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옵션
닫기
범위
전체
제목
본문
기자명
연재명
이슈명
태그
기간
전체
최근 1일
최근 1주
최근 1개월
최근 1년
직접입력
~
정렬
정확도순
최신순
오래된순

경향신문(총 268 건 검색)

‘세종대왕 나신 날’ ‘우주항공의 날’ 기념일 지정···빨간날인가요?
세종대왕 나신 날’ ‘우주항공의 날’ 기념일 지정···빨간날인가요?
2024. 11. 19 11:00사회
... 개정안이 1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세종대왕 나신 날은 양력으로 1397년 5월 15일 세종대왕 탄신일을 의미한다. 우주항공의 날은 올해 5월 27일 우주항공청 개청일을 기준으로 우주항공에...
세종대왕님이 슬퍼할 ‘한국어교원 열악한 처우’
2024. 10. 09 21:04사회
578돌 한글날 맞아 실태 조사 절반 이상 월급 200만원 미만 10명 중 6명은 ‘기간제 계약직’ 한국어교원 절반 이상은 월 소득이 200만원 미만에 그치고, 10명 중 9명은 지난해 연차휴가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노동 사각의 외침
세종대왕님이 슬퍼할 ‘한국어교원 설문 응답’
세종대왕님이 슬퍼할 ‘한국어교원 설문 응답’
2024. 10. 09 11:24사회
88% “가족·지인에 이 일 추천 안 해” 국내 체류 외국인들이 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열린 ‘외국인 한글백일장’ 행사에 참가해 경연을 펼치고 있다. 정지윤...
5월 15일 ‘세종대왕 나신 날’…국가 기념일 지정
5월 15일 ‘세종대왕 나신 날’…국가 기념일 지정
2024. 09. 29 09:21사회
...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11월 4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행안부는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창조정신과 애민사상을 계승·발전시켜 문화국가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기...

스포츠경향(총 69 건 검색)

‘원경’ 이준영 ‘세종대왕 납시오~’
‘원경’ 이준영 ‘세종대왕 납시오~’
2025. 02. 12 07:58 연예
tvN X 티빙(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원경’ 석양 아래 춤사위 강렬 엔딩 ‘위엄+카리스마’ 첫 사극 빛내 배우 이준영이 깊이 있는 연기로 ‘원경’ 엔딩을 장식했다. 이준영은 지난 11일 오후 방송된 tvN X 티빙(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원경’(연출 김상호 / 극본 이영미 / 제작 스튜디오드래곤·JS픽쳐스) 최종회에서 세종 역으로 특별 출연해 빈틈없는 열연을 펼치며 안방에 깊고 진한 여운을 선사했다. 이날 방송에서 붉은색 용포를 입고 용상에 앉은 모습으로 등장한 이준영은 올곧은 자세와 결연한 눈빛으로 왕의 위엄을 발산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강탈했다. 첫 사극 도전임에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의 카리스마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도 완벽한 연기로 그려내 감탄을 안겼다. 세종은 “각 지방 관찰사들은 백성의 피해를 빠짐없이 조사하도록 하라”라며 풍수로 인해 벼가 익지 않은 백성들의 시름을 살피는 애민군주의 면모를 보였다. 또한 아버지 태종(이현욱 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 원경(차주영 분)의 동생들인 민씨 4형제 민무구, 무질, 무휼, 무회의 가족들이 외방으로 나가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들라 명하기도 했다. 이준영표 세종의 깊은 효심이 드러나는 장면들도 이어졌다. 학질(말라리아)에 걸려 몸져누운 원경에 신하들을 불러 모은 그는 “능히 다스리는 자에게 두텁게 상을 주겠다”라며 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가 하면, 원경에게 손수 죽을 먹여주며 애써 눈물을 참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먹먹하게 만들었다. tvN X 티빙(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원경’ 끝으로 원경과 함께 창덕궁으로 향하던 중 푸른 초원에 멈춰 선 세종은 가마에서 내린 그를 업어 나무 아래 앉혔다. 슬픔이 가득 담긴 미소와 함께 원경을 바라보던 그는 과거 태종이 즉위식에서 쓰고 춤을 췄던 탈을 꺼내 썼고, 석양이 물드는 하늘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세종의 모습과 함께 방송이 마무리돼 짙은 여운을 남겼다. 2017년 ‘부암동 복수자들’로 배우 데뷔를 알린 이준영은 2018년 ‘이별이 떠났다’로 신예답지 않은 안정적인 연기력을 인정받아 ‘MBC 2018 연기대상’ 남자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미스터 기간제’, ‘굿캐스팅’, ‘편의점 샛별이’,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 ‘이미테이션’, ‘너의 밤이 되어줄게’, ‘일당백집사’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탄탄한 연기와 훈훈한 비주얼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2021년 넷플릭스 시리즈 ‘디피(D.P.)’에서 탈영병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도 역대급 악역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해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지난해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로얄로더’에서는 재벌가의 혼외자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에서는 영앤리치 MZ 재벌 8세로 변신하는 등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선보이며 최고의 ‘대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모르는 새 척추 굳는 병, 세종대왕·주걸륜도 앓았다고?…강직성척추염
모르는 새 척추 굳는 병, 세종대왕·주걸륜도 앓았다고?…강직성척추염
2024. 05. 23 12:10 생활
노인성 질환과 달리 2040 남성 발병 확률 더 높은 척추 질환… 느리지만 방치하면 허리 굳을 수도 자가면역질환 일종으로 척추 외 말초 관절염, 건선, 눈 포도막염 등 전신에 증상 함께 나타나 완치는 어렵지만 초기 진단 후 운동-약물 치료 병행하면 정상적 생활 가능, 치료 임의 중단은 금물 강남베드로병원 신경외과전문의 윤강준 대표원장 ‘강직성척추염’은 척추 및 부착부(힘줄, 인대 등이 뼈에 부착하는 부위) 염증이 특징인 척추관절염으로, 2040 남성에 빈발하는 ‘젊은’ 척추 질환이다. 대만 톱가수 주걸륜이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종대왕 역시 강직성척추염으로 30대부터 고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질환이다. 10대부터 20대에 첫 증상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으며, 40대 미만 남성 환자의 비율이 높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따르면 2022년 5만 2616여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며, 이 중 남성 환자는 여성 대비 2.6배 많은 3만 8216명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20살부터 39세 사이 환자는 약 38.8%로 나타났다. 의학계에서는 강직성척추염을 유전적 요인에 따른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백혈구 항원 중 하나인 HLA-B27 유전자를 보유한 경우 발병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강남베드로병원 신경외과전문의 윤강준 대표원장은 “강직성척추염 환자의 90%는 해당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만큼, 가족력이 나타나는 질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강직성척추염의 대표적 증상은 뻣뻣한 허리 통증이지만, 쉬거나 잘 때 통증이 악화되고 활동이나 운동 시 호전되는 등 그 양상은 여타 척추 질환과 다르다. 무릎, 발목, 발가락의 말초 관절염, 아킬레스 건염, 어깨 힘줄염, 건선 등 관절 및 다양한 장기의 증상을 겪는 경우도 흔하다. 이외에도 염증성 장염, 눈에 발생하는 포도막염, 콩팥 기능 저하 등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증상을 방치하면 뼈가 통째로 붙어 굳어버릴 위험도 높아진다. 강남베드로병원 신경외과전문의 윤강준 대표원장은 “강직성척추염이 악화하면 척추 내 염증조직이 뼈로 대체되는 동시에 연골 내 골화로 뼈인대골극이 자라나는 과정이 진행되고, 척추뼈가 한데 붙어 굳는 ‘대나무 척추(Bamboo spine)’ 증상까지 발전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변형이 일어나면 허리를 굽히고 펴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 작은 충격에도 골절 위험이 커진다. 또한 심혈관 질환, 위장관 및 신장 질환 등 합병증의 위험도 높아진다. 강직성척추염은 난치병이지만 조기에 진단 후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무리 없는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진단은 ‘쇼버(Schober) 검사’, ‘흉곽 팽창능 검사’, 후두에서 벽의 거리(occiput-to-wall) 측정 등 신체진찰과 함께 엑스선 및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통한 척추 관찰, 유전자 및 염증 수치, 류마티스 인자를 확인하는 혈액 검사로 이루어진다. 이후 치료는 통증과 강직을 줄이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통증을 줄이고 운동성을 높이기 위해 소염진통제를 장기간 복용하며 운동 요법을 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척추 변형을 막기 위해 TNF 차단제(종양괴사인자억제제), IL-17 차단제(인터루킨 억제제) 등 생물학적제제를 활용하게 된다. 진단이 빠를수록 치료 예후가 좋은 만큼, 이상 증상이 느껴질 경우 즉시 전문의를 찾아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강남베드로병원 신경외과전문의 윤강준 대표원장은 “강직성척추염은 꾸준히 지속되는 질환이기 때문에, 방치하거나 임의로 치료를 멈추면 척추의 강직이 가속화될 위험이 있다”며 “의심 증상이 있을 경우 병원을 찾아 전문의와 상담을 진행해 보는 것을 권한다”고 설명했다.
[종합] ‘칼의 전쟁’ 임성근 명인, 세종대왕 수라상 감탄
[종합] ‘칼의 전쟁’ 임성근 명인, 세종대왕 수라상 감탄
2021. 11. 23 09:46 연예
LG헬로비전, tvN STORY 제공팔도 명인의 손에 의해 100년 밥상이 재현됐다. 지난 22일(월) 방송된 LG헬로비전-tvN STORY 예능 ‘칼의 전쟁’(연출 현돈/LG헬로비전) 3회에서는 ‘100년 음식’이라는 주제로 팔도 명인들의 맛깔진 손맛 대결이 펼쳐진 가운데, 배우 고은아가 스페셜 MC로 등장했다. 이날 역대급 리벤지 매치가 성사돼 시작부터 쫄깃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앞서 ‘한식대첩3’ 결승전에서 서울과 전라도가 맞붙어 서울이 최종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전라도 출신인 고은아가 서울과 전라도의 재 대결을 제안한 것. 더욱이 이번 대결 주제가 ‘100년 밥상’인 만큼 각 팔도 명인들의 정통 한식 비법이 총 동원돼 더욱 치열한 요리 대결이 펼쳐졌다. 백팀의 서울 대표 임성근 명인은 ‘세종대왕 수라상’을 내놓아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식재료부터 강력했다. 바로 수탉의 고환과 유황을 먹은 닭. 특히 수탉의 고환은 다른 팔도 명인들 역시 본 적 없는 진귀한 식재료였다. 뿐만 아니라 임성근 명인은 유황 닭으로 세종대왕이 먹었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튀김 닭요리인 ‘포계’를 요리해 관심을 모았다. 특히 당시 식물성 기름이 없었던 바, 정통 조리 방식 그대로 소 콩팥에 있는 두태기름으로 닭을 지져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편 닭고환볶음을 맛 본 고은아는 “너무 고소하다. 거부감이 1도 없다. 고환이라고 하지 않으면 전혀 모를 것 같다”며 감탄했다. 또한 포계를 먹은 뒤에는 “그 시절에 이런 요리를 먹었다니 놀랍다. 맥주를 부른다”며 폭풍 먹방해 보는 이들의 침샘을 폭발시켰다. 서울의 기세를 꺾기 위해 흑팀 전라도는 ‘월매 밥상’을 선보였다. ‘월매 밥상’은 성춘향의 어머니 월매가 예비 사위 이몽룡에게 차려줬다는 28첩 밥상. 전라도 대표 김혜숙 명인은 50년 넘은 가마솥에 메추리탕을 끓여내 3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정통 한식의 깊은 맛을 우려냈다. 이영자는 “과거 급제한 이몽룡한테 줄 만하다”며 극찬했고, 이찬원은 “저라면 경제권을 장모님께 다 드리고 싶은 맛”이라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이처럼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지만, 6대 3으로 백팀 서울 대표 임성근 명인이 또 한번 전라도를 꺾고 승기를 가져가며 ‘한식대첩3’ 최종 우승자의 명예를 빛냈다. 두 번째 대결은 백팀 경상도 대표 박경례 명인과 흑팀 북한 대표 허진 명인이 맞붙었다. 박경례 명인은 이순신 장군이 경남 합천으로 좌천된 당시 군수에게 대접 받았다는 연포탕을 선보였다. 특히 조선시대 연포탕에는 낙지가 아닌 지진 두부가 들어가는 것이 특별했다. 여기에 데친 갓김치인 ‘산갓침채’와 개조개 살을 다져 볶아 양념해 조개껍데기에 넣고 석쇠에 구워낸 ‘개조개 유곽’을 더한 푸짐한 한상을 차려내 모두를 만족케 했다. 그런가 하면 허진 명인은 백석 시인이 극찬한 한상을 차려냈다. 특히 북한 정주가 고향인 백석 시인이 좋아했던 평양국수를 메밀 볶기부터 갈고 반죽, 뽑기까지 30분만에 즉석에서 만들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도경완은 백석 시인이 국수를 주제로 지었다는 시를 읊는가 하면 “허진 명인의 음식은 화려하지 않지만 묵직하다”며 극찬했다. 이영자 역시 “백석 시인이 반할 만하다”며 메밀 국수를 그릇째 흡입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에 두 번째 대결은 3대 6으로 북한 대표 허진 명인이 우승을 차지했다. 정통 한식 예능의 파워를 보여줄 ‘칼의 전쟁’은 LG헬로비전과 tvN STORY가 손잡고 기획, 제작, 편성하여 매주 월요일 밤 9시 50분 LG헬로비전과 tvN STORY에서 동시 방송된다.
요리 대경
‘1호가’ 심형래 “세종대왕, 이순신 다음이 나”
‘1호가’ 심형래 “세종대왕, 이순신 다음이 나”
2021. 01. 04 09:55 연예
JTBC‘1호가 될 순 없어’심형래가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근황을 공개해 화제다. 지난 3일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1호가 될 순 없어’에서는 개그맨 심형래가 게스트로 출연해 후배 개그맨들과 추억을 곱씹었다. 이날 ‘숙래부부’(임미숙 김학래)는 심형래를 처음으로 집에 초대해 특별한 생일파티를 준비했다. 옛날 사진을 꺼내보며 임미숙, 김학래와 이야기꽃을 피우던 심형래는 즉석에서 막간 연기수업을 시작했다. 코믹한 분장을 한 그는 김학래에게 추억의 쟁반 개그를 전수하며 여전한 개그감을 선보였다. 임미숙은 “형래 오빠가 비싼 철판 요리를 사주며 많이 베풀었다”면서 심형래를 위해 맛있는 철판요리 생일상을 준비했다. ‘숙래 부부’는 또 결혼 초 청약에 당첨된 아파트 계약금을 빌려줬던 것에 대한 고마움과 심형래가 힘들었을 때 형편이 어려워 도와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내비쳤다. 임미숙은 심형래가 기타를 치며 ‘하얀 나비’를 부르자 눈물을 보였다. 그는 “오빠의 인생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심형래는 이날 “이혼한지 11년 정도 됐다”고 말했다. 임미숙은 재혼 생각이 있는지 물었고 심형래는 “나는 이제 결혼 안 한다. 난 이제 혼자 사는 게 좋다”라고 답했다. 이에 임미숙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냐. 한 5년만 기다리라”고 농담을 한 뒤 “오빠가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심형래는 “미선이하고 나하고 영화에 나온 적이 있다. 미선이 아버지가 진짜 큰 영화 제작자였다”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최양락은 심형래의 전성기 시절을 언급하며 “당시 연예인 수입 1위가 4년간 심형래였다”라고 말했고, 심형래는 “어린이들한테 설문조사를 했는데 1위가 세종대왕, 2위가 이순신 장군, 내가 3위였다”며 추억을 곱씹었다. 이에 박미선은 “부모님이 나에게 심형래랑 결혼하지 왜 이봉원이랑 했으냐고 했다”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심형래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정태겸의 풍경](74) 경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왕자 탯줄 묻어…태교 명소로 각광
[정태겸의 풍경](74) 경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왕자 탯줄 묻어…태교 명소로 각광(2024. 10. 16 06:00)
2024. 10. 16 06:00 문화/과학
성주라는 동네는 참 낯설다. 참외 말고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그나마 ‘언택트 성지’라는 수식어로, 찾는 이가 많지 않아 도리어 좋은 여행지로 포장돼 알려진 편이다. 처음 경북 성주를 찾았을 때 내 느낌은 그랬다. ‘이런 곳을 왜 몰랐을까.’ 세종대왕이 자손의 탯줄을 모아서 태실을 만들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조선 왕조가 왕가의 탯줄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으며, 구태여 스스로 찾아보는 이도 없다. 세종대왕자 태실을 찾은 후 알게 된 것이 일제의 또 다른 만행이다. 조선의 왕가는 전국의 길지 중 길지를 골라 54기의 태실을 만들었는데, 이걸 일제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한데 모아 버렸다는 것. 이제는 태봉산이니 태봉리 같은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세종대왕자 태실이 고스란히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게 반가운 건 그래서다. 선석사라는 사찰 곁, 태봉의 정상부에 태실은 자리하고 있다. 주차하고 조금만 걸으면 금방이다. 온종일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고, 여기에 19개의 태실이 조성돼 있다. 어느 곳을 봐도 주변이 훤히 내다보이는 위치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명당인 그곳. 따스한 볕이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기에 기분이 좋은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정태겸의 풍경
[이기환의 Hi-story] 고려의 전설적인 ‘일타강사‘, 세종대왕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기환의 Hi-story] 고려의 전설적인 ‘일타강사‘, 세종대왕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2023. 01. 25 15:38)
2023. 01. 25 15:38 문화/과학
사진은 <평생도 8곡병> 중 과거 급제 장면. ‘전설의 고려 일타강사’는 고려 충렬왕 때 제자 10명을 한꺼번에 급제시킨 강경룡이라는 인물이었다. 130여년이 지난 조선조 세종 연간에서도 그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조정에서 공론화된다.|국립중앙박무관 소장“(개성 용산동)…모퉁이에 한가로운 이 집을 지었는데…모든 선비들 물고기떼처럼 모여들어 공부에 뜻을 갖고….” 고려의 천재 문인이자 문장가인 이규보(1168~1241)가 지은 시(‘진수재·晉秀才)의 별장에 붙이다’)입니다. 시의 제목에는 ‘진수재가 관동(冠童·어른과 아이)을 모아 가르쳤다’는 부제가 뒤따릅니다. 한마디로 ‘진수재’라는 인물이 개성 용산에 학원을 차리니 학생들이 물고기떼처럼 모여들었다는 얘기입니다. 아마 진씨 성을 갖고 있는 진사 혹은 생원급 ‘일타강사’였던 것 같습니다. ‘진수재’ 같은 고려시대 ‘일타강사’ 이야기가 심심치않게 보입니다. ‘진수재’를 소개한 이규보 역시 학창시절 당대의 ‘일타강사’에게 배운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조선시대 과거시험 답안지. 고려시대부터 ‘과거만이 출세의 외길’로 여겼기에 사생결단으로 ‘사교육 시장’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과거급제를 위해 당대 최고의 ‘일타강사’를 찾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대를 이어 고액과외 받은 이규보 부자 이규보는 당대 최고 명문이었던 개성의 문헌공도에서도 줄곧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영재였습니다. 그런 이규보는 1183년(명종 13) 실시된 국자감시(생원·진사시)를 코 앞에 두고 족집게 고액과외를 받았습니다. “공(이 이부)은 집에서 매양 관동(冠童·어른 아이)들을 모아놓고 글을 가르쳤는데, 나(이규보)도 지난 묘년(1183·계묘년)에 참여했습니다. 그 때 선생의 지위로 모셨고….”(<동국이상국집> ‘이 이부라는 이에게 드린다’) 무슨 얘기냐면 이규보는 그 해(1183년) 5월로 예정된 국자감시를 앞두고 있었는데요. 이때 아버지(이윤수·1130~1191)가 수주(수원) 수령으로 발령받아 임지로 떠나면서 이규보에게 ‘족집게 고액과외 선생’을 붙여주었습니다. 이규보의 시에 “묘(卯)년에 이 이부라는 분한테 배운 적이 있다”고 했는데, 1183년이 바로 계묘년이었거든요. ‘1183년 이규보의 과외선생=이 이부’였다는 예기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규보 가문의 ‘사교육’이 이규보의 셋째아들(이징)에게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이규보의 시(‘신 대장에게 내 아들 징을 가르치는 데 사례함’)에 나타나있는데요. “내 자식 우둔함을 혐의치 않고, 갈고 다듬어 옥 만들기를 기약하는데 그대의 후의를 무엇으로 갚을까.” 이규보는 이 시를 쓰면서 “신 대장(大丈)은 나이 80여 살인데 항상 학생들을 모아 가르쳤다”는 각주를 달았습니다. “셋째 아들 징이 썩은 나무 같아 새길 수 없다”면서 신 아무개라는 과외선생에게 아들을 맡긴 겁니다. “신대장은 동몽(어린 학생들)이 배우기를 청하면 거절하지 않으니 학생들이 모여 글방(서숙·書塾)을 이뤘네.” 여기서 ‘대장(大丈)’이라는 직책이 흥미로운데요.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장은 고려시대 죄인의 처벌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잡류직’이라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신 대장’의 신분은 일종의 구실아치(관청에 딸린 하급관리)였던 겁니다. 얼마나 유명한 ‘일타강사’였으면 그렇게 낮은 신분에도 천하의 이규보가 가장 아낀 아들을 가르쳤을까요. 이규보의 시를 보면 신 대장은 여든살이 넘도록 글방을 차려놓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전문학원 강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의 ‘공원춘효도’. 조선 후기 과거제도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고발·풍자하는 풍속화이다. 과거 급제를 위해 온갖 부정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안산시 소장■고려~조선을 들썩이게 한 레전드 강사 그런데 고려시대 대표적인 ‘일타강사’는 따로 있습니다. 그 명성이 후대의 조선조까지 알려진 ‘전설의 강사’였는데요. 이름이 <고려사>와 <세종실록>에까지 등장하니까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려사>를 우선 볼까요. “이 노인은 비록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을 가르치는데 게을리하지 않아 제자들을 성공으로 이끌었구나. 어찌 공이 적다 하겠는가. 곡식을 내려주어라.”(<고려사> ‘세가·충렬왕’조) 때는 바야흐로 1305년(충렬왕 31)의 일입니다. 충렬왕(재위 1274~1308)이 유생 강경룡을 치하하고 곡식을 하사했다는 기사가 <고려사>에 실렸는데요. 대체 벼슬에 오르지도 못한 유생(강경룡)이 무슨 공을 세웠다는 걸까요. <고려사>와 이제현(1287~1367)의 <역옹패설>은 물론 조선의 정사인 <세종실록> 등에도 이유가 나오는데요. “강경룡이 집에서 제자를 양성했다. 1305년 실시된 국자감시(생원·진사시)에서 강경룡의 제자 10명이 모두 합격했다. 스승(강경룡)의 집에 합격한 제자들이 몰려가 스승을 뵈었다. 그 떠들썩한 소리가 밤새도록 끊이지 않았다. 마침 강경룡의 동네에 익양후 왕분(종친·고려 신종의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시쳇말로 ‘강경룡 학원’의 소속학생 10명이 한꺼번에 과거(국자감시)에 합격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합격생들이 스승(강경룡)의 집에 찾아와 하루종일 마을이 떠나가도록 잔치를 벌였다는 겁니다. 마침 그 마을에 살던 종친(익양후 왕분·생몰년 미상)이 왁자지껄한 소리에 자초지종을 파악한 뒤에 이를 임금(충렬왕)에게 고했다는 겁니다. 이에 익양후의 보고를 들은 충렬왕이 강경룡을 크게 치하하면서 곡식을 내려주었다는 겁니다. 고려시대엔 공교육을 맡은 국자감 말고도 개인이 개경에 세운 12공도, 즉 12개 사학이 유명했다. 그중 최고 명문은 해동공자 최충(984~1068)이 설립한 ‘문헌공도’였다. 천재문인 이규보도 그 학교에 입학했다.■조선조 세종까지도 칭찬한 고려 ‘일타강사’ 그런데 13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조선왕조가 들어섰는데도 ‘강경룡 사례’가 ‘워너비’로 칭송 받았습니다. <세종실록>을 보죠. 당시 지성균판사 허조(1369~1439)가 세종대왕 앞에서 갑자기 ‘강경룡’이라는 인물을 소환합니다. “고려 충렬왕이~강경룡을 포창한 일이 있사옵니다. 지금은 유생 유사덕과 박호생이라는 사람이 자기 집에 서재를 차려놓고 수십명의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들을 법(<육전>)에 따라 특별포상 하신다면….”(1436년 10월8일) 이 무슨 말일까요. 허조는 “고려시대부터 한량·유생들이 서재(서당)을 차려놓고 학생들을 가르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 법전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들어서도 서울엔 국학(성균관 및 4부학당), 지방엔 향교를 각각 두었지만 개인이 서당을 시행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습니다. 허조는 교육의 혜택이 고루 전해지지 못하고 있는 개국초임을 강조했습니다. 허조는 조정의 힘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립학교 혹은 사설학원의 설립을 장려하자는 취지로 상소문을 올린 겁니다. 세종은 허조의 상소에 따라 유사덕과 박호생 등이 세운 ‘모범 사학(혹은 학원)’을 표창했습니다. 고려 최고의 천재 문인인 이규보도 1183년 과거(국자감시)를 앞에 두고 이이부라는 족집게 과외선생에게 배운 적이 있었다.■고려 12대 명문사학 이러한 사교육 열풍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멀리 갈 것도 없이 ‘고려시대부터’ 예를 들어보죠. 교과서에 배웠듯이 고려의 대표적인 국립학교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992년(성종 11) 창설된 국자감이었죠. 국자감은 1123년(인종 1) 국자학·태학·사문학·율학·서학·산학 등 경학(京師·6학)으로 정비됐구요. 그런데 국자감 교육에는 신분의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국자학은 3품 이상, 태학은 5품 이상, 사문학은 7품 이상의 관리 자제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됐거든요. 그렇기에 지위는 좀 낮지만 머리가 좋은 가문의 자제들은 다른 문을 두들겨야 했습니다. 그것이 문벌귀족이 아니라 지방 향리 가문 출신인 이규보가 ‘사학(문헌공도)’를 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중 고려 전통의 명문사학은 개경에 설립된 ‘십이공도(十二公徒)’입니다. 명문 사학 12개 학교는 ‘최충의 문헌공도, 정배걸의 홍문공도, 노단의 광헌공도, 김상빈의 남산공도, 김무체의 서원도, 은정의 문충공도, 김의진의 양신공도, 황영의 정경공도, 유감의 충평공도, 문정의 정헌공도, 서석의 서시랑도, 실명씨(失名氏)의 귀산도….’(<고려사> ‘선거지·사학’)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최고 명문은 해동공자 최충(984~1068)이 설립한 ‘문헌공도’였습니다. 이규보가 입학한 바로 그 학교죠. “1155년(문종 9) 설립한 문헌공도에 양반의 자제들이 문전성시를 이뤄 반을 9재로 나눴다. 낙성(樂聖)·대중(大中)·성명(誠明)·경업(敬業)·조덕(造道)·솔성(率性)·진덕(進德)·대화(大和)·대빙(待聘) 등이다. 무릇 과거에 응시하려는 자는 반드시 이 공도에 속해 공부했다.”(<고려사> ‘선거지·사학’) 얼마나 줄을 섰으면 9반으로 분반까지 했을까요. <고려사>의 구절이 가슴에 와 닿죠. “과거를 보려는 학생은 반드시 최충의 학교에 입학해야 했다”는 겁니다. 요즘으로 치면 가고싶은 대학, 가고싶은 직장에 가려면 명문 ‘문헌공도’에 입학해야 했다는 얘기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못말리는 ‘일류병’은 어찌 그렇게 똑같을까요. 1481년(성종 12) 5월27일 성균관 진사 이적(생몰년 미상)의 한마디가 고금을 초월한 ‘일류병’을 상징적으로 일러줍니다. “지금 인재선발은 오로지 과거에만 의존합니다. 과거로 출세하지 아니하면 ‘재주가 없다(비재·非才)’고 낙인찍고 으레 ‘별볼일 없는 관리(속리·俗吏)로 대우합니다.”(<성종실록>)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에는 ‘진수재(晉秀才)’라는 시쳇말로 당대 사설학원의 강사를 주제로 한 시가 눈길을 끈다. 시의 제목에는 ‘진수재가 관동(冠童·어른과 아이)을 모아 가르쳤다’는 부제가 붙어있다. ‘진수재’라는 인물이 개성 용산에 학원을 차리니 학생들이 물고기떼처럼 모여들었다는 내용이다.■문헌공도의 여름철 ‘모의고사’ 각설하고 ‘과거 지상주의’가 판치는 세상이니 과거급제를 위한 교육이 극성을 떨었죠. 특히 최고의 명문이라는 ‘문헌공도’의 교육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정식 학기철은 물론이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는 인근 사찰(귀법사 등)을 빌려 50일간 이른바 ‘하과(夏課·여름철 특별과외)’를 열었습니다. 문헌공도 출신 선배들이 특별강사로 초빙되었구요. ‘하과’의 특별시험 중에는 ‘각촉부시(刻燭賦詩)’라 해서 촛불에 금을 그어 시간을 정하고 시를 짓게 하여 글의 등급에 따라 등수를 정했는데요. 이런 시험을 불시에 치른다고 해서 ‘급작(急作)’이라고 했죠. 지금으로 치면 ‘수능대비 족집게 모의고사’였구요. 갓 급제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출제경향과 예상문제, 그리고 답안지 작성요령을 전수해준 겁니다. 문헌공도에서 시작된 ‘하과’는 다른 사학에까지 요원의 불길처럼 퍼졌답니다. “12공도의 관동들이 해마다 여름철이면 산림에 모여 학업을 입히다가 가을이 되면 파했다. 용흥사와 귀법사 두 절에 많이 머물렀다”(<보한집>)는 등의 기사가 보입니다. 문헌공도와 같은 사립학교에서 이렇게 극성을 떠니 국립학교는 가만 있었겠습니까. 공교육의 장인 국립학교에도 ‘하과’가 퍼졌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고려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1328~1396)은 16~17살 때 국자감이 실시한 두 번의 구재도회(九齋都會)에서 무려 24~25회의 장원을 차지했답니다.(<목은집>) 그래도 생각해보면 ‘하과’는 사학이든 관학이든 학교의 테두리 안에서 실시한 공식 과외수업이라 할 수 있겠죠, 이것에 만족할 교육열이 아니었습니다. 이규보의 예에서 보듯이 ‘과거만이 출세의 외길’로 여겼던 이들은 사생결단으로 ‘사교육 시장’에게로 눈길을 돌렸고, 당대 최고의 ‘일타강사’를 찾았으니까요. 이규보는 셋째아들(이징)의 개인교습을 ‘신 대장’이라는 과외선생에게 맡긴 적이 있다는 사실을 시로 표현했다. 이규보는 “내 자식 우둔함을 혐의치 않고, 갈고 다듬어 옥 만들기를 기약하는데 그대의 후의를 무엇으로 갚겠냐”고 사례했다.■실패로 돌아간 일타강사의 과외 그렇다면 ‘사교육 열풍’은 과거를 위해, 출세를 위해 언제나 옳았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당장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고, 최고 명문인 문헌공도에서도 줄곧 1등을 차지한 이규보의 예를 들어볼까요. 앞서 1183년 5월로 예정된 국자감시를 코 앞에 두고 아버지가 족집게 고액과외 선생(이 이부)를 붙여주었다고 했잖습니까. 그러나 이규보는 그렇게 특별 과외를 받고도 그 해 시험에서 낙방을 했습니다. 이규보는 그 후에도 두 번이나 더 낙방을 거듭한 끝에 4번째 도전에서 겨우 급제했습니다. 이규보 같은 천재라도 ‘일타강사’의 족집게 과외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마침 고려를 풍미한 사교육 열풍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평가한 분도 있네요. 조선중기의 문신 황준량(1517~1563)의 <금계집>은 최충의 문헌공도를 ‘디스’하고 있는데요. “최충이 문헌공도를 설치하고 후학들을 가르쳐 세상에서 ‘해동부자(海東夫子)’라 일컬었다. 그러나 세상에 적용하여 도(道)를 밝힌 효험이 없었고 자신에 돌이켜 궁구(속속 파고들어 깊에 연구)한 실질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문하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 모두 문장이나 수식하는 경박한 선비들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근본을 힘쓰고 사특한 것을 억누르는 의리에 대하여는 듣지 못하여, 담론하는 것이라곤 단지 성현 말씀의 찌꺼기뿐이었습니다.” 황준량은 과거시험준비에만 몰두하느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참교육을 행하지 못한 고려의 사학을 개탄했던 겁니다.
이기환의 Hi-story이기환
[이기환의 Hi-story](41)세종대왕이 18남을 2열 횡대로 세운 이유(2022. 07. 08 14:24)
2022. 07. 08 14:24 문화/과학
얼마 전 ‘인종대왕 태실’과 ‘장조(사도세자)·순조·헌종 태봉도’가 보물로 지정예고됐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왕실의 태를 묻은 태실(인종태실)과 태실의 그림을 그린 태봉도 3점(장조·순조·헌종)의 문화유산 가치를 평가한 건데요. 태는 태아를 싸고 있는 조직입니다. 태아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태반과 탯줄’을 가리킵니다. 궁금증이 생기죠. 아무리 조선 임금과 왕족의 태라지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국가지정문화재로 대접해준다는 말입니까. 경북 성주 선석산 세종대왕 왕자 및 원손(단종) 태실의 배치도. 사진 아래쪽은 나이 순으로 진양대군(수양대군·세조)부터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응대군 등을 배치했다. 위쪽은 후궁이 낳은 서자 중 가장 연장자인 화의군부터 막내인 왕자 당까지 11명의 태실을 나란히 조성했다. 원손인 단종의 아기태실은 영응대군 태실에서 11.2m 정도 떨어져 있다. / 경북 성주군청·심현용 한국태실연구소장 제공 태를 묻는 이유 1570년(선조 3) 2월 1일 <선조수정실록>을 볼까요. “태실을 마련해 태를 묻는 풍습은 신라와 고려 사이에 생겼는데, 예부터 중국에는 없었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은 “김유신(595~673)의 태를 높은 산(충북 진천)에 묻었는데, 지금(고려)도 이 산을 태령산(胎靈山)이라 한다”고 기록했습니다. 또 <고려사> ‘지리지·진주(진천)조’에는 “김유신의 태가 신령으로 변했다”고 부연 설명했습니다. ‘태를 신령한 존재’로 본 겁니다. <세종실록> 1436년 8월 8일자를 볼까요. “사람이 ‘현명할지 어리석을지(賢愚)’, ‘잘될지 못 될지(盛衰)’가 모두 탯줄에 달려 있습니다.” <세종실록>은 “탯줄이 좋은 땅을 만나면 총명해져 학문을 좋아하고 구경(九經·9개 유교경전)에 정통하며, 원만하고 마음이 밝고, 병이 없게 되며, 높은 관직으로 승진하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자의 태도 좋은 땅을 만나면 얼굴이 예쁘고 단정해 남들이 우러러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세종실록>은 “길지란 땅이 반듯하고 봉긋하게 솟아 위로 공중을 바치는 듯해야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이걸 ‘돌혈(突穴)’이라 합니다. 그후 잇단 정변(계유정난·1453, 중종반정·1506, 인조반정·1623)의 패자(안평대군·연산군·광해군) 태실이 예외없이 파괴·혹은 훼손됐는데요. 태실의 파괴는 곧 조상과 이어지는 핏줄을 끊는다는 뜻이죠. 태를 왕조의 혈통, 즉 정통성의 상징으로 여겼던 겁니다. 왕자들의 태실과 떨어진 곳에 조성된 원손 단종의 태실에서는 “1441년 윤 12월 26일 원손의 태를 묻었다”는 아기태비가 보였다. 1453년 즉위한 단종의 태실은 군주의 격식에 맞게 가봉된 뒤 인근 성주 법전리 법람산으로 이안됐다. / 경북 성주군청 제공 2열 횡대로 집합한 세종의 아들들 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역시 세종대왕입니다. 태실 제도를 확립시킨 분이니까요. 경북 성주 선석산(해발 742.4m) 끝자락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태봉(258.2m)이 있는데요. 태봉의 정상부 평탄지(남북 50m·동서 20m)에 세종대왕의 아들(18명)과 원손(단종) 등 모두 19기의 태실이 ‘2열 횡대’로 있습니다. 왕통을 이은 문종(재위 1450~1452)의 태실만 경북 예천(명봉산)에 따로 조성했고요. 다른 대군(7명)과 군(11명)의 태실이 두 줄로 서 있습니다. 앞줄은 왼쪽에서 진양대군(수양대군~세조, 1417~1468)~안평대군(1418 ~1453)~임영대군(1420~1469)~광평대군(1425~1444)~금성대군(1426~1457)~평원대군(1427~1445)~영흥대군(영응대군으로 개봉·1434~1467) 등의 순으로 조성했습니다. 뒷줄은 왼쪽에서 화의군(1425~?)~계양군(1427~1464)~의창군(1428~1460)~한남군(1429~1459)~밀성군(1430 ~1479)~수춘군(1431~1455)~익현군(1431~1463)~영풍군(1434~1457)~영해군(1435~1477)~담양군(1439~1450)~왕자 당(1442~?) 순이고요. 앞줄은 정부인(소헌왕후·1395~1446)이 생산한 적자를, 뒷줄은 후궁들이 낳은 서자를 태어난 순서대로 배치한 겁니다. 원손인 단종(1441~1457·재위 1452 ~1455)의 아기태실은 영응대군 태실에서 서북쪽으로 11.2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정체를 드러낸 세종의 19번째 아들 세종의 자녀가 18남 4녀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리겠네요. 세자인 문종의 태실이 다른 곳에 조성됐다면 선석산 태실에는 17기(단종 태실 제외)만 남아 있어야 하는데, 왜 18기일까요. 이 선석산 태실의 배치도를 보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종대왕의 숨겨진 아들이 한분 더 있다는 겁니다. 그분이 바로 ‘왕자 당(?)’인데요. ‘왕자 당’의 아기비와 태지석에는 “1442년 7월 24일 오전 3~5시 사이에 태어났고, 태는 그해 10월 23일 묻었다”고 했습니다.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를 묻은 선석산 태실에는 세조의 태실(아기태실+가봉태실)이 다른 형제들과 함께 그대로 남아 있다. 즉위 후 ‘가봉(加封·군왕의 격에 맞도록 태실을 별도의 길지에 옮기고 치장)’ 태실을 조성해야 했지만 세조가 “임금의 격에 맞게 석물만 따로 만들고 태실을 옮기지는 마라”는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세조는 “형제들의 태가 여기 있는데 굳이 따로 태실을 옮길 필요가 있느냐”면서 형제애를 나타냈다. / 경북 성주군청 제공 그런데 왕실족보인 <선원보>에는 적·서자를 통틀어 ‘막내(18남)=담양군 거(1439년생)’라 했습니다. ‘1442년생 당’은 왕실 족보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 18번째(문종 제외) 태실의 주인공인 ‘당’은 과연 누구일까요. 없는 자식의 태를 묻지 않았다면 자명해지죠. 마지막 태실(18번째)의 주인공은 1442년에 태어난 세종대왕의 막내, 즉 19남인 왕자 당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왜 ‘왕자 당’은 왕실족보에 오르지 못했을까요. <세종실록> 1446년 3월 28일자를 볼까요. 즉 세종은 부인(소헌왕후·1395~1446)이 승하했을 때 “겨우 8세인 담양군(이거)은 가장 어리니 상복을 입지 말라”는 명을 내렸는데요. 그렇다면 담양군보다 3년 뒤에 태어난 ‘왕자 당’은 1446년 이전에 죽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심현용 한국태실연구소장은 “다섯 살도 채 안 돼 죽은 왕자였기 때문에 왕실 족보에도 올라가지 않거나 누락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그게 맞다면 18남 4녀로 알려진 세종의 자녀는 19남 4녀로 고쳐야 할 것 같네요. 세종은 세자를 빼고도 아들 18명의 태가 묻힌 선석산을 생각하면 얼마나 흐뭇했을까요. 날로 번창해가는 왕실을 떠올렸겠죠. 아닌 게 아니라 세종의 자녀들은 한결같이 총명했습니다. 세자인 문종을 볼까요. 그분의 치세는 짧았지만(2년 3개월) 대리청정(8년)까지 포함하면 10년간 세종의 치세를 완성시켰고요. 세자 시절, 측우기를 발명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수양대군(세조)은 석가모니의 일대기인 <석보상절>을 편찬하고 훈민정음으로 번역했고요. 셋째인 안평대군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서예와 시문, 그림, 가야금 등에 두루 능한 절세의 팔방미인이었죠.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응대군 등도 똘똘하기 이를 데 없었죠. 다른 군들의 능력 또한 아버지(세종)를 닮았다면 한결같이 빼어난 재주를 지녔을 겁니다. 조카, 동생들을 죽인 세조의 형제애? 선석산 태실에서는 또 하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있습니다. 세조, 즉 진양대군(수양대군)의 태실입니다. 조카(단종)를 죽이고 등극한 세조라면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태실을 따로 옮기고 화려하게 치장했을 것 같죠. 그런데 왜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그런 논의가 일었는데요. 세조는 “가봉(加封·임금의 예에 따라 석물을 얹어 치장)은 하되 옮길 필요는 없다”(<세조실록> 1462년 9월 14일)고 손사래를 칩니다. 결국 세조의 명에 따라 비를 세워 다른 왕자들의 태실과 구별짓는 것으로만 끝냈는데요. 세조의 한마디가 재미있습니다. 최근 보물로 지정예고된 장조(사도세자)와 순조, 헌종의 태봉도. 한결같이 풍수상 길지로 여겨진 곳에 조성돼 있다. / 문화재청 제공 “형제들의 태가 여기 같이 있는데 어찌 옮기겠는가. 다만 ‘수양대군(진양대군)의 비’라는 표석만 없애고 비석만 세워라.” 비석의 내용도 의미심장합니다. “아아! 빛나는 오얏나무(李·이씨 왕조를 뜻함), 1000가지 1만 잎사귀라… 성태(세조의 태)를 옮기지 아니하니… 검소한 덕이 더욱 빛난다”고 했습니다. 가히 눈물 나는 형제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조의 형제애는 진심이었을까요. 그보다 4년 전인 1458년(세조 4) 7월 8일 실록 기사를 볼까요. “선석산에 주상(세조)의 태실이… 난신 이유(금성대군)의 태실이 섞여 있고, 법림산(성주 가야산 기슭)에는 노산군(단종)의 태실까지 있습니다…. 유(금성대군)와 노산군(단종)의 태실을 철거하소서.” 무슨 말일까요. 원손 시절 단종의 아기태실은 세종의 아들(문종 제외 18명)과 함께 선석산에 묻혀 있잖아요. 그런 단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법림산에 따로 가봉태실을 꾸몄거든요. 그런데 1453년 일어난 계유정란에 안평대군이, 1455년 단종복위운동에 금성대군을 비롯해 화의군, 한남군, 영풍군 등이 연루되죠. 역적죄를 뒤집어쓴 안평대군의 태실은 이미 훼손됐고요. 1458년의 실록은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된 금성대군 등 형제 4명의 태실까지 파괴했다”고 기록한 겁니다. 선석산에 조성된 단종의 원손 시절 아기태실은 그냥 두었지만, 법림산(성주)에 따로 조성된 (단종의) 가봉태실은 이때 훼손된 거고요. 2차례의 정변에서 파괴된 선석산의 대군·군 태실 5기는 산 계곡 아래까지 굴러떨어져 있었는데요. 1977년 대대적인 보수·정비 때 그중 일부가 수습돼 지금처럼 복원됐습니다. 그런데도 세조는 ‘형제들과 함께 있겠다’고 형제애를 운운했군요. ‘악어의 눈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뭐 달리 볼 수도 있겠죠. 조카와 동생들을 죽이거나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죄를 뒤늦게나마 반성한 참회의 몸부림을 친 것일까요. 정조도 끊지 못한 안태의 폐습 세종 이후 왕실 자손의 태를 묻는 풍습은 성종(재위 1469~1494) 때 그 범위가 공주까지 확대되는데요. 세종이 세운 원칙, 즉 왕실의 태실을 한곳에 묻는 전통은 이어지지 못합니다. 풍수상 좋은 땅과 혈처 역시 단 한곳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죠. 그래서 세종 이후 임금들은 대부분 1인 1곳의 태실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니 폐단이 말도 못 했죠. 왕자·공주가 태어날 때마다 그들의 태를 묻는 안태 행렬을 맞이해야 했던 농번기 백성들의 번거로움은 물론이고요. 태실로 낙점되면 200~300보 거리의 사유지가 하루아침에 농사는커녕 출입도 불허되는 금단의 땅이 됐습니다. 훗날 영조(재위 1724~1776)가 나서서 “하나의 태봉에서 위부터 아래까지 차례차례 묻으라”(1758), “궁궐의 후원에 태를 묻어서 폐단을 없애라”(1765)는 지시를 잇달아 내리는데요. 영조의 뜻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정조(재위 1776~1800)가 1785년(정조 9) 아버지(사도세자·1735~1762)를 위해 가봉태실을 조성하면서 무너지고 맙니다. 사도세자는 왕위를 잇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가봉태실(왕위를 이은 뒤 치장한 태실)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거든요. 정조는 ‘할아버지(영조)-손자(정조)’로 이어진 비정상적인 정권 이양이 아니라 아버지(사도세자)를 거친 정통성을 갖춘 승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겁니다. 일제는 서삼릉에 새롭게 조성한 왕과 왕자(공·옹주 포함)의 태실 공간을 한 일(一)자 형태로 구분했다. 일본을 상징하는 ‘날 일(日)’ 자 형태이다. 지하의 형태도 마찬가지다. 원형의 시멘트 관에 태지석과 태항아리를 묻고 그 위를 날 일(日) 자 형태의 시멘트 덮개를 씌웠다. / 심현용 한국태실연구소장 제공 날 일(日) 자로 복원한 일제 이렇게 전국 곳곳의 길지(명당)에 봉안돼 있던 조선왕실의 태실은 국권침탈 후 일제에 의해 제자리를 잃고 맙니다. 1929년 전국의 태봉 39곳을 훼철한 뒤 그곳에 조성돼 있던 태실 54위(태항아리 위주)를 경기 고양 서삼릉에 집단 이주시킨 겁니다. 조선 왕조의 만세안녕을 기원하며 봉안한 조선왕가의 태를 죽음의 공간인 무덤(서삼릉)에 묻어버린 셈이죠. 일제는 그렇게 꾸민 왕과 왕자(공·옹주 포함)의 공간을 한 일(一) 자 형태로 구분했다죠. 멀리서 보면 일본을 상징하는 ‘날 일(日)’ 자 형태입니다. 지하도 원형 모양의 시멘트 관에 태지석과 태항아리를 묻고 그 위를 날 일(日) 자 형태의 시멘트 덮개를 씌웠습니다. 심현용 소장은 “땅 위에서 땅 밑까지 조선 왕실의 생명성을 상징하는 태를 일본 안에 가둔 셈”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개 중에는 이런 말도 나올 것 같아요. 세종대왕이 쓸데없이 풍수지리가 접목된 태실 제도를 만들어 갖가지 폐단을 야기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 말입니다. 일리 있는 비판 같아요. 그러나 달리 생각할 필요도 있어요. 태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태아와 엄마를 하나의 생명공동체로 묶어준 매개체죠. 한마디로 생명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요즘 제대혈을 보관하는 이들이 있다죠. 제대혈에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을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풍부하고, 연골·근육·뼈·신경 등을 만들 수 있는 간엽줄기세포가 다량 함유돼 있다면서요. 그렇다면 제대혈 보관은 1400년 가까이 이어온 안태의식의 현대적 버전이 아닐는지요.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이기환의 Hi-story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세종대왕, 이순신을 꼭 읽혀야 하나요?
세종대왕, 이순신을 꼭 읽혀야 하나요?
2014. 10. 07 19:53 육아/교육
ㆍ엄마가 알아야 할 요즘 위인전 우리가 어렸을 때는 집집마다 한 질 정도는 가지고 있었던 위인전. 요즘 엄마들 사이에선 종종 아이에게 위인전을 읽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많은 의견이 오간다. 그럼에도 위인전의 효용에 대해서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 아이에게 위인전을 건네주기 전, 엄마가 알아야 할 점을 살펴봤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위인 선호도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위인전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안 읽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부모들은 앞다퉈 고가의 전집을 구입해 아이의 책꽂이에 꽂아주었다. 하지만 글만 빽빽하고 재미없는 위인전 위로는 결국 뽀얀 먼지가 쌓였고, 전집은 장식품으로 전락하곤 했다. 어린 시절에 이런 ‘위인전 악몽’을 겪어본 엄마들은 아이의 위인전 독서에 대해 망설이게 된다. 굳이 이렇게 재미없는 책을 읽혀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위인전을 필독 도서로 꼽는다. 위인전에 관한 재밌는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 위인전의 최고 전성기였던 1960~80년대는 공교롭게도 군사정권 시기와 겹친다. 그래서 이때의 위인전은 유독 나라를 지킨 구국 영웅이나 새로 나라를 세운 왕조 영웅들이 주요 인물들로 다뤄졌다. 아이들은 광개토대왕, 왕건, 세종대왕, 이성계, 을지문덕, 연개소문, 장보고, 강감찬, 이순신 등 왕과 무인들의 위대한 업적을 읽게 됐다. 주로 애국심이나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문장과 단어를 썼으며, 위인은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면모를 드러내고 어른에 대해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인물로 묘사됐다. 아이들의 위인전집 구성에도 시대 상황이 짙게 반영된 것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1980년대의 영광도 1990년대에 들어서는 시들해졌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계는 물론 출판계에도 새바람이 불어왔다. 어린이 책 시장이 단행본 위주로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전집이 주도권을 내주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위인전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이뤄졌는데, 가장 큰 특징은 구국 영웅들이 대거 사라지고 새로운 영웅들로 교체됐다는 점이다. 단행본의 경우 이미 전집에서 충분히 다룬 인물들을 소개하는 것으로는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지 못했다. 따라서 새로운 인물을 찾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광복 이전까지의 인물을 다뤘던 것에서 좀 더 넓게 광복 이후의 인물들도 단행본으로 하나둘 출간되기 시작했다. 민주운동가 장준하 선생, 인권변호사 조영래, 노동운동가 전태일 등 불과 한 세대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인물들이 소개되는 계기가 됐다. 2014년 어린이 위인전의 변화 그리고 위기 여전히 어린이 위인전 시장은 전집과 단행본으로 나뉜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진 구성과 인물 소개가 눈에 띈다. 가장 큰 특징은 살아 있는 동시대 인물을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UN사무총장 반기문,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물론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등 나이, 인종, 직업을 뛰어넘는 다양한 인물이 책 속에 담겼다. 아이들은 몇백 년 전의 영웅보다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빠르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두드러지는 점은 솔직해진 묘사 방식이다. 최근 영화 ‘명량’의 인기에 힘입어 이순신 장군에 대한 위인전이 새롭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위인전 목록에 꾸준히 이름을 올린 몇 안 되는 ‘영웅’이다. 오랜 시간 사랑을 받은 위인이지만 과거와 현재의 위인전 묘사 방식은 현저하게 다르다. 과거에는 ‘민족의 횃불’, ‘세계적인 영웅’ 등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신격화에 가깝게 표현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단어를 지양한다. 대신 인물의 성격이 드러나는 일화나 어려움을 겪었던 사연 등을 솔직담백하게 담는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시중의 많은 위인전들이 전체적으로 분량이 짧아졌으며 문장 호흡 또한 짧아졌다. 독서를 통해 긴 글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게 마련인데 위인전만으로는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중요한 사건을 단 몇 줄로 설명해야 하니 직설적인 문장이 많다. 아이가 상상을 하기도 전에 먼저 해답을 알려주는 모양새다. 그러니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어 있는 행간을 읽는 연습 또한 이뤄지지 못한다. 최근 갈수록 심해지는 출판계 불황 때문에 아이들이 선호하는 분야에만 편향된 출간 상황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나마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위인전은 비교적 많지만 고학년이 읽을 수 있는 위인전집은 드물다. 이따금 명맥을 이어가던 고학년용 위인전도 결국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내용을 좀 더 쉽게 수정하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위인전을 읽던 아이들은 고학년 때 적합한 수준의 책을 찾지 못해 독서 공백이 생기게 된다. 중·고등학생을 위한 위인전은 인물의 다각적인 면모를 다루며 보다 심도 있게 인물을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무턱대고 중학생의 위인전으로 넘어가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 이 나이대 아이들은 교육 과정에 한국사가 포함돼 있어 누구보다 위인전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아이 수준에 맞는 고학년용 위인전이 많지 않아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읽어야 하는 이유 「태백산맥」에 이어 「정글만리」로 다시 한번 한국 문학계에 큰 획을 그은 조정래 작가는 뜻깊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손자에게 손수 쓴 책을 읽히고 싶은 마음으로 안중근, 김구, 세종대왕, 이순신 등 총 7명의 위인을 직접 선정해 손자와 손자 세대에게 바치는 위인전을 집필한 것이다. 몇 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조사한 적이 있다. 1위는 방송인 유재석, 2위는 피겨 퀸 김연아 선수, 3위는 반기문 UN사무총장, 4위는 부모님, 5위는 세종대왕이 올랐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무려 3명이나 동시대 인물이다. 늘 순위에 이름을 올렸던 이순신 장군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시대가 변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수박 겉핥기식 역사교육, 위인전을 멀리하는 분위기가 아이들의 존경하는 인물 순위를 바꿔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위인전은 한 사람이 생애에 걸쳐 일군 업적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겪은 어려움과 극복 과정 등을 담고 있다. 위인전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그 인물 역시 어릴 적에는 자기와 다를 것 없는 보통의 아이였음을 알게 된다. 즉 훌륭한 사람은 시작부터 ‘신’처럼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꿈과 목표를 갖고 노력으로 일군 성과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로 인한 자신감과 자긍심 고취, 목표 의식 확립에 도움이 된다. 이 같은 효과를 생각한다면 조정래 작가가 굳이 위인전을 집필한 속뜻을 이해하게 된다. 위인전은 고루한 책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일생과 그 시대를 담은 좋은 학습서이자 재미있는 책이다. 다만 우리는 위인전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법을 몰랐던 것뿐이다. 위인전을 읽는다는 것은 그 인물이 평생 동안 체득한 모든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일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만족도가 높은 책들만 모았다! 엄마와 아이가 모두 좋아하는 초등 위인전 10 고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한국사 기본기 다지기에 좋은 초등학생을 위한 인물 한국사 (길벗스쿨)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 한국사 통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 인물을 통해 역사 전체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한꺼번에 많은 역사를 다지기 힘든 아이들에게 옛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에 집중해 저절로 역사 공부가 되도록 구성했다. 단군에서 김구까지 총 58명의 인물을 다루며 총 5권으로 한국사의 전반을 담았다. 해당 인물의 주관적인 평가는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다루려 노력한 점이 엿보인다. 특히 비판은 물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인물 평가까지 실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어린이 책 분야에서 처음 시도된 평전 한겨레 인물 탐구 시리즈 (한겨레아이들) 위인전 하면 보통 남다른 어린 시절로 시작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린이 책으로는 처음으로 인물과 시대를 다각도에서 바라보는 평전으로 기획된 새로운 스타일의 인물 서적이다. 위인의 뛰어난 일대기 대신 모순된 현실, 방황과 실패, 박약한 내면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한 인물의 성장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사진이나 문서, 역사적 기록 등 풍부한 시각 자료는 물론 주인공이 남긴 말과 글, 동시대 인물의 회고 등 다양한 자료를 실은 것이 특징이다. 김구, 윤동주, 전태일, 간디, 제인 구달,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찰스 다윈, 체 게바라 등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어린 시절 삶의 지표가 되는 롤모델 찾기 Why? People 시리즈 (예림당)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학습만화 와이 시리즈에서 나오는 인물 만화다. 아이들이 닮고 싶어 하는 롤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으로 인물의 실패와 성공에 얽힌 삶의 자세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담기 위해 공과를 가감 없이 다루되 그 판단은 아이들이 직접 할 수 있도록 남겨뒀다. 정치 리더, 경제 경영, 문화 예술, 과학기술, 환경 인권으로 나눠 각 분야 국내외 주요 인물을 고르게 선정한 것이 특징. 만화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인물의 연관성, 돌발 인터뷰 등 학습 정보와 배경지식까지 담고 있다. 인물의 숨겨진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을 바꾼 큰 걸음-만화 인물 평전 시리즈 (돌베개) 인물 이야기를 다루면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당대에 어떤 인물이었으며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한 것이다. 전형적인 위인전이나 직업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되는 인물전도 아니다. 인물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새롭게 해석을 내리는 인물 평전으로, 잘못 알려진 부분이나 부풀려진 면모를 가감 없이 벗겨내고 참모습을 다루기 위해 노력한 시리즈다. 예를 들면 링컨이 노예 해방론자와 노예 찬성론자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 등을 흥미롭게 담고 있다.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초베스트셀러 한국 위인전 Who? (다산어린이) 세계 위인전 Who? 1백 권에 이어 한국 위인전 Who? 50권까지 발간한 시리즈. 특히 한국 위인전은 먼 과거가 아닌 근현대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기업인 김택진이나 김연아 선수 등 이름만 들어도 바로 알 만한 인물을 발 빠르게 담아내 아이들로부터 반응이 좋다. 이미 세계 위인전 Who?는 3백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리며 국내 위인전 시장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출판 사상 최초로 미국 초등학교 부교재로 채택되는 성과까지 이뤄냈다. 재미는 물론 내용의 차별화까지 이뤄 엄마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학습만화 시리즈로 평가받고 있다. 단행본 못지않은 다양한 구성 지인지기 인물이야기 (그레이트 북스) 총 80권으로 이뤄진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마치 단행본처럼 다양성을 갖춘 점이 눈에 띈다. 아빠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 미술관을 탐방하는 방식, 아이가 숙제로 준비한 리포트 방식 등 각 권마다 아이들이 인물에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컨셉트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인물의 면면을 완벽하게 그려내기보단 부지런한 마리 퀴리, 지기 싫어했던 피카소, 수집광 다윈처럼 취미나 성격이 사람을 변화시킨 사연을 담고 있어 인물 캐릭터가 보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 장점. 아이들의 공감도가 높아서 위인전 입문서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역사의 기본기를 다지기에도 좋다.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솔루토이 인물 (교원)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엄마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시리즈다. 처음 책을 보면 감각적이며 완성도 높은 일러스트에 감탄할 정도로 작은 부분까지 많은 공을 들인 티가 난다. 크게 인성과 진로로 구성을 나눴으며, 다양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몰입도를 높이고 주제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사고력을 높여주는 교과 통합 활동을 통해 심화된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게 한 점도 특징. 본문에 소개한 직업 분야 중 또 다른 직업을 가진 인물의 삶을 다룬 별책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교과서 속 인물 정보를 충실하게 담아낸 바투바투 인물이야기 (웅진씽크빅) 위인전은 딱딱하고 지루한 책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업적 나열이 아닌 아이들이 인물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을 만한 포인트를 군데군데 배치한 점이 인상적이다. 가야금의 멋을 세계적으로 알린 황병기, 영혼의 자유를 꿈꾼 이사도라 던컨, 사람을 사랑한 혁명가 체 게바라 등 기존 전집에서 다루지 않은 새로운 인물이 다수 포함됐다. 인물 앨범, 인물 수업 등의 코너를 통해 다양한 사진과 부가 정보를 충실히 실어 학습 효과를 높였다. 교과과정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따로 구성해놓은 점도 엄마들의 높은 점수를 살 듯. 인물을 통한 멘토링과 역사 공부까지 가능한 눈으로 보는 한국 인물 (교원) 본책 40권과 별책 5권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위인들을 과학자, 애국자 등 5개 영역으로 나눠 다뤘다. 허준, 장영실, 정약용, 이휘소, 김순권, 김수근 등 눈에 띄는 업적을 쌓은 인물을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담은 것이 특징. 인물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은 물론 당시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실적인 일러스트가 인상적이다. 글의 양이 제법 되는 편이라 초등학교 저학년보다는 고학년에게 도움이 되는 전집이다. 특히 앱 형태로 인물의 일생과 역사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꾸며 역사 공부하기에 좋다. 멕시코와 브라질에 그림책 한류 바람을 일으킨 탄탄 피플인피플 (여원미디어) 4년 연속 브라질과 멕시코 초등학교 부교재로 채택돼 남미에 뜨거운 한류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특히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의 일대기를 다룬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죄수’는 전 세계 출판 관계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지난 10년간 국제 그림책 도서전에서 다수의 상을 받은 그림책 출판사답게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차별화된 일러스트도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몫한다. 주요 정보가 한눈에 들어오는 세련된 디자인과 입체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이 여느 위인전과 차별화를 이룬다. Mini Interview “위인전을 통해 역사를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고력을 형성할 수 있어요” 한대규(시흥 도창초등학교 교사·「스토리텔링 초등한국사 교과서」저자·초등역사교사모임회원) 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요즘 아이들의 위인전 읽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안 그래도 도서관 사서 선생님께 여쭤봤는데 초등학교 저학년보다는 중·고등학생들은 제법 읽는 편인데 초등학교 아이들은 거의 위인전을 읽지 않는다고 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위인전집 위주로 열심히 읽는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정말 달라졌어요. 학교 현장에서도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고요. 다만 교육 과정과 관련해 필요한 사항이 있을 때는 따로 숙제로 내는 경우가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숙제를 하기 위해 위인전을 읽는 대신 인터넷에 검색하면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더욱 멀리하는 것 같아요. 위인전을 많이 읽으면 정말로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될까요? 물론이죠. 사실은 요즘 제가 위인전을 집필 중인데, 아이들도 사건이 아니라 위인을 중심으로 역사를 공부하면 참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했어요. 동시대에 살았던 위인들은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기도 하는데, 가령 백제에는 의자왕, 계백, 윤충, 고구려에는 보장왕, 연개소문, 양만춘 그리고 신라에는 태종 무열왕(김춘추), 김유신, 관창 등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며 역사를 만들어요. 위인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인과관계를 파악하게 되요. 이렇게 인물과 인물을 엮어서 보면 삼국시대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오고, 역사가 어려운 암기과목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어요. 위인전을 선택할 때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면요? 인물이 중심이되 비교적 객관적으로 풀어주는 내용의 책을 선택하는 게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한 인물을 치우침 없이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는 평전을 추천하고요. 읽고 난 뒤 위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활동 거리를 담고 있는 책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돼요. 예를 들어 「광개토대왕」을 읽고 난 뒤 ‘고구려는 중국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광개토대왕은 왜 연호를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다시 한번 책 내용을 되새겨보는 거죠. 또 책을 읽다 보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용어나 지명 등이 나오는데 그 옆에 부연 설명이 있는 책으로 고르세요. 지도나 연표, 도표 등이 함께 있으면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학습적 효과를 높여줘요. 요즘엔 히틀러나 스탈린 등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들의 책도 있던데요.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양면의 칼날이 있게 마련이죠. 아무리 부정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배울 점은 있어요. 그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든지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고 봐요. 위인전이 그 사람을 본받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비판적인 시각을 통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아요. 다만 아직 역사적인 평가가 끝나지 않은 인물의 책을 읽을 때는 주의해야 해요. 예를 들어 안철수 의원은 기업인으로서의 평가와 정치인으로서의 평가가 아직 엇갈리는 상황이에요. 이렇듯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진로 교육적인 측면에서 읽기를 추천해요. 초등학생은 위인전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먼저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인물 위주로 읽으면서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게 좋아요. 그렇게 하나둘 읽으면서 배경지식을 쌓는 거죠. 유관순, 이순신, 세종대왕 등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위인들이 적합해요. 반면 초등학교 고학년은 교육과정에 나온 인물들 위주로 보는 게 좋아요. 교과서에 어떤 책을 참고했는지 목록이 나오는데 그걸 토대로 위인전 목록을 꾸리면 도움이 될 듯해요. 저학년 때 유명한 위인들을 다 읽었다면 고학년 이상부터는 근현대사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인물 위주로 읽는 것을 권해요. 혹은 인물에 대한 접근을 바꿔 다르게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예를 들어 꿈을 주는 위인, 위기를 극복한 위인, 리더의 본보기가 되는 위인 등 주제별로 나눠 인물을 다루는 책들을 읽는 방법도 있어요. <■글 / 이선희(프리랜서) ■사진 / 김성구, 안지영 ■도움말 / 한대규(시흥 도창초등학교 교사·초등역사교사모임 회원)>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