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25 건 검색)
- 14세 바이올리니스트 이현정 “관객 많을수록 안 떨려요”
- 2025. 01. 08 17:16문화
- ... 협연 하루 10시간 연습…“DG에서 음반 내는 꿈” 바이올리니스트 이현정. 마포문화재단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이현정(예원학교 2년)이 지난해 9월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 참가했을...
- 발달장애 김성민 바이올리니스트 독주회
- 2023. 04. 28 11:30문화
- ... 독주회가 오는 5월13일 전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선보인다. 발달장애 김성민 바이올리니스트의 독주회가 오는 5월13일 오후 3시 전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선보인다. 이번...
- 피아노독주회플롯전주
- ‘음악계 우영우’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내게 음악은 전부”
- 2023. 04. 06 17:30문화
- ... 리허설룸에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씨(19)는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내 서울시립교향악단 리허설룸에서...
- 서울시향판즈베던바이올린클래식바이올리니스트
-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한국인 최초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 2022. 05. 30 11:13문화
- ... NFT(대체불가토큰) 트로피도 받았다. 부상으로는 콩쿠르 의장인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와 바이올리니스트 페카 쿠시스토의 멘토링,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과의 협연 기회가...
- 장시벨리우스국제바이올린콩쿠르
스포츠경향(총 34 건 검색)
- 바이올리니스트 홍유빈, 콘서트디자인 데뷔스테이지 첫 주인공 발탁
- 2025. 03. 11 18:31 생활
- 바이올리니스트 홍유빈이 콘서트디자인 데뷔스테이지 첫 무대의 주인공으로 나선다. 콘서트디자인은 오는 19일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리는 ‘데뷔 스테이지’ 프로젝트의 첫 무대 주인공으로 바이올리니스트 홍유빈을 발탁했다고 11일 밝혔다. 콘서트디자인 ‘데뷔 스테이지’는 콘서트디자인이 창사 20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무대로, 역량 있는 신진 예술가들에게 연주의 무대를 넓혀준다는 취지로 진행되는 이색 프로젝트다. 홍유빈은 이화여자대학 관현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독일 폴크방 음악대학 석사과정 역시 수석, 이어 독일 마인츠 음악대학 최고 연주자과정 또한 수석으로 졸업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독일 포츠하임 극장 오케스트라 제2바이올린 부수석, 독일 하이델베르크 극장 오케스트라 제2바이올린 부수석 역임한 뒤 현재는 한경 arte 필하모닉 제1바이올린 정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앞서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시(Anne Shih)는 “세련된 활과 감성적인 표현이 만나 반짝이는 별처럼 특별한 바이올리니스트”라며 홍유빈을 극찬한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 홍유빈은 J.S. 바하와 W.A. 모차르트, R. 슈만, F. 크라이슬러의 곡들을 연주한다. 피아노는 박주영이 맡는다. 홍유빈은 “청중과 가깝게 호흡하며 깊은 감동을 전하는 연주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 모기장영화음악회…바이올리니스트 콘 출연
- 2024. 07. 15 07:45 생활
- 멀티아티스트 바이올리니스트 겸 뮤지컬 배우 KoN(콘) 지리산 대화엄사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2024 제4회 모기장영화음악회’가 ‘천년의 빛 나를 비추다’는 주제로 8월 3일 저녁 7시30분부터 화엄사 화엄원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대한불교조계종 19교구 지리산 대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은 14일 “500명을 초청해 모기장영화음악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모기장영화음악회는 홍매화 사진찍기대회와 더불어 지리산대화엄사의 대표 축제다. 참가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화엄사 홈페이지에 참가 신청을 하면 참석할 수 있다. 단 지난해 노쇼 참가자는 신청할 수 없다. 지리산대화엄사는 구례군민과 마산면 주민, 해외 이주민, 구례 청소년 학생, 구례군 마산면 의용소방대, 구례군 체육회, 지리산상가 등을 우선 초청했다. 모기장영화음악회는 화엄사 음악감독 김주연(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대회 문화올림픽 음악감독)이 지휘한다. 출연자는 멀티아티스트 바이올리니스트 겸 뮤지컬 배우 KoN(콘)이 출연한다. KoN이란 이름의 뜻은 Korean on the Note(음표 위의 한국인)의 줄임 말이다. KoN(콘)이 직접 작곡, 연주한 Kiss of Gypsy, Fatal Invitation 등은 tvN드라마 ‘또 오해영’이나 SBS ‘유혹’ 등에서 쓰였다. 이번 모기장음악회에는 동료 뮤지컬배우 윤형렬, 박혜민도 함께한다. 지리산 대화엄사 덕문 주지스님은 “무더운 한 여름밤 잠시나마 가족, 연인들과 함께 해가 진 지리산 여름밤의 청량한 공기를 마시고 모든 잠념을 잊고 뮤지컬 영화 음악회 분위기에 빠져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 ‘트바로티’ 김호중,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과 환상의 콜라보(가보자GO)
- 2024. 04. 05 16:29 연예
- MBN ‘가보자GO’ MBN ‘가보자GO’가 본방송에 재미를 더하는 선공개 영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4일 공개된 MBN 새 리얼 로드 버라이어티 ‘가보자GO’ 선공개 영상에서는 트바로티 김호중이 반한 그녀,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과 월드스타 비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MC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김용만과 김호중 그리고 안정환으로 이루어진 팀은 인사동 거리를 걷던 중 우연히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모녀를 만나게 되는데, 김호중은 한수진을 먼저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수줍은 팬심을 드러냈다. 김호중은 한수진의 집에 초대받아 가는 차 안에서 “긴가민가하다가 깜짝 놀랐어요”라며 첫 만남 소감을 전했고, 이에 김용만은 “호중이가 궁금한 게 많을 것 같다”, “눈에서 광채가 나더라”며 막내의 팬심에 귀여운 장난을 쳤다. 특히 “나중에 호중이와 협업하면 어떠냐”는 안정환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자 ‘가문의 영광’이라며 기뻐한 김호중이 영상 말미 한수진의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열창하는 모습이 일부 공개되며, 추후 공개될 두 사람의 역대급 컬레버레이션의 풀버전 영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또 다른 선공개 영상에서는 안정환과 홍현희가 인터뷰 중 우연히 월드스타 비를 만나는 장면이 담겨있다. 멀리서 두 사람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몰래 다가오는 비의 장난스러운 모습과 이에 깜짝 놀란 안정환과 홍현희의 상반된 표정이 웃음을 자아냈다. 또 열정 넘치는 비의 개인 콘텐츠 팀과 이를 질투하는 2MC의 모습, “방송은 됐고 한잔하시죠”라는 털털한 비의 모습까지, 더해지며 두 사람이 과연 비의 집에 초대받을 수 있을지 호기심을 더했다. 한편 ‘가보자GO’는 ‘진짜 친구’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선 5명의 MC가 장소와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각종 셀럽과 일반인을 즉석에서 섭외해 친구가 되는 과정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토요일 밤 8시 20분에 방송된다.
- ‘마에스트라’ 한진희, 바이올리니스트 첫 등장
- 2023. 12. 10 09:27 연예
- tvN 새 토일드라마 ‘마에스트라’ 배우 한진희가 9일 tvN 새 토일드라마 ‘마에스트라’(극본 최이윤, 홍정희/ 연출 김정권/ 기획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래몽래인, 그룹에이트)에 바이올리니스트로 첫 등장했다. 한진희는 이영애의 오케스트라 단원 강인한 역으로 출연, 안방극장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날 방송에선 더 한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지휘자이자 음악감독인 차세음(이영애 분)이 부임하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갈등이 그려졌다. 차세음은 손가락이 불편한 악장이자 자신의 스승이었던 박재만 대신 어리지만 실력이 우수한 이루나를 최연소 악장으로 선임하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극렬한 대립을 이루었다. 이에 단원들은 불만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달려온 오케스트라 대표인 전상도(박호산 분)가 단원들을 막아섰다. 강인한(한진희 분)은 전상도에게 “아무리 차마에라도 이건 아니죠”라며 차세음 마에스트라의 독단적인 악장 교체에 불만을 토로했다. 짧지만 강렬한 한진희의 첫 등장은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한진희는 단편영화 ‘미호’에서 가해자 역을 맡으며 강렬한 연기로 7회 충무로 영화제 – 감독주간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독립영화 ‘디스 아메리카노’에서 배우 지망생 전남친 연우 역을 맡아 섬세하고 진정성 넘치는 연기로 호평을 받은바 있다. 한편, ‘마에스트라’는 전 세계 단 5%뿐인 여성 지휘자 마에스트라, 천재 혹은 전설이라 불리는 차세음이 자신의 비밀을 감춘 채 오케스트라를 둘러싼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드라마다. 배우 이영애가 과감하고 열정적이며 때로는 파격적인 행보도 주저 없이 행할 줄 아는 쇼업의 귀재 차세음으로 변신을 예고하며 이목을 끌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 속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를 선보일 ‘마에스트라’는 토일 드라마로 밤 9시 20분 tvN을 통해 방송된다.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 [사람들]최연소 서울대 교수된 바이올리니스트 외(2005. 10. 18)
- 2005. 10. 18 사회
- 최연소 서울대 교수된 미모의 바이올리니스트 “학생들을 음악의 깊은 재미에 빠뜨릴래요” ‘한국을 대표하는 29세의 차세대 바이올린 연주자가 서울대 음대 교수가 됐다.’ 10월 5일 거의 모든 일간지는 백주영씨가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을 일제히 실었다. 음악애호가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였지만 일반인에게는 ‘과연 누구기에’라는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날 저녁 어렵사리 백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서울예고 2학년 재학중 도미, 커티스 음대와 줄리아드 음악원 졸업, 프랑스 국립고등음악원 최고연주자 과정 수료, 2000년 뉴욕 영 콘서트 아티스트 국제오디션 우승 등 각종 국제콩쿠르 석권,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세종솔로이스츠 리더. 음악만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온 그의 화려한 이력에 ‘20대 서울대 교수’라는 명찰이 또 하나 붙었다. ‘파격적 교수 임용’이라는 표현에 대해 백 교수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는 “피아니스트인 백혜선 교수가 10년 전 29세의 나이로 서울대 교수가 됐는데 그때가 더 파격적이라 할 수 있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1976년생으로 아직 미혼인데다 미모인 그에게 쏟아지는 음악 외적인 관심이 부담스러울 만도 하다. “젊다는 것은 사실이고요. 젊으니까 학생들에게 음악적 영감과 에너지를 불러넣어 달라는 것이 주위의 기대인 것 같아요. 어려운 입시를 거친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는 느슨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로는 학생들과 가까운 제가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다독거려야겠다고 생각해요.” 백 교수는 연주자로서 물론 연주에 중심을 뒀지만 1997년부터 미국과 한국에서 개인 지도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은 선생의 말을 잘 듣지만 한편으로는 창조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백 교수의 지도 경험이자 주장. 그는 “학생들이 국제 콩쿠르와 음악 페스티벌에 많이 참가하게 하겠다”면서 “이들이 음악의 깊은 재미에 빠지도록 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백 교수는 학생들이 바이올린 협주곡 뿐만 아니라 교향곡, 실내악 등을 폭넓게 접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했다. 바이올린 협주곡 경우에도 바이올린 부분만 공부하는 데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 백 교수의 생각이다. 서울예고 2학년 재학중 커티스 음대로 진학한 그에게서 ‘음악영재 교육’과 ‘해외 유학’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커티스 음대는 어릴 때부터 가고 싶었고 1년에 3∼4명의 소수 정예 입학생을 뽑는 곳이라 기꺼이 유학을 결정했습니다. 조기유학으로 초·중학교 때 외국으로 가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정도 하려면 한국에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한국에서는 어릴 때 취미로 음악을 많이 하잖아요. 이때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다면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가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봐요.” 그의 화려한 입상 경력에 대해 백 교수는 “사실 입상이라고 하지만 저보다 성적이 좋은 사람도 있었고 그게 오히려 신선한 자극이 됐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한때 경쟁자였던 외국 연주자들이 지금은 음악 동료로 이메일을 통해 소식을 나눈다고 한다. 싸이월드에 미니홈피까지 운영한다는 백 교수는 빵과 과자를 굽는 것을 좋아하고 ‘신데렐라 맨’ ‘너는 내 운명’ 등 최근 영화까지 섭렵하는, 영락없는 20대 아가씨다. 결혼에 대해서는 “생각한다고 뜻대로 되나요. 좋은 사람을 만나면 하지요”라고 선뜻 대답했다. 외국생활을 오래 한 데 반해 보수적인 성격이라고 스스로 분석하는 그는 “결혼 대상자로 외국 남자는 싫다”고 말하면서 “원래 소탈한 성격인데 교수라는 직함이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볼 때는 배경음악에 민감해진다고 한다. ‘직업병’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브람스의 곡을 좋아하지만 현대곡도 좋아한다며 “생존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면 제가 어떻게 연주했는지 물어볼 수 있어 좋다”는 그의 대답에서 젊은 연주자의 도발적인 음악적 향기가 물씬 풍겨났다. 맞춤법 프로그램 만든 컴퓨터공학자 “홀대받는 우리말 ‘바른 한글’로 지켜요” 우리나라 고속철도 이름은 KTX다. 에쎄·시마·루멘·레종 등 국산 담배를 생산하는 회사 이름은 KT&G이다. 심지어 청와대 비서실 직제조차 정책프로세스 개선 비서관, 국정모니터 비서관, 국정과제 태스크포스 비서관 등 외국어 투성이다. 제559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단체들은 뜻도 잘 알 수 없는 외국어에 우리말이 무차별적으로 오염되고 있는 현실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글은 세계의 많은 언어학자들이 인정하는 우수하고 과학적인 언어지만 안방에서는 이처럼 홀대받고 있다. 반면에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도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이번 한글날에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뜻밖에도 한글 연구와는 거리가 먼 듯 보이는 부산대 전자전기정보컴퓨터공학부 권혁철 교수(47)다. 권 교수는 15년째 한글맞춤법검사기 프로그램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 검사기를 자신이 운영하는 누리집(홈페이지) ‘우리말 배움터’(urimal.cs.pusan.ac.kr)에 올려 누구나 그냥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이번에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또 민간 한글단체인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은 그가 운영하는 누리집을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뽑았다. 권 교수는 1982년 석사과정 때부터 한글정보화에 관심을 가졌고, 1991년부터 문법 교정 소프트웨어 ‘바른 한글’을 연구해왔다. 그는 “앞으로 20년을 더 해서라도 완벽한 프로그램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가을이 바쁜 세계적인 팝페라 테너 “새 앨범엔 동양적 색채 물씬 풍겨요” 세계적인 팝페라 테너 임형주씨(20)가 스무 살 생애에서 가장 바쁜 가을을 보내고 있다. 10월 5일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로 위촉된 데 이어 10월 7일에는 일본 나고야 엑스포 폐막식에서 일본 최고의 가수인 마스다 유밍, 싱가포르 가수와 함께 ‘스마일 어게인’이란 아시아인을 위한 노래를 불러 전 세계 250개 매체에 소개됐다. 또 12일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리는 ‘유방암 의식 향상을 위한 핑크불빛 밝히기’ 행사에서는 한국은 물론, 대만과 일본에서 내한한 유방암환우들을 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준다. 또 최근에는 네 번째 앨범 ‘더 로터스(The Lotus)’를 발표해 이달 말에는 일본, 다음달에는 대만에서도 발매되고 전국 투어 콘서트도 연다. 지난 6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4집 앨범 ‘더 로터스’는 발매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임형주씨는 “한국적인 음악과 서양의 음악을 가미했고, 동양적인 색채가 물씬 풍긴다”고 새 앨범을 소개했다. ‘더 로터스’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연꽃이다. 연꽃은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색채가 강하다.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팝페라를 하고 있는데 동양적인 팝페라를 새롭게 해석하고 싶어 프라하오케스트라와 태평소, 대금, 해금 등 한국적인 음악을 접목시켰다. 이 앨범에서 그는 마리아 칼라스가 불러 음악 애호가들의 심금을 울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광란의 아리아’를 남자 가수로서는 세계 최초로 불렀고, 오페라 나비부인, 양희은의 ‘한계령’ 멜라니 사프카의 ‘더 새디스트 씽’ 그리고 민요인 ‘새야 새야’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곡들을 소화해 10대에서 40대까지의 폭넓은 팬들을 만족시키려 했다. 4집 발매 기념 전국투어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공연할 계획이고, 서울은 오는 12월 3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은 클래식한 느낌도 있지만 동양적이고 대중적인 느낌을 가미한 공연으로 8-10인조 무용단과 20인조 쳄버 오케스트라. 빅밴드 등이 참여해 오리엔털 팝페라의 진수를 선보인다. 또 일본 시장에서 각광받는 그는 소니뮤직에 이어 일본의 대형 음반유통업체인 에이벡스와 계약을 맺었다. 임형주씨는 “그동안 보아 등의 대중가수와 일하던 에이벡스가 최초로 클래식 레이블을 출범시키면서 세계적인 유명한 가수들을 제치고 나한테 먼저 제의를 했다는 점, 마케팅 제안서 등이 가장 우수해서 에이벡스와 손을 잡았다”고 밝혔다.
- 사람들
레이디경향(총 9 건 검색)
- [단독]어머니 떠나보낸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 그의 요즘
- 2015. 03. 23 17:42 연예
- 2009년 매니저의 폭행·감금 사건의 피해자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 해당 매니저 김 모씨는 이와는 별도의 사건으로 2011년 구속됐다. 유진 박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안정을 취하다가 2013년 매니저 유 모씨를 만나 국내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1월, 그의 유일한 가족이던 어머니가 뉴욕에서 홀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 유진 박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확인 취재에 나섰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40)의 옆에 그림자처럼 늘 곁에 있던 여인, 어머니 이장주 여사다. 어머니는 어린 유진 박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왔다. 그런 그녀가 지난 1월 중순, 뉴욕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고독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 이는 그녀의 오랜 지인 A씨. 자신도 사고를 당한 날이 정확히 며칠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아 이상한 생각이 든 이 여사의 가족이 경찰에 연락했고 자택에서 시신이 발견됐다는 것. A씨의 말에 의하면 이 여사는 평소 당뇨와 고혈압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홀로 외출을 하는 등 일상 생활을 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사인을 모르는 터라 갑작스러운 그녀의 죽음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A씨에 따르면, 고 이장주 여사가 유진 박을 한국에 두고 미국으로 돌아간 것은 2014년 2월의 일이다. 이 여사는 아들과 떨어져 있었지만 유진 박이 정기적으로 먹어야 할 약들을 챙겨 한국으로 보내곤 했다. 그녀는 평생 함께 손잡고 다녔던 아들을 멀찌감치 홀로 남겨놓고 쉽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두 모자는 여느 엄마와 아들 사이와는 조금 다른 특별한 관계였다. 1960, 70년대에 경기여고와 미국 뉴욕대를 나온, 그야말로 엘리트 신여성이었던 고 이장주 여사. 이 여사를 오랫동안 지켜봐오던 지인 A씨는 유진 박을 임신했을 당시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특히 아이의 청음을 위한 태교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집 안에는 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 배 속 아기에게 음악을 들려준다며 스피커를 배에 대놓기도 했다. 그렇게 아들이 태어났고, 세 살 무렵 어머니는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선물한다. 아들이 음악인으로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머니 이장주 여사의 꿈이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듯 유진 박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악보를 한 번 보면 모조리 외워 연주할 수 있었고, 여덟 살에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부터 그는 유명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탄탄대로였던 두 사람의 길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던 걸까? 왜 비극적인 결말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던 걸까? 국내 체류 중이었던 유진 박은 지난 1월 19일경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 미국을 다녀왔다고 한다. 2004년 의사인 아버지를 여의고 10년 만에 또 어머니를 잃었다. 홀로 남은 유진 박.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의문투성이인 채로 취재는 시작됐다. 유진 박, 잘 있나 매니저 김 모씨의 폭행·감금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해결된 뒤 유진 박은 2013년에 새로운 매니저 유승하씨를 만나면서 재기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 씨는 그의 어머니를 통 큰 여장부 스타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걸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어요. 좋은 일에 후원도 많이 하셨고, 주변 분이 어렵다고 하면 쉽게 큰돈을 빌려주시기도 했죠. 그런데 반대로 본인에게 쓰는 돈은 굉장히 인색했어요. 식당에서 밥을 먹다 반찬이 남으면 그걸 봉지에 다 담아 집으로 와서 주먹밥을 만들어 드시곤 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오랜 지인 A씨와 유 씨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미 알려졌듯 이 여사와 유진 박은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갈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먼저 지인 A씨는 이 여사가 생전에 뉴욕 소재의 아파트 10채를 소유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유 씨 역시 이 여사가 뉴욕뿐 아니라 한국에도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어 자신에게 그것을 처분할 방법을 상의했다고 한다. 이 여사는 모두가 어렵게 살던 1970년대에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보낼 정도로 유복한 가정 출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경제적인 문제가 전혀 없었다면 유진 박은 왜 자신의 뮤지션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듯한 지방 축제나 행사 공연을 무리하게 다녀야 했을까? 이에 대해 유 씨는 이렇게 짐작했다. “어머니께서 돈에 대한 집착이 컸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겠지만, 유진이는 연주를 하지 않으면 생활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해요. 어머니는 공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삶의 희열을 느끼는 아들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럼 이제 홀로 남게 된 유진 박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유 씨 역시 그의 소식을 알 수 없다고 전한다. 고 이장주 여사의 생전 모습.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에 며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유진이가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건 기사를 통해 알려졌으니 아실 거예요. 저는 지금 유진이가 공연을 할 때가 아니라 치료가 시급한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어머니나 매니저 없이는 자기 통제력이 약해서 공연 무대에 올라갔다가 연주하는 도중에 갑자기 내려와버리는 일도 많았다. 그는 병적인 수집증 성향도 갖고 있어 집 안에 온통 쓸모없는 물건을 쌓아둬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놓기도 했다고. 이유없이 감정이 격해져 안정제에 의지하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안 계신 상황에서 유진이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들려오는 말 중에는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도 있거든요.” 현재 포털 사이트에 유진 박에 대해 검색해보면 지난 2월 말에 모 지방 축제에서 공연을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한 건 나온다. 2월 말이라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다. 그는 어머니를 잃은 아픔을 딛고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가. 유진 박의 근황 취재를 위해 유진 박의 현 매니저 연락처를 수소문했고, 한 여성과 통화할 수 있었다. 그녀는 유 씨 이후에 유진 박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인물이다. 매니저는 직접 유진 박을 만날 수 있겠냐는 요청에 대해서는 불허했다. “인터뷰를 할 상황은 아니에요. 그건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아픈 기억이잖아요? 나중에 다 원만하게 되면 그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유진 박의 건강에 대해서는 현재 자신의 관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에 있는 친척들도 그를 혼자 두진 않을 거라 전한다. “미국에는 유진 박의 고모님과 이모님 그리고 사촌들도 있어요.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 그들과 더욱 긴밀하게 관계를 이어나갈 것 같아요.” 현 매니저는 완연한 봄이 되면 그의 공연 일정을 늘려 대중에게 건강하게 재기한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제3자의 말들을 전할 수밖에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남는다. 한편 세상에 홀로 남겨진 줄만 알았던 유진 박의 손을 잡아줄 친척들이 있다는 사실 확인만으로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유진 박, 하늘나라로 떠난 어머니가 선사해준 재능이 다시 꽃필 날을 기대하며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날](4) 바이올리니스트 엄마 김연진씨와 딸 하은이의 유쾌한 앙상블
- 2014. 03. 28 15:20 육아/교육
-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자라면서 한 번쯤은 꿈꾼다는 선망의 직업이 있다. 바로 화려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주하는 음악가다. 음악 하는 엄마의 일상은 어떤지, 음악 하는 엄마를 둔 딸은 어떤 꿈을 꾸는지 들어볼 기회가 생겼다. 이따금 연주회를 볼 때마다 저 무대 위의 아름다운 사람들은 공연의 막이 내리면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궁금해지곤 했다. 왠지 일상생활도 그들이 들려주는 선율처럼 우아할 것만 같았다. 초등학교 4학년 딸 하은(11)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 맘 바이올리니스트 김연진씨(38)는 이런 편견을 단번에 바로잡아주었다. 김연진씨는 집에서 여유 있게 음악을 듣고 있을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바쁜 일과를 소화하고 있다. 현재 2개의 대학과 예중·고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어 거의 매일 수업 스케줄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특히 중·고생들은 집에서 레슨을 하는 편이다. 레슨 장소로 집을 택한 것은 전적으로 하은이 때문이다. 어느 딸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하은이는 엄마에 대한 애착이 큰 편이다. 촬영을 위해 고운 드레스로 갈아입었을 때도, 나란히 앉아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하은이는 내내 엄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엄마가 제일 멋지고 예쁘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하은이. 아이의 눈에도 바이올리니스트 엄마는 무척이나 근사해 보이나 보다. 피아니스트의 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다 김연진씨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꿨다.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를 둔 덕에 태어날 때부터 클래식 음악이 낯설지 않았다. 바흐, 드뷔시, 차이코프스키 등 거장들의 음악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스며들었다. 김연진씨의 어머니는 딸이 끊임없이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음악가의 고된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의중보다 딸의 열의가 더 강했다. 어머니와의 싸움에서 이긴 딸은 예고와 음대를 거쳐 바이올리니스트가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연진씨는 딸이 음악을 전공하길 바라지 않는다. 자신이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아보았으니 딸은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직업을 갖기를 내심 바랐다. 1년에 한 번씩 김연진씨는 독주회를 갖는다. 후학을 양성하는 일 외에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느슨해지지 않도록 자신을 다잡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무대다. 독주회 외에도 현재 소속된 앙상블, 챔버오케스트라 등을 통해 1년에 6~8개의 연주회를 소화하고 있다 보니 사실상 1년 내내 공연과 연습, 레슨이 반복되는 일정이다. 현역 연주자이자 지도자로 더없이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지만,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연주회 일정이 잡히면 어디 놀러 갈 생각은 꿈에도 못해요. 그때가 휴가철이든 기념일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지금은 하은이가 좀 큰 덕분인지, 그럴 수밖에 없는 제 상황을 이해해주는 것 같아요.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정말 많이 미안했어요. 다른 엄마들처럼 데리고 다니며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데 제가 바빠서 그러질 못했거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세운 원칙이 있다. 공연이 끝나면 바로 다음날 아이의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자신의 공연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른 음악가들의 연주회에도 자주 참석해야 한다. 선후배의 공연에도 가야 하고 여기에 좋아하는 연주자의 공연까지 챙기다 보면 저녁 시간은 늘 바쁜 편이다. 바이올리니스트는 무대 위의 모습처럼 우아하게 생활할 줄 알았는데, 일과를 들여다보니 여느 워킹 맘과 다를 것 없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음악, 평생의 친구가 됐으면 부끄러움을 타는 듯하다가도 조곤조곤 하고 싶은 말은 잘하는 열한 살 소녀 하은이는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과 친해졌다. 김연진씨가 피아니스트 엄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에 눈을 뜬 것처럼 말이다. 세 살 때부터 엄마의 연주회에 다니기 시작해 클래식 공연 관람도 익숙하다. 이제는 제법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보통 아이들이 경험하기 힘든 조기교육인 셈이다. 소리에 민감한 하은이는 요즘은 유튜브에서 관심 있는 오페라 영상을 찾아서 보는 데 빠져 있단다. 가요만 듣는 여느 엄마들과 달리 차 안에서도 라디오의 클래식 프로그램만 듣는 엄마도 더 이상 하은이의 친구들 사이에서 어색한 존재가 아니다. 이런 환경이라면 하은이의 음악 교육 입문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 여느 아이들과 별다를 것 없이 다섯 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다만 다른 점을 찾는다면, 어릴 때 반짝 하고 마는 악기 교육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악기 교육을 딱 끊더라고요. 중학교에 진학해야 하니 공부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게 이유죠. 하지만 저는 하은이가 고등학교에 가서도 음악을 취미생활로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공부 스트레스를 악기 연주하면서 풀 수도 있잖아요. 음악은 아이들 정서 안정에도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피아노를 배운 지 2년이 지나자 하은이는 다른 악기도 배우고 싶다고 청해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바이올린과 피아노 교습을 병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이올린은 당연히 엄마에게?’라고 지레짐작했는데, 그렇지 않단다. “제가 가르치면 아무래도 객관적이지 못할 것 같아서 후배에게 교습을 맡기고 있어요. 그래도 그동안 저와 함께 음악을 듣고 경험한 토양이 있어서인지 또래 아이들보다는 습득 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해요. 그래서 하은이에게 5년쯤 뒤에는 제 연주회 때 함께 무대에 서자고 제안했어요.” 피아니스트의 딸로 태어나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김연진씨. 엄마의 영향을 받아 또래보다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아이로 자란 딸 하은이. 나란히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이 예쁜 모녀를 보고 있자니 엄마의 직업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새삼 느껴지는 바가 크다. 하은이 엄마, 바이올리니스트 김연진씨의 우리 아이 음악 교육 제안 1 아이의 신체 발달 단계에 맞게 악기를 선택하라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몇 살부터 악기를 배워야 하는지, 한다면 어떤 악기로 시작해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악기로 가볍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사실은 악기마다 연주를 시작할 수 있는 연령이 정해져 있는 편이다. 피아노 같은 건반악기는 3세부터 배울 수 있다. 건반을 누르고 음을 들어보면서 악기와 친해지는 연습부터 시작하면 좋다. 바이올린, 첼로 같은 현악기는 6, 7세 때부터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음을 듣고서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6세 이하의 아이들은 어려워하고 진도도 잘 나가지 않는다. 플루트, 오보에 같은 관악기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부터 연주가 가능하다. 관악기는 상당한 호흡량을 필요로 하는 특성상 어느 정도 신체 발달이 이뤄진 뒤부터 제대로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악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된다면 우선 피아노로 시작하라. ‘도레미파솔라시도’를 한 음 한 음 들려주면서 아이의 청각을 자극해 소리에 대한 관심을 키워주는 정도로 들어서면 된다. 2 꼭 클래식 음악이 아니어도 좋다 음악 교육을 권하면 ‘클래식 악기만 연주하고, 클래식 음악만 들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더러 있다. 물론 클래식 음악도 좋지만 아이가 어릴 때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균형감 있는 감성 발달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하은이는 어릴 때부터 내 연주를 자주 듣고, 음악회도 자주 가면서 많이 접해서인지 클래식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도, 하은이도 클래식 음악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하은이는 다른 장르의 음악을 두루 즐겨 듣는 편이다. 특히 뮤지컬을 본 뒤로는 뮤지컬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일 부모나 아이 모두에게 일반 클래식 음악회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좀 더 쉽게 풀어내는 어린이 음악회에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3 어린이 오케스트라를 활용해라 보통 아이들은 피아노 학원, 바이올린 학원 등에서 음악 교육을 받는 편이다. 이런 수업 말고 어린이 오케스트라에 입단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특히 요즘에는 동네마다 방과후 학교, YMCA 등에 어린이 오케스트라가 많이 개설돼 있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오케스트라 활동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꼭 음악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는 여럿이 모여서 연주하는 단체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서 연주 활동을 하다 보면 자신의 주장만 펼칠 수가 없다. 다른 아이들이 내는 음을 잘 들을 줄도, 지휘자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할 줄도 알아야 연주를 따라갈 수 있다. 여럿이 함께하다 보니 책임감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혼자 악기 연습을 할 때는 기대할 수 없는 ‘사회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동료에게 자극을 받아 선의의 경쟁을 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고 싶다면 어릴 때 찾아가는 편이 더 수월하다. 오디션이 없어 보다 쉽게 입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악기 교육은 공부에도 영향을 준다 사실 연주자에게 음에 대한 감각 다음으로 가장 필요한 요건은 인내심이 아닌가 싶다. 하나의 악기를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수백 시간, 수천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악기 교육은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하는 힘’을 기르는 데 최고다. 어릴 때부터 악기 연주를 가르치면 자연스럽게 끈기를 키울 수 있다. 정서적인 안정을 주는 데도 음악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자아가 완성되지 않아 불안정한 성장기에는 특히 좋은 음악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 성취감도 경험할 수 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연습을 열심히 했다면 그만큼 소리가 달라지고 어려워서 머뭇거리던 악절도 물 흐르듯이 해낼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아이들은 건강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악기 연주는 두뇌 기관을 자극해 두뇌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 전공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아이 혼자 악보를 보고 연주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배우기를 권한다. 5 입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운동으로 몸을 만들어라 예중·고 아이들은 입시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연습량도 많고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보통 하루에 7, 8시간씩 연습하기 때문에 연주 수준에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의외로 승부를 가르는 요소는 몸 상태다. 사실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목 디스크를 달고 산다. 같은 자세로 오랜 시간 연주하다 보니 생기는 일종의 직업병이다. 목이 아프면 당연히 제 기량을 다 발휘하기 어렵다. 장시간의 연습에 대비해 몸을 유연하게 해주는 스트레칭, 요가, 필라테스 등을 해주면 도움이 많이 된다. 근력 운동도 꼭 해야 한다. 어릴 때는 잘 못 느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목을 못 움직여서 연주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많으므로 미리 대비하는 것을 권한다. 엄마와 하루를 보낸 하은이의 소감 “무대 위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정말 근사해 보여요” 우리 엄마는 정말 바쁜 바이올리니스트예요. 공연도 많이 하고, 해외에서 할 때도 있어요. 체코 프라하에서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했을 때는 저도 함께 가서 봤어요. 그때 진짜 근사해 보였어요. 엄마는 공연 무대 위에 서면 늘 예쁘고 멋져 보여요. 하지만 전 음악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웃음). 엄마를 보니까 바이올리니스트는 너무 힘든 직업인 것 같아서요. 연습도 정말 많이 해야 하고 잘 놀지도 못해요. 연주회도 많이 다녀야 하고, 수업도 많이 하시고요. 엄마가 바빠서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엄마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PROFILE 바이올리니스트 김연진씨는… 선화예고, 이화여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거쳐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충남대 겸임교수에 이어 현재는 목원대와 백석예술대학, 선화예중·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체코 스메타나홀에서 모라비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갖기도 했으며, 이화챔버오케스트라, (사)카메라타서울 앙상블, 콰트로이화의 단원으로도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글 / 정성민(프리랜서) ■사진 / 조민정>
-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날
-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장애청소년들과 함께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주현
- 2013. 12. 02 15:59 화제
- 지난 10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하트하트리사이트홀에서는 아주 특별한 연주회가 열렸다. 발달장애 연주자들이 모인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리사이틀 무대 ‘위드콘서트’. 그 세 번째 무대가 열렸던 이날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파트 단원들로 구성된 하트클라리넷앙상블이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줬다. 그리고 그곳엔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주현도 함께했다. 지난 2006년 하트하트재단이 창단한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국내 최초의 발달장애 청소년 오케스트라다. 국내외를 오가며 다양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녀는 올해로 2년째 이 오케스트라의 자문위원이자 멘토로 발달장애 청소년들과 재능 나눔을 하고 있다. 그녀는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아이들 자랑부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 하면 다른 시선으로 보잖아요. 아이들에겐 분명 엉뚱한 면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에요. 집중력도 뛰어나고 한 번 습득하면 완벽하게 해내죠.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통찰력도 있고요.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커서 저 역시 즐겁게 가르치고 있어요.” 음악이 아이들에게 주는 효과는 매우 크다. 장애로 인해 사회적 기회가 제한돼 있는 발달장애 청소년들은 오케스트라 안에서 연주 실력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와 사회성을 기른다. 실제로 오케스트라 단원 중엔 뛰어난 음악적 실력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나 일반 대학 음대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수천 번의 연습과 많은 시간이 필요했음을 알기에 아이들을 볼 때면 언제나 가슴 뭉클하고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그녀가 바이올린을 통한 재능 나눔을 시작한 건 꽤 오래전인 대학 시절부터다. “학생 때부터 병원이나 교도소, 양로원 등을 찾아다니며 봉사 연주를 했는데 갈 때마다 무척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정신적으로 황폐해질 수 있는 곳들이잖아요. 연주가 끝나고 나면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지세요. 고맙다고 손도 잡아주시고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저도 참 마음이 좋더라고요.” 그녀는 분교음악회, 병원 봉사 프로젝트를 통해 기회가 될 때마다 음악을 접할 기회가 없는 소외 계층을 찾아 나서곤 했다. 세계적 연주자로서의 화려한 무대나 커리어도 중요하지만 음악을 통해 희망과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작은 만남 하나하나가 그녀에겐 소중한 무대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고픈 마음이다. 그런 그녀가 요즘 또 하나 의미 있는 나눔을 하고 있다. “독일 베토벤하우스에서 연주할 때 베토벤의 유품인 보청기를 보고 언젠가 청각장애우들을 위한 봉사 연주를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와중에 삼성서울병원에서 인공와우(달팽이관에 전기전극을 삽입하는 청각기기) 시술을 받은 청각장애우 친구를 만나 함께 연주를 하고 있어요. 완벽하게 듣지는 못하지만 음에 대한 기억과 진동으로 음감을 파악해서 연주를 해요. 연주하는 걸 보시면 아마 청각장애가 있는 줄 모르실 거예요. 저 자신에게도 굉장히 뜻 깊고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첫 리허설 때 느꼈던 감격은 지금도 잊지 못해요.” 장애아들을 위한 재능 나눔을 하며 그녀가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아이들에게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희로애락을 느끼듯 자신도 아이들을 통해 감동과 용기를 얻는다는 그녀는 12월에 있을 하트하트재단 25주년 기념 공연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때가 아닌가 싶어요. 올 한 해 동안 마음은 있었지만 실행을 하지 못하셨던 분들, 한번 해보세요. 나누면 내가 더 행복하다는 말, 진부할 수 있지만 그 말이 정답이에요. 저 역시 봉사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각계의 사람을 만나며 음악적으로 많이 성숙해졌거든요. 꼭 큰돈이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추위에 떠는 이웃과 장갑 한 켤레 나누는 마음으로 뜻 깊고 따뜻한 연말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미소 한 스푼’에서는 숨 가쁜 일상 속 비타민이 돼줄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쉬어가는 건 어떨까요. 지친 하루에 기분 좋은 미소를 부르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조민정>
-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
- 2010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은
- 2011. 02. 28 15:55 화제
- ㆍ“심금 울리는 바이올린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알리려 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은은 연평균 50회가 넘는 연주회 일정을 소화하는 연주자다. 악장을 맡고 있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크고 작은 연주회와 실내악, 독주회 등 잠시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오른다. 이렇듯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열정으로 가득한 그는 지난 연말, 기분 좋은 상을 받았다. 바로 ‘2010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수상자 후보로 올라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한 것. 가슴을 울리는 선율로 보다 많은 청중을 만나는 것이 연주자로서 그가 가진 계획이자 꿈이다. 연주자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 커져 “연습을 마치고 휴대전화를 켰는데, 문자 메시지가 한 통이 와 있었습니다. 전화를 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무심코 전화를 걸었는데 정말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죠. 순간 당황해서 아무 생각도 나질 않더라고요.”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은(36)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작년 11월 19일에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주)여성신문사가 주최한 ‘2010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에서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은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여성들을 격려하는 상으로, 수상 부문은 ‘올해의 여성문화인상’과 ‘신진여성문화인상’으로 나뉜다. 2010년에는 예술감독 박칼린이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을 받았고, 김지은과 함께 싱어송라이터 시와, 미술기획자 유다희, 하피스트 곽정이 ‘신진여성문화인상’을 받았다. “누구보다 가족이 정말 기뻐해주셨어요. 평소 저를 좋게 봐주신 분께서 주최 측에 추천을 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저는 아직도 그분이 누구신지 모른답니다(웃음). 올해가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지 7년째 되는 해예요. 그동안 쉴 새 없이 연주회를 열었던 건 사실이에요. 2년째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고 있는데, 오케스트라 연주회 일정만 해도 연간 수십 회가 넘으니까요. 거기에 독주회와 협연, 실내악까지 합하면 정말 바쁜 연주자인 건 맞죠!” 그는 선화예중·고, 서울대 음대, 독일 쾰른 국립음대와 만하임 국립음대에서 바이올린으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또 현재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동하는 전문 연주자다. 지금까지 그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무대에 서왔기에 사람들 앞에 나서며 시선을 받는 일도, 또 무대에 오르는 일도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신진여성문화인상’을 받던 시상식 날은 달랐다. “무대와 객석은 저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죠. 하지만 상을 받은 후 수상 소감을 말해야 했는데, 정말 그렇게 떨릴 수가 없더라고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요. 항상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를 했을 뿐, 제 생각과 감정을 입으로 전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이어 그는 “학생 때 콩쿠르에 참가해 받는 상과는 의미가 다르다”라고 말한다. 열심히 과제를 연마해서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야 상을 주는 콩쿠르에서 수상한 것이 아니라, 음악가로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부여받은 과제라는 것이다. “선배는 후배를 끌어주어야 하고, 자신이 실수한 것을 후배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음악계에서는 이러한 선배의 역할이 더욱 절실한 것도 맞고요. 멋모르던 시절 참가했던 콩쿠르에서 수상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연주자로서의 책임감도 더 많이 갖게 됐고요.” 보다 많은 무대 만들 것 “올해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창립 20주년을 맞아요. 우리나라에서 민간 연주 단체로 20년간 활동한 단체는 찾아보기 힘들죠. 그런 의미에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활동해온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의미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 봅니다. 따뜻한 사람들이 모인 오케스트라예요. 단장님부터 단원들 한 명 한 명까지….”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의 모든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업이라고 김지은은 설명한다. 차가운 마음이 지배적인 사람의 음악과 따뜻한 마음이 풍부한 연주자의 음악은 확연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그가 악장으로 몸담고 있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도 따뜻한 음악을 들려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우리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지요.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이 각자 다른 악기를 한 자리에서 연주하고, 또 재미있게도 그 소리가 어울리게 되는 이치죠. 그 과정에서 악장이 하는 일은 생각보다 범위가 큽니다. 재판을 예로 들면 판사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어요. 단원들의 개인적인 어려움부터 시작해 의견이 다른 두 곳을 조율해야 하고요. 싫은 소리를 많이 해야 하고 냉정해져야 할 때도 많아요.”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대 위에는 수십 가지의 악기가 있지만 계속 연주하는 악기와 단 한 차례 연주하는 악기도 있다. 역할의 비중을 따진다면 불평은 끝도 없을 것이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그는 진심으로 단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한다. “벌써 서른여섯이 되었고, 다섯 살 난 아들도 두고 있어요. 바이올린을 공부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진실로 바이올린을 알았다고 느낀 것은 독일에서 박사 과정을 마칠 즈음이에요. 독일 유학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매일 울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유럽의 아름다운 성에서 연주도 하는 행운도 누렸지요” 그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할 무렵 얼떨결에 독일 유학을 준비하게 됐다. 연고도 없던 터라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며 손사래를 친다.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연습해야 했는데, 이웃들의 반대로 연습할 수 없게 되자 공원이든 들판이든 연습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큰 웃음을 터트리며 그는 창고에서 연습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마침 어느 건물 지하 창고가 비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연습할 공간이 절실했던 터라 건물 경비원에게 사정사정해서 창고 열쇠를 받아서 들어갔어요. 그러나 정말 기절할 뻔했어요. 회색빛 달걀판이 천장과 온 벽에 붙어 있고, 기괴한 그림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거든요. 유럽 사이비 종교인들이 쓰던 공간이었던 거예요! 도망치고 싶었지만 죽을 각오로 연습을 했어요. 덕분에 독일 생활이 시작된 거죠.” 그는 석사 과정 입학을 위해 쾰른과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에 응시했는데, 프라이부르크 입학시험에서 유례 없는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기념으로 그 합격통지서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쾰른행을 선택한 그는 “그때는 후회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잘한 일 같다”라며 웃었다. “그동안 벌레가 허물을 벗듯 저도 연주자로서 허물을 벗어온 것 같아요. 끊임없이 연구하고 터득한 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또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무대에 서고 싶어요.” <■글 / 정은주(객원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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