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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103 건 검색)

박지원 “尹, 영부인 걱정일랑 마세요…금세 갈 것”
박지원 “尹, 영부인 걱정일랑 마세요…금세 갈 것”
2025. 01. 29 13:04정치
...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설 명절을 보내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영부인 걱정일랑 하지 말라. 머잖아 그곳으로 금세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29일 자신의...
[속보] 대통령경호처, 공수처 관저 압색에 “영부인도 경호 대상” 불응 시사
[속보] 대통령경호처, 공수처 관저 압색에 “영부인도 경호 대상” 불응 시사
2025. 01. 22 11:55정치
... 관저에 부재 중이니 압수수색을 승인해달라는 요청에 “경호 대상자는 대통령님뿐만 아니라 영부인님도 경호대상자”라고 주장했다. 대통령경호처장 직무대행으로서 압수수색 승인권자인 김 차장은 이날...
영부인 멜라니아의 감색 정장···“죽은 마피아 부인 같은 ‘패션 갑옷’”
영부인 멜라니아의 감색 정장···“죽은 마피아 부인 같은 ‘패션 갑옷’”
2025. 01. 21 04:31국제
... 미국 대통령의 취임 당일인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취임식 등 공식 일정을 소화한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는 이날 의상으로 짙은 감색 정장을 선택했다. 멜라니아 여사는 이날 짙은...
취임식영부인멜라니아 트럼프애덤 리페스트럼프 2기
“당신 두렵지 않다” 브라질 영부인, 머스크에 욕설 날린 이유는
“당신 두렵지 않다” 브라질 영부인, 머스크에 욕설 날린 이유는
2024. 11. 18 15:24국제
... 향해 욕설을 뱉었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호잔젤라 다시우바 브라질 영부인은 전날 G20 유관 행사에서 온라인에 범람하는 가짜뉴스와 SNS 규제에 관한 연설을 하던 중...

스포츠경향(총 29 건 검색)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윤석열 화법 조크’ TBS 법정 제재?···‘영부인 군복 입은 모습’ 언급, 행정지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윤석열 화법 조크’ TBS 법정 제재?···‘영부인 군복 입은 모습’ 언급, 행정지도?
2023. 11. 21 19:33 연예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해 12월 21일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국민경제자문회의 발언 도중 영어가 섞인 화법에 대해 조크를 한 TBS FM ‘김어준의 뉴스공장‘(폐지)에 대해 조롱·희화화했다는 민원이 제기된 것을 이유로 법정 제재가 내려질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는 21일 TBS FM ‘김어준의 뉴스공장’ 지난해 12월 22∼23일 방송에 대해 법정 제재인 ’경고‘를 의결했다. 해당 방송을 두고 진행자 김어준이 ‘프레지던트의 판타스틱한 잉글리시’, ‘어그레시브하게 인게이지’, ‘내추럴리 나온 게 아니잖나’, ‘베리 스트레인지하다’라고 말하는 등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조롱·희화화했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회의 에서 “정부 규제가 부정적으로 많이 쓰이는데 못하게 하는 것이 레귤레이션이 아니다. 본래 의미는 정부의 거버먼트 인게이지먼트”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 아랍에미리트(UAE) 아크부대 방문 당시 전투복 착용을 두고 “영부인이 군복 입은 모습을 저는 본 기억이 없다”고 한 KBC ‘KBC 뉴스와이드’ 1월 16일 방송과,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여론조사처럼 보이게 한 MBC AM ‘김종배의 시선집중’ 1월 17∼18일 방송에 대해서는 행정지도인 ‘권고’가 의결됐다. 방심위 결정은 문제없음, 행정지도 단계인 ’‘의견제시’와 ‘권고’, 법정 제재인 ‘주의’, ‘경고’, ‘프로그램 정정·수정·중지나 관계자 징계’, ‘과징금’으로 구분된다. 법정 제재부터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시 감점 사유로 적용돼 중징계로 인식된다. 방송소위에서 결정된 내용은 차기 전체 회의에서 확정이 된다.
국민의힘 박성중 “좌파패널 라디오 점령” 주장···이준석 “보수패널 도망다녀, 주제가 영부인이면 긴급 펑크 ” 일침
국민의힘 박성중 “좌파패널 라디오 점령” 주장···이준석 “보수패널 도망다녀, 주제가 영부인이면 긴급 펑크 ” 일침
2023. 05. 02 20:46 연예
연합뉴스 여당인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이 2일 공영방송인 KBS, MBC, YTN 라디오에 대해 “좌파 패널들에게 점령당했다”며 “이렇게 된 것은 문제의 라디오 방송을 심의해야 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수수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박 의원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KBS, MBC, YTN 라디오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라디오처럼 좌편향 패널을 섭외해 온종일 전국에 정파성이 짙은 왜곡 방송을 계속 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의원은 “KBS 라디오는 80% 이상 좌파 채널로 채워지고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12시까지 17시간 편파·왜곡 방송을 자행하고 있다”면서 “MBC, YTN 라디오도 고정 출연하는 패널들이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정언론국민연대’ 모니터링 내용을 근거로 MBC 제3노조와 함께 분석한 결과를 공개하며 “윤석열 대통령 방미 기간 중 85%가 좌파 채널로 채워져 있고, 온종일 대통령의 (순방) 성과를 폄훼하는 매국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면서 “패널들 출연 횟수로 따져보면 진보 37명, 보수 4명으로 거의 9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렇듯 민주당 방송, 민노총 방송으로 전락한 라디오의 정상화가 정말 시급한 실정”이라고 했다. 박 의원은 “더 심각한 문제는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권태선 이사장, 정연주 방심위원장”이라며 “마땅히 사퇴해야 할 직무 유기, 불법 사유가 차고 넘치므로 이쯤에서 자진사퇴할 것을 강력 경고한다”고 말했다. 또 “국민의힘은 가짜 발언을 일삼는 좌파 패륜 출연자들을 전수 조사하고 검증해서 민·형사상의 모든 고발 조치를 끝까지 취할 것임을 강력 경고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SNS에 올린 글에서 “요즘 당에서 시사방송 패널들을 분류해서 왜 보수 쪽 패널이 부족하냐고 지적하는 것 같은데, 시사 패널만 12년 해먹은 이준석이니까 이 문제에 대해선 자신 있게 이야기해보려 한다”며 “애초 보수진영 패널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도망 다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는 “주제가 대통령이거나 영부인이면 긴급 펑크내는 경우도 다반사이고, 무엇보다 공천 하나만 바라보고 마이크 앞에 서기 때문에 국민이 바라는 공정한 시각에서의 마음의 소리가 아니라 굴종의 궤변을 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면 청취율이나 시청률이 안 나오고,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 일상다반사”라고 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당 대표 시절 ‘토론 배틀’을 도입해 시사 패널로도 활동할 수 있는 인재들을 다수 선발했고 그들에게 ‘방송에서 무슨 말을 해도 되는 자유, 때로는 당 판단을 비판할 자유’를 줘 이 점이 국민 공감대를 샀다면서 “물론 이게 불편한 어떤 자들은 ‘내부 총질’이란 단어로 묶어서 이 막강한 수단을 없애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력으로 사람을 뽑아 쓰자고 하면 ‘당을 위한 헌신’을 봐야 된다는 궤변으로 일관하니 앞으로도 공천을 위해 몸을 불사르는 패널들이 보수를 대변하게 될 것”이라며 “그럴 거면 태영호 의원을 왜 욕하나. 당신들이 원하는 인재상이 태 의원인데”라고 꼬집었다.
‘디플로맷 토크’ 간디 술리스티얀토(Gandi Sulistiyanto Soeherman) 인니 대사 “대통령과 영부인, 디타 자랑스러워 해”
‘디플로맷 토크’ 간디 술리스티얀토(Gandi Sulistiyanto Soeherman) 인니 대사 “대통령과 영부인, 디타 자랑스러워 해”
2023. 03. 11 01:27 연예
아리랑TV 오는 13일 오후 5시에 방송이 될 아리랑TV ‘디플로맷 토크 – 나피디의 외교 다이어리’ (Diplomat Talks: Na PD’s Diplomacy Diary)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의 문화 교류 현황과 전망과 걸그룹 ‘시크릿넘버’ 디타와 함께 한 인도네시아 문화 체험까지 다양한 콘텐츠가 펼쳐진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수교 50주년을 맞이했다. 1973년에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한 이후, 양국은 각별한 신뢰와 우호 관계를 형성해왔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2006년 12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고, 2017년 11월에는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다. 한국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동남아시아 국가는 인도네시아가 유일하다. 또 한국 대통령의 첫 인도네시아 방문이 있었던 1981년 이후, 양국 대통령이 상대방의 국가를 각각 13차례씩 방문했을 정도로 두 나라는 긴밀한 협력을 이어왔다. 나누리 피디와 만난 간디 술리스티얀토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는 “인도네시아와 한국이 50년 동안 외교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는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운을 뗀 후, “다양한 행사들로 기념하고 축하하려고 한다. 모두가 흥미로워할 만한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많은 비즈니스 포럼도 개최할 생각이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아리랑TV 인터뷰 현장에는 케이팝 스타도 함께 했다. 댄스곡 ‘둠치타(DOOMCHITA)’ ‘탭(TAP)’ 등으로 주목받은 걸그룹 ‘시크릿넘버’의 디타가 깜짝 손님으로 등장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출신으로는 최초로 케이팝 걸그룹 멤버가 된 디타는 한국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에서도 뜨거운 사랑과 응원을 받고 있다. 디타는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수교 50주년을 맞이한 것에 대해 “나에게도 정말 의미가 깊은 한 해다. 또 내가 최초의 케이팝 걸그룹 멤버가 된 인도네시아 여성이라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 준 것도 매우 기쁘다”며 소회를 밝혔다. 간디 술리스티얀토 대사는 지난해 7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디타가 많은 도움을 줬다며 “대통령과 영부인이 디타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또, 디타가 대통령의 고향인 수라카르타(Surakarta)와 가까운 족자(Yogyakarta) 지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워했다.” 이에 디타는 “대통령을 맞이하고, 나라를 위해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 등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또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간디 술리스티얀토 대사는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동시에 사랑받는 디타의 모습에서 양국 문화 교류의 가능성을 찾아냈다. 디타가 “(케이팝과 인도네시아 전통춤 사이에) 결합할 수 있는 잠재력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리랑TV 특히 발리 전통춤은 굉장히 역동적이다. 두 가지 문화를 섞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자 간디 술리스티얀토 대사는 “디타가 케이팝 춤을 추는 것을 볼 때, 발리 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보일 때가 있다.”라고 응수했다. 대사는 “젊은이들이 디타를 보고 어떻게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협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영감을 얻길 바란다. 인도네시아 가수들도 한국에 와서 한국 가수들과 협업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나누리 피디는 다양한 인도네시아 문화를 직접 체험했다. 특히 디타는 나누리 피디와 짧게 인도네시아어(바하사 인도네시아)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간디 술리스티얀토 대사는 인도네시아 문화 중 한국에 더 소개하고 싶은 것으로 바틱(Batik)을 꼽았다. 대사는 대사관에 한복 디자이너와 진주실크 전문가를 초대하기도 했는데 이 자리에서 나누리 피디는 한국산 ‘진주실크’에 인도네시아의 천연 염색법인 ‘바틱’이 접목된 색다른 느낌의 한복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인도네시아에서 판매되고 있는 “바틱 한복”을 입어보기도 했다. 2009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틱에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정체성과 정신이 담겨 있다. 간디 술리스티얀토 대사는 양국 수교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고 설명하면서 “8월에 바틱으로 랩핑한 전기차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이어진 오찬에서 간디 술리스티얀토 대사는 정통 인도네시아 음식들을 소개했다. 콩으로 만든 인도네시아 전통 발효 식품인 ‘템페(Tempeh)’가 들어간 자바식 샐러드 ‘뻬?f(Pecel)’를 비롯해, 한국의 소고기 무국을 연상하게 하는 ‘소또 반둥(Soto Bandung)’, 그리고 른당(Rendang) 등이 식탁에 올랐다. 아리랑TV 간디 술리스티얀토 대사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음식이 ‘른당’이라고 언급했다. 부드러운 소고기와 이국적인 향신료가 어우러진 른당은 세계 최고의 음식으로 칭송받는 인도네시아 대표 음식이다. 식사 자리에 함께한 디타는 시크릿넘버 멤버들에게 옥수수 튀김의 일종인 바콴자궁(bakwan jagung) 등 때때로 인도네시아 음식을 만들어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누리 피디와의 인터뷰를 통해 인도네시아 음식, 전통의상, 음악 등 다양한 인도네시아 문화를 소개한 간디 술리스티얀토 대사는 문화 협력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며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의 문화 협력, 인적 교류가 강화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나피디가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한국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한국은 한류를 일으키는 데에 아주 큰 성공을 거뒀다.”라면서 “인도네시아에도 정말 많은 한국 드라마 시청자들이 있다. 모든 사람,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이 팬데믹 시기 동안 한국 드라마를 많이 시청했다.” 그러면서 “나는 한류 열풍을 보며 ‘한국의 성공 열쇠’가 무엇인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창조경제 분야에서도 많은 협력을 하길 바란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이 이런 창조 경제의 일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사관 전문 프로듀서 나누리 피디가 진행하는 ‘디플로맷 토크-나피디의 외교 다이어리(Diplomat Talks: Na PD’s Diplomacy Diary)’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편은 13일 오후 5시에 아리랑TV를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로도 방송된다. 아리랑TV
블랙핑크, 프랑스 영부인 마크롱 여사 또 만났다
블랙핑크, 프랑스 영부인 마크롱 여사 또 만났다
2023. 01. 25 16:17 연예
블랙핑크 멤버들이 프랑스 영부인 마크롱 여사와 만나 인증 사진을 찍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마크롱 여사 재단 자선콘서트 참석 퍼렐 윌리엄스, 미카와 한무대 그룹 블랙핑크가 프랑스 영부인과 만났다. 블랙핑크는 2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19구 빌레트 공원 내 르 제니스 공연장에서 열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 부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만나 함께 인증사진을 찍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확산된 해당 인증 사진 속에는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블랙핑크 멤버들을 비롯해 마크롱 여사가 재단 및 콘서트 관계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블랙핑크는 이날 마크롱 여사가 이끄는 프랑스 병원재단이 개최하는 갈라 콘서트 참석을 위해 파리를 방문했고 마크롱 여사와 만난 것이다. 마크롱 여사는 해당 병원재단직 이사장직은 2019년 물려받았다. 블랙핑크와 마크롱 여사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마크롱 여사는 지난해 12월 블랭핑크의 유럽투어 중 파리 공연 당시 콘서트장을 방문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날 콘서트에는 블랙핑크 외에도 퍼렐 윌리엄스, 미카 등 세계적 가수들이 무대에 오른다. 이번 티켓 수익은 전액 프랑스 병원재단에 기부된다. 이번 콘서트를 마친 블랙핑크는 오는 28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공연을 진행하며 월드투어를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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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프랑스 영부인 ‘결혼은 NO, 동거는 YES’
[세계]프랑스 영부인 ‘결혼은 NO, 동거는 YES’(2012. 05. 15 19:30)
2012. 05. 15 19:30 국제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랑스에서 동거는 일상적이다. 프랑스에서도 가정을 이루는 보편적 방식은 결혼이지만,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31%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퍼스트 레이디'라는 호칭처럼 대외적 역할을 수행하는 영부인이 결혼하지 않은 동거인이라는 사실은 간단치 않은 문제인 것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의 전 동거인 세골렌 루아얄, 올랑드의 현 동거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왼쪽부터). | AP연합뉴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58)의 프랑스 대통령 당선 소식은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 유럽 재정위기의 해법으로 긴축 대신 성장을 제시한 좌파 후보의 당선도 의미있는 사건이었지만, 그의 사생활도 주목을 받았다. 올랑드 당선자의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47) 때문이었다. 한국은 김윤옥, 미국에는 미셸 오바마, 프랑스는 카를라 브루니. 원래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영부인에게는 많은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이번 프랑스의 경우는 더욱 특별했다. 대통령이 공식적으로는 미혼상태로 동거하는 ‘파트너’만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랑스에서 동거는 일상적이다. 프랑스에서도 가정을 이루는 보편적 방식은 결혼이지만,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31%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퍼스트 레이디’라는 호칭처럼 대외적 역할을 수행하는 영부인이 결혼하지 않은 동거인이라는 사실은 간단치 않은 문제인 것이다. 5월 15일이면 연임에 실패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57)이 엘리제궁을 떠난다. 사르코지는 잇단 말실수와 요란한 사생활 노출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지만, 부인 카를라 브루니(45)도 화제성으로는 못지 않았다. 브루니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슈퍼모델로 잘 나가던 시절 한 해 400만 파운드를 벌어들이고, 유명 잡지의 오트 쿠튀르 의상 화보를 촬영했다. 또한 포크가수로 활동하기도 해 사르코지가 밤마다 침실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준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팝밴드 마룬5의 히트곡 <Moves Like Jagger>의 주인공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2008년 두 번째 이혼을 한 사르코지와 4개월 만에 치른 결혼은 그를 전 세계적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직장생활 유지 뜻 밝혀 그러나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는 브루니의 ‘블링 블링’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선거유세 도중 인터뷰에서 “평소 시장에 옷을 사러 가고, 아이들이 침대 밑에 던져놓은 양말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며, 집에서 찬장 문을 열고 다니거나 출입문을 닫지 않는 올랑드의 나쁜 습관 때문에 몹시 짜증이 나지만, 그의 이런 모습이 숨길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트리에르바일레의 평소 입버릇은 “나는 신데렐라가 아니다”라고 한다. 영국 가디언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가 프랑스 동부 앙제의 평범한 가정에서 여섯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고 전했다. 트리에르바일레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었으며, 그가 21살때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는 계산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소르본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에는 프랑스 주간지 <파리 마치>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며, 2005년부터는 케이블TV채널 ‘디렉트8’의 정치 토크쇼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정치분야를 주로 담당했다.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진 그는 두 번째 남편인 잡지사 동료와의 사이에서 10대 자녀 3명을 낳아 키우고 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올랑드가 당선돼도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신이 다니던 직장에도 계속 출퇴근하며 월급을 받겠다고 밝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선거유세 도중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서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거유세 동안에는 문화부로 옮겨 활동했지만, 대통령 부인이 정치부 기자라는 것은 많은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는 “내 기자출입증을 뺏긴다 해도 기자로 죽겠다. 이것은 나의 영혼”이라고 라디오방송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려는 시도는 대통령 올랑드의 부인이 되면서 쉽지 않게 됐다.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파리 마치의 기사 때문에 분노한 일이 있다. 잡지 표지에 ‘발레리, 올랑드의 매력적인 자산’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나갔다. 그는 트위터로 ‘브라보, 파리 마치의 성차별주의…. 나는 모든 분노한 여성들이 걱정된다’라는 글을 올렸다. 선거 캠페인 중에는 사르코지 소속 정당 대중운동연합 의원이 트리에르바일레(Trierweiler)를 사냥개인 로트와일러(Rottweiler)로 바꿔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선거 기간 내내 집앞을 지키던 기자들로 인한 사생활 침해도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2007년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 세골렌 루아얄(59)도 부담스럽다. 세골렌 루아얄은 프랑수아 올랑드의 전 동거인이다. 올랑드는 1978년 국립행정학교에서 루아얄과 만나 25년 동안 동거하면서 3남 1녀를 두었다. 두 사람은 2007년 대선이 끝난 후 결별 사실을 발표했다. 당시 올랑드는 트리에르바일레와 교제하고 있었다. 루아얄은 여전히 사회당 여성정치인 중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루아얄은 결별 후 올랑드와 남남처럼 지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적극적으로 그를 도왔다. AFP통신은 루아얄이 올랑드가 꾸릴 행정부에서 역할을 맡게 되거나 의회 대변인에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런 개인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정작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트리에르바일레의 ‘영부인’으로서의 역할이다. 그가 결혼 안 한 영부인이라는 것은 의전절차에서 큰 문제를 낳는다. 프랑스 대통령 내외가 방문하는 국가들은 의전절차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트리에르바일레는 “이것이 왜 큰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바티칸에 교황을 방문할 때나 문제가 되지 결혼은 사생활문제”라고 일축했다. 의전문제 때문에 혼인신고 할 수도 그러나 아랍국가들을 비롯한 보수적인 국가에서는 민감한 사안이다. 2008년 사르코지는 중동 방문 당시 카를라 브루니와 사귀고 있었지만 결혼을 올리지 않아 동행하지 않았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혼전 동거가 금지되어 있다. 동거생활을 하는 타국 수반이 방문하는 것은 종교적·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인 것이다. 사르코지는 2008년 인도 순방 때도 사전 협의를 했지만, 결국 의전문제로 단독 방문을 했다. 인도에서는 결혼과 가족이 인생의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이었다고 한다. 결국 사르코지와 브루니는 ‘사랑의 금자탑’으로 불리는 타지마할을 결혼 후에나 방문할 수 있었다. 프랑스 외무부는 “대부분 국가들은 우리 국빈 방문시 대통령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라며 “21세기에 결혼하지 않는 게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익명의 관리는 “우리가 그를 영부인으로 대우해달라고 요청하면 그들은 그냥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의전문제 때문에 대통령 취임식을 갖는 오는 15일 전에 올랑드와 트리에르바일레가 혼인신고를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랑드의 대통령 당선 이후 한국만이 아니고 각국 언론은 그와 트리에르바일레의 사생활을 보도하고, 프랑스에서도 사적인 대화 소재가 됐다. 그러나 공적인 논쟁거리가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지도자의 사생활에 관대한 프랑스의 분위기와 우리로서는 낯선 동거문화가 여러 모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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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 30주년 특집]이광희부티크 대표 이광희 - 영부인들이 사랑한 디자이너의 패션스타일
2012. 04. 18 16:20 화제
아름다움뿐 아니라 품위와 카리스마까지 느껴지는 스타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퍼스트레이디. 그러한 퍼스트레이디들이 사랑한 디자이너 이광희. ‘그녀는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궁금증에 디자이너 이광희가 직접 입는 옷과 스타일 철학을 살펴봤다. VIP 손님과 상담할 때는 실루엣은 심플하고 단정하면서 한 가지 정도 포인트가 있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삶의 의미를 담는 옷 현재와 전 퍼스트레이디는 물론 여성 CEO, 국회의원, 재벌가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대한민국 럭셔리 패션의 대명사가 된 디자이너 이광희(60). 처음 만난 그녀는 예상외로 캐주얼한 블랙톤의 옷을 입고 있었다. 디자인을 할 때는 로맨틱하고 발랄한 스타일을 많이 만들지만, 정작 그녀는 튀는 것보다 묻혀서 일하는 것을 좋아해 무채색의 캐주얼한 옷을 주로 입는다고 한다. “옷은 입는 사람의 가치관과 원칙, 그 사람을 중심으로 주변까지 잘 담아내야 자연스럽게 빛나죠. 저는 조용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다 저보다 고객이 아름다워지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껴서 차분하고 단정한 옷을 입을 때가 가장 좋아요.” 1 디자인 영감을 얻기 위해 부티크 앞의 남산에서 종종 산책을 즐긴다. 편한 트레이닝 차림 같지만 잘 살펴보면 셔링, 지퍼 등에 여성스러운 디테일이 숨어 있다. 2 사적인 약속에서는 차려입었지만 차려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옷을 입는다. 그래야 편해 보이고 실제로 자신도 편하게 느낀다고. 단정한 스커트 위에 후디 재킷을 입거나 포멀한 재킷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그래서 옷을 만들 때도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삶의 전반적인 의미를 담으려 하고, 옷을 입은 이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돋보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일류 대학 비서학과를 졸업한 후 바로 취업하지 않고 디자이너가 된 이유 중에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손재주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여성이 충분히 여성스러우면서 남자와 똑같이 경쟁하기를 바랐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79년 하얏트호텔 지하에 ‘당신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드립니다’라는 모토로 의상실을 열었다. 조용하고 사람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의 그녀는 ‘그냥 옷만 열심히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성실히 일했고, 현재는 국내 최고의 상류층들이 입기 위해 줄을 잇는 품격 있고 우아한 옷을 디자인하고 있다. 그녀의 스타일 공식은 편안하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는 것! 디자이너 이광희의 생활 속 스타일링을 살펴보니 처음에는 수수하게만 보였던 스타일의 매력과 규칙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룩은 늘 편안해 보이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품위와 우아함,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는다. 디자인의 영감을 얻기 위해 부티크 앞의 남산을 산책할 때는 심플한 올 블랙 트레이닝복이지만, 슬림하면서 밑으로 갈수록 살짝 넓어지는 바지 핏, 셔링 디테일이 있는 후디 점퍼로 여성스러움을 강조했고,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서도 편하게 후디 재킷과 스커트를 매치했지만 클래식한 디테일과 실루엣으로 우아한 느낌을 물씬 풍겼다. 고객을 맞을 때는 심플하고 단아한 투피스를 자주 입지만 허리 라인, 칼라, 소매에 디테일로 포인트를 준다. 화려한 패션계의 정점에 올라 있으면서도 ‘아름다움은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가짐과 내면에서 나온다’라는 중심을 가장 잘 지키고 있는 이광희. 그녀는 “인생에서 옷을 입어서 실패하는 것은 너무나 작은 일이다. 다양한 옷을 입어보고 가장 아름다운 스타일을 찾아내기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1 부드러운 컬러감의 크림 아이보리 셔츠와 산뜻한 민트 컬러를 매치하고 약간은 낮은 허리 라인에 브라운 컬러를 배색해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에 롱 재킷을 매치하고 스커트 컬러와 연결감이 있는 포인트 브로치를 달아 기품이 묻어나는 룩을 완성했다. 2 이중 칼라, 잘록한 허리 라인으로 고급스러우면서도 당당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퍼스트레이디 룩. 자칫 경직돼 보일 수 있는 룩이지만 부드러운 레이스 셔츠와 허리 라인을 따라 잡힌 셔링 디테일이 여성스러움을 더해준다. 이광희가 제안하는 퍼스트레이디 룩 퍼스트레이디로서 갖춰야 할 품위와 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각자의 개성도 녹아들어 있는 스타일을 제안한다. 공통적으로는 단아하면서 과하게 화려하지 않은 스타일을 추천한다. <■진행 / 조혜원 기자 ■사진 / 원상희>
영부인에서 촌티 폴폴~ 바보엄마 변신 하희라
2012. 04. 03 12:20 연예
하희라가 SBS-TV 주말 특별 기획 드라마 ‘바보엄마’에서 IQ 72에 지적장애인으로 파격 변신했다. 남편 최수종과 동반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한 2011년 드라마 ‘프레지던트’의 카리스마 넘치는 영부인과는 180도 다른 캐릭터여서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년 만에 안방극장을 찾아온 하희라의 색다른 도전이 기대된다. 헐렁한 카디건과 편안한 신발을 신고 양손에 크고 긴 미역다발과 김치통을 든 채 뒤뚱뒤뚱 걷는 폼이 영락없는 시골 아줌마다. 100m 밖에서도 보일 것 같은 빨간색 립스틱을 칠한 입술에서 쏟아지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듣고 있자면 전작에서 지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영부인 하희라가 맞나 싶다. “이번 역할은 저에게 큰 도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오랜 연기 생활 중 처음 해보는 캐릭터거든요. 남편이 추천을 했고 저도 이번 기회 아니면 다시는 못할 것 같아 출연을 결심했어요. 특히 경상도 사투리가 힘들어요. 제가 맡은 선영이란 역할의 최대 장점이자 최대 단점이 바로 사투리거든요. 초반이라 어색하게 들리실지도 모르겠어요. 사투리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을 초빙해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바보엄마’는 지적장애를 가진 호적상 언니, 그러나 사실상 엄마인 선영을 자신의 인생 밖으로 밀어내려고만 하는 동생 영주(김현주 분)가 우연한 기회에 언니와 동거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가족의 사랑과 용서, 화해를 그린 휴머니즘 드라마이다. 하희라는 자신이 연기하는 선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지적장애인들은 관심과 사랑을, 그의 가족들은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는 남다른 소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제가 발달장애 학생들이 주축인 하트하트 재단의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역할이 매우 조심스러워요. 진심이 왜곡되거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되는데, 제가 생각하는 것과 드라마로 그려지는 데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이 드라마를 통해 소외받고 있는 지적장애인들이 좀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그 어느 때보다 책임감을 갖고 연기에 임하려고 해요.” 이 드라마에서 사용하는 ‘바보’라는 말은 모자람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자식을 향한 헌신적이면서도 지고지순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말로 순수함을 뜻한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바보 같지만 감동적인 사랑을 지적장애인 선영을 통해 그녀가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해진다.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대통령을 지배하는 것은 영부인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8인의 리얼스토리
대통령을 지배하는 것은 영부인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8인의 리얼스토리
2007. 09. 18 화제
‘며느리가 잘못 들어오면 집안이 망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만큼 며느리이자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역할은 한 가정을 꾸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물며 한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의 아내는 어떠하겠는가. 훌륭한 영부인은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특별 조언자 역할을 했던 역대 영부인 8인의 면면을 조명해본다. 푸른 눈의 퍼스트레이디, 프란체스카 “아내의 지혜와 용기, 인내와 슬픔, 노력이 나 로 하여금 오늘 이날을 맞게 했다” - 이승만 전 대통령 독립운동으로 일생을 보냈던 이승만 박사는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스위스에 들렀다가 프란체스카 여사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스물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식을 올렸지만 많은 동포들이 이 결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 박사의 훌륭한 비서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취임한 뒤 미군정으로부터 관련 업무를 이양 받는 과정에서 프란체스카 여사의 역할은 컸다. 재임 기간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해 피난 생활을 해야 했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 와중에도 세계 각국에 한국 부상병들을 위한 담요와 구호품을 보내달라는 영문 편지를 직접 써서 보내기도 했다. 그녀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먼저 구호품을 보내줬고, 이후 세계 각지에서 구호품이 도착했다. 남편의 나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던 프란체스카 여사. 어느 날 한 외국인이 ‘오스트리아 사람이냐’고 묻자, ‘아니오. 난 한국인이에요’라고 답한 일화는 그녀의 한국 사랑을 짐작하게 한다. 1 젊은 시절 프란체스카 여사의 모습. 2 1957년 영주 부석사에 들른 이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기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린애처럼 손을 맞잡고 있다. 3 1953년 11월 13일 리처드 닉슨 미국 부통령 부부와 함께한 이승만 대통령 부부. 프란체스카 여사는 막힘없는 영어 구사력으로 6·25 전쟁 전후 세계 각지에 구호를 요청하는 등 민간 외교관 역할을 활발히 수행했다. 순종적 아내에서 자주적 사회운동가로, 공덕귀 “그때 프린스턴 대학으로 유학을 갔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 공덕귀 여사 신학자의 길을 걷고자 했던 공덕귀 여사는 결혼에 도통 관심이 없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 유학을 준비하던 중 주변에서 당시 서울 시장을 맡고 있던 윤보선 전 대통령과 혼사를 주선했다. 한사코 공부를 더 하겠다는 그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의지가 하도 대단해 결국 공부를 포기하고 윤보선 전 대통령과 혼례를 치른다. 예를 중시하는 명문가의 맏며느리로 들어온 공덕귀 여사는 이 자리가 귀양살이처럼 외롭고 힘들었다. 공 여사는 명문가의 예의와 함께 며느리, 아내, 어머니 역할을 익히는 일을 무척 힘들어했다. 평소 걸음걸이가 남자같이 활달하던 그녀는 시집온 뒤 걸음걸이 훈련까지 받아야 했다. 조용한 삶은 이후 청와대 생활에서도 이어졌다. 한국 최초의 여성 신학자이자 일본 유학을 다녀온 교수 출신이었지만 정치적, 시대적 상황이 그녀의 역동적인 역할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공 여사는 정치에는 일절 참견하지 않았고 그저 교회 지도자들을 청와대에 초청해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곤 했다. 그녀의 본격적인 활동은 1년 8개월의 청와대 생활을 청산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 발휘됐다. 남편의 퇴임 이후 조용히 살았던 다른 역대 퍼스트레이디들과 달리 공 여사는 여성 지도자로 민주화운동, 여성운동, 인권운동에 몸을 살랐다. 1 공덕귀 여사는 결혼 직후 “1949년 1월 6일, 안국동 8번지로 귀양을 왔다”며 도미 유학의 꿈이 꺾인 것에 대해 자조 섞인 평을 했다. 2 공 여사의 퍼스트레이디 시절 활동은 외교사절 접대, 여성 단체 활동 참석, 의료기관 방문 등의 의례적인 것에 그쳤다. 사진은 외교사절 부인들을 청와대에서 접견하는 모습. 죽어서도 빛나는 영원한 국모, 육영수 “그곳은 나의 유일한 낙원이요, 태평양보다 더 넓은 마음의 안식처이다” - 박정희 전 대통령 역대 페스트레이디 중 가장 인기 있다고 손꼽히는 육영수 여사. 육 여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임무는 ‘청와대의 귀’가 되는 것이었다. 정보와 민심을 차단하는 일은 곧 대통령의 정치적 장래를 망치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심을 알기 위해 라디오를 즐겨 들었던 육 여사는 일 때문에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닐 때에는 아예 라디오를 목에 걸고 다녔다고 한다. 라디오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은 물론 익명으로 배달되는 발행 금지된 신문들까지 모두 챙겨 읽었다. 11년의 세월을 영부인으로 청와대 생활을 한 육 여사는 퍼스트레이디의 역할 모델을 정립하게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페스트레이디로서 바람직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항상 조심하고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했다. 또 사투리를 개선하고 화법과 시선 처리, 화장법과 옷차림새 등 이미지 메이킹에도 관심을 쏟았다. 그중 퍼스트레이디 비서실을 최초로 공식화하고 ‘퍼스트레이디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만든 일이 최고의 업적으로 꼽힌다. 비서실의 주요 업무는 민원 처리였다. 육 여사는 민의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자신 앞으로 온 편지는 모두 직접 읽고 답장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등 민원 해결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또 재임 기간 동안 나환자의 손을 잡고 그들이 건넨 음식을 같이 나눠 먹는 인간적인 퍼스트레이디의 모습을 보여줬다. 서거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아직까지 육 여사가 이권이나 정실 인사에 개입했다거나 사리사욕을 챙겼다는 부정적인 비난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육 여사는 우리나라 퍼스트레이디 가운데 가장 비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정치적인 영부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퍼스트레이디, 홍기 “공평하고 원칙을 중히 여기며 남편이 청렴할 수 있도록 내조한 공이 크셨습니다” - 최홍순 최규하 전 대통령 비서실장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홍 여사는 정규 교육기관에 다니지 않았다. 대신 집안에서 어른들로부터 한문을 배우고 전통적인 한국 여인이 갖춰야 할 교양을 쌓으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 학생이었던 최규하 전 대통령과 결혼한 홍기 여사는 이후에도 약 10년간 남편의 학업으로 인해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최 전 대통령이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갔을 때 홍기 여사는 시댁인 원주에서 어른들을 모시며 큰며느리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국무총리를 지내던 남편이 박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대통령 직무 대행을 맡고 있다가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홍 여사도 하루아침에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퍼스트레이디가 됐지만 홍 여사의 태도나 모습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특별히 꾸미지도 않았으며 가족이 먹을 김치는 항상 직접 담갔다. 퍼스트레이디일 때나 아닐 때나 홍 여사의 모습과 생활 방식은 늘 한결같았다. 청와대 시절 동안 홍 여사는 추석을 전후해 양로원과 고아원 등을 열심히 다니는 것 이외에는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퍼스트레이디로서 꼭 해야 할 의례적인 일만 수행했을 뿐이다. 약 2백50일 동안 청와대 생활을 했던 홍기 여사는 불안한 정치 상황 때문에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홍 여사는 죽기 전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8년간 투병했다. 남편의 부자연스러운 퇴임은 물론, 퇴임 이후 서서히 남편을 압박하기 시작한 여론으로 인해 말 못할 심적 고통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 최규하 전 대통령과 홍기 여사. 2 최규하 대통령 취임 후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홍기 여사.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기보다는 남편 뒤로 물러나 내조하는 일에 주력했다. 화려한 권좌와 지옥 같은 나락을 오가다, 이순자 “나는 내 모든 것을 그분의 상황 속으로 던져 버리기로 결심했어요” - 이순자 여사 이화여대 의과대학에 진학한 이순자 여사는 의사의 꿈을 포기한 채 스무 살의 나이에 전두환 전 대통령과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군인의 아내로 사는 살림은 넉넉지 않아 처가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때 이 여사는 가정에 보탬이 되고자 미용 기술과 편물 기술도 배웠다. 이 여사의 내조는 베테랑 수준이었을 뿐 아니라 재테크나 자식 교육에도 뛰어났다. 하지만 퍼스트레이디라는 자리는 이 여사에게 커다란 도전이었다.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 당시 이 여사는 남편과 나란히 취임식장에 입장했다. 군인 시절부터 공식 행사장에는 항상 부부가 동반 참석했기 때문에 이들 부부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런 문화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의 국민들은 몸을 약간 뒤로 젖힌 채 앉거나 대통령과 나란히 손을 흔들며 공식 석상에 등장하는 이 여사의 모습에서 거부감을 느꼈다. 게다가 대통령 취임식 때 입은 화려한 컬러의 의상이 국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이 여사는 육영수 여사를 자신의 역할 모델로 삼아 본받으려 했다. 특히 교육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 새세대육영회와 새세대심장재단을 설립해 유아교육과 심장 수술의 발전에 양적·질적 공헌을 했다. 하지만 이런 공적도 친인척 비리로 인해 그 빛이 바랬다. 청와대를 떠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랐지만 ‘5공 청산’이라는 사회 분위기에 휘말리면서 세상으로부터 수많은 비난을 받았다. 1 이순자 여사와 전두환 전 대통령 기족의 기념사진. 2 심장병 어린이 돕기 거북이 대회에서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 여사가 방한 후 한국의 심장병 어린이 2명을 미국으로 데려가 치료해주었다. 그후 이순자 여사는 ‘퍼스트레이디 프로젝트’로 심장병 어린이 돕기를 설정, 이에 주력했다. 그림자처럼 조용한 내조형 파트너, 김옥숙 “당시 부속실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영부인 활동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 청와대 핵심 관계자 김옥숙 여사는 청와대에 있는 동안 자신과 관련한 모든 행사를 언론에 알리지 않고 일체 대중매체에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여성 관련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하지 않았고 어쩌다 참석해도 발언을 극구 삼갔다. 특히 김 여사는 재임 중 단 한 건의 인터뷰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림자 내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선거 기간 중에도 남편 유세 활동에 함께 가기는 했지만 항상 군중 속에 섞여서 깃발을 흔들거나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퇴임 즈음에서야 김 여사의 활동 중 일부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20여 년간 소년소녀가장 10가구와 결연 관계를 맺고 인간적, 금전적 도움을 줬고 해마다 한 번씩 이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이와 함께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부터 산간벽지에 있는 고아원, 양로원 등도 방문했다고 한다. 청와대에 입성한 김 여사는 특히 옷차림에 많은 신경을 썼다. 전임자인 이순자 여사의 옷차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감안한 차별화 전략인 동시에 군사 정권의 연장선이라는 평가를 받는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완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김 여사는 대단한 멋쟁이였음에도 주변 환경과 시선 때문에 자신만의 솔직한 패션 스타일을 추구하지 못했다. 온화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육영수 여사 스타일을 벤치마킹했다. 순조롭게 임기를 마감할 것처럼 보였던 김 여사는 노태우 대통령 퇴임 2년 후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이순자 여사와 비슷한 고난의 길을 걷게 됐다.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원래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 여사는 아예 두문불출했다. 김 여사의 근황은 베일에 싸여버렸다. 1 미소 짓는 김옥숙 여사. 2 1992년 1월 노태우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동안 로라 부시 여사를 따로 만나 환담을 나누는 김옥숙 여사. 3 1988년 2월 26일에 열린 대통령 취임 축하 연회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옥숙 여사가 참석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한 발 뒤로 물러난 현모양처, 손명순 “아내는 가족의 드러나지 않는 중심이며, 나는 아내에게서 또 다른 어머니를 느낀다” - 김영삼 전 대통령 손명순 여사는 대학 3학년 때인 20대 초반에 동갑내기 대학생인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스물세 살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40여 년을 정치인의 아내로 지냈다. 이화여대 약학과에 재학 중이던 손 여사는 기혼자는 퇴교해야 한다는 이화여대의 학칙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학업을 마치고 졸업을 했다. 학교에 결혼 사실을 알리지 않고 공부를 마치겠다는 집념으로 임신으로 불러오는 배를 천으로 감싸고 학교에 나가 수업을 들었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손 여사는 학창 시절부터 대통령을 꿈꾸었던 남편을 위해 자신만의 내조법을 만들었다. 첫째는 가난을 참는 것이고 둘째는 남편에게 용기를 주는 것, 마지막으로 집에 찾아온 사람에게 기꺼이 밥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 그의 성공의 절반은 손 여사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손 여사는 조용하고 소극적인 퍼스트레이디로 5년 동안 청와대 생활을 했다. 대신 청와대의 권위적이거나 소비적인 부분 등 낡은 관행을 바꾸는 데 앞장섰다. 청와대 수행원들과 운전기사들이 제때 식사를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식사할 공간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구 본관 건물을 개조해 구내식당을 만들고 여성 직원 전용 휴게실을 만들었다. 또 청와대 직원들의 식구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청와대 구경도 하게 했다. 손 여사는 전임 퍼스트레이디들과 달리 구설도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손 여사는 남편의 재임 기간 중 정치인 부인들은 고사하고 청와대 내에서 같이 근무하는 참모들인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 부인들을 초청해 식사를 같이 하는 의례적인 모임조차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 손 여사는 자신이 입는 옷의 라벨을 떼고 입었으며 청와대 면회실로 들어온 선물도 대부분 돌려보냈다고 한다. 1 베이징 제4회 세계여성회의장에서 한국을 대표해 기조연설을 하는 손명순 여사. 퍼스트레이디가 유엔여성회의에 참석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2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세계여성회의에 참석한 손명순 여사가 당시 리펑 중국 총리와 환담을 나누는 모습. 3 1996년 김영삼 대통령, 손명순 여사 부부의 가족사진. 대통령을 만든 정치적 동반자, 이희호 “남편의 의견을 단순히 대변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 제시한 정치인이었다” - 예춘호 전 국회의원이희호 여사는 마흔한 살의 나이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하고 있어 정부의 감시 대상 1호였다. 자연히 이희호 여사 역시 24시간 감시와 미행, 도청 등에 시달렸다. 수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김 전 대통령을 대신해 이 여사는 홀로 자식을 키우면서 남편 뒷바라지뿐만 아니라 같이 잡혀간 남편 비서들의 뒷바라지까지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방학’이라고 불리는 약 15년 동안 이 여사는 단순히 남편의 내조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남편을 대신해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남편의 상황과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직접 외신기자들을 만나고 해외 유력 인사들에게 편지를 썼다. 시위와 집회에도 직접 참여했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4수 끝에 국가 최고 통치권자가 됐을 때 이희호 여사의 나이는 75세였다. 동교동 시절부터 검소한 것으로 유명했던 이 여사는 청와대 안주인이 되어서도 이전과 다름없이 살림을 검소하게 운영했다. 특히 당시 IMF로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침대를 제외하고 의자, 식기 등 대부분의 집기를 전임자가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썼다. 바꾼 것은 커튼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이 여사는 1980년 이후의 퍼스트레이디 중 가장 훌륭한 퍼스트레이디로 손꼽힌다. 뚜렷한 업적을 많이 이룬 이 여사는 젠더 이슈를 직접 제기하고 그것을 움직여 나간 첫 퍼스트레이디라고 할 수 있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평생 일해온 이 여사는 퍼스트레이디가 되자 이와 관련된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 결식아동을 돕는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을 발족했다. 퇴임 후에도 재임 중 만들었던 이 단체와 ‘한국여성재단’의 명예총재, 명예고문 등 다양한 분야의 명예직을 맡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최초의 인물이다. ■정리 / 이민경(자유기고가) ■자료 제공 / 「한국의 퍼스트레이디」(황금가지 / 조은희 지음)
청와대 생활 3년 만에 언론 최초 인터뷰 영부인 권양숙 여사
2006. 03. 01 화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대통령 직무정지… 당시 촛불 집회의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서민들의 대변인 역할을 자청해온 참여정부는 출범 후 많은 우여곡절을 거쳤고 급기야 2004년 여름에는 대통령 직무정지라는 전무후무한 상황까지 겪어야 했다. 본지는 2006년 2월 25일 참여정부 출범 3주년을 맞아 영부인 권양숙 여사를 인터뷰했다. 청와대 안주인으로 살아오면서 행한 언론과의 최초 인터뷰였다. 이하늘이 주신다는 이 땅의 지도자를 내조하고,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세계 각국에 한민족의 정신을 알리면서 바삐 지내온 3년. 청와대에서 지난 3년 동안 보듬어온 기쁨과 슬픔 그리고 감동의 기억들을 공개한다. 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입춘 추위가 반짝 기승을 부리더니 전국은 어느새 따뜻한 봄바람의 물결이다. 지난 2월 25일은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추운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이 오는 자연의 섭리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우리 사회는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보냈고 그런 만큼 발전과 변화의 시간도 가졌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년의 시간을 청와대 안주인으로 지낸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취임 후 처음으로 청와대 무궁화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따뜻하고 화사한 느낌의 무궁화실은 권양숙 여사가 가장 아끼는 청와대 공간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손수 고른 분홍빛 투피스 정장 차림으로 이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한 권양숙 여사는 지난 3년 동안의 청와대 생활에 대해 진솔하고 편안하게 술회했다. 한복만큼 예쁜 옷도 없습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 나라 정상과 부인들이 한복에 대해 극찬합니다. 여담이지만, 재작년 칠레 APEC에 참석했을 때 참가국 정상 부인 중 가장 옷 잘 입는 영부인으로 뽑혀 제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맵시 나는 한복 덕분이었죠. 손녀는 아들을 닮았고 외손녀는 사위를 닮았습니다. 손녀가 아들을 닮아서인지 손녀의 모습에서 언뜻 제 모습도 비춰지는 것 같습니다. 손녀 자랑을 하는 데는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두 손녀 모두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Part 1 지난 3년간의 청와대 생활 참여정부 출범 3주년이 되었습니다. 청와대 생활에 대한 감회가 어떠신지요? 지난 3년을 돌이켜 보면 어려웠던 일도 많았지만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나아지고 있어서 고맙고 다행스럽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청와대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조금씩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청와대에서 생활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르고 제약 받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이 들었지만 이제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지난 3년을 되돌아볼 때 가장 힘들었던 기억과 가장 기뻤던 일은 무엇입니까? 가장 힘들었던 때는 아무래도 대통령의 직무정지 기간이었습니다. 당시 두 달여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관저에서 보냈습니다. 문밖 출입은 딱 두 번, 저녁 무렵 본관에 내려간 것이 전부입니다. 마음 고생이 심하니 당최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덕분에 미루어둔 책을 많이 읽었지요. 그때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 대통령과 함께 관저 안 작은 뒤뜰이나 상춘재 툇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시 서울 시청 앞과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우고 촛불을 밝혀든 국민들의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늦은 밤, 잠시 바람을 쐬러 관저 앞마당을 거닐다 보면 멀리서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고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평소 생활하시며 경호 상의 불편함은 없으셨는지요? 항상 가까이서 내외분을 경호하는 분들에 대한 영부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듣고 싶습니다. 참여정부 들어 경호 방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대통령께서 뭐든지 과하게 대접하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시라 경호실의 경호 방식도 예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청와대에 오기 전에는 ‘경호원’하면 왠지 권위적이고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는데, 막상 겪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경호원들의 수준은 요원들과 실력이나 전문성에서 세계 어느 나라 요원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젠가 한번은 경호실 직원들이 경호 시범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경호 무도의 목적이 사실은 죽는 훈련이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유사시 몸을 던져 국가원수를 보호하는 대신 자신이 죽는 연습인 셈입니다. 참으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여사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오전 5시에 기상해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아침식사를 한 후 대통령께서 출근하시는 것을 도와드립니다. 지난해 일간지에 출근하시는 대통령을 제가 배웅하는 사진이 게재됐었지요. 오전 11시경부터 오후 5시까지는 제 집무실에서 근무하는데, 오찬 행사나 접견 자리에서 많은 분들을 만납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여성계와 문화계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나 해외동포들을 주로 만납니다. 이외에도 소규모로 비공식적인 접견이나 간담회 행사들을 많이 갖습니다. 때때로 종교계 지도자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각계의 전문가들을 만나 그 분야의 현황이나 애로사항을 듣기도 합니다. 그만큼 느끼고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청와대 생활을 시작한 후 대통령님과 영부인께서 기념일(생일, 결혼기념일 등)에 주고받은 선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선물의 의미도 함께 말씀해주세요. 우리 부부가 특별히 생일을 잘 챙기지는 못합니다. 대통령 당선 직후 커플링을 맞춘 것이 유일합니다. 경상도 남자들이 무뚝뚝해서인지 대통령께서도 무슨 날이라고 해서 꽃다발 하나 사는 걸 쑥스럽게 여깁니다. 그래도 가족들 생일이나 기념할 만한 일이 있으면 저녁 시간만은 잊지 않고 비워두십니다. 케이크 사다가 식구들과 둘러 앉아 노래도 해주십니다. 밖에서 받은 선물이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여성 장애인이 보내온 ‘무궁화 꽃등’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도 직접 수작업으로 만들어 보내주신 작품인데 꽃잎을 말려서 일일이 전등에 붙여 문양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 꽃 장식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만든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배어 있는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Part 2 여성&사회 문제 우리나라 여성들의 사회적인 지위가 향상됐다고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여성 문제에 대한 영부인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전업주부로 30년 넘게 살아왔습니다만, 우리 주부들은 거의 만능인입니다. 아이들 교육에서 살림살이까지 도맡아 해내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아 실력이 남성들 못지않습니다. 때문에 사회참여도 그만큼 활발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우리 여성들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사회적 토양도 마련되었다고 봅니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가 들어서서도 호주제 폐지 등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어려움은 많습니다. 여성을 보는 사회적 인식이나 문화도 더 많이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 50% 수준에 이르고 있는 여성 경제활동인구도 한층 늘어나야 합니다. 특히 여성 인재들을 발굴하고 키우는 데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여성들의 정치참여를 대폭 늘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출산이 사회적인 이슈가 됐습니다. 보육 문제도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국가에서 보육 정책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영부인께서는 이 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대통령 선거 때 “아이를 많이 낳으십시오. 국가에서 다 키워드리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저출산 문제는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아들 딸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습니다. 땅도 작고 인구폭발이 문제가 되는 시대였지요. 불과 20~30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산아제한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아이 울음소리가 끊겼다’는 곳이 많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보면 2004년 1.16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는 저출산 문제에 시달린다고 하는 프랑스나 스웨덴 같은 나라보다도 적습니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할 때 정말 걱정되는 문제입니다. 사실 참여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무엇보다 보육정책을 보건복지부에서 여성부로 이관하여, 국가의 주요정책으로 다루게 했습니다. 지난 3년간 보육예산을 3배 이상 늘렸고, 지난 1월에는 앞으로 5년간 총 19조원을 투자하는 ‘저출산 종합대책’도 마련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는 역시 보육입니다. 영유아 보육료 지원에만 9조 7천억원 이상이 투자됩니다.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 이상의 가정도 직접적인 보육료 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 믿고 맡길 수 있는 육아시설이 더욱 많아지도록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저출산도 문제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불임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대책도 있으신지요? 불임부부의 문제도 더 이상 가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체 기혼여성의 13.5%가 불임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정부는 형편이 어려운 불임부부들에 대해 시술비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올해에만 1만 4천 명, 2010년까지 24만 명이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Part 3 영부인의 공식 활동 영부인으로서의 공식적인 활동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어떤 것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보람은 지난해 부산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꼽고 싶습니다. 우리가 해외에 나가 국위 선양을 하는 것도 값진 일이지만 월드컵이나 APEC 같은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APEC 직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ASEAN+3 정상회의 행사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정상들이 하나같이 부산 APEC에 대해 부러움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부산 APEC의 성공은 부산 시민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힘을 모아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권양숙 여사께선 영부인으로서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요? 대통령께서 마음 편히 국정 운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이겠지요. 가족이나 친·인척과 관련된 일 등 안에서 챙겨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이와 함께 국민의 생각과 뜻을 전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 인터넷도 잘하시고 뉴스도 빠짐없이 보시기 때문에 대부분은 알고 계시지만, 보통 국민들의 입장에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장애인과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당장 큰 도움을 드릴 수는 없다 해도, 그분들께 위로가 되어주고 자그마한 힘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언제든 기꺼운 마음으로 찾아갈 것입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의로운 선행을 베푼 의사상자나,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도 여전히 어렵게 살고 계신 독립운동가의 후손과 국가유공자, 그리고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께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저의 몫입니다. 여사님께서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어떤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시는지요? 각계 각층의 단체나 기관에서 행사 참석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때마다 마음은 앞서지만 일일이 참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벌이기보다는,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집중해서 행사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제가 참석한 행사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행사는 지난해 초에 있었던 ‘여성 1호 초청 오찬’입니다. 참여정부 들어 각 분야에서 여성 최초의 자리에 오른 분들을 모신 행사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이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환경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성들을 만나 그분들의 경험과 사연들을 들으니 한 편의 인간승리 드라마를 보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께 “여러분의 사연을 책에 담아보시라”고 권했는데 나중에 정말로 책을 엮어냈더라구요. 우리 여성들의 변화된 위상을 엿볼 수 있어서 참으로 가슴 뿌듯했습니다. 또 사회복지사들을 청와대에 모신 일과 지난해 성탄절, 희귀병에 걸린 아이들과 그 부모를 청와대로 초대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명예위원장을 맡은 것과 국내 입양 가족들을 초청한 일도 가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해외 순방차 여러 나라를 다니셨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국내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해외에 나가 보면 대한민국과 해외 동포들의 높은 위상과 역량을 실감하게 됩니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에 대해 나라도 작고 기름 한 방울 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전쟁과 분단을 겪으면서도 어쩜 이렇게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실제로 지난번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푸틴 대통령이 한국이 발전한 까닭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교육’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교육열이 대단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공부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고민인데…”라고 몇 번씩이나 부러워했어요. 저는 우리나라가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기러기 아빠도 있고 교육 과잉 문제도 있지만, 그만큼 배우려는 열의가 있기 때문에 희망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순방 길에 느낀 또 한 가지는 우리 기업들에 대한 자긍심입니다. 외국 도시 거리 곳곳에 우리 기업들의 간판이 걸려 있고, 대한민국 상품들이 명품으로 당당히 대접받고 있습니다. 물론 한류 열풍도 실감했습니다. 역시 대단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동포들 정말 훌륭합니다. 낯선 환경에서도 특유의 성실성과 부지런함으로 현지에서 뿌리내려 성공하고, 자손들도 유능한 인재로 잘 키워냈습니다. 또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도 대단합니다. 한글학교를 세워서 2세, 3세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고, 우리의 문화도 열심히 배우고 있더군요. 저는 이런 우리 해외동포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Part 4 요리&취미 그리고 여가 생활 영부인께서는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직접 요리할 기회가 있으셨는지요. 또한 대통령의 건강관리를 위해 해드리는 특별 보양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평소에는 청와대 조리사들이 차려준 식단대로 식사를 하지만 일요일 아침에는 조리하시는 분들을 쉬게 해드리려고 직접 상을 차립니다. 고구마나, 감자, 옥수수 등을 쪄서 먹는데, 그 맛이 참 별미입니다. 예전에는 쌀이 없을 때 먹는 음식이었는데 요즘엔 웰빙시대라고, 오히려 이런 식단이 인기를 끌고 있다죠? 대통령께서는 특별히 가리시는 음식은 없습니다. 그래서 보양식이랄 것도 따로 없습니다. 해외에서도 현지 음식들을 잘 드시는 편이라 특별히 챙겨드리는 건강식은 없습니다. 다만 대통령과 제가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양식이나 중식보다는 한식이 입맛에 잘 맞습니다. 대통령께서 가끔 “출출하다”고 하실 때면 라면을 끓여드리기도 합니다. 음식 외에 특별히 신경 쓰는 것은 차나 음료수입니다. 대통령께서는 회의나 행사가 많아 말씀을 많이 하시기 때문에 목 관리 차원에서 오미자차를 해드립니다. 냉장고에 넣었다가 시원하게 해서 드리면 좋아하십니다. 최근에는 각종 문화행사와 공연을 간간이 즐기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되는 공식일정 외에 공연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경우가 많으신지요? 자주 즐기는 편이 못 됩니다. 한번 청와대 밖을 나서게 되면 비서진들과 경호실 직원들이 다 같이 움직이게 되니 괜한 고생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 발길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이번 설에도 부속실이나 경호실 식구들, 꼭 필요한 경우 말고는 편히 쉬라고 했습니다. 굳이 나들이라고 한다면 등산을 꼽을 수 있는데 멀리는 못 가고 청와대 뒤편에 있는 북악산에 오릅니다. 그럴 때면 가끔씩 산 아래 있는 식당에 들러 식사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청와대에서 생활하면서 감동적인 공연을 여러 편 접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지난해 말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한빛맹학교 자선공연입니다. 제가 초대받은 행사였는데 공연 전날 대통령께 말씀드렸더니 “마침 시간도 되는데 같이 가볼까” 하면서 동행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녀와서는 공연의 여운이 꽤 깊었던 것 같습니다. 몸이 불편한데도 어쩌면 그렇게 연주들을 잘하던지… 특히 마지막 난타 공연을 볼 때는 대통령도 저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지난해 10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무후무’라는 공연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문화재이신 이매방 선생님을 비롯 한국무용계의 대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공연이었습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나오신 분도 정작 연주가 시작되니 신들린 듯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시는데… 공연 내내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는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영부인께서는 건강 관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요. 또 취미와 여가 활동은 어떻게 하십니까? 건강 관리를 위해서는 국선도를 하고 있습니다. 시작한 지 2년 정도 되는데, 매일 아침 1시간씩 하고 나면 정신도 맑아지고 몸도 가뿐해집니다. 요즘 우리나라 주부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요가를 배우는 분들이 많던데 국선도는 전통적인 ‘한국식 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취미는 특별한 게 없고 틈날 때마다 책읽기를 즐깁니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관저에서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합니다. 가끔씩 대통령께서 일정이 없으실 때는 함께 청와대 뒷산을 오르는 것도 제가 누리는 여가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대통령님과 책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싹틔우셨을 정도로 여사님께서는 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책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으신지, 또한 소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특별히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 세대가 다 그렇지만 취미생활이라는 게 별다른 게 없어서 그저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입니다. 스케일도 크지만 그 속에 나오는 무수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게 풀어낼 수 있는지 지금도 그 감동이 가슴에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한비야씨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도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저자가 여행과 봉사활동만 잘하는 분인 줄 알았더니 글을 엮어내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더군요. 인류애와 같은 거창한 교훈이 아니더라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깨우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최근에 관심 깊게 읽은 책은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입니다. 이 책은 공공도서관의 인프라가 열악한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책입니다. 기회가 닿으면 대통령께도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권할 생각입니다. Part 5 소소한 일상&손녀 자랑 보통 할머니들은 손자나 손녀가 생기면 재롱보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들 합니다. 손녀 자랑을 조금만 해주십시오. 요즘은 손녀 보는 게 큰 낙입니다. 일찍 손주 본 친구들을 만날 때면 하도 자랑을 해서 왜 저러나 했는데 요즘 제가 그렇습니다. 우리 손녀는 이제 갓 두 돌이 지났는데 말도 잘하고, 재롱도 보통이 아닙니다. 제 노래에 맞춰 춤을 출 때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손녀가 음감이 우수한 것 같습니다. 한참 전에 눈이 내렸을 때 손녀를 등에 업고 눈 위에 발자국을 만들면서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이라는 노래를 불러줬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눈이 내렸는데 손녀가 “할머니,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하러 가자”고 하더라구요. 딱 한 번 불러준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손녀를 보고 있으면 매일매일이 새롭고 경이로워요. 대통령께서도 손녀 재롱에 넋을 놓을 때가 많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이고 엄마, 아빠가 모두 경상도 출신이라 손녀도 사투리를 배우지 않을까 싶었는데 서울말 쓰는 게 참 신기하더군요. 가끔씩 식구들끼리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니 어디 가노?” 하면서 사투리를 흉내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우리 손녀가 제일 똑똑하고 예쁜 것 같습니다. 저도 손녀 자랑할 때는 여느 할머니들과 다를 게 없어요. 외손녀는 이제 18개월이 됐습니다. 딸 가족은 현재 외국에 있어서 외손녀 재롱은 요즘 못 보고 있습니다. 딸이 자주 전화를 하는데 그때마다 “이경(외손녀)이는 잘 있냐?”고 물으면 “하루 종일 뭐라고 중얼중얼 하고 다녀요”라고 합니다. 이제 말을 배우려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를 중얼거린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이제 두 돌이 지난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특별한 분이라는 것을 아는지요? 아직 그런 것은 모를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과 함께 해외 순방을 가면 텔레비전을 통해 그 자료 화면이 방송되지 않습니까. 손녀는 아직 어려서 현실과 텔레비전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텔레비젼에 할아버지가 나오면 화면 앞으로 달려가 “할아버지, 빨리 나와요”라고 한답니다. 저는 그런 것들까지 모두 기특하고 예뻐보입니다. 아드님, 따님과는 자주 연락을 하시는지요? 자녀 분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우리 아들은 회사에 잘 다니고 있고 자주 찾아와서 관저에서 자고 가곤 합니다. 며느리랑 손녀도 그때 늘 같이 오구요. 딸아이는 유학 중인 남편과 함께 지금 미국에 있습니다. 딸은 성격이 밝고 사려가 깊습니다. 아이 욕심이 많아서 셋쯤 낳겠다고 하네요. 전화도 자주 하고, 이메일로 외손녀 사진도 보내오는데 그래도 한국에 없으니까 좀 허전합니다. 대신 며느리가 요즘은 딸아이 몫까지 다 합니다. 며느리는 신세대답게 활달하고 생기가 넘쳐요. 며느리가 저나 대통령께 참 싹싹하게 잘합니다. 여사님께서는 ‘한복은 물론이고 양장까지 옷맵시가 상당히 좋다’는 말씀을 많이 들으십니다. 전속 코디네이터가 있으신지요. 그리고 평상시와 공식행사시 코디 방법이 궁금합니다. 전속 코디네이터는 따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나 한복을 입어야 할 때, 대통령 담당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거나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행사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고려해서 제가 직접 옷을 고릅니다. 옷을 입을 때, 특별한 취향이랄까 스타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감색이나 회색 계통의 옷을 주로 입었는데, 요즘은 가능하면 밝은 색 옷을 입으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화려하지 않고, 단정하고 반듯한 정장 스타일을 선호합니다. 한복은 될 수 있는 한 자주 입으려고 합니다. 한복만큼 예쁜 옷도 없습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 나라 정상과 부인들이 한복에 대해 극찬합니다. 여담이지만, 재작년 칠레 APEC에 참석했을 때 참가국 정상 부인 중 가장 옷 잘 입는 영부인으로 뽑혀 제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맵시 나는 한복 덕분이었죠. 당시 초록 치마에 황금색 저고리를 입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우리 한복 입기를 권장하고 싶습니다. Part 6 새해 소망&퇴임 후 계획 요즘 대통령님께서는 퇴임 후 구상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십니다. 아직 임기가 2년 정도 남아 좀 이른 감이 있기도 합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고향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여사님의 꿈도 그러신지요? 대통령께서 임기를 마치면, 함께 고향 김해나 부산에 내려가 살고 싶습니다. 실제로 가능할지 소망에 그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생각은 굴뚝같습니다. 고향에 가서 자그마한 정원을 만들어 나무도 가꾸고, 가끔씩 서울에서 손주들 내려오면 채소밭 상추도 같이 따고… 생각만 해도 그 재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보면 퇴임한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가 지역발전에 기여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일에 모범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대통령님과 영부인, 두 분이 건강하셔야 나라도 튼튼합니다. 새해가 되면 어른들께서 덕담을 해주시는데 올해는 어느 가정이건 유독 건강에 대한 말씀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06년 새해 소망을 듣고 싶습니다. 건강보다 소중한 것이 있겠습니까.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게 가장 좋은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 새해의 바람은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다행히 국민 여러분이 가장 염려하시는 경제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좋은 정책들을 만들고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 모두의 성원과 협조가 절실합니다. 서로 열린 마음을 갖고 의견이 다르더라도 한 발씩 양보하면서 미래를 함께 설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살림살이가 더 나아져서 우리 국민 모두가 어깨를 펴는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글 / 경영오 기자 사진 / 민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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