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옵션
닫기
범위
전체
제목
본문
기자명
연재명
이슈명
태그
기간
전체
최근 1일
최근 1주
최근 1개월
최근 1년
직접입력
~
정렬
정확도순
최신순
오래된순

경향신문(총 976 건 검색)

“빅뱅 멤버들에게 상처 주려던 게 아니었다”···‘오겜 2’ 최승현, 11년 만의 인터뷰
“빅뱅 멤버들에게 상처 주려던 게 아니었다”···‘오겜 2’ 최승현, 11년 만의 인터뷰
2025. 01. 16 08:00문화
... 존재예요. (빅뱅 사진을 보는 것이) 헤어진 가족사진 보는 것처럼 괴로웠어요. 절대 멤버들에게 상처주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힘든 마음에 그랬던 것이 오해로 확산된 것 같습니다.” 그는 미안한 마음에...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민족의 상처 함께 슬퍼한 나무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민족의 상처 함께 슬퍼한 나무
2025. 01. 13 21:21오피니언
강화 보문사 향나무 동해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해상 관음 도량’으로 서해에는 강화도에 딸린 작은 섬 석모도에 천년고찰 보문사가 있다. 서해 일몰의 장엄한 풍광으로도 널리 알려진...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고규홍
계엄의 상처 보듬는 한강의 언어
계엄의 상처 보듬는 한강의 언어
2024. 12. 30 21:07문화
... 스웨덴 한림원에서 개최된 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강연은 깊은 울림을 주는 동시에 계엄에 상처 입은 국민들에게 더없는 위로로 다가왔다.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이 강연에서 한 작가는 ...
시리아 24년 독재의 상처…최소 10만명 묻힌 암매장지 발견
시리아 24년 독재의 상처…최소 10만명 묻힌 암매장지 발견
2024. 12. 18 21:47국제
다마스쿠스 북쪽 쿠타이파에 길이 50~150m 구덩이들 내전 기간 실종자 총 15만여명…집단 매장지 66곳 추정 목격자 “7년간 수시로 냉동트럭에 시신 싣고와 묻었다” 시리아 남부 나즈하에도 ‘비극의 현장’...
중동 전운 고조

스포츠경향(총 728 건 검색)

[종합] “모텔에 내 얼굴 합성” 유이, 고작 21살에 겪은 상처 고백 (PDC)
[종합] “모텔에 내 얼굴 합성” 유이, 고작 21살에 겪은 상처 고백 (PDC)
2025. 02. 07 09:42 연예
유튜브 채널 ‘피디씨’ 그룹 애프터스쿨 출신 유이가 데뷔 초 겪었던 아픔을 털어놨다. 6일 유튜브 채널 ‘피디씨’에는 ‘‘무쇠소녀단’ 에이스 유이, 제작진도 몰랐던 완주를 위한 비밀 회동 공개! | [#퇴근길byPDC]’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이날 유이는 퇴근길에 오르며 유튜브 채널 피디와 대화를 나눴다. 유튜브 채널 ‘피디씨’ 한 식당에 도착한 유이는 술 한잔을 하겠냐는 제안에 “감사하다. 나 어떡해? 이렇게까지 좋을까”라며 기뻐했다. 이후 한 잔을 원샷한 유이는 “제가 매년 건강검진을 받는 이유 중 하나도 매운 거 좋아하고 술 좋아해서다”라며 “유튜브 촬영할 때는 술 병을 치운다.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게 매운 거에 술 마시는 거”라고 말했다. 이어 유이는 자신의 엄마를 닮았다며 “엄마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았다. 엄마가 팔, 다리고 길고 키가 크다. 또 엄마가 노래를 잘하셨는데 전교생 앞에서 애국가도 부르셨는데 그 피를 살짝 못 받았다”며 웃었다. 과거 유이는 운동을 하면서 살았기에 아이돌이 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정말 좋은 기회로 오디션을 봤고 연습생 1년을 보내고 애프터스쿨에 합류했다. 그래서 늘 ‘멤버들 없었으면 데뷔 못 했을 거’라고 이야기 한다. 사실 제가 데뷔한 팀에 합류되는 구조여서 그렇다”라며 멤버들 덕분에 활동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유튜브 채널 ‘피디씨’ 그런가 하면 유이는 애프터스쿨 활동 당시 상처를 받았던 일화를 털어놨다. 그는 “당시 1면에 ‘걸그룹 A씨 야한 영상이 유출됐다’는 기사가 떴다. 그때 애프터스쿨 활동을 할 때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표님께 감사하다. 제가 상처받지 않게 어떻게든 돌려서 ‘유이야, 난 너를 믿어. 이런 영상이나 사진이 안 찍혔을 거라고 믿지만 항간의 소문이 너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니 이 사진으로 보고 맞으면 맞다고 이야기 해줘’라고 하더라. 그렇게 사진을 봤는데 누가 봐도 합성이었다”고 했다. 이어 “싸구려 모텔 같은 거에 얼굴만 있는 합성인데, 그게 21살 데뷔 3개월도 안 돼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 상처를 받았다. 내 이름이 알려지면서 사건이 터지니까 연예인을 못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쿨하게 넘기는 게 저에게는 힘든 트라우마였다”며 “결국 합성사진인게 밝혀졌지만, 그랬던 시절이 있어서 카메라만 들어도 ‘나 찍는 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알아봐 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종합] 김종민 “18년 버틴 ‘1박 2일’ 하차 통보…상처였다” (라스)
[종합] 김종민 “18년 버틴 ‘1박 2일’ 하차 통보…상처였다” (라스)
2025. 02. 06 09:53 연예
MBC ‘라디오스타’ 가수 겸 방송인 김종민이 ‘1박 2일’ 하차 통보를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5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는 900회 특집으로 꾸며졌으며 김종민 문세윤, 박나래, 코드쿤스트가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김종민은 “2007년부터 ‘1박 2일’에 합류했다. 원래 ‘준비됐어요’부터 출연해서 계속 이어진 게 ‘1박 2일’까지 온 건데 대체 복무 2년 제외하면 ‘1박 2일’만 18년째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출연료에 대해서는 “올랐다. 2~3배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서운치 않게 올려주셔서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했다. ‘1박 2일’은 시즌제를 거치며 많은 멤버 교체가 있었다. 김종민은 “멤버들도 많이 바뀌었다. 초반에는 노홍철도 있었고, 지상렬 형도 있었다. 작가님, 피디님도 많이 바뀌고 국장님까지 다 퇴직하셨다”며 “안 바뀐 분들이 저랑 카메라팀”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명팀, 배차팀까지 함께 하고 있다”며 “오랜만에 뵈면 세월이 흐른 게 느껴진다. 머리도 하야시고 20년이 되어가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세월을 느낀다”고 했다. MBC ‘라디오스타’ 18년간 ‘1박 2일’에서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김종민은 “제작진과 선을 잘 지켜서 그런 것 같다. 시즌 2때 승우 형이 갑자기 하차한다고 했는데, PD하고 너무 친해서 PD가 발령이 나니까 본인도 의리로 안 하겠다고 나가신 거다. 그러니 너무 서운하지 않게 선을 지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김종민은 ‘1박 2일’로 인생의 최대 고비를 맞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프로그램에서 가락국수 낙오 후 얼마 안 돼서 대체복무를 시작했다. 소집해제 후엔 부귀영화를 누릴 것 같아서 2년 동안 방송 복귀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김종민은 “첫 방송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안 풀리더라. 다들 나를 어색해하고 나도 말하는 게 눈치 보이더라. 무슨 말을 하면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게 다음 주도 똑같았고, 싸한 분위기가 2년이 더 지났다”고 고백했다. MBC ‘라디오스타’ 그러던 중 김종민은 ‘1박 2일’ 하차 청원의 주인공까지 됐다. 그는 “점점 하차 청원 수가 차오르니 점점 돌아올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주변에서 주는 도움도 도움으로 들리지 않았다. 힘내라는 말도 싫고 잘해, 파이팅도 의미가 없었다”면서도 “하차를 해야하나 고민했는데, 하차를 하면 인생이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년을 버티니 조금씩 나아졌다. 위에서도 하차시키자고 얘기했는데 나영석 피디가 저와 함께 버텨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해 시선을 끌었다. 그런가 하면 김종민은 시즌3에서 하차 통보를 받은 일화도 털어놨다. 그는 “하차 통보를 받았는데 그만두려고 마음먹은 순간 또 하자고 연락이 왔다. 저는 고민이 있을 때 호동이 형을 찾아가는데 ‘하는 게 나을 거 같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 다음날 합류하겠다고 전화했다. 굉장히 상처가 됐었는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대박이든, 쪽박이든’ 상처 입은 FA 계약…누굴 탓해야 하나
‘대박이든, 쪽박이든’ 상처 입은 FA 계약…누굴 탓해야 하나
2025. 01. 10 12:36 야구
하주석이 지난 8일 한화와 FA 계약 후 손혁 한화 단장과 악수하고 있다. 한화 제공 스스로 이미지 깎은 하주석 보장 1억도 안되는 헐값계약 워크에식 논란 최원태도 개장 초반 찬밥 대우 FA선언 전 자기객관화부터 하주석(31)은 지난 8일 한화와 1년 1억1000만원에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했다. 옵션 2000만원이 포함돼 보장액은 9000만원이다. 지난해 연봉 7000만원에서 2000만원 오른 셈이다. 바로 이튿날 KIA가 서건창(36)과 1+1년 5억원에 계약했다. 계약금 1억원에 연봉 1억2000만원·옵션 8000만원씩에 계약한 서건창은 KIA에서 1년 뛴 선수다. 서건창의 계약이 발표되면서, 그보다 5살이나 적고 한화에 입단해 한화에서만 뛰었던 하주석의 계약은 더욱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하주석은 생애 첫 FA 자격을 얻어 신청했으나 차별이 극심한 FA 시장에서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애초에 원소속구단 한화가 같은 유격수 포지션의 심우준을 4년 50억원에 영입, 하주석에 대한 기조를 보여준 데서 출발한다. 이는 리그가 하주석을 보는 시선에 자연스레 영향을 미쳤다. 한화가 하주석을 향해 극한의 냉대를 한 것은 전력 구성 계획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간의 이미지 때문이다. 음주운전, 경기 중 헬멧 투척 등 과거 사건들은 이미 심우준 카드를 손에 쥔 한화에게는 하주석을 내놔도 비난받지 않을 명분으로 이어졌다. FA 개장 이후 내내 각종 ‘설’에 시달렸던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투수 최원태(29)는 4년 70억원에 계약하고 LG에서 삼성으로 이적했다. 병역을 해결한 20대 선발 투수라는 엄청난 이점에도 불구하고 최원태 역시 FA 개장 초반 외면 받았다. 원소속구단 LG가 FA 계약으로는 잡을 뜻이 전혀 없음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원태가 하주석과 다른 것은 선발 투수라는 강점에 그래도 조용히 수요가 있었다는 점, 선수가 눈높이를 낮추지 않고 원하는대로 협상은 했다는 점이다. 선발 투수라는 이점이 결국 이적으로 이어졌다. 마운드 보강이 절실하던 삼성이 경쟁 구단이 없음에도 거액을 투자해 영입했다. 그 과정을 생각하면 최원태에게는 매우 운이 따랐다. 최원태 역시 FA 시장에서 엄청나게 생채기를 입었다. 워크에식 논란들까지 외부에 고스란히 알려졌다.너무 많은 소문과 추측이 양산돼 퍼져나갔고 상처는 고스란히 선수가 입게 됐다. 선발 투수를 내준 LG는 별 타격 없다고 자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벌 삼성이 최원태를 영입하는 상황은 최초 예상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주석과 최원태의 사례는 그 과정에 있어 공통점이 매우 많다. FA 선언할 때 왜 신중해야 하는지, 얼마나 다양한 각도로 상황을 파악해야 하고 경우의 수들을 준비해놔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최소한 원소속구단이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는 파악하고서 FA 권리를 행사해야 봉변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많은 선수들이 확인했다. 구단은 “FA 신청을 왜 했느냐”며 황당해하고 선수는 “구단이 묻지도 않았다”고 서운해한다면 그것은 ‘공식 대리인’인 에이전시의 과실이다. FA야말로 선수들의 자존심보다 자기객관화가 가장 필요한 때다. 이 역시 에이전시가 해야 할 일이다.
[김은진의 다이아몬드+] 상처투성이 FA···선수와 구단과 에이전시, 지금 누가 웃고 있을까
[김은진의 다이아몬드+] 상처투성이 FA···선수와 구단과 에이전시, 지금 누가 웃고 있을까
2025. 01. 09 17:18 야구
하주석이 지난 8일 한화와 FA 계약 후 손혁 한화 단장과 악수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 하주석(31)은 지난 8일 한화와 1년 1억1000만원에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했다. 옵션 2000만원이 포함돼 보장액은 9000만원이다. 지난해 연봉 7000만원에서 2000만원 오른 셈이다. 바로 이튿날 KIA가 서건창(36)과 1+1년 5억원에 계약했다. 계약금 1억원에 연봉 1억2000만원·옵션 8000만원씩에 계약한 서건창은 KIA에서 1년 뛴 선수다. 서건창의 계약이 발표되면서, 그보다 5살이나 적고 한화에 입단해 한화에서만 뛰었던 하주석의 계약은 더욱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하주석은 생애 첫 FA 자격을 얻어 신청했으나 차별이 극심한 FA 시장에서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애초에 원소속구단 한화가 같은 유격수 포지션의 심우준을 4년 50억원에 영입, 하주석에 대한 기조를 보여준 데서 출발한다. 이는 리그가 하주석을 보는 시선에 자연스레 영향을 미쳤다. 왜 FA를 신청했느냐고 하주석을 질책하지만, 따져보면 이미 심우준 영입 계획을 세워놓고 FA 개장을 기다린 한화에서 하주석이 권리 행사를 미뤘다한들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가 하주석을 향해 극한의 냉대를 한 것은 전력 구성 계획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간의 이미지 때문이다. 음주운전, 경기 중 헬멧 투척 등 과거 사건들은 이미 심우준 카드를 손에 쥔 한화에게는 하주석을 내놔도 비난받지 않을 명분으로 이어졌다. 한화 유격수 하주석. 한화 이글스 제공 계약후 감사 혹은 작별 인사를 위해 손편지를 온라인에 직접 올리는 선수들은 있지만, 하주석은 처음 보는 방식으로 인사했다. 계약 직후 손으로 쓴 사과문을 직접 들게 하고 촬영해 공개하면서 한화는 구단 스스로 그 여론을 얼마나 의식하지는지 보여주었다. 이 ‘퍼포먼스’로 하주석의 과거 전력이 오히려 더 입길에 오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화는 유격수 백업까지 자연스럽게 해결했다. 전략이었다면 대성공이다. FA 개장 이후 내내 각종 ‘설’에 시달렸던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투수 최원태(29)는 4년 70억원에 계약하고 LG에서 삼성으로 이적했다. 병역을 해결한 20대 선발 투수라는 엄청난 이점에도 불구하고 최원태 역시 FA 개장 초반 외면 받았다. 원소속구단 LG가 FA 계약으로는 잡을 뜻이 전혀 없음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원태가 하주석과 다른 것은 선발 투수라는 강점에 그래도 조용히 수요가 있었다는 점, 선수가 눈높이를 낮추지 않고 원하는대로 협상은 했다는 점이다. 선발 투수라는 이점이 결국 이적으로 이어졌다. 마운드 보강이 절실하던 삼성이 경쟁 구단이 없음에도 거액을 투자해 영입했다. 그 과정을 생각하면 최원태에게는 매우 운이 따랐다. 대형 계약은 했지만 최원태 역시 FA 시장에서 엄청나게 생채기를 입었다. 묘한 분위기에 워크에식 논란들까지 외부에 고스란히 알려졌다. LG 구단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최원태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소문과 추측이 양산돼 퍼져나갔고 상처는 고스란히 선수가 입게 됐다. 최원태가 지난 12월6일 삼성과 FA 계약한 뒤 이종열 삼성 단장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선발 투수를 내준 LG는 별 타격 없다고 자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그것도 라이벌 삼성이 최원태를 영입하는 상황은 최초 예상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획대로 최원태와 FA 계약은 하지 않았지만 당초의 계산과 조금 어긋났다. 계약 결과로는 희비가 완전히 엇갈렸지만 하주석과 최원태의 사례는 그 과정에 있어 공통점이 매우 많다. FA 선언할 때 왜 신중해야 하는지, 얼마나 다양한 각도로 상황을 파악해야 하고 경우의 수들을 준비해놔야 하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선수들이 대리인을 필요로 하는 이유지만, 역설적으로 선수와 구단이 직접 소통해왔다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일들이 이번 FA 시장에서는 벌어졌다. 최소한 원소속구단이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는 파악하고서 FA 권리를 행사해야 봉변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많은 선수들이 확인했다. 구단은 “FA 신청을 왜 했느냐”며 황당해하고 선수는 “구단이 묻지도 않았다”고 서운해한다면 그것은 ‘공식 대리인’인 에이전시의 과실이다. FA야말로 선수들의 자존심보다 자기객관화가 가장 필요한 때다. 이 역시 에이전시가 해야 할 일이다. 굴욕적으로 마무리 된 계약은 물론, 아무리 대형계약을 했더라도 큰 상처를 입었다면 성공한 계약이라 할 수 없다. 인기를 먹고 사는 프로야구 선수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김은진의 다이아몬드+

주간경향(총 49 건 검색)

“우리 학교 흔들지 마세요”…정치권 막말에 상처받는 학생들
“우리 학교 흔들지 마세요”…정치권 막말에 상처받는 학생들(2024. 12. 02 06:00)
2024. 12. 02 06:00 사회
김혜지 서울시의원이 되살린 혁신학교 흔들기…그 오해와 진실 “고정관념으로 판단 말라” 학생·학부모 항의에 김 의원은 침묵 서울 강동구에 있는 선사고 학생들이 주간경향에 적어 보낸 학교에 대한 생각/정지윤 선임기자 정치권의 무책임한 한마디에 또 다시 아이들이 상처받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진행된 시정 질의에서 김혜지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쏟아낸 발언이 문제가 됐다. 이날 김 의원은 서울 강동구에 있는 혁신학교인 ‘선사고’를 콕 집어서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학교”, “졸업할 때 가장 (대학) 잘 간 친구가 누구냐고 했더니 ‘경희대’라고 하더라”, “혁신학교가 정치적 배경 없는 중립적인 학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을 실시간 중계, 언론 기사, 유튜브 동영상 등으로 확인한 학부모들이 김 의원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한 선사고 학부모는 “(김 의원이) 너무 바빠서 종일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럼 시간 나실 때 찾아가겠다고 하니 아직 돌이 안 된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안 된다고 하더라”며 “남의 아이가 받은 상처는 무시하고, 본인 아이는 돌봐야겠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김 의원이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메시지로 면담과 사과를 요구했다. 역시나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답도 오지 않았다. 2009년 경기도에서 시작한 혁신학교는 2011년부터 각 시도교육청이 공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도입하며 전국으로 확대됐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혁신학교 도입을 주도했고, 이 때문에 정쟁 대상이 됐다. 2022년 전국 교육감선거 때도 진보는 자율형 사립고 폐지, 보수는 혁신학교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해당 학교 학생들은 모교가 ‘사회적 병폐’로 지목되는 상황을 지켜봤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났다. 지난 11월 18일 김 의원의 선사고 관련 발언 역시 특별한 교육 현안이 있어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날 시정 질의 답변자가 진보진영 단일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정근식 교육감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선사고에 다니는 학생들도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다. 선사고 학생회는 지난 11월 26일 “저희의 입장은 정치적 신념과는 무관하며, 오로지 학생들이 주체가 돼 작성한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로 시작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학생회는 입장문 곳곳에서 “저희 학생들과 문제가 없던 학교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 점이 유감스럽다”거나 “저희 재학생들은 선사고가 더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김 의원) 발언으로 학교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당부를 전했다. 지난 11월 26일 방문한 서울 강동구 선사고등학교 전경./정지윤 선임기자 혁신학교를 가면 대학을 못 간다? 혁신학교를 둘러싼 모든 오해의 중심에는 ‘대학 진학률’이 있다. “혁신학교에 다니면 대학에 못 간다”는 말이 마치 진실처럼 통용된다. 학생·학부모보다 주로 입시와는 큰 관계도 없는 정치인 등의 입으로 소문이 만들어지고 퍼진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느낌적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서울시교육청은 고등학교별 대학 진학률을 공개하지 않는다. 대입 결과는 학교의 위치, 입학생의 특성과 같은 종합적 요소와 관련되기 때문에 교육청은 자료 자체를 수집하지 않는다. 또 ‘대학 진학률’은 합격했지만 등록하지 않는 경우, 등록만 하고 재수를 하는 경우, 한 학생이 복수의 대학에 합격하는 경우 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진학률이라며 공개된 자료마다 수치가 다르고, 학생·학부모의 체감과도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혁신학교는 대학 진학률을 기준으로 ‘수준이 낮다’며 공격받는다. 그렇다면 혁신학교의 대학 진학률은 실제로 어떨까. 대학 진학률을 공개하고 있는 대표 사이트로 ‘학교알리미’가 있다. 이곳에서 학교별 ‘졸업생 진로 현황’ 확인이 가능하다. 가장 최근 연도 공시인 2023년 11월 자료를 기준으로 이른바 강남 8학군 학교들의 ‘대학 진학률’을 보면 서울고 37.4%, 개포고 36.4%, 서초고 37.5%, 양재고 37.4%, 반포고 36.7%다. 같은 기준으로 선사고의 대학 진학률은 44.1%다. 이를 두고 대학 진학률과 ‘명문대 진학률’은 다르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김 의원은 시정 질의에서 선사고 면학 분위기를 비판하는 익명의 졸업생 인터뷰를 띄워두고 “너희 졸업할 때 가장 (대학) 잘 간 친구가 누구냐고 했더니 ‘경희대’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선사고의 최근 3개년 입시 통계(2022~2024)를 살펴봤다. 매해 수시·정시를 포함해서 이른바 스카이 대학(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합격생이 있었다. 또 재수생을 제외한 대학 합격자의 20% 이상이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등 이른바 ‘인 서울’ 대학교로 진학했다. 선사고가 있는 강동구에는 선사고보다 대학 진학률이 낮은 학교도 있지만, 학력에 대한 비판은 오로지 선사고에만 쏟아진다. 정연정 선사고 교장은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합격한 아이들이 너무나 자랑스럽지만, 그 아이들을 내세워 학교 홍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며 “다만 혁신학교 역시 대학 진학률이나 상위권 대학 입학 비율이 다른 일반 학교와 유의미한 차이가 있지 않다는 점만큼은 꼭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26일 서울 강동구 선사고등학교 정연정 교장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정지윤 선임기자 혁신학교는 어쩔 수 없이 다닌다? 혁신학교를 둘러싼 또 하나의 오해는 ‘학생들이 강제로 배정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닌다’는 것이다. 선사고를 포함한 혁신학교는 매해 학기 말이면 구성원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한다. 5점 만점을 기준으로 통계를 내는데 올해 결과는 학생 4점, 학부모 4.1점, 교직원 4.8점이다. 최근 3년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모든 구성원의 만족도가 한차례도 4점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학부모 만족도는 매해 학생보다 조금씩 높게 나온다. 혁신학교에 비판적인 시선대로면 학부모들이 불안에 떨어야 할 것 같지만, 지표는 오히려 반대다. 김 의원은 구성원 만족도가 높은 것을 두고 “공부 안 하는 친구들은 너무 좋아한다니까요, 이 학교를”이라고 말했다. 선사고에는 지난 11월 28일 기준, 총 658명(1학년 214명·2학년 232명·3학년 212명)이 재학 중이다. 한 해 동안 이사(7명) 및 학업중단(9명)을 제외한 순수 학교 간 전학은 총 5명이 있었다. 이중 2명이 특성화고(마이스터고)로 전학을 갔다. 나머지 3명은 인근 자사고로 전학했다. 종합하면 각종 사유로 총 21명 전출이 발생했다. 해당 수치를 역시 강남 8학군 내 공립학교와 비교해봤다. 2023년 한 해 기준, 전출 및 학업 중단은 서울고 60명, 개포고 53명, 서초고 47명, 양재고 34명, 반포고 46명이었다. 인근 학교와도 비교해봤다. 강동고 16명, 강일고 20명, 광문고 27명, 동북고 31명, 둔촌고 21명 등이다. 선사고에 배정된 것이 불만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전학을 선택한다고 볼 만한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주목할 점은 선사고는 전입이 없다는 것이다. 혁신학교인 선사고는 이미 학급별 인원이 교육감 지침으로 정한 24명을 초과해 전학을 받을 수 없다. 정 교장은 “만약 전입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자사고에서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오는 학생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사고에서 운영 중인 학문 간 융합 수업 목록/선사고 제공 마지막 오해는 ‘혁신학교는 일반고와 달리 대입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혁신학교도 공립학교다. 이에 따라 수업은 초·중등교육법에 근거한 ‘국가수준교육과정’을 벗어날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과정 운영 측면에서 혁신학교에 부여되는 별도의 자율성은 없다. 다만 교사들이 동료 교사들과 함께 국가수준교육과정 틀 안에서 교육과정 및 수업혁신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것”이라며 “오히려 혁신학교에서 이뤄진 노력이 이미 2022 개정교육과정 등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됐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수업 역시 법에 근거한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해서 만든 수업 몇 가지가 더해진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26일 방문한 선사고에서는 1학년 3반의 연극 수업이 한창이었다. 학생들은 연기뿐만 아니라 작가, 연출 등의 스태프로도 참여해 연극 한 편을 함께 만들고 있었다. 게시판에는 학교에서 열리는 수업 홍보물도 있었다. 제목을 보면, ‘언어와 사회 현상은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까?’, ‘나와 세계는 어떻게 연결될까?’, ‘수학은 우리 삶에 왜 필요하고, 어떤 도움이 될까’, ‘우리 고장 암사동의 생물 다양성은 얼마나 풍부할까’ 등이었다. 대부분 학문 간 융합을 통한 다면사고를 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를 위해 수학·국어 교사가 협업해 수업을 개설하는 식이었다. 연세대를 비롯한 유명 대학이 입시에서 강조하는 것이 ‘다면사고’다. 1, 2학년 때는 전교생이 참여한 탐구 발표대회를 한다. 1학년은 교과 과목과 관련한 소주제를 선정해 연구 및 발표를 하고, 2학년은 진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식이다. 올해 학생들이 발표한 교과심화탐구 주제 중에는 ‘미얀마 쿠데타로 보는 유엔 보호 책임의 한계와 해결방안’, ‘세균배양을 통한 천연 항생물질 찾기’ 등이 있었다. 지난 7월 선사고에서 진행한 ‘교과심화탐구’ 결과 발표회 모습/선사고 제공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업 및 활동은 모두 생활기록부에 기재된다. 실제로 혁신학교의 이러한 수업방식을 입시에 반영하기 위해 개교 초 대학 측이 입학사정관을 파견하기도 했다. 선사고의 대학 합격 비중 역시 정시보다 수시가 높다. 그런데도 김 의원은 선사고를 두고 “공교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학교”, “학생들이 너무 안타깝고 희생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선사고는 학생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교”라고 반박했다. 책임 없는 한국식 정치 구성원 모두가 만족하는 완벽한 학교는 있을 수 없다. 입시 구조상 학생들에게는 성적을 기초로 등급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친구, 학교를 향한 갈등이 생기고 자퇴나 전학을 선택할 수 있다. 또 졸업 후 학교에 대한 원망이 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두고 어떤 학교에는 정상적인 입시 과정으로, 또 다른 학교에는 존폐를 따져야 할 사례로 언급된다면 이는 발언자의 의도를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일부 정치권이 혁신학교를 바라보는 잣대가 공평한가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취재가 시작된 후 선사고 학생들은 주간경향에 이번 사태에 대한 생각, 하고 싶은 말 등을 자유롭게 적어 보냈다. “우리 학교가 진짜 어떤 모습인지 알고 말하면 좋겠다”, “공부를 안 해서 행복한 학교라고 하는 건 저희의 명예를 훼손하신 것과 같습니다”,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으로만 우리 학교를 판단하지 마세요”, “선사고 선생님들께서는 학생들을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언급하신 문제들은 혁신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고교에서 발생합니다”, “입학 전에는 선사고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고3인 저는 선사고의 시간이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대학 진학률만으로 ‘교육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사고 재학생으로서 우리 학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어야 하는 이런 상황이 바로잡힐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등이 그 내용이다. 정 교장은 “이번 일로 학교공동체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겼고, 학생들의 분노도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어른으로서, 그리고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죄송하다. 의원님의 진정어린 사과를 바란다”고 밝혔다. 학부모들 역시 입장문을 내고 “김 의원이 수백 명의 재학생과 졸업생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 달라”고 요구했다. 주간경향은 김 의원에게 연락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도, 문자에 답을 하지도 않았다. 김 의원은 선사고가 있는 강동구 제1선거구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선출됐다. 시민과의 소통 강화를 위해 임명하는 서울시의회 대변인이기도 하다. 교육감을 상대로 30여 분간 선사고 비판을 쏟아냈던 그는 정작 학생·학부모의 항의에는 침묵하는 중이다. “제발 정치적 목적으로 학교를 흔들지 말아달라”는 학생들의 바람을 들어줄 정치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특집
[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23) 상처 극복하기
[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23) 상처 극복하기(2024. 10. 11 16:00)
2024. 10. 11 16:00 사회
우리는 관계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직접적인 만남을 넘어 인터넷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관계가 복잡다단해졌다. 관계가 다면화하면서 이로 인한 갈등도 커졌다. 많은 직장인이 직장생활에서 겪는 첫 번째 어려움으로 인간관계를 꼽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인간관계 고민 중 으뜸은 역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일 것이다. 상처받았을 때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문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Unsplash, Christopher Sardegna 인정한다 우리 삶은 상처투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내가 받는 상처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다. 억울해하거나 자책할 일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상처는 굳은살이 된다. 부러진 뼈가 더 튼튼해지는 법이다. 상처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대처한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이를 외면하거나 부정하거나 억누르지 않는다. 상처받았다는 걸 인지하고 대응한다. 나의 대처 방식은 감정을 글로 써보는 것이다. 그것이 원망이건 배신감이건 모욕감이건 느낀 그대로 낱낱이 써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는데, 청소하는 아저씨가 벌컥 문을 열고 “빨리 나오지 못해!” 하며 소리를 지르셨다. 그때 당한 모욕은 아무리 어린 나이였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중학교 1학년 국어 과목 글쓰기 숙제에 그때 일을 썼고,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내 글을 읽어주셨다. 나는 비로소 그때 그 일에서 느낀 수치와 모멸감에서 벗어났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내가 받은 상처를 기술하는 방법은 이렇다. 첫째, 상처받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본다. 둘째, 느낀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서술한다. 셋째,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이유와 원인을 찾아본다. 넷째, 상처를 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다섯째, 객관적인 제3자 관점으로 평가한다. 여섯째, 그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본다. 그렇게 쓰고 나면 늘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이처럼 머릿속 화를 글로 바꾸면 내 감정이 객관화되고 순화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한쪽에는 지금 나를 괴롭히고 힘든 일, 후회하고 걱정되는 일. 다른 한쪽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일을 적었다. 그렇게 쓰고 나면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감사할 일뿐이었다. 받아친다 상대가 상처를 줄 때 같은 방법으로 갚아 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닥칠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나같이 심약한 사람은 쓰기 어려운 방법이다. 하지만 아내에게 많이 배웠다. 아내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정면 승부를 건다. 누가 자신을 건들면 가만 놔두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 문제를 만들진 않지만, 누군가 도발해오면 반드시 응징한다. 상호주의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그래서인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편이다. 나는 그런 아내가 부럽다. 아니 무섭다. 무시한다 상대가 자극하려 할 때 무반응으로 대응하거나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하면 상대는 내게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미국 영화배우 모건 프리먼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프리먼은 어느 독일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내가 당신에게 ‘검둥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죠?”라고 묻자 “아무런 일도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면 잘못된 단어를 사용한 당신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니까”라고 답했다. ‘검둥이’라는 말로 자극한 기자에게 어떤 식의 분노도 표출하지 않았고, 상처도 받지 않았다. 그저 막말한 기자만 우스워졌을 뿐. 누군가 내게 상처를 줬을 때 그 상처를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으면 온전히 내 몫으로 남아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상처받지 않는다면, 상대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상처는 고스란히 상대에게 돌아간다. ‘모든 칼은 양날이 있다. 한쪽 칼날로 남을 상하게 하는 자는, 다른 쪽 칼날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도 있잖은가. 용서한다 상대가 아니라 나를 위해 너그럽게 감싸안는다. ‘너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의도하지 않은 실수였을 수도, 내가 너를 오해했을 수도 있을 거야…’. 감정이란 파도는 막을 수 없지만, 어느 파도에 몸을 맡길지는 내가 고르는 것 아니겠는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을 만나 하소연할 수도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의 조언을 받거나, 전문의와 상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상처 준 사람이 이해되거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도 된다. 상대방과 대화를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서 상처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게 아니라 이미 나는 너를 용서했다는 걸 선언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용서는 나를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다. 견뎌낸다 되받아치거나 무시하기도, 용서하기도 어렵다면 그저 견뎌내야 한다. 시간은 상처를 낫게 하는 최고의 처방전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상처는 아문다. 결코 예외가 없다.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일은 내게 없었다. 현재에 충실해보자. 미국의 작가 마리안 윌리엄슨은 “과거에 머물러서는 과거에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야 비로소 과거를 치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내 영혼이 상처에 잠식당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어떤 일을 하다가 그 일로 인해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잘못됐다고, 하지 말라는 그 사람에게 보란 듯이 그 일에 집중했고,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그러면 됐다. 거리를 두는 것도 견디는 방법이다. 상대가 변화할 가망이 없고 내게 반복적으로 상처를 준다면 그와 감정적인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철저히 무덤덤하게 지내는 것이다. 이마저도 힘들다면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손절’해야 한다. 내게 해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야 할 이유나 의무가 내겐 없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한 상처받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상처가 나를 망치도록 내버려 두진 말자. 상처 주는 사람과 상처 난 마음을 안고 살아가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
일로 상처받고 ‘은둔 굴레’…사회로 꺼내줄 ‘밧줄’ 절실
일로 상처받고 ‘은둔 굴레’…사회로 꺼내줄 ‘밧줄’ 절실(2024. 09. 30 06:00)
2024. 09. 30 06:00 사회
고립은둔청년들은 왜 세상 밖으로 나오는 문을 걸어 잠갔을까. 그리고 이들이 어렵사리 사회 복귀 의지를 가질 때 우리는 어떻게 도와야 할까. 고립은둔을 끝내고 사회 복귀를 모색하는 청년들과 이들을 돕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9월 24일 사단법인 ‘씨즈’가 운영하는 서울 은평구에 있는 고립은둔청년 지원 공간 ‘두더집’에서 고립은둔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스무 살, 성년이 되어 사회에 첫발을 떼는 나이. 김다현씨(가명·27)는 바로 그 스무 살에 ‘고립’을 택했다.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김씨는 그러지 못했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홀로 재수를 준비했다. 집에서만 생활하면서 가족 외 친구들과의 연락은 끊었다. 재수는 삼수, 사수가 됐고 은둔과 고립은 6년간 이어졌다. “자아가 없는 인형 같았어요. 우울이 심해서 집중이 안 되는데 그냥 공부하는 척만 하고 있었어요. 나중에는 그냥 다 포기했고, 난 이렇게 평생 집에서 살아야 하나보다…. 죽음에 관한 생각도 많이 했어요.” 일하거나 재학 중이 아니면서 진학·취업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닌 ‘쉬었음 청년’이 늘고 있다. 자신의 활동상태를 묻는 말에 ‘쉬었음’을 택한 이들을 일컬어 ‘쉬었음 청년’이라고 한다. 통계청이 지난 9월 11일 발표한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 8월 기준으로 쉬었다고 답한 청년(15~29세)은 46만명.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만6000명 늘었고, 전월보다 1만7000명 많다. ‘쉬었음 청년’ 중엔 진학과 구직의 문턱에서 잠시 재충전을 하는 사례도 있지만, 쉼이 장기화하면서 고립과 은둔의 단계에 이른 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2023년)에 따르면 가족 외 타인과의 의미 있는 교류가 없고,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없는 사회적 고립 상태에 있는 청년인구는 54만명(19~34세 인구의 5%)으로 추정된다. 방이나 집 등 제한된 공간에 자기 자신을 가두며 은둔하는 청년들도 포함된 숫자다. ‘고립은둔청년 54만명’은 한국사회의 불건강성을 드러내는 지표다.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대·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해 소수 양질의 일자리를 향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의무교육이 끝난 뒤 대학진학, 취업 등의 과업을 수행해내지 못한 청년들은 ‘비정상’으로 낙인찍히고, 실패 앞에서 자기 탓을 하기 일쑤다. 청년의 실패는 종종 부모의 실패로 여겨져 이들은 가족에게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가족 간 불화나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으로 마음의 상처가 누적된 경우엔 작은 실수 앞에서도 움츠러들고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한다. 고립은둔청년들은 왜 세상 밖으로 나오는 문을 걸어 잠갔을까. 그리고 이들이 어렵사리 사회 복귀 의지를 가질 때 우리는 어떻게 도와야 할까. 고립은둔을 끝내고 사회 복귀를 모색하는 청년들과 이들을 돕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립은둔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요” 김다현씨가 은둔생활을 끝낸 계기는 암 투병 중이었던 막내 이모의 죽음,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본 엄마의 눈물이었다. “막내 이모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마른 몸으로 저를 꽉 안아주셨어요. 아무 얘기 없이 그냥 안아주셨는데 너무 포근했어요. ‘나를 이렇게까지 반겨준다고?’라고 속으로 생각했어요. 가족들도 저를 안아준 적이 없었거든요.” 김씨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죽음을 생각하던 아이였다. 학교에서 심리검사를 받으면 늘 추가검사 권유가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추가검사와 상담은 받지 못했다. 막내 이모의 장례식장에서 그는 여러 생각을 했다. 처음엔 “죽고 싶다는 못된 생각을 하는 나를 데려가지 왜 이모를 데려갔을까”라고 생각하다가 통곡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다른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저희 엄마가 원래 그렇게 우는 분이 아니거든요. 내가 지금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구나. 엄마랑 이모한테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구나. 일단 살자, 살자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살자’고 다짐한 뒤 김씨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자격증 공부였다. 학점은행제도를 통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고 지역 아동복지센터에 실습을 나갔다. 큰 용기를 내서 세상 밖으로 나갔건만, 예상치 못한 문제와 맞닥뜨려야 했다. “복지센터 운영하는 분이 교회 목사셨는데, 그분 권유로 교회를 다녔지만 저는 도저히 신앙심이 생기지 않아서 고민이 컸어요. 그런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내가 이쪽(사회복지사 업계)을 꽉 잡고 있으니 나에게 밉보이면 타격이 있을 거다.’ 그곳을 도망쳐 나오면서 ‘아, 이쪽으로 취직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재고립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김씨에게 ‘일’은 고립의 꼬인 실타래를 풀 열쇠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존재다. ‘살자’고 생각한 뒤 가장 먼저 시도했던 것도 일이었지만, 일에서 겪은 상처로 재고립 생활을 했다. 그는 수개월 후 다시 용기를 내 고립은둔청년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해 심리상담을 받았다.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과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여러 개 이수했다. 은둔·고립청년들을 위한 일경험 프로그램도 수강했고, 우수사례로 선정돼 커피차 아르바이트도 해봤다. 하지만 일반 카페에서의 일은 차원이 달랐다. 은둔했던 청년의 서툰 일 처리를 품어주는 사장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저는 지금 월 100만원만 벌어도 족할 것 같은데 일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력서를 쓸 때마다 공황이 오는데 이런 걸 도와줄 사람도 찾지 못했고요. 은둔을 끝낸 사람으로서 은둔 중인 청년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요청을 받을 때가 있는데요, ‘나오세요’라고 말해줄 때마다 내심 걱정이 돼요. 일을 찾지 못해서 재고립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거든요. 저의 솔직한 마음은 이거예요. ‘사회 아직 힘들어요. 믿을 만한 사람이 있긴 한데, 사회가 기다려주지 않아요.’” 은둔했던 청년들이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세상은 만만치 않으니 노력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한경쟁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그들에게 그저 ‘노력하라’는 강요는 그들을 재고립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에 대한 상상력 아닐까. 고립은둔청년들을 위한 심리상담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PIE나다운 청년들’의 김혜원 대표(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은둔했던 청년들은 기존의 직업세계에서 수용받는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청년들에게 사회적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틈새가 있어야 해요. 고립은둔청년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는 경로 말입니다.” 김혜원 대표가 말한 것과 같은 ‘틈새’는 아직은 고립은둔 청년들을 돕는 단체들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은둔의 경험을 이해해주는 사회적협동조합을 통해 정규직 일자리를 찾은 임지원 씨(가명·26)의 얘기를 들어보자.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임지원씨는 중학교 3학년이 되고 어느 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뭔가 갇혀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는지, 학교에 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열일곱 살부터 군에 입대한 스물한 살까지 4년가량 집에서만 생활했다. 집에선 주로 게임을 하며 지냈고 몸무게도 10㎏가량 불었다. 살이 찌고 나서는 밖에 나가기가 더 힘들었다. “집 앞에 나가더라도 막 누가 괜히 쳐다보는 것 같고, 친구들이 불러도 안 가게 되더라고요. 동생이랑 집 근처 PC방 정도만 나갔던 거 같아요. 그때는 진짜 문 앞에 큰 벽이 있는 것 같았어요. 나가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군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2020년 여름, 임씨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의 검정고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스무 살이 넘었으니까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1년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트에서 3개월가량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없다 보니까 아르바이트든 무슨 일을 하든 실수했을 때 지적받고 이런 게 힘들고 낯선 환경 적응도 힘들었고요.” 임씨는 이정현 ‘일하는학교’ 사무국장을 연락을 받고 2022년 ‘꽃길’ 프로그램(1년 과정)에 참여했다.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 관심사, 진로 탐색 등을 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인턴으로도 활동했다. 지난해 4월부터는 카페 ‘그런, 날’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일하는학교가 운영하는 카페로 고립·위기청(소)년의 회복을 위한 일경험을 제공하는 곳이다. 임씨는 “여기서 일하면서 인턴 청년들에게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일이 좀 재밌다”고 했다. 그는 “저도 인턴을 하면서 ‘나도 생각보다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고, 이전엔 실수할까봐 압박감이 굉장히 심했는데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도 알았다”고 했다. “일하는학교에 온 청년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주려고 하고 있어요. 그 친구들과 제가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고 제가 먼저 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요. 선생님들이 저를 보고 그런 걸 느꼈겠지만, 그 친구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좋아요.” 은둔청년을 품는 일자리를 만난 임지원씨는 운이 좋은 사례다. 통념과 달리 고립은둔청년들은 게으르거나 일하기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고립은둔청년 실태조사를 보면 10명 중 8명은 취업을 해 사회로 복귀하고 싶어한다. 초등학교 때 생긴 정신질환으로 인해 중·고등학교 과정을 홈스쿨링으로 마친 뒤 고립된 삶을 살아온 이윤미씨(가명·22)는 사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최근 고향(경북)에서 서울로 아예 거처를 옮기기까지 했다. “이제 성인이 됐으니까 정말 일하고 싶거든요. 일을 하고 싶은데, 안 돼요. 조금 쉬운 일경험부터 할 수 있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씨는 고립은둔청년을 돕는 단체 ‘씨즈’를 통해 활동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문제는 이윤미씨가 김다현씨처럼 고립은둔청년을 돕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이수한다고 해도 임지원씨처럼 은둔청년을 받아들이는 일자리를 찾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립은둔청년을 오랫동안 지원해온 민간단체에선 지지기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경험과 취업 단계에서 다시 물러서거나 재고립 위기에 놓였을 때 앞서 이 과정을 모두 밟은 멘토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수행해야 할 작업은 한국사회의 노동환경에 대한 반성이다. 월간 ‘노동리뷰’ 2024년 6월호에 실린 보고서 ‘청년들은 노동시장에서 왜 고립을 선택하였는가?’(조규준)를 보면, 청년들의 고립 배경으로는 ‘반복된 구직 실패로 인한 무기력감’이 꼽힌다. 이 보고서에 인용된 천안지역 청년센터 담당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력서 20~30군데 떨어지면 멘탈(정신)이 나가거든요. 내가 쓰레기가 된 것 같고, 내가 이때까지 한 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스펙을 이만큼 쌓았는데도 안 된다고 하면 포기하고 싶어지죠.” 직장문화도 영향을 미친다. 폭력이나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등을 경험했을 때나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정서적·육체적 소진을 경험하면, 청년들은 자기 안으로 숨게 된다고 한다. 질 낮은 일자리를 통해 사람을 ‘쓰고 버리는’ 노동시장 구조가 그대로인 한 고립은둔청년들은 일자리 시장을 겉돌 수밖에 없다. 은둔형청년 ■‘일의 감각’을 회복하기 세상이 무서워 숨어버린 청년들을 품기 위해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노동시장의 변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그에 앞서 고립은둔청년들에게 당장 도움이 될 현실적인 손길도 필요하다. 고립은둔청년들을 지원해온 여러 민간단체에선 시행착오를 거쳐 대략 세 가지 범주의 도움을 주고 있다. 일상을 회복하게 하고, 비슷한 처지의 또래와 관계맺기를 유도하면서 일경험과 취업 기회를 연결하는 것이다. 경기 성남에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에서도 일을 하기까지 어려움을 겪는 위기 청년에게 3단계(일상회복-진로탐색-일과 자립)의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임금노동으로서의 ‘일’을 먼저 내밀지 않는 것이다. 이정현 일하는학교 사무국장은 “일상회복 프로그램에는 수영장이나 놀이동산 가보기, 혼자 옷이나 화장품 사보기, 컴퓨터 배우기 등이 있는데 고립은둔청년 중엔 그런 경험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고 스스로 ‘이 나이에 이것도 안 해봤다’, ‘이런 것도 할 줄 모른다’ 이런 자기혐오나 트라우마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일상적 경험을 쌓은 후에야 일경험으로 한 발 전진할 수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일상회복 후엔 일경험을, 그다음엔 취업에 뛰어든다. 일하는학교에선 전 과정에 멘토가 함께함으로써 청년들이 재고립되지 않도록 돕는다. 고립은둔청년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 땅굴’과 오프라인 공간 ‘두더집’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씨즈’ 역시 ‘일상회복’을 첫 번째 목표로 두고 있다. 이은애 씨즈 이사장은 “낮과 밤을 조금 바꿔보고, 목욕이나 요리를 한다든지, 세탁은 얼마 만에 한다든지 자신을 돌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다음 집밥 모임, 텃밭 가꾸기 등을 하면서 일상회복을 하고 소통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엔 일에 도전한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비영리단체 등에서 먼저 활동을 시작해서 일반 기업에도 문을 두드린다. 고립은둔청년들이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일의 감각’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고립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도 ‘일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기, 식사 준비하기, 청소하기와 같이 자기를 돌보는 일이나 쇼핑하기, 운동하기, 영화나 공연 보기 등 세상을 탐색하는 활동은 직업인으로서의 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자신을 잘 돌보고 즐거움을 누리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아닐까. 비록 돈으로 환산되지는 않지만, 이런 일들을 ‘만만하게’ 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사회의 성원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자신감을 얻는다.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에 참여한 고립은둔청년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며 소통하기도 한다. 고립은둔청년들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 역시 유의미한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관계맺기에 서툴러 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했고, 대학도 대인관계 때문에 자퇴했다”는 조강언씨(25)는 ‘두더지땅굴’을 우연히 접하고 이곳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두더지땅굴(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자주 써요. 제 글을 보고 두더집(오프라인 쉼터)에 나갈 용기가 없는 분들도 용기를 얻고 나왔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첫 번째 방문 날, 두 번째 방문 날 이런 식으로 있었던 일 위주로 써요.” 사단법인 ‘씨즈’ 이은애 이사장이 지난 9월 24일 서울 은평구 ‘두더집’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왼쪽).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의 이정현 사무국장이 경기 성남 수정구 ‘일하는학교’ 내 교육장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김향미 기자 ■정부지원 시작됐지만 ‘쉬었음 청년’의 증가세가 확인되고 고립은둔청년이 54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실태조사가 나오자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최근 이들에 대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첫 실태조사를 한 데 이어 올 8월엔 인천, 울산, 충북, 전북 등 4개 광역 지자체에 고립은둔청년 지원기관인 청년미래센터를 개소했다. 2019년 광주광역시를 시작으로 여러 지자체에서도 고립은둔청년 지원 조례를 만들어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공공이 나서면 취약층을 발굴하는 역량을 높일 수 있고, 재원 측면에서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실제 정책이 가닿을 대상자 규모에 비해 정책 용어가 과장돼 있다”(이은애 이사장)는 평가도 있다. 민간이 하던 프로그램을 공공이 직접 하는 방식으로, 대량으로 획일적으로 제공한다면 ‘맞춤형 지원’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공공에서는 일상회복, 일경험, 일자리 연계, 심리상담 등 각 전문화된 지원기관을 청년의 상황에 맞게 찾아주는 허브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립은둔청년들의 복귀 성공까지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한데 성과를 중시하는 정부와 지자체들이 이런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도 나온다. 이정현 일하는학교 사무국장의 말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 취업 컨설팅 같은 지원을 많이 하지만 5회, 10회차 하고서는 그다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한 청년과 그렇지 않은 청년이 있어요. 앞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고립은둔청년을 ‘발굴’할 텐데, 발굴 다음에 장기적인 정책이 책임감 있게 지속해야 합니다. 단기간 지원 대상자 숫자만 늘리면 누군가는 재고립으로 가요. 멘토처럼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을 유지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합니다.” ■누구나 한때는 고립돼 있었다 고립은둔청년 54만명의 시대. 이들을 위한 일상회복과 관계맺기 등의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정부와 지자체까지 나서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들이 사회로 복귀할 통로는 결국 ‘일’이다. 청년의 노동력을 값싸게 쓰고 버리는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와 함께, ‘동료’로서 은둔고립청년에 대한 시각의 변화도 필요하다. 취업이나 시험공부를 위해 주변과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 적이 있는가. 우리는 사실 한 번쯤은 고립을 경험한 당사자다. “나는 운 좋게 견져졌을 뿐, 나 또한 장기간 고립될 수 있었다. 고립과 은둔에 내몰린 청년들이 이상한 이들이 아니”(김혜원 PIE나다운 청년들 대표)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고립은둔청년들은 잠수함 속 토끼다. 무한경쟁사회의 밑바닥에서 가장 먼저 산소 부족을 감지하고 비명을 지른 이들이다. 이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려는 노력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수행돼야 한다. “서로를 밟아서 더 넓은 집에 살고, 더 높은 빌딩으로 출근해 좋은 전망을 감상하며 일하는 삶이 성공이라고 우리는 가르치고 있잖아요. 이런 경로에서 배제되거나 실패하면서 은둔이 시작된 청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은둔에서 벗어나는 것은 과연 그런 삶에 다시 동참하는 일일까. 우리가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은애 씨즈 이사장의 말이다.
표지 이야기
[이주영의 연뮤 덕질기](20) 정상과 증상…상처 직시하기
[이주영의 연뮤 덕질기](20) 정상과 증상…상처 직시하기(2024. 02. 28 06:00)
2024. 02. 28 06:00 문화/과학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살아남은 자를 수선하기>,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 / 다아트 제공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유경오 ‘병은 소문내라’는 말이 있다. 치료법을 찾는 과정을 통해 같은 처지의 환우들과 동병상련을 나누기 위해서다. 치료는 병을 직시하고 통증과 진지하게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상’과 ‘증상’ 사이, ‘낙인’과 ‘표식’ 사이에서 방황한다. 증상을 인정하지 않고 환자라는 낙인을 두려워하며 작은 병을 큰 병으로 키우는 경우는 흔하다. 특히 마음과 뇌에 문제가 생기면 전문 병원을 찾는 것부터 큰 장벽이다. 조현병 엄마를 돌봐야 하는 고등학생 사라의 고백과 방황을 담은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원인진 작·최치언 연출)는 수많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조현병은 유전인가요? 치료하면 나아지나요? 완치도 가능한가요? 언뜻 보면 우문(愚問) 같지만 ‘병을 소문내지 않기로 한’ 대다수가 겪는 두려움의 실체다. <이상한 나라의, 사라>는 영상 이미지를 곁들인 렉처 퍼포먼스(Lecture Performance·강연 형식의 공연)를 통해 속 시원한 현답(賢答)을 내놓는다. 조현병 스펙트럼은 유전이라 확정할 수 없다. 환자 친족과 일반인 발병률은 비슷하다. 작품에서는 “사과가 반이나 남았네? 반밖에 안 남았네!”의 문제라고 비유한다. 치료하면 정상적인 생활도 가능하다. 혈압이나 당뇨처럼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에 방점이 있으며, 이 ‘관리’는 전적으로 환자 가족의 몫이다.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 / 공연제작소 작작 제공 뇌과학적·심리학적 접근이 필요한 우울증과 경계성 인격장애도 마찬가지다.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조윤지 작·연출, 김승민 작곡)는 이를 ‘간증쇼(병을 이겨낸 경험을 증언하듯 설명하고 시연하는 토크쇼)’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풀어냈다. 청소년 사라가 조현병 엄마 돌봄 노동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과는 반대로 작품 속 환자 키키는 방치된다. 통증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니 병은 날로 증폭된다. 정신병원에 6개월 입원하고 12가지 약을 먹어도 키키의 엄마는 감기 같은 거라고 축소한다. 스스로 병원을 찾아다니며 ‘경계성 인격 장애’ 진단을 받은 키키는 그동안 시달린 불안정, 섹스 과다, 난폭운전, 자해 등이 병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편안해진다. 키키가 설명하는 경계성 인격장애는 “정서적인 피부가 모두 벗겨져 화염방사기가 불을 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작품 속 앙상블들은 “아 따거 따거”를 반복하며 키키의 통증을 안무와 넘버로 감각화 한다. 관객들도 함께하는 통증 체험 구간이다. 작품은 변증법적 치료에 임하는 키키의 변화에 주목한다.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키키의 심신 상태는 넘버들에 담겼다. 악화 과정에서는 분노에 휩싸인 속사포 같은 랩으로, 호전될 때는 주위를 배려하고 이성을 유지하려는 명징함으로 표현된다. 연애를 시작하고 취직해 장기근속하며 일상을 유지하는 키키는 자해 충동이 일 때마다 얼음을 움켜쥔다. 무해한 통증으로 다스리는 대안적 치료 방법이다. 실제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인 키라 밴 겔더의 자전적 소설 <키라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를 원안으로 조윤지 연출이 개인적 경험을 녹여낸 작품이다. 마무리는 키키의 병을 인정한 엄마와의 관계 개선이다. 한판 거하게 싸우고 서로의 문제를 인정하며 화해하는 이 장면은 다른 손님들이 여러 팀 있는 레스토랑 장면으로 연출됐다. 키키와 엄마(혹은 아빠)의 언쟁에도 불구하고 옆 테이블 손님은 계속 코믹한 동작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관객이 지나치게 신파에 빠져들지 않도록 분산시키는 연극적 연출이다. 환자와 가족의 고통과 슬픔이 기반인 소재인 만큼 감정 몰입을 조절하고 객관화하도록 끌어올리는 연출은 관련 작품들에서 필수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 프로젝트그룹일다 KIM ILDA 제공 시한부 말기 암 아버지를 돌보는 작가 딸의 이야기를 다룬 <이상한 나라의 아빠>(강보영 작·이석준 연출·이주희 작곡) 역시 신파를 경계한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주인공인 아빠와 딸 외에 도도새, 체셔 고양이, 시계 토끼 등이 등장해 지리멸렬한 가족 간병 노동에 판타지를 더했다. 대화 하나 없던 가부장적 아버지의 시한부 삶을 딸이기에 돌봐야 하는 설정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간병하느라 꿈을 실현할 기회까지 갈아 넣은 딸의 고뇌는 암세포가 뇌로 전이돼 19세로 돌아간 아버지를 마주하면서 판타지로 거듭난다. 시인이 꿈이었던 청년 시절 아버지를 이해하면서 딸은 새로운 작품의 영감을 얻어 아버지의 청년 시절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시한부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 아버지의 꿈을 이해하고 발견한 기쁨에 주목한 작품이다. 슬픔을 승화하는 통증은 어떤 병증보다 아프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임수현 번역·민새롬 연출)는 친구들과 서핑하고 돌아오다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가 된 19세 시몽의 장기기증 24시간을 다룬다. 경중을 두지 않고 20명 가까운 등장인물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일종의 군상극(群像劇·ensemble cast)이다.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동명 소설을 1인극으로 각색했다. 뇌사에 이른 19세 청년 시몽의 역동하는 심장과 공여받는 50대 환자의 꺼져가는 심장, 아들의 체온을 느끼며 장기기증을 결정해야 했던 시몽 부모의 오열과 장기기증 코디네이터의 객관적이고 정중한 태도, 장기 적출하는 의사, 심장 이식하는 의사, 시몽의 친구들과 연인 등 100분 동안 펼쳐지는 수많은 관계자의 숨 가쁜 24시간을 1명의 배우가 표현하려면 어느 한 캐릭터의 감정에 길게 머물 수 없다. 관객은 분절적인 감정의 호흡을 감각으로 치환한다. 이 작품의 오프닝은 긴 암전 속 거대한 심장 박동 사운드와 공연장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파도 이미지다. 서퍼인 시몽이 탔을지도 모르는 파도 영상은 심장으로 대변되는 거대한 생명 에너지다. 아들의 뇌사를 인정하고 장기이식에 동의하는 부모의 아픔보다 거대하게 밀려오고 밀려 나가는 생명 에너지의 숭고함에 관객들은 말문이 막힌다. 오프닝과 엔딩의 긴 암전 속 온몸이 울리는듯한 심장 박동 소리는 관객들 스스로가 얼마나 귀한, 에너지 넘치는 심장 그 자체인지 자각하게 이끈다. 잔잔한 통증과 아픔, 병을 대하는 각자의 편협한 가치관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서로의 상처와 통증, 서로 다른 ‘표식’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존중하는 것은 척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다. 최근 다양한 미학적 실험을 통해 본격적인 마음 치유와 치료를 제안하는 무대극이 줄을 잇는 이유다.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2월 25일까지,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와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3월 3일까지.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3월 10일까지 상연한다.
이주영의 연뮤 덕질기

레이디경향(총 12 건 검색)

켜켜이 쌓여가는 상처가 바스락대는 가을, 시인 류근의 이야기
켜켜이 쌓여가는 상처가 바스락대는 가을, 시인 류근의 이야기
2013. 10. 09 17:15 화제
시인 류근은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 자체보다 풍문으로 더 자주 회자되던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그를 두고 천재라고, 누군가는 술주정뱅이라고, 누군가는 몇 십 억대 자산가라고 또 누군가는 애인이 백명이라고 했다. 하나같이 왜 그런 말들이 나왔을지 그 배경이 더 궁금한 설명들 속에서도 가장 솔깃했던 것은 ‘기형도의 서정과 성찰, 함민복의 상처와 눈물이 이종교배 돼 탄생한, 21세기에 불시착한 낭만주의자’라는 평가였다. 그리고 가을에 맞춰 발간된 그의 산문집 곳곳 펼쳐진 문장의 진경을 거닐다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부르는지를. 영혼을 담은, 쉽게 읽히는 시 ‘아니, 이런 개 같은 시인이 아직도 이 척박한 땅에 살아남아 있었다니. 나 언제든 그를 만나 무박 삼일 술을 마시며 먹을 치고 시를 읊고, 세상을 향해 우람한 뻑큐를 날리고 싶네.’ 아무리 고민해봐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는 결론이다. 류근(47)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그려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속 눈빛만으로는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가끔 들여다보는 그의 SNS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서너 번 읽어본 시집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단정하게 정리된 출판사용 프로필로는 별로 수긍할 수 없는, 이 시인이란 사람. 직접 만나기 전 가졌던 ‘뭔가 잘 잡히지 않는 사람’이란 느낌은 작별의 악수를 하고 돌아서 나올 때도 여전했다. 그리고 한 가지, 그와 각별한 사이라는 이외수 작가가 괜히 ‘절친’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만큼 명료하고 속 시원하게 시인을 잘 소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책 뒤표지에 나와 있는 이외수 작가의 소개사를 그대로 인용하기로 했다. 시인 스스로는 자신을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 칭한다. 웬 이상한 단어들의 나열인가 싶지만, 그가 노래한 시들과 그가 걸어온 궤적을 살펴보면 어렴풋이 뭔가 잡힐 것 같기도 하다. 일단,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시인 스스로 ‘통속’을 자처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어느 누구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모른 척 혹은 아닌 척하고 살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 그리고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알고 보면 얼마나 통속한 것인가. 그저 더 나쁘지 않은 혹은 더 불행하지 않은 처지와 비교해 겨우겨우 위안해가며 연명해 나가는 것이 대부분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그 통속적 삶과 세상에 대해 가장 멀리하려 하거나 섣부른 ‘감상’으로만 치환해 버리려 하는 것도 시 혹은 시인이 아니었나 싶다. 자고로 시인이라고 하면 멋있고 어려운 말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니까. 꿈에게조차 배반당하기 일쑤인 삼류 시인은 그런 위악과 위선을 가장 혐오한다고 했다. 허례허식이나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본질을 경도해버리는 자세에 대해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단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한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일단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사람들만 떠올려봐도 어떤 분야든 유연한 사람들이 훨씬 즐길 줄 알고 그래서 그런지 실력도 더 뛰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들은 자신을 일부러 꾸미거나 드러내려고 애쓰지도 않고 당연히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뭔가를 일부러 만들어내야만 하는 사람들이 괜히 무게를 잡고, 엄격하게 긴장을 조성해 진짜 본질을 외면하려고 한다. 사실 세상이 그렇게 근엄해야 할 이유는 조금도 없는데 말이다. “시 또한 마찬가지죠.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시가 돼야 합니다. 그동안은 시가 너무 어려운 세상이었어요. 시 쓰기도 어렵고, 그래서 시를 쓰는 사람들조차 서로의 시를 읽기 어렵고, 당연히 시를 읽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세상이었죠. 또 시대가 불행한 탓에 시인은 너무나 지사적인 사람이어야만 했고요. 시인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에요. 놀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죠. 저는 망가지는 법, 만만해지는 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언제나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낮은 시인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그는 읽히는 시를 택했다. 꾸미고 만들고 끌어다 붙이지 않는다. 통속한 일상의 풍경을 담아내고, 대신 그 안에서 빛나고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소리 내 술술 읽힐 수 있게 평소 쓰던 어투와 단어도 그대로 살린다. 물론, 그는 시가 영혼을 다루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영혼으로 쓰고 읽고 느끼길 바란다. 그가 강조하는 ‘쉬움’은 결코 하찮게 소비되고 가볍게 버려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쉽다는 것과 가벼운 것은 엄연히 다른 것. 진지함은 털어버리되, 더 깊이 다듬고 메워서 함께 나누고 소통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특히, 그는 페이스북에서 인기가 무척 높은 시인으로 잘 알려졌다. 페이스북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소통하기를 즐기는 그의 팔로어(Follow)는 한계치인 5천 명에 육박한다. 최근에는 그동안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모아 엮은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를 펴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자기 풍자, 자기 조롱 등 스스로 망가지고 아파하면서 내면을 드러내고 부끄러움을 공유하게 한다. 또한 성공과 행복 위주의 삶을 벗어나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으로 살아가는 자유에 대한 깨달음도 전한다. 김광석의 마지막 노래가 된,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 시라든가 시인라든가, 어쨌든 짐짓 까다롭게만 느껴져 아직도 경계를 풀지 못했던 이들도 아마 류근 시인의 이 ‘작품’에 얽힌 이야기만큼은 매우 흥미로워할 것이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 한 날들 /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파도가 이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떨리는 입술을 깨물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제목부터 가슴이 시려오는 고 김광석의 명곡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다. 김광석 본인도 평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라고 얘기하고 다닐 정도로 아꼈고, 그래서였는지 결국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가 됐다. 그리고 이 곡의 노랫말을 쓴 사람이 바로 류근 시인이다. “군 제대 직후에 등록금 좀 벌어보려고 썼던 거예요. 처음부터 김광석을 위한 가사를 쓴 게 아니라 다른 기획 음반을 위한 거였어요. 후배 한 명이 전인권 카페에서 기획실장을 했었는데, 노래 가사를 한번 써보라고 권하더라고요. 당시에 한 운동권 가수가 대중적인 노선을 걷기 위해 앨범을 기획하고 있었거든요. 닥치니까 막상 막막해서 처음에는 펜만 잡고 있다가 쓰다가 실패한 시까지 전부 끌어 모아서 막 쓰기 시작한 거예요. 하룻밤에 스물아홉 곡을 썼어요. 그런데 문제는 다 넘기고 나니까 음반사가 망해버렸대요.” 허공에 붕 떠버린 가사들이 아까워 속은 쓰렸지만, 달리 방법이 없을뿐더러 어차피 실패한 시라고 생각해서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까맣게 지워버린 채 지내던 어느 날, 가수 김광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찌어찌하여 떠돌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가사를 봤는데, 무척이나 마음에 드니 자기한테 주면 안 되겠냐고. 안 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당대 최고의 가객인데! 그리고 다시 며칠 뒤, 녹음실에 있는데 꼭 들려주고 싶으니 지금 좀 올 수 있겠냐고 물었단다. 직접 곡을 붙여서 들려주고 싶단다. 물론, 한달음에 달려갔다. “싱어송라이터라 김광석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을 다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내가 쓴 가사에 멜로디를 붙여서 그것도 본인 작업실에서 직접 들려주겠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워요! 녹음 스튜디오 안에 들어서서 딱 앉으니까 바로 기타를 치며 시작하는데…, 몹시 실망했어요. 제가 막연하게 그려봤던 느낌이랑 확연히 달랐거든요. 마음속으로 ‘진짜 이건 아닌데’를 수십 번 말했을 거예요. 저는 아마 약간 이문세 노래 풍의 잔잔한 걸 생각했거든요. 물론, 나중에 음반이 나오고 나서는 당연히 그 울림과 떨림에 반해버렸지만요. 지금도 뭐, 그 노래는 모든 사랑에 아픈 이들을 위한 성스러운 곡이죠.” 동시대를 함께했던 이들에게 김광석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자 상처였다. 무언가를 함께 공유했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상처적 체질’을 지닌 젊은 시인에게도 그랬다. 슬프고 아팠다. 세월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이름을 들어도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란 생각을 먼저 하기보다 “그렇게 되기 다섯 시간 전에 출연한 방송에서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불렀잖아요. 그래서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기자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저한테 전화를 걸어왔어요.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혹시 뭔가 아는 게 없냐고요”와 같은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먼저 꺼내놓을 수 있을 만큼이 됐다. 그렇게 시간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부식시켰다. 사람도, 감정도, 생각도,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들도. 사랑이란 건 그 자체만으로 이미 완성인데 다시 수식이 붙는 건 가짜라 외치던, 그것도 아프기까지 하다면 그건 정말 사랑이 아니라 읊조리던 청년도 어느새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택시비 받아 집에 오면서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사내가 됐음을. 그렇게 모두 여기까지 왔다. “노래 한 곡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절실하게 느낄 때가 많아요. 제가 등단하고 시집 내고 아무리 시 이야기를 해봐야 아무도 관심을 안 보이는데, 그 노랫말만 꺼내면 다들 자세를 고쳐 앉아요(웃음). 심지어 얼마 전에는 아들 학교 선생님께서 우연한 계기로 그걸 아시고 갑자기 본인 사연을 줄줄…. 그러고 보면 세상에 참 누구나 가슴속에 절절한 사랑 하나씩은 품고 사나 봐요.” 노래 한 곡이 가진 위대함을 절감하는 때는 또 있다. “이 노래 하나로 매달 술값을 벌어요. 현재 아무 노력 들이지 않고 버는 돈치곤 굉장히 큰 액수예요. 김광석씨가 살아 있을 때 저한테 얼른 저작권협회 가입부터 하라고 그랬었는데, 막상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진작 말 들을 걸 그랬다 생각이 들더군요. 1994년에 만든 곡을 2년 전에 등록했으니, 17년을 내버려뒀네요. 저는 뭐 한 달에 8천원 정도나 들어올까, 했었는데 지난달은 다른 때보다 많아서 60만원가량 받았어요. 20대 초반 우연히 썼던 가사가 누군가에 의해 생명력을 얻고, 또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지금 제게 이런 형태로 되돌아온다는 것이, 글쎄요. 뭐라 생각해야 할지.” 원래 인생이라는 게 생각지도 않았던 사건들이 점철되면서 그 변형을 따라가는 거라고 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생겨나고 또 그로 인해 파생되는 많은 것들이 나의 하루를 지탱하고 구성할 때가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둘러싼 미묘한 파장들 그리고 우리 사이에 쌓여 있던 무수한 감정들, 뭉치고 흩어지며 또다시 흘러가기를 반복하다가 어떤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을 만나게 되면 구체적인 모습으로 발현될 것이다. 그리고 당장이 될지, 먼 훗날이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지 않겠는가. 마치 지난 계절, 결정적 순간을 장식한 그 한 곡의 노래처럼 말이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김영길 ■장소 협찬 / 심플십(070-7780-9575)>
“이혼부부 자녀의 상처, 부모의 노력으로 보듬을 수 있습니다”
2010. 07. 01 17:10 화제
ㆍ서울가정법원 자녀 문제 솔루션 부부가 이혼할 때 가장 크게 상처받는 사람은 자녀다. 특히 어린 자녀에게 부모의 이혼은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길 수 있다. 이혼이 불가피하다면 아이의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가정법원에서는 자녀 문제 솔루션을 통해 이혼 자녀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혼 잘하는 법, 김윤정 공보판사에게 들어봤다. 자녀의 행복 생각하게 하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4년 이후 5년째 감소 추세이던 우리나라 이혼 건수가 올 들어 다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이혼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이혼은 이제 너무나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주변에서 이혼한 부부에 대해 심심찮게 들을 수 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익숙한 소재로 등장한다. 이혼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도 예전에 비해 느슨해졌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혼은 현실이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다. 특히 부모가 이혼했을 경우 미성년 자녀가 받는 고통은 씻기 힘든 상처가 된다. 서울가정법원은 올 1월부터 자녀 문제 솔루션 모임을 운영하며 이혼 가족 자녀들의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이다. “이혼을 결정한 부모들이 친권과 양육권, 재산 분배 등으로 다투는 사이 고통받는 자녀들을 위해 부모들에게 ‘이혼 잘하는 법’을 교육하고 있어요. 소송을 원만하게 마무리 짓는 방법을 찾고 소송 과정에서 생기는 자녀 문제를 돕고 있고요. 법리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해당 재판부가 솔루션 모임에 의뢰해 자녀 양육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전문 상담원의 맞춤 상담이 진행됩니다.” 이혼 과정에 있는 부부에게 재판부의 교육 결정이 내려지면 부부는 상담을 거쳐 이혼에 대해 자녀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정서적 안정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배우게 된다. 기존의 이혼 재판이 재결합 가능성을 중시하는 반면 자녀 문제 솔루션은 이혼이 불가피한 경우 어떻게 하면 자녀가 받을 마음의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둔다. 자녀의 친권자·양육자 지정 문제와 면접교섭권 문제, 양육비 지급 문제 등 이혼 후 자녀와의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문제들을 설명하고 양육친과 비양육친 간에 자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양육 수첩도 제공한다. 면접교섭권은 이혼 후 자식을 양육하지 않는 부모가 자식을 만나거나 전화 혹은 편지 등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면접교섭권이 굉장히 중요해요. 예전에는 부모의 권리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이들의 권리로 보고 있어요. 부모는 헤어졌지만 아이는 엄마 아빠를 만나볼 권리가 있죠. 그런데 아이를 만나는 것조차 하지 않으려는 부모가 있어요. 그냥 양육비만 주고 알아서 키우라는 식이죠. 특히 아이가 어리고 비양육권자가 재혼했을 경우 그 가정에 불화의 불씨가 될 수도 있거든요. 몇 시간 밖에서 보는 건 괜찮아도 집에 데려와서 1박 2일 재우는건 싫어해요. 부모 교육을 통해 면접교섭의 중요성을 알리고 부모의 권리가 아닌 자식의 권리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고 있어요.” 솔루션 모임에 회부되는 것은 재판에서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가 엄마와 아빠 둘 다 아이 양육을 거부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는 양육자와 친권자를 지정해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에 솔루션에 회부해 자녀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이 경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법정 조사관실로 불러내기보다는 출장 상담을 나가 미술치료와 놀이치료 등 심리치료를 진행한다. 자녀들이 면접교섭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회부돼 부모 교육 결정이 내려진다. 청소년의 경우 스스로 면접교섭을 거부하기도 한다. 현재 키워주는 부모에 대한 충실감과 다른쪽 부모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아무래도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부부일수록, 아이가 어릴수록 협조를 잘해주세요. 아이들이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다 키웠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교육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떨어져요.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설득 과정에서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해도 이제까지 거부하신 분은 한 분도 없어요. 어느 부모가 자신들로 인해 자식이 상처받길 바라겠어요. 배우자가 미워서 이혼을 해도 자식들은 미워할 수 없는 게 부모 마음이죠.” 배우자 역할은 끝나지만 부모 역할은 끝나지 않는다 다섯 살과 두 살,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김윤정 판사는 이혼 가정의 자녀들을 만날 때면 가슴 아플 때가 많다. 어린아이들은 면역력이 떨어져 병치레가 잦아지기도 한다. “면접교섭을 할 때 아이가 아프다는 핑계로 아이를 아빠에게 안 보여주려는 엄마들이 많아요. 환경이 바뀌는데 면역력이 약한 아이가 적응하기 힘든 건 당연한 거죠. 사춘기 여자아이들의 경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기도 하고요. 조사를 할 때 말을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리면서 연필로 자기 의사를 써요. 누구랑 살고 싶냐고 물어도 그냥 다 같이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볼 때면 무척 가슴이 아프죠. 부모와 관련된 예민한 질문은 특히 신중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만든 것이 미성년 자녀에 대한 의견 청취 지침서예요.” 현재 가사소송규칙에는 ‘자녀가 만 15세 이상일 때는 자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의견 청취 지침을 통해 15세 미만 자녀들의 의사를 파악할 수 있게 되면 이혼 과정에서 소외되어온 미성년 자녀들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가정법원 공보판사로 부모 교육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부부와 부모 관계에 대해 배우는 것도 많다고 한다. “이혼한 부부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게 좋은데 그게 1회에 그쳐서는 안 돼요. 엄마 아빠로서 너를 계속 사랑하고 또 너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수시로 말해줘야 아이가 빨리 안정을 찾는다고 해요. 생각해보니 저도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더라고요. 아이들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해주게 됐어요.” 어느 부부도 배우자에게 100% 만족하는 경우는 없다. 수많은 이혼 사건을 담당하며 반성도 많이 한다. 그에게 이혼 과정에 있는 부부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우선 부부의 문제와 부모의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현재 문제에만 집중하세요. 주로 재산 분할 과정에서 많이 싸우는데 예전 일을 꺼내기 시작하면 합의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위자료 부분, 최소한 자녀 양육비에 관련된 부분은 법원에 맡기기보다는 부부가 합의하에 결정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법원에서 명령하면 거부감 때문에 제대로 이행이 안 될 수 있거든요. 양육비는 배우자를 위한 돈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돈이라는 걸 인식하셔야 해요. 면접교섭에 관련해서는 주기나 일정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의논하세요. 횟수를 정해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를 어디에서 어디로 데려가는지 구체적으로 협의를 하시면 나중에 분쟁이 생기지 않습니다. 명절은 번갈아 가면서 지내고 방학에는 비양육자 부모와 여행을 가는 것도 좋고요. 재판부의 권유를 믿고 따라와달라는 말도 꼭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이혼은 고통스러운 과정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고통을 줄이고 상처를 최소화할 방법은 분명히 있다. 자녀를 위해, 스스로와 배우자를 위해 어떤 길을 가는지는 부부의 노력에 달렸다. <■ 글 / 노정연 기자 ■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채정안의 고백 “상처 때문에 사랑이 두려운 건 사실이지만...”
채정안의 고백 “상처 때문에 사랑이 두려운 건 사실이지만...”
2009. 10. 30 15:58 연예
여배우가 솔직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구설수뿐이다. 그녀도 안다. 내숭 좀 떨고 우아한 척 웃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것을. 그러나 상관하지 않는다. 채정안은 할 말은 하고 마는 솔직함이 천성인 걸 어쩌겠는가. 여배우가 말하기 꺼리는 두 가지 터부 자고로 여배우는 사랑을 말해선 안 되고, 성형을 말해선 안 된다. 시대가 ‘프리’해졌다고는 하나 정작 성형을 고백하는 사람보다는 하지 않는 사람이 많으며, 고백을 해서 좋은 소리 듣는 사람, 별로 없다. 사랑도 그렇다. 여배우는 연애에 대해서도, 이별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는 것이 미덕이다. 그러나 채정안은 거침이 없다. 어떤 질문에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말을 아끼지 못한다. 청순한 얼굴과 털털하게 나오는 입담 사이의 ‘틈’이 채정안만의 매력이다. “성형 의혹이요? 저 정말 억울해요. 전 제작발표회와 안 맞는 것 같아요. 실제로 얼굴은 야위어 가는데 사진만 찍으면 부풀어 보여요. 영화 ‘순정만화’ 때 깨달았어요. 다른 여배우들은 사진 촬영을 할 때나 인터뷰를 할 때도 각도를 꼿꼿하게 유지하더라고요. 그래서 예쁘게 나오는 것 같은데 저는 너무 자유분방하게 웃으며 얘기하다 보니 얼굴이 이상해 보이는 것 같아요.” 여배우라면 끊임없이 관리를 해야 한다는 점에는 그녀도 동의한다. 그녀도 관리를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전에는 타고난 피부로 버틸 만했어요. 이제는 피부도 예전 같지 않아요. 피부 관리 많이 받아요. 어제도 오늘 인터뷰를 위해 열심히 받았어요. 돈과 시간 많이 들이고 있어요(웃음).” 그녀는 여배우의 성형은 자기관리 중 하나라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나 캐릭터를 잃을 만큼의 과도한 성형은 과유불급이다. “제 경우 다른 여배우들보다 사람들의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시청자들을 실망시키는 과도한 시술은 절대 하지 않을 거예요.” 채정안은 ‘사랑’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담백하게 이야기했다. “과거의 아픔은 잊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가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거침없던 그녀도 “조금 두려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상처가 있어서 사랑이 두려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상태로 머물고 싶지는 않아요. 항상 사랑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좋은 사람이 다가오면 놓치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사랑을 하며 살고 싶어요.” 그녀는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클럽에서 겪은 황당한 경험담을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한다. “얼마 전 오랜만에 클럽에 갔어요. 근데 멋진 옷을 차려입은 남자들은 모두 게이였어요. 큰 충격이었죠. 요즘 잘생긴 남자들은 남자를 좋아하는 건가요? 따뜻하고 카리스마 있는 똑똑한 남자가 좋아요.” 채정안의 인터뷰는 시쳇말로 ‘빵빵 터졌다’. 그녀가 말하기 곤란한 질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연기 활동도 인터뷰만큼 ‘빵빵’ 대박나길 바란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부부싸움 현명하게 하는 법]‘상처받은 자녀들’, 그 해결법은?
2009. 09. 11 15:14 재테크
ㆍ드라마로 보는 가정 문제 드라마는 우리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 극의 재미를 위해 극단적으로 내용을 전개하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것을 보며 공감하고 분노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요즘 드라마 속의 ‘자녀들’은 철없는 어른들의 싸움 때문에 상처받고 괴로워한다. 인기 드라마들의 사례를 거울 삼아 우리를 되돌아보자. 사례 1 MBC-TV 일일드라마 ‘밥 줘’ 배우자의 불륜과 이혼을 아이에게 설명하는 법 조영란(하희라)은 남편 정선우(김성택)와 맞선을 보고 일주일 만에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이 좀 무뚝뚝할 뿐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어 나름 유한마담으로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이 결혼 전에 사귀다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 여자(최수린)를 다시 만난 것. 미안하다고 싹싹 빌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뻔뻔하기 그지없다. 이혼은 하기 싫고 불륜 상대와도 헤어질 생각이 없다. 치열한 부부싸움의 나날들. 가장 큰 문제는 중학교 1학년 딸인 은지다. 원래 예민한 성격에다 사춘기라 점점 반항심이 느는 것 같다. 이런 경우 아이에게 아빠의 불륜과 부모의 이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까? 해결 아이에게 가정 불화나 이혼을 이야기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 가정 불화가 아이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과 두 번째, 부모가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절대 버림받을 일이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알려주는 일이다. 위의 경우 아이가 사춘기라 하더라도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나이라 다행이다. 요즘 아이들은 성숙해서 차근차근 부모의 입장을 솔직히 말하면 납득한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이들은 배우자가 갖는 서로에 대한 이해도보다 두 사람의 장단점을 더 잘 알고 있다. 남편의 불륜이 괘씸하다고 해서 아이에게 편 가르듯 남편 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 “엄마, 아빠가 서로 생각과 성격이 달라서 헤어지는 거야” 정도로만 이야기하자. 덧붙여 일반 가정의 경우 자녀가 혹여 상처를 받을까봐 부부싸움에 대해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드러내고 싸운 후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도 교육의 하나다. 왜 싸웠는지, 어떻게 화해했는지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는 해결 방법을 자연히 터득할 수 있다. 완벽한 부부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갈등을 억지로 차단하면 아이는 갈등 해결법을 배우지 못해 아주 나약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부부싸움을 해도 아이의 수준에 맞는 표현법을 써서 설명하고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사례 2 KBS-2TV 수목드라마 「파트너」 남편의 폭력으로 아내가 우울증과 무기력에 빠졌을 때 남편(김갑수)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존경받는 정치가다. 표면적으로는 우울증과 충동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아내(김정난)에게 헌신적인 남편이다. 그러나 실상은 아내를 남몰래 상습 폭행해왔고 그로 인해 아내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 아내는 폭행으로 몸에 상처가 나면 다 나을 때까지 방에 갇혀 지내야 할 정도다. 남편은 겉으로는 자애로운 척하며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만 속으로는 차갑고 독선적인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영향으로 아이까지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무기력에 빠져 아이를 전혀 돌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미 부모에 대한 불신이 생긴 것 같다. 하루 종일 혼자 지내고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좋을까? 해결 사태가 매우 심각한 편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엄마가 빨리 치료를 받는 것이다. 부모가 무기력이나 우울감, 분노에 차 있으면 아이를 돌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는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이 거절당했다고 느낄 것이다. 자신은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해 자존감이 상실된 채 성장한다. 그 후로도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갈 수 있다. 아이에게 지금의 상황을 이해시키는 것이 절실하다. “엄마는 너를 사랑하지만 돌봐줄 경황이 없단다. 엄마가 너무 힘든 일이 있어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그렇지만 너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어. 잘 극복할 테니 엄마에게 시간을 좀 주렴” 하고 차근차근 이야기해준다. 힘들지만 이 상황이 결코 너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강조한다. 아이는 부모 사이가 나쁠 때 자연스럽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위의 경우처럼 아빠의 잘못으로 가정이 깨진 경우 엄마는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하소연할 수도 있다. 그럼 아이는 ‘엄마가 불쌍해. 내가 뭘 해야 하지?’에 대해 몰두하게 된다. 불쌍한 엄마를 도와주고 실망시키지 않기 위한 삶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며 성장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사회에 나가서도 남의 눈치를 자주 보며 갈등을 겪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게 된다. 만약 아이가 어리다면 일관성을 갖고 있는 양육자에게 보내는 것도 생각해보자.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만 되면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설명하면 이해한다. 여기서 중요한 또 한 가지가 ‘부모와의 애착관계 정도’다. ‘애착관계’란 3세 안에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인지하며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이 관계가 잘 형성된 경우에는 가정에 문제가 일어나도 설명을 하면 아이가 상처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면 작은 위기에도 아이는 불안정해지고 곧 상처를 받는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부모와 아이가 같이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애착관계를 형성해주는 놀이를 하거나 미술, 상담 등으로 심리치료를 한다. 사례 3 SBS-TV 일일드라마 「두 아내」 재혼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아이에게 이해시키는 법 윤영희(김지영)은 결혼 10년 만에 집도 장만하고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아등바등 살림을 할 때 불행히도 남편(김호진)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던 것. 부부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이혼을 하고 말았다. 아이를 키우며 혼자 살게 된 윤영희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 힘들 때마다 곁에서 위로를 해주던 남자다. 어린 시절 유년기를 함께 보낸 사이라 마음을 터놓고 지낸다. 다행히 아들 한별이도 잘 따른다. 그런데 재혼에 대해 아들에게 말하니 의외로 냉담하다. 잘 지내던 재혼 상대남과 아이의 사이도 서먹해졌다. 어쩌면 좋을까? 해결 재혼을 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은 전 결혼에 관한 관계를 모두 정리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 없이 새 출발을 하면 쌓인 문제들을 재혼 상대에게 투과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혼 과정에서 양육권의 결정이나 양육권을 갖지 않은 부모와 어떤 방법으로 관계를 이어나갈지에 대한 방법을 아이에게 물어보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좋다.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이혼과 이별에 대한 충격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재혼을 하려면 상대방과 서로의 자녀 양육에 관한 완벽한 합의를 가진 후에 해야 한다. 합의가 없이 시작하면 생활방식과 가치관의 벽을 느끼고 서로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럼 자녀들도 아버지와 어머니 편이 갈려 융합이 어려워진다. 갈등이 발생하면 자기 자식만 끼고 돌거나 반대로 자존감이 낮은 성향의 부모는 강박관념으로 상대방의 아이를 과도하게 케어하고 자기 자식을 내버려두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재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자녀 교육관과 양육 방법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각자 맡은 역할을 확실히 해야 한다. 사례 4 MBC-TV 주말드라마 「잘했군, 잘했어」 사생아(편부모) 문제를 고민하는 아이에게 설명해주는 법 강주(채림)는 미혼 시절 첫사랑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았다. 남자는 떠나가고 혼자 아이를 키웠다. 딸 별이는 예쁘고 명랑하게 자라고 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에게 사생아라고 놀림받지 않을까? “우리 아빠는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를 평범한 집 아이처럼 구김 없이 키우고 싶다. 해결 편부모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런 고민을 갖고 상담소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양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에게 편부모가 된 상황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하면 아이도 힘을 얻고, 반대로 엄마가 죄지은 듯 움츠러들면 아이도 당당해지지 못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기준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혼자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요즘은 ‘한 부모 가정’ 모임이나 카페가 많다. 그곳에서 고민을 상담하거나 도움을 받아도 좋다. 덧붙여 한 부모 양육에서 나타나는 좋지 않은 특징이 하나 있는데 늘 부족하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경우가 많다. 과잉보호는 아이를 나약하고 의존적으로 만들어 점점 양육하기가 힘들어진다. 부모는 아이 앞에서 언제나 ‘당당함’을 잃지 말자.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이주석 ■도움말 / 한혜욱 교수(김영애 가족치료연구소) ■소품 협찬 / 김혜연(꽁지별, blog.naver.com/mynemi)
부부싸움 현명하게 하는 법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