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옵션
닫기
범위
전체
제목
본문
기자명
연재명
이슈명
태그
기간
전체
최근 1일
최근 1주
최근 1개월
최근 1년
직접입력
~
정렬
정확도순
최신순
오래된순

경향신문(총 10 건 검색)

경찰, ‘천공 관저이전 개입’ 의혹 관련 남영신 전 육참총장 조사
경찰, ‘천공 관저이전 개입’ 의혹 관련 남영신 전 육참총장 조사
2023. 02. 13 12:00사회
... 의혹과 관련해 남영신 전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관계자를 불러 조사했다. 서울경찰청은 13일 “남영신 총장이나 당시 공관장으로 있었던 부사관 등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관련자들을 수사하고 있다”고...
신임 육군주임원사 “제 자리에서 역할해야”···남영신 총장 인권위 피소 의식한 듯
신임 육군주임원사 “제 자리에서 역할해야”···남영신 총장 인권위 피소 의식한 듯
2021. 01. 22 17:10정치
... 한다”고 밝혔다. 최근 ‘장교가 부사관에게 반말로 지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국가인권위원회에 피소된 상황이어서, 강 원사는 부대 안정에 힘을 쏟을 것으로...
육군 주임원사
‘백골부대가 점령한 육군본부’···남영신 총장 영향력 강화, 우려 목소리도
‘백골부대가 점령한 육군본부’···남영신 총장 영향력 강화, 우려 목소리도
2020. 12. 07 17:33정치
... 보직이 제3사단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지난 9월 학군(ROTC) 사상 처음으로 육군참모총장에 오른 남영신 총장(58·학군 23기)이 3사단장으로 근무할 당시 부하로 있던 이들을 대거 기용한 것이다. 차기 군...
남영신 육군총장
육군총장에 학군 출신 남영신…사상 첫 ‘비육사’
육군총장에 학군 출신 남영신…사상 첫 ‘비육사’
2020. 09. 21 20:47정치
... 5명 인사 단행ㆍ문 정부 ‘국방개혁 가속’ 의지ㆍ공군참모총장엔 이성용 내정 육군참모총장에 남영신 육군 지상작전사령관(58·학군 23기·왼쪽 사진)이 내정됐다. 창군 이래 육군총장에 학군(ROTC)...
국방부 인사

스포츠경향(총 3 건 검색)

[속보] 지상군작전사령관에 남영신 안보지원사령관
[속보] 지상군작전사령관에 남영신 안보지원사령관
2019. 04. 08 13:42 생활
[속보] 지상군작전사령관에 남영신 안보지원사령관 남영신 지상군작전사령관 내정자. 연합뉴스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은 누구?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은 누구?
2018. 08. 03 15:14 생활
신임 국군기무사령관에게 임명된 남영신(학군 23기·55) 중장은 ‘인성’을 중시한 리더십을 가진 지휘관으로 평가받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남영신 중장은 3사단장 시절 간부들에게 ‘감사나눔운동’에 나설 것을 장려하면서 ‘인성지도사’처럼 부하들을 지휘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솔선수범과 합리적인 성품으로 신망이 두텁다고 군 관계자들은 전했다.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 연합뉴스특수전 및 야전작전 전문가이며, 폭넓은 식견과 전문성, 조직관리 능력을 겸비했다는 평이다. 작년 9월 비육사 출신으로 최초로 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이번에 기무사령관에 임명되면서 비육사 출신으로 세 번째, 학군 출신으로는 두 번째 기무사령관으로 기록됐다. 국방부는 “남영신 중장이 개혁 마인드를 바탕으로 업무추진 능력이 뛰어나 기무사 개혁을 주도하고, 추진할 수 있는 충분한 의지와 뛰어난 역량을 구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인 조재은 씨와 1남이 있다. ▲학군(ROTC) 23기 ▲7공수여단장 ▲제2작전사령부 동원전력처장 ▲학생중앙군사학교 교수부장 ▲3사단장 ▲육군특수전사령관
[속보] 문대통령, 기무사령관 교체…남영신 중장 임명
[속보] 문대통령, 기무사령관 교체…남영신 중장 임명
2018. 08. 03 14:02 생활
문재인 대통령은 3일 국군기무사령부 개혁안을 건의받고 새 기무사령관으로 남영신 중장을 임명했다. 남영신 신임 특수전사령관. 국방부 제공 현 이석구 기무사령관에 대한 경질로도 해석된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문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발표했다.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욕심 없이 진실되게 인천시장 송영길·남영신 부부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욕심 없이 진실되게 인천시장 송영길·남영신 부부
2012. 07. 30 17:27 화제
저마다 삶의 가치관에 따라 ‘행복’의 의미와 쓰임은 다르겠지만, 아마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에 비춰본다면 이 부부의 현재는 분명 지난날보다 훨씬 행복해졌다. 평생 노동운동을 하며 운전기사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던 남편은 지금 인구 2백80만 명이 넘는 인천광역시를 이끄는 수장이 됐고, 그런 남자와 함께 ‘방 하나 부엌 하나’ 제대로 갖춰진 독립된 집에 사는 것이 꿈이었던 아내는 이제 그늘진 곳을 보듬어줄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기쁨을 누릴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랐고 좀 더 많이 가진, 이른바 ‘성공’한 삶을 일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게 ‘행복’이란 조금은 다른 의미다. 그때도 지금도 계속해서 ‘똑같이’ 행복하기만 한 매일, 부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소중한 사람들과의 나란한 ‘눈맞춤’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시민들과 소통하는 시장 송영길 인천시장과 부인 남영신 여사와의 인터뷰가 있던 날은 마침 민선5기 취임 2주년을 맞이한 하루 뒤였다. 지난 2년의 성과와 부족했던 점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산적해 있는 시정 업무와 각종 행사, 밀려드는 인터뷰 일정과 회의 등을 소화하느라 이날 역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 자리에 마주할 수 있었다. “시장이 되고 나서는 매일 하루가 어떻게 저무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내요. 국회의원이었을 때는 2백99명 중 한 사람으로 일을 했었는데, 지금은 1만2천 명이 넘는 공무원들을 이끌고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만큼 심리적 부담감도 커요.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요. 2주년 기념식에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지난 2년은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는 시간이었다’라고요. 요즘 세계 경제를 비롯해 국내외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 보니 여러모로 실타래 풀기가 쉽지만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어렵고 힘든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새벽부터 밤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 인천은 최근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보금자리주택 등 적채되어 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차례차례 해결하고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지원해 일자리를 만드는 등 시민들의 걱정을 덜고 그 자리에 새롭게 희망을 채워주는 정책들을 추진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또 ‘사람들이 찾아오는 인천’을 목표로 문화와 복지, 그리고 교육 환경을 개선해나가고 있다. 실제로 송 시장 취임 후 인천의 인구가 9만 명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지기기도 했다. 취임 때부터 줄곧 자신이 ‘인천의 아버지’라는 마음으로 시민 전체를 잘 먹여 살리겠다는 송 시장의 각오가 제대로 반영된 결과다. “그만큼 바쁘게 움직이고 애썼다는 뜻이기도 해요. 남편이 시장이 되고 난 다음부터는 제가 집에서 한 번도 바가지를 못 긁었어요(웃음). 뭔가 서운한 일이 있을 때도 한밤중에 집에 돌아온 남편 얼굴을 마주하면 목 끝까지 나왔던 말이 그냥 들어가더라고요. 무척 피곤해 보이고 힘들어하니까 안쓰럽고 가엾단 생각이 먼저 들어요. 활발한 투자 유치 달성을 위해서 해외를 오가며 일을 추진하고, 끊임없이 물밑 작업을 하고, 또 그동안 쌓인 일 처리하랴 집단 사이 갈등 조정하랴 뛰어다니다 보면 정말 ‘피가 마른다’라는 말을 실감할 때가 있대요. 시장직이 정말 쉽지 않은 자리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내 된 입장에서는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파요.” 구석진 곳을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한 시정 활동 이처럼 매일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데는 평소 송 시장의 성실하고 소탈한 성품도 한몫을 한다. 매사에 끊임없이 더 좋은 방향을 고민하고, 행여나 놓치고 지나쳐버린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는 그는 시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시민들이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불편해하고 고민하는 점들을 찾아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따라서 좀 더 가까이서, 직접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려 한다. 또 드러난 곳보다 숨겨진 곳,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며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제가 시장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경비 청소 일을 맡고 계신 분들과 식사 자리를 마련한 거예요. 10년, 20년씩 일해오는 동안 시장과 밥 먹는 건 처음이라고 하시더군요. 중책을 시작함에 있어서 그렇게 구석진 데를 돌아보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서류로 정리되어 올라온 이야기 말고 진짜 사람들의 ‘말’을 듣고 싶었고, 또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요.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트위터와 같은 SNS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매달 ‘시민과의 대화’를 개최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 밤 시정 일기를 쓰는 건 바로 그 때문이에요. 가능한 한 실시간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취임 때부터 지금까지 송 시장은 외부 일정이 있는 날 외에는 언제나 계양구에 위치한 집에서 시청까지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다.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고된 얼굴의 시민들을 일터로 실어 나르는 아침 지하철 안에서는 그도 역시 인파에 파묻혀 토막 잠을 자기도 하고, 누군가 만취한 승객이 탔는지 술 냄새가 진동하는 마지막 열차 안에서는 그에게 다가와 “시장은 대체 뭘 하고 있느냐”라며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승객의 말을 마냥 듣기만 할 때도 있다.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직접 건져 올리는 인천의 이야기들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검토하거나 현장을 찾아 살펴봐야 할 생생한 과제가 된다. 또 시민들이 해주는 ‘잘하고 있다’, ‘반갑다’, ‘힘내라’와 같은 격려와 응원의 말은 알토란 같은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남편은 원래 그렇게 주어진 일 외에도 일을 찾아다니면서 하는 스타일이에요. 또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듣고 그런 걸 좋아해요. 체격이 크고 얼굴이 좀 우락부락하게 생긴 편이라 겉으로는 딱딱해 보이지만 사실 참 자상해요. 실제로 만나면 다들 ‘실물이 훨씬 낫네요’ 그러세요. 사실 저도 처음에는 강한 줄로만 알았거든요. 그런데다 워낙 자신을 포장하는 데 서툰 사람이라…. 연애 시절 남편이 처음 저희 집에 왔을 때,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너는 웬 소도적놈하고 다니는 거냐’라고요(웃음). 알고 보면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사람인데 말이죠. 특히 사람들을 참 좋아해요. 지나다가 아이를 보면 괜히 가서 툭툭 건드리고 안아보자 그러고요, 노점하시는 할머니들을 뵈면 거기서 손잡고 앉아 몇 십 분씩 얘기하고 그래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진솔하고 따뜻하기로 따지자면 남영신 여사도 송 시장 못지않다. 여느 아내들처럼 야무진 살림 솜씨나 대단한 능력은 없다 하더라도 사람을 사랑하고 인천을 아끼는 마음으로 제 몫을 해내려 애쓴다. 완벽하고 세련된 내조보다는 남편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을 조용하지만 깔끔하게 메워나가는 역할을 담당하는 편이다. 특히 남 여사가 가장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일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챙기고 보듬는 것이다. 송 시장이 국회의원이던 시절부터 관내 복지시설을 돌며 몇 년씩 이어온 봉사활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 혼자 사는 어르신들, 돌봐주는 이 없는 소년 소녀 가장들, 몸이 불편한 분들이 계신 곳을 찾아다니며 작은 일손을 보탠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시청 국장급 이상 간부 부인회 모임을 주도해 봉사활동으로 돌려놓은 것도 그녀의 작품이다. 매달 노인복지회관을 찾아 식사 봉사를 한다. “특별한 날에만 우르르 몰려가서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봉사가 아니라, 큰 도움은 못 되더라도 꾸준히 관심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국가에서도 시에서도 다양한 복지 정책을 펴고는 있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아직도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많아요. 남편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서민들을 위한 훌륭한 일꾼이 되겠다’라는 말을 했던 걸 기억해요. 많은 분들이 또 그 말을 믿고 지지해줬고요. 그렇다면 남편이 늘 시민들 가까이 머물면서 그들의 문제를 접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매번 그러지는 못할 거잖아요. 그 매개 역할을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고 싶어요.” 영화처럼 낭만적이고 시처럼 소박한 사랑 이토록 잘 맞는 부부의 첫 만남은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각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대학 시절 서로를 처음 알게 된 두 사람은 극렬한 집회 현장 한가운데서 덥석 잡은 손을 지금껏 놓지 않고 인연으로 만들어왔다. “대학교회에서 처음 아내를 봤는데 한눈에 반해버렸죠. 그야말로 ‘딱 찍었어요.’ 어떻게 하면 사귈 수 있을지 기회만 노리고 있다가 신촌로터리에서 대규모 연합집회가 열리던 날 경찰들이 우리를 막 에워싸고 쫓아오는데 아내가 넘어져서 사람들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걸 발견했어요. 달려가서 있는 힘을 다해서 끄집어냈죠. 그러고는 손을 붙잡고 계속 도망을 다녔어요. 그날을 계기로 점차 가까워졌어요. 인연이 될 사이였겠지요.” 사실 그날 그 ‘구출 사건’이 있기 전까지 남 여사에게 송 시장은 그저 그냥 이웃 학교의 열렬한 운동가일 뿐이었다. 송 시장이 적극적으로 먼저 호감을 표시해올 때도 그다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전 관심도 없었는데 남편이 일방적으로 저를 쫓아다녔었죠(웃음). 그런데 제가 사람들 틈에 깔려 죽을 뻔했을 때 멋지게 나타나서 구해준 거예요. 얼마나 근사해 보였겠어요. 고마운 마음도 컸고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참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진중하고 소박하고 섬세했어요. 어떨 때는 제가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지자’라고 하면, 밤새 종이에다 성경 구절이며 철학자들의 말 같은 걸 인용한 편지를 써서는 읽어보라고 주곤 했어요. 마음이 차가워졌다가도 그걸 읽으면 ‘내가 괜히 헤어지자고 해서 이 사람에게 상처를 줬구나, 미안해서 어쩌지’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 정도로 글을 잘 쓰는 거예요. 그래서 매번 감동하면서 마음을 돌렸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부부로 살아가게 됐네요(웃음).” 가진 거라고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앞날에 대한 희망만 있던 시절. 데이트는 소박했지만 그래서 더욱 낭만적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고, 바라보는 곳이 같으니 뭘 해도 즐겁고 행복했을 수밖에. “한창 연애하던 시절에 아내는 가리봉동 오거리에 있는 전자회사에 다녔고 저는 주안 5공단에 있는 시계공장에서 일했는데 매일같이 퇴근 후 신도림역에서 만나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사 먹으며 데이트를 즐겼어요. 한번은 아내가 친구랑 사는 집에 찾아갔는데 연탄가스를 마셔서 늘어져 있는 걸 발견하고 둘러업고 병원에 간 적도 있어요. 그러고 보면 나 당신 여러 번 살렸어. 내가 생명의 은인이야(웃음).” “그러게요. 원래 지나간 시간이 더 애틋한 법이라고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정말로 행복했어요. 처음에는 만화방을 운영하면서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그때 제 꿈이 방 하나 부엌 하나 그리고 바깥으로 문이 나 있는 독립된 방에서 사는 거였어요. 좁은 방에 둘이 붙어 앉아 도란도란 미래를 그려보던 시간이 얼마나 좋았게요.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지만 행복하게 살아봤기 때문에 현재가 항상 소중하고 행복하단 걸 아는 거죠.” 남들이 말하는 대단한 성공이나 출세는 꿈꾸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돌볼 자신이 있었던 남자와 모자란 듯한 삶도 기꺼이 고맙게 받아들일 줄 아는 착한 여자가 만나 나란히 올곧은 길을 걸으며 살아온 지난 날. 지금은 어엿한 위치에서 좀 더 갖고 누리면서 편하게 살아갈 수도 있지만 원체 성정이 그런 것과 거리가 먼 두 사람은 그 시절의 다짐과 바람들을 잊지 않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데만 집중하려고 한다. 그리고 두 아이의 부모로, 그리고 2백80만 시민들을 감싸 안아야 할 직위의 사람으로서,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싶다. “가끔은 편히 쉬고 싶기도 하고 아이들과 야구도 보러 가고 싶고 그래요. 하지만 반드시 제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기에 사회와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으려 해요. 제가 고민하는 건 ‘유능한 진보’의 역할이에요. 그저 ‘열심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가 풍요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앞장서 노력할 생각이에요. 제 스스로도 납득이 될 만큼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나이 들어서는 가족에게 충성해야죠. 최종 목표는 ‘아내에게 아침밥 차려주는 남편 되기’거든요(웃음).”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사진 촬영을 하는 내내 나란히 서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부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족을 비롯해 20년 넘게 정을 나눠온 동네 주민들, 부모의 마음을 갖게끔 만드는 인천 시민들, 나아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들까지. 그들 모두와 눈을 맞추며 나란히 살아가고 싶다던 부부의 말도 맴돌았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행복을 꿈꿀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순간에도,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른 길을 걸어가지 않을까. 아마도 앞으로 그들의 내일을 믿고 지지하며 바라봐도 좋을 듯하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