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3,205 건 검색)
- 남양주 철도 차량기지 공사 중 차량 전복 사고…5명 부상
- 2025. 03. 13 08:23사회
- ... 철도 차량기지 사고 현장의 모습.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제공 경기 남양주시 철도 공사 현장에서 작업차 전복 사고가 발생해 현장 노동자 5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는 지난 12일...
- “창원 10분 생활권” 도로·철도 개통 예정된 ‘창원 메가시티 자이&위브’
- 2025. 03. 06 08:55경제
- ... 공사가 진행 중이다. 철도 호재도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2023년 4월 경상남도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이 승인됨에 따라 창원 도시철도 1~3호선은 예비타당성 신청 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 충북 단양역 폐철도 부지, 관광단지로 재탄생
- 2025. 03. 02 11:44경제
- ... 복합관광단지 개발사업 착공식을 했다고 2일 밝혔다. 단양역 복합관광단지 개발사업은 단양역 폐철도 부지를 미디어아트터널과 케이블카 등을 갖춘 복합 관광단지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전국 최초로...
- 국제철도연맹이 인증한 ‘세계 최고 안전관리’ 코레일
- 2025. 02. 27 20:44 보도자료
- ... 안전인증 및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최근 국제철도협력기구(OSJD)로부터 철도교통안전 부문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데 이어 국제철도연맹(UIC)에서도 안전인증을 획득하며 철도...
- 한국철도공사
스포츠경향(총 189 건 검색)
- 혼잡은 빨강·여유는 파랑···카카오맵, 공항철도 혼잡도 서비스 오픈
- 2025. 01. 22 10:42 생활
- 카카오는 지도 서비스 카카오맵에 공항철도 혼잡도 서비스를 오픈했다고 22일 밝혔다. 이용자는 카카오맵 모바일앱에서 공항철도 노선에 있는 역명을 검색하면 된다. 혼잡도 정보는 여유(파랑), 보통(초록), 주의(주황), 혼잡(빨강) 총 4단계로 표시된다. ‘여유’는 통로가 여유로운 상태, ‘혼잡’은 이동이 불가할 정도로 혼잡한 상태를 의미하며, 공항철도 객차별 실시간 혼잡도를 색깔로 표기해 혼잡 정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또 다가오는 설연휴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카카오맵 실내지도 서비스를 통해 공항 내 장소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도 있다. 카카오맵 실내지도는 넓고 복잡한 곳에서 층별 매장 및 편의시설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카카오는 3월 31일까지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3층에 카카오프렌즈의 인기 캐릭터 춘식이를 활용해 만든 ‘자이언트 춘식’ 조형물을 설치하고, 포토존을 운영한다. 자세한 위치는 카카오맵 실내지도 서비스를 통해 확인하면 된다. 카카오맵 공항철도 혼잡도 및 실내지도 서비스는 카카오맵 모바일앱을 최신 버전(5.23.0 이후)으로 업데이트 한 뒤 이용 가능하다.
- 영동군, ‘지역사랑 철도여행’ 관광상품 판매 1위 달성
- 2025. 01. 16 23:32 생활
- 85개 지역 상품 중 9141명 이용, 영동군 상품이 1위 기록 2024년 하반기 동안 진행된 ‘지역사랑 철도여행’ 관광상품에서 영동군이 큰 성과를 거두며, 85개 지역 상품 중 가장 높은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지역사랑 철도여행’은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이 협력하여 23개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추진한 관광 활성화 프로그램으로,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철도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영동군은 자유여행(당일, 1박2일, 2박3일) 3가지 관광상품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4년 12월 31일 기준 총 9,141명의 이용자를 기록하며 전체 85개의 지역상품 중 판매 1위를 달성하였다. 여행객은 코레일 홈페이지나 코레일톡 어플을 통해 지역사랑 여행상품을 예약하고, 주요 관광지를 방문 후 QR인증을 하면 이용한 열차 운임의 50% 상당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다. 이 할인 쿠폰은 추후 열차 예매 시에 사용할 수 있어 여행객들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군 관계자는 “영동군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지역 경제 활성화와 다양한 관광 산업 발전을 위해 더욱 힘쓸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번 성과는 영동군의 체류형 관광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높였다. 당일치기 여행에서 벗어나 1박2일, 2박3일 상품이 인기를 끌며, 영동군의 관광 자원을 깊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점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통해 지역 관광이 단기적인 방문에서 벗어나, 관광객들이 더 오래 머물며 지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영동군은 앞으로도 다양한 체류형 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지속 가능한 관광 성장을 도모할 계획이다.
- 에버스핀, 인도네시아 철도공사와 보안 솔루션 공급 계약…금융 넘어 공공 인프라까지 진출
- 2025. 01. 13 09:19 생활
- 인도네시아 철도공사 KAI에 에버세이프 모바일 도입 계약 체결 상반기 내 피싱방지 페이크파인더도 추가도입 예정 인도네시아 철도공사 KAI AI 보안기업 에버스핀이 인도네시아 최대 교통 공기업 PT. KERETA API INDONESIA(인도네시아 철도공사 이하 KAI)와 모바일 보안 솔루션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동남아시아 공공 인프라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으로 에버스핀은 자사의 모바일 해킹방지 솔루션 ‘에버세이프 모바일’을 KAI의 공식 모바일 앱에 공급한다. KAI는 열차 예매, 실시간 운행정보, 모바일 결제, 식사 주문, 여행 패키지 구매 등을 위한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 앱을 자국 철도 이용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에버세이프 모바일은 해킹방지 보안모듈을 무한대로 생성해 매일 새로운 보안코드가 동작하는 MTD(동적표적방어, Moving Target Defense) 기술이 적용된 솔루션이다. 에버스핀의 MTD 기술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전세계 주요 11개국에서 특허를 취득한 검증된 기술로, 기존 보안 솔루션들이 고정된 보안 코드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실시간으로 보안 코드를 변경해 해커들의 분석을 원천적으로 방지한다. 에버스핀의 피싱방지솔루션 페이크파인더도 KAI에 연내 도입이 예정되었다. 페이크파인더는 국내 점유율 1위로 ▲KB국민은행 ▲카카오뱅크 ▲NH농협은행 ▲삼성카드 ▲삼성화재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SBI저축은행 ▲한화손해보험 등에 도입돼 피싱으로부터 고객을 보호하고 있다. 에버스핀은 이미 인도네시아 금융 시장에서 기술력을 입증받은 바 있다. 동남아 최대 인터넷은행인 자고(Jago)은행을 비롯해 국영은행 만디리(Mandiri)은행, 자카르타 주정부 DKI은행 등 주요 금융사들이 에버스핀의 보안 솔루션을 도입한 바 있다. 이번 KAI 계약은 에버스핀이 검증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금융권에서 공공 인프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2억 7천만 인구의 핵심 교통수단을 책임지고 있는 KAI와의 협력은 향후 동남아시아 공공 인프라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에버스핀은 인도네시아에서의 성공 사례는 물론, 지난해 남아공 기업 아프리코(Afriko)와 맺은 파트너십으로 금융, 에너지, 공공기관등 아프리카 대륙 시장까지 적극 공략하기 시작했다. 에버스핀은 이처럼 더욱 탄탄해진 글로벌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해외 사업 영역 확대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Making Indonesia 4.0’ 정책의 일환으로 공공 인프라의 디지털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있는 KAI는 디지털 서비스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모바일 앱 보안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 [투어테인먼트] ‘고흥(Go興’), 우주 향해 ‘우쭈쭈’…‘은하철도’ 꿈속 보다, ‘고속철도’ 현실 여행
- 2024. 12. 28 10:15 생활
- 나로우주센터의 야경. 사진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철이와 메델은 ‘은하철도999’를 타고 밤하늘을 향한다. 그들의 편도 여행은 이상향을 향한 모험이다. 우리의 여행도 이와 닮았다. 지친 몸을 기차에 싣는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이 철이의 그것에 판박이는 아니다. 돌아오지 않는 이별 여행이 아니라 일상 회복을 위한 왕복 여행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돌아오는 그 길 웃음 충만할 기대가 가득하다. 고흥우주천문과학관. 사진제공|고흥우주천문과학관 이를 위해 은하철도 대신 코레일의 고속철도를 탄다. 은하철도는 꿈을 그리고, 고속철도는 현실을 마주한다. 나루호를 만날 고흥 여행이기에 더욱 그렇다. 철이가 마주한 불가해한 어둠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블랙홀과 같은 우주이지만, 우리가 마주한 블랙은 곱게 갈려 드립되면서 퍼지는 코끝을 채우는 커피 향이다. 메텔이 탄 기차의 노란 불빛은 온기를 담지 못했지만, 우리가 맛볼 향기로운 유자는 샛노란 달콤함으로 입맛을 다시게 한다. 기적을 울리며 기적을 바라는 은하철도를 뒤로하고, 편안히 기대며 현실의 기대를 채울 코레일 고속철도로 떠나는 즐거움~ Go 흥(興)! 맛·향·색의 먹방 삼합…유자&커피 - 체험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어 고흥 유자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만든 유자청. 사진|강석봉 기자 철이는 어둠 내린 예측불허 블랙홀 부지기수인 냉혹한 우주를 향하지만, 우리는 눈꽃 내린 겨울 일조량 차고 넘치는 한반도 서남단 고흥 여행에 나선다. 유자와 석류, 김, 굴 등 지역 특색을 가득 담은 식재료도 맛볼 수 있다. 고흥은 전국 유자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유자 생산 농가도 많다. 이중 고흥군 두원면에 있는 ‘고유한’ 유자 농가는 친환경 석류, 유자 전문 가공업체인 에덴식품에서 운영하는 관광농원이다. 이곳에서는 유자청을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을 할수있다. 송재철 에덴식품영농조합 대표는 “우리 유자는 친환경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한다”고 말했다. 유자청에 첨가물을 넣지 않아 유통기한도 12개월로 짧다. 고흥 산티아고 커피 체험 농장. 사진|강석봉 기자 고흥 과역면은 높은 지대와 따뜻한 기후로 커피를 생산하기 좋은 입지를 갖췄다. 이 덕에 커피 거리가 있는 이곳에 있는 산티아고 커피 농장은 직접 재배한 원두로 향기로운 커피를 생산한다. 카페 뒤편 커피 농장에는 크리스털 마운틴, 옐로 버번 등 다양한 원두 품종이 자라고 있다. 산티아고 김철웅 대표는 원두로 만든 커피를 ‘K-커피’라는 이름으로 상표 등록을 했다. 고흥 커피로 뚝딱 만든 것이 아니라 7가지 재료와 농장에서 재배 중인 커피 원두를 접목해 독특한 향취를 풍기는 커피를 만들어 냈다. 지역을 대표하는 재료는 유자를 비롯해 라벤더·포도·딸기·유칼립투스·로즈메리·페퍼민트 등이다. 이를 생커피콩과 함께 넣고 무산소 상태에서 발효를 시켜 향을 살렸다. 더치 커피를 만들어 발효시키면 원액 속에 묻혀 있던 7가지 재료의 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곳에서는 ‘나만의 드립백 커피’를 만들어 볼 수 있다. 고리타분 이론은 그만! 토성 고리 본 적 있니? - 나로우주센터 우주 과학관과 천문대 고흥우주천문과학관. 사진제공|고흥우주천문과학관 고흥은 우리나라 우주 사업의 총화다. 누리호의 출발지가 고흥이다. ‘고~흉’하고 도움닫기로 솟아오른 누리호가, 우리의 시야를 우주로 넓혔다. 이를 세세히 살필 수 있는 곳은 나로주센터 우주과학관 내부 상설 전시실이다. 2개 층으로 이뤄진 이곳 1층은 우주의 기본 운동 원리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기본 원리존’과 로켓의 역사와 구조를 설명하는 ‘로켓존’이 있다. 2층에는 ‘인공위성존’과 ‘우주 탐사존’이 있다. 누리호 발사 사진. 사진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고흥에는 우주를 살필 수 있는 고흥우주천문과학관도 있다. 총 22대의 최첨단 관측 장비를 갖춰 밤하늘의 별을 자세히 필 수 있다. 주관측실 가운데를 차지한 망원경은 주경 지름만 800㎜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태양계 행성은 물론 먼 우주의 성운과 성단, 은하의 모습까지 관측할 수 있다. 누리호 모형. 사진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보조 관측실에는 총 9개의 망원경이 마련되어 있다. 망원경마다 다른 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자리를 옮겨 가며 태양계의 달과 별을 조망할 수 있다. 방문 시기에 따라 천문 과학관 하늘을 수놓는 별자리도 달라진다. 그중 겨울은 사계절 중 밝은 별을 가장 많이이 관측할 수 있는 최적기다. 토성의 고리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고흥우주천문과학관. 사진제공|고흥우주천문과학관 천체 투영실에서는 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몰입감이 그만인 3D 천문과학 영상물이 상영된다. 천문 과학관 2층에 있는 야외 전망대에서는 낮에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밤에는 별이 내린 고흥의 야경이 펼쳐져 눈호강을 선사한다. 역사도 자연도, 고흥의 색깔을 입히니 - 래인보우교·분청문화박물관 우도 레인보우교. 사진|강석봉 기자 고흥에는 국내 최장 연륙 인도교인 ‘우도 레인보우교’가 있다. 2024년 4월 개통한 ‘신상’이다. 그 길이가 1.32㎞에 달한다. 이곳은 하루 2번 바닷길이 열려, 그 틈을 비집고 우도로 가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만 먹고 발길만 재촉하면 된다. 바닷물에 잠긴 노둣길과 레인보우교를 오가는 바닷바람이 여행객에게 인생샷 하나쯤은 선물하겠다고 꼬드긴다. 우도 레인보우교. 사진제공|코레일관광개발 레인보우교 아래 갯벌에는 칠게, 석화, 짱뚱어 등이 겨울 한기에도 바쁜 그들만의 일상에 정신이 없다. 우도 전망대까지는 약 25~30분이 걸린다. 이곳에서 다도해의 풍경을 보다 보면 입에 귀에 걸린다.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다리를 채색한 무지개색보다, 마음을 물들이는 오감의 흥취가 겨울 한기로 붉어진 낯빛을 무색게 한다. 고흥 분청문화박물관. 사진제공|코레일관광개발 고흥의 오늘과 내일은 이리저리 바쁜 발품이 필요하다. 이때 한 번쯤 발길을 쉬고 싶다면 고흥의 역사 속으로 차분히 발걸음을 옮겨보자. 청자와 백자 사이에서 그 간극을 메꾼 분청사기를 만난다. 운대리 가마터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분청사기는, 분청문화박물관에서 새로운 집을 분양받았다. 분청사기의 정식 명칭은 백토분장회청사기다. 보기 좋은 색을 내기 위해 백토를 갠 물에 담갔다 빼, 청색과 회색 사이에서 ‘신비로움’이라는 감동의 색을 담았다. 고흥 분청문화박물관 전시물. 사진|강석봉 기자 박물관 분청사기실에서는 7가지의 제작 기법을 소개하는 동시에 각각의 기법에 따라 만들어진 분청사기가 오와 열을 맞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에서 유를 만든 한국인에 대한 분청사기의 경외로운 열병식이다. 이외에도 박물관 내부에는 선사, 고대를 거쳐 발전한 고흥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문화실과 사려져 가는 우리 전통무형자산인 구비 문학에 대해 선보이는 설화문학실도 있다. 고흥 분청문화박물관 전시물. 사진|강석봉 기자 ■ 우리 금단의 땅에 가보지 않으련~ “나로우주센터 어디까지 가봤니?” 코레일관광개발은 내년 1월 중 ‘고흥, 별빛 따라 떠나는 우주과학 여행’ 패키지 상품을 출시한다. 전남관광재단과 함께하는 이 패키지는 나루호가 우주를 넘듯 금단을 뛰어넘는 상품이다. 우주과학관을 제외하고는 평상시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보안 시설이다. 나로우주센터의 부지는 550만 m². 축구장 700개의 크기다. 해안 절벽을 따라 발사대 시스템, 발사체 추적과 통제센터, 발사체 조립동 등 최첨단 시설이 숨어 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고흥, 별빛 따라 떠나는 우주과학 여행 열차’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발사 통제동, 발사대 시스템, 발사체 보관동 등 보안 구역까지 견학할 수 있다.
주간경향(총 35 건 검색)
- “남북중 고속철도는 황금알 낳는 노선”(2021. 06. 04 15:42)
- 2021. 06. 04 15:42 경제
- ㆍ진장원 유라시아연구소장, 한국의 생존 전략인 통일의 지렛대로 강조 남북철도 연결이 남북 정상의 회담 석상에 오른 지 20년이 넘었지만, 철길은 여전히 끊겨 있다. 남북관계가 요동칠 때마다 논의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의선 남측 구간 복원이 완료됐고, 강릉과 고성 제진역을 연결하는 동해북부선의 남측 구간은 올해 말 착공된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 연결에 합의한 이후 남쪽에서 꾸준히 준비 작업을 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남·북·미 관계의 개선,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유엔제재 해제 등이 맞물려 있어 더디기만 하다.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최근 <남북중 고속철도의 꿈>(국민북스)을 펴낸 진장원 한국교통대학교 교수(유라시아연구소장)가 생각한 반전의 계기는 중국과 고속철도라는 두 단어로 집약된다. 먼저 남북관계에 영향을 덜 받고, 교통 수요를 확보하려면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리고 여객 수송과 물류 측면에서 비행기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추려면 시속 300㎞ 이상의 고속철도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남과 북, 중국을 연결하는 동아시아의 국제고속철도(ETX·East Asian Train Express)가 생긴다면 북한과의 점진적 통일은 물론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화 공동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통일부가 최근 남북고속철도 건설 타당성 검토 용역에 착수하면서 의미 있는 첫걸음이 시작됐다. 지난 6월 1일 경기도 의왕 연구실에서 만난 진 교수는 남북중 고속철도는 북한 퍼주기가 아니라 한국의 생존 전략인 통일의 지렛대이자 동아시아의 번영을 선도할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쪽 구간의 고속철도 완성, 남북중 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기술과 인프라 표준화 등 유엔 제재 속에서도 가능한 일부터 하나씩 시작할 때라고 밝혔다. -남북중 고속철도는 왜 필요한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줄타기하며 살고 있다. 게다가 당시와 달리 남북이 분단된 와중에 미·중·러·일을 생각해야 해 더 다차원 방정식으로 변했다. 대내적으로는 인구절벽(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를 겪고 있다. 20년 후에는 생산가능인구(만15~60세) 1.7명이 고령자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인구구조상 젊은층이 많은 북한과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진해 30~40년 후 통일이 된다면 이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인구도 1억명을 금방 넘어갈 것이다. 내수시장을 확보하고, 국방과 경제에서 큰 힘을 갖게 되면서 주변 4개국의 눈치를 볼 일이 적어진다. 주변 4강의 변화만 바라고 통일 비용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멍하니 통일을 미루면 30~40년 뒤 큰일을 당할 수 있다. 우리 내부 모순을 해결하고 주변국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강대국이 되려면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다. 이때 통일로 가는 길목을 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철도의 연결이다.” -남북중 고속철도가 경제성이 있을까. “서울~신의주 철도만 연결해선 절대 흑자가 안 난다. 경의선이 중국을 넘어가 동아시아 철도망에 편입될 때 비로소 흑자노선이 된다. 그것도 시속 100㎞ 정도의 재래 철도로는 안 되고 최고 속도 350㎞는 돼야 한다. 서울에서 북경까지 약 1400㎞이다. 표정속도(목적지까지의 거리를 목적지까지 걸린 시간으로 나눈 속도)가 300㎞이면 5시간 안에 돌파한다. 기준점을 천안문으로 잡고 총 통행시간을 따지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서울역에서 고속철을 타고 북경역에 도착하는 시간이 더 짧다. 장점은 더 있다. 고속철도의 요금은 비행기 요금의 60~70% 수준, 저가항공사와 비교해도 85~90% 수준이다. 거기다 비행기는 좌석이 좁고 밖을 볼 수 없다. 고속철은 바깥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비행기보다 빠르고 탑승 환경의 쾌적성이 좋아 비행기에서 철도로 상당한 수요가 전환될 것이다.” 한국교통대학교 연구진은 2018년 비관적인 시나리오 하에서도 2028년 기준 한국인 197만명, 중국인 335만명 등 총 532만명이 비행기 대신 남북중 국제고속철도를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남한과 중국에서 북한을 오가는 역외통행 여행객과 선박 승객을 포함하면 2030년 남북중 국제고속철도의 승객은 1000만~130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진 교수는 호남고속철도가 연간 1000만명 이용 시대에 접어들면서 적자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남북중 고속철도의 경제성도 충분하다고 봤다. -북한 소득 수준이 낮은데 여객수요가 크게 증가할 수 있을까. “유로스타가 다니는 런던·파리·릴·브뤼셀의 배후 도시 인구가 3600만명, 국민소득이 3만7000달러이다. 연간 이용객은 2000만명이 넘는다. 남북중 고속철도망에 속한 북경·서울·선양·창춘·하얼빈의 배후인구는 9600만명, 국민소득은 2만1000달러다. 2004년 경부고속철도 1단계가 개통했을 때 우리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였다. 현 단계에서도 북한을 제외하면 대부분 고속철을 일상적으로 타고 다닐 소득이다. 인구가 이미 유로스타의 2.7배 수준이니 연간 2000만명은 금방 넘는다. 유로스타는 영국~프랑스 해저터널 건설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 수익성이 없지만 (남북경협기업인) G-한신의 추계에 따르면 서울~신의주 구간 공사비는 15조원밖에 안 든다. 수익성은 금방 나온다. 초창기에는 북한 내부 승객은 거의 없고, 남한에서 중국, 중국에서 남한과 북한을 오가는 통과통행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점차 개방되고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북한 역내 승객도 증가할 것이다. 감히 예언하자면 남북중 국제고속철도가 개통되면 1년에 2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황금노선이다. 이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북한 퍼주기 사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부산에서 출발해 아시아대륙을 지나 독일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의 가상 티켓 / 경향신문 자료 사진 -남북중 고속철 건설을 위한 재원 조달은. “고속철도 사업은 남북 양자구도로만 진행돼선 절대 안 된다. 남북 양자구도로만 했다가 금강산·개성관광, 개성공단 사업이 실패했다. 남북중 고속철도 사업은 철저히 다자구도로 진행해 설령 남북관계가 조금 틀어져도 어느 한쪽이 어깃장을 놓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러·일·미 등의 자본이 함께 투자될 필요가 있다. 한 방안으로 당사자인 남북중이 합작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세계 여러 나라의 투자를 받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황금노선이 될 것이라 보기 때문에 많은 투자자가 모일 것이다.” 진 교수는 이 특수목적법인으로 자금을 유치해 건설·운영하다 적당한 시기, 미 증시에 상장해 전 세계인의 기업으로 발전시키면 정치적 변동성에 관련 없이 동아시아의 대동맥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러시아와 일본은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나. “남북중 국제고속철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당연히 러시아도 여기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한일 해저터널로 일본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유레일 패스로 유럽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듯, ‘동아시아철도’(ER) 패스로 중·러·한·일 등 동아시아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엄청난 관광자원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성과가 모이면 동아시아 철도·경제·에너지 공동체도 가능하다.” -한중직통 화물운송열차를 먼저 제안했다. “2019년 기준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직구 총액은 약 2조원이다. 지금은 배 아니면 비행기로만 물량이 오가는데 북경 이북을 포함해 동북 3성 지역은 지금 북한의 표정속도(30~50㎞)를 감안해도 철도를 이용하면 더 빠르고 값싸게 운송할 수 있다. 남북중이 합의하면 지금도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우산 하에서 북한을 무정차로 지나가는 한중직통 화물철도 운송이 가능하다. 북한은 선로 사용료를 받고, 한중 소비자는 싼 가격에 물건을 빨리 받을 수 있어 좋다. 이건 유엔제재 하에서도 추진할 수 있다. 한국은 분단 이후 국제철도 운영 경험이 없는데 한중직통 화물 운송으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유엔제재 하에서도 또 가능한 작업이 있나. “고속철도 남한 구간을 설계하고 완성하는 데 10년은 걸릴 것이다. 지금부터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시끄럽다면서 남북 고속철도의 시작역을 서울로 할지, 광명으로 할지 논의도 안 한다. 중국은 북한에 고속철도가 없음에도 신의주 바로 앞 단둥과 두만강 앞 훈춘까지 고속철도를 깔았다. 이유는 딱 하나다. 언젠가 북한에 고속철도가 깔리면 남한에서 이걸 타고 올라올 것이라 보고 준비한 것이다. 통일법에 따르면 통일 관련 사업은 예비 타당성을 면제받을 수 있다. 이를 적용해 통치행위로서 추진할 철학과 가치관이 필요하다.” -한일 해저터널은 현실성이 있을까. “현재로선 수익성이 거의 없다. 유로스타는 영불 해저터널 건설·유지비가 많이 들어 2000만명이 쓰는 지금도 적자이다. 한일 해저터널은 그 공사비의 몇배가 든다. 100㎞가 넘는 유례없는 길이라 기술적 부담도 굉장하다.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참사 수준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두 조건을 다 충족해도 시기가 문제다. 칼자루를 우리가 쥐고 있어야 한다. 남북중 고속철도를 연결해 안정적으로 운영할수록 일본은 하고 싶어 목이 탈 것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굉장히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때 협상해도 늦지 않다.” -철도 통합이 동아시아 공동체에 갖는 의미는. “유럽 통합은 석탄철강공동체에서 시작하지만, 실제 쉥겐협정에서 출발해 유럽연합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유럽의 철도였다. 유럽은 국가 간 철도운행을 통일시키는 기술사양서(TSI)와 철도교통관리시스템(ERTMS)을 만들고 이를 유럽은 물론 세계의 표준으로 만들었다. 철도가 국경을 넘을 때 시간이 걸리지 않고 자유도를 높이는 게 관건인데 핵심은 TSI와 ERTMS의 통일이다. 우리도 우선 남북중 TSI를 만들고, ERTMS에 맞춘 고속철도를 설계해야 한다. 이것도 유엔제재 하에서 가능하다.” -미중 갈등을 뚫고 건설할 수 있을까. “유럽은 호전적인 독일을 끌어안았다. 중국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폭주기관차가 될 것이다. 고속철도를 깔아 왕래하고 설득할수록 중국 사람의 도덕과 생각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통일신라가 당과 문물 교류로 서로 이득을 본 것은 중국을 잘 달래고 우리 자체의 힘이 강했기 때문이다. 내버려두면 수나라·한나라처럼 충돌하게 된다. 미중 패권다툼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줄 세우기가 끝나면 멈출 테고 그땐 미국과 중국이 모두 한국을 필요로 한다. 이때 동북아 고속철도가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뉴욕·워싱턴, 북경·상하이, 도쿄·오사카를 뛰어넘는 거대 연담경제권이 만들어질 것이다. 투자자 짐 로저스가 남북통일이 되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기반이 된다. 거듭 말하지만 남북중 고속철도의 파급효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 ‘철도개혁 열차’ 누가 막아서나(2019. 11. 29 15:32)
- 2019. 11. 29 15:32 경제
- ㆍ국토부, 철도 노사의 합의안 거부… 코레일과 SR 통합 물거품 11월 25일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전면 파업이 닷새 만에 끝났다. 파업 기간 동안 보수 언론은 철도노조의 투쟁을 국민을 볼모로 벌이는 ‘밥그릇 싸움’에 빗대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노조의 싸움에는 임금 인상만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엔 안전한 철도 환경을 만들기 위한 현장 노동자들의 치열한 고민도 깔려 있다. 노조의 주요 요구 사항은 4조2교대제 전환을 위한 안전 강화 인력충원과 코레일과 SR(수서고속철) 통합이다. 구조 개혁을 통해 안전성·공공성을 강화해달라는 요구다. KTX가 강릉 남대천교를 지나고 있다./연합뉴스 파업을 중단하며 발표한 노사 합의사항에도 인력충원과 철도 통합 추진 방안이 포함됐다. 하지만 실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국토교통부는 그동안 철도 노사가 합의한 철도개혁 요구를 모두 거부해왔다. 철도개혁을 원하는 현장의 목소리는 경영효율성 강화를 앞세운 정부 방침에 가로막혔다. 당초 철도개혁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는 왜 입장이 달라졌을까. 철도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철도개혁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철도의 민영화와 KTX-SRT 분리에 반대했다. 대선후보 시절에는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을 통합하는 데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련 내용을 담은 한국노총과의 정책협약에도 서명했다. 국토부 관료들, 분할 통한 경쟁체제 선호 문재인 정부 초대 국토부 장관인 김현미 장관 역시 국회의원 시절부터 SR 신설 등 철도 경쟁체제에 반대해왔다. 2013년 12월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이던 김현미 의원(현 국토부 장관)은 제19대 국회 제321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공공기관의 경영 개선은 KTX-SRT 분리로는 달성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현미 장관은 2017년 6월 취임 당시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코레일과 SR의 통합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철도개혁의 첫 단추는 국토부가 2018년 6월 22일에 발주한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산업 구조평가’ 연구용역이다. 현재 코레일-SR, 코레일-시설공단으로 나뉜 분리 구조가 공공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겠다는 취지다. 2018년 2월에는 철도개혁에 의지를 보였던 더불어민주당 오영식 전 의원이 코레일 8대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개혁 분위기가 조성됐다. 오 전 사장은 2018년 3월 철도개혁 작업을 위한 사장 직속 태스크포스팀(TF)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공공성 강화 연구용역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당초 2018년 12월 19일에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국토부는 12월 7일 용역계약을 변경해 연구기한을 2019년 3월 19일로 연기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연구진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요청해 3개월 연장했다’고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연구진의 공공성 연구용역 연기는 국토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게 철도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연구 결과가 통합 쪽으로 기울 조짐을 보이자 국토부 실무진이 연구 결과 발표를 연기할 것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시 용역을 진행하고 있던 연구진을 국토부 서울 사무실에서 만나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용역 연기는 공문을 통해 진행됐다”며 “사전협의 사실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개혁 작업이 진척을 보이지 않자 오 전 사장과 국토부 간 마찰이 빚어졌다. 이런 가운데 국토부는 SRT 전라선 운영을 위해 코레일의 고속열차를 SR에 임대해줄 것을 요청했고, 코레일이 거부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후 강릉선 탈선 사고가 터졌고 오 전 사장이 사고 책임을 지고 사임하면서 코레일 개혁 TF팀도 해산했다. 국토부는 강릉선 탈선 사고와 관련해 감사원에 철도안전관리실태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하면서 공공성 연구용역을 중단시켰다. 감사를 통해 철도 분리 등 구조적 문제도 진단받을 수 있다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9월 공개된 감사 결과에는 사고 보고체계와 차량정비·시설관리 등 시스템에 대한 지적 사항만 담겨 있었을 뿐 SR·상하통합 문제는 빠져 있었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은 “강릉선 사고 이후 모든 개혁 작업이 중단됐다”며 “결과적으로 탈선 사고가 국토부에 개혁 작업 중단의 명분과 기회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식 코레일 사장 사임 후 개혁팀 와해 그렇다면 국토부는 왜 철도개혁 시계를 멈추려는 것일까. 국토부가 구상하는 철도개혁의 방향은 노동계가 원하는 개혁과 반대 지점에 있다. 현장에서는 조직 통합을 통해 분할에 따른 중복 비용을 줄여 안전설비 투자를 늘릴 것을 요구한다. 시설·전기·차량·수송 직렬 인원 등 안전 강화 인력을 늘려 안전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노동계가 바라는 개혁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남북 동서해선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서 착공사를 하고 있다./공동취재단 반면 국토부의 개혁은 ‘분할을 통한 경쟁체제 구축’이다. 경쟁을 해야 경영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05년 철도 상하분리와 2012년 수서발 고속철도 민영화 추진, 2013년 SR 출범은 국토부가 추진한 ‘개혁’의 결과물이다. 이제껏 분할을 개혁의 기치로 삼은 국토부 입장에서 통합은 받아들일 수 없는 과정이다. 대통령과 장관, 코레일 사장과 같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은 ‘늘공(직업공무원)’인 관료의 의지를 꺾기 어렵다. 개혁 방향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상황에서 철도 공공성 연구용역은 개혁 방향성의 지표가 될 수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실과 철도업계 관계자들을 상대로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현재까지 진행된 철도 공공성 연구의 결과는 코레일과 SR 통합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현재의 분리 구조를 유지할 경우 내부 거래로 인한 중복 비용이 발생해 과도한 예산 낭비로 이어진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연구가 중단되기 전까지 진행된 연구 내용을 받아 본 적은 있다”며 “하지만 정식 보고서가 아니어서 내용을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아 연구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중단됐던 공공성 연구용역을 재개한 국토부는 해당 연구에 대한 의미 축소에 나섰다. 국토부 관계자는 “해당 연구용역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연구하지 못해 부실하게 진행됐다”며 “연구 결과를 정책에 반영할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더라도 코레일과 SR 통합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구석구석 과학사](51)획기적인 철도, 공간·시간의 개념을 바꾸다(2019. 03. 11 14:49)
- 2019. 03. 11 14:49 문화/과학
- 철도 이전의 세계와 이후의 세계가 달라졌다는 것은 서구사회 바깥의 사람들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최남선은 1908년 지은 ‘경부철도가’에서 철도라는 신기술이 강제한(?) 평등의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국내·외의 기대가 높았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뜻밖에도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양에서 하노이까지 육로로 사흘 동안 이동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는데, 비행기로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굳이 사흘에 걸쳐 철도와 자동차로 가는 까닭에 대해 많은 이들이 여러 각도에서 분석했다. 1909년까지 영국이 인도의 식민화를 위해 건설한 철도망./위키미디어 그런데 철도가 느린 교통수단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생각이며, 우리가 21세기의 속도 관념에 길들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생각해 보면 철도의 발명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 바꿔놓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철도라는 교통의 혁신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개량해 실용적인 동력원으로 만들면서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인간 또는 가축의 육체적 힘의 한계를 벗어나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큰 힘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증기엔진이라는 새로운 날개를 달자 공장의 생산력은 눈부시게 높아졌고, 온갖 물건들이 값싸게 쏟아져 나왔다(그것을 만드는 이들이 그 물건들을 사서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혁신의 시대에 의욕적인 이들이 증기엔진이라는 신기한 물건을 수레에 달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영국의 리처드 트레비딕은 1802년 선로를 따라 움직이는 증기기관차를 발명했고, 1812년 매튜 머리는 처음으로 증기기관차를 이용해 유료 운송사업을 벌였다. 많은 발명가들이 앞다퉈 증기기관차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조지 스티븐슨과 로버트 스티븐슨 부자는 영국에 철도를 이용한 대중교통 시장이 열리자 우수한 증기기관차로 그 시장을 선점했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기관차 ‘더 로켓’은 1829년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선로를 차지하기 위한 시험운행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독점적 사업권을 확보했다. 영국의 철도망은 이후 놀라운 속도로 확장됐다. 1870년까지 주요 도시 사이에 약 2만1700㎞의 철로가 깔렸고, 1914년에는 120개의 철도회사가 총연장 3만2000㎞의 철로를 운영해 영국 전역을 촘촘하게 이어줬다. 철도는 여러 면에서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예전에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짐을 옮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배에 실어 물의 부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내륙에는 이를 위해 운하를 파기도 했다). 하지만 철도가 발명된 뒤에는 증기엔진의 힘 덕에 땅 위로도 그에 못지않게 많은 짐을 나를 수 있게 됐다. 땅에 철로를 까는 것은 운하를 파는 것보다 훨씬 쉽고 돈도 덜 드는 일이었으므로 자연히 물자의 유통이 크게 늘어나게 됐고, 상품의 가격도 내려갔다. 철도는 공간에 대한 관념도 바꿔 놓았다. 산업혁명 이전 보통 사람의 일상생활은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 안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공공 철도가 운영된 뒤로는 마부를 부릴 정도로 부유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도 비교적 싼 값에 기차를 타고 먼 거리를 오갈 수 있게 됐다. 그러자 도시 바깥에서 저녁과 밤을 보내고 아침에는 기차를 타고 도시의 일터로 나오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도시 바깥은 집값도 비교적 쌌을 뿐 아니라 범죄와 오물, 감염병 등 도시의 열악한 환경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교외’라는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출·퇴근’한다는 개념도 철도의 보급 이후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철도가 생기면서 시간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됐다. 철로 위를 오가는 수많은 열차들은 운행시각을 지켜야 했다. 그러자 다른 지역에서는 시간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골칫거리가 되었다. 예전에는 도시마다 자기들 머리 위로 해가 가장 높이 뜨면 정오라고 여겼지만, 철도망이 깔린 뒤에는 리버풀의 시간과 맨체스터의 시간을 똑같이 맞추지 않으면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었다. 영국 전역의 시간을 그리니치천문대에서 관측한 시간에 맞춰 통일하고 나아가 지구 전체를 경도에 따라 나누어 각 지역의 ‘표준시’를 정한 것은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유럽 대륙이나 인도와 같이 넓은 땅덩어리에서는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표준시를 정하고 그것을 적용한다고 해도, 베를린역의 시계가 정오를 가리킬 때 파리역의 시계도 역시 정오를 가리키고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당시의 첨단기술이었던 전기통신망을 이용해 신호를 주고받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전자기학의 새로운 문제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과학사학자 피터 갤리슨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혁신적인 통찰도 그가 스위스 특허청에서 원격 전기신호에 대한 수많은 특허출원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싹텄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자세한 이야기는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에 실려 있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시각표는 이전보다 평등해진 자본주의적 산업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지체 높은 이라 해도 열차를 마음대로 세울 수 없고, 신분이 낮은 이라도 값을 치르면 일등석에 탈 수 있었다. 누가, 무엇을, 왜 나르는가 철도 이전의 세계와 이후의 세계가 달라졌다는 것은 서구사회 바깥의 사람들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최남선은 1908년 지은 ‘경부철도가’에서 “늙은이와 젊은이 섞여 앉았고, 우리 내외 외국인 같이 탔으나, 내외친소 다같이 익혀 지내니, 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뤘네”라며 철도라는 신기술이 강제한(?) 평등의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서구 열강의 침략을 당하는 이들에게 철도는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일본이 한반도의 철도 이권을 장악한 것이나 영국이 인도에 엄청난 규모의 철도망을 구축한 것은 모두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경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철길을 타고 부는 빠져나가고 침략자들은 들어왔다. 철도는 군병력과 장비를 가장 효과적으로 실어나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의병들이 가장 먼저 전신국과 철도를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들이 근대 기술 시스템의 핵심을 간파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인도 동북부의 풍토병이었던 콜레라는 영국이 건설한 철도를 타고 인도 전역으로 퍼졌고, 나아가 유라시아 전역에 창궐해 세계적 대유행에 이르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과 베트남 국경에서 전용열차에서 내려 자동차로 갈아탄 것도 철도라는 기술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두려워할 만한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트남은 중국과의 접경지대에서는 중국과 철로 레일 사이의 간격(궤간)을 다르게 유지하고 있어 중국 열차가 베트남으로 바로 진입할 수 없다. 양국간 교역에는 불편한 일이겠지만, 국경은 여는 것 못지않게 막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 구석구석 과학사
- [표지 이야기]다시 잇는 남북 철도는 ‘넓은 세상’으로 가는 길(2018. 12. 31 13:00)
- 2018. 12. 31 13:00 정치
- 남북이 철도 연결을 위한 첫 삽을 떴다. 1959년부터 철도공무원으로 일해온 철도 원로 김한태씨와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프로젝트를 벌여온 김승진군. 두 사람이 만나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지난 12월 21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김한태씨(가운데)가 김승진군(왼쪽)과 강나예양(오른쪽)에게 북한 철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한반도 허리에서 끊어진 철길이 이어진다. 12월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열린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을 기점으로 남과 북은 단단한 철의 궤도에 함께 올랐다. 마침내 달리기 시작한 철마의 목적지는 북녘 땅이 아니다. 부산에서 출발한 기차는 북경에서 러시아 모스크바를 거쳐 독일 베를린에 닿을 수 있다. 여행객들은 매표소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예매하고, 컨테이너들은 줄지어 시베리아를 오간다. 서울역은 1920년대 국제역이었던 옛 위상을 되찾을지도 모른다. 철길 하나를 잇는 것뿐인데, 누군가는 벌써부터 한반도의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린다. 1959년 교통부 철도공무원으로 시작해 평생을 북한 철도를 연구해온 김한태씨(77)는 이런 야단법석이 못내 걱정스럽다. 기차는 길이 생긴다고 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난 1년간 국내 철도역과 시베리아를 누비며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프로젝트를 벌여온 2000년생 김승진군(18)의 생각은 다르다. 대안학교 ‘로드스꼴라’의 졸업을 앞둔 김군은 잃어버린 유라시아 대륙을 되찾은 기분이다. 누구보다 더 요란하게 경사를 맞이하고 싶다. 결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났다. 김군의 나이는 18살. 1959년 김한태씨가 철도공무원이 됐던 그 나이다. 12월 21일 오전 11시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박제가 된 증기기관차 앞에 김한태씨와 김승진군이 섰다. 김한태씨가 말을 꺼냈다. “‘미카3형’이네. 이 녀석이 교통고등학교 졸업하고 내가 현장에서 만난 첫 기차야. 여기 3형이 화물열차의 표준 모델이었어. 그때는 한창 달리던 현역이었지. 그리스라고 들어봤나? 여기 이음새에 참 많이도 쳤지. 그때는 왜 그렇게 추웠는지 몰라. 지금도 기차를 보면 손이 시려.” 1959년, 18살 신입 철도원에게 기차는 낭만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들어온 철도용어와 선배들의 욕설, 고함이 뒤섞인 철길에서 일을 배웠다. 전라남도 목포로 첫 발령을 받은 김씨는 증기기관차에 탔다. 물론 정식 기관사는 아니었다. 그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열차에서 불을 때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석탄을 태워 보일러를 데우는 일이다. 이 일을 하는 노동자를 기관조사라고 불렀다. 바퀴가 구르는 동안 기관조사는 연료통에 끊임없이 석탄을 집어넣어야 했다. 노선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만6000㎏의 석탄을 태웠다. 기관사와 기관조사 둘이 나눠 불을 때는데 한 사람이 8000㎏의 석탄을 넣어야 기차는 움직였다. 두 사람 모두 운행 내내 삽질을 멈출 수 없었다. 기차가 터널에 들어갈 때면 김씨는 수건을 물에 적셔 얼굴을 감쌌다. 그렇지 않으면 뜨거운 증기가 얼굴로 튀는 걸 막을 수 없다. 증기뿐만 아니다. 내뿜는 매연 때문에 터널을 지나다 기관사와 승무원, 승객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질식사고도 빈번했다. 김씨가 기차를 여태껏 몸으로 기억하는 이유다. 60년 전 증기기관차에 대한 추억 18살 김승진군에게 철도는 새로운 기회다. 드넓은 평원과 초원을 달려 유럽에 닿을 수 있는 새로운 실크로드다. 김군은 올해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남북 철도 연결을 시작으로 한반도와 중국, 유럽을 잇는 거대한 철의 동맥을 잇자는 취지다. 김군은 여기서 북을 쳤다. 열심히 북을 쳤더니 남북이 만났고, 신나서 더 쳤던 밀양 공연 즈음에 이르러서 남북관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철도 연결이 남북 평화의 이정표가 됐다고 믿는다. 대륙 기차에 대한 꿈을 안고 올 여름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에 다녀왔다. 김승진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달리다 보면 드는 생각이 있죠. 처음에는 자연경관에 놀라요. 기차에서 내려 바이칼호를 직접 보고 몸을 담그고 놀고. 그러다 다시 열차에 올라타고 가다보면 광활한 땅에 놓인 철도가 새롭게 보이죠. 여기에 길을 놓는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경이로움마저 느껴져요. 그러다가 또 한참을 달리면 기차가 가진 고유의 매력이 뭔지 알게 돼요. 그동안 한국에서는 뭐든 ‘빨리빨리’를 강요받고 ‘가만 있으면 뒤처진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기차 안에서는 그런 게 사라지더라고요. 정해진 노선으로 긴 시간 동안 달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다른 친구들도 서울에서 시작해 다른 대륙으로 가는 기차에서 그런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1944년 10월 1일자 부산~중국 안동(단동) 열차시간표 / 김한태 김한태 “학생들은 생활전선이라는 것, 산다는 게 뭔지 몰라요. 사람이 직업을 갖고 부양가족이 생기면 먹고살기 위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시베리아 횡단 기차, 여유있게 타는 건 지금 시절에나 가능하지 나중에는 그렇게 할래야 할 수가 없어요. 무엇보다 철도는 삶의 현장이에요. 1959년에 첫 발령을 받고 숙직실에 갔는데, 빈대가 들끓어서 잠을 못잤죠. 근무환경이 참 열악했어요. 월급도 적었고. 단순히 돈 적게 주고 시설만 후진 게 아니야. 교통고등학교에서 우리는 영어로 기차를 배웠어요. 그런데 현장에 갔더니 선배들은 죄다 일본어를 쓰고 있더라고. 부품부터 작업지시까지 다 일본말로 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어. 사고도 자주 났지. 선로나 설비에 투자를 못하니 사람이 죽는 사고도 많았어요. 전쟁으로 목숨 잃은 선배들도 부지기수야. 예전에 철도선발대라고 있었어. 6·25때 철도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 몇몇 선발해서 권총 한 자루씩 주고 북으로 보내는 거야. 부대가 북진해서 고지를 점령하면 거기에 기차가 들어갈 수 있는지 미리 조사하는 게 철도선발대 임무야. 전쟁 통에 목숨을 걸고 길을 닦고 열차를 몰았지. 철도는 그렇게 생명을 걸고 놓았던 길이야. 흔히 증기기관차에서 나는 경적소리, 누군가는 그 소리를 낭만적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걸 기관사의 절규라고 불렀어.” 철도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이나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한 생각도 제각각이다. 정치권에서는 남북경협을 비롯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에 대한 여야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당의원들은 ‘남북한 경협으로 인한 남북 합계 누적 성장효과가 가장 큰 사업이 철도 및 도로 연결사업’이라며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과업이라는 뜻을 밝혔다. 반면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경의선 철도 연결만 해도 북한에 지급할 선로 사용료가 수천억 원에 이를 것”이라며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지난 11월 통일부 국감장에선 남북 철도 연결사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학생 72%가 남북경협에 긍정적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는 남북 경협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지난 11월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실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을 통해 대학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2.2%가 남북경협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남북 경협 ‘1순위’ 철도 연결사업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남북 철도 연결 소식을 ‘북’을 치며 반겼던 김승진군은 철도 연결과 남북경협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철도가 놓아져서 물류가 이동하고 사람이 오가면 서로 갖고 있던 오해가 풀릴 것이라 믿는다. 철도 연결이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 마중물이 된다는 얘기다. 김승진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 일단 한반도에서 기차는 평화의 상징이 됐으면 좋겠어요. 철도 연결이 남북관계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철도 연결이 퍼주기라고 하는 분들. 저는 솔직히 이해 못해요. 눈앞에 이익만 찾는 것 같아요. 제 또래 친구들 중에도 ‘그거 북한에 돈 떼이는 일이다’라면서 제게 뭐라 하는 애들도 있는데. 철도 연결로 우리가 얻을 것을 내다보지 못하고 이념에 사로잡혀서 얘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철도 원로가 보기에 젊은이들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철도는 단순히 길만 연결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하루 한두 차례 관광단을 싣고 오가는 ‘보여주는’ 열차를 편성하는 게 목적이라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북한을 통해 물류가 오가는 ‘실용노선’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김한태 “남북 철도를 연결해서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기특하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너무 앞선 생각이야. 분단 기간이 70년입니다. 그동안 남북의 철도 시스템은 크게 달라졌어요. 북한 철도는 영업㎞가 5000㎞, 역만 900개가 넘고, 운영기술도 제각각이에요. 북한은 전철 방식으로 DC 3000V를 택했어요. 전체 영업㎞의 80%가 이 전철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런데 남한은 AC 2만5000V 방식이죠. 전기차로 두 구간을 직통으로 운전할 수 없다는 얘기예요. 남북의 선로용량도 문제예요. 경의·경원선 모두 전철과 같이 써야 하는 남한은 선로용량이 부족해요. 경의선 서울∼수색 구간, 경원선 청량리∼광운대 사이는 열차 설정수가 선로용량에 맞먹어요. 상황이 이런데 남북을 연결해 시베리아를 오가는 열차 운행은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없어요. 북한도 마찬가집니다. 당장 개성 신의주 구간 철길 가운데 33.6㎞ 구간만 복선이죠. 상징적으로 한두 번 열차가 다니는 게 아니라 정말 시베리아까지 물류교류를 원한다면 제일 시급한 과제가 선로용량 문제예요.” 지난 12월 21일 김한태씨(가운데)와 강나예양(오른쪽) 김승진군(왼쪽)이 경의선 옛 철도중단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김씨는 국내 1세대 북한 철도 전문가다. 남북경제회담이 열리던 1985년, 철도청으로 청와대 지시가 떨어졌다. 명령은 단순했다. ‘화물열차로 평양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철도청 운수국 열차과에 근무하던 김씨는 엉겁결에 이 일을 맡았다. 하지만 서울에서 평양까지 화물열차 소요시간을 예측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휴전 이후 북한에 대한 자료는 모두 폐기됐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몇 ㎞인지도 공식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일본과 중국에서 발간된 자료를 토대로 어림잡아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김씨는 북한 철도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해외 철도동호회를 통해 북한 열차시간표까지 자료를 수집했다. 얼마 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에서 김씨를 불렀다. 안기부 직원들은 김씨에게 수집한 자료들의 출처를 밝힐 것을 요구했다. 김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인 것이다. 다행히 김씨의 소명이 받아들여져서 심한 고초를 겪지는 않았다. 남북간 실용노선의 현실적 어려움 간첩 의심을 받아가며 북한 철도 자료를 모아온 김씨는 지금까지도 대륙 철도 연결문제와 관련해 남북 철도 연구를 한다. 발표한 북한 철도 관련 논문은 10편이 넘는다. 최근에는 <북한의 철도>라는 책도 발간했다. 이날 이때껏 북한 철도에 대한 연구를 해서 내린 남북 철도 연결사업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다. 철도 연결 공동조사를 위해 북한에 다녀온 임종일 남북철도조사 공동단장이 김씨에게 전한 실상도 다르지 않았다. 김한태 “임 단장이 북에 다녀와서 그러더군요. ‘선배님, 철도가 2007년 조사했던 그대로예요. 나아진 게 없습니다’. 철도는 북한 물류의 중심인데도 이 모양이야. 차량기지도 그렇고 철도 노후화도 심각해요. 우리 기차가 다니게 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요. 지금 상황에서 유럽으로 철길을 잇는다는 건 꿈 같은 얘기에 불과합니다. 북은 분단 이후에 교통정책을 도로가 아닌 철도에 맞췄어. 새로 생긴 노선도 많지. 원료 생산부터 공장 운송, 공급까지 모든 연결을 철도로 해. 철길이 없으면 북한 경제는 죽은 것과 같아. 북한 철도는 산악지대가 많고 곡선에 언덕길도 많고 터널도 많지. 그만큼 레일 파손이 빨라. 레일이 망가지니 1993년도 이후에 20여개 특급열차로 불리는 급행열차들이 2시간 이상씩 시간을 늘려 운행을 했어. 급행인데 속도를 못내. 원래 10시간에 가던 기차가 14시간씩 달려도 도착을 못하는 거야. 철길이 살면 북한 산업 가동률을 높일 수 있어요. 우리에게도 철도는 중요하지만 북한에게는 생존이 걸린 길이야.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망가졌다는 건 그걸 복구해서 정상화하는 데 엄청난 예산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뜻이지.” 정부가 책정한 철도와 도로 연결 등 경제협력 사업과 산림협력 관련 남북협력기금은 1조1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남북 철도·도로 연결에 책정된 예산은 2951억원이다. 정부가 국회에서 해당 예산을 따내는 데에도 극심한 진통이 있었다. 게다가 철도망 구축 이후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다. 국토부에서 발주한 연구용역인 ‘유라시아 고속철도망 구축방안’에 따르면 북한 내 철도망 구축으로 중국과 직접 연결되는 경의선 구간의 경우 선로 사용료만 연 94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진 “당장 들어갈 예산이 많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철도에 남한의 자본력이나 기술이 합쳐지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아요. 거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해요. 북한 현지의 고급 노동력을 낮은 인건비로 활용할 수도 있고. 방법은 있어요. 왜 벌써부터 안 된다, 손해본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북한은 가깝지만 가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예요. 책과 미디어에서만 접했던 북한을 실제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예요. 꼭 기차를 타고 북에 가보고 싶어요. 갈라지면서 보지 못했던 고구려 유물들도 찾아보고 싶고요. 그 길을 따라 중국과 러시아도 방문해볼 생각이에요. 더 이상 분단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싶지 않습니다.” 2007년 12월 11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산역을 출발한 화물열차가 개성시 봉동리 판문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남북간 실용노선의 현실적 어려움 두 사람이 바라보는 남북 철도 연결은 시기와 방법을 두고 엇갈렸다. 대화는 삐걱일 때가 많았다. 경기도 파주 경의선 옛 철도중단점을 바라보는 눈도 달랐다. 노인은 다시 철길을 잇기 위해 얼마나 많은 품을 들여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청년은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문구를 하루빨리 옛 역사 속으로 보내고 싶어했다. ‘왜 자꾸 안 되는 쪽으로 얘기하는지’ 답답했다. 끊겼던 경의선 철길에 갔다가 들른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이르러서는 ‘새마을운동으로 살려놓은 경제를 한 자리씩 차지한 운동권이 망치고 있다’는 주제로 대화가 흐르면서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취재차량의 분위기도 무거웠다. 차가 자유로를 달리고 있을 때 일정 내내 좀처럼 대화에 끼지 않았던 대안학교 로드스꼴라의 예비졸업생 강나예양(17)이 불쑥 말을 꺼냈다. 강나예 “저는 철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철도 뉴스가 나오면 꼭 챙겨봐요. 좋아하거든요. 특히 남북 철도 소식은 친구들과 공유하기도 하죠. 오늘 선생님께서 해준 얘기는 참 유익했어요. 저는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남과 북의 철도를 잇는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죠. 당연히 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고 있었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가 있네요. 단순히 막힌 걸 뚫는다는 의미가 아니었어요. 철도는 잇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요. 실제로 열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참 뒤 김한태씨가 입을 열었다. 김한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껏 북한 철도를 남의 나라 철도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북한 철도는 한반도 철도예요.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은 한반도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잖아요. 철도도 마찬가지예요. 이념을 떠나서 나는 평생 철도에서 살아온 철도인입니다. 철도인에게 철도는 연결돼야 하는 대상이에요. 길이 있는 곳에 기차는 달려야 해요. 지금 이렇게 늙었지만 나도 기차를 타고 북한을 누비고 싶어요. 다만 기차가 달린다는 건 운영을 전제로 하는 거예요. 제가 귀하게 여기는 열차시간표가 있어요. 1944년 10월 1일자 부산~중국 단동 열차시간표예요. 일본사람들이 놓고 간 건데. 아마 이게 남북 철도가 연결된 최후의 열차시간표가 아닐까 싶어요. 1년 뒤 광복되고 38선이 생기면서 철길이 끊겼으니까. 이 열차시간표를 보면서 저도 대륙으로 가는 철도에 대한 꿈을 꾸곤 했어요. 지금은 휴전이 되고 통일이 멀어지면서 대륙 철도에 대한 꿈이 사라졌지만 그 꿈을 지금 세대들이 갖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고마운 일이죠. 철도를 잇는 일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에요. 더 넓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철도로 놓겠다는 발상은 철도인으로서 더없이 반가운 생각이에요. 지금 젊은 친구들이 해낼 것으로 믿습니다.” 12일 26일 오전 6시48분 서울역에서 남측 승객을 싣고 출발한 개성 판문역행 특별열차가 오전 8시34분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했다. 이 ‘특별’한 열차는 언젠가 ‘보통’의 열차로 철도를 달릴 것이다. 대륙행 열차시간표는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서울역 전광판에 걸릴지도 모른다.
- 표지 이야기
레이디경향(총 7 건 검색)
- <은하철도 999> 작가 마츠모토 레이지 사망…향년 85세
- 2023. 02. 20 12:38 화제
- 작가 마츠모토 레이지가 지난 13일 급성심부전으로 별세했다. 사진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우주 전함 야마토> <은하철도 999>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가 지난 13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85세. 일본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20일 애니메이션 제작사 토에이사는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가 지난 2월 13일 급성 심부전으로 도쿄도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영결식은 가까운 지인들과 이미 마친 상태. 상주는 아내이자 만화가 마키 미야코다. 작가의 소속사 대표이자 장녀인 마츠모토 마키코는 그의 영면을 알리며 “마츠모토 레이지가 별의 바다로 떠났다. 그의 삶은 꾸준히 이야기를 그리며 달려왔던, 만화가로서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라며 “마츠모토는 항상 ‘멀리 시간의 고리가 닿는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해왔다. 저희도 그 말을 믿고 그날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응원해준 팬 여러분, 작품을 세상에 내보낸 각 관계자, 신세를 진 각 단체 여러분, 젊었을 때부터 함께 절차탁마해주신 만화가 선생님들,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데 도움을 주신 병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전했다. ‘은하철도 999’ 이미지. 토에이사 제공 마츠모토 레이지는 1938년생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9세 때 <철완 아톰>으로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 작가를 우연히 만난 계기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5세 만화 소년 투고작 <꿀벌의 모험>으로 상업지에 만화가로 데뷔했다. 이후 <건프론티어> <우주전함 야마토> <더 콕핏 시리즈> <우주 해적 캡틴 하록> <처년 여왕> 그리고 <은하철도 999> 등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었다.
- 태국 ‘죽음의 철도’서 ‘셀카’ 찍으려다 참변
- 2022. 12. 29 11:30 화제
- 뉴질랜드 관광객이 사고를 당한 태국 ‘죽음의 철도’ 지점. 죽음의 철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군수 물품을 실어나르기 위해 건설된 철도다. 아시아 뉴스 네트워크 제공 태국의 ‘죽음의 철도(Death Railway)’에서 ‘셀카’를 찍으려던 한 관광객이 창문에서 떨어지는 참변을 당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뉴질랜드 출신 관광객 패트릭 워드(45) 지난 27일(현지 시간) 태국 서부지역 칸차나나부리(Kanchanaburi) 지방에서 달리는 기차에서 추락해 죽음의 철도 아래 약 10m 지상에서 사망했다. 관광객은 셀카를 찍기 위해 기차 문을 열었다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미끄러져 사이욕 지역의 크라사에 동굴에 있는 지점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 대원은 약 30분 동안 그를 소생시키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태국-미얀마 간 철도라고도 알려진 ‘죽음의 철도’는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군이 강제징용한 민간인 노동자와 전쟁 포로에 의해 건설됐다. 일본군이 군수 물품을 실어 나르기 위해 태국에서 미얀마까지 415㎞에 달하는 철로를 불과 15개월 만에 건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무리한 작업으로 수많은 영국인 포로와 현지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철교도 죽음의 철도에 자리하고 있다. 1945년 폭격으로 폭파됐으나 이후 재건됐고 영화의 영향으로 명소가 됐다. 관광객들은 철로를 직접 걷거나, 철도 일부를 지나는 열차를 타볼 수도 있다. 절벽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는 열차는 철도 건설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너와나의 소녀시대]은하철도999 왜색과 재미, 그 기로에서
- 2022. 05. 20 16:08 문화/생활
- 80~90년대에는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수입됐다. 언론들의 왜색 논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지만 작품이 보여주는 다양한 재미와 메시지는 무시할 수 없는 지점이었다. 왓챠 캡처 80년대 일요일 아침을 여는 애니메이션으로 ‘은하철도 999’가 있었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에 햇빛이 쏟아지네 …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가 흘러나오면 아이들은 저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마쓰모토 레이지의 만화 ‘은하철도 999(갤럭시 익스프레스999)’는 일본에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소년 킹’이란 만화잡지에 연재되었고, 1978년 애니메이션이 되어 1981년까지 방영되었다. 한국에 방영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으로, MBC에서 일요일 아침 7시 50분부터 전파를 탔다. 서기 2221년 철이(일본명: 호시노 데쓰로)는 엄마와 함께 눈보라 속을 걷고 있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엄마와 아들 철이는 몹시 추워 보인다. 엄마와 철이는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 메갈로폴리스를 향한다. 그러나 메갈로폴리스에 간다고 해서 누구나 기계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인간이 천 년 수명의 기계인간이 되려면 비용을 큰 지불해야 한다. 철이 아빠는 메갈로폴리스에서 그 돈을 벌다가 과로로 사망했다. 눈길을 걷던 엄마가 갑자기 철이를 멈춰 세운다. “인기척이 느껴진다. 서두르자.” 발걸음을 서두르는 두 모자를 뒤쫓는 이들이 바로 기계인간이다. 온몸을 기계로 개조한 부호 인간백작이 인간사냥에 나온 것이다. 인간사냥으로 인해 철이 엄마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박제가 될 운명에 처한다. ‘은하철도 999’ 1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떡하니 벌리고 볼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키가 크고 늘씬한 메텔의 아름다움과 작고 통통하고 잘생김과는 거리가 먼 철이의 조합이 남달랐고, 무엇보다도 인간사냥으로 엄마를 잃는다는 설정이 당시 어린 아이였던 나에게는 어마무시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메텔의 도움으로 추위를 피해 목숨을 건진 철이는 메텔이 준 은하철도 999 티켓으로 모든 인간을 무료로 기계화시켜준다는 안드로메다 성운의 어느 별을 향하게 된다. 메텔도 함께 말이다. 이들이 첫 방문한 별은 화성. 지구 식민지로 100년에 걸쳐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기계화되어 있다. 화성에서 철이는 몸의 일부만 기계화된 한 쌍의 연인을 만난다. 지구에 돌아갈 돈도, 은하철도 999를 타고 안드로메다 성운에 갈 돈도 없던 이들은 철이의 은하철도 999 티켓을 도둑질하려다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철이는 기계백작처럼 전신을 기계로 바꾸는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며 일부만 기계인간이 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도 처음 접하게 된다. 철이는 수많은 별을 여행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계인간이 되기를 꿈꾸지만, 점차 기계인간이 된다는 일에 회의도 느끼게 된다. 마지막회에서 안드로메다 성운의 어느 별에 도착한 철이는 애써 이 별까지 와서 무료로 기계인간이 된 사람들의 방탕한 모습을 보게 된다. 어차피 불로불사의 기계인간이 되었으니 일할 필요도 없다며,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살아가는 이들에게서는 열심히 살아간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철이는 기계인간과 보통인간 사이에서 망설이게 된다. 메텔은 우수에 찬 외모와 미스터리한 정체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다. ‘은하철도 999’ 블루레이 발매 이미지. 한편 철이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돕던 메텔은, 자신이 젊은 청년들을 이 별로 유인해 데려와 기계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자백한다. 그 인간들의 에너지로 이 별이 돌아간다는 사실까지도. 메텔이 검은색 옷만 입고 다니는 것은 바로 자신이 데려와 기계인간이 되어버린 청년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즉 그녀의 옷은 상복인 것이다. 113부작에 이르는 이 애니메이션은 고도 성장으로 도쿄가 새롭게 개발된 이후에 방영되었다. 수많은 별들의 모습에서 개발 이전의 도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그려내 ‘향수 짙은’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또한 ‘인간개조’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그려낸 애니메이션이다. 열심히 살기 위한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고 감정까지 잊은 기계인간으로 살아 영생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병들고 늙고 죽는 인간으로 끝까지 나의 감정과 꿈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철이의 대답은 후자다. 인간 개조 모티프는 드라마 ‘엑스파일(X파일)’에도 등장한다. 우주인과 인간의 결합으로 하이브리드를 만들거나, 시즌 9 이후로는 유전자 조작으로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낸다. 드라마 ‘프린지’에도 기계인간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세포 배양으로 태어나 하룻밤 만에 성인 크기로 성장한다. 불로불사는 아니지만 인간의 몸에 기생하여 더 오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영원한 인생을 원했던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내려던 기원전 220년대에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양한 작품들이 인간의 일부를 개조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력을 펼쳐냈고 우주 어딘가에 인간의 몸을 기계로 완벽하게 바꿔주는 별이 있으리라는 상상력 아래 마쓰모토 레이지는 ‘은하철로 999’를 집필했다. 일요일 아침이며 아이들을 불러 모으던 ‘은하철도 999’도 피할 수 없던 것, 바로 왜색 논란이다. 일본 작품이니 당연히 왜색이 짙었을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고도 경제 성장 이전의 도쿄인 것만 봐도 그렇다. 당시 신문들은 아이들이 볼 만한 국산 애니메이션이 적다고 끊임없이 지적했다. ‘은하철도 999’의 작품성보다 일본에서 수입했다는 것이 못마땅하거나 불쾌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 시절 사랑받던 일본 애니메이션, ‘들장미 소녀 캔디(캔디캔디)’, ‘바람돌이’, ‘호호 아줌마’, ‘소공녀 세라.’(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과거 수 년간 논란이 돼온 일본색이 짙은 만화영화가 상당히 자취를 감추었다고는 하나, ‘은하철도 999’ 등 일부 프로에서는 아직도 일본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어린이들은 흥미와 재미에 이끌려 TV 앞에 앉음으로써 알게 모르게 특정국 문화를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왕 수입해서 방영한다면 수입대상국이나마 다국화시키는 게 바람직하나 방송국 입장에선 위험부담 때문에 각국 제작사에 일일이 주문해서 원하는 작품을 들여올 수 없는 형편으로 중개사를 통해 들여온다는 변명” (매일경제 ‘티브이 어린이 프로에 외국 만화영화 판 쳐’ 1982년 7월 30일). 한겨레 신문은 비디오 대여점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가득한데 국내 제작 만화영화는 ‘달려라 하,니’ ‘아기공룡 둘리’ 등 두 개 뿐이라며, 국내 창작 만화 심의 신청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또한 30분짜리 만화영화 한 편의 제작비가 적게 잡아도 5천만 원 안팎인데, 같은 길이의 일본만화는 1백만 원이면 수입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우리 얘기 담은 만화영화 아쉽다’ 1990년 5월 20일) 경향신문은 “어린이 프로는 일반 프로와 달리 교육적이어야 한다”며 제작비 부담이 엄청나도 후세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최대한 투자하여 어린이 프로의 질적 향상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경향신문 ‘TV어린이 프로 개선돼야’ 1982년 3월 17일) ‘캔디캔디,’ ‘소공녀 세라,’ ‘닐스의 모험,’ ‘작은 아씨들,’ ‘소공자,’ ‘개구리 왕눈이,’ ‘호호 아줌마,’ ‘바람돌이’ 등 어린 시절 내가 보고 큰 일본만화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누군가는 ‘빨간머리 앤’을 사랑했고, 누군가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서 향수를 느낄 것이다. 당시에는 그 만화영화를 즐겨보면서도 왜 왜색이라는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지, 그것을 수입해 왜색이라고 칠하기 전에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왜색이 가득하니 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왜색이 가득하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보고 소비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았더라면 일본 만화영화를 보면서 자책감을 느끼는 일은 좀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누구나 일본 만화영화를 보면서 자책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민감한 아이들은 왜색 짙다는 만화영화를 눈 앞에 두고 봐도 될지, 보게 된다면 어느 정도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할지 고민했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 지는 알지 못했다. 당시는 일본문화 개방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던 시기였고, 한국을 식민지화했던 일본의 문화들을, 그것이 비록 만화영화일지언정, 어떻게 보고 받아들여야 할지 정답을 알고 있는 이도 없거나 드물던 시절이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영생을 얻을 것인가, 나답게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기로에서 고민하는 소년 철이가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왜색 때문이 아니라 인간 존엄과 정의라는 보편적인 테마 때문이었다는 것을. ·김민정 작가는… 재일작가. 게이오대학 종합정책학부 졸업, 도쿄외대 종합국제학 석박사 수료. 도쿄에 거주하며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에세이를 발표하고 있다. 관심사는 ‘한일 여성사’와 ‘80, 90년대 한일 사회.’ 저서로는 ‘엄마의 도쿄’ ‘떡볶이가 뭐라고’, 공저 ‘소설도쿄’ ‘SF김승옥’, 한국어 번역서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시부야 구석의 채식식당’ ‘애매한 사이’ ‘가나에 아줌마’ ‘바다를 안고 달에 잠들다’, 일본어 번역서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가 있다. 육아하는 여성이 글을 쓸 곳이 마땅하지 않아 메일 매거진 발행을 시작했다.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편하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격일 메일 매거진 ‘김민정은 김민정이다’(월 구독료 8800원)에서는 소설 ‘남편을 버렸습니다’, 만화 ‘달링은 넷우익’, 80-90년대 한일현대사, 일상다반사 등을 선보이고 있다. ‘김민정은 김민정이다’ 구독 문의 writeforhappy@hanmail.net
- 한국철도공사 허준영사장 부부의 함께하는 삶
- 2011. 12. 13 17:46 화제
- ㆍ“철도처럼 바르고 곧게, 나누는 삶 함께하겠습니다” 외무고시 출신 첫 경찰총장을 지낸 공기업 CEO.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허준영 사장은 범상치 않은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26년간의 공직생활 동안 ‘우직한 원칙주의자’라 불렸던 그는 이제 ‘허철도’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한국철도의 수장으로 지낸 2년 8개월, 열차만큼이나 빠르고 쉴 새 없이 달려온 시간을 돌아봤다. 그의 곁엔 30년을 한결같이 동행해온 부인 강경애씨가 있다. 긴장과 환희의 연속이었던 2년 8개월의 시간 겨울이 성큼 다가온 11월의 저녁, 인터뷰를 위해 서울역에 있는 한국철도공사를 찾았다. 유난히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날이었다. 전국을 무대로 이른 아침부터 이어지는 격무에 지쳐있을 법도 한데 집무실에서 만난 허준영 사장(59)은 밝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피곤하지 않냐”라며 기자에게 먼저 안부를 물어왔다. 허 사장을 처음 만난 사람들은 그의 당당한 풍채에 주눅이 드는 경우가 많다. ‘전 경찰청장’이라는 직함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와 몇 마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경력과 외모에서 오는 선입견은 쉽게 사라진다. 적재적소에 발휘되는 재치와 유연한 사고,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신념은 원칙가인 동시에 개혁가로서 허준영식 리더십을 입증해왔다. 2009년 3월 사장 취임 이후 다사다난했던 2년 8개월, 철도 조직의 수장으로서 벌써 세 번째 연말을 보내고 있다. 그는 한국철도공사 사장으로 보낸 그간의 시간들을 “긴장과 환희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철도는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안에서 겪어보니 할 일도 많고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한 분야예요. 힘들었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돌이켜보면 항상 긴장하며 지냈지만 힘들었다는 생각은 거의 안 듭니다.” 허 사장이 취임할 당시만 해도 철도공사는 몇 가지 과제를 안고 있었다. 계속되는 거액의 적자로 재정난이 이어지고 있었고 임금 협상을 둘러싼 강경 노조와의 갈등도 심화되고 있었다. 그는 결단과 소통을 통해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노사 상생경영으로 갈등을 풀고 기술혁신으로 철도를 재정비했다. 에코 철도공사로 친환경적 철도 시대를 열었고 무엇보다 철도가 국민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최근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14개 기관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 철도공사는 2005년 출범 이후 매년 갈등을 빚어오던 노조와 2년 연속 무쟁의 임금 협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강성으로 유명한 철도 노조와 맞섰다고 해서 외부에서는 저를 그보다 더한 강성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요즘은 그렇게 해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 없이는 불가능해요. 철도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사용자 역시 국민이고요. 노동자와 회사가 노조와 사용자의 관계가 아닌 노조와 경영자의 관계가 되어 함께 마음을 모아 국민을 잘 모시는, 그런 관계로 가야 합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인원 감축으로 힘든 결단을 내려야 했지만 회초리 드는 부모 심정이 어찌 편할 수 있었을까. 마음은 아프지만 국민을 모시는 입장에서 내린 최선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경찰 시절부터 유명했던 우직함과 뚝심은 철도공사가 위기를 넘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밑바탕이 됐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고난을 고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올 초 광명역에서 열차 탈선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비상체제에 돌입해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력 보완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CEO 입장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조직의 수장이 흔들리면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오히려 그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거든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직원들이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도록, 그리고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위로해야 하는 책임이 있어요. 그걸 동시에 하려면 항상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전화위복으로 만들어 나아가는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해요. 힘들었다는 생각보다는 우리나라 철도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철도는 상상을 추월하는 투자와 발전이 예약되어 있어요. 그에 걸맞는 준비를 하려면 할 일이 많습니다. 지금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봐요. 하루하루 가슴 벅찹니다.” 30년을 한결같이, 아내는 ‘내조의 여왕’ 그의 하루 일과는 새벽 다섯 시에 시작된다. 보통 네 시쯤 일어나 자전거로 여의도를 한 바퀴 돌고 여섯 시 전에 출근하는데 철도공사 본사가 있는 대전에서 회의가 열리는 날엔 KTX를 타고 일곱 시 반쯤 대전에 도착한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던 일상에 얼마 전 철도공사가 공항철도를 인수하며 인천까지 추가됐다. 취임 이후 기차 이동거리만 10만km, 하루가 짧게 부지런히 전국을 누볐다. “될 수 있으면 적게 자려고 해요. 잠은 죽은 뒤에 실컷 잘 수 있잖아요. 보통 네다섯 시간 정도 자는데 중간에 잠이 깨도 다시 잠을 청하지는 않아요. 젊은 시절부터 시작된 습관이에요. 젊었을 땐 새벽 두세 시에 눈이 떠지면 밖에 나가 조깅을 했는데 영양경찰서장 시절에는 새벽에 조깅하다 파출소 순찰차에 검문도 당하고 그랬어요(웃음).” 1980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프랑스와 영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던 그는 1984년 고시생 특채로 경찰이 됐다. 당시에도 외교관은 선망의 직업이었다. 보통사람들이 누리기 힘든 멋과 낭만이 가득한 도시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경찰에 투신한 이유는 바로 어릴 적부터 간직해온 꿈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다른 아이들은 대통령, 장군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교통순경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어린 마음에 단순히 교통순경이 멋있어 보여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경찰만큼 숭고한 사명을 가진 직업이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더군요.” 결국 그는 외무부에서 일하던 중 고등고시 출신 경찰 특채에 응모해 당당히 경찰에 임명된다. 당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인 외교관을 그만두고 왜 경찰이 되려 하느냐”라는 면접관의 물음에 그는 “외교관보다 경찰이 더 좋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그 말은 진심이었다. 물론 주위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경찰이 된 직후 처가에 갔는데 장모님께 친구분이 사위 직업을 물어봤나 봐요. ‘우리 사위 내무부에서 일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장모님께서 제 직업을 부인하신다면 이 결혼 무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장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찰직은 자긍심과 사명감 없이는 수행하기 힘든 직업이거든요.’ 가까운 이들에게 먼저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단호하게 말씀드렸고 다행히 장모님도 그의 뜻을 따라주셨다. 그보다 외교관에서 때론 위험한 범죄와 맞서야 하는 경찰이 된 남편을 아내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남편이 오랜 시간 생각해온 일이고 또 사명으로 시작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았어요. 한번 마음먹은 것은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거든요.” 부드러운 목소리, 온화한 인상. 잠시 동안의 마주침에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부인 강경애씨는 스물여섯 살에 허준영 사장을 만나 이제껏 그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왔다. 미국 유학파 출신의 커리어우먼이었던 그녀는 결혼 후 30년 동안 전업주부로 묵묵히 가정을 지킨 ‘내조의 여왕’이기도 하다. “결혼 당시 기업체에 근무하던 아내는 월급이 50만원이 넘는 고소득자였어요. 반면 외무부 사무관이던 저는 월급이 18만원 정도였죠. 장남인지라 아내가 맏며느리 역할을 잘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그런 제 뜻을 따라서 결혼하자마자 직장을 그만두고 봉천동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했어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던 탓에 집사람 마음을 헤아리지도 않고 시집살이를 시킨 게 아닌가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자기는 가정주부가 더 좋다며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항상 고마워요.” 든든한 버팀목, 사랑하는 가족 해외에서 생활할 당시,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덕분에 남편보다 영어를 더 잘했지만 늘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배려 깊은 아내였다. 경찰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1, 2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녔고 생전 살아보지 않았던 첩첩산중에 가 시골 아줌마로 살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경북 영양군 경찰서장으로 발령이 났을 때 가족과 함께 그곳으로 이사를 했어요. 당시 영양군은 전국에서 가장 외진 곳이었기에 가족까지 이사하는 예가 거의 없었거든요. 군민들과 좀 더 가까워지려면 관할 지역에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사를 가자고 했고 아내와 아이들이 따라주었죠.” 프랑스에서 태어나 영국을 거쳐 홍콩에서 학교를 다니던 큰아이는 한국에 돌아와 이제 막 한국 학교에 적응하려던 참이었고 둘째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일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게 또 한 번 환경의 변화를 겪게 했던 것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지만 강경애씨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으로 기억되고 있다. “도시에서만 살던 아이들이 처음 시골 생활을 하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영양에서 보낸 기간은 참 행복했고 교육적으로도 좋았어요.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않았지만 순박하게 살아가는 지역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요. 영양에 고추가 유명하잖아요. 서울에서 사 먹을 땐 몰랐는데 하나하나가 귀하지 않은 것이 없어요. 동네분들과 반찬도 나눠 먹고 미장원도 같이 다니고, 참 즐겁고 행복했던 경험이에요.” 현재 큰딸은 금융기관에 취직해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 딸은 베이징에서 공부 중이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 종종 선을 보곤 하는데 맞선 상대자로 공직자가 나올 때면 지방근무가 많을까 걱정되면서도 집안 내력인가 싶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고. “아이들이 고등학교 때였나, 어느 날 저한테 그러더군요. 자기들은 공부만 열심히 할 테니까 결혼은 아빠가 책임지라고요. 그땐 아빠가 책임질 테니 염려 말라고 큰소리 쳤는데 지금은 알아서들 연애도 하고 사윗감도 데리고 와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네요(웃음). 언젠가 아내에게 왜 나와 결혼했냐고 물었는데 저의 유머감각에 반했다고 하더군요. 저와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만나서 웃을 수 있는 사람과 결혼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6년 경륜의 스페셜 제너럴리스트, 사회에 환원하는 삶 살고파 신념과 원칙을 지키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와 도전을 추구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안정과 안전을 추구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적 특성상 변화 지향적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그는 이러한 통념을 벗어나는 삶을 살았다. 부산 남부경찰서 대공과장을 시작으로 홍콩주재관, 경북 영양경찰서장, 남대문경찰서장 등을 거쳐 제12대 경찰청장까지, 경찰로 산 22년 동안 무려 서른 번이나 보직을 이동했다. 잦은 보직 이동, 항상 일에 매진하는 남편 때문에 부인 입장에서 외로웠을 법도 한데 워낙 일을 열심히 하니 불평할 수가 없었단다. 오히려 오랜만에 같이 시간을 보낼 때면 이제 막 결혼한 부부처럼 신혼 기분을 내며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고 한다. “아이들 중·고등학교 때는 주말 부부였고 남편이 서울에 있을 때도 경찰서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모처럼 외식을 하거나 함께 외출을 하면 설레요. 덕분에 30년을 살았지만 부부간의 권태기를 느낄 겨를이 없었어요.” 경찰 시절 그는 남들이 기피하는 보직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기 발전을 위해서는 더 힘들고 험한 일을 택해서라도 한 단계씩 스스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간기업과는 달리 국가기관은 자신이 선택해서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기 힘들어요. 대신 남들이 기피하는 보직을 자청할 경우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자기 역량의 한계를 시험하고 발전하는 기회로 만들 수 있어요. 외교관에서 경찰 공직자로, 또 그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부분이 얼마든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철도공사에 부임해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직한 뚝심과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승승장구해온 듯한 인생이지만 그에게도 크고 작은 시련이 있었다. 2005년 경찰청장 재직 시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때 시위 농민이 사망하는 사건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던 일도 그중 하나다. 20년 넘게 삶의 전부였던 경찰조직을 뒤로하고 땀과 눈물이 밴 제복을 벗어야 했던 아픈 기억은 자신의 쓰임새가 발휘될 수 있는 일을 찾아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됐다. “특정 전문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스페셜리스트가 있는가 하면 어느 조직, 어느 분야에서든 역량을 발휘하는 제너럴리스트가 있습니다. CEO로서 제가 할 일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들이 가진 전문성을 아우르고 경청하면서 그 능력들이 십분 발휘되도록 조율하고 이끄는 스페셜 제너럴리스트라고 생각해요. 세계적으로 향후 고속철 시장은 눈부신 발전이 예고되고 있어요. 그에 대비해 직원들의 실력과 그에 걸맞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죠.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거듭나고 지금보다 더 바르고 부드러운 사회공동체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앞으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철도를 사랑하는 국민께 계속 애정을 갖고 지켜봐달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강경애씨 역시 남은 인생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남편을 따라 나누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이다. 곧고 바르게, 한 곳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철도와 닮았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제공 / 이주석, 한국철도공사>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