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26 건 검색)
- 프랑스 피아노 신성 캉토로프가 말하는 ‘내향인’ 브람스와 ‘외향인’ 리스트
- 2024. 09. 18 14:27문화
- ...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캉토로프는 각 작곡가에 대해 흥미로운 해설을 들려주었다. 브람스나 슈베르트는 작곡가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서 “피아노에서 어떤 소리가 날지 생각하기보다는 작품을...
- 파리올림픽개막식물의유희
- ‘브람스가 지휘한 오케스트라’ 브레멘 필 처음으로 한국 찾는다
- 2023. 04. 20 16:20문화
- ... 번역된 성서를 가사로 발췌해 작곡한 합창곡으로 브람스의 이름을 전 유럽에 알린 걸작이다. 이때 브람스가 직접 지휘했던 오케스트라가 한·독 수교 14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브레멘...
- 임지영문태국
- 7월엔 브람스를, 온몸으로 느껴라
- 2021. 06. 08 22:05문화
- ...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브람스의 실내악 작품 전곡과 피아노 작품 전곡을 연주하는, 그야말로 ‘브람스의 향연’이다. ■ 열린 공간, 평등한 어울림 ‘줄라이 페스티벌’은 지난해 첫발을 내디뎠다. 탄생...
- 줄라이 페스티벌
- [올댓아트 클래식]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전엔 이 작품이 있었다!
- 2020. 09. 28 17:08문화
- ... 속에 살아가는 오늘날의 청춘, 그중에서도 클래식 음악 학도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SBS 드라마 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연일 화제입니다. 실제 클래식 음악 업계에 몸을...
- 올댓아트 클래식
스포츠경향(총 75 건 검색)
- “브람스의 눈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6중주 소나타로 부활하다
- 2023. 09. 19 22:04 연예
- 굿인터내셔널 레이블 독일 명문 ‘슈투트가르트 쳄버 오케스트라(The Stuttgart Chamber Orchestra)’가 연주한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년~1897년)의 현약 6중주 1, 2번이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6중주 소나타’로 편곡되어 2장의 LP로 발매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현악 실내악단인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브람스 탄생 190년’을 기념하는 음반이다 브람스는 독일 함부르크 출신으로 피아노, 실내악, 교향곡, 성악, 합창곡 등 다양한 작곡을 남겼으며, 베토벤, 바흐와 함께 독일의 ‘3B’로 불렸던 ‘낭만주의 음악의 선구자’이다 브람스 현악 6중주 1, 2번은 완벽한 형식과 정제된 균형미로 가장 널리 알려진 브람스의 대표적 실내악곡이다. 음울하고 느린 1번 2악장은 27살 청년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을 담은 악장으로 프랑스 영화 “연인들(Les Amants, 1958)”의 주제곡으로 널리 알려졌다 클라라의 41번째 생일에 선물로 줬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진 이 음악은 브람스의 마음을 헤아려서 후세 사람들이 “브람스의 눈물”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유럽 최고(最古)의 현악 오케스트라로 알려진 슈투트가르트 쳄버 오케스트라는 1945년 칼 뮌힝거에 의해 창단되어 바로크와 고전명곡의 해석에 있어서 독보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 브람스의 두개의 현악 6중주는 가장 인기 있는 실내악 작품 중 하나이다. 본래는 두 대의 바이올린, 두 대의 비올라 그리고 두 대의 첼로로만 연주되도록 의도되었다. 두 작품의 현저하게 가락이 좋은 특성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개작에 아주 잘 맞는다. 콘트라베이스 부를 추가한 것과 별도로 이 현악 오케스트라 편곡은 비올라나 첼로보다 바이올린을 더 많이 사용하는 일반 실내 오케스트라 구성과는 달리 6중주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과거 다수의 쳄버 오케스트라에 의해 여러 번 연주되기는 했어도, 슈투트가르트 쳄버 오케스트라의 멤버이기도 한 이언 멕파일에 의해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6중주 소나타로 편곡된 이 음반은 ‘최초의 레코딩 역사’를 기록한다 현악 6중주를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녹음하려는 최초의 아이디어는 2002년 굿인터내셔널 음반사로부터 착상되었으며, 이 실내악 작품들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레코딩하는 기회는 슈투트가르트 쳄버 오케스트라에게 기쁘게 쥐어졌다. 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맨틱한 레퍼토리는 오리지널 마스터피스에서도 풍부하지가 않다. ‘브람스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6중주 소나타’ LP와 CD는 유럽에서 디거스 펙토리(Diggers Factory)가, 일본에서는 도쿄 엠플러스(Tokyo M plus)가 배급을 하고 있다. LP는 2023년에 리마스터링된 180g 오디오파일 음반이며 디럭스 게이트폴더 2LP로 발매된 한정판이다
- 피아니스트 정혜경 세종문화회관서 23일 독주회 연다 ‘바흐·베토벤·브람스의 밤’
- 2022. 07. 20 17:16 생활
- 피아니스트 정혜경 피아니스트 정혜경이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독일 작곡가 바흐, 베토벤, 브람스를 주제로 독주회를 연다. 이번 연주는 이른바 ‘3B’로 부르는 독일 대표 작곡가의 곡들로 구성했다. 첫 곡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코랄 전주곡 ‘깨어나라 부르는 소리 있도다’ 바흐 작품번호 645(부조니 편곡)이고, 파르티타 2번 C단조, 바흐 작품번호 826을 연주한다. 이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7번 E 단조, 작품번호 90을 연주하고 브람스의 4개의 발라드, 작품번호 10을 선보인다. 피아니스트 정혜경은 성신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노던 아이오와대학과 일리노이대학에서 피아노 연주 및 문헌으로 석사, 아티스트 디플로마, 박사 과정을 마쳤다. 지난 2010년 귀국 독주회를 열었고 이후 다양한 국내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 KBS교향악단, 제 777회 정기연주회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지휘로 브람스·드보르자크 선사
- 2022. 04. 21 18:16 연예
- KBS 교향악단 제공KBS교향악단이 제777회 정기연주회 ‘브람스의 밤’을 오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8일 아트센터인천에서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공연은 캐나다계 미국인 지휘자 피터 운지안이 지휘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상 이유로 내한이 불발되며 독일 출신 거장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대신 지휘봉을 잡게 됐다. 협연자로는 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과 첼리스트 김범준이 나선다. 에셴바흐는 지난해 11월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이후 5개월 만에 한국을 찾는다. 휴스턴 심포니, 워싱턴 국립교향악단, 북독일 방송교향악단 등의 음악감독을 역임했고, 현재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협연자인 김수연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악장을 맡고 있어 지휘자, 협연자, KBS교향악단이 어떤 호흡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1부에서는 드보르자크가 인간의 삶을 주제로 작곡한 ‘카니발 서곡’을 들려주고, 이어 김수연과 김범준 협연으로 브람스 이중 협주곡 a단조를 선사한다. 2부에서는 브람스 교향곡 제4번 e단조를 연주한다. 티켓은 인터파크와 예술의전당, 아트센터인천에서 예매할 수 있다.
- 정명훈, ‘하이든·베토벤·브람스 후기 피아노 작품집’ 앨범 발매
- 2021. 04. 22 22:02 연예
- 도이치 그라마폰 제공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22일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을 통해 ‘하이든·베토벤·브람스 후기 피아노 작품집’ 디지털 앨범을 선발매한다. 정명훈의 ‘하이든·베토벤·브람스 후기 피아노 작품집’은 위대한 세 작곡가들이 인생 말년에 완성한 피아노 곡들을 담은 앨범으로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60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 그리고 브람스 4개의 소품(작품번호 119)등 총 세 곡이 담겨 있다. 정명훈은 “위대한 작곡가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은 접하는 시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 작곡가들이 인생 말년에 완성한 피아노 작품을 통해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여정과 영혼의 자유로움을 경험한다”고 전하며 이번 앨범 발매의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앨범의 첫 번째 작품,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60번은 이전 작품에 비해 폭 넓은 테크닉을 요구하고 다이내믹한 대조와 드라마를 담고 있어 하이든의 소나타 중 가장 까다롭다고 평가되는 곡이다. 하이든은 이 곡을 피아니스트 테레제 얀센 바르톨로치(Therese Jansen-Bartolozzi)에게 헌정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은 베토벤의 기념비적인 피아노 소나타 ‘함머클라이버’ 이후 출판된 곡이다. 이후 베토벤이 짝사랑한 ‘불멸의 연인’의 주인공으로 추측되는 안토니 브렌타노의 딸, 막시밀리아네에게 헌정됐다. 앨범 마지막 작품, 브람스의 4개의 소품(작품번호 119)에 대해 브람스의 전기를 쓴 잔 스웨포드(Jan Swafford)는 이 곡의 친밀하면서도 세밀한 표현력은 독일의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을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네 곡으로 구성된 해당 작품에서 가장 짧은 제3곡은 연주회 앙코르곡으로 자주 연주되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이다. 가볍고 우아한 표면적 매력을 뒷받침하는 박절 구조에서 브람스의 정교한 폴리리듬 사용이 돋보인다. 2013년 첫 피아노 앨범 발매 후, 좀 더 피아니스트다운 레퍼토리를 녹음해보고 싶다는 그의 기대감이 이번 ‘하이든·베토벤·브람스 후기 피아노 작품집’으로 이어졌다. 정명훈은 이번 작품집에 대해 “음악을 통해 삶의 여러 단면을 표현하고 싶은 개인적 열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피아니스트 정명훈’으로서 그의 인생과 음악적 성찰을 오롯이 담아낸 앨범으로 평가되며 많은 클래식 팬들의 기대감이 모이고 있다.
- 정명훈
주간경향(총 5 건 검색)
- [톡톡TV] 모티브는 누구(2020. 09. 04 16:27)
- 2020. 09. 04 16:27 문화/과학
- 지난 8월 31일 첫 회를 시작한 SBS 월화극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클래식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마치 실존 인물처럼 생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 주인공인 천재 피아니스트 박준영(김민재 분)이 ‘실존 인물 누구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클래식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아이돌급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김태형, 김선욱 등이 거론되고 있다. SBS 드라마는 인물뿐 아니라 클래식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일들을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다. 모든 음대생이 연주자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몇몇 연주자를 제외하고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연주의 길을 이어가면 그나마 다행이다. 드라마는 졸업을 앞둔 채송아(박은빈 분)의 고민처럼 음대생 대부분이 음반사, 공연기획사 등 음악 관련 직업을 갖는 현실을 그려냈다. 드라마를 더욱 디테일하게 들어가 보면, “잘하는 애만 받는 선생”이란 대사는 클래식 전공자라면 손뼉을 치며 공감할 에피소드다. 또 물심양면 클래식 영재 후원을 하는 대기업 일가는 누가 봐도 금호문화재단 이야기다. 실제 바이올리니스트 고소현의 캐스팅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그는 극 중 영재 바이올리니스트 양지원 역을 맡았다. 실제 연주자가 대역이나 특별출연 형식이 아닌 정식 캐릭터를 맡아 등장하는 것은 국내 드라마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정은주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고소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는 SBS <영재 발굴단>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고, 8세 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생가에서 실제로 모차르트가 연주했던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고소현은 이후 10세 때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지휘자 핀커스 주커만의 제의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2회에는 고소현의 실제 연주도 감상할 수 있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 ‘치간느’를 연주했는데 고난도의 기교가 필요해 일반 연주자들도 쉽게 도전할 수 없는 곡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극 중 디테일마저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작가의 이력 덕분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으로 첫 장편 드라마에 데뷔한 류보리 작가는 음악을 전공했다. 류 작가는 바이올린 전공으로 선화예중·고를 거쳐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다. 작가가 클래식 엘리트 코스를 밟은 만큼 자신의 경험담을 그대로 드라마에 넣은 셈이다. ‘취재’라는 간접경험으로 그려낸 특수 소재 드라마와는 차원이 다른 이유다. 국내 드라마의 다양성이 강조되면서 특수 직업을 다루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더불어 현직 종사자나 전공자들이 직접 드라마 작가로 나서 직업의 세계를 그려내는 일도 많아졌다. 드라마 <검사내전>은 현직 검사인 김웅, <미스 함무라비>는 현직 판사인 문유석이 직접 집필했다. 배우 장나라가 육아잡지 기자로 나왔던 <오 마이 베이비>는 실제 육아잡지 기자였던 노선재 작가가 드라마 속 직업의 디테일을 살렸다.
- 톡톡TV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바그너보다는 브람스적인 ‘허연의 시’(2016. 08. 16 16:10)
- 2016. 08. 16 16:10 문화/과학
- 허연 시인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발이 편한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었다.” 바그너라면 신발을 찢어버리거나 반품시켰을 것이다. 브람스는 억지로 불편한 구두에 발을 우겨넣고 걸어다녔다. 소설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시인에게는 시인만의 눈빛이 있다. 소설가들은 그들의 눈빛을 가릴 줄 알고 숨길 줄 알고 다른 마음인 듯, 무심한 듯, 관심 없다는 듯 연기할 줄 안다. 그래서 이야기를 낚아채기 위한 그들의 눈매를 금세 알아보지 못하는 수가 있다. 반면, 시인의 눈빛은 숨겨지지 않는다. 가려지지 않는다. 연기하는 눈빛이라면 시인이 아니다. 연기하거나 숨기지 않는 시인의 눈빛 몇 해 전 어느 문학평론가의 상가에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 들어와 맞은편에 앉았다. 저명한 문학평론가의 슬픈 일에 문상을 온 사람이므로 굳이 묻지 않아도 그가 문학을 업으로 삼는 자임에 틀림없었겠지만, 슬프고 어색한 장소에서 낯선 자를 처음 마주 보았는데 한순간에 나는 그가 시인이라고 직감했다. 날카로운, 슬픈, 메마른, 서늘한 시를 쓰는 자임에 틀림없다, 생각했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누군가 소개를 시켜줘서 인사를 나누고 보니 뜨거운 시집 의 허연 시인이었다. 오랜만에 그 시의 일부를 읽어본다.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빌헬름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한 브람스의 1번 교향곡 음반(왼쪽)과 브람스의 클라리넷 오중주 음반. 시인의 이 시집과 더불어 라는 시집도 멀리 두지 않고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두고 마음이 무슨 까닭인지 서걱거릴 때마다 펼쳐보곤 하는데, 21세기의 기린아들이 파격의 언어로 질주할 때 허연 시인은 더러 그렇게 격을 파하는 구도가 없지는 않으나 대체로는 도회지의 오랜 서정시들이 세파와 유행의 격정에도 불구하고 견실하게 지켜온 틀을 견지한다. 물론 손택수나 문태준의 서정시와는 조금 결이 다른데, 그들의 시가 도회지 바깥에서 회한의 힘을 찾고 있다면 허연은 도회지 안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지하철 공사장에서, 빌딩 사이에서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을 찾아내려 한다. 무더위! 한밤중에도 등줄기로 땀이 흐르는 혹서의 계절이니 비록 휴가철이나 도심지가 조금은 비었다고는 하나 바로 그 때문에 작열하는 태양을 피하기도 어려운 이즈막에 도심을 배회하는 허연의 견고한 서정시는, 비록 몸은 아닐지라도, 마음 깊은 곳만은 서늘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를테면 에 수록된 시 ‘철로변 비가(悲歌)’의 한 구절. 내 여자는 내게 나쁜 놈이라는 말을 던지곤 막차를 타 버렸다.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렸던 화산재. 지독하게 뜨거운 반문명의 노래를 잊기로 했다. 여름날의 모든 꿈들 그 지겨운 것들.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브람스 음악 말하자면 허연의 시는 바그너적이지 않고 브람스적이다. 브람스의 어린 시절은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독학자였음에도 책 속에 파묻혀 지낸 시간이었다. 스스로 회고하기를 “책을 사는 데 아낌없이 대부분의 돈을 썼으며, 책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능한 한 많은 책을 읽었으며, 아무런 지침도 없이 닥치는 대로 아주 저급한 책에서부터 최고의 양서까지 섭렵”했다. 브람스는 19세기 중엽 북유럽에 유행병처럼 번진 ‘교양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헤르만 헤세의 이나 에 잘 나타나 있듯이 정치적 시민(프랑스)이나 경제적 시민(영국)이 되지 못한 독일계 시민들은 신학, 철학, 음악 등에 대한 집요하고도 과잉된 지적 욕망을 통해 문화적 시민이 되고자 했다. 브람스는 평생 클라라에 대한 정념을 앓았고, 그 나머지 감정들을 오직 독서와 사색과 음악에 집중했다. 그것이 도달한 생의 소실점은 짙은 허무주의! 그가 만년에 쓴 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는 구약성서의 가장 비참한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독일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 당시는 바그너가 대세였다. 브람스는 한 세대 위의 음악가인 베토벤의 정신이 위기로 치닫는 유럽을 치유할 수 있는 예술이라고 여겼고, 그래서 베토벤의 악보를 되새기고 그 유산에 걸맞은 교향곡을 작곡하기 위해 무려 1번 교향곡을 20년 동안이나 어루만졌지만 모든 예술적 질서를 파괴하고 모든 음악적 형식을 파괴함으로써 수 세기에 걸친 유럽의 구질서까지 뒤흔들어 버리고자 했던 바그너가 한 시대를 풍미하던 때였다. 신독일악파, 즉 리스트를 시작으로 바그너, 브룩크너, 볼프 등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혁신파들이 오래된 형식을 낡은 형식으로 몰아세웠다. 그러면 그럴수록 브람스는 리스트의 현란한 기교나 바그너의 다이너마이트 같은 문명 혁신의 사상보다는 베토벤의 악보에 담겨 있는 세계시민주의라는 전통사상에 몰입하였다. 그 결과가 20대 초반에 구상하여 40대 초반에 발표한 1번 교향곡인데, 전통주의자인 에두아르드 한슬릭 같은 비평가가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고 극찬까지 하였으나 이미 베토벤의 생애로부터 한 세대 이상의 격차를 지닌 혁신파들은 한슬릭이 극찬한 바로 그 내용이야말로 브람스가 베토벤을 단순히 반복했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음악사적인 측면에서 바그너가 끼친 영향은 브람스를 압도한다. 바그너는 단지 악극이라는 형식의 창조만이 아니라 그 장대한 악극을 통하여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같은 남유럽 중심의 구질서를 타파하고 강렬한 비극적 정념(니체)으로 기존의 기독교 문명의 관념을 찢어버리고자 했다. 바그너는 독일 영웅 무훈담과 북구 전설의 신비주의를 총체적으로 결합시켜 19세기 중엽 이후 독일 전역에 팽배한 민족주의를 새로운 기운으로 더욱 고양시켰다. 이렇게 신유럽 질서를 꿈꿨던 바그너의 음악 실험이 히틀러라는 20세기의 악령으로 이어졌다는 엄연한 사실은 혼란한 시대에 예술가의 형식 실험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거듭 생각하게 한다. 그런 판단 여부를 떠나서, 누가 더 감동적인가, 하고 즉자적으로 묻는다면 아무래도 브람스를 먼저 꼽을 수밖에 없다. 바그너의 작품도 물론 음악 미학적 감동만이 아니라 음 그 자체가 빚어내는 힘들이 있다. 의 길고도 깊은 아리아들, 의 연인 젠타가 부르는 아리아, 서곡의 넘실대는 현들. 그러나 브람스의 만년작 가 들려주는 한 인간의 깊고 짙은 허무주의의 비참함에 견줄 수는 없다. 전통의 형식 안에 스며들어 있는 흔들리는 인간의 바스라지는 슬픔, 그것이 브람스의 여러 곡들에 묻어 있다. 이런 점에서 음악학자 어니스트 뉴먼이 “브람스는 진정 한 사람의 철학자이며, 그의 가장 훌륭한 철학은 그의 영혼의 근본을 이루는 구슬픈 감정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브람스는 1897년 4월 3일 세상을 떴다. 4월 6일에 장례식이 거행되었는데, 북독일의 항구 도시 함부르크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이 음악가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해 멀리 파리나 런던에서도 조문객이 찾아왔다. 작곡가 드보르작과 그리그가 장례식의 횃불을 들었다. 장례식이 엄수되는 동안 함부르크 항구에 정박했던 모든 배들은 쓸쓸히 반기를 게양했다. 허연 시인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발이 편한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었다.” 바그너라면 신발을 찢어버리거나 반품시켰을 것이다. 브람스는 억지로 불편한 구두에 발을 우겨넣고 걸어다녔다. 브람스의 음악은 바로 그런 자들을 위한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음악이다.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한강과 브람스의 작품은 닮아 있다(2016. 05. 30 17:54)
- 2016. 05. 30 17:54 문화/과학
- 만약 ‘채식주의자’가 영화로 제작된다면, 과연 그 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기존의 음악들 중에서 내 임의로 한 곡을 정해본다면 단언컨대 브람스의 유서 같은 작품, ‘클라리넷 5중주’다. 솔직히 말하여, 세 편으로 구성된 가 10여년 전에 연재될 때는 다 찾아 읽지는 못하였고, 그 중 두 번째 이야기인 ‘몽고반점’이 그 무렵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게 돼 일독을 하였으나 이번에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하자 다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만약 이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다면, 과연 그 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생각해 보았다. 지난번 칼럼에 쓴 영화 의 음악감독 ‘장영규/달파란’이라면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하는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19쪽) 같은 문장을 그로테스크한 울음소리로 빚어낼 수 있을 것이다. , 등의 영화음악을 맡은 원일도 같은 맥락에서 떠올릴 수 있다. 둘이 같이 있어도 외롭기만 한 고독 , 등의 영화를 어루만졌던 조성우라면 영화는 전혀 다른 온도를 지닐 것이다. 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 ‘나무 불꽃’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동생을 간호하는 언니는 비극적 삶의 아이러니가 주는 의미를 되새긴다. 한강은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204쪽)고 쓴다. 이를 조성우라면 살짝만 건드려도 미세하게, 그러나 격렬하게 떨리는 피아노로 들려줄 것만 같다. 이 모든 얘기가 가상이므로, 내 임의로 한 곡을 정해본다면 단언컨대 브람스의 유서 같은 작품, ‘클라리넷 5중주’다. 소설은 극단의 채식을 시작한 아내 영혜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깊은 밤, 남편은 안방에 홀로 누워 있는 영혜를 본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매우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든 사람의 숨소리 같지는 않았다. 손을 뻗으면 그녀의 따스한 살을 만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나는 그녀를 만질 수 없었다.”(, 15쪽)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 그 1악장이 꼭 이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네 명의 현악 연주자들이 쓸쓸한 공기를 만들면서 먼저 출발하면 클라리넷의 두터운 소리가 그들을 천천히 따라간다. 두 대의 바이얼린과 비올라, 첼로, 곧 네 개의 현들이 깊은 한숨을 몰아쉬는 클라리넷을 저마다의 방식대로 위로한다. 와 클라리넷 5중주, 책을 읽으면서 감각적으로 떠올린 것이지만 한강과 브람스의 작품세계는 상당히 닮아 있다. 브람스가 1869년에 작곡한 를 들어보자. 그가 평생 마음속으로만 품었던 클라라, 그녀는 이 곡에 대하여 “참으로 진한 고통과 슬픔, 그리고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거대한 관현악이 가혹한 운명의 힘을 드러내는 듯하다. 합창은 운명의 힘에 흔들리는 광경을 들려준다. 그 사이로 침통한 알토의 노래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듯 들려온다. 브람스 클라리넷 5중주 앨범. 한강의 소설 “아, 누가 이 고통을 치유해줄 것인가 / 향유가 독으로 변해버린 그의 고통을 / 그는 사랑의 샘에서 증오심의 물을 마셔버렸다네.” 이토록 비참한 괴테의 시를 바탕으로 하여 브람스는 단순한 실연의 상처 이상의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슬픔, 그러니까 조용필의 노래처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리고 심수봉의 노래처럼 둘이 같이 있어도 외롭기만 한 그런 극단의 고독과 슬픔의 풍경을 들려준다. 소설에서 남편은 ”내가 들어가보지 못한, 알 길 없는, 알고 싶지 않은 꿈과 고통 속에서 그녀는 계속 야위어갔다.“(, 25쪽)고 말한다. 19세기 중후반, 격렬한 민족주의 감정이 곳곳에서 전쟁을 야기하는 상황에서 독학자 브람스는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현실에서 일고 있는 격렬한 파고들을 헤치고 그 밑에 웅크리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불안을 들여다보았다. 북유럽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브람스는 십대의 어느 한때를 유흥가 상트 파울리에서 피아노를 치며 집안의 생계를 거들기도 했는데, 그는 세계 곳곳에서 몰려온 선원들로부터 세상에는 수많은 음악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밤의 유흥가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비참한 노래와 핏대 높은 절규와 이유 없는 싸움박질을 통해 짙은 허무의 냄새를 일찌감치 맡을 수 있었다. 그가 귀족이나 신흥 중산층 출신이었다면 일부러 상트 파울리에 술 마시러 놀러가기 전에는 결코 접해 보지 못했을 세계였다. 브람스는 독일 민족주의의 문화적 깃발을 흔들며 기존의 음악언어를 과감하게 혁신한 바그너와는 다른 기질의 음악가였다. 브람스는 가장 확실한 전통, 곧 베토벤의 휴머니즘과 그 형식, 즉 소나타와 교향곡이라는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자신의 형이상학적 불안을 위로하는 길이며 나아가 유럽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프란츠 리스트를 시작으로 하여 바그너, 브룩크너, 볼프 등으로 이어지는 신독일악파가 파란의 실험을 거듭하는 동안 브람스는 오페라 악보를 보고 “화성악의 기초도 배우지 못한 수준”이라고 혹평한 슈만의 관점에 의지하여 베토벤의 내용과 형식, 특히 그 후기 양식을 충실히 견지하였다. 밤의 유흥가에서 벌어지는 허무의 냄새 그것은 주춤거리고 머뭇거리는 세계이며 한 발을 뒤로 뺀 채 이제까지의 걸음을 되돌아보는 방식이다. 외부의 강한 압력, 피부 깊이 침투해 들어오는 예리한 자극, 흔히 상처라고 고통이라고 슬픔이라고 말해지는 마음의 불안을 브람스는 쏘아보거나 밀쳐내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속으로 끌어당겨 오랫동안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멍하니 바라보는 방식으로 곡을 썼다. 브람스를 일컬어 내면의 숱한 갈등과 욕망을 놀라운 의지로 견뎌내는 도덕적·종교적 태도, 즉 견인주의로 풀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 두 번째 작품 ‘몽고반점’에서 영혜의 언니는 동생이 자기 남편과 함께 깊은 밤을 보냈고 또 그것을 촬영한 캠코더를 보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곳까지 언니는 찾아가게 되고, “여보, 내가 설명할게, 이해하기 쉽진 않겠지만…”이라고 말하는 남편 앞에 서게 된다. 언니는, 구급대를 불렀다고 말한다. “영혜도, 당신도 치료가 필요하잖아요.”(, 146쪽) 이윽고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는 4악장에 이른다. 그가 모범으로 따랐던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처럼, 이 곡 역시 자기에게 보내는 등기우편이자 세상에 작별을 알리는 고별사다. 슬프디슬픈 음악, 지금 막 슬픈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깊은 연민과 위로를 건네는 음악,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다. 특히 그 4악장은 화사한 봄에 들어도 금세 늦가을의 짙은 그늘을 만들며, 땡볕의 여름에 들어도 황량한 겨울 벌판을 연상시킨다. 영국의 음악학자 어니스트 뉴먼이 “브람스는 진정 한 사람의 철학자이며, 그의 가장 훌륭한 철학은 그의 영혼의 근본을 이루는 구슬픈 감정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썼는데, 이를 단박에 확인시켜주는 곡이 클라리넷 5중주다. 그 4악장은 소설의 마지막처럼 슬픔의 종지부를 찍는다. 짙은 한숨들, 곧 죽음이다. 네 대의 현이 쓸쓸한 풍경을 만들고, 그 사이에서 클라리넷이 마지막 한숨을 내뱉는다. 한 걸음 뒤에서 네 대의 현이 최후로 단 한 번 거친 활로 자신들의 몸을 내리긋고는 다시 희미한 숨을 몰아쉬며 브람스의 슬픈 음악이 끝난다. 소설의 죽음, 주인공 영혜가 죽음을 한강은 이렇게 묘사한다. “조용히, 그녀는 숨을 들이마신다.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을, 무수한 짐승들처럼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 221쪽) 브람스는 1891년에 유서를 쓰는 등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을 정중히 맞이하려 하였다가 뛰어난 클라리넷 연주자 묄펠트를 알게 되어 마지막 유언처럼 5중주곡을 썼다. 그 후, 몇 년을 병고에 시달리다가 1895년에 세상을 떠났다.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브람스 대신 벨라 바르톡을 듣는 이유(2016. 03. 29 11:43)
- 2016. 03. 29 11:43 문화/과학
- 브람스의 후세대 음악가인 벨라 바르톡은 동유럽 일대를 샅샅이 돌아다녔고, 채집했고, 그를 바탕으로 작곡을 하였으니, 그 결실은 주류 음악 문화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충격적인, 신선한 음악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하면 젊은 독자들은 “아, 이 양반 ‘개저씨’에 ‘꼰대’구나”라고 할지 모르나, 내 삶의 작은 축복은 소백산 깊은 산중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려서 마음만 먹으면 아침 먹고 갔다가 점심 때 올라올 수 있을 정도지만, 나 태어나던 때의 풍기읍 순흥면 태장리는 산촌이었다. 이 마을에 슬레이트 지붕이나 전기가 들어온 게 초등학교 2학년 때였고, 이듬해 서울로 이사를 왔다. 그 한 줌의 유년의 기억 속에 책보, 호롱불, 초가, 깡보리밥 같은 고색창연한 흔적이 묻어 있다. 성장하여 서울 도회지를 배회하며 살게 되었고, 도시의 인연에 따라 더러 사람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어 그런 자리에서 한가로운 정담을 나누다 보면 의외로 이 같은 장소적 기억이나 물질적 기억이 드물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호롱불 밑에서 가나다라를 쓰고 깡보리밥을 먹고 초가를 나와 책보를 둘러메고 순흥초등학교에 다녔던 기억이야말로 부모님이 주신 문화사적 은혜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의 얘기다. 내 성장기의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의 깔끔한 학교로 전학을 와서 겪은 음악시간이었다. 음악시간의 문화적 충격이란 이런 것이다. 음악을 통하여 아이들의 심성을 맑고 곱게 키울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마땅히 익혀 부를 만한 동요나 가곡을 많이 가르쳐 주셨는데, 대부분의 도회지 아이들은 그 곡을 자주 접한 듯 곱고도 상냥하게 불렀으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생전 처음 듣는 곡들이라 가사조차 알 리가 없었다. 여러 아이들이 합창으로 정겨운 가곡이나 따사로운 동요를 부를 때, 나는 물고기처럼 입만 벙긋벙긋하면서 창밖을 힐끗힐끗 내다보았다. 내가 알 수 없는 노래들을 나만 빼놓고 모두가 열렬히 합창을 하는 그 순간에 나는 ‘문화적 소외’를 처음 느꼈다. 음악적 모국어를 찾아헤맨 음악가 그래서 어찌되었냐고? 성정이 반듯한 아이라면 그 노래들을 어느 순간에 잘 따라부르면서 곱게 자랐겠지만, 나는 그 아리따운 노래들 대신에 집 근처 편물공장에서 흘러나오던 최헌·조경수·윤수일 등의 고고 트로트를 따라 불렀고, 갑자기 화산처럼 터진 산울림 노래를 흥얼거렸으며, 오락시간에 주판을 기타 삼아 들고 흔들면서 그런 노래들을 연달아 불러서 도회지 아이들에게 흥겨움을 선사했다. 동시에 나는 문득 구경거리가 된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보았으나 어린 소년에게 그런 결핍감보다는 아이들이 나의 노래에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또한 나는 즐겼다. 그 무렵에 가장 기이한 노래는 ‘진주 조개잡이’나 ‘동무 생각’이 아니었다. 그런 노래들은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노래라서 낯설고 이상했을 뿐이고, ‘밀양 아리랑’, ‘울산 아리랑’ 같은 노래였다. 기본적으로 이 노래들이 신민요일 뿐만 아니라 그 당시 학교 교실에서 민요, 즉 아리랑을 부른다는 것은 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복식호흡을 해가며 서양식 창법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부른 노래들은 내가 순흥면 태장리에서 들었던 진짜 민요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노랫말도 얼추 비슷하고 가락도 어느 정도는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지만, 글쎄, 도회지 교실의 민요는 저 시골 논바닥에서 동네 할아버지들이 부르던 노래가 결코 아니었다.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이랄까, 아무튼 이 기억 때문에 훗날 나는 성장하면서 턱시도나 드레스 차림에 과도한 표정을 지어가며 서양식 창법으로 부르는 민요를 전혀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요하네스 브람스 대신 벨라 바르톡을 듣는다. 물론 교향곡이나 실내악에서는 브람스가 저 험준한 고봉 위에 올라간 자다. 하지만 그의 ‘헝가리 무곡’은 비록 그가 가난하게 성장하긴 하였으나 독일계 전통의 여행자 음악의 산물이다. 1852년, 그의 나이 19살 때 고향 함부르크에서 헝가리계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드 레메니의 연주를 듣게 되는데, 이때부터 두 사람은 함께 연주 여행을 다니는 절친이 된다. 3살 많은 레메니는 이미 직업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브람스는 레메니와 동행하면서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도 만나게 되고, 운명의 인연이 되는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비크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동유럽 일대를 돌아다니는 중에 브람스는 ‘헝가리 무곡’을 작곡하게 된다. 이 곡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자 레메니는 브람스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간 것이라고 고소까지 했다고 하는데, 아무튼 두 사람은, 특히 브람스는 헝가리 일대를 전전하는 집시들의 음악에서 ‘헝가리 무곡’의 뼈대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6살에 발표한 이 곡은 큰 인기를 얻었다. 물질적으로 다소 안정이 될 수 있었다. 그 무렵 독일계 문화권에서 집시 음악은 꽤나 잘 팔리는 문화 코드였다. 리스트, 사라사테 같은 사람도 집시 음악에서 도출된 음표들을 독특하게 배열했고, 1875년 작곡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도 스페인의 집시 여인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런데, 그것들은 당시 개별 작곡가들의 열렬한 창의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유럽 중산층 문화의 관점에서 선별되고 채집된 집시 문화였을 뿐이다. 19세기 주류 유럽인들의 관점에서 집시 여인은 늘 외로움에 몸을 떨면서도 고혹적인 미소를 갖고 있으며 마음까지 순정하다. 실제로 개별적인 집시 여인들이 그러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유럽 주류 문화 소비자들이 비주류 소수인종의 여성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점인데, 맥락은 다르지만 이렇게 형성된 집시 문화에 대한 소비적 감성은 훗날 우리나라에서 이치현과 벗님들의 ‘집시 여인’이라는 곡으로까지 이어진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역시 현란하게 넘실대거나 애상적으로 비틀거리는 선율로 너무나 매혹적이지만, 그것이 헝가리의 민속음악이거나 실제의 집시 음악인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빈의 아늑한 음악당이나 카페에 어울리는 곡이다. 성악가들이 다소 괴이하게 부르는 ‘울산 아리랑’처럼 말이다. 에디슨 축음기로 슬로바키아 민속 음악을 녹음하고 있는 벨라 바르톡. 동유럽 전역의 민속 음악 수천 곡 채집 벨라 바르톡은 브람스의 후세대 음악가이자 실제 헝가리에서 태어난 인물로, 유럽 주류문화가 편집하거나 때로는 왜곡한 자신들의 음악적 모국어를 찾아헤맨 음악가다. 그는 헝가리의 작은 마일 토론타일(지금은 루마니아 지역)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헝가리·루마니아·유고·불가리아·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전역의 민속음악을 채집하였고, 터키를 시작으로 튀니지·알제리 같은 북아프리카 일대까지 그 작업의 폭을 넓혔다. 그는 이렇게 수집한 수천 곡의 민요를 악보로 필사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였으며, 관련된 논문을 집필하였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방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그만의 독창적인 곡들을 만들었다. 1903년 6월, 부다페스트 음악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며 모든 이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바르톡은 그러나 이듬해 헝가리 북부 휴양지에서 몇 달 머물다가 그곳에서 그 어떤 ‘첨가물’도 배어 있지 않은 헝가리 전승 민요를 들으면서 음악가의 새 길로 나섰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후기 낭만파 스타일의 작곡자로 촉망받았지만 그는 그 안정된 길을 포기하고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를 들고 헝가리를 시작으로 슬로바키아 지역까지 순례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동유럽의 전통적인 작은 마을에서 고대 그리스 선법이나 교회 선법의 여러 형태를 발견하게 된다. 1907년 여름에는 트란실바니아 지방(오늘날 루마니아)에서 헝가리 민요 수집작업을 진행하여 한동안 서구 클래식계에서는 잊혀진 고대의 5음계를 확인하게 된다. 그에 의하여 동유럽에 산재한 종족의 문화와 역사가 복원되기 시작한 것이다. 1907년에 부다페스트 음악원의 교수로 임용된 바르톡은 이 안정된 기반을 바탕으로 더 많은 수집과 연구 및 작곡을 병행하게 된다. 만약 그가 원래의 행로대로 독일계 주류음악의 언저리에서 피아노를 잘 치고 작곡도 곧잘 하는 길을 걸었더라면 몸은 20세기에 있으나 스타일은 19세기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그런 음악 자체가 있는 줄도 모르는 가운데, 바르톡은 동유럽 일대를 샅샅이 돌아다녔고, 채집했고, 그를 바탕으로 작곡을 하였으니, 그 결실은 주류음악 문화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충격적인, 신선한 음악이 되었다. 더욱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대한 그의 공포와 저항까지 드리워져 있다. 그리하여 그는 ‘현대음악가’가 되었다.
-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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