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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1,609 건 검색)

“세월호 유가족 징하다” 막말한 차명진, 2심도 징역형 집행유예
“세월호 유가족 징하다” 막말한 차명진, 2심도 징역형 집행유예
2025. 02. 18 18:52사회
... 판단을 유지했다. 차 전 의원은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둔 2019년 4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처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차명진법원
4·3 유해신원 확인 “방계에 이르는 유가족 다수 채혈 중요 ”
4·3 유해신원 확인 “방계에 이르는 유가족 다수 채혈 중요 ”
2025. 02. 16 16:42지역
... 학살돼 암매장됐던 4·3 희생자 유해의 신원 확인이 속도를 얻기 위해서는 방계 가족까지 아우르는 유가족의 채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는 유가족의 적극적인 채혈을 당부하고 나섰다. 제주도와...
법원 난입 옹호하고, 피살 유가족 비방하고…상식도 예의도 찾기 힘든 극우의 민낯
법원 난입 옹호하고, 피살 유가족 비방하고…상식도 예의도 찾기 힘든 극우의 민낯
2025. 02. 13 16:11사회
... 대전 초등생 피살 사건 피해자 김하늘양의 사망을 ‘좌파의 공작’이라 주장하거나 유가족의 태도를 문제 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지난 12일에도 “하늘이법 이거 좌파 공작 맞다”며...
난입극우
KCH그룹,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지원 위한 성금 기부로 위로 전해
KCH그룹,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지원 위한 성금 기부로 위로 전해
2025. 02. 07 14:55경제
... 통해 전달됐다. 김창휘 KCH그룹 대표는 “모두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왔던 참사인 만큼, 유가족들을 위로하고자 임직원들이 마음을 모으게 됐다”면서 “조금이나마 위로가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포츠경향(총 190 건 검색)

故 김새론 유가족 “장례 절차 비공개 원해···취재 자제 부탁”
故 김새론 유가족 “장례 절차 비공개 원해···취재 자제 부탁”
2025. 02. 17 15:45 연예
17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배우 김새론의 빈소가 마련됐다.<사진공동취재단> 배우 김새론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가운데, 고인의 유가족들이 취재 자제를 요청했다. 17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는 故 김새론의 빈소가 마련됐다. 장례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 비공개로 치러지고 있다. 김새론 측 관계자는 빈소에서 만난 스포츠경향에 “장례 절차를 취재진에게 비공개로 진행하고자 한다. 유가족이 조문객 취재도 원치 않고 있다”고 밝혔다. 빈소에는 고인을 아역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 ‘아저씨’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원빈을 비롯해 절친으로 알려진 배우 한소희, 김보라와 악동뮤지션 이찬혁·이수현 남매 등 고인과 인연이 있던 연예계 동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소희는 이른 시간 빈소에 도착해 자리를 뜨지 않고 조문객들을 맞으며 자리를 지켰다. 배우 김새론의 빈소. 또 그룹 아스트로(MJ, 진진, 차은우, 윤산하), 가수 문빈, 아이유, 배우 마동석, 공명 등 연예계 동료들 역시 근조 화환으로 추모의 뜻을 전했다. 한편 김새론은 전날 서울 성동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외부 침입 흔적 등 범죄 혐의점도 없었다. 경찰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변사사건 처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빈소에는 김새론의 부모와 동생인 배우 김아론(23), 김 예론(20)이 상주로 이름을 올렸다. 발인은 19일 오전 6시20분이며,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영웅 팬덤,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에 1700만원 기부
임영웅 팬덤,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에 1700만원 기부
2025. 01. 23 11:18 연예
가수 임영웅. 희망브리지 제공 임영웅 팬덤이 또 다시 선행을 이어갔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회장 송필호)는 유튜버 뮤직통·친친뮤직과 임영웅 팬덤 영웅시대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지원을 위해 성금 1700여 만원을 기부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성금은 평소 임영웅 팬으로 알려진 유튜버 뮤직통이 진행한 모금 방송에 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조성된 것으로 유가족에게 위로금 형식으로 전달될 예정이다. 뮤직통은 “가수의 선한 마음을 본받아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전하고자 모금을 진행했다”며 “따뜻한 나눔에 함께해 주신 영웅시대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희망브리지 신훈 사무총장은 “선한 뜻으로 마음을 모아주신 팬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영웅시대 응원과 위로가 유가족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고 이희철, 애도 속 영면···유가족의 마지막 말
고 이희철, 애도 속 영면···유가족의 마지막 말
2025. 01. 16 14:01 연예
최근 사망한 고 이희철.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인플루언서 고 이희철이 영면에 들었다. 고 이희철의 유가족은 16일 고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삼가 감사 인사 드린다. 우리 아들에 대한 많은 따뜻한 조의와 위로, 내 일처럼 앞장 서 무사히 상례를 마치게 도와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마땅히 찾아 뵙고 인사 드리는 것이 도리이오나 황망 중이라 서면으로 인사 드리게 됨을 혜량해주시기 바란다”며 “항상 건승하시고 만복이 깃드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가족은 “희철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지난 11일 안치됐다. 언제든 편안히 찾아와 이야기 나눠달라. 또 앞으로 모든 대소사 관련해 슬픔과 기쁨, 저희도 함께할테니 간혹 안부 전해주시면 감사드리겠다”며 “때때로 전달드릴 내용이 있ㅇ면 추가적으로 또 전해드리겠다”고 했다. 고 이희철의 죽음은 그의 절친인 풍자가 직접 알렸다. 고 이희철은 지난 7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향년 38세. 고인은 비주얼 디렉터 및 포토그래퍼로 활동했고 문화공간을 오픈하기도 했다. 풍자와 함께 KBS2 예능 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2’에 출연한 이력이 있다. 풍자는 고 이희철과 함께했던 반려견을 입양하며 끝까지 의리를 지키기도 했다.
빈예서, 팬클럽과 국가애도기간 동참···유가족에 성금전달
빈예서, 팬클럽과 국가애도기간 동참···유가족에 성금전달
2025. 01. 09 12:52 연예
가수 빈예서. 빈예서 측 제공 가수 빈예서 팬클럽이 국가애도기간에 모금활동을 펼쳐 선한 영향력을 실천했다. 빈예서 측에 따르면 팬클럽에서 지난 4일까지 모금활동을 진행해 성금 731만5056원이 모였다. 성금은 무안군을 통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라남도지회’를 통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을 위한 후원금에 쓰인다. 또한 모금 금액 일부는 빈예서 고향인 진주시를 통해 지역의 결식아동 등 소외계층과 불우이웃에게도 전달된다. 이번 모금은 별도의 기부 행사 없이 빈예서와 팬클럽이 마음을 담아 진행됐다. 가수와 팬들은 제주공항 여객기 참사 유가족을 위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애도의 뜻도 함께 전했다. 트로트 신동으로 불리는 빈예서는 2024년 연말 MBC on의 트롯챔피언의 한해를 마감하는 트롯어워즈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최근 MBN의 한일톱텐쇼의 녹화에 참여했다.이번 녹화에서도 유가족을 위한 애도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응원대신 모금에 나선 것이다. 녹화 당일 가수 빈예서를 응원하는 팬들의 마음은 응원 대신 유가족들과 함께 하는 애도의 마음으로 지난 2일부터 시작해서 4일까지 자발적인 모금활동을 진행했다. 빈예서의 선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빈예서와 빈예서의 공식 팬카페는 이미 지난해 6일 (재)한국소아암재단(이사장 이성희)에 백혈병 및 희귀 난치질환 환아들의 치료비를 기부 하는 선행을 펼친 바 있다. 각종 지역의 대표행사에는 출연비의 일부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쓰여 지도록 기부하는 등 선행을 이어 왔다.

주간경향(총 18 건 검색)

[렌즈로 본 세상] “또 무죄냐” 주저앉은 유가족
[렌즈로 본 세상] “또 무죄냐” 주저앉은 유가족(2024. 10. 29 06:00)
2024. 10. 29 06:00 사회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이 사건으로 기소된 주요 기관 책임자들의 1심 선고가 마무리됐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만 유죄 판결을 받았고 박희영 용산구청장,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무죄였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아예 불기소 처리됐다. 반복되는 참사에도 합당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은 이전과 같았다. 요직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더 그렇다. “참사 때나 이러지.” 함께 있던 기자가 구름처럼 몰려드는 경찰들을 보며 말했다. 지난 10월 17일 김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자 어림잡아 100명이 훌쩍 넘는 경찰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입구를 에워쌌다. 법원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지만 과도해 보였다. 법원 판결을 지켜보던 유가족은 분통을 터뜨리며 울었다. 진창희씨가 말했다. “아이들이 쓰러져 죽어가는 화면, 부모들이 법원 앞에서 몸부림치는 장면만 보지 마시고 사법의 무능함과 참담함을 국민께서 함께 바라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재판부는 무죄 판결과 별개로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기관 책임자에 대한 도의적·정치적·법적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족과 생존 치료자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치유가 필요하다.” 법정에 서 있던 당사자는 판사의 말을 귀담아들었을까? 울분을 삭이지 못한 한 유가족이 법원 담벼락에 주저앉았다. 재판부가 언급한 ‘기관 책임자’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법원을 떠난 후였다.
렌즈로 본 세상
“이태원 유가족·시민들의 의문들 풀어낼 것”
“이태원 유가족·시민들의 의문들 풀어낼 것”(2024. 10. 28 06:00)
2024. 10. 28 06:00 사회
송기춘 이태원 참사 특조위원장 인터뷰 송기춘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0월 23일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향미 기자 이태원 참사 2주기를 한 달여 앞둔 지난 9월 23일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활동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은 지난 10월 2일 진상규명에 필요한 과제 9가지를 꼽아 특조위에 첫 번째로 신청서를 내면서 “희생된 아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송기춘 특조위 위원장(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참사로 고통받는 이들이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진상규명부터 힘쓰겠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공직자들의 태도와 관련해 ‘면이무치’(免而無恥·처벌을 피하면 부끄러움을 모른다)란 말을 곱씹게 된다고 했다.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특조위 사무실에서 만난 송 위원장은 “유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아픔”이기 때문에 이 참사의 진상규명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왜 참사가 일어나게 됐는지를 알아야 제도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알 수 있고), 또 완벽한 제도도 그걸 운용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이 어떤 자세로 일하느냐에 따라 제도가 작동하기도 안 하기도 한다. 일단 중요한 것은 (어디서 잘못이 있었는지)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조위는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피해자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활동한다. 송 위원장은 “일단은 법령이나 업무상 지침, 매뉴얼에 위반되는 부분이 있었는지 이런 적정성 평가를 해야 할 것이고, 책임의 추궁이 필요하면 지적할 것”이라며 “보다 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정말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거예요. 그 부분은 유가족을 위로하는 측면도 있지만 사실은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못해서 이런 참사가 발생했는지를 확인하고, 국가의 책임·책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공직자의 얼굴로 시민들과 만난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과 관련해 공직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참사에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최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송 위원장은 “헌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법치가 무엇인가 생각한다”며 “헌법이 정한 원칙은 법치주의이고, 이는 국가마저 법에 구속을 받는다는 것인데 현재 공무원들은 (법치는) 권한 집행의 근거로서의 법으로만 생각하고 그것에 위반되지 않으면, 특히 형법에 위반되지 않으면 잘못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가”라고 했다. 이어 “진짜 법치는 그런 게 아닌데, 헌법에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원칙을 두는 것은 정말 인권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는 (공무원들이) 굉장히 메마른 공권력 집행을 예정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송기춘 이태원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특조위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향미 기자 특조위가 출범하기까지 정치적인 이견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특별법이 한 번 수정되면서 기존 법안에 있던 불송치·수사 중지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권한과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 권한이 삭제됐다. 특조위 활동 기한(1년+3개월 연장 가능)이 짧다는 우려도 있다. 송 위원장은 이미 주어진 조건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는 “수사는 결국 피의자 중심으로 해서 형사 책임을 입증하기 위한 사실관계를 들여다보기 때문에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위원회의 조사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유가족들은 왜 우리 아이 시신이 경기도 어느 병원에 가 있었는지 묻고 있다. 참사 직후 유가족들이 서로 만나서 단체화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도 있었다는 의심이 있다. 이런 것은 수사에서는 다루지 못했다. 유족들이, 또 사회구성원이 가지는 이런 의문을 규명할 것”이라고 했다. 송 위원장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경험 등을 볼 때, 관련자들의 ‘제보’와 ‘진술’이 진실을 확보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조위는 홈페이지(https://1029itaewoncommission.go.kr)와 e메일(1029itaewon@korea.kr)로 제보를 받고 있다. “어떤 식물은 아스팔트 틈에서도 나오잖아요. 생명이라는 것이 전개되는 과정은 감동적입니다. 어떤 진실이라는 것은 결국은 스스로 드러나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하는 그런 신뢰가 있어요. 사람은 어떤 강제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자신이 가진 어떤 양심, 부끄러움이 발동해 움직인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이건 실패할 수밖에 없죠.” 송 위원장은 특조위에서 이태원 유가족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시선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는 “유가족들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응당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 잘못된 정보들이 생성된다. 가짜 정보들을 다룬 영상 등은 시정될 수 있게 하고, 위원회 보고서에서도 그런 부분을 지적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혐오 발언을 했던 사람들이 좀 스스로 자정하고 수정했으면 하는 소망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특조위가 출범한 지 한 달이 흘렀다. 위원 9명(상임위원 3명·비상임위원 9명)과 사무처 설립준비단(파견 공무원 7명·민간 전문가 8명)은 본격적인 조사를 위한 작업을 해왔다. 시행령안을 만들면서 지난 10월 8일에는 주요 정부기관에 참사 관련 기록물 폐기 금지와 보유, 폐기 목록 제출을 요청했다. 기존에 나온 자료를 확보해 읽고,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조사 신청을 받고, 그사이 몇몇 제보와 진술도 확보했다. 송 위원장은 “서둘러 사무처를 구성하고 올 연말 조사 활동을 본격화해 주어진 시간 내에 잘 마치겠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지난 10월 25일 호주인 희생자 유가족을 만났다. 이태원 참사에는 한국인 외에도 14개국 26명의 외국인 희생자가 있으나, 이들은 그간 한국에서 어떤 정보도 받지 못했다. 송 위원장은 “피해자 국가의 대사관에 영문으로 번역한 서류를 보내고, 관련 국가의 언어로 대사관에서 번역해 피해자·유가족들에게 전달해서 구제받을 수 있는 통로를 우리 위원회가 마련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10월 26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시민추모대회에 부스를 설치해 조사 신청을 받는다.
특집
알고 싶다, 이태원의 진실을…유가족들의 ‘세상이 무너진 2년’
알고 싶다, 이태원의 진실을…유가족들의 ‘세상이 무너진 2년’(2024. 10. 28 06:00)
2024. 10. 28 06:00 사회
참사 2주기 맞아 유가족 구술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펴내 “유가족들은 서로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끈”…기억과 진상규명 기대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의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1심 선고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진 지난 10월 17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서로 위로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두 해 전 가을 이맘때, 단풍의 색은 어땠던가. 2022년 10월 29일 김채선씨는 친구들과 속리산으로 단풍을 보러 갔다. 같은 날 딸 김지현씨는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났다. 김채선씨는 “딸이 유명을 달리한 날에 엄마가 (단풍을 보고) 그렇게 행복해”한 것에 대해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 그날을 기억에서 영원히 삭제하고 싶다고 말한다. 단풍색 점퍼는 모두 버렸고 그의 삶의 색도 바뀌었다. 그는 영안실에 누워 있는 딸을 보고 ‘인정할 수 없다’고, ‘문만 열만 원래대로 돌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는 그 순간 자신이 딸을 안아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마지막이었는데 왜? 왜 우리 딸을 안아주지 않았을까요? 지금까지도 저 자신이 원망스럽고 딸에게 미안해요.” 참사 이후 경찰서에서 온 서류엔 ‘죄명’과 ‘변사’라는 표현이 쓰여 있었다. ‘의미 없는 행정적인 절차일 뿐’이라는 경찰의 말에 김채선씨는 저항했다. 그 표현을 지우고 ‘압사’라고 쓰인 서류를 받아냈다. 뿌듯했지만 허탈했다. 딸은 없는데 종이 한 장만 남아서. “참사를 당한 후 유가족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 셀 수 없이 많았어요. 그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저절로 바뀌었어요. (중략) 참사가 일어나고 진상규명 투쟁을 하면서 국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됐어요. 2주기가 돼가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정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결국 제가 붙잡을 것은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싸워나가야겠다는 우리 유가족의 의지뿐이었어요.”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아 나온 유가족 구술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창비)를 통해 김채선씨는 이 같은 자기 안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은 작가와 활동가들이 결성한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 25명의 유가족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동행 취재한 기록이다. 이태원 참사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서울에서 유가족 활동의 전면에 나선 이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해외에서 아무런 소식을 들을 길이 없어 고립감을 느낀 유가족들의 이야기도 전한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참여한 구술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표지. 창비 ■“왜 참사가 일어났는지 알아야 한다” 이태원 참사 당일 친구를 만나러 나간 서수빈씨는 밤 11시가 다 돼가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3시쯤 돼서야 전화 연결이 됐는데 용산경찰서였다. 수빈씨 부모는 경찰 안내에 따라 한남동주민센터에 가서 실종신고를 했다. 주민센터에선 사망자 명단이 전해졌다. 딸의 이름이 없길 바라고 또 바랐다. 오후 2시쯤 딸이 사망했으며 경기도 성남의 한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남 병원에서 일산 장례식장까지 상조회사에서 불러준 차로 가는데, 차 안에 타보니 우리 딸이 붕대 같은 거로 감겨서 있는 거예요. 너무 끔찍해… 그 상황이…. 차 안에 있는 40분 동안 우리 딸을 계속 안고 왔어요. 다행이다. 그래도 우리 딸 40분은 안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서수빈씨 어머니 박태월씨 이야기’) 박태월씨는 딸이 어떻게 성남의 병원까지 가게 됐는지 알고 싶다. 왜 그 새벽부터 오후 2시까지, 긴 시간 주민센터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는지 책임 있는 누군가 설명해주길 바란다.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에는 이태원 참사 당일부터 희생자의 시신을 인계받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유가족이 당국으로부터 어떤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증언이 기록돼 있다. 유가족들이 가족과 죽음과 관련한 단서들, 이를테면 구급일지와 같은 ‘서류 한 장’을 받기 위해서도 소방서에, 병원에, 경찰서에, 행정안전부에 일일이 전화를 걸고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스스로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숨지고 195명이 다쳤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였다. 유가족들은 국가가 왜 참사를 예방하지 못했으며, 참사 이후 대응은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고 본다. 또 책임자가 마땅한 책임을 지는 것을 원한다. 유가족들은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2년을 투쟁했다. 경찰과 국회는 그 답을 내놓지 못했다. 경찰은 2022년 11월 1일 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꾸려 74일간 수사를 진행했다.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를 ‘책임 있는 기관들의 무책임한 대응에 따른 인재’로 결론 내리고 23명(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6명 구속,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등 17명 불구속 입건)을 입건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시장, 경찰청장 등은 수사하지 않았다. 국회는 그해 11월 24일부터 45일간 국정조사를 실시했다. 국민의힘의 불참으로 예산안 처리가 늦어져 12월 19일에야 첫 회의가 야당 단독으로 열렸다. 국정조사에 피해자가 참여한 것은 국정조사 활동 종료 5일 전이었다. 유가족이 기댈 것은 ‘특별법’이었다. 2023년 4월 야당이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안’(특별법)을 공동발의했다. 유가족들은 2023년 6월 특별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통과되기를 바라며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159㎞에 달하는, 뜨거운 아스팔트를 걸으며 행진했다. 그해 12월과 올해 1월에는 특별법 입법을 촉구하며 혹한 속에서 오체투지를 했다. 2024년 1월 9일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1월 30일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 그때만 해도 기대라는 게 있었어요. 이제 알 거야, 알 거야. 우리 딸 그날 몇 시에 어떻게 돼서 병원에 갔는지. 그런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버렸잖아요. 허탈하다 그럴까, 무기력이 와버리더라고요. 제가 무너져버린 느낌이 들었어요.”(‘서수빈씨 어머니 박태월씨 이야기’) 이태원 참사 유가족·시민·4대 종교인 100여명이 지난 1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대통령실 앞까지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다음날인 1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효진 기자 2024년 5월 1일 여야가 특별법 수정안에 합의하고 다음날 수정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특별법에 따라 지난 9월 13일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위원들이 임명됐고, 같은 달 23일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지난 10월 22일 서울 중구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 ‘별들의 집’에서 열린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년 6개월 동안 길거리에서 몸을 던지면서 특조위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던 이유는 항상 대한민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끊임없이 재난 참사가 발생하는데 그 책임은 묻혀 버리는 현상이 반복됐기 때문”이라며 “특조위가 없다면, 재판으로 책임자가 무죄라고 하면 아무런 책임이 없는 상태로 가기 때문에, 특조위가 너무나 소중하다”고 했다. 최근 재판 결과 앞에서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지난 9월 30일 열린 1심에서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 전 서울용산경찰서장(금고 3년) 등 용산경찰서 관계자 3명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반면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구청 관계자 5명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 지난 10월 17일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청 관계자 3명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항소해 이들의 책임은 2심에서 더 다툴 예정이다.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이런 참사 없는 사회로” 정부는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서로 연락할 방법도 안내해주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장례식장에서, 납골당에서 서로가 유가족임을 알게 됐다고 전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연 유가족 모임에서 더 많은 유가족이 연결됐다. 2022년 12월 10일 유가족협의회가 출범했다. 유가족들은 참사 100일이 되던 2023년 2월 4일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 있던 분향소를 서울 시청광장으로 옮긴다. 경찰이 광화문광장을 막고 있었기에 시청광장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유가족들과 그 곁에서 시민들이 도와 경찰을 막아내고 분향소를 설치할 수 있었다. “우리와 영정을 따라오던 그 많은 시민의 힘을 목격했어요. ‘연대의 힘이 이렇게 크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어요.”(‘이주영씨 아버지 이정민씨 이야기’)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유가족들은 2024년 6월 16일 시청 분향소를 정리하고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 ‘별들의 집’으로 희생자들의 영정을 이전했다. ‘분향소’는 세상을 떠난 자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자, 유가족들이 서로에게 의지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시민들이 찾아와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혐오의 말들도 분향소를 찾아왔다. “슬픔을 상품화해 버리고 유가족들을 매도하는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삶이 너무 팍팍하게 느껴집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거, 물론 생각의 차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건 슬픔이잖아요. 아이를, 남편을, 형제를, 친구를 잃은 슬픔. 그런데 돈을 밝힌다든지, 심지어 간첩이 조종했다는 말도 들었어요. 분향소에 나와 지킴이 하고 있으면 지나가면서 그런 말을 해요. 왜 그러겠어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으니까요.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용산구청장, 경찰청장 등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안일하게 사태를 수습했고 지금까지도 책임지지 않고 있죠. 분위기 탓을 하고 핼러윈 축제 탓을 하고 거기 모여든 사람들 탓을 하고 있어요.”(‘송은지씨 아버지 송후봉씨 이야기’) “저는 ‘놀러 가서 죽었다’는 말이 너무 화가 나요. 놀러 갔으면 길에서 그렇게 죽어도 되는 건가요? 우리 모두 일상에서 놀러 가잖아요. 꽃놀이도 가고 유원지에도 놀러 가잖아요. 놀러 가서 죽었다는 건 상황을 왜곡하는 말일 뿐이에요.”(‘김산하씨 어머니 신지현씨 이야기’) 참사 이후 “세상이 무너진” 유가족들은 서로서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끈’이라고 말한다. 이태원 참사에서 친구를 잃은 고등학생 이재현군은 2022년 12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송해진씨는 ‘유가족의 자격’에 대해 자문했다고 한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가족이 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정말 새로운 세상에 내던져진 기분이더라고요. 재현이가 참사 당시 살아서 왔었기 때문에 그때 그 아이의 심정이 어떨지 이해하고 싶었지만 못했습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니까 그때 아이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낯선 세상에 혼자 떨어져 있고, 고립돼 있고,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나 이유를 찾기 많이 힘들긴 하더라고요. 막연한 공포, 두려운 심정들로 지난 1년여를 살아왔던 거 같은데 그런데도 이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옆에 항상 계신 유가족, 활동가분들, 작가기록단 여러분들이 있어서 이 자리에 온 것 같아요.” 유가족들은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올 10월 한 달 내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더 많은 시민이 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연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보다 “바빠야만 이 10월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정민 대표)이다.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는 이태원 참사를 통해 한국사회가 무엇을 배워, 무엇을 고쳐,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한 질문들이 들어 있다.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연대하는 게 우리 유가족의 의무가 된 것 같아요. 이런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다시는 우리처럼 자식을 잃은 부모가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죠.”(‘오지연씨 아버지 오영교씨 이야기’) 신지현씨는 기자간담회에서 구술집에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딸은 ‘억울해’라고 말은 못 하지만 저는 억울합니다. 요즘 주변에서 지인들한테서 청첩장이 날아오는데, 우리 딸 결혼식을 볼 수 없고 남자친구 얘기도 들을 수 없고…. 너무 많이 부럽고, 너무 많이 아픕니다. 구술집 참여는 그냥 제가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누가 말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너희들이 밟으면 내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감춰지는 게 무서워서, 묻혀버릴까 봐 무서워서 계속 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집
이태원 유가족 혐오 방치하는 유튜브(2023. 01. 06 14:18)
2023. 01. 06 14:18 정치
ㆍ주간경향 보도 뒤 윤지사TV 채널 삭제·재개설 숨바꼭질 지난 1월 3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녹사평역에 갔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분향소 가는 길. “국민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마라!”, “남의 죽음 위에 숟가락 올려 정치선동질을 하는 사람들은 꺼져라!” 등 신자유연대가 내건 플래카드들이 신호등 넘어 광장을 뒤덮고 있었다. 지난 1월 3일 방문한 이태원 녹사평역 시민분향소. 길 건너 신자유연대 측이 내건 플래카드가 시민분향소를 포위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광장 입구에는 노란색 배경에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얼굴 옆으로 “세월호 팔아 집권한 문재인·이재명 민주당! 제도 정비·법령 정비 안 하고 뭐했나”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이태원 참사도 전 정권과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 탓에 벌어졌다는 주장이다. 유족들이 내건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배경의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플래카드는 딱 하나. 신자유연대 측의 막말 주장에 포위된 형국이었다. 신자유연대 주장에 ‘포위’된 유가족 분향소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에는 혹한의 날씨에도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이 공간이 혐오 선동과 2차 가해를 일삼는 극우세력들의 패륜적 악행에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송갑석 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송 의원은 패륜적 악행의 근거로 사진 두 장을 제시했다. 신자유연대 측이 분향소 건너편 가로수에 붙여놨던 플래카드들이다. “13. 문재인 정권 때 광주광역시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 사망하신 분들을 추모합니다. 14. 문재인 정권 때 광주광역시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사망하신 분들을 추모합니다.” 분향소에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추모’ 현수막은 모두 14장이 걸려 있었다. “왜 14건인지 기준은 모르겠는데 아무튼 자기네들 말로는 제천 화재사건이나 현대산업개발 붕괴사건 같은 대표적 사건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문재인도 사과를 안 했지 않냐는 겁니다.” 이미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의 말이다. 피장파장이라는 논리다. 문 대통령도 사과하지 않았는데 왜 윤석열 대통령더러 사과하라고 요구하느냐는 주장이다. 기자가 방문한 1월 3일 현재 이 현수막들은 떼어졌다. 이 실장의 말이다. “지난해 12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기관보고에서 불법 현수막들을 왜 방치하느냐는 질의에 집회시위 물품이라 놔두고 있다는 서울시 측의 답변을 받았다. 아무리 집회시위 물품이라고 하더라도 자리를 비웠는데 24시간 방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용산구청이 새벽에 철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우리가 내건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현수막도 다 뗐다.” 분향소 자원봉사자들에 따르면 신자유연대 측은 이 현수막들을 다시 돌려받아 내걸기 위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 측이 ‘윤지사TV’를 삭제하자 김상진 측은 지난해 12월 26일 네이버TV로 옮겨 같은 이름의 채널을 개설했다. / 네이버tv 캡처 왜 ‘신자유연대TV’ 채널은 방치되는 걸까 2주 전 기자는 이태원 분향소 인근에서 ‘맞불집회’를 벌이고 있는 김상진 신자유연대 대표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른바 진보단체들의 집회를 봉쇄하기 위해 집회장소를 ‘선점’하기 위한 맞불집회를 진행한다는 그의 주 선전무대는 유튜브다. 기사 직후인 12월 25일, 유튜브 측은 김상진 측의 집회를 실시간 중계하던 채널인 ‘윤지사(윤석열을 지키는 사람들)TV’ 채널을 삭제했다. 신자유연대 측은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두 차례 채널복구를 시도했지만 모두 삭제됐다. 구글은 정말 ‘김상진 채널’을 퇴출시킨 걸까. 김상진 채널이 유튜브 측으로부터 삭제조치를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6월 기자는 ‘선 넘은 우파 유튜버들의 폭주’ 기사를 썼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폭력행사를 다룬 기사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반공회사라고 주장하던 GZSS 안정권 등의 행태를 주로 보도했다. 유튜브 측에서는 안정권과 함께 당시 김상진씨가 운영하던 김상진TV 역시 삭제했다. 유튜브 측이 크리에이터 측에 제시하고 있는 ‘커뮤니티 가이드 위반 경고사항’에 따르면 콘텐츠가 유튜브 정책을 처음 위반하면 경고메일이 발송된다. 두 번째로 위반한 사실이 확인되면 ‘1차 경고’ 통보와 함께 1주일 동안 동영상이나 실시간 스트림 등을 올릴 수 없는 조치를 받는다. 1주일 제재가 끝나면 권한이 자동복구되지만, 최초 경고로부터 90일 이내에 2차 경고를 받으면 제재 기간이 2주로 늘어난다. 3번 받으면 채널이 영구삭제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소속된 MCN(다중채널네트워크) 업계 측에 따르면 “특정 인물에 ‘밴’(활동금지)을 걸었다면 이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사회적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구글 측이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 주간경향의 기사 후 안정권과 GZSS의 콘텐츠는 모두 퇴출됐다. 그후 안씨는 ‘벨라도’라는 독자 플랫폼을 만들어 활동했다. 영향력은 유튜브 플랫폼에서 활동할 때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고 한다. “실제 유튜브 활동을 해보니 활동을 계속해야 후원이 들어온다. 만약 개인사정이라도 생겨 한 달이라도 중단하면 후원도 확 준다. 김상진이 채널이 폭파돼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계정을 파고 또 파고 하는 이유다.” 강민구 턴라이트 대표의 말이다. 윤지사TV를 1차 삭제한 유튜브 조치 이후 김씨 측은 “아무 발언 없이 자기들이 이태원 분향소 현장에 내건 플래카드만 비추는” 방식으로 운영방식을 바꿔 채널을 재개설했으나 48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적어도 ‘윤지사TV’는 퇴출시키겠다는 유튜브 측의 의사가 확인된 셈이다. 윤지사TV는 퇴출됐지만 웬일인지 유튜브 측은 본진에 해당하는 ‘신자유연대TV’ 채널은 살려두고 있다. 채널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대부분 김상진 대표의 활동 위주 영상으로 채워져 있어 윤지사TV와 다른 성격의 채널로 보이진 않는다. 윤지사TV가 삭제되자 김씨 등은 네이버TV에 윤지사TV를 옮겨 개설했다. 신자유연대TV 채널에도 이종철 유가족 대표를 겨냥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등의 저격 영상을 올리고 있다. 유튜브 측은 알고리즘을 변경시켜 신자유연대나 김상진을 검색하는 경우 신자유연대 채널을 보여주는 대신 관련 보도영상을 우선 보여주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말하자면 유튜브 검색창에서 신자유연대를 검색했을 때 신자유연대TV 채널을 찾기가 몹시 어려운 형태로 바꿔놓았다. 하지만 이 조치만으로 유튜브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25일 이태원 시민분향소 앞에서 열린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성탄대축일 미사’ 바로 옆에는 분향소 철거 주장과 행사를 주최하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비난하는 집회가 함께 열렸다. / 연합 집회신고했다고 ‘유가족 혐오’도 허용하나 앞에서 송갑석 의원이 ‘패륜적 악행’이라고 불렀던 실력행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 성탄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연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성탄대축일 미사’ 현장 바로 곁에서 고성능앰프를 동원한 이들의 방해 집회가 열렸다. 이날 이들은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들을 두고 “종북사제들 물러나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울면 안 돼~”와 같은 캐럴을 틀고 춤을 추는 등의 방해 행위를 벌였다. “그런 욕을 하라고 집회신고를 내준 건 아니잖습니까. 제가 법은 잘 모릅니다. 이렇게 욕하고 계속 시비를 거는 식이라면 적어도 제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경찰도 방관만 하고 있고 아무도 손을 못 쓴다면 뒤에서 누가 봐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요.” 지난 1월 3일, 이태원 시민분향소에서 만난 고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의 호소다. 응급실에서 누워 있던 아들의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는 조씨는 “이런다고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한 마디 사과도 듣지 못한 게 억울해 매일 이태원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신자유연대 측의 끝없는 확성기 방송과 현장중계 등 지옥도(地獄道)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가끔은 현실감이 없어질 때가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예요. 뭐를 하겠다고 집회신고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유가족을 향해서 욕설을 뱉고 확성기로 방해하고 차 위에 올라가서 뭐라고 떠들어도 좋다고 집회신고를 내준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분명히 모욕과 명예훼손을 당했고, 지금도 당하고 있는데 집회신고를 했다고 다 허용해줘야 하는 건가요.” 윤지사TV는 삭제해놓고 신자유연대TV 채널은 왜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유튜브 측은 “유튜브에 올라온 모든 콘텐츠는 커뮤니티 가이드라인과 법을 준수해야 하며, 사용자들이 신고한 콘텐츠는 담당팀이 리뷰하고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콘텐츠는 삭제한다”라며 “개별 콘텐츠나 채널(의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위반 여부 등)에 대해서는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답변했다. 유튜브 채널이 삭제된 뒤 네이버TV로 옮겨 윤지사TV를 운영하는 것과 관련해 네이버 측은 “타 플랫폼에서 한 발언 등을 토대로 네이버TV 플랫폼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으며, 해당 채널(윤지사TV)의 경우, 현재 업로드된 영상을 기준으로 이용약관을 위반했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다만 해당 채널의 콘텐츠가 사용자들의 쾌적하고 안전한 인터넷 활동을 해치지 않도록 네이버의 이용약관과 네이버TV의 운영정책을 벗어나는 부분은 없는지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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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240일, 세월호 유가족의 목소리
2015. 01. 22 14:10 화제
2014년 4월 18일 금요일은 아이들이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유가족들은 오늘도 사고가 난 그날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말한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금요일이 진짜 오기를 함께 기다려달라고. 안 산 단원고 2학년 6반 신호성군의 엄마 정부자씨는 아들의 시가 지면에 실리길 원했다. 장래희망이 국어 선생님이었던 호성군은 책을 좋아했다. 엄마는 아들이 떠난 뒤에야 비로소 아들의 시를 읽었다. 그리고 아들의 시를 어느 책에라도 싣고 싶었다. 아들에게 작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책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였어요. 호성이 어머님이 연락하셨더라고요. 호성이가 쓴 시가 있는데 책에 실어줄 수 있냐고요. 어머님께 시를 받고 펑펑 울었어요. 밑동만 남은 나무는 어머님 같고, 베어진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건 호성이 같아서요.” 호성군의 시를 소개하는 김순천 작가의 옆에서 정부자씨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시는 놀랍도록 세월호 참사 상황과 맞아떨어졌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했던 것처럼. 잘 자라던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자는 누구일까.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일까. 공식 인터뷰집, 진상 규명 위한 중요한 자료 지난 1월 13일에 출간된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저, 창비)은 유가족들의 증언과 고백을 모아낸 가족대책위 차원의 공식 인터뷰집이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대표 김순천)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그해 12월까지 단원고 희생 학생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하며 그중 부모 13명을 인터뷰해 책을 펴냈다. “워낙 큰 사건이기 때문에 작가 한두 명이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어요. 영상팀과 사진팀, 구술과 기록 관리를 위한 학자팀이 모여서 함께 시민기록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그 안에 작가기록단을 꾸렸고요. 이 책은 작가기록단이 마무리한 첫 번째 작업물입니다.” 작가기록단은 인터뷰를 하고 글을 정리했다.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윤태호, 유승하, 최호철, 손문상, 조남준, 홍승우, 마영신, 김보통 8명의 만화가가 총 13편의 삽화와 표지화를 그렸다. 특히 드라마 ‘미생’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윤태호 작가는 살인적인 스케줄 가운데서도 책의 삽화를 요청받자 “이런 일에 나를 잊지 않고 동참시켜줘 정말 고맙다”라며 흔쾌히 작업을 해줬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책은 무엇일까. 책을 펴자마자 눈물짓게 되는 책? 다 읽고 나서는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책? 만약 그렇다면 유가족들의 생생한 증언과 고백, 4월 16일에 멈춰버린 시간의 기억을 담은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책이다. 첫 줄을 읽기가 무섭게 눈시울이 젖어든다. 어떤 부분에선 한 줄 한 줄 읽어가기 어려울 만큼 목이 멘다. 큰 슬픔과 마주하기 두려워 “이제 그만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 기록집을 낸 것일까. “이 책은 그간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지 못한 유가족들의 애타는 마음, 힘없는 개인이 느끼는 국가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사건 이후 대다수 가족이 시달리고 있는 트라우마 등이 고스란히 담긴 중요한 기록이에요. 9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건 당일의 일분일초를 또렷하게 기억해내는 부모들의 기억이 재구성됐다는 점에서 아주 신뢰할 만한 증언록이 될 거예요.” 첫 번째 공식 인터뷰집이란 의미를 가지는 이 책은 진상을 규명하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김 작가는 말했다. 눈물바람으로 눈의 부기가 가라앉을 새가 없었던 정부자씨는 책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제목을 정한 사람이 미웠다”라고 했다. 제목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괜히 미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금요일은 아이들이 돌아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한다. 무척이나 잔인한, 그러나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유가족들에게 금요일은 여전히 놓을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특별한 어느 날이다. 다시 한번 금요일이 왔으면… “알아요.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금요일은 영영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그래도요. 그래도 꼭 한 번 다시 금요일이 왔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이 오지 않더라도… 부모들이 아이들을 만나러 갈 수 있는 금요일이라도 말이에요. 그냥, 지금은 그래요. 진상 규명이라도 제대로 되는 것. 그게 지금 우리 부모들이 바랄 수 있는 유일한 금요일이지 않을까 해요.” 정부자씨는 자신은 그저 내 아이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싶은 엄마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처한 상황이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삶이 무척 낯설다고 했다. 기자간담회 중 마이크가 전해졌을 때도 “헐벗은 느낌이다”라고 했다. 많이 배운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아닌 자신이 왜 생판 모르는 기자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해야만 하는지 좀처럼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간담회 시작 전부터 단상 앞에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던 정씨는 간담회 내내 그리고 끝나고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이 낯선 곳에서 왜 내가 이러고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만 든다고 했다.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가 우리 빌라 반장이라 집집마다 관리비를 걷으러 돌아다녔어요. 그때마다 호성이가 뒤에서 손전등을 비춰주며 같이 다녀줬어요. ‘엄마, 엄마. 조심, 조심’ 이러면서요. 사고 난 뒤 동네 사람들이 저를 보면 ‘뒤에서 불 비춰주던 걔야?’ 그러면서 제 손을 잡고 엉엉 울어요. 대화 자체가 안 돼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관리비도 못 걷어요.” 호성이는 엄마를 무척이나 아끼는 살가운 아들이었다. 그래서 정부자씨는 더욱 아들의 빈자리가 힘들다. 누군가는 이런 그녀를 보고 “호성이 엄마는 호성이 가고 나서 만능이 됐다”라고 했단다.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멍하니 있으면 “엄마, 뭐 해?”라고 말하는 호성이 목소리가 들린단다. 그러면 분향소든 어디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돌아다닌다. 책에 대한 소감도 결국은 “진실을 밝혀달라”라는 간곡한 청을 한 번 더 하는 의미다. 사정하고, 울고, 떼쓰면 진실을 밝혀줄 줄 알았단다. 또 당연히 밝혀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왜 이런 거냐고 정부자씨는 반문한다. 이게 사는 거냐고 한탄한다. 이건 사람 사는 데가 아니라고 발을 동동 구른다. “안산의 곳곳, 분향소, 팽목항, 광화문, 국회, 청운동에서 유가족들을 만났어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했어요. 304명이면 304개의 고통이 존재했죠. 우리 사회가 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무엇을 빼앗아갔는지 분명히 알아야 해요. 책 작업을 한 작가로 느낀 것은… 이 작업을 하면 할수록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란 거예요. 누구나 유가족이 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이 책은 유가족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김 작가는 평범한 유가족들이 얼마나 잘 견디며 싸워왔는지에 대한 삶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인터뷰라고 했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유가족들을 이 책을 통해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유가족의 아픔이야 가늠할 수조차 없지만 그들과 밀착해 지내면서 그들의 말을 생생히 듣고 기록한 작가들의 아픔도 만만찮았을 것 같았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선뜻 내가 하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일이었으리라. 안산에 살고 있던 김 작가가 이 기록 작업을 하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필연 같은 것이었다. “주요 희생 지역이 안산시 선부동, 와동, 고잔동이에요. 선부동에서 70명, 와동에서 69명, 고잔동에서 83명이 희생됐어요. 제가 살고 있는 선부동의 아파트에서만 15명의 아이가 희생됐어요. 고통의 한가운데 있었죠. 거리를 무시하지 못하겠더군요. 유가족과 인터뷰를 하고 오면 짧게는 하루 반나절, 길게는 며칠씩 앓아누웠어요. 다른 작가들도요.”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치를 꿈꾸다 공황장애로 집 안에서만 생활해온 김건우군의 엄마는 이제 광화문 천막을 지키며 아들을 위해 싸운다. 신승희양의 언니는 매일 밤 거인이 돼 배를 건져내는 꿈을 꾼다. 그러면서 차도에 뛰어들면, 아파트 위에서 뛰어내리면 금방 죽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바보 같다고 탓한다. 수학여행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굳이 떠밀어 보내곤 떨쳐내지 못하는 죄스러움에 몸부림치는 엄마도 유가족 부모들과 모임을 만들어 삶을 추스르려 한다. 암 말기에 접어들어 어떤 활동에도 나서지 못하는 한 어머니가 다른 유가족들에게 미안해하는 이야기도 담겼다. 304명이면 304개의 고통이 존재한다고 했던가. 304개의 고통을 전부 알진 못하더라도 책에 담긴 13명의 고통을 통해 조금이나마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책에 소개된 열세 분의 이야기는 우연과 우연이 쌓인 결과입니다. 어떤 분은 지면의 제약으로, 어떤 분은 자식 얘길 하는 게 사무치도록 아파 차마 인터뷰를 할 수 없어서, 한창 거리로 나갈 때는 시간이 없어서, 반대로 열심히 활동을 못하시는 분은 자격이 없다고, 또 어떤 분은 자신의 얼굴이 너무 알려졌다며 거절하셨어요. 매번 상황이 급변했죠. 평범한 시민이 어떻게 유가족이 될 수 있는지 정말 생생히 봤습니다.” 인터뷰의 끝은 결국 “진실을 밝혀달라”라는 울음 섞인 간절한 청이었다. 분향소로, 팽목항으로, 광화문으로, 국회로, 청운동으로 바쁘게 다니는 것도 진실 때문이다. 그렇게 길을 누빈 것처럼, 그렇게 책을 만든 것도 진실 때문이다. 아이를 먼저 보낸 엄마들은 가방에 약 한 보따리씩 싸서 갖고 다닌 지 오래다. 심리치료는 언감생심이고, 병원에도 가지 않는다. 입원하라는 말을 들을까 봐서다. 지금은 병원에 누워 있을 때가 아니다. 최근 생존 여학생 1명이 자살을 시도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생존 학생들 중 의사들이 장담할 정도로 경과가 좋은 학생이었다. 그런 아이가 죽고자 마음을 먹었다. 병원에서 눈은 떴지만 입은 닫았던 아이가 며칠 만에 말을 건넨 이는 죽은 단짝의 오빠였다. “그 아이는 ‘내가 죽으면 다시 어른들이 반성하고 진상을 규명해줄 것 같아’ 죽으려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하고 일상으로 가장 돌아가고 싶은 건 우리예요. 하지만 보세요.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살아 있는 아이조차 일상으로 돌아가 잘 살지 못해요. 죽은 아이, 산 아이 모두를 위해 우리는 멈출 수 없어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두 번 세 번 죽일 만큼 아픈 말들과 서러운 오해들이 세상을 메우고 있다. 그런데 직접 만난 유가족들은 오로지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은 다시 누릴 수 없는 사치가 돼버렸다는 사실을. 그래도 꿈꾼다. 오늘 울고, 내일 다시 일어서서 진실을 밝히려 한다면 그 사치를 한 번쯤은, 하루쯤은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낯선 장소에 부은 눈을 감추지 못하고 간다. 가서 말한다. 진실을 밝혀달라고. Mini Interview “유가족 기록, 고통의 언어이지만…진짜 사랑의 언어이기도 해요” 김순천(작가·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대표) 언론을 통해 유가족을 보는 국민과는 달리 유가족과 밀착돼 지냈다. 기록단으로서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유가족의 모습은 어떠했나? 교황이 방문하기 전날이었다. 광화문에서 같이 밤을 새우는데… 예슬이 엄마가 ‘거위의 꿈’을 틀어놓았다. 노래가 흐르는데 갑자기 예슬 엄마가 “예슬아, 보고 싶다!” 하고 소리를 지르더라. 차마 책에 다 담지 못한, 세상에 알리지 못한 이런 유가족의 모습들이 무척 많다. 뉴스나 신문에 유가족이 화내고, 소리 지르고, 어떨 땐 싸움도 하는 모습이 보이니까 그들이 별난 사람들인 줄 안다. 하지만 옆에서 본 유가족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어떤 모습이었냐는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를 만큼 말이다. 유가족에 대한 오해도 있는 게 사실이다. 세상의 오해가 안타까울 것 같다. 많다. 정말 무척이나 많다. 그중 가장 세상이 미울 만큼 안타깝고 속상한 게 보상금과 관련된 얘기다. 보상금을 받았다, 몇 억을 받았다 등등 온갖 억측이 많다. 하지만 지금 유가족이 받은 돈은 누구나 여행 갈 때 의무적으로 드는 여행자보험 보상금 그거 하나다. 그나마도 타가지 않은 분이 더 많다. 그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아이들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데, 사망신고를 안 한 거다. 아니 못하고 있는 거다. 하고 싶지 않으신 거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말이다. 정말 이분들은 돈 생각 안 한다. 생각해봐라. 세상천지에 자식 목숨하고 돈하고 바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자꾸 돈과 결부시키는 세상의 시선이 참 잔인하다. 보상금 문제는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지? 앞서 말한 여행자보험, 일반인까지 다 가입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부모님들이 받은 보상금은 없다. 그리고 그런 말은 아예 꺼내지도 말라신다. 오해를 받으니까. 우리 사회는 현재 진실 규명을 해달라는 유가족의 청을 보상 문제로 바라본다. 책에 싣지 못했지만 꼭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직도 바닷속에서 나오지 못한 허다윤양의 이야기다.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양요섭을 좋아해서 부족한 용돈을 쪼개고 모아 잡지에 실린 그 가수의 브로마이드를 다 모아놨더라. 그 아이가 아직 못 나오고 있다. 지금 진도에 가면 바지선까지 다 철수했고 작은 부표 하나만 떠 있다. 다윤이 엄마는 그 차가운 바닷속에 자기 딸이 있다는 걸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신다. 많이 괴로워하고 방황하고 계신다. 어떤 때는 당신도 모르게 밖으로 돌아다니시고 그런다. 유가족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로는 무엇이 있을까? 마음은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몰라 못하는 분들도 많다. 10반 주희양 어머님을 인터뷰할 때였다. 사람들이 욕하고 비난하는 게 힘들지 않으시냐 물었더니, 언젠가 여수 간담회 자리에 갔을 적 이야기를 하시더라.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자기 밭에서 딴 옥수수를 한 바구니 삶아 와서는 안겨주시는데, 바로 삶아서 가져오셨는지 옥수수가 뜨끈뜨끈하더란다. 이후 사람들이 공격할 때, 이상하게 할머니의 옥수수가 생각나신다고 했다. 뜨끈뜨끈하던 그 옥수수가, 그 온기가. 주희양 어머님은 그걸 사랑이라고 표현하셨다. 유가족을 살린 것도, 내동댕이친 것도 국민이다. 할머니와 같은 심정, 함께 있어주려는 것, 분향소라도 한 번 찾아주는 것과 같은, 정말 잊지 않아주려는 마음이 유가족에겐 큰 힘이 된다. 책이 드디어 발간됐다. 작가로서 소망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위험 사회다.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 유가족이 될 수 있다. 남의 일이 아닌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유가족뿐 아니라 희생된 학생들, 일반인 분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함께 멈춰서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 책은 고통의 언어로 쓰인 동시에 진짜 사랑의 언어이기도 하다. 나무 -신호성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곳 식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 이 작은 나무에서 누군가는 울고 웃었을 나무 이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나무꾼은 누구인가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 밑동만 남은 나무는 물을 주어도 햇빛을 주어도 소용이 없다 추억을 지키고 싶다면 나무를 끌어안고 봐보아라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김성구, 경향신문 포토뱅크>
자살 시도자와 유가족들의 마음 쉼터…연희동 정진씨네
2012. 12. 11 16:11 화제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들 때가 있어요. 한 번쯤은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하죠.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녀는 말했다. 누가 어떻게 죽으려 했는지가 아닌, 어떻게 살려 했는지에 대해 나누고 싶다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녀가 만난 우리 이웃과 가족 그리고 소중한 생명들에 관한 것이다. 서울 연희동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하얀색 이층집. 울창한 소나무 숲 옆으로 작은 정원을 둔 그녀의 집은 계절을 피해가는 듯 초록과 온기로 가득하다. 정진씨(55)네를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연희동 언덕배기의 소나무 숲이 민간에 매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울시에 탄원서를 내고 숲을 돌본 소나무 숲 지킴이로 그녀를 만난 것이 2010년 초였으니, 2년 반 만이었다. 숲을 돌보던 그녀는 이제 자살자 유가족과 자살 시도자 그리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소나무 숲 옆 이층집은 마음 쉼터 ‘위드하우스’라는 이름을 달았다. “가까운 지인이 10년에 걸쳐서 10회 정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어요. 먼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인데 그 친구를 도우러 제가 다섯 차례 정도 찾아갔었죠. 아무리 먼 길을 찾아가 달래고 위로해도 한번 먹은 마음이 쉽게 고쳐지지 않더군요. 한 번 잠적하면 몇 날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주위 사람들을 애태우곤 했는데, 어느 날 제가 힘든 일을 겪고 그 친구 응답기에 정말 힘들다, 살기 싫다고 메시지를 남긴 적이 있어요. 전화를 3백 통 해도 답이 없던 친구가 바로 전화를 하더라고요. 자기를 생각해서라도 죽지 말라고. 저한테 힘이 돼주고 싶었던 거예요.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그날, 살기로 마음먹었대요.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나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죽지 못해요. 자신의 존재를 찾지 못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며 상처를 어루만져줄 쉼터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먼 곳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조용한 주택가,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울창해지는 소나무 숲이 있는 곳. 그녀는 가족의 생활공간을 1층으로 옮기고 볕이 잘 드는 2층을 쉼터로 꾸몄다. 쉼터가 생긴 지 2년, 지금까지 50여 명의 자살자 유가족과 자살 시도자 그리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자살 사고(思考)자들이 위드하우스를 다녀갔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더 큰 아픔 안고 사는 자살자 유가족들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부에서는 근본적인 처방과 치유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자살자 유가족들에 대한 상담과 치유 시설은 매우 미비한 상태. 사랑하는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가족들에게 큰 충격과 씻기 어려운 상처로 남는다. 그녀는 남겨진 가족들을 눈여겨봤다. “자살자 가족들이 겪는 아픔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예요.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죠.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질 수 있고 심각한 경우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쉼터를 마련하고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살자 유가족들을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짧은 한마디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을 안고 그녀 역시 눈물을 쏟았다. “대부분의 자살자 유가족들은 수치심과 죄의식, 자괴감에 빠져 있어요. 가족을 떠나보낸 것이 자신의 탓인 듯 괴로워하죠. 처음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한들 그분들께 위로가 될까 싶었는데,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짧은 위로에 큰 안도를 하시더라고요. 한 사람의 생명이 다한 것은 내 탓도 아니고 그 사람의 탓도 아니라고, 그저 그의 운명이 다한 것뿐이라고 말씀드리죠.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떠나간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몫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요.” 한번은 자신의 집을 찾아와 목숨을 끊은 형제 때문에 괴로워하는 유가족을 만난 적이 있다. 집에 돌아가기 힘들어하는 그에게 그녀가 해준 말은 “형제분이 죽기 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한 것이 아니었을까요?”였다. 원망으로 가득 찼던 그의 마음에 용서를 싹트게 한 한마디였다. 이제 그는 죽은 형을 생각할 때마다 ‘마지막으로 날 보고 가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한단다. 딸 세은양과 함께. 마음 쉼터를 운영하며 그녀는 가족과의 관계도 다시 돌아보게 됐다. “함께 지내던 이가 목숨을 끊은 경우 가족들에게 집은 돌아가기 힘든 곳이 돼요. 떠나간 이와 자신을 용서하고 관점을 바꾸지 않는 한 두려울 수밖에 없는 곳이죠. 그런 분들에게 쉼터는 집이 되어드려요. 오셔서 함께 지내시거나 잠시 들렀다 가시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그만큼 자살자 유가족으로서 아픔을 털어놓을 공간과 따뜻한 위로가 절실하다는 거겠죠.” 자살자를 비난하는 사회의 이목도 떠나간 사람과 떠나려 한 사람, 남겨진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얼마나 독하기에” 혹은 “얼마나 나약하기에.” 누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지만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결코 독하거나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에 기댈 곳이 없었을 뿐이다. “어느 날 한 어머니가 딸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어요. 딸은 2년 사이 너댓 번 자살을 시도했었고, 문자에는 ‘이제 끝을 내야겠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담겨 있었죠. 딸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는 노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끊임없이 ‘사랑한다’라는 문자를 보내는 일뿐이었어요. 사랑한다 얘야, 집에 오너라,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죽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그깟 문자에 마음을 돌릴까 싶지만, 사람이 말이에요. 마지막 순간을 코앞에 두었을 때 그래도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까 확인하게 돼요. 누군가 자신을 붙잡아주기를,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붙잡는 사람이 있으면 사는 거고 없으면 죽는 거예요. 우리는 그들을, 우리 가족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붙잡아야 해요.” 결국 딸은 어머니의 문자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작은 한마디와 위로가 누군가를 살게 한다면 그리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이제 ‘얼마나 아팠기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요즘 사람들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잖아요. 아무리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식으로 반응하면 그 사람 잃을 수도 있어요. 그러고 나서 후회하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그때 그 한마디를 귀담아들을 걸, 가슴 치며 울어봐도 되돌아갈 수 없죠. 나는 너무 힘든데 눈여겨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가는 거예요. 단 한 명만이라도 내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 한 사람이 눈에 밟혀서라도 삶을 놓지 못해요. 그 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 그리고 잊고 있던 가족과 만나게 하는 게 쉼터가 하는 일이에요.” 일상에 감사하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삶 현재 위드하우스에는 두 명의 쉼터 식구가 함께하고 있다. 쉼터 식구들을 돌보는 일부터 자살자 유족들을 찾아가는 일, 찾아오는 가족들을 상담하고 집으로 돌아간 식구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살피는 일까지 모두 그녀의 일이다. 소액의 후원금으로 쉼터를 운영하며 무보수로 밤낮없이 일하고 있지만 그녀는 그마저도 모자라다고 느낀다. 자살자 유가족과 시도자들이 와서 거주할 수 있는 쉼터가 있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혼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한다. 요즘은 딸과 함께 트위터로 쉼터 소식을 전하고 있는 중이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런 경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쉼터에서 정신적인 안정을 찾았다 하더라도 언젠가 또다시 같은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죠. 최소한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현재로선 쉽지 않아요. 후원자를 모집할 수 있는 건강한 방법을 모색 중이에요.” 쉼터를 찾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다. 자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 하지만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구분이 없다. 남자, 여자, 청년, 노인, 가진 자, 못 가진 자. 누군가의 소개나 부탁으로 오는 사람도 있고 저 멀리 땅끝에서 알음알음 물어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모두 어떻게든 살려고 오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이 쉼터에서 쉴 수 있는지 묻는다면 그녀의 대답은 ‘모두’이다. “자살예방센터는 많은데 자살과 관련해 이러한 다양성을 가진 쉼터는 아마 이곳이 유일할 거예요. 기관에서 운영하는 센터들의 경우 문 여는 시간과 문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살피기가 쉽지 않거든요. 쉼터는 생활을 함께하는 곳이다 보니 직접적으로 접촉하며 보다 깊은 교감을 만들어나갈 수 있죠.” 아침 7시 기상. 쉼터의 하루는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식사를 마치면 설거지와 청소를 한다. 쉼터에서는 모든 것이 ‘함께’다. 아침 청소가 끝나면 집 뒤에 있는 텃밭에서 고구마며 배추며 상에 올릴 푸성귀들을 일구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따뜻한 햇살 아래 타박타박 서로의 발소리를 들으며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와 오후가 되면 독서와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해 질 무렵 갖는 감사 시간은 쉼터 생활에서의 중요한 일과다. “하루에 세 가지씩 오늘 하루 감사했던 일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에요. 처음 쉼터에 오신 분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시간이기도 해요. 매일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무언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죠. 한번은 쉼터에 오신 50대 아버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평생 힘들게 살다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떨어져서 죽을 생각까지 한 사람인데 어떻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냐고요. 이렇게 힘든 인생 도대체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먼 지방에서 이곳까지 사고 없이 안전하게 오셨잖아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시작해요.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찾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거예요.” 회복의 열쇠, 가족 하루에 세 개씩,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조금씩 감사하는 것이 쌓인다. 중요한 것은 날이 갈수록 고마움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떠 밝은 태양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는 것에 감사, 따뜻한 잠자리에서 잠들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한다. 그동안 무의미했던 일상의 작은 부분들이 하나 둘 의미를 찾기 시작하고,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때문에 늘 힘들어했던 아침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매일의 축복이 된다. 단조로워 보이는 쉼터의 하루지만 한 가지 규칙이 있다. 쉼터에서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한 시간 이상 누워 있을 수 없다. 쉼터 식구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활동한다. 매일 노동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 쉼터 지킴이로서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한 청년이 왔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살 생각밖에 없었어요.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나 죽을 거예요’라는 말을 하루 종일 하던 친구였죠. 그런데 쉼터에서는 매일 다 같이 명상하고 책 읽고 산책하고, 죽겠다 생각할 여지를 안 주거든요. 2주 정도 지나니까 그 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제가 동네에 작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줬는데 폐를 끼치는 것 같다며 3일 만에 그만두겠다고 하더군요. 전에도 일을 해보려 하다 하루 만에 그만둔 적이 있었대요. 제가 ‘이번엔 3일이나 했네’라고 칭찬을 해줬어요. 나중에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그때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무척 감사했다고요.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나 하잘것없다고 생각해왔는데 그 부분을 인정받으니 온몸에 피가 도는 것 같았대요. 작은 성취를 객관적으로 인정해주는 게 중요해요. 누군가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다시 한번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일이에요.” 쉼터에 온 식구들이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면 그녀는 어느 시점에서 가족을 부를까 생각한다. 회복의 열쇠를 쥔 것은 결국은 가족이라는 것. 그녀가 많은 자살 시도자들을 만나며 얻은 결론이다. “죽을 만큼 힘든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던 가족이 온 힘을 다해 마음을 던지는 걸 보고 멈추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더 무심할 수 있는 것이 가족이거든요. 자신의 고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아파해주는 가족이 있으면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하지 않아요. 지금 곁에 있는 딸과 아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귀담아들으세요. 한 번 더 눈 맞추고 한 번 더 안아주세요.” 쉼터를 떠난 이들은 이제 또 다른 생명을 북돋운다. 그렇게 누군가의 단 한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녀의 마당에는 사시사철 봄처럼, 매일 새로운 생명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마음 쉼터 위드하우스에 도움을 주시고자 하는 분들은 후원 계좌(우리은행 1002 342 499854)와 문의 전화(02-6080-2450)를 통해 마음을 전해주세요. 트위터(www.twitter.com/cjin0109)를 통해서 위드하우스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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