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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117 건 검색)

성남시민단체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 방해한 김은혜 의원 사퇴 촉구”
성남시민단체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 방해한 김은혜 의원 사퇴 촉구”
2025. 01. 08 14:08지역
... 사회대개혁 성남비상행동이 8일 오전 성남 분당구 미금역의 김은혜 의원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윤석열즉각퇴진 사회대개혁 성남비상행동 제공 경기...
尹 탄핵심판 시작
성남 김은혜, 포천 김용태, 이천 송석준…“내란 동조 지역구 의원 부끄럽다” 시민 항의 쇄도
성남 김은혜, 포천 김용태, 이천 송석준…“내란 동조 지역구 의원 부끄럽다” 시민 항의 쇄도
2024. 12. 10 14:13지역
... 성남시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것이 매우 부끄럽고, 분노스럽습니다.” 10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김은혜 의원 지역사무실 앞에 모인 시민들은 이같이 비판했다. 이날 김 의원 사무실 앞에는...
윤석열 탄핵 심판탄핵, 국내외 영향
친윤 김은혜, 당원게시판 논란에 “매사 똑부러진 한동훈 어디갔나”
친윤 김은혜, 당원게시판 논란에 “매사 똑부러진 한동훈 어디갔나”
2024. 11. 24 10:05정치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월21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22대 총선 분당을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친윤석열계로 분류되는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24일 한동훈 국민의힘...
당원게시판한동훈김은혜
조국의 “응징 투어”가 간다…안철수·김은혜·신범철·이정만 등 공통점은?
조국의 “응징 투어”가 간다…안철수·김은혜·신범철·이정만 등 공통점은?
2024. 04. 01 15:31정치
... 찾는다. 해당 지역에는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장을 지낸 안철수 후보(분당갑),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지낸 김은혜 후보(분당을)와 인사비서관 출신 이원모 후보(용인갑) 등이 출마해 있다.
제3정당

스포츠경향(총 22 건 검색)

김은혜 홍보수석 “정상회담 계기, 中에서 韓영화 서비스” 주장?…지난해 이미 한국 영화 극장상영
김은혜 홍보수석 “정상회담 계기, 中에서 韓영화 서비스” 주장?…지난해 이미 한국 영화 극장상영
2022. 11. 22 16:41 연예
김은혜 홍보수석.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대통령실은이최근 한중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한국 영화 서비스가 재개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한령’(한류 제한령)이 가동된 이후 6년 만이라는 것이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22일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중국 OTT에서 우리나라 감독의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다”며 “6년간 중국에서 수입이 금지된 한국 영화 서비스가 개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수석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한중정상회담에서 문화·인적 교류 중요성,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공감했다”며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이 OTT 조치로 화답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비공개 논의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30년간 한중관계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면서 민간교류 확대의 중요성을 언급했고, 시 주석도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와 소통이 이뤄지도록 노력하자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수석은 “양국 정상의 의미 있는 회담 성과를 토대로 중국의 수입금지 해제와 같은 적극적인 미래가 전개될지 기대하면서 꾸준히 노력하고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3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중 하나인 아이치이는 지난 3월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극본 김은, 연출 안판석)을 선보인바 있다. 지난해 12월 이미 ‘오! 문희’가 한국영화로는 6년 만에 처음 중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하는 등 한한령 해제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중국 OTT 플랫폼 텅쉰스핀(騰迅視頻·텐센트 비디오)에는 앞서 홍상수 감독 2018년 작품 ‘강변호텔’이 ‘장볜뤼관(江邊旅館)’이란 제목으로 이미 11월 초 서비스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아파트입주자대표 등 김은혜 지지선언
경기 아파트입주자대표 등 김은혜 지지선언
2022. 05. 23 21:50 생활
김은혜 후보 캠프 제공□경기도내 아파트입주자대표와 입주민, 공동주택 관리자를 포함한 ‘공동주택 관리자 가족연대’가 방송 앵커 출신인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지난 22일 국민의힘 경기도당사에서 진행된 이날 지지선언에는 경기도 아파트입주자대표로 김태후회장, 아파트관리회사 대표로 조원석사장, 아파트관리소장 대표로 김홍립 전)대한주택관리사협회 경기도 및 중앙회장 등 경기도 아파트 입주민을 비롯한 50여명이 참석했다. 김홍립 전 경기도 대한주택관리사협회장은 선언문에서 “지난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 재임 기간 동안 경기도 곳곳이 반목과 갈등으로 불신을 키우고, 공동체 활성화보다는 내로남불과 정치화로 퇴색시켰다”면서 이재명의 경기도 공동주택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어 “의정활동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한 경험이 있고, 또 실제로 훌륭한 성과를 이뤄낸 사람이 바로 김은혜 후보”라며 “김은혜 후보가 선출되어 경기도 공동주택 공동체가 상생과 화합을 통한 도시공동체가 되길 바란다”고 지지 선언의 이유를 밝혔다.
김은혜
강용석, 김동연·김은혜 양자토론회 방송금지 가처분 또 신청
강용석, 김동연·김은혜 양자토론회 방송금지 가처분 또 신청
2022. 05. 23 20:06 연예
국민의힘 복당이 불허된 강용석 변호사가 서울시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검수완박’ 법안의 국회의장 중재안에 여야가 합의한 것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유튜버로 활동해 온 무소속 강용석 경기지사 후보가 23일 한국방송기자클럽이 주최하는 초청토론회에 대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남부지법에 이날 중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 후보 측은 “한국방송기자클럽이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후보의 양자 토론회를 26일 진행해 MBC·KBS·SBS·MBN에서 방송할 계획”이라며 “강 후보를 제외한 채 토론회를 실시하는 만큼 가처분 신청을 냈다”고 말했다. 또 “공직선거법은 모든 후보자에게 공평하게 토론회가 공평하게 실시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한국방송기자클럽은 강 후보에게 참석 여부를 묻는 서류조차 보내지 않았다”며 “이는 공직선거법을 중대하게 위반했고, 헌법이 보장하는 후보자의 공무담임권이나 평등권, 국민의 알 권리 등을 침해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강 후보는 앞서 지난 6일 경기언론인클럽·인천언론인클럽·인천경기기자협회가 김은혜·김동연 후보만 초청해 케이블TV SK브로드밴드에서 토론회를 열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수원지법에 냈으며, 법원은 “토론회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리라고 예상된다”며 받아들인 바 있다.
강용석 “윤 대통령, 통화서 ‘왜 김동연 아닌 김은혜 공격 하느냐’고 했다”
강용석 “윤 대통령, 통화서 ‘왜 김동연 아닌 김은혜 공격 하느냐’고 했다”
2022. 05. 13 23:12 연예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중구 명동 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유튜버로 활동해 온 무소속 강용석 경기지사 후보는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왜 김동연(민주당 경기지사 후보)을 공격해야지 김은혜(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를 공격하느냐’라고 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강 후보는 이날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주 통화를 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과)원래 전화하는 사이다. 대선 때도 통화하고 늘 하는 사인데 새삼스럽게 (지방선거와 관련한 얘기)때문에 전화한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강 후보는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지사 후보와 단일화하라는 취지로 요청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단일화)얘기까진 할 수 없다”며 “이번 얘기도 우연히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는 당연히 완주할 것”이라며 “저희는 단일화 조건을 이미 (김은혜 후보에게)제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후보 등록을 마쳤고 전자홍보물까지 다 만들었다. 이미 돈 들어갈 건 다 들어갔다”고 했다. 앞서 강 후보는 김 후보에게 3차례에 걸친 양자 토론과 당명을 뺀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제안한 바 있다. 강 후보는 전날 참여한 KBS 초청 토론회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그는 “(토론회) 시청률이 4.7%로 전체 지상파 방송 중 10위였다”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강 후보는 지난달 4일 국민의힘에 입당 원서를 제출했지만, 지도부가 복당을 불허하자 무소속으로 경기지사 선거를 치르고 있다.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한 강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과 연수원 동기다.

레이디경향(총 4 건 검색)

[김성현·김은혜 교사 부부에게 물었다]선생님 댁 아이는 어떻게 가르치나요?
2016. 03. 03 16:28 육아/교육
어느 분야나 해당 전문가의 의견에 이목이 집중된다. 여기에 공적인 영역을 넘어 사적인 부분에 대한 궁금증까지 더해진다. 전문가가 선택한 것이라면 틀림없을 테니 말이다. 자녀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을 보고 있으면 ‘집에서는 어떻게 가르칠까’ 하고 궁금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자녀 교육법에는 정답이 없다. 교육 현장에서 수많은 상황을 겪으며 깨닫고 배우는 선생님들도 ‘해답은 있되 정답이 없는’ 자녀 교육 문제로 늘 고민이 많다. 초등학교 교사인 김성현·김은혜 부부 역시 그렇다. 「초등부모학교」, 「엄마가 꼭 알아야 할 6학년 아이의 모든 것」, 「내 아이를 바꾸는 하루 10분 부모 수업」 등 수많은 교육서를 출간한 베테랑이지만, 일곱 살 예원이와 다섯 살 예린이 두 딸을 키우는 부모이기에 다른 부모들과 같은 고민을 한다. 어쩌면 현장에서 수많은 사례를 경험했기에 자녀 교육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르치는 것이 일인데 ‘자식은 어련히 잘 가르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성현 교사는 “저는 딸아이를 직접 가르치지 않습니다”라는 한마디로 사람들의 예상을 간단히 뒤집었다. 김성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과 함께 생활하는 부모의 역할이 중복되는 것에 부정적입니다. 가르칠 때는 감정적 필터링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자기 자식에게는 감정이 이입돼서 제어가 잘 안 되거든요. 여러 번 가르쳤는데도 이해하지 못하면 막 화가 나기도 하죠. ‘남의 아이를 교육하듯 내 아이를 가르쳐라’라는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습 지도를 하는 교사의 입장과 보듬어주고 보육을 하는 부모의 입장이 중복되면 받아들이는 아이는 혼란스럽고 힘들다. 부모가 교사라고 해도 아이에게는 온전히 지지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부모는 무엇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있음을 알려주는 동기부여자이고, 지식을 주입시키는 사람이기보다 깨닫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김은혜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전달자인 교사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교사와 아이가 잘 맞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는 첫째 예린이의 한글 공부를 방문 학습지로 선택했는데, 여러 곳의 시범 수업을 거친 뒤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선생님으로 결정했어요.” 김성현 “가르치는 큰 맥락은 선생님이 담당하고 부모는 옆에서 거드는 정도입니다. 배운 것에 대한 지속적인 자극을 준다든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좀 더 정교화한다든지 하는 거죠.” 사교육 시장이 커지면서 학원과 과외, 학습지와 인터넷 등으로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물론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집집마다 부모와 아이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가정의 상황과 특성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김은혜 “방문 학습지는 제 상황에서 최선이었기 때문이에요. 직장 맘이기 때문에 제가 왔다 갔다 하는 픽업이 쉽지 않고, 아이가 어려서 체력적인 면도 고려해야 했고요.” 김성현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교육의 본질이 변하지는 않지만 가급적 시간적 여유를 두고 시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적 여유 없이 교육을 하면 조급함 때문에 아이를 다그치기 쉽습니다. 입학을 몇 달 앞두고 급하게 한글 교육을 시작하면 놀이식으로 즐겁게 진행하기 힘들고, 아이의 실수를 받아줄 여유도 줄어들게 됩니다.” 시험에 대처하는 부모들의 자세 초등학교에서도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실시하며 때때로 수행평가도 진행한다. 김성현 교사는 모든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태도’라고 강조했다. 시험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것도,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둬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거나 경쟁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시험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시험은 우리 OO가 지금까지 배운 것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거야”라고 말해주면 된다. 언제부터인가 시험은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비교와 경쟁의 매개가 돼버렸다. 때문에 아이들 역시 시험에 대해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김성현 “부모가 점수 자체에 연연하면 아이에게도 그런 생각이 고스란히 전달되죠. 그렇게 되면 시험에서 80점을 맞았을 때 아이 스스로 ‘나는 80점짜리야’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초등학생에게 시험은 공부 방법과 자세를 습관화하고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는 좋은 기회다. 오히려 낮은 점수보다 우려되는 것은 ‘엄마표 100점’이다. 엄마가 아이를 다그쳐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을 말한다. 당장은 대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모래성과 같은 점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강요에 의한 학습은 지속되기 힘들고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 아이는 ‘학습 노동자’로 전락하고 만다. 처음에는 부모와 함께 공부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 혼자 주도적으로 학습할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김은혜 “시험 볼 때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시간 조절이에요. 적절히 시간 안배를 해야 하는데 못 푼 문제에 집착해 시간을 흘려버리는 경우도 많죠. 아이들은 익숙해지면 실수나 당황이 적기 때문에 집에서 시험 상황과 비슷하게 시간 연습을 하는 것도 권할 만합니다.” 김성현·김은혜 부부가 초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는 것은 수학과 독서다. 수학은 흔히 나선형에 비유되는데 교과과정이 연결·반복되면서 점차 심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한 번 놓치면 이해하기 쉽지 않고, 특별히 약한 부분이 있으면 연결된 부분까지 불안해진다. 수학의 중요성 때문에 강제로 학습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학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는 공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조작물을 통한 수학 놀이나 활동을 통해 수 개념과 연산 능력을 키워줄 것을 권했다. 단순한 지식 전달보다 수학 동화를 통해 기호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좋다. 돈 계산이나 음식 공평하게 나누기처럼 실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수와 친숙해지는 것도 방법이다. 한 학기 정도 앞선 예습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김성현 “5학년 아이들에게 뭐가 제일 어렵냐고 물으면 50%가 수학, 50%가 역사라고 대답해요. 역사는 5학년 2학기부터 6학년 1학기까지 배우는데, 배경지식 없이 단편적인 부분만 습득하면 암기 과목으로 전락해서 버겁게 되는 거죠.” 이런 어려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4학년부터 역사와 관련된 만화나 책을 읽히는 것이 좋다. 중학년인 3~4학년부터는 책을 읽고 문화재나 관련 지역을 둘러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삼국의 성립과 발전을 배우고 경주를 방문하거나 경복궁을 살피며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육사의 시를 읽었다면 경북 안동의 이육사 생가를, 「메밀꽃 필 무렵」을 읽었다면 배경이 된 강원도 평창군 봉평의 이효석 문학관을 방문하는 식이다. 이렇게 국어와 함께 역사까지 아우를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서다. 수학 역시 스토리텔링식으로 바뀌면서 독서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김은혜 교사는 독서도 바느질처럼 배워서 길러지는 능력이라고 비유했다. 바늘에 실을 꿰어 시침질을 하고 홈질을 하듯 책을 고르고 읽는 법도 차근차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 읽으라고 다그치는 부모는 많아도 ‘이렇게 읽는 것’이라고 가르쳐주는 부모는 드물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독서 ‘공부의 신은 독서의 신이 되지 못하지만, 독서의 신은 공부의 신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은 진리다. 단순한 학습이나 공부를 뛰어넘는 것이 독서의 신이다. 물론 다독을 했다고 모두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읽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김성현 교사는 책을 많이 읽는데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세 가지를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김성현 “먼저 편독을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만화책이나 동화, 과학 관련 책 등 특정 분야의 책만 읽는다면 영양의 불균형처럼 지식의 불균형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효과적인 독후 활동이 뒷받침됐는가 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은 뒤에는 토론이나 북클럽 등의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자신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죠. 마지막으로 책의 글자나 그림만 대충 보는 것은 아닌지 독서 습관을 살펴야 합니다.” 수많은 권장도서와 필독서 중 우리 아이와 맞는 책을 고르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니다. 저학년 아이의 경우 한 페이지에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5개를 넘으면 수준에 맞지 않는 책으로 간주한다. 새로운 단어를 맥락 속에서 알아갈 수도 있지만 낯선 단어가 5개를 넘으면 즐거움을 느끼기에 큰 걸림돌이 된다. 편독을 방지하기 위해 스티커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독서 활동표를 만들어 동화책은 ★, 위인전은 ♡, 영어도서는 ◎, 과학도서는 ◆ 등으로 표시해 책의 분야를 한눈에 파악하는 것이다. 김은혜 “온라인의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이용해도 좋습니다. 이곳에서는 학년별 교과 도서 목록을 확인할 수 있고, 초등생의 경우 토론의 장은 물론 퀴즈, 일기, 동시, 편지 등 다양한 형식으로 독후 활동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시도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독서 기록을 포트폴리오로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이 부부가 관련 도서와 신문 등 여러 자료들을 살피고 현장에서 실시해본 결과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독서 방법은 책 이야기를 부모와 아이가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책에 대해 함께 토의·토론하고 경험을 나누며 책의 주인공이 돼 상상해보고,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나 주제에 대한 생각도 교류하는 것이다. 서로 책에서 찾은 명구절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은 다음이다. 단순히 읽는 것으로 그치면 책에 대한 줄거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성현 “‘책을 읽는다’라는 것은 단순히 저자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책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50%라면 여기에 경험과 생각을 더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야 나머지 50%를 채울 수 있습니다. 이런 독서를 통해 책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정립하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보는 ‘생각의 공유 시간’, 즉 독서 토론의 기회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책의 영향력은 부모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지금 우리 아이가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음에 깊이 두는 책에 따라 아이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생활에서 시작되는 자기주도학습 초등학교는 아이들의 공식적인 사회생활이다. 그래서 입학을 앞둔 부모들은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초조하고 불안하게 마련이다. 초등 1학년의 교육목표는 학교 적응과 기본 생활 습관의 정착이다. 김은혜 “아이의 입학을 앞둔 지인들이 뭘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어볼 때, 저는 3가지만 할 줄 알면 된다고 말합니다. ‘대변보고 뒤처리를 할 수 있는가? 우유갑을 딸 줄 아는가? 운동화 끈을 혼자 묶을 수 있는가?’입니다.”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뛰어난 해결 능력을 발휘하는 아이는 스스로 해본 아이들이다. 먹고, 마시고, 화장실 뒤처리 등 생리적인 문제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자립심이 갖춰진 아이들은 학교생활도 더 잘하게 마련이다. 1학년 교실에는 우유갑 여는 것조차 혼자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쏟을까 봐 매번 부모가 열어주다 보니 스스로 해볼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외에 일찍 자는 것과 아침 먹는 것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부모들의 생각보다 학교생활이 빡빡하기 때문에 일찍 자고 아침을 먹는 등 기본부터 지켜야 학교의 사이클을 무난하게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과 자립하려는 사고는 학습 태도와도 연결됩니다. 성취도가 높은 아이들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반면, 성취도가 낮은 아이들은 주입식 수업을 통한 수동적인 학습 태도를 가지는 경향이 짙습니다.” 학습 능력이 우수한 아이와 뒤처지는 아이들은 학원 선택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수동적인 아이들은 교과 지식을 전달하는 주입식 위주의 학원에 다니지만, 학습 능력이 우수한 아이들은 토론이나 탐구 중심 수업, 참여 위주의 학원을 다니는 경향이 뚜렷했다. 물론 성취도가 낮은 아이들은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 주입식 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계속적으로 학습을 좇고 주입받기 원하는 태도로 굳어질 수 있다. 김성현 “처음에는 조금 뒤처지더라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직접 찾아보며 공부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도록 기다리고 배려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성현·김은혜 부부는 집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물건으로 ‘우리나라 지도, 세계지도, 지구본’을 꼽았다. 3가지 형태의 지도를 아이의 시선이 잘 닿는 곳에 비치하라고 조언했다.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자녀에게 더 넓은 세상을 소개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는 것이다. 지도 3개에 불과하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무궁무진하다. 지도는 우리나라의 위치, 주변국과 각 나라의 수도 그리고 국기 등을 파악하는 유용한 지리 학습 도구가 된다. 신문이나 방송에 언급되는 나라와 도시를 자녀에게 직접 찾아보게 하거나 국가 이름과 수도 맞히기 게임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도 있다.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는 아이에게 여행지를 지도에서 찾아보게 하고 그곳의 날씨와 문화 등을 설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도와 지구본을 통해 아이는 지리를 파악하고 역사와 과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또 넓은 세상을 향해 더 큰 뜻을 품을 수 있다. ‘독서가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면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 공부의 폭을 크게 잡으면 아이의 눈이 닿는 모든 것이 책이고 독서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하는 부모. 자녀 교육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작지만 강한 힘은 그렇게 나온다. 현직 교사들의 자녀 교육 한마디 박미선 교사(고3·중2 두 아들) “예전에는 제 아이들이 스스로 하지 않을 때 야단을 치고 종용도 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줍니다. 사랑에도 때로는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에게는 물질적인 부족감보다 스스로 고민해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결핍이 느껴지거든요. 특히 첫째 아이에게는 학부모님 스스로 걱정이 많고 불안하기 때문에 뭐든 해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요. 다른 엄마들의 시선과 이야기에 동요되면 기다려줄 여유가 없어지게 되죠. 이럴 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아이를 믿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에요. 저 역시 아이들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좀 더 지켜봐주고 믿어줄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신경자 교사(고2·중1 두 딸) “우리 집 가훈은 자력갱생이에요. 이런 말을 하면 다들 웃으시는데, 사실입니다. 어릴 때부터 생활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라는 걸 강조했어요. 부모가 아무리 아이에게 집중하고 희생해도 결국 선택과 책임은 아이 자신의 몫이거든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달걀프라이는 직접 해 먹을 수 있고, 3학년이 되면 라면 정도는 끓여 먹을 수 있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부엌에 있는 가스레인지를 인덕션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도와주면 훨씬 빨리 되겠지만 어떤 일이든 아이들이 직접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줬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딸들이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이게 자기주도학습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순애 교사(대학생 두 딸) “길게 보면 조금 허술한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참견하고 못 미더워하면 아이들이 숨 막히지 않겠어요? 그러다 보면 아이들도 스스로 판단하고 시도해보려는 의지를 잃게 되죠. 저는 아이들에게 속는 날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괜찮았다 싶습니다. 아이들의 숨통을 트이게 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고요. 큰딸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귀고리를 한다고 귀에 구멍을 2개나 뚫고 들어왔어요. 순간 열이 확 올랐지만 억누르고 모른 척했죠. 그렇게 놔뒀더니 언제부턴가 시들해져서는 귀고리를 빼더라고요. 위험한 행동만 아니라면 일일이 참견하지 말고 잠시 눈감아주세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 스스로 시들해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김재수 교사(고3 딸, 고1 아들) “아이들이 사춘기를 무난히 넘긴 것은 여행을 통한 대화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기에는 각자의 생활이 바쁘고 활동 영역도 많이 다르죠. 여행은 이럴 때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일단 집을 나서서 여행을 떠나면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시간이 만들어지고, 그 시간 속에서 진솔한 대화가 오갈 수 있죠. 나이가 들수록 아들과 서먹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자전거 여행처럼 체력적으로 힘든 여행을 떠나면 역경을 함께 이겨내며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 친구이자 동지가 될 수 있습니다.” 황지연 교사(대학생 딸, 중2 아들) “영어 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기에 영어 교육법만큼은 참 많이 고민하고 다양하게 실천했지요. 그런데 영어책 읽기만 한 게 없었어요. 좋은 동화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읽는 재미도 있고 언어 학습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영어 전문 서점에 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부터 구매해서 차근차근 읽히며 책을 늘려가세요.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선정하는 칼데콧, 뉴베리 등의 수상작 위주로 살피는 것도 방법이에요. 딸의 경우 그 효과를 톡톡히 봤죠. 영어 동화는 제가 먼저 읽은 뒤 아이와 함께 읽었고, 영어 독후 기록장도 저와 주고받는 영어 감상 일기 형식으로 썼어요. 혼자 쓰게 하면 숙제가 돼버려 아이가 금세 지겨워하거든요. 이 점에서 아쉬운 건 아들이에요. 아들은 그림이 없는 챕터 영어 동화 단계에서 제가 바빠지는 바람에 같이 읽어주지 못했는데 그게 가장 후회돼요. 두 아이의 영어 실력 차이도 거기서 온 것 같아요.”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보라(프리랜서) ■사진 / 김태환 ■참고 서적 / 「유능한 교사는 자신의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는가」(이정원 저, 알투스), 「책 읽는 아이, 토론하는 우리 집」(김성현 저, 미래지식)>
김은혜 앵커, 슈퍼우먼은 없다
김은혜 앵커, 슈퍼우먼은 없다
2015. 10. 02 11:42 연예
보도국으로 되돌아온 지 벌써 1년. 세월이 흐른 만큼 방송 환경도, 시청자도, 자신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다짐만큼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기자이자 앵커에서 청와대 대변인, KT 임원을 거쳐 다시 앵커가 됐다. 작년 9월부터 MBN의 오후 뉴스 프로그램 ‘뉴스&이슈’를 진행하고 있는 김은혜(44) 앵커의 이야기다. 9월의 어느 날 저녁, 방송을 마치고 온 그녀를 만났다. 이번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앵커 복귀 1년맞이 중간 점검 인터뷰쯤 되겠다. “다시 시작하니 무척 어려웠어요. 옛날에 앵커를 어떻게 했나 모를 정도로요. 기자를 그만둔 뒤로 7년, 앵커로서는 9년간의 침묵을 깨고 다시 시작한 거예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뉴스를 진행하기에는 공백기가 참 길었죠.” 1993년 문화방송(현 MBC)에 기자로 입사한 뒤 ‘뉴스데스크’, ‘뉴스투데이’ 등 뉴스 프로그램 앵커로도 활동한 그녀에겐 언제나 ‘여성 최초 정당 출입 기자’, ‘최초 기자 출신 여성 앵커’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만년 기자일 줄만 알았던 그녀가 2008년 2월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된 건 꽤 의외였다. 2년 5개월간 몸담았던 청와대를 떠난 뒤 지난해 2월까지는 KT에서 콘텐츠전략과 커뮤니케이션 파트의 전무로 근무했다. 이후 주부로 지내던 그녀가 다시 카메라 앞에 서게 된 이유는 뭘까. ‘약한 사람에게 약하고 강한 사람에겐 강한 사람이 되자’라던 초심 때문이었다. “기업에서 퇴사하고 가정주부로 지내고 있을 때 세월호 사고가 났어요. 모든 엄마들이 그랬듯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일부러 뉴스를 보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동안 사회가 ‘우리’라는 개념을 까맣게 잊고 산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초심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고요. 제가 다시 방송에서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단 한 사람의 공감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세 살의 김은혜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걷어내고자 기자 일에 뛰어들었다. 이때의 마음가짐으로 어떤 영역에 있든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청와대 대변인과 기업 임원으로서의 일은 방송국에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상대방에게 묻기만 하던 사람이 쏟아지는 질문을 받게 됐을 때의 난처함과 곤혹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부는 성장률과 수출 규모를 홍보하고 싶은데, 정작 국민은 당장 먹고사는 게 걱정인 게 딜레마였어요. 화려한 수치의 그늘에 있는 이들의 입장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후회가 남기도 해요. 기업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비싼 통신료를 인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많이 고민했는데 사익과 공익을 겸비한다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열심히 일했지만 충분했는지는 좀 의문이에요. 지금 방송하는 게 더 낫지 않나요?(웃음)” 맨 꼭대기에서 아래를 조망하는 것은 그녀에게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방송을 다시 시작하니 처마 밑에서 사람들과 함께 위를 올려다볼 수 있게 돼서 좋다고 한다. 지금도 항상 흔들릴 때마다 경찰서를 출입하던 사회부 기자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때의 너처럼 살고 있니? 이게 맞니?’라고. 서툰 엄마 2006년 국제변호사 유형동씨와 부부의 연을 맺은 그녀에게는 아홉 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다. 일하는 엄마에게 아들은 항상 뒷전이었는데, 피를 나눈 형제 하나 없는 아이가 커가면서 느낄 외로움이 걱정됐다. 문득 ‘부모가 죽으면 이 아이는 누구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주부로 지내는 동안 아들과 단둘만의 여행을 계획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이가 더 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는 그 여행이 “모자 사이를 전격적으로 멀어지게 했던 사건”이라고 말한다. “워낙 저하고 지내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들은 얼씨구나 하고 따라나섰죠. 그런데 제가 계획을 철저하게 짜지 않고 갔어요. 기차 타고 돌아다니다가 발길 닿는 데서 자는 식이었죠. 하지만 그 안에서 쓴맛과 서로에 대한 정을 느끼기엔 아이가 너무 어렸던 것 같아요. 저는 아이를 대학생처럼 생각한 거죠(웃음). 5km를 내리 걸어가고, 저녁이라고는 빵 하나에…. 아이가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조금 서툴더라도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지만 아이는 실망할 뿐이었다. 그녀는 주부로 지냈던 6개월이 그 어떤 때보다 힘들고 어려웠다고 말한다. 오죽하면 주부의 삶을 갖가지 전문 영역이 필요한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했을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도 어느 순간 시간을 초 단위로 나눠서 아이에게 이것저것 시키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돼요. 마치 후배 기자에게 계속 지시하고 감시하는 선배처럼요. 하루는 아이가 ‘일 안 해? 어디 안 나가?’라고 묻더라고요(웃음). 음식도 그렇고 가사도 그렇고 제대로 잘하는 게 없었어요.” 다시 일을 시작한 지금, 둘의 시간은 예전처럼 줄어들었다. 얼마 전 아이가 건넸던 한마디는 또다시 엄마의 가슴을 후벼 팠다. “아이를 챙겨주긴 해야 하는데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격한 소리가 먼저 나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자신이 외롭거나 아파서 곁에 누군가 필요할 때 엄마는 항상 그 자리에 없었다고요. 아이와의 삶은 정말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그녀는 ‘성공하는 여성, 알고 보니 싱글이더라’라는 명제에 전적으로 한 표를 던진다.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슈퍼우먼처럼 비쳐졌던 그녀에게도 일과 가정의 양립은 힘든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슈퍼우먼은 없다고 생각해요. 인생에도 총량의 법칙이 적용돼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어요. 일과 가정에서 둘 다 완벽할 수는 없죠. 어느 한쪽에 열정과 시간을 투자한다면 다른 쪽의 불가피한 희생은 안고 가야 해요. 저는 지금까지 일과 가정을 7:3 비율로 해서 살아왔어요.” 청와대 대변인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남편과 아이는 ‘축 잘림’이라고 쓴 스케치북을 들고 그녀를 맞이했다. 항상 자신을 배려해주는 두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한번은 아이가 엄마,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우리 주변 사람들이 사는 게 좀 더 편해지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해줬죠. 그러고는 너도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먼저 가서 그 길을 열려고 하니까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어요. 역시나 이해를 못하더라고요(웃음). 제가 아이와 함께해주지 못하는 시간 동안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그건 ‘단절’이 아니라 ‘순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사람’ 그동안은 직업의 성공이 중요했고, 어떻게든 승부수를 걸어야만 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 최초의 기자 출신 여성 앵커였던 그녀가 잘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김은혜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질주하는 삶 속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는 걸 차마 모르고 지냈다. 이제야 그 사람들이 가슴에 송곳처럼 박힌다. 특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아버지와는 예전부터 사이가 썩 좋지 않았어요. 불교 신자이신 아버지는 한 집안에 두 종교를 허용할 수 없다며 교회에 다니는 저를 이해하지 못하셨죠. 하지만 제가 기자가 되고 나서부터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하셨어요. 딸이 워낙 힘든 일을 하니까 안쓰러우셨나 봐요. 그런데 저는 항상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기다리게만 했어요. 결혼을 하고 애도 낳아 보니 어머니, 아버지 모습이 다시 보이더라고요. 감사한 마음을 담아 건강검진권을 선물해드렸죠. 제대로 된 선물을 드린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병원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라는 것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께 선물다운 선물을 했는데, 그것이 시한부 통보를 불러왔다. 겁이 많으신 아버지께는 염증이 생겼다고 둘러댔다. 그녀는 아버지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돌아가신 직후에 정신없이 집에 가서 영정으로 쓸 사진을 찾았어요. 아버지께선 본인이 암에 걸린 걸 모르셨으니 따로 찍어둔 사진은 없는 줄 알았죠. 그런데 장롱을 열어보니 무척이나 야윈 모습의 영정 사진이 있더라고요. 저희 몰래 찍어놓으신 거죠. 순간 ‘나, 이때까지 뭐 하고 산 거지?’ 싶어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그래서 저는, 일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지나가는 20대 청년을 보면 ‘오빠’라고 부르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들처럼 보이는 나이가 됐다. 40대에 들어서니 돌아볼 게 많아졌다. ‘이 아이들을 위해 난 뭘 할 수 있지?’라는 고민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실력이 아닌 다른 외생변수로 인해 인생의 운을 틔우게 하는 건 정당하지 않잖아요. 조건이 윤택한 사람에게만 기회가 제공된다면 그건 우리가 살아갈 사회의 올바른 모습이 아닌 거죠. 이런 것들을 기사로 개선하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고요.” 기자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려 수명이 짧은 직업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청와대 대변인과 기업 임원으로 일할 때도 기자 못지않은 긴장감과 불안에 시달렸을 게 틀림없다. 그녀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궁금해졌다. “그냥 자요. 잠이 들면 모든 것이 무장해제되잖아요. 아, 그리고 작물을 키우는 것도 좋아해요. 잡초가 더 많긴 하지만(웃음).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멈춰 있는 듯하지만 항상 자라고 있어요. 아이의 학습으로 키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모두 엄마의 몫이 돼버렸죠. 흙을 만지면 마음이 평온해지더라고요. 속도와 경쟁을 하다 보니 잠시 멈추는 게 필요했어요.” 현재 그녀는 ‘시청률’과 씨름하고 있다. 소수 언론사에서만 뉴스를 보도했던 과거에는 ‘독점’이 주는 묘한 편안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시청자들이 많이 무서워졌어요. 지금은 뭘 하나 하려고 해도 ‘그거 아침에 인터넷에서 봤다’, ‘다른 종편에서 다 봤다’, ‘뉴스를 왜 이리 편안하게 만드니?’라는 피드백을 시청률로 보여주세요. 울림이 있는 뉴스를 만들어야겠더라고요.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제 스스로가 공명이 되는 사람이어야겠죠. 깊이가 있는 시청자를 따라가느라고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예요.” 김은혜의 커리어는 보도국에서 끝을 보는 걸까. 가족이 허락해주기만 한다면 앵커이든 그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사실 뭐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기자일 때는 정말 기자로서 끝내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일은 달라도 원래 지향하던 바를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대변인과 기업 임원을 했던 거고요.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포부로 방송국에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끝이 어디일지는 잘 모르겠어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녀는 미혼인 기자에게 결혼을 늦게 하라는 조언을 건넸다. 일하는 엄마는 항상 죄책감과 싸워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 10시. 그녀는 레고를 만지작거리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보러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장태규(프리랜서) ■의상&액세서리 협찬 / 부래당(02-460-0358), 아이러브플랫(070-8632-7937) ■헤어&메이크업 / 김지헤, 오지은 ■스타일리스트 / 박남일, 천다희(어시스턴트)>
아이 낳고 제2의 인생사는 김은혜 기자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2008. 02. 11 연예
MBC 김은혜 기자는 요즘 ‘행복’이 뭔지 새삼 깨닫고 있다. 그녀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두 남자가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은 2006년에 결혼한 남편 유형동(국제변호사)씨, 또 다른 한 명은 지난해 태어난 아들‘희준’이다. 기자로서의 영광보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더욱 소중하다고 말하는 김은혜 기자의 육아 일기를 공개한다. 광화문에 자리한 MBC 김은혜 기자(38)의 신혼집. 장난감, 책, 보행기 등으로 가득한 그녀의 집은 ‘아이’를 키우는 여느 집과 똑같았다. 반갑게 취재진을 맞이하는 그녀의 품에는 이제 막 11개월을 넘긴 아들 ‘희준’이가 안겨 있었다. 아이는 모르는 사람의 방문이 낯설었는지, 울먹이면서 엄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이가 이렇게 예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김은혜 기자는 아이에게 “괜찮아. 우리 희준이 예쁘게 사진 찍어주시러 오신 분들이야. 빨리 옷 입고 예쁘게 사진 찍자~”라며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곧이어 아이가 컨디션 난조(?)를 보이면서 바로 사진 촬영에 들어갔지만, 아이를 웃기려는 취재진의 제스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희준’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다시 자리를 바꿔 진행된 촬영. 이번에는 김은혜 기자가 아이 앞에서 재롱을 부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자 앞에서는 울음을 터뜨렸던 아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방긋방긋’ 웃었다. ‘공’으로 본인의 머리를 때리면서 아이의 웃음을 끌어내는 그녀. ‘저 사람이 똑 부러지고 당찬 목소리로 뉴스를 전하던 김은혜 앵커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역시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그녀는 아이가 잠들고 난 뒤, 이제야 한숨 돌렸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아이의 칭얼거림에 힘들 법도 한데, 얼굴에는 지친 기색보다 기쁘고 행복한 표정이 넘쳐난다. ‘아이 달래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는 기자의 칭찬에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아이 볼 시간이 많지 않으니, 같이 있는 시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이라고 쑥스럽게 웃는다. 2006년 3월 국제변호사 유형동씨(38)와 결혼한 후, 지난해 3월에 아들을 낳은 김은혜 기자. 최초의 기자 출신 앵커우먼, 최초의 정당 출입 여기자 등의 수식어로 방송가에 ‘살아 있는 전설’ 이 되고 있는 그녀에게 ‘엄마와 아내’의 자리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했다. 그녀는 “사실 엄마가 될지 몰랐다”면서 “강아지를 받아도 감사할 나이에 ‘아이’를 주셨다”는 표현으로 아이를 얻은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이었음을 밝혔다. 사실, 진통할 때만 해도 ‘아이’가 이렇게 예쁠 줄 몰랐다는 것. 김은혜 기자가 진통 때문에 힘들어 하니까 신랑이 ‘내가 3년 군대 갔다 온 걸, 하루에 한다고 생각하라’면서 위로해줬는데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더란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참고 처음 품에 안은 아이. 그때 그녀는 “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감동을 새삼 다시 느꼈다”고 밝혔다. “최초의 앵커, 최초의 정치부 기자 등은 저에게 ‘영광’일 수는 있지만, ‘부담’이 되는 부분도 있거든요. ‘최초’는 ‘최고’가 아니면, 그 역사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에게 첫 ‘아이’가 주는 기쁨은 ‘일’에서 얻는 보람과는 차원이 다르게 기쁘고 감사하더라고요.”“아이의 성장, 매일 매일이 기적 같아요” 특히 그녀는 아이를 낳고 난 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기쁨을 느낀다. 엄마로서 느끼는 ‘기쁨과 행복, 슬픔과 괴로움’이 ‘엄마’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축복’이라는 것. 그래서 그녀는 요즘 너무나 행복하다. “매일이 기적 같아요. 아이의 새로운 발전, 성장을 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뉴스만 나날이 새롭게 바뀌는 줄 알았어요. 집 안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매일 새로운 보람일 줄은 몰랐어요.” 아이를 낳은 뒤 김은혜 기자는 정말 많은 것이 변했음을 느낀다. 과거 김은혜를 이끌고 지배했던 키워드가 ‘성공’, ‘도전’, ‘성취’ 등이었다면, 지금은 ‘행복’, ‘보람’, ‘기쁨’ 등의 감성적이고 기본적인 키워드로 채워져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흔들리지 않는 ‘기본’은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수 있게 만든다고. 또 그녀의 ‘취재일기 한편에 ‘육아일기’를 쓰고 있다는 점 또한 달라진 점이다. “옛날에는 보람을 나눌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는 남편, 아기와 나눌 수 있고, 회사에서 아픔이 있으면 혼자의 아픔으로 간직했는데, 이제 아기를 보면 씻은 듯이 사라진다는 게 정말 신기해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빠르게 캐치해내던 그녀였지만, ‘아이’ 앞에만 서면 그 어떤 능력도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아이가 우는 이유는 한 2백 가지가 넘는 것 같아요. 배가 고플 수도 있고, 코가 막히거나, 어디가 아플 수도 있죠. 그래서 아이를 대하는 방법은 절대 익숙해질 수가 없어요. 어떤 때는 신랑과 함께 ‘지금 희준이가 뭘 원하는 걸까’, ‘도대체 왜 우는 걸까’를 고민하면서 머리를 감싸고 바라볼 때도 있어요. 정말 어려워요.”“아기와 남편 때문에 웃음이 끊이질 않아요” 서른일곱에 귀하게 얻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희준이. 하지만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으로서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절대적인 ‘시간 부족’으로 아이 얼굴 볼 시간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요즘에는 출근하기 전 하루 30분 얼굴 보는 게 전부. “요즘에는 ‘하루에 30분 집중적인 말 걸기 훈련’을 통해 희준이와 농도 깊은 대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지쳐서 대화를 안 하는 것보다 하루 30분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해서요(웃음).” 하지만 가끔은 아이가 원하지 않는데도, 의욕 과잉으로 말을 많이 해 아이를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아이에게 짧은 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한 행동이 가끔은 반감을 사기도 하는 것. ‘워킹맘’으로서 또 한 가지 힘든 것은 바로 ‘아이가 아플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아기가 갑자기 열이 나서 아팠는데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아이가 아플 때는 제가 대신 아프거나, 대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의 모성애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아이가 아플 때 제가 뉴욕 출장 중이었는데, 집에 와보니 나를 쳐다보는 아이의 눈길이 굉장히 싸늘한 거예요. 자신이 아플 때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아이가 아는 거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사실 김은혜 기자는 “결혼 전부터 결혼한 여성의 성공이 ‘진짜 성공’이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한 직장에서 일을 하는 여성으로서 어머니, 아내, 며느리 역할까지 하면서 일궈낸 성공이 진짜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진짜 성공론’을 위해 뛰고 있는 지금 ‘진짜 힘들구나’ 느끼죠(웃음).” 사실, 회사에서는 ‘기자’로서 프로 근성 때문에 오직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러다가 일을 마치고 나오면서 비로소 ‘아기는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 그럴 때면 미안함과 죄책감이 뒤범벅된다고. 그녀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일과 육아에 대한 고민은 지금 세대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는 답을 내놓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 하려면, 필히 두 사람의 희생이 뒷받침돼야 해요. 한 명은 ‘아기를 봐주는 분’, 또 한 명은 엄마를 보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아기’. 우리 사회 특성상 그런 희생이 없으면 여성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서글프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걸 딛고 일어서야만, 다음 후배들이 편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오히려 일을 더 열심히, 더 진취적으로 해야 힌다고 생각해요.”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 그녀가 빼놓지 않고 꼭 하는 일이 있다. 바로 ‘희준’의 이유식을 손수 만들어주는 일이다. “10시에 퇴근하고 나면, 아이 먹을 이유식을 새벽 2시까지 만들어놔요. 고기와 채소 등으로 2~3가지 이유식을 만들죠. 아이의 밥은 제가 직접 해 먹이고 싶어서요.” 그녀의 남편 역시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육아’를 도와주기는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아이를 위해 ‘몸을 던진다’고 한다. 특히 그녀가 밤늦게까지 이유식을 만들고 있는 시간은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당번이 된다. “남편은 아이와 공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을 치기도 해요. 특히 아이가 남편이 자기 머리를 공으로 때려서 아프다는 시늉을 하면 아주 좋아해요. 하하하.” 아이를 낳은 이후, 남편 역시 많은 변화를 보였다고 한다. 평소에는 말수도 적고, 근엄하기까지 했던 남편이 아이 앞에만 서면 바로 무너져버린다는 것. “아이 앞에서 남편은 정말 와르르 무너져요. 그 근엄한 변호사가 자기 머리를 공으로 때리면서 ‘아’ 하는 그 표정이 꼭 만화를 보는 것 같다니까요. ‘어떻게 저런 애교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그래서 우리 집은 ‘아기’ 때문에 한 번 웃고, ‘남편’ 때문에 또 한 번 웃어요.”“다시 태어나도 기자 하고 싶어요” 오는 3월 5일은 ‘희준’이의 첫 생일이다. 김은혜 기자는 한 달 전부터 희준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기 위해 ‘안성기, 엄기영, 태진아, 박경림, 무한도전 식구들’에게 희준이를 위한 동영상 축하 메시지를 받으러 다녔다. 희준이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희준이의 돌잔치는 집안 사정 때문에 2월 17일에 할 예정이다. 지난해 김주하 앵커 아기의 돌잔치에서는 아기가 엄마를 닮아 ‘마이크’를 집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말을 건넸다. 이에 그녀는 “돌잔치 상에 마이크는 아예 가져다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기자’를 권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우리는 축구공을 아이 앞에 놓으려고 해요(웃음). 왜냐하면 평소 아이가 공을 좋아해요. 그리고 엄마 아빠도 축구 광팬이거든요.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게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 것 같아요.” ‘아이보다 엄마 아빠가 축구를 좋아해서 아이에게 시키려는 것 같다’고 하자 “듣고 보니 맞다”면서 까르르 웃는다. 올해로 기자 경력 15년 차인 김은혜 기자. “다시 태어나도 기자를 하고 싶다”며 본인에게 기자는 천직이라고 말한다. 기자로서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기자로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약한 자에게 약하고, 강한 자에게 강하자’라는 신념이 기자로서의 정의감을 세우는 저의 첫 번째 단계였다면, 이제는 좀 더 따뜻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자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일 수도 있고, 인터뷰 형식의 프로그램일 수도 있죠. 어떤 모습으로 나서야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눈을 전파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객관적이고 사무적인 ‘앵커 혹은 기자 김은혜’의 모습을 상상하던 기자에게 아이 앞에서 바로 무너지는 ‘엄마 김은혜’의 모습은 정말 신선하고 놀라웠다. 한 시간 반에 걸친 인터뷰 내내, 얼굴에서 단 한 번도 미소가 떠나질 않았던 그녀는 함께 있는 사람까지 행복하고 유쾌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일’에서는 1분 1초까지 계산하는 꼼꼼함과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아이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던 그녀.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자기 일을 가진 전문직 여성으로서 그 어떤 부분도 절대 소홀하지 않는 김은혜.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결혼 이후 출산과 육아를 겪으면서 ‘진짜 성공한 여성상’을 몸소 실천하는 그 자신만만한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홍태식
‘최초’라는 수식을 달고 ‘밀알’의 역할 자처하는 MBC 앵커 김은혜
2006. 01. 01 화제
“‘디지털’ 시대라지만 미래를 움직이는 희망은 여전히 ‘아날로그’라고 믿습니다” MBC 보도국의 김은혜 기자는 최초의 기자 출신 여성 앵커다. 남성 앵커는 기자, 여성 앵커는 아나운서라는 방송 뉴스의 공식을 깨고 이후 여기자들의 연속적인 앵커 입성을 이뤄낸 선봉장인 셈이다. 남자들보다 두 배, 세 배 잘하지 않으면 여간해선 성공하기 힘든 치열한 경쟁 세계. 그 속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며 맹활약해온 그녀가 세계의 리더들을 만나 취재하며 깨달은 이 시대 성공학을 들려준다. 키워드는 의외로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였다. 플루트 주자를 꿈꾸던 여고생이 특종 기자가 되기까지 방송사 첫 국회 담당 여기자, 우리나라 첫 여기자 출신 앵커. 김은혜(34) 기자에게는 늘 ‘최초’라는 수식이 뒤따른다. 여성 앵커로서 저녁 뉴스를 단독으로 진행한 것도 그녀가 처음이다. 1993년 MBC에 입사한 이후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며 취재 현장을 뛰면서도 동물적인 감각과 우직한 성실함으로 다수의 특종을 낚아 올렸다. ‘안 되면 되게 한다’는 군대식 명제가 보도국 내에서 그녀의 평판이 되기도 했다. 이달의 기자상(1994), 바른말 보도상(2004), 대학생들이 뽑은 ‘닮고 싶은 여성’ 1위(2001~2003), ‘자랑스런 이화신문방송인상(2000) 등 뛰어난 활약상만큼이나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저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플루트를 했어요. 음대 입시를 위해 다른 학생들처럼 레슨을 받고 있었죠. 그런데 저희 레슨 선생님이 음대 입시 비리로 구속이 됐어요. 저에게 선생님의 구속은 한마디로 충격이었죠. 당시 신문에서 음대 입시관련 보도를 상세히 읽었어요. 그때까지 선생님은 내게 진리이자 표본이었는데 그것이 사실은 허위이고 어둠일 수 있다는 걸 신문 기사를 통해 알았어요. 선생님은 약한 내게 강하게 군림했지만 나는 약한 사람에게 약하고 강한 사람에겐 강한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죠. 그래서 기자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앵커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2001년, 스탠퍼드대에서의 유학 생활은 성공이라는 짧은 명제에 긴 호흡을 불어넣어준 결정적 계기가 됐다. APARC (Asia Pacific Research Center) 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에 머물며 더 넓은 세상을 체험하는 동시에 혼자만의 깊이 있는 사색의 시간도 가졌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고 주도하고 있는 힘은 기술과 정보를 뛰어넘어 ‘사람에 대한 믿음’과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원칙’, 즉 ‘아날로그 성공 법칙’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역시 큰 수확이었다. 그 때문일까. 공격적인 취재 스타일 탓에 와일드하고 거침없는 중성적 이미지가 강했던 그녀가 유학 이후 많이 달라졌다. 표정도, 목소리도, 말씨도 한결 부드럽고 따뜻해졌다. 곁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지인들도, 브라운관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는 시청자들도 그런 그녀의 은근한 변화를 꿰뚫고 있다. “미국에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겨서 그런지 사람이 변하더라”며 그녀 자신도 유쾌하게 인정한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 9.11테러가 터졌어요.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전화부터 구입해서 설치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회사로부터 임시 워싱턴 특파원을 명 받았죠. 일복이 터졌다고 해야 하나.(웃음) 테러 이후 일주일간 워싱턴행 비행기가 안 떴어요. 그러다 비행기 운항이 재개됐을 때 그 커다란 비행기에 저와 웬 백발의 할머니 이렇게 둘만 달랑 탔더라구요. 추가 테러 위험 때문에 아무도 비행기를 타려 하지 않았거든요. 그 할머니와 둘이서 엄청 수다를 떨면서 갔었는데, 할머니가 그러시더라구요. 자긴 살 만큼 살았지만 넌 도대체 뭐냐고요.(웃음)” 워싱턴에 도착해 테러 현장을 취재하던 당시 그녀의 근무시간은 하루 20시간. 업무량이 너무 많아 공포를 느낄 새도 없었지만 그녀가 머물던 프레스센터는 2차 테러 대상 2순위였다. 그러다 국방부와 의회 건물에 바리케이트가 쳐진 이후 프레스센터는 2차 테러 대상 1순위로 뛰어올랐고 그녀는 그렇게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취재에 전념했다. 의회에서 발견된 탄저균 봉투를 취재하고 난 뒤 감기 증상과 비슷한 탄저균 초기 증상이 나타나 마음 졸였던 기억도 있다. 오기로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가, 탄저균 잠복기간이라는 한 달의 시간이 흐른 뒤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감기. 태어나서 감기 진단 받고 그렇게 행복했던 적은 없었단다. 디지털로 생각하고 아날로그로 행동하라 “스탠퍼드에서의 시간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영어로 논문을 발표하고 문답 시간을 갖는 형식의 프리젠테이션이 총 네 번 있었는데 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어요. 스트레스를 다스리려 바닷가를 찾곤 했는데 일몰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죠. 대낮에 떠 있는 햇볕은 되게 따갑지만 지는 햇볕은 너무 따뜻하거든요. 사람들은 대낮의 햇볕을 따갑고 부담스럽게 생각하지만 지는 해는 기꺼이 바라보면서 그 빛에 스스로 물들죠. 질주하듯 살아온 기자로서의 제 삶이 대낮의 해 같았다면 이제는 사람들에게 더 부드럽게 힘을 빼고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비워내고 그 속에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채워야겠다는 깨달음이었다고 할까요. 그랬기 때문에 세계적인 CEO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 사람들의 삶의 철학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의미 있는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잠깐의 술수나 요령에 기대지 않는다는 것도 절실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그녀는 자신의 두 번째 저서 「디지털로 생각하고 아날로그로 행동하라」(가제)의 마무리 작업에 골몰해 있다. 유학시절 칼리 피오리나, 맥 휘트먼, 게리 양 등 세계적 CEO들과의 만남과 귀국 후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엘지 회장 등 거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통적으로 발견한 ‘아날로그’의 힘을 주제로 삼았다.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리더들이 사실상 아날로그형 인간이라는 자신 나름대로의 발견과 결론이 한편으론 신선하고 한편으론 다행스러웠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을 확보하고 싶다면 아날로그를 활용해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은 다소 시대에 역행하는 성공 전략처럼 들릴 수도 있다. 속도와 기술이 우선시 되는 디지털 시대에 느리게, 그러나 바르게 성공하라는 주문은 기존에 접하던 성공론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이 갓 담근 겉절이 김치의 맛이라면 아날로그는 발효된 된장의 맛이 나죠.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라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기교와 결과 중심이 아닌 사람에 대한 존중과 원칙, 그리고 신뢰가 그들의 성공 비법이죠. 그 사람들은 원칙에 대한 소신이 있기 때문에 성공에 대한 강박이 없습니다. 제가 단독으로 만나 인터뷰했던 전 휴렛 팩커드 CEO 칼리 피오리나는 기술시대 리더에게 중요한 점이 배려, 친절, 관용이라고 말했어요. 그런 면에서 미래사회는 여성들이 성공할 여지가 많다고 봅니다. 여성 리더들 중에는 권력이나 돈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섬세함을 갖춘 사람들이 많거든요.” 디지털은 겉절이, 아날로그는 된장 그녀는 자신의 역할을 ‘밀알’로 규정한다. ‘최초’라는 말은 제2, 제3이 나올 때라야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 이후 기자 출신 여성 앵커들이 그녀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양보와 관용은 그녀가 말하는 ‘아날로그형’ 리더십의 핵심 요건이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다시 앵커직을 맡으라는 회사의 권유를 고사한 것도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스탠퍼드에서 공부한 경제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경제부 기자로서 현장을 더 뛰어보고 싶기도 했다. 김은혜는 또 ‘일촌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촌 정보란 속도에만 의존한 즉각적인 정보가 아니라 ‘발효된’ 정보, 깊이 있는 정보라는 점에서 또 다시 ‘아날로그’와 맥이 통한다. 예를 들어 그녀가 공무원을 인터뷰한다고 하면 그 공무원의 프로필에 ‘취미 : 테니스’라고 적힌 정보를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취미가 골프지만 취미란에 ‘골프’라고 적어 넣을 공무원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시드니 올림픽 때 단독으로 사마란치 IOC 위원장을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도 ‘일촌 정보’가 주효했다고 한다. 그의 부인이 개막식 전날까지 중태라는 정보를 그녀만이 갖고 있었던 것. 개막식날 모든 기자들을 외면하고 개회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그녀는 “당신의 부인이 이렇게 중태인데 개막식을 잘 치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얘기에 사마란치 위원장이 뒤를 돌아보았고 3분 동안 인터뷰를 끌어낼 수 있었다. 올림픽 개회식 보도 가운데 세계 유일의 사마란치 인터뷰를 그녀가 따낸 것이다. “IOC 위원장실 밖에서 사마란치 위원장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IOC 위원들이 하는 대화를 스치듯 듣고 알게된 정보였어요. 물론 그것도 그 사람과 인터뷰하기 위해 끈기 있게 계속 기다렸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결실이었죠. 정말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답을 해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경쟁력, 그것은 그 사람의 발효된 정보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느려도 제 갈 길을 간다는 점 또한 아날로그형 인간의 성공 비결이다. 때로는 기꺼이 손해를 보는 것도 필요하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손해를 보고 나면 자기 마음의 평화는 물론이고 예상치 못했던 행운이 계속 온다는 것을 그녀는 경험으로 깨달았다. 4년 전 신당 창당의 조짐을 보이며 한창 이슈를 몰고 다니던 박근혜 대표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한 선배가 이미 박대표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에서는 그녀에게 박대표와의 인터뷰를 지시했지만 그녀는 그 인터뷰를 포기했다.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천생 기자’인 그녀가 기사거리를 포기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왜냐하면 그 선배는 그 인터뷰를 통해서 기자로서의 재도약을 시도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 선배의 얼굴에서 그 사실을 캐치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선배는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해냈고, 저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 뒤로 더 많은 기회들이 저에게 찾아왔어요. 그 일이 있은 직후에 박세리, 히딩크 등을 직접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거든요. 혼자 튀어야 살 수 있는 것이 방송사의 생리지만 같이 커나가면서 그 안에서 대세를 읽어내는 것이 기자 출신 첫 앵커로서 저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자로서 지금의 입지를 굳히기까지 그녀의 노력은 지난한 것이었다. 어디서나 그렇듯 여자는 남자보다 두 배, 세 배 잘해야 ‘본게임’에 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 최초의 국회 출입 여기자로 일할 당시 그녀는 관계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보좌관들을 비롯해서 국회의원들까지 그녀를 유난히 ‘편애’했다. 기자회견에 들어갈 기회도 더 자주 주어졌고, 질문의 기회도 더 많이 돌아왔다. 남자 기자들이 ‘역차별’을 토로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가 해당 사안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은근한 목소리로 “김기자 결혼은 언제 해?” “바바리 어디서 샀어?”하는 식의 사적인 접근이 되돌아오곤 했다. 현안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으면서 밖에 나가서 친하다는 말만 많이 듣는 것이다. 희소성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를 반겨준다고 해서 그걸 자기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걸 그녀는 알았다. 그들을 일로서 설득할 수 있는 프로정신이 없다면 그 사람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사적인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는 대신 그 사람보다 더 정확한 정보로 정곡을 찔렀다. 가장 최신의 정치적 정보를 슬쩍 들이밀며 일적인 접근으로 상황을 돌리는 것이다. ‘최초’는 제2, 제3이 뒤따를 때 의미를 갖는다 그녀가 애용(?)하는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 한 가지 있다. 자신에게 질시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축복의 기도를 해주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연습하면 된단다. 잘난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인화력이 약한 경우가 많은데 나름의 마인드 컨트롤이 뒤따르지 않으면 커리어까지도 흔들리 수 있다. 항상 두각을 나타내며 커리어를 쌓아온 그녀로서는 그런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회사의 얼굴로 시청자들과 최전선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앵커는 분명 매력있는 직책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기자가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 꽤 되다 보니 그런 제의도 받아요. 지난 총선 때는 전국구 1번을 주겠다는 제의가 왔었어요. 하지만 정말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척박한 환경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여성 인력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제쳐두고 저에게 그런 제안이 온다는 것은 여성 인력 파악이 빈약하다는 증거겠지요. 지금 제자리에 충실하고 싶다고 고사했어요. 아직 기자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인터뷰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싶어요. 앵커로서의 전달력에다 기자로서의 제 긴 호흡을 배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글 쓰는 작업도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 이번에 낼 책도 질주하듯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쉼표가 됐으면 좋겠구요.” 30대 중반을 향하고 있는 그녀에게 결혼 역시 외면할 수 없는 일. 구체적인 결혼계획은 없지만 좋은 만남을 갖고 있는 남자친구도 있다. “제 나이에 결혼은 욕심을 비워내고 해야 하는 결정이기 때문에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이제는 결혼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2004년 말에는 2005년에 결혼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2005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은 “2006년이 잔뜩 남았잖아요”라며 응수한단다. 남자친구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싶다면서 말을 아꼈지만 어쨌든 행복한 연애에 빠져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이름 앞에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성취감과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에 더없이 뿌듯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들 앞에 적잖은 부담감도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김운용 IOC 위원은 단연 그 논쟁의 중심에 놓였다. 그에게 쏟아진 여타의 비난 여론을 차치하더라도, 세계 체육계의 요인으로 입지를 굳힌 그가 정작 후계자를 키우는 일에 소홀했다는 지적만큼은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뒤따르는 이들을 위해 자신이 개척해 온 길을 기꺼이 가이드로 제시하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더러는 자신이 선점한 자리에 자족하거나 독점욕을 드러내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래서일까. “처음은 두 번째로 인해 의미를 가진다”는 김은혜 기자의 말에선 앞서가는 여성다운 ‘책임감’이 느껴져서 든든하다. 글 / 박연정 기자 사진 / 이상민 헤어·메이크업 / 김정숙·이상희(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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