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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407 건 검색)

“계엄이 파괴하는 일상은 국적을 구분하지 않는다”···인종차별 철폐 외치는 이들
“계엄이 파괴하는 일상은 국적을 구분하지 않는다”···인종차별 철폐 외치는 이들
2025. 03. 16 17:21사회
... 서울역 앞에서 ‘2025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를 열었다. 오는 21일은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196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며 시위를 하다...
이주민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이주인권차별금지
“차별받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 [현장 화보]
“차별받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 [현장 화보]
2025. 03. 16 17:12사회
... 철폐의날을 앞두고 전국이주인권단체가 공동주최한 기념대회가 16일 열렸다.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날은 오는 21일로, 1960년 3월 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현장 화보인종차별인종차별철폐의날이주노조
[포토뉴스]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포토뉴스]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2025. 02. 26 21:27사회
... 인권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26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구직기간 제한 철폐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경향포토] 불법체류 양산하는 이주노동자 구직기간 제한 철폐하라
[경향포토] 불법체류 양산하는 이주노동자 구직기간 제한 철폐하라
2025. 02. 26 11:05사회
... 활동가들이 26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 구직기간 제한 철폐 등 미등록체류 이주노동자 양산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2025.2.26. 정지윤 선임기자...
경향포토

스포츠경향(총 19 건 검색)

‘테니스 소송전 발발’ 조코비치, 투어 독점 철폐 소송 제기
‘테니스 소송전 발발’ 조코비치, 투어 독점 철폐 소송 제기
2025. 03. 19 08:05 스포츠종합
노박 조코비치. Jayne Kamin-Oncea-Imagn Images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가 공동 창립한 선수 노조가 테니스 투어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프로테니스선수협회(PTPA)’는 “반(反)경쟁적 관행과 선수 복지에 대한 명백한 무시” 등을 이유로 미국 뉴욕 연방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19일 밝혔다. 해당 소송은 배심원 재판을 요구하고 있으며, 총 163페이지 분량의 소장에는 “프로 테니스 선수들은 자신들의 커리어와 브랜드에 대한 통제권이 제한된 불공정한 구조 속에 갇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PTPA는 경기 일정, 랭킹 시스템, 이미지 권리 통제 등을 문제 삼았다. PTPA는 ATP, WTA뿐만 아니라 국제테니스연맹(ITF), 국제테니스청렴기구(ITIA)도 소송 대상에 포함했다. 소송의 핵심은 “투어에 대한 독점적 통제 철폐”와 “금전적 보상”이다. 조코비치와 함께 PTPA를 공동 창립한 바섹 포스피실(캐나다), 닉 키리오스(호주) 등 선수 12명이 원고로 참여했다. PTPA 집행이사 아흐마드 나사르는 “테니스 시스템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며 “선수들은 착취당하고, 수익이 억제되며,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화를 통한 개혁을 시도했지만, 기존 조직들은 이를 거부했다”며 “법적 조치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소송에 대해 남자 프로 테니스 투어를 운영하는 ATP는 “PTPA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ATP는 성명을 통해 “PTPA는 지속적으로 분열과 오해를 조장해왔다”며 “이번 소송은 시간 낭비”라고 강하게 반응했다.
49년 만에 철폐된 양키스의 용모 관리 규정, 이제 수염도 기를 수 있다!···“시대에 뒤떨어진 정책, 많이 고민했다”
49년 만에 철폐된 양키스의 용모 관리 규정, 이제 수염도 기를 수 있다!···“시대에 뒤떨어진 정책, 많이 고민했다”
2025. 02. 22 11:24 야구
할 스타인브레너 뉴욕 양키스 공동 구단주. AP연합뉴스 故 조지 스테인브레너 전 구단주 시절부터 있어온 뉴욕 양키스의 케케묵은 용모 관리 규정이 무려 52년 만에 완화됐다. 할 스타인브레너 양키스 공동 구단주는 22일 구성원들에게 수염 기르는 것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으로 양키스의 선수, 지도자, 직원들은 수염을 기를 수 있다. 단, ‘깔끔하게’라는 조건이 붙는다. 양키스는 용모 및 복장 규정이 매우 엄격한 구단이었다. 2010년 타계한 조지 스타인브레너 전 구단주는 1976년 양키스를 인수한 뒤 선수들에게 면도와 이발을 요구했고, 이 규정에 응하지 않는 선수는 전력에서 제외하거나 영입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입술 아래쪽으로 수염을 기를 수 없게 했고, 옷길을 넘어갈 정도로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을 금지했다. 다만 잘 정돈된 콧수염까지는 허용했다. 돈 매팅리가 양키스 선수 시절 ‘두발 자유화’ 투쟁에 나섰지만, ‘규정에 따르지 못하면 떠나라’는 강경한 입장에 주장을 접기도 했다.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랜디 존슨과 뉴욕 양키스 입단 후 랜디 존슨. AP연합뉴스 이 때문에 양키스는 스토브리그에서 손해를 보기도 했다. 2013년 마무리 투수 브라이언 윌슨을 영입하려 했으나 윌슨이 수염을 깎을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영입전에서 철수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렀던 선수들이 입단식에서 말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었다. 2019년 양키스에 합류한 리그 최고의 투수 게릿 콜과 2022년에 입단한 카를로스 로돈은 모두 이발과 면도를 한 뒤 입단식에 참석했다. 2010년 양키스에 합류한 박찬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이런 모습은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할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예전부터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에 관해 많이 고민했다”라며 “최근 몇 주 동안 전·현직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결정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주장인 애런 저지와 에이스 콜 등 주축 선수들은 용모 관리 규정 완화에 찬성했다. 콜은 “합리적인 결정”이라며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고, 면도하다가 다칠 위험을 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조니 데이먼과 뉴욕 양키스 시절 조니 데이먼. AP연합뉴스
대한배드민턴협회 “주요 규제 폐지 또는 철폐”, 문체부 발표
대한배드민턴협회 “주요 규제 폐지 또는 철폐”, 문체부 발표
2024. 12. 30 08:26 스포츠종합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문화체육관광부가 30일 대한배드민턴협회 조사 결과에 대한 관계기관 후속 조치 상황을 발표했다. 문체부는 지난 10월 31일 협회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2개월 이내 요구 사항을 조치하고, 이의가 있는 경우 1개월 이내 신청하라고 밝힌 바 있다. 협회는 조치 요구사항 25건 중 16건 이행을 완료했고, 6건은 개선 중이며 3건은 이의신청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배드민턴협회는 국가대표 활동 기간 5년을 충족하고 일정 나이(남자 28세, 여자 27세) 이상인 비국가대표 선수만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한 규제를 폐지했다. 또 국가대표 선수가 자비(소속팀 지원 포함)로 해외 리그, 해외 초청 경기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제한도 없앴다. 이밖에 복식 국가대표 선발 방식에 평가 위원의 주관적 평가 점수 30%를 폐지하고, 세계 랭킹에 따른 우선 선발 범위 역시 기존 단식 16위, 복식 8위에서 단식 24위, 복식 12위로 확대했다. 국가대표 유니폼에 선수 후원사 로고 노출 제한도 해결돼 10월 문체부 발표 후 선수 2명이 유니폼에 개인 후원사 로고를 노출했다. 2023년 대표 선수들에게 미지급한 후원사의 선수단 포상금 6400만원은 지난 11월 파리 올림픽 포상식에서 지급됐다. 외출·외박 시 선수 의견 최대한 반영, 입찰 공고를 통한 협회 메인 후원사 선정, 후원업체의 공인구 지정, 협회 물품 관리, 업무추진비 사용 등도 개선됐다. 개선 중인 사안은 선수의 경기 용품 사용 시 선택권 보장, 상임 심판 재개, 2020년 대표 선수들에게 미지급된 후원사 후원금 배분, 국가대표 1, 2진 선수들의 전략적 국제 대회 출전 계획 수립, 선수 부상 발생 시 선수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국가대표 운영 지침 개정, 의무위원회 활성화와 부상 진단 시 교차 검증 시행 등이다. 협회는 2023년과 2024년 회장의 후원 물품(페이백) 용도 외 사용(보조금법 위반),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수의 계약으로 물품 구입, 협회 정관을 위반한 임원 성공보수 지급 등 3건에 대해 이의신청했으나 문체부는 지난 26일 이의신청 심의위원회를 열어 모두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문체부는 2025년 1월 초부터 보조금법 위반액 환수 및 제재부가금 부과를 진행하고, 1개월 이내 회장 해임과 사무처장 중징계, 2개월 이내 임원 성공보수의 협회 재정으로 반납 조치 및 마케팅 규정 개정을 재요구할 예정이다. 김택규 현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은 2025년 1월로 예정된 차기 협회장 선거에 출마 의사를 밝혀 현재 회장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문체부 담당자는 “협회가 선수 권익 보장을 위해 상당 부분을 개선했지만, 아직 완료되지 않은 사항들은 제대로 이행되는지 지속해서 점검할 것”이라며 “배드민턴협회가 처리 기간 내 책임 있는 자에 대해 상응하는 조처를 하지 않는 경우, 10월 말에 발표한 대로 특단의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축구협회, 논란의 회장 사면권 철폐
대한축구협회, 논란의 회장 사면권 철폐
2023. 07. 25 17:30 축구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 3월 사면 철회를 발표하면서 사과문을 직접 읽은 뒤 질의응답없이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축구협회가 승부조작에 면죄부를 주면서 거센 비판을 받았던 ‘회장 사면권’을 철폐한다. 대한축구협회는 25일 서울 축구회관에서 제5차 이사회를 열고 안건으로 올라온 ‘공정위원회 규정 개정의 건’을 통과시켰다. 이번 안건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역시 회장 고유의 권한인 ‘사면권’ 폐지다. 협회 공정위원회 규정 ‘제3장 징계 제24초 사면’에 따르면 ‘사면권의 발의는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고유권한으로 협회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시행하며 사면의 종류, 대상 등은 사면법상의 징계 사면 관련 규정을 준용한다’라고 명시됐다. 협회가 회장의 판단에 따라 이사회 의결만 거치면 사면을 단행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었다. 그러나 협회의 상위 단체인 대한체육회에 회장 고유의 사면 규정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지난 3월 승부조작 등의 비위 행위로 징계 축인 축구인 100명에 대해 사면을 단행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협회는 ‘제명의 경우 징계효력발생일로부터 7년, 무기한 자격정지 또는 무기한 출전 정지의 경우에는 징계효력발생시행일로부터 5년, 유기한 자격정지 또는 출전정지의 경우에는 징계처분 기간의 2분의 1 이상이 각각 경과해야 징계의 감경 또는 해제를 심의할 수 있다’라는 공정위 규정을 바탕으로 사면 심사를 거쳐 100명에게 ‘면죄부’를 줬다. 한국 축구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본선 10회 연속 진출을 넘어 16강까지 오르면서 축구계 화합과 새 출발을 꾀하겠다는 의도렸다. 그러나 이 발표가 같은 날 우루과이와 평가전을 1시간 앞두고 기습적으로 발표된 데다가 체육회와 프로축구연맹 등 관련 단체들의 반대 목소리까지 불거지면서 사흘 뒤 철회되는 해프닝이 나왔다. 정몽규 회장이 직접 사과문을 읽은 협회는 대한체육회 규정에 맞춰 공정위 규정을 개정하게 됐고, 사면권을 삭제하게 됐다. 더불어 확정된 징계 구제 사유도 기존의 ‘정상을 참작할 필요가 있는 경우 감경, 해제 가능하다’라는 다소 모호한 문구를 대한체육회 규정에 맞춰 ‘수사기관의 불기소결정·법원의 무죄판결, 징계 대상·기준·시효 규정 변경되어 징계사유 구성하지 않는 경우 감경, 해지 가능’으로 바꾸기로 했다. 다만 대한체육회 공정위 규정에도 ‘사각지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축구 종목의 특성에 맞는 규정은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축구협회는 ▲ 협회·시도협회·연맹단체 임직원 ▲ 협회 등록 단체·선수·지도자 등 소속원 ▲ 심판·중개인(에이전트) 등이 징계 대상이다. 대한체육회 역시 ‘체육회 관계 단체에 등록된 지도자·선수·심판·선수관리담당자 등 회원과 운동경기부 등 단체’를 징계 대상으로 삼지만 ‘대한체육회 경기인 등록시스템’에 등록돼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면 K5·6·7 등 하부리그에서 뛰는 동호인이나 중개인, 경기 감독관 등은 징계 대상에서 빠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축구협회는 이들도 징계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또 대한체육회 공정위 규정에는 팀에 대해 출전정지 징계만 내릴 수 있는 만큼 축구 종목의 특성에 따른 승점 감점 및 강등 등 팀에 대한 현행 징계 규정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주간경향(총 5 건 검색)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12)비정규직 철폐 외친 기륭전자 노동자들(2021. 08. 20 14:41)
2021. 08. 20 14:41 사회
ㆍ10년 전투가 남긴 건 ‘승리’ 아닌 ‘연대’ 1966년 외국인투자기업으로 설립된 ‘기륭전자’는 디지털 셋톱박스와 디지털 라디오 등을 만드는 회사다. 2005년까지는 연매출 1600억원, 당기순이익 60억원에 달했던 중견제조업체였지만, 2010년 최동열 대표이사 취임을 전후해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대표이사의 업무상 배임과 비위행위로 점차 기울다가 2014년 상장 폐지된 뒤 사실상 폐업에 이르렀다. 2008년 기륭전자 앞 천막에서 단식농성 중인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모습. / 김창길 기자 위성수신 라디오 개발에 돌입한 2002년 초, 기륭전자는 구로공단에서 가장 먼저 생산공정에 파견직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구로공단 내 대부분 사업장이 파견업체를 통해 충원했다. 제조업체 상당수가 지방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추세였던 시기라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불안정한 파견직 일자리를 찾았다. 2002년 여름 50~60명 정도였던 생산직 규모는 가을에 접어들면서 100여명으로 늘었다. 일감이 늘면 파견직을 더 뽑고, 일감이 줄면 파견직으로 내보내는 방식으로 정규직은 줄이고 비정규직은 늘렸다. ‘문자 받지 말고 내일 보자’ 기륭전자의 노무관리 방식은 유독 야비한 측면이 있었다. 노동자들의 기본급이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1등급 정규직, 2등급 계약직, 3등급 파견직으로 나누고 상여금을 차등 지급했다. 정규직 중 업무가 느리거나 서툰 해고 대상자에게 관리직을 맡겨 업무 압박을 주고 내몰았다. 노동자를 기계부품 취급을 하고 모욕적인 대우를 서슴지 않았다. 잡담을 했다고 해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고했다. 오죽하면 일과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문자 받지 말고 내일 보자는 게 인사였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 분위기는 각박했고, 노동자들은 동료를 경쟁상대로만 보았다. 3일을 버티는 신규 파견직원은 거의 없었고, 3일 출근을 하고 나서야 동료들이 말을 걸어올 지경이었다고 한다. 드물게 정규직과 계약직, 파견직 노동자가 모두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가 아닌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싸웠던 기륭전자분회가 결성된 날은 2005년 7월 5일이다. 오전 10시 쉬는 시간 10분 동안, 200여명의 노동자가 조합가입서를 썼다. 인간답게 일하겠다는 열망이 보여준 쾌거다. 노조를 만들고 한달도 지나지 않아 회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2010년 11월 정규직 복직 합의까지 1895일을 싸우고, 2년 6개월의 복직 대기기간을 보낸 후 2013년 5월 2일 정규직으로 첫 출근을 했지만 회사는 일을 시키지 않았다. 2013년 12월 30일 도망치듯 이사를 가버린 회사에서 조합원들은 다시 358일의 철야농성을 또 해야 했다. 안 해본 싸움이 없다 기륭전자의 싸움은 크게 두가지 노동문제를 드러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나는 노동조합 결성 후부터 노사합의를 이룬 1895일의 싸움인데, 이때는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의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고 싸웠다. 다른 하나는 2010년 11월 1일 합의 이후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난 먹튀 자본과의 싸움이다. 물론 투기자본이 이득을 취하고 철수하려면 정리해고, 도급화(비정규직화)가 주로 사용되므로 완벽하게 다른 문제로 보기도 어렵다. 2013년 야밤에 기습 폐업해 버린 구로공단 기륭전자의 사무실을 해고노동자들이 지키고 있다. 2014년 10월 촬영된 사진이다. 농성 281일째라는 숫자가 보인다. / 권호욱 기자 기륭분회는 안 해본 싸움이 없다. 단식, 공장 점거 파업, 회사 옥상 점거, 고공농성, 오체투지, 미국원정투쟁까지…. 지리멸렬한 교섭과 회사 측의 판 뒤집기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방식은 투쟁밖에 없다는 듯이, 열심히 싸웠다. 2008년 3월, ‘기륭여성비정규직 승리를 위한 공대위’가 꾸려졌다. 그해 5월 1일 노동조합 조합원 4명이 서울광장 조명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서울 남부지역 시민사회단체, 유가협과 민족민주열사 추모사업연대회,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민교협·민변과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싸웠다. 같은해 5월 26일 구로역 앞에서 고공농성이 또 시작됐다. 연일 촛불집회가 열렸고 투쟁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민변, 민교협,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관계자들이 촛불집회에 함께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2013년 11월 20일 기륭전자 복직 노조원들이 사회적 합의 실행을 요구하며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 김기남 기자 6월 11일, 10명의 조합원이 집단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그중 3명의 노동자는 철조망을 걷고 공장 1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문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살아 내려오지 않겠다고 했다. 정치권을 압박하자는 공대위의 움직임도 효과가 없었다. 7월 22일에는 13명의 여성 국회의원이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공동행동에 나섰지만 역시 회사는 무시로 일관했다. 그러는 와중에 암투병 중이던 권명희 조합원이 사망했다. 1000일 투쟁이 끝나고 기륭분회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에 결합한다. 이후 모든 비정규직을 위한 발걸음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기륭분회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건립과 운영에 참여하면서 여전히 비정규직 철폐투쟁에서 활약 중이다. 연대라는 희망 인간은 타인과 연결되고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성장했고 어쩌면 다른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타인을 만나 배우고 의존하면서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노동자 투쟁은 많이 지고 가끔 이긴다. 그러므로 한 전투의 승패가 아니라 그 전투가 사람을 남기고 단결을 남기고 연대를 남겼는가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기륭전자 노동조합의 여정을 담은, 기륭전자분회 투쟁 10주년 평가 자료집 표지에 적힌 문구다. 전투라는 말이 주는 긴장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그들의 10년은 전쟁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서로를 돌아봐 주지 못했던 동료들은 노조를 만들면서 10년 투쟁을 함께 겪은 동지가 됐고, 촛불시민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거칠게 쉰 목소리를 들었으며, 예술가들은 노동자들의 움직임과 마음의 소리를 다양한 작업으로 재현해냈다. 상급 조직에 아쉽기도 했을 테고, 이탈한 조합원의 빈자리는 헛헛했을 것이다. 아쉬움과 부족함을 감당하며 이들은 다른 비정규직과 여전히 함께 싸우고 있다. 우리가 미처 몰랐거나 알고 싶지 않았을 장면들이 그냥 흘러가게 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덥석 참여한 기획이 오늘로 끝난다. 여전히 자기 앞의 싸움을 돌파하며 희망과 좌절 사이를 뒤척일 많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내며.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 이번 호로 마칩니다.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장애인 이동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2021. 04. 09 11:40)
2021. 04. 09 11:40 사회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55)는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장애를 얻었다. 그가 세 살 때였다. 그리고 마흔이 될 때까지 ‘착한 장애인’으로 살았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튀면 안 되고, 온순해야 하고 말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4월 6일 서울 종로1가에서 장애인 이동권 완전 보장을 촉구하며, 쇠사슬로 버스에 몸을 묶었다. / 이하늬 기자 그는 비장애인처럼 보이고 싶었다. 매일 넘어지면서도 걷는 연습을 했고 일도 열심히 했다. 삼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보험을 팔고 화장품을 팔았다. 한복 바느질 일도 6~7년 정도 했다.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힘들다고 하면 “네가 장애인이니까”라는 답이 돌아올 것 같았다. 이 공동대표는 서울시장 선거기간인 3월 31일 오세훈 서울시장(당시 후보)을 찾았다. ‘11대 장애인 정책 요구안’을 오 시장 측에 30번 정도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해서다. 오 시장은 이 공동대표가 내민 요구안을 들고 사진을 찍은 다음, 다시 요구안을 돌려줬다. 이 공동대표가 소리쳤다. “이거 가져가셔야죠!” 서울시장 선거를 하루 앞둔 4월 6일에는 “버스를 타겠다”며 종로1가로 향했다. 출근 시간인 오전 8시였다. 휠체어는 버스 계단을 오르지 못했고, 시민들의 불평이 쏟아졌다. ‘튀면 안 되고 온순해야 한다’던 그는 어쩌다가 소리치고 버스를 멈추는 사람이 됐을까. 지난 4월 5일 서울 동숭동에서 이 공동대표를 만났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찍힌 영상이 이슈가 됐다. “우리가 여러 후보와 정책협약을 했는데, 안철수 후보는 먼저 연락이 왔다. 오세훈 시장이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정책도 이어져야 한다. 정책 요구안을 30번 정도 보냈는데 답이 없어 직접 찾아갔다. 요구안을 주니까 계속 피했다. 기념사진만 찍고 다시 돌려주길래 ‘가져가셔야죠’라니까 그냥 웃더라.” -선거 국면 직전에는 구치소에 갔다 왔다. “저상버스를 도입하라고 버스를 점거하고, 장애인 복지예산 확대를 요구하면서 도로를 행진했다는 이유로 벌금이 나왔다. 벌금을 낼 수 없어 노역을 갔다. 돈이 없기도 하지만 벌금을 내고 싶지 않았다. 이동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국가가 이동권을 보장해줬다면 우리가 싸울 이유가 없다. 많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장애인 이동권을 약속하고도 예산이 없다며 ‘나중’을 이야기한다. 그런 지자체장은 왜 처벌받지 않나.” -구치소 시설이 모두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했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나. “가장 중요한 게 먹는 거랑 ‘싸는’ 거다. 첫날은 아예 화장실에 안 갔고, 이튿날에는 교도관에게 들어달라고 해 변기에 앉았다. 다음날 안전바를 설치해주길래 기어 기어서 화장실을 갔다. 아직 어깨가 아프고 문턱 때문에 엉덩이가 다쳤다. 나는 이렇게라도 갔지만, 노역에 함께 들어간 다른 두 사람은 장애인 화장실이 아니면 아예 접근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번이 세 번째 노역이었다. 원래 이렇게 ‘강성’이었나. “운동권? 전혀 몰랐다. 나는 착한 장애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애 키우고 돈 버느라 참 힘들었는데 힘들다고 말 한마디 못 했다. 비장애인이 정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장애인처럼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라고 여겼다.” -장애운동에 발 들이게 된 계기가 뭔가. “장애인 복지관에 컴퓨터를 배우러 갔는데, 담당자가 ‘장애여성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고작 3명이 뭘해? 사람들 열심히 꾀어 모임에 오게 하고 또 누구 없나 물어 집에만 있던 장애인들도 나오게 했다. 그러다 2008년 얼떨결에 의정부 장애인자립센터 소장을 맡게 됐다. 비상근직이니까 일주일에 한두 번만 나오면 된다고 했는데 여기까지 와버렸다.” -활동을 시작했을 때 어땠나. “신세계였다. 조용히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버스를 타자 하고,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야기하더라. 버스? 나 한 번도 못 타봤는데? 활동보조서비스? 나 어렸을 때 이런 것 있었으면 너무 좋았겠는데? 살면서 겪은 것들이니까 바로바로 이해가 됐다.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장애운동하면서 전동휠체어도 처음 탔다.” -휠체어는 왜 안 탔던 건가. “비장애인처럼 살아야 하니까. 조금이라도 걸으려고 집에서 날마다 연습을 했다. 쌀 들고 걷다가 넘어져 쌀 다 흩고… 그때는 조금이나마 걷는 게 위안이었다. 운동을 안 했으면 휠체어를 안 타려고 했을 거다. 창피하니까. 휠체어를 타면서 아이들에게 물어보니까 ‘엄마 맨날 넘어지고 잘 걷지도 못했는데 뭐’라고 쿨하게 말하더라.” -활동하면서 욕도 많이 먹는다. 가령 지하철이나 버스 타기를 하면 사람들이 ‘지각한다’고 뭐라고 한다. “10명 중 8명은 화를 낸다. 속상하다. 왜 내가 이런 욕을 먹어야 하나. 그래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한다. ‘죄송하지만 우리는 평생을 이동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불편하시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달라’고 한다. 2월에 ‘지하철 타기’를 했을 때 사무실로 전화가 500통이나 왔다.” -이번에 노역 갈 때, 아이들이 쓴 편지가 언론에 공개됐다. 가족의 지지가 큰 힘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은 비장애인이지만 엄마가 겪는 걸 다 알았던 것 같다. 버스를 당연히 못 타는 것, 차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것, 항상 식구들이 뭔가를 챙겨야 하는 것. 활동하면서도 아이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장애인은 늘 손이 부족하니까. 집회 중에 장애활동가들이 연행되면 우리 아이들이 동행하기도 했다. 무섭긴 했지만 딱 보니까 같이 갈 사람이 자기밖에 없더라는 거다. 지금은 이런 활동이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다.” -‘착한 장애인’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활동이 힘들지는 않나. “내가 한복 바느질을 정말 잘했다. 아주 얇은 저고리의 경우, 잘하는 사람이 보통 하루 4개 정도 한다. 나는 하루에 7개를 했다. 그런데도 이거 잘하면 뭐하나 싶고 하기 싫었다. 일을 하다 보면 권태기가 느껴지는데 활동은 그런 게 없다. 우리가 싸워 세상이 바뀌었다. 활동지원서비스도 늘리고 저상버스를 도입했다. 16년째 하는데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 좀 더 알고 싶고 사명감도 있다. 천생 나한테 잘 맞구나 싶다.”
[주목! 이 사람]양한웅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 “비정규직 사라지는 그날까지”
[주목! 이 사람]양한웅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 “비정규직 사라지는 그날까지”(2020. 04. 24 15:43)
2020. 04. 24 15:43 사회
코로나19 여파로 고용 충격이 커지고 있다.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에 있는 일용직과 임시직은 속절없이 일터에서 밀려나고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 상당수는 생존을 걱정한다. 생계 위협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멀리 퍼지지 못한다. 이들은 노동계 내부에서도 주류에 속하지 않는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질라라비>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질라라비는 ‘해방자’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권리를 세상에 알리고 연구한 결과를 공유하는 공간이다. 2002년에 창간해 2020년 4월, 200호를 발간했다. 고단한 여정이었다. 책 디자인은 회원들이 품앗이로 돌아가며 작업했고, 철폐연대 연구소 연구원들과 뜻이 맞는 정책 전문가들이 보내준 원고를 받아 지면을 꾸렸다. 강윤중 기자 “‘기적’이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지만 그만큼 힘든 일이었어요. 한국노동운동 역사에서 기관지가 이렇게 오래 발간된 건 처음일 겁니다.” 양한웅(61)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가 풀어놓은 <질라라비>의 사연은 애틋했다. “출판사에 지급해야 할 제작비가 1년 동안 밀린 적이 있었어요. 사정을 아는 출판사 선생님이 고맙게도 마냥 기다려줬지요. 그러다가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오면 후원 행사를 열어서 갚고. 그렇게 책을 만들어왔습니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데 왜 인쇄매체를 고집할까. 그는 “온라인으로 가야 하나 많이 고민했어요. 철폐연대 상근 활동비도 넉넉히 주지 못하는 형편에 큰 비용이 들어가는 <질라라비>를 계속 오프라인 잡지로 내야 하나. 거의 포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질라라비>는 무게감 있는 기록물로 남아야 한다’는 바람을 떨쳐내지 못하겠더라고요. 근근이 버티는 사이에 회원도 늘고. 십시일반으로 도와줘서 잡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양 대표는 한국통신 노동자 출신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집중해온 노동운동가다.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으며 10년 동안 KTX 투쟁을 이끌기도 했다. “2001년, 그때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하던 시절인데 한국통신(KT) 계약직 노동자들 8000명이 해고됐어요. 계약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는데. 정말 처절하게 투쟁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데 숙연한 감정이 들더군요. 그들의 투쟁을 목도한 뒤에 ‘나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비정규직의 권리를 찾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야속하게도 한국사회는 더 많은 비정규직을 쏟아내고 있다. 전과 달리 지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스며들었다. “학교나 기업, 공공기관 비정규직들은 그래도 노동권을 보장받아 목소리를 낼 수 있지요. 하지만 그 밖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취약한 노동환경에 그냥 노출돼 있어요. 노동권이 없는데 그 사실조차 인지 못 하는 형편이지요.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빈부격차 문제의 해소는 불가능합니다. 비정규직은 고용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차별의 문제예요. 더 많은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노동권을 주장하고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아, 물론 <질라라비>는 비정규직이 사라지는 날까지 펴낼 겁니다.”
주목! 이 사람
[사회]‘불안정 노동 철폐연대’ 10년간의 외로운 투쟁(2012. 09. 11 14:16)
2012. 09. 11 14:16 사회
ㆍ창립 10주년, 비정규직 열악한 현실 알리려 노력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개사한 ‘노동스타일’ 노래에 맞춰 노동자들이 말춤을 연습하고 있었다. 9월 14일로 10주년을 맞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철폐연대)를 출범 전부터 꾸려온 상임활동가 김혜진씨도 그 가운데 있었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 섰던 철폐연대는 이번에는 쌍용차지부·재능교육지부 등 17개 노조가 구성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과 함께였다.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벌어진 ‘노동스타일’ 플래시몹은 대선을 앞둔 정치권을 향해 불안정 노동의 현실을 개선하라고 촉구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 80여개 단체로 구성된 ‘비정규직 없는 일터ㆍ사회 만들기 공동행동’이 1000만 선언운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철폐연대는 가입한 회원 수 600여명, 상근으로 일하는 활동가는 5명에 불과한 작은 단체이지만 한국 비정규노동운동의 중심에 서 왔다. 비정규노동운동은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3D 업종이라 불릴 정도로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다. 2012년 3월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47.8%나 되지만 노조 가입률은 1.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형 사업장을 중심으로 조직된 노조 내부의 활동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10년 동안 철폐연대의 활동에 참여한 회원들의 인적 구성이 계속 바뀌어온 것도 정규직 노조에 비해 대응할 수 있는 폭이 작은 비정규노동운동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철폐연대의 10년은 불안정한 노동상황에 처해 있는 비정규직·해고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서 지낸 세월이었다. 철폐연대가 활동해온 방향의 변화는 비정규노동운동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바람이 불어오면서 1998년 간접고용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파견법이 제정·시행됐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파견철폐공대위 활동을 이어받아 2002년 철폐연대가 출범했다. 2002년까지는 기업측의 비정규직에 대한 방침이 체계적이진 않았고, 노동계도 전반적으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양상이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교적 친노동 성향의 정권일 것이란 기대감에 비정규노동운동도 보다 공세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의 합의 하에 파견법상 허용 대상 확대와 기간제법 제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비정규직 법안이 발의되면서 노동계의 기대는 꺾였다. 노동계 기대 저버린 비정규직 법안 김혜진씨는 “기대와 달리 2004년 비정규직 법안이 발의되면서 단위사업장의 현장투쟁 위주이던 전략에 정책·제도적인 대응을 추가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철폐연대도 정책위와 법률위를 만들어 정부의 비정규직 제도화에 맞서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KTX 여승무원들과 이랜드·뉴코아 노조의 정규직화 투쟁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투쟁으로,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지원 확대와 정규직 노조의 연대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인 차원은 물론 개별 투쟁에서도 패배하는 결과가 늘어나면서 철폐연대를 비롯한 비정규노동운동 진영은 전략의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비정규노동운동이 더욱 수세적으로 몰린 상황에서 철폐연대는 2009년 향후 전망을 모색하는 연속 토론회를 기획해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철폐연대의 양한웅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비정규직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려고 노력해 왔다”면서 “비정규노동운동의 투쟁동력은 조직화된 비정규직 노동자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자발적인 조직화가 이뤄지도록 전략적으로 핵심이 되는 분야의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사업을 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구로공단과 반월·시화공단 등의 제조업 중소 영세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전략핵심조직화 사업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양 대표는 “비정규직은 개별 기업이나 사업장 단위로 노조를 결성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노조를 만들려면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해고와 같은 위기상황이 닥쳐야 노조가 결성됐던 과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목적도 있는데, 현장의 노동자들이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분위기여서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정치권 공약 회의 여야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노동·복지 친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비정규노동문제 해결에 정치적 해법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컸다. 파견법이 만들어진 것은 김대중 정부, 기간제법이 만들어진 것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빠르게 늘어난 것도 그 시기였다. 김혜진씨는 정치권의 공약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로 했던 민주당이 최근 당 차원의 발의안에서 제외시켰다. 합의한 약속을 저버리고 전면 재수정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다.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사내하도급법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기대할 만한 구석이 없다”면서 “사내하청 문제가 납품원가를 줄여야 하는 중소기업의 상황과 직결된 것처럼 비정규직 문제는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맞물려 있다. 대기업의 전횡에 대해 사회 전체가 고민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철폐연대를 비롯한 비정규직 관련 단체들의 네트워크인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의 비정규직 권리헌장 운동은 사회 전반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 전환을 목표로 하는 활동이다. 당면한 임금차별과 고용 불안정의 문제를 넘어 노동조건·생활조건의 자기 결정권, 일할 수 없을 때 생존을 보장받을 권리, 정당한 생활임금을 받을 권리 등 포괄적인 생활권과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김혜진씨는 “세계인권선언이 현실적으로 모든 사회에서 의무적으로 적용되지는 못하지만 인권의 기준을 세우는 데 의의가 있는 것처럼 비정규직 헌장도 우선 선언적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취업문제에 매달리고 있는 청년층이 처음 사회에 진출하며 비정규직 일자리를 갖게 되면 어느덧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의 계약에도 적응하게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대기업과 자본의 전횡에 대응해 비정규직도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의 주체라는 사실에 공감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확산하는 것이 우리의 일차적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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