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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경제]대재앙 패닉 ‘뱅크런’(2011. 03. 23 16:35)

2011. 03. 23 16:35 경제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ㆍ일본침몰 이쯤 되면 소설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라고 해야 할 듯하다. 영화가 아닌 예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일본의 대지진을 보며 히구치 신지 감독의 (2006)이 떠올랐다. 은 대지진과 화산 폭발이 일어나며 일본 열도가 1년 안에 가라앉는다는 내용의 재난영화다. 도시는 화염에 휩싸이고, 쓰나미가 몰려와 해변가의 사람들을 쓸어간다. 일본침몰은 ‘메걸리스 함몰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본 아래 태평양판이 상부맨틀과 하부맨틀 경계에 쌓이다 맨틀 아래로 빨려들어가면서 일본땅도 쓸려간다는 것이다. 일본을 구하는 ‘영웅’으로는 잠수정 파일럿이 선택됐다. 토시오(쿠사나기 츠요시 분)는 잠수정을 타고 심해로 내려가 폭탄을 투하한다. 맨틀 아래로 끌려가는 판을 끊기 위해서다. 지구로 날아오는 혜성을 폭파시키기 위해 영화 이 선택한 것과 유사하다. 의 원작은 1973년 출판된 코마츠 사쿄의 베스트셀러다. 같은 해 영화로도 제작돼 65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2006년작 은 리메이크작이다. 이 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 속 대지진의 시작은 일본 중부지방 동쪽에 위치한 시즈오카현 스루가만이다. 실제 참극이 일어난 도호쿠의 아래 지역으로 이곳에서도 6.4의 여진이 발생했다. 대재앙의 끝은 후지산으로 설정돼 있다. 이번 대지진으로 후지산이 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으니 어디까지가 영화이고 현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예견하지 못한 것은 딱 하나다. 원전 파괴다. 이런 대재앙이 닥치면 금융시스템도 패닉에 빠진다. 영화 속에서 일본이 침몰한다는 공포감이 퍼지자 사람들은 은행으로 달려간다. 돈을 빼내기 위해서다. 은행 예금 인출사태 즉, 뱅크런이 시작된다. 뱅크런이 발생하면 아무리 초우량 은행이라도 망할 수밖에 없다. 뱅크런은 전염성도 강하다. 공포감을 느낀 예금자들은 문제가 없는 은행에서도 돈을 빼낸다.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고 은행시스템은 붕괴된다. 은행이 뱅크런에 취약한 이유는 은행시스템의 특징 때문이다. 국내 은행은 예금자에게 100만원을 받으면 7만원 정도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대출을 해준다. 대출을 해야 이자수익이 생기고, 이 돈으로 예금자에게 이자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출해주지 않은 7만원은 예금자가 원할 때 돌려줘야 되는 돈이어서 지급준비금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이라면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예금한 돈을 찾으려 할 가능성은 낮다. 이 때문에 은행은 가능하면 최소한의 금액만 은행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굴리려 한다. 국내 정기예금 상품의 경우는 100만원을 예금하면 은행은 2만원만 지급준비금으로 남겨둔다. 문제는 금융시스템이 충격을 입었을 때다.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내 돈을 내놓으라”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어느 은행이든 당장 내어줄 돈은 전체 예금액의 7%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업수익을 많이 내 건전성이 높다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 당장 돈을 내주지 못하는 은행은 파산한다. 중앙은행은 해당은행을 영업정지시키고 긴급자금을 수혈한다. 뱅크런은 지난 저축은행 사태 때도 재현됐지만 규모는 크지 않았다. 예금보험공사 때문이었다. 은행이 지급불능상태에 빠지더라도 예보는 기금을 통해 1인당 5000만원까지는 책임을 져준다. 예금자들은 ‘은행이 망해도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니 무작정 은행으로 달려가는 일을 멈추게 된다. 은 ‘가까운 미래, 어쩌면 내일일지도 모른다’고 운을 떼며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가 그린 대지진, 쓰나미, 화재의 참상은 이제 ‘오늘’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예상이 다 맞지는 않았다. 영화 속에서 보인 무질서는 현실에서 보이지 않았다. 뱅크런도 없었다. 침착함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위기에 더욱 강한 일본인들에게 경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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