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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 계엄 막은 한국처럼…“미얀마에 민주주의를”
[포토뉴스] 계엄 막은 한국처럼…“미얀마에 민주주의를”
2025. 02. 03 20:22사회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 회원들이 3일 서울 성동구 주한 미얀마대사관 무관부 앞에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봄의 혁명 4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얀마 투쟁 4년···“한국처럼 시민이 계엄 해제하는 나라 만들겠다”
미얀마 투쟁 4년···“한국처럼 시민이 계엄 해제하는 나라 만들겠다”
2025. 02. 03 16:23사회
... 시민을 때리고 체포했으며, 이들을 향해 발포했다. 여의도와 광화문을 가득 메운 응원봉 물결도 미얀마의 현실과 달랐다. 린텟아웅은 “미얀마 사람들도 평화집회를 하고 싶어하지만 군부가 때려죽이기...
미얀마 군부-소수민족 무장단체, 중국 중재로 휴전협정
미얀마 군부-소수민족 무장단체, 중국 중재로 휴전협정
2025. 01. 21 15:58국제
..., 아라칸군(AA)과 ‘형제동맹’을 결성해 미얀마 군부를 밀어붙였다. 군부는 공세에 밀려 미얀마 북부 샨주 영토 대부분을 뺏기는 등 2021년 쿠데타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미얀마
태국, 미얀마 접경 콜레라 확산에 국경 임시 폐쇄
태국, 미얀마 접경 콜레라 확산에 국경 임시 폐쇄
2024. 12. 24 13:46국제
..., 태국 정부가 해당 지역 국경을 일시적으로 폐쇄했다. 24일 타이PBS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얀마 남부 미야와디주 쉐코코에서 이달 들어 300여 명이 설사 등 콜레라 증상을 보였고, 이 중 56명이...
미얀마콜레라쉐코코

스포츠경향(총 158 건 검색)

김상식 감독의 베트남, 미얀마에 5-0 대승, 조 1위로 미쓰비시컵 4강행···26일 싱가포르와 결승행 다퉈
김상식 감독의 베트남, 미얀마에 5-0 대승, 조 1위로 미쓰비시컵 4강행···26일 싱가포르와 결승행 다퉈
2024. 12. 22 01:31 축구
김상식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 AFP연합뉴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 2024 아세안 미쓰비시일렉트릭컵(이하 미쓰비시컵) 준결승에 진출했다. 베트남은 21일 베트남 푸토 비엣찌의 푸토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B조 최종전에서 미얀마를 5-0으로 대파했다. 3승1무로 승점 10점을 쌓은 베트남은 B조 1위로 4강에 올랐다. 미쓰비시컵은 아세안축구연맹(AFF)이 주관하는 이 지역 최고 권위의 축구 대회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을 이끌고 2018년 대회 우승을 지휘한 것을 계기로 국내 팬들에게도 관심을 받는 대회가 됐다. 이번 대회엔 베트남의 김상식 감독, 인도네시아의 신태용 감독, 라오스의 하혁준 감독까지 3명의 한국인 사령탑이 B조에서 경쟁해 관심을 끌었다. AFP연합뉴스 총 10개 팀이 2개 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치른 뒤 각 조 2위까지 4강에 올라 준결승, 결승을 통해 우승팀을 가린다. 이날 박항서 감독이 경기장을 찾아 옛 제자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베트남은 전반을 0-0으로 마쳤으나 후반전에 5골을 몰아쳤다. 후반 3분 응우옌반토안의 슈팅 이후 세컨드 볼을 살려낸 베트남은 부이비하오의 선제골로 포문을 열었고 후반 11분 응우옌쑤언손의 추가 골로 2-0을 만들었다. 후반 29분엔 응우옌꽝하이가 골대 정면에서 왼발로 세 번째 골을 넣었고, 후반 45분엔 응우옌쑤언손이 멀티 골을 작성했다. 경기 종료 직전에는 응우옌띠엔린도 득점포를 가동해 5-0 대승을 완성했다. 베트남은 현지시간 26일 A조 2위 싱가포르와 4강 1차전을 치른다. AFP연합뉴스
신태용호, 미얀마에 1-0 신승에도 웃은 이유는?···“22세 이하 어린선수 주축 후반 압도”
신태용호, 미얀마에 1-0 신승에도 웃은 이유는?···“22세 이하 어린선수 주축 후반 압도”
2024. 12. 10 09:02 축구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 Getty Images코리아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가 ‘동남아 최대 축구 잔치’ 2024 아세안 미쓰비시일렉트릭컵(미쓰비시컵) 첫판에서 힘겹게 승리했다. 현지에서는 어린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려 치른 첫 경기의 경기력에 만족감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많았다.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은 9일 미얀마 양곤의 투운나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쓰비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미얀마에 1-0으로 이겼다. 미쓰비시컵은 아세안축구연맹(AFF)이 주관하는 이 지역 최고 권위 대회로,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지휘봉을 잡아 2018년 대회 우승을 지휘한 바 있다. 신태용호 인도네시아는 2021년 첫 대회에선 태국에 져 준우승했고, 2022년 대회에선 준결승에서 박 감독의 베트남에 패해 탈락했다. 동남아 10개 국가가 출전하는 이번 대회는 5개 팀이 A, B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치른다. 이후 각 조 1, 2위 팀이 4강 토너먼트를 진행해 최종 우승 국가를 가린다. 우승을 목표로 이번 대회에 출전했지만 인도네시아는 내년에 열리는 동남아시안 게임과 U-23 아시안컵을 겨냥해 22세 이하 선수들 중심으로 출전했다. 1차전에서 홈팀 미얀마에 화끈한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인도네시아(125위)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낮은 미얀마(167위)를 상대로 이렇다 할 득점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전반을 마쳤다. 신태용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네덜란드 출신의 공격수 라파엘 스트라위크와 지난해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아스나위 망쿠알람을 투입했다. 미얀마를 상대로 공격하는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CNN인도네시아 캡처 K리그1에서 뛴 프라타마 아르한이 분위기를 바꿨다. 롱 스로인이 장기인 아르한은 후반 31분 터치라인에서 곧장 문전까지 길게 공을 던져 미얀마 수비진을 당황케 했다. 혼전 끝에 눈앞에 떨어진 공을 망쿠알람이 오른발 강슛으로 연결한 게 크로스바를 강타한 후 골키퍼 진니니아웅의 몸에 맞고 미얀마의 골그물을 흔들었다. 인도네시아는 이후에도 주도권을 놓지 않고 미얀마에게 공격 기회를 내주지 않는 끝에 그대로 1-0으로 이겼다. CNN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가 개최국 미얀마에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뒀다”면서도 “후반 들어 공격력이 좋아져 점유율과 파이널서드 패싱수, 슈팅수에서 압도했다”고 평가했다. 에릭 토히르 인도네시아축구협회 회장은 “개막전에서 승점 3점을 얻었다. (인도네시아 리그에서 뛰는)22세 이하 어린선수들이 많아 힘들었지만, 그들이 경험을 더 쌓으면 좋아질 것이다. 이들이 계속해서 기량을 향상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폭고’ 태국·미얀마 1위···인니·말레이 2위
‘조폭고’ 태국·미얀마 1위···인니·말레이 2위
2024. 06. 21 09:39 연예
Viu(뷰) 제공 드라마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가 아시아 전역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21일 아시아 최대 범지역 OTT 플랫폼 Viu(뷰)에 따르면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이하 ‘조폭고’, 영제: High School Return of a Gangster)는 6월 2주차(6월 10일~16일) Viu 주간 차트에서 태국·미얀마 1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2위를 비롯해 홍콩 4위, 싱가포르 5위, 필리핀 7위 등을 기록했다. ‘조폭고’는 대학에 가고 싶은 조폭(이서진)이 열아홉 왕따 고등학생(윤찬영)의 몸에 빙의되면서 자신만의 기술로 가해자를 응징하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친구(봉재현)와 새로운 우정을 쌓으며 성장하는 판타지 휴먼 드라마. 특히 ‘조폭고’의 흥행은 앞서 ‘피라미드 게임’, ‘방과 후 전쟁활동’, ‘청담국제고등학교’ 등 K-학원물의 인기 바통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와 관련해 Viu 관계자는 “한국의 문화와 드라마에 심취한 시청자들이 한국의 중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에게 벌어지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에 관심을 느껴 K-학원물의 인기로 연결됐다”라고 전했다. 한편, Viu(뷰)는 ‘재벌집 막내아들’, ‘모범택시2’ 등 한국 인기 콘텐츠를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해외 16개국에 선보이고 있는 홍콩 PCCW 범지역 OTT 플랫폼이다. 현재 한국 드라마 ‘졸업’, ‘우리, 집’,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 예능 ‘신들린 연애’ 등을 선보이고 있다.
미얀마에 대승 거둔 북한, 극적으로 월드컵 3차 예선 진출···3차 예선서 ‘남북대결’ 성사되나
미얀마에 대승 거둔 북한, 극적으로 월드컵 3차 예선 진출···3차 예선서 ‘남북대결’ 성사되나
2024. 06. 12 01:37 축구
북한축구대표팀 | 게티이미지코리아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서 ‘남북 대결’이 성사될 가능성이 생겼다. 북한이 미얀마를 대파하고 극적으로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에 올랐다. 북한은 11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B조 최종 6차전에서 미얀마를 4-1로 꺾었다. 이로써 B조에서 3승3패를 거둔 북한은 승점 9점을 쌓아 마지막 순간 조 2위를 확보했다. 2차 예선에는 조 1~2위만 다음 라운드로 향한다. 앞서 열린 경기에서 시리아(2승1무3패·승점 7점)가 일본에 0-5로 패한 덕에 최하위 미얀마(1무5패·승점 1점)를 잡은 북한이 조 2위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은 지난 6일 시리아를 1-0으로 잡은 데 이어 연승을 달리며 3차 예선으로 가는 티켓을 따냈다. 시리아전을 ‘제3국’인 라오스에서 진행한 북한은 미얀마전도 같은 장소에서 치렀다. 시리아전에 앞서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 뉴스는 “시리아 매체들이 ‘이달 초 시리아축구협회가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중립적인 경기 장소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고 전한 바 있다. 다만 시리아전에 이어 미얀마와 경기도 라오스에서 열린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은 전반 13분 리일송의 선제골로 리드를 잡았고 전반 17분과 43분 리조국의 연속골로 3-0 리드를 잡았다. 후반 12분 미얀마의 웨이 리아웅에게 1골을 내줬지만, 후반 42분 리조국이 페널티킥 골로 해트트릭을 완성하며 쐐기를 박았다. 북한은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아시아 2차 예선에 출전해 한국 등과 경기를 치렀지만 2020년 코로나19 유행으로 중도 기권해버렸다. 북한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이후 한 번도 대회 본선에 오른 적이 없다. 이번 월드컵은 본선 출전국이 기존 32개에서 48개로 늘어나면서 아시아에 배정된 본선 진출권 역시 4.5장에서 8.5장으로 많아진 만큼 북한이 미국 땅을 밟는 장면이 나올 가능성 역시 높아졌다. 연합뉴스

주간경향(총 24 건 검색)

미얀마 시민군에게 무기와 돈 필요”(2022. 10. 28 11:01)
2022. 10. 28 11:01 국제
ㆍ최근 방한한 리안 흥몽 삭홍 임시정부 장관 인터뷰 몇해 전만 해도 미얀마의 근현대사는 한국과 비슷한 방향으로 향하는 듯 보였다. 1940년대 외세로부터의 독립, 1960년대 군부쿠데타와 장기간의 군사독재,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닮은꼴이었다. 미얀마 군부가 1990년 민주진영이 압승을 거둔 선거결과를 부정하면서 군사독재가 연장됐지만, 2010년부터는 결국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진행됐다. 2020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집권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두면서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군부는 또 선거결과를 부정하고 지난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 군사쿠데타 이후 민주진영이 구성한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의 리안 흥몽 삭홍 연방연합사무부 장관이 10월 24일 인천 부평구 주한 NUG 대표부 사무실에서 미얀마 현지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성동훈 기자 미얀마 시민과 민주진영 인사들은 다시 민주주의를 향한 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군부의 유혈진압에 평화시위가 가로막히자 시민들은 군대를 조직했다. 내전 양상마저 띠고 있다. 미얀마 민주진영이 지난해 4월 구성한 국민통합정부(NUG)는 반군부 항쟁의 최전선에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미얀마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 주장하며 국제사회가 군부가 아닌 NUG를 미얀마의 공식정부로 인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동시에 NUG는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대해 반군부 전선의 확장을 꾀하는 중이다. 미얀마는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버마족 이외에 130여개 민족이 존재하는 나라로 독립 후 70여년간 이어진 민족 갈등이 정치적 위기의 근본 원인이 됐다. 아웅산 장군이 주도한 ‘팡롱합의’(1947년 2월 12일)를 근거로 민족 자치와 연방제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소수민족들의 목소리를 중앙정부는 묵살했고, 소수민족들은 무장단체를 만들어 무력투쟁을 벌여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수민족 무장단체만 50여개에 이른다. 군부는 물론 문민정부도 이들 무장단체 대부분을 ‘반군’으로 규정했다. 특히 군부는 국경 관리를 명목으로 이들을 진압하면서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 이는 군부가 민간으로 권력을 이양한 이후에도 실권을 유지하는 근간이 됐다. NLD가 중심이 된 문민정부도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 등 소수민족 탄압을 외면했다. NUG는 ‘연방 민주주의’를 군부쿠데타 이후 미얀마 사회의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군부 퇴진으로 이 싸움이 끝나면 소수민족의 오랜 염원대로 미얀마를 연방제 국가로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NUG의 17개 부처 중 연방연합사무부가 소수민족과 연대하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는 업무를 맡았다. 연방연합사무부는 민주진영이 그간 외면해온 소수민족들을 반군부 전선에 동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구심도 불식시켜야 한다. 소수민족인 친족 출신의 리안 흥몽 삭홍 박사(62)가 연방연합사무부 장관을 맡았다. 그는 미얀마의 문민정부 시절 일부 소수민족과 중앙정부 사이의 ‘전국휴전협정’ 체결 과정에 관여했다. 또 연방 민주주의 원칙을 담은 ‘연방헌법 초안’ 작성을 주도했다. 미얀마 반쿠데타 운동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최근 방한한 리안 흥몽 삭홍 장관을 지난 10월 24일 인천 부평구 주한 NUG 대표부에서 만났다. 통역은 묘헤인 주한 NUG 대표부 노무공보관이 맡았다. -미얀마에서 군부쿠데타가 발생한 지 600여일이 지났다. 현재 미얀마 상황은 어떠한가. 상당수 외신이 군부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을 지난해 ‘봄의 혁명’이라고 표현했다면, 최근에는 ‘내전’으로 표현하고 있다.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에는 미얀마의 전 국민이 평화로운 시위로 군부쿠데타에 반대했다. 봄의 혁명이라고 불렀다. 이후 군부의 잔인한 무력진압, 시민들에 대한 체포와 민주 인사들에 대한 사형 등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을 택했다. 현재 지역마다 시민들이 만든 시민방위군이 존재한다. NUG 국방부는 지역별 시민방위군을 규합해 일원화된 지휘체계를 갖추려 노력하고 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 협력해 공동 전선을 펼치기도 한다. 지금 상황은 내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실 미얀마는 70년 동안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미얀마 군부가 내전을 거듭해온 나라다. 하지만 지금의 내전은 전국적 규모의 내전이다.” -NUG는 지난해 9월 군부를 향해 선전포고했다. 시민불복종 운동이라는 평화적인 저항에 그치지 않고 선전포고에 나선 배경은 무엇인가. “비폭력 저항이었던 시민불복종 운동은 군부를 이겨내지 못했다. 미얀마는 이미 4번의 군사쿠데타를 겪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다음 세대도 이런 쿠데타를 또 겪을 수 있다. 한국도 군부쿠데타와 군사독재가 있지 않았나. 그걸 이겨냈기에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군부독재체제를 종식하려면 무장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시민이 ‘시민방위 혁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리안 흥몽 삭홍 NUG 연방연합사무부 장관이 10월 24일 인천 부평구 주한 NUG 대표부 사무실에서 군부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지난 1년 9개월간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무력분쟁 사건을 수집·분석하는 다국적 단체 ACLED에 따르면, 군부쿠데타 이후 지난해 6월까지 매주 100건 이상씩 발생하던 시위가 최근에는 주당 20~30건 수준으로 줄었다. 줄어드는 시위를 교전이 대체했다. 군대에 대항해 시민방위군,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교전을 벌이고 있다. ACLED의 집계를 보면 전투 발생 건수는 올해 6월 셋째 주에 104건이 발생해 쿠데타 이후 가장 많았고, 10월 첫째 주에도 72건의 전투가 발생했다. 시민방위군의 게릴라전에 군부가 폭격으로 대응하면서 인명피해도 증가하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0월 24일에도 군부는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카친주를 폭격해 최소 60여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냈다. ACLED는 군부쿠데타 발생 이후 10월 둘째 주까지 정치적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만7211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지역별로 국지전이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시민이 시민방위군과 소수민족 무장단체에 합류했다고 보나. “시민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지역별 시민방위군에는 몇명 정도가 참여 중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얼마 전 두와 라시 라 NUG 대통령 권한대행은 NUG 국방부 아래 300개의 부대를 편성했다고 밝혔다. 또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도 협력해 교전지역을 권역별로 나눴다. 우크라이나처럼 국제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는 형편이 아니어서 아직은 부족한 게 많다.” -군부가 미얀마 전 국토를 완전히 장악한 상황인가. “군부의 군경은 주로 도시에 주둔한다. 농촌까지 군경이 들어온 경우는 많지 않다. 예컨대 미얀마 북서부 친주의 70%는 시골이다. 이런 지역은 군부가 완전히 장악할 수 없다. 중부의 사가잉주나 마궤주도 마찬가지다. 도시를 제외한 농촌은 시민들이 스스로 장악하고 스스로 행정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와 비교를 했는데 현재 미얀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무기와 예산이 가장 시급하다. 혁명에 이미 많은 사람이 참여했고, 시민들의 지지도 있다. 그렇지만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는 분들과 시민방위군에 합류하고 있는 분들을 지원할 자금이 절실하다. 미얀마의 많은 난민을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도 필요하다.” 군부는 미얀마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미얀마 전문가들로 구성된 미얀마특별자문위원회(SAC-M)의 지난 9월 분석에 따르면 미얀마의 330곳 행정단위 중 군부가 안정적으로 통제력을 행사하는 지역은 72곳(22%)에 불과했다. 쿠데타 이후 한 번이라도 시민 저항이나 무력충돌이 빚어진 곳이 308곳으로 전체의 93.3%를 차지했다. 정치적 불안정이 장기화하면서 인권 위기는 심화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미얀마에서는 130만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가옥 2만8000채가 파괴됐다. 국가경제도 경고음을 울린다. 세계은행은 지난 9월 올해 미얀마 경제가 18%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사회의 제재 등으로 외환보유고가 감소하면서 미얀마 화폐의 가치가 지난 9월에만 60%가량 폭락했다. 기본 상품가격은 57% 폭등했다. -군부에 맞서는 NUG 주요 인사들도 탄압의 표적일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친주 하카에 있는 집이 군부에 압류됐다. 군부는 여동생의 가족까지 체포하려 했다. 지금 여동생 가족은 인도 국경지역으로 도피한 상태다. NUG의 장관을 맡고 있는 이들은 다 똑같은 탄압을 받고 있다. 군부가 친주의 딴틀랑을 포격하고 민가에 불을 질렀을 때 어머니와 친누나 3명, 삼촌 등 친지들의 집이 10채 정도 불에 탔다. 가족들은 지금도 군부를 피해 숨어지내고 있다. 현재 미얀마 사람들은 다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고위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그보다 조금 더 탄압을 받고 있을 뿐이다.” -미얀마는 군부독재의 역사가 길었다. 쿠데타도 잊을 만하면 반복됐다. 저항하는 시민들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탄압의 강도도 높다. 그럼에도 저항을 2년 가까이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시민들의 의지다. 군부정권 아래서는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은 의지. 미얀마는 1960년 쿠데타 이후 사회 전반이 정체되고 경제적 불황을 맞았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에서 잘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1973년만 해도 미얀마는 이웃나라인 태국보다 4배 정도 경제 규모가 큰 나라였다. 1990년대를 보면 태국이 미얀마보다 17배 정도 부유한 나라가 됐다. 지하자원이 풍족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은 것은 군부독재 탓이 크다. 미얀마 시민들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민주주의를 경험한 것도 저항을 장기간 지속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이 기간 시민들은 자유를 누렸을 뿐 아니라 경제적 성장도 누렸다.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있다면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접할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자유를 통제하는 군부정권 아래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NUG 국방부가 제작한 공보물. 포스터 하단에 미얀마어로 ‘봄의 혁명에서 연방연합으로?라고 적혀 있다. / NUG 국방부 홈페이지 -NUG는 국제사회에서 군부를 대신해 미얀마를 대표하는 정부가 되는 것이 목표인가. “국제정치를 보면 정부를 인정하기보다는 국가를 인정하는 사례가 많다. 때문에 다른 나라로부터 NUG를 공식 정부로 인정받기엔 조금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유럽연합(EU) 의회와 프랑스 상원 의회가 NUG를 공식 정부로 인정했다. 아세안(ASEAN) 지역에서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외교부가 NUG와 대화에 나서기도 했다. 공식 정부로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소통이 필요할 때는 미얀마의 합법 정부로서 NUG와 접촉하고 있다. 인도와 중국도 NUG와 접촉했다. 국제사회의 인정이라는 것도 결국 우리가 미얀마 국내에서 얼마나 성과를 내는지에 달려 있는 것 아니겠나. 앞으로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는 어떠한가. “한국 전체적으로 보자면 시민들이 미얀마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걸 이번 방한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부로서의 행동은 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언론에서 미얀마 뉴스를 많이 보도해준다면 한국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지리라 믿는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직후 한국 정부는 발 빠르게 쿠데타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실질적 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NUG와의 관계 설정에도 소극적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외교부가 한차례 NUG 측과 접촉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이마저 끊긴 상황이다.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대는 성공적인가. 군부도 무장단체를 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NUG와 협력 중인 소수민족 단체로는 카렌민족연합(KNU), 카친독립군(KIA), 카레니민족진보당(KNPP), 친민족전선(CNF) 등이 있다. 공식적 협력관계까지는 아니지만 가까이 교류하는 조직들도 많다. 어디라고 지금 얘기할 수는 없다. 군부와 접촉한 다른 소수민족 무장단체들도 있긴 하다. 그중에서 실제 군사력이 강하고 비중이 있는 조직은 샨족복원협의회(RCSS)와 신몬주당(NMSP) 2곳뿐이다. 이들은 같은 민족 내에서도 온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집권할 때도 전국휴전협정 등이 이뤄졌지만 소수민족이 요구한 자치와 연방제 전환 등에 있어서는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는 시각이 있다. NUG는 문민정부 시절보다 진전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나. “NUG는 연방민주주의 원칙을 담은 헌장을 공포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 등이 참여하는 연합체인 민족통합자문회의와 함께 과도기 헌법을 준비 중이다. 이것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신뢰를 얻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미얀마에서 연방주의라는 것은 과거에는 자유롭게 논의도 할 수 없었다. 1962년부터 2020년까지 쭉 그랬다. 2012년부터 2020년 사이에 중앙정부와 소수민족들이 평화협상을 전개했지만, 소수민족이 연방주의를 제안할 때마다 항상 군부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자유롭게 논의할 수 없었기에 시민들에게도 연방민주주의를 알리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한국 등 국제사회에 당부할 말이 있다면. “군부 세력과 협력하지 말라고 요청하고 싶다. 가능하면 경제적으로도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한다. 미얀마 경제는 군부가 장악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을 위해 시급한 인도주의적 지원도 군부를 통하지 말고 내륙 국경을 통과해 직접 해야 한다. 군부쿠데타 이후 많은 청년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한국의 고등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을 기회가 주어졌으면 싶다. 끝으로 한국에서 사는 미얀마 시민이 많다. 비자가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이들도 있다. 미얀마 정치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만이라도 강제 출국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인도주의적 고려를 해줬으면 좋겠다.”
특집
미얀마·기니·수단…그들만의 일이 아니다(2021. 12. 17 13:23)
2021. 12. 17 13:23 국제
ㆍ팬데믹 공포 속 또 다른 딜레마와 싸우는 세계 2021년에는 유독 많은 쿠데타가 일어났다. 미얀마, 기니, 수단, 차드, 말리의 쿠데타는 성공했지만 마다가스카르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니제르는 실패했다. 국제사회는 쿠데타를 반민주적 행태로 보며 결코 용인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각국의 실리에 따라 다르게 대응하는 ‘딜레마적 상황’을 종종 연출한다. 코로나19가 불러온 팬데믹 공포 속에 세계는 또 다른 딜레마와 싸워야 했다. 지난 11월 21일 미얀마 양곤 라인시에서 열린 반군부 시위 모습 / 미얀마 시민방위군 지난 2월 1일,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이 일으킨 미얀마 쿠데타는 아시아 국가들에 충격을 줬다. 현재까지 미얀마 국민의 거센 저항을 받고 있지만, 미얀마 군부는 무력진압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얀마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의 최대 명분은 지난해 11월에 치러진 미얀마 국민선거다. 군부는 이 선거가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을 창출하는 원칙은 단 하나, 선거를 통해서다. 하지만 쿠데타는 이 원칙을 무시하고 군대 등을 이용해 무력으로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빼앗는다는 데서 지지를 받기 힘들다. 미얀마 군부는 부정선거를 내세우며 나름 민주주의 명분을 찾으려 했지만 저항하는 국민을 무력으로 진압해 명분도 많이 퇴색됐다. 기니 쿠데타 땐 알루미늄값 껑충 지난 9월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반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를 주도한 사람은 기니 군 특수부대 사령관인 마마디 둠부야 대령이었다. 둠부야는 1958년 기니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래 지도자들이 경제발전은 뒷전이었다며, 그런 혼란한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자신이 최선의 행동을 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는 국경을 폐쇄하고 헌법을 정지하고 본격적인 정권 접수에 나섰다. 기니는 지난 2010년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투표를 통해 알파 콩데(83) 기니 대통령이 당선됐다. 문제는 콩데 대통령의 3선 연임 욕심이었다. 기니 헌법상 대통령 연임은 재선까지만 가능한데 정권욕에 눈먼 콩데 대통령은 3선 연임을 위해 지난해 3월 국민투표를 거쳐 개헌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24일 대선에서 콩데 대통령이 3선에 성공했다. 국민의 반대 시위가 이어졌고, 혼란 속에 시위대와 경찰 등 수십명이 사망했다. 이후 기니 헌법재판소가 대선 결과를 인정하며 콩데 대통령의 3선 연임이 확정됐지만, 여전히 정국은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때 콩데 대통령이 군 급여를 삭감하자고 군대에 제안했다. 둠부야 대령은 강력히 반발했고, 쿠데타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콩데 대통령은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 정부와 자원 개발에 대해 정상회담을 했다. 기니는 보크사이트 74억t을 보유해 전 세계 매장량의 3분의 1을 갖고 있다. 철광석, 금, 다이아몬드 등도 많은 자원 부국이다. 자원외교에 관심 많은 이명박 정부는 기니를 중요한 국가로 봤다. 보크사이트는 알루미늄의 주재료다. 둠부야 대령의 쿠데타가 성공하자 전 세계 알루미늄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기니 쿠데타 다음날인 9월 6일, 런던금속거래소 등 국제금속선물시장에서 알루미늄 3개월 선물은 1.07% 오른 t당 2785달러로 장을 마쳤다. 올해 초 2000달러 초반이었던 가격 대비 38%나 오른 것이다. 알루미늄 가격이 껑충 뛰자 전 세계가 기니의 쿠데타에 주목했다. 쿠데타 세력인 둠부야 대령도 이를 의식해 보크사이트 수출의 길은 열어놨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기니의 정국이 불안해 전 세계 알루미늄 시장은 동요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북아프리카 수단에서도 쿠데타가 발생했다. 압둘라 함독 수단 총리는 가택 구금당했다. 쿠데타 세력은 여러명의 내각 의원과 정당 지도자도 체포했다. 수단의 수도 하르툼 국제공항은 즉시 폐쇄됐다. 전기 및 인터넷 접속 등 모든 통신시설도 차단됐다. 수단은 지난 2019년 4월 시민의 유혈 시위와 군부 봉기로 30년간 장기집권했던 알 바시르 전 대통령을 축출했다. 알 바시르 전 대통령 축출 이후 군부와 야권이 주권위원회를 구성해 막 민주주의의 싹을 틔우던 상황이었다. 과도정부는 오는 2023년 말 총선을 치를 계획이었다. 쿠데타 직후 하르툼 시내에서는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군부는 이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이날 총격으로만 7명이 사망하고 최소 12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단은 1956년 영국과 이집트로부터 독립한 이후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정착시키지 못했다. 1989년 군부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오마르 알바시르는 30년 독재를 이어갔고, 2019년 4월 그 역시 군부쿠데타로 축출됐다. 이후 군부와 야권이 연합해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과도정부는 완전한 민정 복귀를 목표로 2024년 총선을 계획했지만, 각 정파 간의 분열 등으로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이번 쿠데타는 민간과 군부 간 갈등으로 발생했다. 군사정부 출범을 원하는 군부세력과 군사정권을 원하지 않는 시민세력이 각각 시위를 벌이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지난 10월 16일에는 친군부 시민 수천명이 대통령궁 앞에 모여 군부에 쿠데타를 실행해 무능한 정부를 끌어내리라고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번 수단 쿠데타를 주도한 인물은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이다. 1960년 수단 수도 하르툼 북쪽의 간다투 마을에서 태어난 부르한은 수단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인물이다. 그는 수단을 30년간 장기집권한 오마르 알 바시르 전 대통령 치하에서 2019년 2월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됐다. 그후 알 바시르 전 대통령이 실각하자 민정 이양을 논의하는 주권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왔다. 하지만 그는 서구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쿠데타가 일어나자 주도 인물을 놓고 외신은 한때 보도에 혼선을 거듭했다. 지난 9월 5일(현지시간)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대통령궁을 습격한 특수부대 군인들이 알파 콩데 대통령(가운데)의 신병을 확보했다며 공개한 사진 / 연합뉴스 수단 유혈사태에… 국제사회 우려 표명 쿠데타에 반대한 수단 시민 수천명은 즉각 “군부 통치 반대”, “민정 이양”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수도 하르툼과 제2도시 옴두르만 거리에 몰려나온 시위대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타이어에 불을 붙여 도로를 차단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군부는 시위대에게 실탄을 발사해 최소 7명이 숨지고 140명이 다쳤다. 대학생인 한 청년은 “우리는 이제 막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배워가고 있다. 군부는 어떤 명분에서도 시민을 죽이며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시위 참가자는 “시위대에게 실탄을 발사하는 군인들에게 정부를 맡길 수 없다. 수단 시민은 이제 바보가 아니다”며 분노했다. 수도 하르툼에는 오밤중에 군인들이 가정집을 쳐들어와 시위 참여자들을 체포·구금하는 군사작전이 전개됐다. 수단 쿠데타가 유혈 사태로 이어지자 미국 등 국제사회는 수단 쿠데타에 우려를 표명했다. 제프리 펠트먼 미국 동아프리카 특사는 트위터에 “미국은 (수단)군이 과도정부를 접수했다는 보도에 매우 놀랐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과도기를 규정한 ‘헌법 선언’과 민주주의에 대한 수단 국민의 열망에 위배된다”며 수단 쿠데타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도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쿠데타가 지속되면 수단에 대한 7억달러(8180억원)의 일괄원조법안을 철회하겠다며 압박했다. 결국 수단 쿠데타 군부는 한발 물러서며 2023년까지 민간이양을 위한 합법적 국민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차드와 말리에서도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비록 실패했지만, 마다가스카르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니제르에서도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아프리카는 지난 10년간 평균적으로 1년에 2회 정도 쿠데타가 발생했는데, 올해는 더 빈번하게 일어났다.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잦은 이유는 극심한 가난과 정부의 부패다. 국민의 원성이 커지면 이를 이용해 군부가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하려 시도한다. 특히 지난해부터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로 사회가 더욱 혼란스러워진 것이 쿠데타가 올해 더 빈번해진 요인으로 보인다. 자체 방역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나라들은 무조건 봉쇄만 한 까닭에 의료비와 식량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며 민심이 동요했다. 수단은 물가가 4배 가까이 치솟았고, 식량과 생필품이 극도로 부족한 상태가 올 한해 지속됐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이 같은 사회 혼란은 군부 쿠데타의 명분이 되기에 충분했다. 수단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군부 통치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FP 연합뉴스 수단은 국제사회의 압력에 의해 군부가 민간이양을 약속했지만, 쿠데타에 대처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예전 같지 않다. 미얀마도 쿠데타가 일어난 지 1년여가 돼가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미얀마 사태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쿠데타가 일어난 나라들의 국민은 비민주적인 정권 찬탈 방식을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는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국제사회의 개입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국제사회는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 오히려 서구 사회는 쿠데타 세력과 타협을 하는 경향도 보인다.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내정간섭 불가’ 정책도 번번이 유엔의 개입을 가로막는 요소다. 중국과 러시아는 심지어 일부 국가의 쿠데타 세력과 협조하기도 한다. 미국과 EU가 쿠데타 세력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압박 수단은 재정 지원 중단 카드다. 하지만 이마저도 미얀마에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수단 쿠데타에 EU는 비난 메시지만 발표했을 뿐 실제로는 아무 행동도 나서지 않았다. 주변국에도 많은 영향 미칠 것 문제는 쿠데타는 당사자들만의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국가에 쿠데타가 일어날 경우 주변국의 안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쿠데타를 일으킨 수단 군부가 정권을 잡는다면 인근 국가인 에티오피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단 정부는 에티오피아 정부군에 맞선 티그레이 측에 그동안 물자를 공급하며 은밀하게 지원했다. 수단 군부 정권이 창출되면 이는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 정권은 통치세력으로서 쿠데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경분쟁 등 에티오피아와의 갈등 수위를 높이며 국민의 눈을 돌리려 할 수도 있다. 또한 에티오피아 내전 확대는 인근 테러 집단과 해적 활동의 본거지로 악명 높은 소말리아에도 영향을 미친다. 2007년부터 아프리카 국가들이 연합해 소말리아 치안 확보를 위해 1만5000여명의 연합군을 파견했다. 이중 4000명이 에티오피아군이다. 에티오피아군은 최근 티그레이 반군 소탕에 집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말리아 주둔 병력을 철수시키고 있어 그동안 다소 약화됐던 ‘알세바브’ 등 소말리아 극단 세력이 다시 활개 칠 수도 있다. 말리나 차드, 수단까지도 극단적인 이슬람 무장세력의 활약 국가들이다. 쿠데타라는 혼란이 이들에게 테러 명분을 주게 되고, 이로 인한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이다. 올해 쿠데타가 많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는 민주주의 가치가 그만큼 많이 손상됐다는 말이다. 합법적인 선거로 인해 국민이 선출한 정권이 그 나라의 주권을 가진다는 원칙을 거스르는 무력 쿠데타가 용인된다면 지구상의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때 쿠데타로 정권이 창출된 역사가 있는 한국이 다른 나라의 쿠데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미얀마 청년들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끝까지 싸운다”(2021. 11. 26 20:58)
2021. 11. 26 20:58 국제
ㆍ한국 거주 미얀마 청년 리더와 활동가에게 듣는다 미얀마가 다시 군홧발 아래 놓인 지 열달이 지났다. 정보가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시대, 연대는 네트워크를 타고 국경을 뛰어넘는다. 해외에 거주 중인 미얀마인들이 고국의 가족, 친구들과 감정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 세계 미얀마인들은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알리기 위해 각자 선 곳에서 투쟁 중이다. 행동하는미얀마청년연대 리더 웨노에흐닌쏘씨가 분향소 앞에서 군부쿠데타에 항거하는 의미로 세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 김서영 기자 한국에 있는 미얀마 청년과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나만 안전하게 살고 있다는 죄책감, 민주화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한편으론 군부독재와 민주화라는 역사를 유사하게 겪은 한국인들과 연대하며 미얀마의 봄을 꿈꾸기도 한다. 군부쿠데타 사태가 장기화하며 점점 무뎌지다가 국제사회에서 잊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또한 상존한다. 1962년 군부 통치가 시작된 이후 최근에야 민주화가 진행됐으나, 또다시 과거로 회귀할 위기에 놓인 미얀마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기억과 연대다. 미얀마의 봄은 언제 오나 “어젯밤만 해도 잠을 못 잘 정도로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게릴라전을 하는 젊은 친구 50명이 동시에 체포됐거든요. 그 전에는 민족민주연맹(NLD) 의원이 잡혔고요. 거의 1년이 다 돼가고 있는데, 더 장기화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보다 더 많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느낌.” 행동하는미얀마청년연대 리더 웨노에흐닌쏘씨(35)는 미얀마의 현 상황을 이같이 말했다. 그와 만난 지난 11월 21일은 서울 중구 충무로 갤러리 꽃피다에서 해외주민운동연대(KOCO)가 주최하는 ‘피어나라 미얀마’ 전시가 개막한 날이었다. 한칸짜리 갤러리에는 미얀마 현지에서 보내온 사진이 쭉 걸려 있었다. 산속으로 대피한 청년, 불붙은 도로에서 군인과 대치한 시위대, 천막 밑에 피신한 노인…. 사진 속 미얀마의 모습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시위대가 든 손팻말에는 “체포된 이들을 석방하라”, “민주주의를 쟁취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쪽에 마련된 분향소 옆에는 군부에 의해 살해당한 이가 입었던 피 묻은 옷과 방독면이 걸렸다. 11월 21일 사가잉주 사린질시와 예인마핀시에서 열린 반군부 시위 / 미얀마 시민방위군 “사실 아들만 아니었더라면 (미얀마에) 들어가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앞으로 미얀마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가 무섭습니다. 코로나19에 쿠데타까지 겹치는 이중고에 시민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이기고는 싶지만 우리 힘이 달리는 건 사실이고….” 웨노에흐닌쏘씨는 쿠데타 발발 직후 한국에 있는 미얀마 청년들을 모아 집회, 강연, 모금운동, 계기교육을 비롯해 미얀마 소식을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미얀마에 있는 그의 언니와 형부가 군부를 거부하며 교단을 떠났듯 그가 한국에서 미얀마에 힘을 보탤 수 있는 ‘풀뿌리 활동’이다. 군부 통치에 항거한 2007년 샤프란 혁명 때처럼 직접 거리로 뛰쳐나갈 수는 없지만, 미얀마 민주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뒤처지지 않는다. 그는 “나는 아직도 색칠할 줄을 모른다. 그만큼 어릴 때 (군부 통치에서) 짜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한이 많다. 내 후손에게까지는 이런 안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에서는 지난 2월 1일 민아웅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이에 항거하는 시민불복종운동(CDM)이 이어졌다. 군부가 강경대응하며 민간인, 시민방위군(PDF)이 체포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군부는 공습까지 감행했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75)이 이끄는 NLD, 민주세력 관련자의 연행 소식도 잇따랐다. 일례로 지난 11월 9일 미얀마 법원은 아웅산 수치 측 인사에게 부패혐의로 각각 90년과 75년을 선고했다. 집계에 따라 다르지만 시위참여자와 민간인 수천명이 죽고 구금됐다. 11월 21일 양곤 라인시에서 열린 반군부 시위 / 미얀마 시민방위군 군부가 내세운 명분은 지난해 실시된 총선에서 부정이 있었으니 의혹을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군부의 이권을 유지하기 위한 눈가림이라는 해석이 많다. 미얀마에서 군부는 ‘헌법적으로’ 특수한 지위를 가진다. 대표적으로 상원과 하원 각각 군부 추천 몫이 25%를 차지한다. 개헌을 하려면 7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부권을 가진 셈이다. 이 때문에 반군부 민주세력인 NLD는 2015년 정권을 잡은 이후 이 비율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개헌이 실제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2020년 총선에서도 NLD가 연승을 거두자 군부의 심기는 불편해졌다. 이처럼 미얀마 헌법은 선출되지 않는 권력인 군부의 지위를 보장함으로써 민주화의 복병으로 작용해왔으며, 올해 쿠데타도 그 연장선이다. 아웅산 수치를 위시한 민주세력이 군부를 통제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쿠데타 이후 민주세력이 꾸린 임시정부격인 국민통합정부(NUG)는 개헌을, 군부는 재선거를 주장하며 대립하는 상황이다. 포기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맛 “네윈 군사정권에 반대했던 1988년(8888항쟁)만 하더라도 미얀마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무슨 맛인지 몰랐습니다. 예를 들면, 망고는 노란색이라고만 알고 무슨 ‘맛’인지는 몰랐던 겁니다. 그러다가 2015년 아웅산 수치 정부가 들어오면서 자유를 경험하게 해주고 개방을 시작했죠. 그러면서 망고를 먹어보고 ‘달콤하다’고 하는 것 같이, 미얀마 국민이 민주주의의 맛을 알게 됩니다.” 조우모아 한국미얀마연대 대표(47)는 이번 민주화운동이 격렬하게 지속되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이미 맛본, 달콤한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는 미얀마 시민과 이를 빼앗아가려는 군부세력의 대립이라는 뜻이다. 미얀마 민주화시위에서 희생된 시민의 물품 / 김서영 기자 그는 미얀마에 있을 때 8888항쟁에서 친구들이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봤고 그 자신이 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실감한 건 한국에 온 이후라고 했다. 조우모아 대표는 “한국이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민주화를 이룬 걸 알게 됐고, 국민이 힘이 있어야만 정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미얀마 국민의 마음속에 아직 공포가 많이 있고 군부를 물리치기 쉽지 않지만 이번에 실패하면 더 이상은 군부독재와 싸울 수 없을 것 같다. 이번에 꼭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주 일요일 경남 창원역에서 미얀마 동포, 한국 연대자들과 집회를 한다. 벌써 39차를 앞뒀다. 그는 “우리가 해외에 있더라도 미얀마 국민을 잊지 않았다, 함께한다는 뜻이다. 시간이 많이 들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국제사회에서 볼 때는 답답할 수 있지만 미얀마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할 일을 할게. 언니는 언니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해이만흐닌씨(31)에게는 동생의 말이 원동력이 됐다. 그는 이번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주축인 소위 ‘MZ세대’다. 소우모아 대표와 달리 청소년기·청년기에 희미하게나마 민주주의를 겪었다. 그는 이전까진 정치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많지 않다. 대학생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다 학생들이 모이는 것을 경계한 경찰이 해산시켰던 일 정도다. 이번 쿠데타가 그를 투사로 거듭나게 했다. “직접 몸으로 느꼈던 민주주의와 자유를 한순간에 다 뺏겼기 때문”이다. 그는 “길 걸어가다, 밥 먹다가도 밀림에서 힘들게 생각하는 친구들 생각이 난다. 최근엔 고향 친구가 시위대에 참여했다가 총을 맞기도 했다. 이런 걸 보면 ‘미얀마에선 위험을 무릅쓰고 노력하는데, 한국에 있는 내가 못 할 것이 뭐가 있을까’란 생각으로 계속 활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얀마 국민통합정부가 발행한 기부채권 투쟁에는 고비가 있다. 최근 그는 고향의 가족과 국제전화를 하던 도중 도청을 당했다. 엄마와 은행 정보를 이야기하고 나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건너편에서 전화를 받은 이가 동생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해이만흐닌씨는 “이렇게 활동하고 있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가끔 지칠 때도 있다. 그런데 자국민이 이런 노력조차 안 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누가 신경을 써주겠나. 미얀마는 지금 의지할 수 있는 데가 없다.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와 폭력을 봐달라”고 말했다. 잊히지 않기 위한 싸움 최근엔 미얀마에선 상징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 11월 18일은 미얀마 공휴일인 더사웅몽(Tazaungmone) 풀문데이(Full moon day·보름달이 뜨는 날)였다. 버마식 달력으로 8번째 보름달이 뜨는 날을 맞아, 우기의 종료를 뜻하는 동시에 승려들에게 새옷 등을 보시하는 날이다. 불교 전통이 강한 미얀마에서 전등을 밝히고 축제가 벌어지는 기간이다. 웨노에흐닌쏘씨의 설명을 빌자면 이를 둘러싸고 “젊은이들이 게릴라 활동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놀아도 되느냐”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그는 “아직 싸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점점 무뎌지고 잊힐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시민방위군이 게릴라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그 지역 주민들이 숨겨주고 도와줘야 하는데, 협주하지 않으면 어디 가서 숨겠냐”는 것이다. 그는 “이번에 우리가 이기지 못하면 1000년, 2000년 다시 군화 밑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나만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아닌가 검열하게 되고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지치고 포기하기를 군부가 원하는 것”이란 해이만흐닌씨의 말처럼, 미얀마 시민들은 ‘잊히는 것’과도 싸우고 있다. 꼬흘라민툰씨(32)는 중고등학교에서 초청을 받아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관해 강의했다. 국경지대에 살았던 그는 총소리가 흔한, 계엄령이 지배하는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그래도 우리가 알려줌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미얀마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더 가져 최대한 빨리 평화롭게 이 사태를 끝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11월 22일 사가잉주 살린지 지역과 예인마핀 지역에서 열린 반군부 시위 / 미얀마 시민방위군 역사 앞에 당당하기 위하여 현실적으로 보자면 민주세력의 자금이 마르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다. 미얀마에서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하고자 직업을 관둔 공무원과 교사들, 코로나19와 쿠데타로 생계 곤란에 빠진 피난민을 도우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얀마 지원단체와 청년들도 가장 필요한 도움을 물었을 때 금전적 지원을 최우선으로 꼽는 상황이다. NUG는 최근 채권을 발행했다. ‘봄 혁명 기부채권’이란 이름 아래 100달러, 500달러, 1000달러 등으로 판매되는 채권에는 “미얀마 민족통합정부 기획재정부는 봄 혁명 기간 동안 2년 기간이 있는 기부채권을 판매합니다. 미얀마 내 군부독재를 완전히 타도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투자한 것에 대해 역사에 기록합니다”라고 써 있다. 이자는 없다. 소모뚜 NUG 한국대표부 사무처장의 표현처럼 “이자는 미얀마의 자유와 민주주의”다. 최근 국내에선 미얀마에 보낼 의류가 모였다. NUG 한국대표부가 북부 산악지대로 피신한 미얀마 피난민을 위해 이달까지 겨울옷과 이불을 기부받고 있는데, 상당한 물량이 답지했다. 한국에서 의류를 모아 보내면 미얀마 현지에서 배분을 맡는다. 소모뚜 사무처장은 “최근 ‘미얀마의 일이 저희 일이 됐다’는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 수백만원으로 예상되는 운송비도 한편으로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 치하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공개적으로 언급이 불가능했고, 한동안 ‘광주사태’로 불렸다. 엄혹한 시절을 거쳐 제 이름을 찾아가기까지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만큼이 고스란히 한국의 민주화 투쟁 역사이기도 하다. 2021년 미얀마인들이 벌이는 투쟁이 어떤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돼 나갈지는 미지수다. 꼬흘라민툰씨는 “‘많은 시민의 저항 끝에 군부쿠데타가 1년 안에 끝냈다’고 기록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웨노에흐닌쏘씨는 “이번 혁명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군부와 물리적으로 싸움은 안 될지언정 옳은 일을 하고 있다. 정의롭게 저항하는 마음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투쟁을 할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표지 이야기
군부에 저항하는 미얀마 유명인들(2021. 05. 21 13:35)
2021. 05. 21 13:35 사회
ㆍ소수민족 무장단체에 합류하고 외국에서 국제사회에 도움 호소 “더 이상 선택할 여지가 없습니다. 언제든 우리 집에 군부가 쳐들어와 저를 체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차라리 이렇게 혁명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2013년 미스 그랜드인터내셔널 대회에 미얀마 대표로 참여한 타 텟텟(Htar Htet Htet)은 지난 5월 18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에 합류했다고 밝힌 타 텟텟 / 타 텟텟 트위터 타 텟텟은 군부쿠데타가 100일에 접어든 지난 5월 11일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 자신이 소수민족 무장단체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사진 속의 그는 ‘ARMY’라는 글자가 쓰인 검은 티셔츠를 입고 총을 들고 있다. 체조 강사와 모델 등으로 활동한 타 텟텟은 쿠데타 이후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가하고 SNS를 통해 미얀마 상황을 알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타 텟텟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군부쿠데타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군부를 비판했던 유명인들은 외국에 머물거나 수감되거나 혹은 타 텟텟처럼 무장단체에 합류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미얀마 대표로 참가한 투자 윈 릿(Thuzar Wint Lwin)과 방콕에서 열린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 대회에 미얀마 대표로 참가한 한 레이(Han Lay)는 미얀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행사에서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체포·수감된 유명인들도 유명인들을 옥죄는 건 형법 제505조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진술, 소문, 보도 등을 만들거나 유포하는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유명인에 대한 탄압을 두고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은 수백 또는 수천 명의 일반인보다 더 효과적으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미얀마 현지에는 체포·수감된 유명인이 적지 않다. 지난 4월 8일에는 유명 모델 파잉 타콘(Paing Takhon)이 체포됐다. 그의 가족은 페이스북을 통해 50명 이상의 군인이 들이닥쳐 체포했다고 밝혔다. 그는 군부쿠데타 이후, 방독면과 헬멧, 보호복을 착용하고 시위에 앞장섰다. 한동안 행방불명됐던 그는 현재 양곤 인세인 교도소 독방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에 따르면 파잉 타콘 외에도 배우 에인드라 조 진(Eaindra Kyaw Zin)과 남편이자 배우 뻬이 띠 우(Pyay Ti oo), 국민 배우 겸 감독인 루 민(Lu Min) 등이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다. 페이스북 페이지 ‘미얀마 투데이’를 운영하는 미얀마어 통·번역가 최진배씨는 “인세인 감옥은 환경이 너무 열악해 ‘들어가면 죽어서 나온다’고 할 정도다. 유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고문이나 학대는 적겠지만 엄청난 강도의 심문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탄압에도 이들의 활동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군부의 유혈진압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타 텟텟은 “목숨도 내놓을 준비가 됐다”고 말했고, 지명수배를 당한 배우 먀 흐닌 이 륀(Mya Hnin Yee Lwin)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두려워도 맞닥뜨리고 나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에 따르면 5월 19일 기준 사망자는 807명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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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양곤-인천 노선 주 3회 증편…방역 입국 절차는?
미얀마 양곤-인천 노선 주 3회 증편…방역 입국 절차는?
2022. 06. 27 13:23 레저/여행
미얀마 양곤-인천 노선의 정규편 운항이 시작된 4월 26일 이후 약 두 달만에 증편이 결정됐다. MAI 제공 미얀마 최대 항공사, 미얀마국제항공(MAI)이 7월부터 미얀마 양곤-인천 노선을 주 3회로 증편 운항한다. 지난 6월까지 주 2회로 운항되던 일정에 1회가 추가되어 매주 화, 수, 금요일 운항이 확정된 것이다. 이는 올해 미얀마 양곤-인천 노선의 정규편 운항이 시작된 4월 26일 이후 약 두 달만의 증편 결정이다. 더불어 증가하는 해외여행 수요에 부응하고자 다가오는 7월 17일(일)과 7월 31일(일)에 추가 운항을 결정하며, 미얀마국제항공은 7월에만 총 14편의 여객 항공편 운항을 앞두고 있다. 7월부터 적용될 미얀마국제항공의 정규편 운항 일정은 아래와 같다. 더불어 지난 6월 15일부터 한국인 여행자의 미얀마 입국 절차가 대폭 간소화되었다. 백신접종 2차 완료자의 경우 미얀마 입국 전 코로나 검사 없이 백신접종증명서만 준비해 입국할 수 있다. 백신미접종자의 미얀마 입국 또한 가능하지만, 이 경우 미얀마 도착 시간 기준 48시간 이내 시행한 RT-PCR 검사의 영문 음성확인서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미얀마 도착 직후 공항에서 시행하게 되는 코로나 검사가 신속항원검사(RAT)로 완화되며, 검사 결과 확인을 위한 대기 시간이 최대 24시간에서 약 1시간 이내로 단축되어 검사 결과 대기를 위한 1박의 격리 의무가 없어졌다. 양곤 도심 한복판의 술레 파고다. MAI 제공 미얀마 입국 시 유효한 백신 종류로는 시노백,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얀센, 모더나, 시노팜, 스푸트니크V, 스푸트니크 라이트, 코백신, 미얀코팜, 누박소비드, 코보백스, 코르베백스가 있다. 단, 백신미접종인 12세 미만 유아는 백신접종을 완료한 보호자와 함께 동반 입국이 가능하다. ※ 한국인 여행자의 미얀마 입국 필수 서류 ※ 1. 영문 백신접종증명서(미얀마 입국 최소 14일 이전에 2차 접종완료 필수) *만 12세 미만 유아는 백신접종완료 보호자와 동행 시 면제 2. RT-PCR 검사 영문 음성확인서(미얀마 도착 기준 48시간 이내 검사 시행) *만 6세 미만 유아와 백신접종 2차 완료자는 면제(양곤-인천 비행 약 6시간 소요) 3. (미얀마 자국민이 아닌 경우) 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보험사에서 발행한 여행자 보험증서 4. 건강상태 확인서(Health Declaration Form): 기내에서 제공되며, 작성 후 입국 시 제출 5. 현재 미얀마 내 의무 신속항원검사 횟수는 총 2회 *미얀마 도착 직후 검사 1회, 한국 귀국 48시간 이내 검사 1회
축의금으로 후원한 미얀마 학교에서 결혼 1주년 맞이한 유지태·김효진 부부
축의금으로 후원한 미얀마 학교에서 결혼 1주년 맞이한 유지태·김효진 부부
2013. 01. 03 18:05 연예
지난 12월 2일부터 7일까지 유지태·김효진 부부가 미얀마의 만달레이 시남동부의 빈민촌인 피지다곤에 다녀왔다. 자신들의 결혼식 축의금 중 일부를 후원해 지은 초·중학교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결혼 뒤 더욱 반짝이는 커플의 아주 특별했던 결혼 1주년 기념 나들이 현장으로 가본다. 연예계 대표 스타 부부 지난해 10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유지태·김효진 부부가 동반 참석했다. 유지태의 첫 장편영화 ‘마이 라띠마’가 ‘한국 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공식 초청됐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가진 것도 없이 세상에 홀로 버려진 남자 수영(배수빈 분)과 돌아갈 곳도 없이 세상에 고립된 여자 마이 라띠마(박지수 분)가 절망의 끝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내용의 휴먼 멜로드라마다. ‘마이 라띠마’의 첫 영상 시사회 및 토크쇼 자리에 감독 자격으로 참석한 유지태는 “아내 김효진과 아직 신혼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마이 라띠마’ 후반부 작업과 아내의 영화 촬영 일정 등으로 계속 미루는 중이다. 다음달쯤 가볼 생각인데 그것도 바람일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한 달 뒤 유지태는 자신의 트위터에 두 장의 사진을 올리고 ‘아내와 함께 피렌체에서’라는 글과 함께 뒤늦은 신혼여행을 떠났음을 알렸다. 5년간의 열애 끝에 2011년 12월 2일 화촉을 밝힌 지 약 11개월 만이다. 사진 속 두 사람은 여느 신혼부부들처럼 마냥 행복해 보였다. 이 부부는 약 3주간의 일정으로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늦어진 만큼 더욱더 달콤한 시간을 만끽하지 않았을까. 김효진은 최근 SNS를 통해 유지태와 함께 찍은 다정한 사진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속 두 사람은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자연스럽게 웃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그녀는 사진과 함께 ‘남편과 촬영 중. 공기 좋다’라는 설명을 적었다. 결혼 생활뿐만 아니라 각자의 활동에도 열심인 이 두 사람은 연예계 대표 스타 부부로 세간의 부러움을 받고 있는 중이다. 1 이 부부는 학교 운동장 한편에 아이들의 그늘이 되어줄 나무를 심었다. 2 마을 축제를 방불케 할 만큼 많은 주민들이 학교 운동장을 메웠다. 나눔이라는 공통분모 유지태·김효진 부부가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 대해 유지태는 한 방송에서 “비슷한 취향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광고 촬영을 함께하던 도중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됐는데 두 사람 모두가 그 곡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동물 보호, 빈민국 어린이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 관심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점도 닮았다. 김효진은 지난 2005년 SBS-TV ‘기아체험 24시간’을 통해 수단과 우간다를 방문했다. 이를 시작으로 그녀는 지금까지 10명의 해외 아동을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중이다. 이때의 인연으로 그녀는 지난 2008년부터 국제구호기구인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유지태는 2009년 월드비전을 통해 몽골 아동 2명과 결연을 맺고 후원을 시작했다. 이후 내레이션 출연료 전액을 아이들을 위해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미얀마 북동부 중국 접경 지역인 코캉 지역 샤르 유이 핫탄 마을에 어린이 발달센터 건축을 후원했다. 2011년 3월에는 지진희와 함께 르완다를 방문해 식수 펌프를 지원했다. 이후 그는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위촉됐으며, 월드비전 ‘사랑의 도시락 나눔의 집’에서 4년째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결혼식을 앞두고 우간다에 다녀오기도 했다. 바로 소년병을 후원하기 위해서다. ‘한 달에 6달러가 없어 학교에 못 간다고 하네요. 6달러면 6천6백원 정도죠. 소년병을 만나러 우간다에 갑니다. 사진 속 아이들의 상처 꿰맨 손과 다리를 보니 왠지 아이들을 대면하기가 두려운 마음마저 듭니다. 조금의 상한 맘도 참지 못하는 우리가 몸과 마음의 깊은 상처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려니 말입니다’라는 글을 SNS에 남기기도 했다. 전교생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부부의 후원으로 인해 약 4백 명의 초·중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아주 특별한 결혼 1주년 기념일 유지태·김효진 부부는 아주 특별한 결혼 1주년 기념일을 보냈다. 지난 12월 2일부터 7일까지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만달레이시 남동부 피지다곤 지역에 다녀왔다. 이들은 결혼식 날 받았던 결혼식 축의금 중 일부를 이 지역의 학교 건립을 위해 후원한 바 있다. 이후 두 사람은 자신들이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월드비전의 추가 후원금을 합쳐 약 4백 명의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초·중학교를 개교했다. 결혼 1주년 기념일에 맞춰 이 학교를 방문한 것이다. 평소 빈민국 어린이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후원과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부부다운 결정이다. 학교가 세워진 피지다곤은 미얀마의 여러 빈곤 지역 가운데서도 손에 꼽을 만큼 어려운 지역으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일용직으로 연명하고 있다. 때문에 가계 수입이 매우 낮다보니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이들에겐 사치에 가까웠다. 아이들과 함께 누구보다 뜻 깊은 결혼기념일을 보낸 유지태·김효진 부부. 유지태·김효진 부부가 학교에 도착하자 해맑은 미소를 띤 아이들이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이어 미얀마 아이들은 우리말로 ‘고맙습니다’를 뜻하는 미얀마어인 “째주띰바데”를 외치며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렇게까지 아이들이 반길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던 듯 처음에는 수줍은 미소를 짓던 부부는 이내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안으며 입맞춤으로 화답했다. 이어 유지태·김효진 부부는 한국에서 직접 제작해서 가져간 학교 현판을 전달했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드림트리’를 함께 만드는 시간도 가졌다. 이어 운동장 한편에 아이들의 그늘이 되어줄 나무를 심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용품을 선물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청바지에 검은색 티셔츠 차림으로 커플 룩을 완성한 부부는 현지 아이들과 주민들의 환영과 감사 인사를 받으며 무척 쑥스러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학교를 지원하게 됐어요. 직접 와서 아이들이 새로 지은 교실에서 행복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뿌듯하고 보람이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아이들이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학교 지원에 힘쓰고 싶습니다.”(유지태) “미얀마 친구들을 만나기 전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로 떨렸는데, 막상 아이들을 만나고 난 뒤 아이들의 미소로 인해 제가 많은 힘을 얻었어요. 앞으로도 아이들 교육을 위해 지속적으로 지원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모색할 생각이에요.”(김효진) 앞으로도 어린이들의 교육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갖고 행동하겠다는 부부의 의지가 행복한 기대를 품게 한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정은주(객원기자) ■사진 제공 / 월드비전(www.worldivision.or.kr)>
여유와 기품을 가진 미얀마의 얼굴들
2012. 11. 09 17:43 레저/여행
여행안내서에서조차 최빈국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나라가 됐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얀마는 엄청난 쌀 수출량을 자랑하는 동남아 최대 부국이었다. 몰락한 부자의 나라라는 선입견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록 낡긴 했지만 고유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 비단옷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여유와 기품을 잃지 않은 정경부인과 같은 이미지의 나라. 미얀마의 인상은 딱 그러했다. 쉐산도 파고다에서 바라본 바간의 시적인 일몰 풍경. 신의 정경, 바간을 만나다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해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 닿았다. 그 이름만으로도 거리감이 3배 줌으로 가까워졌다가 또 2배속으로 멀어지는 나라가 미얀마다. 1989년 군부는 영국 식민지 시대를 떠올린다며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꿨다. 영화 ‘비욘드 랭군’의 그 ‘랭군’이라 불리던 도시도 비로소 옛 이름 양곤을 되찾았다. 2005년 네피도로 옮기기 전까지 오랫동안 수도를 담당해오며 현대화의 손을 탄 양곤과 달리 국내선 항공기로 1시간 20분여 거리의 북부 도시 바간은 화려했던 왕조 시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와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불리는 바간은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스리랑카, 인도, 태국, 중국 등과 활발한 교역을 한 국제도시였다. 대다수가 사라지고도 2천4백여 개나 남은 탑으로 증명되는 바간 왕조의 영화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고고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극한의 아름다움으로도 회자되고 있다. 1184년 건립된 슐라마니 사원. 특히 해 질 무렵 바간은 “지구 최고!”라는 감탄사가 유난스럽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슴 시린 풍경을 그려낸다. 소년 목동들이 소와 염소를 이끌고 귀가하는 시간이면 관광객을 그득 실은 버스,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손님을 태우고 말의 고삐를 당기는 호스카, 유유자적 자전거 페달을 밟는 은발의 부부가 향하는 곳은 바로 쉐산도 파고다. 1057년 아노라타 왕이 미얀마를 통일한 기념으로 쌓아올린 높은 탑에 다다른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줄을 지어 난간을 잡고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부지런한 이들은 이미 이라와디 강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마주할 수 있는 서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명당을 놓쳤다고 아쉬워할 건 없다.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숲을 이룬 파고다가 주는 감동은 결코 덜하지 않다.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서 자연과 역사가 빚어낸 장엄한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들리는 것은 오직 국적과 언어를 초월한 탄성뿐이다. 깊이 심호흡을 해보았다. 마치 우주의 기운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듯. 이른 아침, 잠이 덜 깬 여행자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삶의 활력을 보여주었던 냥우 시장, 부처의 전생을 표현한 벽화가 잔잔한 감동을 주는 구바욱지 사원, 그 정교함과 독창성에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던 네 개의 부처상이 압도적인 아난다 사원, 오후의 강렬한 햇볕 아래에서 더욱 신성함을 더했던 황금빛 쉐지곤 파고다, 부처의 자취를 담은 벽화가 남아 있는 슐라마니 사원 그리고 지구인의 뿌듯함을 안겨준 감동의 쉐산도 파고다까지. 이 모두를 담고 있는 도시 바간에 내가 있다니…. 당일치기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충만한 기쁨을 안고 흔쾌히 짐을 꾸릴 수 있었다. 생활력 강한 엄마의 말간 미소, 인레 호수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인레 호수를 만나기 위해 헤호로 이동했다. 선착장에서 4인용 보트를 타고 10여 분간 달리자 해발 880m의 고산지대에 자리 잡은 길이 22km, 폭 11km의 거대한 호수가 비로소 제 몸집을 드러냈다. 인레 호수에는 몰디브가 부럽지 않은 고급스러운 수상 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생계를 위해, 관광을 위해 분주하게 오가던 보트들의 행렬이 잦아드는 밤이면 인레 호수는 광활한 거울이 되어 별과 달을 비춘다. 이른 새벽 오롯이 마주한 인레 호수의 말간 얼굴은 뭉클하기까지 했다. 인레 호수는 그저 아름답기만 해서 이름난 곳은 아니다. 우기에는 6~7m, 건기에는 3m의 얕은 수심이지만 미얀마 전체를 커버하는 수력을 생산하는 기특한 에너지원이다. 뿐만 아니다. 너른 물 위의 밭에서 수경 재배되는 토마토의 하루 수확량은 40톤에 달한다. 한쪽 다리로 노를 저으며 고기를 잡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인타족을 비롯해 연꽃 줄기에서 추출한 실로 베틀을 짜는 부족 등 각각의 특기를 발휘해 인레 호수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마을이 1백여 곳이 넘는다. 수업을 마친 아이를 태우고 노를 저어 집으로 가는 엄마들의 모습은 대치동 ‘헬리콥터맘’을 연상시켰다. 넉넉한 ‘속사정’을 들어서일까. 블록을 이뤄 늘어선 수상가옥 역시 누추하기보다는 운치 있어 보인다. 고산지대 호수 지역이라고 해서 불심이 뒤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한지도 모른다. 팡도우 파고다에 모셔진 다섯 개의 불상이 그 증거다. 미얀마의 사원을 찾으면 신도들이 불상이나 황금빛 사원의 몸체에 금박을 덧입히며 기도를 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팡도우 파고다에는 12세기 바간의 알라웅시투가 말레이 반도에서 모셔온 다섯 개의 귀한 불상이 있는데, 신도들이 어찌나 열심히 금박 보시를 했는지 지금은 불상의 원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통통한 눈사람 맵시가 됐다. 우아함의 극치. 황금빛 쉐지곤 파고다. 한류 붐이 더 이상 별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현지 가이드 웬웨이 익에게 “어머니가 한국 드라마를 보느라 아침부터 밤까지 TV 앞에 앉아 있다”라는 고자질을 들으니 새삼스레 신기하다. 철커덕철커덕 베틀질을 하는 소녀의 창가에 붙어 있던 사진 속 낯익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가을동화’의 주인공 ‘준서, 은서’를 이야기하며 신명이 오른 익은 미얀마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빠의 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요일에 따라서 정해진 몇 개의 이름 중 하나를 골라 짓는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어느 요일에 태어났는지 알 수 있다고. 8요일제를 썼던 미얀마에는 각 요일을 상징하는 동물이 있다. 월요일 호랑이, 화요일 사자, 수요일 오전은 상아 있는 코끼리, 오후는 상아 없는 코끼리, 목요일 쥐, 금요일 두더지, 토요일 용, 일요일은 가루다라고 불리는 전설의 새. 재밌는 건, 우리가 궁합을 보듯이 미얀마에서는 요일별로 맞춰본다고. 열여섯 살에 시집가 벌써 네 살짜리 아이를 둔 여동생이 있다는 ‘노처녀’ 익은 토요일에 태어난 자신과는 수요일에 태어난 남자가 잘 맞는다며 새초롬한 미소를 지었다. 사랑이 피어나는 양곤의 사원 동남아시아에서 체감한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 아니라 새벽이다. 그들의 부지런함을 어찌 따를 수 있을까. 오전 7시가 조금 넘었지만, 양곤 시내 인야 호수변의 아침 운동객 행렬은 이미 끝물인 듯하다. 운동하는 이들이 떠난 호수변 벤치는 하나같이 양산을 받쳐 든 연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날짜 감각을 잊은 여행객에게 ‘주말’을 되찾아준 주인공이 바로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띈 데이트족이다. 그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곳은 쇼핑센터도 카페도 아닌 사원이다. 높이 15m, 무게는 500톤에 달하는 미얀마 최대의 대리석 불상이 모셔져 있는 로카찬다 파고다에서는 한껏 멋을 부린 (무려 검정 스키니 진에 가죽 재킷 차림의) 청년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또 한쪽의 불상 앞에서는 휴대전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크게 틀어놓고 담소를 나누는 소녀들이 있었다. 그 음악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주인공은 한국에서 신도들과 함께 성지 순례길에 오른 비구니 스님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각들이 만나 절묘한 조화의 퍼즐을 완성했다. 어울렁더울렁, 사원은 신성함을 뛰어넘어 민심 깊숙이에서 편안한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었다. 90%에 가까운 국민이 불교를 믿고 남자의 대부분은 일정 기간 동안 승려생활을 한다. 미얀마에 대한 정보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치안 상태는 매우 안전하며, 종교적인 심성으로 인해 범죄는 거의 없다’라는 문구였다. 지갑을 꽁꽁 싸매는 여행객의 본능마저 잊고 지내온 탓일까. 한국으로 돌아온 뒤 ‘뷔페 음식을 가지러 간 사이에 핸드백이 없어지고, 택시 유리창을 깨고 차 안에 있던 가방을 채 가더라’라는 파리의 날치기범에 대한 일화를 들었을 때, 모골이 송연해졌다. 미얀마에서 만난 얼굴들. 냥우 시장의 상인부터 상냥한 가이드 익까지 여성들은 하나같이 자외선 차단 효과가 있는 목재 추출물 다나카를 얼굴에 곱게 발랐다. 미얀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낼 곳은 고민할 것도 없이 쉐다곤 파고다로 정했다. 지난 밤 숙소 창문을 통해 멀리서 확인할 수 있었던 양곤의 별을 드디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하도 파내다 보니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질 만큼의 흙을 돋워서 만든 언덕에 99m 높이로 세운 탑에는 연중 세계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늦은 저녁 찾은 쉐다곤 파고다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선 같은 느낌이었다. 조명이 없어도 자체 발광할 것만 같은 황금빛 성체는 금방이라도 공중 부양할 듯한 신묘한 아우라를 풍겼다. 보름달 아래 강강술래를 하는 아낙들의 운명 같은 몸짓처럼, 사람들은 파고다를 따라 천천히 한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우리는 외국을 방문하면 두 가지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얼마나 부러운 ‘선진국’인지, 아니면 이렇게 가난한 나라에 비해 우리 대한민국은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미얀마는 그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미얀마에서 태어났더라면 일과를 마치고 이 사람들처럼 사원을 찾아서 기도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가족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을 뿐이다. 미얀마는… 미얀마 하면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 산 수 치 여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기념품 상점에서도 심심찮게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만날 수 있었다. 동으로는 태국과 라오스, 서로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북으로는 중국과 맞닿아 있으며 면적은 한반도의 3.5배지만, 인구는 5천6백만 명(2010년 현재) 정도이다. 버마족이 70%를 차지하고 그 외에 카친, 카렌, 몬족 등 소수인종이 살고 있다. 미얀마 화폐는 차트(kyat)로 1백 차트가 1백40원 수준. 낙서나 훼손이 없는 미국 달러만 환전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와는 2시간 30분의 시차가 있다. 아직 현지 로밍이 원활하지 않으니 휴대전화 사용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원 내부에서는 맨발 상태여야 한다. 민소매나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하의는 입장 허가가 나지 않을 수 있다. 연평균 기온 27.4℃의 열대몬순기후이며, 10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는 건기라 여행하기에 좋다. 단, 헤호는 고산 지역이라 10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는 평균기온이 20℃가 채 안 되니 긴팔 옷을 챙기는 게 좋겠다. 베트남항공에서 매일 운항하는 인천-하노이, 인천-호치민, 부산-하노이, 부산-호치민 편을 통해 베트남을 경유해 하노이-양곤(매일), 호치민-양곤(주 4회) 편을 이용하면 된다. 미얀마 여행을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주한미얀마대사관을 통해 28일간 체류가 가능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글&사진 / 장회정 기자 ■취재 협조 / 베트남항공(서울 02-757-8920, 부산 051-465-4828~31, www.vietnamairlin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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