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569 건 검색)
- 민중가요 ‘저 평등의 땅에’ 만든 작곡가 류형수씨 별세
- 2025. 02. 04 20:58문화
- ... ‘새벽’에서 활동 ‘노찾사’ 2집 앨범 제작에도 참여 ‘저 평등의 땅에’ ‘선언 1, 2’ 등 민중가요를 만든 작곡가 겸 컴퓨터 프로그래머 류형수 전 셀인셀즈 기술이사가 지난 3일 별세했다. 향년...
- 커원저 대만 민중당 대표 징역 28년6월 구형 …보석금 내고 풀려나
- 2024. 12. 27 13:06국제
- ..., 지난 1월 총통 선거 당시 정치헌금을 주식 구매 등에 불법 전용했다고 보고 있다. 커 대표 외 다른 민중당 당원들도 6800만대만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횡령하는 등 당에 대한 정치적 기부금을 남용한 혐의로...
- 민중가수 손병휘 9집 앨범 ‘언젠가 우리는’ 발매
- 2024. 12. 20 17:55문화
- ... 손병휘. 손병휘씨 제공. 민중가수 손병휘가 19일 9집 앨범 <언젠가 우리는>을 발매했다. 앨범에는 총 11개 곡이 수록됐다. 오랜 세월 민중가수로 노래를 부르며 느낀 세상의 변화를 노래한 곡...
- [이진송의 아니 근데]탄핵 집회 현장에서 ‘민중가요’로 자리매김한 K팝
- 2024. 12. 19 06:00문화
- ... 같은 기존의 민중가요와 교차하며, 새로운 민중가요로 자리매김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스스로를 민중가수로 정체화하는 가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2021)가 스타일리시한 신곡 민중가요라면,...
- 이진송의 아니 근데
스포츠경향(총 110 건 검색)
- ‘탄핵 집회’ K팝 부르고 응원봉 흔들며 축제 처럼 진행···‘다시 만난 세계’ 민중가요로 인기 끌어
- 2024. 12. 14 17:02 연예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재표결이 이뤄지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일대는 마치 축제 현장처럼 흥겹게 이어졌다. 이번 집회는 K팝 문화를 주축으로 연성화해 참여 문턱이 더 낮아졌다. 집회는 새로운 민중가요(?)로 떠오른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로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희망을 말하는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르며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힘차게 흔들었다. 촛불 대신 K팝에 맞춰 흔드는 아이돌 응원봉이 집회 아이템으로 등극하면서 집회 현장은 다채로운 빛으로 물들었다. god, 에픽하이, 소녀시대, 아이유, 엑소, 빅뱅, 방탄소년단, NCT, 뉴진스, 라이즈 등 1∼4세대 아이돌 팬이 나란히 박자를 맞추며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광란의 칼춤 댄스 동호회’, ‘어리굴젓 숙성 연구회’, ‘게국지 홍보 추진단’, ‘거북목 직장인 연합회’, ‘전국낭만해적단’ 등 풍자와 조크가 깃든 깃발도 곳곳에서 윤석열 탄핵을 요구하며 휘날렸다.
- ‘다시 만난 세계’ 23% 역주행…新민중가요로 부상
- 2024. 12. 12 16:47 연예
- 2007년 당시 소녀시대. 연합뉴스 걸그룹 소녀시대가 2007년 발표한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가 17년이 흐른 2024년 서울 도심 곳곳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최근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촛불 집회 현장에서다. 12일 국내 대표 음원 플랫폼 멜론에 따르면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을 기점으로 일주일간 ‘다시 만난 세계’ 청취자 수는 직전 일주일(11월 26∼12월 2일)보다 23% 증가했다. 캐럴 등 시즌송도 아닌 17년 전 아이돌 그룹 노래로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다시 만난 세계’가 집회 현장에서 불려 주목 받은 것은 지난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이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부른 것이 SNS를 통해 화제를 모으면서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연합뉴스에 “불안을 극복하며 미지의 세계로 도전하는 소녀들을 묘사한 가사가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너와 함께 나아가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며 “멜로디도 힘 있게 쭉쭉 뻗어나가고, 노래의 마이너(단조) 코드도 다소 비장한 느낌이 들게 한다”고 ‘다시 만난 세계’가 신 민중가요로 떠오른 이유를 분석했다.
- ‘세계는 지금’ 파나마 민중 “못 살겠다 갈아엎자”
- 2022. 07. 22 22:15 연예
- KBS 제공 오는 23일 오후 9시 40분 KBS1에서 방송이 될 ‘특파원 보고-세계는 지금’ ‘271회에선 “못 살겠다 갈아엎자”고 봉기한 파나마 민중의 물가 상승 항의 시위 소식을 전한다. 또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는 ‘러시아 우방국’ 민병대 정체도 알아본다. 최근 유가 상승으로 파나마에서 남미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 20일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에서는 기름값 등 생활 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경찰 바리케이드를 넘어뜨리고 도로를 점거했다. 인구가 430만명인 파나마는 그동안 연 2%대의 낮은 물가상승률을 보이며 비교적 안정적인 국가 경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물가상승률이 기존보다 두 배 넘게 치솟고 연료비가 47%나 오르면서 시민들의 누적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생활고에 지친 민중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하는 모습은 파나마뿐만이 아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높은 물가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는 에콰도르, 페루,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여러 중남미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파나마 민중은 남북미 대륙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인 팬아메리칸 하이웨이를 봉쇄하고 경찰차에 불을 지르는 등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초기 시위 대응에서 강경 진압을 보여온 파나마 정부는 걷잡을 수 없는 시위대의 움직임에 타협안을 모색하고 있다. 방송에서는 남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활 물가 폭등과 시민들의 시위 양상을 살펴본다. 또 남미의 고질적 문제라 할 수 있는 부패 문제가 현재의 두 자릿수에 달하는 인플레이션 수치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전문가 의견과 현지 글로벌 통신원 취재를 통해 알아본다. KBS 제공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는 우크라이나군 외에도 다양한 국가 출신의 지원군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중에는 러시아의 우방으로 알려진 벨라루스 출신 민병대도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칼리노우스키 민병대다. 19세기 러시아에 맞서 싸운 벨라루스 영웅의 이름을 딴 칼리노우스키 민병대는 올해 3월 200명의 군대로 창설되어 외국인 민병대로는 최초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 1994년 정권을 잡은 이후로 유럽에서 최장기 집권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민주화 시위를 강경 진압하면서 많은 벨라루스 시민들은 고국을 떠나 해외로 망명했다. 벨라루스 민병대는 부대원 대부분이 당시 벨라루스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한 애국심이 아니라 ‘조국의 민주화’라는 이상을 위해 싸우는 이 부대는 5월에 2개 부대로 확장되었으며 얼마 전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 전투에서 한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사망한 부대원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훈장을 수여하고 도로명도 그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는 이들 벨라루스 민병대 신병들이 전투에 합류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을 훈련시키는 교관들은 폴란드 전직 경찰들이다.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벨라루스 민병대를 조영중 PD 특파원이 밀착취재하면서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주변국 시민들의 일련의 움직임들을 심층 보도한다. ‘특파원보고 세계는 지금’은 23일 밤 9시 40분 방송되며 김지윤 박사, 박종훈 기자,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출연한다.
- 민중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 태어난 곳에 기념 표지석 선다
- 2020. 05. 11 19:32 연예
- 광주문화재단 제공.1980년대 시대정신이 담긴 민중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 창작 터를 기념하는 표지석이 세워진다. 광주문화재단은 11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오는 13일 ‘님을 위한 행진곡’ 창작 터인 광주문화예술회관 국악당 옆에 표지석을 설치하고 제막식을 한다고 밝혔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980년 서빙고 보안사에서 고문 당할 때 쓴 시 ‘묏비나리’에서 유래됐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묏비나리’를 개작해서 만든 가사에 당시 전남대생이던 작곡가 김종률씨가 곡을 붙여서 1982년에 완성이 됐다. 1982년 2월 20일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과 노동 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진행되고 난 후 같은 해 4월 황석영을 중신으로 한 지역 문화운동가들이 추모 노래극 ‘넋풀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만들었다. 황석영, 김종률, 전용호, 오창규, 임영희, 임희숙, 윤만식, 김은경, 이훈우, 김선출, 김옥기, 홍희담 등 문화운동가들은 현재 문예회관 부지인 광주 북구 운암동 154-5번지 황석영씨 자택에 모여 음반을 제작하고 전국으로 보급했다. ‘넋풀이’ 음반에 수록된 ‘님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전국의 거리에서, 민중들의 삶의 현장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 대중에게 퍼졌다. 제막식에는 황석영, 김종률 등 당시 음반 제작에 함께 참여한 인사들이 참석한다. 광주문화재단은 ‘님을 위한 행진곡’의 대중화, 세계화를 추진하며 황호준의 ‘님을 위한 서곡-빛이 있는 마을’, 김 신의 ‘님을 위한 행진곡에 의한 교향적 환상곡’ 등 창작관현악곡 보급을 위한 연주회도 추진한다.
주간경향(총 49 건 검색)
- [신간]민중의 이름으로 外(2022. 08. 05 14:37)
- 2022. 08. 05 14:37 문화/과학
- ㆍ세계를 위협하는 가짜 민주주의 <민중의 이름으로> 이보 모슬리 지음·김현정 옮김 녹색평론사·1만8000원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 Survey)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한국인이 뚜렷하게 늘고 있다. 1998년에는 그 수가 전체 인구의 17%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30%까지 증가했다. IMF 외환위기에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먹고사는 문제가 더 급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탓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먹고사는 문제와 관계가 없다는 오해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도 우려스럽지만, 공동체가 삶을 영위하는 원리로서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신념이 훼손됐다는 것은 경각심을 갖고 주의해 봐야 할 현상이다. 책은 공동체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의사결정 예술이 돼야 할 정치가 한갓 나라의 돈과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파벌로 나뉘어 싸우는 현실을 냉철하게 점검한다. 그리고 경제·정치 영역을 아우르는 급진적 대안의 노선을 제시한다. ▲휴먼스 브랜던 스탠턴 지음·안민재 옮김·프시케의숲·1만9800원 브랜던 스탠턴은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40여개국에서 1만여명의 사람을 만났다. 특정한 사람과 약속을 정해 만난 것이 아닌 길거리에서 보통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당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사람들은 진실하게 반응했다. 자기 삶의 내밀하고 연약한, 그래서 아름답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줬다. 저자는 이중 316편을 선별해 그 정수를 책에 담았다. 책은 현대의 자극적인 매체 환경 너머에 굳건히 자리한 ‘진정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물어 사전 홍일표 지음·작가·1만3000원 홍일표 시인은 사물들의 이면에 숨어 있는 표정과 무늬를 만나 소통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일상의 다양한 사물을 읽어내는 감각적 시선과 존재론적 성찰이 짧은 형식의 글을 통해 빛을 발한다.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스티븐 내들러 지음·연아람 옮김·민음사·1만7000원 스피노자 연구자 스티븐 내들러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에 대한 스피노자의 생각을 새롭게 조명한다. 인간의 본성과 성장, 타인과의 공존, 최선의 삶을 사는 방법을 탐구하고 자살에 대한 논의까지 고루 담았다. ▲소소한 모험을 계속하자 김윤주, 박세진 지음·문학동네·1만3000원 여성 싱어송라이팅 듀오 ‘옥상달빛’의 김윤주와 박세진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를 주고받은 건 처음이기에 그만큼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오늘이 힘들었다면 내일 더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편지를 읽으며 친구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 신간
- [한기홍이 만난 사람](1)민중가수 임정득 “모든 투쟁의 뿌리는 사랑에 있죠”(2022. 06. 24 17:17)
- 2022. 06. 24 17:17 사회
- 주미영 작가 나에게 노래는 멜로디보다 가사가 더 중요하다. 가사를 먼저 써야 곡이 떠오른다. 전문적인 공부를 한 친구들은 멜로디부터 쓰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메시지가 없으면 곡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임정득(41)은 영남대 1학년 때부터 노래를 불렀다. 노래 동아리 ‘예사가락’에서 ‘민중가요’라는 형식의 노래를 만났다. TV에서 전혀 듣거나 보지 못했던 노래였다. 신선했다. 특히 가사가 좋았다. 경북 군위군의 궁벽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다. 대구로 유학 와서 중고등학교에 다녔지만 학교에서 그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말이 없었다. 항상 겸손하고 모범적으로 처신했다. 대학 시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가치, 존재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단과대를 돌며 노래 공연을 하면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의 노래에 반해 동아리에 신입부원이 여럿 몰려들기도 했다. 싱어송라이터 임정득은 민중가수로 현장에서 잘 알려져 있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수백㎞ 떨어진 행사장을 찾아 공연하고 발언하는 가수로도 유명하다. 그를 어떤 명칭으로 불러야 할까. 민중가수, 진보예술인, 싱어송라이터, 그냥 ‘노래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넓은 스펙트럼 어딘가에 그는 존재한다. “민중가수라는 호칭에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투쟁가 형식의 노래는 나 말고도 잘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정적인 노래를 좋아하는 편인데, 민중가수의 정체성은 투쟁가요만을 부르는 존재로, 박제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달라졌다. ‘민중가수’란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노래를 부르는 존재다. 나를 그렇게 불러준다면 그것은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타이틀이다.”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처럼 ‘국민적 추앙’을 받았던 ‘민중가수’도 있다. 임정득이 ‘민중가수’라는 호칭에 겸양하는 이유는 ‘민중’이라는 말이 지닌 보편성과 대중성의 차원에 자신의 노래가 아직은 다다르지 못했다는 자각일 수도 있다. 데뷔 후 거의 매년 단독 콘서트 임정득은 2011년 데뷔 이후 거의 매년 단독 콘서트를 가진 가수다. 여전히 그는 집회와 시위의 현장에 모습을 더 자주 내비친다. 깔끔한 미성에 정확한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짧은 연설을 토해낸다. 그 메시지 전달의 능력과 재능이 발군이다. 그는 투쟁가요도 서정적으로 쓴다. 분노도 크지만 결국 사랑으로 회귀한다. 임정득은 “살아가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모든 투쟁의 뿌리는 사랑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목숨을 바친 ‘열사’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눈물 나게 표현한 곡이 많다. 투쟁 과정에서 숨진 노동자와 철거민 등을 위해 여러 곡을 썼다. ‘일흔일곱 날의 기억’, ‘저녁녘’, ‘사라지다’, ‘그랬으면 좋겠다’ 등이 그 노래다. 2020년 12월 한진중공업 김진숙 복직을 위한 희망버스 행사에 참여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임정득. 임정득 제공 밀양 송전탑 투쟁, 한진중공업 고공 투쟁,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세월호 유가족 집회 현장에 그는 달려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수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초대도 하지 않은 투쟁사업장을 무작정 방문하기도 했다. 자주 가던 곳이 한진중공업 현장이었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때 해고노동자 김진숙을 만났다. 김진숙은 영도조선소 내 크레인 위에서 무려 309일간이나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임정득의 명곡 ‘소금꽃나무’는 김진숙을 만나 탄생했다. 2015년 발표한 1.5집 앨범 <당신과 상관없는 노래>에 수록됐다. 2007년 김진숙이 썼던 동명의 책에서 제목을 따왔다. “현장을 찾아가 ‘노래로 연대하고 싶다, 노래 불러도 되냐’고 쑥스럽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김진숙씨는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었고, 매일 열렸던 문화제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일조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쌍용차 투쟁할 때도 노조원들이 좋아하는 가수로 임정득을 꼽아줬다. 지난 2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명예 복귀를 하고 퇴직 기념행사를 할 때, 부산 HJ중공업 현장에 가서 김 지도위원과 함께 ‘소금꽃나무’ 노래를 불렀다.” ‘소금꽃나무’는 임정득 노래의 절정이다. 깊고 넓어진 그의 음악세계가 서정적으로 펼쳐진다. 그 비장미가 자못 도저하다. 소금꽃은 노동자의 등에 흘린 땀방울의 결정체를 의미한다. 임정득은 노래에서 그 노동자를 “아침이면 어디 있는지 모르는 희망을 찾아 기를 쓰고 버텨온 사람들”로 묘사한다. 종국에는 “눈부신 열매를 맺고서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저 거친 세상 속으로 저 지친 어깨에 흐드러진 꽃을” 피워내는 존재다. 사실 민중가수로서 임정득의 저력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의 한 노래패에 속했던 6년간의 세월에 형성됐다. 당시 그는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대구 성서공단에서 작은 공연을 펼쳤다. 공단 노동자의 애로사항을 돕기 위해 노무사가 부스에서 상담했고, 그 시간 임정득은 노래를 불렀다. 6년이나 이 공연을 지속했다는 점이 놀랍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2019년 한 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행사에 참여한 임정득의 뒷모습. 항상 약자의 입장을 옹호하며, 연민과 함께 연대의 의지를 자발적으로 보여준다. 임정득 제공 “성서공단에는 매우 영세한 기업에 특히 이주노동자가 많았다. 공단에서 맡았던 특유의 화학약품 냄새가 지금도 나는 듯하다. 그들의 기본 권리는 너무도 심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장장 6년이나 지속했기 때문에 어떤 집회 현장보다 애착이 가는 장소다. 노래를 하고 발언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맞닥뜨린 현장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임정득은 종종 영화에서 노래의 영감과 소재를 얻는다. 리얼리즘 영화의 대가로,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 켄 로치(Ken Loach)를 좋아한다. 켄 로치는 노동계급이나 아일랜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켄 로치 감독이 2007년 연출한 <자유로운 세계(It’s a Free World)>는 이주노동자의 착취에 관한 이야기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세태에 착안했다. 노동자 착취가 ‘근대화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라는 자유시장의 환상을 착취자의 관점에서 익살스럽게 꾸짖는 영화다. 임정득이 말하는 자유란 임정득은 영화와 같은 이름의 곡을 썼다. 임정득이 자신이 쓴 노래 중 가장 사랑하는 곡이 바로 ‘자유로운 세계’다. 1집의 앨범명이자 타이틀곡으로 삼았다. 임정득에게 ‘자유로운 세계’란 ‘살아남은 사람의 법칙만 존재하는 세계’다. 그는 자유를 이렇게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자유’라는 말을 35번이나 썼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그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가. 착취하고 지배하는 자의 자유까지 우리가 인정한다면, 도대체 자유라는 것이 뭔가.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다 열려 있다던가, 모두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실상 그런 자유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아름다운 말처럼 들리지만 이미 타락했고, 그 의미가 오염돼 있는 것이다.” 임정득은 곡을 직접 쓴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솔로 가수가 된다는 의미는 청중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는 것, 전파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자신이 쓴 곡을 부른다는 것은 가수로서의 창발성을 고양하는, 중요한 방법론이다. “나에게 노래는 멜로디보다 가사가 더 중요하다. 가사를 먼저 써야 곡이 떠오른다. 전문적인 공부를 한 친구들은 멜로디부터 쓰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메시지가 없으면 곡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곡을 쓰지 않으면 너무도 괴롭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노래라는 형식 안에서만 가능해진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미국 가수 나탈리 머천트(Natalie Merchant)는 압도적인 예술성으로 가사를 썼다. 그가 나의 롤모델이다. 1800년대 아이들에 관해 쓴 미국 시인의 시를 수집해 곡을 만들었다. 그 스토리를 찾기 위해 손수 도서관을 뒤졌다고 한다. 페미니즘의 문제, 삶과 죽음의 단상도 포함돼 있다. 공연할 때는 자유롭고 분방하게 춤을 춘다. 그 눈빛과 말이 너무도 힘이 있고 따뜻하다. 여성이나 이주민의 삶에 주목했고, 지금은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머천트의 예술에서 나오는 아우라와 에너지는 정말 대단하다.” 주미영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권정생 선생 코로나19 때문에 연말에 기획하던 송년 모임 음악회를 2년간 하지 못했다. 1시간 30분 정도 작은 콘서트에서 다양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올해부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말에 4집 음반도 내놓을 계획이다. 그는 가수 이상은과 강산에를 좋아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삶과 사상에 매료된 적이 있다. 권정생은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형제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힘없는 주인공들이 타인에게 기여하는 삶을 표현했다. 그런 점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권정생은 닮았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날카롭게 저항했다. 두 사람 다 평화주의자, 생태주의자이면서 아나키스트(모든 제도화된 정치조직·권력·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가 및 운동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임정득의 정신적 지향을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얼마 전 선배 노동가수 지민주와 대화한 적이 있다. 지 선배는 현장성이 있는 가사, 투쟁가요의 성격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게 말했다. 지금의 상황을 굉장히 엄혹하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노래 자체에 욕심은 없다고 했다. 거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생각했다. 지 선배는 투쟁의 선명함에 자신의 정체성을 결합했다. 그런 대범한 자리매김에 공감하며, 그를 다시 보게 됐다. 열사들의 노래를 부를 때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이렇게 아마추어티를 내면 안 되는데 큰일이다. 삼성전자 서비스의 최종범 열사가 고인이 됐을 때 많이 힘들었다. 고인과 내가 동갑내기였다. 내 노래를 제일 좋아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기 때문이다. 매년 기일에 그의 무덤을 찾아가 노래를 한곡 바치고 돌아온다.”
- 한기홍이 만난 사람
- 거대해진 민중의 지팡이…이번엔 경찰개혁(2022. 05. 13 14:18)
- 2022. 05. 13 14:18 사회
- ㆍ새 인권보호 규칙, 차별 금지 사유에‘ 성별 정체성·임신 또는 출산’ 등 빠져 논란 ㆍ수사업무는 대폭 증가했지만 인프라 이뤄지지 않아… 인력·예산 확충 시급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를 핵심으로 하는 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이 지난 5월 9일 관보에 게재되면서 정식 공포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이다. 지난 정부가 추구한 ‘검찰개혁’의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이들 법안은 오는 9월부터 시행된다. 경찰개혁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4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경찰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 규칙’ 제정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이제 다시 경찰개혁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경찰-수사경찰-자치경찰’ 세 갈래로 경찰 사무 체계를 분리했다. 경찰 권한 분산의 기틀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각종 인권보호 대책을 통해 과거에 비해 ‘인권 경찰’로 진일보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비대한 조직’이라는 비판과 인권에 관한 논란이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백서도 “국민의 불신을 완전히 씻어내기 위한 개혁 작업은 지속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보호 규칙 제정 논란 경찰청은 지난 2월 15일 ‘경찰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 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해 6·10 민주항쟁 기념일에 ‘인권 경찰 구현을 위한 경찰개혁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인권보호 규칙 마련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경찰은 “수사단계에서 준수해야 할 각종 인권보호 원칙을 총망라한 독자적 규정”이라고 밝혔다. 기존과 달리 경찰청 내부 훈령이 아닌 행정안전부령으로 규정해 대외적 구속력을 높였다. 규칙에는 가혹행위 및 자백 강요 금지, 사회적 약자 보호와 관련한 내용 등이 담겼다. 차별금지 사유 20여개도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성별, 종교, 나이, 언어, 장애, 재산, 직업, 학력, 전과,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인종, 국적, 피부색, 외모 등 신체조건, 병력, 혼인 여부,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및 성적 지향 등이다. 경찰개혁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는 그러나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고 경찰청에 요구했다. 차별금지 사유에 ‘성별 정체성, 고용형태, 임신 또는 출산, 출신 국가, 출신 민족, 건강상태’를 추가하라고 했다. 또 노인과 성소수자를 상대로 한 세부적인 보호 방안을 명시하고, 인권교육 관련 내용도 구체화하라고 촉구했다. 경찰청은 대부분 거부했다. 경찰청이 지난 4월 5일 단체에 보낸 답변서를 보면 차별금지 사유 확대 불가 이유를 두고 “법령에 모든 사항을 열거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구체적으로 열거되지 않더라도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모든 국민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실천의 문제”라고 했다. 성별 정체성 등을 포함할 수 없지만 누구든 차별받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얘기다. 경찰개혁네트워크는 지난 4월 26일 김호철 국가경찰위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같은 요구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이 제정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세심하게 살펴보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사과를 표했다. 그러나 내용을 변경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단체는 전했다. 지난 3월 17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충남 아산 경찰대에서 개최된 ‘신임 경찰 경위·경감 임용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하기 직전인 지난 2월 7일 경찰위원회는 회의에서 내용을 검토한 뒤 차별금지 사유를 한차례 수정한 바 있다. 언어, 피부색,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사상 등 5가지 사유를 추가했다. 추가 이유를 두고 “차별금지법안 및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들에는 성별 정체성이 담겨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도 임신 또는 출산, 출신 국가, 출신 민족 등을 포함하고 있다. 경찰청이 경찰개혁네트워크의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은 이유에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랑희 공권력감시팀 활동가는 “나쁜 의도가 아니더라도 경찰이 소수자 차별과 인권침해를 잘 모를 수 있다”라며 “구체적인 상황에서 차별이 일어나기 때문에 인권보장 내용도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현장에서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의 수사권한이 확장되면 절차에 신경쓰기보다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성과만 중시할 수 있다”라며 “이런 상황이 인권침해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인권교육과 관련한 내용도 자세하게 담겨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경찰이 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건 여론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성별 정체성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시되지도 않았고 논란이 많은 이슈라 규칙에 넣는 게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라며 “입법예고 기간에도 차별금지 조항을 삭제하라는 의견이 굉장히 많아 곤혹스러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상황 및 대상자별 인권보호 방안은 실무지침에는 포함시킬 것”이라고 했다. 당초 2005년 제정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는 성소수자 보호 조항이 있었다. 2018년 ‘경찰 인권보호 규칙’으로 전면 개정하면서 성소수자 등 차별금지 조항이 빠졌다. 2020년 경찰 인권 행동강령에서도 마찬가지로 빠졌다. 랑희 활동가는 “이렇게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건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라며 “지금이라도 다시 원래대로 돌리라는 취지에서 의견을 냈다”고 했다. 경찰위원회 실질화 경찰권 분산과 민주적 통제를 위한 방안들도 개혁 과제로 꼽힌다. 경찰위원회 실질화, 행정경찰과 수사경찰의 분리, 자치경찰제 실질화 등이다. 경찰위원회는 경찰의 주요 사안을 심의·의결하는 행안부 소속 기구다. 1991년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민주성·공공성 확보 등을 목적으로 설치됐다. 실효성이 떨어져 형식적인 역할에 그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2018년 경찰위원회의 심의·의결 대상을 확대하고 보고 요구권 등을 신설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개혁위원회도 2017년 11월 관련 개선안을 권고했다. 당시 경찰청은 이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관련 법안들도 국회에 발의돼 있다. 경찰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위원 6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다. 모두 행안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행정부의 입장만 대변할 수 있는 구조라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개선안은 경찰위원을 9명으로 늘리고 국회와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임명토록 했다. 위상을 국무총리 소속 중앙행정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경찰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했다. 또 경찰위원회 산하에 경찰청을 둬 관리·감독을 맡긴다. 경찰청장 임명제청권, 감사·감찰·징계요구 등도 경찰위원회에 부여한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독립성을 담보하려는 취지다. 2019년 7월 26일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대청마루에서 열린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 권고 이행계획 보고회에 참석해 사과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행정경찰과 수사경찰을 분리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국수본은 지난해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면서 함께 출범했다. 수사 전문성과 공정성을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경찰청장이 일반적 지휘만 할 수 있고 구체적인 사건을 지휘할 수 없게 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구체적인 사건에 개입할 여지를 뒀다. 무엇보다 국수본이 경찰청 소속이다. 국수본부장도 경찰청장이 추천하면 행안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이다. 국수본부장이 수사경찰의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극히 제한된 수준에 머물렀다.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하는 수사체계에 사실상 큰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국수본부장 임명 과정에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고 경찰청장이 아닌 후보추천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추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자치경찰제도 ‘무늬만 자치경찰’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국가경찰에서 오롯이 독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경찰 중심의 ‘일원화 모델’이다. 자치경찰의 신분은 국가공무원이다. 시·도지사 소속 자치경찰위원회를 두고 자치경찰을 관리·감독하게 했지만, 시·도 경찰청장이 이를 무시해도 강제할 순 없다. 자치경찰위가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도 사실상 전무하다. 비판론자들은 자치경찰의 인사·예산을 독립해 ‘이원화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개특위 출범 언제쯤 과거에 비해 비대해진 경찰을 견제·통제하기 위한 방안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는 최근 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을 처리하면서 국회 사개특위 구성 결의안도 함께 통과시켰다. 사개특위는 향후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한국형 FBI) 신설과 수사기관의 권한 조정 등 후속 제도 마련을 논의한다. 사개특위는 구성 후 6개월 내 중수청 설치를 위한 입법을 완료하고, 이후 1년 이내 중수청 출범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구성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결의안은 더불어민주당 7명, 국민의힘 6명, 비교섭단체 1명으로 사개특위를 구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위원 명단을 제출했지만 국민의힘은 수사·기소 법안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민의힘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 ‘입법 강행’ 프레임을 덧씌우려는 시도를 이어가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5월 3일 개최된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가 핵심 내용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가결됐다. / 국회사진기자단 수사·기소 분리 법안이 시행되는 9월부터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기존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 등 2개로 줄어든다. 공직자·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은 사라진다. 선거범죄의 직접 수사권은 내년부터 없어진다. 6·1 지방선거와 6개월이라는 선거범죄의 공소시효를 고려한 조치다. 검찰의 보완수사도 제한된다.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은 지금처럼 보완수사할 수 있지만, 검찰이 경찰에 송치를 요구한 사건은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수사해야 한다. 무분별한 별건수사를 방지한다는 취지다. 다만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소속 공무원의 범죄는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 향후 법무부의 행보가 주목된다. 검찰의 수사권을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이 부패·경제 등 2가지로 제한되지만, 범죄 종류와 대상, 액수 등 세부적인 사항은 시행령(대통령령)과 법무부령에서 규정한다. 국회 논의 없이도 정부의 재량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제한적으로나마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수사·기소 분리 법안에 반대한다. 경찰 인력·예산 어쩌나 경찰은 속앓이만 하고 있다. 당장 인력과 예산 확충이 시급한 문제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수사업무가 대폭 증가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의 인프라 확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수사·기소 분리 법안이 시행된다고 해서 당장 사건 수 자체가 급격하게 늘어나지는 않겠지만, 중수청이 출범하기 전까지는 검찰이 담당했던 대형 사건도 경찰이 떠안아야 한다. 경찰청은 조만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인력·예산 재배치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하에서 경찰의 수사 인력·예산 확충을 낙관하기만은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사건 적체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재조정이라도 해보겠다는 의도다. 검찰 수사관을 경찰로 이관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검찰이 반발하는 상황이어서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수사업무는 늘었고 검찰은 줄었다. 그만큼 검찰 수사 인력을 경찰로 재배치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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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운동 넘어 민중운동 희생자 삶도 부축(2021. 11. 26 20:58)
- 2021. 11. 26 20:58 사회
- ㆍ‘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 지원사업 확대 “10여명 정도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받는 분들의 사연까지 지금 내놓는 건 쉽지 않을 듯하고요.” 연성만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 행사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6월 민주항쟁 계승사업회 제공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이하 희망나누기)’라는 이름으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먼저 가신 분들의 가족이 어려운 형편에서 자녀를 키우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투병생활하는 당사자에 대한 지원사업을 하는데, 그 대상자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을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신청은 11월 25일 마감됐다. 대상자를 선정해 지원자에게 전달하는 행사는 12월 14일에 열린다. 이번이 세 번째다. 과거 1회(지난해 1월)와 2회(지난해 11월) 때와의 차이는 과거 지원대상자였던 민주화학생운동(유신·5공화국·1990년대)을 넘어 민중운동(노동·농민·빈민)에 헌신한 이들의 유자녀나 현재 병환을 앓고 있는 본인까지 지원대상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희망나누기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옥살이를 경험한’ 익명의 최초기부자가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먼저 가신 분의 가족 중 많은 분이 어려운 형편에서 자녀를 키우고 있다. 나라도 힘닿는 데까지 지원하고 싶다”며 연 1억원씩 3년간 기부약정을 하면서 시작됐다. 지원대상자를 선정하고, 기금을 모으는 등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연성만 새날복지회 이사장은 “일단 5년 정도까지는 예정된 상태인데 그 뒤로는 어떻게 될지는 봐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에 최초기부자가 마중물을 만들었고, 주변에서 ‘5년 모금 약정’을 한 분들이 나왔습니다. 1년에 100만원씩 500만원을 내겠다는 약정인데 현재는 자기 스스로 운동권이었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의 일이긴 합니다. 각 대학 민주동문회 회원들에게 5년간 매년 100만원 정도 약정해달라고 부탁하는 단계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다. 민주화운동도 그런 것일까. “당연히 안 좋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1차 때 과거 민청련 활동을 했던 김병곤(1990년 작고), 이범영 전 한청련 의장(1994년 작고) 유자녀가 받았는데, 이분들의 경우 그래도 서울대 출신이고 유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혼하고 가족관계에서 소원해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추천은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에서 하되, 매우 중요한 조건이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힘들기 때문에 도와준다는 취지가 아니라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면서 하는 겁니다. 추천서를 쓰는 과정에서도 담당자가 부인이나 유자녀와 소통하면서 쓰게 되니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상당한 정도를 더 알게 됩니다. 그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방식으로 위로하는 거죠.” 당사자 본인의 경우 제일 어려운 사람들이 운동하다 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극복하지 못하고 요양원에 있거나 힘든 생활을 하는 케이스다. 그는 현재는 과거 민주화운동 참여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2~3년 안에 소위 ‘스스로 운동권’이 아니라 민주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도 운동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또 다른 목표라고 덧붙였다. “아직은 과거 민주화·반독재 운동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지만, 촛불시민·민주시민도 자신이 했던 운동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과거의 ‘민주화운동의 기억과 희망찾기’지만 현재와 미래의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문의 희망나누기 운영위원회(02-363-0610, memhope77@gmail.com)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 손가락으로 체질과 건강 상태를 알아내는 민중의학자 탁성호
- 2006. 01. 01 화제
- “죽기 전에 돈 욕심 없는 젊은이들에게 내 지식을 넘겨주고 싶어요” 올해 80세인 탁성호 할아버지는 보청기 없이는 잘 듣지 못한다. 또 시각장애인으로 앞을 보지도 못한다.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어 외모로는 여느 노인들처럼 보이지만, 그의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는 ‘10지(指)28촌(寸)법’으로 사람들의 체질에 따라 식이요법을 알려주는 민중의학자이기 때문이다. 서른아홉 살에 시각 장애인 되었지만 지금은 소문난 민중의학자 잠을 깨 보니 세상은 암흑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39년간 멀쩡하던 눈이었는데. 대체 무엇을 그리 잘못했길래 이런 시련이 생기는 걸까? 잘못은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것뿐이었다. 모두 가난했던 시절이었기에, 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면서 일한 죄(?)밖에 없었다. 양말을 기워 신고, 김치와 간장으로만 식사를 하던 때였다. 6명 중에서 살아남은 3명의 자식과 아내를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4시간을 자고 깨어 보니 암흑세상이 된 것이다. 병원에서는 그의 병을 고칠 수 있으면 ‘노벨 의학상’감이라고 할 정도였다. 탁성호씨는 생각해 보면 남들처럼 편안한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온 식구가 거리로 나앉을 지경이었고, 외아들로서 집안을 책임져야만 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농사밖에 없었다. 몇 년간 몸이 부서져라 농사를 짓자 기울었던 집안이 조금씩 회복됐다. 19세 나이에 집에서 결혼을 시켰다. 이때부터 그는 ‘가장’이라는 또 다른 부담을 안고 살았다. 집안을 어느정도 일으켜 세운 후에 고향 파주를 떠나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서울로 왔다. 억척스럽게 농사일을 했던 것처럼, 서울에서도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서 아내와 자식들을 굶기기도 했다. 다행히 성실함을 인정받아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을 구하게 됐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음료수와 채소를 납품하게 된 것이다. 탁성호씨는 35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살 만해지니까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됐다. 가장이고 뭐고 죽고만 싶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남편, 아버지의 역할을 못할 것 같았고 자신이 집안의 ‘짐’이 되어버린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두 번의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살아계신 부모님께 자살이라는 불효를 하기 싫어서 가족들을 두고 산으로 들어갔다. 남에게 의지하기 싫어서 혼자 떠난 계룡산에서 그는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질기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먹고 살면서 7년 동안 산으로만 떠돌았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아버지라고, 남편이라고 받아준 고마운 가족. 쓸모도 없는 가장을 위해서 가족들은 그를 사찰로 인도했다. 탁성호씨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만났고,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 5행을 만나게 됐다. 일체의 만물이 우주의 근본 5원소인 지·수·화·풍·공으로 이뤄졌고, 인체는 작은 우주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법화경의 28품은 28개의 손마디라는 것도 깨달았다. 우리들의 손이 곧 우리들의 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민족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의 5장 7부를 손가락에 접목시킬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가족들과 지인들은 그에게 동의보감을 읽어주는 것이 일이었다. 탁성호씨는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기막힌 기억력을 얻었다. 가족들의 도움과 그의 피나는 노력 끝에 10손가락 28마디의 길고 짧음으로 몸의 상태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10지(指)28촌(寸)법’이 만들어졌다. 그후 35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았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면서 병을 고치기 위해 간판도 없고, 자격증도 없는 그를 찾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민중의학자’라고 부른다. 한의대 학생 후학으로 ‘10지28촌법’ 전수하고 싶어 탁성호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을 찾은 날, 노인 두 분만 사는 집이라서인지 집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이곳저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노 부부가 사는 집은 4층 빌라의 1층. 빌라의 벽은 세월의 흔적을 전해주기라도 하듯 빗물로 얼룩져 있었다. ‘소문난 민중의학자의 집이라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집안에는 약재나 그 흔한 의학책 한 권 없었다. 그냥 평범한 노부부가 사는 집인 듯한 이곳. 하지만 이 집은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유명한 의원이다. 탁성호 할아버지 곁에는 황혼을 같이 보내는 아내와 17년째 할아버지의 눈과 입이 되어주고 있는 최윤정(52)씨가 있었다. “17년 전에 네 살된 딸이 크게 앓은 적이 있었어요. 친척이 있는 미국으로 가기 3일 전부터 아프기 시작했는데, 병원에서는 감기와 소화불량이라고 했죠.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나아지지 않는 거예요. 그 아픈 애를 비행기를 태우기도 힘들고 해서 걱정하고 있는데, 누군가 탁성호 할아버지를 소개시켜 줬어요. 할아버지는 딸아이의 손을 잡아보시더니 사이다와 계란 2개를 먹인 후에 잠을 재우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 말씀대로 했더니 아이가 잠에서 깬 후에 깡총깡총 뛰어 놀았어요. 그날 이후 제가 할아버지 일을 도와드리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는 최윤정씨의 경우처럼 탁성호 할아버지의 신세를 진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22일간 혼수상태였던 30대 남자가 할아버지의 처방전으로 이틀 만에 눈을 뜨기도 했고 중풍에 걸린 사람이 세 번 치료를 받은 뒤 효과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또 손가락이 쑤신다는 아이를 약재로 바로 고치기도 했다고. 말하자면 한도 없고 끝도 없지만, 탁성호 할아버지는 별거 아니라는 식이다. “제가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픈 사람이 낫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제 처방이 효과가 있는 겁니다. 심신이 함께 노력해야 좋아지지, 제 처방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앞도 못 보는 사람이 어떻게 동의보감의 내용을 알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할아버지의 처방은 모두 동의보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탁성호 할아버지의 기억력은 정말 비상하다. 의술을 배운 뒤 첫 번째로 병을 고친 사람의 이름과 날짜 그리고 고향까지 기억할 정도. 대화를 하다보면 ‘1978년 9월 3일’ ‘1982년 7월 6일’ 등 만난 사람의 이름과 날짜까지 기억한다. 80세 노인의 기억력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 이런 기억력이 있기 때문에 체질에 따른 처방을 내릴 수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요즘 탁성호 할아버지는 걱정이 늘어가고 있다. 이제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 살아야 하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10지28촌법을 물려줄 후학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친구들이라면 제 이론을 배우기 쉬울 겁니다. 전국에 있는 19개의 한의대 학생들 중에서 각 학교에서 한 명씩 내 이론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건강원이나 다른 한의원을 개원한 사람들은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은 돈을 벌려는 욕심이 있거든요. 돈 욕심이 없는 젊은이들이 제 이론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탁성호 할아버지의 처방은 식이요법과 약재를 쓰는 것뿐이다. 35년간 탁성호 할아버지는 처방의 대가로 돈을 받지 않았다. 이런 할아버지이기에 돈을 벌 목적으로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의술 전수를 거절했다. 욕심 없이, 오로지 병든 사람들을 위해서 의술을 펼쳐왔던 세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변변한 학위 하나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했지만, 할아버지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조건 없는 의술을 펼쳤다. 후학을 키우고 싶다는 탁성호 할아버지의 생애 마지막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박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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