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2 건 검색)
- [전문가 기고] ‘국가 방역 없다’는 정부…어른거리는 맬서스의 유령
- 2022. 07. 27 20:41사회
- ... 유행을 방치하고 질병 치료를 포기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보면 맬서스의 유령이 되살아난 듯하다. 방역도, 재정지원도 국가에 요구하지 말라며 어려운 조건에 놓인...
- 엔데믹 시작
- [새책]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外
- 2009. 04. 24 17:41경향2
- ...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그레고리 클라크 | 한스미디어)=세계는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부자나라에 한정돼 있고, 전 세계 행복지수는 전혀 증가하지 않은 ‘이해할 수...
스포츠경향(총 1 건 검색)
- [우리는 피임을 모른다] 피임할 권리, 영국의 맬서스 ‘인구론’과 산업혁명
- 2020. 01. 08 09:15 생활
- 과거 영국은 피임에 매우 보수적이었다. 18세기 영국의 많은 남성이 성병 예방을 위해 콘돔을 사용했지만 피임에 관한 지식이 없어 여성의 임신이 줄어들지 않았다. 1798년 ‘식량생산 증가속도가 인구 증가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인구증가를 억제해야 한다’는 이론인 맬서스의 ‘인구론’을 통해 사람들은 피임의 필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산아제한운동이 대두됐으나 맬서스는 피임을 ‘음탕하고 불법 성교를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 이 운동은 곧 사그라졌다. 그는 금욕, 즉 윤리적 억제만이 인구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결혼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1857년 제정된 영국의 음란출판물법인 로드캠벨법은 당시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로드캠벨법은 출판물이 음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상황에 따라 당국이 파기하고 저자와 발행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이다. 그러나 음란출판물에 관한 법률상의 정확한 정의가 없었다. 전문적인 용어를 쓰는 것은 허용됐지만 대중이 이해할 만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위법이었다. 그 예로 피임 방법에 대한 팸플릿은 노동자 여성이 알아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음란하다고 선고받은 데 반해 산아제한에 관한 도서는 위법이 아니라고 했다. 다시 말해 피임 교육은 부유한 자본가들에게는 허용됐지만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는 금지됐다. 영국의 여성과 아이들은 비참했다. 19세기 중엽 산업혁명이 확산되던 때 인구는 넘쳤고 생활은 열악했다. 독점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 계급은 가난에 시달리는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단칸방에서 부부와 자식들이 함께 섞여 자는 형편이었다. 기독교적 도덕률은 사라지고 근친상간과 강간, 낙태, 영아살해 등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비어트리스 웹은 저서에서 “우리 뒤에 있는 젊은 여성은 아버지의 아이를 셋이나 낳았고, 여기 이 아이는 그녀의 남자 형제의 아이인데 어떻게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썼다. 런던에서는 여자 어린이를 사고파는 숫처녀 매매가 이루어졌고, 수많은 여자가 인신매매와 성폭행을 당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아동노동 또한 심각했다. 생산공정이 기계화되자 공장주는 단순한 공정에 적합한 어린이들과 여성 노동자를 고용했다. 여성과 아이들은 탄광 등의 작업에도 동원될 정도로 노동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어린이들은 3~4세부터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한 과로로 죽을 때까지 일해야 했다. 아이들이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을 수밖에 없었다. 1867년 출간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는 “한 소년은 9세가 됐을 때 가끔씩 1교대 12시간 노동을 3회 연속으로 했고, 10세 때에는 이틀 동안 밤새워 일했다”는 아동노동의 실례가 나온다. 그러던 중 1819년 공장법이 제정되면서 섬유공업에 9세 이하 아동의 노동을 금지했고, 16세 이하 아동의 노동시간을 하루 12시간으로 제한했다. 이후 각 연령에 상응하는 최대 노동시간이 정해지면서, ‘생계수단’이었던 아이들이 ‘경제적 부담’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피임법이 확산되고, 출생률도 저하됐다. ■김선형은 누구? 한양대학교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임상 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여성들, 특히 일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이 처한 현실과 다양한 삶의 고충을 마주하면서 여성을 병들게 하는 것, 여성의 건강이 그들의 삶과 가정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여성 건강과 인권에 관한 주제로 번역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는 피임을 모른다’(도서출판 파람)가 있다.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 [안치용의 까칠한 ESG 이야기](3)맬서스와 툰베리 사이 생산적 대화가 가능하려면(2022. 09. 16 14:50)
- 2022. 09. 16 14:50 경제
- 필자는 최근 ESG 관련한 두 권의 책을 냈다.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과 <청소년을 위한 ESG>이다.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을 먼저 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청소년에게 ESG를 소개하는 책을 출간했다. 연내에 다른 관점의 ESG 책을 한 권 더 낸다. 지난해에 출판사와 미리 계획한 일로, 개인적으로 세 권의 ESG 책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건 청소년용이다. ESG가 미래세대의 의제가 되지 않는다면 흔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우리에게 미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왼쪽)와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 위키백과 / 경향신문DB <청소년을 위한 ESG>를 교육행정을 하는 분들에게 지인이 소개했다고 한다. 반응은 “주제가 ESG라지만 환경을 주로 다룬 도서로 느껴졌다”였고, 되레 ESG 실천 또한 환경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지인이 전해왔다. 일견 이해가 간다. ESG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당연히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를 중심으로 한 환경문제가 시급하고 사활적인 의제라고 답변한다. 그렇다면 하던 대로 환경운동을 하면 되지 ESG 운동을 새로 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다. 역설적으로 환경문제는 환경 관점만으론 해법을 찾아낼 수 없다. 다음 세대의 대표적 스피커인 그레타 툰베리의 직설법이 분명 유효하지만, 현실적인 해법은 ‘툰베리 밖’에서 찾아질 것이다. 하던 대로의 환경운동은 성공을 기약할 수 없다. S와 G까지 ESG로 삼위일체가 되지 않는 한 기후위기는 물론 인류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많은 일화에서 그러했듯 사람들은 아는 것만 보고, 본 것만 본다는 게 ‘지속가능운동’을 벌이는 이들이 겪는 난관이다. 1987년에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는 인류 차원에서 내놓은 우리 문명의 반성문이자 유엔 수준에서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의 개념을 정식화한 기념비적 합의다.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내용은 아니지만 지속불가능한 현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지속가능성을 해법으로 제시한 지구촌을 포괄한 최초의 합의라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 공동의 미래’는 지속가능발전의 두 축으로 환경과 사회를 제시했다. 1992년의 리우 환경회의는 ‘지속가능발전’ 앞에 ‘환경적으로 건전한’이란 수식어를 넣은 ESSD(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를 통해 환경의제의 우선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2015년 유엔총회에서 인류 공동의 의제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채택한 것에서 드러나듯 이후 지구 문명 차원에서는 ‘환경적으로 건전한’을 기본값으로 포함한 ‘지속가능발전’으로 문제와 해법을 정리했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와 사회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는 발상은 사태를 호도한다는 식으로 적잖은 비판을 받았지만, 아무튼 지구 차원의 공론으로 자리 잡았다. 긴 논의가 될 것이기에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론 환경·사회·경제의 TBL(Triple Bottom Line) 접근 방식 대신 앞서 언급한 대로 ESG 접근이 더 유효하다고 믿는다. 기후위기만이 덫은 아니다 <인구론>의 토머스 맬서스(1766~1834)는 논쟁적인 인물이다. 맬서스는 사상사에서 반드시 언급돼야 할 만큼 유명세를 누리고 있지만, 부정적인 평가가 주종을 이루고 그의 사상을 혐오하는 사람이 많다. 고등학생 정도만 돼도 맬서스를 알고, 곧바로 인구와 식량의 각각 산술급수적이고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말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비대칭은 인류에게 재앙을 불러오지만, 맬서스에 따르면 인류의 종말까지 유발하지는 않는다. 비대칭에 따라 한정된 자원, 즉 식량을 두고 사람들이 싸울 수밖에 없게 돼 때로 전쟁을 통해 인위적이고 급격한 인구감소가 일어남으로써 인구와 식량 간의 새로운 균형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없으면 질병이 그 역할을 수행하며, 전쟁과 질병이 아니라면 최종적으로 수급 불일치 해소의 극단적 표현인 기근이 인구를 조절한다. 공급(식량)에 맞춰 수요(인구)를 조절해야 한다는 맬서스의 논리구조에서는 식량공급이 인구 수준을 결정하고 삶의 질이 불가피하게 최저수준에 머문다. 식량공급량을 상회하는 인구의 증가는 살펴본 것과 같은,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제재’를 받는다. 말하자면 ‘덫(trap)’에 걸린 것과 같은 상태가 이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맬서스 트랩’이라고 한다. ‘맬서스 트랩’에서 벗어나는 여러 시나리오를 상상해보면 현재의 인류가 그렇게 했듯 증가하는 인구를 부양할 만큼 식량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면 된다. 공급 해법이다. 반면 맬서스는 ‘획기적’의 한계를 산술급수로 보았기에 수요에서만 해법을 찾았다. 공급이 아닌 수요의 조절에서 해결책을 모색한 맬서스는 결혼이나 출산 제한 등과 같은 제도적이고 얌전한 조절방법과 질병, 기아, 전쟁 등 폭력적인 조절방법을 함께 거론했다. 요체는 어떤 사회구성원의 평균적 삶의 질을 높이려면 빈곤층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보았다. 맬서스의 관점에서 ‘덫’을 탈출하려면 빈민구제 같은 온정적 사회정책을 폐기하고 적극적으로 경쟁체제를 작동시켜 취약계층이 도태되게 만들어야 한다. ‘맬서스 트랩’은 그의 섬뜩한 방법론과 함께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 정정해, 적어도 식량과 인구 사이의 함수에서 재앙(맬서스의 생각에선 균형)이 사라졌다고 믿는다. 하지만 맬서스의 거친 표현이 불편해 그렇지 생산력의 고도화로 ‘맬서스 트랩’이 완전히 무의미해졌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변수를 식량 외로 넓혀 예를 들어 포괄적으로 지구와 인간 사이의 함수를 새롭게 구성한다면 ‘맬서스 트랩’이 상당한 타당성을 갖게 되리라고 판단한다. 지구 전체로 보면 기후위기로 상징되는 미증유의 ‘덫’에 인류가 걸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만이 덫은 아니다. 거버넌스는 왜 필요할까 특정 집단, 특정 국가, 특정 지역의 삶의 질을 급속도로 높이기 위해 다른 집단, 다른 국가, 다른 지역의 삶의 질을 망가뜨려온 게 지금까지 계급, 국가, 인류의 대체적 발전공식이었다. 냉정히 말해 인류의 절대다수를 여전히 ‘덫’에 걸린 채로 놓아두고, 혹은 ‘덫’에 더 깊숙이 밀어넣고 소수가 ‘덫’에서 탈출한 구조다. 이 구조에서는 탈출에 성공한 이들마저 종국에는 다시 바닥으로 추락할 공산이 크다. 근대 이래의 인간문명이 가장 약한 자들을 희생시키며 전진해놓고는 진실을 그대로 까발린 맬서스를 사악한 사상가라고 욕하는 건 부끄러운 짓이다. 답은 언제나 문제 안에 있다. 따라서 지구 범위의 환경과 사회문제의 답은 그 안에 이미 들어 있다. 경제(성장)는 독자적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한 자본주의는 모든 문제의 총합이다. 국민국가 수준에서 세계화한 자본주의를 감당하며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할 만큼 평등한 사회를 유도하려면 핵심은 거버넌스다. 미래세대가 문제나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는 발상. 거기서부터 거버넌스가 왜 핵심인지 입증되기 시작한다. 경제는 언제나 답이 아니고 문제였다. 맬서스는 여전히 옳다. 맬서스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거버넌스의 힘이다. 실증되지 않았지만 믿어야 하는.
- 안치용의 까칠한 ESG 이야기
- [시인과 경제학자]토머스 맬서스와 메리 셸리-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종말론적 고민’(2016. 10. 24 16:59)
- 2016. 10. 24 16:59 경제
- 시간을 축으로 사회의 변화를 그려내는 것이 일군의 경제학이었다면, 여기에 ‘공간’이라는 차원을 더하여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가 있다. 지금은 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폴 크루그먼이다. (slate.com)에 개설되었던 그의 블로그는 ‘우울한 과학(The dismal science)’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다.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은 경제학의 별명처럼 쓰이는데, 통찰력 뛰어난 독설가로 유명한 경제학자의 블로그에 제격이다. 경제학에 그런 절묘한 이름을 붙인 이는 영국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이다. 그 연유는 같은 나라 경제학자(본래는 성공회 성직자)인 토머스 맬서스의 저서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알려진 대로 인구가 식량보다 훨씬 더 급속하게 증가하므로 인류의 미래는 무척 암울하다는 주장은 맬서스의 (1798)의 핵심이다. 당대 학자들 또한 이윤율이 낮아져 더 이상 성장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던 터이다. (왼쪽)토머스 맬서스, 메리 셸리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사람 수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죽어야만(죽여야만!) 한다고 말했고, 그 대상은 ‘지원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과격함을 떠나 맬서스의 논의는 실은 고전파경제학에서 다루는 분배에 대한 기초가 되고, 그러한 면에서 경제학적 함의를 가진다. 은 사실 ‘고드윈, 콩도르세, 그 외 작가들의 짐작(specul ations)에 대한 논평과 더불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콩도르세는 프랑스혁명의 좌파 사상가였고, 고드윈은 이를 쫓아 사유재산 철폐를 주장했던 작가이다. ‘짐작’이라고 칭한 대로, 책은 이들 진보좌파의 논리를 공격하려는 속셈이 담겨 있다. 몰락하던 지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의 입장에 섰던 것이다. 실제로도 고드윈의 라는 책에 비판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드윈은 그의 지지자인 맬서스의 아버지 데이비드 맬서스와 각별한 사이였고, 왕래가 잦았다. 고드윈의 부인은 여성주의 작가이자 프랑스혁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로, 부부 모두 급진적인 사람들이다(여전한 봉건계급 시대에!). 부부의 딸은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메리 셸리다. 메리 셸리는 최초의 공상과학소설인 의 지은이로도, 과학·인간실패 등을 암시한 이 책을 열여덟에 지은 점으로도 유명하다. 남편은 키츠, 바이런과 함께 꼽히는 시인 퍼시 비시 셸리로, 진보철학을 가졌다. 그는 “오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겠는가?”라고 노래했고, 메리 셸리에게는 “그러나 달디단 이 모든 것도 소용없으리/ 그대가 내게 입을 맞추어주지 않으면”이라고 읊었다. 그녀는 “내 사랑 별빛으로 내게 다가와/ 내 눈꺼풀에 그대 입맞춰주오”라고 답했다. 사실 퍼시 비시 셸리는 유부남이었고, 그와 사랑에 빠져 도망갈 때 그녀는 고작 열여섯이었다. 남편은 그녀가 스물다섯에 폭풍을 만난 배에서 익사하고 만다. 오십 줄까지 혼자 양육을 전담한 그녀의 고단함을 상상해보면, 앞선 시가 프시케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그런 연유이리라. 서른 살 넘게 차이 나는 셸리와 맬서스가 직접 만났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두 집안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을 여섯 번이나 고쳐서 내는 동안 맬서스에게 전해져 왔던 메리 셸리의 생은 그로 하여금 삶을 더 염세적으로 생각하게끔 하진 않았을까? 메리 셸리 역시 맬서스를 몰랐을 리 없었고, 집안의 교유와 더불어 격한 논쟁의 영향을 받았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였던 1821년 피사에서 을 완독했다. 종말론적인 그녀의 작품 에서 그의 견해에 일면 동의했고, 아버지와 논쟁에서 맬서스의 입장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카메론 교수가 발표한 ‘최후의 인간’ 논문에서 그녀는 맬서스와 다른 해법을 가졌다고 평가된다. 인구변화를 ‘제어’하기보다는 자연의 흐름에 맡기기를, 고통에 밀어넣기보다는 공감하기를, 그리고 전체를 위한 희생보다는 개인의 협력을 강조했다고. 최근 발견된 다양한 작품들에서 그녀는 협력을 통해 제대로 된 시민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었다고 읽힌다.
- 시인과 경제학자
- [영화 속 경제]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인구 증가로 지구의 파국 ‘신맬서스주의’(2015. 04. 28 16:34)
- 2015. 04. 28 16:34 경제
- 젊은 007의 탄생이다. ‘킹스맨’은 007처럼 말쑥하고, 세련되면서, 유머러스하고 여자를 밝히는 영국형 스파이다. 액션은 ‘본’ 시리즈에 가깝다. 매튜 본 감독은 영화 에서 또 하나의 스파이를 창조해냈다. 킹스맨의 원작은 ‘슈퍼히어로’의 산실 마블코믹스 계열사의 작품이다. 킹스맨은 미국 정부도, 영국 정부도 모른다. 원래는 권력자들의 옷을 만들어주는 재단사들이 만든 조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권력 후계자들이 대거 목숨을 잃자 권력자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돈을 쓰기로 하면서 비밀조직으로 재탄생한다. 킹스맨 요원인 해리 하트(콜린 퍼스 분)는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옛 요원의 아들 에그시(테런 애거튼 분)를 새 요원으로 추천한다. 혹독한 면접을 통과한 에그시는 악당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 회장과 마주하게 된다. 거대 통신사 회장인 발렌타인은 ‘가이아 이론’을 신봉한다. 가이아 이론이란 지구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는 이론이다. 사람은 물론이고 각종 동식물, 기후, 토양 등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지구라는 생명체에서 살아나간다고 본다. 지구온난화나 환경파괴는 지구에 무언가가 탈이난 것으로, 그대로 방치했을 때는 지구가 죽을 수 있다고도 본다. 1978년 영국 과학자인 제임스 러브록이 이라는 저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을 가리킨다. 발렌타인 회장은 지구가 골병이 들어가는 이유를 너무 많아진 바이러스(인구)에서 찾는다. 이렇게 되면 숙주(지구)가 바이러스(인구)를 죽이거나, 바이러스(인구)가 숙주(지구)를 죽이게 되는데, 발렌타인 회장은 자신이 나서 바이러스(인구)를 죽여 지구를 살리기로 한다. 발렌타인 회장의 아이디어는 신맬서스주의와 맞닿아 있다. 맬서스는 ‘인구론’을 통해 “식량은 산술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인류는 가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예언했다. 식량혁명이 일어나면서 맬서스의 예언은 빗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1972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발표하면서 ‘신맬서스주의’로 부활했다. 이들은 ‘성장의 한계’를 통해 “연못에 수련이 자라고 있다. 수련이 하루에 두 배로 늘어나는데 29일째 되는 날 연못의 반이 수련으로 덮였다. 아직 반이 남았다고 태연할 것인가. 연못이 수련으로 뒤덮이는 날은 바로 내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인구 증가는 식량뿐 아니라 지구의 각종 자원을 고갈시켜 결국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본다. 기술의 진보는 이를 약간 지체시킬 뿐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라고도 했다. 맬서스는 서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열광한 것은 지배계층이었다. 인구 증가에 따른 책임을 사회구조가 아닌 인간 본성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도태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봤고, 이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반대했다. 신맬서스주의는 이런 성향을 계승했다. 지구의 자원부족을 인구 탓으로 돌림으로써 선진국들은 자원약탈, 식량독점, 과잉소비와 같은 정치적 문제에서 면죄부를 받게 됐다고 개발도상국들은 주장한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인구 감소가 시작되고, 유가 등 원자재가격이 폭락하면서 ‘신맬서스주의가 과도하게 암울했던 것 아니냐’며 회의론도 제기된다. 발렌타인 회장의 ‘지구 살리기’ 프로젝트도 같았다. 인간들끼리 서로 싸워 죽이게 만들되, 각국의 지도자와 지배계층은 제외다. 그의 구상을 가로막는 것이 킹스맨이다. 평민계급인 에그시가 귀족계급 경쟁자를 물리치고 요원이 된 것이나, 자신들만 살려고 했던 각국 지도자의 머리를 폭파시켜버리는 장면은 명확한 주제의식을 엿보게 한다. B급 영화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계급제의 모순에 반대한 ‘삐딱한 영화’라는 것이다.
- 영화 속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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