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907 건 검색)
- 두 달 새 음주운전 2번 걸린 인천시의원···고작 ‘출석정지 30일’
- 2025. 03. 21 11:06정치
- ... 1차 본회의에서 신 의원의 징계안을 상정, 32명 참석에 26명이 찬성해 징계가 확정됐다고 밝혔다. 인천시의회는 39명에 국민의힘 25명, 더불어민주당 12명, 무소속 2명이다. 인천시의원에 대한 징계는...
- 인천인천시의회신충식의원출석정지국민의힘음주운전윤리특별위원회
- 10집 중 3집 ‘1인 가구’···인천시, 올해 812억 들여 지원
- 2025. 03. 18 12:13경제
- ... 참여 중인 1인 가족. 인천시 제공 인천시가 올해 812억원을 들여 1인 가구 지원에 나선다. 인천시는 올해 1인 가구를 대상으로 경제생활, 주거 안정, 건강증진 등 35개 사업에 812억원을 투입할...
- 인천1인가족돌봄독거
- 유정복 인천시장, 여야 합의 연금개혁안에 ‘반기’
- 2025. 03. 17 14:11경제
- ... 인천시청 브리핑룸에서 유정복 인천시장이 연금피크제 도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천시 제공 현 정치권 ‘연금개혁안’ 미봉책 불과 나이들수록 수급액 감소 연금피크제 도입 유정복 인천시장이...
- 국민연금연급개혁정치권유정복인천연금피크제국민연금 개혁안
- 인천시, 접경지역 강화·옹진 기회발전특구 지정 촉구
- 2025. 03. 17 10:53정치
- ... 제공 인천시가 접경지역인 강화·옹진군을 기회발전특구로 지정해 줄 것으로 정부에 촉구했다. 인천시는 지난 14일 강화·옹진군을 기회발전특구로 지정해 줄 것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지방시대위원회에...
- 인천강화군옹진군기회발전특구산업통상자원부지방시대위원회인구감소
스포츠경향(총 95 건 검색)
- [로컬] 인천시 광역버스 ‘편리한 출퇴근길, 행복한 일상’
- 2024. 12. 31 00:01 생활
- 인천시 제공 인천시가 중구 영종국제도시와 서울 강남을 잇는 광역급행버스 M6462(영종-강남) 노선을 개통했다. 이어 2025년 상반기까지 총 4개 신규 노선을 순차적으로 개통할 예정이다. 신규 노선 개통은 광역버스 이용자들 서울 출퇴근 편의를 개선하고 교통복지를 한층 강화하기 위해 추진했다. 영종국제도시와 강남을 연결하는 M6462 노선은 2019년부터 영종국제도시 주민들이 꾸준히 요구해 온 숙원사업으로, 이번 개통이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또, 지난 22일에는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에서 인천시와 군·구가 요청한 인천과 서울을 잇는 광역급행(M)버스 신규 노선 2개를 추가로 선정해 서울 접근성을 강화하고 시민 교통 편익을 증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천시는 대광위와 협력해 광역급행(M)버스의 준공영제 전환 및 직행좌석버스 이관을 추진하고, 국비 확보를 통한 안정적 광역버스 운행에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전?x다. 또, 지난 10월 15일 시행한 인천형 광역버스 준공영제를 바탕으로 시민 이용 데이터를 분석해 주요 혼잡 노선의 차량을 증차하고, 촘촘한 노선관리를 통해 광역버스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높여 갈 예정이다. 2025년에는 ▲빈자리 좌석 알림 서비스 ▲광역버스 정류장 개선 ▲광역버스 내 정류장 문자 표출 서비스 등 시민 불편 사항을 해소할 정책을 시행해 편익 증진 체감도를 높이고, 광역버스 준공영제의 안정화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 2024 인천 무역의 날, 휴토피아 “무역 진흥 부문 인천시장상 표창” 수상
- 2024. 12. 11 17:14 생활
-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가는 인천의 작은 별, 휴토피아 화장품 전문 수출기업 휴토피아가 11일 한국무역협회 인천지역본부에서 주최하는 “무역 진흥 부문 인천시장상 표창”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무역 진흥의 성과를 공유하고 우수 기업을 포상하는 ‘수출의 탑’, ‘무역의 날 유공 포상(일반 및 특수 유공)’, 그리고 ‘인천시장 표창’ 등을 통해 2024년 한 해 동안 인천의 수출 진흥에 기여한 기업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다. 휴토피아는 2021년 창립된 이래 불과 3년 만에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를 인정받아 금번 표창을 수상하며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줬다. 2021년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소통의 문이 닫혔던 시기 한국무역협회와 KOTRA가 개최한 ZOOM 기반 화상 상담회를 통해 무역의 문을 여는 희망의 신호를 잡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휴토피아는 국가별 고객을 고려한 차별화된 브랜드 전략을 포지셔닝해 수출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 3년 만에 1,000%의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며 2024년 전문 무역상사의 기준인 백만 불 수출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 탄자니아, 카자흐스탄, 영국 등 다양한 국가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미국, 파키스탄 등으로 수출 시장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휴토피아의 성과는 개별 기업의 노력 뿐만 아니라 한국무역협회 인천지역본부와 인천시의 적극적인 지원 그리고 대한민국 뷰티 브랜드들의 혁신 덕분에 가능했다. 특히 휴토피아는 제품의 콘셉트와 기술력을 명확히 전달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를 이루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박은영 휴토피아 대표는 “이번 인천시장 표창이 새로운 동력을 더하며 인천의 무역 기업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는 사례로 남고 싶다고 말하며 현재 여러 국가와의 수출 계약이 확정된 상태로 2025년은 휴토피아의 전성기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범진, 2024 소방의 날 맞아 ‘인천시 명예 소방관’ 위촉…조정치·케이준 함께 위촉
- 2024. 11. 07 18:47 연예
- JMG(더블엑스엔터테인먼트) 가수 범진이 2024 소방의 날을 맞아 ‘인천시 명예 소방관’으로 위촉됐다. 7일 소속사 더블엑스엔터테인먼트는 범진이 2024 소방의 날 ‘인천시 명예 소방관’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범진은 지난 6일 인천 연수구 송도 인천 글로벌 캠퍼스 대강당에서 열린 ‘인천시 명예 소방관’ 위촉식에 참석, 명예 소방관으로 함께 선정된 조정치, 케이준과 자리를 빛냈다. 인천시장이 위촉장을 수여한 후 범진은 “소방관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앞으로도 소방관들의 중요한 역할을 더 널리 알리고 국민들의 안전 인식을 높이는 데 힘쓰겠다”라고 전했다. 범진은 음악 예능 유튜브 콘텐츠 ‘노예쓰’를 통해 케미를 보여줬던 조정치, 케이준과 함께 명예 소방관으로 발탁됐다. 긍정적 영향력에 동참한 범진은 열악한 환경 속 소방관들의 헌신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인천소방본부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인천시장, 시의원, 소방공무원 등 1,400명이 참석했다. 위촉식 후 범진은 역주행 히트곡으로 알려진 ‘인사’를 스페셜 무대로 선보였다. 범진은 통기타 연주와 함께 감미로운 목소리로 ‘인사’를 열창, 마지막까지 힐링의 시간을 선물했다. 조정치, 케이준과의 예능 조합 ‘노예쓰’에서 ‘인천 소방 명예 소방관’으로 돌아온 범진은 최근 일본 단독 공연 성료 및 첫 정규 앨범 ‘나이테(Growth Ring)’로 컴백하며 대중을 만나고 있다.
- 인천시, 대중교통 서비스 향상 위해 15개 시내버스 노선 개선
- 2024. 11. 05 20:08 생활
- 인천시 제공 인천시가 대중교통 서비스를 향상하고자 15개 시내버스 노선을 개편한다고 5일 전했다. 시는 신규 대중교통 수요와 교통 여건 변화를 반영해 시민들에게 보다 편리한 버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24년 제3회 시내버스 노선조정 심의를 통해 15개 노선의 조정안을 확정했다. 이는 오는 9일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노선 조정은 지난달 30일부터 31일까지 이틀간 시민단체, 시의원, 교통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버스정책위원회(노선조정분과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됐다. 조정으로 ▲대규모 아파트단지 조성지역에 노선 확충(1, 14, 67-1, 518, 4401번) ▲운수종사자 근로여건 개선 및 안전성 강화(26, 78, 86, 569, 570번) ▲지하철역 연계, 승객 과소 및 운행 불합리 구간을 정비(206, 565, 583, 591, 800번)하여 버스 운행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효율성 또한 높아질 전망이다. 인천시 제공 버스정책위원회의 노선조정분과위원회는 ‘인천광역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 등에 관한 조례’에 따라 노선조정 및 노선 체계의 합리화를 심의·의결하는 기구로, 우리 시는 지난 4월과 7월에도 해당 위원회를 통해 영종, 송도, 검단신도시 내 노선 신설을 포함해 총 42건의 노선조정을 추진했다. 인천시는 2025년부터 2026년까지 중기 노선조정 방향을 설정하고, 시민들의 노선조정 요구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올해 한 차례 더 노선조정분과위원회를 개최해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노선조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인천시 제공
주간경향(총 2 건 검색)
-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인천시 어느 구청의 ‘위험한 도발’(2014. 07. 29 11:11)
- 2014. 07. 29 11:11 사회
- 일본풍 거리를 조잡하게 만들었다 중단한 적 있는 인천시 중구청이 이번엔 ‘개항 각국거리 조성사업’에 나섰다. 낙후한 지역 경제를 살려야 하는 사정은 공감하지만, 이는 인천의 지속 가능한 삶과 아무 상관이 없다. 지자체가 세금으로 주민의 오래된 삶의 공간을 이렇게 마구 ‘해체’ 해도 되는 걸까. 관광객이란 구경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때, 구경이란 무엇인가. 이리저리 둘러보는 일이다. 어떤 삶의 속으로 들어가서 그 삶이 왜 그러한 상처의 무늬와 햇살 반짝이는 풍경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것은 관광과 거리가 멀다. 구경은 삶의 겉면을 스케이팅할 뿐이다. 관광객, 즉 구경꾼은 안내책자에 표시된 장소에 가서 ‘인증샷’을 찍고 서둘러 그곳을 벗어난다. 구경꾼의 거의 유일한 목적은 가능한 한 여러 군데를 둘러보는 것, 그리고 그 행위를 디카나 폰카로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카톡으로 전송하고 SNS에 올려 사이버 친구들로 하여금 ‘좋아요’나 ‘리트윗’ 아이콘을 누르게 하는 것이다. 이 행렬이 거대한 한반도를 휩쓸고 있다. 국내의 젊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베트남, 그리고 서구라파 사람들까지도 몰려온다. 경복궁, 서촌, 남대문을 시작으로 해운대를 거쳐 제주도까지 국내외의 구경꾼들이 우르르 몰려 다니면서 디카로 찍고 폰카로 전송한다. 인천 중구에 위치한 차이나타운. 이 인근에 ‘각국거리’가 조성될 예정이다. | 정윤수 바이러스처럼 번진 지자체 테마파크 경향 각지의 지자체로서는 이 행렬이 자기네 도시로, 자기네 마을로, 자기네 골목으로 들어서기를 갈망한다. 도시 전체가 테마파크가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 삶의 고빗길에서 어쩌다 보니 오래된 동네를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급기야 테마파크의 구경 대상이 된다. 골목길을 ‘순례’한다는 디카 출사족들은 남루한 골목에서 진을 치고 허름한 행색의 동네 주민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마침 절묘한 순간이 발생하면 연사 모드로 설정한 셔터를 함부로 누르고, 재빨리 나가서 블로그에 올린다. ‘옛 고향에 온 듯한 정겨운 모습’ 같은 시덥잖은 글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에드워드 미샨은 “돈 많은 다수를 타깃으로 조용한 휴식의 장소이자 경이와 미, 역사적 흥밋거리를 가진 모든 장소들을 발가벗기려고 경쟁적 쟁탈을 벌이는 관광업은 글자 그대로 장소를 회복불가능하게 파괴”한다고 지적했다. 공간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는 미샨의 이러한 지적을 참조하여, 이 쟁탈적 관광업으로 인하여 진짜 장소 대신 가짜 장소가 들어서고 삶의 공간을 소비와 전시의 공간이 대체하며 오래된 장소와 삶이 키치적 구경거리로 전락한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전북 변산 바닷가에 가면 전라좌수영이 있다. 관광객들은 거기서 사진을 찍는다. 전라좌수영은 원래는 전남 여수에 설치된 것으로 변산의 것은 드라마 세트장일 뿐이다. 이러한 가짜 장소와 키치적 구경거리는 쉽게 변하게 마련인 관광 트렌드에 따라 조만간 별 볼 일 없는 조잡한 관광코스로 전락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미 그 조짐이 일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이벤트로 북치고 장구치는 경박한 축제들, 급조해놓은 플래스틱 조형물들, 지속적이며 섬세한 복지는 나 몰라라 하면서 가난한 동네에 벽화부터 그리려는 지자체들, 오랜 기억을 지우거나 장소의 의미를 왜곡해버린 인공의 콘텐츠들. 어느덧 이런 풍경들에 대해 질색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럴 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지자체장이라면 자기 지역구가 구경거리가 되고, 자기를 지지한 주민들이 동물원 원숭이 신세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다. 물론 ‘지역 활성화, 문화 콘텐츠, 관광객 유입’ 같은 말들이 일종의 바이러스처럼 번져서 거의 모든 지자체의 업무지침으로 통하는 시절이라서 ‘지역개발’을 앞세워 당선된 지자체장으로서는 이런 ‘관광정책’에 솔깃할 수 있다. 인천의 지역문화를 상징하는 배다리 책방 거리의 아벨서점. | 정윤수 성찰도 없고 고증도 부실한 거리 그렇기는 해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 이를테면 지역주민의 반대가 심하거나 해당 지역의 역사성이 왜곡되거나 그 지역의 사회·문화적 조건과 어긋나는 것을 억지로 유치하거나 개발해서는 안 된다. 이런 판국에 또 하나의 구경거리가 들어설 모양이다. 인천시 중구청이 ‘개항 각국 거리 조성사업’을 실시하겠다면서 7월 16일에 착공식까지 했다. 이 사업은 인천시 중구 신포시장 인근의 우현로 일대를 약 11억원의 구비를 들여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이다. 중구청은 이미 수년 전에 일본풍 거리를 조잡하게 만들었다가 잠정 중단한 적이 있는데, 러시아풍 거리에 유럽 각국 거리까지 조성하겠다고 하니, 방향 없는 속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날 정도다. 중구청과 신포시장 상인협회 등 일부 관계자들은 인근의 차이나타운처럼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낙후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는 인천의 지속 가능한 삶과 무관한 사업일 뿐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일종의 파사드(건물 전면) 사업’이라고 주장한다. 건물들의 전면부만 유럽 여러 나라들의 특색에 맞게 단장을 하는 것일 뿐, 실제 주거공간이나 골목까지 뒤바꾸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말이 더 문제다. 우리가 떠올리는 유럽 각국의 ‘이미지’가 그들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한 성찰은 미약하고 형태적 고증도 부실하다. 민간 사업자가 관광 개발 용도에 따라 특별히 지정되어 조성된 부지에서 ‘세계 테마공원’ 같은 이름으로 에펠탑, 개선문, 바실리 성당,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같은 거 모형으로 세워놓고 관광사업하는 것이야 뭐라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지자체가 주민의 세금으로 주민의 오래된 삶의 공간을, 주민의 일상 공간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해체/재구성’하는 것은 위험한 도발이다. 이 우현로 지역은 개항기 때의 ‘각국 공동조계지’도 아니었다. 식민지였던 나라가 강력한 제국들의 이미지를 모형으로 만들어놓는 일도 그렇고, 러시아니 일본이니 프랑스니 하는 제국들의 모형 이미지 앞에 가서 사진 찍어 인터넷에 퍼올리는 일도 그렇고, 도대체 우리는 독립이라도 한 것인가.
-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 [표지이야기]막 오른 진보교육감 시대…이청연 인천시교육감 밀착 취재, 경쟁 패러다임과 맞짱 뜨는 혁신교육(2014. 07. 01 14:49)
- 2014. 07. 01 14:49 사회
- 세월호 참사는 과연 학부모들의 과열된 신자유주의적 교육관을 바꾸는 데 영향을 주었을까? 이청연 교육감은 고개를 저었다. “‘내 자식 먼저’라는 부모들의 과도한 경쟁심은 여전히 한국 교육의 블랙홀이고 비극이다.” 학부모들의 시선은 좋은 대학을 넘어 이미 취업시장을 향해 있다. 이런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하고, 경쟁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 교육감의 권한이자 의무라는 게 이 교육감의 생각이다. “여러분들이 저를 지켜주십시오.” 이청연 인천광역시교육감 당선인은 언제나 이 말로 끝을 맺었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믿는 그는 당선 이후 각 지역을 돌며 학부모들을 만나고 교장단을 만나고 교사들을 만난다. 누구를 만나든 마지막 말은 같다. “지켜주십시오.” 이청연 인천교육감 당선인이 강화 지역 학부모와 간담회를 갖고 있다 | 홍승훈 사진작가 제공 이 당선인은 인천의 첫 진보교육감이다. 전교조 출신이며 25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평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에게는 이 두 개 이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는 종종 자신을 “진보교육감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주자”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언론은 그를 ‘고립무원 교육감’이라고 이름 붙였다. 시교육청은 시로부터 교육예산 지원을 받고, 시의회에서 교육 관련 조례·예산의 심의 의결을 받는다. 인천시장은 새누리당 유정복 당선인이고, 인천시의회 의석 수의 3분의 2는 새누리당 차지다. ‘진보교육감’으로서는 ‘고립무원’이 맞다. 이 당선인은 그게 문제될 게 뭐냐며 웃었다. “얼마 전 방송에서도 나를 ‘불쌍한 교육감’이라고 봤는지 인터뷰해 갔다. 아직 유정복 당선인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자꾸 언론에서 그렇게들 보더라. 괜한 걱정들이다. 다 협조해서 잘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철학과 자세가 전혀 다른 이들의 공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가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전하는 “지켜달라”는 말은 그저 흔한 인사말이라기보다는 각오를 다진 복선에 가깝다. 7월 1일은 새 교육감 임기 첫날이다. 전국 17명 교육감 당선인 중 13명이 진보다. ‘진보교육감 시대’ 개막을 엿새 앞둔 6월 25일 이청연 당선인의 하루를 쫓아갔다. 당선인사를 할 곳도 많고, ‘소통투어’로 현장을 찾을 일도 많아 후보 때보다 더 바빠 보였다. 이미 두 개의 일정을 소화한 오전 10시, 이 당선인은 강화지역의 한 카페에서 지역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각 학교의 운영위원장을 중심으로 30여명의 학부모들이 모였다. 학부모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가 빠뜨리지 않는 게 ‘혁신학교’ 이야기다. 인천에는 혁신학교가 없다. 하지만 혁신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열망과 기대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높다. 지난 5월 전교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혁신학교 확대에 찬성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인천이었다. 인천시민 10명 중 7명이 혁신학교 확대에 찬성했다. “여당 시장·여당 일색 시의회, 문제 안 돼” 그는 학부모들에게 당선되자마자 찾아갔던 혁신학교 보평초등학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침 8시 20분에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들이 정문에서 아이들을 맞이합니다. 교문 앞까지 나오지 못한 선생님들은 교실 앞에서 맞이하고요. 아이들이 정문에서부터 달려가면서 선생님에게 안깁니다. 보통 학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지요? 이렇게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유대를 만들어가는 데 2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자유롭게 관계를 설정하고 소통해가면서 새로운 희망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30분 단위의 빡빡한 일정 탓에 짧은 간담회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는 당선인에게 한 어머니가 다급하게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2016년에 저희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그때는 강화에도 혁신초등학교가 생길 수 있을까요?” 이 당선인은 임기 시작과 함께 혁신학교추진단을 만들어서 10월부터 가동시킬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고, 강화에도 혁신초등학교를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약으로 임기 중 매년 10곳씩 총 40곳의 혁신학교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신설ㆍ일반고 살리기 주요 공약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은 혁신학교는 진보교육감들이 보수를 설득할 수 있는 좋은 카드다. 이 당선인은 자치단체장들을 만날 때도 혁신학교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낙후된 지역일수록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은 크다.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다시 인구가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새누리당 자치단체장들에게 혁신학교에 대한 모든 공을 줄 테니 혁신학교에 투자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에게 정치적인 공을 돌리고 혁신학교만 확산될 수 있으면 된다.” 인천시교육청 한 해 예산은 2조7000억원이다. 이 중 가용 재원은 14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제한된 예산과 새누리당의 틈바구니에서 이 당선인에게 혁신학교는 지금의 교육을 전환시킬 수 있는 첫 실마리인 셈이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진보교육감 당선자들이 6월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민병희(강원), 조희연(서울), 이청연(인천), 김병우(충북), 장휘국(광주) 교육감 당선자. | 김영민 기자 혁신학교와 함께 일반고를 살리는 것도 그의 주요 공약이다. 이 당선인은 이날 점심시간에 일반고인 강화여고를 찾았다. 당선인 신분으로 여러 학교를 찾았고, 임기가 시작해서도 가능하면 학교를 자주 찾을 생각이다. 하지만 사전 연락은 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불필요한 행정낭비를 줄여야 된다는 생각에서다. 화단을 손질하고 있던 강화여고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배식을 받아 식사를 했다. 같이 식사를 하던 이 학교의 안용석 교사는 그에게 기숙학교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안 교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가 기숙학교였다. 원래 기숙사의 목적은 촌은 마을이 멀찌감치 분포돼 있으니, 이들 지역의 학생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 학교의 학력 신장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과학고·외고·자사고 등에 밀린 일반고가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선택하는 학력 신장 프로그램 중 하나가 기숙사다. 4인 1실의 숙소와 독서실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자습실을 보고 나오면서 이 당선인은 “내 사전에 기숙사는 없다”고 말했다. 그저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하는 것은 기숙사가 아니라 감옥이라는 것이다. 그의 ‘일반고 살리기’는 기숙학교 설립과 같은 특목고와의 경쟁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만약 어른들을 학교에 몰아넣고 종일 공부만 하라고 하면 어떤 어른이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아이들이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런 것들에서 해방을 시켜야 한다.” 그보다는 일반고 살리기의 다른 방편으로 다양한 직업교육과 진로교육을 모색 중이다. 물론 그는 그에게 다가올 흔한 비난도 짐작하고 있었다. “진보교육감 뽑아놨더니 애들 공부는 안 시키고 딴짓거리만 한다고 하지 않겠나.” 학부모들 생각 바꾸기 ‘전략적 접근’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과학고·외고의 재지정 문제도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눈치다. 이 당선인은 공교육 붕괴의 근본적 배경에는 과학고·외고와 같은 특목고의 증가가 있다고 말했다. 인천에만 7개의 특목고가 있는데, 정기적으로 재지정 평가가 이루어진다. 본래 특목고의 취지에 반하면 교육감의 권한으로 특목고를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항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교육청 앞에서 농성하고 그러지 않겠나. 어느 것 하나 쉽게 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학교를 빠져나오는데 학교 앞에 현수막이 하나 붙어 있다. 대개의 고등학교에 붙어 있는 대학 합격자 명단이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는 이제는 국어사전의 가나다순만큼 당연하게 여겨지는 대학 서열이다. 이들 학교의 이름 옆에 합격자의 이름이 자랑스레 써 있다. 그러나 그 외에 ‘지방대 84’명에는 학교 이름도 합격자 이름도 생략돼 있다. 이 견고한 서열화의 구조 앞에서 ‘일반고 살리기’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창밖의 현수막을 바라보는 그의 고민이 깊어 보였다. 이청연 교육감 당선인이 강화여고에서 배식을 받고 있다. | 홍승훈 사진작가 제공 몇 개의 일정을 더 마친 후 이 당선인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길상초등학교, ‘학부모와 교사의 만남’이었다. 학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늘 하던 혁신학교의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는 그 끝에 “더 이상 서울대생은 삼성에 인기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선뜻 믿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그러자 그는 “못 믿으시겠으면 한 번 인터넷에서 찾아보십시오”라고 힘주어 말했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형은 어떤 것일까요. 예전처럼 줄서기에 능수능란했던 암기 위주의 교육이 아닙니다. 그것을 탈피하는 것이 미래형 인재를 길러내는 환경입니다. 삼성 같은 기업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 안 뽑습니다. 창의력과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조직문화에 잘 적응하는 인재를 뽑습니다.” 여전히 학부모들의 표정은 반신반의였다. 진보교육감이 학부모들에게 삼성의 취업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의 조건을 말한다는 것은 일견 모순돼 보인다. 그러나 그의 말은 다분히 전략적이었다. 학부모들의 눈길은 이미 대학이 아닌 취업시장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화 구조에서 꼭대기에 가까울수록 취업도 잘된다는 게 우리 사회의 상식이다.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면 학원가가 웃는다는 소문이 있다. 창의교육은 학교에서 받고 입시교육은 학원에서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창의교육이 중요하다’는 말만으로 부모들의 경쟁 프레임을 깨기는 난공불락이다. 창의교육이 취업에 중요하다는 것은 대학 서열화-취업시장의 연결고리라도 끊어내기 위한 그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좌우 아우를 수 있는 교육감 될 것” 이 당선인의 말을 학부모들은 ‘삼성’에 방점을 찍으며 들었겠지만, 아마도 그가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것은 창의력, 공감능력, 조직력이었을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힘, 그리고 친구와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의 힘, 학교가 이것을 익히는 ‘배움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인수위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그는 “학부모들의 생각을 바꾸기가 참 어렵다. 학부모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대입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설득할 수 있는데, 아까 삼성의 인재 이야기도 그러한 맥락이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세월호 참사가 학부모들의 과열된 신자유주의적 교육관을 바꾸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터닝포인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 자식 먼저’라는 부모들의 과도한 경쟁심은 여전히 한국 교육의 블랙홀이고 비극”이라고 말하며 그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하고, 경쟁교육을 조금이라도 완충시키는 것 또한 진보교육감의 역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경쟁의 근본적 뿌리인 입시구조를 바꿔나가는 움직임도 이어갈 계획이다. 전국교육감협의회 등 뜻이 맞는 교육감들끼리 입시구조 개선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정책제안을 할 것이다. 입시제도를 바꾸는 것이 교육감의 권한은 아니지만 입시제도가 보통교육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만큼 세상에 알리고 호소를 하는 것이 교육감들의 또 다른 역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낮에 그를 지지했던 지지자 및 자원봉사자 모임에서 현직교사인 순영기씨는 걱정 어린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교육감님이 혁신학교 이야기도 하시고 공교육 강화 이야기도 하시지만, 사실 교육청 관료들이나 교사들 중에서도 그런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저항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이겨내지 못하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 당선인은 “학교가 변하려면 교사가 변해야 합니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은 교육감의 권한이자 의무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혁신학교에서 일했던 한 선생님이 4년 있다가 학교를 옮기는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더라고요. ‘이 학교에서 일하면서 죽도록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행복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아이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면서 교사가 된 게 보람 있고 행복했습니다’라고.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교육감이 되겠습니다.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어려우면 여러분들께 에스오에스를 칠 게요. 인천교육 위해서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만약 딴죽을 건다면 시민들에게 혼날 수 있습니다. 좌우를 아우를 수 있는 인천시민의 교육감이 되겠습니다.”
- 표지 이야기
레이디경향(총 3 건 검색)
-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욕심 없이 진실되게 인천시장 송영길·남영신 부부
- 2012. 07. 30 17:27 화제
- 저마다 삶의 가치관에 따라 ‘행복’의 의미와 쓰임은 다르겠지만, 아마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에 비춰본다면 이 부부의 현재는 분명 지난날보다 훨씬 행복해졌다. 평생 노동운동을 하며 운전기사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던 남편은 지금 인구 2백80만 명이 넘는 인천광역시를 이끄는 수장이 됐고, 그런 남자와 함께 ‘방 하나 부엌 하나’ 제대로 갖춰진 독립된 집에 사는 것이 꿈이었던 아내는 이제 그늘진 곳을 보듬어줄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기쁨을 누릴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랐고 좀 더 많이 가진, 이른바 ‘성공’한 삶을 일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게 ‘행복’이란 조금은 다른 의미다. 그때도 지금도 계속해서 ‘똑같이’ 행복하기만 한 매일, 부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소중한 사람들과의 나란한 ‘눈맞춤’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시민들과 소통하는 시장 송영길 인천시장과 부인 남영신 여사와의 인터뷰가 있던 날은 마침 민선5기 취임 2주년을 맞이한 하루 뒤였다. 지난 2년의 성과와 부족했던 점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산적해 있는 시정 업무와 각종 행사, 밀려드는 인터뷰 일정과 회의 등을 소화하느라 이날 역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 자리에 마주할 수 있었다. “시장이 되고 나서는 매일 하루가 어떻게 저무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내요. 국회의원이었을 때는 2백99명 중 한 사람으로 일을 했었는데, 지금은 1만2천 명이 넘는 공무원들을 이끌고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만큼 심리적 부담감도 커요.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요. 2주년 기념식에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지난 2년은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는 시간이었다’라고요. 요즘 세계 경제를 비롯해 국내외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 보니 여러모로 실타래 풀기가 쉽지만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어렵고 힘든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새벽부터 밤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 인천은 최근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보금자리주택 등 적채되어 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차례차례 해결하고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지원해 일자리를 만드는 등 시민들의 걱정을 덜고 그 자리에 새롭게 희망을 채워주는 정책들을 추진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또 ‘사람들이 찾아오는 인천’을 목표로 문화와 복지, 그리고 교육 환경을 개선해나가고 있다. 실제로 송 시장 취임 후 인천의 인구가 9만 명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지기기도 했다. 취임 때부터 줄곧 자신이 ‘인천의 아버지’라는 마음으로 시민 전체를 잘 먹여 살리겠다는 송 시장의 각오가 제대로 반영된 결과다. “그만큼 바쁘게 움직이고 애썼다는 뜻이기도 해요. 남편이 시장이 되고 난 다음부터는 제가 집에서 한 번도 바가지를 못 긁었어요(웃음). 뭔가 서운한 일이 있을 때도 한밤중에 집에 돌아온 남편 얼굴을 마주하면 목 끝까지 나왔던 말이 그냥 들어가더라고요. 무척 피곤해 보이고 힘들어하니까 안쓰럽고 가엾단 생각이 먼저 들어요. 활발한 투자 유치 달성을 위해서 해외를 오가며 일을 추진하고, 끊임없이 물밑 작업을 하고, 또 그동안 쌓인 일 처리하랴 집단 사이 갈등 조정하랴 뛰어다니다 보면 정말 ‘피가 마른다’라는 말을 실감할 때가 있대요. 시장직이 정말 쉽지 않은 자리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내 된 입장에서는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파요.” 구석진 곳을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한 시정 활동 이처럼 매일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데는 평소 송 시장의 성실하고 소탈한 성품도 한몫을 한다. 매사에 끊임없이 더 좋은 방향을 고민하고, 행여나 놓치고 지나쳐버린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는 그는 시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시민들이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불편해하고 고민하는 점들을 찾아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따라서 좀 더 가까이서, 직접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려 한다. 또 드러난 곳보다 숨겨진 곳,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며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제가 시장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경비 청소 일을 맡고 계신 분들과 식사 자리를 마련한 거예요. 10년, 20년씩 일해오는 동안 시장과 밥 먹는 건 처음이라고 하시더군요. 중책을 시작함에 있어서 그렇게 구석진 데를 돌아보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서류로 정리되어 올라온 이야기 말고 진짜 사람들의 ‘말’을 듣고 싶었고, 또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요.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트위터와 같은 SNS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매달 ‘시민과의 대화’를 개최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 밤 시정 일기를 쓰는 건 바로 그 때문이에요. 가능한 한 실시간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취임 때부터 지금까지 송 시장은 외부 일정이 있는 날 외에는 언제나 계양구에 위치한 집에서 시청까지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다.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고된 얼굴의 시민들을 일터로 실어 나르는 아침 지하철 안에서는 그도 역시 인파에 파묻혀 토막 잠을 자기도 하고, 누군가 만취한 승객이 탔는지 술 냄새가 진동하는 마지막 열차 안에서는 그에게 다가와 “시장은 대체 뭘 하고 있느냐”라며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승객의 말을 마냥 듣기만 할 때도 있다.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직접 건져 올리는 인천의 이야기들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검토하거나 현장을 찾아 살펴봐야 할 생생한 과제가 된다. 또 시민들이 해주는 ‘잘하고 있다’, ‘반갑다’, ‘힘내라’와 같은 격려와 응원의 말은 알토란 같은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남편은 원래 그렇게 주어진 일 외에도 일을 찾아다니면서 하는 스타일이에요. 또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듣고 그런 걸 좋아해요. 체격이 크고 얼굴이 좀 우락부락하게 생긴 편이라 겉으로는 딱딱해 보이지만 사실 참 자상해요. 실제로 만나면 다들 ‘실물이 훨씬 낫네요’ 그러세요. 사실 저도 처음에는 강한 줄로만 알았거든요. 그런데다 워낙 자신을 포장하는 데 서툰 사람이라…. 연애 시절 남편이 처음 저희 집에 왔을 때,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너는 웬 소도적놈하고 다니는 거냐’라고요(웃음). 알고 보면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사람인데 말이죠. 특히 사람들을 참 좋아해요. 지나다가 아이를 보면 괜히 가서 툭툭 건드리고 안아보자 그러고요, 노점하시는 할머니들을 뵈면 거기서 손잡고 앉아 몇 십 분씩 얘기하고 그래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진솔하고 따뜻하기로 따지자면 남영신 여사도 송 시장 못지않다. 여느 아내들처럼 야무진 살림 솜씨나 대단한 능력은 없다 하더라도 사람을 사랑하고 인천을 아끼는 마음으로 제 몫을 해내려 애쓴다. 완벽하고 세련된 내조보다는 남편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을 조용하지만 깔끔하게 메워나가는 역할을 담당하는 편이다. 특히 남 여사가 가장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일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챙기고 보듬는 것이다. 송 시장이 국회의원이던 시절부터 관내 복지시설을 돌며 몇 년씩 이어온 봉사활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 혼자 사는 어르신들, 돌봐주는 이 없는 소년 소녀 가장들, 몸이 불편한 분들이 계신 곳을 찾아다니며 작은 일손을 보탠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시청 국장급 이상 간부 부인회 모임을 주도해 봉사활동으로 돌려놓은 것도 그녀의 작품이다. 매달 노인복지회관을 찾아 식사 봉사를 한다. “특별한 날에만 우르르 몰려가서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봉사가 아니라, 큰 도움은 못 되더라도 꾸준히 관심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국가에서도 시에서도 다양한 복지 정책을 펴고는 있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아직도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많아요. 남편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서민들을 위한 훌륭한 일꾼이 되겠다’라는 말을 했던 걸 기억해요. 많은 분들이 또 그 말을 믿고 지지해줬고요. 그렇다면 남편이 늘 시민들 가까이 머물면서 그들의 문제를 접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매번 그러지는 못할 거잖아요. 그 매개 역할을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고 싶어요.” 영화처럼 낭만적이고 시처럼 소박한 사랑 이토록 잘 맞는 부부의 첫 만남은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각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대학 시절 서로를 처음 알게 된 두 사람은 극렬한 집회 현장 한가운데서 덥석 잡은 손을 지금껏 놓지 않고 인연으로 만들어왔다. “대학교회에서 처음 아내를 봤는데 한눈에 반해버렸죠. 그야말로 ‘딱 찍었어요.’ 어떻게 하면 사귈 수 있을지 기회만 노리고 있다가 신촌로터리에서 대규모 연합집회가 열리던 날 경찰들이 우리를 막 에워싸고 쫓아오는데 아내가 넘어져서 사람들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걸 발견했어요. 달려가서 있는 힘을 다해서 끄집어냈죠. 그러고는 손을 붙잡고 계속 도망을 다녔어요. 그날을 계기로 점차 가까워졌어요. 인연이 될 사이였겠지요.” 사실 그날 그 ‘구출 사건’이 있기 전까지 남 여사에게 송 시장은 그저 그냥 이웃 학교의 열렬한 운동가일 뿐이었다. 송 시장이 적극적으로 먼저 호감을 표시해올 때도 그다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전 관심도 없었는데 남편이 일방적으로 저를 쫓아다녔었죠(웃음). 그런데 제가 사람들 틈에 깔려 죽을 뻔했을 때 멋지게 나타나서 구해준 거예요. 얼마나 근사해 보였겠어요. 고마운 마음도 컸고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참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진중하고 소박하고 섬세했어요. 어떨 때는 제가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지자’라고 하면, 밤새 종이에다 성경 구절이며 철학자들의 말 같은 걸 인용한 편지를 써서는 읽어보라고 주곤 했어요. 마음이 차가워졌다가도 그걸 읽으면 ‘내가 괜히 헤어지자고 해서 이 사람에게 상처를 줬구나, 미안해서 어쩌지’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 정도로 글을 잘 쓰는 거예요. 그래서 매번 감동하면서 마음을 돌렸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부부로 살아가게 됐네요(웃음).” 가진 거라고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앞날에 대한 희망만 있던 시절. 데이트는 소박했지만 그래서 더욱 낭만적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고, 바라보는 곳이 같으니 뭘 해도 즐겁고 행복했을 수밖에. “한창 연애하던 시절에 아내는 가리봉동 오거리에 있는 전자회사에 다녔고 저는 주안 5공단에 있는 시계공장에서 일했는데 매일같이 퇴근 후 신도림역에서 만나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사 먹으며 데이트를 즐겼어요. 한번은 아내가 친구랑 사는 집에 찾아갔는데 연탄가스를 마셔서 늘어져 있는 걸 발견하고 둘러업고 병원에 간 적도 있어요. 그러고 보면 나 당신 여러 번 살렸어. 내가 생명의 은인이야(웃음).” “그러게요. 원래 지나간 시간이 더 애틋한 법이라고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정말로 행복했어요. 처음에는 만화방을 운영하면서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그때 제 꿈이 방 하나 부엌 하나 그리고 바깥으로 문이 나 있는 독립된 방에서 사는 거였어요. 좁은 방에 둘이 붙어 앉아 도란도란 미래를 그려보던 시간이 얼마나 좋았게요.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지만 행복하게 살아봤기 때문에 현재가 항상 소중하고 행복하단 걸 아는 거죠.” 남들이 말하는 대단한 성공이나 출세는 꿈꾸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돌볼 자신이 있었던 남자와 모자란 듯한 삶도 기꺼이 고맙게 받아들일 줄 아는 착한 여자가 만나 나란히 올곧은 길을 걸으며 살아온 지난 날. 지금은 어엿한 위치에서 좀 더 갖고 누리면서 편하게 살아갈 수도 있지만 원체 성정이 그런 것과 거리가 먼 두 사람은 그 시절의 다짐과 바람들을 잊지 않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데만 집중하려고 한다. 그리고 두 아이의 부모로, 그리고 2백80만 시민들을 감싸 안아야 할 직위의 사람으로서,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싶다. “가끔은 편히 쉬고 싶기도 하고 아이들과 야구도 보러 가고 싶고 그래요. 하지만 반드시 제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기에 사회와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으려 해요. 제가 고민하는 건 ‘유능한 진보’의 역할이에요. 그저 ‘열심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가 풍요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앞장서 노력할 생각이에요. 제 스스로도 납득이 될 만큼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나이 들어서는 가족에게 충성해야죠. 최종 목표는 ‘아내에게 아침밥 차려주는 남편 되기’거든요(웃음).”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사진 촬영을 하는 내내 나란히 서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부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족을 비롯해 20년 넘게 정을 나눠온 동네 주민들, 부모의 마음을 갖게끔 만드는 인천 시민들, 나아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들까지. 그들 모두와 눈을 맞추며 나란히 살아가고 싶다던 부부의 말도 맴돌았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행복을 꿈꿀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순간에도,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른 길을 걸어가지 않을까. 아마도 앞으로 그들의 내일을 믿고 지지하며 바라봐도 좋을 듯하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 국내유일 여성 감사관 인천시청 김옥순 서기관
- 2010. 03. 14 19:18 화제
- ㆍ“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책임감으로 친절하고 ㆍ 청렴한 공직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지난 1월, 인천시는 시의 주요 사업에 대한 평가 업무를 도맡고 투명한 공직사회 조성을 위해 노력하는 감사관(監査官)에 여성 공무원을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감사관 제도 도입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특유의 섬세함과 추진력으로 당당히 내일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김옥순 감사관의 새해 비전을 들어봤다. 맡았다 하면 여성 최초, 책임감이 키운 오늘 최근 국가적으로 공직사회 기강 확립과 청렴도 제고에 주력하고 있는 흐름에 맞춰, 각 자치단체의 감사실이 더욱 바빠지고 있다. 도시경쟁력이 국가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때,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임에도 국가 청렴도 수준은 40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 따라서 전국 시·도 기관마다 청렴도 향상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천시의 감사 업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옥순 감사관(55)의 하루 또한 정신없이 흘러간다. 1만3천 명이 넘는 시 공무원들의 직무를 감찰하는 수장으로서 인천의 청렴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각종 개혁적인 활동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경력이 높은 남성 공무원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온 ‘감사관’ 자리에 전국 16개 시·도 중 유일하게 여성 감사관이 임명됐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지만, 실질적 업무가 진행되고 있는 요즘은 ‘여성’이라는 점보다 ‘김옥순’이라는 그녀의 이름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이들이 많아졌다. “처음 발령받은 날 많은 축하 전화를 받았는데 다들 첫마디가 ‘감사관은 욕 듣는 자리니까 각오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공무원 신분으로 다른 공무원들을 비롯한 공직사회 전체를 감사하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게다가 30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감사 업무는 처음이에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시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의 효율적이고 공정한 업무 처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주변에서는 그동안 김 감사관이 발휘해온 여성 공무원 특유의 신선하고도 사려 깊은 추진 능력을 주목하고 있다. 일선 자치구와 시의 각 정책과를 넘나들며 다져온 그녀의 활약에 비추어볼 때, 지난해까지 다소 하위권에 머물렀던 인천시의 청렴도 향상에 김 감사관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최근 많은 여성 공무원들이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시에서도 이를 독려해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고자 하는 차원에서 배려를 해주는 것 같아요. 현재 인천시에는 부이사관 3명을 포함해 서기관 이상 여성 공무원이 10명이 넘을 정도로 타 시도에 비해 여성들에게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 있거든요. 저 또한 여성공직자로서 책임감도 많이 느끼고, 앞서서 길을 잘 닦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사람’을 위하는 행정, ‘미래’를 향하는 행정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주변에서 끌어주고 밀어줬기 때문이라고 겸손해하는 그녀지만 사실 김 감사관의 업무 처리 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 김 감사관은 1974년 인천시 계양구 효성동 동사무소에서 9급 공무원으로 처음 행정 업무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동사무소와 구청의 각 과를 거쳐 2003년부터는 시에서 여성정책과, 회계과, 자치행정과 등의 업무를 맡았다. 일선 행정부터 시 전체의 살림살이를 다루는 일까지 다양한 분야를 담당하면서도 기존 방식을 답습하는 대신 합리적인 업무 체계를 구축해 능률을 높이고 근무 여건을 개선하는 등 시민과 직원 모두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끌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근무하는 곳마다 ‘재미’를 느끼면서 일했기 때문에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사무소(자치센터)에서는 주민들과 만나며 밀착 행정을 할 수 있어서 보람 있었고, 힘들다고 소문난 교통과에서 일할 때도 직원들과 단합이 잘 돼서 신나게 일했어요. 그러다 보니 성과도 좋았고요. 언제나 일할 때면 주민들이건, 직원들이건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어요.” 김옥순 감사관의 이러한 장점은 특히 취약한 근무 환경에서 빛을 발했다. 인간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소위 ‘기피’부서에서도 누구보다 기지를 발휘해왔던 것. 그녀가 남긴 ‘전설적인’ 에피소드들만 해도 여럿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구청 교통과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교통과를 2년 연속 행정평가 최우수상 수상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사실 교통과는 드센 민원이 많아 대부분 기피하는 부서인데다 교통과장 업무는 남자들조차 1년 이상 지속하는 경우가 없었다. 주요 업무인 주차단속을 담당하는 인원도 겨우 4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매일 야간 업무도 도맡아야 했다. 50여 명의 공익요원을 책임지는 것도 교통과의 일이었는데 당시 타 지역에서는 공익요원 점호시 폭력사건이 발생해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방영되는 일까지 있었다. “처음에는 교통과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과연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불안했어요. 하지만 매사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원하는 것이 뭔지, 어떻게 하는 것이 편할지 생각하고 대하다 보니 일도 금방 익히게 되고 직원들도 기대 이상으로 잘 따라와주더군요. 거친 민원에 시달리는 편이라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었기 때문에 세심하게 배려하고 성과가 나면 항상 직원들에게 먼저 돌려주려 했어요.” 김 감사관은 직원들과 공익요원들의 개별 면담을 실시해 업무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모두가 가족처럼 협력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도록 각종 시스템을 정비했다. 업무에 있어서도 현장 및 단순 업무가 많은 과의 특성을 고려해 체계적인 업무 보고 시스템을 도입하고, 일주일에 3회 이상 야간 단속에도 직접 참여하며 모범을 보였다. 이와 같은 과학적인 업무 처리와 솔선수범 정신 또한 지금의 김 감사관을 만든 귀중한 밑거름이 됐다. 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인천 만들기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인천 토박이’ 김옥순 감사관은 누구보다 인천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꿈을 키워온 어린 시절부터 각종 행정 업무를 도맡아온 지금까지 인천 곳곳에는 그녀의 소중한 추억과 땀방울이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인천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면 마치 제가 엄청난 일을 해낸 것처럼 으쓱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고요.” 이러한 욕심 때문에 지난해까지 인천시 자치행정과장으로 근무하며 실질적인 행정 총괄 업무를 담당할 때는 개인적인 시간을 모두 반납하며 일에 매달렸을 정도로 시의 발전을 위한 김 감사관의 집념은 대단하다. 전국 최초로 주민자치 연합회를 구성해 박람회도 열고, ‘시정현장 견학 서포터즈’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시정 안내를 시행한 것도 모두 김 감사관의 집념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지금껏 달려온 것만 해도 숨이 찰 법한데, 김옥순 감사관은 2010년 더욱 야심 찬 계획들을 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새롭게 맡게 된 감사 업무에 매진해 ‘부패 ZERO, Clean 인천’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 특히, 조직문화와 업무 및 예산 집행 공정성 등을 개선해 외부 청렴도뿐 아니라 내부 청렴도를 향상시키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행정조직이 스스로 투명하고 공정해지면 시민들이 행정 기관이나 공무원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개선될 거예요. 대외적인 국가 이미지와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최근 들어 인천시가 각종 대규모 국제 행사를 유치하고 다양한 개발 사업도 시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위상에 걸맞은 선진 행정을 선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언제나 한결 같은 자세로 ‘살기 좋은 인천’, ‘시민들에게 신뢰받는 한국’을 만들기 위해 전력 질주해온 김옥순 감사관.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달려갈 것을 다짐하는 김 감사관이 그려갈 내일을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주석
- 희귀병 아내의 손발이 되어 산 안상수 인천시장의 순애보
- 2005. 11. 01 화제
- “아내의 눈썹에 쌓인 먼지 보며 가슴 아팠던 기억이 오늘의 저를 바로세웁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다. 결혼 1년 만에 갑자기 쓰러진 아내. 하루에 두세 번씩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지극 정성으로 아내를 간호한 남편. 또다시 시작된 불행. 식물인간 상태로 5년 동안 누워 있던 아내가 1년 전 드디어 눈을 떴다. 이 드라마 같은 순애보의 주인공은 바로 안상수 인천시장. 병약한 아내를 위해 아기까지 포기한 안상수 인천시장의 눈물… 그리고 희망! ‘워커홀릭’ 시장님의 알려지지 않은 속사정 “결혼한 지 1년 만에 갑자기 쓰러진 아내…” 인천을 대표하는 얼굴 안상수 인천시장(59). 안 시장의 하루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시작된다. 그 어떤 직원보다 일찍 시청 본관에 나와 주요 일간지를 챙겨본다. 보좌관의 어깨너머로 안 시장의 스케줄을 훔쳐보니 10분 단위로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하다. 하루 세끼 바깥 식사는 기본에 주말 출근도 예삿일. 안 시장은 안팎에서 ‘워커홀릭’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것도 그냥 워커홀릭이 아닌 중증 환자(?)다. “일 말고 다른 관심사는 없느냐” 물으니 “시민의 출산·육아 문제가 시급하다”며 또다시 일 얘기로 화제를 돌린다. 나랏일에 이렇게까지 열심인 공무원이 있다는 건 분명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반면 ‘아내까지 있는 남자가 이렇게 심각한 일중독자라면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혹자는 ‘와이프가 누군지 거 참 불쌍하다’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 시장의 알려지지 않은 속사정을 듣고 나면 생각은 또 달라진다. 그가 개인적인 일로 자리를 비우는 경우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병든 아내 간병을 위해 병원을 찾는 일. 안 시장의 아내 정경임씨(52)는 현재 뇌졸중의 일종인 ‘모야모야병’에 맞서 투병중이다. 모야모야병은 뇌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면서 생기는 희귀 질환. 뇌경색, 뇌출혈, 간질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의 몸에서 모야모야병이 발견된 건 결혼한 지 꼭 1년 만인 1984년의 일. 어느 날 갑자기 아내는 맥 없이 쓰러졌다. 불행은 언제나 그렇듯 예고 없이 찾아온다. 안 시장에게도 불행의 그림자는 준비 없이 찾아들었다. 그것도 한창 깨가 쏟아질 신혼에 말이다. “병명이 뭐라구요? 모야모야가 뭔데요?” 의사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의사의 말에 더욱 기가 찼다. 한번 발명하면 사망하거나, 운이 좋아 산다 해도 불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악성 희귀병. 혈관의 모양이 보통 사람과 달리 연기 처럼 생겼다고 해서 ‘모야모야’(일본말로 연기를 뜻함)라 부른다. 숨이 턱 하고 막혀 왔다. “‘하늘이 나를 이렇게 버리는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사람에게는 저마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있는 건가 싶은 게 암담하기도 했구요. 가정의 불행이 내 숙명인 것처럼 다가왔죠.” 막내가 사고로 죽으면서 오랫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만 누워 계시다 돌아가신 어머니, 조업을 나갔다 어선이 전복돼 어부 두 사람을 잃고 가산을 완전히 날린 아버지, 밑으로 동생 여섯을 먹여살리기 위해 혼자서 발버둥치던 자신의 청년기까지 겪은 아픔이 기억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어렵사리 취직을 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보리라 다짐하기 무섭게 또다시 찾아든 시련. 하지만 어떻게 꾸린 가정인데… 포기가 쉽지 않았다. “뇌출혈이 생겼는데 병원에서 수술을 하겠냐 물었어요. 처가 식구들은 섣불리 수술했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냐며 수술하지 말자고 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을 누운 채로 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제가 고집을 부려 수술을 받게 했는데 4, 5개월 동안 깨어나지 않더군요. 그러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아내가 눈을 뜨고 차츰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완전히 정상인의 몸으로 회복한 거예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안 시장의 말처럼 기적은 기적이다. 정경임씨의 수술을 집도한 서울대병원 노재규 박사는 “아내를 향한 사랑의 힘이 기적을 일으켰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노 박사의 말에 따르면 당시 안 시장은 “하루에도 두세 번씩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아내를 보살피더라”는 것. 노 박사는 또 “식물인간으로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를 간병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환자 다루는 솜씨도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사랑의 힘이 낳은 또 하나의 기적!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던 아내와 요즘은 전화 통화도 해요” 아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던 것은 순전히 남편 안 시장의 보살핌 덕분이다. 그러나 아내를 다시 얻는 대신 안 시장은 가슴 아픈 대가도 치러야 했다. 의사에게 아내가 몸이 허약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은 것. 병약한 산모의 힘으로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기를 낳을 경우 산모에게도 위험하다는 의사의 진단은 그를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었다. 아기를 포기한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아기를 가져 아내에게 치명적인 부담과 고통을 안겨줄 수도 없었다. 안 시장은 의사의 진단 이후 2세 계획을 과감히 접었다. ‘더 열심히 살자. 아내를 더 사랑하자. 태어나지 않은 자식의 몫까지 더 열심히…’ 가슴속으로 수없이 되뇌고 또 되뇌면서. “아내는 면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여자였어요. 경기여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의류직물학 분야의 전통 있는 일본 오차노미쯔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학업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죠. 다시 찾은 인생에서도 아내의 꿈을 향한 질주는 멈출 줄 몰랐습니다. 2년간 꾸준한 치료로 건강을 되찾은 아내는 대학으로 돌아가 강단에도 서며 성실하게 생활했는데…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는 아내가 행복해 보였습니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았지만 좋아서 하는 일 말렸다가 더 큰 병날까 싶어 묵묵히 지켜만 봤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회가 돼요. 그냥 집에서 쉬게 할 것을….” 아내가 건강을 되찾았을 때 안 시장은 사실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불행’의 불씨는 여전히 아내의 몸속에 남아 불씨를 키울 ‘때’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지금부터 6년 전인 지난 1999년 8월, 또다시 쓰러진 정경임씨. 이번엔 수술도 소용없었다. 안 시장은 어떻게든 아내를 살려보겠다고 병원을 다섯 곳이나 옮겼다. 하지만 아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옮긴 병원마다 ‘식물인간’ 상태로 소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했다. “어느 날 아내의 눈썹에 쌓인 먼지를 봤어요. 늘 불꽃 같은 의지를 불태우던 사람이었는데… 자기 눈썹에 먼지 쌓이는 줄도 모르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인생, 거 참 허망하더군요. 아내를 볼 때마다 얼마나 안쓰럽고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어요.” 아내는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밥을 먹거나 대화를 하거나 거동을 하거나 배설을 하기는커녕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누워만 있었다. 안 시장의 눈물 어린 아내 간병기는 그렇게 다시 시작됐다. 요즘 정경임씨는 시청에서 30여 분 떨어진 한방병원에서 요양중이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안 시장은 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내의 병간호를 도맡으면서도 한결같다. 시정 활동으로 바쁜 날에도 일주일에 세 번은 꼭 병원을 방문한다는 게 보좌관의 설명. 시간이 빠듯한 날은 2~3분 잠깐 얼굴만 보고 돌아오는 게 고작일 때도 있다. “어차피 얼굴만 보고 나오는 건데, 이젠 좀 뜸해도 사모님께서 이해하시지 않겠냐” 했더니 돌아온 안 시장의 대답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저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데요. 자기랑 가장 가까운 사람이 차츰 모습을 감추면 공포스러울 거고, 그러다 보면 살겠다는 희망마저 버릴지 모른다는. 그리고 보호자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간병인들도 환자를 등한시하게 마련이에요. 지금까지 간병인을 열 번 정도 바꾼 것 같은데, 한번은 옆방 환자한테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지금 일하는 그 아줌마 못 쓰겠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대체 나 없는 사이에 아내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싶어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느낌에 막 때린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맥 놓고 누워 있는 아내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그런 얘기까지 들으면 정말 ….”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병원에서조차 포기한 환자였다. 안 시장의 끔찍한 아내 사랑에 하늘도 탄복한 걸까? 정경임씨에게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건 1년 전. 얼굴에 표정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족과 가까운 지인을 알아보고 이름까지 또렷이 기억해냈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감정의 일부를 표현하기까지. 안 시장은 “요즘은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 ‘아침이슬’도 흥얼거린다”며 대견하다는 듯 아내의 손을 어루만졌다. 사실 5년을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던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는 건 우리나라 의료 사상 거의 전무후무한 일. 이 마술과도 같도 같은 변화를 가까이에서 눈으로 지켜본 인천 길병원의 이길여 회장은 정경임씨의 병세 호전을 두고 “사랑의 기적”이라 표현했다. “안 시장은 해외 출장 갔을 때를 제외하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부인을 찾아와요. 병실에서 부인과 ‘응답 없는 대화’를 나누고, 곳곳을 주무르며 스킨십을 계속해 ‘남편의 사랑’을 여과 없이 보여주지요. 이것이 그 어떤 치료제보다 큰 효과를 낳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제 우리 병원에서 ‘안 시장의 애틋한 사랑 얘기’는 유명한 일화가 되었답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마련! “‘굴비 시장’이 청백리의 대명사로 불릴 날, 반드시 올 겁니다” 가정에서의 행복. 남들에겐 쉬워 보일지 몰라도 이 기본적인 일이 안 시장에겐 가장 어렵고 난감한 과제다. 의지만으로 되는 일 같았으면 이렇게까지 끔찍하지도 않았을 게다. 마치 덫에 걸린 듯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불행은 그를 더욱 세게 옥죄어왔다. 어머니의 오랜 투병 생활, 식물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내의 비운을 보면서 안 시장도 인간인데 왜 신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정치인에게 아내의 역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CEO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 두 차례 큰 선거를 치르면서 아내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만 느껴졌을 터.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내가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로 병실에 누워 있을 때였는데, 상대 진영에서 상상도 하지 못할 흑색 선전을 퍼부었다. 내용인즉슨 “안상수가 첩이 네 명인데, 이것을 안 아내가 화가 나서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혹자는 “안상수는 이혼남”이라며 말을 지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안 시장은 일일이 해명하지 않는다. 몸이 아파 움직이지 못하는 아내의 얘기를 하면 할수록 의지가 약해지고,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명한들 또 무엇 하랴? 나만 떳떳하면 그만인 것을. 이제 시장 임기도 8개월가량 남겨두고 있다. 인천시민 복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으니 시장으로서 하루하루가 소중하기만 하다. ‘굴비 시장’이란 오명을 쓰고 살아야 한 지난 1년. 1,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이 내려진 ‘굴비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안 시장은 무죄를 자신한다. 다만, 대법원 판결이 남은 상황에서 법원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할 것 같아 억울하지만 함구하는 것일 뿐.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마련이다. 안 시장은 믿는다. 진실의 힘을…. “혹시 압니까? ‘굴비 시장’ 타이틀이 청백리의 대명사처럼 불릴 날이 올지!” 글 / 최은영 기자 사진 / 안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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