이즈’, ‘놀아주는 여자’와 뜨거운 사이(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핸섬가이즈’와 ‘놀아주는 여자’는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사이였다. 영화 ‘핸섬가이즈’ 남동협 감독과 종합편성채널 JTBC 수목극 ‘놀아주는 여자’ 김영환 감독은 대학 시절부터 동고동락하며 지금까지 서로에게 웃음과 위로의 술 한잔을 건네준 뜨거운 ‘27년 지기’였다. 남동협 감독(이하 ‘남’)과 김영환 감독(이하 ‘김’)의 숨겨진 이야기를 스포츠경향이 단독포착했다. 15일 서울시 상암동 모처에서 확인한 두 사람의 27년을 #어쩌다보니 데뷔 동기, #돈 없어도 믿는 구석, #꿈꾸는 후배들에게 등 세 해시태그로 나눠 전달해보려 한다. ■#돈 없어도 믿는 구석, 내 친구 역시나 ‘찐친’이다. 두 사람은 개구쟁이처럼 계속 장난기 가득한 티키타카를 주고받았다. 그러면서도 평소엔 말하기 낯간지러운 진심을 툭툭 던지기도 했다. 김영환 감독에게 ‘남동협은 어떤 존재냐’고 대놓고 물었다. 그러자 로맨틱한 대답이 돌아왔다. 김 | 남동협은 제게 첫사랑 같은 존재죠. 절대 이뤄질 수 없지만요. 하하, 농담입니다. 제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마음 속 얘기를 동협이에겐 하거든요. 아마도 짝사랑 여자에게 차였을 때 위로받은 이후부터 마음이 편해졌나봐요. 지도 좋아했으면서 절 위로해주다니요. 하하. 그때를 기점으로 군대 휴가도 맞춰나오기도 하고, 자주 만났는데 특히나 비슷한 업계이다 보니 서로 정말 많은 걸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가 된 것 같아요. 든든하죠. ‘첫사랑’이 나왔으니 화답으로 ‘끝사랑’이라도 말해야하는 것 아닌가. 농담에 남동협 감독은 손사래를 쳤다. 남 | 그건 아니고요. 그렇지만 김영환은 제게 가족만큼이나 힘이 되는 사람이에요. 영화업계가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영환이가 있었기 때문이죠. 영화와 드라마지만 비슷한 길을 친구라는 존재가 가끔은 정말 큰 힘이 되거든요. 김영환이 ‘어떻게 하면 좋은 감독이 되느냐.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고 말한 적 있는데, 제겐 그 좋은 사람 중 일순위가 영환이에요. 돈 없을 때에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사이죠. 남동협 감독의 ‘핸섬가이즈’는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던 ‘재필’(이성민)과 ‘상구’(이희준)가 하필이면 귀신들린 집으로 이사 오며 벌어지는 고자극 오싹 코미디로, 예상치 못한 전개와 웃음포인트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전국 극장가서 절찬리 상영 중. 김영환 감독의 ‘놀아주는 여자’는 어두운 과거를 청산한 큰형님 ‘서지환’(엄태구)과 키즈 크리에이터 고은하(한선화)의 반전 충만한 로맨스를 담은 드라마로,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로맨틱 코미디로 사랑받고 있다. 매주 수, 목 저녁 8시 50분에 방송된다. -<[단독] 남동협·김영환 감독 “희망고문 이겨내는 법이요?”(인터뷰③)>로 이어집니다.
- 단독
- 충북지역 원로 34인 “김영환 지사, 오송 참사 반성하고 각성해야”
- 2023. 10. 05 20:34 생활
- 연합뉴스 이기용 전 충북교육감과 윤여표 전 충북대 총장 등 충북 내 학계·종교계·시민사회단체 원로 34명이 직접 나서 김영환 충북지사의 각성을 주문했다. 이들은 5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지사는 행정을 책임지는 자치단체장으로서 무엇보다 소중한 주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고자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해서도 모든 잘못과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유가족과 도민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과하고 각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오송 참사의 철저한 원인 규명, 재발방지대책 수립, 갈등 봉합을 위해 정치권과 도민이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김연환 지사의 주민소환 추진에 대한 반대 입장도 피력했다. 원로들은 “법적 권리지만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찬반 주민의 극심한 갈등과 대립, 정쟁, 많은 혈세 소요 등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며 “진정으로 희생자와 유족, 도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오송 참사의 책임을 묻겠다”면서 지난 8월부터 김 지사 주민소환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오는 12월 12일(120일)까지 예정된 서명운동의 참여 인원이 충북 인구의 10%인 13만5천438명을 넘기면 선관위에 주민소환 투표를 요구할 수 있다. 투표에서 전체 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참여하고, 투표자 과반이 찬성하면 김 지사는 직을 잃는다.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 [원희복의 인물탐구]북한민주화운동가 김영환…영웅주의에 빠진 왜곡된 혁명가인가(2014. 12. 02 11:53)
- 2014. 12. 02 11:53 사회
- 그의 행보는 여전히 미스터리했다. 연락도 무슨 간첩 접선하듯 해야 했다. 사무실로 전화할 때마다 외국에 나가 있다고 했다. 연락처를 남겨두라고 했지만 열흘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나중에는 e메일 주소를 알려주며 이쪽으로 연락하라고 했다. e메일로 연락을 했지만 답장이 없다. 몇 가지 서면 질문지를 보냈지만 원고 마감까지 답장은 오지 않았다. 2주 동안 그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될 듯 말 듯’ 하다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김영환(51)이다. 이 땅에 처음으로 주사파를 이식한 이다. 그는 1991년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에 들어가 노동당에 입당하고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북한에서 미화 41만 달러를 받고 돌아와 지하혁명당을 만들어 남한체제를 전복하려 했다. 그러다 180도 생각을 바꿔 전향했다. 그는 지금 북한 민주화를 주장하며 북한에 삐라를 뿌리고, 북한의 붕괴를 추진하는 극우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2012년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로 체포되기도 했다. 김기남 기자 통합진보당 재판에 정부측 증인으로 50대 초반의 그는 매우 극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지만 이렇게 180도 바뀐 생활을 하기도 쉽지 않다. 그는 지난 10월 21일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통합진보당 정당활동 정지 가처분신청에서 신청인 측(정부 측) 증인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지도했던’ 후배들에 대해 ▲통합진보당이 여전히 종북 혁명세력에 장악돼 있다 ▲이석기는 여전히 폭력혁명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 이상규, 김미희 의원이 북의 자금을 받아 선거에 출마했다며 후배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냈다. 그는 과거 자신의 법정 증언을 여러 번 번복했다. 그때마다 과거 증언이 ‘형식적 위증’이라고 항변했다. 또 출마자에게 돈은 줬지만 그 돈이 북한에서 온 것은 몰랐을 것이라는 등 일관성 없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그의 증언은 나름 당당했지만 어떤 때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질문 상대와 의도적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증언 도중 갈증을 느끼는지 물도 많이 마셨다. 그의 이번 헌재 증언에서 눈길을 끈 것은 국정원 프락치 논란이었다. 이날 피신청인 측 이재화 변호사는 “전향하려고 마음까지 먹고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창당하고 기관지에 14차례나 북한을 적극 찬양했다”면서 “순수하게 혁명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국정원과 연계돼 위장으로 함정을 파고 활동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직설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김영환은 다소 놀라는 표정으로 “국정원과 연계돼 위장으로 활동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라면서 “그런 일을 할 특별한 이유와 동기도 없다”고 강변했다.(상자기사 참조) 이 논란의 전후 배경은 이렇다. 그는 서울대 공법학과 82학번으로 독서모임 등을 통해 운동권에 몸 담았다. 1986년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사건으로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1988년 출소한 그는 1991년 밀입북한다. 북한의 공작금을 받아 돌아온 그는 1992년 민혁당을 만들어 학생운동권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전파했다. 으로 알려진 그의 주사파 이론은 학생운동권에 광범위하게 전파됐다. 북한에 회의 가졌지만 지하당 조직? 하지만 그는 전향을 결심하고 1999년 국정원에 사상전향서를 제출, 이례적으로 공소보류 처분으로 풀려났다. 많은 후배들은 구속됐다. 문제는 그가 운동권에 회의를 느낀 시점이다. 그는 사상전향서에서 1991년 밀입북했을 때 김일성을 만나고, 북한을 둘러본 뒤 회의를 느꼈다고 썼다. 나중에는 이보다 앞선 80년대 말 동구권 몰락 때부터 운동권에 회의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가 북한 체제나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꼈다면 지하당을 창당하지 않거나, 제작을 중단하거나, 아예 운동권을 떠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회의를 느꼈다면서도 지하당을 만들어 후배를 계속 끌어들였다. 그 후 본인과 몇몇만 전향하고 나머지 후배들은 처벌을 받게 했다는 것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날 헌재 재판관도 김영환의 이런 행보에 의문을 제기하며 별도 질문을 했다. 통합진보당은 성명에서 “원래부터 국정원 협력자였던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해명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매우 집요하고 주도면밀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와 같이 서울대 운동권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그는 건강을 위해 밥 한 숟갈을 40~50회 씹고 넘기고, 물도 씹어 먹는 매우 주도면밀한 사람”이라며 “이른바 은 김영환이 연필로 쓴 초안을 선배에게 회람을 받고, 다시 후배에게 돌려 검토한 내용을 일일이 지우개로 지운 후 다시 쓰는 치밀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의 감방 동료들은 “감방에서 바둑판 놓고 알까기를 이길 때까지 하자는 집요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2012년 7월 20일 중국 공안에 억류됐다 추방된 김영환씨가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기자들에게 소감을 말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그런 그가 자신이 몇 년 동안 벌여놓은 일을 하루아침에 접고 180도 돌아설 수 있을까. 사실 그가 1999년 8월 국정원에 출두해 조사를 받고 공소보류 판정을 받을 때에도 여러 의문이 제기됐다. 그는 당시 가장 진보적 잡지인 지와 가장 보수적 잡지인 두 극과 극의 매체를 ‘활용’하는 주도면밀한 수완을 보였다. 국정원에서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가 아니라는 엇갈린 증언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극보수 정치인 정형근 의원은 “그는 2중간첩”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어째됐든 결과가 입증하지만 그는 나쁘게 말하면 ‘배신’한 것이고, 점잖게 말하면 ‘전향’했다. 배신을 하건, 전향을 하건 보통 사람이라면 과거 동지·후배에 책임감, 혹은 연민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전향을 입증하려는 듯 더욱 혹독하게 운동권 후배를 비난한다. 이에 대해 같이 운동권에서 활동했던 이재화 변호사는 “보수건 진보건 인간은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김영환에겐 아무런 철학도 논리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고 혹평했다. ‘사상전향 세 가지 유형’의 복합형 우리 현대사에서 ‘전향’은 일제강점기 반일에서 친일로의 변신에서 비롯된다. 이후 분단상황에서 전향은 좌에서 우로의 변신을 의미했다. 진보운동가 이심산은 이라는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심산은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과 남로당 활동을 하다 해방 후 서울시경 사찰과에 특채돼 과거 동지 소탕에 앞장선 양한모 유형, 60년대 초 서울대 운동권의 리더였다가 후에 에서 극우논객이 된 류근일 유형, 그리고 70년대 서울대 운동권의 김문수가 보수정당에 들어간 유형 셋으로 구분했다. 여기서 적극적으로 과거 동지를 처단한 양한모 유형은 한국적 전향의 전범으로, 엘리트 집안의 류근일 유형은 봉건적 자유주의자 전향 유형으로 분류했다. 아예 과거를 외면한 김문수 유형은 몰락한 가정의 생계형 전향으로 평가했다. 김영환의 전향은 이 세 가지 중 어디에 포함될까. 김영환은 유복한 집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글로 자신의 과거를 비난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번처럼 과거 동지를 적극적으로 단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 유형 모두에 해당된다. 을 쓴 작가 김재욱은 김영환에 대해 “머리는 좋은데, 자기 진영을 배반한 서촉 유장의 모사 장송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서촉의 장송은 주인 유장을 배반, 서촉지역의 지도를 들고 조조를 찾아갔다. 그런데 조조는 장송을 실컷 두들겨패고 쫓아냈다. 장송은 나중에 유비와 의기투합했지만 마지막은 비참했다. 이번 헌재 증언을 보면 김영환은 여전히 자신을 혁명가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독재정권 탄압에 시달리는 북한 민중을 자유롭게 하겠다”고 주장했다. 그와 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한 인사는 “그는 군부정권과 싸웠다는 일종의 영웅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서 “지금 그는 강적인 북한과 맞붙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재화 변호사가 “북한 민주화는 북한 민중이 할 문제인데, 남한 문제에는 침묵하고 북한 문제만 거론하면서 무슨 혁명을 하겠다는 것이냐”고 쏘아붙였다. 이 질문을 받은 김영환의 인상이 찌그러졌다. “국정원과 연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학생운동에 참가한 동기는. “고등학교 때부터 유신과 전두환 정부에 반감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민주화운동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입학해 운동권 동아리에 가입했다.” 지난 10월 21일 헌법재판소에서 김영환씨가 증언하고 있다. | 헌법재판소 영상캡처 노동자·농민 등 민중의 삶도 바꾸겠다고 생각했는가. “그렇다.” 지금 노동자·농민의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공장에서 일해봤는데, 당시 한 달 월급이 6만5000원이었다. 물론 그때 물가와 지금 물가가 차이가 있지만 6만5000원으로 정상적 생활을 하는 게 불가능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남한에서) 광범위한 비정규직 문제나 차별의 실상은 안 보이나.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과 다르다. 그때와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주체사상의 어떤 점에 매료됐는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은 지나치게 극단적이다. 주체사상은 극단주의가 아닌 사상·의지·용기·결단 등 인간의 주관적 요소를 중시하는 게 매력적이었다. 또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 식의 지나치게 냉소적·서구식 논리전개가 아닌 동양적 정서에 부합해 관심을 끌었다.” (민혁당 활동 당시) 북한에 가 노동당에 가입하고 김일성을 만난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누가 있나. “(내가) 노동당 지도원임을 아는 사람은 하영옥, 박○○, 조○○, 김○○ 네 명이다. 1991년에 전향할 생각이었다면 1992년 민혁당을 창당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14회나 쓰고, 왜 그랬냐. “사실 북한 방문 이전부터 1989년 하반기 베를린 장벽·동유럽 붕괴를 보면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운동권에서 빠져나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민혁당(주사파 전체)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전체를 설득해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민혁당 혁명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국정원과 연계돼 위장으로 함정을 파고 활동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국정원과 연계돼 위장활동을 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할 특별한 이유와 동기도 없다. 민혁당 기관지 을 세심하게 읽어보고 분석한 사람은 알 것이다. 행간을 통해 변화된 사상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전향을 결심하고도 1998년까지 북한 지령을 따른 이유는. “북한이 하영옥을 비롯한 다른 민혁당 간부와 접촉해 연결선을 갖게 되면 민혁당 위원들을 사상전환시키는 데 장애물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의 새로운 공작을 막기 위해 사상전환을 속이고, 민혁당 해체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민혁당에서 하영옥을 제외한 상층부 인사 대부분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 밑에서 모르고 사회진보활동을 하던 후배만 처벌받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노동당에 가입했다가 처벌받은 사람이 40%다. 민혁당 평당원은 10%가 처벌됐고, RO(혁명) 조직원을 포함하면 2~3%밖에 처벌되지 않았다. 아이러니라고 보지 않는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하영옥을 통해 지방선거 500만원, 총선 1000만원을 지원했다고 하는데 받는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받았는지 알고 받았나. “민혁당 조직원들은 중앙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북한에서 온 돈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나. “알 수 없었다.” 이석기 등 경기동부연합 사람들을 1999년 이후 만나 대화한 적이 있는가. “직접 만난 적은 없고 전해 들은 것은 있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고, 대화도 안 나누고, 활동도 안했는데 여전히 폭력혁명을 추종하고 있다고 믿는 근거는 뭐냐. “간접적 접촉으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전해 들었다. 공개 TV토론이나 세미나, 사적 서클 동문회 등에서 폭력혁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여전히 혁명가이며, 민중을 위해 봉사한다고 주장하는데 증인이 지금 추구하는 혁명은 도대체 뭐냐. “북한 민주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독재정권에 탄압받고 시달리는 북한 민중을 구출하겠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별도 나라로 북한 민주화는 북한 민중이 할 문제이고, 진정한 혁명가는 남한 민주화에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르헨티나 사람이 쿠바혁명에 참여했듯이 우리 국민이라고 북한혁명을 하지 말라는 법은 혁명사에서 없다고 생각한다.”
- 원희복의 인물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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