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48 건 검색)
- 습관·감정조절·인간관계까지…‘성장동반사’ 손에 크는 학생들
- 2024. 06. 03 21:11국제
- .... 아동 성장동반사는 중국에서 새로 등장한 직업이다. 학교 공부, 바른 생활습관 길들이기, 인간관계 코치뿐 아니라 부모에게 조언까지 한다. 아동이 유아인 경우 보모 역할도 추가된다. 또 다른 아동...
- 취업난·인간관계 어려움에…고립·은둔청년 52만명 육박
- 2023. 09. 19 21:20사회
- ... 조사 결과, 청년 인구 중 5% 추산…“탈고립 희망” 55% 취업 실패나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단절된 생활을 하는 ‘고립·은둔청년’이 약 51만6000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청년 인구의 5%에 해당한다....
- “나이 들수록 인간관계 넓히고 타인을 사랑해야 행복”…이시형·곤노 유리, ‘초고령 사회’ 주제 대담
- 2022. 12. 12 12:12사회
- ... 맺어놔야 합니다. 인생 말년에 고독만큼 무서운 병도 없습니다. 곤노 유리=그렇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서는 자신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제1의 인생은 졸업했다. 거기서 많은 경험을...
- 이시형박사국민의사곤노유리대표다이얼서비스초고령사회신인류신인간신인류가몰려온다혼전동고동거저출생문제손정의소프트뱅크
- 강연 듣고 웹툰 보며 우울·불안·인간관계 고민 털어보세요
- 2022. 10. 14 22:10건강
- ... 전문 의료인과 기관의 올바른 정보 서비스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선 우울과 불안, 인간관계 갈등과 스트레스로 지친 사람들이 정신건강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5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스포츠경향(총 26 건 검색)
- ‘손해 보기 싫어서’ 이상이 “인간관계에 명확한 ‘선’ 있다”
- 2024. 08. 19 16:00 연예
- 배우 이상이가 19일 오후 온라인 생중계 형식으로 공개된 tvN-티빙 공동기획 드라마 ‘손해 보기 싫어서’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tvN-티빙 tvN과 티빙의 공동기획 드라마 ‘손해 보기 싫어서’에 출연한 배우 이상이가 자신만의 ‘인간관계 선’에 대해 설명했다. 이상이는 19일 오후 온라인 생중계 형식으로 열린 ‘손해 보기 싫어서’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연출을 맡은 김정석 감독을 비롯해 주연배우 신민아, 김영대, 이상이, 한지현 등이 참석했다. 이상이는 극 중 교육기업 ‘꿀비교육’의 대표로 연애경험이 부족하고 연애도 하고 있지 않은 ‘비혼주의자’ 복규현을 연기한다. 그는 자신과 가치가 배치되는 웹소설 작가 연보라(한지현)를 만나 혐오를 드러내다 서서히 사랑에 젖어가는 인물을 연기한다. ‘손해 보기 싫어서’라는 제목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우들의 손익 분기점에 대한 질문도 오갔다. 이상이는 자신의 인간관계에서도 명확한 선이 있어, 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대한다고 말했다. 배우 이상이와 한지현이 19일 오후 온라인 생중계 형식으로 공개된 tvN-티빙 공동기획 드라마 ‘손해 보기 싫어서’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tvN-티빙 이상이는 “그 선의 전까지는 뭘해도, 심지어 제가 손해를 봐도 되는데 선을 넘는다고 생각하면 ‘그만’ ‘넌, 차단’이라고 말하게 된다”고 말했다. MC를 맡은 하지영이 “그런데 그 선의 범위가 굉장히 넓으신 거로 알려져 있다. 촬영현장에서도 주변을 많이 배려하신다고 들었는데”라고 묻자 “감사합니다. 이해해주셨네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손해 보기 싫어서’는 ‘술꾼도시여자들 시즌 1’과 ‘힘쎈 여자 강남순’ 등을 연출한 김정식 감독과 ‘그녀의 사생활’ 김혜영 작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손해 보기 싫어 결혼식을 올린 여자 손해영(신민아)과 피해 주기 싫어 가짜 신랑이 된 남자 김지욱(김영대)의 로맨스를 그렸다. tvN과 티빙의 첫 공동기획 작품으로 오는 26일부터 매주 월, 화요일 오후 8시50분 방송된다.
- 한선화, 시크릿 불화설 진짜였나…“가수 시절, 인간관계 힘들어” (궁금한선화)
- 2024. 08. 08 10:40 연예
- 유튜브 채널 ‘궁금한선화’ 가수 겸 배우 한선화가 가수 시절 인간관계가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7일 유튜브 채널 ‘궁금한선화’에는 ‘현실 로코퀸이 되기 위한 연애 필승 공략법 | 궁금한선화 EP.02’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이날 한선화는 작가 곽정은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한선화는 곽정은을 알게된 계기로 “‘마녀사냥’ 프로그램으로 많이 알고 계신데 저는 그런 채널은 많이 못 접했다”며 운을 뗐다. 유튜브 채널 ‘궁금한선화’ 이어 “제가 가수생활을 일찍 하지 않았나. 사람과의 관계도 힘들었고, 사랑도 힘들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도 힘들었고, 나의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시절을 보내서 답답하고 하면 안 어울리게 서점을 많이 다녔다”고 했다. 서점에서 곽정은의 책을 접하게 된 그는 책으로 사랑에 대한 위로를 받았다고. 한선화는 실제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꺼내며 “스물세살까지 엄마에게 상담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다른 거는 다 가르쳐 주시는데 연애만 안 가르쳐주시는 거다. 엄마가 ‘연애는 네가 겪고 깨져봐야 한다’고 하셨다”고 했다. 한편 한선화는 최근 시크릿 멤버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불화설에 휩싸인 바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 시크릿 데뷔 14주년 기념 회동에도 한선화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 에이핑크 윤보미 “대인기피증 온 적 있어…인간관계 지쳐”
- 2024. 06. 06 10:50 연예
- 유튜브 ‘효연의 레벨업’ 그룹 에이핑크 윤보미가 대인기피증을 고백했다. 5일 유튜브 채널 ‘효연의 레벨업’에는 “소녀시대가 너무 좋아 집에 안가는 에이핑크 보미 / 밥사효 EP.02”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에서 윤보미는 “일을 너무 오래 하다 보면 인간관계도 지치고, 상처를 많이 받을 때가 많아서 사람을 잘 안 믿게 되는 게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최근에 대인기피증이 심하게 온 적이 있다. 이런 걸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이에 효연은 “네가 얘기하는 걸 똑같이 나도 느낀다. 마음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네 느낌은 되게 편하다. 남을 편안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윤보미를 격려했다. 유튜브 ‘효연의 레벨업’ 또 윤보미는 드라마 ‘눈물의 여왕’ 나비서 연기를 위해 평소 자세부터 말투와 습관까지 바꾸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제가 항상 구부정한 자세를 잘하고 있는데 어깨를 피고 당당하게 있으라고 하더라. 그리고 평소 제 말투가 나오더라”라며 “이런 것들 때문에 초반에 많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감독님께서 칭찬을 한번 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펑펑 울었다. 그동안 열심히 하려고 했던게 그때 많이 터졌던 것 같다”라고 촬영 비하인드를 전해 눈길을 끌었다.
- ‘무엇이든 물어보살’ 21세 의뢰인 “권력욕·인간관계, 두 가지 다 잡고 싶어요”
- 2022. 03. 07 17:17 연예
- KBS조이 제공보살 서장훈과 이수근이 의뢰인의 권력 욕심에 당황한다. 7일 오후 8시 30분 방송되는 KBS조이 예능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 155회에서는 21세의 대학생 의뢰인이 출연한다. 의뢰인은 자신이 권력욕이 심하다고 털어놓는다. 늘 자신이 대표 자리를 맡아야 하고 다른 사람이 대표를 하면 그 자리를 뺏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고. 하지만 인간관계 또한 놓치고 싶지 않다며 보살 서장훈과 이수근에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구한다. 대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의뢰인은 지난해 1학년 과대표를 했었고, 이번엔 부학회장에 선출된 상태. 하지만 현재 학회장이 일을 잘 못한다면 끌어내릴 거라고 선포해 눈길을 끈다. 이에 이수근은 “이건 반란 아니냐”라며 놀라는데, 의뢰인은 “반란이 꼭 나쁜 게 아니다”라며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의뢰인은 미래의 시장과 당 대표를 꿈꾼다는 포부를 전하는 것은 물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쇼맨십을 보여줘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다. 결국 서장훈마저 “이게 요즘 MZ세대인가. 인물은 인물이다”라며 감탄한다. 이수근 역시 “시장 되면 꼭 이 영상 보내주겠다”라고 말했다고 해 과연 의뢰인이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 어떤 끼를 펼쳐냈을지 호기심을 부른다. 의뢰인의 당당한 매력이 펼쳐질 ‘무엇이든 물어보살’ 155회는 7일 밤 8시 30분 안방극장에 배송된다.
- KBS조이
주간경향(총 12 건 검색)
- [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 (25) 인간관계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2024. 12. 06 15:40)
- 2024. 12. 06 15:40 사회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한 농부들은 슬슬 가지치기를 준비한다. 나무가 햇빛을 고루 받아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말라죽거나 길게 늘어진 가지를 잘라내야 한다. 제멋대로 뻗어 나가 뒤엉킨 가지는 나무에도 스트레스여서 솎아내야 한다. 그래야 튼실하고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인간관계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가족이나 친구, 연인, 동료 등과 인연을 맺으며 새로운 가지를 뻗어 나간다. 이 가운데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만남도 있지만, 갈등하고 고통받는 만남도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법이니까. 그런데 살다 보면 가지를 쳐나가는 데만 관심을 가질 뿐, 쓸데없이 웃자란 관계를 쳐내는 데는 소홀하게 된다. 관계가 성장을 넘어 성숙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지치기가 필요한 데도 말이다. 물론 상급 학교에 진학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하면서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과 직장을 다니지 않거나 결혼하지 않은 사람과 자연스러운 가지치기가 일어나곤 한다. 인맥은 기회와 정보에 접근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관계의 힘으로 직장생활을 영위했다. 어딘가에 가 닿을 수 있었던 건 관계 덕분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추천하고 소개하고 발탁해줬다. 이뿐만 아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 내게 필요한 정보를 알려줬고, 내 부탁을 들어줘서 가능했다. 하지만 얕은 인맥은 아무리 쌓아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는 사람은 많으나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모아놓은 명함은 많지만 실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친구는 많지만 진정한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선택하고 집중해서 옥석을 가려야 한다. 우리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취사선택하거나 우선순위를 매기지 않고, 모든 사람과 고루 잘 지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다 보면 피로감이 쌓이게 마련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작 중요한 관계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투입하지 못한다. 산토끼를 쫓다가 집토끼마저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가지치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관계를 정리하는 나름의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첫째, 상대방과의 관계가 일방적이라면 하루빨리 정리하는 게 좋다. 관계는 상호적이어야 한다. 나는 그 사람과 친하다고 여기는데, 정작 그 사람은 나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이 필요할 때만 나를 찾고 내가 필요한 때는 만나주지 않는 관계는 끊는 게 맞다. 5 대 5의 관계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10 대 0이나 9 대 1의 일방적인 관계를 용인해선 안 된다. 이는 지배와 피지배 관계이기 때문이다. ⓒPixabay, Gerd Altmann 둘째, 내게는 잘해주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몰지각하고 몰염치한 사람과의 관계는 단절하는 게 좋다. 식당에 가서 종업원에게 함부로 하거나 새치기를 천연덕스럽게 하고, 길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게 좋다. 셋째, 믿을 수 없는 사람과의 관계도 정리 대상이다. 밥 먹듯이 약속을 어기고, 수시로 거짓말을 하며 상황을 모면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단절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내가 없는 데서 나를 험담할 사람이며, 언젠가 내 뒤통수를 치고 나를 배신할 사람이다. 이런 관계는 버림을 당하기 전에 먼저 버려야 한다. 넷째, 만나면 푸념과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 매사를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접근하고, 장점보다 단점만 보고 이루는 방법보다 안 되는 핑계만 찾는 사람과는 멀리하는 게 좋다. 이런 관계는 하등 보탬이 되지 않는다. 기가 빨릴 뿐이다. 만나고 나면 ‘왜 만났지?’ 하는 후회만 남는다. 다섯째, 감정적으로 상대를 조종하려는 사람과의 관계도 잘라내야 한다. ‘너 때문에 내가 힘들다’며 이유 없이 죄책감을 유발하거나, 지나친 집착으로 상대를 통제하려는 사람과의 관계는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에너지를 고갈시켜 십중팔구 상처만 남기고 끝나게 마련이다. 가지치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는 여럿이다. 가장 큰 이점은 정신적·정서적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중요한 관계에만 에너지를 쏟으면 정신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2018년 미국 심리학회(APA)는 “불필요하거나 부정적인 관계는 스트레스를 가중하고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관계의 가지치기는 나의 발전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줄이고, 나의 성장에 보탬이 되는 사람과의 연계와 결속을 강화함으로써 소모적 관계가 생산적인 관계로 바뀐다. 아내는 35년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좋은 점 하나를 꼽았다. 직장에 다니면서 맺었던 수많은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내는 직장을 그만둔 다음 날,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를 자신이 정한 기준으로 하나둘씩 지웠고, 그 지워진 개수만큼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3000개가 넘던 전화번호 목록이 스크롤 몇 번 내리면 끝날 정도로 단출해졌지만, 이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와 수많은 경조사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퇴직이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했다. 이렇게 개운할 줄 알았더라면 좀더 일찍 정리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도한 가지치기가 가져올 역효과는 분명히 있다. 갑자기 인간관계가 좁아져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고, 가지치기 과정에서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상처받을 수 있다. 어설픈 가지치기로 상대를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관계를 정리할 때 가급적 솔직하고 부드럽게 소통해야 하며, 소통의 빈도를 조금씩 줄여나가 상대가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해야 관계를 원만하게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시급히 정리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제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시간을 갖고 싶어’와 같이 눈치 보지 않고 단호하게 생각을 밝히는 게 좋다. 우리가 살면서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버리는 일일지 모른다. 버리는 건 늘 아쉽고 아깝다. 글을 쓸 때도 무언가를 더 넣으려 할 뿐, 빼는 데는 인색하다. 빠진 게 있는 글보다는 뺄 게 없는 글이 더 나은데 말이다. 이제 뺄 수 있는 건 다 빼면서 쓰려고 노력한다. 뺄 것을 과감하게 후려치는 짜릿함이 있다. 최대한 빼고 나면 남은 게 빛난다. 말도 그렇다. 나이를 먹을수록 말수를 줄여야 한다. 불필요한 말은 과감하게 솎아내야 한다. 버리는 걸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하물며 인간 사이의 관계쯤이야.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관계가 변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인생이 원치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흔들리지 않도록 불필요한 관계는 훌훌 털어내자.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 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1) 인간관계를 양적으로 환산할 수 있는가(2024. 05. 31 16:00)
- 2024. 05. 31 16:00 사회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결혼 축의금에 관한 사연이 SNS에 종종 보인다. 대부분 ‘축의금 3만원 한 친구와 손절해야 할까요?’ 따위의 내용이다. 액수에 대한 고민은 축의금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예전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축의금을 일종의 현금 교환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도움과 은혜 축의금이나 부조금의 기본 성격은 ‘돕는다’는 데 있다. 도움은 양적 교환이 아니다. 내가 같은 양의 대가를 돌려받을 생각으로 상대방을 돕는다면 애초에 도움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물론 그가 내게 무언가를 돌려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주었던 도움과 그가 돌려주는 것의 가치가 동일할 수는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움을 ‘돌려받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만일 그가 은혜를 갚기 위해 나를 도와준다면, 이는 받았던 도움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게 새로운 도움을 주는 것이다. 도움이나 은혜는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고, 이는 사라지지 않는 부채 관계를 남긴다. 이런 의미에서 ‘은혜를 갚는다’는 행위는 빌린 돈을 갚는 것과 근원적으로 다르다. 금전적 부채 관계는 돈을 갚으면 완전히 청산되지만, 은인에게 보답한다고 해서 받았던 은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은혜를 갚는 것은 부채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부채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즉 은인의 은인이 되기 위해서다. 이런 식으로 은혜를 주고받으며 청산 불가능한 부채 관계를 축적하는 것이 사회관계를 재생산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다. 축의금을 비롯한 전통적 상호부조도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마지막 화에서 주인공 이지안은 할머니의 장례식을 준비해준 박동훈의 친구들에게 “꼭 갚을게요”라고 말하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뭘 갚아요,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라고 타박한다. 이게 도움과 은혜의 논리다. “인생 깔끔하게 사는 것”, 즉 갚지 못할 것을 갚으려고 하는 시도는 오히려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선언이다. 갚아야 할 것이 계속 남아 있어야 참된 인간관계가 유지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묘사하는 과거는 순수한 도움의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이상적 공간이다. 첫 번째 화에 등장한 쌍문동 가족들의 반찬 나눔을 보자. 이는 물물교환이 아니라 끝없는 부채 관계의 재생산이고, 결국 반찬의 무한 순환에 이르게 된다.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인간관계의 기본 성격이 이 장면에 고스란히 압축돼 있다. 물론 양적 교환과 완전히 분리된 도움과 은혜는 현실에 존재하기 어렵다. 도움을 주면서 대가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흔히 부모는 대가 없는 사랑을 준다고 말하지만, 현실의 많은 부모가 보상을 기대한다. 그래서 자식의 인생에 개입하기도 하고,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현실의 사회관계는 다음의 두 가지 극단 사이 어딘가에서 형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는 대가 없는 순수한 도움이고, 둘째는 대가와 보상의 논리를 철저하게 따르는 양적 교환 관계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양적 교환이 지배하는 사회 법과 계약에 기초한 권리-의무 관계는 현대사회의 기본 형식과 조건을 규정하지만, 삶의 모든 영역을 직접 지배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것은 대부분 도움, 은혜, 호의, 친절 같은 비계약적 부채 관계이고, 이는 분명한 명시적 규칙이 아니라 느슨한 사회문화적 관습을 따른다. 가족, 친구, 연인, 직장, 공적 장소 등 영역과 공간에 따라 다양한 관습이 적용되고, 사람과 시기에 따라 관습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일상 관계의 갈등 대부분이 이런 느슨함에서 발생하지 않는가? 특히 나와 상대방이 관계를 다르게 이해할 때, 그래서 상대에게 기대한 것을 돌려받지 못할 때 관계는 절망의 장소가 된다. 아무리 느슨하다고 해도 관습적 규칙은 존재하고, 시기에 따라 특정한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한국사회는 앞서 말한 두 가지 극단 중 양적 교환 관계에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다. 관계의 가치를 양적으로 평가하고, 주고받는 것이 공평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예전 칼럼에서 다뤘던 노력과 공정에 대한 집착, 복수극을 향한 열광, 나의 불편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 등이 구체적 사례다. 공정이란 시험 점수에 대응하는 양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고, 복수는 죄와 죗값을 등가 교환하려는 시도다. ‘내가 준 것만큼 돌려받아야 한다’,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아야 한다’, ‘내가 잃은 만큼 상대방도 잃어야 한다’, ‘나만 손해 보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따위가 현 사회를 지배하는 논리 아닌가? 결혼식 축의금을 둘러싼 갈등에는 ‘내가 네 결혼식에 OO원을 냈으니 너도 비슷한 수준을 내야 한다’, ‘결혼식에 와서 OO원짜리 식사를 했으니 축의금도 그 정도는 내야 한다’ 따위의 생각이 개입돼 있다. 그런데 축의금은 애초에 전통적 가족 제도와 상부상조에 기초를 둔 관행이고, 이는 양적 교환이 아니라 대가 없는 도움의 논리를 상정한다. 축의금을 교환의 논리에 따라 주고받을 거라면, 차라리 결혼식 곗돈이나 제도화된 공동 기금을 만드는 편이 낫다. 도움의 논리에 따라 발명된 관행에 교환의 논리가 개입하면서 유치하고 민망한 갈등이 종종 발생한다. 물론 이런 상황의 원인 중 하나는 결혼식 자체의 상품화에 있을 것이다. 양적 교환과 대가 없는 도움은 사회관계의 여러 유형 중 일부이고, 이 두 가지가 복잡하게 중첩돼 현실의 관계를 구성한다. 순수한 도움의 논리만 따르는 인간은 복고 드라마 속에나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두 가지 유형 중 어느 쪽이 더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는 없다. 문제는 양적 교환이 모든 사회관계를 집어삼킬 때 발생한다. 지금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파괴적인 규칙, 즉 모든 관계를 양적 교환으로 환원하라는 규칙이다. 하지만 이런 규칙에 따라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관계란 기본적으로 질적인 것, 양적 가치로 온전히 환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에게 준 것과 그에게 받은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관습적 규칙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질적 비대칭성을 적절히 관리하는 데 있다. 양적 교환의 규칙은 비대칭성을 인정하지 않고, 관리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축의금에 관한 공통된 기준도 만들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적 사회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주는 것과 받는 것이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 자체를 유지하기 힘들다.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 [오십, 길을 묻다](45)당신의 가족관계·인간관계는 안녕한가요(2021. 06. 04 15:42)
- 2021. 06. 04 15:42 문화/과학
- “노년의 걱정거리/ 힘 좋은 어깨 위로 훌훌 털어 넘겨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죽음 향해 천천히/ 기어갈 결심을 굳혔노라.”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605년경 발표한 <리어왕>의 한 구절이다. 리어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했다. 리어는 딸들에게 왕국을 물려주고 100명의 기사와 딸들의 집을 돌아가며 살 작정이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한 나라의 왕이더라도 자식들에게만 기대서 편안한 노년을 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방백으로만 전달되는 리어의 비극은 진심에 대한 태만에서 비롯된다. 사진은 리어왕 퍼포먼스 스틸사진 / 국립극장 리어는 딸들에게 누가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지 묻는다. 그에 따라 상으로 영토를 내릴 작정이다. 첫째 딸 고너릴과 둘째 딸 리간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사랑을 호소한다. 리어는 셋째 딸 코딜리아에게도 사랑을 증명할 말을 요구한다. 코딜리아의 답은 없다는 거다. 코딜리아는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사랑하며 결혼 후 그 사랑을 남편과 나눌 거라는 진실밖에 내놓을 게 없다. 리어왕의 불행한 노년 리어는 코딜리아를 쫓아낸다. 다행히 구혼자 프랑스왕이 코딜리아와 함께 떠난다. 코딜리아의 진심은 방백을 통해 객석에만 전달된다. 코딜리아는 자신의 사랑이 입보다 무거우므로 침묵을 택하기로 했다는 거다. 리어는 말로 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진심을 알지 못한다. 코딜리아의 진심을 알아달라는 신하 켄트까지 추방해버린다. 리어의 비극은 여기서 비롯된다. 진심에 대한 태만이다. 공들여 상대방의 마음을 알려 하지 않는 리어와 진심이 있지만 말하지 않는 코딜리아가 맞부딪쳐 운명의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그 대가는 크다. 첫째 딸은 수행 기사를 줄여달라고 요구한다. 리어는 불같은 화를 낸 다음 둘째 딸에게 향한다. 둘째 딸은 언니에게 돌아갈 것에 더해 수행 기사를 더욱 줄이라고 요구한다. 리어는 두 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비로소 눈치챈다. 자식에게 배신당하는 인물은 또 있다. 글로스터 백작이다. 글로스터의 서자(庶子) 에드먼드는 가짜 편지로 적자(嫡子) 에드거를 모함한다. 글로스터는 격분하고 에드거를 찾아내라고 명령한다. 오십대에 읽는 <리어왕>은 젊었을 때와 많이 다르다. 쇠락해가는 노년의 음울함을 보여주려고 쓴 게 분명하다. 당시 셰익스피어는 40대였다. 평균수명도 짧을 때라 40대에 노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자연스럽다. 셰익스피어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일단 리어는 은퇴를 결심한 셈이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게 쉽지 않으니 왕의 자리를 넘기고 싶었다. 문제는 부와 권력이 있을 때는 진심이 필요 없지만, 부와 권력을 넘겨준 다음에는 진심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불행하게도 리어에겐 진심을 알아볼 능력이 없었다. 글로스터는 가짜 편지를 믿었다. 편지엔 아버지의 재산을 받을 수 없고, 아버지의 억압에 묶여 있으니 같이 아버지를 제거하자는 음모가 적혀 있었다. 글로스터는 에드거의 진심을 알아보지도 않고 에드먼드를 믿어버렸다. 진심을 읽는 데 글로스터 역시 실패한 셈이다. 민음사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온 리어나 자기 자리를 지키려던 글로스터 모두 불행한 노년을 맞는다. 옛날 옛적 어느 왕국의 일이니 오늘날과 같은 복지제도는 없다. 노년의 삶은 전적으로 가족의 돌봄에 달려 있다. 리어도 글로스터도 쇠락해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평생 가꾸어온 가족관계가 중요해진다. 리어는 가족에게 폭군처럼 굴었다. 효도 경쟁을 시키며 코딜리아를 쫓아낸 게 비극의 씨앗이었다. 글로스터 역시 혼외자식으로 에드먼드를 두었으니 비극의 씨앗을 스스로 키웠다. 다행히도 코딜리아는 버림받은 리어를 도우려 달려왔고, 에드거는 두 눈을 잃은 글로스터를 돌보았다. “무정하게 강타하는 이 폭풍을 견디는/ 불쌍하고 헐벗은 자들아, 너희들이 어디 있건/ 쉴 곳 없는 머리와 먹지 못한 허리와/ 숭숭 뚫린 누더기로 이 같은 계절에/ 어떻게 몸을 보전하느냐? 아, 이런 일에/ 난 너무 소홀했다. 허식이여. 치료를 받아라./ 자신을 노출시켜 가엾은 자들을 느껴라.” 가까운 이들에게 안부전화라도 리어는 첫째 딸과 둘째 딸에게 화를 쏟아붓고 폭풍 이는 바깥으로 나갔다. 리어는 불쌍하고 허약하고 경멸받는 노인이 되고만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작품의 절정은 이런 리어의 광기와 거센 폭풍이 뒤섞인 비극적 장면이다. 리어는 모든 것을 잃고 스스로 가엾은 사람이 돼서야 다른 사람의 사정에 눈을 돌렸다. 자기연민이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리어는 진실에 눈을 뜨고 허식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진즉 마음을 열었다면 첫째 딸과 둘째 딸의 교언(巧言)이 아니라 셋째 딸의 진심을 선택했을 거였다. 가족관계도 인간관계다. 공들여 가꿔야 한다. 리어처럼 부와 권력을 휘두르며 강요해 어떻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까. 말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진심을 알아보려고 노력하고, 가능하다면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서로의 신뢰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리어왕>의 교훈이다. 이런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게 사랑일 거다. 가족 간 사랑은 하루아침에 타오르고 하루 저녁에 사라지는 사랑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쌓아가고 키워가는 사랑이다. 부모님을 보살피는 것도, 자식을 키우는 것도 이런 사랑 없이는 고단하기만 할 거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를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이 세계의 엄연한 질서다. 노년은 오고야 만다. 그런데 이것을 자주 잊는다. 오십 전에는 실감이 나지도 않았다. 오십이 돼서야 나 역시 노년과 마주하게 됐다. 당장 여러 대비를 해야 할 거다. 건강을 제대로 돌보고, 저축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일상도 나이에 맞춰 재조직해야 할 거다. 그런데 건강과 돈 못지않게 중요한 건 인간관계가 아닐까. 이런 인간관계가 한순간에 주어지는 게 아니니 사랑을 꾸준히 적립하는 건 어떨까.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관계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21세기의 노년에는 혼자 살지, 가족과 살지, 대안 공동체를 만들어 살지,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단언할 수 없다. 그 어디서라도 돌봄을 주고받으며 산다면 그것 역시 나쁘지는 않을 거다. 100세 인생에서 오십이 절반이라면 희망은 있다. 가족은 물론 인간관계나 공동체에 사랑을 쏟아볼 시간이 제법 많다. 광기와 연민에 사로잡힌 리어왕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당장 내일이 되면 가까운 이들에게 안부전화부터 해봐야겠다.
- 오십, 길을 묻다
- [안 보이고 안 들려도](3) 먼저 다가가고 싶지만, 인간관계는 어려워(2020. 05. 04 14:05)
- 2020. 05. 04 14:05 사회
-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단 한 번의 인연으로 스쳐가기도 하고, 어떤 우연과 기막힌 운명으로 소중한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앞으로 만나게 될 인연에 대한 기대감은 정말 크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 ‘인간관계’는 너무 어렵다. 비장애인들도 인간관계를 어려워하는데, 하물며 시청각장애가 있으면 얼마나 더 답답하고 힘이 들겠는가.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자리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인원이 많으면 그만큼 대화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 통역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누가 말하고 있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통역을 받기 어렵다. 지금 있는 곳의 분위기(시끄러운지 조용한지 여부)나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까지 알려고 하는 것은 너무 과한 욕심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청각장애인의 눈과 귀가 되어 통역한다면, 이것 역시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장면과 귀에 들려오는 여러 소리 역시 시청각장애인도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욕구가 있고 또 그럴 권리도 있다. ‘배려’라는 이름의 포장 회사의 점심시간 같은 경우, 직원들에게는 1시간의 소중한 휴식시간이다. 나의 근로지원인(장애로 인해 업무수행에 어려운 부분을 지원해주는 사람) 역시 점심시간은 휴식시간이기에, 함께 식사하는 직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통역해달라고 하기가 미안하다. 직원 중 누군가에게 통역해달라고 하기도 뭣하다. 냉정히 통역은 ‘노동’이라고 할 수 있기에 근무시간이 아닌 휴식시간에 누군가에게 통역해달라고 부탁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 점심시간이나 회식 자리에선 조용한 편이다. 어쩌다 누가 말을 걸어주면 대화를 하겠지만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렵다. 어쩌면 나와 함께하는 많은 사람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이해하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나에게 종종 말한다. 언제든지 무슨 이야기든 해도 된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해도 괜찮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배려’한다. 반면 나는 나대로 휴식시간인데 굳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일일이 통역해주지 않아도 된다며 일행을 ‘배려’한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 나 역시 어딘가에 소속된 구성원으로서 그들 한 명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요즘 어떤 유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지, 하는 일이 재미있는지 힘든지 이야기하며 함께 어울리고 싶은 욕구가 크다. 누군가의 눈과 귀가 되어준다는 것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불가능하게만 여겨지는 그 어떠한 미션들보다 불가능한 미션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장애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심지어 앤 설리번 선생이 부활한다고 해도 말이다. 눈이나 귀 중 어느 한 가지만 되어주는 게 아닌 보고 들어야 하는 두 가지를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 이 정도는 통역해줄 거라고 예상했지만, 반대로 상대방은 내가 그 정도는 혼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통역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서로 생각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는 만큼 오해의 소지도 무시할 수 없다. 인간관계 어려움의 숙명 나는 많은 사람과 같이 있는 것보다 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선호한다.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다. 한 사람이 말을 하면 다수의 시각장애인이 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고, 한 사람이 수어를 하면 다수의 청각장애인이 그 사람의 수어를 볼 수 있다. 시청각장애인은 당사자 한 명당 대화(또는 통역)할 사람이 한 명씩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의 입술에 손을 얹어 입술의 모양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느끼거나, 말하는 사람의 목에 손을 얹고 그 발성을 느끼며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한다. 그것도 아니면 수어를 구사하는 상대방의 손을 만지면서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하고, 서로의 손바닥에 글자를 적는 필담의 방법으로 대화를 하기도 한다. 시청각장애인마다 의사소통하는 방법도 다를 수 있고 다양하기에, 대화나 통역을 일 대 일로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시청각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 그리고 소통의 문제는 살아가면서 평생 짊어져야만 하는 무게이기에 결코 가볍지 않다. 야구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홈런을 쳤다. 타구를 눈으로 ‘본’ 사람들, 중계하는 아나운서가 “홈런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상황을 금방 파악하고 환호할 것이다. 하지만 시청각장애인은 항상 한 박자 또는 두 박자나 그 이상 늦게 상황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알아버린 사실을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씁쓸함이란. 마치 소속된 곳에서 소외된, 소위 ‘왕따’가 된 느낌을 감출 수 없을 때가 많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대학원 수업을 온라인 화상으로 진행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함께 수업을 듣는 분들의 이름과 얼굴을 어느 정도 파악할 시기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름 정도만 알게 되었을 뿐, 얼굴은 물론 목소리도 아직 모른다. 강의할 때마다 컴퓨터 화면 가득 들어오는 교수의 얼굴도 실제로 만나면 못 알아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컴퓨터만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니까. 솔직히 첫 오프라인 수업을 하게 될 날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대다수 학생은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누가 누구인지 충분히 파악했을 테고, 오프라인에서도 금방 상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이름을 물어보며 처음 만나는 것처럼, 아니 실제로 처음부터 다시 파악해야 한다. 시청각장애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보고, 들으면서 관계를 형성하듯,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누가 먼저 다가와 인사해주기를, 말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며 인사하고 싶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으니 잘못 알아볼까봐 두렵다. 시청각장애인이 가진 인간관계에서의 숙명이다.
- 안 보이고 안 들려도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 [책 읽는 레이디] 새 소통방식이 낳은 '인간관계 스트레스'···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 2020. 10. 05 14:59 문화/생활
- 현재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신종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완전히 변화시켰으며, 많은 불안과 우려를 야기하고 있다. 또 업무나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영상회의와 이메일·메신저 등으로 소통한다. 그런데 이메일 등으로 소통하다 보니 얼굴을 보며 얘기할 때보다 표현이 조심스럽고 오해가 생길까 봐 긴장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새로운 소통방식이 낳은 인간관계 스트레스다. 이는 그동안 인간관계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탓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건강한 관계를 맺는지 배운 적이 없다. ‘어른에게는 예의바르게’ ‘친구와는 사이좋게 ’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남들에게 친절하라’ 등등을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실제 인간관계는 지뢰밭 같다. 어른·친구·남을 먼저 챙기다가 관태기(새로운 사람과 관계 맺기에 권태를 느끼는 현상)를 겪기도 한다. 이런 탓인지 지난 9월 영국에서는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에 ‘관계 맺기’ 교육과정을 필수교과로 도입했다.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원활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안전하고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자신을 안전하게 돌보는 법, 존중하는 관계, 우정, 나를 돌보는 가족, 가족의 다양한 형태, 온라인과 미디어 속에서의 안전한 관계 맺기, 성 교육 등을 배운단다. 물론 이런 교육으로 인간관계의 지뢰밭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심리상담가이자 마음치유자로 유명한 박상미씨가 ‘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웅진지식하우스)를 통해 전하는 탁월한 공감력과 다정한 치유력은 이 시대의 비타민이 될 만하다. 그는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구체적 상황별 대응법과 해결책을 제시하며, 관계에서 배신당하고 실망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한다. 그리고 다시 관계 속에서 위로받고 힘을 낼 수 있는 용기를 안겨준다.
- 책 읽는 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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