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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334 건 검색)

“건물주와 쪽방 주민은 악어와 악어새…공공개발로 공생해야”
“건물주와 쪽방 주민은 악어와 악어새…공공개발로 공생해야”
2025. 02. 08 09:00경제
... 불렀다. 서울로 가출한 최씨는 60여 년 생애 중 50년가량을 용산구 동자동과 인근의 중구 양동 쪽방촌에서 보냈다. 50대 때 임대아파트에 입주하며 동자동을 떠났다. 그러나 임대아파트에 살 때도...
쪽방촌의 ‘희망고문 4년’…공공개발 끝내 공수표 되나
쪽방촌의 ‘희망고문 4년’…공공개발 끝내 공수표 되나
2025. 02. 08 09:00경제
... 지원받는다. 문제는 주거급여가 오르면 쪽방 주인들도 부담 없이 월세를 인상한다는 점이다. 쪽방 주민 D씨는 “한 평 조금 더 되는 방이 30몇만원이면 강남보다 비싸다. 쪽방 사는 사람들도 자기...
“폐지·고철 팔아”…인천 쪽방촌·노숙인들 17년째 성금 기부
“폐지·고철 팔아”…인천 쪽방촌·노숙인들 17년째 성금 기부
2025. 01. 20 14:04경제
... 이웃을 써달라며 1년 동안 모은 성금을 사랑의 열매에 전달했다. 올해로 17년째이다. 인천 동구 쪽방촌 주민들은 20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274만4380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전달된 성금은...
인천쪽방노숙인인천내일을여는집무료급식소기부
21일째 열대야 서울…탑골공원·쪽방촌 등에 병물 아리수 43만병 공급
21일째 열대야 서울…탑골공원·쪽방촌 등에 병물 아리수 43만병 공급
2024. 08. 11 11:15지역
... 제공 폭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서울시가 병물 아리수 43만명을 공급하기로 했다. 무더위 쉼터와 쪽방촌뿐 아니라 탑골공원에도 아리수 냉장고를 설치해 인근을 찾는 시민 누구나 꺼내 마실 수 있도록...

스포츠경향(총 29 건 검색)

임영웅 팬클럽, 꾸준한 선한 영향력 전파…68번째 쪽방촌 도시락 봉사
임영웅 팬클럽, 꾸준한 선한 영향력 전파…68번째 쪽방촌 도시락 봉사
2024. 10. 11 09:34 연예
임영웅 팬클럽 영웅시대밴드 가수 임영웅의 팬클럽이 쪽방촌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를 하며 선한 영향력 실천을 꾸준히 이어갔다. 임영웅 팬클럽 영웅시대밴드(나눔 모임)는 10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가톨릭 사랑 평화의 집에서 68번째 쪽방촌 도시락 봉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해당 팬클럽은 지난 2020년 5월 서울역 도시락 봉사로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하게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영웅시대밴드는 이번 봉사를 통해 “우리의 이웃사랑 실천은 계속될 것”이라며 “12일 임영웅과 영웅시대의 가을 소풍을 앞두고 있어 가을이 빛난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한편, 임영웅은 오는 10월 12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모델로 활약 중인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사회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쿠팡플레이와 함께 하는 하나은행 자선 축구대회’에 참석한다. ‘하나은행 자선 축구대회’는 임영웅이 주장인 ‘팀 히어로’와 기성용이 주장인 ‘팀 기성용’이 맞서는 특별한 경기를 예고해 연일 큰 화제를 모았으며 수익금은 전액 기부 예정이다.
임영웅 팬클럽, 67번째 쪽방촌 봉사
임영웅 팬클럽, 67번째 쪽방촌 봉사
2024. 09. 14 10:38 연예
영웅시대밴드 제공 영웅시대밴드 제공 가수 임영웅의 팬클럽이 쪽방촌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로 선한 영향력을 실천했다. 지난 9일 영웅시대밴드(나눔 모임)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가톨릭사랑평화의집에서 67번째 쪽방촌 도시락 봉사를 진행하며 150만 원을 기부했다. 영웅시대 밴드는 봉사를 진행하며 “작은 쪽방에서 무더운 여름을 나는 이웃들을 만날 때마다 한 끼의 도시락이지만 나눌 수 있어서 고맙기만 하다”며 “나눔은 내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 누군가를 돕는 것이지만 나눔은 나를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8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며칠 혹은 몇 주까지도 지속하는 심리적 만족감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라며 “행복 호르몬 엔도르핀은 남을 돕거나 나눌 때 정상치의 세 배로 증가한다”라고 덧붙였다. 영웅시대밴드 제공
‘나눔의 美’ 임영웅 팬클럽, 꾸준한 쪽방촌 도시락 봉사 훈훈
‘나눔의 美’ 임영웅 팬클럽, 꾸준한 쪽방촌 도시락 봉사 훈훈
2024. 07. 12 11:08 연예
영웅시대 제공 가수 임영웅의 팬클럽이 꾸준한 쪽방촌 도시락 봉사를 펼쳐 훈훈함을 자아낸다. 지난 11일 ‘영웅시대 밴드’는 서울시 용산구 가톨릭사랑평화의집에 150만 원을 후원하고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했다. 누적 후원 금액은 7350만 원에 달한다. 이날 해당 팬클럽은 “임영웅의 노래에 맞춰 쌀을 씻고, 감자와 고기 등 깨끗한 식자재를 요리해 도시락을 만들었다”며 “덥고 장맛비로 습한 여름이지만 ‘건행’을 외치며 골목 배달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영웅시대 제공 그러면서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인 나눔은 나눌수록 커진다”며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이승의 순례객인 우리가 가장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사랑 가득한 나눔의 실천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나눔은 모두가 함께 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미래를 희망차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온기를 나눠요” 임영웅 팬클럽 ‘영웅시대’ 쪽방촌 도시락 봉사
“온기를 나눠요” 임영웅 팬클럽 ‘영웅시대’ 쪽방촌 도시락 봉사
2024. 05. 11 08:00 연예
영웅시대 밴드 제공 임영웅 팬클럽 ‘영웅시대 밴드’가 63번째 쪽방촌 도시락 봉사에 나섰다. ‘영웅시대 밴드’는 지난 7일 천주교서울대교구 사회복지법인 가톨릭사랑평화의 집에 150만원 상당의 후원금을 기부했다. 누적 금액은 총 7050만원에 달한다. 그들은 “임영웅의 더블싱글 ‘홈’과 ‘온기’로 목소리로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며 “선한 기부를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실천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영웅시대 밴드 제공 ‘영웅시대 밴드’는 쪽방촌 이웃들에게 정성스럽게 반찬을 만들고 조심스럽게 전달했다고 알려졌다. 도시락 봉사를 마치고 그들은 “오랜만에 나온 신곡들로 얘기가 끊이지 않았고, 임영웅을 사랑하는 만큼 응원하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가 성공리에 마무리될 수 있길 기원한다”고 기대했다. 한편, 임영웅은 25일과 26일 이틀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24 콘서트 ‘IM HERO - THE STADIUM’(아임 히어로 - 더 스타디움)을 통해 팬들과 직접 만나 명품 보이스로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주간경향(총 5 건 검색)

[렌즈로 본 세상] 이른 폭염에 숨 막히는 쪽방촌
[렌즈로 본 세상] 이른 폭염에 숨 막히는 쪽방(2024. 06. 25 06:42)
2024. 06. 25 06:42 사회
전국이 폭염에 시달리던 지난 6월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쪽방촌. 사람 한 명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골목에는 출입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골목에 들어서자 처마에 달린 관에서 쿨링포그(주변 온도를 낮추기 위해 안개 형태로 분사되는 물)가 뿜어져 나왔다. 에어컨은 언감생심인 주민들이 그 아래 앉아 더위를 식혔다. 잠시 뒤 쿨링포그가 멈추자 골목엔 다시 후끈한 바람이 불었다. 폭염의 열기가 쪽방촌 골목을 맴돌다 쪽방으로 스며들었다. 밥상이랄 것도 없는 조촐한 탁자를 문지방 안에 두고 끼니를 때우던 김씨 할아버지는 “우리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은 이런 날, 자다 죽을까 겁난다”며 “방 안에 있으면, 덥다기보다 사우나처럼 숨이 막혀온다”고 했다. 밥숟가락을 든 할아버지의 얼굴엔 유례없는 6월 더위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렌즈로 본 세상
[서중해의 경제 망원경](3)쪽방촌 문제, 누리호처럼 성공하기를(2022. 07. 15 14:30)
2022. 07. 15 14:30 경제
지난 6월 21일 누리호가 우주에 진입했다. 한국이 독자적인 기술로 우주로켓 발사에 성공하기까지 (1992년 우리별 1호부터 2022년 누리 2호까지) 30년이 걸렸다. 한국형발사체 계발계획을 시작한 이래 6개의 발사체를 시도했는데, 이번에 성공한 누리호는 규모와 구성 측면에서도 가장 진보된 것이라고 한다. 누리호는 부품수가 37만여개로, 자동차(2만여)와 항공기(20만개)보다 많다. 누리호 2차 발사까지 비용은 약 1조9000억원이 들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누리호의 성공으로 한국은 자력으로 우주로켓을 발사한 11번째 나라가 됐으며, 1t 이상의 실용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는 7개국 반열에 올랐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7월 1일 민선 8기 지방자치단체가 새롭게 출범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오전 온라인으로 취임사를 발표한 직후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을 찾아 노숙인·쪽방 주민들과 관련한 3대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지원 방안은 쪽방촌 주변 ‘동행식당’ 운영, 노숙인 공공급식 횟수 확대 및 급식단가 인상, 쪽방촌 에어컨 설치 등이다. 전국적으로 쪽방촌 주민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쪽방 상담소가 있다. 2000년 처음 설치된 이후 현재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인천 등 5개 도시에 10개의 쪽방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서울시 실태조사에 의하면 쪽방 주민의 60% 이상이 60대 이상의 노인이어서 경제적 생활을 영위할 수도 없는 상황이며, 75%는 정부보조금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일당 잡부나 공공근로 등 어떤 형태로든 경제활동을 하는 쪽방 거주민은 전체의 13%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근로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시 빈민촌 문제는 선진국이라도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외곽에는 ‘방리유’라 불리는 이민자 집단 거주지가 있다. 2005년 프랑스 전역을 휩쓴 이민 2세 폭동도 발단은 여기에서였다. 미국의 대도시는 인종과 소득에 따라 거주지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빈민 지역은 ‘저소득·범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에서도 저소득층의 주거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고시원, 여관·여인숙, 쪽방, 비닐하우스 등 주택 외의 거처로 분류되는 열악한 비주택거주 가구가 증가했다. 빈민계층의 열악한 주거환경은 우리 경제의 성공 뒷면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다. 쪽방촌 문제의 본질은 우주로켓 발사와 빈민촌 문제는 무관해보인다. 그러나 이 두 사안은 한 사회의 문제 해결 방식과 역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도전 과제다. 공공정책의 관점에서는 ‘우주로켓을 쏘아올리는 기술력과 경제력을 보유한 사회에서 왜 빈민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경제학자 리처드 넬슨은 1977년 저서 <달과 게토>에서 ‘달에 인간을 보내는 아폴로 프로젝트에 성공한 미국이 왜 빈민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거의 반세기 전에 제기된 이 질문은 기술적 과제와 사회경제적 과제의 본질과 차이를 생각하는 틀을 제공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논점이 몇가지 있다. 첫 번째는 사안의 본질에 대한 이해다. 우주선을 달나라에 보내는 과제는 본질적으로 기술적 문제다. 이는 기술적 돌파와 혁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우주로켓 발사는 부품 37만여개를 조합하는 빅(Big) 프로젝트이지만, 프로젝트의 본질은 공학적 과제로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기술·경제적 과제를 구체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 빈곤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사회의 조직·작동 방식에 관한 문제다. 이 문제는 핵심에 대한 정의가 유동적이고 경제사회의 여러 층위가 교차하는 복합적 과제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쪽방촌 문제를 들여다보면 내부는 매우 복잡하다. 쪽방 면적은 일반적으로 1평(3.3㎡) 정도인데, 월평균 임대료는 18만원 정도다. 서울지역 1평당 아파트의 평균 월세 4만원을 크게 뛰어넘는다. 쪽방촌 거주자가 평당으로는 아주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는 역설이다. 쪽방촌 거주자와 관리자 및 소유자 사이에 얽힌 이해관계로 인해 거주자에게 주거급여 형태로 소득지원을 하더라도 이 돈은 소유자에게 이전돼 쪽방촌의 월세를 올리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장기적으로는 자립능력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지만, 고령자가 대부분이어서 근로활동을 할 수 없는 거주자들에겐 취로사업이 먹혀들지 않는다. 쪽방촌에만 한정되지 않는 만연된 노인 빈곤문제를 생각하면 근원적으로 복지체제를 재구상해야 한다는 요구가 등장한다. 현 체제에서의 변화는 쉽지 않다. 기존의 이해관계가 걸림돌로 작용한다. 근원적인 개혁이 매우 어려워 변화는 종종 미봉책에 머물곤 한다(쪽방촌을 현장에서 다룬 2권의 책을 언급해둔다. 탁장한의 <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의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오세훈 서울시장이 7월 1일 민선 8기 첫 민생 현장방문으로 서울 창신동 쪽방촌을 찾아 쪽방촌 지원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누리호와 쪽방촌 모두 국가적 과제 기술적 과제이건 사회경제적 과제이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도와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우주계획은 일단 합의를 보면 정파의 이념을 떠나 엔지니어들의 역량이 과제 성공의 관건이 된다. 실패를 통해 문제의 해법을 찾아갈 수 있다. 반면 사회문제는 출발선에서부터 합의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부터 관점이 대립한다. 빈곤문제를 개인의 역량 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경제 체제의 허점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정책 수단과 정부 개입의 범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근원적으로 빈곤문제의 본질은 맥락과 시스템에 의존한다. 이에 대한 관점과 이해는 객관적 과학기술 지식과 달리 한 사회의 세계관과 가치 체계를 반영한다. 누리호 성공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다음날 여러 조간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쪽방과 같은 빈민촌은 사고가 나서야 (그것도 부정적인 모습으로) 주목을 받는다. 누리호와 쪽방촌은 둘 다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서울시장이 업무 첫날에 쪽방촌을 방문해 언론의 주목을 끈 것은 시정의 우선순위를 여기에 둔다는 시그널이어서 고무적이다. 쪽방촌 문제와 같은 사회경제적 과제를 다루는 정책 담당자와 정치 지도자들은 우주로켓 발사와는 다르지만, 어쩌면 훨씬 더 어려운 과제를 다루고 있다. 우주를 향한 지속적 노력이 성공을 거뒀듯 우리가 당면한 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린다.
서중해의 경제 망원경
[‘감옥’에서 온 편지](2)‘닭장’ 속에서 떠올린 쪽방촌의 얼굴들(2021. 07. 12 15:15)
2021. 07. 12 15:15 사회
격리실은 가난한 사람의 주거지로 쓰이는 쪽방과 매우 흡사했고, 쪽방과는 달리 칸막이로 구분된 화장실이 있다는 점에서 책상과 침대를 뺀 고시원과도 닮았습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 김기남 기자 이 세계에 첫발을 디딘 날은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 3월 어느 오후였습니다. 수갑이나 포승줄을 차지 않은 채 검찰 호송차에서 내려 제 발로 걸어들어온 게 신기했는지, 하얀 방호복으로 온몸을 싸맨 교도관 너덧이 둘러싸고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병역법 위반으로 수감되는 사람은 앞으로 없을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어딘가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구차한 설명 따위에 쏟을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법원이 내 신념, 내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를 직접 말하는 건 스스로 파괴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닙니다.’ 내가 답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입소 절차를 마치고 신입 수용자를 2~3주간 격리하는 건물로 인계됐습니다. 십수년 전, 수감된 병역거부자의 회고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갖춘 방에서 눕고 앉기를 반복하며 첫 밤을 무사히 견뎠습니다. 방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관찰자의 시선으로 탐색하고 기껏해야 인터뷰 대상과 거리감을 좁히려고 문턱에 한시간 남짓 앉아본 게 전부였던 공간이 겹쳐 보였습니다. 격리실은 가난한 사람의 주거지로 쓰이는 쪽방과 매우 흡사했고, 쪽방과는 달리 칸막이로 구분된 화장실이 있다는 점에서 책상과 침대를 뺀 고시원과도 닮았습니다. 코로나19에 확진됐음에도 며칠간 쪽방에 꼼짝없이 갇혀야 했던 사람이 느꼈을 고통의 윤곽이 희미하게나마 잡히는 듯했습니다. ‘닭장’으로 불리는 방에서 15일가량 지냈을 뿐인 제가 한평짜리 공간에서 매일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의 마음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압니다. 전등 하나 없어 대낮에도 어두컴컴했던 복도를 지나기 위해 벽을 더듬어야 하는 건물이 스스로를 온종일 가두었던 사람. 흐린 날에는 천장과 벽을 따라 비처럼 물이 새는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 고요히 문을 닫던 사람. 2018년에 한국을 방문한 유엔(UN)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고시원이나 쪽방처럼 가난한 사람이 거처로 삼는 방을 ‘관과 같다(coffin-like)’고 했습니다. 국제인권기구 공식문서에 쓰이기에는 부적절한 면이 있지만, 인간의 존엄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문제를 강조하기 위한 극단적 표현이었습니다. 어떤 방은 연고가 없는 시신이 방치되는 장소가 된다는 점에서 그가 충격을 받아 그런 표현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서울역 건너편에 수많은 쪽방이 밀집한 동자동에 동행한 또래의 사진가는 한평생 서울에 살면서도 쪽방촌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도심이 개발된 후의 풍경을 의식에 각인한 세대 대부분이 그럴 겁니다. 보증금으로 맡겨둘 자산이 없거나, 주거급여 지원 없이 월세를 지불할 소득이 부족한 사람은 도시를 바쁘게 누비는 이들의 시야를 벗어난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갑니다. 최근 욕망의 화신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의 복귀와 함께 재산권이 헌법에 명시된 주거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파괴적인 주장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쪽방 밀집지역에 기존 주민과 공동체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약속한 정부는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올해도 쪽방에는 혹서기의 고난이 도래하겠지만, 조만간 공공재개발 사업의 구체적 계획이 동자동의 위태로운 긴장을 잠재울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
[골목내시경]중림동 골목-약현성당 뒤로 숨어 있는 쪽방촌·여인숙(2020. 07. 31 15:53)
2020. 07. 31 15:53 사회
서울역 뒤편에 서부역이 있고, 프랑스대사관 쪽 완만한 비탈길에 중림동이 있다. 중림동엔 천주교 약현성당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1891년에 착공해 그 이듬해 완공된 조선 최초의 공식적인 가톨릭 성당이다. 조선 사람으로 최초로 세례를 받았던 이승훈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이 근처에서 참수를 당했다. 때문에 약현성당과 서소문공원은 천주교 성지가 됐다. 중림동은 약현성당을 중심으로 길고 어둡고 구부러진 골목길을 펼치고 있다. 중림동은 약현성당을 중심으로 골목길이 펼쳐진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중림동 골목의 상당 부분은 사라졌다. 그리고 곧 남은 흔적마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아마도 약현성당과 비슷한 나이를 가졌을 기와집들은 그 긴 수명을 다할 날이 왔다. 골목길과 비탈과 담벼락에 쓴 ‘철거’란 붉은 글씨가 한 시대와 골목의 종말을 알리는 부고장으로 보인다. ‘당신의 흔적은 곧 이 도시에서 철거될 예정입니다.’ 철거라는 단어 하나가 아직도 버티고 있을 골목 주민들을 강렬히 압박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쪽에서 약현성당을 거슬러 오르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집과 골목을 볼 수 있다. 군데군데 빠진 이빨처럼 허물어진 집터가 공터로 남았고, 차들이 주차해 있거나 쇠줄로 출입을 막아 놓았다. 아주 오래된 집의 담벼락 넘어 오동나무가 푸르고 곧게 서 있다. 이 동네 골목엔 오동나무가 흔하게 보인다. 빈 공터에도 오동나무는 담벼락처럼 줄을 이어 서 있으나 누군가 부러뜨리고 꺾어버렸다. 그래도 나무는 질기게 살아남았다. 벽오동을 심으면 봉황이 날아온다던데, 오동나무를 심어 딸이 시집갈 때 장을 만들어 보낸다던데, 오동나무로 거문고를 짜서 풍류를 노래한다던데…. 이 골목의 오동나무는 폐기물이다. 도심 아파트단지와 쪽방촌이 골목 사이로 이웃한다. 좁고 긴 골목 끝에서 어지럽게 쓴 철거 글씨가 무색하게 노인네가 담배를 물고 길 아래 행인을 노려보고 있다. “언제 철거하나?”라고 묻자 “몇 년째 오늘내일한다는데, 때가 되면 하겠지” 하고 침을 뱉고 돌아섰다. 길가 부동산엔 커다랗게 ‘중림동 5구역 10·11지구 도시환경 정비사업’ 간판이 걸려 있다. 골목과 주택과 마을을 모두 밀어버리고 들어설 것은 겨우 거대한 빌딩 2채. 이미 이 도시에선 일상이 된 모습이다. 1976년에 발표된 조세희의 중편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앞부분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그러니까 집을 헐라는 거지? 우리가 꼭 받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이제 나온 셈이구나!” ‘난장이’ 가족이 받았던 철거 계고장. 그 집들과 골목을 밀고 들어선 아파트가 있다. 지은 지 50년이 된 ‘성요셉아파트’. 중림동의 또 다른 상징이다. 약현성당을 지키는 성채처럼 지어진 이 아파트의 원소유자는 성당이다. 조세희 소설 속 영희가 키우던 팬지꽃이 뿌리째 뽑히고 들어선 ‘낙원구 행복동’의 아파트는 이제 그 또한 낡고 위태로운 건물이 됐다. 시간이 흘렀으니 이 건물은 또 철거와 재개발의 복잡한 주판질로 바빴다. ‘난장이’ 가족이 겪었던 갈등을 고스란히 되짚은 것이다. 용적률을 높여 재건축을 기대했던 이들의 바람과 달리 도시재생사업에 편입되고 당분간 겉도 속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살아남은 골목길은 재개발 철거를 앞두고 있다. 성요셉아파트는 도시 순례객들의 단골 방문지로 떠오른다. 서대문공원 역사유적 관광자원 조성과 중림시장 특화거리에 맞물려 이 일대는 역사문화거점과 탐방로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아파트엔 아주 오래된 정서, 지난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소위 레트로 감성을 자극해 인기가 높다. 도심 속 70년대풍의 아파트는 찾아보기 어려운 색다른 풍경이다. 순례객들의 단골 방문지 성요셉아파트 50년 전만 해도 젊었을 주민들은 이제 대부분 노인이 됐고, 당시 화려했을 간판은 지금에 와서 촌스러운 모습으로 자리를 지킨다. 다만 도시재생사업으로 젊은 창업자들이 간간이 스며들고, 디자이너와 작가들이 둥지를 틀어 독특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아파트 건너편엔 건축가의 작품으로 도시서점도 들어섰다. 주민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LP점도 눈에 띄고 커피공방과 카페도 보인다. 그것들은 호기심 많은 나그네를 위한 것일 뿐 이곳의 낙원구 행복동 주민을 위한 시설로는 보이지 않는다. 성요셉아파트에서 약현성당을 돌아가면 중림동의 깊은 속살을 볼 수 있다. 여기저기 호박 넝쿨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호박처럼 얽혀 살기 때문인지 중림동의 속칭은 호박마을이다. 깊은 골목들이 넝쿨처럼 뻗쳐 꼬여 있고, 그 속에 쪽방촌이 숨어 있다. 성요셉아파트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여인숙 건물이 보인다. 건물 안 복도는 길고, 대낮인데도 촉수 낮은 전구는 복도를 겨우 비춘다. 한여름 복도로 난 숱한 문들은 굳게 닫혀 있다. 주민들은 어디론가 밥벌이를 나갔나 보다. 그 옆 건물엔 알코올 의존증을 앓는 이들을 위한 공동체 건물도 있다. 성요셉아파트는 중림동의 인기 있는 도심 순례지가 됐다. 쪽방촌 건물에서 튀어나온 사내가 골목에 버티고 선 또 다른 사내에게 물었다. “받았어?”, “아니”, “왜?” 답 없는 자를 뒤에 두고 사내는 부리나케 골목을 나섰다. 골목 밖에선 파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서류에 서명을 받고 상자를 나눠주고 있었다.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기업체에서 물품지원 행사를 나왔단다. 순순히 받아들고 돌아서는 이도 있고, 무언가 실랑이를 벌이며 핏대를 세우는 이도 있다. 물론 골목 안의 사내처럼 자기 앞에 배당된 자선을 거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쪽방촌의 영혼은 자유롭다. 골목 안에는 아주 오래된 피혁가게들이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있다. 가게 앞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지켜보던 주인은 “한창 때 중림동은 구두공장들이 가득했다. 밤새도록 구두를 만들어서 염천교 가게와 명동 맞춤 살롱에 수레로 실어 날랐다. 지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겨우 몇 군데 남았는데, 그나마 이제는 문을 닫아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간판에 적힌 가죽 전문이란 이름은 명성을 잃었다. 새벽차로 서울역에 도착한 이들은 양동, 도동 혹은 이곳 중림동의 여인숙에 짐을 풀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거나,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며 일할 수 있었다. 피혁가게 주인은 그 시절의 중림동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시절이다. 약현성당 남쪽 골목엔 유독 오래된 감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감나무에 푸르게 매달린 열매들은 제법 실하게 가을을 향해 몸을 불리고 있다. 성당 옆문을 마주 보고 선 기와집은 영국제 홍차를 팔고 있다. 골목의 정경은 바로 옆 쪽방촌과 많이 다르다. 성당을 곁에 두고 성당만큼 넓게 자리 잡은 가톨릭 출판사가 있어 철거를 앞둔 난장이들의 마을과는 다른 풍경의 우아함과 신성함을 자아내고 있다. 만리동고개와 손기정 체육공원 근처엔 일찌감치 말쑥한 아파트단지들, 그리고 연립주택들이 들어섰다. 그 주변 만리재길 쪽으로는 학교가 많다. 봉래초등학교와 환일고등학교, 소의초등학교가 있고 경기여자상업고등학교가 간판을 바꿔 달은 서울의료보건고등학교가 비탈길에서 학생들을 맞이한다. 교통 좋고 학교가 지척이며 곳곳에 공원이 들어선 곳이라 만리재길과 아현동 사이 주택가 골목은 오래전에 아파트로 개발됐다. 아파트가 들어서지 못한 곳엔 오피스텔 건물들이 자리 잡았다. 만리재에서 서울역 철길을 가로지르던 고가도로는 폐쇄돼 서울로7017이라는 공중정원이 됐다. 젊은이들이 찾아와 공원 구경을 하고 골목길의 막걸리 카페에서 양은 대접으로 탁주를 마신다. 참으로 생경한 광경이다. 골목 곳곳에 피혁가게와 구두공장이 남아 있다. 중림동에서 염천교로 가는 길가에는 생선을 주로 파는 시장이 있던 곳이나, 지금은 거의 문을 닫았고 채소 파는 노점상이 간간이 전을 펼치고 있다. 약현성당 위쪽엔 한국경제신문 건물이 거대하게 들어서 있다. 서울역과 서부역에서 부린 짐들을 보관하던 창고건물은 아마도 쓸모를 다한 채로 골목길 어귀를 지키고 섰다. 개발을 하려 해도, 재생사업을 진행하려 해도 어느 것 하나 쉬워 보이지 않다. 염천교의 상징 수제화 가게 중림동 앞에서 남대문을 향해 경의선 철길 위로 난 다리가 염천교다. 다리는 지금의 서울역인 경성역이 들어선 1925년에 지었다. 그 무렵부터 구두상가가 염천교의 상징이 됐는데, 중림동 일대와 염천교 그리고 길 건너 봉래동에 이르기까지 구두를 만들고 파는 거대한 권역을 이루었다. 염천교에 있던 수제화 가게들은 대략 500여곳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 대충 세어보면 그 10분의 1이나 남았을까 그마저도 여러 곳이 문을 닫았다. 거리의 표지판엔 경성역으로 모이던 피혁창고가 중림동과 일대에 있었고, 그에 잇대어 수제화 공장과 가게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공장들은 1990년대 후반에 성수동으로 대거 옮겼다가 지금은 그마저도 힘을 잃고 있다. 건물은 낡고, 가게들도 활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손님 좀 있느냐’는 질문에 상인은 “요즘 누가 구두를 맞춰 신나? 댄스화나 특수화 수요가 좀 있고, 나머지는 아무도 안 찾는다”고 말했다. 처참하긴 길 건너 봉래동 골목길이 더 극심해 ‘가게 임대, 업종 불문, 식당 가능, 상담환영’ 표지를 붙인 가게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셔터를 내리는 건물 관리인에게 사정을 묻자 “예전 이 일대는 기계공작소, 구두공장, 치과재료상으로 밤낮없이 바빴다. 지금은 다 사라지고 재료상이나 몇 군데 남아 있다”고 한다. 겉을 고친 건물들은 여지없이 보험회사 영업소와 콜센터가 들어와 있다. 중림동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약현성당뿐이다. 성당에선 신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중림동 일대가 무대라고 하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조세희는 이렇게 썼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중림동 일대에는 골목을 밀어내고 세운 높은 아파트와 아직 버티고 있는 쪽방촌과 블록집들이 남아 있다. 아파트의 높이만큼 신과 가까운 것이라면 중림동 골목길 쪽방은 그만큼 천국과 멀고 지옥과 가까운 곳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지옥과 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중림동 골목길을 걸으면 눈에 보인다.
골목 내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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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6년째 훈훈한 나눔 이어가는 만석동 쪽방촌 사람들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6년째 훈훈한 나눔 이어가는 만석동 쪽방촌 사람들
2014. 01. 27 15:35 화제
생각보다 쉬운 일이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나눔’ 하면 어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가진 것이 없어서’라며 움츠렸던 마음을 녹인 따뜻한 사람들. 나눔의 여유는 지갑이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실천한 쪽방촌 어르신들의 이야기다. 인천광역시 만석동 쪽방촌. 1백60여 세대가 살고 있는 이곳은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됐던 인천 지역에 마지막 남은 판자촌 밀집 지역이다. 주민의 60%가 70대 이상의 어르신들로 대부분 폐지 수집이나 문구, 팬시용품을 조립하는 자활 사업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영하로 뚝 떨어진 추위에 마음마저 얼어붙었던 연초, 쪽방촌으로부터 따뜻한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1백11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이웃 사랑 성금으로 기탁했다는 소식이다. 이곳 어르신들이 자활 작업장에서 볼펜을 조립하고 재활용품과 폐지를 팔아 버는 돈은 월 약 20만원. 그 안에서 작은 정성들을 모아 만든 큰 나눔이었다. 어르신들의 성금 기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마을에 자활 작업장이 생긴 2008년부터 올해까지 6년째 이어지고 있다. 마을 자활 모임터에서 주민들의 생활을 보살피고 있는 인천쪽방상담소 박종숙 소장은 그 시작을 함께 연 사람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생필품이나 김장 등이 쪽방촌으로 기탁돼 와요. 전에는 어르신들이 도움을 받기만 하는 입장이었는데, 마을에 자활 작업장이 생기며 작게나마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돼보자는 마음이 모이게 됐어요. 작업장에 가져다놓은 모금함이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죠.” ‘이렇게 작은 돈이 도움이 될까’ 하며 망설였던 주민들이 하나둘 모금함 앞에 줄을 섰다. 1천원, 5백원, 1백원…. “내 전 재산이다”라며 하루 내내 폐지를 모아 번 돈 3천원을 몽땅 모금함에 넣는 이도 있었다. 어려운 형편의 어르신들께 혹여나 부담이 되진 않을까 말려보기도 했지만 누군가를 돕는 일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몰랐다며 모금 행렬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제까지 남의 도움을 받아온 쪽방촌 어르신들에게 기부는 단순히 남을 돕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수북이 쌓인 모금함 소식은 이웃 마을에까지 퍼져나갔다. “소문이 전해지며 옆 마을에 폐지 줍는 어르신들과 무료 급식소 이용자, 노숙인 쉼터 분들도 자발적으로 모금에 참여하게 됐어요. 가진 것이 적어도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는 감동이 전해진 거죠. 이제 연말이 되면 어르신들께서 먼저 모금을 하자고 이야기를 꺼내세요.” 그렇게 6년 동안 모인 돈이 6백여 만원, 지난해 성금은 뇌사 상태에 빠진 저소득 어린이의 치료비에 쓰였고, 올해 모금된 성금은 화재 발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 구로구 외국인 노동자 보호시설에 쓰일 예정이다. 몇 개의 동전에서 시작된 작은 마음들이 어느새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큰 힘이 된 것이다. 많이 가지지 않았어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준 것. 기부를 시작한 이후로 그늘져 있던 어르신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매년 다음해에는 좀 더 보태서 하자고 하세요. 어르신들이 작업장에서 일하고 버는 돈이 하루에 5천원, 한 달에 10만원 정도예요.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눌 수 있고 그로부터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길을 걷다 모금함이 보이면 동전 몇 개라도 넣어보세요. 그렇게 작은 정성들이 모이다 보면 이 추운 겨울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조민정 ■취재 협조 / 인천내일을여는집(032-543-6330)>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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