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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187 건 검색)

헌혈 봉사하던 30대 청년, 장기기증으로 5명 구하고 하늘라나로
헌혈 봉사하던 30대 청년, 장기기증으로 5명 구하고 하늘라나로
2024. 12. 13 13:30사회
...장기기증으로 5명 살린 한영광씨.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헌혈과 봉사활동을 하며 ‘나누는 삶’을 실천하던 30세 청년이 뇌사 상태에 빠진 후 장기를 기증해 5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9살·10살 자녀 둔 엄마, 장기기증으로 6명 살리고 하늘나라로
9살·10살 자녀 둔 엄마, 장기기증으로 6명 살리고 하늘나라로
2024. 11. 01 13:37사회
... 6명 살린 이근선 씨(오른쪽).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9살, 10살 두 자녀를 둔 30대 엄마가 뇌사 상태에서 장기기증으로 6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달 5일 이근선씨(38)가...
한국 여행 중 뇌사 빠진 태국인, 장기기증으로 5명 살리고 떠나
한국 여행 중 뇌사 빠진 태국인, 장기기증으로 5명 살리고 떠나
2024. 07. 10 10:10사회
...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뇌사상태에 빠졌다. 급히 한국에 온 가족들은 큰 슬픔에 빠졌지만 뇌사장기기증에 동의해 심장·폐장·간장·신장 등을 기증해 5명의 생명을 살렸다. 렁통쿰쿨의 가족들은 “그가...
‘아동 후원’ 박준영씨, 장기기증으로 5명에 새 생명
‘아동 후원’ 박준영씨, 장기기증으로 5명에 새 생명
2024. 07. 02 20:33사회
... 살리고 하늘로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달 5일 고려대구로병원에서 박준영씨(47)가 뇌사장기기증으로 다섯 생명을 구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2일 밝혔다. 박씨는 지난 5월6일 사무실에서 일하다 몸...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스포츠경향(총 47 건 검색)

연극배우 주선옥, 뇌사장기기증으로 7명에 새 생명
연극배우 주선옥, 뇌사장기기증으로 7명에 새 생명
2024. 04. 18 16:50 연예
뇌사장기기증으로 7명의 생명을 구한 배우 故 주선옥. 사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연극배우 주선옥이 뇌사장기기증으로 7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주선옥의 장기기증 소식을 18일 전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주씨는 지난 4일 연극 연습 도중 갑작스럽게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상태가 됐다. 주씨는 뇌사장기기증으로 심장, 폐장, 간장, 신장(좌, 우), 안구(좌, 우)를 기증하며 7명의 생명을 살리고 지난 10일 세상을 떠났다. 주씨의 가족은 의료진에게 회생 가능성이 작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장기기증을 통해 다른 사람의 몸속에서라도 살아 숨쉬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뇌사장기기증으로 7명의 생명을 구한 배우 故 주선옥. 사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서울 쌍문동에서 1남1녀의 장녀로 태어난 주선옥은 ‘하카나’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권력에 맞서 진실을 외쳐라’ ‘유치뽕짝’ 등 다양한 연극에 출연해왔으며, 현재 기독교 영화의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주씨의 아버지는 장기기증원을 통해 “아직 어리고 젊은 나이에 떠나는 너에게 해 준 것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하늘나라에서는 편히 잘 지내고, 삶의 끝에 나눈 생명을 통해서라도 네가 꿈꿔온 일들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주씨의 장례가 치러진 11일은 그가 연출한 세월호 10ㅈ기 추모 공연 ‘너를 부른다’이 첫 무대가 올려지는 날이라 슬픔이 더했다. 동료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그에게 애도와 존경을 표하며 극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변효순 원장 직무 대행은 “생명나눔은 아픈 이의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일이자, 내 사랑하는 사람 몸의 일부가 다른 생명을 통해 살아 숨 쉴 기회”라며 “뇌사장기기증을 통해 숭고한 나눔을 실천한 기증자와 유가족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임영웅 팬클럽, 40명 장기기증 희망등록 서약식
임영웅 팬클럽, 40명 장기기증 희망등록 서약식
2024. 03. 14 11:39 연예
임영웅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미스터트롯’ 진(眞) 4주년을 맞은 임영웅의 팬클럽이 장기기증 희망등록 서약식을 진행했다. 지난 9일 재단법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 대구별빛스터디방’ 회원들이 팬클럽 최초로 장기기증 희망 등록 서약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는 임영웅의 ‘미스터트롯’ 진 등극 4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 장기기증 희망 등록 서약식에는 40명의 회원이 참석했다. 팬들은 “특별한 날을 더 의미 있게 기념하고자 회원들과 함께 서약식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임영웅과 ‘영웅시대 대구별빛스터디방’의 나눔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영웅시대 제공 ‘영웅시대 대구별빛스터디방’은 임영웅의 음악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10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모임이다. 이들은 다양한 기부 활동을 통해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특히 작년 12월에는 모금한 성금을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들의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해당 기부금은 지난 2월 19일 대학생 2명, 고등학생 1명 등 총 3명의 유자녀에게 전달됐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대구·경북지부 천세균 본부장은 “영웅시대 대구별빛스터디방 회원들이 보여준 생명나눔의 온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임영웅은 오는 5월 25일과 26일 양일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전국투어 콘서트 ‘IM HERO’ 앙코르 공연을 펼친다.
50대 강미옥 씨, 하늘의 별이 되어 5명에 새 생명 선물…뇌사장기기증으로 생명나눔
50대 강미옥 씨, 하늘의 별이 되어 5명에 새 생명 선물…뇌사장기기증으로 생명나눔
2023. 09. 04 06:52 생활
먼저 떠난 아빠와 언니, 하늘나라에 만나 함께 행복하길 왼쪽부터 기증자 강미옥 님, 딸 이진아 님. 사진제공|한국장기조직기증원 한국장기조직기증원(원장 문인성)은 7월 26일 삼성서울병원에서 강미옥(58세) 님이 뇌사장기기증으로 5명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천사가 되었다고 밝혔다. 강 씨는 지난 7월 22일, 개인 사업장에서 일하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하여 치료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상태가 되었다. 강 씨는 뇌사장기기증으로 심장, 폐장, 간장, 신장(좌, 우)을 기증하여 5명의 생명을 살렸다. 강 씨는 가족에게 만약 불의의 사고로 뇌사상태가 된다면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가족들은 강 씨의 생전의 뜻을 이뤄주고자 기증에 동의했다. 강 씨의 딸 이진아 씨는 “아빠 초등학교 4학년 때 사별하고, 친언니가 22살에 사고로 떠나보냈다. 이 세상에 남은 건 엄마랑 저밖에 없는데 고생만 하고 떠나신 것 같다. 하늘나라에서는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살길 바란다”며 기증 결심의 이유를 말했다.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5남 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강 씨는 밝고 활발한 성격으로 어려운 사람을 보면 먼저 챙겨주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활동적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렸으며, 난타와 라인댄스 등 다양하게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강 씨의 딸 이진아 씨는 “우리 다음 생에 만나서는 오래오래 헤어지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 하늘나라에서 아빠랑 언니랑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엄마가 사랑하는 손자 시현이 씩씩하게 잘 지낼 테니 가끔 꿈에 나와줘. 엄마는 내 인생의 전부였고 삶의 낙이었어.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라고 말했다. 문인성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하늘에 아름다운 별이 되신 기증자 강미옥 님과 유가족에게 생명나눔 실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살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아름답게 이별하여 기억되는지도 중요한 것 같다”며 “생명나눔을 통해 다시 살게 된 분들을 대신하여 모든 기증자와 기증자 유가족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기증자 강미옥 님, 손자 김시현 군. 사진제공|한국장기조직기증원
부천성모, 생명나눔 장기기증 캠페인 실시
부천성모, 생명나눔 장기기증 캠페인 실시
2023. 08. 20 09:34 생활
장기 기증자와 수혜자 편지 스토리 전시 및 기증희망 등록 내원객 및 교직원 대상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개선 및 기증문화 확산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병원장 김희열)은 장기기증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을 해소하고 장기기증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과 함께 8월 7일(월)부터 11일(금)까지 ‘생명나눔 장기기증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번 캠페인에서는 장기기증을 통해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전파하고자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의 유가족과 그 장기를 받아 새 삶을 살게 된 수혜자의 편지 스토리 전시회가 같이 진행되어 교직원과 내원객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장기기증이란 뇌사시나 사망 후 장기의 일부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조건없이 나누어주는 것으로, 1명의 뇌사자 장기기증으로 신장, 간장, 심장, 폐장, 췌장, 췌도, 소장, 안구(각막) 등 최대 9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선물할 수 있는 숭고한 나눔이다. 한편 부천성모병원은 간이식, 신장이식, 각막이식 등 장기이식수술을 통해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새 삶을 선물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포커스]장기기증 줄고, 그마저 철회까지(2018. 01. 09 10:38)
2018. 01. 09 10:38 사회
ㆍ이식 대기자는 평균 3년 이상 기다려… 시신 예우 소홀 사례로 번복 증가 2016년 한 해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대기자는 3만1923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가 통계를 잡기 시작한 2000년 5343명에 비해 6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의 수는 매년 늘고 있다. 의학기술 발달로 과거에는 이식수술이 불가능했거나 이식을 받아도 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식만 받으면 살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뇌사자로부터 이식받은 신장이나 췌장과 같은 장기는 한 번 이식 받으면 11년까지 생존할 확률이 각각 85.79%, 86.81%로 높은 수준이다. 심장을 이식 받은 환자도 67.62%가 11년 이상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살아있는 사람의 신장을 이식 받은 환자의 91.2%가 이식 11년째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2016년 기준). 장기이식만 받으면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늘어가지만 문제는 장기이식을 희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유교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각막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때 장기기증 희망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적이 있지만 이내 열풍은 사그라졌다. 기증희망이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지 않다. 당사자가 생전에 등록을 취소하거나, 유족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장기기증은 할 수 없다. 2016년 장기이식 대기자는 3만1923명에 달했지만 장기기증으로 이어진 사례는 2700여건에 불과하다. 각 장기별로 나눠도 최대 4000여명만이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네이버TV 웹드라마 화면 캡처 이식대기 중 사망자 지난 5년간 7766명 장기이식관리센터 통계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이식대기 등록을 한 날로부터 이식수술을 받기까지 평균 대기시간은 2016년에 1196일이다. 3년 이상을 기다려야 장기이식이 가능한 셈이다. 그나마 폐는 평균 116일을 기다리면 장기이식이 가능하다. 신장은 1934일 즉, 5.2년을 기다려야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장기이식 평균 대기시간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장기기증을 희망하는 사람보다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평균 1146일을 기다려야 했다면 2015년에는 평균 1185일을 기다려야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하루 평균 4명의 환자가 끝내 장기이식을 받지 못한 채 사망한다.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장기이식을 받지 못해 숨진 사람은 2013년 161명을 기록했고, 지난해 말까지 5년간 7766명(누적)이 이식대기 등록 중 사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10월 한 언론에서 병원이 장기기증한 20대 환자의 시신을 제대로 예우해주지 않고 유가족에게 시신처리를 시켰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불신은 더 높아졌다. 실제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해당 보도 이후 기증을 철회하려는 문의가 늘었고, 실제 기증의사를 철회한 건수도 평소 대비 9배 증가했다. 월평균 취소자는 150명 내외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보도 직후 해명자료를 내놓고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업무협약을 맺은 병원은 기증원이 장례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기타 병원은 매뉴얼을 만들어 장례지원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아들의 생전 기증의사에 따라 장기기증을 했다가 제대로 된 예우도 받지 못한 사례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별도의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는 “해당 병원은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협약을 맺지 않고 별도로 뇌사판정 대상자 관리를 하는 전문기관 병원”이라고 선을 그으며 “다만 운구과정에서 기증자 예우가 다소 소홀했다”고 밝혔다. 장기이식관리센터는 지난해 12월 장기이식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KBS와 ‘컨버전스티비’가 공동제작한 <뜻밖의 히어로즈>라는 10부작 드라마를 제작지원하기도 했다. 살인사건 현장을 조사 중이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범죄조사팀 수석연구원이 의문의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진 뒤 3명의 고교생에게 장기를 이식해주고, 그들은 특별한 힘을 갖고 범인을 찾아낸다는 내용의 웹드라마다. 다양한 홍보를 통해 인식을 개선하는 것도 좋지만 문제는 당장 장기기증을 희망한 사람들이 기증의사를 번복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뇌사자를 위해 고별기도를 하고, 유가족의 장례절차를 함께 도우며 매년 추모행사를 열기도 한다. 그러나 병원마다 장기기증자에 대한 예우는 천차만별이다. 때문에 소위 ‘나쁜 사례’가 나오면 장기기증 취소자가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웹드라마로 홍보, 인식전환은 ‘글쎄’ 장기기증 독려 차원에서 만들어진 웹드라마 역시 청춘드라마 이상의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웹드라마 속에는 뇌사상태에 빠진 수석연구원의 장기가 적출되기 전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의사의 최종 뇌사판정 뒤에도 다시 한 차례 뇌사확인 및 뇌파검사를 하고, 뇌사판정위원회를 열어 장기기증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또 한 가족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하자 “식물인간은 자가호흡이 가능하고, 약간의 움직임도 있기 때문에 뇌사자와 달리 장기이식이 안 된다”는 정보도 제공한다. 그러나 이야기 전반이 세 고교생의 삼각관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좋은 뜻으로 장기기증을 희망했다가 취소하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줄 만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한연자씨(54)는 “아이들과도 여러 차례에 걸쳐 상의한 끝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지만 취소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씨는 2015년 남편과 함께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다. 한씨는 “(기증자 시신을 함부로 다뤘다는) 보도도 봤고, 주변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신장만 떼간다더니 폐도 가져갔다더라’ ‘시신을 아무렇게나 꿰매서 나중에 유가족이 수습해 보면 시신이 너덜너덜하다더라’ 등의 말을 계속 했다”며 “비록 죽으면 고통도 없다고는 하지만 께름칙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기증이 안 된다고는 하지만 굳이 아이들 귀찮게 하지 않고 내 선에서 취소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장기이식관리센터는 “향후 모든 병원에서 동일한 장례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표준화를 추진할 예정이며, 기증자 유가족분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집

레이디경향(총 7 건 검색)

의사 꿈꾸던 12세 소년…5명에 장기기증 후 하늘로
의사 꿈꾸던 12세 소년…5명에 장기기증 후 하늘로
2022. 05. 02 11:35 화제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김상현 군. 한국장기조직 기증원 제공의사를 꿈꿨던 12살 소년이 생명 나눔을 실천하고 하늘의 별이 됐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김성현 군이 심장, 신장, 간장, 폐장 등을 또래 5명에게 기증하고 숨졌다고 밝혔다. 김 군은 지난 4월 6일 두통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김 군의 부모는 의료진의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점차 나빠지는 아이의 상태를 보며 “착한 아이였으니 좋은 일 하면서 보내주자”며 기증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2남 중 첫째로 태어난 김 군은 조용하고 진중한 성격으로 “목이 아픈 엄마를 위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마음씀씀이가 깊었다고 한다. 김 군의 아버지는 “장기를 기증 받은 친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성인이 돼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건강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수 코디네이터는 “어리고 착한 아이가 떠난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도 힘든 일인데,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기증 동의해주신 보호자에게 감사하다”며 “아들이 다른 이의 몸속에서라도 다시 살아 숨쉬길 바라는 마음으로 상현 군이 좋은 일을 하고 가길 바라셨다”고 전했다.
장기기증
장기기증 서약한 아름다운 그녀, 이지애 아나운서
2012. 02. 03 17:41 연예
ㆍ“생명의 탄생만큼이나 값진 생명 나눔, 더불어 사는 기쁨 누리세요” 따뜻한 말솜씨와 사랑스러운 미소로 언제나 기분 좋은 진행을 해온 KBS 이지애 아나운서가 지난해 말 장기기증 서약을 통해 생명나눔운동에 동참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한마디 한마디가 무엇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 그녀의 진심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나운서 7년 차, 어느덧 한 남자의 아내가 된 아름다운 그녀를 만났다. 생명 나눔 마음먹게 한 어느 장기기증 부부의 사연 “안녕하세요.” 밝은 인사와 함께 이지애 아나운서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기분 좋은 목소리, 반갑게 미소 짓는 얼굴. TV에서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직접 마주하고 나니 모니터로 채 전해지지 못한 온기가 느껴졌다. 유행어를 살짝 보태자면, 형광등 100개가 아니라 난로 100개를 켜놓은 듯한 훈훈함이라고 할까. 얼어 있던 실내 분위기가 일순 따뜻하게 녹아든 건 비단 아나운서 특유의 친화력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와, 삼청동에 이런 카페가 있었네요. 한적한 오후의 카페는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짧은 감탄사가 섞인 간단한 소감만으로도 주위를 즐겁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방송국 밖에서 그녀를 만난 건 이번이 두 번째. 첫 번째는 지난 연말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친선대사 위촉식에서였다. 그녀는 지난해 말 장기기증 서약을 통해 생명나눔운동에 동참하며 누구보다 뜻 깊은 2011년을 보냈다. 진행자로 나섰던 KBS 연중 기획 ‘생명을 나눕시다’가 계기가 됐다. “KBS에서 연중 기획으로 진행했던 ‘생명을 나눕시다’ 특집 생방송의 MC를 봤어요. 진행자로서 시청자들께 ‘장기기증 서명하세요’ ‘문의주세요’라는 말씀을 드리면서도 제가 선뜻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신체발부수지부모라고, 부모님 생각에 늘 망설이기만 했는데 방송에 출연한 어느 장기기증 부부의 사연을 듣고 마음을 먹게 됐어요.” 장기기증으로 건강을 되찾은 남편과 그 일로 장기기증 서약을 하게 된 아내의 이야기였다. “장기기증 서약을 한 후에 아내분의 건강이 나빠지셨대요. 그런데 서약을 취소하기는커녕 건강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몸이 안 좋은 분들도 이렇게 의지를 가지고 계신데 건강한 제가 피하기만 했다는 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장기기증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고 오해하고 있거나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골수기증 같은 경우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알고들 계시잖아요. 예전에는 척수에 구멍을 뚫는 방법으로 힘들게 했는데 요즘에는 헌혈과 비슷한 방법으로 간편하게 할 수 있어요. 가까운 헌혈의 집에서 서약하실 수 있고 시술 비용도 전액 무료예요. 방송을 하는 저도 이런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일반인들은 더 모르시겠다 싶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해야겠다는 생각에 행동으로 옮기고 나니 무척 좋아요. 그동안 괜히 겁먹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장기기증을 할 때 가족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본인이 서약을 했더라도 장기기증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무효화되기 때문에 서약 전 가족과의 상의는 꼭 거쳐야 할 과정이다. 남편인 MBC 김정근 아나운서의 반응을 어땠을까? “사실 서약식을 하는 날 남편도 같이 가서 하려다가 녹화가 있어서 못 갔어요. 제가 장기기증 서약을 하겠다고 하니 본인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두 사람 모두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관심도 많아요.” 잃어가던 초심 일깨워준 동반자, 김정근 아나운서 아동심리치료사인 언니를 따라 학창 시절부터 발달장애 아이들을 만나온 그녀는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다. 아나운서의 꿈을 갖게 된 것도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이들의 목소리들을 세상에 전해주고 싶어서였다. “언니의 영향도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은 피하고 무서워할 대상이 아니라 다가가고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부모님의 교육을 받고 자랐어요. 언니를 따라 봉사활동을 다니며 각자의 삶이 너무 바빠 그들이 관심받지 못한다면 누군가 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확성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나운서에 지원하게 된 거예요.” 면접관의 눈에 들기 위한 번지르르한 공언이 아니었다. 진심 어린 그녀의 소망은 2006년 KBS 공채 아나운서에 합격하며 열매를 맺을 기회를 얻었다. 한창 아나운서들의 예능활동이 두드러지던 시기였다. ‘상상플러스’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랑받으며 그야말로 정신없이 달려오던 어느 날,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의도하지 않게 화려한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KBS에는 다양한 채널이 있고 KBS 제3라디오 같은 경우 장애인 방송도 있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나운서의 입장에서 그런 방송을 맡기가 쉽지 않았어요. 아나운서로서 시청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은 분명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지만 자꾸만 처음 마음과 멀어져간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죠.”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보이는 게 전부인 직업이기도 했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에 가십성으로 다뤄지기도 했고 마음을 담지 않으면 남의 이야기를 가식적으로 전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초심을 잃어간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이런 그녀의 고민에 길을 터준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남편인 김정근 아나운서였다. “저의 이런 고민을 알고 있던 남편이 어느 날 ‘지애야, MBC 아나운서들이 봉사활동을 다녔던 단체가 있는데 같이 가보지 않을래?’ 하고 제의를 해왔어요. 그러면서, 그곳에는 몸은 어른인데 생각은 아이인 사람들이 있다며 혹시 그들이 몸을 만지거나 불편하게 하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옆에 있어주겠다면서요.” 그녀 역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의 말대로 해맑은 얼굴의 지체장애인들이 다가와 몸을 만지고 손을 잡으려 했고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남자가 자기 여자친구를 만지는데 어떤 남자가 기분이 좋겠어요. 보통 남자라면 당장 달려와 손을 쳐냈을 텐데 그 사람은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볼 뿐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어요. 잠시 조용히 지켜보다 웃는 얼굴로 다가와 ‘저랑 2층 가서 놀까요?’ 하며 그분의 어깨를 감싸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아, 이 남자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작은 마음으로 내 여자, 내 여자친구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다. 여자친구의 인격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인격을 보듬는 그의 행동에 참 성숙한 사람이구나 싶었다고. 완전히 믿어도 좋은 사람이라는, 강한 믿음이 생긴 게 바로 그때였다. “제가 늘 하던 말이 ‘얼굴에 화장하는 남자와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을 거야’였어요. 그분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저랑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보이는 데 치중하는 직업은 스스로 정말 애써서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기 쉬워요. 남편은 오히려 제가 잃어버리고 있던 부분을 찾아주고 길을 열어준 사람이에요.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죠.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이어서 제가 장기기증 서약을 한다고 했을 때 흔쾌히 동의해줬어요. 사실 저보다 좋은 일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마치 큰일을 한 것처럼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워요.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홍보도 열심히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노력해야죠.” 7년 차 아나운서, 도전에 맞서다 KBS 신입 아나운서로 시청자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입사 7년 차,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선배’가 됐다. 비결을 물으니 쑥스러운 듯 겸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요. 편안함 아닐까요? 너무 예쁘면 질투 나고 또 너무 잘나면 얄밉잖아요. 사실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며 나의 장점은 무엇일까, 늘 고민했었어요. 특별히 발음이 좋다거나 글을 잘 쓰는 건 아닌데 사람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열게 하는 데는 자신 있었어요. 10분이면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는 친화력이 아나운서로서 저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그녀는 사람들의 질투를 불러일으킬 만한 충분한 요소를 갖추었다. 한번 보면 또 보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얼굴에(단지 예쁜 얼굴과는 다른) 주위를 밝히는 밝은 미소, 말솜씨는 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 성격까지 좋으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만도 한데 절대 미워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아마도 그녀의 진심이 느껴져서일 거다. “엄마가 저를 가지셨을 때 아들인 줄 아셨대요. 어렸을 때부터 선머슴으로 자랐어요. 여자친구들보다 남자친구들이 더 많았고요. 군인을 꿈꿨을 정도로 터프하고 씩씩한 성격이었는데 아나운서를 준비하며 사람들이 아나운서에게 기대하는 전형적인 분위기, 가령 여성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됐죠. 방송을 하면서도 이게 과연 내 본모습인가,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을 속이고 있나, 고민도 많았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예쁘게, 더 멋지게 보이려 애쓰는 방송국에서 그녀는 본래 자신의 모습보다 더 예쁘거나 멋지게 보일까 걱정했다. 포장된 모습으로는 진심이 전해지는 방송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입사 5년 차 때 ‘이야기쇼 락’이라는 토크쇼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대스타들을 만나는 심야 프로그램이었는데 MC의 섹시한 모습을 요구하시더라고요. 당황했죠. 전 살면서 한 번도 섹시해본 적이 없거든요. 낯선 헤어스타일, 처음 접하는 의상을 입고 방송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중에는 제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하고 갔어요. 역시 제 모습 그대로일 때가 제일 예쁘다는 반응이었어요. 방송도 더 잘됐고요.” 이런 그녀에게 지난해 진행했던 ‘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는 커다란 도전이었다. 방송사 입사 이후, 줄곧 편안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시청자를 만나온 그녀가 록 밴드들만큼이나 파격적인 패션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 인터넷이 들썩거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주위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편안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는데 너무 파격적이다, 아나운서로서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선배들의 조언도 있었다. “록 밴드들의 서바이벌 무대라니, 진행자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적어도 그 분위기와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에 도전해보기로 한 거예요.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언제 이런 무대에 서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점점 즐기게 되더라고요. 사실 저는 1FM(클래식 채널)만 듣는 사람이었어요. 그 이후로 록 음악도 듣게 됐어요. 편식하자 말자, 음식도 방송도. ‘TOP 밴드’를 하며 얻은 교훈이에요.” 2012년 새해가 밝은 지 한 달, 부지런한 그녀는 이미 새로운 도전에 한창이다. 지난해 말부터 벨리댄스를 배우기 시작했고 2년 동안 써왔던 글을 모아 봄쯤엔 에세이도 출간할 예정이다. “글쓰는 걸 좋아해요. 어느 순간부터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게 좋아요. 스스로를 다림질하는 느낌이랄까.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을 수도 있고요. 아나운서가 말을 하는 직업이지만 말을 정말 아껴야 하는 직업이기도 하거든요. 그동안 아껴두었던 저만의 이야기를 담을 생각이에요. 도전하고 실패하고 방황했던, 화장 안 한 이지애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많은 분들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연말쯤에는 예쁜 아이도 생겼으면 좋겠다는 수줍은 새해 소망도 내놓았다. 이름도 벌써 지어놓았다며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에는 엄마를 꿈꾸는 여인의 행복과 설렘이 가득했다. “요즘 생명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저의 나눔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만큼이나 값지고 아름다운 일이잖아요. 올 한 해 많은 분들이 생명나눔운동에 동참하셔서 나누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장소 협찬 / CAFE FOUR M(02-722-4440)>
장기기증의 날’ 만난 외국인 기증인 천사들
2011. 10. 11 15:24 연예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는 매년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시민들과 함께하는 캠페인을 펼쳐왔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9월 9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올해 캠페인에는 특별한 이들이 함께했다. 잠시 동안의 체류지, 스쳐가는 여행지가 될지도 모를 타국에서 생명 나눔에 동참한 외국인 장기기증인들. 서툰 한국어에 ‘인생’과 ‘삶’과 ‘생명’이 뒤죽박죽되고, 두 개뿐인 신장이 세 개, 네 개가 되기도 했지만 그깟 의사소통의 문제쯤이야 아무 상관없었다. 생명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만큼은 하나가 되어 통했기 때문이다. ‘미수다’ 미녀 4인방 에바(영국)·애나벨(영국)·브로닌(남아프리카공화국)·마리안(프랑스) 등장만으로도 주변이 환해졌다. 공식 ‘미녀’ 직함을 얻은 글로벌적인 미모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보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유쾌한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주위를 전염시켰다. “친구들이 좋은 행사가 있다고 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프랑스에도 장기기증을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즐거운 마음으로 왔어요.”(마리안) “남편은 이미 장기기증 서약을 했더라고요. 아직 얘기는 안 했는데 알게 되면 분명 좋아할 거예요.”(에바) 마음이 비단결 같기도 하지, 축제 현장을 즐기듯 시종일관 미소 가득한 그녀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동안 어렵게만 생각했던 장기기증에 대한 생각이 한층 무게를 던다. 18세 때 이미 고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장기기증 서약을 한 브로닌은 한국에서 다시 한번 생명 나눔에 동참하게 됐다. 알고 보니 영국에 있는 남동생이 신장 기증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 보니 더욱 관심을 갖게 됐어요. 언제든지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으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아깝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언젠가 내가 혹은 내 딸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은 값진 것이에요. 또 다른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건강관리에도 신경 쓰고 있습니다.” 브로닌은 가족 중심의 한국 문화가 더 넓은 범위로 확대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애나벨 역시 영국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장기기증 서약이다. 한국에서 기증할 수 없는 장기는 영국에서 기증할 계획이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그녀에게 한국은 이제 고향과 다름없다. “의미 없는 죽음은 피하고 싶어요. 제가 죽고 나서 누군가가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제 인생에도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요?” 주부 이알료사(우즈베키스탄) 결혼 17년 차 주부인 이알료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한국인 남편과 알콩달콩한 결혼생활을 하던 중 3년 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한국으로 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고 있는 다문화 기러기 가족이다. 지난해 다니던 교회를 통해 장기기증 서약을 한 그녀는 생명나눔운동에 적극 동참해 이번 장기기증의 날 캠페인에서 외국인 기증자 대표로 서약을 하게 됐다. 한국생활 3년 만에 한국 아줌마가 다 됐단다.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에게 한국은 이제 고국과 다름없는 곳이다. “죽으면 저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잖아요. 꼭 필요한 사람들과 나눠서 생명을 살리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니까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한국이건 우즈베키스탄이건 상관없어요. 생명을 나누는 일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충분히 값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재미교포 2세 고예솔씨(미국)&영어 강사 알렉스(미국) 영어 강사 고예솔씨는 재미교포 2세다. 미국에서 태어나 20년 넘게 살다 2년 전 한국에 왔다. 부모님의 고향이자 자신의 고국인 한국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기기증 서약 캠페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료 강사 알렉스와 함께 참여했다. 여느 미국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미국에서 장기기증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뿌리가 있는 한국에서 생명을 나누는 일에 동참하는 것은 더욱 의미가 깊다. 특히 작년에 할머니께서 암 진단을 받은 후로 생명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됐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가족에게 그런 일이 생기고 나니 그 간절함을 알겠더라고요. 미국에서 장기기증은 기본적인 정서예요. 요즘 한국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고예솔씨) “국적은 상관없어요.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니까요.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고 줄 수 있는 사람은 적어요. 도움을 받지 못해 매일 사람들이 죽어가고요. 내가 도울 수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죠. 일반 사람들이 장기기증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정보가 더 많아지면 자발적으로 장기기증에 참여하는 사람도 늘어나지 않을까요?”(알렉스) 건국대 외국인 대학생들 할쉬(인도)·알렉산드라(러시아)·안토니나(카자흐스탄)·나스짜(러시아)·로자(아르메니아) “죽는 장소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줘야죠!” 왜 러시아가 아닌 한국에서 장기기증 서약을 하게 되었냐는 물음에 국제무역을 전공하는 알렉산드라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일동은 폭소를 터뜨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한국으로 모여든 외국인 대학생들은 언젠가는 떠날 이곳에서 왜 장기기증 서약을 했느냐는 물음에 “지금 내가 한국에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부하는 분야도, 한국에 온 이유도 모두 달랐지만 어디에 있건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저도 한국에 오기 전까지 장기기증에 대해 잘 몰랐어요. 처음엔 내 몸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게 낯설었는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카자흐스탄에 계시는 부모님도 아시면 뿌듯해하실 것 같아요. 나중에 카자흐스탄에 돌아가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안토니나) 인도에서는 이미 많은 연예인과 유명인, 과학자들이 장기기증 서약에 동참하고 있단다. 전자공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할쉬의 할아버지 역시 돌아가시기 전에 각막과 신장을 기증하셨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의 일부분이 누군가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죽은 후에도 살 수 있는 거잖아요.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에요.”(할쉬) “한국에 와서 이런 좋은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참여하게 됐어요.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잖아요. 같은 나라 혹은 다른 나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로자)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취재 협조 /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장기기증인 김근묵·이경희 부부, 나눔으로 채우다
장기기증인 김근묵·이경희 부부, 나눔으로 채우다
2010. 07. 01 15:24 화제
ㆍ“아픔은 잠시지만 그 기쁨은 평생입니다” 한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보다 아름다운 게 있을까. 장기기증으로 세 사람에게 생명을 나눈 김근묵·이경희 부부는 나눈 만큼 더 커진 행복으로 오늘도 함께 길을 걸어간다. 아내는 남편 따라, 남편은 아내 따라 김근묵씨(60)와 이경희씨(62)는 부부 장기기증자다. 남편 김근묵씨는 1995년 1월 신장에 이어 2002년에 간을 기증했고 아내 이경희씨는 1995년 12월 신장을 기증했다. 김근묵씨가 아내를 ‘예비 간 기증자’라고 소개하니 이경희씨가 “이제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내비친다. “기증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특별한 거예요.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못하거든요.” 맨 처음 남편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신장을 떼어주겠다고 했을 때 이경희씨는 말리지 않았다. 남편의 의지가 결연하기도 했고 그가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걸 떼어서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거 자기가 준다는데 제가 뭐라고 할 수 있나요. 하나 줘도 건강하게 산다니까 그렇게 하라고 했죠.” 별일 아니었다는 듯 덤덤하게 말하는 이경희씨지만 사실 김근묵씨는 당시 수술을 마치고 꽤 고생을 했다. “보통 수술 끝나고 다른 사람은 금방 깨어나는데 남편은 서너 시간이 지나도 안 깨어나더라고요. 한참 뒤에 깨어나서는 저승사자를 봤다고 하고. 아프다고 하기에 ‘그럼 그 정도도 안 아플 줄 알았어?’라고 했어요(웃음).” 아내의 씩씩한 간병 덕분인지 김근묵씨는 금방 회복됐고 기증인과 이식인 모두 경과가 좋았다. 그렇게 김근묵씨는 오랜 시간 생각해오던 숙원을 이뤘다. “작은 일에는 소심한데 큰일에는 대범한 편이에요. 2, 3년 좀 덜 살면 어떤가 싶었어요. 젊은 시절 헌혈을 많이 했거든요. 남한테 주는 데 익숙했다고 할까요. 돈이 많아서 크게 도와주지는 못하니까 작은 것이라도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신체의 일부도 마찬가지였고요. 제가 성당을 다니긴 하지만 신앙심은 쥐꼬리만 하거든요(웃음). 종교적 신념이라기보다는 나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어요. 기증을 하고 나니 마음이 무척 좋더라고요.” 이경희씨가 신장 기증을 결심한 건 그런 남편을 지켜본 지 1년 만이었다. 같은 해 12월 경희씨는 같은 병원에서 신장이식수술을 받았다. 남편이 하도 아프다고 하니 정말 그렇게 아픈 건지 아니면 엄살이었는지 호기심 반, 좋은 일 하는 거 반이었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아내가 기증한다고 했을 때 잘했다고 했어요. 사실 제가 당신도 하나 떼어주라고 툭툭 장난 삼아 얘기하곤 했거든요(웃음).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기증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이경희씨는 남편을 따라 신장을 기증했다. 남편과는 달리 별로 아프지도 않고 수술 후 서너 시간 만에 돌아다녔을 정도로 회복이 빨랐다. 사람마다 아픈 정도가 다른데 그녀는 타고난 ‘기증 체질’이었다. “이미 남편이 한 번 했던 일이라 그런지 큰 결심이나 어려운 고민은 없었어요. 거창한 일이라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에요.” 부부는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를 통해 장기기증 활동가들과 꾸준히 교류 중이다. 지난달에는 다른 기증인 부부들과 함께 제주도로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함께 한라산 등반도 하고 ‘제주 라파의 집’에서 만성신부전 환우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벌였다.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투석받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거든요. 나는 참 호강하며 살고 있구나 느꼈죠. 신장이 세 개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하나 더 떼어줄 수 있잖아요.” 양로원 설립, 나눌 것이 많아 행복한 부부 김근묵씨와 이경희씨는 장기기증 후 삶을 사는 방식이 바뀌었다. 하나하나 인생의 짐을 내려놓을 시기,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지금 현재와 남아 있는 시간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좋은 생각만 하고 살아도 모자란 인생, 삶을 더욱 긍정적으로 보게 된 것도 장기기증을 통해 얻은 삶의 자세다. 이경희씨는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자식을 하나 더 얻었다. “장기이식을 하고 나면 아무래도 기증자 입장에서는 수혜자에게 연락을 하기가 힘들어요. 이식을 받는 쪽에서 부담스러워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몇 년 전에 ‘엄마’라고 부르며 수혜자 청년이 찾아왔더라고요. 우리 아들이랑 동갑이에요. 배 안 아프고 아들 하나 얻었구나 싶었죠.” 김근묵씨는 1995년 신장 기증에 이어 2002년 간을 기증했다. “신부전 환자들은 2, 3일에 한 번씩 투석을 받아야 해요. 직장생활은 물론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렵죠. 신장 기증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되찾아주는 거잖아요. 나로 인해 누군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면 그 행복감으로 제 삶까지 건강해져요. 생명을 나누는 건 말할 것도 없죠.” 두 사람은 현재 경기도 화성에 양로원을 열어 무의탁 노인들을 모시고 있다. 처음 김근묵씨가 양로원을 열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만류가 만만치 않았다. 교육공무원으로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었고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더없이 단란한 가족을 꾸리고 있는데 왜 힘든 일을 자처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남편의 뜻을 잘 알고 있던 이경희씨는 반대할 수 없었다. 양로원은 남편이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꿈이기 때문이다. “그냥 노인들이 좋았어요. 저희 어머니가 저를 마흔이 넘어서 낳으셨거든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장모님을 모시고 15년을 살았고요. 원래 우리나라가 효(孝)를 굉장히 중요시 생각하는데 최근 들어 부모와 어르신에 대한 생각이 많이 희미해졌어요.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좋은 걸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요. 양로원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내의 지지가 큰 힘이 됐어요. 무척 고마웠죠.” 양로원을 열기 위해서 김근묵씨는 만학도가 되었다. 양로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느라 골병들었다”며 그가 허허 웃는다. 명지대 평생교육원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2000년 성신양로원을 열어 어느덧 10년을 무의탁 노인들과 함께했다. “좋은 일은 전염된다고 하잖아요. 부부가 함께 좋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아요. 공감대가 있으니 서로 이해하는 부분도 크고요. 정말 뿌듯해요. 집사람이 항상 ‘받는 기쁨이 주는 기쁨보다 10배 더 크다’라고 말하거든요. 그래서 남을 도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소망이 있다면 이 사람 간 기증시키고(웃음), 죄짓지 않고 살아야죠. 꼭 사람이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말 한마디, 작은 마음가짐으로 죄 짓는 것도 많잖아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인생 열심히 살고 싶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살고 싶다는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비우고 나눠 가득 채운 부부의 행복만큼 환한 미소가 번졌다. <■ 글 / 노정연 기자 ■ 사진 / 강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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