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996 건 검색)
- 부친 방화에 ‘중화상’ 사경 헤매는…20대 음악 청년 도움 나선 전우들
- 2024. 12. 17 06:00인물
- 거액 치료비…합법적 모금 나서 중증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있는 손민혁씨(가명). 김강운씨 제공 최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아파트 방화 사건으로 큰 부상을 입은 20대 음악인을 돕기 위해 지인들이 발...
- 민주당 이기헌, 탄핵 표결 당일 부친상…“표결에는 참여할 것”
- 2024. 12. 14 13:32정치
- ...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국회 재표결이 진행되는 14일 부친상을 당했다. 이 의원 측은 부친상에도 탄핵 표결에 참여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에 따르면 이 의원은 이날 부친상을 당했으며,...
- [르포]“‘충청의 아들’ 아닌 수치”…윤 대통령 부친 고향서도 “탄핵”
- 2024. 12. 12 14:43경제
- ...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기로 했다”는 담화 발언을 듣자마자 곧장 채널을 돌렸다. 공주는 윤 대통령 부친인 윤기중 전 연세대 교수의 고향으로,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날...
- 대통령탄핵충청아들부친박근혜윤석열경제탄핵, 국내외 영향
- [한술팁톡]‘저탄고지’ 식단, 고기만 먹기 물릴 땐…전분 묻혀 부친 ‘겉바속촉’ 두부
- 2024. 11. 09 15:00라이프
- ‘도곡동 강쌤’으로 불리는 요리연구가 강현영씨는 전통음식 쿠킹 클래스(@annes_cooking)를 운영하고 있다.
- 한술팁톡
스포츠경향(총 727 건 검색)
- [부고] 나성균 네오위즈홀딩스 의장 부친상
- 2025. 01. 23 10:48 생활
- ■ 나정환(향년 89세)씨 별세, 김명림 배우자상, 나성균(네오위즈홀딩스 의장), 나승윤, 나승신 부친상, 이은성(MBC 정책협력국 부장), 신완재(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책임연구원) 장인상, 김수경 시부상=23일 06시 09분,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9호실, 031-787-1500, 발인 25일 오후 12시30분.
- 부고
- [전문] 박진영, 직접 알린 부친상···“나에게 최고의 아빠”
- 2025. 01. 20 08:38 연예
- 가수 박진영(오른쪽)과 그의 부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가수 겸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 박진영이 부친상 비보를 직접 알렸다. 박진영은 2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늘 ‘더 딴따라’ 마지막 생방송 시작하기 조금 전에 아버님이 하늘나라로 가셨다”며 “제가 일 때문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신기하게도 제가 아버님 병원 10분 거리에서 녹화 중일 때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이어 “덕분에 녹화 전에 살아계실 때 가서 뵙고 또 돌아가시자마자 다시 뵐 수 있었다”며 “사실 아버지가 치매로 오랜 시간 투병하시다 지난 1년 여 기간은 거의 의식이 없는 채로 지내시다 돌아가신 거라 저희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박진영은 종교의 힘으로 슬픔을 이겨내고 있다고도 고백했다. 그는 “어디로 가신지 알고 있고, 곧 ㅏ시 만날 걸 알고 있다”며 “그게 없었다면 정말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아빠라 불렀던 내 Best Friend, 언제나 날 믿어주고 응원해줬던 아빠, 이제 하늘에서 이 글을 읽고 있겠네”라며 “내가 이 정도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정말 아빠 덕분이었다. 고마워 아빠. 아빠는 정말 나에게 최고의 아빠였다. 다시 만나 얘기 많이 나누자”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지인분들께, 죄송하지만 장례는 저희 가족들끼리만 조용히 치를 예정이니 마음으로만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고 했다. ■ 이하 박진영 부고글 알림 전문 오늘 ‘더 딴따라’ 마지막 생방송 시작하기 조금 전에 아버님이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제가 일 때문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신기하게도 제가 아버님 병원 10분 거리에서 녹화 중일 때 돌아가시네요. 덕분에 녹화 전에 살아계실 때 가서 뵙고 또 돌아가시자마자 다시 뵐 수 있었어요. 사실 아버지가 치매로 오랜 시간 투병하시다 지난 1년 여 기간은 거의 의식이 없는 채로 지내시다 돌아가신 거라 저희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돌아가신 아버님을 뵈니 마음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느낌이네요. 그래도 치매 초기에 어린이처럼 순수해지셨을 때 예수님에 관해 들으시고 복음을 완전히 믿게 되셔서 기독교인인 저희 가족들은 그나마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디로 가신지 알고 있고, 곧 다시 만날 걸 알고 있어서요. 그게 없었다면 정말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아빠라 불렀던 내 Best Friend, 언제나 날 믿어주고 응원해줬던 아빠, 이제 하늘에서 이 글을 읽고 있겠네. 내가 이 정도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정말 아빠 덕분이야. 고마워 아빠. 아빠는 정말 나에게 최고의 아빠였어. 다시 만나 얘기 많이 나누자. P.S. 지인분들께, 죄송하지만 장례는 저희 가족들끼리만 조용히 치를 예정이니 마음으로만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부친의 충심 이어받나’ 노엘, 윤대통령 체포에 분노+욕설
- 2025. 01. 16 13:51 연예
- 장제원 전 의원과 그의 아들 노엘.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장제원 전 의원 아들 래퍼 노엘(장용준)이 윤석열 대통령 체포집행에 분노했다. 노엘은 1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침대에서 누워 있다 일어나며 “○발”이라고 욕설을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올렸다. 별다른 설명은 덧붙이지 안?E지만 노엘의 해당 영상은 윤 대통령 체포집행에 대한 분노의 표현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가 앞서 여러 차례 윤 대통령 탄핵 반대와 체포집행에 대해 부정적 의사표시를 해왔기 때문이다. 노엘은 지난달 30일 윤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와 관련한 게시글에 “진짜 역겹다. 페이지 닫아라”는 댓글을 달았다. 또 “다채로운 선동과 리짜이밍(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중국식 발음)”이라며 이 대표를 조롱했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지 43일만에 체포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15일 오전 10시 33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윤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집행하고 신병을 확보했다. 노엘은 2017년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고딩래퍼’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지만 조건 만남 등의 논란이 불거지자 중도 하차했다. 2019년 음주운전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2년 뒤 무면허 음주운전 및 경찰관 폭행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뒤 2022년 10월 만기출소했다. 노엘의 잇단 물의는 장 전 의원을 향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장 전 의원은 노엘의 논란으로 사과문을 올리고 윤석열 캠프 총괄실장직을 내려놨다. 또한 올해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기도 했다.
- [종합] 손정은, 5년만 이혼 고백 “부친상에 이혼까지… 많이 힘들었다”
- 2025. 01. 14 13:28 연예
- MBC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손정은. SM C&C 제공 전 아나운서 손정은이 부친상, 이혼 등 힘들었던 과거에 대해 밝혔다. 지난 13일 KBS Joy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는 아나운서 출신 프리랜서 손정은이 출연했다. 이날 손정은은 서장훈과 이수근에게 프리랜서로서의 비결과 고민 등을 털어놨다. 손정은은 “제가 MBC에서 15년 동안 근무하면서 뉴스 앵커만 했는데, 이미지가 틀에 박혀 있고 냉정한 느낌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고민이다”라며 속내를 털어놨다. 손정은은 “저는 사실 밝고 명랑하고 초긍정적인 편이다. 그래서 아나운서국에서 방송과 실제가 다른 아나운서 1위로 뽑히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서장훈과 이수근에 “그래서 프리랜서를 택했고, 이제는 본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생각해보면 선녀님(서장훈)도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다가 예능인이 되지 않았냐”며 비결을 물었다. 손정은은 프리 선언 이후 3년 동안 소속사에 들어가지 않고, 혼자만의 자기개발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 캡처. 손정은은 “사실 제 인생에 변환점이 몇가지 있었다”며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6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제가 외동딸이어서 그 당시 많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 캡처. 이어 그는 “그 다음 해에는 남편과 이혼까지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매일 웃고 밝은 척하는 게 정신적으로 힘들더라”고 말했다.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 캡처. 이에 서장훈은 “사실 근데 현재 시대 흐름을 놓고 보면 조건(?)은 최고다. 좋은 걸(이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수근도 “이혼 조건이면 순간 들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7개나 될 것 같다”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손정은은 “너무 힘들어서 우선 휴직을 했고, 충분히 쉬면서 인생에 대해 고찰해보니 치유가 되더라”라며 “그 순간부터 MBC를 관둬야겠다는 용기가 났다”고 했다. 한편, 손정은은 2006년 MBC 26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MBC의 주요 보도,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앵커 및 진행을 맡아 간판 아나운서로 활약했으며, 지난 2021년 퇴사했다.
레이디경향(총 8 건 검색)
- [스타 나눔 캠페인]아들의 뜻 이어 장학재단 만든 고 이수현씨 부친 이성대씨
- 2015. 10. 07 15:26 화제
-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서 생활하던 중 전철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수현씨. 그는 여전히 작은 영웅으로 일본인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고 이수현씨의 아버지 이성대씨는 사고 직후부터 현재까지 매년 아들과 같이 일본 유학을 온 아시아 각국의 젊은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의로운 부자 이야기다.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일본 도쿄 코리아타운이 형성된 신오쿠보 전철역에서 한 취객이 비틀거리다 선로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전철을 기다리던 이수현씨는 이를 목격하고 그를 구조하기 위해 선로에 뛰어들었다.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진입하던 열차를 피하지 못하고 취객과 함께 사망하고 말았다. 음악과 스포츠를 좋아했고, 일본에서 무역학을 배우고 싶었던 한국의 평범한 대학생 이수현씨는 그렇게 의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개인주의가 팽배했던 일본 사회는 한 외국인 젊은이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수현씨가 보여준 살신성인의 정신은 그 사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모든 언론이 그의 의로운 행동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전국적으로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2008년에는 ‘너를 잊지 않을 거야’라는 그의 전기적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일본 각지에서 성금의 손길이 이어졌고, 이수현씨의 아버지 이성대씨(78)는 그 성금으로 아들의 이름을 딴 LSH 아시아장학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들 또래의 외국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매년 건넸다. 사고 후 14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네, 그러네요. 정확히 14년 8개월이 흘렀어요. 세월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르네요. 그래도 수현이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도 수현이를 참배하러 오시는 일본분들이 많이 계시니까요. 일본인들이 부산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건 대단하네요. 슬쩍 다녀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나중에 묘지에 가보면 꽃다발이 놓인 걸로 알죠. 또 며칠에 오겠다고 연락을 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오는 9월 23일에도 일본에서 오겠다는 분들이 전화를 주셨어요. 그러면 저희가 묘지까지 안내해드리지요. 그것도 굉장히 신경 써야 할 일인 것 같은데요? 긴장을 놓을 수가 없죠. 저희 부부는 여행도 쉽게 못 가요. 멀리서 오셨는데 저희라도 얼굴을 보여드리지 못하면 미안하잖아요. 그저 수현이를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구마모토 현 곤고지(金剛寺) 명예주지로 계시는 아카보시 젠코 스님은 매년 오셔서 수현이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한국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매년 제를 지내시는 친한파 스님이시죠. 연세가 많고 건강이 좋지 않다기에 올해는 안 오시려나 했는데, 대신 아들을 보내겠다고 하시더군요.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한 이수현씨의 어머니 신윤찬씨. 아드님을 보러 자주 가시나요? 한 달에 서너 번은 갑니다. 부산 시립 영락공원묘지는 개인 관리가 따로 필요 없지만 아들 묘지는 저희 부부가 관리해요. 누가 다녀가셨나 정리가 필요해서 틈이 나면 갑니다. 우리가 자주 손을 보니 수현이가 있는 곳은 늘 깨끗하죠. 벌초할 필요가 없어서 묘지 관계자분들도 따로 손을 대지 않으세요. 왜 이렇게 일본인들이 수현씨를 잊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악연이 많은 사이지요. 과거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무척이나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대요. 그런 상황에서 수현이가 일본인을 구하려고 뛰어들었고 희생됐잖아요. 정작 일본인은 하지 못한 일을 한국 청년이 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과 감동을 받은 것 같아요. 그 일 이후 2002년 월드컵도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를 했고, 또 마침 NHK에서 ‘겨울연가’가 대히트를 치면서 한국에 대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점점 바뀌었고 그 계기가 된 수현이를 잊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고 보니 한일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네요? 맞습니다. 지금은 아베 정권의 우익 정책을 보면서 많이 안타깝죠. 가까워졌던 한국과의 사이가 또 멀어지니 말이죠. 서랍 속에 넣어둔 일본 훈장 이성대씨 부부는 매년 1월과 10월에 일본을 방문한다. 1월에는 ‘고 이수현을 그리워하는 모임’에 참석하고, 10월에는 아들이 다니던 아카몽카이 일본어학교를 방문해 LSH 아시아장학회의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수여하기 위해서다. 올해는 좋은 일도 있었다. 이성대씨가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쌍광장’이라는 훈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나 문화 교류에 힘쓴 외국인에게 주는 훈장이다. 아들의 의로운 죽음 이후 장학금 전달 등 한일 친선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추모식에 가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한결같이 와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그들의 따뜻한 환대에 오히려 저희 부부가 힘을 받고 와요. 아들을 잃고 세상을 다 잃어버린 기분이었지만 아마 그들 덕분에 지금까지 잘 참고 살아오지 않았나 싶어요. 장학금은 어떻게 주시게 됐나요? 그저 부끄러워요. 사비로 하는 것도 아닌데 공은 저희가 다 받는 거 같아서 말이죠. 아들을 떠나보내고 나니 일본 각지에서 성금이 들어왔어요.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언론사나 공공기관이 성금을 모금하는 시스템이 없다고 해요. 따로 모금을 한 적도 없는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성금을 보내신 거죠. 그 성금을 받고 나니 아버지로서 아들이 공부를 못다 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 한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수현이가 다니던 일본어학교 이사장님께 성금을 맡기고 매년 외국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죠. 13년이나 지속하셨다는 것이 대단하네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가 대단한 것은 아니고요. 여전히 LSH 아시아장학회에 성금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과 아카몽카이 이사장님이 대단하신 거죠. 이사장님은 “수현이는 잊혀져서는 안 될 우리의 자랑스러운 학생”이라며 장학회를 위해 애쓰고 계세요. 덕분에 지금까지 18개국 693명의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했어요. 이미 떠나버린 누군가를 위해 꾸준히 기부를 한다는 것은 인정할 만한 일이네요. 지금까지도 성금을 보내시는 분들이 있다는 데 대해 저도 많이 놀랐어요. 일본은 기부문화가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 보여요. 소시민들이 주머니 사정에 맞게 성심성의껏 보내주시는 거죠. 그게 모여서 장학재단이 운영된다는 사실이 참 감동적이에요. 선생님께서도 개인적으로는 동일본 대지진 때 1,000만원의 성금을 내시기도 했잖아요? 매년 힘을 얻고 있는데 작은 돈이나마 보태고 싶었어요. 저희에게 주시는 힘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지요.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서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으셨고요. 장학회 유지를 위해 노력한 분들은 따로 있는데 명예회장이라는 이유로 제가 받은 것일 뿐이에요. 수현이 방에 그동안 아들이 받은 상장이나 공로상을 진열해놓았는데, 제 이름이 새겨진 훈장은 그 옆에 걸어놓기가 민망하더라고요. 그냥 잘 말아서 책상 서랍에 넣어뒀어요. 가슴 속에 영원히 묻은 아들 26세의 나이로 멈춰버린 아들의 모습. 그래서 더 애틋하다. 공부도 잘하고 무슨 일이든 척척 알아서 해서 걱정해본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먼저 떠난 자식을 가슴에 묻고도 부부가 절망과 미련 없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아들을 그리워해주고 기억해주는 많은 사람들의 위로 덕분이었다. 늦은 질문일 수 있겠지만 듣고 싶어요. 이수현씨는 어떤 아들이었나요? 착했어요. 공부도 잘하고 농구, 수영, 태권도 등 여러 가지 운동도 즐겼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나 관심 가는 분야에는 푹 빠져 지내곤 했어요. 생각이 어른스러워서 친구들에게는 ‘영감’이라고 불리곤 했지요. 고집도 세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야 마는 성격이었고요. 1 부산 시립 영락공원묘지에 안치된 고 이수현씨의 추모비와 묘지. 2 고 이수현 추모식에 바쳐진 수많은 꽃다발들. 3 ‘고 이수현을 그리워하는 모임’ 기념사진. 4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의 특별 시사회 현장. 일본 유학은 어떻게 가게 된 건가요? 대학 4학년 1학기 때 수현이가 집으로 전화를 한 거예요.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이죠. 당시는 대부분 영어권으로 유학을 가는 추세라 무슨 소리냐고 했어요. 수현이가 무역학을 전공했는데 ‘지역 연구’라는 과목을 통해 일본에 대해 배웠고, 또 관심이 간다는 거예요. 허락을 할 수 밖에 없었죠. 워낙 성실한 아이라 어딜 가든 좋은 경험을 할 거라 생각했어요. 일본 유학을 못 가게 할걸, 하고 후회하진 않으셨나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우리 집안이 일본과 연이 있나?’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수현이의 증조할아버지가 일본에 건너가서 사업을 하시기도 했고, 또 저희 아버지도 젊은 시절에 일본에 가서 만년필을 만드는 기술을 배워오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광복되기 바로 직전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이런 사실들을 수현이가 모를 텐데 스스로 일본에 가겠다고 했던 걸 보면 좀 묘한 생각이 들기도 해요. 혹시 다른 자녀분도 계신가요? 수현이 여동생이 하나 있어요. 시집가서 해운대 근처에서 저희 부부와 이웃으로 살고 있죠. 손자와 손녀도 태어났고요. 손주들 재롱 떠는 거 보느라 정신이 없어요(웃음). 그런 모습 보면 또 아드님 생각이 나시겠어요? 그럼요. 평생 그렇게 가는 거죠. 수현이가 살아 있었다면 벌써 장가도 가고 자식들도 낳았을 텐데… 하고 말이죠. 이수현씨 추모 모임이나 장학회가 가능하면 오래도록 지속됐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서로 따뜻한 온기가 돼줬던 것 같아요. 그것이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힘이 돼줬고요. 특히 어려운 유학생들을 돕는 장학회는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어떻게든 저희 부부가 살아 있을 때까지는 이끌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해피빈 국내 최초 온라인 공익 포털 해피빈(happybean.naver.com)은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기부와 나눔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누구나 가슴 뿌듯한 기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인 및 기업 후원 문의 031-600-5398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원준희 ■사진 제공 / 이성대>
- 스타 나눔 캠페인
- ‘순애보 사랑’ 나누는 장진영의 연인 김씨 부친이 전하는 메시지
- 2009. 08. 04 11:28 연예
- 영화배우 장진영이 연기한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의 순애보 사랑은 현실에서도 이뤄지고 있었다. 지난해 9월 건강검진 후 갑작스럽게 위암 선고를 받고 10개월째 투병 중인 그녀의 곁에 1년 가까이 간병해온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현재 로스앤젤레스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투병 중 영화배우 장진영(35)이 열애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 언론매체에 의하면 장진영과 상대남인 김 모씨(42)는 지인의 소개를 통해 만났으며 그 시점은 장진영이 위암 선고를 받기 두 달 전이라고 한다. 소속사 측은 이번 열애설이 사실임을 인정하면서도 조심스런 입장을 내보였다. “열애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장진영씨가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은 상황이라 현재는 그냥 조용히 지켜봐주시는 것이 그녀를 위해서 최선의 길인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열애설이 더욱 주목받는 것은 투병 중에도 서로를 아끼고 변함없는 사랑을 꾸려가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 때문일 것이다. 위암 선고를 받기 전에도 두 사람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데이트를 하는 멋진 커플이었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김씨는 장진영에게 일주일에 2, 3번은 꼭 선물과 꽃다발을 안겨주는 다정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혼기가 꽉 찬 두 남녀의 미래에는 행복한 결실만이 남아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장진영은 건강검진 후 위암 선고를 받게 됐다. 여배우로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의 소식이 일파만파 기사화되면서 온갖 흉흉한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장진영 본인에게는 몸도 마음도 매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연인이 옆에 없었다면 그녀가 평정심을 되찾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을까? “연인인 김 모씨는 암선고를 받은 이후에도 한결같이 장진영씨의 곁을 지켰습니다. 항상 애정과 배려가 넘치는 모습이었어요.” 장진영의 소속사 관계자의 이야기다. 그리고 실제로 김씨는 공기 좋은 청계산으로 그녀를 데려가 함께 가벼운 등산을 해왔다. 또 요양 차, 고향인 전주로 거처를 옮겼을 때도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그녀를 간병해왔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두 사람이 가수 김건모의 전주 콘서트를 함께 관람하고 돌아간 사실도 공연 관계자에 의해 확인됐다. 관계자는 당시 두 사람은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VIP석에서 흥겹게 공연을 보고 갔다고 전했다. 장진영의 표정도 밝아 병이 많이 호전된 것처럼 보였단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시련 이후에 더욱 단단해져가고 있는 듯 하다. 장진영은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 머물며 요양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소속사도 그녀의 몸 상태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투병 중인 지난 10월 이전부터 몸담고 있던 예당 엔터테인먼트와 2년 계약을 다시 맺은 것을 보면 그녀 역시 하루빨리 연기 활동을 재개할 날을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강한 의지로 병마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장진영의 연인 김 모씨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서울 방배동의 아파트. 순애보 사랑 주인공 김씨 누구인가 아름다운 순애보의 주인공 김씨는 기사를 통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포토그래퍼 출신으로 현재는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사업가다. 또 아버지가 전남 해남 출신으로 현재 대한민국 헌정회 고문으로 재임하고 있는 김봉호 전 의원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김 전 의원의 가족관계는 부인과 2남 2녀이며 김 모씨는 그의 차남이다. 김 전 의원은 제 10, 12, 13, 14, 15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국회 부의장까지 지닌 원로 정치인이다. 기자는 김봉호 전 의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아들에 대한 보도가 나간 후, 언론을 대하는 것을 매우 곤란해했다. “기자에게 얘기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내 코멘트까지 기사화된 걸 봤어요. 두 사람 일인 만큼 그냥 맡겨두고 지켜보는 거지요.” 그러면서 두 사람 열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다만 기존에 보도된 기사 내용 가운데 차남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 대해서만 정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기사 몇 꼭지를 보니 아들에 대한 신상정보도 잘못 나온 것이 많았어요. 중앙대를 졸업한 것은 맞는데, 그 이후에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마쳤습니다. 유학을 마친 뒤 현재는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알려진 바와 달리 부동산업이 아니라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 전 의원은 마지막으로 아들의 연인인 장진영에 대한 쾌유의 메시지도 전했다. “마흔이 넘은 아들 일에 내가 할 얘기는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쾌유를 바랄 뿐입니다.” 기자에게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입장을 미안해하며 김봉호 전 의원은 전화를 끊었다. 병마도 갈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앞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모든 이의 바람일 것이다. 위암을 선고받았을 때의 심정은 본인이 아니고서는 가늠할 수 없는 깊은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진영에게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변함없는 격려와 사랑을 주는 연인이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금세 삶에 대한 의지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영화 속 스토리보다 빛나는 두 사람의 사랑이다. 예전처럼 스크린에서 열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진짜 배우 장진영’으로 어서 돌아오기를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 갑작스러운 부친상으로 충격에 빠진 류시원
- 2007. 11. 12 연예
- 지난 10월 15일, 류시원이 부친상을 당했다. 류시원의 아버지 류선우옹은 경기도 용인 수지의 자택에서 잠든 채 발견됐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다. 평소 지병이 있지도 않은 아버지였기에 류시원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평소 돈독한 정을 과시했다는 고 류선우옹과 류시원 부자의 사연이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유독 돈독한 정 과시하던 아버지와 아들 탤런트 류시원(32) 부친의 부음 소식을 접한 지난 10월 15일 밤 9시경,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류선우옹의 빈소를 찾았다. 빈소는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고, 지인으로 보이는 몇몇만이 유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 9시 30분경, 류시원을 비롯한 유가족이 빈소에 나타났다.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빈소로 들어서는 류시원 역시 깊은 슬픔에 빠진 듯 보였으며,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류시원의 소속사 알스 컴퍼니 측에서는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기 때문에 류시원을 비롯한 유가족 모두 경황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부친이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류시원의 충격이 몇 배나 더 클 터였다. 향년 72세인 고 류선우옹은 매일신문 편집부국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으로 문화·교육 관련 기업인 아르떼기획 회장을 역임했다. 안동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풍산 류씨 서애 류성룡의 12대손이기도 하다. 고인은 지난 1999년 4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류시원과 함께 안내를 맡기도 했다. 고 류선우옹과 류시원은 평소 공식 석상에 자주 모습을 함께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돈독한 부자의 정을 느끼게 했다. 고인은 지난 3월, 아들 류시원의 ‘경북 방문의 해’ 홍보대사 위촉식에도 참석했다. 지난 10월 6일에는 류시원이 팬들과 함께한 생일파티 행사에도 참석해 정정한 모습으로 아들을 응원해주기도 했다고. 그랬던 아버지였기에 아들 류시원은 아버지의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생전에 결혼한 모습 못 보여드려 죄송해 2005년 KBS-2TV 월화드라마 ‘웨딩’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자수성가한 외교관 승우 역으로 열연해 깊은 인상을 남겼던 류시원. 그는 드라마 ‘웨딩’ 이후 SBS-TV ‘결정! 맛대맛’ 출연 이외에는 국내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에서 가수 겸 배우로 맹활약하고 있다. 지난 8월, 일본에는 류시원의 이름을 딴 마을이 생기기도 했다. 일본 사가현 다케오시가 관내 미마사카 지역을 류시원 공인 지역으로 선정한 것. ‘류시원 마을’이 탄생하게 된 것은 미미사카가 지난 5월 류시원이 발표한 앨범 「위드 유」의 수록곡 ‘천체망원경’의 배경이 된 곳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류시원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류시원은 10월 18일 첫 방영될 일본 민영 방송사 TBS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TBS의 간판 드라마 ‘조시 데카-여자 형사’의 남자 주인공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 일본에서 드라마 촬영과 각종 일정을 소화했다. 일본에서 드라마 촬영을 모두 마친 류시원은 최근 모처럼 한국에 머물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류시원은 “일본 스케줄이 다 끝나 모처럼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10년 만에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형과 나 모두 공부와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 오랫동안 단란한 가족여행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너무 갑자기 돌아가셔서…”라며 말을 잊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외에도 형과 몰래 아버지 칠순잔치를 준비했다가 아버지의 만류로 치르지 못한 일, 아버지의 생신날 일본에 있어 전화로만 축하인사를 전한 일 등을 이야기하던 그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결혼한 모습도 보여드리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책망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한다.숙연한 분위기에서 치러진 영결식 4일간 진행된 고 류선우옹의 빈소에는 송윤아, 박경림, 김호진, 김지호, 김진표, 박선영, 원미연, 노사연, 김원희, 현영, 소유진, 이훈, 김현정, 정준호, 홍경민, 이세창, 전도연과 남편 강시규씨, 김재원, 지누·김준희 부부, 서지영, 정지영, 김진표, 이정현 등의 동료 연예인들이 찾아와 류시원을 위로해주었다. 한편, 류시원의 아버지 고 류선우옹의 영결식은 10월 18일 오전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류시원과 절친한 동료 연예인인 윤정수, 김원준, 김민종, 박용하 등이 발인을 함께했으며, 고인의 유해는 장지인 경북 예천의 선산으로 향했다. 아들 류시원의 마음이 그러하듯, 고인이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기를 기도드린다.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원상희·이성훈
- 김남일·김보민 결혼임박설! 김남일의 부친 김재기씨가 밝혔다
- 2007. 03. 19 연예
- 김남일과 김보민의 열애설이 또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결혼임박설까지 불거졌다. 김보민 미니홈피에 커플링이 노출된 한 장의 사진이 발단이었다. 김보민은 공식적으로 김남일과의 교제를 시인하지는 않은 상황. 김남일의 부친, 김재기 씨를 만나 소문을 확인했다. 문제의 미니홈피 그리고 커플링 김보민 KBS 아나운서의 미니홈피가 수상하다. 스킨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랑신부(지금은 바뀐 상태), 대문에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남녀의 사랑을 상징하는 표시를 해놓았다. ‘사랑해’라는 세 글자를 달아놓기도 했다. 그녀의 미니홈피는 곧 ‘좋은 소식’을 전해줄 듯한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이에 부합한 또 한 장의 사진. 김보민의 ‘셀카’(셀프 카메라)였다. 사진 속 그녀의 약지에는 커플링인 듯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것은 김남일 선수가 평소 끼던 반지와 같은 디자인의 커플링이었다. 네티즌들은 ‘언니, 좋은 소식 있나 봐요’ ‘남일 선수랑 행복하세요’ 등 두 사람을 축복하는 글을 올렸다. 현재 김보민은 자신의 홈피에 언급된 모든 장식물과 사진을 삭제한 상태다. 세간의 높은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결혼임박설이 확산되자 그녀는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 1위에 올랐다. 관련 기사가 이어지면서 그녀의 미니홈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문제는 심한 악플(악성 리플)을 다는 일부 네티즌들. 김보민은 홈피 대문 화면에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속상합니다”라는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남일·김보민의 교제 시작 시점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인의 소개로 2005년 만난 두 사람은 2006년 6월 열애설이 불거졌다. 김남일 가족의 증언으로 열애가 사실임이 증명됐다. 그러나 김보민 측은 ‘만난 적도 없다’며 열애설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런데 얼마 후,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묘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월드컵 직전 방송에서 “제가 김남일 선수의 여자친구일까요. 아닐까요” “정답은 모릅니다”라는 농담을 던졌다. 또 KBS ‘슈퍼주니어의 키스더라디오’에서 결혼 계획에 대해 “글쎄, 결혼이라는 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좀 어려운 일이에요”라며 뼈 있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김남일의 부친 김재기씨 확인 인터뷰 결혼설이 나오고 김남일의 주변에선 이에 힘을 싣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김남일이 결혼한다면 3월 전에 결혼할 것 같다는 것. 삼성 구단 관계자는 김남일 본인도 “분명히 결혼을 하기는 한다. 다만 날짜를 정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의 뜻을 전했다. 또 “프로축구 경기가 시작되는 시기는 3월. 즉, 축구 선수는 그 이후 개인적인 시간을 갖기 어렵다. 1년 일정상 3월 초까지 결혼하지 않으면 12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마 결혼이 멀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9일 본지는 사실 확인을 위해 김남일의 집을 방문했다. 인천 송월동에 위치한 자택 근처에서 그의 가족과 교류하는 동네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김남일·김보민의 교제는 이미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다. 어떤 주민은 김남일의 어머니에게 두 사람이 결혼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며, 구체적으로 날짜가 나왔냐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곧이어 외출에서 돌아오는 김남일의 부친 김재기씨(57)를 만났다. 그는 특유의 호탕한 말투로 두 사람의 결혼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커플링에 대한 얘기는 기사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커플링이야 뭐 둘이 사귀는 사이니까 낄 수도 있죠. 결혼 발표를 의미하는 건 아닐 거예요.” 김남일·김보민 열애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줄곧 교제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남일의 K리그 스케줄 때문에 두 사람이 3월 전에 결혼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입장을 들어봤다. “지금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언제 두 사람이 결혼을 할 수 있겠어요? 또 3월 1일부터는 리그가 시작인데 그거 들어가면 결혼할 새가 없지요. 만약 진짜 3월 전에 결혼 계획이 있으면 지금 한창 준비해야 할 텐데 그런 건 아니거든요.” 그는 이번 소문의 출처를 궁금해했다. 누가 말을 잘못 전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 일로 인해 기자들에게 몇 번씩이나 확인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김보민 측은 결혼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그건 알 수 없지요. 정식 인사를 받은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잘 만나고 있으니 소문이 나도 반응을 안 하는 거겠죠.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으면 고소한다고 나오지 않겠어요?” 지금까지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봐서 결혼까지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이 언제쯤 결혼할지 아버지로서 답변을 부탁했다. “정확한 날짜야 아직 모르겠지만 뭐 공백기가 있는 여유로운 때에 하지 않겠어요? 우리 성격이 뭐 숨기고 이런 사람들이 아니니까 좋은 소식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김남일·김보민의 결혼설에 대해 본지 기자와 이야기하고 있는 김남일의 부친 김재기씨.김남일은 국가 대표팀 주장을 맡아 더욱 바쁜 스케줄에 쫓기고 있다. 그래서 수원 삼성의 주장 자리도 내놓은 상태. 본가에도 거의 들르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며 다시 한번 올해 안 결혼설을 부인했다. “국가 대표팀에 만날 불려다니고 올해는 아시안컵 축구대회도 있으니 올해는 결혼 못 해요. 올들어 한 번도 집에 못 왔어요. 휴가기간에야 친구도 만나고 데이트 하느라 바쁘겠지요.” 마지막으로 김보민에 대한 느낌을 물어봤다. 짓궂은 질문에 김재기씨는 미소를 지었다. 흡사 며느리를 맞이하는 시아버지의 인자한 미소처럼 보였다. “저희야 좋지요. 그래도 아나운서니까 배울 만큼 배웠으니 지적이고 참하고. 우리 남일이에게는 좋은 신붓감이죠.” 일단 두 사람의 결혼임박설은 사실이 아님이 입증됐다. 그러나 그들은 2005년부터 2년째 좋은 관계로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결혼적령기의 두 남녀가 결혼을 생각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 아닐까. 선남선녀의 만남이 행복한 결말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박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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