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옵션
닫기
범위
전체
제목
본문
기자명
연재명
이슈명
태그
기간
전체
최근 1일
최근 1주
최근 1개월
최근 1년
직접입력
~
정렬
정확도순
최신순
오래된순

경향신문(총 2,454 건 검색)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지원단 정식 출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지원단 정식 출범
2025. 01. 20 07:55사회
... 현장에 파손된 로컬라이저 둔덕이 방치되어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지원을 전담하는 범정부 조직이 본격 가동된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참사가 발생한 지 22일...
여객기제주항공무안공항참사
제주항공 참사 추모식 엄수…유가족들 “투명하게 참사 원인 밝혀달라”
제주항공 참사 추모식 엄수…유가족들 “투명하게 참사 원인 밝혀달라”
2025. 01. 18 13:45사회
... 남겨진 추모 메시지를 LED로 송출하며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박한신 유가족 대표는 추모사에서 “유가족들의 시간은 사고가 나기 전에 멈춰있다. 열심히 살아온 그분들의 인생은 저희가 이어와야 한다”며...
‘태국 살인 사건’ 공범 3명, 무기징역 등 선고…유가족, “사형 요청”
‘태국 살인 사건’ 공범 3명, 무기징역 등 선고…유가족, “사형 요청”
2025. 01. 16 14:23사회
... 범행 대상을 물색,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외국에서 전화금융사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 유가족 대표는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가족은 주범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3명의 신상을 공개해야...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의 ‘마지막 고향사랑’…유가족, 500만원 기부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의 ‘마지막 고향사랑’…유가족, 500만원 기부
2025. 01. 15 16:29사회
고 천병일씨, 생전 고향 영암 자주 찾아 형제들 “고향 좋아했던 형 기억해 줬으면” 15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쟁자인 고 천병일씨의 형제들이 고인 명의로 전남 영암군에 500만원을 기부했다. 영암군...
기부참사제주항공고향희생자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스포츠경향(총 384 건 검색)

임영웅 팬덤,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에 1700만원 기부
임영웅 팬덤,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에 1700만원 기부
2025. 01. 23 11:18 연예
가수 임영웅. 희망브리지 제공 임영웅 팬덤이 또 다시 선행을 이어갔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회장 송필호)는 유튜버 뮤직통·친친뮤직과 임영웅 팬덤 영웅시대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지원을 위해 성금 1700여 만원을 기부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성금은 평소 임영웅 팬으로 알려진 유튜버 뮤직통이 진행한 모금 방송에 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조성된 것으로 유가족에게 위로금 형식으로 전달될 예정이다. 뮤직통은 “가수의 선한 마음을 본받아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전하고자 모금을 진행했다”며 “따뜻한 나눔에 함께해 주신 영웅시대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희망브리지 신훈 사무총장은 “선한 뜻으로 마음을 모아주신 팬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영웅시대 응원과 위로가 유가족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장우, 괜히 팜유가 아니네 “감칠맛 궁금해 화학 공부 중” (나혼산)
이장우, 괜히 팜유가 아니네 “감칠맛 궁금해 화학 공부 중” (나혼산)
2025. 01. 18 00:37 연예
MBC 예능 ‘나 혼자 산다’ 배우 이장우가 최근 화학 공부를 시작한 이유를 밝혔다. 17일 방송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는 이장우의 캠핑 준비 과정이 그려졌다. 짐 챙기기에 나선 이장우는 간략한 캠핑용품을 챙긴 후 식량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냉장고로 향해 양배추와 당근, 감자, 반죽, 가오리 등을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이를 본 이주승은 “여러 명이 가나 보다”라고 말했지만, 이장우는 “혼자 간다”라고 답해 멤버들을 놀라게 했다. MBC 예능 ‘나 혼자 산다’ 이에 코드 쿤스트는 “그럼 그냥 멀리 가서 먹는 거 아니냐”고 물었고, 이장우는 “산에 가서 먹는 거다. 사실 캠핑은 먹으러 가는 거다”라며 자신의 캠핑 철학(?)을 전했다. 이후 비닐봉지 한 장을 꺼낸 이장우는 각종 가루를 계량해 넣기 시작했다. 몇 종류의 가루들을 넣으며 그는 “냄새가 좋다”며 흐뭇해했다. 이어 그는 “여러 가지 가루를 넣는다. 글루탐산나트륨, 이노신산과 구아닐산이 섞인 핵산, 거기에 호박산나트까지 섞어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량을 마친 후 그는 비닐을 잡고 흔들며 가루를 섞었다. 이장우는 “내 방식대로 만든 만능 수프다. 요리를 공부하다 보니 감칠맛이 뭔가 궁금했더라. 감칠맛에 대해 파기 시작하니까 화학적인 것과 연관이 있더라. 그래서 요즘 화학 공부를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공부할수록 느낀다. 요리가 과학이다”라며 웃음을 보였다.
‘손흥민 이후’ 준비하는 토트넘?···맨유가 내보내려는 가르나초 영입설, 현지 매체는 ‘손흥민 후계자’로 주목
‘손흥민 이후’ 준비하는 토트넘?···맨유가 내보내려는 가르나초 영입설, 현지 매체는 ‘손흥민 후계자’로 주목
2025. 01. 17 11:57 축구
게티이미지코리아 토트넘(잉글랜드)은 계속해서 ‘포스트 손흥민’ 시대를 준비한다. 윙어 자원으로 10대 기대주 마이키 무어와 양민혁을 이미 영입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알레한드로 가르나초도 타깃으로 떠올랐다. 영국 ‘풋볼 트랜스퍼스’ 등은 최근 보도를 통해 가르나초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토트넘 상황을 보도했다. 이 매체는 “토트넘이 7000만유로 투입해 가르나초 영입에 나설 것이다. 이 정도 금액이라면 맨유에겐 가르나초를 데려왔을 때와 비교해 엄청난 수익이 생길 것”이라며 토트넘의 오퍼가 맨유에게 매력적인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따. 2004년생 가르나초는 2020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유스팀을 떠나 맨유로 이적한 기대주다. 맨유 유스팀에서 뛰다 2022~2023시즌에 A팀에 데뷔했다. 지난 시즌에는 맨유 주전 윙어로 뛰면서 리그 36경기(선발 30경기)에 나와 7골 4도움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도 뛰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리그 19경기에 출전해 3골 1도움을 그치고 있다. 팀이 부진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 마커스 래시퍼드, 안토니 등과 함께 방출될 선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빠른 스피드에 드리블 능력까지 갖춘 가르나초가 잠재적으로 손흥민의 자리를 채울 선수라는 기대도 나온다. 영국 ‘팀 토크’는 “가르나초는 장기적으로 손흥민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며 “우측에서도 뛸 수 있어 손흥민과 공존도 가능하다. 손흥민이 1년 더 토트넘에서 뛰지만 최근에 내리막을 걷고 있어 장기적으로 미래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토트넘이 가르나초 영입에 관심을 보이는 상황을 분석하기도 했다. 가르나초는 토트넘 뿐 아니라 나폴리(이탈리아)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도 이적설로 연결되고 있다.
고 이희철, 애도 속 영면···유가족의 마지막 말
고 이희철, 애도 속 영면···유가족의 마지막 말
2025. 01. 16 14:01 연예
최근 사망한 고 이희철.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인플루언서 고 이희철이 영면에 들었다. 고 이희철의 유가족은 16일 고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삼가 감사 인사 드린다. 우리 아들에 대한 많은 따뜻한 조의와 위로, 내 일처럼 앞장 서 무사히 상례를 마치게 도와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마땅히 찾아 뵙고 인사 드리는 것이 도리이오나 황망 중이라 서면으로 인사 드리게 됨을 혜량해주시기 바란다”며 “항상 건승하시고 만복이 깃드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가족은 “희철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지난 11일 안치됐다. 언제든 편안히 찾아와 이야기 나눠달라. 또 앞으로 모든 대소사 관련해 슬픔과 기쁨, 저희도 함께할테니 간혹 안부 전해주시면 감사드리겠다”며 “때때로 전달드릴 내용이 있ㅇ면 추가적으로 또 전해드리겠다”고 했다. 고 이희철의 죽음은 그의 절친인 풍자가 직접 알렸다. 고 이희철은 지난 7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향년 38세. 고인은 비주얼 디렉터 및 포토그래퍼로 활동했고 문화공간을 오픈하기도 했다. 풍자와 함께 KBS2 예능 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2’에 출연한 이력이 있다. 풍자는 고 이희철과 함께했던 반려견을 입양하며 끝까지 의리를 지키기도 했다.

주간경향(총 27 건 검색)

[렌즈로 본 세상] “또 무죄냐” 주저앉은 유가족
[렌즈로 본 세상] “또 무죄냐” 주저앉은 유가(2024. 10. 29 06:00)
2024. 10. 29 06:00 사회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이 사건으로 기소된 주요 기관 책임자들의 1심 선고가 마무리됐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만 유죄 판결을 받았고 박희영 용산구청장,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무죄였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아예 불기소 처리됐다. 반복되는 참사에도 합당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은 이전과 같았다. 요직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더 그렇다. “참사 때나 이러지.” 함께 있던 기자가 구름처럼 몰려드는 경찰들을 보며 말했다. 지난 10월 17일 김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자 어림잡아 100명이 훌쩍 넘는 경찰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입구를 에워쌌다. 법원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지만 과도해 보였다. 법원 판결을 지켜보던 유가족은 분통을 터뜨리며 울었다. 진창희씨가 말했다. “아이들이 쓰러져 죽어가는 화면, 부모들이 법원 앞에서 몸부림치는 장면만 보지 마시고 사법의 무능함과 참담함을 국민께서 함께 바라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재판부는 무죄 판결과 별개로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기관 책임자에 대한 도의적·정치적·법적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족과 생존 치료자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치유가 필요하다.” 법정에 서 있던 당사자는 판사의 말을 귀담아들었을까? 울분을 삭이지 못한 한 유가족이 법원 담벼락에 주저앉았다. 재판부가 언급한 ‘기관 책임자’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법원을 떠난 후였다.
렌즈로 본 세상
“이태원 유가족·시민들의 의문들 풀어낼 것”
“이태원 유가족·시민들의 의문들 풀어낼 것”(2024. 10. 28 06:00)
2024. 10. 28 06:00 사회
송기춘 이태원 참사 특조위원장 인터뷰 송기춘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0월 23일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향미 기자 이태원 참사 2주기를 한 달여 앞둔 지난 9월 23일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활동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은 지난 10월 2일 진상규명에 필요한 과제 9가지를 꼽아 특조위에 첫 번째로 신청서를 내면서 “희생된 아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송기춘 특조위 위원장(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참사로 고통받는 이들이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진상규명부터 힘쓰겠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공직자들의 태도와 관련해 ‘면이무치’(免而無恥·처벌을 피하면 부끄러움을 모른다)란 말을 곱씹게 된다고 했다.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특조위 사무실에서 만난 송 위원장은 “유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아픔”이기 때문에 이 참사의 진상규명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왜 참사가 일어나게 됐는지를 알아야 제도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알 수 있고), 또 완벽한 제도도 그걸 운용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이 어떤 자세로 일하느냐에 따라 제도가 작동하기도 안 하기도 한다. 일단 중요한 것은 (어디서 잘못이 있었는지)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조위는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피해자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활동한다. 송 위원장은 “일단은 법령이나 업무상 지침, 매뉴얼에 위반되는 부분이 있었는지 이런 적정성 평가를 해야 할 것이고, 책임의 추궁이 필요하면 지적할 것”이라며 “보다 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정말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거예요. 그 부분은 유가족을 위로하는 측면도 있지만 사실은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못해서 이런 참사가 발생했는지를 확인하고, 국가의 책임·책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공직자의 얼굴로 시민들과 만난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과 관련해 공직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참사에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최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송 위원장은 “헌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법치가 무엇인가 생각한다”며 “헌법이 정한 원칙은 법치주의이고, 이는 국가마저 법에 구속을 받는다는 것인데 현재 공무원들은 (법치는) 권한 집행의 근거로서의 법으로만 생각하고 그것에 위반되지 않으면, 특히 형법에 위반되지 않으면 잘못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가”라고 했다. 이어 “진짜 법치는 그런 게 아닌데, 헌법에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원칙을 두는 것은 정말 인권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는 (공무원들이) 굉장히 메마른 공권력 집행을 예정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송기춘 이태원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특조위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향미 기자 특조위가 출범하기까지 정치적인 이견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특별법이 한 번 수정되면서 기존 법안에 있던 불송치·수사 중지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권한과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 권한이 삭제됐다. 특조위 활동 기한(1년+3개월 연장 가능)이 짧다는 우려도 있다. 송 위원장은 이미 주어진 조건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는 “수사는 결국 피의자 중심으로 해서 형사 책임을 입증하기 위한 사실관계를 들여다보기 때문에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위원회의 조사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유가족들은 왜 우리 아이 시신이 경기도 어느 병원에 가 있었는지 묻고 있다. 참사 직후 유가족들이 서로 만나서 단체화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도 있었다는 의심이 있다. 이런 것은 수사에서는 다루지 못했다. 유족들이, 또 사회구성원이 가지는 이런 의문을 규명할 것”이라고 했다. 송 위원장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경험 등을 볼 때, 관련자들의 ‘제보’와 ‘진술’이 진실을 확보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조위는 홈페이지(https://1029itaewoncommission.go.kr)와 e메일(1029itaewon@korea.kr)로 제보를 받고 있다. “어떤 식물은 아스팔트 틈에서도 나오잖아요. 생명이라는 것이 전개되는 과정은 감동적입니다. 어떤 진실이라는 것은 결국은 스스로 드러나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하는 그런 신뢰가 있어요. 사람은 어떤 강제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자신이 가진 어떤 양심, 부끄러움이 발동해 움직인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이건 실패할 수밖에 없죠.” 송 위원장은 특조위에서 이태원 유가족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시선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는 “유가족들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응당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 잘못된 정보들이 생성된다. 가짜 정보들을 다룬 영상 등은 시정될 수 있게 하고, 위원회 보고서에서도 그런 부분을 지적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혐오 발언을 했던 사람들이 좀 스스로 자정하고 수정했으면 하는 소망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특조위가 출범한 지 한 달이 흘렀다. 위원 9명(상임위원 3명·비상임위원 9명)과 사무처 설립준비단(파견 공무원 7명·민간 전문가 8명)은 본격적인 조사를 위한 작업을 해왔다. 시행령안을 만들면서 지난 10월 8일에는 주요 정부기관에 참사 관련 기록물 폐기 금지와 보유, 폐기 목록 제출을 요청했다. 기존에 나온 자료를 확보해 읽고,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조사 신청을 받고, 그사이 몇몇 제보와 진술도 확보했다. 송 위원장은 “서둘러 사무처를 구성하고 올 연말 조사 활동을 본격화해 주어진 시간 내에 잘 마치겠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지난 10월 25일 호주인 희생자 유가족을 만났다. 이태원 참사에는 한국인 외에도 14개국 26명의 외국인 희생자가 있으나, 이들은 그간 한국에서 어떤 정보도 받지 못했다. 송 위원장은 “피해자 국가의 대사관에 영문으로 번역한 서류를 보내고, 관련 국가의 언어로 대사관에서 번역해 피해자·유가족들에게 전달해서 구제받을 수 있는 통로를 우리 위원회가 마련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10월 26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시민추모대회에 부스를 설치해 조사 신청을 받는다.
특집
알고 싶다, 이태원의 진실을…유가족들의 ‘세상이 무너진 2년’
알고 싶다, 이태원의 진실을…유가족들의 ‘세상이 무너진 2년’(2024. 10. 28 06:00)
2024. 10. 28 06:00 사회
참사 2주기 맞아 유가족 구술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펴내 “유가족들은 서로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끈”…기억과 진상규명 기대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의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1심 선고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진 지난 10월 17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서로 위로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두 해 전 가을 이맘때, 단풍의 색은 어땠던가. 2022년 10월 29일 김채선씨는 친구들과 속리산으로 단풍을 보러 갔다. 같은 날 딸 김지현씨는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났다. 김채선씨는 “딸이 유명을 달리한 날에 엄마가 (단풍을 보고) 그렇게 행복해”한 것에 대해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 그날을 기억에서 영원히 삭제하고 싶다고 말한다. 단풍색 점퍼는 모두 버렸고 그의 삶의 색도 바뀌었다. 그는 영안실에 누워 있는 딸을 보고 ‘인정할 수 없다’고, ‘문만 열만 원래대로 돌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는 그 순간 자신이 딸을 안아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마지막이었는데 왜? 왜 우리 딸을 안아주지 않았을까요? 지금까지도 저 자신이 원망스럽고 딸에게 미안해요.” 참사 이후 경찰서에서 온 서류엔 ‘죄명’과 ‘변사’라는 표현이 쓰여 있었다. ‘의미 없는 행정적인 절차일 뿐’이라는 경찰의 말에 김채선씨는 저항했다. 그 표현을 지우고 ‘압사’라고 쓰인 서류를 받아냈다. 뿌듯했지만 허탈했다. 딸은 없는데 종이 한 장만 남아서. “참사를 당한 후 유가족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 셀 수 없이 많았어요. 그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저절로 바뀌었어요. (중략) 참사가 일어나고 진상규명 투쟁을 하면서 국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됐어요. 2주기가 돼가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정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결국 제가 붙잡을 것은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싸워나가야겠다는 우리 유가족의 의지뿐이었어요.”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아 나온 유가족 구술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창비)를 통해 김채선씨는 이 같은 자기 안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은 작가와 활동가들이 결성한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 25명의 유가족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동행 취재한 기록이다. 이태원 참사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서울에서 유가족 활동의 전면에 나선 이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해외에서 아무런 소식을 들을 길이 없어 고립감을 느낀 유가족들의 이야기도 전한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참여한 구술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표지. 창비 ■“왜 참사가 일어났는지 알아야 한다” 이태원 참사 당일 친구를 만나러 나간 서수빈씨는 밤 11시가 다 돼가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3시쯤 돼서야 전화 연결이 됐는데 용산경찰서였다. 수빈씨 부모는 경찰 안내에 따라 한남동주민센터에 가서 실종신고를 했다. 주민센터에선 사망자 명단이 전해졌다. 딸의 이름이 없길 바라고 또 바랐다. 오후 2시쯤 딸이 사망했으며 경기도 성남의 한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남 병원에서 일산 장례식장까지 상조회사에서 불러준 차로 가는데, 차 안에 타보니 우리 딸이 붕대 같은 거로 감겨서 있는 거예요. 너무 끔찍해… 그 상황이…. 차 안에 있는 40분 동안 우리 딸을 계속 안고 왔어요. 다행이다. 그래도 우리 딸 40분은 안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서수빈씨 어머니 박태월씨 이야기’) 박태월씨는 딸이 어떻게 성남의 병원까지 가게 됐는지 알고 싶다. 왜 그 새벽부터 오후 2시까지, 긴 시간 주민센터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는지 책임 있는 누군가 설명해주길 바란다.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에는 이태원 참사 당일부터 희생자의 시신을 인계받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유가족이 당국으로부터 어떤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증언이 기록돼 있다. 유가족들이 가족과 죽음과 관련한 단서들, 이를테면 구급일지와 같은 ‘서류 한 장’을 받기 위해서도 소방서에, 병원에, 경찰서에, 행정안전부에 일일이 전화를 걸고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스스로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숨지고 195명이 다쳤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였다. 유가족들은 국가가 왜 참사를 예방하지 못했으며, 참사 이후 대응은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고 본다. 또 책임자가 마땅한 책임을 지는 것을 원한다. 유가족들은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2년을 투쟁했다. 경찰과 국회는 그 답을 내놓지 못했다. 경찰은 2022년 11월 1일 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꾸려 74일간 수사를 진행했다.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를 ‘책임 있는 기관들의 무책임한 대응에 따른 인재’로 결론 내리고 23명(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6명 구속,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등 17명 불구속 입건)을 입건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시장, 경찰청장 등은 수사하지 않았다. 국회는 그해 11월 24일부터 45일간 국정조사를 실시했다. 국민의힘의 불참으로 예산안 처리가 늦어져 12월 19일에야 첫 회의가 야당 단독으로 열렸다. 국정조사에 피해자가 참여한 것은 국정조사 활동 종료 5일 전이었다. 유가족이 기댈 것은 ‘특별법’이었다. 2023년 4월 야당이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안’(특별법)을 공동발의했다. 유가족들은 2023년 6월 특별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통과되기를 바라며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159㎞에 달하는, 뜨거운 아스팔트를 걸으며 행진했다. 그해 12월과 올해 1월에는 특별법 입법을 촉구하며 혹한 속에서 오체투지를 했다. 2024년 1월 9일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1월 30일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 그때만 해도 기대라는 게 있었어요. 이제 알 거야, 알 거야. 우리 딸 그날 몇 시에 어떻게 돼서 병원에 갔는지. 그런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버렸잖아요. 허탈하다 그럴까, 무기력이 와버리더라고요. 제가 무너져버린 느낌이 들었어요.”(‘서수빈씨 어머니 박태월씨 이야기’) 이태원 참사 유가족·시민·4대 종교인 100여명이 지난 1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대통령실 앞까지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다음날인 1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효진 기자 2024년 5월 1일 여야가 특별법 수정안에 합의하고 다음날 수정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특별법에 따라 지난 9월 13일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위원들이 임명됐고, 같은 달 23일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지난 10월 22일 서울 중구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 ‘별들의 집’에서 열린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년 6개월 동안 길거리에서 몸을 던지면서 특조위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던 이유는 항상 대한민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끊임없이 재난 참사가 발생하는데 그 책임은 묻혀 버리는 현상이 반복됐기 때문”이라며 “특조위가 없다면, 재판으로 책임자가 무죄라고 하면 아무런 책임이 없는 상태로 가기 때문에, 특조위가 너무나 소중하다”고 했다. 최근 재판 결과 앞에서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지난 9월 30일 열린 1심에서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 전 서울용산경찰서장(금고 3년) 등 용산경찰서 관계자 3명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반면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구청 관계자 5명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 지난 10월 17일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청 관계자 3명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항소해 이들의 책임은 2심에서 더 다툴 예정이다.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이런 참사 없는 사회로” 정부는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서로 연락할 방법도 안내해주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장례식장에서, 납골당에서 서로가 유가족임을 알게 됐다고 전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연 유가족 모임에서 더 많은 유가족이 연결됐다. 2022년 12월 10일 유가족협의회가 출범했다. 유가족들은 참사 100일이 되던 2023년 2월 4일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 있던 분향소를 서울 시청광장으로 옮긴다. 경찰이 광화문광장을 막고 있었기에 시청광장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유가족들과 그 곁에서 시민들이 도와 경찰을 막아내고 분향소를 설치할 수 있었다. “우리와 영정을 따라오던 그 많은 시민의 힘을 목격했어요. ‘연대의 힘이 이렇게 크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어요.”(‘이주영씨 아버지 이정민씨 이야기’)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유가족들은 2024년 6월 16일 시청 분향소를 정리하고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 ‘별들의 집’으로 희생자들의 영정을 이전했다. ‘분향소’는 세상을 떠난 자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자, 유가족들이 서로에게 의지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시민들이 찾아와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혐오의 말들도 분향소를 찾아왔다. “슬픔을 상품화해 버리고 유가족들을 매도하는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삶이 너무 팍팍하게 느껴집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거, 물론 생각의 차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건 슬픔이잖아요. 아이를, 남편을, 형제를, 친구를 잃은 슬픔. 그런데 돈을 밝힌다든지, 심지어 간첩이 조종했다는 말도 들었어요. 분향소에 나와 지킴이 하고 있으면 지나가면서 그런 말을 해요. 왜 그러겠어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으니까요.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용산구청장, 경찰청장 등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안일하게 사태를 수습했고 지금까지도 책임지지 않고 있죠. 분위기 탓을 하고 핼러윈 축제 탓을 하고 거기 모여든 사람들 탓을 하고 있어요.”(‘송은지씨 아버지 송후봉씨 이야기’) “저는 ‘놀러 가서 죽었다’는 말이 너무 화가 나요. 놀러 갔으면 길에서 그렇게 죽어도 되는 건가요? 우리 모두 일상에서 놀러 가잖아요. 꽃놀이도 가고 유원지에도 놀러 가잖아요. 놀러 가서 죽었다는 건 상황을 왜곡하는 말일 뿐이에요.”(‘김산하씨 어머니 신지현씨 이야기’) 참사 이후 “세상이 무너진” 유가족들은 서로서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끈’이라고 말한다. 이태원 참사에서 친구를 잃은 고등학생 이재현군은 2022년 12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송해진씨는 ‘유가족의 자격’에 대해 자문했다고 한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가족이 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정말 새로운 세상에 내던져진 기분이더라고요. 재현이가 참사 당시 살아서 왔었기 때문에 그때 그 아이의 심정이 어떨지 이해하고 싶었지만 못했습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니까 그때 아이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낯선 세상에 혼자 떨어져 있고, 고립돼 있고,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나 이유를 찾기 많이 힘들긴 하더라고요. 막연한 공포, 두려운 심정들로 지난 1년여를 살아왔던 거 같은데 그런데도 이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옆에 항상 계신 유가족, 활동가분들, 작가기록단 여러분들이 있어서 이 자리에 온 것 같아요.” 유가족들은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올 10월 한 달 내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더 많은 시민이 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연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보다 “바빠야만 이 10월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정민 대표)이다.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는 이태원 참사를 통해 한국사회가 무엇을 배워, 무엇을 고쳐,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한 질문들이 들어 있다.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연대하는 게 우리 유가족의 의무가 된 것 같아요. 이런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다시는 우리처럼 자식을 잃은 부모가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죠.”(‘오지연씨 아버지 오영교씨 이야기’) 신지현씨는 기자간담회에서 구술집에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딸은 ‘억울해’라고 말은 못 하지만 저는 억울합니다. 요즘 주변에서 지인들한테서 청첩장이 날아오는데, 우리 딸 결혼식을 볼 수 없고 남자친구 얘기도 들을 수 없고…. 너무 많이 부럽고, 너무 많이 아픕니다. 구술집 참여는 그냥 제가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누가 말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너희들이 밟으면 내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감춰지는 게 무서워서, 묻혀버릴까 봐 무서워서 계속 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집
지원 줄고 유가 널뛰고 농민은 ‘한숨’
지원 줄고 유가 널뛰고 농민은 ‘한숨’(2023. 11. 24 16:40)
2023. 11. 24 16:40 경제
원자재 가격 급등에 소득 줄어…에너지 절감 기술 확대해야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 회원들이 지난 4월 24일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거부 및 양곡관리법 전면개정 촉구 농민대표자회의에서 쌀 수입 중단과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동훈 기자 ‘949만원’. 지난해 농가당 영농활동 소득이다.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득이 쪼그라들었다. 소득 감소는 농촌의 불평등과 빈곤까지 키운다. 농민들은 생산비 부담을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국제 원자재 시장이 요동칠 때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안으로 에너지 절감 기술의 보급과 확대, 신재생에너지 활용 등이 제시된다. 소득 줄고 생산비 부담 커지는 농가 지난해 농가의 평균 소득 4615만원 중 농업소득은 949만원이다. 전년 1296만원에서 348만원(-26.8%) 줄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62년 이래 최대 감소 폭이다. 지난해 농업소득이 대폭 감소한 것은 국내외 악재가 한꺼번에 작용한 탓이다. 김태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작년엔 국내적으로 쌀과 한우 가격이 폭락하고,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생산비 부담이 크게 늘면서 농업소득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농업소득은 농업총수입에서 농업경영비(비료·사료 비용 등 생산비)를 뺀 것이다. 지난해 농업총수입은 쌀의 산지 가격 하락 등 영향으로 전년(3720만원)보다 7%가량 줄어든 3460만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농업경영비는 전년(2423만원)보다 3.7% 상승한 2511만원이었다. 역대 최고치다.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율도 크게 줄었다. 농업소득 비중은 2018년 30.7%에서 2022년 20.6%로 10.1%포인트 하락했다. 농업소득 감소로 줄어든 전체 농가소득은 부업과 같은 농외소득이나 공적 연금소득, 공익직불제 등과 같은 정부의 이전소득으로 메우고 있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소득 감소는 불평등도와 빈곤율 심화로 이어졌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11월 1일 내놓은 ‘2018~2022년 농가경제 변화 실태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농가 유형별 소득분포에서 소득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21년 0.389에서 지난해 0.395로 상승했다. 농업소득이 줄면서 농가소득 편차가 커진 이유에서다. 통상 지니계수 값이 0.4 이상이면 소득 불평등도가 심각한 것으로 간주된다. 농촌의 지니계수는 과거 0.4 이상을 보였으나 2020년 들어 0.4 이하로 줄었다. 당시 첫 실시된 공익직불제와 코로나19 시기 지급된 각종 보조금 등 영향으로 소득 불평등이 완화된 영향이 크다고 보고서는 적었다. 빈곤율도 마찬가지다. 전체 농가 빈곤율은 2015년 9.0%에서 2020년 재난지원금 지원, 소농직불금 지급 등 이전소득이 증가하면서 6.4%로 하락했으나, 지난해는 농업소득 감소로 인해 7.8%로 다시 상승했다. 농촌 고령인구도 2018년 63%에서 2022년 76%로 크게 늘었다. 보고서는 현재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향후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이 영농에서 은퇴하는 시점이 도래할 때 농업 생산 분야에 심각한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역대급 규모를 보인 생산비 부담은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등으로 국제유가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다. 국제유가는 올 1월 평균 80.42달러(두바이유·1배럴당)에서 10월 89.75달러 수준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 변동에 밀접하면서 비료의 주요 원료로 쓰이는 요소와 암모니아의 국제 가격은 올 여름 이후 다시 우상향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비료용 요소 수입 단가(t당)는 지난 7월 387달러에서 9월 409달러로 올랐다. 국제 곡물 시장도 비슷한 흐름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 10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0.6으로 전월(121.3)보다 0.5% 내렸지만, 여전히 평균 가격(2014∼2016년 평균값 100)을 크게 웃돈다. 환율 상승도 농가 생산비용 측면에서 악재다. 2021년 8월 평균 1123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은 올해 8월 1310원까지 올랐다. 유찬희 농촌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국제유가가 등락을 반복하고 있지만 (전기요금과 면세유값 등과 같은) 영농광열비와 비료비의 고공행진은 계속되고 있다”며 “지난해 농업소득의 기저효과로 올해 소득이 높아 보일 수는 있지만, 농업소득이 (평년 수준을 회복할 만큼) 충분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 관계자들이 지난 8월 28일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며 충남 예산군 예산읍 궁평리 한 논콩밭을 갈아엎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 원자재 가격 전망은 향후 국제 원자재 시장 전망은 어떨까. 국제유가의 경우 지난 9월 월평균 93.25달러(두바이유·1배럴당)에서 10월 3.8% 하락한 89.75달러로 최근 주춤한 흐름이지만, 변수가 많아 추이를 예단하기 힘든 분위기다. 우선 주요 산유국들의 추가 감산 여부가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11월 20일(현지시간) CNBC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최소 연말까지 석유 감산과 공급 감축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는 유가 하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하루 원유 생산량을 1200만 배럴에서 900만 배럴로 줄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회원국들도 추가 감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주목할 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양상이다. 이란 참전 등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산업연구원이 11월 8일 발간한 ‘이·팔 전쟁으로 인한 유가 변동 가능성과 국내 산업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는 전쟁 양상에 따른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먼저 가자지구 내에서 전쟁이 심화하다 종료되는 경우, 국제유가가 1배럴당 최소 3달러 이상 상승할 것으로 봤다. 전쟁 당사국들이 원유 생산국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유가 변동에 미치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레바논과 시리아가 전쟁에 가담하는 경우인데, 이때는 8달러에서 최대 31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봤다. 마지막은 전면전 시나리오인데, 이 경우 국제유가는 150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올 1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대중동 원유 수입 비중은 70.2%로, 어떤 상황이 됐건 국내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국제유가 전망치를 올려잡았다. KDI는 11월 9일 발표한 ‘2023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년 국제유가 전망치를 기존(8월 전망치) 1배럴당 75달러에서 85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국제 곡물 가격 불확실성도 크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발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올해 1월 130.2에서 꾸준히 하락해 지난 10월 120.6까지 내려왔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21년 기준으로 각각 세계 1위, 5위의 밀 수출국이다. 11월 22일 농촌경제연구원은 해외 곡물 동향에서 “소위 인도주의적 회랑을 통한 운송 재개에도 불구하고 수출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으로 밀 시장은 계속해서 혼란을 겪고 있다”며 “올해 우크라이나의 밀 생산량은 전쟁 전 수준보다 35% 적었으며, 2024년에 (생산량이) 반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곡물시장 악재는 또 있다. 밀과 쌀을 세계에서 각각 두 번째로 많이 생산하는 인도가 오는 12월 말 종료될 예정인 곡물 무료제공 프로그램을 5년 더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프로그램은 8억여 국민에게 매월 밀이나 쌀 5㎏을 무료로 제공하는 정책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선 밀과 쌀을 농민들에게 사들여야 한다. 자국 내 원활한 공급과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환으로 취한 곡물 수출 제한 조치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5월 밀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올 7월부턴 쌀 수출도 금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10일 경기 수원 팔달구 서호 잔디광장에서 열린 제28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예산 확보와 신재생에너지 활용 중요” ‘국제유가 상승이 농가 생산비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분석도 최근 나왔다. 농촌경제연구원이 11월 15일 세계은행(WB) 분석 결과를 토대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농가 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한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 한국 농업 부문에는 어떤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다. 보고서는 전쟁이 1973년 중동 석유 수출 제한 사태처럼 확산할 경우, 올 4분기 비료비 지수가 (당초 WB가 전망한) 베이스라인보다 3.7~4.9%, 영농광열비 지수는 35.8~47.9% 각각 상승할 것으로 봤다. 특히 이로 인한 내년 농업소득은 베이스라인보다 4.2~5.6%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농가는 농작물 생육 조건을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유가가 올라도 단기간에 유류 사용량을 줄이는 일이 적다”면서 “유가가 계속 일정 수준 이상 인상된다면 일부 농가가 경작을 포기하거나 재배면적을 줄이면서 생산량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적었다. 국제 곡물 가격은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여전히 평균 대비 고점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농가의 사료비 부담도 줄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배합사료 평균 가격은 1㎏당 2020년 479원에서 올해 8월 672원 수준까지 올랐다. 농민단체들은 사료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그간의 생산비 부담 누적과 가축 사육 기간(한우 30개월·육우 22개월)을 고려할 때 축산농가의 경영 여건이 당장 호전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호소한다. 농민단체들은 특히 내년 예산의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예산안 규모가 생산비 부담이 커지고 있는 농촌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무기질비료 가격 보조 및 수급 안정 예산이다. 올해 1000억원인 무기질비료 가격 보조 예산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정부안에서 전액 삭감됐다. 사업은 무기질비료 가격 인상분의 80%를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기재부는 국제 비료 가격이 최정점을 보였던 2021년 8월과 비교해 올 5~6월엔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며, 내년 예산을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중국에서의 요소 수입이 원활하지 않고 국제 원자재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올 7월 이후 요소 수입 단가가 크게 올랐다. 비료 가격은 운송비와 인건비 상승, 환율 상승 등 영향으로 여전히 고점을 유지하고 있다. 농가 생산비 부담을 덜 수 있도록 국회와 기재부를 설득해 관련 예산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1일 소 바이러스성 질병인 럼피스킨병이 발생한 경기 평택시의 한 젖소 농가에서 관계자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국회 농해수위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무기질비료 가격보조 예산을 576억8100만원으로 다시 증액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등 농민단체들이 정부의 예산안 제출 이후 요구한 농사용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차액 보전 예산(519억2000만원), 농업용 면세유 인상액 차액 지원 예산(653억7200만원) 등도 신규 편성됐다. 다만 최종 예산 규모는 기재부와 협의를 거쳐 확정된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기관이 내년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한다. 무기질 비료만 보더라도 원료는 전량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원자재 가격 변화에 민감하다. 무기질비료 가격 보조를 포함한 전기요금 인상 가격 보전, 면세유 인상액 차액 지원 등은 농가 생산비 부담을 줄여주는 대표적인 농가 경영 지원 예산이다.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이런 예산들이 내년도 본예산에 포함돼야 한다. 그래야 돌발변수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지원이 가능하고 농가 경영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농가 경영 안정을 위한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김태후 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농가 생산비 부담 상승의 원인, 즉 국제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 확대와 환율 상승과 같은 국제 변수는 정부 입장에서도 사실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기가 어렵다. 당장은 무기질비료, 면세유, 전기요금 등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미봉책에 가깝다. 농가가 에너지 절감 기술을 수용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절감 노력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전기료를 보조해주는 방식 등이다. 또 신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목재 펠릿을 활용하거나 가축분뇨를 이용한 바이오가스를 생산해 인근 농가 시설에 전기를 보내는 방식이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요동치더라도 충격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레이디경향(총 2 건 검색)

그날 이후 240일, 세월호 유가족의 목소리
그날 이후 240일, 세월호 유가족의 목소리
2015. 01. 22 14:10 화제
2014년 4월 18일 금요일은 아이들이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유가족들은 오늘도 사고가 난 그날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말한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금요일이 진짜 오기를 함께 기다려달라고. 안 산 단원고 2학년 6반 신호성군의 엄마 정부자씨는 아들의 시가 지면에 실리길 원했다. 장래희망이 국어 선생님이었던 호성군은 책을 좋아했다. 엄마는 아들이 떠난 뒤에야 비로소 아들의 시를 읽었다. 그리고 아들의 시를 어느 책에라도 싣고 싶었다. 아들에게 작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책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였어요. 호성이 어머님이 연락하셨더라고요. 호성이가 쓴 시가 있는데 책에 실어줄 수 있냐고요. 어머님께 시를 받고 펑펑 울었어요. 밑동만 남은 나무는 어머님 같고, 베어진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건 호성이 같아서요.” 호성군의 시를 소개하는 김순천 작가의 옆에서 정부자씨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시는 놀랍도록 세월호 참사 상황과 맞아떨어졌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했던 것처럼. 잘 자라던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자는 누구일까.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일까. 공식 인터뷰집, 진상 규명 위한 중요한 자료 지난 1월 13일에 출간된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저, 창비)은 유가족들의 증언과 고백을 모아낸 가족대책위 차원의 공식 인터뷰집이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대표 김순천)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그해 12월까지 단원고 희생 학생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하며 그중 부모 13명을 인터뷰해 책을 펴냈다. “워낙 큰 사건이기 때문에 작가 한두 명이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어요. 영상팀과 사진팀, 구술과 기록 관리를 위한 학자팀이 모여서 함께 시민기록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그 안에 작가기록단을 꾸렸고요. 이 책은 작가기록단이 마무리한 첫 번째 작업물입니다.” 작가기록단은 인터뷰를 하고 글을 정리했다.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윤태호, 유승하, 최호철, 손문상, 조남준, 홍승우, 마영신, 김보통 8명의 만화가가 총 13편의 삽화와 표지화를 그렸다. 특히 드라마 ‘미생’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윤태호 작가는 살인적인 스케줄 가운데서도 책의 삽화를 요청받자 “이런 일에 나를 잊지 않고 동참시켜줘 정말 고맙다”라며 흔쾌히 작업을 해줬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책은 무엇일까. 책을 펴자마자 눈물짓게 되는 책? 다 읽고 나서는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책? 만약 그렇다면 유가족들의 생생한 증언과 고백, 4월 16일에 멈춰버린 시간의 기억을 담은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책이다. 첫 줄을 읽기가 무섭게 눈시울이 젖어든다. 어떤 부분에선 한 줄 한 줄 읽어가기 어려울 만큼 목이 멘다. 큰 슬픔과 마주하기 두려워 “이제 그만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 기록집을 낸 것일까. “이 책은 그간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지 못한 유가족들의 애타는 마음, 힘없는 개인이 느끼는 국가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사건 이후 대다수 가족이 시달리고 있는 트라우마 등이 고스란히 담긴 중요한 기록이에요. 9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건 당일의 일분일초를 또렷하게 기억해내는 부모들의 기억이 재구성됐다는 점에서 아주 신뢰할 만한 증언록이 될 거예요.” 첫 번째 공식 인터뷰집이란 의미를 가지는 이 책은 진상을 규명하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김 작가는 말했다. 눈물바람으로 눈의 부기가 가라앉을 새가 없었던 정부자씨는 책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제목을 정한 사람이 미웠다”라고 했다. 제목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괜히 미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금요일은 아이들이 돌아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한다. 무척이나 잔인한, 그러나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유가족들에게 금요일은 여전히 놓을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특별한 어느 날이다. 다시 한번 금요일이 왔으면… “알아요.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금요일은 영영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그래도요. 그래도 꼭 한 번 다시 금요일이 왔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이 오지 않더라도… 부모들이 아이들을 만나러 갈 수 있는 금요일이라도 말이에요. 그냥, 지금은 그래요. 진상 규명이라도 제대로 되는 것. 그게 지금 우리 부모들이 바랄 수 있는 유일한 금요일이지 않을까 해요.” 정부자씨는 자신은 그저 내 아이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싶은 엄마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처한 상황이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삶이 무척 낯설다고 했다. 기자간담회 중 마이크가 전해졌을 때도 “헐벗은 느낌이다”라고 했다. 많이 배운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아닌 자신이 왜 생판 모르는 기자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해야만 하는지 좀처럼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간담회 시작 전부터 단상 앞에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던 정씨는 간담회 내내 그리고 끝나고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이 낯선 곳에서 왜 내가 이러고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만 든다고 했다.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가 우리 빌라 반장이라 집집마다 관리비를 걷으러 돌아다녔어요. 그때마다 호성이가 뒤에서 손전등을 비춰주며 같이 다녀줬어요. ‘엄마, 엄마. 조심, 조심’ 이러면서요. 사고 난 뒤 동네 사람들이 저를 보면 ‘뒤에서 불 비춰주던 걔야?’ 그러면서 제 손을 잡고 엉엉 울어요. 대화 자체가 안 돼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관리비도 못 걷어요.” 호성이는 엄마를 무척이나 아끼는 살가운 아들이었다. 그래서 정부자씨는 더욱 아들의 빈자리가 힘들다. 누군가는 이런 그녀를 보고 “호성이 엄마는 호성이 가고 나서 만능이 됐다”라고 했단다.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멍하니 있으면 “엄마, 뭐 해?”라고 말하는 호성이 목소리가 들린단다. 그러면 분향소든 어디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돌아다닌다. 책에 대한 소감도 결국은 “진실을 밝혀달라”라는 간곡한 청을 한 번 더 하는 의미다. 사정하고, 울고, 떼쓰면 진실을 밝혀줄 줄 알았단다. 또 당연히 밝혀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왜 이런 거냐고 정부자씨는 반문한다. 이게 사는 거냐고 한탄한다. 이건 사람 사는 데가 아니라고 발을 동동 구른다. “안산의 곳곳, 분향소, 팽목항, 광화문, 국회, 청운동에서 유가족들을 만났어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했어요. 304명이면 304개의 고통이 존재했죠. 우리 사회가 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무엇을 빼앗아갔는지 분명히 알아야 해요. 책 작업을 한 작가로 느낀 것은… 이 작업을 하면 할수록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란 거예요. 누구나 유가족이 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이 책은 유가족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김 작가는 평범한 유가족들이 얼마나 잘 견디며 싸워왔는지에 대한 삶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인터뷰라고 했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유가족들을 이 책을 통해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유가족의 아픔이야 가늠할 수조차 없지만 그들과 밀착해 지내면서 그들의 말을 생생히 듣고 기록한 작가들의 아픔도 만만찮았을 것 같았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선뜻 내가 하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일이었으리라. 안산에 살고 있던 김 작가가 이 기록 작업을 하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필연 같은 것이었다. “주요 희생 지역이 안산시 선부동, 와동, 고잔동이에요. 선부동에서 70명, 와동에서 69명, 고잔동에서 83명이 희생됐어요. 제가 살고 있는 선부동의 아파트에서만 15명의 아이가 희생됐어요. 고통의 한가운데 있었죠. 거리를 무시하지 못하겠더군요. 유가족과 인터뷰를 하고 오면 짧게는 하루 반나절, 길게는 며칠씩 앓아누웠어요. 다른 작가들도요.”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치를 꿈꾸다 공황장애로 집 안에서만 생활해온 김건우군의 엄마는 이제 광화문 천막을 지키며 아들을 위해 싸운다. 신승희양의 언니는 매일 밤 거인이 돼 배를 건져내는 꿈을 꾼다. 그러면서 차도에 뛰어들면, 아파트 위에서 뛰어내리면 금방 죽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바보 같다고 탓한다. 수학여행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굳이 떠밀어 보내곤 떨쳐내지 못하는 죄스러움에 몸부림치는 엄마도 유가족 부모들과 모임을 만들어 삶을 추스르려 한다. 암 말기에 접어들어 어떤 활동에도 나서지 못하는 한 어머니가 다른 유가족들에게 미안해하는 이야기도 담겼다. 304명이면 304개의 고통이 존재한다고 했던가. 304개의 고통을 전부 알진 못하더라도 책에 담긴 13명의 고통을 통해 조금이나마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책에 소개된 열세 분의 이야기는 우연과 우연이 쌓인 결과입니다. 어떤 분은 지면의 제약으로, 어떤 분은 자식 얘길 하는 게 사무치도록 아파 차마 인터뷰를 할 수 없어서, 한창 거리로 나갈 때는 시간이 없어서, 반대로 열심히 활동을 못하시는 분은 자격이 없다고, 또 어떤 분은 자신의 얼굴이 너무 알려졌다며 거절하셨어요. 매번 상황이 급변했죠. 평범한 시민이 어떻게 유가족이 될 수 있는지 정말 생생히 봤습니다.” 인터뷰의 끝은 결국 “진실을 밝혀달라”라는 울음 섞인 간절한 청이었다. 분향소로, 팽목항으로, 광화문으로, 국회로, 청운동으로 바쁘게 다니는 것도 진실 때문이다. 그렇게 길을 누빈 것처럼, 그렇게 책을 만든 것도 진실 때문이다. 아이를 먼저 보낸 엄마들은 가방에 약 한 보따리씩 싸서 갖고 다닌 지 오래다. 심리치료는 언감생심이고, 병원에도 가지 않는다. 입원하라는 말을 들을까 봐서다. 지금은 병원에 누워 있을 때가 아니다. 최근 생존 여학생 1명이 자살을 시도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생존 학생들 중 의사들이 장담할 정도로 경과가 좋은 학생이었다. 그런 아이가 죽고자 마음을 먹었다. 병원에서 눈은 떴지만 입은 닫았던 아이가 며칠 만에 말을 건넨 이는 죽은 단짝의 오빠였다. “그 아이는 ‘내가 죽으면 다시 어른들이 반성하고 진상을 규명해줄 것 같아’ 죽으려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하고 일상으로 가장 돌아가고 싶은 건 우리예요. 하지만 보세요.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살아 있는 아이조차 일상으로 돌아가 잘 살지 못해요. 죽은 아이, 산 아이 모두를 위해 우리는 멈출 수 없어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두 번 세 번 죽일 만큼 아픈 말들과 서러운 오해들이 세상을 메우고 있다. 그런데 직접 만난 유가족들은 오로지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은 다시 누릴 수 없는 사치가 돼버렸다는 사실을. 그래도 꿈꾼다. 오늘 울고, 내일 다시 일어서서 진실을 밝히려 한다면 그 사치를 한 번쯤은, 하루쯤은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낯선 장소에 부은 눈을 감추지 못하고 간다. 가서 말한다. 진실을 밝혀달라고. Mini Interview “유가족 기록, 고통의 언어이지만…진짜 사랑의 언어이기도 해요” 김순천(작가·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대표) 언론을 통해 유가족을 보는 국민과는 달리 유가족과 밀착돼 지냈다. 기록단으로서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유가족의 모습은 어떠했나? 교황이 방문하기 전날이었다. 광화문에서 같이 밤을 새우는데… 예슬이 엄마가 ‘거위의 꿈’을 틀어놓았다. 노래가 흐르는데 갑자기 예슬 엄마가 “예슬아, 보고 싶다!” 하고 소리를 지르더라. 차마 책에 다 담지 못한, 세상에 알리지 못한 이런 유가족의 모습들이 무척 많다. 뉴스나 신문에 유가족이 화내고, 소리 지르고, 어떨 땐 싸움도 하는 모습이 보이니까 그들이 별난 사람들인 줄 안다. 하지만 옆에서 본 유가족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어떤 모습이었냐는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를 만큼 말이다. 유가족에 대한 오해도 있는 게 사실이다. 세상의 오해가 안타까울 것 같다. 많다. 정말 무척이나 많다. 그중 가장 세상이 미울 만큼 안타깝고 속상한 게 보상금과 관련된 얘기다. 보상금을 받았다, 몇 억을 받았다 등등 온갖 억측이 많다. 하지만 지금 유가족이 받은 돈은 누구나 여행 갈 때 의무적으로 드는 여행자보험 보상금 그거 하나다. 그나마도 타가지 않은 분이 더 많다. 그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아이들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데, 사망신고를 안 한 거다. 아니 못하고 있는 거다. 하고 싶지 않으신 거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말이다. 정말 이분들은 돈 생각 안 한다. 생각해봐라. 세상천지에 자식 목숨하고 돈하고 바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자꾸 돈과 결부시키는 세상의 시선이 참 잔인하다. 보상금 문제는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지? 앞서 말한 여행자보험, 일반인까지 다 가입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부모님들이 받은 보상금은 없다. 그리고 그런 말은 아예 꺼내지도 말라신다. 오해를 받으니까. 우리 사회는 현재 진실 규명을 해달라는 유가족의 청을 보상 문제로 바라본다. 책에 싣지 못했지만 꼭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직도 바닷속에서 나오지 못한 허다윤양의 이야기다.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양요섭을 좋아해서 부족한 용돈을 쪼개고 모아 잡지에 실린 그 가수의 브로마이드를 다 모아놨더라. 그 아이가 아직 못 나오고 있다. 지금 진도에 가면 바지선까지 다 철수했고 작은 부표 하나만 떠 있다. 다윤이 엄마는 그 차가운 바닷속에 자기 딸이 있다는 걸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신다. 많이 괴로워하고 방황하고 계신다. 어떤 때는 당신도 모르게 밖으로 돌아다니시고 그런다. 유가족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로는 무엇이 있을까? 마음은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몰라 못하는 분들도 많다. 10반 주희양 어머님을 인터뷰할 때였다. 사람들이 욕하고 비난하는 게 힘들지 않으시냐 물었더니, 언젠가 여수 간담회 자리에 갔을 적 이야기를 하시더라.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자기 밭에서 딴 옥수수를 한 바구니 삶아 와서는 안겨주시는데, 바로 삶아서 가져오셨는지 옥수수가 뜨끈뜨끈하더란다. 이후 사람들이 공격할 때, 이상하게 할머니의 옥수수가 생각나신다고 했다. 뜨끈뜨끈하던 그 옥수수가, 그 온기가. 주희양 어머님은 그걸 사랑이라고 표현하셨다. 유가족을 살린 것도, 내동댕이친 것도 국민이다. 할머니와 같은 심정, 함께 있어주려는 것, 분향소라도 한 번 찾아주는 것과 같은, 정말 잊지 않아주려는 마음이 유가족에겐 큰 힘이 된다. 책이 드디어 발간됐다. 작가로서 소망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위험 사회다.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 유가족이 될 수 있다. 남의 일이 아닌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유가족뿐 아니라 희생된 학생들, 일반인 분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함께 멈춰서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 책은 고통의 언어로 쓰인 동시에 진짜 사랑의 언어이기도 하다. 나무 -신호성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곳 식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 이 작은 나무에서 누군가는 울고 웃었을 나무 이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나무꾼은 누구인가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 밑동만 남은 나무는 물을 주어도 햇빛을 주어도 소용이 없다 추억을 지키고 싶다면 나무를 끌어안고 봐보아라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김성구, 경향신문 포토뱅크>
자살 시도자와 유가족들의 마음 쉼터…연희동 정진씨네
2012. 12. 11 16:11 화제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들 때가 있어요. 한 번쯤은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하죠.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녀는 말했다. 누가 어떻게 죽으려 했는지가 아닌, 어떻게 살려 했는지에 대해 나누고 싶다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녀가 만난 우리 이웃과 가족 그리고 소중한 생명들에 관한 것이다. 서울 연희동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하얀색 이층집. 울창한 소나무 숲 옆으로 작은 정원을 둔 그녀의 집은 계절을 피해가는 듯 초록과 온기로 가득하다. 정진씨(55)네를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연희동 언덕배기의 소나무 숲이 민간에 매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울시에 탄원서를 내고 숲을 돌본 소나무 숲 지킴이로 그녀를 만난 것이 2010년 초였으니, 2년 반 만이었다. 숲을 돌보던 그녀는 이제 자살자 유가족과 자살 시도자 그리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소나무 숲 옆 이층집은 마음 쉼터 ‘위드하우스’라는 이름을 달았다. “가까운 지인이 10년에 걸쳐서 10회 정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어요. 먼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인데 그 친구를 도우러 제가 다섯 차례 정도 찾아갔었죠. 아무리 먼 길을 찾아가 달래고 위로해도 한번 먹은 마음이 쉽게 고쳐지지 않더군요. 한 번 잠적하면 몇 날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주위 사람들을 애태우곤 했는데, 어느 날 제가 힘든 일을 겪고 그 친구 응답기에 정말 힘들다, 살기 싫다고 메시지를 남긴 적이 있어요. 전화를 3백 통 해도 답이 없던 친구가 바로 전화를 하더라고요. 자기를 생각해서라도 죽지 말라고. 저한테 힘이 돼주고 싶었던 거예요.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그날, 살기로 마음먹었대요.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나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죽지 못해요. 자신의 존재를 찾지 못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며 상처를 어루만져줄 쉼터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먼 곳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조용한 주택가,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울창해지는 소나무 숲이 있는 곳. 그녀는 가족의 생활공간을 1층으로 옮기고 볕이 잘 드는 2층을 쉼터로 꾸몄다. 쉼터가 생긴 지 2년, 지금까지 50여 명의 자살자 유가족과 자살 시도자 그리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자살 사고(思考)자들이 위드하우스를 다녀갔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더 큰 아픔 안고 사는 자살자 유가족들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부에서는 근본적인 처방과 치유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자살자 유가족들에 대한 상담과 치유 시설은 매우 미비한 상태. 사랑하는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가족들에게 큰 충격과 씻기 어려운 상처로 남는다. 그녀는 남겨진 가족들을 눈여겨봤다. “자살자 가족들이 겪는 아픔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예요.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죠.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질 수 있고 심각한 경우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쉼터를 마련하고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살자 유가족들을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짧은 한마디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을 안고 그녀 역시 눈물을 쏟았다. “대부분의 자살자 유가족들은 수치심과 죄의식, 자괴감에 빠져 있어요. 가족을 떠나보낸 것이 자신의 탓인 듯 괴로워하죠. 처음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한들 그분들께 위로가 될까 싶었는데,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짧은 위로에 큰 안도를 하시더라고요. 한 사람의 생명이 다한 것은 내 탓도 아니고 그 사람의 탓도 아니라고, 그저 그의 운명이 다한 것뿐이라고 말씀드리죠.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떠나간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몫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요.” 한번은 자신의 집을 찾아와 목숨을 끊은 형제 때문에 괴로워하는 유가족을 만난 적이 있다. 집에 돌아가기 힘들어하는 그에게 그녀가 해준 말은 “형제분이 죽기 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한 것이 아니었을까요?”였다. 원망으로 가득 찼던 그의 마음에 용서를 싹트게 한 한마디였다. 이제 그는 죽은 형을 생각할 때마다 ‘마지막으로 날 보고 가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한단다. 딸 세은양과 함께. 마음 쉼터를 운영하며 그녀는 가족과의 관계도 다시 돌아보게 됐다. “함께 지내던 이가 목숨을 끊은 경우 가족들에게 집은 돌아가기 힘든 곳이 돼요. 떠나간 이와 자신을 용서하고 관점을 바꾸지 않는 한 두려울 수밖에 없는 곳이죠. 그런 분들에게 쉼터는 집이 되어드려요. 오셔서 함께 지내시거나 잠시 들렀다 가시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그만큼 자살자 유가족으로서 아픔을 털어놓을 공간과 따뜻한 위로가 절실하다는 거겠죠.” 자살자를 비난하는 사회의 이목도 떠나간 사람과 떠나려 한 사람, 남겨진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얼마나 독하기에” 혹은 “얼마나 나약하기에.” 누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지만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결코 독하거나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에 기댈 곳이 없었을 뿐이다. “어느 날 한 어머니가 딸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어요. 딸은 2년 사이 너댓 번 자살을 시도했었고, 문자에는 ‘이제 끝을 내야겠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담겨 있었죠. 딸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는 노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끊임없이 ‘사랑한다’라는 문자를 보내는 일뿐이었어요. 사랑한다 얘야, 집에 오너라,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죽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그깟 문자에 마음을 돌릴까 싶지만, 사람이 말이에요. 마지막 순간을 코앞에 두었을 때 그래도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까 확인하게 돼요. 누군가 자신을 붙잡아주기를,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붙잡는 사람이 있으면 사는 거고 없으면 죽는 거예요. 우리는 그들을, 우리 가족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붙잡아야 해요.” 결국 딸은 어머니의 문자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작은 한마디와 위로가 누군가를 살게 한다면 그리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이제 ‘얼마나 아팠기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요즘 사람들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잖아요. 아무리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식으로 반응하면 그 사람 잃을 수도 있어요. 그러고 나서 후회하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그때 그 한마디를 귀담아들을 걸, 가슴 치며 울어봐도 되돌아갈 수 없죠. 나는 너무 힘든데 눈여겨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가는 거예요. 단 한 명만이라도 내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 한 사람이 눈에 밟혀서라도 삶을 놓지 못해요. 그 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 그리고 잊고 있던 가족과 만나게 하는 게 쉼터가 하는 일이에요.” 일상에 감사하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삶 현재 위드하우스에는 두 명의 쉼터 식구가 함께하고 있다. 쉼터 식구들을 돌보는 일부터 자살자 유족들을 찾아가는 일, 찾아오는 가족들을 상담하고 집으로 돌아간 식구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살피는 일까지 모두 그녀의 일이다. 소액의 후원금으로 쉼터를 운영하며 무보수로 밤낮없이 일하고 있지만 그녀는 그마저도 모자라다고 느낀다. 자살자 유가족과 시도자들이 와서 거주할 수 있는 쉼터가 있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혼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한다. 요즘은 딸과 함께 트위터로 쉼터 소식을 전하고 있는 중이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런 경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쉼터에서 정신적인 안정을 찾았다 하더라도 언젠가 또다시 같은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죠. 최소한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현재로선 쉽지 않아요. 후원자를 모집할 수 있는 건강한 방법을 모색 중이에요.” 쉼터를 찾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다. 자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 하지만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구분이 없다. 남자, 여자, 청년, 노인, 가진 자, 못 가진 자. 누군가의 소개나 부탁으로 오는 사람도 있고 저 멀리 땅끝에서 알음알음 물어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모두 어떻게든 살려고 오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이 쉼터에서 쉴 수 있는지 묻는다면 그녀의 대답은 ‘모두’이다. “자살예방센터는 많은데 자살과 관련해 이러한 다양성을 가진 쉼터는 아마 이곳이 유일할 거예요. 기관에서 운영하는 센터들의 경우 문 여는 시간과 문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살피기가 쉽지 않거든요. 쉼터는 생활을 함께하는 곳이다 보니 직접적으로 접촉하며 보다 깊은 교감을 만들어나갈 수 있죠.” 아침 7시 기상. 쉼터의 하루는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식사를 마치면 설거지와 청소를 한다. 쉼터에서는 모든 것이 ‘함께’다. 아침 청소가 끝나면 집 뒤에 있는 텃밭에서 고구마며 배추며 상에 올릴 푸성귀들을 일구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따뜻한 햇살 아래 타박타박 서로의 발소리를 들으며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와 오후가 되면 독서와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해 질 무렵 갖는 감사 시간은 쉼터 생활에서의 중요한 일과다. “하루에 세 가지씩 오늘 하루 감사했던 일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에요. 처음 쉼터에 오신 분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시간이기도 해요. 매일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무언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죠. 한번은 쉼터에 오신 50대 아버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평생 힘들게 살다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떨어져서 죽을 생각까지 한 사람인데 어떻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냐고요. 이렇게 힘든 인생 도대체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먼 지방에서 이곳까지 사고 없이 안전하게 오셨잖아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시작해요.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찾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거예요.” 회복의 열쇠, 가족 하루에 세 개씩,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조금씩 감사하는 것이 쌓인다. 중요한 것은 날이 갈수록 고마움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떠 밝은 태양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는 것에 감사, 따뜻한 잠자리에서 잠들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한다. 그동안 무의미했던 일상의 작은 부분들이 하나 둘 의미를 찾기 시작하고,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때문에 늘 힘들어했던 아침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매일의 축복이 된다. 단조로워 보이는 쉼터의 하루지만 한 가지 규칙이 있다. 쉼터에서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한 시간 이상 누워 있을 수 없다. 쉼터 식구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활동한다. 매일 노동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 쉼터 지킴이로서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한 청년이 왔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살 생각밖에 없었어요.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나 죽을 거예요’라는 말을 하루 종일 하던 친구였죠. 그런데 쉼터에서는 매일 다 같이 명상하고 책 읽고 산책하고, 죽겠다 생각할 여지를 안 주거든요. 2주 정도 지나니까 그 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제가 동네에 작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줬는데 폐를 끼치는 것 같다며 3일 만에 그만두겠다고 하더군요. 전에도 일을 해보려 하다 하루 만에 그만둔 적이 있었대요. 제가 ‘이번엔 3일이나 했네’라고 칭찬을 해줬어요. 나중에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그때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무척 감사했다고요.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나 하잘것없다고 생각해왔는데 그 부분을 인정받으니 온몸에 피가 도는 것 같았대요. 작은 성취를 객관적으로 인정해주는 게 중요해요. 누군가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다시 한번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일이에요.” 쉼터에 온 식구들이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면 그녀는 어느 시점에서 가족을 부를까 생각한다. 회복의 열쇠를 쥔 것은 결국은 가족이라는 것. 그녀가 많은 자살 시도자들을 만나며 얻은 결론이다. “죽을 만큼 힘든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던 가족이 온 힘을 다해 마음을 던지는 걸 보고 멈추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더 무심할 수 있는 것이 가족이거든요. 자신의 고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아파해주는 가족이 있으면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하지 않아요. 지금 곁에 있는 딸과 아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귀담아들으세요. 한 번 더 눈 맞추고 한 번 더 안아주세요.” 쉼터를 떠난 이들은 이제 또 다른 생명을 북돋운다. 그렇게 누군가의 단 한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녀의 마당에는 사시사철 봄처럼, 매일 새로운 생명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마음 쉼터 위드하우스에 도움을 주시고자 하는 분들은 후원 계좌(우리은행 1002 342 499854)와 문의 전화(02-6080-2450)를 통해 마음을 전해주세요. 트위터(www.twitter.com/cjin0109)를 통해서 위드하우스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상희>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