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32 건 검색)
- 조선인 여공의 붉은 댕기 [플랫]
- 2024. 08. 21 16:44오피니언
- ... 담고 있다. 자본주의 산업화를 시작한 일본에 식민지 조선은 저임금 노동력의 저수지였다. 조선인 여공은 민족·젠더·계급 차별이 겹친 최하층민이었다. 재일동포 사학자 김찬정이 1983년 남긴 동명의...
- 플랫
- [여적] 조선인 여공의 붉은 댕기
- 2024. 08. 19 18:15오피니언
- ... 다른 수탈 구조하에서 여성이 버텨낸 힘은 노래, 우정 그리고 자존심이었다. 특히 이원식 감독은 여공들이 1930년대 초 벌인 파업에 주목했다. 이들은 일본인과의 임금 차별 해소, 휴식시간 보장 등을...
- 콜센터 상담사에게서 구로공단 여공들이 보였다[플랫]
- 2022. 01. 27 15:31문화
- ... 상담사들의 흡연 시간이 평균 4분이 넘지 않는 점을 관찰했다. 상담사들의 담배는 과거 구로공단 여공들이 철야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먹었던 카페인 각성제 ‘타이밍’을 연상케 한다. 저자가 상담사들의...
- 플랫여성노동콜센터정동노동감정노동사람입니다고객님
- 청계천의 여공들이 말한다, 우리의 투쟁은 실패가 아니었다고[플랫]
- 2022. 01. 27 09:54문화
- ...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노래하고 웃고 뛰어놀던 사진이 더 많다. 지식인도, 남성도 아닌 당시 10대 여공이었던 이들이 자신들의 말로 경험을 풀어낸다. 영화를 공동연출한 김정영 감독과 영화 주인공 중 한...
- 플랫미싱타는 여자들여성노동청계천여공평화시장
스포츠경향(총 4 건 검색)
- 뮤지컬 ‘웃는 남자’ 신영숙, 대체불가 ‘조시아나 여공작’… 9일 첫 공연
- 2020. 01. 09 16:42 생활
- 뮤지컬 배우 신영숙이 뮤지컬 ‘웃는 남자’ 2018년 초연에 이어 ‘조시아나 여공작’ 역으로 9일 개막 무대에 오른다. 신영숙은 팜므파탈 매력을 발산하는 연기 변신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완성시키고 초연 무대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았으며, 극 중 ‘내 안의 괴물’, ‘내 삶을 살아가’ 등 ‘조시아나 여공작’의 솔로 넘버들을 파워풀한 명품 보이스로 선보여 관객들의 감탄과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하여 맡았던 캐릭터들을 탁월한 연기력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낸 그녀가 이번 재연에서 얼마나 더 강렬하고 매혹적인 ‘조시아나 여공작’으로 돌아올지 관심이 집중된다. 초연에 이어 다시 연출을 맡은 로버트 요한슨은 “신영숙은 뛰어난 실력과 넘치는 매력으로 크레이티브 팀에게 좋은 에너지와 영감을 주며 더 나은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좋은 배우이기에 ‘조시아나’ 역으로 꼭 다시 작업하고 싶었다”며 “더 깊이 있는 캐릭터를 완성해 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다시 한번 감탄했고 신영숙이라는 배우에게 더욱 매료되었다.”라고 전했다. ‘조시아나 여공작’은 앤 여왕의 이복동생으로 부와 명예, 치명적인 매력까지 겸비해 모든 것을 가진 여인으로 외모가 흉직한 ‘그윈플렌’을 만나 새로운 매력을 느끼며 그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상위 1%의 탐욕과 허영 그리고 잔인한 속성을 가진 상류층들과는 달리 ‘그윈플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허망함을 느끼며 변화를 보이는 유일한 인물이다. 뮤지컬 배우로서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는 신영숙은 현재 2020년 ‘제4회 한국 뮤지컬 어워즈’ 여우주연상 부문 후보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지난해 11월에 개막한 뮤지컬 ‘레베카’에 5연속 ‘댄버스’ 역으로 출연 중인 그녀는 새해에 뮤지컬 ‘웃는 남자’에서 그 활약을 이어간다. 2020년 놓쳐서는 안 될 작품으로 주목받는 뮤지컬 ‘웃는 남자’는 신영숙을 비롯하여 이석훈, 규현, 박강현, 수호, 민영기, 양준모, 김소향, 강혜인, 이수빈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오늘 막을 올리며, 3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 달샤벳 조아영, ‘파도야 파도야’서 60년대 여공으로 완벽 변신
- 2018. 01. 24 08:47 연예
- 달샤벳 조아영이 60년대 여공으로 변신했다. KBS 2TV TV소설 <꽃피어라 달순아> 후속으로 오는 2월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파도야 파도야> 측이 24일 똑순이 여공 오복실로 변신한 조아영의 첫 촬영현장 사진을 공개했다. 달샤벳 멤버 조아영. 사진 KBS <파도야 파도야>는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되고 전 재산마저 잃어버린 오복실과 그녀의 가족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온갖 삶의 고난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며 꿈을 이루고 가족애를 회복해가는 휴먼 성장 패밀리 드라마다. 이번 작품에서 조아영은 가난한 이산가족 집안의 딸로 가수의 꿈을 품고 성장하는 오복실로 분한다. 오복실은 똑똑하고 욕심이 많아 매사에 적극적이고 거침이 없으며, 성공이 자신과 가족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영리하게 자신의 것을 챙길 줄 아는 씩씩하고 당찬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공개된 사진 속 조아영은 예쁜 눈망울과 밝은 미소로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하는 동시에 어수선한 작업환경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자세로 앉아 차분히 바느질을 하는 야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오복실이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또한 촬영 전 꼼꼼히 대본을 체크하며 동선을 미리 파악하는가 하면 감독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해 귀 기울여 듣고 쉬는 시간에도 홀로 연습을 거듭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연기에 대한 진지함과 열정을 보여 그녀가 그려낼 오복실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고 한다. 드라마 관계자는 “조아영은 야무지면서도 욕심이 많은 오복실이라는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고 있으며 대본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촬영에 임하는 등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까지 갖춰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배우다”라며 강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파도야 파도야>는 <꽃피어라 달순아> 후속으로 오는 2월 KBS 2TV를 통해 첫 방송된다.
- KBS 단막 ‘미싱 코리아’ 북한 여공 변신 산다라박 드레스 자태 공개
- 2015. 11. 03 10:04 연예
- 걸그룹 투애니원(2NE1)의 멤버 산다라박이 드레스 차림의 여신으로 변신한 모습을 공개했다. 산다라박은 3일 오전 10시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TV캐스트를 통해 첫 방송되는 KBS 단막극 <미싱 코리아>(극본 김영언 외, 연출 민두식)에서 북한 미스코리아 대표 리연화로 출연한다.KBS 단막극 ‘미싱코리아’에 출연하는 산다라박. 사진 KBS첫 방송을 앞두고 공개한 사진에서 산다라박은 풍성한 머리스타일과 화려한 메이크업 그리고 강렬한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미스코리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또 완벽한 드레스와 함께 대본을 손에 쥐고 시청을 독려하는 사진도 함께 공개해 시선을 붙잡았다.KBS 단막극 ‘미싱코리아’에 출연하는 산다라박. 사진 KBS드라마 <미싱 코리아>는 ‘제1회 남북 미스코리아 대회’에 개성공단의 여공들이 북한 미스코리아 대표단과 바뀌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유쾌하게 다뤘다. 산다라박은 극중 군제대 후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여공 리연화 역을 맡아 딱딱한 캐릭터에서 진정한 미스코리아 북측 대표로 거듭나는 분투기를 선보였다. 상대역으로는 배우 겸 가수 김정훈이 출연한다.KBS 단막극 ‘미싱코리아’에 출연하는 산다라박. 사진 KBS이번 드라마는 지난달 금강산에서 열린 ‘제20회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로 남과 북의 만남이 있었던 이후에 방송돼 더욱 의미를 더했다. 이에 제작진은 “드라마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남북출입사무소에서 협조해 실제 촬영이 이뤄져 남북통일에 대한 메시지에 완성도를 높였다고 덧붙였다. <미싱코리아>는 6부작으로 네이버 TV캐스트를 통해 3일부터 매주 화, 수, 목요일 오전 10시에 방송된다. KBS1에서는 오는 13일 자정 방송된다.
- 산다라박
- 충주시 30대 여공무원, 메르스 의심으로 자가 격리
- 2015. 06. 10 17:57 생활
- 10일 메르스 확진환자가 108명으로 집계됐다. 사진|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충주시 30대 여공무원, 메르스 의심으로 자가 격리 충주시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여공무원(36)이 메르스 의심증세로 자가 격리 조치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비상이 걸렸다. 충주시에 따르면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ㄱ씨가 지난달 28일 서울삼성병원 응급실에 있던 오빠를 병문안하러 갔다가 2시간 가량 머물렀다. 이후 미열 증세가 있어 8일 본인이 직접 보건소로 의심신고를 했고 시는 즉시 자가격리조치했다. 이어 9일부터 체온변화를 점검해 한때 37.6℃까지 올랐으나 이후 계속 내려 10일 낮12시 현재 36.9℃ 였고, 기침이나 호흡곤란 증세는 없는 상태다. 충주시는 10일 오전11시 검체를 채취해 충북도보건환경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했다. 이어 오후2시에는 동사무소 접촉자에 대해 자가 격리조치를 취하고 통제요원을 배치했으며 방역소독도 실시했다. 검사결과는 오후7시쯤 나올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양성 판정이 나올 경우 ㄱ씨를 즉시 충북대병원으로 이송하고 접촉자를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 충주 메르스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2)꽃다운 여공 말고 불꽃처럼 싸운 김경숙(2021. 02. 05 14:52)
- 2021. 02. 05 14:52 사회
- 올해 8월이면 YH 노동조합 김경숙 열사 42주기다. 1979년 8월 9일 YH무역 노동조합원들은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농성 사흘 만인 8월 11일에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그 와중에 22세 김경숙이 죽었지만, 신문에는 ‘여공 1명 사망’이라는 제목의 단신 기사로 실렸을 뿐이다. 1979년 8월 11일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인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끌어내는 경찰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비록 힘은 약하나 똘똘 뭉쳐 투쟁’ YH무역은 가발 및 봉제품 수출업체로, 1966년 자본금 100만원에 10명 규모의 작은 회사로 출발했다. 1970년대 초, 직원 4000명, 13억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내며 수출 순위 15위에 도달할 만큼 급격하게 성장했다. 석유파동과 세계적인 경제공황의 여파로 무역량이 줄어든데다 회장 장용호가 외화를 빼돌리고, 무리하게 기업 확장을 도모하던 1977년 6월, 첫 휴업을 시도했다. 휴업에 이어 대대적인 인원 감축에 돌입했다. 77년 6월부터 9월까지 400명에 이르는 노동자를 내쫓았다. 가발 만들던 여공들을 봉제과로 보내기도 했는데 손에 익지 않은 작업을 시켜 자발적으로 퇴사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공장 이전 핑계로 가발 부서를 없애다시피 했다. 1978년 3월, 김경숙은 노동조합 대의원이 되고 1979년 3월 30일, 폐업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노동조합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농성하면서 회사 정상화를 요구했지만,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이 감히 경영방침에 토를 달다니 좌경불순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이다. 결국 79년 8월 6일 두 번째 폐업공고가 붙고, 회사는 기숙사와 식당까지 폐쇄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경숙은 고향의 어머니에게 가족의 안부를 묻고 말이 통하지 않는 회사와 맞선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편지를 보낸다. “저희 근로자들은 비록 힘은 약하나 하나같이 똘똘 뭉쳐 투쟁하고 있습니다. … 우리를 버리고 도망간 사장이나 미국에 살고 있는 장용호처럼 모든 사장은 자기만 잘살면 돈 없는 우리쯤이야 자기들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지요? … 1979년 8월 7일 서울에서 경숙 올림.”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강제로 연행된 뒤에 농성현장에 남겨진 머리띠와 신발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동조합도 물러설 수 없었다. 폐업 후 기숙사에서 농성을 이어가던 8월 8일, 회사는 단전·단수를 하겠다며 엄포를 놓았고, 경찰이 농성 해산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들렸다. 조합원들은 긴박한 상황을 돌파하면서도 자신들의 싸움을 알리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았다. 최순영 YH 노조 지부장은 ”당시 국가가 민주노조를 차례대로 깨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동일방직 다음은 YH’라는 소문이 들렸다”고 말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반감은 70년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8월 9일 아침 신민당사 4층 강당에서 187명의 조합원이 농성을 시작했고, 10일 밤에 조합원들의 마음을 모으는 ‘종결대회’를 열었다. 아무 일 없을 거라는 신민당 당직자들의 말과 달리 경찰의 분위기는 험악했던 모양이다. 고향과 그곳의 가족에게 인사를 하자는 말과 동시에 조합원들은 울음바다를 만들었다. 집회 분위기는 무거웠지만, 김경숙은 종결대회의 결의문을 읽었다. 8월 11일 새벽 2시, 농성 시작한 지 만 이틀을 다 채우지 못했던 그때 자동차 경적이 세 번 울렸다. 경찰은 문을 부수며 신민당사에 들이닥쳤다. 사다리차와 소방차 물탱크 등을 대동한 진압대원들은 마구잡이로 때려부수며 조합원들을 끌어냈다. 23분 만에 ‘101호 작전’이라 이름 붙은 농성 해산명령은 종료됐다. 김경숙은 4층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경찰은 동맥을 끊은 김경숙이 스스로 투신했다고 했지만 29년이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김경숙의 사망이 경찰의 과잉 진압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김경숙의 죽음을 둘러싼 내막을 아무리 간추려도 ‘노동자’답게 성장하고자 했던 김경숙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YH노동조합사>(형성사·1984)의 머리글을 쓴 고은 시인은 YH 여성 노동자들을 ‘민족의 해당화’, 김경숙을 ‘한 서린 처녀의 삶을 끝낸’, ‘민족의 꽃송이’라고 했다. 같은 책에 실린 양성우 시인의 ‘그대 못다 부른 슬픈 노래를: 김경숙 추도사’도 김경숙을 “열아홉 순정을 짓밟힌/ 배고프고 피 흘리는/ 예쁜 아가씨”로 부른다. 70년대 여성 노동자를 향한 편견 어린 시선은 이렇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던, 싸우는 여자를 수동적인 피해자의 자리에 가두고 말았다.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사망한 YH무역의 고 김경숙 열사 /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경숙의 죽음이 일어났던 YH 노동조합의 신민당사 농성에 대해서도 박정희 정권은 ‘일부 종교를 빙자한 불순단체와 세력이 산업체와 노동조합에 침투해 노사분규를 선동하고 사회불안을 조성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주류 노동운동에서의 평가와도 맞물리고 있다. YH 노동조합과 김경숙이 만들었던 활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 노동자의 조직적인 활동이었다. 배움도 짧고 나이 어린 여공들이 이런 일을 주도했을 리 없다며 남성지식인, 재야인사 등이 기획주도했다고 평가하는 연구들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평가에 젠더적인 관점이 미흡하고, 여성 노동자의 주체적인 투쟁을 폄훼하고 있다는 반성과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공, 여성 노동자에 대한 편견의 이름 김경숙도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생계를 위한 노동을 시작했지만, 제조업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은 스스로 생계를 꾸려갈 경제적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70년대 여공을 “가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동에 예속된 이들로 보는 사회적 시선”은 2021년 현재의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산업현장에서 죽거나 다치는 젊고 어린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다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빈곤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에 안타까워하며 탄식하지만, ‘내 얘기는 아니네’ 하며 거리를 두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적힌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문장처럼 어쩌면 역사는 돌림노래처럼 되풀이되는지도 모른다. 회사가 폐업하는 과정이나 노조에 대한 혐오나 여성 노동자에 대한 편견도 40여년 전과 여전히 닮았는데, 우리는 어떻게 지난 역사를 새롭게 다시 기억할 수 있을까. ※참고문헌 김경숙 열사 40주기 기념 심포지엄 <‘여공’ 기억에서 역사로> 자료집, 여공문학.
-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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