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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165 건 검색)

‘길거리 음식’ 유명한 방콕이 왜…“점차 노점상 없앨 것”
‘길거리 음식’ 유명한 방콕이 왜…“점차 노점상 없앨 것”
2024. 05. 31 14:30국제
... 노점상은 철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찻찻 시장은 “도시가 깔끔하고 정돈돼 있기를 바란다”며 “노점상이 행인 보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구역에서는 계속 영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콕방콕시
노점상·폐지줍기·청소로 모은 전재산 기부하고 떠난 홍계향 할머니
노점상·폐지줍기·청소로 모은 전재산 기부하고 떠난 홍계향 할머니
2024. 05. 22 10:22지역
... 주택, 저소득층 위해 내놔 연고자 없어 성남시가 마지막 배웅길 홍계향 할머니의 빈소. 성남시 제공 노점상 등을 운영하면서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한 홍계향 할머니(90)가 별세했다. 경기 성남시는 “홍...
팔공산서 노점상 준비하던 1t 트럭, 5m 계곡 추락…2명 사상
팔공산서 노점상 준비하던 1t 트럭, 5m 계곡 추락…2명 사상
2024. 01. 27 17:43사회
..., 동승자 60대 여성은 경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팔공산 등산로 입구 인근에서 트럭 노점상을 하려고 주차하다가 약 5m 아래 계곡으로 추락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경찰은 자세한 사고...
노점상으로 모은 전 재산 기증…‘충북대 어머니’ 고 신언임 여사 영결식
노점상으로 모은 전 재산 기증…‘충북대 어머니’ 고 신언임 여사 영결식
2024. 01. 22 15:21사회
... 엄수된 후 고인의 영정과 유해가 이 대학 교육독지가 선영으로 운구되고 있다. 충북대 제공. 평생 노점상으로 모은 돈을 충북대에 기부한 ‘충북대의 어머니’ 고 신언임 여사의 영결식이 22일 오전...
여사충북신언충북대학교

스포츠경향(총 6 건 검색)

광명시, 소통과 대화로 ‘노점상 없는 거리’ 조성 눈길
광명시, 소통과 대화로 ‘노점상 없는 거리’ 조성 눈길
2021. 06. 30 15:22 생활
박승원 광명시장(왼쪽)이 가로판매대를 둘러보고 있다.광명시가 노점상과 대화와 소통을 통해 ‘노점상 없는 거리’를 조성해 눈길을 끌고 있다. 광명시는 지난해부터 ‘노점상 없는 걷기 편한 거리 조성 사업’을 통해 인도 위에 난립한 노점상을 일제 정비하고 있다. 특히 이번 일제 정비는 ‘노점상과 상생의 길 찾기’에 주안점을 두고 노점상과의 수차례 대화와 권역별 설명회를 통해 합의점을 이끌어 내고 ‘시민의 보행권’과 ‘노점상의 생존권’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광명시는 올해 4월 전국 최초로 ‘가로판매대 정비 지원금 지급 조례’를 제정해 노점상의 영업중단 시 생계유지를 위한 지원금 지급 근거를 마련했다. 또 계속 영업을 원하는 노점상은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 주고 신규 가로 판매대 제작을 지원한다. 광명시는 29일과 30일 이틀간 광명동(11곳)과 철산동(7곳)의 가로판매대 18곳을 철거했다.광명시는 관내 허가된 노점상 64곳(광명동 20, 철산동 18, 하안동 26) 가운데 운영을 중단하는 27곳(광명동 11, 철산동 7, 하안동 9)에 지원금을 지급했다. 이어 29일과 30일 이틀 간 광명동(11곳)과 철산동(7곳) 가로판매대 18곳을 철거했다. 이에 따라 광명사거리역 주변, 철산역 주변, 하안철골주차장에 있던 노점상은 모두 사라지게 됐다. 광명시장 입구에서 농협 앞까지 거리에 9곳, 철산상업지구 로데오거리에 11곳, 하안4단지에 17곳 등 모두 37곳만 영업을 한다. 광명시는 오는 8월 가로판매대 37곳을 재설치해 쾌적하게 정비하고, 특히 하안4단지 노점상거리를 테마형거리로 조성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노력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광명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광명시에 거주한 지 오래됐는데 광명사거리역 주변을 지날 때마다 노점상이 인도를 모두 차지해 불편이 많았다”며 “확 바뀐 거리를 보니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박승원 광명시장은 “이번 일제정비로 쾌적한 거리를 시민에게 돌려 줄 수 있어 기쁘고, 특히 노점상과의 소통으로 원만히 해결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거리비우기 사업을 통해 쾌적한 도시환경을 만들어 가겠다”고 전했다.
광명시박승원 시장
70대 노점상 할머니, 대학교에 장학금 1억원 기부
70대 노점상 할머니, 대학교에 장학금 1억원 기부
2018. 11. 07 00:00 생활
노점상 할머니가 전남대학교에 장학기금 1억원을 기부했다. 함평군 해보면 용산리에 사는 김정순(73) 할머니는 6일 전남대학교를 찾아 정병석 총장에게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1억원을 기부했다. 김 할머니는 22년전 홀로 된 후 함평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상무지구 길거리 좌판시장에서 깨, 양파, 고추, 대파, 고구마 등을 내다팔며 장학금을 모아왔다. 함평에 사는 김정순(72) 할머니가 노점상으로 모은 1억원을 6일 전남대학교 정병석 총장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했다.함평군 사진제공김정순 할머니는 “배우지 못한 한이 쌓여 장학금을 내놓을 생각을 하게 됐다”며 “손가락이 갈퀴처럼 굽을 정도로 억척같이 살면서 모은 이 돈은 대기업 회사들에게는 별 것 아닐지 몰라도 우리같은 사람에게는 큰 돈”이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매년 한 차례 대학생들에게 직접 장학금을 건네며 인생교육의 필요성과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는 점을 꼭 말해주고 싶었다”며 “장학기금이 소진되더라도 건강이 허락된다면 계속해서 후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병석 총장은 김정순 할머니의 손을 잡은 채 “농사일과 노점상으로 거칠어진 손이지만 여느 어머니의 손보다도 아름답고 곱게 느껴진다”며 “전남대학교 모든 구성원들이 김 할머니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지역민의 사랑에 보답하는 인재양성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전남대학교는 김정순 할머니가 기부한 1억원을 함평 출신 성적 우수학생 4명을 매년 선정해 300만원씩 장학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채소 살 것처럼 속이더니 거스름돈 먼저 받고 달아나…노점상 등친 60대
채소 살 것처럼 속이더니 거스름돈 먼저 받고 달아나…노점상 등친 60대
2018. 10. 18 12:21 생활
충북 제천경찰서는 전통시장에서 시장상인들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상습사기)로 ㄱ(67)씨를 구속했다고 18일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ㄱ씨는 지난 9월 27일 오후 2시 20분 제천의 한 전통시장에서 한 노점상에게 채소를 살 것처럼 속인 뒤 거스름돈을 먼저 받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ㄱ씨는 2016년 12월부터 지난 9월까지 서울과 경기, 충주 등의 전통시장에서 18차례에 걸쳐 비슷한 수법으로 70만원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ㄱ씨는 나이가 많은 여성 상인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ㄱ씨는 경찰에서 “생활비를 벌려고 그랬다”고 진술했다. 기사와 무관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아나콘다·사건 조작·노점상까지, 역경 딛고 백년가약 맺은 정정아
아나콘다·사건 조작·노점상까지, 역경 딛고 백년가약 맺은 정정아
2017. 08. 28 10:28 연예
백년가약을 맺어 주목 받고 있는 배우 정정아(40)의 과거사에도 관심이 쏠렸다. 정정아는 2005년 KBS2 <도전! 지구탐험대> 촬영 중 아나콘다에 팔을 물리는 중상을 입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작진과 정정아 사이 오해와 갈등이 빚어졌고 사건 조작 논란까지 번지기도 했다. 정정아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0일 이상 굶주린 아나콘다를 담당 PD가 잡으라고 했고 내 오른팔이 물렸다”며 “그런 상황에서 PD는 ‘촬영을 못 했으니 다시 (팔을 아나콘다 입속으로) 넣어라’라고 하더라 무척 당황했다”고 말했다.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고 촬영을 담당한 정승희 PD와 정정아는 공동 기자회견까지 열고 “서로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정정아 아나콘다’ 사건의 파장을 예상외로 컸다. 10년 이상된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도전! 지구탐험대>는 폐지에 이르렀고 정정아 또한 프로그램을 폐지 시킨 원흉으로 지목돼 당분간 연예계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긴 공백기를 가진 정정아는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그는 지난해 방송된 EBS <리얼극장 행복>에 출연해 “방송이 끊기니 생활고를 겼었다”며 “학동역 11번 출구에서 노점상을 했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재기를 위해 성형수술을 한 사실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의 갈등도 깊어졌다. 정정아의 아나콘다 사건 당시 아버지는 오히려 그를 나무랐다. 정정아는 “사건 당시 아버지가 ‘그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이 생계를 꾸려 가는데 네가 왜 없애느냐. 당장 가서 빌라’고 하시더라”고 회상했다. 사건 이후 정정아는 아버지와 10여 년간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 왔다. 정정아는 27일 서울 강남구의 한 웨딩홀에서 동갑내기 사업가와 결혼식을 올렸다. 역경과 시련을 딛고 ‘제2 인생’ 서막을 올린 그에게 누리꾼들의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주간경향(총 5 건 검색)

[언더그라운드 넷]홍대 노점상 아주머니 철거 사진의 진실(2021. 07. 23 15:05)
2021. 07. 23 15:05 사회
“불쌍한가요.” 7월 중순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글이다. 게시글은 질문과 함께 몇장의 사진을 나열하고 있다. 강제철거, 공적 용어로 행정대집행을 당한 노점상 아주머니 사진이다. 울부짖고 있다. 아스팔트 바닥에는 아주머니가 팔았을 어묵, 튀김 등이 흩어져 있다. 그런데 댓글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mlbpark “이제 이런 사진들 안 먹히죠”, “퍼포먼스”, “저거 세금 내기 싫다고 울부짖는 걸까요.” 이런 주장도 제기된다. “저러고 벤츠 타고 퇴근”, “벤츠 정도는 웃어버릴 것이에요. 저분들 현금부자”, “저거 어묵통 뒤엎고 불쌍한 모션 취해 사진 찍히는 거. 전문 프로데모꾼들의 능력입니다.” 정말 그럴까. 논란이 된 사진은 꽤 유명하다. 과거 이 코너에서 전후사정을 추적한 ‘서러운 떡볶이 아줌마’ 대구시 성당동 두류종합시장의 김춘자 할머니 사진과 같이 자주 인용되는 사진이다. 김춘자 할머니 철거사진이 찍힌 것은 2008년 2월 22일. 벌써 13년 전인데 그때도 위 사진 속 노점상 아줌마와 거의 유사한 비아냥 댓글이 많았다. 사진을 추적해보면 “이 추위에 어디로 가라고… 노점 강제철거”라는 노동전문 인터넷매체의 기사가 나온다. 기사에 실린 사진들이 인터넷에 도는 사진이다. 장소는 홍대입구역 인근 도로다. 사진이 찍힌 날짜는 2009년 12월 18일. 역시 12년 전 일이다. 물어물어 당시 사정을 잘 안다는 노점상연합회 관계자를 찾아냈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당시 마포구청장이 노점상 정비를 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때 MBC던가, 아침뉴스에 지게차를 가져와 포장마차를 부수는 뉴스도 나왔어요.” 사진은 ‘이 와중에 마차가 엎어지면서 벌어진 일이고, 바닥 흩어진 어묵, 떡볶이를 보며 회원분이 울분을 토하는 장면’이 찍힌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저도 읽어봤어요. 홍대에서 노점상을 하면 갑부일 거다, 자기가 엎어놓고 언론사 카메라 나타나자 연기한 거다 그런 댓글이요. 그분이 지금도 회원이에요. 벤츠는커녕 집에 차도 없고, 구로구 옛날집에 삽니다. 서울 집값이 뛰었다고 하지만 구로구엔 아직 싼 집들이 있잖아요.” 어쨌든 현금장사니 탈세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꽤 된 일이지만 노점상 집회 구호 중 ‘세금납부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방세법을 보면 세금 면제대상이 있는데, 야쿠르트 아줌마와 같은 이동판매원, 학습지 교사… 거기에 노점상이 포함돼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영수증발급 의무가 없는 대상으로 우리나라 세법이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런데 안 받아들여졌어요. 세금을 내게 되면 노점이 합법화되거든요.” 그런데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저런 풍경은 현재 거의 사라졌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이후에는 저렇게 강제단속하는 것은 사라졌어요. 아마 2013년 무렵에 당적이 다른 강남구청장 노점 단속이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서울시 지자체 대부분이 민주당 구청장이다 보니….” 2013년을 기점으로 서울시 대부분의 노점상은 허가제로 넘어갔고, 행정대집행까지 이르는 마찰은 적어도 서울시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시 사진 속 주인공 이야기로 돌아가자. “홍대 KFC 근처에서 지금도 노점을 하고 있어요. 아마 가서 만나도 절대 자기가 사진 속 주인공이라고 말하진 않을 겁니다. 신상을 밝힌 건 대구 할머니가 이례적인 것인데, 노점상 하시는 분 중 사연 없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언더그라운드 넷
[베이징의 속살]즈푸바오(支付寶·알리페이)-양말 파는 노점상도 ‘즈푸바오’ 전자결제(2016. 06. 27 16:56)
2016. 06. 27 16:56 국제
즈푸바오 친구를 맺으면 채팅창을 통해 바로 돈을 송금할 수 있다. USB 보안키를 꼽고 여러 차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인터넷뱅킹보다 빠르고 편하다. 베이징 부임 초기에는 살고 있는 집도 잘 못 찾았다. 큰길에서는 입구가 잘 보이지 않고 근처에 비슷한 길이 많기 때문이다. ‘내 집’인데 동네는 낯설고, 간판도 생경하고, 온통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전혀 다른 건물 입구에 내려 한참 걸어가야 하는 일을 몇 번 겪은 후에 생각해 낸 방법이 ‘양말트럭’이다. 아파트 입구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노점트럭은 훌륭한 지표가 됐다. 출퇴근할 때마다 양말트럭을 두리번대다 ‘즈푸바오(支付寶·알리페이)’ 푯말을 발견했다. 몇 백원짜리 양말을 파는 노점인데, 놀랍게도 ‘즈푸바오’로 전자결제가 가능했다. 2004년 출시된 즈푸바오는 마윈(馬雲)이 이끄는 알리바바 그룹의 제3자 온라인 결제 플랫폼이다. 사용자가 즈푸바오로 결제하면 판매자 계좌에 ‘즈푸바오 머니’ 형태로 입금된다. 음식점이나 상점에서는 결제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Pay(페이)’를 누르면 바코드와 QR코드가 나오는데, 리더기로 이를 인식해 결제하는 방법이 있다. 혹은 ‘Scan(스캔)’ 기능을 이용해 상점의 즈푸바오 QR코드를 스캔한 뒤 송금하는 방식이다. 즈푸바오 계좌에 현금을 넣어둘 수도 있지만 은행카드와 연동을 해놓으면 계좌에서 곧장 이체된다. 베이징의 한 아파트 입구에 세워진 양말 노점 트럭에 ‘지푸바오 결제 가능’이라는 안내 푯말이 붙어 있다. / 박은경 수수료가 거의 없는 데다 일부 음식점이나 상점에서는 즈푸바오로 결제하면 일정 비율을 할인해준다.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내면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 든다. 즈푸바오는 6자리 비밀번호만 누르면 별도의 인증절차 없이 거래가 성사되기 때문에 거스름돈을 돌려받거나 신용카드 영수증에 사인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손으로 꾸깃거리는 지폐를 받거나 돌돌 말린 신용카드 영수증을 펴서 사인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QR코드를 내밀고 있으면 시대에 뒤처진 기분까지 든다. 즈푸바오 친구를 맺으면 채팅창을 통해 바로 돈을 송금할 수 있다. USB 보안키를 꼽고 여러 차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인터넷뱅킹보다 빠르고 편하다. 사무실 임대금을 관리인에게 보내려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잘못 보낸 일이 있었다. 며칠 전 꽃가게 주인에게 즈푸바오 송금 형식으로 결제를 했는데, 그 주인과 관리인 이름을 헷갈려 잘못 보낸 것이다. 즈푸바오 채팅창으로 꽃가게 주인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다시 보내달라고 했더니 바로 송금해줬다. 서로 동의해야 즈푸바오 친구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아예 낯선 사람에게 송금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아는 사람끼리는 오송금 문제 해결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중국 정보기술(IT) 시장조사기관 애널리시스에 따르면 제3자 결제기관을 통한 중국의 모바일 거래 규모는 2014년 8조130억 위안에서 지난해 16조3626억 위안으로 1년 만에 두 배로 팽창했다. 즈푸바오는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 온라인 결제 플랫폼이 아니라 생활 편의기능까지 제공한다. 온라인 머니마켓펀드(MMF) 상품인 위어바오(餘額寶)는 2013년 출시됐다. 즈푸바오에 돈을 충전하고 위어바오로 이체하면 실제금리로 운용한 이자를 얻을 수 있다. 이밖에 항공권·기차표 예매, 공과금 납부, 영화표 등 각종 입장권 예매 기능이 있다.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쇼핑몰인 타오바오(淘寶)와 연동해 구매뿐 아니라 배송 확인도 가능하다. 결제, 송금 등 금융서비스뿐 아니라 쇼핑, 여행, 금융투자 등 제공 서비스 범위가 넓다 보니 중국에서 즈푸바오 없이 생활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이러니 노점상조차 신용카드는 안 받아도 즈푸바오는 받는다.
베이징의 속살
[펌·펌·펌]‘기업형 노점상’의 실체(2007. 10. 30)
2007. 10. 30 사회
일산에서 노점상 한 사람이 자살한 사건을 두고 원인 공방이 벌어지고, 수천 명의 노점상들이 일산시청 앞에서 데모를 벌이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이 사건을 놓고 네티즌 사이에 공방이 벌어졌다. 전반적으로 “노점상을 보호해줄 필요가 없다”는 논조가 우세하다. 진보누리(www.jinbonuri.com)에 ‘그려’라는 네티즌이 ‘노점상의 실체를 알려준다’는 포스트를 올렸다. (중략) 지금 단속이라도 하니깐 노점상들이 이 정도지, 단속 안 하면 우리나라 길거리는 완전히 자동차나 보행자가 다니기도 어려울 거다. 법을 어기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 현재 노점상 하는 사람들이 과연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조건들인가? 요구르트나 신문 배달은 왜 못 하나? (중략) 노점상 단속이 지나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정부로서는 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노점상들이 불쌍하다고 여겨지겠지만 그들이 장사 하고서 길거리에 버리고 간 쓰레기를 추운 겨울에 묵묵히 치우는 환경미화원들도 있다. 지금 노점상들 모여서 데모한다고 난리치는데 솔직히 이건 조폭들이 지들 ‘나와바리’ 지킨다고 데모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중략) 조직폭력배들도 조직 만들고 모여서 생존권 보장하라고 악쓰고 데모하면 다 풀어주고 지들 맘대로 온갖 폭행에 인신매매하도록 다 허용해야 하는 거냐? 노점상들 모여서 권익 주장하는 전노협이라는 단체도 웃긴다. 솔직히 지금 문제가 되는 건 기업형 노점상들이다. 저거 권리금만도 엄청나다고 알고 있다. 반 평도 안 되는 공간의 권리금이 몇천만 원씩 한다. 바로 이 전노협이라는 넘들이 바로 불쌍한 노점상들 등치는 넘들이다. 정말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길거리에 좌판이라도 벌이면 구청 공무원보다 바로 이 전노협 넘들이 제일 먼저 찾아와 좌판 때려부순다. 우리나라도 전쟁이 끝난 지가 50년이 넘었다. 한마디로 노점상의 허용 여부를 따질 단계는 지났다는 얘기다. 이들 때문에 철거용역비 등 막대한 세금이 지출된다. 이들은 이것만으로도 국가와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결코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이들은 서민이 아닌 폭력배들이다. 이번에 노점상 한 사람이 자살하니까 그걸로 건수를 삼아 지들 이익을 챙기려는 건데, 우선 자살한 사람이 시청의 단속 때문에 자살한 것인지도 불분명하거니와, 설혹 그것 때문에 자살했다 해도 적법하게 역할을 수행한 시청이 그 자살에 책임질 이유는 없다. 남 밑에서 일하기 싫고 돈은 쉽게 벌고 싶은 사람들이 법을 어겨가면서 사람들 동정을 유발하고 호소하는 것이 현재 사태의 핵심이다. 요즘은 돈이 된다는 소문 때문인지 길거리에서 외국인 노점상도 적지 않다. (후략)
펌·펌·펌
[사회]튀어야 산다! 노점상 개성 만발(2006. 08. 08)
2006. 08. 08 사회
차량 이용 ‘이동식 극장·커피전문점’ 성업… 독특한 아이디어로 새 길거리문화 만들어 하남 어린이집 아이들이 입체영화를 관람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창업을 하는 사장이 젊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40~50대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던 창업전선에 지금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층이 뛰고 있다. 이들은 갖가지 스타일과 아이디어로 무장해 창업하고 있다. 그들이 노리는 타깃 역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의정부의 한 아파트단지 앞. 원생복을 입은 아이들이 두 줄로 길게 줄을 서 있다. 곧 버스 한 대가 도착하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순서대로 버스에 올라탄다. 얼마 뒤 버스 안에서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아이들이 탄 버스는 이동수단이 아니라 놀이터이다. 버스 안에는 노래방 기계가 갖춰져 있는가 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상영해주기도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기의 아이들이라 선생님이 통제하기 어려울 것같이 보이지만 의외로 선생님은 편안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지켜본다. 마니아층 타깃 특정품목도 인기 아이들이 올라탄 버스는 이동식 영화관이다. ‘이동식 영화관’ 하면 2004년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송주(권상우)가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하는 정서(최지우)를 위해 영화 ‘러브스토리’를 보여주던 것을 떠올린다. 드라마 속 이동식 영화관은 부자만 이용가능한 데이트 장소였다. 그러나 영화관 ‘Kids Theater’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3차원 영화를 상영한다. 영화관에는 사고 때문에 야외활동에 제한을 받는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내부에 이같은 시설을 갖춰놓았다. 교육적인 내용도 상영하기 때문에 교회, 유치원 등에서 많이 찾고 있으며 아이의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학부모들도 많이 문의하고 있다. Kids Theater 관리부 노재란 실장은 “3D형식의 영화는 쉽게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직접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줄 뿐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차 안에서 영화를 감상하기 때문에 집중도를 한층 더 높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식 영화관은 노점의 일종이다. 노점이라고 하면 길거리에서 파는 떡볶이나 순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최근 등장하는 노점들은 기존의 저급 길거리 문화를 단호히 거부하고 그들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새로운 길거리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홍대 앞에 자리 잡은 ‘Pink-Truck’ 은 독특한 액세서리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CAR FC’는 이동식 커피 & 호프 전문점이다. 아침과 점심에는 대학가나 직장인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샌드위치, 핫도그 등 가벼운 먹을거리와 함께 일반 테이크아웃점 등에서 판매하는 모든 메뉴를 판매한다. 일반 테이크아웃점보다 좋은 커피를 사용, 이탈리아 정통 에스프레소를 판매한다. 저녁에는 공원 등지에서 퇴근길에 동료나 친구들과 가볍게 한 잔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훈제치킨과 생맥주를 판매한다. CAR FC의 박영민 관리부장은 “우리나라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10년 전부터 노점문화를 정책적으로 활성화시키고 있다”며 이제 우리도 “리어카를 이용한 노점이 아닌 스넥카를 이용한 노점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식 영화관 ‘Kids Theater’, 이동식 커피 & 호프 ‘CAR FC’, 이동식 횟집 ‘바다를 그대 품안에’ 등은 비록 ‘가게’는 없지만 일종의 체인점이다. 이러한 노점 프랜차이즈 체인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잉어빵, 옥수수, 호떡 등 주로 간식판매로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본사에서 각 가맹점 영업장을 알선, 독점권을 부여해 적은 비용으로 안정된 상권에 창업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명동, 홍대앞, 압구정동 등에는 프랜차이즈 체인 형태의 노점상 이외에도 다양하고 이색적인 노점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분홍색으로 된 물건만 팔거나 특이한 형태의 액세서리만 취급하는 노점 등은 그런 부분을 선호하는 마니아층을 타깃으로 삼아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홍대앞에서 Pink-Truck이라는 노점을 운영하는 ‘사장’ 김효신씨(26)는 일본 스타일 중 큐트하고 펑키가 가미되거나 재미있는 소품, 파티용품 등을 직접 디자인해 판매하는데 10~20대와 30대 초반의 여성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3년 전 외국에서 이런 형식의 노점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창업했는데 당시에는 이런 종류를 판매하는 노점이 없어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상품을 구매한 정선아씨는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액세서리 등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어 아주 좋다”고 말했다. 브랜드 패러디상호로 눈길 끌어 대학로 등지에서 볼 수 있는 ‘떡도날드’ ‘오뎅의 생각’ 등과 같은 노점은 이름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름을 패러디해 소비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특히 숙명여대 인근에 있는 ‘엽기꼬지’에서는 눈물, 눈동 등 메뉴에 개성 있는 이름을 붙여 대학생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 하나의 메뉴만 판매하더라도 생과일 사탕, 아이스 버거, 수제 소시지 등 자체 개발한 메뉴를 판매해 10~20대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이동식 횟집 ‘바다를 그대 품안에’ 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싱싱한 활어회와 초밥을 제공하고 있어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라이브 공연을 하는 포장마차나 로드 칵테일 바 등도 새로운 길거리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이런 곳은 술이나 안주 등을 경품으로 내걸고 즉석 댄스 경연대회를 열거나 경품을 내걸고 즉석추첨을 하기도 한다. 가게마다 이벤트 종류도 다양해 먹는 재미와 공연을 즐기는 재미가 함께 있어 20~30대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색 노점상을 운영하는 사장의 공통적인 목표는 제2의 분점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노점상의 경우 계절이나 유행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단점이 있어 분점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소비자에게 이벤트 자문을 구하거나 홈페이지나 미니홈피 등을 개설해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듣는 등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경영하려고 노력한다. 또 노점을 방문한 손님을 찍은 사진을 올리거나 자신이 판매하고 있는 상품을 홍보하고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를 하는 등 인터넷을 통한 마케팅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이색 노점상의 등장은 새로운 길거리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신선함과 호기심을 가져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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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꼬치 노점상을 가맹점 30개 기업으로 키워낸 20대 CEO 장정윤
2004. 11. 01 화제
“내 경쟁 상대는 맥도날드! 남들은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전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청년 실업 90만, 신용불량자 3백만 시대! 생존만으로도 버거운 이때 남다른 성공으로 주목받는 이가 있다. 꼬지필(COF)의 장정윤 사장. 단돈 3백만원으로 시작한 노점상을 가맹점 30개의 기업으로 키워낸 그녀의 성공 신화는 놀랍기 그지없다. 올해 나이 스물여섯.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젊음을 무기로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성공의 열쇠를 거머쥔 20대 맹렬 여성, 장정윤 사장에게 듣는 성공 노하우. 대학 1학년 때, 단돈 3백만원으로 노점상 시작 1997년 5월 부산여고 앞. 작은 체구의 한 앳된 여자가 리어카 한 대를 끌고 나타났다. 그녀는 학교 앞에 리어카를 세우고는 닭꼬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리어카 좌판 위에는 1천원짜리 닭꼬치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용감하게도 모교 앞에 터를 잡은 그녀. 노점상 앞을 지나던 고교 은사들이 “너 여기서 뭐 하냐”고 물어올 때마다 창피한 마음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7년 뒤인 2004년 현재. 리어카에서 닭꼬치를 만들어 팔던 그녀는 30여 개의 직영점과 가맹점을 거느린 어엿한 기업인이 되었다. 직영점 두 곳의 매출만 따져도 월 6천만원. 1천원짜리 닭꼬치로 부산 일대를 평정한 것으로도 모자라 지난 연말엔 서울에 입성, 사세 확장을 하며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은 닭꼬치 전문점 ‘꼬지필(COF)’의 장정윤사장(26). 그녀가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다소 엉뚱하다. “어학 연수가 몹시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지 않았죠. 당시 아버지가 친구 보증을 섰다가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봐 집안 사정이 최악이었거든요. 어학 연수를 가려면 직접 버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죠.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벌이를 시작했는데 그걸로는 어학 연수비는커녕 학비도 못 만들겠더라구요. 단기간에 큰돈을 거머쥐려면 장사 밖에 없겠단 생각에 노점을 시작했죠.” 부산에서 대학(동주대 관광통역과)을 다니던 1997년, 그녀는 휴학계를 제출하고 노점상으로 나섰다. 1천원짜리 값싼 물건이나 음식을 파는 반짝 장사가 노점상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 때였다. 그녀는 사업 아이템으로 닭꼬치를 선택했다. “당시 1천원짜리 피자도 인기였는데 아무리 봐도 오래가지 못할 것 같더라구요. 액세서리를 취급하자니 패션 감각이 떨어져 자신이 없었구요. 그러던 와중에 번뜩하며 떠오른 게 바로 닭꼬치예요. 닭꼬치는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고, 선진국으로 갈수록 더 많이 먹으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생각됐죠.”  초기 비용으로 들어간 돈은 1백10만원짜리 수레와 50만원짜리 오븐 등 장비를 비롯, 재료 구입비까지 모두 합쳐 3백만원. 하지만 단순히 좌판만을 펼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철저히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나갔다. 그녀의 닭꼬치는 특별했다. 장정윤 사장이 생각해낸 첫번째 깜짝 아이디어는 닭뼈를 모두 발라내고 살코기만을 꿴 닭꼬치를 만드는 것. 당시만 해도 뼈 없는 닭꼬치는 요즘처럼 흔치 않았다. 그녀의 고객지상주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 하나 히트 아이디어는 살코기를 꿰넣는 꼬치를 빼고 은박지에 싸서 주는 방식. 꼬치에 꿴 닭꼬치는 손으로 잡기는 좋지만 막상 먹기엔 불편함이 있다. 앞부분을 먹고 나면 옆으로 먹어야 하기 때문에 특히 립스틱을 곱게 바른 여자 손님들에게는 기피 음식으로 통하기 일쑤. 철저히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것을 사업에 반영시킨 그녀만의 닭꼬치는 당연히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1천원짜리 닭꼬치는 하루 1천개 씩 팔려 나갔다. 한 달 매출이 3천만원에 육박하고 순수익이 많을 때는 1천만원에 이르렀다. 그녀는 사업을 시작하고 6개월간 순수익 3천6백만원이란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사업 시작 초기 목적이던 어학 연수의 꿈을 이루었음은 물론이다. 그녀 나이 스무 살 때의 일이다. 고객의 말에 귀 기울인 것이 내 성공의 비결 장정윤 사장이 말하는 사업 성공 비결은 의외로 단순 명료했다. 그녀는 “여자라서, 게을러서, 고객 말을 잘 들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겐 사업만큼 쉬운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여자고, 또 게으르다 보니 깔끔하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닭꼬치 요리를 개발한 거고, 맛에 있어서는 고객이 시키는 대로만 했더니 성공이 눈앞에 와 있더군요. 사실 저는 요리를 잘 못해요. 하지만 요리 솜씨 좋은 주부 손님들이 ‘양념에 마늘하고 양파를 조금 더 넣으면 맛있을 텐데’ ‘커피물을 부으면 닭고기 비린내가 없어지는데’ 등등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셨고, 또 저는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해뒀다가 내 것으로 만들었죠. 고기 사이에 떡을 넣은 쫀득꼬치, 얼큰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화끈꼬치, 갈비 양념을 맵게 만들어 바른 맵싹코치 등과 같은 메뉴들은 모두 그렇게 탄생한 거예요.” 시련도 있었다. 노점상 시절엔 단속이 가장 무서웠다.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인근 대학교의 학생 손님들 손까지 빌려가며 수레를 끌고 골목길로 줄행랑을 쳐야 했다. ‘돈이 좀더 모이면 번듯한 내 가게를 열어 이 지긋지긋한 설움에서 벗어나리라’ 이를 악물고 버틴 세월이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유학에서 돌아와보니 어머니와 남동생에게 맡긴 노점은 망한 상태였다. 어머니는 단속반을 피하기 역부족이었고, 남동생은 덩치 큰 친구들과 함께 장사를 해 손님들의 발길을 뚝 끊기게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녀는 다시 직접 노점을 도맡아 챙겼다. “장사가 본 궤도에 오를 즈음 뜻하지 않던 경쟁 상대를 만났어요. 인근에 30평짜리 치킨집이 생긴 거예요. 도저히 경쟁이 안 될 것 같아 ‘나도 가게를 내자’ 결심했죠. 그런데 노점에서 번 돈을 유학비용으로 다 써버린 상태라 수중에 돈이 없었어요. 사채 3천만원을 빌려 4평짜리 가게를 마련했어요. 사람들이 모두 ‘학생이 사채 끌어다 사업한다’며 ‘미쳤다’고 했지만 전 지금도 잘한 일이라 생각해요. 왜냐구요? 그만큼 제 사업에 자신이 있었거든요.” 4평짜리 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이제 됐다’ 싶었단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더욱 빛을 발했다. 장정윤 사장은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콜라를 무료로, 무제한 제공하는가 하면 번데기를 이쑤시개로 찍어 먹게 하면서 손님들에게 일식삼미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하루 매출 1백만원이 넘으면서 장사는 번창했다. 직영점을 2개로 늘리고, 같은 장사를 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생겨 가맹점도 5개나 늘었다. 하지만 그 즈음, 그녀에겐 크나큰 위기가 찾아온다. 사업이 순탄하게 성장하던 2001년,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자는 사람들과 동업을 했다가 실패를 한 것. 동업자들이 지나치게 빠른 시간에 큰돈을 벌려는 욕심을 내면서 무리한 투자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수억원의 손실을 보고 동업은 1년 만에 깨졌다. 작년 연말 서울로 진출, 사업 확장에 나섰을 때는 ‘조류독감’이란 큰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동업으로 진 수억원의 빚을 간신히 갚고, 새 출발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던 그녀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정윤 사장은 “시련은 성공을 향해가는 길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과정에 불과하다”며 또래답지 않은 의연함을 보였다. “어느 유명한 산악인에게 기자가 물었대요. ‘목숨까지 걸어가며 산에 오를 필요가 있느냐’구요. 그가 뭐라고 답했는 줄 아세요? ‘나는 산에 오르는 게 목표다. 그 산에 오르는 중간에 내가 목숨을 잃거나 다친다면 그건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그 산악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전 시련이 두렵지 않습니다. 힘든 일에 봉착했을 때 ‘내가 내 목표를 향해 한 발짝 더 다가갔구나’ 생각한다면 극복하지 못할 것도 없죠.” 장정윤 사장은 지난해 말 또다른 도전에 나섰다. 부산에 닭꼬치 제조 공장을 설립함과 동시에 서울 진출을 감행한 것. 꼬지필을 한국에서 성공시키고, 더 나아가 중국, 일본, 미국 등 해외로 뻗어나가 세계적 브랜드로 정착시키기 위해선 같은 크기, 같은 맛을 제공함과 동시에 서울 진입이 필수라는 판단 아래 내린 결단이었다. 지난해 12월 대학로점을 필두로, 현재 서울 목동점, 경기 일산점 등 3곳이 오픈 된 상태.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란다. 꼬지필을 맥도날드와 같은 세계적인 시스템 체인으로 키워 나가는 게 장정윤 사장의 꿈. 지금까지 그래 왔듯,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그녀의 야심찬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글 / 최은영 기자  사진 / 전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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