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5,041 건 검색)
- 백지신탁 사퇴 문헌일 전 구청장, 재임 중 보유주식 50억 ‘상승’
- 2025. 01. 24 00:00지역
- ... 국민의힘 구로구청장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으나 지난해 10월 주식 백지신탁 소송에서 패소하자 자진사퇴했다. 구로구청장은 현재 엄의식 부구청장이 권한대행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
- 이상민, 사퇴 후 첫 국회 출석···“증언 않겠다” 답변 거부 일관
- 2025. 01. 22 11:23정치
-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윤석열 탄핵 정국
- AI 교과서 청문회에 등장한 ‘백골단 기자회견’···야당, 김민전 사퇴 요구
- 2025. 01. 17 11:21사회
- ... 교육위에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야당 의원석 앞에는 ‘백골단 부활 시도 김민전 교육위원은 즉각 사퇴하라’는 손팻말이 붙었다. 김문수 민주당 의원은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는 사진을...
- 백골단김민전국민의힘반공청년단윤석열탄핵내란비상계엄교육위원회더불어민주당ai디지털교과서
- 고교 졸업식서 음주 추태…홍성표 아산시의회 의장 자진사퇴
- 2025. 01. 16 13:56정치
- ... 졸업식에서 음주 추태를 부린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장직을 사퇴했다. 지역 정치권에선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16일 아산시의회 등에 따르면 홍 의장은 지난 10일 아산지역 한...
- 아산시의회의장직홍성표사퇴추태
스포츠경향(총 937 건 검색)
- [스경x이슈] 논란의 SSG 2군 감독, KBO에 기록도 안 남는다…박정태, 24일 만에 사퇴 결말
- 2025. 01. 24 16:28 야구
- 선임 24일 만에 자진사퇴한 박정태 전 감독. SSG 랜더스 제공 논란의 SSG 선임 사태가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박정태 SSG 퓨처스(2군) 감독이 선임 24일 만에 사임했다. SSG는 24일 “박정태 퓨처스 감독이 자진사퇴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 감독이 선임 후 팬분들과 야구 관계자들의 우려 목소리를 들었다. 현장으로 복귀하기 아직 부족하다는 의사를 전해왔다”며 “박 감독과 면담을 했고 팬, 선수단, KBO리그 등 다각적인 부분을 고려해 수용했다”고 덧붙였다. 구단은 박 전 감독이 일주일 전 구단 측에 사임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31일 구단이 선임발표한 이후 신인 선수들을 보기 위해 몇 차례 출근은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KBO에 SSG 소속으로 정식 등록되기도 전, 지휘봉을 본격적으로 잡아보지도 못하고 여론의 압박에 밀려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임기는 KBO 역사상 손에 꼽힐 최단기이며, 실제로는 KBO에 등록되지 않아 SSG를 거쳐간 지도자로 공식 기록으로 남지도 않는다. SSG는 지난달 31일 박정태 전 코치를 2군 감독으로 영입했다. 선임 당시부터 논란이 무성했다. 2012년 롯데 코치를 끝으로 경력이 끊긴 지도자를 팀 육성의 핵심인 2군 감독으로 선임한 데 대해 의문부호가 따라붙었다. 자연스럽게 나흘 전 구단주 보좌역으로 선임된 추신수와의 ‘관계’가 의심을 샀다. 박 전 감독은 추 보좌역의 외삼촌이다. 논란을 예상한 구단은 사전 자료를 준비해 추 보좌역과 박 전 감독 선임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명하는 데 열중했다. 인천 강화 SSG 2군 훈련장. SSG 랜더스 제공 당시 SSG는 “추신수 보좌역이 선임 대상자였기 때문에 2군 감독 인선 작업에 관여할 수 없는 상황과 시간이었다”며 “추 보좌역의 삼촌이라는 이유로 조심스러웠으나 오해 소지를 만들기 위해 명확한 선임 기준과 공정한 평가를 거쳐 선임했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음주 운전 전력이다. 박 전 감독은 2019년 1월에 음주 운전과 시내버스 기사 운전 방해 및 운전자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해당 사건 포함 총 3차례 음주 운전 적발된 사실을 인지하고도 SSG가 선임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야인 신분이었던 박 전 감독은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지만, 현재 규정대로라면 3차례 음주운전 적발은 영구제명에 해당된다. SSG는 당시 사건과 관련해 박 전 감독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여론은 매우 비판적이었다. 특히 KBO가 허구연 총재 체제 이후 음주운전에 대단히 단호한 입장이고, 최근 연달아 젊은 선수들의 음주운전 사고로 분위기가 엄중한 가운데 SSG가 경력단절 상태에서 음주운전 3회 적발된 인물을 굳이 2군 감독으로 선임했고 그가 추신수의 외삼촌이라는 점에서 논란은 전혀 가라앉힐 수 없었다. 오는 31일까지 2025시즌 선수단 등록이 마감되는 가운데 KBO 측도 박 전 감독의 등록을 수용할지 여부를 고민했다. 야구 규약 ‘제152조의 2 [등록 제한]’는 “총재는 리그 관계자가 아닌 신분으로 유해 행위에 연루되거나 야구와 관련한 중대한 범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자에 대하여 상벌위원회 심의를 거쳐 리그 관계자로의 등록·활동을 거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SSG 랜더스 제공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는 SSG의 이번 인선은 대실패로 끝났다. 당장 하루 뒤 비활동기간이 종료되는 가운데 2군 감독부터 새로 뽑아야 한다. 퓨처스팀은 다음 달 10일 일본 가고시마로 이동해 스프링캠프를 소화한다. 구단은 박 전 감독 선임 당시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지도자 위주로 검토해 차기 2군 감독을 빠르게 선임한다는 계획이다. SSG는 “이번 퓨처스 감독 선임과 관련해 팬분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구단은 앞으로 KBO리그와 팬분들의 눈높이에 맞는 감독 선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고개 숙였다.
- 스경X이슈
- 강태선 후보, “비리 연루 이기흥 회장, 후보 사퇴하라”
- 2024. 12. 30 16:07 스포츠종합
- 강태선 후보. 연합뉴스 제42대 대한체육회장에 출마한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75)이 3선을 노리는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69)의 비리 의혹에 대한 해명과 함께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강태선 후보는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비리 척결’ 기자회견을 열고 이기흥 후보와 관련한 비리 의혹을 공개하며 이에 대한 철저한 해명을 요구했다. 강 후보는 전날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보도된 이기흥 후보 관련 7가지 비리 의혹을 제시하며 “이기흥 후보가 연루된 충격적인 비리 의혹이 전국적으로 공개됐다”면서 “횡령과 배임, 금품 수수 등 중대 혐의만 4건에 달하며 이외에도 입찰 비리와 부정 채용, 국가대표 전용 숙소의 사유화 등 체육회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악용한 사실도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런 사태를 만든 이기흥 현 체육회장의 사퇴를 강력히 요구한다”면서 “체육회의 의혹과 비리를 척결하고 체육인들의 사랑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강 후보는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관련해 국가 애도 기간 선거운동 자제를 약속하면서 참사 희생자 가족을 위해 1억원 상당의 블랙야크 겨울 패딩 200벌을 전달하기로 했다.
- 4선 갈까, 사퇴할까
- 2024. 11. 26 07:02 축구
- “여론 외 걸림돌 없어, 명예회복 원할 것” VS “경선 걱정·줄어든 지원 우려” 초미의 관심사 된 정몽규 축구협회장 출마여부, 이르면 26일 결정 최종 선택은 무엇일까. 4선 도전일까, 아니면 포기일까. 축구계 초미의 관심사가 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회장 선거 출마 여부가 이르면 26일 결정된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날 임원 회의를 개최한다. 협회 관계자는 25일 “정 회장이 4선에 도전하려면 12월 2일까지 협회에 후보자 등록 의사를 알려야 한다”며 “그에 앞선 마지막 임원 회의가 26일이다. 정 회장이 4선 도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세 번째 임기는 내년 1월 21일까지다. 회장 선거 관련 규정상, 정 회장이 4선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기존 임기 종료 50일 전에 협회에 후보자 등록 의사를 알려야 한다. 정 회장의 3번째 임기는 1월21일 끝나며 12월2일이 임기 종료 50일 전이다. 정 회장은 지금까지 4선 도전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취재진의 질문에도, 국정감사에서 적잖은 국회의원의 압박에도 정 회장은 “모든 걸 고려해서 심사숙고해 결정하겠다”고만 답해왔다. 협회 고위층들도 “정 회장이 이에 대해 어떤 발언도 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정 회장의 심경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 회장이 4선 도전을 결심할 수도 있다. 그간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본인이 시작한 천안트레이닝센터 건립사업을 마무리하고 싶어하는 게 정 회장 심정이다. 축구에 대한 정 회장의 관심과 애정은 여전하다. 국정감사에서 숱한 모욕적인 발언을 들으면서도 참고 또 참은 것도 명예회복을 향한 바람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4선에 도전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조금씩 나온다. 무엇보다 회장이 돼도 정치권,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기 힘들다는 우려 때문이다. 적잖은 돈이 들어가는 천안센터 건립 등 주요 사업들을 순조롭게 진행하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경선을 벌여 패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도전을 포기하리라는 예상도 나온다. 4선 도전에 대한 가족들의 만류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 회장이 4선에 도전하려면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 회장은 아직 승인 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다. 후보 등록을 먼저 하고 추후 공정위 승인을 받아도 절차상 문제는 없다. 현 정부와 극명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도 최근 공정위로부터 3선 연임 도전을 승인받았다. 정 회장의 4선 도전에 대한 승인도 별다른 이변 없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즉, 정 회장이 4선에 도전하는 데는 여론 이외 걸림돌은 없는 상태다. 선거는 내년 1월 8일 열린다. 선거운영위원회는 12월 12일까지 구성된다. 12월 25일부터 사흘간 후보자 등록 기간이다. 새 회장의 임기는 1월 22일 정기총회부터 시작된다.
- ‘수건 폭행 논란’ 김승기 소노 감독, 결국 자진 사퇴 “심려끼쳐 죄송하다”
- 2024. 11. 22 20:30 스포츠종합
- 김승기 감독. KBL 제공 선수 폭행 논란에 휩싸인 고양 소노의 김승기 감독이 스스로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소노는 22일 “김승기 감독이 최근 일어난 논란과 물의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고 발표했다. 구단에 따르면 김 감독은 프로농구 팬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선수단 분위기 쇄신을 위해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소노는 “김 감독의 후임 지도자를 물색하고 있다”며 “이른 시일 내에 차기 감독을 선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감독은 지난 10일 서울 SK와의 정규리그 원정 경기 때 라커룸에서 소노의 한 선수를 질책하다가 수건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선수는 얼굴에 수건을 맞았다. 소노 구단은 자체 조사 후 지난 20일 KBL에 재정위원회 개최를 요청했다. 구단의 요청 외에 KBL 클린바스켓 센터에도 이 사안 관련 신고가 접수되면서 KBL은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클린바스켓 센터는 KBL이 공정하고 투명한 프로농구 경기 환경 조성을 위해 운영하는 조직으로, 각종 부정행위 관련 신고를 익명으로 받는다. KBL 관계자는 “진상 조사를 거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재정위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안양 KGC인삼공사(현 정관장)에서 2016~2017시즌 통합우승, 2020~2021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끈 지도자다. 특히 국내 프로농구에서 사상 처음으로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했다. 2022년 전신인 데이원 시절부터 소노를 지휘하며 2022~2023시즌 4강 플레이오프 진출 등을 이뤘다. 하지만 선수 폭행 가해자로 지목돼 불명예스럽게 감독 지휘봉을 내려놨다. 소노는 이번 시즌 5승5패로 5위에 올라 있다. 28일 원주 DB와 원정 경기를 앞두고 있다. 김승기 감독. KBL 제공
주간경향(총 35 건 검색)
-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직 사퇴…“고통받은 국민께 죄송”(2024. 12. 16 10:56)
- 2024. 12. 16 10:56 정치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2월 16일 국회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며 허리를 굽혀 사과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2월 16일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고위원 사퇴로 최고위원회가 붕괴돼 더 이상 당 대표로서 정상적 임무 수행이 불가능해졌다”며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고통받으신 모든 국민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어 “탄핵으로 마음 아프신 우리 지지자분들께 많이 죄송하다”며 다시 한번 허리 숙여 인사했다. 한 대표는 “그런 마음을 생각하며 탄핵이 아닌 이 나라의 더 나은 길을 찾아보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며 “모두가 제가 부족한 탓이다.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한 대표의 사퇴는 지난 7·23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지 146일 만이다. 한 대표는 지난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대표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밝혔지만, 선출직 최고위원 5명이 전원 사의를 표명하면서 ‘한동훈 지도부’는 자동으로 해체 절차를 밟게 됐다. 한 대표가 이날 공식 사퇴함에 따라 국민의힘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다.
- [시사 2판4판]해줘 사퇴! 클린스만(2024. 02. 19 05:30)
- 2024. 02. 19 05:30 정치
- 시사 2판4판
- [김우재의 플라이룸](33)사퇴로 해결 말고 사태 해결을 하라(2022. 11. 04 11:16)
- 2022. 11. 04 11:16 사회
- 실험실은 작은 사회다. 어느 사회나 그렇듯, 실험실에서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 실험실의 문제는 여러 층위로 나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실험실 프로젝트와 관련된 것들이다. 실험실은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만 그 본질적인 연구의 기능을 충족한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발생하는 문제 중 가장 긴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일은 프로젝트 수행에서 벌어지는 각종 실수와 오류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하지만 연구를 수행하는 주체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실험실은 작은 사회다. 이 말은 20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조직 안에서도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인간의 문제를 프로젝트의 문제와 독립해 생각하면 할수록 결국 인간의 문제에서 누적된 오류가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실험실 관리의 중요한 분야가 되는 셈이다. 리더는 책임지는 사람이다 학위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한국 교수는 책임을 미루는 사람들이었다. 실험이 잘못되고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들은 학생의 무능을 탓했다. 상당수의 교수가 대학원생의 학부를 서열화하고, 그것으로 학생을 낙인찍고 차별했다. 본교 출신과 지방대 출신을 차별하는 교수들의 이야기를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은 서울대 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학생의 대학, 성별, 태도 등은 교수가 자신의 책임을 미루는 아주 좋은 핑계가 된다. 한국의 교수들은 교수가 되는 순간, 책임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워버린다. 생각해보면 대학원 시절 교수에게 제대로 된 연구지도를 받아보지 못했다. 연구에 관련된 모든 책임은 학생이 지는 것이었다. 교수는 쓴 열매는 쳐다보지도 않고, 학생이 주는 단 열매만 먹는 사람이었다. 교수가 되고 가장 먼저 다짐한 일은 연구의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철학을 확실히 하는 것이었다. 교수는 책임지는 사람이다. 실험실에서 벌어진 모든 문제의 최종 책임은 교수에게 있다. 실험실을 책임지는 교수는 실험실의 구성원들과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그건 의무다. 리더는 책임지는 사람이다. 얼마 전 실험실 초파리 스탁의 오염 문제가 발생했다.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해보였다. 초파리 스탁 매니저와 학생 및 관련 연구원 모두와 미팅을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한 말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전 세계 모든 초파리 실험실에서 초파리 스탁의 오염은 일어난다. 분명히 게으른 누군가 오염을 주도했을 것이다. 그 게으른 학생 한두명을 잡아낸다고 해서, 이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런 게으른 학생의 존재까지 방지할 수 있는 매뉴얼과 철학을 정립하는 것이 오염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매뉴얼을 더 체계적으로 만들고 신입생들을 제대로 교육하기로 했다. 이 사건의 최종 책임은 교수가 져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이기적인 학생 한명이 초파리를 모두 오염시켰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실험실이 무너지면 그 책임은 교수에게 있는 것이다. 교수가 실험실의 공(功)만 취하고 과(過)는 외면한다면, 그런 실험실은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공간이 된다. 누구도 연구의 실패에 책임을 지지 않는 실험실에선, 연구의 윤리 또한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런 곳에서 대학원생 인권이 유린되고, 가짜논문이 출판된다. 교수가 책임지지 않는 문화가 한국에서 발생하는 연구윤리 위반의 가장 중요한 축인 셈이다. 실수는 관리하는 것이다 애자일 방법론(경험적 관리기법의 하나) 전문가인 김창준 대표는 “실수는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산림청은 산불 정책을 예방에 대한 강조에서 관리로 옮겼다. 산불의 특징 때문이다. 산불이 과도하게 예방돼 가연성 물질이 지나치게 축적되면, 큰 규모의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자연상태에서 발생하는 작은 규모의 산불은 큰 규모의 산불 재앙을 방지하는 기능도 있다. 그래서 미국 산림청은 이제 산불을 무조건 예방하자는 주장보다 불을 관리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책을 옮겨가고 있다. 마이클 프레제는 ‘실수 예방’과 ‘실수 관리’ 중 실제로 실수가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지 못하게 막는 문화는 ‘실수 관리’라고 말한다. 행동에서 실수로, 그리고 결과로 이어지는 3단계의 프로세스 중에서, 실수 예방은 행동에서 실수로의 경로에, 실수 관리는 실수에서 결과로의 경로에 집중한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건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전문가조차 1시간에 평균 3~5개의 실수를 저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엉망이 아닌 이유는, 전문가들이 실수를 조기에 발견하고 실수가 큰 사고로 번지기 전에 빠른 조치를 취하기 때문이다. 실수는 일찍 발견하고 빨리 고치면 된다. 그것이 실수가 예방이 아닌 관리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실수를 예방하려는 문화에선 “실수를 한 사람을 비난하고, 처벌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실수를 감추고 실수에 관한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런 문화에선 협력 또한 줄어든다. 실수를 예방하는 조직보다 관리하려는 조직이 더 혁신적이라는 조사도 있다. 실수하지 말라는 조직일수록 새로운 혁신이나 학습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실수를 관리하고 해결하려 하기보다 단지 실수를 저지른 사람을 비난하고 처벌하려는 문화가 공무원 조직에 스며들게 되면, 어떤 사고가 터졌을 때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나타난다. 이태원 참사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하 여러 고위직 공무원들이 보여준 태도는 한국의 관료사회가 실수 예방 문화에 젖어 있음을 드러낸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모두 책임자의 처벌과 사퇴로만 해결하려는 한국사회의 문화가 그 이면에 놓여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상민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공무원에게 사고의 책임을 지우려는 문화보다, 그들이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드는 문화가 훨씬 혁신적이다. 이상민 장관은 사고를 수습하고, 행정안전부의 매뉴얼을 전체적으로 재점검하고, 이후 망언에 대해 사과한 다음 물러나야 한다. 지금 물러나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간편하고 쉬운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게 하고, 그 일의 결과를 모두 지켜본 후에 이 망언의 책임을 지게 하면 된다. 참사를 해결하고, 한국 공무원 사회에 문제해결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일, 그게 더 혹독한 벌이다.
- 김우재의 플라이룸
- 장관 사퇴·정책 폐기 ‘상처뿐인 학제 개편’(2022. 08. 12 13:33)
- 2022. 08. 12 13:33 사회
- ㆍ극심한 사회적 비용 치르고 원래의 길로 돌아간 셈 폭풍 같은 열흘이었다. 예고없이 돌출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이 사실상 폐기되고, 운을 띄운 교육부 장관이 사퇴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아마추어리즘’의 그림자는 한층 짙어졌고, 국정 철학이 부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보다 커졌다. 정책 추진의 배경은 무엇인지, 그간 입장차를 보이던 이해관계자들이 왜 한목소리로 반대했는지, 남은 쟁점은 무엇인지를 되짚어 봤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월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정책 추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하며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교육정책은 100 대 0이 없다. 정책의 영향이 광범위한데다 이해관계도 난마처럼 얽혀 모두가 찬성하는 정책, 모두가 반대하는 정책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 어려운 것을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해냈다. 박 장관은 지난 7월 29일 윤 대통령에게 첫 업무보고를 하면서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향은 즉각적이었다. 학부모와 아이들이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이해당사자인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물론, 초등학교 교사들도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학생·학부모·교원 13만명을 상대로 최근 실시한 설문에서는 97.9%가 이 정책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위를 시민 전반으로 넓힌 여론조사에서는 76.8%가 반대 의견을 냈다(TBS·한국사회여론연구소 8월 8일 여론조사). 과정 없는 정책에 여론 폭발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정책의 옳고 그름은 둘째 문제고 정책 추진 과정이 잘못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접근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송현석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일반적인 정책 결정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교육정책은 보통 3년 예고제를 한다. 정책 대상자, 이해관계자가 많으니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먼저 교육부 내부 논의를 거친다. 이 정도 규모 정책이면 대통령보고 전에 수차례 내부 논의가 필요하다. 시민들을 설득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유치원부터 초·중등교육 정책을 수행하는 시·도 교육청의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 국회와 당정 협의를 하고, 교원단체 등 이해관계자 의견도 청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던진다?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것.” 이번 정책은 과정 상당수가 생략됐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8월 4일 국회 토론회에서 “저를 비롯한 17개 시·도 교육감들은 언론보도를 보고야 취학연령 하향 학제개편안에 대해 알게 됐다”며 “무거운 과정이 너무 가볍게 이뤄졌다”고 했다. 교원단체나 영유아 교육기관, 학부모 등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 과정도 없었다. 물론 이 지난한 과정을 축약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도 존재한다. 대선 등 주요 선거에서 대표적인 공약으로 등장해 첨예한 논쟁과 검증을 거친 경우다. 그러나 만 5세 취학 정책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도, 국정과제도 아니었다. 파급력 큰 정책이 어디서 갑자기 돌출했을까. 적어도 교육부 내부 논의 과정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 8월 9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교육부 업무보고에 만 5세 입학 방안이 들어가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업무보고 내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국가교육책임제를 강화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취학연령 1년 하향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며 “관련된 실국하고 다 토의를 했다”고 말했다. 교육부 설명에도 의문은 꼬리를 문다. 취학연령 하향 정책은 김영삼 정부 때 시작해 거의 모든 정부에서 한 번 이상 검토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고위 당정회의에서 초등학교 취학연령 하향안을 내놨지만, 교육계는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 당시 한국교육개발원은 효과보다 혼란이 더 크다는 취지의 연구보고서를 내놨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에도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취학연령 하향안을 검토했지만, 학제 개편에 따른 혼란 등을 이유로 교육부가 반대 의견을 내면서 논의는 시작도 전에 중단됐다. 2019년 취학연령 하향 등 학제개편 관련 연구보고서를 냈던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은 “교육부 관료들이 교육 문제는 민감해서 한 번 던져보고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왜 대통령 첫 업무보고에 포함되게 그냥 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당국의 뚜렷한 설명이 없다 보니 추측만 무성하다. 교육계에서는 3~4가지 추정이 떠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단계에서 논의됐던 안을 박순애 장관이 다시 꺼내들었다는 가설이 대표적이다. 실제 박 장관은 지난 7월 29일 정책 추진 배경에 대해 “내용들이 갑자기 떨어진 것은 아니고, 실질적으로 인수위에서 우리 대통령께서도 학제 개편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라고 했다.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2017년 대선에서 취학연령 하향을 포함한 학제 개편을 공약했다는 점도 이 같은 추정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제가 아는 한 공식 안건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고 했다. 안철수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교육개혁에 대해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에 교육개혁 전체와 핵심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갔다면 소모적 논란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학제개편안과 거리를 뒀다.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주최로 지난 8월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종이비행기에 요구사항을 적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준비되지 않은 교육부의 아이디어 수준 보고에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의지가 더해지면서 수습 불가의 상황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부의 업무보고 직후 “초·중·고 12학년제를 유지하되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박 장관의 우왕좌왕 대응도 이 같은 추정에 무게를 싣는다. 박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 앞서 실시한 사전브리핑에서 2025년부터 4개년도에 걸쳐 순차적으로 만 5세 아동을 입학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5년에는 2018년 1월~2019년 3월생이 입학하고, 이듬해에는 2019년 4월~2020년 6월생이 입학하는 식이다. 학령인구가 늘어 입시경쟁이 과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박 장관은 해마다 만 5세 아동의 진학 시기를 12년에 걸쳐 1개월씩 앞당겨 입학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교육부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지도, 정책을 철회하지도 못하는 사이 논란은 급격히 확산됐다. 정책 결정권자들의 전문성 부재가 결합돼 빚어진 논란이라 데는 이견이 없다. “교육에 관해서는 온 국민이 전문가”라는 교육정책의 파급력을 간과한데다 정책에 대한 이해도도 높지 않아 불거진 문제라는 지적이다. 박순애 장관은 행정학자 출신으로 교육정책 관련 경험이 없고, 장상윤 차관과 이상원 차관보는 각각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대통령도 교육 분야 전문성이 없는데다, 대통령실의 안상훈 사회수석은 복지 전문가다. 그러다 보니 이번 사달을 두고 비전문가들의 ‘소통 착오’라는 얘기도 나온다. 박 장관은 지난 8월 1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께서 돌봄센터를 다녀오셨는데 학교보다 낙후된 시설에서 조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게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이런 아이들을 더 나은 시설을 가진 학교가 담당하는 게 더 낫다고 보신 것 같다”며 “(대통령이) ‘입학연령 하향이라는 것이 그런 취지에서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것을 조금 빨리 집행해볼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돌봄센터나, 윤 대통령이 방문한 지역아동센터는 방과후 돌봄이 필요한 초·중학생들이 다니는 곳으로 만 5세 돌봄과는 관련이 없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정말 많은 변수가 얽힌 것이 교육정책이다. 경제부처 장관에 경제 전문가를 앉히고, 국방부 장관에 국방 전문가를 앉히듯이 교육정책도 전문가가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김기식 소장은 “대통령이 국정운영 경험이 없더라도 옆에서 고언하고 검토보고서를 내면서 말렸어야 하는데 사회수석실이 제 역할을 못 했다. 백번 양보해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이라 해도 공론화를 거쳐 추진할 사안이다. 교육 관련 사안은 일방적으로 추진해 된 예가 없다”고 했다. 윤 정부 출범 후 첫 장관 사퇴 윤석열 대통령이 휴가에서 복귀한 지난 8월 8일 박순애 장관은 “학제 개편 등 모든 논란의 책임은 저에게 있고 제 불찰”이라며 사의를 표했다. 장관에 정식 취임한 지 34일 만, 대통령 업무보고를 한 지 9일 만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현직 국무위원이 사퇴한 첫 사례이기도 했다. 사퇴한 것은 박 장관이었지만 윤 대통령이 받은 타격이 더 컸다. 박 장관은 인사 검증 단계에서 만취 음주운전, 갑질 논란, 논문 중복게재 등 논란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 다른 정권 때하고 한 번 비교해보라. 자질이나 이런 것을”이라며 박 장관 임명을 비호했다. 자질과 능력에 맞는 인사를 했다는 취지다. 그런 박 장관이 다른 문제도 아니고 잘못된 정책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매끄럽지 못했던 인선 과정과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정책 추진 과정을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송현석 소장은 “집권 초기이다 보니 임명 과정 자체가 교육부 관료들에게 안 좋은 시그널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의혹이 연일 제기되는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 강행했다면 ‘실세 장관이구나’ 하는 암묵적 메시지를 관료들이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저러한 의견이 있어도 (장관에게) 강하게 전달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스타장관’ 발언에 실적압박을 느낀 박 장관이 ‘한방’을 노리고 무리수를 뒀다는 해석도 나온다. 박 장관은 지난 7월 19일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안’을 내놓으며 윤 대통령의 지시에 발을 맞췄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 6월 “반도체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부처가 나서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이 정책 역시 수도권 대학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는 정책으로 지방대 총장들의 반발을 샀다. 박남기 교수는 청와대의 조정을 받는 동시에, 위기의 순간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역대 교육부 장관들의 수난사가 재연됐다고 봤다. 박남기 교수와 임수진 광주교대 교수는 2018년 김영삼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역대 정부의 교육부 장관 1명씩을 면담해 교육부 장관의 특성을 분석한 ‘교육부 장관 리더십 탐색 연구’ 논문을 내놨다. 이 논문은 교육부 장관을 “대통령의 아바타”로 규정하고 “대통령은 교육부 장관을 희생 제물로 활용하면서 위기를 넘기곤 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역대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실이 해달라는 대로 해야 하고 책임은 본인이 졌다”며 “학제 개편 의제를 다루는 권한은 국가교육위원회에 있는데, 교육부 장관은 매일 터지는 현안에 대응하고, 교육정책 의제 설정 권한은 국가교육위에 맡기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박 장관에게 “언론의, 또 야당의 공격을 받느라 고생 많이했다”고 했다. / 강윤중 기자 정책은 사실상 폐기 수순 취학연령 개편안은 사실상 폐기 수순에 돌입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 8월 9일 국회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폐기한다, 이제는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은 드리지 못한다”면서도 “계속 고집을 하거나 추진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추진 과정 못지않게 정책 자체의 허점이 컸다. 학제 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취학연령 하향을 검토했던 역대 정부와 달리 이번 정부는 취학연령 하향만 따로 떼 검토했다. 그러면서도 추진 근거는 정교하지 못했고, 과거의 찬성론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학제가 1950년대 확정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입학연령 하향으로 사회 진출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 영유아 시기부터 나타나는 교육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교육을 영유아의 관점에서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병설유치원에서 6년간 유아들을 가르친 박다솜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 노조위원장은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공간 자체가 다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책상에 앉아 40분간 수업을 듣는 것을 힘들어하는데, 유치원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만 5세 아이들이 적응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장 유치원에는 아이들이 변을 보고 뒤처리를 못 할 때 누르는 벨이 있다. 1인당 담당하는 아이들이 적고 보조강사도 있는 유치원에서는 처리가 가능하겠지만, 한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은 초등학교에서는 매번 그럴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생일이 1~2개월만 차이 나도 격차가 큰 아이들의 발달상황을 간과했다는 얘기다. 현행법상으로도 부모가 원한다면 아이를 만 6세가 아닌 만 5세나, 만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다. 발달격차 등의 이유로 초등학교 조기입학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연도별 초등학교 조기입학자는 2009년 9707명으로 고점을 찍은 이후 지속 감소해 2020년에는 521명까지 줄어들었다. 반면 유예입학자는 2020년 812명으로 조기입학자보다 많았다. 교육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학부모들은 크게 반발했다. 진짜 사교육이 시작되는 시점은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만 5세로 취학연령을 하향할 경우 교육격차만 1년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있다. 아이를 저녁시간까지 돌봐줄 수 있는 유치원과 달리, 초등학교는 늦어도 오후 1시에는 아이들을 하교시킨다. 방과후 교육이 있지만 도심 지역의 경우 수요자가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돌봄 공백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원 뺑뺑이’를 돌리게 되는 셈이다. ‘8세(한국나이) 경단녀’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A씨는 “직장을 다니는 여성에게는 3번의 고민할 때가 찾아온다. 결혼할 때, 아이를 낳을 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다. 첫아이가 학교 입학할 때 일을 쉬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B씨는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아내가 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학제 개편 찬성론자들 사이에서는 취학연령 하향과 맞물려 학제 개편 논의까지 이대로 공론장에서 퇴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학제 개편과 9월 학기제 개편은 지난 30년간 정부가 추진한 교육혁신의 단골 메뉴였다. 매번 너른 공감대를 얻지 못해 좌초했지만, 정책을 추진해야 할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초등학교는 위기에 처했다. 지난 10년간 400개가 넘는 초·중·고교가 문을 닫았고, 전체 학생 수가 60명이 안 되는 초등학교가 전국적으로 1500개 존재한다. 아이들의 수는 점차 감소해 일자리가 줄어드는데, 교원 자격을 갖춘 이들은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유치원·어린이집도 대대적 구조조정 위기에 처했다.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정책에 유치원·어린이집이 격렬하게 반발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사립유치원 비율이 75%에 달하는 유아교육기관보다 공립학교가 대부분인 초등학교를 살리겠다는 시그널로 본 것이다.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 선생님 중에는 잘하면 교원을 늘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이 정책에 아무리 논의할 가치가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달이 나서 앞으로 얘기나 꺼낼 수 있겠느냐”고 했다. 나온 대안이 원안… 실현가능성 미지수 이번 사태는 만 5세 아동 교육에서 국가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남겼다. 교육계 대다수가 동의하는 대안은 만 5세에 대한 ‘국가 책임 교육’이다.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저마다 차이가 있는데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유보통합부터, 유아 무상교육, 유아 의무교육, 유아학급 등의 제안이 나온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미래교육연구팀장은 “사실 새로운 대안이 아니고 오랫동안 논의된 내용들이다. 유보통합의 경우에는 윤석열 정부의 대선 공약으로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문제가 나오면서 기존 논의가 퇴보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사실상 만 5세 취학 폐기 방침을 밝힌 지난 8월 9일 국회에서 유보통합과 전일제학교 시범사업 방안 마련 등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극심한 사회적 비용을 치른 끝에 원래의 길로 돌아가는 셈이다. 대안은 제시됐지만 험로가 예상된다. 교육부가 관리하는 유치원과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어린이집의 통합 논의는 수십년간 이어졌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려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했다. 유치원 교사들은 자격 양성 체계가 다른 두 기관을 통합할 경우 교육의 질이 하락할 것을 우려한다. 경쟁이 치열해질 것을 우려하는 사립유치원의 목소리도 있다. 대선 때마다 거의 모든 후보의 공약에 포함되고도 아직까지 정책이 실현되지 않은 배경이다.
- 특집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 현역 의원직 사퇴하고 작가로 돌아온 김홍신
- 2004. 03. 01 화제
- “당의 공천을 받는다면 열린우리당이 되겠죠”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인간시장」의 ‘장총찬’ 김홍신이 야인으로 돌아왔다. 이에 발맞춰 SBS-TV에서는 3월 초부터 미니시리즈 ‘인간시장’을 방송한다. 20여 년이 지난 후 ‘인간시장’이 다시 우리 곁에 찾아오는 것. 원작자는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강하게 추측되는 그의 정계 복귀 시기는 언제 쯤일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김홍신을 만났다. 딸을 부르는 “사랑하는 예슬아“라는 말이 너무도 듣기 좋았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가부장적인 성격 탓에 자식들이 커버리면 대화가 단절된다. 자식은 자식대로 “말도 안통한다”며 외면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라며 한숨만 푹푹 내쉰다. 대학생 딸을 부르는데 이렇게 닭살(?) 돋는 멘트를 날릴 수 있는 아버지가 몇이나 될까. 그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인터뷰 내내 그 이야기가 화두가 됐다. 얼굴이 뜨거워질 수도 있는 멘트를 날린 아버지는 바로 우리시대의 작가이자, ‘의정활동 최고 평가’를 받은 전 국회의원 김홍신(56)이다. 김홍신 전 의원은 햇살이 너무나 따사로운 집에서 취재진을 맞았다. 그리고 인터뷰가 진행될 자신의 2층 작업실로 안내했다. 작가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항상 설레는 일이다. 그곳에는 작가의 향기와 역사가 깃들어 있다. 낡아서 너덜너덜한 책부터 후배 작가들이 보내왔음 직한 뻗뻗한 새 책까지…. 그리고 작가가 썼을 펜이나 원고지를 보는 것은 마치 그 사람의 일기장을 엿보는 것 같은 스릴감까지 준다. 작가의 방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가 오롯히 담겨 있다. 무엇보다 방 안을 가득채운 책 내음이 마음을 너무나 편안하게 해준다. 그와의 인터뷰는 마음 편안하게 진행됐다. ‘정치인 김홍신 “국민을 무서워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국회의원 김홍신은 욕먹기보다는 칭찬을 받았던 행복한 정치인 중 하나다. 통추(국민통합추진위원회)와 꼬마 민주당을 거쳐 한나라당에서 비례대표 최초 재선의원이라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만일 다른 의원이 당을 옮겼다면 여지없이 ‘철새’라는 꼬리표가 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2003 한국유권자운동연합 의정활동 최우수상, 2002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최우수상, 2001 올해를 빛낸 정치인상, 2000 한국유권자운동연합평가 제15대 국회 의정활동 대상 등 정치인 생활의 시작과 끝 모두 의정활동 우수 의원으로 뽑혔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12월 10일, 8년간 맡아왔던 국회 의원직을 사퇴한 후에 그를 찾는 정치권의 콜이 훨씬 많아졌다. “맞아요. 총선이 다가오니까 저를 찾는 곳이 많아졌어요. 새롭게 창당하는 곳에서는 총수 자리를 제의하기도 했어요. 어느 기사에 제가 열린우리당을 통해 출마할 것이라고 나왔는데 아직 잘 몰라요. 정당에 들어간다면 열린우리당이 될 가능성이 크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번 총선 출마 여부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습니다. 결정 된 후에 알려드리죠.(웃음)” 김 전 의원은 경실련 상임집행의원 등의 시민단체 경력을 발판으로 정치권에 진출했다. 그가 정치권에 진출했을 때 문화 관련 소위원회에서 활동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보건복지위원이라는 생경한 분야를 선택했다. 그는 “당시 민주당이 15석밖에 없던 관계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웃는다. 보건복지위는 환경노동위와 함께 국회의원에게 가장 인기 없는 소위원회로 꼽힌다. 막상 보건복지위에 들어가서 활동해보니, 소설 소재로 쓰일 만한 상황들을 많이 지켜볼 수 있었다. AIDS, 한센병 등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험한 상황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다. “국회의원이 보건복지위와 환경노동위를 싫어하는 이유는 일이 정말 많고 이해당사자 간의 압력이 거세기 때문이죠. 인기도 없고 활동도 그리 활발하지 않았으니 기자가 잘 찾아오지 않는 소위로 꼽혔죠. 처음 소위에 참가했을 때 공부 많이 했어요. 나중에 소설 쓸 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공부했거든요. 보좌관들이 얼마나 공부를 시키던지…(웃음) 제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보건복지위는 기자가 잘 찾아오는 소위로 바뀌었어요.” 김홍신 전 의원은 보건복지위원 활동을 통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해냈다. 장애인 여성의 불임수술 실태를 폭로해 못하게 했다. 절대 빈곤층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기초생활보장법’을 발의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의약분업 실시로 항생제 사용을 줄여나간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한다.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을 통합한 것도 김 전의원이다. 이런 일을 하나 둘씩 이뤄가면서 정치에 대한 매력을 물씬 느꼈다. 하지만 8년의 정치 생활은 하루하루가 힘든 일상이었다. 국회의원으로서 양심과 소신에 반하는 행동을 해야 했을 때는 더욱 힘들었다. “정당은 원래 정치를 하는 데 정책과 이상을 이루기 위해 조직화된 곳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지역정서를 깔고 활동무대를 넓혀가는 곳이죠.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 배지를 달 때 선서하는 내용과 반하는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너무 힘들었죠.” 김홍신 전 의원은 당론과 마찰을 일으켜 상임위에서 내쫓겨 의원회관에서 크리스마스 농성을 벌였고, 당원권 8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국회법 제24조에 의한 선서문의 한 구절 때문이었다.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정치는 김홍신에게 많은 것을 잃게 했다. 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지난 8년간 그에게 사인을 부탁하는 팬들은 대부분 정치인 김홍신으로 알고 있었다. 그만큼 정치인으로서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한 가지 소망이 있다. “국가와 민족에게 봉사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봉사는 조건이 없어야 해요. 정치를 하면서 수고료를 챙기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되죠.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소설가 김홍신 “내가 평생 가야 할 길은 소설가 김홍신이다” 김홍신을 문학으로 이끈 이는 고등학교 시절 작문 선생이다. 그는 미술과 문학에 소질이 있었다. 미술 선생은 미술을 전공하라고 설득하고, 작문 선생은 문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래는 미술 쪽에 관심이 더 컸지만, 미술 선생이 학교를 떠나면서 작문 선생과 가까워져 문학도가 됐다. 작문 선생의 지도로 백일장에 나가서 장원도 하고, 학보 편집장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작문 선생님이 어느 날 계절에 관계된 수필을 하나 쓰라고 했어요. 열심히 쓰고 있는데 조용히 제 뒤에 와서 보시더니 아무 말 없이 제 어깨를 두드려주고 가셨죠. 작문 시간에 저를 앞으로 불러서 낭독시키셨죠. 제가 정말로 문학에 재능이 많은 학생이라고 칭찬을 하시는 거예요. 그 선생님의 칭찬이 저를 문학도로 이끈 거죠.(웃음)” 어려서부터 책을 유난히 좋아했다. 집에는 별로 책이 없었기 때문에, 동네 청년이나 선생님 집에서 책을 빌려다 보기도 했다. 당시는 한자가 유독 많던 시절이라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그냥 넘어가면서 책을 읽었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가의 기질을 보여준 것. 하지만, 당시 문학가는 폐병 환자가 되거나 굶어죽는 것으로 알려진 직업이었다. 부모님도 외아들이 문학가가 아닌 의학도가 되길 바라셨다. 의대 시험을 쳤지만 떨어졌다. 이듬해 굶어죽어도 문학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건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본격적으로 문학도의 삶을 살게 된 것. 김홍신이 지금까지 펴낸 작품은 무려 1백 권이 넘는다. 작가 자신도 확실하게는 모른다고 할 정도로 일반 작가보다는 훨씬 많은 글을 썼다. 소설가 김홍신을 알린 것은 단편소설 ‘무죄증명’이었다. 당시 평론가들의 호평이 일간지를 장식한것. 무엇보다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인 「인간시장」(1982)이 대표작이다. SBS-TV에서는 3월부터 20부작 미니시리즈 ‘인간시장’을 준비하고 있다. “86년에 무명이던 박상원과 박순천이 드라마 ‘인간시장’으로 스타가 됐죠. 시대가 바뀌었는데 다시 드라마화하니까 당시 시대와 바뀐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작자지만 제 작품이 연출가의 손에 가면 재창작된다고 생각해요. 책과 원작자 눈치 보지 말고 승부를 걸어줬으면 합니다.(웃음)” 이번 작품의 주인공을 맡은 가수 박지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에 대해서도 그리 개의치 않는다. 박상원 역시 드라마를 통해 톱스타가 됐기 때문에 박지윤도 이 작품을 통해 끼를 맘껏 펼쳐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개성 강한 주인공들의 내면에 있는 휴머니즘을 잘 소화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인간시장」이 인기를 끈 시대는 불행한 시대였어요. 이제 그런 세상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 이번 드라마가 재미만 주지 말고 국민들의 울분을 대신 치유해줬으면 합니다.” 정치권을 떠나면서 김홍신은 「인간시장 2」를 준비한다고 했다. 아직 작업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정치권에서 일하며 메모해둔 것들이 작업의 자료다. 이 작품은 ‘장총찬’이 시민운동을 하다가 젊은 나이에 정치판에 들어가면서 생기는 일을 그릴 것이라고 한다. 김홍신에게 문학은 ‘사람 사는 이야기’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사랑과 갈등, 애증 그리고 분노 등이 문학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나환자와 함께 2년간 함께 지내면서 경험한 것을 소설 「해방영장」으로 펴내기도 했다. 그는 독자들은 잘 모르지만 이런 경험 끝에 나온 작품들을 아낀다. 김홍신과 문학은 떼려뗄 수 없는 관계다. 평생을 소설가 김홍신으로 남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소원이기도 하다. 정치를 하든 시민운동을 하든 그의 곁에는 항상 문학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은 후배들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선배들이 못한 것을 후배들이 잘 해줬으면 합니다. 정말로 한국문학이 세계 속에 우뚝섰으면 좋겠어요.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아요. 종교나 이념의 갈등을 뛰어넘어 좋은 이미지를 세계인에게 심어줬으면 합니다.” 우리는 혹시 타인을 해치고서 그것을 개혁이라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양심을 그르치고 그것을 화해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당략에 따르면서 그것을 협력이라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법리를 무시하고 그것을 자유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평화를 깨뜨리고 그것을 희망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떠나야 할 때입니다. 국민이 제게 주신 의무를 얼추 다했기 때문입니다. 16대 국회의 임기는 내년 5월 29일까지 6개월 남았지만, 이번 정기국회를 끝으로 사실상 종결될 듯합니다. - 2003년 12월 10일, 김홍신 의원의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 중에서 정치가와 고급관료, 재벌과 언론사, 성직자와 종교, 군대와 법조계, 세무공무원과 정보기관원, 권력의 핵심 인사와 결탁하는 각종 음모, 검찰과 경찰, 촌지를 받는 교육자와 대학교수의 비리, 병원 비리와 의료인들의 부정, 상류사회의 위험한 행실과 타락해 가는 재벌 2세들… 그들을 사정없이 폭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쯤이면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이 저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차마 다 밝힐 수 없는 협박과 공갈과 위협을 줄기차게 받아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어린 제 자식들이 유괴당하기 직전에 구출되기도 했습니다. 만약 제가 그런 협박과 위협에 굴복했던들 「인간시장」이 광고 문안처럼 훈민정음 창제 이래 최고의 판매 부수인 5백만부가 팔렸을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건 도전이었습니다. 진실하며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이었습니다. - 김홍신 에세이 「세상 사는 방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중에서 취재 후기 김홍신 전 의원과 인터뷰는 두 번 진행됐다. 한 번은 작업실에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만족했고, 바쁜 스케줄 탓에 두 번째는 전화로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 전화 인터뷰는 취재기자에게는 곤혹스러운 방식이다. 수화기를 어깨와 귀 사이에 걸쳐놓고 한 손으로 녹취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 진행되던 인터뷰 도중 전화기를 놓칠 뻔한 일이 생겼다. 김 전 의원이 기자가 몰랐던 사실을 지나가는 말로 던졌기 때문이다. 부인이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라는 것이었다. 무척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이 사실은 그의 몇몇 지인만이 알고 있는 듯했다.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할 때 딸이나 김 전 의원에게서는 그런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에 더욱 놀라웠다. “부인과 연애 시절, 문학 때문에 도움을 많이 받았던 때가 있었는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밝힌 사실이다. 김 전의원의 정치 복귀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인터뷰 당시까지 정치 복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아무쪼록 부인의 병세가 좋아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김홍신 전 의원의 정치 복귀도 앞당겨질 것이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박남식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