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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22 건 검색)

김주열 열사 모친 등 ‘4·19혁명 유공자’ 31명 건국포장
2023. 04. 17 22:07인물
... 건국포장을 수여한다고 17일 밝혔다. 정부가 4·19혁명 유공자에게 포상하는 것은 3년 만이다. 김주열 열사의 모친 권찬주 여사는 3·15의거 이후 아들의 죽음을 은폐하려는 권력기관에 항거해 4·19혁명...
“5·18항쟁 진압은 유신 시위진압 체계의 귀결”··· 김주열 죽음은 “근대·인도주의적 최루탄” 표피 벗긴 사건
“5·18항쟁 진압은 유신 시위진압 체계의 귀결”··· 김주열 죽음은 “근대·인도주의적 최루탄” 표피 벗긴 사건
2022. 12. 08 07:00문화
... 최루탄을 내세우면서 김주열의 죽음은 고려하지 않았다. 권혁은은 4월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의 죽음을 두고 “경찰 ‘현대화’를 위해 도입된 최루탄의 ‘인도주의’라는 표피를 최초로 벗겨낸...
박정희정권시위진압최루탄
창원시, 3·15의거 기념관 개관…김주열 열사 동상 제막
창원시, 3·15의거 기념관 개관…김주열 열사 동상 제막
2021. 10. 21 11:22지역
... 열사 시신인양지(마산합포구 신포동1가)에 건립한 ‘김주열 열사 동상’의 제막식을 개최한다. 김주열 열사 동상 건립은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 환경개선 사업의 하나로 2018년 마산해수청의 승인을...
김주열
‘김주열 열사 사진’ 등 4·19자료 문화재 추진
김주열 열사 사진’ 등 4·19자료 문화재 추진
2020. 04. 09 21:36문화
... 개념으로 민주화 관련 자료의 문화재 등록이 추진되는 것은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9일 ‘김주열 열사 사진’ 등 4·19혁명 관련 자료들의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4·19혁명은...
4 19혁명

스포츠경향(총 2 건 검색)

‘4월의 불꽃’ 김주열 어머니 역 조은숙 캐스팅
‘4월의 불꽃’ 김주열 어머니 역 조은숙 캐스팅
2024. 05. 14 16:43 생활
□ 4월의 불꽃 제작발표회 (서울) 일시 : 2024년 5월 13일(월) 오후2시 장소 :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17, 419혁명기념도서관 1층 대강당 참석 : 배우 / 조은숙, 김명호, 조재윤, 정희태, 송민경, 전영주, 남현주 외 4.19회원 50명 / 스태프 30명 3.15와 4.19 혁명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4월의 불꽃’ 제작 발표회가 5월 13일(월) 오후2시, 서울의 419혁명기념도서관 1층 대강당에서 진행되었다. 영화 ‘4월의 불꽃’은 4.19혁명공로자회 서울특별시지부와 ㈜레드파노라마가 제작하고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서울시, 경상남도, 창원특례시 후원으로 제작된다. 박훈 4.19혁명공로자회 회장은 “영화 ‘4월의 불꽃’은 4.19혁명 64주년을 맞아, 자유당 정권의 불법적인 선거부정에 항거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다”고 밝혔다. 이어 “4.19 혁명은 특히 학생들의 큰 희생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 정의의 뿌리가 더욱 깊이 내릴 수 있게 되었는데, 특히, 젊은 세대에게 그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는 것이 필요하여, 대중적인 파급력이 높은 영화를 통해 당시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인간적이며 헌신적인 모습을 잘 담아내서 4.19 혁명의 정신을 함양 시키고자” 제작하게 되었다고 인사말에서 밝혔다. 제작을 맡은 ㈜레드파노라마의 송영신 감독은 “영화는 1960년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 열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풀어 낼 예정”이며 “팩트와 픽션을 가미한 극영화 형식으로, ‘419 혁명의 도화선을 찾는 휴먼시대극‘을 완성하겠다고 설명했다. 송영신 감독은 “주 촬영지는 경남 합천 드라마 세트장과 마산 창동마을 등 지역 곳곳의 역사성과 진정한 3.15와 4.19의 정신을 영화에 담고자 한다”며 “배우 조은숙(대표작 : 금나와라 뚝딱), 김명호(대표작 : 사랑의 온도 82도), 조재윤(대표작 : 아저씨)가 주열의 상대역으로 출연한다”며 주연배우들을 소개했다. 배우 조은숙은 이번 영화에서 김주열의 어머니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오게 되는데, 조은숙은 “3.15부정선거때 안타깝게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역할을 아주 애잔하게 연기할 예정”이라고 인사했다 배우 조재윤도 역사적인 진실과 영화의 긴박한 상황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함께 한다. 배우 조재윤은 “이번에도 악역이다. 그러나 역사의 중요 인물이기에 역을 맡았다”고 인사했다. 배우 김명호 (대표작 : 사랑의 온도 82도)는 그 시대를 주름잡았던 이승만의 양아들 이강석과 가짜 이강석, 락현의 1인2역을 맡아 연기 하고, 더 씨아의 송민경이 화양연화의 시월역에 합류한다. 특히 영화 초반 나레이션부분은 4.19혁명 세대인 배우 최불암 선생님을 섭외 중에 있다고 한다. 이번 영화는 독립영화이사장을 지낸 임창재감독과 제작사 ㈜레드파노라마의 송영신 송영신대표가 공동으로 연출하며 주촬영지는 역사성과 진정한 4.19의정신이 담긴 경남합천 드라마세트장과 3.15발생지인 마산지역 곳곳이다. 임창재 감독은 “영화 ‘4월의 불꽃’은 우리의 아들과 딸들 이었던 학생들이 희생되었던 영화이며 모든이의 어머니였던 김주열어머니의 사랑이 절절한 영화”라며 누구나 한번쯤은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어야하고 또 그 아픔을 기억하면서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보듬어 보게 하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송영신 감독은 “단지 부정부패에 대응하면서 일으킨 민주항쟁을 이야기 하고자 이번 영화가 제작되는것은 아니”라며 “그때 희생된 수많은 아들과 딸들, 그리고 시민들, 그들이 무엇 때문에 희생되었는지? 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상적인 일들, 그사이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가져온 비극은 무엇인지? 사람냄새 나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영화 ‘4월의 불꽃’은 곧 마산에서 두번째 제작발표회를 진행 할 예정이다.
[단독] 김주열 측 “‘꼬꼬무’ 제작진 감사해, 청춘들 위로됐으면”
[단독] 김주열 측 “‘꼬꼬무’ 제작진 감사해, 청춘들 위로됐으면”
2022. 01. 28 17:44 연예
‘4월혁명’ 주역인 김주열 열사를 ‘꼬꼬무’가 재조명한 것에 대해 김주열 측이 제작진에 감사인사를 전했다. SBS 방송화면‘4월 혁명’의 발단이 된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 재조명됐다. SBS 예능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28일 방송에서는 김주열 열사의 죽음을 재조명했다. 전라북도 남원 출신인 17세 소년 김주열 열사는 3·15 부정선거에 항쟁하기 위해 경상남도 마산으로 떠났으나 한달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야까지 이어지는 ‘4월 혁명’의 도화선으로 촉발된다. 김주열 열사의 모습은 처참했다. 최루탄 불발탄이 눈을 관통해 뒷목까지 뚫고 나와 있었던 것이다. 바닷물 위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 보도는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역사의 한페이지에 남아 있는 김주열 열사의 사사에 스튜디오에 있는 출연자들도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주열 열사의 사건을 조명한 ‘꼬꼬무’ 출연진들은 사건에 대해 충격과 슬픔을 감주치 못했다. SBS 제공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회장인 백남해 신부는 “김주열 열사를 다룬 ‘꼬꼬무’ 내용을 나도 봤다”며 “김주열 열사에 대해 요즘 트랜드에 맞게, 젊은 대중도 잘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조명해줘 고맙고,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1980년대 민주항쟁 열사분들에 비해 김주열 열사의 인지도가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라며 ‘꼬꼬무’ 제작진에게 재차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들이 적극적 투표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나라를 위하는 것이고 김주열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과도 같다”며 대선을 앞두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강조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 인양지는 장소로써는 최초로 지자체 문화제로 선정됐다. 김주열 열사의 동상이 시신인양지로 옮겨져 김주열 열사의 항거 정신의 뜻을 의미있게 할 예정이다. 백남해 신부는 “부정선거에 맞섰던 17세 소년 김주열 열사의 항거가 요즘 젊은 청춘들에게도 패기와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단독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광복 70년 역사르포](5) 김주열 시신 발견된 마산항 중앙부두…4월 혁명의 횃불이 솟아오른 곳(2015. 03. 24 13:42)
2015. 03. 24 13:42 사회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4월 11일 오전 11시. 마산(지금의 창원)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시신이 떠올랐다.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시민의 시위를 경찰은 최루탄과 총격으로 강경진압했다. 주춤하는가 했던 시위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 4·19 학생혁명의 기폭제가 된 것이 이 시신이었다. 김주열군의 어머니 권찬주씨는 27일 동안 아들을 찾아 헤매다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 아들 앞에서 오열했다. 김주열 열사와 학교 동기생인 정순구씨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얼굴에 못이 박힌 시신이 떠올랐다는 소문이 마산 전역에 삽시간에 퍼졌다. 고기잡이 배로 건져올린 김 열사의 주검이 누워 있던 장소는 지금의 합포구청과 창원지검 마산지청 사이에 있던 작은 연못 부근이었다. 구름처럼 몰려든 군중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더니 짚으로 된 거적이 깔려 있었다. 거적을 들췄더니 눈에 최루탄이 박혀 있는 주열이가 보였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마산항 중앙부두에는 이곳을 ‘혁명이 바다에서 솟아오른 곳’으로 표현하는 동판이 설치돼 있다. 민주화운동 장소 문화재로 첫 지정 마산 중앙부두 세 번째 포트(쇠말뚝)가 바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인양된 곳이다. 이곳에는 “역사는 이 바다에서 4월혁명의 횃불로 솟아올랐던 것이다”라는 동판이 설치돼 있다. 또 주변에는 김 열사의 얼굴에 박혔던 최루탄과 같은 종류의 최루탄과 함께 ‘추모의 벽’ 옆에 ‘4월혁명의 발상지’라는 표시를 해놓았다. 2011년 9월 경남도는 이곳을 경남도 기념물 제277호로 지정했다. 김주열 열사 추모사업회 관계자는 “경찰이 3·15 시위현장에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열사를 돌에 매달아 수장시킨 것”이라며 “민주화운동 관련 장소가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이곳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3·15 의거의 발상지는 3월인데도 썰렁했다. 이곳으로 가는 통로는 자물쇠로 잠가 일반인이 자유롭게 현장에 접근할 수조차 없다. 대로에서 이곳으로 안내하는 변변한 안내판도 없다. 중앙부두는 지금 행정선 몇 척만 접안하고, 주변은 물류창고와 야적장, 주차장으로 변해 어수선한 분위기다. 55년 전 이맘때로 되돌아가보자.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장기집권을 위해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자행한다. 부정선거는 선거 1년 전부터 최인규 내무부 장관의 지휘 아래 치밀하게 준비됐다. 당시 상황을 국립 3·15 민주묘지 기념관에서는 이렇게 정리해놓고 있다. “전국 경찰 주요 간부를 맹목적 충성인물로 교체하고, 야당의원들에 대해 집요한 분열공작을 펼쳤으며, 정치깡패 등을 동원해 야당의 선거운동을 방해했다. 일반 공무원들은 물론 교육공무원까지 부정선거 운동에 투입되어, 담임교사가 가정방문을 통해 자유당에 투표할 것을 설득·권유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선거 한 달 전인 1960년 2월 15일,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이 미국 육군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심장마비를 일으켜 서거했다. 이에 대통령은 이승만 단일후보로 당선이 확실해졌고, 부통령에 이기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 계획은 더욱 구체화되어 갔다.” 이때 마산에서는 한 변절 정치인이 시민을 분노케 했다. 야당인 민주당으로 당선된 허윤수 의원이 1월 5일 자유당 공천을 약속받고 탈당한 것이다. 자유당의 정치공작 결과였다. 마산 시민은 자신들이 찍어준 민심을 저버린 허 의원과 자유당에 격분했다. 1960년 4월 11일 마산항 중앙부두에서 발견된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시신.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학생과 시민을 향한 경찰의 총탄 자유당에 반발한 첫 민주화 시위는 대구에서 일어났다. 1960년 2월 28일 대구 수성천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 유세가 있었다. 정부는 일요일인데도 공무원을 출근시켜 유세장에 가지 못하게 했다. 학생들도 임시수업, 시험, 영화감상 등의 구실로 등교시켰다. 이에 분노한 경북고등학교 대표 이대우가 “학원의 자유를 달라” “일요 등교 웬 말이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을 박차고 나갔다. 정부의 부정선거에 항거한 최초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이었다. 이것이 바로 2·28 민주운동이다. 3월 15일 선거 당일 마산시민들이 드디어 폭발했다. 이날을 시간대별로 자세히 보자. 오전 10시30분 부정선거를 보다못한 민주당 마산시당이 ‘선거 포기’를 선언했다. 민주당 마산시당 간부 30여명은 거리 시위에 나섰다. 오후에는 시위대가 600여명으로 늘었다. 경찰과 대치하면서 투석전이 전개되고 시위를 주도하던 민주당 간부가 연행됐다. 6시30분 시민과 학생들이 개표가 진행 중인 마산시청 앞에서 부정선거 항의시위를 벌였다. 북마산파출소가 불에 타고, 변절한 허윤수 의원의 집이 파괴됐다. 오후 8시10분, 마산시청 앞과 남성동파출소 앞, 북마산파출소 앞에서 경찰이 일제히 카빈총을 발포했다. 김영호·김효덕 등이 총탄에 사망하고, 김주열이 최루탄에 맞아 숨졌다. 시위는 마산 전역으로 확산돼 밤 12시까지 계속됐다. 이날 경찰은 권총은 물론, 카빈총, 신형 알루미늄 최루탄 등을 무자비하게 발포,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61년 당시 상황을 지현모는 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3월 15일 밤 경찰의 무자비한 발포가 자행되었으며, 다음날 경찰은 공포탄을 쏘았다고 발뺌했지만 살상을 목적으로 사람의 가슴과 머리를 겨냥해 발사한 것이 확인되었다. ‘부정선거 물리쳐라!’ ‘학원의 자유를 달라’고 외치고 일어난 마산의 학생 및 시민들에게 경찰은 실탄을 발사하기에 이르러 이 고장에서 처음으로 7명 이상의 피살자가 생긴 것이다. 경찰은 이들에게 무지무지한 고문으로 보복하였고, 또 이들에게 공산당 누명까지 씌우려고 했던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바로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의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는 발언이다. 이기붕은 18일 오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3·15 선거는 “공명선거였다”면서 “총을 줄 때는 쏘라고(‘쓰라고’라 들은 사람도 있다)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동아일보 3월 20일자) 경찰의 무차별 총격 진압으로 시가전을 치른 듯한 마산 시내는 실종된 아들·딸을 찾아 헤매는 부모들로 가득했다. 야당은 긴급 회의를 열고 ‘선거무효’를 선언했다. 창원시 회원구 애기봉 아래에 위치한 국립 3·15 민주묘지에 세워진 ‘민주의 탑’ ‘정의의 상’ 참혹하게 떠오른 시신, 혁명의 기폭제 이런 분위기에서 4월 11일 김주열의 시신이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김주열의 시신이 안치된 도립마산병원 앞에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이 몰려들었다. 다시 시위가 시작됐다. 마산에서만 3만여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마산시청, 마산경찰서, 창원군청에 시위대가 진입하고 경찰서장 지프차가 불에 탔다. 경찰의 발포로 또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튿날 마산 시내 8개 남녀고교가 일제히 시위에 들어갔다. 시위는 13일까지 계속됐다. 이를 2차 마산 3·15 의거라 부른다. 마산 시위는 인근 진해, 부산, 그리고 서울로 확산됐다. 드디어 4월 18일 고려대 학생 3000여명이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시위에 들어갔다. 4월 19일에는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이 시위에 가담했다. 이승만은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했다. 그러나 4월 25일 대학교수들이 시위에 가세하자 이승만은 하루 만인 4월 26일 드디어 하야를 발표했다. 4·19 학생혁명은 이렇게 완성됐다. 4·19 학생혁명의 의의와 역사적 가치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마산(창원)을 민주화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학생혁명의 발상지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국무총리가 직접 참석하는 기념행사가 열리고, 연간 36만명이 찾고 있다. 김주열 열사의 묘. 창원시 구암동(마산회원구 3·15성역로 75) 애기봉 아래에 ‘국립 3·15 민주묘지’와 ‘3·15 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민주묘지는 마산 1·2차 민주화 시위에서 희생되거나 부상당한 인사들이 안장된 곳이다. 1998년 마산시가 처음으로 조성했는데, 2002년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현재는 국가보훈처가 관리하고 있다. 현재 37기가 안장돼 있고, 3·15 의거와 4·19 혁명 부상자, 사망자 등 80기까지 모실 수 있다. 여기에 있는 ‘김주열 묘’는 가묘로 시신은 고향 전북 남원시에 안장돼 있다. 3·15 민주묘지 건상곤 관리사무소장은 “연초에 관내 기관장의 참배를 시작으로 3월 3·15 유족 추모제, 5월 기념행사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의 소풍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묘지 주변은 ‘민주의 탑’과 ‘정의의 상’ 등 각종 조형물이 가득하다. 특히 3·15 기념관은 12년 만에 내부를 전면 수리하고 최근 새롭게 개장했다. 3·15 의거를 시간 순, 상황 순으로 정리했다. 특히 당시 발포했던 최루탄과 권총, 카빈총을 소재로 형상화한 예술작품이 돋보였다. 건상곤 관리사무소장은 “건물 전면에 3·15 의거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하고, 영상관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면서 “최신 그래픽과 동영상 시설을 갖춘 사이버 추모관은 어린이들에게 좋은 교육관, 체험학습관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3·15 기념관을 돌아보고 나서려는 순간, 액자 하나가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우리의 짙푸른 마산 앞바다를/우리의 마산 앞바다의 민주주의를/우리의 주린 자유를/독재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만/우리의 벅찬 정의의 대열을 기억해야 한다/그리하여 하나의 탑이 된/피어린 열망인 민주주의의 기억을 우리의 현재로 불러와야 한다’(고은 시인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중에서)
광복 70년 역사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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