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659 건 검색)
-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179명 시신 수습 완료…현장 수색 은 지속
- 2025. 01. 04 20:21사회
- ... 순차적으로 인도할 예정이다. 지난 3일 야간 수색까지 수습한 희생자 시신 조각은 총 1013점이었다. 시신 수습 완료는 이 조각들의 신체를 맞추는 재구성 절차가 종결됐다는 뜻이다. 다만 당국은 혹시라도...
- “장례 서두르면 2번·3번 치를 수도…최대한 온전하게 시신 인수해야”
- 2025. 01. 01 21:26사회
- ... 추락 사고에서도 132명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7일이 소요됐다. 신원이 확인되면서 희생자 가족 일부는 시신을 인수해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문제는 사고 현장에서 600건이 넘는 ‘희생자 유해 일부’가...
- 유해시신참사발견인도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제천 참사 때도 장례 후 유해 3번 발견”···빠른 시신 인도에 ‘신중론’
- 2025. 01. 01 14:46사회
- ... 장례를 더 진행하는 벌어졌다. 당시 숨진 10대 A양은 시신이 크게 훼손된 채 수습됐다. 경찰로부터 시신을 넘겨받은 유가족들은 화장 후 유골을 안치했다. 하지만 이후 현장 감식 과정에서 유해 일부가...
- 유해시신참사발견인도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유족 대표 “정부, 시신 안치용 냉동컨테이너 설치는 거짓말”
- 2024. 12. 30 20:13지역
- ...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유족 협의회는 겨울이지만 낮 기온이 올라 시신이 부패할 것이 우려 된다며 냉동 컨테이너 설치를 정부에 요청한 바 있다. 박 대표는 성명을 통해...
스포츠경향(총 544 건 검색)
- ‘용감한 형사들4’ 옷더미 속에서 발견된 전라 여성의 시신
- 2025. 01. 12 04:34 연예
- 티캐스트 E채널 조작된 현장 속, 혼선이 가득한 수사 과정에서 형사들의 명추리가 빛을 발했다. 지난 10일 티캐스트 E채널에서 방송된 ‘용감한 형사들4’에서는 과학수사대(KCSI) 윤외출 전 경무관, 김진수 경감이 출연해 전주 모텔 여인 살인사건의 수사 일지를 밝혔다. 전주 한 모텔 주인의 신고 전화로 시작된 이번 수사는 시신의 상태와 현장 상황 때문에 범행 날짜를 추정하기 어려웠다. 객실 배란다에서 발견된 전라의 시신은 옷더미 아래 놓여있었다. 부패가 심각하게 진행돼, 배는 부패 가스로 부풀어 오르고, 얼굴엔 검붉은 액체까지 흘러나 있던 심각한 상황.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 심하게 부패해 피해자가 언제 사망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피해자 신원을 파악해 가족들을 만나보니, 피해 여성이 외출한 시각은 시신 발견 이틀 전 새벽. 형사들은 이틀 안에 부패한 시신을 놓고 고민에 빠진다. 형사들에 의해 추정된 범인은 시신이 발견된 객실에 이틀간 묵었던 남성이었다. 수사팀은 피해 여성의 통화내역을 분석해 유력 범인을 찾아냈지만, 해당 용의자는 지적 장애를 가진 남성으로 범행 현장을 조작하기엔 어려운 상황이었다. 수사팀은 범인이 해당 번호의 명의를 도용했을 것이라 추정, 용의자로 추정되는 남성의 집을 방문했다. 삼형제가 함께 거주하고 있었는데 교회 전도사 일을 하던 둘째를 제외하고 첫째와 셋째 모두 지적 장애를 앓고 있었으며 용의자로 의심됐던 남성은 바로 첫째였다. 삼형제 주민등록 사진을 모두 뽑아서 모텔을 향한 수사팀은 모텔 주인을 통해 범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범인은 바로 삼형제 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생활을 했던 둘째였다. 둘째가 형의 전화기를 들고 피해 여성에게 접촉한 뒤 모텔로 불러내 살인까지 저지른 것이다. 범인은 “처음 만났지만 피해 여성에게 진심이었다. 하지만 피해 여성이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여성을 살해한 뒤 온열 매트가 깔린 침대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 순식간에 부패가 진행됐던 것. 진술 내내 자신의 죄책감을 토로했던 범인은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 임지연, 과부 될까 두렵나 “이 시신은 제 서방님이 아닙니다” (옥씨)
- 2024. 12. 29 23:26 연예
-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 ‘옥씨부인전’ 임지연이 남편 추영우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29일 방송된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 8회에서는 구덕이(임지연)가 성윤겸(추영우)의 시신을 확인했지만, 남편이 아니라며 부정했다. 이날 구덕이는 성윤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신을 확인하러갔다. 시신 앞에서 구덕이는 “시신이 많이 부패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시신을 돌려 어깨를 좀 보여주게나”라고 말했다. 구덕이는 낙인이 없는 것을 보고 “이 시신은 제 서방님이 아닙니다. 서방님은 어깨에 상흔이 있습니다. 도려내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을 상흔입니다”라고 주장했다.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 현감(양준모)은 “어찌 그것만으로 성윤겸이 아니라 확신할 수 있겠소”라고 했으나, 구덕이는 “마치 이 시신이 내 서방님이어야 한다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라며 쏘아붙였다. 현감은 “혹시 과부로서의 앞날이 막막해 ‘남편이 아니오’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오?”라며 물었고, 성도겸(김재원)은 “그러니까 지금 그대의 말은 나조차 내 형님의 시신을 모른 척한다는 것이오?”라며 발끈했다. 구덕이는 “부패해 연고를 알 수 없는 시신을 쉽게 처리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제대로 조사하세요. 이 시신은 내 서방님이 아닙니다”라며 확고하게 이야기했다.
- [채널예약] ‘용감한 형사들 3’ 화재 현장서 나체로 발견된 시신, 추적 끝에 드러난 범인의 정체는?
- 2024. 08. 22 22:03 연예
- E채널 ‘용감한 형사들3’에서 의문 가득한 다방 방화 살인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 오는 23일 방송되는 티캐스트 E채널 ‘용감한 형사들3’(연출 이지선) 50회에는 조순석 형사가 출연해 직접 발로 뛴 수사기를 공개한다. 이날 사건은 화재 현장에서 시신 한 구가 나왔다는 119의 공조 요청으로 시작된다. 불이 난 곳은 지하 다방이었다. 최초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에 이불과 방석이 쌓여 있었고, 그 밑에서 그을음 없는 나체 상태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시신은 한눈에 봐도 타살이 추정되는 상태였다. 목에는 전깃줄이 감겨 있었고, 손목과 발목은 도구로 결박돼 있었다. 무엇보다 얼굴에는 투명 테이프가 붙어있는 기괴한 모습이었다. 피해자는 불이 났던 다방의 여주인으로, 현장에서 유일하게 사라진 건 피해자의 휴대전화뿐이었다. 형사들은 다방이 있던 상가 CCTV가 고장이 나서 다방에 들어간 인물조차 확인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그러나 탐문 과정에서 피해자가 상당한 재산을 모았던 것을 확인하고, 피해자 주변 인물들로 수사 방향을 집중한다. 채무로 얽힌 사람부터 피해자와 멱살잡이를 하며 다툰 사람 등 의심되는 인물을 확인하던 중 범인을 특정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한다. 그날 다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으며 범인의 정체는 누구인지, 다방 방화 살인사건의 전말은 ‘용감한 형사들3’ 본 방송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용감한 형사들3’는 매주 금요일 밤 9시 50분에 방송되며,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주요 OTT에서도 공개된다. E채널 공식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도 프로그램에 대한 생생한 소식과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 [채널예약] ‘더 풀어파일러’ 서장훈 “시신 3구를 나무 안에? 어떻게 저게 가능하냐?”
- 2024. 06. 19 17:07 연예
- AXN 제공 ‘더 풀어파일러’에서 낙엽과 나무에 집착하고 성적 욕구까지 느끼는 범인의 기상천외한 범죄 행각이 공개돼 권일용 교수를 비롯해 출연진 일동 기겁한다. 오는 20일 오후 8시 방송되는 ‘더 풀어파일러’ (제작 AXN, 라이프타임, 더라이프, K-STAR, SmileTV Plus) 3회에서는 잘못된 집착으로 기이한 범행을 저지른 살인마의 충격 스토리가 전개된다. 범인이 저지른 기이한 범행 중 하나는 피해자들의 시신을 나무 안에 은닉한 것. 이에 서장훈은 “저 큰 나무를 어떻게 올라가나? 3구의 시신도 꽤 무거울 텐데 어떻게 저게 가능하냐?”라며 범인이 시신을 유기했다고 지목한 실제 현장 모습에 난색을 표한다. 범인이 ‘나무는 손상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한다. 이에 한석준은 “그럼 나무나 만지지, 사람은 왜 건드리냐”라며 이해 불가한 범인의 행동에 분노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국내 프로파일러의 산증인인 권일용 교수조차 “처음 보는 유형의 사건”이라고 말해 본 사건에 대한 관심이 치솟는다. 권일용 교수는 “강박증 유형 중 불필요한 물건을 모으는 저장 강박증이 있다”라며 “성장기에 일관되지 않은 교육을 받은 것”이라고 물체에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범죄자의 심리를 설명한다. 이어 그는 “예상할 수 없는 상황으로 커지는 불안감에 결국 변하지 않는 것에 애정을 갖고 집착하게 되는 것”이라며 범죄 수사에 필요한 전문적 지식을 전수해 모두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는 후문이다. 뮤지컬 ‘보니앤클라이드’의 실사판이자 절대 미화돼서는 안 될 살인을 서슴지 않은 2인조 연쇄 살인마 사건도 ‘더 풀어파일러’ 본 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크라임 퀴즈를 풀면서 전문 프로파일링 지식과 다양한 범죄 예방법을 전수하며 범죄 없는 세상을 꿈꾸는 풀어파일러들의 다섯 번째 도전기 ‘더 풀어파일러’는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AXN, 라이프타임, 더라이프, K-STAR, SmileTV Plus를 통해 방송된다.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 [광복 70년 역사르포](5) 김주열 시신 발견된 마산항 중앙부두…4월 혁명의 횃불이 솟아오른 곳(2015. 03. 24 13:42)
- 2015. 03. 24 13:42 사회
-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4월 11일 오전 11시. 마산(지금의 창원)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시신이 떠올랐다.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시민의 시위를 경찰은 최루탄과 총격으로 강경진압했다. 주춤하는가 했던 시위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 4·19 학생혁명의 기폭제가 된 것이 이 시신이었다. 김주열군의 어머니 권찬주씨는 27일 동안 아들을 찾아 헤매다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 아들 앞에서 오열했다. 김주열 열사와 학교 동기생인 정순구씨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얼굴에 못이 박힌 시신이 떠올랐다는 소문이 마산 전역에 삽시간에 퍼졌다. 고기잡이 배로 건져올린 김 열사의 주검이 누워 있던 장소는 지금의 합포구청과 창원지검 마산지청 사이에 있던 작은 연못 부근이었다. 구름처럼 몰려든 군중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더니 짚으로 된 거적이 깔려 있었다. 거적을 들췄더니 눈에 최루탄이 박혀 있는 주열이가 보였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마산항 중앙부두에는 이곳을 ‘혁명이 바다에서 솟아오른 곳’으로 표현하는 동판이 설치돼 있다. 민주화운동 장소 문화재로 첫 지정 마산 중앙부두 세 번째 포트(쇠말뚝)가 바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인양된 곳이다. 이곳에는 “역사는 이 바다에서 4월혁명의 횃불로 솟아올랐던 것이다”라는 동판이 설치돼 있다. 또 주변에는 김 열사의 얼굴에 박혔던 최루탄과 같은 종류의 최루탄과 함께 ‘추모의 벽’ 옆에 ‘4월혁명의 발상지’라는 표시를 해놓았다. 2011년 9월 경남도는 이곳을 경남도 기념물 제277호로 지정했다. 김주열 열사 추모사업회 관계자는 “경찰이 3·15 시위현장에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열사를 돌에 매달아 수장시킨 것”이라며 “민주화운동 관련 장소가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이곳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3·15 의거의 발상지는 3월인데도 썰렁했다. 이곳으로 가는 통로는 자물쇠로 잠가 일반인이 자유롭게 현장에 접근할 수조차 없다. 대로에서 이곳으로 안내하는 변변한 안내판도 없다. 중앙부두는 지금 행정선 몇 척만 접안하고, 주변은 물류창고와 야적장, 주차장으로 변해 어수선한 분위기다. 55년 전 이맘때로 되돌아가보자.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장기집권을 위해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자행한다. 부정선거는 선거 1년 전부터 최인규 내무부 장관의 지휘 아래 치밀하게 준비됐다. 당시 상황을 국립 3·15 민주묘지 기념관에서는 이렇게 정리해놓고 있다. “전국 경찰 주요 간부를 맹목적 충성인물로 교체하고, 야당의원들에 대해 집요한 분열공작을 펼쳤으며, 정치깡패 등을 동원해 야당의 선거운동을 방해했다. 일반 공무원들은 물론 교육공무원까지 부정선거 운동에 투입되어, 담임교사가 가정방문을 통해 자유당에 투표할 것을 설득·권유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선거 한 달 전인 1960년 2월 15일,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이 미국 육군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심장마비를 일으켜 서거했다. 이에 대통령은 이승만 단일후보로 당선이 확실해졌고, 부통령에 이기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 계획은 더욱 구체화되어 갔다.” 이때 마산에서는 한 변절 정치인이 시민을 분노케 했다. 야당인 민주당으로 당선된 허윤수 의원이 1월 5일 자유당 공천을 약속받고 탈당한 것이다. 자유당의 정치공작 결과였다. 마산 시민은 자신들이 찍어준 민심을 저버린 허 의원과 자유당에 격분했다. 1960년 4월 11일 마산항 중앙부두에서 발견된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시신.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학생과 시민을 향한 경찰의 총탄 자유당에 반발한 첫 민주화 시위는 대구에서 일어났다. 1960년 2월 28일 대구 수성천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 유세가 있었다. 정부는 일요일인데도 공무원을 출근시켜 유세장에 가지 못하게 했다. 학생들도 임시수업, 시험, 영화감상 등의 구실로 등교시켰다. 이에 분노한 경북고등학교 대표 이대우가 “학원의 자유를 달라” “일요 등교 웬 말이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을 박차고 나갔다. 정부의 부정선거에 항거한 최초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이었다. 이것이 바로 2·28 민주운동이다. 3월 15일 선거 당일 마산시민들이 드디어 폭발했다. 이날을 시간대별로 자세히 보자. 오전 10시30분 부정선거를 보다못한 민주당 마산시당이 ‘선거 포기’를 선언했다. 민주당 마산시당 간부 30여명은 거리 시위에 나섰다. 오후에는 시위대가 600여명으로 늘었다. 경찰과 대치하면서 투석전이 전개되고 시위를 주도하던 민주당 간부가 연행됐다. 6시30분 시민과 학생들이 개표가 진행 중인 마산시청 앞에서 부정선거 항의시위를 벌였다. 북마산파출소가 불에 타고, 변절한 허윤수 의원의 집이 파괴됐다. 오후 8시10분, 마산시청 앞과 남성동파출소 앞, 북마산파출소 앞에서 경찰이 일제히 카빈총을 발포했다. 김영호·김효덕 등이 총탄에 사망하고, 김주열이 최루탄에 맞아 숨졌다. 시위는 마산 전역으로 확산돼 밤 12시까지 계속됐다. 이날 경찰은 권총은 물론, 카빈총, 신형 알루미늄 최루탄 등을 무자비하게 발포,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61년 당시 상황을 지현모는 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3월 15일 밤 경찰의 무자비한 발포가 자행되었으며, 다음날 경찰은 공포탄을 쏘았다고 발뺌했지만 살상을 목적으로 사람의 가슴과 머리를 겨냥해 발사한 것이 확인되었다. ‘부정선거 물리쳐라!’ ‘학원의 자유를 달라’고 외치고 일어난 마산의 학생 및 시민들에게 경찰은 실탄을 발사하기에 이르러 이 고장에서 처음으로 7명 이상의 피살자가 생긴 것이다. 경찰은 이들에게 무지무지한 고문으로 보복하였고, 또 이들에게 공산당 누명까지 씌우려고 했던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바로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의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는 발언이다. 이기붕은 18일 오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3·15 선거는 “공명선거였다”면서 “총을 줄 때는 쏘라고(‘쓰라고’라 들은 사람도 있다)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동아일보 3월 20일자) 경찰의 무차별 총격 진압으로 시가전을 치른 듯한 마산 시내는 실종된 아들·딸을 찾아 헤매는 부모들로 가득했다. 야당은 긴급 회의를 열고 ‘선거무효’를 선언했다. 창원시 회원구 애기봉 아래에 위치한 국립 3·15 민주묘지에 세워진 ‘민주의 탑’ ‘정의의 상’ 참혹하게 떠오른 시신, 혁명의 기폭제 이런 분위기에서 4월 11일 김주열의 시신이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김주열의 시신이 안치된 도립마산병원 앞에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이 몰려들었다. 다시 시위가 시작됐다. 마산에서만 3만여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마산시청, 마산경찰서, 창원군청에 시위대가 진입하고 경찰서장 지프차가 불에 탔다. 경찰의 발포로 또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튿날 마산 시내 8개 남녀고교가 일제히 시위에 들어갔다. 시위는 13일까지 계속됐다. 이를 2차 마산 3·15 의거라 부른다. 마산 시위는 인근 진해, 부산, 그리고 서울로 확산됐다. 드디어 4월 18일 고려대 학생 3000여명이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시위에 들어갔다. 4월 19일에는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이 시위에 가담했다. 이승만은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했다. 그러나 4월 25일 대학교수들이 시위에 가세하자 이승만은 하루 만인 4월 26일 드디어 하야를 발표했다. 4·19 학생혁명은 이렇게 완성됐다. 4·19 학생혁명의 의의와 역사적 가치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마산(창원)을 민주화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학생혁명의 발상지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국무총리가 직접 참석하는 기념행사가 열리고, 연간 36만명이 찾고 있다. 김주열 열사의 묘. 창원시 구암동(마산회원구 3·15성역로 75) 애기봉 아래에 ‘국립 3·15 민주묘지’와 ‘3·15 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민주묘지는 마산 1·2차 민주화 시위에서 희생되거나 부상당한 인사들이 안장된 곳이다. 1998년 마산시가 처음으로 조성했는데, 2002년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현재는 국가보훈처가 관리하고 있다. 현재 37기가 안장돼 있고, 3·15 의거와 4·19 혁명 부상자, 사망자 등 80기까지 모실 수 있다. 여기에 있는 ‘김주열 묘’는 가묘로 시신은 고향 전북 남원시에 안장돼 있다. 3·15 민주묘지 건상곤 관리사무소장은 “연초에 관내 기관장의 참배를 시작으로 3월 3·15 유족 추모제, 5월 기념행사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의 소풍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묘지 주변은 ‘민주의 탑’과 ‘정의의 상’ 등 각종 조형물이 가득하다. 특히 3·15 기념관은 12년 만에 내부를 전면 수리하고 최근 새롭게 개장했다. 3·15 의거를 시간 순, 상황 순으로 정리했다. 특히 당시 발포했던 최루탄과 권총, 카빈총을 소재로 형상화한 예술작품이 돋보였다. 건상곤 관리사무소장은 “건물 전면에 3·15 의거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하고, 영상관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면서 “최신 그래픽과 동영상 시설을 갖춘 사이버 추모관은 어린이들에게 좋은 교육관, 체험학습관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3·15 기념관을 돌아보고 나서려는 순간, 액자 하나가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우리의 짙푸른 마산 앞바다를/우리의 마산 앞바다의 민주주의를/우리의 주린 자유를/독재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만/우리의 벅찬 정의의 대열을 기억해야 한다/그리하여 하나의 탑이 된/피어린 열망인 민주주의의 기억을 우리의 현재로 불러와야 한다’(고은 시인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중에서)
- 광복 70년 역사르포
레이디경향(총 2 건 검색)
- 사람 시신 물고 다닌 악어, 최후는?
- 2023. 09. 25 11:05 화제
- 미국 플로리다에서 사람의 시신 일부를 물고 있는 악어가 발견돼 안락사 처리됐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미국 플로리다에서 사람 시신 일부를 물고 다니는 악어가 발견돼 안락사 처리됐다. CNN 등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플로리다 당국은 탬파베이 지역 라르고의 한 운하에 악어 한 마리가 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목격자는 “악어가 입안에 시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녹화를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플로리다 야생동물 보존 위원회는 몸길이가 4m에 달하는 수컷 악어를 포획해 인도적인 방식으로 안락사 처리했다고 전했다. 피해자는 41세의 여성으로 밝혀졌다. 다만 이 여성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악어가 어떤 경위로 시신을 물고 다니게 됐는지 등은 파악되지 않았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이와 같은 소식에 충격에 빠졌다. 한 주민은 “평소 산책을 다니던 곳이다. 이렇게 큰 악어를 본 적이 없다”고 두려움을 호소했다.
- 엄마 시신과 6개월간 동거한 송모군의 애절한 스토리
- 2004. 01. 01 화제
- 중학교 3학년인 송모군은 세상을 떠난 어머니 신모씨와 12평짜리 집에서 6개월간 함께 지냈다. 학교 교사에 의해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직도 송군은 어머니의 부패한 시신을 옆방에 둔 채 추운 겨울을 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충격적인 동거의 시작과 끝을 취재했다. 가난과 무관심이 부른 비극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시신과 6개월을 함께 보낸 소년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믿기 어렵다. 그렇지만 경기도 이천의 한 마을에서 이런 일이 실제 벌어졌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안방에 모시고 산 것. 이런 사실이 세상에 밝혀진 것은 시체 썩는 냄새 때문이었다. 세상의 무관심과 냉대가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를 낳게 된 것이다. 송모군의 어머니 신모씨(45)의 넋이 육신을 떠난 건 지난 6월 4일 오전 11시께. 학교에서 조퇴하고 돌아온 아들은 어머니의 싸늘한 주검을 보고 혼절했다. 정신을 차린 후 돌아가신 어머니와 마주한 소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누구와 상의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급한 마음에 소년은 우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죽은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또한 장례를 치를만한 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시신과 엽기적인(?) 동거가 시작됐다. 9일부터는 학교도 가지 않았다. 대부분 죽은 사람이 집에 있다면 그 시신을 두려워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 그러나 송군은 두려움보다는 무엇보다 시체 썩는 냄새가 싫었다. 그래서 낮엔 뒷산에 있다가 밤에 집에 들어와 잠을 청했다. 두렵고 떨리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때로는 어머니가 누워 있는 안방에 들어갈 때도 있었다. 안방 서랍에 어머니 통장이 있어서 들어가야만 했던 것. 그러나 소년은 안방에 들어가서도 어머니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악취도 났지만 많이 부패해 보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불에 벌레까지 생기는 것을 본 송군은 이후부터 아예 안방 문을 잠가버렸다. 어머니를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냄새를 숨기고 싶어서였다. 겨우 찾은 엄마의 통장. 통장엔 잔액이 40여 만원 가량 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생활보호대상자라 돈이 정부로부터 다달이 송금됐던 것. 송군은 그 돈으로 게임 잡지와 게임 CD를 사고 먹거리 등을 샀다. 고단한 현실을 피해 사이버 공간으로 숨어 든 셈이다. 그러나 이런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9월부터 송금되던 돈이 나오지 않은 것. 송군의 집이 무단전출자로 간주돼 보조금이 끊기고 가스와 전기가 끊긴 것이다. 그대로 굶을 수 없었던 송군은 낮엔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고 저녁엔 라면을 끓여 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이런 엽기적인 사실은 주변 학생들에 의해 전해졌다. 그의 집에서 냄새가 나고 행동이 수상쩍다는 제보가 잇따른 것이다. 이런 소식을 접한 담임 선생님은 송군의 집을 찾았다. 소문대로 집에선 악취가 진동했다. 그렇지만 그 진위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송군이 별것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시신과의 충격적인 동거는 그로부터 보름 뒤 끝이 났다. 보일러가 망가져 추운 겨울을 보낼 것을 염려한 학생부장 정모(42ㆍ여) 교사와 학생들이 송군을 돕기 위해 집을 방문했다가 우연찮게 시신을 발견한 것. 정씨가 보일러 조종기가 있는 안방 문을 강제로 열자 침대 위엔 하얀 뼈가 드러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기절할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지만 침착하게 경찰에 알리고 송군 모친의 시신을 추스러 병원에 안치했다. 송군과 돌아가신 어머니와 동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송군의 비극은 5년 전, 아버지의 사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부가 함께 했던 다방이 망하자 아버지는 지병인 당뇨가 악화돼 결국 숨졌다. 역시 9년 전부터 당뇨를 앓고 있던 어머니 신씨는 생계를 위해 다방을 전전하며 주방일을 했고 집을 찾는 것은 한 달에 두세 번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소년은 늘 혼자였다. 혼자 밥을 해먹고 학교를 다니는 일이 일상화됐다. 학교에서도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라 친한 친구도 없었다. 이런 기막힌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에도 담담한 표정을 지었을 정도. 반년 만에 찾은 망자의 안식 “어머니의 병세가 심해진 건 올해 3월부터입니다. 병원에 입원했지만 오래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5월 말부턴 몸져 누우셨어요. 조퇴까지 하면서 어머니를 돌봐 드렸지만 어린 저로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앞도 안 보이는 엄마가 계속 불을 켜달라고 하고, 술 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보면서 가망이 없겠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세인들은 이런 엽기적인 비극에 대해 복지행정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웃간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었겠냐며 토로한다. 송군 모자는 지난 3월 말 보증금 3백만원, 월세 18만원짜리 지금 집으로 옮긴 뒤 동사무소에 전입ㆍ전출 신고를 했다. 하지만 생활보호대상자 전산망에만 기록되고 주민등록 전산망엔 등록이 되지 않았던 탓에 6월 중순부터 송군을 찾아 나선 담임 오씨 등은 과거 주소말고는 알 도리가 없었다. 또 전산처리 누락으로 송군의 집에 배달되던 쌀 한 포대(20kg)마저도 7월부터 중단됐다. 생활보호대상자 전산망을 통해 집을 확인한 동사무소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은 7월과 8월 송군의 집을 2차례 방문, 문이 잠겨 있고 밖엔 우편물만 쌓여 있어 무단전출로 여기고 9월부터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 것. 그나마 이들을 유일하게 챙겨주던 사람은 집주인 심모씨였다. 그렇지만 송군의 집안일까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특히 신씨도 일을 하는 사람이라 어느 때 옥상에 올라가다 썩는 냄새가 나면 음식이 썩는 냄새려니 했다는 것.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자 송군을 위로하는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강릉에 사는 한 부부는 양자로 맞고 싶다며 직접 찾아오기도 했고, 수원의 한 주부는 생활비를 보태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멀리 미국에서도 위로전화가 왔다. 그 어린 것이 주검과 함께 자며 얼마나 무서웠겠냐면서 온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네티즌들의 탄원이 이어졌다. 소년은 경기도 여주군에 위치한 보륜사에서 천도제를 지내고 유골을 산에 뿌리는 것으로 마침내 어머니를 보냈다. 송군은 평소 어머니가 화장해달라고 했다며 “홀가분하다” 라고 말했다. 이후 이모 집에서 지낸 송군은 각계의 성금과 교사들이 모은 돈으로 학교 부근에 방 하나와 주방, 거실이 딸린 보증금 5백만원, 월세 20만원짜리 원룸(12평)을 마련했다. 송군 학교 교사와 이천경실련 회원 등이 부모역할을 맡아 보살펴주기로 했다. 또한 송군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재지정돼 매달 31만4천원의 생계비와 연간 9만원의 교과서대금, 학용품 구입비 및 고등학교 학비는 물론 의료보호대상자로 지정돼 무료 진료도 받게 됐다. 송군은 “도와주신 분들께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열심히 공부해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송군은 1백 일 넘게 결석을 했기 때문에 빠진 수업을 겨울방학 동안 특별수업으로 채우고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글 / 고찬유(한국일보 기자) 일러스트 / 연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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