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55 건 검색)
- 임현택 의협회장 “대통령과 국회가 결단해달라”…단식투쟁 시작
- 2024. 08. 26 16:17사회
- ...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의료대란을 끝내기 위해 대통령과 국회의 결단을 촉구하며 단식...
- 의정갈등 1년
- 태국 군주제 비판 활동가 옥중 단식투쟁으로 사망
- 2024. 05. 15 21:35국제
- ... 혐의로 수감 “자의적 구금” 보석 요구 태국에서 왕실모독죄 혐의로 수감돼 단식투쟁을 벌였던 20대 활동가가 사망했다. 15일(현지시간) 방콕포스트·카오솟에 따르면, 태국의 정치활동가 네띠뽄...
- 태국왕실모독죄군주제
- 단식투쟁 벌였던 태국 ‘군주제 비판’ 활동가, 심장마비로 사망
- 2024. 05. 15 14:09국제
- ... 네띠폰 사네상콤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 EPA연합뉴스 태국에서 왕실모독죄 혐의로 수감돼 단식투쟁을 벌였던 20대 활동가가 사망했다. 15일(현지시간) 방콕포스트·카오솟에 따르면, 전날 태국의...
- 태국왕실모독죄군주제
- 멕시코·에콰도르 갈등 ‘진원’ 에콰도르 전 부통령, 단식투쟁 중 자살 시도
- 2024. 04. 11 14:01국제
- 멕시코 망명 시도하다 멕시코 대사관서 체포 양국 갈등 최고조···멕시코, ICJ에 에콰도르 제소 멕시코 대통령, ‘외교관에 총구’ CCTV 공개 에콰도르 경찰 특수부대가 지난 5일(현지시간) 호르헤 글라스...
스포츠경향(총 6 건 검색)
- ‘아는형님’ 이동국 “딸 재시-재아 ‘단식투쟁’ 때문에 출연”
- 2019. 12. 20 19:22 연예
- JTBC 제공.축구 선수이동국(전북 현대)이 다소 독특한 ‘아는 형님’ 출연 계기를 밝혔다. 21일 오후 9시에 방송되는 JTBC ‘아는 형님’에서는 K리그를 이끌고 있는 현재 진행형 레전드 축구 선수 이동국이 전학생으로 찾아온다. 녹화에서 이동국은 형님들의 힘찬 환호를 받으며 등장했다. 이동국은 내공이 돋보이는 자학 개그를 전하고, 서장훈과 체육인으로서 신경전을 벌이는 등 축구 실력 못지 않은 예능감까지 방출했다. 또 훈련 에피소드는 물론 오남매의 아빠로서 육아 에피소드까지 풀어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날 이동국의 아들 시안이 역시 형님학교에 깜짝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동국은 “딸 재시-재아가 ‘아는 형님’ 열성 팬이다”라며 ‘아는 형님’ 출연 계기를 밝혔다. 이어 “재시와 재아가 출연을 하지 않으면 단식투쟁까지 하겠다더라”라는 비하인드 스토리로 웃음을 자아냈다. 이동국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가족들의 결단으로 출연이 결정됐다”라고 털어놨다는 후문이다. K리그 전설 이동국의 재치 있는 입담과 시안이의 활약상은 ‘아는 형님’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이동국
- 민주당·한국당, 내년 예산안 잠정 합의···손학규·이정미 단식투쟁 돌입
- 2018. 12. 07 00:00 생활
-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6일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잠정 합의를 했다. 선거제 개혁을 예산안 처리의 ‘전제 조건’으로 내 세웠던 바른미래당은 이에 동참을 하지 않았다.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들은 이날 회동을 잇따라 가지고 내년도 예산안 처리 문제에 대해 논의를 가졌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회동을 가진 후 취재진에게 “2019년도 예산안에 대해 한국당과 민주당은 잠정적으로 합의했다”며 “공식 합의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도 “각 당 의원총회에서 내용을 보고하고 의원들의 추인을 확보하고, 추인이 실패하면 잠정 합의는 효력을 상실하는 것으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양당은 7일 본회의에 정부안보다 5조 원 이상 감액한 수정 예산안을 상정해 추인을 받았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김동연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2019년도 예산안 관련 합의문을 작성하고 손을 잡고 악수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이후 홍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합동브리핑을 통해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함께 예산 관련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이들은 번갈아 읽은 합의문에서 “2019년도 예산안은 12월 7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며 “예산안 중 감액 규모는 일자리 예산 및 남북협력기금의 일반회계 전입금 등을 포함해 총 5조원 이상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또 “내년 국가직 공무원은 필수인력인 의경대체 경찰인력과 집배원을 제외한 증원 요구인력 중 3000명을 감축한다”며 “아동수당은 2019년도 1월부터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만 0세에서 만 5세까지 아동을 대상으로 월 10만원을 지급하고 2019년도 9월부터는 지급대상을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최대 생후 84개월)까지 확대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지방소비세는 현행 부가가치세를 11%에서 15%로 올리기로 했고 지자체 예산 편성기준을 개정해 이·통장 활동수당을 인상하는 방안도 강구하기로 합의했다. 양당은 새해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지만 법정 처리시한(2일)을 넘겼고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후 가장 늦은 예산안 처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6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선거제 개혁 합의를 거부하고 예산안 처리를 합의 한것과 관련해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사진한편, 선거제도 개혁과 예산안 처리 연계를 주장한 야3당을 제외하고 두 당이 합의한 상태라 국회 파행도 우려된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3당은 민주당과 한국당이 합의문을 발표하기 직전에 기자회견을 갖고 “기득권 양당의 욕심이 정치 개혁의 꿈을 짓밟았다”고 규탄하며 7일 공동집회도 예고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이날부터 예산 합의를 거부하는 단식투쟁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손 대표에 이어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밀실야합을 규탄하고 짬짜미 예산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다시 검증하고, 선거제도를 반드시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 [월드컵ing] 아르헨티나 재소자들이 단식투쟁 나선 까닭
- 2018. 06. 14 16:31 축구
- “메시를 보게해 달라” 2018 러시아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아르헨티나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이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아르헨티나가 출전하는 러시아 월드컵을 감옥에서라도 시청할 수 있도록 고장 난 케이블 TV 시스템을 고쳐달라는 것이 이들이 식사까지 거부하고 나선 이유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아이티의 평가전에서, 아르헨티나의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가 득점하고 있다. AP연합14일(한국시간) 미국 스포츠전문 채널 ESPN 보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남부 추부트주 푸에르토 마드린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 9명이 최근 현지 지방법원 앞으로 자필 서신을 보냈다. 현지시간 11일 자로 작성된 이 편지에서 재소자들은 “TV 시청은 아주 중요한 권리”라면서 “교정 당국은 고장 난 TV를 고쳐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도소에서는 케이블 시스템이 작동이 안 돼 사흘 전부터 TV를 시청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9명이 서명까지 한 편지에서 재소자들은 “우리는 이 불편함이 해소될 때까지 점심과 저녁 식사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방법원은 서신을 받은 이튿날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를 공개했다. 현역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등이 포진한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은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D조에 속해 16일 아이슬란드전을 시작으로 크로아티아, 나이지리아와 차례로 대결한다.
- 월드컵ing
- 평화당 “김성태, 단식투쟁 중단하고 국회 복귀하라” 촉구
- 2018. 05. 06 11:36 생활
- 민주평화당이 6일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에게 “단식투쟁을 중단하고, 조속히 국회에 복귀하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장정숙 대변인은 논평에서 “김성태 원내대표가 한국당 지지자에게 폭행당했고, 폭력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도 “지지자조차 단식을 비판하고 김 원내대표를 폭행했다는 사실은 한국당의 투쟁방식이 국민적 정서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보여준다”고 밝혔다. 국회 앞 계단에서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다 전 일 30대 남성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6일 국회 농성장으로 돌아와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장 대변인은 김성태 원내대표가 단식투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국민의 뜻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어리석은 몽니를 부리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당국은 검거된 범인을 철저히 조사·엄벌하고, 김성태 원내대표의 빠른 쾌유와 함께 한국당의 조속한 국회 복귀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주간경향(총 4 건 검색)
- [렌즈로 본 세상]김진숙 복직 촉구 단식투쟁(2020. 12. 28 11:34)
- 2020. 12. 28 11:34 사회
- 35년 전, 입사 5년 만에 명령불복종을 이유로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동료들이 김 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는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은 2020년 12월 22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진숙은 공장을 ‘삶이 있는 곳’으로 만드는 소박한 꿈을 가졌다는 이유로 35년을 블랙리스트 해고자로 살아야 했다”라며 “반노동 정책의 희생자이자 이 시대 해고노동자들의 상징인 김 지도위원의 복직은 정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종교·노동·사회단체들도 김 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는 연대 단식에 동참했다. 김 위원은 2011년 1월 6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35m 높이의 크레인에 올라 무려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해고되지 않고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올해가 정년퇴직인 김 위원은 현재 암 투병 중이다.
- 렌즈로 본 세상
- [주간 舌전]“국가위기를 막기 위해 단식투쟁을 시작하겠다. 죽기를 각오하겠다”(2019. 11. 25 14:00)
- 2019. 11. 25 14:00 정치
- 지난 11월 20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선언하며 한 말이다. 그는 이어 “나에겐 자유민주세력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고 싶은 소명의식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황 대표의 결기는 뜨거웠지만 단식투쟁에 대한 반응은 영하권 날씨처럼 냉랭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을 얕잡아보고 있는데 단식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냐”고 비판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 연합뉴스 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도 황 대표의 돌발 투쟁을 쇄신 피하기 ‘꼼수 단식’으로 규정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정치 초보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도 “황 대표께서 21세기 정치인이 하지 않아야 할 세 가지 중 두 개(단식·삭발) 이행에 돌입했는데, 이런 방식의 제1야당으로는 국민의 눈높이에 부응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황 대표는 왜 단식을 택했을까. 여의도 안팎에서는 황 대표의 단식을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하며 제기한 쇄신 요구를 단식으로 덮으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보수통합과 당 쇄신이 여의치 않자 국면전환용으로 단식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황 대표의 단식에 움직일까. 가능성은 높지 않다. 황 대표를 만난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의 첫 마디는 “이런 건 참 옳은 방향이 아닌 것 같다”였다.
- 주간 舌전
- [주목! 이 사람]45일간의 장기 단식투쟁한 방종운 전국금속노조 콜트악기 지회장 “김무성 대표는 거짓말 사과해야”(2015. 12. 22 10:44)
- 2015. 12. 22 10:44 사회
- 방종운 금속노조 콜트악기 지회장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천막 농성장에 앉아 있다. / 전병역 기자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비닐천막 안. 방종운 전국금속노조 콜트악기 지회장(58)이 앉아 있었다. 취재차 그를 만난 건 5년여 만이다. 잔뜩 늘어난 주름살과 샌 머리카락, 텁수룩한 수염….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예상보다 더 많이 변해 있었다. 2010년 여름 의 ‘고용난민 시대-일자리 없나요?’라는 기획 시리즈 취재차 처음 방 지회장을 봤다. 그때 ‘노동운동’ ‘투쟁’ 같은 건 그에게는 아직 낯선 단어처럼 보였다. 그의 변한 모습은 단지 외모만이 아니다. 질기고 독해졌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에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았다. 김 대표가 지난 9월 3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테트라팩, 발레오공조코리아, 콜트악기, 콜텍은 모두 이익을 많이 내던 회사인데 강경노조 때문에 문을 아예 닫아버렸다”고 노조를 겨냥했다. 밥그릇을 챙기려면 노조가 쇠파이프를 들지 말고 정신차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에 멍석을 깔기 위해 콜트악기 등의 사례를 악용한 것이라는 게 방 지회장의 판단이다. 방 지회장은 이 말에 분개해 김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단식 45일째인 11월 18일 쓰러진 그는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어떤 사과도 듣지 못했다.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는 “우선 김 대표가 거짓말을 했고, 그건 박영호 사장에게 명예회복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방 지회장은 강조했다. 방 지회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콜트악기가 2007년 갑자기 인천 부평공장을 문 닫아 버리자 해고를 당했다. 인도네시아, 중국으로 공장을 옮긴 데 따른 결과다. 방 지회장은 “단순히 인건비 차원을 넘어 박영호 사장은 노조 자체를 인정하기 싫어서 공장 이전을 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콜트악기는 김 대표 말마따나 당시 국내 공장으로 연간 100억원 안팎의 이익을 내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인건비 절약이나 반노조를 이유로 하루 아침에 국내 직원의 밥줄을 끊은 꼴이 됐다. 직원들은 해고 무효소송 끝에 2012년 2월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로 승소했다. 그러나 사측은 한국에 사업장이 없다며 ‘구제에 실익이 없다’고 재해고를 해버렸다. 방 지회장 일행은 다시 법정 다툼에 나섰다. 이번에는 김 대표를 향해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도 11월 12일 따로 냈다. 방 지회장은 14개 공정 중에 몸통을 깎는 공작반에서만 17년 넘게 일하며 총 25년을 기타 만드는 데 바쳐 왔다. 그는 콜트나 콜텍이 국내에서 다시 공장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자체 브랜드를 키우려면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말이 지닌 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같은 재료로 만든 기타라도 인도네시아산이 3000~4000원급이라면, 한국산은 4000~6000원, 미국산은 7000~1만원으로 볼 수 있다고 방 지회장은 설명했다. 그들의 거리싸움은 언제까지 이어져야 할까. 방 지회장은 “가능하면 먹고 힘내서 싸우자는 쪽이지, 나도 단식은 안 좋아한다”면서도 “이렇게라도 해야 한 사람이라도 더 사측이나 김 대표의 잘못을 알아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눈은 분노와 서글픔에 충혈돼 갔다. 방 지회장은 “여기서 물러나면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을 초래할 명분만 준다”며 “나야 이제 복직하더라도 정년퇴직이나 할 나이지만, 앞으로 후배 세대를 봐서라도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겉모습은 지쳤지만 속은 더 단단해져가는 것 같았다. 좋은 기타 만들기밖에 모르던 ‘근로자’는 거리에서 ‘노동운동가’로 변해 있었다.
- 주목! 이 사람
- [광복 70년 역사르포](25) 여의도 대하빌딩 옛 평민당사…꺼져가던 지방자치에 불 지핀 단식투쟁(2015. 08. 24 16:20)
- 2015. 08. 24 16:20 사회
- 대통령선거가 2년 넘게 남았지만 여론조사기관은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를 보면 대체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김문수 전 경기지사, 남경필 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 10위권 안에 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배경으로 대통령이 된 이후 서울시장이나 경기지사 등 광역자치단체장, 특히 수도권 광역자치단체장은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차기 대권주자의 반열에 오른다. 광역자치단체장은 직접 행정경험을 쌓았다는 점에서 정치적 중요인물로 꼽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광역자치단체장은 웬만한 초·재선 국회의원 경력으로는 되지 않는다. 기초자치단체장인 안상수 현 창원시장은 4선 의원에 집권당 대표를 지낸 경력의 인물이다. 지방자치 실시 등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한 김대중 총재의 평민당사가 있던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 이 주변은 새누리당사가 있는 등 여전히 정치 1번지로 평가되고 있다. 지방의회 일시에 해산시킨 5·16 쿠데타 그동안 정치인이 되는 방법은 유력 정치인에게 아부하거나,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지역구 공천을 받거나,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얻는 방법이 유일했다. 이는 여야 마찬가지였다. 이와 무관하게 혜성같이 나타나는 정치인이 있었지만, 이들도 곧 권력자 혹은 3김씨의 영향력 아래 흡수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는 기초자치단체 의원에서 시작해 광역 의원-기초단체장-광역단체장으로 이어지는 ‘정치 엘리트 충원’의 새로운 루트가 생겨났다. 본인만 열심히 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주민들은 과거 권위적으로 군림하는 공무원들의 등쌀에 시달리는 시대에서 이제 ‘행정서비스’를 향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동사무소는 서비스 기관으로 바뀌었고, 군청이나 시청에 가도 거드름을 피우며 시민에게 군림하는 공무원은 찾기 어렵다. 이것은 바로 지방자치의 결과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지방자치와 한몸으로 발전했다. 일부 연구가들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시작을 일제강점기까지 소급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7월 도에는 평의회, 부와 면에는 협의회를 구성했고, 1930년 12월에는 부와 읍 협의회에 의결권을 부여하고 관선 면 협의회를 민선으로 바꾸는 등 지방자치가 시행됐다는 것이다.(김종서, 현행 지방자치관계법의 비판적 검토, 1992년) 이런 배경에서 1948년 제정된 우리나라 제헌헌법에 지방자치가 명문화된 것은 당연했다. 이듬해인 1949년 7월 지방자치법까지 제정·공포됐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지방자치제를 정치 불안정을 이유로 실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1952년 4월 25일 한국전쟁 중에 돌연 지방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매우 정략적인 선택이었다. 당시 이승만 재집권에 반대하는 국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지방의회를 구성한 것이다. 1990년 10월 15일 단식 8일째인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의료진에 의해 평민당사를 나와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김 총재는 병원에서 단식을 계속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52년 4월 25일 제1회 시·읍·면 의회 선거가 치러지고, 5월 5일 시·읍·면 의회가 구성되는 등 매우 선진적(세부적)으로 지방의회를 구성한 셈이다. 그리고 5월 10일 전투 중인 서울·경기·강원을 제외하고 도의원 선거를 치러 5월 29일 도의회를 구성했다. 전쟁 중 태어난 읍·면·도 의원은 이승만 재집권에 동원됐다. “발췌개헌안이 통과된 지 한 달 후인 8월 5일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승만은 대통령 후보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민중자결단, 지방의회 의원 등에 의한 민의 동원으로 350만명이 이승만의 재출마를 탄원하는 관제 민의를 동원했다. 대단한 사전선거운동이었다.”(서중석, 한국현대사, 2005년) 이렇듯 우리의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본래 의미보다 독재자의 장기집권에 동원되는 용도로 출발했다. 지방의원의 도움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이승만은 곧 지방자치에 회의를 느낀다. 주민이 선출한 지방의회가 자신이 임명한 단체장을 불신임하고, 지방의원들의 청탁과 이권개입이 빈발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는 4·19혁명 이후 도입됐다. 1960년 11월 1일 전면적으로 지방자치법이 개정되고, 12월 12일 제3대 도의원 및 도지사(서울시장), 시장, 읍·면장 선거가 실시됐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명실상부한 최초의 지방분권화로 꼽고 있다. 그러나 5·16 쿠데타가 나자마자 쿠데타 세력은 지방의회를 일시에 모두 해산시켰다. 그리고 임시조치법으로 자치단체장은 임명제로 바뀌고, 지방의회는 해산됐다. 지방자치를 폐지한 것이다. 1962년 제정된 헌법은 ‘지방의회 구성 시기는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그리고 지방자치법을 정하지 않았다. 헌법에만 있고, 사실상 지방자치를 폐기한 것이다. 1972년 유신헌법은 아예 ‘지방의회 구성을 조국의 통일 때까지 유예한다’고 규정했다. 전두환 정권의 1980년 헌법에는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를 감안해 순차적으로 하되 그 구성시기는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이 역시 지방자치법을 제정하지 않아 지방자치는 실시되지 않았다. 1995년 명실상부한 첫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성북구에 걸린 포스터와 현수막.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DJ의 단식 지방자치가 사라진 30여년간 우리나라는 중앙집권적 관치시대가 계속됐다. 정치권은 물론 행정가들도 강력한 중앙집권적 지도체제를 ‘지고의 선’으로 여겼고, 지방분권은 혼돈의 원인으로 인식됐다. 지방자치는 지방행정을 전공하거나 지방자치를 경험했던 60~70대 노인들이나 알았지, 대부분 국민은 지방자치가 뭔지도 몰랐다. 본격적인 지방자치는 1987년 ‘6·10항쟁’으로 이뤄진 직선제 개헌에서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1987년 헌법에 지방의회의 구성에 관한 유예 규정이 철폐된 것이다. 이것은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를 비롯한 김영삼, 김대중 등 여야 후보는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를 공약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는 지방의회만 구성하고 자치단체장 선출을 미루기로 결정했다. 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된 야3당은 1989년 12월 31일 지방의회 및 단체장 선거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들은 이제 지방자치가 실시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1990년 1월 22일 전격적인 3당 합당으로 지방자치 실시는 또 미뤄졌다. 218석의 거대 여당이 된 노태우 정부는 법에 명시된 지방자치 연기를 선언했다. 이에 맞서는 유일 야당 평민당은 70석에 불과했다. 평민당사가 입주해 있던 대하빌딩 9층에는 현재 공교롭게도 경상남도 서울사무소가 입주해 있다. 바로 이 순간, 10월 8일 평민당 김대중 총재가 ‘지자제 전면실시’ ‘내각제 포기’ 등의 4개 항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DJ는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에 있는 평민당사 9층 총재실에 자리를 깔고 단식에 돌입했다. DJ가 단식을 강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평민당 소속 의원들의 동조 단식도 이어졌고 정국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단식 중 당시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이 병실을 찾아왔다. 그때 DJ는 “나와 김 대표가 민주화를 위해 싸웠는데 민주화라는 것이 무엇이오. 바로 의회정치와 지자제가 핵심 아닙니까. 여당으로 가서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어찌 이를 외면하려 하시오”라고 말했다.(김대중 자서전, 2010년) 단식 8일째인 15일 DJ는 “더 이상 밀폐된 공간에서 단식할 경우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의료진의 경고를 받아들여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 DJ는 세브란스병원에서 단식을 계속해 13일 만인 20일 단식을 끝냈다. DJ의 단식이 단초가 돼 정치권은 “1991년 6월 30일 이내 기초 및 광역 지방의회를 구성하고, 1992년 6월 30일 이내 기초 및 광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한다”고 합의했다. DJ의 단식은 꺼져가는 지방자치를 되살리는 불씨가 됐다. DJ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혔듯이 스스로 별명을 ‘미스터 지방자치’라고 할 정도로 지방자치에 대해 애착을 가졌다. DJ는 1971년 7대 대통령선거 후보 때부터 “집권 1년 내에 지방자치제의 실시”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DJ는 “제1차로 시·도 및 시·군 의회의 구성, 제2차로 자치단체장의 선출, 단 서울특별시, 부산직할시 및 각 도의 수장은 임명제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중앙과 지방 간의 조화와 안정을 유지하겠다”는 합리적 실천방안을 제시했다.(이상환, 지방자치법 이렇게 만들어졌다, 1995년) 한때 정치권 명당, 지금은 정치인 없어 1995년 6월 27일 드디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됐다. 지방자치 실종 34년 만의 일이다. 선거 결과 서울시장에서 야당이 승리하는 등 여소야대가 반복됐다.(평민당은 3당 합당에 합류하지 않은 노무현·이기택 등과 통합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었고, 김종필(JP)은 1995년 2월 다시 충청권 의원과 탈당,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고 야당길을 걸었다) 일단 도입된 지방자치제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수도(행정)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등 강력한 지방분권 정책을 시행했고, 2004년 7월 주민투표, 그리고 2007년 7월 지방자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까지 도입했다. 제도적 측면에서 우리의 지방자치 제도는 선진국 수준이다. 그러나 제도와 병행돼야 할 예산은 뒤따르지 못해 중앙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다. ‘반쪽 자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에 예속된 자치, 지방 토호의 자치가 아닌 명실상부한 풀뿌리 주민 자치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많다. 25년 전 꺼져가는 지방자치의 불씨를 살린 여의도 대하빌딩 주변은 그대로다. 하지만 대하빌딩 9층 옛 평민당 총재실은 그 흔적조차 없다. 이 빌딩 소유주인 김영도 하남산업 회장은 DJ에게 당사를 제공하고 전국구 국회의원이 됐다. 과거 돈이 없던 시절 당 운영에 도움을 준 사람에게 전국구 의원 자리를 주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지금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YS가 어렵게 통일민주당을 이끌 당시 중림동 당사를 마련해 주고 주요 당직을 얻으며 정치에 입문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 일대는 정치 1번지이다. 현재 새누리당이 있는 한양빌딩과 바로 길 하나 사이이고, 바로 인근에 정의당사도 있다. 사실 이곳 대하빌딩은 정치권에서 ‘명당’으로 꼽힌다. 1995년 첫 지방자치 선거에서 조순 서울시장을 만들어낸 곳도 이 빌딩이고, 1997년 DJ는 바로 이 빌딩에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또 2007년 이명박 후보의 외각조직도 이곳에 입주해 있었고,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이 빌딩 2층과 7층을 사용해 대권을 잡았다. 하지만 ‘용의 기운’이 쇠퇴한 것인가. 이 빌딩 관리인은 “과거 정치인 사무실로 인기가 있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 건물에 입주한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공교롭게 대하빌딩 9층에는 지금 ‘경상남도 서울본부’가 입주해 있다. 이곳은 경상남도(도지사 홍준표)의 서울사무실로, 경남도청 공무원들이 상주해 국회 및 정부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경남도 서울본부 구경호 주무관은 “올 1월 이곳에 사무실을 정했다”면서 “이곳이 과거 평민당사가 있었던 곳인지는 잘 몰랐다”고 말했다. 과거 평민당사 시절 이곳에는 ‘전라도 사투리’가 넘치는 호남사람들이 득실거렸다. 그런데 25년이 지난 지금 이곳 9층은 시끄러운 ‘경상도 사투리’가 넘치는 곳이 됐다. 기막힌 역사의 반전이다. 게다가 홍준표 경남지사는 올해 초 중·고등학생들에 대해 무상급식을 중단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현재 지역에서는 홍 지사를 해임하려는 주민소환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래저래 여의도 대하빌딩은 ‘지방자치제도’, 그리고 ‘단식’과 인연이 깊은 것 같다.
- 광복 70년 역사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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