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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513 건 검색)

기부 건수 1만건 돌파…답례품 ‘상주곶감’ 인기몰이
기부 건수 1만건 돌파…답례품 ‘상주곶감’ 인기몰이
2025. 01. 21 20:10 보도자료
... 마음은 앞으로 지역발전과 시민복리 증진을 위한 기금사업으로 귀하게 쓰겠다”고 말했다. 경북 상주시는 고향사랑기부제 2023년 첫 시행 이후 2년간 총모금액 10억9815만8000원, 기부 건수 1만591건을...
상주
대구 군 부대 옮길 후보 지역은 군위·상주·영천…대구시가 한 곳 선정
대구 군 부대 옮길 후보 지역은 군위·상주·영천…대구시가 한 곳 선정
2025. 01. 21 14:28정치
... 분열이 펼쳐지고 있다. 한수빈 기자 대구시에 있는 군 부대들이 옮길 예비 후보지 3곳으로 군위군·상주시·영천시가 21일 선정됐다. 대구시는 오는 3월 내에 이 중 한 곳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한다....
[낙서일람 樂書一覽]상주에서 느낀 행복이란…여성 15명의 ‘정착 실험’
[낙서일람 樂書一覽]상주에서 느낀 행복이란…여성 15명의 ‘정착 실험’
2025. 01. 09 21:31문화
... 걸어가는 삶을 소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촌촌여전>은 이 모임에 참가하는 여성 15명이 상주에 정착한 이유와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과 보람을 밝힌 책이다. 소도시에서의 삶이 갖는...
국내 상주 외국인 156만명 ‘역대 최대’…취업자 100만명 첫 돌파
2024. 12. 17 20:55경제
... 보면, 국내 외국인 상주인구는 156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9.1%(13만명) 늘어났다. 외국인 상주인구는 2012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가장 많다. 2018년 130만1000명을 기록한 뒤 코로나19 대유행...
외국인통계청

스포츠경향(총 265 건 검색)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최희선, 고향 상주에 5백만원 기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최희선, 고향 상주에 5백만원 기부
2025. 01. 22 15:56 연예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의 리더인 최희선이 상주시에 고향사랑기부금 500만원을 전달한 뒤 강영석 상주시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상주시 제공 조용필&위대한탄생의 리더인 기타리스트 최희선이 고향사랑 기부제에 동참, 최근 상주시에 500만원을 전달했다. 이번 기부로 최희선은 상주시 고향사랑기부제의 2025년 ‘1호 고액기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경북 상주 출신인 최희선은 1980년대 프로 뮤지션으로 데뷔, 1993년부터 현재까지 32년간 조용필&위대한탄생의 리더로 활동 중이며 당대 K-팝 최고 가수들의 앨범에 음악감독과 편곡자, 연주자로 함께 해왔다. 또 국내 기타리스트로는 이례적으로 기타 연주곡만을 담은 자작 앨범을 내며 개인 연주자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부턴 상주시 홍보대사로 위촉, 매년 상주시 한여름밤의 축제와 세계모자페스티벌 콘서트를 열고 있다.좋은 라이브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고향 상주에서의 공연 활동을 통해 수준 높은 대중음악을 들려주고 저변을 확대하는 데에 기여, 2022년엔 상주시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희선은 “항상 고향 상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난해 12월 25일 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지역발전 자선콘서트 수익금과 자비를 더해 고향사랑기부를 실천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홍명보호, 월드컵 최종 예선 코앞인데 ‘국내 상주 불확실’ 외국인 코칭스태프 선임…결국 선장 뜻대로만 간다
홍명보호, 월드컵 최종 예선 코앞인데 ‘국내 상주 불확실’ 외국인 코칭스태프 선임…결국 선장 뜻대로만 간다
2024. 08. 21 17:23 축구
주앙 아로소 수석 코치와 티아고 마이아 전술 분석 코치. 대한축구협회 제공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남자 축구 대표팀 코칭스태프 인선이 끝났지만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크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지역 최종예선 첫 경기까지 2주 남짓 남은 가운데 피지컬 코치 선임에는 실패했고, 외국인 수석 코치의 국내 상주 여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수석코치 겸 전술 코치로 포르투갈 출신의 주앙 아로소, 전술분석 코치에 같은 나라 출신인 치아구 마이아 코치를 선임했다고 21일 밝혔다. 외국인 피지컬 코치는 최종 계약 단계에서 협상이 결렬돼 추후 보강하기로 했다. 홍 감독 선임 이후 약 한 달만에 코칭 스태프를 구성했는데 이마저도 완벽한 진용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피지컬 코치는 선수들의 체력, 근력, 스피드를 높이고 부상 예방과 재활을 돕는 역할을 한다. 경기 전 선수들의 몸을 최상의 상태로 준비시키고, 개인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 각 선수의 신체적 능력을 극대화하는 역할도 맡게 된다. 점점 더 빠른 템포에 압박이 중요해진 현대 축구에서 피지컬 코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협회는 전임 위르겐 클린스만 사령탑 체제 때처럼 재택근무 논란의 불씨도 남겼다. 협회는 아로소 코치의 국내 상주 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로소 코치는 A매치 기간이 아닌 평상시에는 국내에 상주하지 않고 코치 업무를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 협회 관계자는 “일단 들어와서 업무 형태를 보면 상주하는지 확인이 될 것 같다”면서 “냉정하게 따지면 국내 상주를 안 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K리그 경기를 보며 국내 리그를 분석하는 마이아 코치와 달리 아로소 코치는 해외파 선수들의 몸 상태나 경기력을 현지에서 확인하고, 해외 축구 최신 전술 트렌드를 분석한 내용을 홍 감독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앞서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홍 감독 내정 배경으로 월드컵 최종예선까지 촉박한 일정과 클린스만 감독의 해외 재택근무에 따른 위험성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 내용과 배치된다. 팬들은 감독과 가까이에 머물며 전술 철학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야 할 수석코치의 해외 재택근무 가능성에 우려하고 있다. 사실상 홍 감독이 전술을 짜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하는 역할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아로소 코치가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과 10년 가까이 함께 활동하며 전술 철학을 공유해 대표팀 축구 전술에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그가 벤투 감독과 함께했던 시기는 16강 진출 성과를 냈던 2022 카타르 월드컵보다 훨씬 이전 시점이다. 그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포르투갈 프로 클럽 스포르팅에서 수석 코치로 벤투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포르투갈 대표팀 코치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을 도왔다.
‘조용필과 위대한탄생’ 최희선, 고향 상주서 10주년 ‘한여름밤 콘서트’ 개최···최진희·박남정, 요요미 지원사격
‘조용필과 위대한탄생’ 최희선, 고향 상주서 10주년 ‘한여름밤 콘서트’ 개최···최진희·박남정, 요요미 지원사격
2024. 07. 23 00:37 연예
최희선, 상주시 제공 기타리스트 최희선이 고향 상주에서 한여름 밤의 음악 축제를 연다. 최희선 측은 오는 27일 오후 7시 30분 경북 상주시 북천시민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최희선의 한여름밤 콘서트’를 연다고 전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리더로 31년째 활동 중인 최희선은 이번 공연에서 솔로 앨범에 수록된 연주곡은 물론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는 팝, 록, 가요 등 장르를 아우른 곡들을 재해석해 들려준다. 공연엔 최희선 밴드의 멤버인 허인영(베이스), 강호(드럼), 조주천(키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코러스인 배영호 주은총 이수원이 함께 한다. 특별한 게스트로 최희선과 오랜 인연을 맺은 가수 최진희와 박남정, 요요미가 이번 공연에 힘을 싣는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최희선의 한여름밤 콘서트’는 해마다 7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열리는 대형 음악 축제다. 상주 지역엔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이 축제만이 유일한 라이브 공연이다. 정통 밴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연으로 입소문이 나 해마다 전국에서 많은 관객들이 찾고 있다. 최희선은 “지역에선 페스티벌급 무대의 라이브 음악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번 공연을 통해 정통 라이브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여름밤 콘서트’를 통해 낙동강을 끼고 자리한 고향 상주의 경천섬을 전 세계인이 오고 싶은 휴양지로 알리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최희선의 한여름밤 콘서트’는 매년 상주에서 3일간 열리는 ‘한여름밤의 축제’ 중 둘째 날 진행된다. 한국예총 상주 지회가 주최하고, 상주경찰서인권위원회가 주관해 2009년 시작됐다. ‘한여름밤의 축제’ 첫째 날엔 청소년과 함께 하는 밤, 마지막 날엔 시민 노래자랑이 열린다. 최희선은 ‘청소년과 함께 하는 밤’을 통해 청소년들이 음악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필요한 악기를 기증하고 있다.
동아오츠카, 상주 전국 동호인 테니스 대회 성료
동아오츠카, 상주 전국 동호인 테니스 대회 성료
2024. 06. 25 11:10 스포츠종합
동아오츠카는 경상북도 상주에서 열린 ‘제1회 포카리스웨트배 전국동호인 테니스대회’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고 25일 밝혔다. 동아오츠카 제공 지난 21일부터 사흘간 상주시민운동장과 문경영강체육공원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 대해 동아오츠카는 생활체육 저변 확대 및 발전과 전국 테니스 동호인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동아오츠카는 이 날 모든 참가 선수에게 포카리스웨트 썬캡과 보틀, 분말을 제공했으며, 박카스 젤리와 파티온 바디워시 및 바디미스트를 증정했다. 특히 동호인 대회 같은 경우 전 경기 셀프콜로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전국신인부 결승 경기에는 선수 입장, 심판 및 스코어가 아나운싱되는 등 선수들에게 프로 대회와 같은 경험을 선사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더해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곽태휘가 전국신인부에 직접 출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번 대회 우승팀에는 상금 200만 원과 동아제약의 ‘엑스텐드(XTEND)’가 부상으로 제공됐다. 이 날 시상자로 직접 나선 박철호 동아오츠카 대표이사는 “선수들의 진정한 땀의 가치를 응원하며, 무사히 대회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아오츠카는 최근 청소년 스포츠 문화 활성화를 위한 청소년 풋살 대항전 풋살히어로즈를 성공적으로 완료한 바 있다.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취재 후] 11년 전 상주 말 사건, 그리고 김건희 여사
[취재 후] 11년 전 상주 말 사건, 그리고 김건희 여사(2024. 07. 24 06:00)
2024. 07. 24 06:00 정치
정용인 기자 뭔가 이상한 기류를 느꼈던 것은 이른바 ‘상주 말’ 사건이 국회 상임위에서 거론됐을 때였습니다. 박근혜 정권 초기인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가 열렸는데, 당시 청담고 2학년이었던 정유라(개명 전 이름 정유연)가 이듬해 아시안게임 출전권이 걸린 1등이 아닌 2등으로 입상했고 이와 관련해 심판들이 경찰 수사를 받았다는 풍문이었습니다. 상임위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이 언급되자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총궐기해 의혹을 제기한 당시 민주당 의원을 국회에서 제명해야 한다는 둥 ‘오버 액션’을 해 더 주목받았습니다. 그게 2014년 4월이었습니다. 사건이 나고 1년 뒤의 일이지요. 최순실 국정농단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게 된 것은 2016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4년 차입니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뭔가 데자뷔를 느끼지 않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의 정치평론가들만이 아닙니다. 사적인 지인들에게도 많이 듣는 말입니다. 상황은 탄핵 전야였던 2016년과 비슷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직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탄핵과 임기 단축·조기 대선의 실현 가능성’을 취재하면서 가장 주의 깊게 들어보려고 했던 건 국민이 느끼는 ‘탄핵 학습 효과’가 어떤 양상일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임시정부 때 이승만을 제외한다면 대한민국 헌정사에 없던 탄핵을 이미 한차례 경험한 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어서입니다. 일종의 면역 효과라고 할까요. ‘이슈를 이슈로 덮는 것으로 대응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 정권에서는 충분히 있을 만한 일’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 말입니다. 이번 주 다른 취재를 하면서 정치권 출신 한 평론가에게서 들은 말이 인상 깊어 덧붙여둡니다. “사실 널리 쟁점이 되지 않아서이지 역대 정부 모두 ‘영부인 이슈’는 없지 않았다. 친인척 비리부터 사생활을 둘러싼 소문까지. 확인될 수 없는 이야기도 많고 하니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야당이 김건희 여사 문제를 밀어붙이는 건 과장하는 것일까. 아니다. 내가 알지 못한 별 희한한 정보를 국회의원들이 많이 갖고 있다는 뜻이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취재 후
[이기환의 Hi-story](45) ‘상주본’의 가치는 0원(2022. 08. 05 14:37)
2022. 08. 05 14:37 문화/과학
며칠 전 무더위에 답답한 소식 하나가 전해졌죠. 문화재청 문화재사범단속팀이 지난 5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의 강제회수를 위해 불법소장자인 배익기씨의 집과 사무실, 지인의 다방 금고 등 3곳을 수색했지만 실패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데요. 단속반은 “유력한 제보전화를 받고 한층 기대를 안고 수색했는데 ‘상주본’은 보이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분명히 집이나 사무실 등 본인의 통제가 가능한 곳에 숨겨 놓았을 것 같은데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는 겁니다. 2015년 배씨 집에 난 화재로 불에 그을린 ‘상주본’ 일부가 공개(2017)된 이후 5년 이상 행방이 묘연한데요. 제대로 남아 있기는 한지 어떤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정말 속 터져 죽을 노릇입니다. ‘간송본’의 ‘해례’ 부분. ‘해례’는 세종의 명을 받들어 한글을 만든 집현전 8학사가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풀이한 글이다. / 간송미술관 소장 1조원 가치라고… 이즈음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가 있습니다. 배익기씨는 “‘상주본’의 가치가 1조원 이상이라 했으니 그중 10%인 1000억원은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해왔는데요. 이 대목에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대체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1조원’ 이야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2011년 9월 재판과정에서 검찰이 ‘상주본’의 감정가액을 의뢰했는데요. 당시 서지학자 4명이 ‘금전적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지만 굳이 따진다면 1조원 이상이라고 판단했거든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의 경제적 가치가 8000억원 정도라는 자료가 있으니 그보다 가치가 큰 <훈민정음 해례본>은 1조원 이상은 되지 않겠느냐, 뭐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두 유산에 가격을 매기는 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1조원 운운’ 한 것도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었죠.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가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배익기씨가 불법으로 갖고 있는 '‘상주본’은 단돈 1원짜리도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왜 그럴까요.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의 한글 창제 원리와 용법을 설명한 책이죠. 이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이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어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서문)와 사용법을 간략하게 한문으로 쓴 ‘예의’는 <세종실록> 등에 실려 있고요. ‘예의’ 부분을 한글로 풀어쓴 <언해본>은 18세기 실학자들이 찾기는 했는데요. ‘나랏 말씀이 중국과 달라…’ 하는 부분이죠. 집현전 8학사가 한글창제의 원리와 용법을 상세히 기술한 <해례>는 500년 가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됐겠습니까. 주로 일제강점기에 한글 창제 과정을 두고 온갖 한글폄훼론이 등장했죠. 심지어는 세종대왕이 화장실 창살 모양에 착안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얼토당토않은 설도 나왔습니다. 1940년 7월 30일 조선일보에 깜짝 놀랄 만한 기사가 실립니다. ‘494년 만에 원본 <훈민정음의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간송본’은 국보로 지정됐고, 1997년 전 세계가 보존해야 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 문화재청 제공 “어찌 뜻하였으랴. 수개월 전 (훈민정음) 원본(이하 해례본)은 경북의 어떤 고가에서 발견돼 시내 모씨의 소유로 돌아갔다…. 단지 책을 입수한 지 겨우 열흘도 넘지 못해 그 번역문이 정리되지 않은 원고 상태로 연재하는 것임을….” 조선일보는 <해례본>의 핵심인 ‘제자해(글자를 만든 원리와 방법)’를 일부 번역해 5회에 걸쳐 연재했습니다. 이에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은 “이런 진본이 발견됐다니 하늘이 한글의 운을 돌보시고 복 주신 것”이라면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 반갑도다! 훈민정음 원본의 나타남이여!” 만약 <해례본>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한글은 ‘세종대왕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우연히 만든 글자’로 전락할 수도 있었겠죠.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 스토리 500년 가까이 나타나지 않았던 훈민정음 해례본이 어떻게 그렇게 극적으로 현현했을까요. 기사에 등장하는 원소장처(‘경북의 고가’)는 ‘안동’이고, ‘시내의 모씨’는 저명한 수집가인 ‘간송 전형필(1906~1962)’이었습니다. 원소장자와 매각과정과 관련해서는 1950년대 경북 안동고 국어교사였던 정철에 의해 처음 밝혀졌습니다. 정철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원소장자는 ‘경북 안동 진성 이씨 가문의 후손 이한걸(1880~1950)’이라 소개했습니다. “이한걸 선생의 3남인 이용준이 서울경학원(성균관대 전신) 시절의 스승 김모(국어학자 김태준·1905~1949)에게 ‘고향 안동에 훈민정음이 있다’고 언급하자 김모는 곧 전형필님으로부터 많은 돈을 얻어가지고 안동으로 내려와 현물(훈민정음 해례본)을 보게 되었다. 김모가 ‘국어학계의 연구자료로 이 책을 서울로 가져가겠으니 허락해달라’로 하자 이를 승낙하고….” 최근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의 원소장처를 둘러싸고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즉 이용준(이한걸의 3남)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처가(광산 김씨 안동종가 ‘긍구당’)에서 유출했다는 주장입니다. 이용준이 장인인 김응수(1880~1957)에게 보낸 편지에 이용준이 “긍구당에서 <매월집>을 가져온 일은 큰 죄이며 송구스럽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용준이 <매월집>을 가져갈 때 <훈민정음 해례본>까지 유출했을 게 틀림없다는 주장이죠. 최종 소장자가 된 간송 전형필은 1958년 소장 경위를 직접 밝혔는데요. “친한 서적상이 ‘시골에 훈민정음 원본이 있다’고 하더군요. 내가 ‘원본이 틀림없으면 무슨 노력을 해서라도 살 테니 가져오라’고 했어요…. 1년 후 그 사람이 와서… 개선장군처럼 위세당당 웃는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경북도와 안동시가 복각한 ‘간송본’과 . 세종대왕의 어제 서문 및 예의를 한글로 풀어쓴 은 18세기 실학자들이 찾아냈지만 은 1940년 상반기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 임노직 한국국학진흥원 기록문화연구소장 제공 간송은 당시 <해례본>의 가격으로 1만원(기와집 10채값)을 군말없이 내줬고, 거기에 수고비라며 1000원을 더 얹어줬습니다. 귀한 문화유산은 귀한 만큼 대접받아야 한다는 간송의 뜻이었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될 때까지 494년 만에 극적으로 현현한 ‘간송본’의 원소장처 논란은 남아 있네요. 1940년 당시 스물네 살이었던 이용준이 친가(진성 이씨)나 처가(광산 김씨)의 동의 없이 이 간송본을 팔아넘겼을 가능성이 있죠. 잘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있어요. 만약 이용준이 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몰라봤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벽지로 쓰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용준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중간에서 매매에 간여한 김태준은 어떨까요. 김태준은 경성콤그룹에 참가해 인민전선부를 담당한 사회주의 국어학자였습니다. 남로당 문교부장으로 일하다가 1949년 11월 총살당했는데요. 국어학자 안병희(1933~2006)는 김태준의 공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만약 김태준이 해례본(간송본)을 전형필씨가 아니라 경성제대 일본인 교수에게 가져갔다면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고 일본으로 반출됐을 것이다.” 일본인 교수는 1940년 당시 경성제대 우리말글 연구 교수인 고노 로쿠로(河野六郞·1912~1998)였습니다. 고노는 1947년 발표한 논문에서 “1940년 당시 경성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 원본을 볼 기회가 있었으나 그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했다는 건데요. ‘간송본’의 가치는 간송 전형필 선생의 품에 들어감으로써 ‘무가지보’로 거듭났는데요. 간송의 업적은 그에 그치지 않죠. 해방 이후인 1946년 조선어학회(한글학회)에 해례본을 영인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책은 서고 깊이 넣어두었다가 해방 이후… 널리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영인본이 나와 널리 책으로 세상에 퍼지게 되었으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간송은 가치 있는 문헌을 오래 보존하는 최선의 방법이 바로 ‘공유’라 여긴 겁니다. “‘간송본’의 발견은 역사적인 사건이요, 민족적인 경사였다…. 마침내 영인본이 나옴으로써 누구나 쉽게 해례본을 대하게 됐고….”(<한글학회 100년사>) 이렇게 나타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은 1997년 전 세계가 보존해야 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오히려 애물단지가 된 ‘상주본’ 배익기씨가 불법 소장 중인 ‘상주본’은 어떨까요. ‘상주본’은 ‘간송본’과 함께 동일한 목판에서 찍어낸 동일한 원본임은 분명합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라는 겁니다. ‘상주본’의 원소장처로 알려진 안동 광흥사. 1990년대 광흥사 나한상의 복장 유물로 처음 발견됐고 문화재 도굴꾼 서모씨가 이를 훔쳤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흥사는 조선 전기 불경 등을 간행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2013년에도 4책과 등이 출토됐다. / 문화재청 제공 ‘상주본’에는 ‘간송본’에 없는 장점이 있는데요. 누군가 해례본의 제자해(글자를 만든 원리와 용법)를 요약하면서 일종의 주석을 달아놓았습니다. 연구자들은 대단한 식견을 가진 학자의 주석이라고 평가합니다. 연구자들은 ‘유물로서의 가치’로 볼 때 ‘상주본’은 ‘간송본’과 감히 견줄 수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가장 큰 흠결은 떨어져 나간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간송본’도 온전하지는 않습니다. 전체 66쪽(33장) 가운데 표지와 세종의 어제 서문 등 앞부분 4쪽(2장)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66쪽 중 62쪽이 건재합니다. ‘간송본’과 달리 ‘상주본’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2008년 배익기씨의 최초 공개 때 ‘상주본’을 실사한 임노직 한국국학진흥원 기록문화연구소장은 “66쪽 중 18쪽이 탈락된 상태였다”고 전합니다. “‘상주본’은 세종의 어제 서문·예의 8쪽(4장)과 해례 부분 8쪽(4장), 뒷부분의 정인지 서문 2쪽(1장)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공개된 자료 가운데 가장 앞면의 경우도 3분의 1 이상 부식됐다는데요. ‘상주본’의 보존상태가 ‘간송본’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간송본’의 경우 4쪽 정도 남아 있는 세종대왕의 어제 서문 및 예의 부분이 ‘상주본’에는 단 1쪽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도 중대한 흠결입니다. 불에 그을린 흔적 또한 심상치 않은 흠결이죠. 무엇보다 ‘간송본’에는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1997)이 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를 알아보고 아끼고 보존하고 연구한 사람들의 숨결이 담겨 있죠. ‘상주본’은 어떻습니까. ‘상주본’의 적법한 소유권은 국가(문화재청)에 있죠. 2018년 배익기씨의 첫 공개 이후 소유권을 다툰 법정소송 결과 조용훈씨(작고)의 승리로 끝났고, 생전에 조씨가 국가에 기증했으니까요. 배익기씨는 그 과정에서 ‘상주본’을 조씨의 헌책방에서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고요. 절도죄를 저지른 증거가 확실치 않아 형사처벌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배익기씨의 소유는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진 겁니다. 그럼에도 배익기씨는 1조원의 10%인 1000억원 운운하며 몽니를 부려왔던 겁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배익기씨가 불법 소장 중인 ‘상주본’의 가치는 1조원은커녕 단돈 1원도 될 수 없습니다. 도난문화재를 은닉하거나 사고파는 행위를 금하고 있기 때문이죠. 배익기씨에게 ‘상주본’은 애물단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배익기씨에게 그 어떤 보상도 해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배익기씨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문화유산을 인질로 개인의 탐욕을 채우는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있습니다. ‘만고의 역적’이라는 심한 욕까지 먹고 있잖습니까. 2017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배익기씨가 2015년 화재로 일부가 불에 탄 ‘상주본’을 공개했다. 이후 5년 이상 행방이 묘연하다. 제3, 제4의 해례본 출현을 기다리며 ‘상주본’은 그렇다 치고, 여기서 한가지 기대를 해보죠. 제1, 제2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것이 심상치 않다는 겁니다. ‘상주본’ 역시 원래는 안동의 사찰인 광흥사 나한상 복장유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광흥사는 조선 전기 불경 등을 간행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2013년에도 광흥사에서 <월인석보> 4책과 <선종영가집 언해> 등이 확인되기도 했고요. 일제강점기부터 광흥사뿐 아니라 영주 희방사 등에서 “세종대왕이 지은 <월인천강지곡>과 그것을 찍은 판목이 발견됐다”는 기사도 보입니다. 경향신문 1952년 11월 12일자는 “희방사(영주)에서 <훈민정음>과 <월인석보> 등을 찍어낸 원판목 400매와 광흥사(안동)에서 <월인석보>를 찍은 판목 222매가 전쟁 중 불에 탔다”고 탄식하고 있네요. 그래서 만약 제3, 제4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온다면 역시 안동이나 그 인근 지역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지금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에 사는 분들은 집 안에 있는 서책 한번 유심히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기환의 Hi-story
소실? 도난? 은닉? 훈민정음 상주본 미스터리(2015. 04. 07 17:40)
2015. 04. 07 17:40 사회
ㆍ소장자 배씨, 도난 가능성 제기하면서 “없을 수도 있다” 아리송한 답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은 어디로 갔을까. 정말 불에 타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제3의 장소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상주본을 보유하고 있던 사람의 집에서 의문의 화재가 일어났다. 화재와 함께 상주본도 사라졌다. 불에 탔을지도 모른다는 현재 보유자, 그가 쇼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도대체 상주본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미스터리를 취재했다. “며칠 전부터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있었다. 그날 아침 집을 나서는데 몇 년 동안 얼굴도 못 본 이웃이 갑자기 말을 걸어서 대화를 나눴다. 분명히 몸이 불편해서 집 밖으로 못 나오는 사람이라 알고 있었는데…. 지난 1년간은 기자들 연락이 통 없다가 불이 나기 며칠 전 갑자기 기자들이 취재하겠다며 전화가 왔는데, 하필 비슷한 시간대에 연락이 온 게 좀 이상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의 사본(왼쪽)과 상주본 / 문화재청 보도자료 배익기씨(52)는 불에 탄 안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며칠 전만 해도 이곳은 배씨와 배씨의 어머니, 형의 보금자리이자 30년간 배씨가 수집한 보물들이 모여 있던 창고였다. 하지만 3월 26일 오전에 발생한 화재로 모든 게 아수라장이 됐다. 안채를 둘러싼 벽돌담은 무너져내렸고, 그 너머로 마치 소각장처럼 검게 그을린 쓰레기들이 나뒹굴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쓰레기가 아니었다. 탁자, 의자 등 생활용품이 보였다. 그 옆에는 누렇게 변색된 책들이 타다 만 채로 쌓여 있었다. 2008년 배씨가 언론에 처음 공개 배씨가 갖고 있던 보물 중 으뜸은 상주본이었다. 집 입구에 세종대왕 동상과 비석을 구해다 놓을 정도로 그는 상주본을 아꼈다. 심지어 어머니(83)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정도였다. 20대 때부터 한학에 관심이 많던 배씨는 30년째 독학으로 한문학을 배우며 골동품 매매로 생을 이어왔다. 집안 곳곳에 항아리·석등·토기 등이 쌓여 있었고, 안채의 방 한 칸은 오래된 책들로 빽빽했다. 이제 배씨 가족은 세 사람이 앉아 있기도 좁아 보이는 바깥채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배씨는 이번 화재를 상주본을 노린 방화사건으로 보고 있었다. “이미 상주본의 위치를 알던 사람이 내가 26일 아침에 자리를 뜬 사이에 물건을 훔치고 불을 질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판단은 조금 다른 듯하다. 배씨 집 인근 마을회관의 CCTV를 조사 중인 이규봉 상주경찰서 수사과장은 “화재시간 전후 2시간을 살펴보니 의심스런 인물이나 차량은 발견되지 않았고, 화재 원인을 단정지을 단서도 현재까진 없다”고 말했다. 그는 “CCTV 조사시간 범위를 넓히고 탐문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화재로 폐허가 된 배익기씨 집의 3월 31일 모습. / 백철 기자 배씨에 따르면, 불이 시작된 방은 흡연자인 배씨의 형이 머무르던 곳이다. 하지만 화재 당일 배씨의 형은 아침에 일어난 직후 다른 방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고, 그날은 담배를 태우지 않았다고 한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결과가 나와야 확정될 듯하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2008년 7월 31일 배씨가 안동 MBC를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의 원리를 한자로 설명한 책이다. 소실된 서적으로 알려졌으나, 1940년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를 안동본 혹은 안동본을 사들인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의 호를 따 간송본이라고 부른다. 상주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안동본은 현존 유일의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2008년 7월에 안동 MBC 취재진과 함께 배씨를 만났던 임노직 국학진흥원 목판연구소장은 상주본의 실물을 본 유일한 학자다. 임 소장은 “상주본에는 간송본과 달리 중간중간 필기된 것이 있어 연구할 가치가 있다. 앞뒤로 몇 장이 없지만 연구에 있어 크게 문제될 부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지학자인 남권희 경북대 교수는 “주석이 달렸다는 것은 이 책이 그냥 보관되어 있었던 게 아니라 이걸 가지고 실제 학습이 이뤄졌다는 근거가 된다”며 그 의의를 설명했다. 이상규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취재진이 녹화한 비디오 자료에 상주본의 3분의 1 만 담겼다며 ‘잔엽 상주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를 토대로 상주본 ‘메모’에 대한 연구도 시작됐지만, 배씨가 공개하지 않은 부분이 더 많아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진 않고 있다. 희소한 문화재이다 보니 여론의 시선은 ‘상주본이 무사한지’ 여부에 집중됐다. 기자가 상주본의 행방을 묻자 배익기씨는 불탄 안채만 쳐다보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나중에 다시 물어보니 그는 “나도 잘 모른다. 불에 타버렸으니 지금은 없을 수도 있다”며 상주본이 소실됐을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배씨의 반응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그가 그토록 아꼈던 상주본이 정말 불에 타버렸다면 과연 쓴웃음을 짓는 정도에 그칠까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4월 1일, 배익기씨와 오랫동안 소유권 분쟁을 벌인 조용훈씨가 운영하던 문화재매매업소 민속당의 문이 닫혀 있다. / 백철 기자 문화재 매매업자와 소유권 분쟁 실제로 3월 30일 국과수, 문화재청의 현장감식 때에는 배씨의 말이 좀 달랐다. 배씨는 당시 취재기자들에게 “극히 일부를 깊이 못 숨기고 놓아 뒀던 게 그 방에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는 탔을지 모르지만 상주분의 대부분은 무사하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크다는 훈민정음 상주본이 이렇게 어이없이 실종된 원인은 무엇일까. 거슬러 올라가보면 배익기씨와 상주의 문화재 매매업자 고 조용훈씨(2012년 사망)의 소유권 분쟁이 있다. 2008년 7월 방송을 통해 상주본의 존재가 알려진 이후 조씨는 사실 상주본이 원래 자신의 것이며, 최근에 자신의 골동품가게에서 물건을 사간 배씨가 훔쳐갔다고 주장했다. 이후 조씨가 배씨를 민사 고소했고, 2011년 5월 대법원은 조씨의 손을 들어주며 배씨에게 상주본을 조씨에게 넘기라고 명령했다. 배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상주본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검찰이 절도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배씨를 기소했다. 1심에서 배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구속됐고, 배씨의 집은 수차례 압수수색을 당했다. 하지만 끝내 상주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배씨는 상주본을 발견한 직후부터 이를 낱장으로 분리해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임노직 소장은 “그때 내가 배씨한테 왜 중간중간 몇 장이 안 보이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이 자료가 워낙 중요하고 갑자기 없어질 수도 있기에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배씨가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억울함을 호소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2008년 7월에 상주본을 확보한 것은 사실이다. 배씨의 어머니 김씨는 “2008년 7월에 태풍이 많이 불어서 지붕을 수리해야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배익기씨는 “애초에 왜 이게 우리 집에 있었는지까진 모른다. 내가 전에 산 것인지 나도 윗대에서 물려받은지는 모르겠지만 이 물건이 조씨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조용훈씨 측의 주장은 배씨의 주장보다 상세해 보인다. 조씨의 부인인 이동옥씨는 기자에게 상주본은 풍양 조씨 집안에서 전해 내려온 물건이라고 밝혔다. 이씨의 설명은 이렇다. 훈민정음 상주본은 과거 도승지(비서실장)를 지냈던 조용훈씨의 조상이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이었다. 이것이 도산서원에서 한학자를 하던 조씨의 조부, 부면장을 지낸 조씨의 부친을 지나 조씨에게까지 전해져 왔다는 것이다. 조씨를 잘 안다는 ㄱ씨는 “조씨가 골동품 거래를 오래 했지만 학문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훈민정음 상주본의 가치를 잘 몰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동옥씨는 조씨 가문이 소유했다는 증거로 과거 국왕이 도승지에게 상주본을 하사하며 내렸다는 교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그것이 원래 시숙에게 있었는데 시숙이 그 내용을 잘 모르고 벽지로 써버려서 지금은 없다”고 말했다. 이동옥씨는 “상주본은 무사할 것”이라며 “거기 동네 사람들이 ‘배씨가 쇼한다’ 이렇게 말한다고 들었다”며 배씨의 자작극 의혹을 제기했다. 즉 배익기씨가 상주본을 빼돌리기 위해 소실된 것으로 위장했다는 것이다. 3월 26일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은 “신고가 늦었다”고 말했다. 소방관 ㄴ씨는 “언론에 9시30분에 불이 났다고 나오지만 그 시간에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실제 불이 난 것은 그 이전일 것”이라며 “아무리 시골이지만 가장 빠른 소방차가 현장에 10분 만에 도착했다. 신고가 조금만 빨랐어도 건물이 전소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익기씨는 “이번 화재가 자작극이라는 말도 들어봤다. 불 때문에 그동안 모아왔던 골동품을 거의 다 잃었고 집안에 가보처럼 내려오는 것들도 많이 없어졌다. 대충 따져봐도 2억원은 넘을 것”이라며 “당장 살기도 어려워졌는데 내가 왜 불을 내겠나”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국가기관의 고압적 자세도 문제” 민사에서 패한 배씨의 집에는 수시로 검찰 수사관들과 법원 집행관들이 들락거렸다. 배씨의 어머니 김씨는 “툭하면 수십 명이 무슨 수색을 한다고 집안을 다 뒤진다. 지붕도 뜯고, 바닥도 뜯고, 그리고 나서 제대로 정리하는 꼴을 못봤다”며 “그런데 최근 몇 달은 좀 조용한 게 이상했다”고 말했다. 수색이 중단된 이유는 대법원 판단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12년 10월 대구고등법원은 배씨가 조씨의 물건을 훔쳤다는 증거가 없다며 절도죄, 문화재법 위반을 무죄로 판결했다. 양측 모두 상주본의 입수경위를 불확실한 증언만으로 설명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배씨의 범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취지였다. 임노직 소장은 소송전으로 얼룩질 동안 국가가 제 역할을 못했다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애초 배씨는 언론에 제보하기 전에 시청 등에 먼저 상주본 발견 사실을 알렸다. 이런 사실이 빨리 문화재청에 보고가 되어서 훈민정음의 원본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는데, 나중에 소송 등이 이어지면서 문제가 이렇게 꼬여버렸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2012년 5월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이 프로파일러 자격으로 배익기씨를 면담한 바 있다고 말했다. 표 소장은 SBS 라디오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배씨가 절도범 등의 비난과 낙인을 받고 구속까지 됐으니 명예회복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아주 강한 상태였다”며 “문화재청에 배씨의 경제적 보상, 명예욕구 문제를 충족시켜주면서 훈민정음 기증을 유도하는 의견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황평우 관장은 국가기관이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한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황 관장은 “어찌됐건 훈민정음 상주본을 발견한 배익기씨의 공을 인정해야 하는데 강제로 빼앗아가려는 모양새만 계속되어 왔다”며 “아무리 국보급 문화재라 하더라도 개인 소유물을 가져가려면 배씨에게 정당한 대우를 할 생각을 해야 한다. 법적으로 판단이 났음에도 배씨가 문화재를 훔친 것처럼 몰아가는 지금의 모습은 ‘다중의 폭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청에서 훈민정음 상주본을 담당하고 있는 안전기준과 허종행 반장은 “지난해 5월 대법원 판결이 난 이후에는 이제 우리가 상주본을 환수할 방법이 없다. 국가에서 물건을 빼앗아가겠다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볼 수 있게 공개를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 반장은 “아직 상주본은 불에 타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며 “배씨가 개인적으로 보존하기 어렵다면 문화재청에서 보존을 도와줄 용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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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키 큰 세 여자/상주 국수집 外
2015. 10. 05 16:14 문화/생활
국내 연극계의 살아 있는 역사인 박정자와 손숙이 8년 만에 한 무대에 선다. 퓰리처상 수상에 빛나는 에드워드 올비의 희극 ‘키 큰 세 여자’에 출연, 고집 세고 까다로워 누구도 좋아하기 힘든 한 여자의 일생을 재치 있게 그려낸다. 박정자는 죽음을 앞둔 90대 할머니 A, 손숙은 50대 간병인 B를 맡았다. 또 자신이 늙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고 사는 당돌한 20대 C는 국립극단 시즌 단원 김수연이 맡아 열연한다. 일정 10월 3~25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문의 1644-2003 상주 국수집 올해 15회를 맞은 2015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국내 공식 초청작 중 한 작품. 실제 상주에 있는 국수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연극은 모녀가 운영하는 오래된 국수집에서 시작된다.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서 지내던 노모가 하룻밤 동안 집에 돌아와 일어나는 사건을 담았다. 전쟁 중 탈영해 집에서 목을 매 죽은 아들을 기억해낸 노모가 나무에 목을 매 세상과 작별하는 대목은 눈물을 자아낼 듯. 실제 상주의 사투리를 익힌 배우들의 연기가 깊이 있다. 일정 10월 8~13일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문의 02-3668-0082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원작으로 한 작품. 극중 등장인물은 4명이지만 그들이 연기하는 역할은 오직 햄릿 한 사람이다. 그야말로 햄릿이 주인공인, 햄릿에 의해 만들어지는 진짜 햄릿 이야기다. 각각의 배우들은 햄릿의 다른 자아를 연기한다. 햄릿에게 선택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4명의 햄릿이 충돌하는 흐름이 인상적이다. 또 판소리를 더해 햄릿이 부르는 ‘이별가’, ‘헌화가’, ‘결투가’ 등 13곡도 감상할 수 있다. 일정 10월 8~25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문의 02-6481-1213 노트르담 드 파리 올해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은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팀이 이를 기념한 앙코르 공연을 연다. 당시 내한 공연의 주연배우들과 세계적인 뮤지컬 스타 배우들이 총출연해 최고의 호흡을 선보일 예정. 특히 1998년부터 17년간 콰지모도 역을 1,000회 이상 맡았던 맷 로랑과 그랭구와르 역을 맡아 큰 사랑을 받은 배우 리샤르 샤레스트가 주연을 맡아 더욱 기대되는 무대다. 12월에는 대구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일정 10월 15일~11월 15일 장소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문의 02-541-6236 토막 우리나라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 작가로 불리는 유치진의 처녀작이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하의 궁핍한 농촌과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한국 리얼리즘 희곡의 백미로 평가받는다. 삶의 기반을 상실한 명서의 가족이 독립운동을 하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명서의 소식을 듣게 되며 벌어지는 사건이 그들 삶의 터전인 토막, 움막집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밑바닥 인생의 생명력과 식민지의 피폐함을 절실하게 그렸다. 일정 10월 22일~11월 1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문의 1688-5966 춤추는 허수아비 서울시무용단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즐거운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쓸쓸히 홀로 밭을 지키며 서 있는 허수아비가 대지의 요정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자신이 짝사랑하는 소녀와 사랑을 키우는 동화를 기반으로 한다. 특히 허수아비, 건방진 닭 등 극 중 캐릭터들의 퍼포먼스와 서울시무용단원들의 춤사위가 어우러져 비트댄스 코미디의 매력을 선보인다. 제작 및 예술감독은 현 서울시무용단 단장 예인동이 맡았다. 일정 10월 28일~11월 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문의 02-399-1766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지휘계의 거장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내한한다. 바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 ‘교향곡 40번’ 등을 국내 관객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특히 피아니스트 출신인 에셴바흐가 직접 협연자로 무대에 올라 지휘자가 아닌 피아니스트로서의 면모도 보여줄 예정. 일정 10월 10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문의 1577-5266 피아니스트 서혜경 러시안 리사이틀 여성 최초로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발매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서혜경. 러시아 음악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그가 올해 스크랴빈 서거 100주기를 맞아 전국 투어 리사이틀을 연다. 10월 19일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 공연을 시작으로 22일 평촌아트홀, 26일 경기도 문화의전당, 28일 서울에서 그 막을 내린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스크랴빈 ‘피아노 소나타 2번’ 등을 연주한다. 일정 10월 19~28일 장소 대전예술의전당 외 문의 02-580-1300 라 트라비아타 성남아트센터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야심 차게 준비한 무대.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연출상을 수상한 장영아의 독특하고 현대적인 연출을 비롯해 무대미술가 오윤균의 화려한 의상이 기대를 모은다. 여기에 세계 유명 오페라하우스에서 주역 성악가로 활약 중인 테너 정호윤, 바리톤 유동직이 출연해 세기의 비극을 노래한다. 순수한 사랑과 비참한 죽음의 여정을 통해 고통받는 비올레타 역은 최정상 프리마돈나로 불리는 이리나 룽구가 맡았다. 일정 10월 15~18일 장소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문의 031-783-8000 세기의 대결-리스트 Vs. 파가니니 클래식 역사상 천재로 회자되는 두 연주자가 만약 한 무대에서 연주한다면? 엉뚱한 상상을 바탕으로 한 이색 연주회가 열린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는 파가니니와 피아노 역사에 다시없을 비르투오소로 불리는 리스트가 서울에서 만난다. 피아니스트 조재혁, 피터 클리모와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과 김다미가 같은 주제의 선율을 가진 리스트와 파가니니의 작품을 프로그램으로 선보이며 열띤 대결을 펼친다. 일정 10월 24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문의 02-2658-3546 첼리스트 조영창 리사이틀 독일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와 연세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다국적으로 후학 양성에 힘 쏟고 있는 첼리스트 조영창. 지금까지 약 2,000회 이상의 연주회를 열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가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 특히 그는 한국인 최초로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음반으로 발매한 바 있어 이번 무대가 더욱 기대된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 교수인 피아니스트 파스칼 드봐이용이 함께 무대를 꾸민다. 일정 10월 6~7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문의 02-720-3933 라몬 바르가스&홍혜경 듀오 콘서트 파파로티의 뒤를 잇는 제4의 테너로 불리는 라몬 바르가스와 메트로폴리탄의 영원한 디바 소프라노 홍혜경이 국내에서 첫 듀오 콘서트를 연다. 서울과 부산에서 열리는 연주회에서 이 두 음악가는 베르디, 푸치니, 도니체티 등 작곡가의 주옥같은 오페라 아리아와 중창들을 노래한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카를로 팔레스키가 지휘자로 나서며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는다. 일정 10월 8~11일 장소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 극장 외 문의 02-6925-0510 <■담당 / 정은주 (객원기자)>
천생 이야기꾼 소설가 성석제와 함께한 고향 상주 나들이
천생 이야기꾼 소설가 성석제와 함께한 고향 상주 나들이
2008. 12. 08 화제
소설가 성석제와 그의 고향 경상북도상주에 다녀왔다. 단편 소설의 절반가량이 상주 분위기를 바탕으로 쓰였을 정도로 그의 작품과 고향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석제는 고향을 돌아보며 특유의 이야기꾼 기질을 발휘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주었다.# 1 성석제가 사랑한 음악 아침 7시 10분. 상주행 관광버스에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DJ는 소설가 성석제였다. “상당히 음울하게 시작하고 드라마틱한 곡이죠. 주무시기에 상당히 불편할 것 같은데, 제 잘못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2악장이 나올 겁니다. 2악장은 선율이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베토벤의 ‘이히 리베 디히’, 도니제티의 ‘별은 빛나건만’은 어떤 여인에게 불러주려고 배운 곡입니다. 그 여인은 이 노래를 불러주기도 전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더군요.” # 2 경상북도의 숨은 보석 같은 곳, ‘상주’ 자신의 고향을 남들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그에게는 유명한 유적뿐 아니라 굴러가는 돌 하나, 지나가는 바람까지 모두 소중한 곳일 터였다. 상주는 사실 잘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다. 기자는 성석제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상주가 어떤 도시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곶감이나 배 정도를 떠올렸을 뿐이다. 이야기꾼 기질이 다분한 그는 차분하게 상주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었다.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그의 말은 마치 단편 소설을 한 권 읽는 듯했다. 작가의 말을 가감 없이 그대로 옮긴다.신라 때는 ‘위 상(上)’자를 썼는데, 수도 경주보다 위에 있다고 해서 ‘상주’였습니다. 이후에는 수도보다 위에 있다는 것이 걸렸는지, ‘숭상할 상(常)’자로 바뀌었죠. 상주는 백제와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곳이라 산성이 대단히 많습니다. 또 하나 의미 있는 사실은 ‘낙동강’의 어원이 상주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제가 살던 동네가 낙양인데, 낙양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낙동강이 된 거죠. 상주는 들판이 넓다 보니 농산물이 대단히 많이 생산됩니다. 쌀 생산량이 전국 7위입니다. 곶감은 생산량이 전국 1위이고요, 전국 60%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 친구도 재배하는 오이 생산량 역시 전국 1위입니다. 포도, 배, 사과 생산량도 전국 상위권을 다툽니다. 한우는 생산량이 2위인데, 1위는 경주입니다. 또 인구당 자전거 보유 대수가 1위입니다. 분지형이라 자전거 타기에 적합한데, 자전거는 일제시대부터 많이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부농이 많아서 그런것 같군요. 또 연 소득 1억원 이상의 농업인 수가 1위입니다. 2위와 현격한 차이가 나죠. 국보급 보물이 가득한 남장사이런 사실들은 저도 잘 몰랐고, 상주 사람들도 아마 모를 겁니다. 농림수산부에서 2007년 통계를 내놓은 걸 보고 알았죠. 농업 부문에서 산출량도 대단히 많고 농업이 발달한 도시인데, 몇백 년 동안 사람들이 입에 올리지 않고 조용히 지내 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상주 사람들이 실속을 차리고 조용히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상주 사람들은 본래) 굉장히 실속 있고, 낙천적이고, 가족적입니다. 제 단편 소설 배경 중 상주 분위기가 절반이 넘습니다. 상주에서는 어린 시절 14년간 살았고, 그 이후 30년 이상을 상주 아닌 곳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제 정신세계의 많은 부분을 상주가 차지하고 있지는 않나, 짐작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 기질이 소설에 녹아 있지는 않나, 생각하고요. 상주에는 골짜기도 많고 길도 많고 사람도 많다 보니 곳곳에 사연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사연을 듣고 그대로 옮겨도 소설 한 편이 나오지 않을까 할 정도입니다. 상주 음식은 (특별히 인위적으로) 손을 대서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고요, 식당에 가도 집에서 먹던 대로 음식을 냅니다. 대표적인 음식이라, 칼국수라고… 할 수도 없고, 두드러지는 음식이 없네요. 이처럼 상주 음식은 특별히 내세울 것은 없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약간 짠 편입니다. 편안한 스타일입니다. 칼국수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상주 칼국수는 고기나 멸치 등으로 따로 국물을 내지 않습니다. 통밀을 넣어 삶아서 국물을 내고요, 그 국물에 채소를 넣어서 같이 끓입니다. 덤덤할 것 같은 맛인데, 간장이 들어가서 결정적으로 맛을 돋우게 됩니다. 상주는 간장이 대단히 맛있습니다. 물이 좋고 공기가 좋아서인지도 모릅니다. 처음 먹을 때는 덤덤한 것 같은데 먹다 보면 중독성이 있습니다. 배추전도 덤덤합니다. 배추에 최소한의 밀가루를 입혀 부쳐 내는데, 그냥 보면 별 맛이 없어 보이고 기름을 둘러서 기름 맛이 나는가 싶지만 찍어 먹는 양념이 (초장에 찍어 먹는데 간장에도 찍어 먹습니다) 묘한 맛을 내면서…. 먹어 보면 실감이 나지 않을까 싶어요. 상주의 특이한 음식이라고 하면 ‘골곰짠지’가 있어요. 무말랭이 비슷해 보이는데, 이것은 발효된 무침이고요. 김장할 때 같이 담는데, 무를 썰어서 소금을 뿌려 숨을 죽이고 김치처럼 재워놓았다가 물로 씻어서 말립니다. 완전히 마르기 전에 꾸둑꾸둑해지면 양념을 해서 먹습니다. 무말랭이와 달리 씹으면 오독오독 소리가 납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을 정도로 맛있어요. 제 친구가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무를 심고 수확해서 골곰짠지를 담았죠. 친구 덕분에 오랜만에 맛을 보고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남장사 오르는 길상주에 가면 남장 마을과 제가 태어난 마을에서 20리쯤 더 간 곳에 수백 년 된 감나무가 있습니다. 지금도 매년 감이 수천 개씩 열립니다. (워낙 희귀해) 감 하나에 몇천 원에 판매되고 있죠. 지지난주에는 그 감나무에서 나온 홍시를 몇 개 얻어서 먹어봤는데, 여전히 달고 맛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감나무에서 나는 모든 것을 먹었습니다. 감꽃부터 시작해서 무른 홍시, 떨어진 감…. 땡감은 물이나 소금물에 담가놓으면 먹을 만했고, 운동회 때 노란 감을 따서 소금물에 넣었다가 소풍 때 꺼내 줄줄이 꿰어서 목에 걸고 다니며 먹곤 했습니다. 보통 감은 곶감 아니면 단감으로 먹었죠. 또 감을 저장해두었다가 한 달쯤 지난 뒤 (주로 겨울에) 홍시로 먹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동생의 부인, 이분이 20대 초에 청상과부가 됐습니다. 작은 할아버지가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아, 이 음악 좀 키워주시겠어요? 지금 나오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은 제가 한동안 빠져 지냈던 음악입니다.음악 때문에 말을 끊지 않았더라면,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져나왔을 것이다. 작은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그게 홍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음악을 들으며 꾸벅꾸벅 졸다 보니, 버스는 어느덧 상주에 닿았다. # 3 국보급 보물이 가득한, ‘남장사’ 남장사는 상주에서 가장 큰 절이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걷다 보면 바로 범종각이 나오고, 조금 더 지나면 극락보전을 만날 수 있다. 붉은 단풍이 든 나무는 꽤 웅장하게 느껴졌고, 잎이 길게 뻗은 나무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남장사는 보물 990호 비로자나철불좌상, 보물 922호 목각탱 등 국보급 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낙엽이 카펫처럼 깔린 오르막길을 따라 더 걸었더니, 중궁암 올라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성석제의 소설에서 오르막길은 많은 의미를 지닌다. 그의 단편 소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에서 부자가 수레를 밀며 올라가고 내려온다. 언덕은 갈등의 공간이자 갈등을 해소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선비들의 정신적인 터전 도남서원“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절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20대에는 해남에 있는 미황사에서 신세를 졌고, 그 밖에도 이름 없는 절을 많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런데도 시주를 제대로 한 적은 없는 것 같네요. 중궁암 올라가는 길은 산책하기에 적당합니다. 저는 마음에 드는 길이 있으면 얻을 만큼 얻고 미련 없이 내려오는 편입니다. 중궁암 올라가는 길이 딱 그 정도 거리죠. 내려가다 보면 멧돼지도 만나곤 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사냥꾼 친구 이야기로 이어졌다. “상주에 사는 사냥꾼 친구가 있습니다. 아마 세계에서는 몰라도 전국에서는 최고의 사냥꾼일 겁니다. 요즘 농촌에서는 멧돼지 때문에 농사짓기 힘들죠. 이 친구가 멧돼지 사냥을 하는데 잡아도 잘 안 먹어요. 친구들이나 남에게 주죠. 생각보다 맛이 없다고 해요. 이 친구가 데리고 다니는 사냥개가 있었어요. 코가 한쪽이 고장 나고, 귀도 한쪽이 고장 났죠. 그래서 뭔가 바스락거리면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들으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요. 남들이 보면 미친 것 같죠.” 이야기 속 사냥개는 결국 전장에서 소임을 다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성석제의 구수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벌써 내리막길을 다 내려왔다.# 4 선비들의 정신적인 터전, 도남서원 점심을 먹고 나서 버스는 도남서원에 닿았다. 서원이어서인지 적막한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도남서원은 성석제의 단편 소설 ‘저기가 도남이다’에도 등장한다. 다음은 ‘저기가 도남이다’의 한 부분이다. 구수한 상주 사투리가 생생히 살아 숨 쉰다. 소리 내서 읽는다면 뜻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즈가 도남이라. 저 재작년에 우얜기 비가 바가지로 퍼붓디 니리더이 집 뒤에서 계곡물이 벌떡 인나선 거 맨구로 쳐들어온께 마구에서 자불고 있던 소가 마카 떠니리간 기라. 내가 오도바이 주타고 오십 리를 쪼치가이, 도남서 소를 건지내놨네. 토깨이맨구로 눈이 똥그라이 생긴 사람이, 고마워여, 여 소가 바로 우리 소라 이칸께 정그가 있니야 카는 기라. 그래미 여분때이에 서가이고 구깅하던 순깅 보고 심판을 지달라카네. (중략) 그 귀때기를 보라카이, 순깅이고 또깨이고 입수바리 띨 생각도 못하는 기라. 봐라, 즈가 바로 그 도남이다이.” 이 소설은 성석제가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경천대 전망대에서였다. 황동규 시인과 전망대에 오른 참이었다. 그때 마침 어떤 노인이 이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황동규 시인이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자 제가 통역을 해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후 시로 쓰신다는 걸, 그 전에 제가 먼저 소설로 썼습니다(웃음). 이렇듯 상주에서는 이야기가 가공할 것도 없이 거저 얻어지기도 합니다. 돌을 주었는데 다이아몬드 원석인 경우가 많아요.” 도남서원은 상주 선비들의 정신적인 터전이 되는 곳이다. 1606년에 창건됐으며, 이후 여러 차례 고치고 증축됐다. 1992년 지역 유림들이 힘을 모아 강당 등을 건립했고 이어 동서재를 지었다. 2002년 대규모 복원이 이루어졌다. 서원 안팎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마침 홀로 서원을 찾은 어떤 이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일찍 끝나 머리도 식힐 겸 도남서원을 찾았다”며 우리에게 시 한 편을 낭독해주었다.# 5 쓸쓸한 공검지, 달콤한 곶감, 아삭아삭한 배추전 그리고 … 상주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공검지’였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삼한시대 3대 저수지 중 하나였다는 공검지는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길게 솟아난 갈대나 마른 연꽃잎대가 스산한 분위기를 냈다. 성석제는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낚시를 소재로 한 신작 단편 소설 ‘낚다, 섞다, 낚이다, 엮이다’를 썼다. 그의 소설이 대개 그렇듯 굉장히 유머러스한 소설이다. 그는 공검지 사이로 난 길을 뒷짐 지고 양반처럼 느릿느릿 걸었다. “상주를 소개했다고 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어요.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너무 깊숙이는 말고요.” 생각만큼 상주를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밀려드는 듯했다. 기자는 좀 전에 맛있게 먹은 달고 통통한 곶감과 아삭아삭 맛있는 배추전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생각난 듯 상주 음식 하나를 더 소개했다. “상주에는 쇠고기장국이 맛있어요. 약간 매콤하고 시원한 게… 육개장과 비슷한데, 다르거든요. 상주에서는 고기를 사가는 걸 끊어간다고 하거든요. 아는 사람 중 요리를 잘하는 분이 있는데, 그 댁에 쇠고기를 끊어가지고 가면 쇠고기장국을 해주세요. 근데 그 쇠고기장국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어요. 그분 음식은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맛있거든요.”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었다. 공검지를 걸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자니 몸도 마음도 나른해졌다. 그의 고향 상주였기 때문일까. 그의 이야기들은 마치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와 같이 익숙한 체취를 풍겼다.■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성훈 ■취재 협조 / 문학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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