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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335 건 검색)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햄버거 넷, 셋업!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햄버거 넷, 셋업!
2024. 12. 19 20:43오피니언
... 수사받으실 분들 많을 텐데 배달은 해장국으로 하실 건지 짜장면으로 하실 건지 미리 생각해두길 바란다. 햄버거도 괜찮다. 빨리 먹고 수사받을 수 있으니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박찬일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순대의 비밀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순대의 비밀
2024. 11. 21 20:05오피니언
.... 그러더니 요새는 순대 값이 오른다. 손이 많이 들어가면 값이 오르는 거다. 그 일을 할 사람도 없어서 외국인들 중 순대 기술자가 많다고 한다. 어즈버.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박찬일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장맛이 진짜가 아니라서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장맛이 진짜가 아니라서
2024. 10. 24 21:08오피니언
... 비분강개하는 우리가 왜 우리 맛을 지키자면 외면하고 있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장은 이제 민속박물관에 수장되거나 전시되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박찬일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꿀통배추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꿀통배추
2024. 09. 26 20:48오피니언
... 한정된 일이었다. 이제는 전 국민의 밥상에 직결되는 배추 문제다. 우리는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김치를 먹고 살고 싶다. 그저 그게 꿈이 될까 두렵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박찬일

스포츠경향(총 6 건 검색)

박나래×박찬일, 오늘 ‘노포의 영업비밀’ 밝힌다
박나래×박찬일, 오늘 ‘노포의 영업비밀’ 밝힌다
2021. 08. 23 14:12 연예
tvN 제공오늘(23일) 첫 방송을 앞둔 tvN ‘노포의 영업비밀’을 더욱 즐기기 위한 관전포인트가 공개됐다. ‘노포의 영업비밀’(연출 손창우)은 노포를 찾아 그곳이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던 특별한 영업 비밀을 파헤치는 미식 탐방 예능이다. 평균 업력 50년 이상의 노포들이 대를 이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낱낱이 밝혀질 예정. 레시피뿐만 아니라 마케팅, 인테리어, 영업 철학 등 노포의 성공에 숨겨진 다양한 요소들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박나래와 박찬일 셰프가 노포 조사단으로 의기투합해 기대감을 높이는 가운데, 제작진은 오늘 첫 방송하는 ‘노포의 영업비밀’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세 가지 관전 포인트를 전했다. ■ 최초 공개 노포의 ‘진짜’ 영업 비밀들 이날 방송에서 박나래와 박찬일 셰프는 7, 80여 년 동안 옛 모습을 간직해온 두 노포를 찾는다. 두 사람은 식당을 들어설 때부터 예리한 관찰력으로 노포들이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을 분석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날 방송에서는 노포의 주인장이 지금껏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영업비밀을 직접 공개할 것으로 전해져 궁금증을 돋운다. ■ 군침 유발 감각적 연출 또한 오늘 방송에서는 노포의 음식들을 감각적인 연출로 담아내 시청하는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재료 손질부터 조리 과정까지 섬세하게 담아낸 연출이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군침을 자극한다. 또한 박나래와 박찬일 셰프의 생생한 맛 묘사도 기대 포인트다. 특히 박나래는 한입 먹자마자 “닭살 돋았다. 식감이 너무 좋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았던 음식들의 향연은 이날 방송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 ■ 노포 조사단 박나래 X 박찬일 셰프 케미 ‘노포 조사단’ 박나래와 박찬일 셰프는 이날 첫 방송부터 단원-단장 간 케미를 뽐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에 궁금증이 폭발한 박나래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박나래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는 박찬일 셰프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낼 예정. 특히 박찬일 셰프는 음식을 설명하며 관련된 역사적 지식 또한 아낌없이 풀어내 눈길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한편 tvN 미식 탐방 예능 ‘노포의 영업비밀’은 오늘(23일) 저녁 7시 50분 첫 방송한다.
노포
‘노포의 영업비밀’ 박나래×박찬일, 반전 포스터 공개
‘노포의 영업비밀’ 박나래×박찬일, 반전 포스터 공개
2021. 08. 19 15:55 연예
tvN 제공tvN ‘노포의 영업비밀’의 메인 포스터가 공개돼 눈길을 사로잡는다. ‘노포의 영업비밀’(연출 손창우)은 노포를 찾아 그곳이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던 특별한 영업 비밀을 파헤치는 미식 탐방 예능이다. 평균 업력 50년 이상의 노포들이 대를 이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낱낱이 밝혀질 예정. 레시피뿐만 아니라 마케팅, 인테리어, 영업 철학 등 노포의 성공에 숨겨진 다양한 요소들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박나래와 박찬일 셰프가 출연하는 ‘노포의 영업비밀’은 오는 23일(월)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tvN 제공최근 공개된 메인 포스터에는 상반된 분위기의 두 노포가 담겨 궁금증을 자극한다. 먼저 박나래가 있는 곳은 ‘노포도 힙해질 수 있다’는 그녀의 평소 생각을 반영하듯 세월감과 분홍빛이 어우러져 힙한 분위기를 가득 풍기는 한 노포. 반면 40년 동안 전 세계의 노포를 탐방해온 박찬일 셰프는 본질에 충실한 정통 노포에 와 있어 방송을 통해 다양한 노포들이 소개될 것으로 기대를 높인다. 또한 ‘노포의 영업비밀’이 공개한 영상에서는 박나래와 박찬일 셰프가 본격적으로 영업비밀을 파헤칠 것을 예고해 흥미를 돋운다. 수십 년을 이어온 노포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박나래와 박찬일 셰프는 음식을 맛보는 것은 물론 주방 탐사에도 나선다. 신중한 표정으로 음식을 맛보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두 사람의 모습이 궁금증을 가득 자아낸다. 과연 박나래와 박찬일 셰프가 발견한 노포의 영업비밀이 무엇일지는 본 방송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 (관련영상 URL: https://tv.naver.com/v/21946372) tvN 미식 탐방 예능 ‘노포의 영업비밀’은 오는 8월 23일(월) 저녁 7시 50분 첫 방송한다.
노포
박나래×박찬일, 23일 ‘노포의 영업비밀’ 파헤친다
박나래×박찬일, 23일 ‘노포의 영업비밀’ 파헤친다
2021. 08. 10 11:02 연예
tvN 제공tvN ‘노포의 영업비밀’ 박나래와 박찬일 셰프의 노포 탐방 스틸이 공개됐다. ‘노포의 영업비밀’(연출 손창우)은 노포를 찾아 그곳이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던 특별한 영업 비밀을 파헤치는 미식 탐방 예능이다. 평균 업력 50년 이상의 노포들이 대를 이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낱낱히 밝혀질 예정. 레시피뿐만 아니라 마케팅, 인테리어, 영업 철학 등 노포의 성공에 숨겨진 다양한 요소들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노포의 영업비밀’이 오는 8월 23일(월) 저녁 7시 50분 첫 방송을 예고한 가운데, 박나래와 박찬일 셰프의 노포 탐방 첫 스틸을 공개해 기대감을 높인다. 먼저 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든 박나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박찬일 셰프는 박나래를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짓고 있어 본 방송에서 펼쳐질 두 사람의 케미를 기대하게 만든다. tvN 제공또한 최근 ‘노포의 영업비밀’이 공개한 티저 영상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른 아침 주방에서 식재료 손질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에서 장인의 면모가 언뜻 드러난다. 정성스럽게 육수를 우려내고 가래떡을 자르더니, 곧이어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을 자아내는 떡볶이 한 냄비가 완성된다. 영상 속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며 첫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끌어올린다. (관련영상 URL: https://tv.naver.com/v/21742646) tvN 미식 탐방 예능 ‘노포의 영업비밀’은 오는 8월 23일(월) 저녁 7시 50분 첫 방송한다.
미식 탐방
박나래·박찬일 ‘노포의 영업비밀’, 8월 첫 방송
박나래·박찬일 ‘노포의 영업비밀’, 8월 첫 방송
2021. 07. 28 13:09 연예
각 소속사 제공tvN 새 예능 프로그램 ‘노포의 영업비밀’이 오는 8월 첫 방송한다. ‘노포의 영업비밀’(연출 손창우)은 노포를 찾아 그곳이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던 특별한 영업 비밀을 파헤치는 미식 탐방 예능이다. 평균 업력 50년 이상의 노포들이 대를 이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낱낱히 밝혀질 예정. 레시피뿐만 아니라 마케팅, 인테리어, 영업 철학 등 노포의 성공에 숨겨진 다양한 요소들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노포의 영업비밀’이 오는 8월 첫 방송을 앞둔 가운데 박나래와 박찬일 셰프의 출연이 기대감을 돋운다. 평소 연예계 대표 미식가라 불리는 박나래는 맛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으로 이번 프로그램에 나선다. 박찬일 셰프는 40년 동안 전 세계의 노포를 탐방해온 경력을 발휘해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특히 박나래와 박찬일 셰프의 만남을 통해 서로 다른 취향을 만족시킬 다양한 노포가 소개될 것으로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포도 힙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박나래는 힙한 노포들을 공개하며 트렌드에 관심이 많은 시청자들의 취향을 저격한다. 박찬일 셰프는 노포의 본질에 충실한 정통 노포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프로그램의 깊이를 더할 전망이다. 연출을 맡은 손창우 PD는 “‘노포의 영업비밀’은 오랜 세월 전설로 살아남은 노포의 비결을 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그곳의 음식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영업 비밀들이 펼쳐질 예정”이라 밝혔다. 이어 “스타 미식가 박나래와 대한민국 1호 노포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박찬일 셰프의 조합에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tvN 미식 탐방 예능 ‘노포의 영업비밀’은 오는 8월 첫 방송한다.
노포의 영업비밀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원희복의 인물탐구] 책 낸 B급 주방장 박찬일… 펜과 칼로 삶과 인생을 요리하는 셰프(2017. 01. 10 13:42)
2017. 01. 10 13:42 사회
한편에서는 셰프의 화려한 요리경연과 미식가들의 음식평이 벌어진다. 전국의 유명 맛집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온통 화면을 화려한 ‘먹방’(먹는 방송)이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취업준비생들이 3000원짜리 컵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시간에 쫓긴 택배기사는 2000원도 안 되는 냉동 컵밥을 데워 운전석에서 혼자 먹는다. 요즘 ‘혼밥’(혼자 먹는 밥)은 보통의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혼밥을 생각해보자. 쓸쓸하게 혼자 먹는 밥이 지금의 국정난맥을 불러오지 않았을까. 서로 어울려 밥을 먹으며 남의 말을 듣고, 맞장구치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이 자연스런 행위다.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으며 ‘하하’ 웃고 저녁을 보내는 것이 일상의 가장 큰 행복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그것을 못했던 것 같다. 대통령이 혼밥을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 많은 젊은이들이 혼밥을 하고 있다. 정치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 문제인 ‘정상적으로 먹는 것’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TV 드라마를 보며 혼밥하는 대통령 이렇게 말하는 그는 요즘 ‘잘나가는 셰프’인 박찬일이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서울 강남의 청담동에서도 일해본, 나름 요리사 세계에서 알아주는 셰프다. 지금은 광화문에서 ‘광화문 몽로’와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 두 곳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단, 그는 식당의 소유주가 아닌 월급사장이다. 그가 최근 에 쓴 글을 모아 (경향신문사 발행)라는 책을 냈다. 박 셰프가 말한 TV 드라마를 보며 혼밥하는 대통령의 일상은 ‘비선실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권력의 구조적 상징물이다. 그만큼 먹는 것은 정치와 밀접하다. 오죽했으면 대권주자의 공약으로 ‘저녁이 있는 삶’이 나올 정도였을까. 비단 정치만일까. ‘먹는 것’은 생물학적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고, 여기에는 인간의 욕망과 자존심, 더러움과 치사함이 다 배어 있다. 흔히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는 논란에는 매우 심오한 철학적 이치가 담겨 있다. 누가 이를 부인할 수 있을까. / 이석우 기자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는 것’을 천박하다거나 외면하는 척한다. 아니면 일류 미식가를 흉내내거나, 매우 고급스러운 경험담만 얘기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고상하고 품위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셰프들은 이를 매우 고급스럽게, 우아하게 포장한다. 그래야 비싼 가격을 매겨 매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요리에 소금 하나 뿌리는 행위조차 과장한다. 그래야 요리가 예능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B급 주방장 박찬일의 요리세계는 그런 허세나 과장과 거리가 멀다. ‘제면노동자의 어깨’, ‘화상으로 가득한 요리사의 손’, ‘신경이 끊어진 도마 노동자의 손가락’, ‘밥때 놓친 택시운전사’, ‘학원을 마치고 조악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뜯는 어린 학생들’…. 그의 눈에 비친 요리세계는 대부분 사실적이다. 책에 등장하는 요리도 계란찜, 사골국, 매생이국, 졸업식 짜장면, 통만두, 분홍색 소시지, 설렁탕, 아랫목의 아버님 밥, 순대, 돼지국밥 등 서민적이다. 문창과 나와 기자생활 8년·요리사 18년 박찬일 셰프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오지 않은 중학교 졸업식 날, 그렇게 짜장면을 먹고 싶었지만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대학(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나와 잡지사 기자를 했다. 8년간 한 기자생활을 때려치우고 이탈리아로 유학가 요리와 와인을 배웠다. 다행히 기자 출신이라는 이점으로 요리와 관련된 글을 쓰는 몇 안 되는 요리사로 통했다. 덕분에 이번에 책을 냈다. 기자가 “책을 보니 칼보다 여전히 펜을 들고 있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치켜세웠다. “기자는 8년 했고, 요리사는 18년 했다. 몸은 이쪽(칼)에 있어도 자연스럽지 않다. 그것(펜)을 하기 싫어서 그만두고 이쪽(칼)으로 왔는데. 아이러니다. …사실 요리사로는 먹고살기 어려웠다. 이탈리아에서 요리 공부하고 돌아와 어떤 식당에 취직하는데 80만원 준다고 하더라. 그것도 나이 서른이 넘으니 안 뽑으려고 했다. 겨우 취업했는데 급여가 너무 적어 원고를 한 꼭지씩 썼다.” 요즘은 셰프하면 선망의 직업(처럼 보이지만)이지만, 2002년만 해도 셰프라는 이름은 고급호텔에서나 통용되던 이름이고, 그냥 요리사, 심하게 말하면 주방장이었다. 다행히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요리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요리사를 보는 문화가 달라졌다. 게다가 요리와 요리사의 세계를 ‘맛있게’ 알려주는 사람이 드물었다. 펜으로 먹고살다 칼을 잡았던 그는 이 분야를 맛있게 요리할 수 있던 적임자였다. 그의 요리에 관한 글은 그렇게 시작했다. 최근 박찬일 셰프가 출판한 . / 경향신문 자료사진 책을 보면 ‘아비들은 밥을 벌다가 죽을 것이다’ ‘근육과 내장이 멈추지 않도록 우리는 배를 채워야 한다’ 등 표현이 처절하다. 이탈리아에 유학까지 했다면 좀 더 세련된 용어, 좀 더 고급스런 요리를 소개하면 몸값도 오르고 식당 매상도 오르지 않을까. “그럴 것이다. 이 세상의 이너서클(부유층)과 교류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음식을 팔면,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 박찬일이라는 내 인생의 뭐랄까….” 박찬일의 본질과 맞지 않아선가. “그렇다. 나의 본질이 그렇다. 시장통 할머니들이 담요를 덮어쓰고 찬 도시락을 먹는다. 배달밥 5000원이 아까워 식은 도시락을 물에 말아 먹는 모습을 보면 울컥하다. 그러나 내가 뭘 할 수 있나. 싸구려 감정 같은 것을 느낄 뿐이다. 그런 감상적인 것, 그것이 나의 본질이다. 글쟁이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세상을 저주하고 감상적인 연애 얘기를 하는 정서, 그런 ‘퇴폐적인’ 정서를 버려야 하는데, 못 버리는 것이다.” 스스로 ‘B급 주방장’이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 “글쓰기에도 주류가 있는데, 나는 거기에 끼지 못한다. 소설로 신문사나 유명 문예지로 등단해서 이름을 날리겠다는 생각보다 늘 변두리에 머물렀다. 살기도 서울의 변두리에서 살았고, 고등학교·대학도 변두리를 다녔다. 엘리트의 길을 걸어본 적이 없다. 요리사가 되어 청담동에서 요리를 하면서도 주류 편에 서지 못했다. 요리업계에서 주류가 되려면 영향력이 있는 사람과 사이가 좋아야 하는데, 그것을 못했다.” 그는 이를 ‘B급 정서’라고 표현했다. 그는 “나도 그렇게 있는 사람들에게 잘 보여 식당도 잘되게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늘 그래 왔다”고 고백했다. 왜 기자가 싫었나. “선배(그는 기자를 깍듯이 ‘선배’라고 불렀다)도 알다시피 기자는 특종을 해야 하는데, 나는 특종을 못했다. 또 기자는 싫은 사람도 만나야 하는 숙명이 있는데, 나는 그걸 못하겠더라. 나는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다. 혼자 있기 좋아하고. 남 앞에 서면 얼굴이 붉어지는 그런 사람인데…. 회사원으로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도 잘 못하고, 못 견디겠더라.” 마감이라는 규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겠지. “취재 못했다고 위에게 깨지고…. 더이상 선배, 동료들 괴롭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른 적당한 일을 찾다가 요리를 배우기로 작정했다. 나름 ‘먹는 것’에 예민했던 느낌을 살렸다. 결혼해 아이들까지 있던 그는 집사람에게 ‘도저히 기자짓 못하겠다, 요리를 배우겠다’고 졸라 겨우 허락을 받았다. 집사람과 아이들을 처가에 보내고 전세금을 달랑 빼들고 혼자 이탈리아로 떠났다. ‘6개월만 파스타 만드는 것 배우고 돌아와 가게를 차리자’는 약속을 깨고 그는 2년 반씩이나 이탈리아에 머물렀다. 그는 “프랑스 요리와 쌍벽을 이루는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다보니 너무 재미있고, 와인도 흥미로워 공부가 길어졌다”면서 “거기서도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가지고 간 전세금은 모두 써버렸다”고 말했다. 귀국해 2007년 청담동 부자동네 음식점에 취업한 그는 새로운 식문화를 만들었다. 양식당인데, 고등어 조림을 메뉴에 넣고 취나물을 쓰고 돼지고기 스테이크를 선보였다. 이탈리아식인지, 한국식인지 모를 요리를 선보인 것이다. 박찬일 셰프가 그가 근무하는 '광화문 몽로'에서 자신의 요리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기존에는 스테이크 하면 소고기에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이고 수입재료를 쓰는 등 외국음식을 외국음식답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양식에 우리 재료를 썼다. 이것은 서양의 유명한 요리사들이 이미 실행하고 있던 것이다. 알랭 듀카스(유명한 프랑스 요리사)가 일본에 프랑스 식당을 냈는데, 일본산 재료를 썼다. 맛있는 요리는 재료가 신선해야 한다. 그러려면 산지에서 제철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요리의 기본이다. 청담동에서 그런 식으로 했다.” 그는 국산재료를 사용하면서 산지를 분명히 밝혔다. 어디 산 닭, 어디 산 문어, 어디 산 미나리까지. 산지의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이후 푸드마일리지(재료가 멀리서 오는 것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 개념으로 구체화됐다. 당시 그런 개념을 도입한 요리사는 별로 없었다. 이렇게 영업한 청담동 식당은 대박이 났다. 산지에서 제철 재료 사용해야 좋은 음식 그는 광화문과 서교동에서 ‘몽로’라는 음식점 2곳을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의 요리철학에 동조하는 투자자들이 자본을 모아(물론 그도 출자하고) 영업이익을 내면, 투자자에게 분배하는 방식이다. 가격은 강남 유명 음식점보다는 싸지만, 일반 밥집보다는 비싸다. 그가 책에서 표현하는 대상들인 ‘밥때 놓친 택시운전사’나 ‘학원을 마친 어린 학생들’은 먹기 어려운 수준이다. 글과 실제의 차이인가. “그렇다. 우리 식당은 내가 글에서 말하는 주류 고객에 비추어 비싼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관행적으로 쓰는 재료, 관행적인 요리에 들인 공, 그런 것을 못한다. 더 많은 인력, 더 좋은 재료, 더 좋은 위생으로 손님을 접대하다보니 조금 비싸다. 그리고 요리사의 주5일 근무, 연월차 등 노동조건을 분명하게 지킨다.” 그는 우리 음식점의 원가구조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6000원짜리 밥상은 세금과 카드수수료를 제하면 주인 손에 쥐어지는 돈이 5000원 수준이다. 거기에 인건비와 임대료를 지불하면 재료비는 1500원 선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음식점은 인스턴트를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재료비 3000원짜리 학교급식이 더 친환경적이고 좋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오는 지금 식당에 만족한다. 그의 식당 주고객은 봉사를 받으려는 개념보다 비슷한 정서와 철학을 공유하려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많이 온다. 그는 책에서 ‘요리사는 불행한 직업’이라고 표현했다. 그 이유에 대해 “요리사는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퇴근할 때 일하고, 식구들과 저녁밥을 한 번도 같이 먹을 수 없는 직업”이라며 “그러면서 요리사는 대부분 자기가 만든 음식을 사 먹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 요리사 월급이 최저임금 수준의 박봉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에 식당이 50만개 정도가 있고, 종사자를 3명씩만 잡아도 150만명”이라며 “TV에 나오는 50명 정도만 빼고, 나머지 요리사는 다 어렵다, 150만명 중 50명이면 변호사 시험 보는 것이 훨씬 가능성이 높다”며 웃는다. 그도 18년 요리사를 했지만 아직 집 한 칸 장만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펜이 싫어 칼을 들었다. 그 스스로도 “글 쓰는 것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글쟁이와 요리사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글쟁이는 펜으로 세상과 현실을 ‘요리’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찬일 세프는 천상 요리사다. 소고기나 생선만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인생도 요리하는 그런 양수겸장의 요리사 말이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레이디경향(총 2 건 검색)

[프런트 에세이]박찬일 작가의 겨울, 속초에는 청어구이와 국수가 있었다
2011. 02. 07 12:12 문화/생활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백석의 시 ‘국수’ 중에서 백석의 시는 평안도 사투리를 많이 써서 지금도 그 의미를 정확히 알아내기 힘들다. 그렇지만 그냥 그 한겨울 동치미 같은 짱짱한 시어와 구수한 국수의 미각이 고루 씹힌다. 한겨울, 국수 한 그릇이 그리울 때면 백석의 시가 그토록 사무칠 수 없는 것이다. 시가 딱 어떤 식의 국수를 말해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평양식의 냉면이나 온면인 듯하다. 동티미(동치미)가 나오고, 거기에 꿩 고기가 등장하니 말이다. 지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냉면 육수를 내는데, 원래 평양식은 동치미에 닭이나 꿩, 그 밖에 고기 삶은 물을 섞는 게 철칙이다. 그래서 냉면은 여름 국수가 아니라 겨울이어야 맞는다. 여름에는 동치미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냉면 마니아는 동치미 없는 여름냉면은 ‘냉면인 척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그리도 딱 들어맞는 설명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요즘은 겨울냉면이라고 어느 집에서 제대로 된 ‘동티미’를 만들어 육수를 낼 것이겠냐만. ‘동치미 맛’의 요상한 국물에 인공조미료 맛이 고작인 경우가 많아 진짜 냉면을 먹었던 평안도 출신 노인들이, 백석이 부럽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내게는 한 친구가 있었다. Y였다. 그는 얼굴이 맑고 하얘서 소주 한 잔을 마시면 투명한 실핏줄이 볼에 가득 찼다. 술잔을 잡은 손가락은 하얗다 못해 소주잔처럼 투명했다. 냉동 꽁치는 비렸다. 간장에 살점을 적셔 먹었다. 소주로 헹구지 않으면 썼다. “청어가 먹고 싶어.” 그 겨울은 백석의 국수는 아니어도 청어는 흔했다. 청어라니. 반짝이는 비늘 갑옷을 입은 늘씬한 유선형의 몸매에 푸른빛 눈동자의 청어라니. Y가 입은 것은 청어의 등뼈를 닮은 헤링본 코트였다. Y의 옷맵시는 생선 등뼈처럼 가늘고 곧았다. 마장동에서 진부를 넘어가는 마지막 버스를 탔다. 거진에서 생태찌개를 먹었다. “청어 떼는 모두 남하했을까.” 거진 앞바다에서 청어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부두에 매어둔 배들이 심상치 않은 밤바람에 쓸리며 우드득 삐걱, 관절 꺾는 소리를 냈다. 그 시절에는 아직 명태잡이 배들이 출어를 했다. 만선을 기원하는 부적 같은 깃발들이 배에서 나부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낮게 날아서 어둡고 먼 바다로 사라졌다. 이북 사투리를 쓰는 주인이 내어준 방에서는 군인의 양말 냄새가 났다. 버석거리는 이불을 덮고 누웠더니 코가 시렸다. 그 시절에는 윗목에 놓아둔 자리끼가 얼던 때였다. 청어가 사라지기 전이었다. 아침에 안주인은 뜨거운 물을 대야에 가득 부어주었고, 고양이 세수를 마친 우리가 7번 국도를 타고 속초 쪽으로 내려온 것은 다음날 오전이었다. 속초 앞바다는 사납게 파도를 백사장에 실어 날랐다. 간장 종지처럼 작고 위태로운 가자미잡이 배 두어 척이 멀리 수평선에서 자맥질하듯 시선에 잡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Y의 볼은 더 붉어졌다. 바람이 Y의 따귀를 갈겼다. “이젠 청어를 먹어야지.” 바닷가 한쪽의 작은 포구에 을씨년스러운 천막을 두른 막횟집 서너 곳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잡어 서너 마리에 오징어를 섞어 횟감 한 채반을 만들어 팔았다. 횟감들이 들어 있는 함지박 한쪽에 비늘이 반짝이는 고기가 한 무더기 놓여 있었다. “청어다!” 방파제 앞에 아낙이 화로를 놓아주었다. 트라이포드 더미가 어깨로 바람을 받아내고 있어서 따스하고 아늑했다. 칼집을 내고 굵은소금을 뿌려 청어를 구웠다. 기름이 치익, 칙 숯불 위에 떨어져 연기를 피워 올렸다. 청어 살은 부드럽고 달았다. 가늘고 탄력 있는 청어의 가시가 드러났다. Y의 헤링본 코트에 청어 연기가 뱄다. Y는 드라이클리닝을 하지 않았는지, 서울에서도 청어 냄새가 났다. 달콤한 무에 버무린 물가자미회도 좋지만 그 겨울에는 단연 청어구이였다. 관광객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뻔한 생선회를 먹고, 현지인들은 청어를 굽는 게 포구의 겨울 풍경이었다. 청어가 없으면 가자미도 굽고, 노가리도 구웠다. 숯불이 아니라면 번개탄이라도 피우고 기침을 하면서 나무젓가락질을 했다. 고개를 돌리면 멀리 눈을 인 설악이 보였다. 한동안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던 청어 떼가 강원도 앞바다에 돌아왔지만 이제 그 포구에 청어 굽는 풍경은 없다. 번듯한 회센터가 생기고 관광객의 자가용이 줄을 잇는다. 고단한 아주머니들의 호객하는 손짓만 요란할 뿐 청어의 맛은 없다. 어느 포구는 포장마차를 싹 걷어내고 무슨 현대식 건물을 얹었는데, 이게 기가 딱 막힌다. 건물의 멋까지는 아니어도 수수한 기운은 있어야 하는데 오직 손님을 왕창 받아서 재빨리 회전하는 데 머리를 쓴 흔적만 남았다. 딱 사각형의 홀은 시장통처럼 시끄럽고, 피곤한 아르바이트생이 거칠게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른다. 풍류까지는 아니어도, 사람 사는 맛까지는 아니어도 우리가 바라는 소박한 서정까지 싹 지워버렸다. 나는 홧술을 마시듯, 소주병을 비워버리고 울분을 토할 데가 없어 바다만 바라보았다. 바다는 그대로인데, 청어도 돌아왔는데 정 따위는 없어져버린 그 바다가 무엇이랴. Y는 못내 섭섭해서, 울상이 된 것이 지난해의 어느 날이었다. 청어가 돌아왔으나 그걸 먹으러 속초로 가지는 않는다. 어디 구울 데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이 도시의 한 구석에서 소시민적으로 청어를 먹는다. 얼마나 많이 잡히는지 작년 초겨울에는 기십 마리가 들어 있는 한 상자를 만원짜리 한 장이면 살 수 있었다. 그걸 잡은 어부에게 미안한 값이었다. 어획이란 양식과 달라 예측을 못하니 그리 되었겠지만 스무 해나 넘게 새침하게 사라져버리더니 이렇게 마구 쏟아질 건 또 뭐냐 싶다. 적당히 존재를 잊지 않도록 그렇게 사람에게 잡혀주면 안 되는 것일까. 청어는 튀김도 맛있다. 가시가 연해서 와작와작 씹으면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회도 물론 좋다. 가시가 많아 손질이 어렵지만 숙달된 요리사의 칼끝을 만나면 감칠맛과 혀에 닿는 촉감이 뛰어난 횟감이 된다. 일본에서는 대접받는 초밥 거리이기도 하다. 칼집을 잘 내서 쪽파를 뿌려 초밥을 만들면 묘한 맛을 낸다. 누구는 청어회에서 부싯돌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화이트와인과 아주 잘 어울릴 것이다. 기름지니 상쾌한 화이트와인과의 궁합이 좋을 수밖에 없다. 회로도 맛있으나 나는 구우면 더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기름이 많은 생선이라 구우면 자글자글하게 기름이 배어 맛이 기막히다. 특히 알이라도 배면 그 고소한 알집 맛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서민의 캐비아라고 불러도 될 맛이다. 강원도에는 세 가지 ‘알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명태알, 가자미알, 청어알이다. 모두 기막힌 맛이지만 나는 청어의 손을 든다. 어디 청어알젓이 있다는데, 워낙 귀한 것이라 맛을 보지 못했다. Y에게 물어봐야겠다. Y는 속초 출신은 아니었지만 워낙 그 동네를 자주 다녀서 아주 토박이 급이었다. 그의 서울살이는 곤란했으며, 배가 고팠다. 그는 술이 취하면 청어를 찾았다. 겨울 바닷가에서 아버지랑 구워 먹던 청어를 그리워했다. 아니면 한겨울 맛있는 김치를 찾았다. Y가 김치 얘기를 꺼내면 아무도 김치에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그런 건, 김치가 아니었으니까. “양양 사람들은 김치를 산에 묻어. 김치를 꺼내려면 아버지가 끄는 리어카를 타고 산에 가는 거야. 두어 해 이상 묵은 김치가 그 산에 있어. 산이 김치를 익혀. 여름을 여러 번 넘겨도 김치는 짱짱해. 코가 빨갛게 얼어서 꺼내온 김치를 썰어 먹는 거야. 한겨울에는 김치에 살얼음이 얼어서 엄마가 부엌칼을 대면 서걱서걱, 소리가 나. 아버진 김치도 나오기 전에 그 김치 써는 소리에 벌써 소주를 한 병 마셨을 테고.” 청어가 살을 다 내어주고 가지런한 등뼈와 가시를 예쁘게 드러냈다. 술은 이미 얼큰했다. 선주후면이라고, 술을 마셨으면 국수를 먹는 게 순서였다. 국수는 중앙동이야. 그건 Y 아버지의 루트였을 것이다. 눈이 우르릉거리는 사나운 날엔 국수를 해 먹는다. 애곤지 알이 명태 머리 꼬리가 처박는 폭설. 된장을 푼 멸치 국물이 가스 불에 설설 맴도는, 까닭 없이 궁핍한 서울. 엉덩이 들고 홍두깨로 민 반죽을 칼질하고 밀가루 뿌려놓은 긴 국숫발. 바다 모래불 가 눈발을 그리는 20년 객지, 하며 창밖에 펄펄 날리는 하늘 눈사태 바라보는 나는 이런다, 이런 날은 이 조태 칼국수만이 저 을씨년하고 어두운 날씨를 이길 수 있다. 고형렬의 시 ‘조태 칼국수’ 중에서 조태란 주낙으로 잡은 명태라고 한다. 그물이 아니고 낚시로 잡은 것이니 살결이 미끈하고 상처가 없다. 그물 안에서 몸부림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생선은 살에 젖산이 쌓여 맛이 없다. 주낙으로 잡으면 생선의 질이 훨씬 좋다. 나는 조태 칼국수라는 걸 먹어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맛은 가늠이 된다. 속초 출신의 시인 고형렬은 이 국수를 그리워할 것이다. Y가 먹던 청어는 20년 동안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몇 해 전 다시 우리 바다에서 대량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청어가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고형렬이 그리워하는 명태는 잡히지 않는다. 일본산 명태로 만들어도 맛은 비슷할지 몰라도, 고향 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졌다는 건 그에게 심리적 허탈감을 남겼다. 그의 마음이 무거운 건 ‘20년 객지’의 을씨년스러운 날씨 탓만은 아닐 것이다. Y의 뒤를 따라 중앙동에 갔다. 낮은 지붕의 냉면집 왁자한 실내는 외국어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가 가득했다. 서울의 냉면집에서는 평안도 사투리, 속초에서는 함경도 사투리가 제격이었다. 찌그러진 양은주전자에 담긴 육수가 구수했다. 누구는 국수야말로 혁명가의 음식이라고 했다. 목이 미어지게 재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건 차가운 국수, 냉면이라야 가능할 것인지도 몰랐다. 뜨거운 국수를 그렇게 빨리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Y는 냉면이 나오자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고명을 안주 삼아 소주잔이 빨리도 뒤집어졌다. 그것 역시 그의 아버지의 습관이었을 것이다. 속초의 냉면 고명은 독특했다. 편육 대신 붉고 촉촉하며 감미로운 무엇이 얹어 있었다. 홍어회도 아니고 가자미 맛도 아니었다. Y가 흐흐흐, 웃으며 말했다. “명태회야. 명태에 양념을 쳐서 놓으면 이렇게 촉촉하고 꼬들꼬들한 맛이 된다네.” 명태로 칼국수 국물을 내고, 냉면 고명도 얹는다. 여름 오징어와 겨울 명태 없이 속초의 맛을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오징어며 명태며 도시에서 만만한 재료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Y를 따라 다시 중앙동으로 속초 앞바다를 가보고 싶다. 단단히 삐친 그가 마음을 쉬이 돌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속초에 가야 속초 맛이겠지. 편집 후기 이맘때쯤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은 단연코 김밥이다. 1년 중 오직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도, 각종 몸에 좋은 재료들을 사용해 맛깔 나게 버무려낸 고급 음식도,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폼 나는’ 음식이 아니라 아쉽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실이 그렇다. 불규칙한 취재 일정과 징글징글한 마감에 쫓기는 싱글녀에게 김밥은 쓰린 배 속을 채우기에 무척 적합한 음식이다. 마음이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끈한 국 한 대접에 야들야들 구운 고기 한 점, 쌉싸래한 나물과 풋풋하게 막 버무린 겉절이 한 젓가락을 입 안 가득 밀어 넣고 넘치게 황홀한 행복을 느껴보고 싶지만 현실은 결국 컴퓨터 앞에 앉아 은박지에 돌돌 말린 김밥 한 줄을 우물거리는 데 그치고 만다. 그나마 오늘은 김밥 속 밥이 따뜻해서 맛있게 느껴지니 다행. 바로 앞에 단체 주문이 있어서 준비해뒀던 걸 다 팔아버려서 새로 말아야 한다더니, 5분이나 기다린 보람이 있다. 지금이야 이렇게 투덜거리며 김밥을 먹지만, 사실 김밥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놀러가는 날=김밥 먹는 날’이라는 공식이 있었던 그때, ‘김밥’은 뭔지 모를 두근거림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운동회나 소풍 가는 날에는 항상 비가 오지 않길 기도하며 잠들어서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도마 위에 놓인 김밥 끄트머리를 집어 먹곤 했다. 특히 엄마 대신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내 김밥 도시락은 친구들 모두 ‘맛있다’고 탐내는 것이라 점심시간이면 어깨가 으쓱하곤 했다. 잘게 다진 쇠고기를 양념한 뒤 바특하게 볶아 한 김 식힌 뒤 하얀 밥 위에 소르르 한 줄로 뿌리고 나머지 재료들(단무지며 시금치와 당근 같은 것들)을 차례로 올려 말아낸 ‘할머니표’ 김밥은 맛도 모양도 최고였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늘 “다른 애들은 뭐 먹드노? 젊은 엄마들은 맛있는 거 싸주겠제?”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께서 성묘 가실 때 가져가는 촌스러운 찬합에 가득 담긴 그 쇠고기김밥이 나는 자주 먹고 싶었지만, 김밥을 싸는 날이면 할머니께서 늘 새벽에 일어나신다는 걸 알기에 늘 “먹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다.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던 김밥은 이제 가장 쉽게, 가장 흔하게 먹는 음식이 됐다. 집 앞에만 나가면 김밥으로 일구어진 ‘세상’도 ‘나라’도 ‘천국’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그토록 설레는 맛은 아니다. 단무지, 햄, 시금치, 달걀, 당근…. 들어갈 건 다 들어갔는데도 뭔가 부족한 맛이다. 아마도 ‘쇠고기김밥이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싶어 한동안은 주야장전 쇠고기김밥만 시켜 먹은 적도 있다. 하지만 아마 ‘16년 동안 김밥을 연구해온’ 달인이 만든 김밥에서도 그 달곰삼삼하면서 양감이 느껴지던 ‘할머니표 김밥’ 맛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가 성석제는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라 말한 바 있다. 똑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누구와 먹는지, 어디서 먹는지, 어떻게 먹는지에 따라 각각 전혀 다른 맛으로 기억될 수 있다. 음식마다 기억과 그리움이 깃들 때, 인생은 더 맛있어진다. 그러고 보면 단순히 혀를 즐겁게 하기 위해 혹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하는 숟가락질은 무척이나 무의미하고 불행한 행위일지 모른다. ‘자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김밥을,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매일 끼니때마다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결코 기쁘지는 않다. 다음 번에는 ‘김밥’이 아닌 ‘추억’을 먹고 싶다. 박찬일 작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 소설을 전공한 뒤 잡지 기자로 활동하던 중 돌연 요리에 흥미를 느껴 유학을 떠나 이탈리아 피에몬테에 있는 요리학교(ICIF)를 다녔다. 시칠리아에서 주로 일하다 2002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청담동 등지에서 ‘뚜또베네’, ‘논나’와 같은 식당을 열어 성공했다. 지금은 홍대 앞 ‘라꼼마’에서 일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와인 스캔들」 등이 있다. <■글 / 박찬일 ■진행&사진 / 이연우 기자>
프런트 에세이
박찬일 셰프의 이탈리아 요리 스캔들
2008. 11. 11 리빙
요리 전문 글을 쓰던 기자가 펜 대신 국자와 프라이팬을 손에 쥐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박수만 칠 순 없는 노릇이었을 터. 정작 본인도 새벽에 출근해 밤 12시가 넘어야 앞치마를 풀 수 있는 이 직업을 ‘중노동 중의 중노동’이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하지만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에도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꽉 찬 식당을 보니 그 보람의 맛은 글발로 독자를 감흥시키는 그것에 못지않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훌쩍 떠나 시칠리아 산골 식당에서 그야말로 ‘굴러가며’ 혹독한 요리 수련을 받았다는 박찬일 셰프가 청담동에 이어 얼마 전 가로수길에 입성했다.신사동 가로수길이 청담동, 삼청동에 이어 ‘밥 한번 먹자’는 약속의 중심지대로 옮겨진 지 오래다. 해 질 무렵 퇴근길, 새로 시작되는 반절의 하루가 남아 있는 시간. 길 위에 서 있는 수많은 만남과 약속의 주인공들에게서 풍기는 북적거림으로 이 거리는 긴장과 흥분의 기운이 감돈다. 끓어 넘칠 듯 김을 뿜어가며 들썩이는 냄비마냥 들떠 있는 가로수길에서 유난히 역동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레스토랑이 있다. 얼마 전 문을 연 ‘트라토리아 논나’라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다. 이곳이 단순한 맛집을 넘어서 가로수길의 명소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가로수길치고 널찍한 규모의 홀, 혹은 애중간한 맛에는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가정식 이탈리아 음식 맛 때문만은 아니다. 기자 일을 하다 훌쩍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감행한 그는 요리학교를 마치고 시칠리아의 산골 식당에서 요리사로 활동했다. 그가 한국에 돌아와 청담동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에 이어 이곳의 주방장이 됐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가로수길로 향하게 만들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떠나 요리를 배우고 돌아온 셰프… 그렇다고 판타지는 갖지 마시길. 하루 종일 불 앞에 서서 요리를 하고 새벽 무렵 퇴근하니 정작 집에서는 음식 하는 일이 절대 없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이탈리아 요리를 주문했다. 테이블 위엔 어떤 음식이 서빙되었을까. 쫄깃한 소 내장과 파스타 면발이 만났다 트리파파스타“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에선 소 내장이 저렴해 요리 재료로 자주 사용돼요. 쫄깃한 맛이 일품으로 삶아서 양념에 절여두었다가 겨울에 보양식으로 먹어요”이 요리는 파스타에 소 내장인 트리파를 넣었다. 트리파와 함께 돼지고기 안심 부위를 넣어 쫄깃하고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 맛을 즐길 수 있다. 팬에 오일을 두르고 잘게 썰은 마늘과 양파, 고추, 그리고 트리파와 돼지고기 안심을 넣고 볶는다. 링귀네를 끓는 물에 삶아 건지고 만들어둔 채소와 함께 버무려 내면 된다. 고기를 곁들인 파스타 요리지만 거하고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적당히 쫄깃한 파스타 면발과 어우러진 부드러운 맛이 특징. 고추가 들어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입맛을 사로잡는다. 대추, 고사리가 들어간 코리언 스타일 고사리케이크와 양갈비구이“어린 양갈비를 뼈 없이 살만 발라내 요리했어요. 가니시로 감자를 곁들였는데 여기에 한국 식재료인 대추와 고사리를 넣어 가을 분위기를 냈죠.”고사리와 대추를 잘게 썬 뒤 찐 감자와 섞어 약간의 간을 해 케이크 모양을 만든다. 양갈비는 뼈를 발라내 구운 뒤 감자케이크와 곁들여 접시에 담는다. 마지막으로 올리브유를 살짝 뿌려준다. 부드러운 양갈비와 감자케이크 맛이 일품. 대추와 고사리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인상적이다. 와인을 졸여 만든 소스에 찍어 먹으니 양고기가 아직은 어색한 사람들도 친숙하게 맛볼 수 있을 듯하다.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꼬들꼬들한 맛 참치샐러드“토스카나 스타일 요리예요. 토스카나는 해안과 내륙이 둘 다 발달돼 해산물이 참 다양해요. 생참치를 말려서 샐러드를 만들었어요. 수분이 빠져 오징어처럼 쫀득한 맛이 특징이죠.”참치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 가을 햇볕에 말린다. 바질과 생크림, 레몬즙을 섞어 참치샐러드에 곁들일 무스를 만든다. 토마토와 리코타치즈 그리고 여러 가지 베이비 채소 등을 곁들여 접시에 낸다. ■촬영 협조 / 트라토리아 논나(02-3443-1278) ■진행 / 이지혜 기자 ■사진 / 이명헌(상상이…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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