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258 건 검색)
- “일본군 위안부 가족에게 팔려 갔지, 강제징용 증거 별로 없다”…한신대 교수의 망언 [플랫]
- 2024. 09. 20 15:52사회
- ... 강제로냐?”라고 했다. A교수는 가족이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다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명의로 쓰여졌다. 독자 제공 이 학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위안부가 된 과정은 개인마다...
- 플랫
- “일본군 위안부 문제, 우리 정부 뭐했나”는 질문에 침묵한 안창호 인권위원장 후보자
- 2024. 09. 03 16:50사회
- ...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가 현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대책을 묻는 국회 질의에... 드릴 수 없다”며 회피했다. 천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윤석열 정부의 노력에...
- 경기도, 10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 개최
- 2024. 08. 06 10:16지역
- ... 날 포스터. 경기도 제공 경기도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기림의 날’... 위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경기도 행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음...
-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베를린에 있는 소녀상을 지켜주세요”
- 2024. 05. 22 16:59사회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2일 서울 중구 주한독일대사관 앞에서 열린 독일 베를린... 그 나라를 지켜주는 할머니들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인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96)가...
스포츠경향(총 27 건 검색)
- [화제의 책]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와 고문기술자의 조우··· 소설 ‘사물의 눈’ 눈길
- 2023. 11. 26 11:21 생활
- 사물의 눈 표지 소설가 우경미가 장편소설 ‘사물의 눈’(도서출판 나비문)을 펴냈다. 계간지 ‘작가세계’로 등단하고 2011년 단편집 ‘나비들의 시간’을 발표한 이후 선보이는 첫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고문 경관으로 낙인찍혀서 이국땅으로 도피 중인 ‘그’가 줄거리를 이끈다. 조직의 명령으로 이국의 도시에 숨어 지내고 있는 그는 호수 산책길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 주고 푼돈을 받는 주정뱅이 영감을 알게 된다. 영감을 통해 동족이자 이 도시에 은둔해 있는 또 한 명의 미스터리한 젊은 여자를 만난다. 그가 영감과 여자를 알게 되는 소설 속의 주요 공간인 ‘호수’는 어디에나 있는 곳 같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장소처럼 흥미롭게 서술된다. 모자 모양의 호수가 있는 작은 소도시를 배경으로 2차세계대전의 희생자인 주정뱅이 영감과 일본군위안부였던 김달이, 나치 피해자 애나 할머니가 주요 인물이다. 하지만 소설은 과거사에 머물지 않는다. 끝까지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두 사람, 신화 속 인물의 이름을 별칭으로 가지고 있는 ‘그’와 ‘여자’로 인해 지난 역사의 비극을 현재진행형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김달이 할머니가 묻힌 묘역과 나치가 동네 사람들을 가두고 고문하던 성당 동굴, 관을 파는 장의 가게와 같은 흥미로운 에피소드에는 작가 우경미의 유럽생활 경험이 생생하게 녹아 있어 소설 읽는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 상처받은 인물들이 토해 놓는 묵직한 대사도 울림을 준다. 문화평론가이자 시인인 오광수는 이 소설의 해설에서 “경장편 분량의 이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로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며 “이국땅에서 떠돌다가 생을 마친 일본군위안부를 통해 우리의 불행했던 현대사를 반추케 하고, 그 고통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환기해 준다”고 평했다. 한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미국과 영국에서 거주하다가 귀국해 현재는 문학지망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 위너콰이어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위안부 피해자 위한 공연 올려..
- 2022. 08. 14 23:52 생활
- 경상남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행사가 오늘(2022. 08.14) 경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경상남도는 2015년 전국에서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내용을 담은 조례를 제정하여 2016년부터 매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행사를 개최해왔다. 올해 제 7회째를 맞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행사에서는 ‘각인’이라는 주제로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올바른 역사 인식 확립에 이바지한 학생 2명이 도지사 표창을 받았으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각종 공연 및 주제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특히 위너콰이어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창작 뮤지컬 <마음에 새기다>를 올려 오늘 행사를 더욱 뜻깊게 만들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순간순간 울컥하는 행사장 관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경남도 최만림 행정부지사는 “이번 기림일 행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지난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위너콰이어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 ‘일본군 위안부 만행’ 고발하는 게임 ‘웬즈데이’, 게이머들에게 도움 호소
- 2020. 11. 02 11:34 생활
-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게임 ‘웬즈데이’를 개발중인 겜브릿지가 게이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겜브릿지 도민석 대표는 최근 ‘웬즈데이’ 출시를 위해 2차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하면서 ‘겜브릿지에서 도움을 요청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통해 사정을 밝혔다. ‘웬즈데이’는 인도네시아 수용소의 유일한 생존자 ‘순이’ 할머니가 1992년에서 1945년으로 돌아가 동료 피해자들을 구하는 어드벤처 게임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동료들을 꼭 구하고 싶다”는 故 김복동 할머니의 말에 감명을 받아 제작에 착수했다. 일본의 위안부 등 과거 전쟁범죄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개발 목적이다. 스포츠경향 2월 18일 보도 게임은 11월 30일 스팀을 통해 출시될 예정으로, 회사 측은 수익금의 50%를 관련 사업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겜브릿지는 지난 9월 ‘웬즈데이’의 CBT를 진행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혔다. 도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개발비 확보를 위해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를 통해 연이율 8%, 1년 후 만기상환 조건으로 5000만 원을 모금했다. 8월 14일 ‘웬즈데이’를 출시, 판매 매출과 투자유치를 통해 만기 일시상환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개발 일정이 늘어나면서 출시일이 11월 30일로 연기돼 11월 15일 만기인 5000만 원의 원금을 상환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겜브릿지 측은 만기를 1년 연장하는 대환펀딩을 비플러스에서 열고 모금 중이다. 출시 후 한 달 내에 투자 유치가 가능할 것이라는 도 대표의 설명이다.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별도의 굿즈도 함께 제공된다. 50만 원 이상 투자자들에게 엔딩크레딧 기재와 마우스패드, 키링, 무드 등을 제공한다. 도 대표는 후원형 펀딩과 다르게 대출형 펀딩이므로, 투자금의 연이율 8%에 해당되는 이자를 매월 수령한 후 1년 뒤인 2021년 11월 15일에 원금을 상환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일본군 위안부→제주 4.3 사건 관객 울린 감동의 넘버들
- 2020. 02. 17 16:02 생활
-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서사와 세 남녀의 사랑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관객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며 순항하고 있다. 특히 매 장면 드라마와 완벽히 합일되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넘버들은 남은 시간 동안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를 꼭 찾아봐야 할 이유 중 하나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영화 ‘파이란’, ‘거미’ 등 장르를 불문한 다채로운 이력의 작곡가 J.ACO는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에서 각각의 장면이 담고 있는 에너지와 감정들을 곡에 오롯이 녹여냈다. 대치와 여옥, 하림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솔로 넘버 ‘어떻게든’, ‘당신이 다녀간 뒤’, ‘행복하길’을 비롯해 두 진영으로 나뉘어 독립을 꿈꾸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른 길’ 등 주옥같은 넘버들이 사랑받고 있다. 작곡가 J.ACO는 “곡 작업을 하면서 억울한 죽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더 디테일하게 알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지막 무대를 열흘 앞둔 가운데,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의 수려한 넘버들 중에서도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담은 화제의 넘버들을 꼽았다. ■‘여명 속에 버려진’ 여옥과 위안부 소녀들의 간절한 외침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는 여옥과 소녀들. 극 초반 등장하는 ‘여명 속에 버려진’은 지옥 같은 일상에 아침이 밝아 오지 않기를 바라는 일제강점기 위안부 소녀들의 마음을 노래하는 넘버다. 노래와 몸짓으로 표현되는 소녀들의 간절한 외침은 언제까지도 잊어서는 안 될 가슴 아픈 역사를 상기시킨다. 특히 이 넘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 ‘너무 고생하셨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항상 전하고 싶었다”는 작곡가 J.ACO의 특별한 마음을 담은 곡이기도 하다. ■‘악몽’ - 하얼빈 731부대, 생체 실험의 악몽 지옥 같은 현실에서 희망을 말하는 여옥과 달리 하림은 과거 자신의 현실에 절망해 모든 희망을 버렸던 순간을 떠올린다. ‘악몽’은 하얼빈 731부대에서 자행된 일본군들의 마루타 실험에 참여했던 하림이 그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절망만 가득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부르는 곡이다. 무대 위 생체 실험 장면들과 함께 점차 고조되는 강렬한 선율은 극악무도했던 일본군의 만행으로 고통받았던 이들의 절규를 담아냈다. ■‘제주 4.3의 시작’·‘그렇게 그 섬은’ - 동족상잔의 비극, 억울한 죽음들 ‘제주 4.3의 시작’, ‘그렇게 그 섬은’은 해방을 지나 제주 4.3 항쟁의 시작이 되었던 3.1절 기념식에서의 사건과 극심한 이념 대립이 초래한 무고한 죽음들을 정면으로 담아냈다. 이 외에도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오라리 방화 사건, 서북청년단 등 부끄러운 과거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외면해서도 안 될 우리의 역사를 장면과 넘버에 녹여냈다. 모두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주옥같은 넘버들로 승화시킨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1991년 방영 당시 범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드라마를 무대로 옮긴 창작 뮤지컬이다. 지난 2019년 첫선을 보인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일제 강점기인 1943년 겨울부터 한국 전쟁 직후 겨울까지 동아시아 격변기 10년의 세월을 겪어낸 세 남녀의 지난한 삶을 통해 한민족의 가장 가슴 아픈 역사와 대서사를 담아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오는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주간경향(총 2 건 검색)
- 일본군 둥닝 요새의 ‘위안부 참상’(2019. 08. 16 15:22)
- 2019. 08. 16 15:22 사회
- ㆍ중국 헤이룽장성의 관동군 주둔지에서 고초 겪은 할머니들의 증언 2000년 5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의 3평 남짓한 방. 두 뺨이 발그레한 70대 할머니가 카메라 앞에 앉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박옥선 할머니(94)가 처음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순간이었다. 중국 상하이사범대 중국위안부역사박물관에 각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진이 전시돼 있는 모습. 중국 방직공장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았다. 1941년 고향 밀양을 떠날 때 17세였다. 1945년 8월 9일 소련군이 대일 선전포고를 할 때까지 4년을 ‘아키코’로 살았다. 노래를 잘해 군사훈련 기간이나 명절 때면 위문공연을 다녔다. 정기적으로 신체검사를 받으면서 장교들에게 치욕을 당했다. 위안소에서 불렀던 일본 민요의 기억은 또렷했다. 박 할머니는 듬성듬성 빠진 이를 내보이며 한 소절을 뽑았다. 하지만 자신이 머문 위안소의 위치를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팔십이 다 됐는데 모른다. 큰 강은 못가봤지. 조그만 강에서 빨래 씻으니까 어디가 어딘지 모른단 말이지. 노는 날도 훈련한단 말이다 군대처럼.” 삼엄한 감시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던 곳. 소련과 맞닿아 있는 헤이룽장성 둥닝(東寧)의 천장산 요새 위안소였다. 2000년 박 할머니를 최초로 인터뷰한 왕중런(王宗仁) 둥닝요새박물관 연구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지난 8월 14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역사적 과제’ 국제학술회의에서 국내 처음으로 둥닝 요새에서의 참상을 종합적으로 소개했다. 8월 13일 서울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난 왕 연구원은 “둥닝 요새 연구를 통해 위안부 관련 유물을 발굴, 확실한 증거물을 확보해 일본 정부가 죄를 인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병 29명당 위안부 1명” 둥닝 요새는 아시아 최대 군사요새이자 제2차 세계대전 최후의 전쟁터였다. 일본 관동군은 1934년 6월 소련군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둥닝에 요새를 짓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10여개 요새로 구성된 동닝 요새의 길이는 100㎞, 전·후방 거리는 50㎞에 달했다. 1941년 6월 관동군의 특별대훈련이 시작되면서 둥닝 국경을 따라 13만명의 병력이 투입됐다. 위안소도 대거 들어섰다. 왕 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국경 진지 부근에 설치된 위안소는 50여곳이었다. 사병 29명당 여성 1명이 배정됐다. 현재까지 발굴된 둥닝 요새 위안소 유적지는 총 49곳이다. 위안소의 이름은 다양했다. 가장 흔한 건 ‘XX 위안소’. 안락소·오락소·군인회소·군인낙원·구락부·후방시설 등으로도 불렸다. 왕 연구원은 “마치 회사 이름을 짓듯 각 위안소에 이름을 붙였다”며 “둥닝 요새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위안소가 운영됐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1945년 8월 일본군이 전쟁에서 패하자 몇몇 부대는 위안부를 방치한 채 달아났다. 일부 일본인 위안부는 일본군을 따라 철수했다. 일본군은 다수의 여성들을 방공호로 끌고가 독약을 먹이거나 폭탄을 터뜨려 살해했다. 위안부가 소련군에게 일본군 내부 정보를 제공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왕 연구원은 설명했다. 1946년 6월 둥닝 정부는 위안부 2000명에게 일반인 신분을 부여하는 ‘신분 회복’을 실시했다. 대부분 조선인 여성이었다. 왕 연구원은 중국어로 빽빽한 원고지 3장을 내밀었다. 한국에 오기 직전 둥닝에서 고초를 겪은 고 김선옥 할머니 아들에게 받은 자필 진술서라고 했다. 김 할머니 아들은 진술서에 ‘어머니는 위안소에서 항상 일본군한테 매를 맞았고, 일본군이 코에 고춧가루를 들이부은 적도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썼다. 왕 연구원은 “김 할머니는 생전에 나와 인터뷰할 때도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과거의 기억에 고통스러워 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 아들의 진술서는 또 다른 둥닝 요새 위안부 피해자인 이광자 할머니의 증언과도 일치했다. 왕 연구원이 공개한 이 할머니의 증언이다. “군인들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정말 하고 싶지 않을 때, 관리인은 소금에 찍어 먹을 대파밖에 주질 않았어요. 밥 없이 무만 먹었죠. 더 고통스러운 건 못자게 하는 거였지. 무릎을 꿇고 고춧가루 탄 물을 마시게 했어요.” 박옥선 할머니가 2000년 5월 처음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영상 캡쳐. 위안소 터에서 나온 단서들 진실은 일본군 전범의 자백에서도 드러난다. 한 관동군 간부는 중국 정부에 제출한 자백서를 통해 “군대 안에 위안소를 만들라고 명령을 내렸다”며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설치·경영한 점을 인정했다. 저우귀샹(周桂香) 중국 다롄이공대 교수가 관동군 자백서 1148건을 분석해보니 80.1%인 920건에서 전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진술이 나왔다. 조선 여성도 여러 차례 언급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민간업자가 한 것일 뿐 일본군의 개입은 없었다”고 부정한다. 왕 연구원은 위안부 관련 유적·유물 발굴도 일본의 사과를 얻어내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중국 연구자들은 둥닝의 위안부 터에서 빗거울, 로션, 콘돔, 피임약, 윤활제, 반짇고리 등을 발굴했다. 왕 연구원의 설득으로 한 연구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물 일부를 동북아역사재단에 기증했다. 왕 연구원은 “과거 일본군 소재지에서 발굴한 여성들의 화장품, 머리빗 등은 대부분 위안소에서 쓴 물건이라고 볼 수 있다”며 “현재 둥닝에는 중군 인민해방군이 많이 주둔해 있어 군부대를 일일이 조사할 수는 없지만 그 시설 내에도 유적이 존재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단 20명. 왕 연구원은 8월 13일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존자인 박옥선 할머니와 19년 만에 재회했다. 왕 연구원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박 할머니는 2001년 영구 귀국해 여생을 보내고 있다. “예전에는 노래도 불러주실 정도로 아주 정정하셨던 할머니가 침대에 누워 계신 걸 보고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도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둥닝에는 한 명도 없고요. 한국 연구자들과 협력해 일본의 사과를 얻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계속 찾아나가야죠.”
- [언더그라운드 넷]‘우리 집에 왜 왔니’가 일본군 위안부 모집 놀이?(2019. 06. 10 09:59)
- 2019. 06. 10 09:59 사회
- ‘우리 집에 왜 왔니’ 놀이가 일본군 위안부 모집과 관련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건 지난 5월 초 무렵이다. 일본의 ‘하나이치몬메’ 놀이에서 유래됐으며, 일제강점기 때 위안부 모집을 정당화하기 위해 당시 식민지 조선의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이 놀이를 유포했다는 것이다. 그런 역사적 유래도 모르고 우리의 전통놀이로 둔갑해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다는 것이다. 사실일까. 전통놀이 전문가들이 ‘우리 집에 왜 왔니’ 일본 기원설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유튜브 동영상 캡처. ‘초등학교 교과서 속 일본 놀이’ 자료집에서 재캡처했다. 검증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유튜브에는 ‘하나이치몬메’ 놀이 방법의 소개영상이 있다. 언뜻 보면 유사하다. 두 편으로 갈라선 아이들이 손을 잡고 ‘하나이치몬메’가 반복되는 노래를 부르며 아이를 지목하면 가위바위보를 해 이긴 쪽에서 아이를 데리고 간다. 그런데 음정이나 노랫말은 ‘우리 집에 왜 왔니’와 다르다. 한국어 ‘꽃’과 일본어 ‘하나(花·はな)’를 아이에 비유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하지만 일본노래 가사에 있는 오니(도깨비), 솥, 이불 등의 노랫말은 한국엔 없다. “일단 민원인께서 제기한 ‘우리 집에 왜 왔니’는 현행 교과서에는 안 실려 있습니다. 각계 전문가들 의견을 더 수렴해봐야겠지만….” 교육부 교과서 정책과 관계자의 말이다. 이 논란은 일부 전통놀이 연구가들이 “초등학교 게재 놀이들이 일본에서 유래되었다”며 “교과서에서 삭제하거나 최소한 유래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원에서 시작됐다. 교육부에 민원을 넣은 임영수 연기향토박물관장은 “‘우리 집에 왜 왔니’뿐 아니라 ‘대문놀이’, ‘꼬리 따기’도 위안부 놀이”라고 말했다. 임 관장 측으로부터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건네받았다. 그런데 자료 안에는 선뜻 다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눈에 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노래와 놀이는 일본 것과 판박이다. 일본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1936년 식민지 조선에는 가위바위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글쎄. 교과서에 실린 가위바위보, 줄넘기, 시소 놀이의 일본 유래 주장은 너무 나갔다. 더 큰 문제는 저 ‘우리 집에 왜 왔니’ 놀이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설이다. 위안부의 핵심은 국가가 성노예를 강제동원했다는 점이다. 이를 부인하는 일본 우익들은 “당시 위안부들은 매춘부, 창녀들이었다”고 주장한다. ‘설’과 실제 역사적 사실을 혼동해선 안 된다.
- 언더그라운드 넷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수요시위 1천 회 현장 스케치
- 2011. 12. 30 16:11 화제
- ㆍ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 우리가 함께 내야 할 목소리 “일본 정부는 진심으로 사죄하라”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외쳤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굳게 귀를 막고 있는 일본 정부를 향한 단호하고도 간절한 외침이었다. 묵묵부답 일본 정부를 향한 천 번의 외침 지난 12월 14일 정오,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따른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수요시위가 열렸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라는 피켓을 든 제1회 수요시위가 시작된 이후 천 번째 날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20년 동안 이어진 수요시위는 단일 집회로는 유례없는 세계 최장 기록을 세웠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주관으로 열린 제1천 회 수요시위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중 강일출, 길원옥, 김복동, 김순옥, 박옥선 할머니가 참석했다. 한명숙 전 총리,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 등의 정치인과 배우 김여진, 이서진 등 각계 인사는 물론 3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뜻을 같이했다. 배우 권해효의 사회로 진행된 집회는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풍물패의 공연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할머니들과 함께 정의와 평화를 외쳐온 이들의 활동 보고와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생존자 대표로 발언에 나선 김복동 할머니(86)는 이 자리에서 “일본은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 활짝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소녀들을 먼 나라 전쟁터로 끌고 가 노예로 짓밟았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부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백발 늙은이들이 매주 거리에 나앉아 외치는 이 소리를, 그리고 이 아픈 역사를 모르지는 않을 것인데 일본 정부에 하루빨리 사죄하라고 엄중하게 말해주면 좋겠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뒤이어 시위 참석자 전원은 일본 정부를 향해 △전쟁 범죄 인정 △진상 규명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 교과서에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의 일곱 가지 요구사항을 촉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번 수요시위에서는 매주 평화를 염원하는 시위를 계속해온 일본대사관 앞 거리를 ‘평화로’로 이름 붙이는 캠페인과 함께 시민들의 기부로 제작된 ‘평화의 비(평화비)’ 제막식이 열렸다. 지난 2010년 10월 13일에 열린 제939회 수요시위에서 발의된 ‘천원으로 세우는 평화비 건립 모금 제안’에 따라 피해자 할머니들과 정대협 봉사자들을 비롯한 국내외 수많은 이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았고, 이를 드디어 ‘평화로’에 세우게 된 것이다. 한복을 입고 작은 의자에 걸터앉은 소녀는 ‘위안부’란 이름으로 희생당해야 했던 피해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의자 옆 돌바닥에는 ‘1992년 1월 8일부터 이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2011년 12월 14일 천 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우다’라는 문구가 한글·영어·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소녀의 어깨에 앉아 있고, 피해자들의 오랜 기다림을 반영하는 의미로 바닥에는 소녀가 아닌 할머니 모습으로 그림자를 형상화했다. 이에 대해 일본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은 12월 8일 기자회견을 열어 평화비 설치를 중단시켜달라는 요청을 전달했고, 제막 이후인 12월 18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우리 정부에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고 나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1천 회를 맞는 이번 수요시위는 서울뿐 아니라 대구, 부산, 광주 등 30여 도시에서도 함께 열려 연대의 희망을 꽃피웠다. AP·로이터통신과 일본 NHK·후지TV 등 해외 언론사들도 취재에 나섰다. 미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를!’이라는 공동 슬로건으로 평화 행렬에 동참했다. 등록된 남은 생존자 63명, 시간이 많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의 역사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됐다. 1990년 37개 여성단체가 참여해 정대협을 출범하고, 199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는 처음으로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 증언에 나서면서 수요시위의 싹이 움트게 됐다. 이후 혼자서 한 맺힌 세월을 감당해온 피해자들이 속속 목소리를 내게 됐고, 점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과거 청산 문제, 여성 인권 문제 등을 공론화하는 계기로 확산되기도 했다. 정기 수요시위에 모인 이들은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과 문제 해결 및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요구해왔다. 처음에는 ‘내 잘못’이라며 가슴을 치고 고개를 숙여 피하던 할머니들은 점차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왔고, 고통스러움을 견뎌내며 쓰라린 역사를 증언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삼복더위에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에도,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엄동설한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수요시위를 통해 ‘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부끄러운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정대협과 피해자 할머니들 몇몇이 모여 시작한 외로운 싸움은 일반 시민, 학생들, 일본을 비롯한 외국의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평화의 연대로 확산됐다. 정대협이 주최하는 수요시위는 20개 정대협 회원단체와 여성단체, 뜻을 함께하는 수많은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등 일반 시민들이 주관하고 참여해 이어온 소중한 역사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폴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필리핀, 태국, 버마 등 약 23개국 60여 도시의 수만 명이 이끌어온 소중한 세계 연대의 열매이기도 하다. 또 피해자와 시민들이 연대하는 장소,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공간, 여성 인권과 평화를 외치는 장, 국경과 이념은 물론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연대의 장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하지만 수요시위는 이제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아야만 할 우리 역사의 아픔이자 시대의 비극이다. ‘다 함께 모여 한 목소리를 내면 빨리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집회를 시작했던 피해자 할머니들은 수요시위가 1천 회를 맞는다는 사실이 암담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늙고 아픈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왔지만,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그 어떤 공식적인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며 우리 정부 또한 특별한 대책이 없다. 뻔뻔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가슴을 치다가도,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냉담한 시선이 더욱 서운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곳에 모이는 할머니들의 소원은 ‘마지막 수요시위’에 참석하는 것이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받아내고, 함께 목소리를 내준 고마운 사람들과 모여 마지막 수요시위를 연 뒤, 짧게나마 후련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다 눈을 감게 되길 매일 간절히 기도한다.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흐르고, 할머니들은 가슴속 응어리를 묻어둔 채로 세상을 등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벌써 열여섯 명의 할머니들이 떠났다.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신고자 234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63명뿐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분들도 고령으로 인한 각종 질병과 일본군 ‘위안부’ 생활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피해자들의 평균 나이 86세. 그들 중 3/4이 돌보는 가족 없이 혼자 지내고 있으며 60% 이상이 주위 사람의 부축 없이는 거동조차 힘든 상태다.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함께 힘을 실어야 하는, 간절하고도 강력한 이유다. 오늘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1천 회 수요시위에 쏟았던 관심을 함부로 놓아버리지 말고, 할머니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가져가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른다면 일본 정부는 지난날의 과오를 씻고 잘못을 사죄해야 할 대상을 모두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또 다른 범죄이자 비극을 저지르는 일이다. 일본 정부가 일본 국민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으려면, 세계평화를 선도하는 나라로 제 몫을 할 수 있으려면,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예의를 다하려면,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행동에 나서길 바란다. 과거에 눈을 감는다면, 현재도 미래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때이다. “제1천 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함께한 이들의 목소리”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팀 올해로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출연 배우들은 이날 직접 무대에 올라 극중 ‘말하라’ 독백을 낭독하며 참가자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여성의 성(性)에 대한 신랄하고도 유쾌한 이야기를 다룬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매 공연마다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문제를 반영한 연출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왔는데, 이번 10주년 공연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모놀로그를 통해 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여덟 번째 독백으로 삽입된 ‘말하라’는 원작자인 이브 앤슬러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직접 만난 뒤 보고 들은 얘기를 한 편의 시로 만든 것으로, 당시의 혹독한 현장을 담담하지만 강한 문체로 묘사한다. ‘위안부’ 시절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말하라’가 흘러나오는 동안 현장에 있던 할머니들은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고, 사회를 맡은 권해효는 “가슴이 먹먹해진다”라고 했다. 더불어 제작사는 연극의 수익금 일부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터전인 ‘나눔의 집’에 기부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공연을 하면서 ‘말하라’ 모놀로그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마침 천 번째 수요시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 모두 반드시 참석해야 된다는 사명감 같은 걸 느꼈어요. ‘말하라’는 연습 때나 공연 때 수십 번도 넘게 했던 독백인데, 직접 이 무대에서 하려니 다른 때와는 무척이나 느낌이 달라서 마음을 다잡으며 읽느라 힘들었어요. 사실 공연 때는 너무 격정적으로 읽으면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데 힘들어하실 수도 있기 때문에 감정을 순화시키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앞에 할머니들이 앉아 계시니 단어 하나하나가 더 절절하게 느껴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아서 힘겹게 읽었네요. 앞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우리 배우들도 더 많이 애써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단순히 연기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계속 가슴에 새기고 가야 할 문제라는 생각을 했어요.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공연해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린 나이에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또 평생을 그 상처 속에 살아야만 했던 그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어디선가 또다시 자행될 수도 있는 이러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조속히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전곡고등학교 2학년 임수진·홍다솔·김솔 1천 회를 맞은 수요시위에는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듯 각계 인사들은 물론 시민들과 학생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다수 참여해 희망을 확인하게 했다. 학생들은 시위 내내 일본 정부에 대한 규탄의 내용과 할머니들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 중에는 현장 자원봉사를 지원해 참여한 이들도 있었고, 역사 수업의 일환으로 같은 반 친구들이 단체로 찾기도 했다. “매주 수요시위가 열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이번이 1천 회라는 것을 듣고 의미 있는 자리라 생각해서 찾아오게 됐어요. 직접 현장에 와본 건 처음이에요. 참여해보니 마음이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하고 미묘해요. 할머니들을 뵈니 반갑기도 하고, 이렇게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무척 다행이란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데 꼭꼭 문 닫아 걸고선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본 정부가 야속하게 느껴져요. 할머니들의 요구를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사실 학교 수업시간에는 일제강점기 내용을 배울 때 강제징용이나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가 짧게 한두 줄 정도만 나오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피해를 겪었는지 잘 몰라요. 더 자세히 확실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할머니들이 아까 우리 같은 어린 학생들이 많이 와서 정말 고맙고 힘이 된다고 하셨는데, 저희도 할머니들이 일본으로부터 정당한 사과와 보상을 받으실 수 있도록 계속 힘을 드리고 싶어요. 이제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20년 동안이나 일본이 모른 척했으니 그 사이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죠. 방학하고 나면 또 다른 친구들을 더 모아서 이 현장에 다시 나올 거예요.” # 일본인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수요시위 1천 회를 맞아 세계 각지에서는 다양한 연대 행동이 열리고 있다. 하루 전날인 12월 13일에는 뉴욕 쿠퍼버그 홀로코스트센터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이 만나는 행사가 열렸고, 14일 일본 정부부처가 집결되어 있는 가스마가세키의 외무성 건물 주변에서는 일본 시민들이 서로 손을 잡은 채 ‘외무성을 인간 사슬로 포위하자’라는 연대집회를 가졌다. 이렇듯 서울 수요시위 현장에서도 많은 외국인들이 참여해 일본 정부의 조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했는데, 특히 일본의 책임에 공감하는 일본인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눈에 띄었다. “저희는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에서 ‘아이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어요. 오늘 이 시위에 함께하고자 회원들과 함께 어제 한국에 왔어요. 이 플래카드는 회원들 한 명 한 명이 할머니들을 응원하고 일본 정부의 행동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마음을 담아 직접 손으로 쓴 천 조각들을 모아 만든 거예요. 직접 이 자리에 와보니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무엇보다 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참 대단하네요. 그들이 귀여운 목소리로 ‘할머니, 힘내세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기쁜 마음이 들어요. 저는 20년쯤 전에 아시아여성회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굉장한 쇼크였죠. 이 문제는 한국인들뿐만이 아니라 일본인들도 함께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과거의 행동에 대해 명확하게 사죄하고 책임져야 하고요. 일본이 사과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발전도 없을 거예요.” “저희(야만바·나쓰미)는 직업이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어떤 단어나 말보다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힘을 보태려고 해요. 규슈 유후인에 살고 있는데 몇 년 전에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됐어요. 오늘이 시위 천 번째 날이라고 하는데 저희가 할머니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싶어요. 이 무궁화 그림은 ‘상처 위에 핀 꽃’이라는 내용이에요. 부디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고 양국이 서로 도와가며 잘 살 수 있게 되길 바라요.”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박동민 ■자료 제공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www.womenandwa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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