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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90 건 검색)

시리아 혼란·폭력 여전한데…“난민들 돌아가라”는 유럽국
2024. 12. 10 20:42국제
... 밝혔다. 독일은 유럽국 중 가장 많은 시리아 난민을 수용한 국가로, 독일에 현재 계류 중인...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지자 귀국을 택하는 시리아 난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시아파인...
시리아 난민 망명심사 중단하는 유럽··· 극우 “내전 끝났으니 돌아가라”
시리아 난민 망명심사 중단하는 유럽··· 극우 “내전 끝났으니 돌아가라”
2024. 12. 10 14:21국제
... 밝혔다. 독일은 유럽국 중 가장 많은 시리아 난민을 수용한 국가로, 독일에 현재 계류 중인...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지자 귀국을 택하는 시리아 난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시아파인...
“오븐 속에서 사는 것 같아요” 시리아 난민의 더 괴로운 폭염
“오븐 속에서 사는 것 같아요” 시리아 난민의 더 괴로운 폭염
2023. 07. 17 16:26국제
... 전 세계적으로 구호 수요가 많아지면서 시리아 난민 지원 규모를 줄이고 있다. 알아사드... 중동 국제 무대에 복귀하면서 이웃 국가들에서 시리아 난민을 지원하는 데 부담스러워하는 기류도...
시리아 난민캠프 억류 호주 어린이 “학교에 가보지도, 풀밭에 누워보지도 못했어요”
시리아 난민캠프 억류 호주 어린이 “학교에 가보지도, 풀밭에 누워보지도 못했어요”
2023. 06. 01 22:02국제
... 하사카주에 있는 알홀 난민캠프의 모습. 알로즈 수용소는 알홀 캠프와 함께 시리아 최대 난민촌이다. 신화연합뉴스 시리아 북부 알로즈 수용소는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스포츠경향(총 14 건 검색)

세계태권도연맹, 시리아 난민 캠프 태권도 아카데미 개관
세계태권도연맹, 시리아 난민 캠프 태권도 아카데미 개관
2018. 04. 02 16:12 스포츠종합
세계태권도연맹(WT)이 요르단 아즈라크의 시리아 난민 캠프에 2일 태권도 아카데미를 공식 개관했다. 아즈라크 난민 캠프는 내전을 피해 시리아를 떠난 난민들을 보호하는 시설이다. WT는 태권도박애재단(THF)과 함께 2016년 4월부터 아즈라크 캠프 내 임시 건물에서 30여명의 난민 청소년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왔다. WT는 더 안정적이고 깨끗한 환경에서 많은 난민 청소년들에게 태권도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공사를 시작해 태권도 전용 건물을 완공해 이날 개관했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2일 요르단 아즈라크의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태권도 아카데미 공식 개관을 축하하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 제공 조정원 WT 총재는 개관식에서 “지난 2년간 태권도 아카데미 수업은 큰 성공을 거뒀다”며 “지난해 11월 처음 검은 띠가 배출됐고, 이젠 새 건물에서 더 많은 청소년이 삶의 의미와 희망을 갖게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태권도연맹
'난민들의 손으로' 리스본 최초 시리아 레스토랑 '메제'
'난민들의 손으로' 리스본 최초 시리아 레스토랑 '메제'
2017. 06. 21 21:59 생활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 최초로 ‘시리아 식당’이 생긴다. 이 식당은 시리아 난민들이 요리사 등 운영 주체가 되어,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질 전망이다. 카타르 언론 알자지라는 리스본에 ‘메제(Mezze)’라는 시리아 식당이 개점 준비를 하고 있다고 21일 보도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메제는 리스본 지역 NGO가 난민들과 공존할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 결실을 보게 됐다. 메제 설립자인 포르투갈인 리타(Rita)는 “중동 음식을 가교로 지역과 난민들이 통합해가는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리스본 최초 시리아 레스토랑 ‘Messe’ 설립자 리타가 알 자지라와 인터뷰하고 있다. 알자지라TV 캡쳐시리아 난민 출신인 파티마가 리스본의 시리아 식당 메제에서 요리에 열중하고 있다. 알자지라TV 캡쳐리스본 최초 시리아 레스토랑 ‘메제’를 운영해갈 난민 출신 요리사와 리스본 기업가 등이 시리아 요리를 보며 기뻐하고 있다. 알자지라TV 캡쳐 이 식당의 요리사는 모두 시리아 난민들이다. 요리사인 파티마(Fatima)는 아직 포르투갈어를 하지 못 한다. 그녀는 2012년 시리아를 떠난 후, 안정적인 생계 대책이 없는 생활을 계속해왔다. 메제는 그녀에게 새로운 장을 열어줬고, 그녀의 가족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파티마는 “포르투갈인들은 우리 음식을 참 좋아했고, 음식을 통해 교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메제에서는 파티마 외에도 모나, 림, 라파트, 루이, 쉬라즈 등 또다른 시리아 난민 출신 여성들이 요리사로 협업할 예정이다. 메제는 포도잎 요리, 타불레, 키베 등 시리아 음식을 판매할 예정이다.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6월 중 개점한다고 메제 측은 밝혔다. 메제 설립을 주도한 파오 어 파오(Pao a Pao)는 포르투갈인 3명과 시리아 출신 대학생 알라 알하리리 등 4명이 만든 NGO로, 특히 난민 문제에 집중한 사회 통합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이 포르투갈의 모금 사이트인 PPL을 통해 올린 메제 프로젝트는 종료일일 지난 5월2일까지 354명에게 2만3025 유로를 모금하여, 목표액인 2만 유로를 초과 달성했다. 모금액은 전액 메제 창업 자금으로 쓰였다.
시리아
한쪽 다리 잃은 시리아 난민 수영선수, 리우 올림픽 성화 봉송
한쪽 다리 잃은 시리아 난민 수영선수, 리우 올림픽 성화 봉송
2016. 04. 27 11:53 스포츠종합
시리아 내전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난민 수영선수가 2016 리우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달렸다. 2012년 시리아 내전 당시 공습에 의해 부상을 당하고 그리스로 탈출한 이브라힘 알 후세인(27)은 27일 UN이 운영하는 그리스 난민 캠프 지역에서 성화를 봉송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유럽 난민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주선한 이날 행사는 세계인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시리아 난민 출신 수영선수 이브라임 알 후세인(오른쪽)이 27일 성화봉송 행사에서 성화를 전달받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매진스의족을 하고 수백 명의 환호 속에 성화 주자로 달린 알 후세인은 “이런 기회를 갖게 돼 영광”이라며 “모든 난민 출신 선수들에게 캠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안주하지 말고 꿈을 향해 노력하자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IOC는 난민의 성화 봉송에 이어 오는 8월 리우 올림픽에서도 5~10명의 난민 출신 선수들을 IOC 깃발 아래 출전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27일 아테네에 도착하는 성화는 29일 스위스 제네바, 30일 스위스 로잔의 IOC 본부를 거쳐 남미 대륙으로 향한다.
난민올림픽감염자
안젤리나 졸리·조지 클루니, 시리아 내전 5주기 맞아 난민 가족 방문
안젤리나 졸리·조지 클루니, 시리아 내전 5주기 맞아 난민 가족 방문
2016. 03. 16 18:57 연예
안젤리나 졸리가(왼쪽에서 네번째) 15일(현지시간) 레바논에서 할라(세번째)와 그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UNHCR)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조지 클루니가 시리아 내전 5주기를 맞아 난민들을 돕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안젤리나 졸리는 UN 친선대사 자격으로 레바논 난민촌을 방문해 시리아 내전으로 부모와 떨어진 소녀를 만났고, 조지 클루니는 인권 변호사인 부인과 함께 독일로 피난온 난민 가족들을 방문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15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카 계곡의 난민촌을 방문해 세계 지도자들에게 수백만에 달하는 난민들을 돕기 위해 나설 것을 호소했다. 2001년부터 UN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친선대사로 활동중인 졸리는 2014년 만났던 시리아 난민 소녀 할라의 가족과 재회했다. 부모를 잃고 다섯 남매와 난민촌에서 생활중인 할라는 시리아로 돌아가 어머니의 무덤 위에 헌화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고, 소녀의 남동생인 니메르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직업 교육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졸리는 지난해에도 남편 브래드 피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사일로를 데리고 할라를 방문해 같이 식사를 하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낸 바 있으며, 이번 방문에서 사일로의 부탁을 받아 할라에게 그림도구를 선물했다. 졸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레바논에 돌아올 수 있어서 기쁘다. 백만이 넘는 시리아인들을 받아준 레바논인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오늘 방문해 대화를 나눈 시리아 난민들은 예외없이 모두 고향에서 전쟁이 끝나 안전해지는대로 귀향하고 싶다는 욕구를 이야기했다. 시리아 내전 5주기를 맞아 오늘 나는 시리아에서 UNCHR을 도와 내가 알게 된 난민 가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볼 수 있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배우 조지 클루니와 인권변호사 아말 클루니 부부는 국제구호위원회(International Rescue Committe)가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영상에 출연, 독일에 피난온 세 시리아 난민 가족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들 가족은 감옥에서 고문당한 경험, 폭격을 피해 자녀들을 집에 숨겼던 경험 등을 이야기했고, 조지 클루니 부부 역시 그들의 경험을 난민들과 공유하며 공감을 표시했다. 조지 클루니의 가문은 노동착취에 시달린 끝에 아일랜드에서 쫓겨나 미국에 정착하게 됐고, 레바논에서 태어난 아말 클루니 역시 1980년대 레바논 내전으로 영국으로 이주하게 된 난민 가족 출신이다. 조지 클루니는 “우리 국가는 이민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잊고 있다”며 난민 문제에 각성할 것을 촉구했다. 2011년 발생한 아사드 정권과 반군의 전쟁에 IS까지 개입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사망자는 최소 25만명, 최대 47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UNHCR은 시리아 인접 국가에 480만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터키가 270만명, 유럽 국가들이 100만명 가량의 난민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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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시리아 난민과 엘레니 카레인드로의 음악(2015. 09. 15 17:14)
2015. 09. 15 17:14 문화/과학
나는 지난주 음악 강의에서 엘레니 카레인드로의 비장하고 애절한 음악들을 함께 들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난민, 그 디아스포라를 절박하게 다룬 이 영화와 음악들을 통해 무엇을 보았느냐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에 이어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여성 미술가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뉴스를 본 적 있다. 2013년 6월 초 MBC 뉴스데스크의 한 장면이다. 장르를 막론하고 일단 해외 유수의 영화제나 도서 박람회 또는 비엔날레 같은 곳에서 작가 몇 명이 움직였다 하면 나오는 이른바 ‘국뽕’ 스타일의 뉴스 멘트다. 김수자, 디아스포라 주제로 퍼포먼스 그 뉴스는 미술가 양혜규와 김수자를 다루면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식으로 스포츠 대회에 출전한 듯 보도했다. 작가의 작품, 그 주제, 그 주제의 표현방식에 대한 리포트는 엉성하다. 김수자 작가가 필사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구원의 작업도구들 즉 바늘, 실, 천, 보따리 등은 “한국적 소재”라고 설명되고, 이 도구로 표현된 작품에 대해서도 “어딘가로 떠나는 여성의 뒷모습” 정도로 소개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무리 멘트. “국경을 넘나드는 우리 작가의 활약은 K아트, 나아가 한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 순간 양혜규나 김수자 같은 작가는 자신들이 온몸을 던져 구사해온 필사적인 작품세계 대신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성공신화의 아이콘으로 전락한다. 기자는 김수자 작가가 이 세상의 폭락사태를 어루만지고자 선택한 제의와 구원의 양식인 보따리를 다루면서 “김수자 덕분에 서양 미술계에 ‘보따리’라는 말이 알려졌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때 김수자의 보따리는 간절한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특이한 민속적 소재로 또한 전락한다. 우리는 아직도 예술을 ‘국위선양’의 부수품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영화음악가 엘레니 카레인드로 그렇다면 김수자의 보따리는 무엇인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보따리는 큼직한 천 보자기에 물건을 싸서 꾸린 뭉치를 뜻한다. 보따리장수나 이불 보따리처럼, 우리의 일상 문화와 삶의 기억들에 아로새겨져 있는 단어다. 가난했던 기억의 상징이기도 하고 여기저기 정처 없이 옮겨다녀야만 했던 남루한 일의 상징이기도 하다. 요즘도 큰 도로를 달리다 보면 아마도 반지하 생활자나 원룸 자취생인 듯한 사람들의 이사, 즉 1톤 트럭에 이불이며 옷 보따리를 싣고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수자는 바로 그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 무슨 ‘한국의 전통문화’가 아니라 큰 보자기에 전 생애를 짊어지고 이곳저곳으로 떠도는 삶을 다루기 위해 보따리를 선택한 것이다. 그럴 계기가 있었다. 파리 북동부의 구트 도르 지역. 황금 물방울이라는 매혹적인 이름을 가진 동네지만 가난과 재개발로 어수선한 곳이다. 이 지역의 중심에 생 베르나르 성당이 있다. 주민들의 70% 이상이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는 물론 불법체류자들도 많았다.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 ‘황새의 정지 비상’의 영화 음반 1996년 5월, 아프리카의 말리와 세네갈에서 몰려온 불법체류자 300여명이 생 탕브르와즈 성당에 무단히 들어가 버텼으나 뤼스티게르 추기경은 성당 열쇠를 경찰에게 넘겨주도록 허락한다. 하는 수 없이 불법체류자들은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6월 28일 생 베르나르 성당으로 들어간다. 그로부터 두 달 가까이 이 성당은 프랑스 최고의 문제적 장소가 됐다. 불법체류자들을 비난하고 야유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도와야 하며 특히 노약자는 긴급히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럼에도 8월 23일, 1500여명의 경찰특공대가 성당 문을 부수고 진압작전에 돌입했다. 김수자는 바로 이 사건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김수자는 파리의 엠마우스(EMMAUS) 협회와 협의해 불법체류자, 난민, 이민자들의 이불과 옷가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엠마우스 협회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물 순위에서 언제나 1위로 꼽히는(2위는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 피에르 신부가 창립한 자선기관이다. 레지스탕스 출신의 피에르 신부는 1949년에 집 없는 이들을 위한 주택건축법안을 추진하였는데, 그 활동거점이 된 허름한 집에 뜻을 함께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몰려들면서 엠마우스 운동이 시작됐다. 서로의 삶의 가치와 그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함께 나누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엠마우스 협회는 피에르 신부의 헌신과 수많은 참여자들의 열의에 의해 집 없는 빈민은 물론 불법체류자나 난민의 긴급 거주지 제공 같은 일을 해오고 있다. 고령의 피에르 신부는 2004년 2월에 세계가 극빈과 난민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저항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바로 그런 기관과 협력하였다는 것 자체가 김수자 작가의 어떤 강렬한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점이다. 김수자는 불법체류자나 난민들의 옷과 이불을 여러 개의 보따리로 묶어서 트럭에 실은 다음 그 위에 올라타고는 비트리 쉬르 센 미술관에서 성 베르나르 성당까지 이동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게 된다. 유튜브를 통해 이 절박한 퍼포먼스 과정을 다 볼 수 있다.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 ‘울부짓는 초원’의 영화 음반우리 자신이 곧 디아스포라가 아닌가 그러니까 김수자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보따리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아니라 그 허름한 보따리를 이고 지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만 하는 오늘의 국제적인 현상, 즉 디아스포라다. 그는 파리의 디아스포라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로 가서 그곳 알파비치에서 벌어진 노예무역의 상흔을 ‘보따리-알파비치’(2001)로 다뤘고, ‘바늘여인’(1999∼2001) 시리즈, ‘구걸하는 여인(A Beggar Woman, 2000~2001)’, ‘집 없는 여인(A Homeless Woman, 2001)’, ‘실의 궤적’(2010∼2011)’ 2부작 등으로 여러 이유로 삶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한 줌의 기억들을 빼앗기고 국경 바깥으로 추방당하거나 도망쳐야만 하는 삶들을 다뤄 왔다. 결코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K-아트의 선두주자’ 같은 식으로 저급하게 다뤄질 작가가 아니다. 이런 얘기를 왜 하는가. 바로 지금 이 세계가 그러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시리아 난민 사태로 다시금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8일, 헝가리의 국경도시 뢰스케에서 벌어진 사건, 즉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난민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던 헝가리의 극우 성향 방송사 N1TV의 촬영기자 페트라 라츨로에 의해 우리는 난민 사태의 시각적 충격을 받은 바 있지 않은가. 그리스의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가 있다. , , 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 영화의 음악을 역시 그리스 영화음악가 엘레니 카레인드로가 맡았는데, 나는 지난주에 이곳저곳에서 행한 음악 강의에서 이 엘레니 카레인드로의 비장하고 애절한 음악들을 함께 들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난민, 그 디아스포라를 절박하게 다룬 이 영화와 음악들을 통해 무엇을 보았으며 또 무엇을 보았느냐고. 누구는 시리아 난민을 떠올렸고, 또 누구는 저 1950년에 벌어졌던 이 한반도의 끔찍했던 전쟁을 떠올렸다. 그리고 또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난민이 아니냐고. 물론 재난이나 정치적 박해 때문에 긴급히 몸을 피해야 하는 다급한 외신 뉴스 속의 난민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를 끝없이 전전하는, 단 한 번도 중심에 들어가 본 적 없지만 그러나 결코 중심에서 완전히 벗어나서는 안 되겠기에, 끝없이 중심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서성거리고 옮겨다니는, 우리 자신이 곧 디아스포라가 아니냐고, 엘레니 카레인드로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 자신의 불안하게 동요하는 삶을 보았노라고, 그렇게 말하였다. 그 말이 가슴에 와서 가시처럼 박혔다.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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