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84 건 검색)
- 영월 동강뗏목축제와 연계한 특별 임시열차 운행
- 2024. 07. 30 12:00사회
- ... 관광지를 둘러보게 된다. 과거 남한강 상류 주민의 생활·교통수단이던 뗏목을 주제로 한 ‘동강 뗏목축제’는 오는 8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동강 둔치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 기간에는 뗏목 시연과...
- 임시열차영월동강뗏목축제
- 정선 아우라지 뗏목 축제 26일 개막
- 2024. 07. 23 15:46사회
- ... 하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600년 아우라지 뗏꾼의 애환과 사랑’이다. 26일 열리는 개막식에서는 뗏목 시연과 함께 아리랑 전수회원의 모둠북 공연, 실버합창단의 식전 공연과 정선아리랑군립예술단의...
- 아우라지축제정선아리랑
- ‘2024 동강뗏목축제’ 8월 2일부터 사흘간 열려···뗏목 시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 2024. 06. 21 13:07사회
- ... 21일 밝혔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스물여섯 번의 물결, 동강에서 만나다’이다. 축제 기간에는 뗏목 시연과 체험, 청소년 댄스대회, 밀당 대회(배를 밀어라, 노를 당겨라), 에어바운스 놀이, 워터 댄스...
- 뗏목동강뗏목축제영월군
- 망망대해 위 뗏목…그날의 지옥을 그린 그림
- 2023. 11. 15 20:35문화
- ... 벌어진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프랑스 정부가 감추고 싶어 했던 이 사건을 대형화 ‘메두사호의 뗏목’으로 그려냈다. 그는 그림에 사건의 진실을 담으려 했다. 기록을 모으고 생존자들과 면담했고 이들...
스포츠경향(총 11 건 검색)
- ‘1박 2일 출신’ 이승기, 역시 달랐다…야자수로 ‘뗏목 노’ 순식간에 (생존왕)
- 2024. 12. 09 13:28 연예
- ‘생존왕’. TV CHOSUN이 최초로 도전하는 본격 정글 서바이벌 ‘생존왕 : 부족전쟁’에서 ‘제1대 생존왕’이 탄생한다. 최종 미션은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뗏목을 만들고, 무인도를 탈출하는 것이다. 9일(오늘) 밤 10시 방송되는 ‘생존왕 : 부족전쟁’에서는 ‘제1대 생존왕’을 결정지을 마지막 미션이 펼쳐진다. 결승전에는 ‘정글팀’ 김병만X정지현X김동준, ‘군인팀’ 이승기X강민호X아모띠가 진출했다. 두 팀은 긴장감이 가득한 상태로 몸을 풀며 결승전을 준비했다. 두 팀의 마지막 미션은 생존섬에서 약 1km 떨어진 망망대해 위 바지선까지 폐플라스틱, 목재, 밧줄 등을 이용해 직접 뗏목을 만들어 탈출해야 하는 ‘바지선 뗏목 항해 대결’이었다. 정글팀은 이미 머릿속에 ‘뗏목 청사진’을 완성한 김병만의 진두지휘 아래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나무와 밧줄을 이용해 드럼통을 세로로 배열한 후 막힘없이 대나무와 엮었다. ‘장인정신’을 발휘해 하염없이 끈을 꼬고 있는 김병만을 보며 정지현은 “이렇게까지 꼬아야 하나…저희는 아직 만들고 있는데 군인팀은 엄청 빨랐다”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 와중에 ‘가로 배열’을 떠올렸던 군인팀 강민호는 정글팀의 ‘세로 전략’을 엿본 후, ‘전략왕’다운 스피드로 정글팀을 따라하며 뗏목 제작에 들어갔다. 시작은 컨닝이었지만, 대나무를 선택한 정글팀과 다르게 군인팀은 합판과 드럼통을 끈으로 묶고 못질까지 해 철두철미함과 스피드를 모두 잡았다. 게다가 이승기는 노처럼 생긴 코코넛 야자수의 나무줄기를 챙겨와 팔 길이에 맞게 재단해, 또 한 번 제작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전술과 지략으로 뭉친 이승기의 ‘군인팀’과 최다 1위로 선두를 달려온 김병만의 ‘정글팀’ 중 무인도를 먼저 탈출해 ‘초대 생존왕’이 될 주인공은 9일(오늘) 밤 10시 대한민국 최고의 생존왕을 가리는 TV CHOSUN 신규 예능 ‘생존왕 : 부족전쟁’에서 공개된다. ‘생존왕 : 부족전쟁’은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서도 매주 화요일 공개된다.
- ‘인간: 신세계로부터’ 안석환, 딸을 찾아 헤매다 당도한 호텔의 비밀은? (2부 메두사호의 뗏목··)
- 2023. 11. 16 22:03 연예
- KBS 16일 KBS1에서 2023년 공영방송 50주년 대기획 ‘인간: 신세계로부터’ 2부 ‘메두사호의 뗏목’이 방송된다. 2부 ‘메두사호의 뗏목’ 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에 폐허를 떠돌아다니며 예술품을 수집하는 노인 ‘서준’(안석환 분)이 잃어버린 딸을 찾으러 미라클 호텔로 향하는 드라마로 시작된다. 층별로 신분에 따라 투숙객을 나누는 호텔은 마치 계급 사회를 연상시킨다. 무언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미라클 호텔, 서준은 과연 이곳에서 딸을 찾을 수 있을까? 드라마는 다큐멘터리로 이어지며 1816년 7월 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로운 식민지 건설을 위해 세네갈로 향하던 프랑스 해군함 메두사호가 난파된다. 선장을 비롯한 총독과 장교들은 구명보트에 오르지만, 150여 명의 승객과 군인들은 급하게 만든 뗏목에 올라탄다. 그러나 선장의 지시로 구명보트와 뗏목을 연결한 줄은 절단되고, 표류하게 된 뗏목 위에서 끔찍한 비극이 벌어진다. 젊은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프랑스 정부가 감추고 싶어했던 이 사건을 <메두사호의 뗏목>이라는 대형화로 그려낸다. 그의 그림은 시민 혁명 이후 다시 왕정 체제로 돌아갔던 프랑스 사회와 당시 미술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11여 년 뒤 또 다른 명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탄생을 이끌어낸다. 이후 화가들은 그림에 시대정신을 담고 진실을 그리기 시작한다. KBS 제작진은 진실을 위해 투쟁해 온 인간의 행보를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프랑스 시민 혁명 당시의 역사적 현장을 취재하고, 테오도르 제리코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브루노 셰니크 박사 및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미술사학과 명예교수 등 저명한 18, 19세기 서양미술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제작진은 “메두사호의 뗏목 이야기가 여전히 각종 재난 속에 표류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인간은 어떻게 진실을 그려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드라마 주연 ‘서준’역과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지닌 37년 차 배우 안석환이 맡았다. KBS 공영방송 50주년 대기획 ‘인간: 신세계로부터’는 르네상스 이후 인간성 회복을 꿈꾸며 발전한 서양미술을 통해 진정한 인간다움의 의미를 고찰하는 인문 다큐멘터리다. 16일 제 2부 ‘메두사호의 뗏목’에 이어 23일 제 3부 ‘절규’, 30일 제 4부 ‘우리의 얼굴’이 방송된다.
- ‘생존게임 코드레드’ 곽범, 문수인, 모태범, 조준호 뗏목 출항···박군과 짱재에게 가려 파도 가른다
- 2023. 08. 04 18:56 연예
- KBS 오는 5일일 오후 5시 40분 방송되는 KBS2T 생존 재난 서바이벌 ‘생존게임 코드레드’ 최종회는 박군 짱재에게 가기 위해 뗏목(일명 ‘짱군호’)을 만들어 무인도에서 출항하는 곽범, 문수인, 모태범, 조준호의 들뜬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조류의 방향 때문에 목적지에 도달하기 쉽지 않은 듯 보이고. 설상가상 얼마 가지 않아 나무로 만든 노가 물을 먹어 무거워지자 서바이버들의 체력은 하나둘 고갈된다. 앞으로 나아갈 의욕까지 상실해 버린 상황, 드넓은 바다 가운데 탈출이 아닌 조난이 되어버린다.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짱재와 박군은 일명 ‘굴마카세’로 자연산 굴을 이용해 나름대로 호화로운 식사를 하며 무인도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달콤한 굴의 맛도 잠시, 팀의 브레인 짱재는 불을 더 피워 구조 신호를 만들어 보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던지고 박군은 즉시 썩은 나무들을 모아 손발 척척! 짱군의 완벽 케미를 보여준다. 급변한 날씨 덕에 드디어 조류를 타게 된 4인은 다시 한번 힘을 내 노를 젓기 시작한다. 다행히 짱재, 박군이 피운 구조신호를 발견하곤 멀리서 서로를 마주하게 된 서바이버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감동적인 재회도 잠시, 비로소 다 모인 그때 발령하는 코드레드! “두 팀으로 나뉘어 숨겨진 지도를 찾아 구조 신호를 보내라!” 이들의 형제애는 온데간데없다. 3:3으로 나뉜 두 팀은 구조신호를 보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시작한다. 과연 미션을 재빠르게 해결하고 먼저 섬에서 탈출하는 팀은 어디일지, 이번에는 정말 무인도를 탈출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수많은 극한 상황 속 마지막까지 무인도에 남겨질 서바이버는 과연 누구일지? 5일 오후 5시 40분 ‘생존게임 코드레드’ 최종회인 10회에서 안방극장에 공개된다.
- ‘정법’ 장혁X박군, 밀가루·계란·우유 걸고 뗏목 바다 횡단
- 2021. 03. 12 16:01 연예
- SBS 제공13일(토) 밤 8시 55분 방송되는 SBS ‘정글의 법칙 개척자들’에서는 밀가루·계란·우유를 걸고 펼쳐지는 장혁과 박군의 위험천만한 섬 횡단기가 공개된다. 지난 방송에서는 셰프 송훈이 깜짝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송훈은 현지에서 구한 고추를 도끼로 썰어 넣는가 하면 불맛을 제대로 살린 ‘해물 짬뽕탕’으로 개척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어 송훈은 밀가루만 있으면 빵을 만들 수 있다고 해 멤버들을 솔깃하게 했다. 이에 맏형 장혁은 빵 생각이 간절해진 동생들을 위해 “밀가루를 준다면 특급 모험을 해내겠다”라며 제작진에게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생존지 바다 건너 500m 떨어진 옆 섬까지 ‘개척’하겠다는 것. 특전사 출신 박군은 해상침투 전공을 살려 “2인용 뗏목을 만들어 건너겠다”라고 아이디어를 더했고, 이들은 버려진 나무판자와 부표들을 모아 뗏목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바다에 뗏목을 띄우자마자 거센 조류에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뗏목의 반이 잠길 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장혁은 영화 촬영 중 생긴 사고로 ‘물 트라우마’까지 있다고 고백했고, 뗏목 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해 다리까지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장혁은 동생들을 위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무사히 옆 섬까지 건너가 밀가루·계란·우유를 얻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장혁, 박군의 옆 섬 개척기는 13일(토) 밤 8시 55분 방송되는 SBS ‘정글의 법칙 개척자들’에서 공개된다.
- 정글의 법칙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 [길에서 만난 사람]영월 서강 물길 뗏목과 옛사공(2013. 06. 17 16:55)
- 2013. 06. 17 16:55 문화/과학
-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마을의 지형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강원도 영월 한반도면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을 찾아간다. 굽어 흐르는 강줄기가 마치 삼면이 바다인 듯 감싸고 있고, 산 아래 지형이 영락없이 우리 땅 한반도를 빼어 닮았다. 마을을 휘감아 도는 여름의 서강과 그 위로 한 점 그림처럼 흐르는 뗏목과 사공들의 옛이야기를 들어본다. 아늑하고 운치 있는 풍경에는 강건한 물길이 빚어낸 한반도의 진취적 기상이 서린다. 강원도 영월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은 영락없이 우리 땅 한반도를 닮았다. 서강이라 불리는 영월 평창강 영월 평창강(平昌江)을 동강과 견주어 서강이라 부른다. 오대산 남쪽에서 발원한 평창강과 태기산에서 발원한 주천강이 서면에서 합류하는 데서부터 영월읍 남쪽 동강(東江)과 만나는 지점까지 흐르는 강이다. 서강은 동강과 마찬가지로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신비한 모습을 자아내며, 생태계의 보고로서 각종 동식물이 서식한다. 영월 사람들은 동강을 암캉, 서강을 수캉이라고 불렀다. 여름의 수캉은 청년처럼 강건하고 자유롭다. 서강은 태백산맥의 준령인 해발 1577m의 계방산에서 발원하여 평창군 용평면을 지나 봉평면에서 지류와 합류하고, 대화면·방림면·평창읍을 자유파행하며 굽이친다. 그리고 비로소 한반도면 신천리에 이르러 서북쪽에서 오는 주천강과 합쳐져 서강이 되면서 동남쪽으로 흘러 청령포를 지나 영월군 하송리에서 동강과 합류하고 영월읍 남쪽에서 남한강에 합류한다. 이 강은 직선거리가 60㎞에 불과하다. 하지만 총길이가 220㎞에 달한다. 강은 흥정산, 태기산, 백적산, 대미산 등 1000m가 넘는 산악 고원지대, 깊은 산골짜기를 굽이치며 흐른다. 자유파행하는 여름의 강은 젊은 강이어서 당당하고 힘차다. 이 젊음은 산의 정맥이 되어 산 기운과 지세를 북돋우며 더욱 유려하게 흘러 나아간다. 산과 산 사이를 굽이치며 흐르다 주천면에 이르러 영월군에서 가장 넓고 기름진 주천평야를 형성한다. 뗏목 체험을 위해 관광객이 뗏목에 오르고 있다. 감입곡류(嵌入曲流) 하천인 이 젊은 강은 평창강 끝머리에 자리한 선암마을에 이르러 비로소 고요한 기운으로 미려하게 흐른다. 선암마을은 영월 시가지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인 한반도면 옹정리 서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한때 영월사람들은 이 물줄기에 뗏목을 띄워 한양까지 땔감을 날랐다. 아우라지에서 떠내려 보낸 뗏목이 이곳에서 묶어지면서 커지고, 기나긴 한강을 따라 송파나루를 거쳐 마포나루까지 땔감을 운송했다. 뗏목은 직경 약 30㎝, 길이 약 32m의 소나무 150여개를 새끼줄로 묶어서 만들었다. 뗏목의 길이는 약 36m에 이르며, 폭은 약 3m로 짐작된다. 뗏목은 봄부터 여름까지 큰물이 난 후 출발하는데, 험하기로 유명한 동강의 거친 물살을 넘어야만 했다. 때문에 서강의 물줄기는 이 터에 사는 토박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삶의 방편이기도 했다. 영농조합법인 한반도뗏목마을 박봉천 위원장은 “그때 군수 녹봉이 닷냥이면, 뗏사공들이 한양까지 가는 품삯이 열닷냥이었드래요. 물때에 맞춰 한양까지 가는 기 물길이 좋으면 5∼7일, 물이 줄어들면 한 달까지 걸렸습니다. 뗏사공은 보통 2명이 탑니다. 뗏사공들의 벌이가 군수보다 좋았던 거래요. 떼돈 번다는 말이 거서 나온 거 아니 드래요.” 뗏목들은 아주 비싼 값에 팔려 ‘떼돈’을 번다는 단어가 생겼을 정도였다. 하지만 동강의 거센 여울을 잘 넘어가야만 큰 돈을 만질 수 있었고, 물을 잘 타는 뗏사공일지라도 때로는 뗏목이 뒤집히는 바람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또 뗏사공들은 떼를 팔아 ‘떼돈’을 벌었지만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거의 빈털터리였다고 한다. “걸어서 돌아오는 셈인데, 돌아오면서 남한강가의 주막이나 동강의 기생집 같은 곳에서 돈을 다 털리고, 또 때가 되면 빈 손으로 뗏목을 타는 힘겨운 삶을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송림으로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약 600m가량 올라가면 선암마을의 풍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뗏목 타고 한반도를 둘러보는 멋 선암마을 토박이인 박씨는 처음 한반도 지형을 발견한 사람이기도 하다. “마을을 빙 둘러 물돌이를 형성하고 동고서저의 지형과 서해안의 간석지를 닮은 왼편의 모래톱, 울릉도까지 우리 땅 한반도의 전형적인 모습 그대로입니다. 앞으로 서강 탐사선 운행, 한반도 지형 답사 등 지역 특성을 살린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마을사람들은 뗏목을 강에 다시 띄우고, 한반도를 한 바퀴 오르내린다. 뗏목은 한반도 지형의 남해안을 출발해 서해안까지 1㎞ 구간을 왕복한다. 2009년 선보인 뗏목체험은 한반도 지형과 함께 선암마을을 전국 유명 관광지로 만든 농촌 전통테마마을 육성사업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한반도 지형의 특성과 물돌이 마을의 옛 이야기를 살려 내어놓은 뗏목타기와 영월읍 팔괴리 카누체험이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선암마을 토박이 박봉천 위원장이 뗏목을 띄우고 있다. 송림으로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약 600m가량 올라가면 선암마을의 풍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여름이면 전망대 부근에 핀 무궁화꽃이 발 아래로 펼쳐진 한반도 지형과 조화를 이뤄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마을의 지형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마치 인공적으로 조형된 듯한 한반도 지형이 발 아래로 펼쳐진다. 한반도 지형의 무량한 기백이 들이치는 전형적인 물돌이의 지형은 수억년의 시간 동안 공들여 신이 자연의 이름으로 빗어낸 천연의 조형미로 완벽하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모습은 삼면이 바다인 전형적 반도의 형태. 동고서저(東高西低) 경사까지 한반도를 닮은 특이한 구조의 절벽지역을 만들어냈다. 호미곶을 연상케 하듯 툭 삐져나온 꼬리까지 한반도의 지형을 그대로 닮았다. 육당 최남선이 잡지 창간호에서 한반도의 형상은 “마치 맹호가 발을 들고 동아 대륙을 향하여 나는 듯 뛰는 듯 생기 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을 보여주는데, 더욱이 그 모양이 내포하는 의미 또한 심장하여 한반도의 진취적이면서도 무한한 팽창 발전과 아울러 생생하고 왕성한 원기의 무량한 것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것이다”라며 우리나라 지세의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면을 평하였다. 그래서일까,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 올라서 발 아래를 굽어보거나 먼 산세의 풍광을 조망하는 관광객들의 모습에서 당당한 기운이 무량하게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그 당당한 기백이 어린 한반도의 형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서강변에 자리한 또 하나의 명소인 ‘선돌’을 돌아본다. 영월의 관문격인 소나기재 인근에 위치한 선돌은 70m 높이의 큰 바위로 일명 신선암으로도 불리는 기암이다. 두 갈래로 우뚝 솟아 있는 선돌 사이로 보이는 서강의 물줄기가 청량하고 더욱 푸르게 다가온다. 글·사진|이강 leeghang@tistory.com
- 길에서 만난 사람
- [세계]유로존 위기, 유로본드가 구조 뗏목?(2012. 05. 29 19:56)
- 2012. 05. 29 19:56 국제
- 유로본드의 개념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뗏목 잇기’이다. 유로존에서 재정이 건전한 국가들과 불안한 국가들을 한데 묶어서 유럽 경제는 물론이고 취약한 세계 경제까지 위협하는 재정위기의 파고를 넘자는 것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의 해법으로 거론되는 유로본드를 놓고 북유럽과 남유럽의 의견이 맞서고 있다. 유로본드는 유로존이 공동으로 발행하는 채권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설계단계에서부터 어긋난 공동화폐 ‘유로’를 유지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평가해 왔다. 이 공동채권의 도입에 프랑스를 위시한 남유럽 국가들은 찬성하는 반면, 사실상 결정권을 쥔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의 태도는 부정적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5월 2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양국은 유로본드 도입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유로본드의 개념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뗏목 잇기’이다. 유로존에서 재정이 건전한 국가들과 불안한 국가들을 한데 묶어서 유럽 경제는 물론이고 취약한 세계 경제까지 위협하는 재정위기의 파고를 넘자는 것이다. 다른 개념에 빗대자면 ‘물타기’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재정위기국이 자금을 좀 더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신용등급이 높은 경제국과 함께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이 같은 유로본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는 유럽연합(EU) 내에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리스의 유로존 퇴출이 거의 기정사실화되며 상황이 급박해서다. 그리스는 6월 총선 실시 이후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매달 EU가 실적을 체크하고 있는 긴축정책을 더 이상 강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고통스러운 긴축을 택하느니 차라리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하겠다고 그리스 국민들이 선택한다면 유럽연합도 강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유로본드, 유로존 붕괴 막는 최후수단 유럽연합 경제에서 2%를 차지하는 작은 나라인 그리스 자체만으로는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시장에서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나갈 수 있다면, 다른 나라도 가능하지 않겠는가?”라는 불안한 질문을 던질 때다. 이미 구제금융을 받은 포르투갈·아일랜드가 될지, 아니면 심각한 재정위기에 놓인 스페인·이탈리아가 될지를 놓고 시장은 저울질을 할 것이다. 그 사이에 유로화 가치는 폭락하고 유럽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경기침체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 유럽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이미 중국에서는 공장문을 닫는 회사들이 줄을 잇고 있고, 유럽과 연결돼 있는 세계 많은 경제들이 추가적인 여파를 겪게 될 것이다. EU 비공식 정상회의 하루 전인 5월 22일, 이날 헤르만 반롬푀이 EU 상임의장이 각국에 서한을 보내서 “(논의에) 어떤 금기도 없어야 한다”며 유로본드 도입을 에둘러 제안한 것은 이같은 상황 악화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유럽연합 지도부의 절박한 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독일 입장에서는 영 마뜩찮은 제안이다. 독일은 매분기 흑자를 내며 혼자서도 세계 경제위기의 파고를 잘 헤쳐 왔다.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독일의 국채는 최근 장기물이 0% 금리로 발행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유로본드를 발행해 다른 나라들과 공동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독일은 없던 이자부담을 추가로 져야 한다. 그간 그리스 구제금융을 비롯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가장 큰 손으로 기여해온 독일이 또다시 나라 금고에서 돈을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슈테펜 캄페테르 독일 재무차관이 “유로본드는 저리에 자금이 유입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보내면서 유럽 경제의 구조조정 압력을 꺼뜨릴 것”이라며 유로본드 도입에 최근 반대입장을 표명해 그간 독일 정부가 밝혀온 일관된 반대입장의 재확인했다. 미카엘 후터 독일 콜론경제연구소장은 “유로본드는 해결책이 아니다. 위험을 뒤섞을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나라를 구제하는 데 막대한 세금을 또다시 지출해야 한다는 현실을 독일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설득할지일 것이다. 그리스 총선에서 제2당으로 부상한 급진좌파연합의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맨 앞의 남성) 가 5월 15일 연정 협상을 위해 아테네의 대통령궁에 입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의 긴축정책을 반대하는 급 진좌파연합이 6월 17일로 예정된 그리스 총선 재선거에서 제1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유로존의 상황이 여기까지 온 데는 공동화폐 ‘유로’의 태생적 한계에 있다. 2000년 첫 도입된 유로화는 17개 회원국이 공통으로 환율·통화정책을 운영하지만 경제·재정정책은 제각기 운영한다. 그런데 이들 회원국의 국가경쟁력이 들쭉날쭉한 게 문제다. 어느 나라는 흑자경제를 이어가는 반면 특정국가들은 고질적인 적자재정을 벗지 못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같은 재정위기국을 아울러 지칭하는 PIGS, 영어로 ‘돼지들’이라는 모욕적인 표현은 이미 1990년대 이전부터 시장에서 사용되던 표현이다(아일랜드가 2010년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서 이 단어는 PIIGS로 글자수가 늘어났다). 그럼에도 공동화폐를 도입했고, 결국은 유로존의 ‘아킬레스건’인 이들 국가의 위기는 유럽 전체로 확대됐다. 각국 정치적 이해관계로 묶인 유로존 경제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해하기 힘든 유로존의 이 같은 온갖 난제들은 사실 유로화가 경제실험이 아닌 정치실험의 연장선이라는 특성에서 기인한다.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에 공동화폐 ‘유로’는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 피투성이 전쟁 끝에 결국 세계의 패권을 미국에 넘겨준 과거 유럽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영국의 정치잡지 는 “유로존은 합리주의보다는 감정에 관한 문제이고, 영미권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최근 지적했다. 현대사에서 각기 트라우마를 가진 각국의 속사정도 그렇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있어서 유로존 잔류는 과거 엄혹했던 군사독재로 복귀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이다. 그리스에 있어서 유로존 가입은 동구가 아닌 서구에 편입되기 위한 방편이자, 군사정권을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동유럽은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유로존에 가입하고자 해왔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는 유로화를 통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이 또다시 세력을 확대하는 것을 통제하고자 한다. 독일에 있어서 유로존에 참여하는 것은 일종의 속죄행위이다.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과거사에 대한 책임 때문에라도 유로존 재정위기의 분담을 지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유로화라는 단일화폐는 필연적으로 단일한 재정체제, 즉 현재의 유럽연합보다 더 긴밀한 정치적 통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리고 유로본드를 발행할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유럽연합이 재정통합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수백개의 정치체제가 경쟁해온 유럽에서는 상당히 쉽지 않은 일이다. JP 모건체이스가 한 보고서에서 지적했듯이 유로존 내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상이함은 세계 어느 지역의 가상적인 지역 정치공동체보다 훨씬 심하기 때문이다. 유로존의 위기를 곧 유럽연합의 정체성 위기로까지 평가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유성문의 길]마지막 동강 뗏목꾼 홍원도(2007. 08. 07)
- 2007. 08. 07 문화/과학
-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내놓게 한강에 왔더니/삼급수로 전락해서/쉬리 매자 사라진 데를/며칠 전에 떠나왔는지 모를 동강이// 너 잘 있었느냐고/동강도 잘 있느냐고/난 이제 한강 되었다고/글썽이며 반짝이네//멀리 보면서 눈 맞춰주지 않는/사람들이 섭섭해서//저리도 반짝반짝/나를 반기며 촉촉한 한강물/동강이네 -홍정임 ‘안부’ 전문 동강 뗏목꾼들에게 가장 격한 여울은 황새여울과 된꼬까리다. 장마로 급격히 불어난 물살은 허벅지까지 감기어든다. 그래(노)를 잡은 손에 실컷 힘을 줘보지만, 물에 젖은 그래는 물살을 거슬리기도 전에 손아귀를 벗어나기 일쑤다. 일순, 앞전이 치솟더니 급류를 탄 떼는 시커먼 암초를 향해 치닫는다. 떼는 물론 뗏목꾼까지 일시에 깨어져버릴지도 모른다. 대라! 틀어라! 박아라! 어떻게 급류를 빠져나왔는지 모르는 사이, 온몸은 후줄근하게 젖어 있다. 만지에 이를 즈음 물살은 잦아들고 떼는 가까스로 나루에 걸터앉았다. 온몸에 맥이 풀리고, 단내 나는 목젖은 한기를 녹여줄 막걸리부터 찾는다. 우리 집의 서방님은 배를 타고 가셨는데/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다녀가셨나 황새여울 된꼬까리 떼 무사히 건넜으니/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내놓게 영월 거운리에 사는 홍원도씨(74)는 비록 늙은 모습이기는 했지만 전산옥의 실물을 기억하고 있었다. 만지나루에서 술을 팔던 전산옥은 자그마한 키에 용모가 뛰어나고 아라리소리를 잘 해 뗏목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녀가 아흔이 넘는 수명을 누리다가 세상을 뜬 후, 뗏목꾼들은 그녀의 여식이 영월 읍내에 차린 술집으로 뻔질나게 드나든 적도 있었다. 그곳에서 푸는 회포라야 떼를 몰고 다니던 시절에 대한 추억담이 대부분이었다. 홍원도씨가 처음 떼를 탄 것은 열아홉 살쯤이었다. 집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강원도 산골 농사로는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기도 어려웠다. 누군가 떼를 타면 목돈을 손에 쥘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정선쯤에서 뗏목을 엮어 동강과 남한강을 타고 서울 마포나루까지 한 번 다녀오면 품삯으로 소 한 마리 값은 너끈히 건질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떼돈 번다’는 말이 뗏목일에서 비롯되었을까. 그는 마흔 무렵까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떼를 타면서 결혼도 했고, 7남매를 낳아 길렀다. 뗏목일은 강물이 풀리는 3~4월이면 시작되었는데, 뗏목의 출발점은 일정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벌목장에서 가장 가까운 강가에서 떼를 엮었기 때문에 그 지점은 수시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뗏목은 통나무 도막 200개 정도를 엮어 한 바닥을 이루는데, 그 길이는 30m, 폭은 4~5m 정도였다. 보통 세 바닥을 이어서 뗏목을 띄우는데, 그 길이가 100m가 넘는 경우도 허다했다. 뗏목을 엮는 데는 칡이나 느릅나무 줄기, 새끼 등이 사용되었고, 뗏목을 엮는 데만 2~3일이 걸렸다. 뗏목의 앞뒤에는 노의 구실을 하는 그래를 매달았는데, 2인 1조일 때는 물길에 익숙한 경험자나 담이 센 사람이 앞을 맡았고, 초보자가 뒤를 맡았다. 그렇게 해서 출발한 뗏목이 서울까지 가는 데는, 물이 많을 때는 7~10일, 물이 적을 때는 20~30일까지도 걸렸다. 동강 상류에서 출발한 뗏목은 어라연에 가까워지면서 황새여울, 된꼬까리, 상산암, 제남문바위 등 이른바 ‘골안떼’라고 불리는 난관을 돌파해야만 비로소 남한강에 이를 수 있었다. 골안떼를 넘으면 한 고비 넘긴 셈인데, 이때부터 제법 여유가 생긴 뗏목꾼들은 물길의 고단함과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술판이나 노름판을 벌이는 일이 잦아진다. 흐름이 유장하여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는 팔당 정도에 이르면 소위 ‘똑딱선’이 나타난다. 이 배들은 작부들과 함께 장고와 술상을 싣고 와 배를 대고 뗏목 위에서 한바탕 흐드러지게 놀다 간다. 절제심이 부족한 뗏목꾼들은 이래저래 돈을 탕진하고 돌아갈 여비조차 없는 빈털터리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다행히 홍원도씨는 약간의 술 빼고는 일절 딴짓을 하지 않아 팔당에 댐이 들어서면서 뗏목길이 끊길 때까지 알뜰하게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부부간의 사이도 좋았고, 자식들도 잘 자라 모두 대처로 나가 자리를 잡았다. 다만 홍원도씨는 큰딸 정임씨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애틋하다. 어쩌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정임씨지만 시집가서 영월에 살면서 뒤늦게 시를 쓴다고 한다. 앞에 인용한 ‘안부’가 바로 정임씨의 시다. 시를 잘 모르는 홍원도씨지만 어릴 때부터 유달리 순하고 착하던 딸의 시를 볼 때마다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금 홍원도씨 내외는 거운리에서 강변상회라는 민박을 겸한 상점을 열고 있다. 환갑 때 노후대비 삼아 마련한 가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주로 상대하는 손님이 동강에 래프팅을 즐기러 온 젊은이들이다. 한때 자신이 목숨을 걸고 다니던 물길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희희낙락거리며 떠다니는 젊은이들을 보고 어떤 생각이 있을 법도 한데, 뜻밖에 그들을 보는 시선이 관대하다.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의 선배 격으로서 오랜 관록에서 오는 너그러움일까. 홍원도씨는 래프팅족들이 벌이는 어지간한 소란에도 개의치 않는다. 한 번은 동강에서 영업을 하는 래프팅업체들이 선무 삼아 마을 주민들에게 래프팅을 타도록 했던 모양이다. 홍원도씨는 마을 노인들을 이끌고 보란 듯이 래프팅을 즐겼다고 한다. 지금 래프팅 코스라는 것이 그 옛날 홍원도씨가 뗏목을 타고 다니던 물길에 다름 아니며, 사투를 벌이며 급류와 물굽이를 넘던 그에게 래프팅은 그야말로 ‘어린아이의 장난’에 불과하지 않았으리라. 동강에 완전히 뗏목이 사라져버린 지금, 홍원도씨는 1년에 한 번, 동강축제 때라야 마을 사람들을 모아 뗏목타기 시연에 나선다. 거운리에는 과거 뗏목을 탔던 이들이 서너 사람 남아 있기는 하지만, 서울까지 원정을 나선 경험으로는 자신이 유일하기에 시연 때면 항상 앞전에 선다. 비록 시연이라고는 하지만, 도도하게 흘러내려오는 뗏목을 보고 있자면 삶의 유장한 흐름이 느껴진다. 뗏목도, 그 뗏목을 실어나르던 강물도 모두 흘러가버렸고, 애환으로 넘치던 세월 역시 흘러가버렸다. 이제 강을 가득 메우고 있는 래프트들도, 그들이 일으키는 작은 소란들도 어느 결엔가 모두 흘러가버리리라. 흐르고 흘러서 마침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거늘. 글·사진|유성문 rotack@lycos.co.kr
- 유성문의 길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 ‘발해의 혼’ 깨우는 발해뗏목탐사대 방의천 대장
- 2004. 11. 01 화제
- “2005년 1월 1일 출발합니다. 더이상 늦출 수 없어요” ‘발해뗏목탐사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00년 1월 자금 부족으로 탐사대 출발이 좌절됐지만, 지금은 중국의 동북공정 움직임과 맞물려 탐사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탐사대는 2005년 새해 첫날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출발해 일본 니가타 항까지 27박 28일의 긴 여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6년간 직장 없이 뗏목 탐사에만 매달려 벌써 6년이 훌쩍 지났다. 온 국민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도와줄 것만 같은 프로젝트였다. 돈을 벌자고 한 일도 아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도와줄 줄 알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은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이 ‘허상’이고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나중 참담’할 정도였다. 그렇게 ‘발해뗏목탐사’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뇌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발해뗏목탐사는 첨단과학 시대에 너무나 고전적인 ‘뗏목’을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에서 일본 니가타 항까지 가는 무모한(?) 항해다. 지난 1998년 ‘발해 1300호’가 먼저 이 항해에 도전했다. 하지만 도착 예정지인 도고 섬 몇십m 앞에서 암초 때문에 실패했다. 당시 장철수 대장을 포함해 4명의 사나이들은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산에서 구조 활동을 하던 방의천씨(44)가 이 소식을 들었다. 25년간 산만 타온 ‘산 사나이’에게 이들의 비보는 자연스럽게 ‘발해’와 ‘뗏목’으로 인생의 항로를 바꾸게 했다. 당시 발해와 바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없었지만, 운명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98년 5월부터 운영하던 카페를 처분하고 본격적으로 발해뗏목탐사를 준비했다. 목표는 2000년 1월 출발이었다. “저는 언론에 발표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도와줄 줄 알았어요. 2000년 1월 1일에 블라디보스토크 항에서 출발할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갔어요. 모든 일간지에 2000년 1월 1일 출발한다고 발표가 났을 정도니 가능할 줄 알았죠. 하지만 제 환상이었어요. 자금이 부족해서 연기할 수밖에 없었죠.” 한번의 좌절을 겪고 그때부터 ‘지구전’이라는 생각을 했다. 10년이든 20년이든 발해뗏목은 뜰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착실히 준비를 해나갔다. 뗏목탐사대에 전부를 걸지 않으면 영영 실행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일부러 직장도 알아보지 않고 생업을 포기했다. 띄엄띄엄 시민 언론 운동만 하면서. 이 일을 하면서 고향에는 한 번도 내려가지 못했다. 뗏목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곳은 모두 찾아갔다. 중국에서 진도까지 뗏목을 타고 항해를 했던 동국대 윤명철 교수나, 제주도에서 일본까지 항해를 했던 최소리씨를 찾아갔다. 자료 조사를 위해 통영과 부산에 50여 번, 제주도 9번, 울릉도에 7번 다녀왔다. 1차 탐험대에 대한 자료는 모두 수집했다. 유가족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틈틈이 발해에 관한 자료도 모두 찾아다녔다. “뗏목에 관한 꿈만 5백 번 정도 꿨나 봐요. 뗏목의 바람이 빠져서 물에 빠지는 황당한 꿈도 꾼다니까요.(웃음) 왜 뗏목이냐구요? 배보다 안전하니까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수단입니다.” 발해인이 일본과 사신 왕래한다는 기록이 34번이라고 「일본사기」에 남아 있다. 2백여 명의 죽음을 밑거름으로 발해인은 선박 제조술과 항해술을 높여갔다. 당시 발해와 일본을 왕래할 때는 뗏목이 아니라 범선을 이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범선을 지금 제작하려면 약 30억원이라는 돈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뗏목을 이용하면 통신 장비와 개인 장비를 합해 약 3억원이 필요하다. 방의천 대장이 계획하고 있는 뗏목 크기는 7×12m다. 통나무 지름은 30cm로 마닐라삼으로 꼰 끈으로 엮을 것이다. 선실은 2.5×3m로 갑판에서 1.7m 높이로 세워진다고 한다. 갑판에서 80cm는 기둥을 세워 선실이 마치 원두막처럼 지어진다. 뗏목에는 약 10톤의 항해 장비와 통신 장비가 실린다. 한 대에 8백80만원 하는 위성전화 ‘인말세트’와 휴대폰, 노트북, 햄 장비 등 통신 장비가 선실에 들어간다. 그리고 물에 빠져도 3일 동안 살 수 있는 ‘드라이 슈트’와 ‘서바이벌 슈트’ ‘침낭’ 등 개인 장비만 1억8천만원 정도가 소요될 정도다. “돈이 없어서 배를 만들지 못해요. 그리고 발해인이 2백여명이 죽으면서 공식적으로 일본을 34번 왔다 갔다 한 정신을 본받고 싶어요. 일본인은 따라오지 못하는 탐험 정신과 청년 정신을 이어받고 싶었어요. 배보다는 뗏목이 어울리잖아요. 돈도 부족했고, 탐험 정신도 시험해보고 싶었고요.” 1천3백년이 지난 오늘 그는 ‘발해 정신’을 재연해보고 싶다. 98년 당시에는 생존율을 20% 정도로 생각했지만, 뗏목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10월 말 경에 대원들과 함께 화진포로 떠날 예정이다. 그곳에서 합숙 훈련도 하고 뗏목도 만들 것이다. 12월 30일, 해군함정의 도움을 받아 뗏목을 싣고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간다. 2005년 1월 1일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출발해 27박 28일의 일정으로 목적지인 일본 니가타항으로 떠난다. 예정대로라면 1천3백년 만에 찬란한 발해의 역사가 재연되는 것이다. 방의천 대장과 함께 하는 대원은 황기수(39·산악인), 오한택(36·대구과학대 방송연예학과 교수), 연정남(29·인명구조 교육 강사)씨다. 2005년 1월 1일, 두번째 시도 가능할 듯 6년간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뗏목이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화관광부와 아름다운 녹색가게, 신한조선, 전국언론노동조합, 독립유공자유족회 등에서 그에게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몇 대기업에서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반인들의 참여를 위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모금 운동도 펼칠 예정이다. 지난 2000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중국의 ‘동북공정’ 움직임 때문에 발해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동북공정은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다.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데, 실질적인 목적은 고구려와 발해 등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어 한반도 통일시 일어날 수 있는 영토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데 있다. 방의천 대장이 자료 수집을 통해 확인한 발해의 규모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서기 698년에 건국되어 서기 926년에 국호가 사라졌어요. 228년 동안 한반도 북방과 중국의 만주 일원을 지배한 나라죠. 문헌에 보면 발해의 땅이 사방 6천 리라고 했으니 얼마나 광대한 나라였겠어요.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이나 그 기층 민중은 고구려족이니까, 중국의 동북공정 이야기만 나오면 화가 나는 거죠.” 발해사를 연구한 학자가 얼마나 귀한지, 발해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현재 7명밖에 되지 않는다. 1993년에 처음으로 박사가 나왔으니, 발해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다. 어느새 방의천 대장은 발해와 고구려 역사에 대한 학위 없는 박사 수준이 됐다. 역사학자들에게 그들의 직무유기(?)를 따질 정도다. “내년에 뗏목을 꼭 띄워야 해요. 예전에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었는데, 동북공정 움직임을 보면서 빨리 띄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중국이 먼저 시도하면 어떡해요? 시간이 가는 게 두렵습니다.” 25년간 산을 타던 산 사나이. 국내에 있는 암벽은 모두 탔을 정도고,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다는 방의천 대장. 이제는 죽어 있던 발해와 고구려의 역사를 숨쉬게 하려는 바다 사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뜻과 의미를 이제는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했다. 2005년 1월 1일, 새해의 강렬한 햇살을 받으면서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떠나는 발해뗏목탐사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발해뗏목탐사대는 아직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문의 332-8534 글 / 최영진 사진 / 강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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