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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102 건 검색)

‘51년 향토기업’ 선양소주는 어쩌다 거리 읍소까지 하게 됐나
‘51년 향토기업’ 선양소주는 어쩌다 거리 읍소까지 하게 됐나
2024. 08. 29 11:14지역
.... 전라도 보해, 경상도 무학·대선·금복주 등 향토 소주회사들의 ‘군웅할거 시대’에는 선양소주의 충청권 소주시장 점유율이 60%를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주류시장 침체와...
한중 경제무역 교류 확대 위해 ‘2024 선양-서울 교류의 장’ 열려
한중 경제무역 교류 확대 위해 ‘2024 선양-서울 교류의 장’ 열려
2024. 04. 25 14:25경제
... 넘었다. 개막식 직후 참석자들은 행사의 핵심인 선양 특성화 상품전을 참관했다. 이번 전시는 최근 선양시가 최근 들어 개최한 최초 해외 종합전시로서 첨단기계장비, 바이오 의약, 신재생에너지...
북한 고려항공, 3년 11개월만에 평양∼중국 선양 운항 재개
북한 고려항공, 3년 11개월만에 평양∼중국 선양 운항 재개
2023. 12. 13 19:01정치
... 다목적 대형 수송기 3대가 중국산 의약품을 실어 가기 위해 선양에 오간 적은 있지만, 평양∼선양 간 여객기는 국경 봉쇄 이후 운항된 적이 없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소식통들은 “고려항공이 오는...
[포토뉴스] 노 저으며 둥실둥실…‘선양소주’ 첫 수도권 팝업스토어
[포토뉴스] 노 저으며 둥실둥실…‘선양소주’ 첫 수도권 팝업스토어
2023. 12. 11 21:49경제
대전·충청지역 주류업체 맥키스컴퍼니는 서울 성수동에서 ‘선양’을 주제로 3주간 열었던 첫 수도권 팝업스토어의 누적 방문객이 1만7800명을 기록했다고 11일 밝혔다. 맥키스컴퍼니가 창립 50주년을...

스포츠경향(총 27 건 검색)

[설특집] 이영애·수지·뉴진스·김태리…다시보는 ‘국위선양’ 한복 화보
[설특집] 이영애·수지·뉴진스·김태리…다시보는 ‘국위선양’ 한복 화보
2025. 01. 26 10:50 연예
왼쪽부터 배우 이영애, 수지, 뉴진스 민지. 우리의 전통 옷 한복은 글로벌 무대에서 동양의 미를 전할 수 있는 확실한 상징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머금은 우아한 선과 색이 한류 스타들과 만나면, 그것 자체가 ‘국위선양’이다. 2025년 설날을 맞아 한복의 다채로운 매력을 완벽히 담아낸 스타들의 모습을 함께 만나보자. 이영애, 클라스가 다르다 배우 이영애. 마리끌레르. 배우 이영애. 마리끌레르. 이영애는 한복이 주는 우아함을 극대화시키는 배우 중 하나다. 과거 패션지 마리끌레르와 함께찍은 한복 화보는 수년이 지났어도 레전드로 화자된다. 이영애는 한복이 잘 어울리는 만큼 드라마 ‘장금이’의 글로벌 히트 이후에도 꾸준히 대중의 사극 출연 요청이 쇄도하는 배우다. 지난해 8월에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광고 촬영 중 한복을 입고 있는 사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이영애의 고즈넉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목구비가 한복과 완벽히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같은 느낌을 준다. 단아하면 수지, 수지 하면 단아 가수 겸 배우 수지. 엘르 코리아 제공. 수지는 한복을 입었을 때 자신의 단아하고 깔끔한 미모를 한껏 발산하는 배우다. 영화 ‘도리화가’ 홍보를 위해 2015년 ‘퍼스트룩’과 함께한 한복 화보는 레전드로 꼽히며, 수많은 예비신부들의 로망이 되어왔다. 가수 겸 배우 수지가 2015년 찍은 퍼스트룩 한복화보. 이후 거의 10년 만에 수지는 또 한번 한복 화보로 레전드를 경신했다. 그가 지난해 엘르 코리아가 함께한 한복 화보는 한복의 섬세하고 정갈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특유의 화려한 개성을 살렸다는 평을 받았다. 1992년 ‘엘르’ 창간 이래 한복 화보가 처음으로 커버를 장식할 만큼 수지의 아우라는 독보적이다. 수지는 당시 인터뷰에서 “여러 디자이너분이 저를 위해 제작한 한복을 입으니 좀 더 한복과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한복을 널리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라며 촬영 소감을 전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뉴진스 보그 제공. 뉴진스는 최근 자신들만의 트렌디하고 독특함으로 한복을 소화했다. 지난달 18일 뉴진스는 새로 개설한 SNS를 통해 보그와 함께한 커버 화보를 공개했다. 이번 화보는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와 분쟁 관계에 있는 어도어 전 대표 민희진이 직접 디렉팅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또 뉴진스라는 그룹명이 아닌 멤버 개개인의 본명이 영어로 적혀있어 눈길을 끌었다. 화보 속 뉴진스는 각자만의 독보적인 분위기로 한복을 소화해 개성을 살렸다.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트렌디함이 공존하는 이번 화보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매력을 발산한다. 2023년 뉴진스 한복 화보. 어도어 제공 2023년 뉴진스 한복 화보. 어도어 제공 뉴진스는 데뷔 당시 명절 한복 화보에 큰 힘을 실어 눈길을 끈 아이돌이다. 형식적으로 명절 한복 화보를 찍던 여느 아이돌과 달리 고퀄리티의 한복 화보를 공개하며 글로벌 팬들을 겨냥하는 차별화를 꾀했고, 당시 활동하던 아이돌 사이에서 독보적인 ‘한복 아이돌’ 타이틀을 꿰찰 수 있게 됐다. 이후에도 매년 명절이 되면 팬들은 이들의 한복 화보를 기다리게 됐다. 김태리, 한 폭의 수묵화 마리끌레르 제공. 김태리는 ‘정년이’ 속 고전적 이미지를 한복 화보로 이어갔다. 지난달 18일엔 배우 김태리와 마리끌레르가 함께한 ‘2024 한복웨이브 프로젝트’의 커버가 공개됐다. 화보 속 김태리는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며 한복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그는 고풍스러운 한복의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매력으로 소화해 신비로운 무드를 완성했다. 마리끌레르 제공. 해당 화보는 ‘한복분야 한류연계 협업콘텐츠 기획·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김태리가 모델로 참여할 뿐만 아니라 직접 한복 디자인 기획과 개발에 참여했다. 김태리의 한복 화보는 지난달 24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에 있는 전광판 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 스타디움 코마르탱의 대형 전광판에 공개되며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렸다.
박나래, 국위선양…독도 알린다
박나래, 국위선양…독도 알린다
2024. 11. 21 08:34 연예
서경덕 교수와 박나래. 방송인 박나래가 독도를 알린다. 박나래는 ‘독도 지킴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함께 독도의 대표 생물인 괭이갈매기와 독도 새우를 국내외에 알리는 다국어 영상을 21일 공개했다. 이번 4분 분량의 영상은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원장 이종수)과 공동 제작했으며, 한국어 및 영어로 공개되어 국내외 누리꾼에게 널리 전파중이다. 영상의 주요 내용은 독도를 대표하는 괭이갈매기와 지난 2017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방한 당시 만찬으로 화제가 된 독도 새우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04년 독도에서 신종 미생물이 발견되어 ‘독도’라는 이름의 학명으로 국제 학계에 발표되고, 이 중 한 종은 우주정거장에서 연구가 진행된 사실을 알려준다. 영상을 기획한 서 교수는 “독도의 상징이었던 강치, 삽살개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영상”이라며 “독도를 대표하는 생물을 시리즈로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유튜브 뿐만 아니라 각 종 SNS로도 전파중이며, 전 세계 주요 한인 및 유학생 커뮤니티에도 영상을 공유해 꾸준히 퍼트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어 내레이션을 맡은 박나래는 “독도의 괭이갈매기와 독도 새우를 직접 소개하게 돼 기쁘며, 국내외 많은 누리꾼이 시청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경상북도 독도 문화산업 콘텐츠 홍보대사로 활동중인 서경덕 교수는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과 함께 독도 강치에 대한 애니메이션을 내년에 선보일 예정이다.
‘국위선양 3콤보’ 오상욱, 韓 단복 입은 스틸컷 공개 (유퀴즈)
‘국위선양 3콤보’ 오상욱, 韓 단복 입은 스틸컷 공개 (유퀴즈)
2024. 08. 09 16:41 연예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 측이 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오상욱의 모습을 공개했다. 9일 ‘유퀴즈’ 측은 공식 계정에 “실력 국위선양 비주얼 국위선양 입담 국위선양 오상욱 국위선양”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여러 장을 게재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사진 속 오상욱은 2024 파리올림픽 대한민국 단복을 입고 펜싱을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어 스튜디오에서 토크쇼를 하는 모습도 담겼다. 유퀴즈 측은 “오상욱 보유국의 국민으로서 유퀴즈는 자랑스러운 오상욱 앞에 오상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마음을 바쳐 응원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주접 멘트를 작성해 눈길을 끌었다. 끝으로 “파리올림픽 대한민국 첫 금메달리스트 오상욱 자기님! 펜싱 세계 랭킹 1위 오상욱 자기님과 함께하는 영광의 유퀴즈 타임”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오상욱은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펜싱 선수 최초로 주요 국제 대회 개인전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SNS는 지금] ‘♥고우림’ 김연아, 파리 빛낸 국위선양급 미모
[SNS는 지금] ‘♥고우림’ 김연아, 파리 빛낸 국위선양급 미모
2024. 07. 24 16:03 연예
김연아. SNS 캡처 김연아가 파리에서의 일상을 공개했다. 지난 23일 김연아는 자신의 SNS 계정에 “안녀엉”이라는 멘트와 함께 사진 여러 장을 올렸다. 사진 속 김연아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사진을 본 누리꾼들은 “신랑은 있으시니까 신부는 필요 없으신가요?”, “내 유일한 스타, 연아퀸”, “파리는 좋겠다. 김연아가 와서” 등의 댓글을 달았다. 한편 김연아는 지난 2018년 포레스텔라 소속 고우림과 만나 3년 간 연애 끝 2022년 10월 22일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김연아. SNS 캡처 김연아. SNS 캡처 김연아. SNS 캡처 김연아. SNS 캡처 김연아. SNS 캡처
SNS는 지금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방구석 극장전]국위선양 너머 스포츠의 가치
[방구석 극장전]국위선양 너머 스포츠의 가치(2021. 08. 13 14:57)
2021. 08. 13 14:57 문화/과학
말 많던 2020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1년 연기 후 결국 무산될 것으로 점쳤지만, 걸린 게 많은 IOC와 일본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결국 관중 없이 치러졌다. 코로나19 비상사태가 확산됐음에도 큰 사건사고는 없었지만, 일본의 정치적 편의를 봐준 것인지 히로시마 피폭 헌화나 욱일기 도안 은근슬쩍 사용 등 ‘정치와의 분리’ 약속은 상당 부분 훼손됐다. 폐막식의 아이누 전통음악 연출도 러시아와 북방영토 문제 환기가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반면 군부 쿠데타가 진행 중인 미얀마의 민주화와 인권은 언급되지 못했다. 올림픽이 출발 정신보다는 강대국의 국위 과시와 스폰서 이해관계에 더 충실하다는 자조가 확인된 셈이다. 넷플릭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과도한 국가주의, 속칭 ‘국뽕’ 자극에 활용된다는 비판을 들어온 한국의 올림픽 열풍은 이번에는 달랐다. 순위 경쟁보다는 젊은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 인간승리에 박수를 보냈고 아쉬운 패배에도 호응이 인색하지 않았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된 동시에 준비가 부족했던 모 방송사 개막식 중계 논란은 오히려 지구촌 상식을 넓히는 계기로 작용했고, 이번 올림픽 여자배구 8강에서 맞붙은 터키 산불재해 관련 묘목 기부 캠페인은 흐뭇한 풍경을 연출했다. 윗선은 몰라도 국민 대부분의 인식은 이제 합리적 근대에 도달한 셈이다. 넷플릭스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단편 다큐멘터리 중에는 국가주의나 상업성에 얽매이지 않는 스포츠 소재 작품이 적지 않다.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는 멕시코 치와와주 울창한 숲속에 사는 원주민 소녀 로레나와 그 가족 이야기다. 온 가족이 육상선수인 로레나는 자국은 물론 해외에도 알려진 익스트림 마라토너다. 수백㎞ 산길 완주 코스를 그는 전통의상 치마 차림에 샌들을 신고 달린다. 정상급 선수이기에 러닝화 스폰서가 붙지만 로레나는 맨발에 샌들이 오히려 편하다며 신지 않는다. 시합이 끝나면 그는 고향의 계곡과 언덕을 뛰며 자급자족하는 전통적 삶에 흠뻑 빠진다. 달리기란 로레나와 가족에겐 자아실현의 일부일 뿐이다. <작전명 서핑>은 퇴역군인들이 치유 프로그램으로 서핑을 배우는 과정을 담는다. 지난 20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전쟁 사상자는 수치로는 과거 베트남전쟁에 비해 적지만 후유증은 그를 능가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한 이혼이나 사건사고가 엄청나 큰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군부대가 있는 도시는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정도다. 상이군인들이 중력에서 자유로운 서핑에 도전하는 순간만큼은 일상을 옥죄던 피해의식에서 해방된다. 비장애인보다 몇 배 더 힘든 과정이기에 부정적 생각에 빠질 틈이 없다. 스포츠의 순기능이 엘리트 체육이 아니라 장애인 재활에서 발견되는 순간이다. 도쿄올림픽은 끝났지만 8월 24일부터 패럴림픽이 열린다. 올림픽 폐막식 생중계 중 KBS 아나운서가 ‘비장애인 올림픽의 종료’를 언급할 만큼 더딘 것 같지만 우리 사회 의식 수준은 올라가고 있다. 올림픽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스포츠 정신의 순기능과 감동만은 여전히 ‘살아 있다’.
방구석 극장전
[스포츠 돋보기]‘체육을 통한 국위선양’ 옛날 얘기 속으로(2020. 09. 11 14:31)
2020. 09. 11 14:31 스포츠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지난 8월 4일 통과됐다. 개정안 중 하나가 국민체육진흥법 목적에서 ‘국위선양’이라는 단어를 삭제한 것이다. 국위선양 문구 때문에 메달·성적주의에 치중한 정책이 정당화됐다는 게 이유였다. 1962년 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에 1982년 ‘체육을 통한 국위선양’이 추가됐다. 당시 한국은 변방에 불과했고, 국가를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우리 존재를 알렸고, 국민 자긍심도 높아졌다. 그때 우리는 대부분 ‘국뽕’이었다. 고 최숙현 법안으로 불리는 국민체육진흥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지난 8월 4일 국회에서 통과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은 굳이 한국을 알릴 필요가 없다. 이전 선수들이 애국심이 상대적으로 강했다면 지금은 개인 성취욕이 훨씬 앞선다. 올림픽·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연봉도 더 받고 외국 진출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 함께 기뻐하고 뿌듯해한다. 박세리가 US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박찬호가 호투했을 때, 박지성이 펄펄 날 때 그랬다. 손흥민이 골을 넣을 때, 류현진이 승리투수가 될 때도 그렇다. 그들이 국위선양을 했기에 우리가 기뻐했나. 아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자신감, 자긍심, 최소한 순간적 뿌듯함을 줬기 때문이다. 답답하고 괴로울 때 기쁨은 더 컸다.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라는 책이 지난 3월 출간됐다. 세계적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이 60년 안팎 인간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정리했다. 케이건은 ‘스키마(schema)’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했다. 스키마는 어떤 사건·사물에 대해서 인간이 선험적으로 사고하는 틀을 뜻한다. 같은 사물이라도 스키마는 다르다. 기차 사고를 목격한 사람에게 기차는 두려운 존재인 반면 여행가에게 희망이다. 다리는 누군가에는 이별하는 장소로 인식되고, 누군가에는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는 곳으로 기억된다. 즉 스키마는 객관적 실재가 아닌 기억 속 인식 체계다. 스키마를 사실로 착각해 스키마에 맞춰 논리를 방어하거나 합리화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지금 50·60대 소위 사회지도층은 과거 자신들이 경험한 학교운동부, 운동선수에 대해 어떤 스키마를 갖고 있을까. 소위 ‘돌대가리’들이 운동으로 대학에 가려고 모인 집단? 공부는 안 하고 엎드려 잠만 자는 지진아? 술·담배를 하고 싸움질이나 일삼은 문제아? 물론 과거 운동부가 그런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공부를 잘하는 운동선수도 적잖다. 일반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잔다. 음주·흡연도 일반 학생들이 더 많이 한다. 현장의 변화를 모르고 과거 스키마에만 사로잡히면 안 되는 이유다. 국위선양은 원래 ‘목표’가 아니라 ‘부산물’이다. 선수가 잘했기 때문에 메달을 딴 것이고, 그래서 국가 이름이 더 거론될 뿐이다. 요즘 운동선수의 뇌리에는 국가 공헌, 팀 발전보다는 개인 성공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게 불굴의 의지, 포기를 모르는 투혼으로 발현된 것일 뿐, 국위선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면서까지 초인적 힘을 낸 게 아니다. 국위선양이 빠지면서 들어간 문구는 ‘공정한 스포츠 정신으로 체육인 인권 보호’, ‘국민 행복과 자긍심을 높여 건강한 공동체 실현’ 등이다. 법 개정에 앞장선 이들이 책임감을 갖고 구현해야 하는 세상이다.
스포츠 돋보기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시안… ‘전한의 몰락, 왕망의 등극’은 찬탈? 선양?(2015. 12. 14 17:31)
2015. 12. 14 17:31 사회
왕망에게 선양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전한의 마지막 황태자 유영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 왕망은 다섯 살의 유영을 감금시킨 채 어느 누구와도 말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25년, 갱시제 유현의 승상 이송(李松)에게 죽임을 당한다. 스물한 살의 나이에. 기원전 54년, 태자가 가장 사랑하던 여인이 병사한다. 여인이 죽으면서 남긴 말, “신첩의 죽음은 천명이 아니옵니다. 다른 첩들이 저주하여 저를 죽게 만든 것입니다.” 태자 유석(劉奭)은 꽃다운 나이에 죽은 사마양제가 가련하다. 그녀를 저주한 여인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라면 꼴도 보기 싫다. 아버지 선제는 태자가 여자를 멀리하는 게 영 불안하다. 황실의 대를 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선제는 황후에게 서둘러 태자의 짝을 맺어주라고 했다. 황후는 다섯 여인을 부른 뒤 태자에게 한 사람을 선택하게 한다. 태자가 무심하게 지목한 한 여인, 그저 태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기에 선택된 이 여인은 왕정군(王政君)이다. 그녀는 태자와의 하룻밤 동침으로 임신한다. 감로(甘露) 3년(기원전 51년), 그녀는 아들을 낳는다. 너무도 기쁜 선제는 손자 유오에게 태손(太孫)이라는 자(字)를 지어주었다. 태어나자마자 황위를 보장해준 것이다. 기원전 49년, 선제가 세상을 뜨고 원제(유석)가 뒤를 잇는다. 기원전 33년, 원제가 재위 16년 만에 마흔둘로 병사한다. 그 뒤를 이은 성제(유오)는 재위 26년 만인 마흔다섯에 세상을 뜬다. 아들 성제가 먼저 세상을 떠난 그해(기원전 7년)에 왕정군의 나이 예순다섯, 혼인하던 날 이후로 남편 원제는 왕정군을 다시 찾지 않았다.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아들은 자식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뜬 것이다. 사실 성제에게 자식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다들 너무 일찍 죽어버렸다. 황실의 후사가 끊어진 건 조비연(趙飛燕) 때문이다. ‘환비연수(環肥燕瘦)’라는 말이 있는데, 양옥환(양귀비)은 통통하고 조비연은 말랐다는 뜻이다. 두 미인의 상반된 신체미를 표현한 말이다. 제비가 날 듯 사뿐히 춤출 수 있었다던 조비연은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가녀린 몸매였다고 한다. 성제는 허황후를 쫓아내고 조비연을 황후로 삼을 정도로 조비연을 총애했다. 그런데 조비연은 임신을 하지 못했고 후궁이 낳은 아이를 죄다 죽였다. 이렇게 해서 황실의 후사가 끊기게 된다. 성제 때의 동요 중에 “제비가 날아와 황손을 쪼니, 황손은 죽고 제비는 화살(矢)을 쪼리라”(, 오행지)라는 노랫말이 있는데, 바로 이 일을 빗댄 것이다. 한나라 장안성 미앙궁 전전, 왕망의 일대기가 펼쳐진 곳이기도 하다. 총애받은 조비연, 후사 끊기게 만들어 앞의 동요에서 시(矢)는 시(屎, 똥)를 의미한다. 황손을 쪼아 죽인 제비가 똥을 쪼는 신세가 되리라는 것은 조비연의 비참한 말로를 암시한다. 성제가 세상을 뜬 뒤 성제의 조카 유흔(劉欣)이 애제(哀帝)로 즉위하게 되는데, 조비연은 그의 즉위를 지지한 덕분에 한동안은 황태후로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애제가 세상을 뜬 뒤 조비연을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인으로 강등된 조비연은 결국 자살로 생을 끝내고 만다. 선제·원제·성제 이후 방계로 황위에 오른 애제는 재위 6년 만인 스물다섯에 갑자기 세상을 떴다. 애제 역시 자식이 없었다. 그의 뒤를 이어 방계로 황위에 오른 아홉 살의 평제, 불과 열넷에 죽고 만다. 평제의 후계자로 정해진 유영은 겨우 두 살이었다. 너무 어려서 황제로 즉위하지 못한 채 황태자로 지내던 유영은 결국 황제의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그의 자리를 빼앗은 사람은 바로 왕망(王莽). 유영은 왕망이 황제가 되기 전 완충지대로서 철저히 이용당한 셈이다. 왕망은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어린 유영을 황태자로 삼았던 것이다. 혈통이 정권의 정통성을 담보하던 시절, 설령 방계일지라도 유씨 혈통이 이어져야 하거늘 왕씨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그야말로 ‘찬탈’이었다. 그런데 정작 당시에 왕망의 황제 등극은 천명으로 간주되었다. 수많은 관리와 백성이 왕망에 환호했다. 왕망이 ‘자연스럽게’ 황제로 등극할 수 있었던 데는 음양오행설과 천인감응설에 휩싸였던 전한 시대의 사회 분위기가 한몫했다. 몇 가지 사례로 그 분위기를 엿보기로 한다. 원제 때는 “우물물이 넘쳐 밥 짓는 연기가 꺼지며, 옥당(玉堂)에 흘러들어가고 금문(金門)에 흐르네”(, 오행지)라는 노랫말이 전해지기도 했다. 우물물은 음(陰), 밥 짓는 연기는 양(陽)에 해당한다. 궁전인 옥당과 궁문인 금문은 황제의 거처를 상징한다. 물이 불을 끄고 옥당과 금문에 흐른다는 것은 음이 성하여 양을 소멸시킨다는 의미다. 이는 황위가 찬탈될 징조로, 화덕(火德)의 한나라가 망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원제 초원(初元) 4년(기원전 45)에는 왕정군의 증조부 왕백(王伯)의 묘문(墓門) 가래나무(梓) 기둥에 갑자기 나뭇가지와 잎이 생겨나더니 사방으로 무성히 자라났다고 한다. 이 일은 왕씨가 창성해져서 한나라를 대신할 징조로 여겨졌다. 훗날 왕망은 이 일을 두고 ‘문’은 연다는 뜻이고 ‘가래나무’는 자손을 의미(재(梓)와 자(子)는 중국어 발음이 ‘쯔’로 동일하다)하니, 기둥 같은 대신(大臣)의 지위에서 흥기해 천명을 받고 왕이 될 길조였다고 풀이했다. 셴양에 있는 한 고조 유방의 장릉. 왕정군의 조카로 서른여덟에 대사마에 초원 4년은 바로 왕망이 태어난 해다. 왕망은 왕정군의 조카지만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탓에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성제가 즉위하자마자 왕정군의 오빠 왕봉(王鳳)이 대사마(大司馬)가 되어 국정을 장악하게 되는데, 왕망이 바로 왕봉의 마음을 얻게 된 것이다. 왕망은 중병에 걸린 백부 왕봉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했고, 이를 계기로 왕봉의 추천을 받아 성제로부터 황문랑(黃門郞)이라는 관직을 하사받는다. 이때가 기원전 22년, 왕망의 나이 스물넷이었다. 한편 성제 때는 “계수나무 꽃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황작(黃雀)이 그 꼭대기에 둥지를 트네”(, 오행지)라는 노랫말이 전해졌다. 계수나무는 붉은색으로 한나라를 상징하는데, 그 꽃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후사가 끊어질 것을 의미한다. 황작은 왕망을 상징하는데, 훗날 왕망이 세우게 되는 신(新)이라는 나라가 바로 황색을 숭상했다. 왕망은 관직에 나간 이후로도 겸손함과 검소함을 잃지 않았다. 외척 왕씨 집안에서 그에 대한 신임은 날로 두터워졌다. 기원전 8년에는 당시 대사마이던 왕근(王根)이 중병에 걸리자 자신의 후임으로 조카인 왕망을 추천한다. 이렇게 해서 왕망은 서른여덟에 대사마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황작이 계수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틀 날이 착착 다가오고 있었다. 평제가 황위에 오른 원시(元始) 원년 정월(서기 1년 음력 1월), 남쪽 변방 바깥의 나라에서 한나라에 흰 꿩을 바쳤다. 일찍이 주나라 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성왕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무왕의 동생 주공이 어린 성왕을 도와 섭정하자 천하가 태평하여 이웃나라에서 앞을 다투어 조공을 바쳤는데, 월상씨(越裳氏, 베트남 일대에 있던 나라)에서 흰 꿩을 바쳤다고 한다. 이번에 한나라에 흰 꿩을 바친 나라도 바로 월상씨다. 이는 아주 특별한 역사적 상징이었다. 대신들은 왕정군에게 상주하여, 새 황제를 옹립하여 조정을 안정시킨 공로에 걸맞은 상을 왕망에게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주공 때 먼 나라에서 흰 꿩을 바쳐온 상서로움이 왕망의 공덕으로 인해 다시 생겼다면서, 주나라의 국호를 주공(周公)의 칭호로 하사했듯 왕망에게도 ‘안한공(安漢公)’이라는 칭호를 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원시 4년에는 안한공 왕망에게 재형(宰衡)이라는 직함이 더해진다. 재형은 주나라 성왕을 보좌한 태재(太宰) 주공과 상나라 탕왕을 보좌한 아형(阿衡) 이윤의 칭호를 합한 것이다. 이윤과 주공처럼 평제를 잘 보좌했어야 하는 안한공 재형 왕망, 그런데 평제는 열넷에 죽고 만다. 일설에 의하면 왕망이 그를 독살했다고 한다. 왕망이 자신의 사위인 평제를 정말 작정하고 죽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왕망은 평제가 죽은 뒤 황위 계승 후보자들 가운데 두 살배기 유영을 황태자로 옹립했다. 그 저의는 분명했다. 평제가 죽고 유영이 황태자로 옹립된 달, 매우 공교로운 징조가 나타났다. 맹통(孟通)이라는 자가 우물을 파다가 흰 돌을 얻었는데 그 돌에 붉은 글씨로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안한공 왕망에게 고하니 황제가 되라.” 하필(혹은 마침) 바로 그때 이런 징조가 나타난 것이다. 왕망은 ‘가(假)황제’ 즉 대리 황제가 되었다. 다들 왕망을 섭(攝)황제라 불렀고, 연호는 거섭(居攝)으로 정해졌다. 거섭 3년(8년), 왕망이 황위에 올라야 한다는 징조를 알리는 소식이 곳곳에서 전해졌다. 천제(天帝)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섭황제가 진짜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말에 대한 증거로 다음날 우물이 생겨날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다음날 아침 백 척 깊이의 우물이 생겨났다는 소식이 제군(齊郡)에서 전해졌다. 이어서 석우(石牛)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파군(巴郡)에서 전해지고, 선석(仙石)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부풍(扶風)에서 전해졌다. 이는 모두 천명을 받들어 왕망이 황위에 올라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징조였다. 당시 장안으로 공부하러 온 애장(哀章)이라는 자는 왕망이 진짜 천자이니 황태후(왕정군)는 하늘의 뜻에 따르라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애장은 위조한 문서를 구리 궤짝에 넣은 뒤 고제(高帝, 유방)의 사당으로 가져가 복야(僕射)에게 전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왕망은 고제의 사당으로 가서 그것을 갖고 돌아온 뒤 미앙궁 전전(前殿)에서 조서를 발표한다. 천명이 신령한 계시를 내려 천하 백성을 자신에게 맡겼으니 어찌 감히 그 명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천자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신(新)으로 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연호는 시건국(始建國)으로 정해졌다. 왕망은 어린 황태자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일찍이 주공은 왕위를 대신하다가 마침내 권력을 성왕에게 돌려줄 수 있었거늘, 지금 저는 하늘의 엄한 명령을 받아 뜻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왕망은 슬픔에 잠긴 채 오래도록 탄식했다고 한다. 일찍이 주공이 되길 자처했던 왕망은 황제로 즉위할 즈음에는 요(堯)가 순(舜)에게 선양한 사례를 모델로 삼았다. 순을 조상으로 둔 자신이 요를 조상으로 둔 한나라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선양의 근거는 천명이고, 천명의 근거는 제왕의 덕이다. 사실 제왕이 되기까지 왕망의 삶은 유가적 덕의 실천 그 자체였다. 개혁정책 실패한 왕망의 비참한 최후 왕망에게 선양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전한의 마지막 황태자 유영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 왕망은 다섯 살의 유영을 감금시킨 채 어느 누구와도 말하지 못하게 했다. 유영은 결국 육축(말·소·양·돼지·개·닭)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고 만다. 그리고 25년, 갱시제 유현의 승상 이송(李松)에게 죽임을 당한다. 스물한 살의 나이에. 왕망은 유영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23년, 녹림군이 장안으로 쳐들어와 미앙궁을 불태우고 왕망을 죽인 것이다. 평제가 죽은 뒤 홀로 지내던 왕망의 딸은 당시에 의연히 궁전의 불길 속으로 들어가 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녀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왕망의 최후는 어땠을까? 반란군이 장안을 쳐들어왔을 때도 왕망은 “하늘이 나에게 덕과 사명을 주셨으니 저들이 나를 어찌하겠느냐!”(일찍이 공자가 위험에 처했을 때 이런 식으로 말한 바 있다)라고 했지만 그에게는 반란군을 진압할 아무런 힘도 없는 상태였다. 그는 마지막 남은 병사들과 함께 미앙궁 점대(漸臺)로 가서 화살이 떨어질 때까지 버티다가 결국 두오(杜吳)라는 장사꾼의 손에 죽게 된다. 반란군은 왕망의 시신을 갈기갈기 찢었다. 왕망의 머리는 갱시제에게 보내져 길거리에 내걸렸다. 왕망의 혀를 잘라 먹는 사람까지 있었다. 왕망의 일생을 보면, 그가 유가의 성인을 모델로 삼고 유가의 이론을 실천에 옮기고자 했던 것은 분명하다. 유가적 유토피아를 추구했던 그는 토지의 겸병을 막고자 정전(井田)제도를 시행했고, 노비의 매매를 금지하는 등 많은 개혁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은 그의 정책에 반대했고, 당시의 생산력으로는 그의 정책을 현실화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뚜기 떼와 가뭄 등 자연재해가 잇달았고 기근은 반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왕망은 철저히 실패했다. 역대로 그에 대한 평가는 위군자(僞君子), 난신적자(亂臣賊子)였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왕망이 건국한 ‘신’은 유씨 왕조인 전한과 후한 사이에 끼어 있다. 혈통이 정통성을 담보하던 시대의 프레임이 그를 찬탈자·위군자·난신적자로 규정한 게 아닐는지. 후스(胡適)는 이제껏 그 누구도 왕망에게 공평한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며 그를 중국의 첫 번째 사회주의자라고 했다. 왕망은 분명 오늘날 우리에게도 문제적인 인물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고자 하는 이라면 한 번쯤 꼼꼼히 들여다봐야 할 인물임에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왕망의 시대를 지배했던 천인감응이나 음양오행이 우리에게는 미신으로 여겨지겠지만 그것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이자 가치관이었고,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당시로서 가장 ‘합리적’인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우리 시대의 믿음이 또 다른 시대 사람들에게는 미신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의심의 자유와 의심의 능력을 지닌 사회만이 건강할 수 있다.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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