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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91 건 검색)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윤석열을 즉각 체포하라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윤석열을 즉각 체포하라
2024. 12. 30 20:57오피니언
... 5·18민주항쟁, 6·10항쟁과 노동자대투쟁, 2016년 촛불혁명을 이어 ‘1000만 민주항쟁·빛의 혁명’으로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집중하고 모아가야 할 긴급한 역사의 시간입니다. 송경동 시인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송경동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박정혜·소현숙 힘내라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박정혜·소현숙 힘내라
2024. 12. 02 20:49오피니언
... 않는다. 이래저래 거리로 나가야 할 일이 많아지는 이 겨울이 춥다. 하지만 그 고난과 투쟁에 함께하려는 뜨거운 걸음들도 여전히 분주한 시대이니 “박정혜, 소현숙 힘내라”. 송경동 시인 ...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송경동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다시, 연대와 희망을 노래한다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다시, 연대와 희망을 노래한다
2024. 11. 04 21:11오피니언
.... 다시 또 한번 역사의 격변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는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때, 앞장서 노래 부르는 그들과 함께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을 펼쳐보는 아름다운 날이 될 겁니다. 송경동 시인 ...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송경동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김남주 30주기 ‘해남집회’를 다녀와서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김남주 30주기 ‘해남집회’를 다녀와서
2024. 10. 07 20:08오피니언
.../ 찔레꽃은 어떻게 바위를 뚫고/ 가시처럼 번식하던가.”(‘잿더미’ 중) 추억하는 것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을 터이므로 다시 새로운 변혁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할 때이다. 송경동 시인 ...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송경동

스포츠경향(총 1 건 검색)

[홍선애·김성신의 북톡카톡] 거리의 시인 송경동의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홍선애·김성신의 북톡카톡] 거리의 시인 송경동의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2016. 04. 17 18:02 생활
intro ‘북톡카톡 시즌2’의 여주인공 홍선애. 그녀는 빼어난 외모와 뛰어난 진행능력을 보유한 아나운서다. 현재 김성신 출판평론가와 함께 TBS방송국의 서평 프로그램인 <TV책방 북소리>의 진행을 맡고 있다. 카메라 앵글 밖에서의 그녀는 어처구니없을 만큼의 고지식함과 독서에 관한 한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가진, 조금은 엉뚱한 청춘이기도 하다. 책읽기와 사유가 연애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홍선애. 이제 그녀가 책의 바다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다. 꽃중년을 자처하는 어이없는 책동네아저씨 김성신은 그녀의 독서 나침반이다. 두 사람의 즐거운 책 수다, 북톡카톡 쉰다섯 번째 이야기는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송경동 / 창비)이다. 성신:선애는 시를 좋아해? 선애:노래는 음악과 합쳐진 시라죠? 노래를 좋아하니까 저는 시를 좋아하는 것이겠죠?^^ 성신:음… 그래! 그럼 좋아하는 것으로 치지 뭐!^^ 선애:‘시’하면 왠지 어렵고 심정적으로 좀 멀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서 시집을 선뜻 읽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성신: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가 아니라, 시적 언어로 표현하는 문학이니까 익숙하지 않으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조금만 알고 익숙해지면, 시처럼 매력적인 것도 없지. 선애:어릴 땐 저도 시를 많이 읽고 매력도 느꼈는데, 크고 나서는 왜 이렇게 멀어졌을까요? 성신:아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우리의 시적 사유를 허용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어. 시라는 것은 아주 짧은 문장, 때로는 단 하나의 단어로도 우리를 한도 끝도 없는 상상과 사유의 세계로 몰고 가잖아? 선애:아! 그렇죠. 그래서 얇은 시집 한 권 읽는데, 몇날 며칠이 걸리기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우리로 하여금 ‘생각 따위는 하지 말고 빨리 일이나 해라!’ 이렇게 강요한다는 거죠? 성신:바로 그렇지! 순식간에 내 말을 파악하네! 똘똘해라~^^ 그럼 내가 ‘시’라는 것을 좀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설명해 볼까? 선애:오! 좋아요~ 시가 좀 더 쉬워지면 좋을 것 같아요. 성신: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잖아? 그래서 서로 소통을 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있는데, 이것은 본능과 같은 거지. 생각해 봐. 사람이 죄지으면 가둬서 소통을 못하게 만들잖아? 그러면 굉장한 고통을 느끼게 되지. 그래서 그게 형벌이 되는 거고. 선애:아! 그렇죠. 성신:그런데 인간은 언어라는 것을 만들어 소통에 쓰고 있잖아? 선애:그렇죠. 거의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언어로 하죠. 성신:여기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한번 머리에 떠올려 봐. 만약 선애가 오늘 밤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봄날,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는 거야. 선애:눈 감고 상상하는 타이밍인가요?^^ 성신:계속 감고 있으면 내가 쓰는 톡을 볼 수 없으니, 실눈이라도 뜨던지.^^ 아무튼 그렇게 창가에 앉아 있는데, 그날이 4월16일인 거야. 세월호 때문에 아이들이 세상을 떠난 바로 그날…. 선애:아…! 416… 숫자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성신:그래… 왜 안 그렇겠어. 자, 계속 떠올려 보자고. 그럼 그 시간이 선애에게도 아주 특별한 순간이겠지? 선애:그렇죠. 아주 복잡한 심경이네요. 성신:그 순간 선애가 느낀 바로 그 복잡한 생각과 특별한 감정을 누군가에게는 말해주고 싶어지지 않아? 선애:이 먹먹한 감정을 누군가한테 전달한다? 그렇죠! 함께 슬퍼하면서 다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자고,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을 떠난 아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요. 성신:그래 맞아!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최소한 인간이라면 말이야. 자 그런데 말이야…, 그렇다면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비 내리는 어느 봄날의 밤, 선애는 창가에 앉아서 벚꽃 잎이 빗방울에 떨어지는 것을 보다가 문득 세월호 아이들을 떠올렸어. 그러면서 엄청난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지. 자 이제 이 순간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어? 한번 말해봐. 선애:아휴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눈을 감고 떠올려 보니, 벚꽃 잎이 빗물에 젖어 길을 덮고 있고, 그 꽃잎은 빗물에 쓸려 흘러가고 있는 영상이 떠올라요. 떨어진 꽃잎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얼굴 같아요. 그런데 표현이 참 어렵네요. 성신:너무나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서 그럴 거야. 자 그럼 이제, 그 모든 감정을 모아서 ‘그날 밤’이 대체 선애에게 ‘어떤 밤’이었는지를, 가장 짧으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해봐. 선애:아름다운 벚꽃 잎이 비에 떨어진다. 거리를 흐르던 꽃잎들은 이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몸부림치며 들어간다. 처연한 봄날의 흰 꽃잎들…. 성신:잘했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겠지? 선애:아! 그러네요. 너무나 크고 복잡한 마음을 가장 짧게 표현하려니까 절로 시처럼 되네요. 어설프지만… ^^;; 성신:전혀 어설프지 않아. 나는 선애가 쓴 그 문장으로 아주 섬세하게 선애의 생각과 마음을 전달받을 수 있었어. 그날 밤 선애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며, 가장 슬픈 생각을 했던 거야. 비에 떨어져 흐르다 하수구로 빨려들어가는 벚꽃 잎을 보며 아이들의 죽음을 생각한 거야. 놀랍지 않아? 그 짧은 문장으로 그 많은 이야기들을 가장 온전하게 전달한 것 말이야. 선애:정말… 놀랍네요! 성신:순간의 복잡한 심경까지 담기에 우리의 일상 언어들은 너무나 건조하거나 부족하지. 초등학생 수준의 영어로는 길을 물을 수는 있어도, 사람을 웃게 만들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지. 선애:시라는 것이 괜히 이상하거나 어려운 언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섬세하고 정확한 소통을 위해 그리하는 것이란 말씀이군요. 성신:이것이 시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시에 대한 중요한 오해 하나는 풀 수 있지. ‘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섬세한 것이다.’ 선애:‘어려운 것이 아니라 섬세한 것이다.’ 정말 이해가 쏙쏙이네요.^^ 성신:이 대목은 어떤지 한번 읽어 봐! 어디선가 지금도 문을 긁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외치는 소리 허우적이는 소리 오, 거대한 악마의 입이 사람들을 삼키는 소리 지금도 어느 창가에서 우릴 바라보고 있는 차가운 얼굴들 살려줘요. 엄마, 아빠 이 죽음의 선실에서 나가게 해줘요 1년이 지나도 올라오지 못하는 고통의 소리들, 진실의 소리들 도대체 세월호는 어디에 가라앉아 있는가 선애:시네요? 누가 쓴 무슨 시죠? 성신:이것은 이번 4·16 2주기 추모집회가 열린 광화문 광장에서 송경동 시인이 써서 낭독한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시의 한 대목이야. 선애:‘거리의 시인’ 또는 ‘노동자 시인’이라고 불리는 송경동 시인 말씀이군요. 성신:읽으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어? 선애:읽자마자 가라앉던 세월호가 눈앞에 그려지면서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성신:그렇지? 참을 수 없을 만큼 슬프고, 너무나 슬픈 나머지 가슴에서 분노가 일지? 그럼 이 부분을 한번 다시 보자고. “도대체 세월호는 어디에 가라앉아 있는가.” 선애:왜요? 성신:세월호가 어느 지점에 가라앉아 있는지를 송경동 시인이 지금 몰라서 묻는 게 아니지? 선애:그렇지요. 성신:그런데 그 단 하나의 문장으로 세월호가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문제로 환기되지 않아? 우리들이 지금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묻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성신:도대체… 세월호는… 어디에… 가라앉아…있는가… 다시 한 번 곱씹어 읽어보니 정말 그래요. 성신:단 하나의 짧은 문장이지만, 우리에게 정말 엄청난 분량의 말을 건네고 있는 셈이지. 선애:순식간에 너무 많은 말을 걸어서 일일이 담을 수도 없을 정도예요. 성신:이게 바로 시의 힘이야! 그냥 쉽게 말해도 될 것을, 왜 굳이 시라는 이상한 형식을 통해 그렇게 이상한 언어로 어렵게 말하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에 대한 답이지. 성신:즉 시는 일상적인 언어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인간의 가장 섬세하고 면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언어적 수단이자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선애:와! 이렇게 시의 힘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선생님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느낌이 ‘훅’하고 오네요. 성신:쑥스럽게 왜 그래! 아무튼 난 이번 세월호 2주기 문화제에 나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일순간에 사무치게 만든 송경동 시인 정말 좋아해! 선애:‘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시, 저도 읽어 봤어요. 처절한 이 시대를 처절함 그 자체로서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성신:맞아! 자본과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맨몸으로 저항하는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뜨거운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해온 시인이 바로 송경동이지! 선애:혼자 읽었을 때는 거친 언어들과 격앙된 목소리가 느껴져서 선뜻 마음이 가는 시는 아니었는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전혀 달라 보이네요. 성신:그는 늘 거칠게 항의하고 소리 높여 시대의 불의를 야단치지만, 송경동 시인의 목소리는 본질적으로 따뜻하지! 한마디로 그의 시편들은 늘 뜨거운 인간애를 보여주니까! 선애:노동시인으로도 불리지요? 성신:나는 그런 규정된 말들이 싫어! 동의하지도 못하겠고! ‘노동시인’이 대체 뭐야? 그것은 마치 ‘님의 침묵’의 한용운을 ‘연애시인’으로 규정해 놓는 것과 같지 않아? 선애:아, 역시 비유의 달인~! 그렇게 설명하시니 정말 끔찍한 규정이네요. 성신:또 박노해 시인을 ‘섹스시인’이라고 하는 것과도 같아! 선애:으잉? 그건 무슨 소리예요? 성신:박노해 시인의 대표작이 뭐야? 선애:‘노동의 새벽’이죠. 성신: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 아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이러다가 오래 못 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여기서 ‘밤일’을 섹스로 규정하면, 이 시가 어떻게 되겠어? 선애:하하하하. 성신:누가 선애에게 ‘예쁘기만 한 애’라고만 말하면, 기분 더럽지 않겠어? 예쁜 건 사실이지만,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니잖아? 총명하고 정의롭기까지 하지! ^^ 선애:ㅋㅋㅋ 확실히 사람을 함부로 규정짓는 건 위험하다는 걸 알았어요~! 성신:나는 송경동 시인을 ‘뜨거운 휴머니스트 시인’이라고 생각해. 선애:저도 동의! 그럼 우리끼리라도 송 시인을 ‘뜨거운 휴머니스트 시인’이라고 부르죠 뭐!^^ 성신: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서 선애가 나를 무엇이라 불러줄지 그것도 궁금하네. ㅋㅋ 선애:그것은 일단 비밀! 저한테 잘해줘 보세요. ㅋㅋ
홍선애·김성신의 북톡카톡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원희복의 인물탐구]박근혜 퇴진 예술행동위 송경동… 한국의 체게바라 꿈꾸는 행동하는 시인(2017. 03. 14 16:36)
2017. 03. 14 16:36 사회
솔직히 기자는 시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형이 그랬지만 밤낮 없이 술을 마시며 보통 사람들이 보거나 느끼지 못하는 그 무엇을 짚어내는 작업을 한다. 게다가 그 고통스런 작업은 별로 돈도 안돼 경제적으로 무능력했다. 같이했던 기자 중에도 등단한 시인이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섬세했지만 거친 취재전선에서는 유약했다. 문학적 소양이 없는 본 기자는 그래서 시인을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촛불혁명을 보면서 이런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물론 과거 을 쓴 김지하 시인, 을 쓴 양성우 시인, 을 쓴 박노해 시인 등이 시를 통해 독재와 맞선 경우가 있다. 이번 촛불혁명에서 세월호 유족·노동자·농민 못지않게 의외로 문화예술인도 집요한 투쟁을 했다. 지금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텐트촌과 문화예술가들 텐트촌, 통일운동가 텐트촌만 남아있다. 문화예술가들은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예술행동위)를 만들어 지난해 11월 4일부터 지금껏 천막투쟁을 하고 있다. 지독한 사람들이다. 이 예술행동위를 기획·총괄한 사람이 송경동 시인(50)이다. 3월의 첫 주, 광화문 일대에는 꽃샘추위에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의 천막은 바람에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굉음을 냈다. 그는 푸석푸석한 얼굴로 기자를 만났다. “힘들다. 많이 추웠다. 늦은 시간 춥고 시끄러운 텐트에서 잔다는 것… 정말 죽을 맛이다. 게다가 지난해 11월부터 일주일 단위로 열린 촛불집회를 하고, 촛불집회 끝나고 광장에 남은 사람들과 새벽 첫 차가 다닐 때까지 같이했다. 주변 청소도 해야 하고… 육체적 한계에 이르렀다.” 지난해 11월부터 텐트투쟁 기획·총괄 그는 ‘죽을 맛’, ‘힘들다’는 단어를 두 번씩이나 썼다. 그는 공사현장 ‘노가다’로 다져진 몸이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천막투쟁의 막바지라 심리적으로 더 그럴 것이다. 문화예술인은 지난해 11월 4일 시국선언에 참여한 800여명과 250개 단체가 예술행동위를 만들었다. 장르별 위원회와 원로·자문회의가 있지만 위원장도 없는 느슨한 조직이다. 매주 화요일 각 장르별 운영위원회를 통해 그 주 활동을 확정한다. 기자가 “시인이나 예술가는 나약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말하자 그는 즉각 “나약하지 않다”면서 반론을 폈다. 그는 “1970~80년대 사회변혁운동에 문화예술인이 주요 역할을 했고, 고초도 많이 당했다”면서 “특히 1만명에 이르는 블랙리스트로 문화예술인을 사찰하고 검열하고 불이익을 준 행위는 명백하게 헌법 22조를 유린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7일 국정원을 서울중앙지검에 직권남용죄로 고발했다. “과거 참여연대 차원에서 고발한 것이 있다. 이번 특검 수사 결과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이 일부 드러났다. 특검에서 국정원 관계자까지 소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수사하지 못한 채 시간에 쫓겨 특검이 해산됐다. 이번에 문화예술계 당사자들이 재수사 촉구와 함께 고소장을 접수시켰다.” 국정원은 2013년 ‘예술위의 정부 비판 인사에 대한 자금지원 문제점 지적’ 보고서를 작성했다. 또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업무수첩(비망록)에는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2014년 10월 2일자), ‘영화계 좌파성향 人的 네트워크 파악 必要 (經濟)’(2015년 1월 2일자)와 같은 대목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 이병기·남재준·원세훈·김성호 전 국정원장을 고발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의 요구는 무엇인가. “우리는 국회에 블랙리스트의 전모를 밝히는 국정조사와 블랙리스트를 방지할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새 정부는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진상규명을 하고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는 정부가 표현의 자유와 헌법을 유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리스트 당사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그는 2015년 ‘촛불연대기’라는 시에서 “미선이 효순이 때/ 처음 촛불을 들었다/ 화염병도 죽창도 아닌 연약한 촛불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착하기만 한 사람들이 싫었다… 단 한 번도/ 민중, 무력 없이 세상이 바뀐 적은 없다고/ 청원으로 민주주의는 성장하지 않았다고/ …”라고 말했다. 평화적인 촛불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의미다. 기자가 “아직 촛불혁명의 진정한 의미가 완수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번 촛불은 현직 대통령을 파면한 의미에서 시 ‘촛불연대기’는 보완돼야 하지 않겠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그는 웃으며 “광장은 늘 진화한다”고 대답했다. ‘위악적’ 학창시절 보내고 노동판 전전 송경동은 이번 천막투쟁에서 거의 매일 ‘노가다’를 했다. 그는 가방에 볼펜이나 노트북이 아닌 ‘타카’(못을 박는 공구)와 칼·노끈 등을 넣고 다녔다. 바람에 날리는 천막을 묶고, 보온재를 두르고 난로를 피우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는 이 날도 천막 안은 세차게 부는 바람에 매우 시끄러웠다. 이 와중에 그는 ‘우리 안의 폴리스라인’이라는 제목의 딱 한 편의 시를 썼다. “이제 그만 그 거대한 무대를 치워주세요/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게/ …이제 그만 연단의 마이크를 꺼주세요/ 모두가 자신의 말을 꺼낼 수 있게/ …전체를 위해 노동자들 목소리는 죽이라고, 소수자들 목소리는 불편하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내가 비로소 말할 수 있을 때/ 내가 나로부터 변할 때/ 그때가 진짜 혁명이니까요.” 이 시는 뒤늦게 가담해 스포트라이트에 혈안이 된 정치인이나 정치를 위해 경제·노동·통일 등 다른 모든 요구는 자제해야 한다는 일부 화이트칼라의 위선 등 그가 이번 촛불혁명의 현장에서 목격한 단면을 예리하게 잘랐다. 실제 촛불집회를 관찰해 보면 세월호 유족들은 ‘처절함’이, 정치인들은 당 지도부나 카메라를 의식하는 ‘눈치’가, 노조원들은 ‘화끈함’이 보인다. 뒤늦게 가담한 화이트칼라 시민단체는 ‘유식을 떨고’, 문화예술인들에게서는 ‘기발함’이 보인다. 송경동은 1967년 전남 보성 벌교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님은 평범한 5일 장터에서 평생 일만 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위악적’(僞惡的)이라는 다소 생경한 단어를 사용해 설명했다. 위악적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일부러 나쁜 사람인 척하는 것’이다. 원래 바탕은 착한데 일부러 객기를 부렸다는 것으로 이해됐다. 그 어린 객기가 도를 넘어 소년원에 2년이나 있기도 했다. 문제 많은 학창시절이었지만 유일하게 그를 칭찬한 사람은 중학교 국어선생님이었다. 봄비를 주제로 시를 쓰라는 숙제에 ‘뭔지도 모르고’ 끄적거려 제출했다. 송경동은 “그때 처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잘했다’는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다”고 기억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할 일이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용접도 하고, 배관도 하고, 형틀목공도 했다. 물론 자격증도 없었다. 그렇게 ‘노가다’ 시장에서 살던 그는 1988년 ‘큰 물’에서 놀겠다고 서울로 올라왔다. 첫 상경이었다. 그는 고전무용을 배우기도 했지만 서울 뒷골목을 떠돌며 스스로의 표현대로 ‘반 건달’처럼 살았다. 그러나 냉혹한 서울은 그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광양제철소와 여수산업단지 등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문단 누구의 추천이나 신문사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 아니다. 그는 “1991년 다시 서울에 올라와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데 막연히 ‘문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마침 구로노동자문학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가 문학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남주 시인, 이시영 시인, 정희성 시인 등에게 시를 배웠다. 3월 7일 송경동 시인(왼쪽에서 세 번째)이 백기완 선생 등과 함께 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채원희 제공 전통적 등단 절차 거치지 않은 ‘야메 시인’ 그는 “그때 이름을 알리기 위한 등단 절차는 꺼리다 못해 경계했다”면서 “그런 면에서 나는 ‘야메(일본어 ‘야미’로 ‘합법적이지 않은, 정통이 아닌’의 의미) 시인”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하기야 대학 은사의 추천이나 신문사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 등 문인의 반열에 오르는 ‘정통 절차’는 그에게 사치였을 것이다. 솔직히 시나 소설 등 문학은 잘 쓰면 됐지 무슨 자격절차가 필요할까. 우리에게만 있는 문단에서의 등단 제도는 계보를 만들거나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승부를 가리는 ‘과거 시험병’에 불과하다. 이렇게 시를 배운 그는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발표한 글은 2006년 시집 (삶이보이는 창), 2009년 시집 (창비), 2011년 산문집 (실천문학사)로 묶여 나왔다. 천상병 시문학상(2010년), 신동엽창작상(2011년)도 받았다.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라는 시가 있다. 자신의 시에서 주된 주제와 의미는 무엇인가. “지하철 공사장 일을 나갈 때 ‘오늘 내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 죽어간 사람을 많이 봤다. 그러나 단순히 노동현장에서만 산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산재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계부채가 1300조원이 넘은 현실에서 죽어라 일해도 빚만 늘고,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쌓이는 이 왜곡된 사회가 바로 산재의 결과다. 청년들은 N포세대로, 결혼을 해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정이 파탄나고, 사람관계가 파괴되는 이 사회가 바로 산재다. 팔다리가 부러지는 것만 산재가 아니라, 사회·삶 자체가 산재다.” 그래서 ‘자본주의 추방’을 주장하는가.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요즘 보수신문도 자본주의 4.0을 말하고, 다보스포럼도 이런 악질적 자본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갈아 엎어야 할 세상’이라는 표현도 그런 맥락인가. “많은 사람이 요구하면 판을 엎어야 한다.” 그는 노동과 산재를 소재로 시를 쓰면서 단순히 시 세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실제 현실에서 행동한다. 효선·미선 시위는 물론 평택 미군부대 이전 반대 투쟁에 나섰다. 2009년 용산참사 때 구속된 철거민들과 함께했고, 2010년 한진중공업 크레인 고공농성을 응원하는 희망버스를 주도해 구속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행동하는 시인’ ‘저항하는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기자의 ‘과격한 시인이라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그는 정색을 하고 해명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는 풍요롭고 문화적인 운동을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체 게바라의 시(새로운 인간) ‘진정한 혁명은 인간 내부에 있다/ 이웃에게 탐욕을 부리는 늑대 같은 인간은/ 혁명가가 될 수 없다/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사랑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처럼 모든 일은 과정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도 문화적으로 싸웠고, 평택 대추리 투쟁도 문화·예술 모임을 통해 표현하려 했다. 희망버스도 아름다운 것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번 광화문 텐트촌도 따뜻하고 풍요롭다. 이 정도가 과격이라면 사람들이 웃는다.” 송경동은 르포 작가 박수정과 혼인했다. 부인 역시 노동현장, 아픔의 현장을 기록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부부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기자가 ‘시를 써서 생활이 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주변에서 도와주는 지인들이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면서 “대신 소박한 밥상과 늘 바닥 수준의 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아들이 있다. 고3 수험생 자식을 둔 ‘무심한 아비’는 광화문에서 4개월 동안 농성을 했다. 아들은 피아노를 전공한단다. ‘돈이 많이 들어가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이번 농성이 끝나면 부천 기계공단에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체 게바라를 동경하는 송경동도 보통의 아비였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주목! 이 사람]송경동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건립추진위원 “먹고 자고 쉬는 쉼터 하나 있으면”
[주목! 이 사람]송경동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건립추진위원 “먹고 자고 쉬는 쉼터 하나 있으면”(2016. 07. 19 11:46)
2016. 07. 19 11:46 사회
/ 서성일 기자 시작은 기륭전자였다. 2005년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갑작스럽게 해고를 통보한다. 그해 10월 시작한 천막농성은 1895일간 지속됐다. 오랜 싸움 끝에 2010년 ‘불법파견 노사합의’가 이뤄지면서 노동자들이 회사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사업을 몰래 처분한 후 야반도주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은 다시 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건립추진위원인 송경동 시인은 “10년이 넘게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는데 결국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비단 기륭전자 노동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처지와 다를 바 없었다. 10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무언가를 함께해야 하지 않겠냐는 논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방법을 모색하던 중 공장에서 쫓겨난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잠깐 살았던 조합사무실을 겸한 방이 떠올랐다. 거리에서, 천막에서, 고공에서 투쟁하며 한뎃잠을 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잠깐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건립은 그렇게 시작됐다. ‘꿀잠’은 송경동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20여년 전 배관공·용접공으로 일했던 시인은 고된 노동을 시로 표현했다. “전남 여천군 소라면 쌍봉리 끝자락에 있는/ 남해화학 보수공장 현장에 가면, 지금도/ 식판 가득 고봉으로 머슴밥 먹고/ 유류탱크 밑 그늘에 누워 선잠 든 사람들 있으리.” 잔업과 철야로 늘 잠이 부족한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에 부리나케 밥먹고 잠깐 눈을 붙일 수밖에 없는 고단한 현실을 담은 시다. 송 시인은 지금의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은 그때보다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그 경험이 20년 전인데, 그나마 당시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말 자체가 한국 사회에 없었다. 지금은 10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겨났다. 더 비참한 사회가 된 것이다.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미래가 없는 삶을 산다. 불안하기 때문에 잠 하나 편히 잘 수가 없는 삶이다.” ‘꿀잠’ 건립추진위원회는 10억원의 모금액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 3억5000만원의 기금이 모였다. 얼마 전에는 문정현 신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나섰다. ‘꿀잠’ 건립추진위원회의 요청으로 문정현 신부는 새김판 77점을, 백기완 소장은 붓글씨 36점을 내놓았다. 내놓은 작품은 전시회를 통해 판매됐고, 1억5000만원의 기금이 모였다. 5억원이 모였으니 절반이 모인 셈이다. 기금모금연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정현 신부, 백기완 소장의 소식이 알려지자 박재동 화백, 신학철 화백 등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담은 잡지 도 기획 중이다. 노동·사회 담당 기자들에게 무료기고를 받고, 잡지 판매 수익금 전액은 ‘꿀잠’ 건립기금에 보탤 계획이다. 송경동 시인은 “‘꿀잠’이 최소한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수백 일 수천 일 동안 길거리에서 한뎃잠을 자야만 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하루라도 편안하게 자고 먹고 빨래도 하고 쉬기도 하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꿀잠’은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꿀잠’에 모여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공유하면서 이후의 싸움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모색해보는 자연스러운 단결과 연대의 공간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목! 이 사람
[사회]송경동, 정진우 수감 뒷이야기
[사회]송경동, 정진우 수감 뒷이야기(2012. 01. 10 16:57)
2012. 01. 10 16:57 사회
ㆍ수감 50여 일, 가족들을 통해 듣는 옥중근황 1월 6일로 ‘희망버스’의 기획자 송경동 시인(45)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43)이 옥에 갇힌 지 50일째가 됐다. 송 시인의 아내인 박수정 작가는 14살 난 아들을 데리고 열흘에 한 번 정도 송 시인을 면회하고 있다. 부산구치소에 갈 형편이 되지 않을 때는 근처 교정시설에서 화상접견으로 남편을 만난다. 지난해 11월 15일, 송경동 시인(마이크)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맨 오른쪽)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서 경찰에 출두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송 시인과 함께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해온 박 작가는 “남편이 구속되니까 용산참사, 쌍용차 파업, 유성기업 파업에서 억울하게 갇힌 양심수 분들이 더 생각났다”고 말했다. 특히 박 작가는 용산참사 수감자들을 기억했다. 송 시인은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 당시 구속된 철거민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 앞장선 바 있다. “희망버스는 승객들의 말과 표현” 현재 송 시인은 옥중임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에 말을 걸고 있다. 그가 보낸 편지는 언론을 타고 사람들에게 전달됐고, 세상은 그의 노력을 기억했다. 송 시인은 민주시민언론연합에서 시상하는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송 시인은 옥중편지 형식으로 12월 24일 보낸 수상소감에서 “이 상은 내 개인이 받아서는 안 되는 상이다. 희망버스는 승객 한 사람이 한 사람씩의 살아있는 미디어처럼 움직였던 수많은 말과 표현의 버스이기도 했다”고 적었다. 이어 송 시인은 기성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비판했다. “언제부턴가 기성 언론들에 거리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호흡하는 살아있는 말들, 표현, 행동들은 전혀 반영이 안 된다. 집회시위를 다루는 사회면이나 사진기사에 가끔 한두 줄 반영될 뿐이다.” 사실 정진우 실장에 비하면 송 시인은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편이다. 정 실장의 아내인 김선아 진보신당 부대표는 “남편에 대한 보도가 적은 데 대해 사실 섭섭한 마음도 있다. 특정 정당의 당직자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배제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부부이자 같은 당의 당직자이기 때문에 김 부대표는 주로 당직자들과 함께 남편에게 면회를 갔다. 면회 시 대화 내용도 노회찬·심상정·조승수 전 진보신당 대표의 탈당 이후 어려워진 당의 사정에 관한 것이었다. 정 실장 부부에게는 13살, 12살 난 두 아들이 있다. 김 부대표는 “가끔 애들이 아빠를 빨리 보고 싶다고는 하지만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대표는 정 실장 구속이 진보신당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희망버스는 우리 당의 사업이기도 했다. 정당 당직자가 당 방침을 수행한 것을 가지고 탄압하는 것은 공식적 정당활동에 대한 도전이다”라고 말했다. 김 부대표는 “두 사람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리는 17일 제출할 탄원서를 만들고 있다. 희망버스뿐만 아니라 용산참사 등 다른 양심수들이 당장 사면될 수 있도록 진보신당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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